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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새누리당의 마지막 선택을 지켜본다

새누리당이 지리멸렬을 겪으며 극심한 내분 사태에 처했다. 그동안 ‘친박’과 ‘비박’의 갈등으로 여러 차례 고비를 넘기면서도 위기를 수습해 왔지만 이번에는 ‘최순실 게이트’까지 겹쳐 마지막 선택을 해야 하는 국면에 이른 듯하다. 집권당이 혼란을 겪는다면 국정이 안정될 수 없고, 그 폐해가 국민들에게 돌려지기 마련인데도 이젠 그런 걱정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끝내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다.

최씨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집권당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 해법이 갈라진 데 따른 불가피한 귀결이다.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추이를 좀 더 지켜본 다음 사퇴하겠다는 반면 김무성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비주류는 지도부의 즉각 사퇴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으로 당을 쇄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에 대해서도 견해가 서로 엇갈릴 수밖에 없다.

이미 당은 거의 쪼개진 상황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 대표 주재의 모든 회의를 거부하고 있으며, 나경원 의원을 비롯한 일부 당직자들도 지도부 퇴진을 촉구하며 당직을 사퇴한 마당이다. 어제는 비박계 의원들과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별도의 비상시국위원회를 열어 앞으로의 공동행동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집단탈당까지 불사한다는 움직임이다.

그런데도 ‘친박’ 진영은 오히려 느긋한 분위기다. 비주류에 대해 탈당하려면 탈당하라는 투다. 이 대표는 자신의 사퇴를 요구하는 남경필·원희룡·오세훈·김문수 등에 대해 “대선주자라고 하면서 지지율이 합해서 9%도 안 된다”며 “자기 앞가림도 못 하면서 지도부만 물러나라고 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처럼 지지율까지 거론하며 노골적으로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결별을 감수하겠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다.

현재 새누리당은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20%의 지지율이 무너져 역대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이참에 탈당이든, 분당이든, 전면 쇄신이든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 첫 단계가 ‘친박’을 전면 해산하는 것이다. 현재 당권을 쥐고 있다고 해서 희희낙락한다면 ‘내시 정당’, ‘환관 정당’이라는 비웃음을 피하기 어렵다. 보수 정당의 명맥이 이런 식으로 흔들리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2. ‘실업자 공화국’의 빚쟁이 국민들

온통 우울한 소식뿐이다.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나라 살림은 물론 개인의 삶도 피폐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이 수치로 극명하게 드러났다. 한국신용정보원의 ‘생애주기에 따른 금융거래 행태 분석’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19세 이상 국민 3명 중 2명은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80세가 넘어서도 빚을 다 갚지 못해 결국 평생을 허우적대며 살아간다고 한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은행·보험·저축은행 등 전 금융권에 빚이 있는 19세 이상 국민이 1800만명에 이른다. 전체 성인(약 2700만명)의 66.7%에 해당한다. 1인당 빚은 19세 때 평균 450만원에서 35세에는 6780만원으로 15배나 치솟는다. 주택마련, 자녀 사교육비 등 지출이 늘어나면서 남자의 경우 53세에 9175만원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에도 빚 부담은 좀체 줄지 않는다. 61세 때 7876만원인 대출 잔액이 83세 때 6343만원으로 약간 줄어들 뿐이다. 일생 동안 빚의 늪에 빠져 사는 셈이다.

앞으로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점이 더 큰 걱정이다. 30대 그룹에서 지난 9월까지 해고된 직원이 1만 4000여명에 이른다는 사실이 단적인 사례다. 산업 구조조정이 본격 시작되면서 실업대란이 우려된다는 얘기다. 빚을 못 갚은 채 실직하면 소득 감소로 상환 여력이 떨어질 게 뻔하다. 퇴직·은퇴자들이 대출을 통해 손쉽게 창업하는 치킨집 등은 1년 안에 절반 가까이 폐업한다. 빚이 줄기보다는 늘어날 가능성이 큰 게 현실이다. 소득은 줄고 빚은 늘어나는 악순환의 구조다.

해법 마련이 시급하다. 좋기로는 성장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가계소득을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는 장기 저성장에 수출 감소, 구조조정, 청년실업 등으로 흔들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최순실 게이트’로 경제 컨트롤타워마저 표류 중이다. 경제 및 민생 현안을 챙길 경제 리더십의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다. 그러나 국민들의 심사를 제대로 알기나 하는지 정치권은 당리당략에만 정신이 팔린 듯하다. 겨울철을 앞두고 찬바람을 맞는 빚쟁이 신세들이 처량하기만 하다.

[서울신문]

3. 전기료 누진제 완화, 배율 더 축소해야 실효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이 윤곽을 드러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주택용 전기료 누진제 구간을 3단계로 줄이고, 가장 낮은 구간과 높은 구간의 누진 배율 차이를 3배 수준으로 축소하는 내용의 새 전기료 체계 얼개를 만들어 공개했다.

