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비선 국정개입 의혹 검찰 수사
■ 아세안 협력 강화
■ 4대강 국정조사 필요성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비선 국정개입 의혹 검찰 수사
[중앙일보 사설-20141212금] 검찰, 살아있는 권력이라고 봐주면 안 된다
비선 실세로 지목된 정윤회씨가 10일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다. 이제 ‘정윤회 동향문건’ 수사는 거의 마무리에 접어든 느낌이다. 현재로선 정씨와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 등이 정기적으로 만나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 등을 논의했다는 문건 내용은 근거 없는 것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크다. 정씨도 “이런 엄청난 불장난을 누가 했는지, 불장난에 춤춘 사람들이 누구인지 다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의 분위기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가고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문건 내용에 대해선 ‘찌라시’로, 문건 유출은 ‘국기 문란’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너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검찰은 수사결과를 발표한 후에도 부담을 안게 됐다. 대통령 측근에 대한 의혹들이 문건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가 국민적 신뢰를 얻으려면 문건 내용 말고도 비선 실세의 문화체육관광부 간부 교체 개입 의혹, 승마협회 압력설도 규명해야 한다. 이는 시중에 떠도는 찌라시 내용이 아니라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이 발언한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공식라인 아닌 비선조직이 부처의 국·과장 인사까지 좌지우지했다는 단서로 볼 수 있다.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려면 검찰이 비선조직의 월권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문건의 제보자로 알려진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이 비선 실세들의 스폰서 역할을 했다는 의혹도 철저히 밝혀내야 할 것이다. 박 전 청장이 문건에 나온 시점 외에 청와대 관계자와 통화하거나 모임을 열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정윤회씨가 자신을 미행하라고 시켰다는 의혹을 제기한 박지만 EG 회장도 검찰 조사에 응해야 한다. 미행설이 사실이라면 박 회장은 미행했다는 사람에게 받았다는 자술서 등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반대로 허위 주장이라면 대통령의 친동생으로서 국정 혼란을 부추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김영삼 정권 말기인 1997년, 당시 ‘소통령’이라 불렸던 대통령 차남 김현철씨 관련 의혹이 불거졌다. 검찰은 그해 1차 한보비리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김씨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김씨의 YTN 사장 인사개입 관련 통화기록이 공개되면서 국회 청문회와 검찰 재수사로 이어졌다. 검찰은 재수사에서도 김씨의 한보 비리연루 혐의는 밝혀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김씨가 동문 기업인들로부터 돈을 받은 것에 대해 조세포탈 혐의를 적용해 구속했다. 한보 비리와 무관한 별건수사였지만 많은 국민은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휘두른 검찰에 박수를 쳤다. 그러나 재수사까지 가면서 온 나라의 관심이 김현철씨 의혹에 쏠리는 동안 국가경제는 무너졌고, 결국 그해 말 국가 부도가 났다. 검찰이 대통령 주변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면 97년 같은 혼란이 되풀이될 것이다. 살아있는 권력일수록 성역 없는 수사가 필요하다. 이는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정상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경향신문 사설-20141212금] 비선 의혹 수사도 제대로 않고 ‘불장난’ 몰지 말라
박근혜 정권의 탁월한 재능 가운데 하나는 불리한 사안이 터질 때마다 판을 ‘이전투구’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범법자와 고발자,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사안의 본질은 흐려지고 곁가지만 무성해진다. 비리의 몸통은 온존하고 깃털만 치명상을 입는다. 사건이 복잡해질수록 대중은 시선을 딴 데로 돌리게 된다. 정치에 대한 혐오, 공동체를 향한 불신은 더욱 깊어진다.
청와대가 다시 회심의 카드를 꺼내든 모양이다.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관련 문건을 작성·유출한 배후로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주도하고 박지만 EG 회장 측근 등이 참여한 ‘7인 모임’을 지목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문건 유출을 “국기문란 행위”로 규정한 뒤 특별감찰을 해 이 같은 결론을 내고 검찰에 관련 자료를 넘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조 전 비서관이 모임의 실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어 또 다른 ‘진실게임’으로 비화하는 형국이다.
청와대 감찰 결과가 사실이라면 마땅히 수사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수사를 하더라도 선후는 가려야 하고, 형평성도 지켜야 한다. 이번 사건의 초점은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이 실재했는지 여부다. 이 부분을 철저히 수사하지 않고서 작성·유출의 배후부터 따진다면 옳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정윤회씨 소환 조사를 두고 뒷말이 많은 터다. 검찰은 소환에 앞서 정씨 자택이나 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도 하지 않았다. 출석 과정에서 보안검색대를 거치지 않고 직원 전용 출입문을 이용할 수 있도록 특혜를 베풀었다. 조사 시간 동안 정씨 사건 담당 부서가 있는 2개 층에 대해선 출입을 전면 통제했다. 이러니 정윤회씨가 유감 표명 한마디 없이 “엄청난 불장난” 운운하는 것 아닌가.
박 대통령은 ‘정윤회 문건’ 내용을 “루머”(12월1일), “찌라시”(7일)라고 비난해 ‘수사 가이드라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청와대가 특별감찰 결과까지 검찰에 넘기면서 ‘세 번째 가이드라인’이라는 말이 나오는 모양이다. 검찰이 행정부 산하임을 감안한다 해도, 대통령 발언과 청와대의 행태는 도를 넘은 수사권 침해라고 본다.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사는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킬 의무가 있다. 검찰은 이 점을 깊이 새겨 국민 앞에 모든 진실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을 섣불리 ‘불장난’으로 규정하고 ‘불장난에 춤춘 사람’이나 쫓아다닌다면 검찰은 존립할 이유가 없다.
■ 아세안 협력 강화
[한국일보 사설-20141212금] 아세안 협력 강화로 새로운 성장동력 찾아야
한ㆍ아세안(ASEANㆍ동남아국가연합) 특별정상회의가 11, 12일 이틀 간 일정으로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고 있다. 양측 간 대화관계 수립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아세안 10개국 정상들이 2009년 이후 5년 만에 다시 한국에 모인 이번 회의는 어느 때보다 각별한 의미가 있다. 경제ㆍ정치적으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져 있는 아세안과의 협력관계를 끌어 올릴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한·아세안 최고경영자(CEO) 서미트에 참석, 기조 연설을 통해 “한국과 아세안의 장점을 결합해 양측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시너지를 창출해야 한다” 고 말했다.
연 5%가 넘는 성장세를 구가하는 아세안은 한국의 중요한 경제 파트너다. 지난해 교역액이 1,300억달러를 넘어 중국에 이어 두 번째다. 유럽연합이나 미국, 일본보다 더 많은 규모다. 액화천연가스(LNG) 석유 고무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한국의 개발경험 및 노하우 전수를 희망하고 있어 양측간 협력의 여지도 크다.
더욱이 아세안은 2015년 말 단일공동체(AEC)로 새롭게 출범한다. 인구 6억4,000만명, 역내 국내총생산(GDP) 3조달러 규모의 거대 시장이 형성되는 셈이다. 중국의 성장 둔화와 내수 침체 등으로 어려움에 빠진 우리 기업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제조업을 넘어 서비스 분야로의 협력 확대 및 FTA 업그레이드를 제안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아세안과의 협력 강화는 전체 수출의 26%를 차지하는 대(對)중국 수출의존도를 낮추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하지만 그 동안 아세안의 중요성은 간과된 측면이 없지 않았다. 비록 개방수준이 상대적으로 낮긴 했지만 2007년 발효된 한ㆍ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국내 기업들의 FTA 활용률이 다른 FTA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때문에 지난 10일 타결된 한ㆍ 베트남 FTA는 한ㆍ아세안 FTA보다 6%정도 시장 개방률을 높였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베트남은 한국이 아세안과 맺은 FTA에서 추가로 대형자동차, 화장품 등 200개 상품을 개방하기로 했다. 현재 진행 중인 인도네시아와의 FTA 협상도 가속화하는 한편 아세안과의 기존 FTA 수준도 높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야 내년 아세안 단일시장 출범 때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한류의 인기가 높고, 한해 460만명의 국내 관광객이 찾는 아세안은 이미 다방면에서 한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10개 회원국 모두 북한과 수교 관계도 맺고 있지만, 북핵 문제 등에서 한국의 든든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이번 특별정상회의는 아세안의 전략적 가치를 재인식하고 양측간 공동 번영과 미래지향적 협력을 다지는 계기가 돼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41212금] 단일시장 아세안은 한국의 새로운 기회
한국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 특별정상회의가 오늘 부산에서 열린다. 한·아세안 대화관계 수립 25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회의는 그동안의 협력관계를 평가하고 새 청사진을 논의한다. 내년 말 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의 세 아세안 공동체 출범을 앞두고 열리는 회의인 만큼 아세안과의 관계를 한층 강화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아세안과의 관계는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아세안은 동아시아 지역 협력과 한반도 문제의 협력 파트너다. 동아시아 유일의 안보협력기구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과 동아시아정상회의(EAS)를 주도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 대한 아세안 10개국의 지지는 긴요하다. 지정학적으로 한국과 아세안은 미·중의 전략적 교차로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역내 갈등과 대립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손을 맞잡을 필요가 있다.
