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최순실 사태’, 이제 기본으로 돌아갈 때다
그동안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수세에 몰려 쩔쩔매던 박근혜 대통령이 아연 반격 태세로 돌아선 느낌이다. 외교부 2차관에 이어 문광부
2차관 인사를 단행했고, 부산 엘시티 비리사건에 대한 단호한 수사 지시도 내렸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친박(親朴)계도
어제 “대통령 퇴진 요구는 인민재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박 대통령의 하야 내지 ‘2선 후퇴’ 불가 방침을
거듭 확인해 주는 움직임이다. 검찰 수사를 미루면서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다.
박 대통령의 이러한 움직임에 발끈한
야권은 어제 오후 3당 대표회담을 열고 박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한 전국적인 시위투쟁 공조에 합의했다. 양쪽 진영이 전열을
재정비하고 너 죽고 나 죽기 식의 힘겨루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민주국가에서 정쟁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나라가 안팎으로 매우
곤궁한 시기에 헌정질서의 중단을 초래하는 파국에 이를 경우 그에 따른 피해가 전적으로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게 문제다.
이젠
다시 기본으로 돌아갈 때다. 박 대통령은 자꾸 미적대다가 내주에야 검찰 수사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국민 사과 때의
약속은 오간 데 없고 ‘참고인 신분’ 운운하며 버티는 초라한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다. 이미 참담해질 대로 참담해진 국민의 심경을
그리도 헤아리지 못한단 말인가. 야권도 촛불시위에 기대어 정권을 거저 탈취하려는 조바심은 버려야 한다. 박 대통령에 대한 퇴진
요구는 혐의가 입증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현재로는 검찰과 특검 수사에 전력투구함으로써 사건의 실체적 전모를 밝히는 게 순리다.
문제의
발단인 국정 농단의 진상은 제쳐 놓고 박 대통령의 퇴진 여부만 쟁점으로 부각된 지금의 국면은 뭔가 잘못됐다. 이런 맥락에서
“진실 규명도 되기 전에 대통령에게 무한 책임을 지라는 요구와 주장은 일시적 분풀이에 불과하다”는 정홍원 전 총리의 지적은
새겨들을 만하다. 사실 확인조차 안 된 의혹들을 마구 부풀리는 언론의 마녀사냥식 보도도 자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세계 정상 가운데 제일 먼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만나 상호 관심사를 논의한다는데
우리는 도대체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2. '제4차 산업혁명'을 과잉 규제할 것인가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이 우리의 일상생활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이세돌과 인공지능의 바둑 대결에서 여실히 드러난 사실이다. 하지만 AI 구축에 필요한 각종 데이터의 수집·분석 과정의 걸림돌은 여전하다. 이데일리가 그제 개최한 ‘제3회 IT컨버전스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제도규제 철폐를 한목소리로 주문한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
전세계 산업·과학기술계의 최대 화두는 단연 ‘제4차 산업혁명’이다. 증기기관 발명에 의한 1차 혁명에 이어 전기와 대량생산
체제가 가져온 2차 혁명, 인터넷 및 컴퓨터 기반의 3차 혁명이 인류가 그동안 겪어 온 발전 단계다. 이제는 4차 혁명의 높은
파고가 전세계 기업과 사회 생태계를 송두리째 집어삼키고 있다.
AI가 정보통신기술(ICT)뿐만 아니라 제조, 금융, 의료, 자동차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삼성전자와 KT 등 국내기업은 물론이고 구글, 아마존 등 세계적인 정보통신 기업들이 이 부문에 뛰어들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배경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AI 분야가 2025년께 전세계적으로 6000조원에 달하는 거대시장으로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AI시장 선점을 위한 세계 각국의 노력도 치열하다. 일본은 이를 ‘제2의 메이지 유신’으로 선언하고 정부 차원에서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다. 일본이 지난 6월 ‘일본재흥전략’을 발표하고 AI 분야를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힌 대목이 이를 웅변한다. 중국도 AI 산업 육성을 위한 3개년 실천 방안을 내놓는 등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절대 강자가 없는 AI시장을 우리 기업이 선점하려면 날개를 달아줄 필요가 있다. 신기술이 등장하면 부작용을 우려해 원칙적으로 규제하면서 예외를 허용하는 현행 ‘포지티브 규제’ 방식으로는 AI혁명에 대비하기 어렵다. 기업들이 첨단기술 개발에 사활을 거는 마당에 정부 당국과 정치권이 간섭과 통제로 이를 막아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적어도 AI 분야에서만큼은 규제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관련 제도를 기업친화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매일신문]
3. 엘시티 의혹, 원칙대로 수사하면 될 터인데 웬 호들갑인가
부산 엘시티(LCT)
인허가 특혜 사건이 정국의 관심사로 급부상해 국민을 헷갈리게 한다. 청와대와 야당, 일부 대권주자들이 엘시티 사건을 둘러싸고
서로 비난`해명하고 사법처리 운운하고 있으니 ‘최순실 사태’의 심각성이 상당 부분 희석되는 듯한 분위기다. 비리사건이라면 검찰이
원칙대로 처리하면 그만일 터인데, 정국 수습이 시급한 와중에 왜 이렇게 법석을 떠는지 모르겠다.
