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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이화여대가 '순실여대' 비아냥 듣는 까닭

이화여대 총학생회가 어제 기자회견을 갖고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부정입학 및 학사 특혜 의혹에 대해 규탄했다. 최경희 총장에 대해서는 대학의 권위와 신뢰를 저버렸다며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교수협의회의 집단 시위가 내일로 예고된 가운데 빗발치는 진상규명 요구다. 지난 7월 미래라이프대학 사태로 촉발된 마찰에 비해 수위가 한층 높아진 것이다.

논란의 핵심은 간단하다. 이화여대가 지난해 정씨를 체육 특기생으로 받아들인 것이 특혜냐 아니냐의 여부다. 학생들은 전형 종목에 승마가 추가됨으로써 그 혜택을 본 사람이 정씨 한 명이라는 점에서부터 의혹을 제기한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더구나 정씨의 어머니 최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라는 점에서 의혹의 소지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학점취득 과정에서 드러난 난맥상은 의혹을 더욱 부추긴다. 학생들은 “정씨가 승마대회를 이유로 전체 학기 수업을 불참하고도 학점을 인정받았고, 학교는 계절학기 수업 당시 가이드를 붙여주는 편의까지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지난 학기에 같이 디자인 강의를 들었다는 어느 학생은 대자보를 통해 “왜 이 학생은 수강신청을 해놓고 안 오는지 모르겠다”는 담당 교수의 불평까지 소개했다. 정황으로 미뤄 당연히 F학점을 받아야 하는데도 B학점 이상 받았다는 문제 제기다.

이화여대 교수협의회가 재단에 대해 최 총장의 해임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기로 했다는 자체가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1000여명에 이르는 교수 전원이 가입해 있다는 점에서 교수들의 총의를 대변하는 셈이다. 이화여대 역사에서 교수들이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집단 시위를 예고한 것이 1886년 개교 이래 130년 역사에서 처음이라고 한다.

이처럼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면서 학교 측이 어제 오후 교수 및 학생들을 상대로 그동안 불거진 여러 의혹에 대해 해명했지만 문제가 쉽게 가라앉을 분위기가 아니다. 비선 실세로 간주되는 권력층 자녀가 다른 학생들보다 특혜를 받은 것이 사실이라면 대학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회적 불평등을 조장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화여대가 아니라 ‘순실여대’”라는 비아냥이 나도는 이유를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2. ‘송민순 회고록’, 누가 거짓말하는 건가

‘송민순 회고록’이란 돌발변수가 정치권을 진영 싸움에 매몰시키며 정치 현안을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2007년 11월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서 기권할 때 북측에 미리 물어보고 했느냐, 아니면 결정한 후에 통보했느냐가 쟁점이다. 후자라면 당시 한반도 상황에서 고려할 여지라도 있겠지만 전자라면 문제가 다르다. 더욱이 내년 대선에서 유력 후보로 간주되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관련 여부가 눈길을 끈다.

보수 진영은 ‘평양의 결재’에 따른 결의안 기권은 외교적 굴욕이라며 문 전 대표를 곧장 겨냥했다. 송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최근 발간한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던 문 전 대표가 안보정책조정회의 결정을 주도했다고 서술했기 때문이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퇴 공세와 미르·K스포츠재단 및 최순실씨 의혹 등으로 궁지에 몰린 여권은 ‘국기문란’, ‘내통’ 등의 자극적 표현을 써가며 국면 전환을 꾀하는 모양새다.

이에 대해 문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내통이라면 새누리당이 전문 아닌가”라며 북풍, 총풍 등 새누리당 전비(前非)를 물고 늘어졌다. 처음에는 다수의 의견을 듣는 노무현 정부의 의사결정 방식을 “박근혜 정부도 배워야 한다”며 외려 자랑하더니 이젠 측근들을 내세워 “그런 사실이 없다”, “미리 결정한 후에 통보했다”며 말을 바꾸기에 바쁘다. 진보계가 문 전 대표 지원 사격에 벌떼처럼 나선 것은 불문가지다.

그러나 국민이 바보가 아니고서야 이런 식의 물타기나 말바꾸기로 진실을 호도하는 술책은 통하지 않는다. 공작정치를 규탄해야 하지만 관계자 사법처리까지 끝난 과거사에 기대어 사태를 어물쩍 넘기려 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송 전 장관은 여전히 “기록대로 썼다”며 논란을 일축하고 있다. 그를 국가기밀누설죄로 고발해야 한다는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의 주장이야말로 역설적으로 회고록의 진실성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증거다.

문 전 대표는 “사드 배치도 북한에 물어볼 텐가”라는 비아냥이 쏟아지는 현실을 직시하고 사건의 전말을 직접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 기록물을 공개하는 수밖에 없다. 여권도 각종 의혹을 덮는 호재로만 볼 게 아니라 차분한 진실 규명으로 국기를 바로잡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서울신문]

3. 中, 러의 北어선 불법조업 단속 봤나

러시아가 자국 해역에서 불법 조업한 북한 어선을 엄격하게 응징한 것은 해양 주권을 지키는 데 어떤 주저함도 없는 최근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 준다. 러시아 국경수비대는 엊그제 자국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침범한 북한 어선을 검문하는 과정에서 선원들이 저항하자 발포했다. 북한 선원 48명 가운데 1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북한 어선이 EEZ 밖으로 도주하려 하자 중기관총으로 프로펠러를 쏘아 기동을 정지시키기도 했다.

