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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비선 국정개입 의혹

■ 통영함 비리

■ 유가 폭락, 러시아 금융위기, 신흥국 경제 위기

■ 탈레반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비선 국정개입 의혹

 

[한국일보 사설-20141218목] 檢, '국민의혹' 피하고 '가이드라인' 따르나

 

‘정윤회 문건’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조만간 ‘정윤회 보고서’ 등 청와대 문건의 유출 경로 수사를 마무리하고 박관천 경정과 한 모 경위를 각각 기소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회 문건에 등장한 ‘십상시’ 모임 등 국정개입 의혹 등에 대해선 대부분 ‘근거 없음’으로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이런 수사 결과는 국민들의 의구심을 해소하기에는 크게 미흡하다. 이번 의혹이 제기된 후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수사 가이드라인’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의중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검찰이 ‘비선 실세’나 살아있는 권력인‘문고리 3인방’의 국정개입 의혹 수사에 의지를 보이리라고는 애당초 기대하기 어려웠다. 문건 유출 경위를 밝혀내는 데 수사를 집중한 반면 국정개입 의혹 부분에는 시늉만 내는 듯한 모습이 역력했다. 한 여론조사에서 검찰 수사를 신뢰한다는 답변이 28.2%, 신뢰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63.7%로 나온 데서 알 수 있듯이 검찰 수사가 끝나면 정치권을 중심으로 특별검사 도입 목소리가 높아질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한편으로 검찰 내부에서 청와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범죄가 되는 대상을 수사하는 검찰 입장에서는 정씨 국정개입 의혹은 규명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사실로 드러난다 해도 범죄요건을 구성하기 어려운 사안이라는 것이다. 청와대가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을 검찰에 떠넘겨 면죄부를 받고 검찰의 신뢰는 추락하게 만들었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비선실세 의혹에 “찌라시에 나오는 얘기”라며 거듭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데 대한 불만도 나오고 있다.

 

문건 유출만 해도 청와대 내부에서 여러 차례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으나 번번히 유야무야 넘어갔다. 청와대는 지난 6월 청와대 문건 100여 쪽이 시중에 나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 표현을 빌자면 ‘국기문란 행위’가 반년 이상 방치돼왔던 셈이다. 박 대통령이 제때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더라면 지금 같은 사태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청와대가 고소를 통해 박 대통령에게 향한 화살을 돌리려 했던 의도는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오히려 부메랑을 맞고 있다. 이번 파문은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의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청와대 내부 기강을 다스리고 측근과 비서들의 권력암투를 해결해야 할 사람은 박 대통령뿐이라는 것을 모든 국민이 알게 됐다.

 

 

[한겨레신문 사설-20141218목] ‘문건’만이 국정개입 의혹의 전부 아니다

 

비선 세력 국정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예상대로 정윤회씨나 문고리 3인방 등의 국정개입 사실이 없다는 결론 속에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이미 ‘정윤회씨 국정개입 보고서’ 차원을 벗어난 지 오래다. 사건에 불을 댕긴 계기는 ‘문건’이었으나, 그 뒤 쏟아져 나온 각종 증언을 통해 의혹이 전방위로 확산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문화체육관광부 인사 개입 의혹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국장·과장의 이름을 부르며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며 인사 조처를 지시했다는 유진룡 전 장관의 증언에서는 누가 봐도 비선 세력의 개입 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청와대 쪽은 ‘체육계 비리 척결에 진척이 없어서 책임을 물은 것’이라는 등의 해명을 내놓았으나 앞뒤 사정을 살펴보면 설득력이 없다. 장관이 울며 겨자 먹기로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에는 누군가 박 대통령에게 ‘고자질’한 사람이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정윤회씨 부인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의 개입설도 가볍게 덮을 문제가 아니다. 박 대통령과 최씨 간의 깊은 관계에 비춰 보면 문체부 인사 개입 등의 배후는 정씨가 아니라 오히려 최씨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있다. 실제로 정씨는 자신의 개입은 부인하면서도 최씨의 개입 여부에 대해서는 “그건 모르겠다”며 딱 부러지게 부인하지 않았다. 최씨가 수시로 청와대를 출입했고, 여기에 문제를 제기한 경호실 직원이 경질됐다는 얘기도 나돈다.