엘시티 사건은
정치권에 충격파를 줄 만한 이슈이긴 하지만, 최순실 사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정치권 전체가 이 문제에 과도한
반응을 보이니 그 배경이 의아스럽다. 발단은 박근혜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에게 엘시티 사건의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면서 비롯됐다.
당연히 야당은 ‘최순실 사건을 덮기 위한 물타기’라고 반발했다.
이 정도에서 끝났으면 별일 없겠지만, 새누리당 비주류, 문재인 전 대표 등의 연루 루머가 SNS에
퍼지면서 당사자들과 야당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허위 소문을 퍼트렸다며 네티즌들을 고소했고, 김무성 의원은
연루설 유포자를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조직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SNS에 돌아다니는 루머야 금방 없어질 것인데 ‘자라 보고 놀란 가슴’도 아니고 이렇게 요란하게 대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엘시티
사건은 용도 변경 및 각종 인허가, 대출 과정 등에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비리의 전형이다. 실소유주인 이영복 회장은 최순실
자매와 친목계를 하는 사이였으니 박 대통령과 측근들이 곤란할 것 같았는데, 오히려 문 전 대표와 김 의원이 더 발끈하니 왠지
어색하다. 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면서 최순실 사태의 본질이 흐려질까 걱정스럽다.
검찰이 원칙대로 수사하겠다고
했으니 믿고 맡기면 될 것이다. 문 전 대표와 김 의원은 부산에 기반을 뒀기 때문에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걱정하겠지만, 검찰의
수준이 그 정도는 아니라고 믿는다. 문 전 대표와 야당, 김 의원은 더는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하지 말고, 최대 현안인 정국 수습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4. 야당의 무능과 과욕이 초래한 ‘최순실 정국’의 급반전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정국’ 탈출에 시동을 걸었다. 청와대는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지는 않을 것”임을 거듭
확인했다. 같은 날 박 대통령은 공석인 외교부 2차관을 임명하고, 부산 엘시티 의혹도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또 다음 달
일본 도쿄에서 열릴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담도 예정대로 추진한다고 한다. 17일에는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인사도 단행했다.
정상적인 집무로의 복귀다. 퇴진 요구에 흔들리지 않겠으며, 사퇴도 없다는 신호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의 거취를
둘러싼 박 대통령과 야당의 대치는 장기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사태가 이렇게 급반전한 책임은 상당 부분 야당에 있다. ‘최순실
사태’에 대한 야당의 대응은 한마디로 조잡했다. 박 대통령의 조기 퇴진에만 급급해 퇴진 이후 정국을 어떻게 이끌어갈지에 대한
밑그림이 없었다. 거국중립내각, 국회의 총리 추천권, 국회 추천 총리에 대한 ‘내각 통할권’ 등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제안을
거부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모조리 안 된다면 무엇이 되는지를 제시해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바탕에는
손쉬운 정권 탈환이란 과욕도 깔려 있었다.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이자 더불어민주당의 ‘대주주’인 문재인 전 대표의 행보가
바로 그렇다. 지금 대통령이 퇴진하면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문 전 대표로서는 제대로 된 검증 없이도 대권을 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렇게 대권에만 꽂혀 있으니 최순실 정국의 합리적인 수습책을 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
결과 정국은 급반전됐다. 이에 대비한 야당의 ‘B 플랜’은 없다. 퇴진이 위헌이라는 청와대 측의 주장에 대한 반대 논리 또한
없다. 무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퇴진했을 경우 이후 정국을 야당이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지 불안해하는 국민이
늘어나는 이유다.
정치인의 책무는 국민의 소리를 합리적인 정치적 해법으로 구체화하는 것이다. 촛불집회에 참여해
목청만 돋우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문 전 대표가 기획하는 장외투쟁은 올바른 해법이 전혀 아니다.
야당은 해법을 원점에서 다시 고민하기 바란다.
[서울신문]
5. 주목해야 할 北美 제네바 접촉
북한
당국자들과 미국의 전직 관료 등이 17, 18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비공식 대화 채널을 가동했다. 북한에서는 최선희
외무성 미국국장이, 미국에서는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 운영자 조엘 위트 연구원이 대표로 나섰다.