북한 선원들은 러시아 수비대를 공격해 대원 한 사람의 머리를 다치게 했다고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덧붙였다. 대북 제재가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외화벌이 압박에 내몰린 북한 선원들이 불법 조업에 나서 죽거나 다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러시아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국경수비대 대응이 지나쳤다고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사건을 보면서 우리 해역에서 떼 지어 불법 조업을 일삼는 것은 물론 해경의 단속에 툭하면 흉기를 휘두르는 중국 어선과 선원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정부는 불법으로 고기잡이하던 중국 어선이 해경 고속단정을 들이받아 침몰시킨 사건이 빚어지자 강력 대응책을 내놓았다. 단속에 저항하는 불법 중국 어선은 함포, 벌컨포, 기관총으로 선체를 직접 공격하고 공해까지 쫓아가 반드시 검거한다는 내용이었다. 러시아의 북한 어선 단속을 보면 ‘강력’이라는 수식어가 오히려 무색한 주권국가의 당연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한국 해경의 방침은 모순을 격화하고 분쟁을 유발한다”며 억지주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더구나 중국은 19일로 예정된 한·중 어업지도선 교차 승선 활동도 중단하겠다고 해양수산부에 통보해 왔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외교 분쟁화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니 사과와 관련자 처벌, 재발금지 약속도 모자랄 판에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 어선은 전 세계적 골칫거리다. 올 들어 인도네시아 해경과 중국 해안경비대는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중국 어선 때문에 충돌 직전에 이르렀다. 인도네시아가 나포한 중국 어선을 폭파하는 장면은 이제 새롭지도 않다. 지구 반대쪽 아르헨티나 해군은 단속에 저항하는 중국 어선을 격침했고,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잇따라 중국 어선을 나포했다. 나아가 중국 어선의 싹쓸이 조업은 지구 전체를 어족자원 고갈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중국은 불법 어선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G2 타령’도 그만하라.

4. 날개 없이 추락하는 국회·정부·법원의 신뢰도

우리 국민의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이 심각한 수준이다. 3명 중 1명이 사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 사회정의 수준의 바로미터가 사법부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최근 통계청이 국가지표체계에 공개한 자료가 그렇다. 대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64.5%)는 2003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최저치다. 통계청도 이런 자료는 머리카락도 안 보이게 차라리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공공기관 중에 그나마 가장 후한 점수를 받은 사법부가 이 모양이다. 그러니 통탄할 노릇이다. 중앙정부(43.8%)의 신뢰도는 지방자치단체(49.3%)보다도 한참 아래다. 국민 둘 중 한 사람조차 정부를 믿지 못하고 있다면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 성적도 형편없기는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 조사치보다 일 년 만에 곤두박질쳐 국민 둘 중 한 사람(52.2%)만 겨우 신뢰를 보냈다. 국회는 아예 신뢰라는 단어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조직이 됐다. 국민 10명 중 3명도 신뢰하지 않는 부동의 꼴찌다.

이 결과는 2014년 조사치다. 결과가 오히려 더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래서다. 2년이 지난 지금의 사정은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호전됐을 리가 없어 보인다. 어느 한 곳조차도 그동안 개혁이나 자정에 성공한 결과물을 보여 주지 못했다. 당장 사법부만 봐도 나오느니 한숨이다. 누가 뭐래도 사법부는 국민 신뢰의 마지막 보루 같은 국가기관이다.

그런 곳에서 고질적 전관예우와 끼리끼리 조직문화의 폐해가 최근 몇 달만 해도 고구마 덩굴처럼 엮여 나왔다. 법조계 고위 관료들의 상상하기 어려운 뒷거래 풍토에도 대법원과 검찰은 입으로만 개혁하겠다고 얼버무린다. 굵직한 현안마다 권력의 눈치를 살핀 듯한 판결도 그렇거니와 전반적인 판결의 보수화 경향도 문제다. 상식과 동떨어진 판결과 수사가 얼마나 큰 실망을 안겨 주는지는 법원과 검찰 스스로 더 잘 알고 있다.

정부 불신 역시 이상할 게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은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정부를 쉼 없이 경험하고 있다. 정부의 늑장 대응에 메르스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졌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가습기 살균제로 홍역을 치르고서도 여전히 치약 독성 성분으로 사회 혼란을 키우는 현실이다. 중요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하거나 비밀주의로 일관하는 행태가 관행으로 굳었다.

최근 지진 불안으로 생긴 유행어가 ‘각자도생’이다. 정부에 기대겠다는 희망을 포기하겠다고 시민들은 자조한다. 정부는 가슴을 쳐야 할 일이다. 국민 신뢰를 잃은 정부는 앉은뱅이 풀이나 다름없다. 정책 효과, 사회 통합 그 무엇도 기대할 수 없다. 공직사회의 총체적 불신을 털어 내는 방책은 하나뿐이다. 복지부동을 벗어나 어떻게든 국민과 소통하는 것이다. 정책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을 설득하려는 자세가 해답의 전부다.