 

안봉근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의 경찰 인사 개입 의혹도 명쾌히 규명해야 한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소속 경찰관 10명을 한꺼번에 내보내고 후임으로 모두 단수를 찍어 내려보냈는데, 모두 제2부속실에서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는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증언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런 의혹을 파헤칠 의지가 없는 것 같다. 검찰의 생리상 박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을 벗어나는 사안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게다가 ‘검찰은 범죄 대상이 되는 사안을 수사해야 한다’는 원칙론까지 고려하면 검찰한테 진실 규명을 기대하기란 더욱 힘들다. 결국 이런 각종 의혹을 규명할 책무는 정치권이 져야 마땅하다. 국회 국정조사를 포함해 어떤 수단을 동원하든 진실을 밝힐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새누리당은 국민의 뇌리에 각인된 의혹들을 그냥 덮어둔 채 국정이 정상화되리라는 환상을 버리기 바란다.

 

 

[서울신문 사설-20141218목] 검찰 ‘비선 수사’ 국민 의혹없이 마무리해야

 

‘정윤회 동향 문건’을 둘러싼 검찰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검찰이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및 형법상 공용서류 은닉 혐의로 그제 저녁 전격 체포했다. 검찰은 그동안 박 경정은 물론 박지만 EG 회장을 비롯해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정윤회씨,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문건에 등장한 핵심 인물 대부분을 소환, 조사한 끝에 박 경정을 문서 유출의 핵심 근원으로 최종 결론을 내린 것이다.

 

현 단계에서 검찰의 수사상황을 종합해 보면 유출된 문건 내용이 사실무근이라는 결론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제보자로 알려진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의 말을 박 경정이 면밀한 확인 절차 없이 작성했다는 것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문건이 허위이고 ‘강남 비밀회동’은 없었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청와대 측에서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제한적인 범위에서 수사를 벌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씨와 소위 ‘십상시’들이 실제 비밀회동을 했다면 개인이나 업무용 휴대전화가 아닌 차명 휴대전화를 이용했을 수도 있는데 검찰은 차명 휴대전화의 존재를 밝혀내지 못했다.

 

막바지 단계에 이른 검찰 수사 결과, 의혹이 밝혀지기는커녕 새로운 의혹이 꼬리를 무는 형국이 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청와대와 직접 관련된 사안이고 살아 있는 권력을 조사하는 것인 만큼 투명성이 담보돼야 함에도 검찰이 청와대의 가이드 라인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인 지난 1일과 7일 두 차례에 걸쳐 ‘정윤회 문건’ 내용을 ‘찌라시 수준의 루머’로 단정했다. 검찰 수사도 국정농단의 구체적 내용이나 비선조직의 실체 규명보다는 문건 자체의 유출 경위에 맞춰졌다. 문건 유출 수사과정에서도 ‘제3자에 의한 유출설’ 등 배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최종적으로 청와대가 애초부터 지목한 박 경정을 유출 주범으로 체포했다.

 

유출된 문건은 청와대에서 작성해 비서실장에게 보고됐고 공공기록물로 등록된 것이다. 비선세력들의 국정농단 상황이 상세하게 적힌 문건내용을 확인할 책임은 검찰에 있음에도 애써 눈을 감은 흔적이 많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엔 약하고, 죽은 권력엔 강하다는 항간의 비아냥거림도 이런 이유에서다. 검찰의 조사를 받다가 자살한 최모 경위와 관련해 편파 강압수사 의혹과 함께 회유 논란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수사 과정에서 강압행위는 없었다”는 검찰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검찰의 수사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여론조사 기관인 한길리서치가 지난 12~13일 조사한 것에 따르면 정윤회 문건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 ‘신뢰한다’는 응답이 28.2%에 그친 반면 ‘신뢰하지 않는다’는 63.7%나 됐다. 수사 초기부터 특별검사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든 이유는 바로 검찰에 있다. 조만간 검찰은 이번 사건에 대한 종합 발표를 하게 된다. 지금의 분위기로선 검찰이 투명하고 공정한 수사를 했다는 평가를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꼬리 자르기식 수사였다는 항간의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국론은 또 양분될 가능성도 크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매섭게 채찍질하는 그런 검찰을 보고 싶은 것이 많은 국민들의 심정이다.