미 국무부는 제네바 대화와 관련해 ‘정부와 무관한 민간 차원의 트랙2 형식’이라며 정치적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통일부도
“민간의 접촉”이라면서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한·미 정부의 설명이 맞을 수도 있지만 양국의 처지에서 보면
일상적인 만남으로 폄하할 사안은 아니다. 미국은 곧 도널드 트럼프 시대를 맞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금껏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선거 기간 동안 김정은을 겨냥해 ‘햄버거를 먹으며 핵 협상을 할
수 있다’, ‘미치광이가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며 특유의 막말까지 서슴지 않았던 터다. 북한의 침묵은 관행에 비춰 보면
이례적이다. 까닭에 미 대선 이후 첫 북·미 접촉이 비록 민간 차원이라지만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최 국장은 트럼프 정부에 대해
“정책이 어떨지가 기본”이라며 대북 정책을 주시하고 있음을 감추지 않았다.
제네바
접촉은 트럼프의 대북 정책 방향에 대한 우회적인 탐색일 수 있다. 북한은 이미 지난달 21, 2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미국과 비공식 만남을 가졌다. 대화를 끝낸 뒤 “현안을 다 얘기했다”며 진지한 논의가 이뤄졌음을 내비쳤다. 북·미 접촉은 공동의
첨예한 쟁점이 있는 한 공식·비공식을 떠나 아무리 의례적일지라도 대화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의 대화에 나서는
북한 관계자가 대미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서다.
트럼프의 대북 정책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미국의 대북 정책이 요동쳤다는 점은 분명하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이 어제
북한의 핵 위협 수준을 심각에서 높음으로 한 단계 낮춤에 따라 대북 정책이 핵폐기에서 동결로 선회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의 돌출적인 성향에 미뤄 김정은과 대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이 때문에 우리 스스로 한반도의 다양한 상황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한 자세가 요구되고 있다. 북·미 제네바 접촉도 공식 여부를 떠나 예의 주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6. 靑·친박 반격… 파국은 막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공석인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을 내정하는 등 이틀 연속 차관 인사를 단행했다. 박 대통령은 이 같은 인사권 행사와
함께 김현웅 법무장관에게는 부산 엘시티 비리에 대한 철저하고 신속한 수사를 지시하는 등 사실상 국정 운영에 복귀하는 양상이다.
지난 주말 100만 촛불 민심으로 확인된 성난 여론과 야권의 강력한 퇴진 운동에도 불구하고 “의혹만으로 물러설 수 없다”며 국정을
챙기면서 반격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100만 촛불 함성에 대해 “대통령께서는 국민 여러분의 목소리를 무거운
마음으로 들었으며 현 상황의 엄중함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던 청와대의 분위기에 미묘한 변화가 시작된 것은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의 영수회담이 무산된 다음날인 지난 15일부터다. 청와대 측은 “하야나 퇴진은 헌법 정신에 맞지 않는다”며 2선 퇴진마저도
거부했다. 이어 선임된 박 대통령 변호인은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를 반박했고, 그제부터는 새누리당 친박 세력까지 가세해 “의혹만
제기된 수준인데 하야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100만 촛불집회는 허위’ 등의 황당한 주장까지
전했다.
박 대통령은 두 차례의 대국민 사과를 통해 이번 사태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헌법
정신을 내세워 하야도, 2선 퇴진도 거부한 채 “시시비비를 가리자”며 검찰 수사까지도 차일피일 미루는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채 국정 운영부터 사생활까지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게 의존한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있는지 묻고
싶다. 혹시라도 시간을 벌어 지지층의 재결집을 기대하고 있다면 오산이다. 당장 이번 주말 촛불집회에서 청와대와 친박 세력의 반격에
분노한 민심이 어떻게 표출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최순실 게이트’는 헌정 사상 유례없는 국기 문란 사건이다.
검찰은 그 의혹의 중심에 박 대통령이 있다고 했다. 남은 임기 1년 3개월 동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국정을 수행하기는 이미
어려워졌다고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이 퇴진을 거부하고 있으니 이제 헌법적 절차에 따른 강제퇴진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청와대도 “헌법적 절차에 따른 탄핵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하지 않았는가.
특검과 국정조사가 사실상 시작됐다.
검찰 수사의 미진한 부분까지도 낱낱이 파헤칠 것이다. 성난 민심은 그 시간조차 인내하기 어렵겠지만 파국만은 막아야 한다.
평화로운 촛불집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박 대통령의 퇴진을 압박할 수는 있다. 하지만 폭력이 등장하는 순간 우리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는 점을 꼭 염두에 두기 바란다. 야 3당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당리당략을 버리고 국정 정상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한시가 바쁘다. 박 대통령도 진정 국가를 위한다면 지금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각오를 밝혀야만 한다.
[조선일보]
7. 朴 대통령 슬그머니 업무 복귀 민심이 받아들이겠나
최순실 게이트는 단순한 비리 사건이 아니다. 국격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국민 치욕의 사건이다. 민심은 박근혜 대통령의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민심을 받아들여 박 대통령은 필수적 외교·안보 문제 외엔 업무에서 떨어져 있었다. 국회 추천 총리에게 내치(內治)를 맡기는 책임총리제를 할 것이라고 했다. 야당이 거부하기는 했지만 대통령의 그런 자세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16일과 17일 정부 인사를 하고 법무부 장관에겐 특정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 지시도 했다. 다음 주엔 국무회의를 주재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한발 물러서 검찰 수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챙기는 모습이다. 요 며칠 사이 모습을 보면 설사 국회가 총리를 추천했어도 대통령 권한을 고집하는 박 대통령과 새 총리 간에 충돌이 발생했을 것 같다.