아세안은 성장 잠재력이 큰 생산기지이자 소비시장이다. 아세안은 한국에 제2의 교역과 건설 수주지역, 제3의 투자지역으로 부상했다. 경제공동체가 출범하면 인구 6억4000만 명, 국내총생산(GDP) 규모 3조 달러의 거대 단일시장이 탄생한다. 세계경제 회복의 견인차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적잖다. 아세안을 뉴프런티어로 삼을 만하다. 아세안은 중국에 치우진 우리 경제에 좋은 완충지대가 될 수도 있다. 2000년대 이후 동남아에서의 한류 붐은 우리 기업 진출, 수출에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다. 중·일의 동남아에 대한 경쟁적·전략적 접근에 따른 경계감도 없다.
동남아는 사회·문화적으로도 우리와 밀접하다. 국민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지역이다. 외국인 근로자 가운데 동남아 출신이 16만9000여 명이다. 중국 동포를 제외하면 외국인 근로자의 절반이 넘는다. 동남아 출신 결혼 이주자도 6만 명을 육박한다. 이들이 한국과 동남아의 가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동시에 우리 사회 전반의 동남아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 높여야 한다. 이번 정상회의는 아세안의 전략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파트너십을 강화할 좋은 기회다.
[서울신문 사설-20141212금] 아세안 6억명의 마음을 사는 외교 펼치길
한국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특별정상회의가 이틀 일정으로 어제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됐다. 1991년 국가 차원의 수교를 뜻하는 ‘대화관계’를 수립한 뒤 25년간 이어져 온 양자 관계의 발전 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25년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이번 정상회의는 무엇보다 아세안 10개국이 하나의 공동체(AC·아세안 커뮤니티)로 통합되는 시점을 맞아 열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태국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필리핀, 싱가포르,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브루나이 등 10개국으로 구성된 아세안은 지난해 기준으로 인구 6억명에 전체 국내총생산(GDP)이 2조 3100억 달러에 이르는 세계 7위의 경제권이다. 예정대로 내년에 유럽연합(EU)에 비견되는 공동체로 통합되면 중국, 인도에 이은 세계 3위의 인구 규모에 연평균 5% 이상의 성장률을 자랑하는 유망 경제블록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이미 우리 전체 교역액의 12.6%를 차지하며 중국 다음으로 큰 교역 파트너가 된 상황임을 감안하면 내년 AC 발족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된다고 할 것이다.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에 이어 한·베트남 FTA가 타결된 상황에서 머지않아 한·인도네시아 FTA까지 성사된다면 양자 간 경제협력은 가일층 확대될 것이다.
아세안의 부상과 한·아세안 관계 발전은 이제 아세안을 미국·중국·일본·러시아에 이은 제5의 한반도 주요국으로 자리매김토록 했다. 경제를 넘어선 아세안과의 관계 발전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외교·안보와 문화의 영역으로 새로운 협력의 역사를 써 나가야 한다. 2010년 ‘포괄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서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외교 관계를 격상시킨 한국과 아세안은 그동안 북핵과 북한 인권 문제 등에서 폭넓은 협력을 유지해 온 게 사실이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으로 우리의 고등훈련기 T50을 수출하는 등 안보 협력도 범위를 넓혀 가고 있다. 그러나 냉정히 따져 볼 때 경제를 넘어 외교안보 영역은 여전히 협력의 여지가 많은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유엔에서 북한 인권을 논의할 때 몇몇 아세안 국가가 소극적 자세를 보인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아세안을 외교안보의 확고한 우군으로 삼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이 펼쳐져야 한다.
마음을 얻는 외교가 필요하다. 중국과 일본이 막대한 자금력을 무기 삼아 일찌감치 아세안을 공략해 온 상황에서 이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우리는 늘 아세안에서 중국, 일본 다음에 머물 수밖에 없다. 소프트파워를 극대화하는 외교를 펼쳐야 한다. 아세안인들은 이미 다문화 가정을 통해 대한민국 깊숙이 들어와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현재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있는 외국인 14만여명 가운데 40% 정도가 아세안인들이다. 베트남 출신이 3만 9004명으로 가장 많고, 필리핀인 9334명, 캄보디아인 4523명, 태국인 2604명 등이 뒤를 잇는다. 중국동포를 포함한 중국 출신(6만 2909명)을 제하면 대부분이 아세안 출신인 것이다. 유학생과 근로자까지 포함하면 무려 33만여명의 아세안인들이 이 땅에 살고 있다. 정부와 국민 모두가 이들을 보듬어 안는 자세를 보인다면 그 자체로 아세안 6억 인구의 마음을 사는 외교가 될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한류를 매개로 문화 협력을 강화하는 노력도 확대해야 한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사설
[한겨레신문 사설-20141212금] 홍보만 하고 내용은 감추는 ‘깜깜이’ FTA
정부가 10일 베트남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을 발표했다.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응우옌떤중 베트남 총리와 회담한 뒤 타결을 선언했다. 정부는 한-베트남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될 경우 양국의 경제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국민은 협정의 내용도 알지 못한 채 정부의 일방적 주장만 듣고 박수를 쳐줘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니 밀실 협상에 따른 졸속 타결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 들어 자유무역협정 협상이 공식적(?)으로 마무리된 것은 벌써 다섯 번째다. 앞서 타결된 국가들을 보면 캐나다, 중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비중 있는 교역 상대국들이다. 그만큼 국내 경제적 파급 영향이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협상 타결이 박 대통령의 정상외교 일정에 맞춰 진행된 것도 공통점이다.
정부는 이처럼 속전속결로 다른 나라들과 협상을 타결하면서도 세부 타결 내용을 한 번도 제대로 공개한 적이 없다. ‘경제영토 확장의 계기’라는 둥 막연한 홍보성 자료만 쏟아냈다. 더욱이 국내 여론 수렴 절차를 거친 경우는 전혀 없다.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의 이해관계자한테 면담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일부 국회의원의 자료제출 요구와 시민단체의 정보공개 청구는 모두 거부하고 있다. 그러면서 협상 효과의 극대화가 필요하다며 국회 비준동의를 재촉하고 있다.