[동아일보]

5. 안보위기 키운 靑·여당, ‘문재인 종북논란’에 안도할 때인가

2007년 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물어보고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기권했다는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파문과 관련해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어제 “사실이라면 매우 중대하고 심각한, 충격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이를 ‘북한정권 결재사건’으로 규정하고 ‘대북 결재사건 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내년 대통령선거까지 안보 이슈로 이어갈 태세다. 오늘도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총공세를 펴기로 했다.

회고록 내용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제 처음 “제가 초기에는 결의안에 찬성해야 한다는 외교부 주장에 동조하다가 나중에 다수 의견에 따라 입장을 바꿨다고 하는데, 그것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측근인 김경수 더민주당 의원이 ‘북한 의견을 물은 것이 아니라 결정을 통보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 맞는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엔 아예 묵묵부답이었다. 남들은 잘도 기억하는데 명색이 대통령비서실장이라던 사람이 북한인권결의안 같은 중요 사안의 의사결정 과정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9년 전 일이니 실제로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곤궁해질 때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를 전가의 보도(寶刀)처럼 써먹기도 한다. 송 전 장관의 회고록 내용을 시인하면 새누리당의 ‘대북 결재’ 주장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고, 부인했다가 나중에 사실이 드러나면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힐 것을 우려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 등으로 수세에 몰렸던 여권이 국면 전환 카드라도 잡은 듯 문 전 대표와 더민주당을 몰아붙이는 데 박수 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이 북의 ‘핵 인질’로 잡히는 안보 위기에 본격적으로 빠진 것은 박근혜 정부 들어서다. 박 대통령은 취임 직전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감행했음에도 한가하게 ‘통일 대박’을 외쳤고, 대북 제재를 무력화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 함께 톈안먼 성루에 올랐다가 4, 5차 핵실험을 맞았다. 어제 예정됐던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어 대북 대비 태세를 다잡았어야 할 텐데 돌연 연기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안보 위기에 더해 경제 위기는 서민의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유일호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 수뇌부를 따로 불러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회의를 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국회의 국정감사도 ‘회고록 파문’으로 새로운 여야 대치 정국에 접어들면서 소득 없이 끝날 것이다. 애초에 우병우 최순실 차은택 등 주요 증인 채택을 막아 사실상 국감을 무력화한 것은 청와대와 ‘청와대 하부기관’ 소리를 듣는 새누리당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노무현 정부 때의 ‘대북 결재’ 의혹을 공격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6. ‘막말 잔치’ 정청래 출판기념회서 드러난 野 수준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5일 서울 마포구청에서 개최한 ‘국회의원 사용설명서’ 출판기념회는 막말의 잔치 같았다. 정봉주 전 의원은 축사에서 “파란 집에서 감옥으로 옮길 분(청와대 참모)도 있고, 삼성동에서 감옥으로 옮길 분(박근혜)도 있다”고 말했다. 방송인 김갑수 씨는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에 작살 낼 놈들을 작살내야 한다”며 “(내년에) 유력 후보의 암살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은 지난해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시절 당시 주승용 최고위원에게 “사퇴 안 할 거면서 사퇴한다고 공갈친다”는 막말로 설화를 빚었다. 그는 이 발언으로 당직정지 1년 처분을 받았으나 결국 없던 일로 됐다. 그는 2012년 트위터에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향해 빨리 죽으라는 뜻의 ‘명박박명(薄命)’, 2013년엔 박근혜 대통령은 물러나라는 뜻의 ‘바뀐 애(박근혜)는 방 빼’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정치의 폐부를 찌르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은 없고, 그저 질 낮은 저주와 조롱뿐이다. 출판기념회가 막말 잔치로 흐른 게 우연이 아닐 수 있다.

출판기념회에는 더민주당에서 추미애 대표 등 지도부를 비롯해 친노(친노무현) 친문(친문재인)을 주축으로 한 범주류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추 대표는 축사에서 정 전 의원의 올 4월 총선 공천 배제와 관련해 “음모가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훌륭한 작가를 배출하기 위한 우리 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님(김종인)의 탁견이 있었다”고 비꼬았다. 문재인 전 대표는 불참했으나 대신 트위터에 “기득권과 사익만 추구하는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현실 속에서 좋은 정치인을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라며 정 전 의원을 치켜세웠다.