또 여름철 해마다 되풀이해서 ‘찜통교실’ 논란을 빚는 교육용 전기요금도 손보기로 하고 그동안 할인 혜택을 받지 못했던 유치원도 초중고교와 동일한 요금 혜택을 주기로 했다. 당정은 다음달 1일부터 새 체계로 요금을 부과하기로 하고, 그때까지 누진제 개편이 끝나지 않더라도 1일 기준으로 요금을 소급 적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는 지난 여름 많은 국민이 삼복염천(三伏炎天) 속에서도 ‘전기료 폭탄’이 두려워 에어컨조차 제대로 켜지 못한 채 하루하루 선풍기와 부채로 근근이 버티며 고통받았던 것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진작 할 수 있었던 일을 왜 이제야 하느냐고 힐난하지만 본격적인 겨울철에 들어가기 전에 개편안을 마련해 전기료를 내리기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현행 가정용 전기료 누진제는 총 6단계로, 최저·최고 구간의 누진 배율 차이가 11.7배나 돼 애초부터 요금 폭탄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다행히 당정의 새 요금체계가 지난 9월 민주당이 내놓은 안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아 막판에 좀더 섬세하게 손질하고 보완만 한다면 다음달 시행에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다만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당정이 누진 배율을 3배 수준 완화로 가닥 잡은 것은 좀더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 당정 전기료 태스크포스(TF) 위원들과 다수 전문가는 누진 배율을 2배 이하로 줄여야 명실상부하게 요금 인하 효과가 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조경태 국회 기획재정위원장도 ‘누진 배율을 1.4배까지 줄이고 궁극적으로 누진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새 전기료 체계는 앞으로 공청회를 거쳐 최종 확정되는 것인 만큼 충분히 시간을 갖고 요금배율 축소 문제를 심도 있게 더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이미 소급 적용 원칙을 밝혔기 때문에 시간에 쫓길 이유가 없다. 이번에 못 다룬 소비자 선택용 요금제 문제도 누진제 공청회가 끝나는 대로 본격적인 논의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그래서 전기료가 무섭다는 소리가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

4. 靑, 국정 운영 정상화 책임져야

청와대가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나 퇴진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거취와 관련해 정연국 대변인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고심하고 있다”면서도 “하야나 퇴진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는 것이다. 하야나 퇴진 가능성을 부인한 것은 이른바 ‘촛불 민심’이 요구한 ‘즉각적인 하야나 퇴진’은 물론 대안으로 떠오른 ‘질서 있는 퇴진’까지 일체의 대통령직 조기 사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야당은 “박 대통령 퇴진 투쟁 본격화”를 즉각적으로 선언하고 나섰으니 벼랑 끝 대치는 불가피하다. 사실상의 국정 혼란 사태는 장기화할 수밖에 없고 가뜩이나 어려움에 빠져 있는 경제와 민생은 더욱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다.

청와대는 ‘최순실 게이트’의 책임이 상당 부분 박 대통령에게 있다는 사실조차 부인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지난 주말 광화문광장에 주최 측 추산 100만명이 모인 것은 그 자체가 “대통령이 책임을 통감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권력을 내려놓는 것이 옳다”는 요구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질서 있는 퇴진론’(論)이 부상한 것은 준비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조기 퇴진이 몰고 올 수 있는 국정 혼란은 막아야 하지 않느냐는 충정의 발로라고 본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국회가 헌법대로 탄핵을 추진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태도를 보였다니 당황스럽다. ‘대통령 재직 기간을 조금이라도 연장할 수 있다면 다른 모든 것은 희생해도 좋다’는 생각이라면 안타까운 일이다.

청와대의 ‘퇴진 불가’ 선언에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박 대통령 조건 없는 퇴진을 선언할 때까지 국민과 함께 전국적인 퇴진 운동에 나서겠다”고 했다. 대선 주자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그는 ‘하야’나 ‘퇴진’의 거론을 조심스러워했던 것이 사실이다. 문 전 대표가 가세하면서 이제 모든 야권 대선 주자가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모양새가 됐다. 스스로 결단을 내리는 하야나 퇴진이 아니라면 대통령을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는 방법은 절차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탄핵밖에는 없다. 문 전 대표가 “탄핵 절차를 밟게 만든다면 그야말로 ‘나쁜 대통령’이 되는 길”이라고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두 번째 대국민 사과에서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위법행위까지 저질렀다니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면서 “이 모든 사태는 모두 저의 잘못이고 저의 불찰로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그렇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국정의 혼란은 국민 탓이 아니다. ‘대통령의 퇴진’을 입에 올린다고 야당과 일전을 불사해야 할 이유도 없다. 박 대통령은 담화를 작성하던 초심으로 돌아가 국정 운영 정상화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깊이 고심해야 한다.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대통령의 겸허한 모습을 보고 싶다.