정부는 정보공개 거부의 이유로 현행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처분 대상으로 분류되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 또는 ‘의사결정 과정이나 내부검토 과정에 있는 사안과 관련한 정보’라는 점을 들고 있다. 모순된 논리다. 비공개 처분의 이유가 타당하다면 ‘실질적 타결’이니 ‘사실상 합의’니 하면서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부터 잘못이다. 아직 세부 내용이 확정되지 않아 공개될 경우 국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면서 어떻게 통상외교의 큰 성과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다른 나라와의 자유무역협정은 국내 산업 또는 기업별로 이해득실이 엇갈리고 국민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끼친다. 또한 통상조약은 한번 발효되면 특별법의 지위를 얻어 바꾸기도 어렵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협정 내용을 할 수 있는 한 공개하고 정말 국민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진지하고 투명하게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깜깜이 에프티에이를 밀어붙이는 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 4대강 국정조사 필요성
[한겨레신문 사설-20141212금] 4대강 빠진 ‘빅딜’, 타협 아닌 의무 방기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10일 해외자원개발 국정조사를 실시하고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국회특위 및 국민대타협기구를 구성하기로 하는 등 주요 현안에 대한 ‘빅딜’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4대강 사업 국정조사는 실종됐고, ‘정윤회 국정농단 의혹’에 대한 국회 차원의 조사도 포함되지 않았다. 정치란 게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타협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핵심 현안들을 물건 흥정하듯 주고받는 게 과연 바람직한지 여야 모두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여야 협상 테이블에 올라온 사안들은 모두 국회가 진지하게 접근하고 깊숙이 다뤄야 할, 어찌 보면 의회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과 맞닿아 있는 것들이다.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왔고, 자원개발과 방위산업 문제도 예산을 낭비하고 비리 의혹을 방치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행정부의 정책 잘못과 비리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건 의회의 기본 기능이기에, 사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선 벌써 국회가 나서 조처를 취했어야 옳다. 공무원연금 개혁 역시 중요하긴 마찬가지다. 이런 사안들을 ‘빅딜’이란 이름 아래 ‘뭐는 넣고 뭐는 빼는’ 식으로 타협을 하면, 4대강과 같은 사안은 국회에서 아무런 책임추궁도 받지 않고 그냥 넘어가게 된다. 이는 국회의 임무를 방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 상원이 수년간 중앙정보국(CIA)의 테러용의자 고문 실태를 파헤쳐 행정부의 치부를 드러낸 건, 의회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교훈적인 사례다. 민주당 출신인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 정보위원장은 보고서 내용과 범위를 축소하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존 케리 국무장관의 요청을 거절하고 원안 공개를 밀어붙였다. 전직 대통령과 정부를 보호하려고 핵심 사안의 조사를 회피하는 새누리당이나, 그걸 용인해주고 “우리가 이겼다”고 자평하는 새정치연합은 이걸 보면서 무엇을 느낄지 궁금하다.
이런 식으로 무원칙한 ‘빅딜’을 하니, 협상이 끝나고도 계속 뒷말이 나오면서 갈등이 끊이질 않는다. 벌써 새누리당은 “공무원연금 처리와 자원외교 국정조사는 동시에 시작해 동시에 끝내야 한다”고 고리를 걸었다. 행정부 비리를 추궁하는 일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제도를 바꾸는 일을 연계해서 한꺼번에 해치우자는 건 누가 봐도 억지다. 지금 ‘빅딜’ 대상에 오른 사안들은 하나하나 모두 국민의 관심이 큰 현안이기에 국회에서 책임감을 갖고 별개로 다뤄나가는 게 옳다.
[경향신문 사설-20141212금] ‘4대강 국정조사’ 반드시 필요하다
여야가 12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와 ‘해외자원개발 국정조사 특위’를 연내 구성하는 데 합의했다. 방위사업 비리 국정조사는 검찰 수사를 지켜본 뒤 미흡하다고 판단될 경우 실시키로 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각각 우선적으로 요구해온 공무원연금 개혁과 이른바 ‘사자방(4대강 사업·자원외교·방위사업)’ 국정조사 중 일부를 주고받는 ‘빅딜’을 한 것이다. 4대강 사업 국정조사는 새누리당이 완강히 반대해 제외됐다고 한다. 새정치연합은 추후 재논의한다는 입장이지만, 사자방 중 유일하게 ‘사’만 빠져 사실상 4대강 국정조사를 보류하는 쪽으로 여야 사이에 암묵적 타협을 이룬 것이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전면 조사와 면밀한 검증은 더는 늦출 수 없는 과제이다. 4대강 사업이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재앙을 예고하고 있는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매년 여름 반복되는 ‘녹조라떼’와 큰빗이끼벌레 창궐에서 입증되는 수질 악화, 수생태계 교란 등 날로 생태 재난이 가시화되고 있다. 졸속 건설과 건설 비리가 잉태한 4대강 보(洑)의 안전 문제도 심각하다. “4대강 사업은 예방투자이니 사업이 끝나고 나면 관리비가 획기적으로 줄 것”(이명박 전 대통령)이란 호언과 달리 유지·보수에만 해마다 5000억원 이상이 소요되는 ‘세금 먹는 하마’가 되었다. 내년 예산도 5552억원에 달한다. 4대강 사업은 감사원 감사에서도 “총체적 실패”로 판명났다. 감사원은 지난해 “수질개선과 수량확보 등의 목표까지 달성하기 어렵고, 홍수예방 목표도 불투명하다”고 평가했다. 완공 3년이 지났지만 4대강 사업의 목표로 제시된 수량확보, 가뭄해결, 홍수예방, 수질개선, 일자리 창출 등 어느 하나 달성된 게 없다.
22조원의 국민 세금을 낭비한 사상 최대 토건사업의 ‘실패’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와 검증이 한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전면 조사, 국토부·수공 등 사업주체들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통해 무엇이 잘못되었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를 가려야 출구를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매년 막대한 유지·보수 비용이 소요되고, 생태 파괴가 가속되는 상황에서 속히 보완책을 세워야 할 상황이다. 보완책을 논의하기 위해서도 객관적인 조사·평가 작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국회 국정조사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이유다.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기 전에 4대강의 재자연화 등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새누리당이 이명박 전 대통령 세력의 저항에 굴복해 끝내 이를 외면한다면 미래세대에 온 부담과 고통을 떠넘기는 죄악을 짓는 일이다.
■ 함께 보면 좋은 사설
[서울신문 사설-20141212금] 자원외교 허실 제대로 짚는 국조가 돼야 한다
여야가 그제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이명박(MB) 정부 시절의 자원외교에 대한 국정조사를 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MB 정부 시절 자원외교를 주도했던 이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왕차관’으로 불렸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당시의 실세들이 줄줄이 국정조사를 받게 됐다. 자원외교의 주무 부처인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을 2009~2011년 지낸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조사를 피해 갈 수 없게 됐다. 야당은 이 전 대통령도 직접 불러 조사를 해야 한다는 정치 공세도 펴고 있다. MB 정부의 자원외교를 놓고는 그간 뒷말이 끊이지 않았다. 야심차게 추진했지만 ‘묻지마 투자’에 불과했으며 손실만 눈덩이처럼 불어난 실패한 사업이라는 것이다. MB 정부 5년 동안 해외자원 개발에 민간 자본까지 포함해 모두 40조원이 투자됐으며 35조원의 손실을 봤다고 한다. 석유공사와 가스공사, 광물자원공사 등 3개 공기업이 해외에 투자한 돈은 26조원인데 손실액만 22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MB의 자원외교가 실패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단기 성과에만 치중해 철저한 분석 없이 사업을 무리하게 진행했기 때문이라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대표적인 부실 사업이 한국석유공사가 2조원을 투자한 캐나다 석유개발업체 하베스트 건이다. 석유공사는 하베스트 자회사인 날(NARL)을 인수하면서 약 2조원을 투자했지만, 투자 금액의 1%에 불과한 200억원밖에 받지 못하고 되팔았다. 자원외교라고 할 수 없는 문제 많은 투자였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국부유출로, 해외 거래에서 공식적으로 오고 가는 리베이트 외에 별도의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정조사에서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사업을 어떻게 결정했는지, 누가 중간에 소개를 했는지, 그 과정에서 검은 거래는 없었는지 등을 철저하게 밝혀야 한다. 검은 고리가 있다면 민형사상 처벌을 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여야가 자원외교 국정조사를 정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친이명박계 중진인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십상시 사건’이라는 위기를 넘기기 위해 지난 정권을 딛고 가려는 게 아니냐”고 반발하고 있다. 자원은 통상 30년을 내다보고 투자를 하는데, 2~3년도 안 된 지금의 회수율로 손실을 운운해서는 섣부른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들어 볼 필요가 있다. 자원외교 실패 여론에 대한 반작용이겠지만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공기업이나 민간기업의 해외신규 자원개발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해외자원 개발은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는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다. 옥석(玉石)을 확실하게 가려서 하면 된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41212금] '뜰 수 없는 배' 오룡호는 세월호 참사의 판박이
지난 1일 러시아 베링해에서 침몰해 53명의 사망ㆍ실종자를 낸 사조산업 소속 501오룡호는 자격 미달의 ‘가짜 선장’이 운항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부실투성이로 드러난 승선 공인(公認) 과정에서 당국과 선사 간 유착 의혹도 제기됐다. 사고의 근원부터 사후 대응에 이르기까지 세월호 참사를 빼 닮았다.