아무렇게나 막말을 하는 사람들, 그런 막말을 들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세력이 내년 대선을 다 잡은 것처럼 말하는 것은 오만과 치기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어제 언론 인터뷰에서 “조직된 분노로 지지를 형성하는 정치는 공멸을 가져올 뿐”이라고 말했다. 친노의 핵심으로 한때 친노 폐족(廢族)까지 선언했던 안 지사의 고언(苦言)에 더민주당 인사들은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7. 대형버스 잦은 참사… 비상망치라도 제대로 안내하라

정부는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부고속도로 언양 갈림목에서의 관광버스 화재사고를 계기로 비상망치와 소화기 등의 위치, 사용 방법을 모니터나 방송을 통해 안내하도록 의무화하는 법령을 내년 1분기에 시행하겠다고 했다. 사고 당시 출입문이 막히는 바람에 창문을 깨고 탈출해야 했는데 비상망치를 찾지 못해 대형 참사로 이어졌기에 망치에 형광테이프를 붙여 눈에 띄기 쉽게 하는 조치도 마련했다. 연말까지 버스 천장과 바닥에 비상해치 설치도 의무화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2년 전에도 운전기사가 출발 전에 승객들에게 비상망치와 소화기의 위치 및 사용법 등의 안내 방송을 하도록 조치하겠다고 했다. 운전기사들이 승객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생각을 갖도록 명찰이 붙은 제복을 입도록 했다. 어기면 과징금이나 과태료를 물리겠다고 했지만 별로 달라진 건 없다. 언양 사고버스 운전기사는 사고 전후에 비상망치 위치를 알려주기는커녕 먼저 탈출하기에 바빴다. 행정처분을 법령으로 바꾼다고 뭐가 달라질지 의문이다. 어이없는 참사 후에야 사후약방문 식 대책을 내놓는 정부가 미덥지 않다.

7월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입구에서 5중 추돌사고를 일으킨 관광버스 운전기사는 2014년 음주운전으로 세 번째 적발돼 면허가 취소됐다. 언양 사고 운전기사도 음주·무면허사고 등 12건의 교통 전과가 있다. 작년에 면허가 취소된 버스 운전기사 548명 중 408명이 사고나 교통법규 위반 경력이 있는 부적격자였다. 이런 운전기사들이 모는 대형버스를 타는 것은 흉기에 목숨을 내맡기는 것과 다름없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뒤 고속·전세버스 안전대책을 내놓았고 봉평터널 사고 직후에는 운전기사가 4시간 연속 운전하면 최소 30분 쉬도록 보장하겠다고 했다. 큰 사고가 터질 때마다 응급 땜질대책을 내놓기보다 선제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2년 전부터 입석 금지로 수도권 광역버스 뒷문을 없앤 뒤 좌석을 늘려 출입구가 앞문 하나로 줄었는데도 비상망치 위치를 아는 승객은 손에 꼽을 정도다. 정부가 단단히 정신을 차려야겠지만 승객들의 안전의식도 높아져야 한다.


[세계일보]

8. 경제 난국 돌파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정부

한국 경제가 위기를 맞고 있다. 효자산업인 전자, 자동차에서 조선·해운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성한 곳이 없다. 전략산업인 해운의 부실과 적자는 그렇다고 치자.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까지 생산 중단과 리콜 사태로 휘청거리고 있다. 연이은 악재 속에 수출은 두 자릿수로 곤두박질치고 실업률은 사상 최악으로 치닫는 중이다. 급기야 양질의 일자리가 줄면서 하루 두세 시간 정도 일하는 초단기 근로자만 5년 만에 최대치로 늘었다는 소식이다.

경제는 내년에도 살아날 기미가 없다. 한국은행은 최근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연 2.8%로 끌어내렸다. 올 들어 벌써 세 번째 하향 조정이다. 올 1월 3.2%를 예상했던 한은은 분기마다 0.1~0.2%포인트씩 계속 낮췄다. 민간경제연구소는 그마저도 ‘장밋빛 전망’이라고 지적한다. 내년에 수출과 기업 투자가 회복될 것이라는 한은의 기대가 너무 낙관적이라는 것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가계 부채와 부동산 경기 악화로 내수 경기가 얼어붙을 것이란 우려가 쏟아지는 상황이다.

심각한 문제는 지금의 정부가 경제 난국을 돌파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점이다. 치밀한 전략이 없는 데다 번번이 골든타임을 놓치기 일쑤였다. 비근한 예가 현재 검토 중인 부동산대책이다. 투기 과열을 잠재우기 위해 분양권 전매제한 강화 등의 조치를 준비한다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미친 전셋값’으로 시작된 부동산 광풍은 ‘미친 집값’, ‘미친 분양’으로 번진 지가 오래다. 부동산 광풍이 이미 수도권 신도시 등지로 확산된 상황에서 뒤늦게 소화기를 들고 뛰어다닌다고 불길이 잡힐 리 만무하다.


타이밍을 놓친 대책은 효과가 미미할 뿐만 아니라 부작용만 낳게 마련이다. 얼마 전 내놓은 10조원짜리 경기 부양책도 내막을 들여다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신용카드 포인트 사용, 노후 경유차 지원 혜택을 끼워 넣어 그럴싸하게 진열대를 치장한 느낌이 든다. 이런 ‘꼼수 부양’으로 경기가 살아나길 기대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박근혜정부는 경제 분야에서 ‘474 비전’을 내건 정부다. 내년까지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달러를 달성하겠다는 다짐이었지만 국민소득은 3만달러 문턱도 넘지 못하고, 경제성장률은 2%대를 맴도는 처지다. 이런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놓고도 정부 내에선 도무지 위기감을 찾아볼 수 없다.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는 정부, 그것이 가장 큰 위기이자 국가적 난제다.