5. 靑, 우선 수사에 성실히 응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수사가 청와대의 연기 요청으로 장애물을 만났다. 검찰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수첩에서 박 대통령의 직접 지시를 그대로 받아 쓴 기록을 확보했다고 한다. 앞서 안 전 수석은 “대통령이 대기업 모금을 세세히 지시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적이 있다. 확고한 증거물을 검찰이 손에 쥐고 있다는 얘기다.

수첩의 위력은 수사뿐만 아니라 정치적 파장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미르·K스포츠 재단의 모금이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였다는 박 대통령의 주장과도 당장 배치된다. 수첩에는 재단 설립 기금 774억원의 모금과 관련한 대통령의 최초 지시에서부터 수시 보고 내용, 추가 지시 등이 깨알같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의 구두 지시를 실시간 받아 적은 것이라면 사실상 대통령의 범죄 혐의가 구체적으로 입증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 지경인데도 박 대통령은 버티겠다는 자세다.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들이 봇물 터지던 지난 4일 대국민 사과에서 대통령은 검찰 수사는 물론 특검 수사도 받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국정 농단의 몸통이 누구도 아닌 대통령 자신이라는 사실은 갈수록 명백해지고 있다. 그런 처지인데도 대통령은 변호사를 통해 조사 연기를 요구하고 나섰다. 모든 의혹들이 먼저 조사돼 사실관계가 확정된 뒤에야 검찰 조사를 받겠다는 입장이다. 국정을 주무른 비선 실세들의 공소장에 어떻게든 자신의 혐의를 담지 않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혼돈 정국의 장본인인 대통령 자신이 딴소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주말의 100만 촛불 민심을 확인했는지 의심스럽다. 구속된 정호성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지휘한 것으로 보이는 수사 대비 자료까지 들춰진 마당이다. 박 대통령이 헌법의 불소추 특권을 방패 삼아 노출된 혐의들에 맞춤형 전략을 짜거나 증거 인멸의 시간을 벌고 있다는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진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 수사를 받는 기록 자체가 이미 역사와 국민에 씻지 못할 수치다. 박 대통령은 초연한 자세로 성실하게 수사에 협조해 마지막 품격만은 지켜 주는 것이 남은 도리다.

검찰의 수사 의지가 진심인지도 국민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박 대통령의 피의 사실이 그토록 명백하다면 피의자 신분으로 바꾸는 초강수를 둬서라도 진정성 있는 수사를 해 보이라는 국민 분노가 뜨겁다. 이 역시 검찰이 사는 마지막 길이다.

​[동아일보]

6. 오바마 대통령 임기 안에 사드 신속 배치하라

국방부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배치되는 경북 성주군 롯데스카이힐 골프장(성주골프장)과 경기 남양주시 퇴계원역 인근 군 소유 부지를 맞교환하기로 롯데 측과 합의했다고 어제 밝혔다. 9월 30일 성주골프장이 사드 부지로 발표된 지 40여 일 만이다. 한국은 ‘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시끄럽고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대외정책의 불확실성이 높아가는 상황에서도 사드 배치가 차근차근 진행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조속한 사드 배치는 당장 북한 핵·미사일에 맞설 대안이 없는 우리에게 시급한 과제다.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한미 ‘2+2 외교·국방장관’ 회담과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미국 측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안에 사드 배치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의 두 가지 문제만큼은 반드시 진전시켜 달라”는 뜻을 전했다. 한국 측이 속도를 내지 않는다면 북한이 도발할 때 미국이 어떻게 적극적으로 나서겠느냐는 취지로 채근하는 발언까지 했다고 한다.

부지 문제가 마무리된 이상 사드를 최대한 빨리 배치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하다. 트럼프 당선인이 뒤집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안보에도 철저히 비용과 편익을 따지는 사업가적 관점을 가진 그가 “한국 안보에도 도움이 되는데 왜 미국만 돈을 내느냐”고 따질 수도 있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국방부가 부지를 제공하고 고성능 엑스밴드 레이더 1개, 화력통제시스템, 발사대 6개, 요격미사일 48기로 구성되는 2조 원대의 사드 포대 비용은 미군이 전액 부담한다.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사항은 대통령이 바뀌든 총리가 바뀌든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일 GSOMIA 가서명(假署名)을 거론하며 “대통령이 민심을 거역하고 있다”고 지적해 안보관의 이념적 편향성을 드러낸 것은 실망스럽다. 배치지역 주민들도 이제 진정한 애국심을 발휘해주기를 바란다. 안전성이 입증된 사드 배치를 무조건 반대할 것이 아니라 차가운 이성으로 나라를 지키면서 지역을 살리는 지혜를 모으는 데 함께 해주었으면 한다.