부산해양경비안전서에 따르면 사조산업은 오룡호 출항 전날인 올 3월 7일 법규상 2급 항해사 이상만 맡을 수 있는 선장에 3급 항해사인 김모(46)씨를 올려 부산해양항만청에 승선 공인을 신청했다가 수정 지시를 받았다. 이후 사조산업은 선장 자격이 있는 전 직원 김모(51)씨가 운송선을 타고 가 3월 25일 오룡호에 합류한다고 거짓 서류를 꾸며 공인을 받아냈다. 또 사고 다음날인 지난 2일 전 직원 김씨가 개인사정으로 승선하지 못했다며 뒤늦게 승선 취소 신청을 하기도 했다. 수사 결과 오룡호는 필수 선원을 다 태우지 않은 채 출항했고, 선장 김씨 외에도 자격미달자가 여럿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해경서는 부산해양청이 부실한 승선 신고를 받아주는 과정에서 뇌물수수 등 검은 거래가 있었는지도 수사할 방침이라고 한다. 부산해양청은 “재신청 서류에 문제가 없어 공인을 내줬다. 사조 측이 유령 선장을 내세운 셈이 됐는데 우리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유착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이런 해명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서류만 그럴듯하게 꾸미면 얼마든지 눈속임이 가능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때도 화물 선적량과 승선인원 등을 제대로 기재하지 않은 ‘출항 전 점검보고서’를 내고도 버젓이 출항 허가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세월호 사건을 수사한 검찰 관계자는 “원칙대로 다 했다면 세월호는 절대 뜰 수 없는 배였다”고 말한 바 있다. 관리감독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을 틈 타 세월호나 오룡호처럼 ‘절대 떠서는 안 되는 배들’이 근해는 물론 원양까지 누비며 또 어떤 참사를 불러올 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해양수산부는 뒤늦게 원양어선 안전대책 마련에 나섰다. 선박 노후화가 오룡호 사고의 한 원인으로 지목됐으나 국제기준 등에 비춰볼 때 원양어선은 선령 제한을 두기 어려워 대신 정책자금 지원을 확대해 노후선 교체를 유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무리한 조업을 부추기는 성과급 중심의 선원 급여체계 개선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정부의 대책이 원양어선, 그것도 노후 선박 등 일부 문제에만 초점이 맞춰져서는 안 된다. 더 큰 문제는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린 해양안전 관리감독 시스템이다. 안전은 뒷전인 채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업계의 비뚤어진 관행에 자양분이 되는 것도 바로 이런 허술한 시스템이다. 세월호 참사가 나니 연안여객선 안전관리를 강화하고, 오룡호가 침몰하니 원양어선 안전대책을 마련하는 식의 땜질 대응을 언제까지 되풀이할 텐가.
[한국일보 사설-20141212금] 구조개혁 차원, 서비스산업法 조속 처리하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어제 기준금리를 연 2%로 동결했다. 경기 회복세가 미약한데다 일각에서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제기돼 추가 인하를 점치는 시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금통위는 지난 8월과 10월 두 차례 인하를 통해 금리를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낮춰놓은 만큼, 일단 효과를 더 지켜보자는 차원에서 만장일치 동결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의 이번 기준금리 동결은 전통적 ‘돈 풀기’에 초점을 둔 정부의 경기부양책에 대한 은유적인 비판으로도 풀이된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다시 한 번 그런 시각을 드러냈다. 이 총재는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한은)전망치 발표 시점인 10월 이후 두 달 간 변화를 보면 분명히 내년 성장률 3.9% 전망치를 유지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전망치 하향조정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경제 여건 등의 변화가 있으면 전망치가 바뀔 수밖에 없다”며 무리한 부양책에 집착하기보다 적절히 저성장을 감내하는 게 옳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총재의 언급은 전날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제기한 금리 추가 인하론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KDI는 저성장ㆍ저물가 장기화에 따른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제기하며 금리 추가 인하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 총재는 “3%대 성장률과 1%대 물가상승률을 디플레이션이라고 할 수 없다”며 사실상 정부에 단기 성장률 목표에 집착해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대신 이 총재가 재차 강조한 건 장기 성장기반을 다지는 구조개혁이다. 이 총재는 강력한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경기회복세가 미미한 것과 관련해 “구조적 요인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근본적으로 구조적 문제를 치유하지 않고서는 저성장ㆍ저물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총재의 거듭된 주장은 ‘돈 풀기’에 주력한 일본의 ‘아베노믹스’가 최근 한계를 드러내면서 더욱 설득력을 더해 가고 있다. 일본이 1990년대 초 성장률 급락에 이어 장기 디플레이션에 진입하고, 최근의 아베노믹스까지 흔들리는 건 구조개혁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총재의 진단이다.
문제는 이 총재뿐 아니라, 최근엔 최경환 경제부총리까지 적극 강조하고 있는 구조개혁의 실마리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수년 째 국회에 계류 중인 서비스산업 관련법들의 제ㆍ개정조차 한없이 지연되고 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안만 해도 벌써 2년 반 넘게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으며, ‘관광진흥법’이나 ‘크루즈산업 육성법’ 등도 지난 정기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각 법안의 효과나 부작용에 대한 여야의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해당 법안들은 국내 산업구조를 개선해 나가는 교두보라고 할 만한 것들이다. 절박한 구조개혁을 지원하는 차원에서라도, 이번 임시국회가 서비업산업 관련법을 반드시 처리해 주기 바란다.
[한겨레신문 사설-20141212금] 한국 사회의 저급함 보여준 ‘토크콘서트’ 테러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났다. 10일 저녁 전북 익산의 신동성당에서 열린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의 ‘평양에 다녀온 그녀들의 통일이야기’ 토크콘서트가 사제 폭발물 투척으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스태프가 제지했기에 망정이지 자칫 중대한 인명사고가 날 뻔했다. 범인은 19살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고,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상의 정치적 극단주의가 현실에서 테러행위로까지 나타났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이번 사건은 이 나라의 극단적 반북이데올로기가 일종의 증오범죄로 연결된 것이어서 예사롭게 보아넘길 일이 아니다. 공격의 표적이 된 신은미씨는 <오마이뉴스>에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연재 기사로 10월 한국기자협회 등이 주관하는 통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고, 이후 토크콘서트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일부 극우단체들이 신은미씨의 토크콘서트에 ‘종북 콘서트’라는 딱지를 붙이고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표현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범행을 저지른 학생은 일베에서 활동하면서 이 사회의 가장 저급한 극우적 주장에 물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범행을 저지를 때도 이 학생은 신은미씨에게 “지금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했나?”라고 묻고 상대방이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밝히는데도 “지상낙원이라고 표현했다”며 준비한 폭발물에 불을 붙였다. 자기 생각에만 사로잡힌 상태에서 무모한 짓을 저질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 청소년을 그렇게 귀먹은 상태로 만든 것은 이 나라 어른들이다. 특히 수구보수 언론의 행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언론들은 신은미씨의 토크콘서트를 비난하는 기사를 반복해서 생산했다. 툭하면 ‘종북’으로 몰아대는 것이야말로 실제의 테러를 조장하는 언어의 테러행위다.
일찍이 볼테르가 이야기했던 대로 자유민주주의는 “나는 당신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의 견해가 탄압받는다면 거기에 맞서 싸우겠다”는 관용과 자유의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자란 나무다. 그런데 북한의 사정에 대해 일부 극단세력과 다른 견해를 밝혔다는 이유로 공격의 대상이 된다면 이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짓이다. 관용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가 독재체제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주는 핵심 가치다. 테러는 이 체제의 본질적 가치를 깨뜨리는 짓이다. 종북 딱지를 붙이고 물리적 공격까지 감행하는 이런 세력에 단호하게 맞서야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산다.
[중앙일보 사설-20141212금] 한국 경제, 닫힌 지갑을 어떻게 열 것인가
한국 경제가 내년에도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10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3.5%로 예상했다. 더 암울한 건 이 수치가 그나마 ‘보수적’이란 것이다. 경제가 예측대로 잘 작동할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고 대내외에 다른 변수가 생기면 더 떨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는 기획재정부(4.0%)는 물론 한은(3.9%) 전망보다 0.4~0.5%포인트나 낮은 것이다. 전망이 최대한 긍정적으로 이뤄진다 해도 2010년 이후 5년째 잠재성장률(4.0%)을 밑돌게 됐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괜찮은 편이라지만 성장이 계속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건 정책 효과가 떨어지고 경제 활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니 문제다.