새누리당을 장악한 친박도 참호를 파고 장기전을 하겠다는 태세다. 어제 이정현 대표는 야당의 대통령 퇴진 요구에 대해 "인민재판"이라고 했다. 비박계를 향한 언사도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죄인인 것처럼 몸을 낮추던 사람들이 표변했다. 지금 이 국면을 어물쩍 넘기고 시간을 끌면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진 모양이다.
이대로 가면 대통령과 민심이 거리에서 충돌하게 된다. 불행한 사태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사태 발전을 예측하지 못할 리 없는 대통령과 친박이 반격에 나선 것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인가. 격렬한 시위의 반작용으로 떠났던 지지층이 되돌아올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면 무책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 인사들은 "헌법에 2선 퇴진, 임기 단축, 하야 절차가 명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은 국민 전체가 비난해도 할 일은 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정말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국민 앞에 서서 그 생각을 밝히는 것이 옳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한마디 없이 검찰 조사엔 미적거리면서 슬그머니 업무에 복귀하는 것은 민심과 동떨어진 행태다. 앞으로 검찰 수사, 특검 수사, 국회 국정조사가 이어지고 경우에 따라 국회에서 탄핵이 발의될 수도 있다. 첩첩산중이다. 이 판국에 대통령이 번번이 민심에 불을 지르니 이해할 수가 없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을 향해 "'뭐 그리 잘못한 게 있느냐'고 다시 고개를 든다면 현실을 매우 잘못 보는 것"이라고 했다. 최씨 사태를 부른 것은 박 대통령의 고장 난 현실 인식 때문이다. 이제는 수습까지 막고 있다.
[매일경제]
8. 정상회담 한 번 없는 황 총리 APEC 일정 한국외교 민낯이다
내일부터 이틀간 페루 리마에서 열리는 2016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황교안 국무총리가 참석한다는 공식 발표는 우리의 참담한 처지를 확인케 해 가슴이 무겁다. 1993년 APEC
정상회의가 시작된 이래 대통령 아닌 총리가 참석하는 건 처음이다. 정부는 북한의 5차 핵실험 등 엄중한 안보상황을 감안해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기로 지난 9월 이미 정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이 결국 정상외교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APEC 정상회의는
아시아지역 국가와 태평양에 인접한 국가들을 아우르는 다자 협의체로 올해 24회째를 맞는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강을 비롯한 주요국이 모이는 자리이니 정상외교에서 비중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되는 무대다. 정부의 설명과 반대로 오히려
북핵 해결을 위한 주요 당사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다른 일을 제쳐두고라도 대통령이 APEC 회의에 가서 대북 제재를 위한 국제 공조의 고삐를 더 조일 기회로 활용했어야 한다.
황
총리는 정상회의 참석 외에 개최국인 페루 제1부통령과의 회담만 할 뿐 다른 정상과 만남 한번 못 하고 들어온다는데 그럴 바엔
어차피 가야 하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 맡기는 게 나았다는 판단도 든다.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의원의 설명을 들어보면 총리가
대통령 대신 가는 다자정상회의에서는 큰 나라 대통령들이 아예 상대도 해주지 않아 만날 기회를 갖지 못한다고 한다. APEC이나 G20 정상회의, 아세안+3 정상회의 등에는 대통령이 직접 가야 하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APEC 정상회의에 가는 길에 미국 뉴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오늘 회담을 할 정도로 정상외교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APEC 정상회의 불참에 대해 AP통신은 최순실의 국정 농단 파문으로 궁지에 몰려 내린 결정이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영문판에서 위기에 처한 박 대통령이 APEC을 건너뛰었다고 전했다. 대한민국 외교가 처한 부끄러운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꼴이니 고개를 들 수 없다.
9. 관세청 직원 뒷주머니 채운 면세점 허가제 존재이유 없다
지난해 7월 서울 시내면세점 선정과정에서 관세청 직원 등 6~7명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불법 주식매매를 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당시 관세청은 오후 5시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와 HDC신라면세점 2곳이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그날 주식시장에서 해당 종목 주가가 상한가를 찍거나 9% 상승하는 등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여 정보가 미리 샌 거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극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면세점 심사가 공무원들이 정보를 빼돌리고 자기 호주머니를 채우는 데 이용됐다니 어이가 없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11월 관세청 직원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 혐의를 확인하고 이를 검찰에 넘겼는데 이익규모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사건처리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고 한다. 시세차익이 많든 적든 정보를 빼돌려 사익을 취한 정신 나간 공무원은 엄벌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특허심사는 구체적인 순위와 채점 결과를 공개하지 않아 '깜깜이 심사'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정보까지 유출됐으니 당장 다음달로 예정된 서울 시내 3개 면세점 사업자 선정 결과의 공정성을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면세점
선정과정에서 공무원들의 비리, 특혜 논란 등이 끊이지 않는 것은 정부가 특허권을 틀어쥐고 권한을 행사해온 탓이 크다. 관세청이
'5년 시한부 면세점 특허'로 면세점 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을 때 본지는 사설을 통해 기업들의 자율경쟁을 막는 허가제를 폐지하고
등록제로 전환하라고 수차례 주장했다. 하지만 관세청은 특권을 내려놓지 않았는데 결국 공무원들의 비리로까지 번진 것이다.