[매일경제]

7. 대우조선 노조 지금이 파업투쟁 나설 때인가

생사기로에 선 대우조선해양 노조가 채권단의 확약서 요구를 거부하고 파업 및 상경 투쟁에 나선 것은 현실 인식의 결여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지난 10일 대우조선에 대해 2조8000억원의 추가 자본확충을 결정하면서 전제조건으로 노조가 쟁의행위 금지 및 자구계획 이행 동참을 확약할 것을 요구했다. 산업은행은 18일 이사회를 열어 자본확충안을 의결할 예정이므로 그 전에 노조 확약서가 제출되어야만 한다. 아무리 늦어도 25일 대우조선 주총 전까지는 나와야 한다. 노조의 확약이 없으면 자본확충안을 주총에서 부결시키고 법정관리로 보낸다는 게 산업은행의 기본 입장이다. 노조는 그러나 이에 반발하며 16일 4시간 부분파업을 진행했다. 또 17일 상경투쟁을 예고하다 뒤늦게 철회했다.

대우조선 근로자들의 고충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대우조선 자구안에 따르면 현재 1만1200명인 임직원 수를 연말까지 1만명으로 줄이고 내년 말에는 8500명 수준까지 감축해야만 한다. 이에 앞서 올 들어 이미 2000명의 인력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잘못은 낙하산 인사를 보낸 정부, 대규모 회계부정을 저지른 경영진이 해놓고 왜 이제 와서 근로자들에게 책임을 묻느냐"는 노조의 항변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자기 잇속을 챙기느라 정상적인 경영을 등한시한 경영진이 없었다면 대우조선 구조조정은 이미 몇 년 전에 단행됐을 일이다. 냉정히 말해 1만명이 넘는 지금 인력은 나태한 경영진이 구조조정의 고통을 유예한 결과물로 봐야 한다. 지금은 대우조선이 법정관리를 피하기 위해 구조조정 아니라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노조가 "사실상의 매각 수순"이라며 특수선 분사 등 자구안에 저항하는 것은 일종의 자해 행위다. 조선 3사 중 가장 형편이 나은 현대중공업이 6개 회사로 분할을 결정한 것과도 대비된다. 대우조선이 끝내 법정관리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근로자들은 지금 자구안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함을 노조는 직시해야 한다. 또 대우조선에 기자재를 납품하는 협력업체와 이곳 근로자들의 생계도 생각해야 한다.

8. 금융당국은 케냐 핀테크 `엠페사` 보고 느끼는 바 없나

한국 핀테크 산업 혁신을 위해서는 정보통신기술(ICT) 관점에서 산업을 키울 수 있는 새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낡은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매일경제TV가 15일 개최한 '핀테크 대혁신-산업·금융의 판을 바꾸자' 세미나에서는 "성공한 핀테크 기업이 많은 국가에는 '규제 철폐'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의견이 나왔는데 금융당국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특히 이날 세미나에서 소개된 케냐의 성공적인 모바일 금융 정착 사례는 핀테크산업이 지지부진한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케냐 성인의 70%가 모바일 금융서비스 엠페사(M-Pesa)를 이용하고, 국내총생산의 30%인 50조원이 이 서비스를 통해 거래된다고 하니 실로 놀랍다. 이동통신기업 사파리콤이 전화번호를 계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케냐 금융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우리가 핀테크에서 케냐보다 뒤처진다는 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세계 500대 핀테크기업에 국내 업체는 단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세계 각국은 핀테크를 통해 금융산업의 고비용 구조를 바꿔가고 있다. 영국은 금융규제를 과감히 풀어 세계 최강 핀테크 허브를 구축했고, 중국은 모바일결제 비중이 2014년 기준 50%를 웃돌고 있다.

국내 핀테크산업이 낙후된 것은 기존 금융권이 변화를 꺼리고 혁신을 허용하지 않은 탓이 크다. 신생 스타트업들은 거미줄 규제에 성장 기회를 놓치고 있다. 첫 인터넷전문은행 설립도 지난해 11월 카카오뱅크와 K뱅크가 예비인가를 받았지만 산업자본의 인터넷은행 지분 제한 완화 규정을 담은 '은산분리법 개정안'이 19대 국회에서 무산되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산업자본이 의결권 있는 지분을 4%까지만 보유할 수 있는 현행법으로는 IT기업이 주도권을 쥐고 금융혁신을 할 수 없다.

최근 야당 의원들이 산업자본의 지분을 34%까지 늘릴 수 있는 특례법을 발의한 것은 그나마 고무적이다. IT기업들이 핀테크를 주도하지 않고는 판이 바뀌지 않는다. 정부와 국회는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더 늦기 전에 깨달아야 한다.

[중앙일보]

9. 문재인, 안철수가 제시한 로드맵 도출에 힘 모아야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16일 주요 대선주자 중에서는 처음으로 현 시국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놓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선언→여야 합의로 대통령 권한대행 선출→박 대통령의 퇴진 및 내년 상반기 중 새 정권 출범이라는 3단계 수습방안이다.