9. 세계는 우주 경쟁, 관심도 자극도 없으면 미래도 없다

중국의 7번째 유인 우주선 ‘선저우 11호’가 어제 발사됐다. 간쑤성 주취안 위성발사센터에서 ‘창정 2호 FY11’ 로켓에 실려 창공으로 날아오른 것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무인탐사선 ‘엑소마스’가 화성 착륙선 분리 절차에 성공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엑소마스는 지난 3월 러시아와 유럽이 공동으로 쏘아올린 탐사선이다. 세계 열강들의 우주 경쟁이 불을 뿜는다는 뜻이다.

중국은 자신만만하다. 어제 발사 19분 만에 ‘발사 성공’을 선포했다. 남성 우주인 2명이 탑승한 선저우 11호의 성공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지난달 중순 발사한 실험용 우주정거장 ‘톈궁 2호’와 도킹하는 과제가 남아 있고, 30일간 우주공간 체류와 과학실험 완수라는 또 다른 과제도 기다리고 있다. 아직은 말을 아껴야 마땅하다.

중국은 샴페인을 터뜨렸다. 최종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2011년 무인우주선 ‘선저우 8호’의 ‘톈궁 1호’ 도킹 성공으로 미국·러시아를 좇는 제3의 우주강국 위상을 확보한 이후 2012년과 2013년의 연이은 유인 우주 도킹 성공 등으로 기술적 자산을 축적한 자신감의 발로일 것이다. 선저우 11호가 임무를 완수하면 중국 자신감은 배가된다. 2022년부터 독자적 우주정거장 운영에 들어간다는 프로젝트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다.

엑소마스의 낭보는 한술 더 뜬다. 유럽우주국은 화성 궤도선(TGO)과 착륙선 ‘스키아파렐리’가 성공적으로 분리됐다고 공표했다. 엑소마스가 지구로부터 5억㎞ 가까이 날아 화성에 근접해 이뤄낸 성과다. TGO는 19일 화성 궤도에 안착하고 스키아파렐리는 착륙을 시도한다. 스키아파렐리는 2020년으로 예정된 제2차 화성 착륙 탐사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점검하게 된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이런 뉴스에는 둔감하게, 노벨과학상에는 민감하게 반응하기 일쑤다. 특히 노벨과학상 명단에 일본인 이름이 들어 있으면 흥분과 개탄을 하면서도 과학 역량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해외의 우주과학 성과에는 별다른 관심도 없고 자극도 받지 않는다. 선저우 11호와 엑소마스 소식도 그렇게 흘려보낼 공산이 없지 않다. 관심과 투자가 없으면 성과도, 미래도 없다는 평범한 이치가 통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국가적 각성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정부와 사회에 어떤 자극을 받았는지 엄중히 묻게 된다.


[중앙일보]

10. 강남 부동산 과열 차단, 좌고우면할 때 아니다

치솟는 서울 강남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어제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값이 몇 달 새 크게 오르는 등 제한적인 과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전매 제한, 청약제도 개선 등 미세조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그간 “필요하면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에 따라 시장에선 조심스럽게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정책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규제를 풀고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해 경제를 띄우려던 기존 정책이 가계부채 급증과 부동산 시장 양극화로 부작용만 잔뜩 남긴 채 한계에 달하자 과열 억제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당장 급브레이크를 밟을 것 같지는 않다. 국토부는 여전히 단계적·제한적 대응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로선 전매제한 기간을 6개월에서 1년 이상으로 늘리고 재당첨 제한 조치를 재도입하며 청약 1순위 자격을 강화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를 투기과열지구로 묶는 고강도 대책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 10가지 정도의 규제가 한꺼번에 적용돼 전매 거래를 통한 시세 차익을 얻기가 어려워진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금은 제한된 지역에 맞춤형 처방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과열이 계속되면 추가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이 문제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꼭 짚어 강남만 꽁꽁 묶기는 이르다는 것이다.

정부의 고심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부동산 시장의 온도차가 너무 크다. 서울엔 ‘청약 광풍’이 불고 있지만 지방은 ‘청약 한파’를 맞고 있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는 3.3㎡당 평균 4000만원을 넘어섰고 이달 초 11가구를 모집한 서초구 ‘아크로리버뷰’ 59㎡엔 4733명이 몰려 430.2대 1이라는 기록적인 경쟁률을 보였다. 반면 지방 중소도시 아파트 분양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지난달 충북 진천의 한 아파트는 1순위 청약자가 0명이었다. 미분양 아파트가 줄어든 서울과 달리 지방은 20개월 새 2만 가구 넘게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강도 대책을 내놨다간 잡으려는 강남 집값은 안 잡히고 전국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려울수록 쪽집게식 대책이 필요하다. 대책은 단순·명료·과감해야 한다. 우선 기존 부동산 정책의 폐기 선언부터 해야 한다. 규제 완화 대신 수요 억제, 금융 완화 대신 돈 줄 죄기로 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시장에 확실히 알려야 한다. 보금자리론이나 아파트 중도금 대출 규제 같이 두루뭉술하게 주변부를 때리는 대책은 한계가 있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부활해야 한다.