지난
1년간 신규 면허를 딴 면세점들이 수백억 원의 적자를 내는 등 면세점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속 빈 강정'으로 변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싱가포르, 홍콩 등은 최소 자격요건만 갖추면 면세점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진입 장벽을 낮춰야
특혜 논란도 불식하고 경쟁도 촉진된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도 투자여력과 영업력을 갖춘 사업자가 사업을 펼칠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 면세점 허가제는 존재 이유가 없어졌다. 관세청은 후진적인 관치(官治)행정을 하루빨리 끝내야 한다.
[세계일보]
10. ‘우병우 사단’ 검사들 검찰 떠나는 게 최소한의 양심
그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의 답변 태도가 논란이 됐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엄정 수사를 지시한 부산 엘시티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 보고 여부를 묻는 정의당 노회찬 의원의 질의에 “기억이 없다”고 답변했다. “보고한 사실이 없는 게 아니라
기억이 없다는 거냐”고 지적하자 “보고 안 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가 다시 “기억이 없다”고 바꾸고 결국 “그럼 모르겠다”고
했다. 법무부 핵심 참모인 검찰국장이 주요 사건 보고 여부를 모른다는 자체가 문제지만 답변 태도도 전혀 성의 없이 안하무인
격이었다.
안 국장의 답변 태도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검찰 출석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우 전 수석은 당시
가족회사인 정강 횡령 의혹을 묻는 기자를 한참 째려보는 모습을 보였다. 검찰 조사실에서는 팔짱을 낀 채 여유 있게 앉아 있다가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다. 국민은 안중에 없고 한번 해보겠다는 식의 두 사람 태도가 똑 닮았다.
검찰
내 이른바 ‘우병우 사단’을 걷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청와대 실력자인 우 전 수석에 줄을 서서 검찰과 법무부 주요 보직을
꿰찬 검사들이다. ‘우병우 사단’이 우 전 수석의 눈귀와 손발이 되어 검찰권을 농단했다는 지적이다. 정작 실력 있고 강단 있는
검사들은 옷을 벗어야 했다. 우 전 수석의 처가 쪽 부동산 의혹 수사가 지지부진하고 최순실 게이트 수사가 늦어진 건 그만 한
이유가 있었다는 얘기다. 공교롭게 안 국장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얼마 전 국회에서 공개한 ‘우병우 사단’ 명단에 들어
있다.
우 전 수석의 끈이 떨어진 요즘은 그와의 친분을 부정하는 검사들이 있다고 하니 격세지감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실력자에게 줄을 대려는 일부 검사들이 검찰 조직을 망가뜨렸다. 검찰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게 된 것도 이런
정치검사들 때문이다.
최순실 사태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 검찰개혁이 당면과제로 떠오를 것임은 불문가지다. 그동안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절감하면서도 손대지 못한 것은 검찰권을 악용하려는 집권세력 때문이었다. 그 폐해를 이번 사태에서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권력에 빌붙어 한눈 판 검사는 일찌감치 스스로 검찰 조직을 떠나는 게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는 것이다. 검찰에 독이
되는 검사가 누구인지는 당사자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주요 신문칼럼
1. [동아일보][김경훈의 트렌드 읽기]화려한 싱글, 갈수록 초라해져
‘신 등이 공경히 중외(中外)에 알려서 처녀(處女)의 나이 25세 이상이 되는 자에 대하여 그 가계(家計)를 모두 조사하게 하였는데, 집안이 가난하여 예(禮)를 갖출 수 없는 자들이니.’(성종실록 1472년 5월 7일)
조선 성종 때 왕의 지시에 따라 결혼이 늦은 처녀들을 조사한 예조가 가난이 원인이라고 밝힌 대목이다. 그들에게 쌀과 콩을 섞어 10석(1석은 약 144kg)을 제공하자는 방안이 나왔다. 예부터 가난 때문에 혼인을 못 하는 것은 나라의 고민이었다.
최근 증가하고 있는 ‘나홀로’ 문화를 미디어에서는 꽤나 멋스럽게 그린다. 드라마 ‘혼술남녀’에서는 남자 주인공 진정석이 홀로 맛나게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여러 데이터가 말하는 나홀로족의 진실은 조금 복잡하다.