국민의 마음에서 지워진 박 대통령이 헛된 권력에 집착하며 버티는 가운데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들은 어떤 해법도 제시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만 거듭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우 ‘최순실 정국’이 3주를 넘기도록 침묵만 지키다가 그저께 돌연 “범국민적 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게 전부다. 참다 못한 정계 원로들은 대통령이 책임총리에게 권력을 이양한 뒤 대선을 앞당겨 실시하는 ‘질서 있는 퇴진’을 주장해 왔다. 국가적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이다.

안 전 대표는 이런 ‘질서 있는 퇴진’의 구체적 로드맵을 대선주자 가운데 처음으로 제시한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뒤 반년(내년 6월) 안에 신정권을 수립해 우리 외교의 근간인 한·미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공감한다.

시위장에 나가 ‘대통령 하야’를 외치긴 쉽다. 그러나 대선에 도전하려는 정치인이라면 듣도 보도 못한 헌정 문란과 국정 농단의 주역인 박 대통령이 물러난 뒤 차기 대선까지 나라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책임총리를 누구로 할지부터 고민하고, 다른 대선주자들과 머리를 맞대 최선의 대안을 끌어내야 한다. 한데 문 전 대표는 거꾸로 가고 있다. 그는 “지역·시민단체까지 망라된 비상기구를 통해 대통령 퇴진운동을 확산시키겠다”고 했다. 이런 잘못된 판단에 많은 사람이 실망과 회의를 표시하고 있다.

우리 국민은 3차례 촛불시위에서 이념·세대·지역을 초월해 하나로 뭉쳤기에 활화산 같은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문 전 대표가 언급한 사람들이 끼어들면 그 순수성이 희석돼 안하무인 격으로 버티는 박 대통령에게 반전의 빌미를 줄 우려가 크다. 문 전 대표는 즉각 안 전 대표의 제안에 호응해 거국내각 로드맵 도출에 힘을 모아야 한다.

[세계일보]

10. 정유라씨 ‘교육 농단’, 반칙과 특혜 단절 출발점 돼야

서울시교육청이 어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출신 학교들에 대한 특정감사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승마 특기생으로 청담고교에 입학한 정씨는 출결 관리와 성적 처리 등에서 온갖 특혜를 누린 사실이 확인됐다. 정씨가 고교 3학년 때 출석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날은 수업일수 193일 중 17일에 불과했다. 그러고도 정씨는 명문대에 버젓이 입학할 수 있었다. 국정 농단 못지않은 ‘교육 농단’이 아닐 수 없다.

정씨의 고교 3년은 ‘특혜 인생’ 그 자체였다. 정씨는 고교 1~2학년 때 20일간 무단으로 결석한 뒤 해외로 나갔으나 모두 체험학습신청서를 제출해 출석으로 인정받았다. 2학기에는 실제 체육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전체 학생 중 정씨만 유일하게 수행평가 만점을 받았다. 심지어 해외에 있는데도 생활기록부엔 승마협회에서 마필 관리 등 봉사활동을 했다고 적었다. 이런 특혜에 힘입어 2학년 2학기와 3학년 2학기 체육교과 교과우수상을 수상했다. 어머니 최씨는 딸의 경기 출전 횟수에 문제를 제기한 체육교사를 찾아가 학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너 잘라버리는 것 일도 아니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이런 안하무인 갑질이 없다.

정씨는 이번 의혹 말고도 이화여대 입학과 학사관리에서 숱한 특혜를 받은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어제는 정씨의 합격을 위해 상위권 학생 두 명에게 면접에서 낙제점을 줘 탈락시켰다는 보도가 나왔다. 1차 서류전형에서 9등에 머문 정씨가 합격권인 6등 안에 들지 못하자 한 교수가 면접관들에게 정씨 앞에 있던 학생들을 탈락시키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당시 정씨는 면접에서 최고점을 받아 합격했다. 하지만 의혹의 당사자인 정씨는 오래전에 독일로 출국해 도피 중인 상태다. 최씨 비리에 늑장 수사로 일관했던 검찰은 정씨에 대해 소환이나 귀국 종용 등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검찰의 명백한 직무유기다.

정씨의 특혜 인생은 오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정씨는 2년 전 자신의 특혜 입학 의혹이 제기되자 페이스북에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글을 올렸다. 우리 사회가 돈과 권력으로 얼마나 철저히 오염됐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씨의 사건을 개인적 단죄에만 머물러선 안 되는 이유다. 젊은이들을 좌절에 빠뜨리는 부정부패 풍토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첫출발로 삼아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매일신문][매일춘추] 낙엽을 보며 물러날 때를 생각하다

주위 산들이 울긋불긋한 걸 보니 단풍시즌이 맞는가 보다. 비록 단풍이 과학적으로 보면 나뭇잎이 기후변화로 인해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 녹색 잎이 노랗거나 갈색 또는 붉은색으로 변하는 현상이라고 하지만, 나무들이 겨울을 준비하는 과정은 너무도 아름답다. 사람들도 이때쯤이면 쌀쌀해진 날씨에 겨울옷으로 갈아입으면서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단풍처럼 아름다운 황혼을 맞이할지 고민하게 된다. 또 낙엽을 보면서 자연이나 인생이나 때가 되면 사라지는 것이 만고불변의 법칙임을 깨닫게 되고 그때에 잘 맞춰 아름답게 물러날 수 있기를 바라보기도 한다.