부동산 시장 경착륙의 부작용보다 더 심각한 게 부동산 양극화요 가계부채다. 강남 집값의 나 홀로 급등을 잡지 못하면 지역·계층 간 골이 깊어지고 사회의 절망감이 더 커질 것이다. 1257조원이 넘어 임계점에 다다른 가계부채의 뇌관이 터질 때의 충격은 말하나마나다.



주요 신문칼럼

 

1. [한겨레][유레카] <자백>과 ‘법비’ / 김이택

영화 <자백>은 1970년대 유학생 간첩조작 사건과 40년 뒤의 탈북자 간첩조작 사건을 두 축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은 간첩조작의 피해자와 가해자들이다.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이던 이철씨의 아버지는 아들이 ‘간첩’으로 수감된 뒤 그 충격에 세상을 떴고, 어머니도 3년 뒤 남편을 따라갔다. 뒤늦은 무죄에 아들은 하염없이 울었다. 유학생 간첩 사건으로 7년을 복역하고 일본으로 돌아간 김승효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40년째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소리도 못 내고 입만 열심히 움직이던 그는 “한국은 나쁜 나라다. (다시는) 한국에 안 간다”고 했다.

가해자 중 주연급은 김기춘씨다. 그가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시절 작성했다는 메모는 간첩 ‘조작’을 알면서 은폐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간첩’ 이철이 방북했다는 시점에 실제는 다른 곳에 있었고, 일본변호사모임은 이 사실을 공개하며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김 국장은 이를 덮으려는 듯 외무부 국장에게 ‘입북 날짜 등은 보안 조처해달라’며 파란색 사인펜으로 메모를 남겼다. “우리가 남이가”라던 초원복집 사건은 헌법소원으로, 정윤회 게이트는 ‘국기 문란 사건’으로 되치기하며 장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승승장구하던 그였지만 최승호 피디가 내민 40년 전 자필 메모 앞에선 “기억나지 않는다”며 꽁무니를 뺐다.

국정원 과거사위에서 활동한 한홍구 교수(성공회대)는 고문으로 간첩을 조작하는 데 동조한 법률가들을 ‘법비’라고 불렀다. 법을 악용한 도적이란 뜻이다. <자백>에도 국가정보원이 사진과 출입국기록, 영사증명서를 위조해가며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조작하는 동안 이를 은폐·방조한 검찰 법비들이 등장한다.

<자백>이 열악한 상영관 사정에도 불구하고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최순실·우병우 게이트에 등장하는 법비들 모습이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때문은 아닐까.


2. [머니투데이][광화문]여자는 애 낳는 기계가 아니다

‘삶’을 ‘지옥’이라 여긴다면 그 논리적 귀결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다. ‘한국’을 ‘헬조선’으로 인식하는 이가 많아질수록 출산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역대 최저인 올 상반기 국내 출생아 숫자(21만5200명)는 우리가 사는 시대나 상황의 ‘거울’ 같은 수치다.


반전의 조짐도 없다. 같은 기간 혼인건수(14만4000건)는 1년 전보다 7.6% 감소했다. 결혼 2년 안에 첫 아이를 갖는 비율이 70%란 점을 고려하면 2년 뒤 출생아 수는 더 줄어든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합계출산율)가 지금처럼 1.24명에 머문다면 출생아 수가 60만명대던 1984~1990년생들의 결혼적령기엔 출생아 수가 30만명대가 된다.

통계청은 2030년부터는 인구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하는데, 그 무렵부터 사회 각 분야에서 부작용이 시작될 것은 쉽게 예견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다수는 당장 내 눈앞의 현실이 아니어서 저출산 문제를 겉으론 이해해도 속속들이 체감하지 못한다.

저출산 문제를 미리 겪은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지방소멸’의 저자 마쓰다 히로야는 일본이 진작에 저출산 사회대책 기본법을 제정하고도 효과를 못 본 배경으로 ‘국민의 무관심’을 꼽았다.

그러나 관심을 갖는다고 해도 저출산은 뾰족한 수단이 없다. 이는 저출산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통계나 조사 없이도 모두가 직감적으로 안다. 좋은 일자리가 많지 않고 그 일자리마저 40대 이후엔 불안하다. 주거비용은 높고, 사교육비는 감당키 힘겹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한국전쟁 때 얼마간 흐트러졌던 신분질서는 휴전 뒤 두 세대가 지나면서 ‘굳히기’에 들어갔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고 중산층조차 아이를 키우는 게 버거운 환경에서 출산은 부모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가혹한 일이 될 수 있다.

그 아이들이 개인적으로 살아내야 할 삶도 만만치 않겠지만 집단적으로 짊어져야 할 국가부채나 조세와 연금 등도 그들의 삶을 옥죌 것이다. 특히나 ‘아이를 낳는 게 임금노예, 세금노예를 만드는 것’이라 여기는 이들에겐 출산하지 않는 것이 그 사회에 대한 부정 또는 저항의 방식일 수도 있다.