 

 

[중앙일보 사설-20141218목] 청와대 개편 빠를수록 좋다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잡고 국정의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대대적인 인사 개편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야당은 물론 새누리당에서도 김기춘 비서실장과 비서관 3인(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인사 개편이 시급한 첫 번째 이유는 권력 누수를 막기 위해서다. 비선(秘線) 실세들의 국정 농단 여부, 문건 유출과는 별개다. 집권 2년차에 대통령의 동생과 측근, 전·현직 비서관들이 진흙탕에서 난타전을 벌이는 비정상적 상황이 벌어진 근본 원인을 수술하지 않고선 남은 3년의 원활한 국정운영은 기대하기 힘들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윤창중 대변인 성 추문 사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커다란 위기를 개각과 청와대 개편으로 돌파했다. 하지만 ‘얼굴’만 바꿨을 뿐이다. 근본적 문제로 지적돼 온 소통 부재와 베일에 가려진 의사 결정, 인사 비밀주의는 여전하다. 이런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과 인사 스타일이 문건 사건을 불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박 대통령은 각 부처·수석실에서 올린 보고서를 밤 늦도록 읽으면서 꼼꼼히 국정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몸에 밴 스타일이다.

 

 토론이나 대화를 통한 의사결정이 아닌 일방통행식 일 처리 방식은 ‘문고리 권력’이란 부작용을 낳게 마련이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박 대통령을 수족처럼 보좌해 온 ‘문고리 3인’의 영향력과 입김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 대통령은 이들을 “일개 비서관이고 심부름꾼일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세상은 이들을 ‘권력’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엄청난 인식의 괴리가 있는 상태다. 이들을 그대로 놔두고는 국정을 원활하게 이끌어나가기 힘들다.

 

 ‘문고리 3인’도 스스로 진퇴를 결정해야 한다. 이들은 정윤회씨와 전화 통화 여부, 인사개입 정황을 둘러싸고 여러 차례 거짓말을 해 신뢰를 잃었다. 비서관의 권한을 넘는 월권과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국민적 의혹을 받고 있고 신뢰마저 저버린 이들이 제대로 대통령을 보좌할 수 있겠는가. 이들이 부속실에 계속 남아 있는 한 ‘문고리 권력이 좌지우지한다’는 인식이 굳어져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만 더해질 뿐이다.

 

 기강 해이를 바로잡는 차원에서도 청와대 개편은 시급하다. 시중에 떠도는 루머를 정리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버젓이 청와대에서 만든 문건이 시중에 흘러다니고 있다. 더욱이 지난 5월 유출 사실을 알고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문건 사건이 벌써 20일째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청와대 개편은 빠를수록 좋다.

 

 

■ 관련 칼럼

 

[경향신문 칼럼-여적/신동호(논설위원)-20141218목] 대통령기록 유출

 

검찰이 그제 밤 박관천 경정을 전격 체포해 사법처리를 서두르고 있다. 박 경정은 자신이 작성한 이른바 ‘정윤회 문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표현처럼 ‘대한민국이 부끄러울 정도로 나라 전체를 흔든’ 사건의 중심 인물이 됐다. 그 죄과가 얼마나 클까. 검찰의 태도를 보면 매우 무거운 것 같다. 그가 지난 2월 청와대 파견근무를 마치고 경찰로 복귀하면서 내부 문건들을 갖고 나온 것을 대통령기록물 무단 유출로 판단한 것을 보면 그렇다.