물러나는 것이 화두가 된 요즘, 주목할 만한 이야기가 삼국사기 진성여왕조에 있다. 887년에 왕위에 오른 진성여왕은 평소 작은아버지인 각간 위홍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면서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고 위홍이 죽은 후에는 젊은 미남자들을 몰래 끌어들여 그들에게 나라의 정치를 맡겼다. 이로 인해 여왕의 남자들을 중심으로 측근정치가 행해졌고 일부 아첨꾼들이 왕의 힘을 믿고 전횡을 일삼으면서 백성들은 더 힘들어지고 각지에서 호족이 난립하면서 나라 기강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결국 진성여왕은 오빠인 헌강왕의 서자(효공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된다.

우습게도 오늘날 우리 모습이 1천100여 년 전 그때를 보는 것 같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 국정이 농단되었고, 오랫동안 소위 문고리라 불리면서 한솥밥을 먹었던 사람들이 떠나면서 배신하는 모습을 너무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그 당시 혼란을 개혁하기 위해 충심을 다해 시무10조를 올린 최치원처럼 11월 12일 광화문에서 작금의 세태를 바꾸고, 기득권 세력 타파를 외치는 100만 촛불 여론이 불타올랐다.

우스갯소리로 가장 좋은 금(金)은 24K나 현금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라는 말이 있다. 이 정도 민심이면 이제 우리 사회를 이끈 책임자들은 지금의 결과를 남 탓으로 돌리지 말고 바로 그때가 지금이라고 현명하게 판단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단풍도 결국 때가 되면 낙엽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우리 세상사 얽혀진 문제들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골든타임이 있고, 그때를 놓치면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곧 가을도 지나간다. 바쁘다는 이유로 이 계절을 그냥 보내기에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아름다운 자연을 걸으며 단풍을 보는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잎들이 땅에 다 떨어지더라도 얼마 후 다시 태어나리라는 나무의 긍정 에너지만큼은 한 수 배우고 오자. 작금의 현실이 우리를 답답하게 하고 있지만, 나부터라도 먼저 떨어진 낙엽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인생을 잘 마무리하고 적당한 때에 물러날 수 있는지 그 지혜를 달라고 빌어보자.

2. [서울신문][문화마당] 그나마 고맙습니다/김재원 KBS 아나운서

솔직히 부끄럽습니다. 그동안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도 잊고 살았습니다. 모처럼 헌법을 찾아보게 해 줘서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사실과 내가 그 주권을 가진 국민이라는 사실을 되새겨 줘서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95%의 국민이 한마음 되게 해 줘서 감사합니다. 월드컵 때만큼 신나고 즐겁지는 않았지만, 6·10 항쟁만큼 뭉클하고 뿌듯했습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참정치가 무엇인지 가르칠 수 있게 해 줘서 참 고맙습니다.

솔직히 방송하는 사람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언론의 역할을 알면서도 잘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통해 어떤 모습이 참언론의 모습인지 알게 해 줘서 감사합니다. 그나마 이제라도 조금씩 따라갈 수 있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말 한마디라도 국민의 눈치를 보도록, 국민의 마음을 담도록 노력하게 해 줘서 참 고맙습니다.

솔직히 중고등학생들에게 미안했습니다. 거리로 나와 준 청소년들이 고마웠지만, 엄청난 입시 부정으로 그 아이들이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면 참 미안했습니다. 그나마 이제라도 대학들이 한 치의 부정 없이 공정한 선발을 할 것 같아 참 고맙습니다. 오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는 수험생들이 오히려 공정한 입시를 기대하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솔직히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미안했습니다. 노란 리본 달며 오래오래 기억하겠다고 다짐하고 약속했었는데, 너무 금세 잊은 것 같아 무척 미안했습니다. 그나마 이제라도 세월호를 다시 기억하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가려진 시간의 진실이 드러날 희망을 보여 줘서 고맙습니다. 세월호의 상처가 진한 흉터로 남더라도 아물기를 기대하게 해 줘서 참 고맙습니다.

솔직히 그동안 보기에 답답한 영화들도 있었습니다. 다양성은 인정하지만 저 정도까지 만들 필요는 없었는데 하는 영화 말입니다. 의외의 흥행도 의아했습니다. 이제 모든 진실을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그동안 핍박과 압력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 준 영화가 고맙습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도 고맙습니다. 그나마 누가 용기 있는 문화예술인인지 옥석을 가려 줘서 고맙습니다.