20세
이상 남자의 44%, 여성의 40% 정도가 싱글이다. 미혼, 이혼, 배우자 사망 등이 싱글 생활의 원인이다. 전체 인원은
1600만 명 가까이 된다. 이들이 나홀로 문화의 주역이라고 볼 수 있는데 미디어에서 가장 주목하는 사람들은 그중 1인
가구주이다. 싱글 중의 싱글이다. 수치로 보면 전체 싱글의 3분의 1가량이 1인 가구주다. 통계청 조사에서는 2015년 기준으로
520만 가구가 조금 넘는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조금 더 들어가면 문제 있는 숫자들이 나온다. 2015년 1인
가구주의 평균 연령은 58.28세다. 1인 가구주인 싱글은 젊을 것이란 우리의 직관을 한참 벗어난다. 더구나 1인 가구주 520만
명의 월평균 소득은 178만 원이다. 이는 일반 가구주 376만 원의 47.3%에 불과하다. 2008년에 비해 나이는 5세 정도
높아졌고 소득은 월 64만 원이 줄어들었으니 더 나빠지고 있는 추세다. 그뿐인가. 이혼 인구도 계속 늘어 ‘돌아온 싱글’이
171만 명이며 사별하여 혼자가 된 사람도 218만 명이다. 정신적 상처가 있는 싱글들이다.
그래서 혼술의 절반쯤은 홧술, 우울한 술이 아닐까 싶다. 나홀로 문화의 절반쯤은 고독과 가난의 결과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2. [매일신문][소리와 울림] 두 번째 한국 방문, 새로운 삶의 시작
한국만의 역사 간직한 국립박물관
세계 유물 대영박물관과 달라 충격
명성황후 시해당한 경복궁 오가며
박사학위 논문 ‘민영환’ 주제로 삼아
첫
번째 한국 방문 이후 다시 한국에 오기 전, 내 인생에 중요한 변화가 찾아왔다. 한국 여성과 결혼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다시 비행기에 오를 때 나는 더 이상 홀몸이 아니라 머나먼 나라 한국의 서울에서 신접살림을 꾸릴 새신랑이었던
것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초빙교수로 일하게 되어 다시 한국으로 왔다.
김포공항에는 내 아내의 가족들이 나와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해서 나간 자리에는 아내의 친척들까지 모두 모여 있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비롯하여 두
명의 남자 형제와 네 명의 여자 형제, 수많은 삼촌과 숙모에 사촌까지 정말 많은 가족이 모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처음 몇 달
동안 우리는 서울 신문로에 있는 아내의 작은아버지 댁에 머물렀다. 그 집은 경복궁, 구 국립박물관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나는
국립박물관을 자주 찾았는데 이것이 내가 한국 역사를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국립박물관을 처음 둘러보았을 때
대영박물관과 너무 다른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전 세계 각지에서 옮겨온 유물들로 가득 찬 대영박물관과 달리 한국의 국립박물관에는
한국만의 5천 년 역사를 오롯이 보여 주고 있는 유물들이 멋진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영국의 대영박물관에서도
영국의 전통 공예품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에 솔직히 질투심을 느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품은 로비에
전시되어 있던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었다. 보살의 알 듯 모를 듯한 미소와 우아한 자태에서 뿜어져 나오는 평화로움과
다정함이 바로 한국인의 진정한 정신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경복궁을 산책하는 것도 즐겼다. 산책을 할 때
명성황후가 일본에 의해 잔인하게 시해되었다는 장소를 가로질러 가곤 했다. 그곳은 현재까지 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는 내 나라 영국의
여왕들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었다. 로마제국에 맞서다 죽은 보디케아 여왕부터 엘리자베스 1세와 빅토리아 여왕, 그리고 가장 긴 재위
기간을 자랑하는 현재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까지, 우리나라는 여왕의 나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내가 아무런 힘이 되지는 못하지만 일본제국주의의 잔인한 수탈에 용감하게 맞서다 죽음을 맞은 조선의 마지막 황후의 가슴 아픈
이야기에 더욱 마음이 움직인 것 같다. 아름다운 경복궁에서 벌어진 한국 역사상 가장 슬픈 이 이야기는 나의 박사 논문의 시작점이
되었다. 그로부터 7년 후 명성황후의 조카인 민영환은 내 박사 논문의 주제가 되었고, 이후 2002년 이 논문은 ‘민영환의 정치
인생’(Min Yonghwan: A Political Biography)이라는 제목으로 하와이대학에서 출판되기도 했다.
1987년
2월 한국에 온 후 곧바로 낮에는 경기대학교 수원 캠퍼스 영문학부에서 강의하고 저녁에는 서울 캠퍼스에서 강의를 하였다. 그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임기를 일 년 남겨 둔 해로 대학 캠퍼스들은 학생 운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1987년은 데모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최루탄 가스를 맡으며 캠퍼스를 빠져나오려고 애썼던 기억이 남아 있다. 물론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한국은 1988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확실하게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게 되었고 그 후 몇 년 안에 급변하던 정치적
상황들이 안정되었으며 1993년 마침내 민주 정권 수립에 성공하였다.