박 경정의 죄는 ‘정윤회 문건’의 성격에 달려 있다. 청와대가 처음에 그를 검찰에 고소하면서 규정했던 공공기록물이라면 최고 징역 3년에 해당하는 죄다. 하지만 검찰의 판단대로 대통령기록물이라면 최고 징역 7년에 해당하는 중죄가 된다. 그런데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과 박 대통령의 언급처럼 ‘찌라시’라면 애매해진다. 지금까지 검찰 조사로는 박 경정은 문건을 언론사나 기업 등에 유포하는 과정에는 연루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명예훼손죄조차도 적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

대통령기록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유출’했다고 볼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논란거리다. 유출은 보통 유포의 개념을 동반한다. 이를테면 비밀을 취급하던 사람이 퇴직했다고 해서 비밀이 유출됐다고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유출이란 그것이 누설되거나 유포된 결과를 말한다는 얘기다. 원본이 아닌 사본을 가져나간 것이 유출에 해당하는지도 법적으로는 다툼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이중잣대도 도마에 오른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과 관련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무혐의 처분, 정문헌 의원은 약식기소한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이다. 대화록을 공공기록물이라고 주장한 국정원의 논리도 같은 맥락이다. 정상외교 기록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은 이번 청와대 문건 유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중대사안인데도 말이다. 대통령기록이 번번이 정치공방의 소재가 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기록이 정쟁의 도구가 되는 역사적 비극의 고리를 언제 끊을 수 있을까. 지난해 ‘계사사화’와 이번 ‘갑오사화’가 대통령기록 게이트의 끝이 될 수 있을까.

 

■ 통영함 비리

 

[한겨레신문 사설-20141218목] 해군참모총장 인사로 끝내선 안 될 ‘통영함 비리’

 

수상 구조함인 통영함의 납품 비리와 관련해 감사원이 17일 황기철 해군참모총장의 인사 조처를 국방부에 요구했다. 하지만 비리에 연루됐다면 인사로 끝낼 일이 아니라 검찰의 엄정한 수사가 뒤따라야 한다. 곪을 대로 곪은 방위사업 비리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대책도 필요하다.

 

이번 사건은 방위사업 비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보여주는 모델과 같다. 통영함은 천안함 사건 이후 만들어져 2012년 진수식을 했으나 정작 필요했던 올봄 세월호 사건 때 전혀 역할을 하지 못했다. 2억원대인 1970년대의 구형 음파탐지기를 무려 41억원에 납품받은 ‘부실·비리 함정’이었기 때문이다. 브로커인 김아무개 전 대령은 해군사관학교 32기인 황 총장의 3기 선배였다. 통영함 사업 담당자였던 최아무개 중령과 상관인 오아무개 전 대령, 후임자인 최아무개 중령과 황아무개 대령 등도 모두 해사 선후배였다. 이들은 납품업체에 유리하게 서류를 조작하고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황 총장은 수사 과정에서 거짓말까지 한 정황이 짙다. 결재권자인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이었던 그는 납품업체의 사업계획서 제출 시한을 두 차례나 미뤄주고 평가 서류도 없는 상태에서 구매 의결을 추진하는 등 여러 차례 의결·결재를 했다. 하지만 그는 ‘담당 팀에서 결정하므로 기술적 문제는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행태다. 설령 금품이 오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의 책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번 일은 ‘군피아’ 가운데서도 가장 끈끈하다는 사관학교 출신들의 부패 사슬이 군 수뇌부까지 닿아 있음을 다시 확인해준다. 1993년 율곡사업 비리에서는 두 사람의 국방장관 및 해군참모총장, 공군참모총장 출신자가 구속된 바 있으며, 이후에도 방위사업 비리는 끊이지 않았다. 정부가 거액의 국방비를 투입해 전력 증강을 꾀하지만 실효성이 떨어지는 데는 이런 비리 구조가 한몫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최근 군이 적절한 음파탐지기와 수중 무인탐사기를 갖추지 못한 통영함을 실전 배치하기로 결정한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정부는 지난달 하순 대규모의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을 출범시킨 바 있다. 하지만 벌써 비리 구조의 몸통에는 손을 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방위사업 비리는 안보 누수를 가져오는 이적 행위’라고 했다. 그 말이 신뢰를 주려면 이번 사안부터 제대로 처리해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41218목] 황기철 해참 총장, 통영함 비리 책임지고 물러나야

 

감사원이 통영함 납품 비리와 관련해 황기철 해군참모총장에 대해 사실상의 인사 조치를 국방부에 통보했다. 방산업무를 태만히 한 사실이 드러나 인사자료로 활용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현직 해군참모총장이 방산비리와 관련해 인사 조치가 통보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황 총장은 국방부 조치를 기다리지 말고 당장 물러나는 게 옳다. 통영함의 엉터리 음파탐지기 구매는 엽기적인 방산비리다. 납품 비리 가담 사실이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국민 불안을 야기하고 군 명예를 떨어뜨린 엄중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런 불미스러운 경력을 안은 채 군 통솔의 영이 설 리 없다.