그렇다고 돈을 풀고 금리를 내리는 재정·통화 정책도 화끈하게 쓰기 어렵다. 어제 한국은행은 금리를 동결했다. 가계부채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가계대출은 10월에 이어 지난달에도 7조원 가까이 늘어 월간 증가폭이 두 달 연속 사상 최대였다. 금융 당국은 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을 추가 완화하려던 계획을 백지화했다. 되레 가계부채 억제 대책으로 다시 전환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기재부는 아직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지만 자신감은 많이 떨어져 있다. 항생제 내성이 생기듯 금리 인하 찔끔, 통화 확대 찔끔 정도로는 가라앉는 경제가 벌떡 일어날 만큼 약발이 안 듣고 있다는 의미다. 그 바람에 부처 간 엇박자까지 걱정해야 하는 판국이다.
어렵고 약발이 잘 안 듣는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KDI는 당분간 확장적인 재정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공기업 부채, 공적연금 등 공공부문 개혁과 세원 확대, 규제 완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돈을 풀되 가계부채를 더 늘리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무엇보다 내년 경제의 성패는 쪼그라든 민간 소비를 어떻게 살려내느냐에 따라 갈릴 것이다. 돈이 장롱 안에만 머물고 부자들마저 지갑을 닫은 지 오래다. 민간의 닫힌 지갑을 열 획기적인 소비 활성화 대책이 필요하다.
[경향신문 사설-20141212금] 경기침체 속 눈길 끄는 사회적기업의 성장
지난해 사회적기업들의 매출액과 고용, 당기순이익이 동반 성장했다고 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사회적기업 자율 경영공시제도에 참여한 116곳의 경영 성과 분석 결과 평균 고용인원이 46명으로 전년보다 25% 증가했다. 특히 취약계층 고용인원이 기업당 26명으로 전보다 23.8% 늘었다. 기업 평균 매출액도 37억여원으로 전보다 30%가량 불어났고, 당기순이익은 2400여만원에서 8100여만원으로 무려 229%나 신장했다. 긴 가뭄에 비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노동부 운영 경영공시제는 사회적기업이 매년 기업 목표 실현 정보와 경영 상태 등을 자율 공개하는 제도다. 지난해 공시 참여 기업은 116곳으로 전년의 81곳에 비해 크게 늘었다. 사회적기업의 성공적 운영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인 셈이다. 성과 향상 기업은 사업 내용을 공개하려는 의지가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기업의 성장 추세는 의미심장하다. 일반 대기업에 비하면 매출·고용 규모가 미미하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발전하면서 나타난 양극화와 실업, 환경 문제 등을 해결할 대안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외환위기를 전후해 고용 없는 성장과 빈부격차의 구조화 등이 국가적 과제로 부상하면서 사회적기업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사회적기업 생태계 구축을 통해 경쟁 중심의 시장자본주의로 불거진 각종 병폐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경제위기뿐 아니라 협동과 배려, 공헌 등 공동체 정신 실종에서 비롯된 ‘사회 위기’를 극복하고 상생과 더불어 살기 등 사회적 자산을 쌓는 유용한 수단이라는 점도 고려한 선택이었다. 또한 사회적기업의 성장은 전반적인 경기침체와 일반 기업의 실적이 저조한 가운데 이뤄진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10년 역사의 한국 사회적기업은 고용과 복지 수요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제도로 자리 잡으면서 급증하고 있다. 2011년 644개사에서 지난달 말 현재 1186개사로 늘었다. 그러나 아직도 흑자 기업은 전체의 25%에 불과하고, 그나마 정부 지원이 끊길 경우 생존율이 10% 미만으로 급락할 것으로 전망될 만큼 생존 토양은 척박하다. 사회적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중앙과 지방 정부의 지원을 대폭 늘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해당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공공기관 구매 확대도 한 방법이다. 정부와 사회가 사회적기업에 안전망을 제공하는 만큼 사회적기업은 정부와 사회에 안전망을 제공할 것이다.
[서울신문 사설-20141212금] 평창올림픽 국내 분산 개최는 적극 검토해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분산 개최 여부를 놓고 갈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8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일부 종목 분산 개최를 허용하는 ‘어젠다 2020’이 통과되면서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그제 회견에서 “평창 주도로 치르겠다”고 말해 분산 개최론에 쐐기를 박았다. 그러나 강원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는 IOC 제안에 원칙적 찬성 입장을 밝혔다. 더 심각한 내출혈을 일으키기 전에 명분과 실리를 조화시키는 해법을 도출할 때다.
올림픽 개최권이 이제 더는 축복만은 아니다. 오죽하면 국제사회에서 부러워하기는커녕 ‘올림픽의 저주’라는 말이 나왔겠나. 빚잔치로 끝난 1998년 나가노, 2010년 밴쿠버 동계 대회 등을 거치면서 ‘알뜰 올림픽’ 개최가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어찌 보면 IOC의 ‘어젠다 2020’도 갈수록 올림픽 유치 경쟁률이 떨어지는 추세를 감안한 고육책인 셈이다. 바깥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우리 내부는 어떤가. 정부가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 강릉종합운동장을 리모델링해 개·폐회식장으로 쓰는 안을 내놓자 강원도가 펄쩍 뛰었다. 우여곡절 끝에 인구 4000명에 불과한 횡계리에 1300억원을 들여 ‘올림픽 플라자’를 건립하기로 했지만 후폭풍이 거세다. 정부의 건설비 부담 비율을 높이려고 강원도의회가 “개최권을 반납할 수 있다”고 압박하면서다. 이런 갈등이 IOC의 분산 개최 제안을 부른 꼴이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일부 종목의 국가 간 분산 개최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거듭 강조하지만 올림픽 개최가 훈장일 수만은 없다. 평창올림픽이 끝난 뒤 국민경제에 큰 주름살만 남는다면 곤란하다. 강원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도 엊그제 “아무런 재정 대책도 없는 평창올림픽이 다 같이 죽을 길로 도민들을 몰아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큰 재앙을 맞지 않으려면 분산 개최를 사안별로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 IOC가 일본과의 일부 종목 분산 개최를 제안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지만, 국민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도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국내 분산 개최가 차선의 대안이다. 대체 서울월드컵경기장, 태릉의 빙상장, 무주스키장 등 기존 시설을 증·개축해 최대한 활용하지 못할 이유가 뭔가. 여론조사에서도 찬성 비율이 높지 않은가. 제대로 된 정치인은 다음 선거보다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법이다. 중앙정부와 평창올림픽조직위, 그리고 강원도 모두 지역주의를 뛰어넘어 이제라도 열린 자세로 머리를 맞대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믄 사설-20141212금] 아무도 책임 안 지는 중기적합업종, 폐지할 수밖에
시행 3년을 맞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 10일 막걸리, 부동액, 아크용접기 등 6개 품목을 적합업종에서 제외시켰다. 이에 따라 올해로 기간이 만료되는 82개 업종 중 중기 쪽에서 연장신청을 하지 않은 5개 업종을 포함, 총 19개 업종이 적합업종에서 사실상 해제됐다. 4분의 1가량이 지정 취소된 것이다. LED 조명, 국산콩 두부 등 나머지 51개 품목에 대해서도 협의가 진행 중이어서 앞으로 해제될 품목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적합업종 해제 품목이나 업종이 늘고 있는 것은 지난 3년간 운영해 보니 애초 취지와 달리 중기 보호와 경쟁력 강화에 별 도움이 안 됐기 때문이다. 이번에 폐지가 확정된 막걸리만 해도 2011년 지정 후 생산량이 매년 줄어드는 등 시장 자체가 쪼그라들었다. 문을 닫은 중소업체도 한두군데가 아니다. 두부 역시 적합업종 지정으로 대기업이 손을 빼자 국산콩 소비가 줄어 농가들이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런 부작용은 처음부터 너무나 명백하게 예상된 것이었다. 시장을 인위적으로 쪼개 칸막이를 치는 정책은 결국 시장을 죽이고 대기업, 중소기업, 소비자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적합업종 지정 후 매출 증가율이 그 전보다 12.7%포인트 낮아지고 영업이익률도 4.7%에서 3.8%로 떨어졌다는 조사결과(빈기범 명지대 교수팀)도 있다. 오죽하면 막걸리가 적합업종에서 빠지자 관련 업계는 ‘붐’을 기대하며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하겠는가.