1987년 한국 생활 초기 무렵에는 서울 시내에
승용차는 얼마 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대부분 버스나 지하철 그리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초록색 현대 포니 택시를 타고 다녔다.
서울 도심을 조금만 벗어난 시골에는 비포장도로가 더 많았다. 한국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했는지를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한국인들이 그들에게 닥친 수많은 도전을 낙천적인 생각과 용기, 결단력으로 극복한 것을 기억한다. 또한 나는 한국이 최근에 직면한
여러 가지 위기를 극복하고, 그 위기로부터 더욱 굳건한 나라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3. [매일신문][매일춘추] 2등 혹은, 이류
탤런트
차인표가 멋있는 이유는 잘생긴 외모와 그의 많은 선행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따라다니던 발 연기에 대한 그의 피력, “나는
이류입니다. 꼭 일류만 있어야 합니까? 나 같은 이류 연기자도 꼭 필요한 겁니다”라고 했던 순간이 있어서였다. 그의 이 같은
진솔한 이야기는 대중들에게 더욱 설득력 있고, 호소력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 역시 1등이 아닌 2등만 하면서 살 거야 라는 말을 자주 벗들에게 하곤 한다. 덧붙여 “1등은 비인간적일 수도 있잖아”라는 사족까지 달아서 나를 합리화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차인표처럼 이류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아니 말할 수 없다. 난 이등이지 이류일 순 없기 때문이다.
왜냐면
나는 나를 믿고 내게 자신의 작품 중 가장 귀한 의상을 맡긴 소중한 이들이 일류라고 믿는다. 또 그 의상을 위해 분투해주시는
나의 스태프들 또한 한국 최고 일류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나 역시 10㎏이나 되는 재단 칼을 들고, 매일 혹사만 하는 두 다리와
팔꿈치에 미안해서라도 일류라고 자부한다. 술 때문에 혹사당하는 장기에 대한 예의로도 난 이류이길 거부한다. 한 작가가 한때 ‘존버
정신’에 대해서 강조한 바 있다. 강하게 버티기만 해도 된다는 말이다. 사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잃지 않고 성실한 사람들
모두는 일류가 아닌가? 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일류라고 스스로 평가한다.
1등만 기억되는 세상에서 아무도 2등은 기억을 못한단다.
최근의 드라마에서 차인표는 또 한 번의 변신으로 멋있게 성공한 듯하다. 다른 이들의 기준엔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류라고 인정하며 욕심 없는 연기로 멋있고, 늘 성실한 차인표가 일류로 도약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사실
나는 모든 일을 등수로 평가하는 것을 거부하고 싶다. 이는 숫자 놀음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나. 이런 등수로의 분류보다는 각
개인들이 자신의 영역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 그리고 자부심 등이 더 높게 평가받고, 인정받아야 한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미 등수를 매기는데 익숙해 있다. 그래서 늘 우리는 그 숫자에만 매달린다. 최근 실세로 세상을 군림하다가 사회
문제화된 딸은 1등을 하고 싶어서, 혼자 출전한 승마대회에서 1등을 했다고 자랑하며, 그걸 자신의 스팩으로 내세워 행세까지 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아연실색할 뿐이다.
이런 숫자보다는 문화적 성숙성을 바탕으로 한, 많은 사람들이 해당될 수 있는
일류 풍토를 만드는데 우리 모두 노력하자고 제안하면 좀 시대적으로 뒤처지는 사람이 될까? 누가 뭐래도 나만은 1등에 매달리기보다는
우리 함께할 수 있는 일류가 될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
4. [서울신문][자치광장] 시민이 예술가가 되는 생활문화시대/이성희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서울시는 우리나라 지역내총생산(GRDP)의 약 25%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력이 집중된 도시다. 인구수는 1000만명에 가깝고, 이 중 경제활동이 가능한 인구도 700여만명으로 다른 도시보다 높은 비율을 보인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경제력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방분권 이후 서울시는 인구의 양적 성장뿐 아니라 사회기반시설 및 문화시설도 훨씬 늘었다.
하지만
최근 일본 모리재단의 도시전략연구소 도시경쟁력 조사 결과를 보면 문화적 측면을 대변하는 ‘예술가’ 지표가 서울시의 도시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나타났다. 이는 서울시의 문화정책이 시민의 삶 속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몇몇 엘리트 예술가에게 집중되는 데 그쳐
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 예술 활동의 기회와 일자리 부족 등으로 많은 예술가가 예술계를 이탈하는 현상은 서울시의
세계적인 경제력이나 높은 위상과 반대되는 어두운 부분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는 문화와 예술이 몇몇 엘리트 예술가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수도와 전기, 가스, 전파와 같은 ‘보편적 서비스’로 인식될 수 있도록 시민을 문화의 주체자로 끌어들이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예술가들이 생계에 대한 걱정 없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단기적인 정책을 벗어나 꾸준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는 지난 6월 ‘서울문화플랜 2030’을 발표하고 ‘모두를 위한 모두의 문화로
시민의 행복한 삶을 지향하는 문화시민 도시 서울’을 비전으로 발표했다. 시민에게 문화가 일상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생활예술인 육성
및 지원, 생활문화지원센터 구축 등이 주요 내용이다. 서울 예술인의 복지와 사회 참여 확대 정책도 포함됐다.