따라서 사회적 구조나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상태에서 1980년대처럼 산아제한 캠페인하듯 해서 출산을 늘릴 수는 없으며 ‘저출산’의 ‘원인’에 더 집중해야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여자는 애 낳는 기계가 아니므로 무상보육이든, 무상급식이든 혹은 아동수당이든 간에 “돈 줄 테니 애 더 낳아라”는 현금살포 수준의 사고방식으론 안 된다는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이 저출산을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라고 했지만 현정부에서 그 해법을 준비하는 건 보건복지부의 인구정책총괄과, 출산정책과 2개과에 불과하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위원장 대통령)가 운영되지만 비상설 위원회가 해결할 수 있는 과제도 아니다.

일본이 ‘1억 총활약상’을 신설해 아베 총리의 최측근을 수장으로 앉힌 것은 국가 차원에서 힘을 싣겠다는 메시지를 주면서 자국민들의 ‘관심’을 환기하는 효과를 의도한 것이다.

정치권의 잠재적 대선주자들은 앞으로 ‘저출산 해소’를 위한 실질적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임기 내내 매일 이 문제를 챙길 생각을 해야 한다. 일본처럼 별도 정부기구를 설치하든, 복지부의 인구정책실을 기획재정부로 옮기든 간에 ‘저출산 대책=복지부나 할 일’이라 여기지 말고 교육, 노동, 주거의 새판을 짜야 한다. 급감한 출생아 수에 맞춰 학교와 군대 등 사회 각 분야의 기존 체제를 어떻게 재편할지 고민해야 하고 무작정 출산율만 높이려 들지 말고 적정한 인구 수에 대한 탐색도 해야 한다.

출생아 수 40만명대의 맏이인 현재 ‘중2’(2002년생)는 5년 뒤엔 대학과 군대에 가고 10년 뒤엔 결혼을 하는 연령대가 된다. 한국 사회는 준비가 덜 돼 있는데 시간은 부족하고 할 일은 너무 많다.


3. [매일신문][권영민의 에세이 산책] 있어빌리티

‘있어빌리티’라는 말이 있다. ‘있어 보임’과 능력을 의미하는 ‘어빌리티’를 합쳐서 만든 말로 ‘있어 보이게 만드는 능력’이란 뜻이다. ‘있어 보임’은 ‘있음’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있어 보임’에는 ‘있음’에는 없는 가상성이 있다. 실제로는 없지만 마치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기 때문에 ‘있어 보임’에는 좋게 말해 환상이 포함되어 있고, 나쁘게 말해 거짓이 있다.

‘있어빌리티’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자신이 실제 자기 자신보다 더 있어 보이도록 연출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메이크업 기술이라 할 수 있다. 돈-인맥-지식 있어빌리티는 교묘한 눈속임이지만 그렇다고 사기는 아니다. 화장한 나는 나와 약간 다르지만 내가 아닌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있어빌리티는 애매하다.

나 역시도 있어빌리티를 사용하고 있다. 실제의 나는 알려진 나와 다르며, 내가 알려졌으면 하는 나와도 다르다. 나의 프로필 사진은 내가 가장 근사하게 나온 사진이다. 어쩌면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나는 어쩌면 단순한 성찰을 그럴싸하게 깊이 있어 보이게 하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나는 나 자신을 단 한 번도 나의 밥벌이로 소개해본 적이 없다. 나 자신을 비루한 밥벌이가 아니라 ‘작가’로 보이게끔 하는 능력, 그것이 바로 ‘있어빌리티’다.

사회든 직장이든 능력 있어 보이게 하는 능력을 요구하고, 능력을 갖췄다는 자격을 갖출 것을 요구할 뿐 ‘능력 자체’를 키울 것은 장려하지 않는다. 우리는 ‘능력’ 대신 학위나 대학, 직업, 직장, 스펙, 공인어학성적, 자격증이 그 사람을 말해주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능력은 질적인 것이라 애매하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명료한 수치와 자격증으로도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서 긴 시간을 지켜보고 기다려주지 않는 사회, 사람의 가치를 오직 능력의 수준으로만 판단하는 사회는 반드시 ‘있어빌리티’를 고도화시킨다. 수입차 리스나 짝퉁 시계조차 감당할 돈이 없는 20대 수많은 가난한 청춘들이 SNS에서 학위나 출신학교, 직장, 유명한 사람과의 사진 한 장을 활용한 최첨단 있어빌리티 기술을 개발해온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다.

사람은 자격증으로, 그 사람의 밥벌이로, 타고 다니는 차, 또 수능 성적표로 그렇게 빨리 파악되지 않는다. 내가 본 그 사람은 그 이상일 수도, 이하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내 밥벌이가 아니다. 그러면 나는 작가인가? 그것도 아니다. 있어빌리티가 사실과 가상 사이에 있듯이, 나도 내 밥벌이와 작가 사이에 있다. ‘있어빌리티’라는 말만큼이나 나는 애매한 존재다.


4.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어우동

새 지폐의 여성으로 어우동(?~1480)은 어떨까, 몽상한 적이 있다. 그는 1480년(성종 11년) 10월 18일, 풍속과 법도(三從之道ㆍ삼종지도)를 능멸했다는 죄목으로 당시 권력에 의해 교형(絞刑)당했다. 조선왕조실록 등 15세기의 기록이 전하는 그의 죄상은, 21세기의 언어로 해석하자면 성의 자기결정권을 급진적으로 실천한 거였다.