솔직히 그동안 지도자에게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지도자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오롯이 국민의 힘으로 나라를 이만큼이라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소통 없는 지도자가 얼마나 끔찍한지, 진정성 없는 사과가 얼마나 화나는지, 잘못된 멘토가 사람을 어떻게 망치는지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지도자를 신중하게 뽑아야 한다는 것도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그나마 앞으로 나올 지도자들도 국민을 두려워하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최악의 정치였지만 최선의 정치를 기대하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물론 이 모든 일이 없었으면 좋았겠지요. 이렇게까지 속상하고 다른 나라에 이렇게까지 창피하지는 않았겠지요. 그나마 이렇게라도 감사의 조건을 찾지 않으면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기왕 크게 다친 것, 곪아 터져 새살이 돋았으면 좋겠습니다. 고난 속에 꽃이 피고, 난세에 영웅이 난다지요. 이 어려운 시기에 탄생한 진정한 영웅은 국민입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숭이 임금님’이 생각납니다. 재단사의 엉터리 옷을 입은 임금에게 벌거벗었다고 솔직히 말한 사람은 아이 한 명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는 재단사가 사기꾼이라고, 임금이 벌거벗었다고 거리에 나와 외치는 국민이 백만명이나 있습니다. 훌륭한 국민들이 정말 고맙습니다.

3. [서울신문][말빛 발견]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의 시 ‘승무’는 그림 같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시를 읽는 게 아니라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나비 같은 고깔, 파란빛이 도는 머리, 고와서 서러운 두 볼, 긴 소매와 사뿐한 버선, 오동잎 잎새마다 지는 달…. 시가 그리는 이 풍경들을 천천히 감상하게 된다. 그러다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 같은 내면이 그려질 땐 더 오래 ‘그림’에 머물게 된다. 시 속의 말들이 그렇게 되도록 잡아당긴다.

‘승무’의 말들은 서럽고, 여리면서도 곱고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 낸다. 두 볼에 흐르는 빛, 까만 눈동자, 복사꽃 고운 뺨, 아롱질 듯 두 방울…. 여기에 ‘하이얀, 나빌레라, 파르라니, 모두오고’ 같은 말들은 부드러움과 함께 예스러움을 전한다. ‘승무’가 예스러움, 즉 옛것과 같은 맛이나 멋을 전하는 데는 이 같은 말들이 구실을 한다.

이 가운데 ‘나빌레라’ 같은 투의 표현은 옛맛을 더욱 짙게 한다. ‘나빌레라’는 ‘나비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ㄹ레’라가 이런 뜻을 갖게 하는데, ‘-겠더라’, ‘-겠도다’와 비슷한 의미를 덧붙인다. 이 시에서 ‘나비’에 ‘-ㄹ레라’를 붙이지 않았다면 분위기는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나빌레라’는 여운도 주고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가는 느낌도 전한다. 일상에서 쓰이지 않으니 이제 ‘나빌레라’의 의미를 얼른 알기는 어렵다. ‘-ㄹ레라’는 글에서나 어쩌다 보인다. ‘승무’에서는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의 끝에 반복해 사용했다.

4.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구수한 청국장찌개의 매력

메주콩을 푹 삶아서 볏짚과 함께 단지에 담아 따뜻한 곳에 두고 2~3일 띄우면 구수한 청국장이 만들어진다. 된장은 많은 과정을 거쳐 몇 개월씩 걸리는 데 비해 청국장은 며칠 내 완성되는 속성 음식이다. 그래서 청국장(淸麴醬)은 전시에 급히 만들어 먹을 수 있었던 장인 전국장(戰國醬)에서 왔다는 말이 있다. 또 청나라에서 왔다는 뜻인 청국장(淸國醬)에서 유래했다 하기도 하고, 담북장이라 하는 지방도 있는 등 여러 설이 있다.

어쨌든 청국장은 오랫동안 우리 곁을 지켜온 식품이다. 어릴 때 온돌 아랫목 이불 덮은 단지에서 나는 청국장의 그 깊고도 오묘한 냄새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예로부터 소박한 식재료로 우리 입맛을 지켜온 청국장은 이제 영양분이 풍부할 뿐 아니라 각종 성인병과 노화예방에도 효과적이어서 뛰어난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청국장 요리의 대표는 청국장찌개다. 제조된 청국장을 어디서나 쉽게 살 수 있고 요리방법도 간단해 어느 가정에서나 손쉽게 즐길 수 있는 메뉴다. 먼저 소고기나 멸치로 육수 국물을 낸 후 청국장과 무, 배추를 넣고 푹 끓인 다음 양파, 두부, 고추, 마늘 등을 더해 한 번 더 끓이면 완성이다.

청국장찌개는 청국장 맛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잘하는 집이라는 평가가 그 어떤 음식보다 맛보는 이의 식성에 따라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단골집을 몇 군데 소개한다.