이러한
정책 추진에도 대부분 시민이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아직은 서울시 생활예술 정책이 생활문화예술 동아리 활동을 지원해
주는 차원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문화플랜 2030은 앞으로 시민 스스로 문화를 생산하고 즐기는 ‘문화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생활문화’ 정책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공공정책은 국민 혹은 시민의 행복한 삶을 공통 목표로
한다. 따라서 생활과 문화, 복지와 교육 등 시민 삶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게 ‘생활문화’ 정책이다. 서울시의회는 서울시민의
전반적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는 생활문화 정책이 확장되고 지속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감시할 예정이다.
5. [세계일보][정여울의문학기행]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의연한
사람’이 되기가 참으로 어려운 시대다. 연일 충격적인 뉴스로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요즘이 더욱 그렇다. 세상이 이토록
시끄러운데, 저마다 차분한 마음을 가지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이렇듯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나는 나보다 훨씬 큰 고통을
감내했던 사람의 글을 읽곤 한다. 예컨대 고(故) 윤성근 시인이 대장암으로 투병을 하며 지은 시들을 읽다 보면 내가 겪고 있는
지금의 충격이나 슬픔이 상대적으로 작아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윤성근의 시 ‘고통의 마스터’는 이렇게 시작된다.
“고통의 대가가 되는 방법을 아시나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고통을 아무리 많이 겪어도 고통의 대가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자식 먼저 보낸 고통/병들고 근육이 사라지는 앉은뱅이 누이의 아들과/보행기에 의존해서 걷는 게 싫다는 아이를 때리면서
함께 우는 엄마의 표정”을 바라보며, 아무리 고통을 겪어도 고통에는 익숙해지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깨닫는다.
다 죽어가는 아들을 “살 길도/죽일 길도 없어서”, “그래도 숨은 붙어 있어 코에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는 한 아버지. 이런 환자들을 바라보며 시인은 그들이야말로 “고통의 마스터, 고난 극복의 천재들”이라고 말한다. 그들도 아프지만 않았다면, 눈부신 꿈을 가졌을 텐데.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 없이 살아가는 이들은 고통의 마스터, 고난 극복의 천재가 돼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나 한 사람의 전쟁’이라는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세상은 거대한 전쟁터였고, 나는 부상당한 낙오병이더군.” 병이란 그렇다. 아무리 옆에서 도와주더라도, 결국 ‘나 한 사람의 전쟁’처럼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린다. 시인은 맛집 프로그램을 보며 목숨이 있는 생명체를 가마솥에 산 채로 데쳐버리는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목숨을
그렇게 취급해도 되는 걸까. 다른 생명체의 죽음을 ‘요리’로 대체해도 되는 걸까. “나야 뭐 재활이 목적인 환자, 이 도시의
이방인/건강한 당신들의 세상에 잠시 살려 왔지만/감히 더불어 산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지만”, 시인은 너무 쉽게 생명체를
음식으로 바꾸는 인간의 잔인함을 아프게 곱씹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과연 옳은 것인지를 차분하게 되묻는다.
‘꺼진
불’이라는 시는 더욱 아름답다. 시인은 죽음에 대해 농담도 하고, 의연하게 인격을 지키고 통증을 다스리고 싶지만, “초연하고
싶고, 물러나 있고 싶고, 객관적으로 보고 싶은데”, 잘 안 된단다. 칭찬받는 환자가 되고 싶은데, 난처한 물음도 안 던지고,
회진이 늦어도 불평하지 않고 싶은데, 자꾸만 초조해지고 불안해진다고. 왜 의연하고 차분해지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걸까. “그것이
나는 왜 안 되는가. 왜 안 좋아졌다고/삐치고, 차도가 있다는 그 말을 듣기 원하는가.” 쿨하지도 못하고, 농담도 못 받아넘기는
자신이 참 싫다지만, 그렇게 솔직한 언어로 고백하는 시인의 마음이 참으로 해맑다.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 척하는 ‘악어의 눈물’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아프면서도 아프지 않은 척 의연한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의연해지고 싶다. 아픔 때문에 주눅들거나 무릎 꿇고 싶지 않다. 우리가 느끼는 이 시대의 아픔 또한 반드시 지나가기를. 그 멀고 험한 길 위에서 부디 우리 모두 좀 더 의연하고 의젓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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