충북 음성의 벼슬하는 양반(박윤창)가에서 태어난 그는 왕실의 먼 친척과 결혼해 세종의 손자며느리 뻘로 신분이 급상승했지만 딸 하나를 낳고 쫓겨났다. 아들을 못 낳아서 그리 됐다는 설, 남편이 다른 여자를 정실로 들이기 위해서였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 즉 어우동이 신분 낮은 이를 빈번히 침실로 불러들이다 발각돼서 쫓겨났다는 설은 영 미심쩍은데, 왕가 여인의 부정에 소박만으로 만족했을 만큼 녹록했던 때가 아니어서다. 사정은 달랐지만, 왕비(제헌왕후, 폐비 윤씨)를 폐비시키고(성종 10년) 사약까지(성종 13년) 마시게 하던 시절이었다.

부부 사이가 썩 좋지 않았던 건 사실일 것이다. 시가에서 쫓겨난 뒤 친가에서도 외면 당한 어우동은 몸종 하나와 단 둘이 빈한하게 살아야 했다. ‘삼종의 도’의 조건 자체를 박탈 당한 그는 살기 위해 기녀(妓女)가 됐다.

그 전에도 여러 남자와 성관계를 즐겼다는 설은 사실일 듯하다. 평민의 성풍속이 그러했고, 윤리도 관대했다. 어쩌면 그는 신분사회의 상위계급에서 퇴출된 뒤 계급적 정체성을, 원해서든 아니든, 현실에 맞게 변환해야 했을 것이다. 그는 미모와 함께 시서(詩書), 거문고와 춤 등 예(藝)에 능했다. 종실과 양반 관료, 중인ㆍ천민 등 스스로 찾아오거나 그가 끌어들인 남자들이 허다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성적 쾌락을 위해서였건 위선적인 성윤리를 조롱하기 위해서였건 스스로 선택해서 그 삶을 누렸고, 남성 특히 양반들은 그가 허락한 유희에 흔쾌히 엎드렸다. 그의 이름을 제 몸에 문신한 이들이 여럿이었다고 한다. 지배계급은 그의 성적 급진성에서 모욕감과 함께 체제전복적 파괴력을 감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도 그에게 덮씌워진 요녀(妖女)의 이미지는 성종실록이나 용재총화 같은 성리학자들의 기록 탓이 아니라 그를 성적 요깃감으로 소비해온 20세기 이후의 게으른 영화와 야담류 대하소설 탓이다. 용모를 알 수 없는 그를 지폐 모델로 삼자면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


5. [동아일보][횡설수설/고미석]버터 사랑의 건강학

우유에서 지방만 추출한 버터는 가장 오래된 자연식품 중 하나다. 그 기원은 인류가 처음 동물을 가축으로 길렀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버터는 풍미를 더하는 재료를 넘어 폭넓게 쓰였다. 고대 로마에서는 기침할 때 먹는 약 혹은 아픈 곳에 바르는 연고로도 활용했다. 인도 힌두교도들은 지금도 크리슈나 신에게 버터를 바친다.

한국인이 ‘밥심’으로 살던 시절, 많은 이들이 초간단 버터밥을 즐겨 먹었다. 갓 지어 따끈따끈한 밥에 버터 한 조각 올린 뒤 간장 넣고 비비면 끝! 형편이 좀 나은 집에선 장조림 간장을 넣고 참기름도 찬조 출연했다. 최근 ‘먹방’ 프로그램에서 ‘호랑나비’의 가수 김흥국은 버터밥을 먹자마자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가 해준 맛 같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며 울컥하는 표정을 지었다. 버터와 밥의 소박한 이중주, 5060세대에게는 ‘엄마 밥상’이 떠오르는 추억의 맛이다.

100g당 칼로리가 700Cal 이상인 버터는 대표적 고지방 식품이다. 그런데 요즘은 다이어트 식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TV에서 밥이나 빵 같은 탄수화물은 적게 먹고 버터와 육류 등 고지방 음식을 먹는 것이 건강과 다이어트에 좋다고 소개한 뒤 버터 품귀 현상까지 빚어졌다. 한 대형마트는 9월 중순부터 버터 판매량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약 40% 늘었다. 버터 열풍이 다이어트 판도를 휩쓸면서 삼겹살을 버터에 구워먹는 삼겹살버터구이도 등장했다. 나이 든 세대라면 생각만 해도 속이 니글니글해지는 메뉴다. 

탄수화물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고지방 식이요법을 하면 일시적으로 살이 빠질지 몰라도 영양 불균형과 혈중 콜레스테롤 상승 등 부작용을 감내해야 한다. 다이어트도 ‘신상’으로 소비되는 시대다. 황제 다이어트에 구석기 다이어트와 고지방 식단까지 탄수화물 섭취를 제한하는 식이요법이 이어지고 있다. 풍작에도 쌀값 폭락을 우려하며 ‘우울한 풍년’을 맞은 농민들로선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건강과 다이어트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길, 누구나 아는 대로 균형 잡힌 식단과 운동이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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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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