문제는 부작용이 드러나 뒤늦게 지정이 취소되는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반위도 동반위원장도 묵묵부답이다. 해당 업종 종사자들의 피해는 보상받을 길이 없다. 동반위는 지정 해제된 품목을 ‘상생협약’ ‘시장감시’ 등으로 분류하고 계속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 번 해제했으면 그만이다. 적합업종 선정이 규제가 아닌 업계의 자발적 협약이라면서도 동반위가 마치 감독관청처럼 행동하는 것도 옳지 않다. 이제라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오직 하루속히 폐지하는 것뿐이다. 막걸리처럼 시장이 다 죽어버린 뒤에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212금] 성장률 급락, 새정치연합은 책임을 다 뒤집어쓸 텐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애초 3.8%에서 3.5%로 낮췄다. 한국 경제가 비상한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국책연구소는 정부나 한국은행의 전망치를 고려해 민간경제연구소보다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는 게 관행이다시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우선 KDI 전망치가 정부(4%)나 한은(3.9%)보다 크게 낮다. 더욱이 민간경제연구소는 물론 국제기구 전망치와 비교해도 가장 비관적인 예측이다. 심지어 경기 하강압력이 강해 돌발적인 대내외 악재라도 불거지면 성장률이 3%대 초반으로 급락할 가능성도 있다는 게 KDI의 경고다. 비상한 각오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다.
성장률이 낮게 나온 근거들을 보면 심상치 않다. 민간 소비와 투자 회복세가 미미할 것으로 보이는 데다, 그나마 우리 경제를 지탱하던 수출마저 둔화할 것이란 예상이다. 3.5%조차 장담하기 어렵다는 KDI의 설명은 그만큼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얘기다. 중국경제의 둔화, 유로존의 회복 지연, 엔저 공세, 미국의 금리인상 등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대외 변수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 까닭이다. 한마디로 한국 경제가 벼랑 끝에 선 형국이다.
그러나 우리 내부에서는 이런 위기감을 인식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특히 국회는 한가하기 짝이 없을 정도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한술 더 떠 경제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무슨 호기라도 만난 듯 돈풀기 통화정책의 실패라며 경제팀 비판에 열중하고 있다. 물론 야당 주장대로 경제팀이 엉뚱한 데 힘을 소진한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야당 정치인들은 그렇게 비난할 자격이 없다. 부동산 3법은 물론 서비스산업기본법 등 하루가 시급한 경제법안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바로 야당이 아닌가 말이다. 공무원연금, 공기업 등 구조개혁도 마찬가지다. 경제팀이 야당 때문에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고 핑계를 대더라도 할 말이 없게 생겼다. 이대로 가면 야당이 경제파탄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새정치연합은 그러길 바라는가.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212금] 조현아 사건이 일깨운 재벌 후계자 교육의 중요성
미국 뉴욕 JFK공항에서 발생한 대한항공의 소위 ‘땅콩 회항’ 사건의 파문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항공 측이 사과문을 내고, 당사자인 조현아 부사장은 보직 사퇴에 이어 사표까지 제출했어도 여론의 질타가 끊이지 않는다. 검찰은 어제 대한항공 본사 등을 압수수색했고, 국토교통부도 조 부사장에게 12일 출두를 통보하기에 이르렀다. 일반 승객의 진술, 기장과 공항 관제탑의 교신내용을 확보해 규정 위반여부를 조사할 것이라고 한다. 행정조치나 처벌 가능성도 있다.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다. 물론 조 부사장이 기내 서비스와 기내식 담당 임원으로서 승무원들의 서비스나 매뉴얼 준수를 질책할 순 있다. 하지만 출발하려는 비행기를 돌려세워 사무장을 내리게 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된 행동이다. 개인 전용기도 아닌데 승객 250여명이 탄 비행기를 오너의 딸이 맘대로 되돌린다는 것은 누구도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이로 인한 대한항공의 국내외 이미지 실추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손실이다.
이번 사태는 재벌 후계자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다. 오너 2, 3세는 창업 1세대와 달리 이미 안정된 환경에서 커 특권의식, 선민의식을 갖기 쉽다. 그래서 더 위험 소지가 있다. 아무리 재계가 합심해 반기업, 반재벌 정서를 해소하려고 애써도 이런 사건 하나면 공염불이 되고 만다. 최근 수년 사이 2세, 3세들이 초고속 승진으로 등기임원이 돼 경영전면에 나서고 있다. 제대로 된 공부도, 경험도, 고민도 미흡한 채 승계한다면 기업이 직면할 위험에 후계자 리스크가 추가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오너 2세, 3세들이 좋은 후계자가 되기 위한 적절한 절차와 교육을 받고 있는지 의문이다. CEO의 탁월성은 유학 가서 MBA를 따온다고 갖춰지는 게 아니다. 단순히 대중의 눈총이나 질시에 눈높이를 맞추는 차원도 아니다. 경영자라면 눈에 보이는 숫자뿐 아니라 계량화할 수 없는 조직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리더십을 갖춰야만 한다. 재벌 후계자들에게 이번 사태는 뼈에 새겨야 할 반면교사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12금] 공무원연금 개혁 언제까지 여론수렴만 하려는지
여야가 10일 공무원연금 개혁과 해외자원개발 국정조사를 위한 특위 연내 구성에 합의했지만 하루 만에 백지화될 위기에 처했다. 국정조사계획서 채택과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 일정 등에 대한 합의를 연계할지에 대한 이견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11일 공무원연금 개혁과 관련, "내년 상반기까지는 충분한 여론수렴이 필요하다"고 말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알맹이가 빠진 부실한 합의를 해놓고 서둘러 발표한 여당의 책임이 크다. 야당이 공무원연금 개혁에 소극적인 만큼 처리 일정 등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는 게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여당은 이걸 빼놓은 채 국민대타협기구 연내 구성과 자원외교 국조에 덜렁 합의해줬다. 새정치연합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체 개혁안은 제시하지도 않은 채 내년 2~4월까지 합의안을 도출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더니 '상반기까지 여론수렴'으로 또다시 미뤘다. 사회적 합의기구가 가동되면 자체 개혁안을 공개하겠다는 약속을 지킬지조차 의심스럽다. 여당과 그 대안으로 국민대타협기구 구성에 합의한 만큼 자체 안부터 내놓아야 할 것이다. 내년 상반기까지 여론수렴을 하겠다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다.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제대로 된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해서는 내용뿐 아니라 처리 시점도 중요하다. 내년 2월에는 새정치연합의 전당대회가, 4월에는 새누리당의 원내대표 교체가 예정돼 있고 뒤이어 총선 정국으로 치닫게 된다. 합의시한을 미리 못 박지 않으면 개혁은 물 건너갈 가능성이 크다. 국민대타협기구가 실제 개혁안을 만들어내는 합의체가 돼야 한다는 새정치연합의 입장도 매우 우려스럽다. 구속력 있는 합의기구로 하자는 것인데 이는 개혁에 따른 부담을 떠넘기려는 것에 불과하다. 결정의 주체는 국회여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12금] 가계대출 억제로 돌아선 정부, 이렇게 될 줄 몰랐나
정부가 농협·수협·신용협동조합 등 상호금융을 중심으로 제2금융권의 가계대출을 억제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10일 관계기관 합동회의를 열어 상호금융권에 대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의 현행 틀은 유지하되 가계대출 증가속도를 늦추기 위해 수신·대출이 급증한 곳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기로 했다. 공신력 있는 외부 감정평가법인이 부동산 담보가치 평가의 적정 여부를 사후에 심사하는 방안도 시범 운영한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마땅히 취해야 할 조치다. 상호금융권의 가계대출액은 올해 9월 말 210조3,000억원으로 2008년 대비 두 배 가까이 급증했을 뿐 아니라 상가·토지 등 비주택에 대한 담보대출 증가속도가 위험수위에 근접했기 때문이다.
지금 분위기로는 제2금융권에 대한 대출억제가 금융권 전반으로 확대될 태세다. 금융위가 가계대출 억제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하는 작업에 이미 돌입했고 한국개발연구원(KDI)도 "LTV와 DTI 규제완화와 금리인하가 동시에 진행돼 가계부채 증가세가 빨라진 것은 사실"이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가계부채와 관련한 종합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아예 LTV와 DTI의 손질까지 요구했다. 금융대출이 과잉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은 15조원 늘어 대출채권 잔액이 1,242조원까지 불어났다. 특히 가계대출은 무려 6조4,000억원 늘어 완급조절이 시급하다.