서울 사당동 이수역 부근에 ‘보성식당’이 있다. 고향이 전남 보성인 주인아주머니가 주방에서 직접 요리를 하는 모습이 옛날 주막을 연상시키는 테이블 6개의 조그만 집이지만, 입소문이 나서 청국장 마니아들이 끊이지 않는다. 진한 청국장 맛이 인상적이고 곁들여 나오는 밑반찬도 깔끔하고 맛깔난다.

예전 사직공원 옆 골목 초입에 ‘사직분식’이라는 허름하지만 소문난 청국장 집이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가 1997년 원래 분식집으로 시작했는데, 시부모가 경동시장에서 청국장(재료) 가게를 하는 바람에 청국장찌개 집으로 변신해서 대박을 터뜨린 집이다. 이 구석진 곳을 어떻게들 알고 왔는지, 끼니때면 그야말로 식객들이 긴 줄을 섰다. 이 동네가 재건축되면서 조선호텔 옆으로 옮겨 ‘사직골’이란 이름으로 새로 개업했다. 청국장백반이 대표 메뉴로, 청국장 고유의 진한 냄새를 줄인 슴슴한 찌개 맛이 일품이다. 일찍이 허영만 화백의 ‘식객’에 등장했던 딸이 이제는 청국장을 직접 만들고 있다.

종로2가 낙원상가 지하시장 한 모퉁이에 자리잡은 ‘일미식당’은 구수한 청국장찌개와 맛있는 쌀밥으로 유명하다. 청국장도 수준급이고 반찬도 정갈하지만 특히 밥이 일품이다. 도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햅쌀로 갓 지은 밥을 내어놓는 착한 식당이다. 마니아들의 숨겨진 맛집이었는데, 매스컴 때문에 줄이 너무 길어졌다.

‘광주식당’은 청량리역 1번 출구 부근 청량리시장 내 작은 골목에 있다. 이 집 청국장찌개는 큼지막한 두부 한쪽을 넣어 팔팔 끓여주는데, 먼저 구수하고 슴슴한 장맛이 입맛을 돋운다. 그다음 양은냄비에 나오는 즉석 밥과 누룽지가 가세해 더욱 입맛을 돋운다. 장보러 온 사람, 시장상인들이 어우러져 함께 식사하는 이 작은 집에 오면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그 옛날 시장통 백반 집에 온 것 같아 정겹다.

짙어가는 가을 끝 무렵 고향 냄새를 한껏 풍기는 구수한 청국장찌개로 한 끼 행복한 식사를 즐겨보면 어떨까.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달라이 라마

라모 톤둡은 1935년 7월 6일 티베트 동북부 암도라는 지방 한 농가에서 태어나, 3살 무렵 13대 달라이 라마(법명 툽텐 가쵸, 1895~1933)의 환생으로 인정받았다. 부모 품을 떠나 성지 포탈라 궁으로 이주한 그는 텐진 가쵸라는 법명을 받고 라마(스승)들의 지도 하에 종교 지도자로서의 교양과 학식을 쌓았다. 그리고 1950년 11월 17일, 최고위 성직이자 세속의 권좌인 14대 달라이 라마에 즉위했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티베트을 점령한 해였다.

불교의 이상은 수련을 통한 해탈, 즉 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하는 것이라 한다. 지선의경지가 성불, 곧 부처가 되는 것이다. 성불을 마다하고 거듭 환생함으로써 현세를 ‘자비(慈悲ㆍ 깊이 사랑하고 가엽게 여김)하는’ 숙명의 달라이 라마는 그러니까, 불교의 이상 안에서 보자면, 스스로를 희생한 존재인 셈이다. 달라이 라마 텐진 가쵸는 중국이 반란 진압을 명목으로 사원을 파괴하고 티베트 인들을 학살한 1959년 인도로 망명, 이후 근 60년간 망명 정부를 이끌며 티베트인들의 희망이자 구원의 상징으로 재임해왔다.

티베트 불교의 법통은 달라이 라마가 환생해 집권하기까지의 권력 이양기를 서열 2위인 판첸 라마가 섭정하는 체제로 이어진다. 판첸 라마 역시 환생하며, 서로가 환생의 주인공을 확정하는 권한을 지닌다. 1995년 5월 텐진 가쵸가 6살 겐둔 초에키 니마(Gendhun Choekyi Nyima)를 11대 판첸 라마로 인정하자, 중국 정부는 니마를 비밀리에 연금하고 다른 판첸 라마를 옹립했다. ‘최연소 정치범’으로 국제 인권단체가 인정한 니마의 생존 사실이 확인된 건 2015년이었다.

2014년 텐진 가쵸는 독일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은 환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자기 대에서 법통을 끊는 것이, 비록 티베트 불교로서도 전대미문의 시련일 테지만, 중국이 가짜 판첸 라마와 ‘꼭두각시’ 달라이 라마를 통해 티베트 인들의 정신까지 지배하는 것보다는 나은 길이라 판단한 거였다. 그의 선언은 티베트인뿐 아니라 중국 당국에게도 큰 충격을 안겼다. 그의 세수는 81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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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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