다만 정책변화 땐 시장 혼란을 줄이는 노력도 동반해야 한다. LTV·DTI 규제완화, 재정 41조원 조기집행, 두 차례의 금리인하까지 돈 푸는 정책을 숨 가쁘게 쏟아내던 정부가 갑자기 돈줄을 죄는 상황을 시장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치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그렇게 돈을 풀어대면서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질 줄을 정말 몰랐나. 기업과 가계에는 규제보다 정책혼선과 급변이 더 두려울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12금] 종교인 과세 2년 유예는 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
새누리당이 종교인 과세 적용시기를 내년 1월에서 2017년으로 2년 연기해달라고 최근 정부에 요청했다. 공무원연금·공기업 개혁 추진도 벅찬데 종교인 과세까지 밀어붙이면 부담이 너무 크다는 반대의 목소리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게 새누리당의 주장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대형 교회들의 반발을 의식한 결정이라는 소식이다.
기획재정부는 15일부터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종교인 과세가 포함된 소득세법 개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여당의 요청을 거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정부가 새누리당의 방안을 수용하면 종교인 과세는 2017년 1월로 자동 연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사정 변경이 전혀 없는데도 여당이 갑자기 종교인 과세시기를 연기하기로 방향을 튼 것은 잘못된 선택이다.
이번에 상정되는 과세안도 종교계의 의견을 수용해 마련한 수정안이다. 당초 원안보다 상당히 후퇴한 내용이라는 얘기다. 정부의 초안은 종교인 소득을 과세 대상으로 하되 80%는 필요경비로 인정해주고 그나마 나머지 20%에 주민세를 포함해 22%의 세율을 적용하는 내용이다. 이렇듯 소득의 4% 정도만 소득세로 원천징수한다는 것이었으나 수정안은 강제성을 띤 원천징수 조항까지 삭제하고 '자진 신고·납부'로 했다. 저소득 종교인에게는 근로장려세제(EITC) 혜택을 주는 방안까지 포함됐다.
그런데도 여당이 종교계의 반대를 이유로 시행시기를 늦추려는 것은 의지가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2년 연기는 핑계에 불과할 뿐 과세하지 말자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종교인 과세는 대다수 국민이 찬성하고 천주교와 불교·개신교 상당수도 동의하는 상황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과세시기를 연기하는 것은 이유도 명분도 없는 꼼수에 불과하다. '소득 있는 곳에 과세가 있다'는 소득 형평성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새누리당이 두려워할 대상은 국민이지 교인들의 표가 아니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세상 읽기/윤태웅(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20141212금] 정말 미안합니다 / 윤태웅
성추행 사건이 있었습니다. 저희 대학 이야기입니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입니다. 대학의 구성원으로서, 또 지금은 학교를 떠난 가해 교수의 옛 동료로서, 피해자와 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학생들에게 사과하고 싶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제 주변엔 저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없지 않습니다. 강의시간에 수강생들한테 사과한 교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총장이나 학장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문제를 일으킨 교수가 사표를 내면 대학이 이를 바로 수리하는 게 거의 관례가 돼 버린 듯합니다. ㄱ대학에서도 최근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서울대도 성추행 교수의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이를 번복한 바 있습니다. 사표가 수리되면, 대학의 인권센터나 양성평등센터에서 진행하던 진상조사도 중단됩니다. 상황은 대개 그렇게 끝이 납니다. 잘못된 일입니다.
사표 수리도 물론 처벌입니다. 가해자가 대학의 교수 자리를 잃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희 대학 교무처에서는 사표 수리 자체가 아주 무거운 처벌이라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성추행 교수가 징계도 받지 않고 강의를 계속해온 ㅈ대학의 사례에 견주면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겠지요. 반면에 사표 수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단순한 면직이 너무 약한 처벌이라 여깁니다. 이들은 해임이나 파면과 같은 강한 징계를 통해 가해자가 다시는 교단에 설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표 수리가 이미 무거운 처벌이라는 저희 대학 교무처의 견해는 논리적으로 정당화하기 어렵습니다. 가해 교수의 잘못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조사하지 못한 채 내린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표 수리가 충분히 강한 처벌이 될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런 결론은 진상을 조사하고 규명한 뒤에야 나올 수 있는 것이겠지요.
저희 대학은 또 사립학교 교원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논리도 폅니다. 하지만 사표 수리를 무한정 유예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사표를 당장 수리해야만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는 없습니다. 설령 사표 수리가 불가피했다 하더라도, 이어 진상조사까지 중단하는 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표를 내고 떠난 사람이 학교의 진상조사에 협조하지 않아도, 사건이 발생한 학과의 구성원과 피해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계속할 순 있을 테니까요. 이건 의지의 문제입니다.
진상 규명의 목적은 단지 가해자를 징계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사건 발생의 구조적 요인 등을 파헤쳐 비슷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게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사표 수리가 진상 조사의 중단으로 이어져선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아울러 이 불행한 사태를 계기로 학생의 인권에 관한 고민을 대학 당국이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지도교수와 대학원생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저 자신을 포함해 대학에 남은 교수들한테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학생들에겐 거듭 미안합니다. 저는 2005년 5월을 기억합니다. 이건희 회장의 명예 철학박사 학위 수여식이 있던 날인데, 일부 학생들이 그만 행사를 방해하고 말았습니다. 총장은 바로 다음날 이에 대해 깊이 사과했고, 처장단은 긴급회의를 열어 집단 사퇴서를 내기까지 했습니다. 이번 성추행 사건은 2005년 사태보다 더 가슴 아픈 일입니다. 피해를 호소하며 학업을 중단한 학생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학교의 노력은 부실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고려대학교 총장이 사과해야 할 이유는 충분해 보입니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훈범(국제부장)-20141212금] 2014년판 우상과 이성
1980년 『우상과 이성』 수정증보판을 내면서 리영희 선생은 이렇게 썼다. “나의 글들이 이 사회에서 하루속히, 읽힐 필요가 없는 구문이거나 넋두리가 되어버리면 싶은 마음 간절하다.”
이 세상에 가면을 쓴 많은 우상들이 사라지고 합리적인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길 염원하는 표현이었다. 선생은 바라던 세상을 보지 못하고 떠났고, 그 글이 씌어진 지 35년째가 되는 지금도 우리는 곳곳에서 수많은 우상들을 목격한다. 오늘 이 사회를 헛되이 달구고 있는 ‘땅콩 회항’ 사건이나 ‘십상시’ 사건도 여전히 볼썽사납게 버티고 선 우상들에 우리가 딴죽 걸려 넘어진 것과 다름 아니다.
‘기업=오너’라는 우상과 ‘국가=대통령’이라는 우상이 그것이다. ‘회사의 주인은 오너 일가’라는 기업문화가 없었다면 딸 부사장이 그런 기고만장을 부릴 수 있었을까. 그의 말 한마디에 기장이 비행기를 돌릴 수 있었을까. 직급 더 높은 월급쟁이 사장이 그럴 수 있었을까. 요금 다 내고 탄 승객들의 편의는 나 몰라라 사무장을 끌어내릴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국가의 주인은 대통령’이라는 인식이 없었다면 어떻게 ‘문고리 권력’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었을까. 대통령의 전·현직 비서들이 주인의 눈에 더 들고자 서로 물어뜯기를 할 수 있었을까. 주인집에서 만들어진 문서가 분명한데도 당연히 할 일을 한 기자들을 닥치는 대로 고소할 수 있었을까. 7년 야인이라는 사람이 실세보다 더 실세처럼 검찰에 출두할 수 있었을까.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모두 머슴들이 자기를 부리는 상머슴을 주인으로 착각한 데서 빚어지는 우상들이다.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듯, 기업의 주인은 소비자여야 한다는 진리가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게 그래서다. 권력 쥔 자만 두려워하고 그 권력을 빌려준 진짜 주인은 우습게 보기 때문이다. 봉급 주는 자만 겁내고 그 돈을 마련해주는 진짜 주인은 봉으로 보는 까닭이다.
우상은 결코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다.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 경제학자 조지 스티글러의 패러디가 그 얘기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타락할 뿐 아니라 터무니없이 연장된다.” 그 꼴 보지 않으려면 너와 나, 우리가 나서야 한다. 쉽게 잠드는 이성의 눈을 흔들어 깨워 사회 곳곳에 서있는 우상들을 깨뜨려야 한다. 리영희 선생 때처럼 이런 글 쓴다고 끌려가서 쥐어터지는 시대도 아니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석종(논설위원)-20141212금] 배고픈 선수
임춘애라는 육상선수가 있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여자 육상 3관왕이다. 그는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라면을 먹고 죽기 살기로 뛰었다”고 말해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안쓰러울 정도로 깡마른 몸으로 결승선을 향해 전력질주하던 17세 ‘라면소녀’. 당시 인기 순정만화 <달려라 하니>의 하니와 겹쳐지면서 헝그리정신의 한 상징으로 ‘국민영웅’의 반열에 올랐다.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I’m still hungry).”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조별예선 통과를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을 앞두고 남긴 명언이다. 그는 결국 한국 대표팀을 월드컵 4강에 올려놓는 기적을 만들어 온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이번에는 호주 아시안컵을 앞둔 울리 슈틸리케 축구 대표팀 감독이 제주 전지훈련의 키워드로 역시 ‘배고픔’을 들고 나왔다. 그는 “열정을 지닌 배고픈 선수가 필요하다”며 “훈련에서 진지한 태도로 좋은 모습을 보이는 선수가 있다면 ‘깜짝 발탁’도 가능하다”고 밝혔다고 한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절실함’을 배고픔으로 표현한 감각이 참 신선하다.
때마침 인요한(미국명 존 린튼) 연세대 교수도 그제 정부로부터 근정훈장을 받는 자리에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뤄낸 한국은 이제 ‘온돌방의 도덕’을 회복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유진 벨 선교사 때부터 4대째 한국에 살고 있는 그가 어린 시절 고향인 전라도 온돌방에 앉아 어른들에게 배운 것이 ‘남들이 너를 홀대한다고 해서 남을 홀대할 자격을 가진 것은 아니다’라는 교훈이었다는 것이다.
어느새 우리는 배고픔의 절실함도, 온돌방의 도덕도 잊어버렸다. 물질의 풍요와 정신의 배고픔을 맞바꾼 세월이랄까. 그러니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나 세월호 참사 등에서도 교훈 하나 얻지 못하는 것일 게다. 사회지도층과 그 자녀들이 ‘땅콩 리턴’ 같은 살벌하고 황당한 사건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도 배고픔과 가난한 마음의 겸양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슈틸리케가 말하는 ‘배고픔’은 축구를 넘어 정신적으로 궁핍한 한국사회에 던지는 화두처럼 들린다. 어쨌든 대표팀 합류를 원하는, 절실하게 배고픈 젊은 축구 선수들의 분발과 분전을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허원순(논설위원)-20141212금] 서울의 야경
6·25의 포연이 채 가시지도 않은 무렵의 일화다. 배편으로 도착한 국제 지원그룹은 부산의 멋진 야경에 놀랐다. ‘세계 3대 미항’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도시였다. 더구나 폐허가 된 나라였다. 그러나 이튿날 동이 트자 환상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멀찍이 바다서 감탄했던 입체감 넘친 야경은 높고 낮은 산기슭의 게딱지 같은 판잣집 불빛이었다. 도시의 야경은 이렇듯 때로는 치부도 가린다. 밤이면 거듭나는 도시의 마술이랄까.
물론 지금 부산의 야경이야 천지개벽했다. 마천루숲 해운대와 광안대교의 멋진 모습은 밤에 더 빛난다. 항도의 밤풍경은 국제적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경제 성장이 억지 화장발을 걷어내고 고혹적인 자태의 밤도시로 재탄생시켰다.
국제적 대도시들은 저마다 야경으로 이름값을 한다. 맨해튼, 홍콩섬과 구룡반도, 샹젤리제 거리, 와이탄과 푸둥…. 번쩍이는 네온에 형형색색 LED의 조명과학은 건물 하나하나를 예술작품으로 변모시킨다. 해가 지면 도시는 유혹하고 방문객들은 분위기에 먼저 넘어간다. 브로드웨이와 42번가 일대의 휘황찬란하게 번쩍이는 극장들을 찾는 기분에 단 며칠이라도 뉴요커가 되려고 전 세계에서 달려가는 것이다. 록펠러센터 고층 클럽에서 다운타운과 뉴욕항의 명멸하는 야경을 즐기기 위해 비싼 맥주값도 기꺼이 지불한다. 야간의 도시는 빛이다.
독특한 조명에다 관능적이기까지 한 리도쇼나 물랭루주쇼의 빛이 없다면 세계도시 파리의 명성은 불가능하다. 홍콩 야경이 100년 앞을 내다보며 가꿔왔다는 것도 중국계 특유의 과장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밤에도 불켜둔 건물에 전기요금을 깎아준다. 형형색색 빛의 향연 아래서 먹고 마시고, 쇼와 음악까지 곁들여지니 도심의 야경투어는 오감여행이다.
서울의 야경도 좋아지긴 했다. 한강 교량마다 조명이 설치됐다. 강남대로의 입체 조형물은 밤이면 꽤 빛을 발한다. 거리도 은색 수은등, 황색 나트륨등 일색에서 다양해졌다. 그래도 서울 야경의 아이콘이라 할 만한 랜드마크는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서울시가 야간 도심을 더 어둡게 하겠다고 한다. 1500cd(cd는 촛불 1개 밝기)가 현재 최대치인데 최대 3분의 1가량 줄이겠다는 것이다. 빛공해 단속차원이라고 한다. 주택지역에서 수면을 방해하는 경우라면 일리도 있다. 하지만 화려·번화·수다에 때로는 약간의 과장도 멋인 상업지역의 광고판까지 끄게 하겠다면 문제다.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LG 광고판은 1만cd다. 관광서울 정책과는 거꾸로 간다. 별빛만 아늑한 부족마을을 꿈꾸나.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온종후(논설위원)-20141212금] 물과 생명
생명의 기원에서부터 유지·번성에 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원시 지구에 바다가 있었고 이로부터 생명탄생의 근원이자 단백질의 주요 성분인 아미노산이 생겨났다. 이들 분자가 결합하면서 유기물질이 나오고 생명으로 진화하면서 지구상의 다양한 종으로 번성했다는 것이 우리가 아는 생명의 역사다. 그래서 우주에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을 찾는 '슈퍼 지구' 프로젝트에서는 대기와 함께 물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생명체 가운데 하나인 우리 몸에서도 물은 질량의 66%를 차지한다. 몸의 구석구석에 산소와 영양소를 운반해주고 노폐물을 제거하며 혈압유지에도 관여한다. 또 동물과 식물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세포는 물에 둘러싸여 있고 세포 안에도 70~95%의 내용물이 물이다. 사람만 해도 음식물 없이 상당 시간 생존할 수 있지만 물 없이는 며칠을 넘기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지금껏 명멸했던 각종 문명은 물 그 자체를 생명의 시원(始原)으로 보고 신성시했다.
그럼 지구의 생명을 가능케 했던 물은 어디서 왔을까. 이 물음의 답을 찾아 10년 전 지구 밖으로 나섰던 유럽우주국(ESA)의 우주탐사선 로제타가 최근 보내온 답은 우리의 예상을 철저히 빗나간다. 지난달 12일 혜성 67P에 착륙한 이 탐사선이 앞서 혜성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포집한 물 분자를 분석한 결과 혜성의 물은 지구의 물과 다르다는 것이다. 물은 물이지만 중수소의 비율이 4배나 높아 지구의 물보다 무거우므로 같은 종류로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지구의 물이 수많은 소행성과 혜성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외부로부터 유입됐다는 가설을 철석같이 믿고 로제타에 기대를 걸었던 세계 과학계는 덩달아 혼란에 빠졌다.
우주에서 보는 푸른 지구는 대양(大洋), 즉 바다에 태양 빛이 반사돼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류가 우주의 비밀을 알아갈수록 생명이 있는 곳은 지구뿐이 아닐까 하는 고독감은 더욱 커진다. 아름답고 푸른 지구를 지키고 인류가 오래도록 여기서 살기 위해서라면 우리 모두 생명의 근원인 '물'을 소중히 여기도록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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