감사원에 따르면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으로 음파탐지기 납품계약을 총괄하던 황 총장은 납품제안요청서가 애초 계획과 다르게 작성된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결재했다. 성능 미달의 구형 음파탐지기를 납품하는 미국 업체 브로커의 청탁을 받은 방사청 팀장이 신형을 배제하는 제안요청서를 작성한 것을 그대로 수용, 유일 대상업체로 선정되도록 한 것이다. 또한 해당 미국 업체의 핵심 서류 제출 거부 사실을 보고받고도 그대로 계약 절차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 결과 1590억원을 쏟아부은 통영함은 세월호 참사 때 인명 구조·수색에 투입되지 못했고, 2년째 전력화가 지연되고 있다. 41억원을 들인 음파탐지기가 실제로는 2억원짜리로 드러나고, 해군은 엉터리 음파탐지기 대신 어군탐지기를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가 비판 여론이 일자 몇 시간 만에 어군탐지기를 제거하는 등 황당한 일이 계속 벌어졌다.

 

황 총장은 감사 과정에서 기술적 문제를 일일이 알 수 없고 일부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황 총장의 36년 해군 복무 경력을 고려하면 납득할 수 없다는 감사원의 반박이 더 설득력 있다. 황 총장의 태도는 부하 직원의 비리에 놀아나 수천억원짜리 장비를 무용지물로 만든 책임자로서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방산비리는 합동수사본부가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구체적인 비리 내용이 밝혀질 날이 머지않다.

군의 앞날이 암담하기만 하다. 병영폭력과 사병 사망사고, 고급 장교들의 성폭력 사건이 잇따르고 여기에 방산비리까지 가세해 바람 잘 날 없다. 사병부터 최고위 장성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고장나지 않은 곳이 있을까 싶다. 이런 군에 국방을 맡기고 자식을 맡겨야 하는 국민들의 처지가 안쓰러울 지경이다.

 

 

[중앙일보 사설-21041218목] 통영함 부실책임 해군 총장, 군 통솔 자격 없다

 

감사원이 17일 황기철 해군 참모총장에 대한 사실상의 인사조치를 국방부에 요구했다. 통영함 음파탐지기(소나)를 계약할 당시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이었던 황기철 총장이 장비 제안요청서 검토 등을 태만히 했다는 이유다. 그 결과 최신형 구조함인 통영함에 1970년대 이후엔 사용하지 않은 성능 미달 소나가 납품됐다. 그나마 방사청 간부들과 업체의 농간으로 2억원짜리가 41억원짜리로 둔갑했다. 엉터리 소나 때문에 통영함은 건조 후에도 세월호 구조작업에 동원되지 못했다.

 

 감사 결과 황 총장의 비리 혐의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무능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만약 총장 자리를 유지한다면 이날 감사원 감사 결과는 또 하나의 코미디가 될 것이다. 감사원은 해군 참모총장에게 “장비 구매 제안요청서가 부실하게 작성되지 않도록 하고, 성능 입증자료가 제출되지 않았는데 ‘충족’으로 평가하는 일이 없도록 관련자에게 주의를 촉구하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주의를 받아야 할 당사자는 바로 황 총장이다. 무능하고 태만한 총장에게 어떻게 우리 해군의 지휘권을 계속 맡길 수 있겠는가. 그는 이미 총장의 자격을 상실했다.

 

 통영함뿐 아니다. KF-16 성능 개량사업도 ‘공군판 통영함’이 될 판이다. 1조7500억원의 예산이 책정된 이 사업은 미국 정부와 계약업체인 BAE시스템스가 최대 8000억원의 비용 인상을 요구하면서 중단됐다. 방사청은 록히드마틴으로 사업자 교체를 추진 중이지만 입찰보증금 620억원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이 사업은 미국과의 대외군사판매(FMS) 계약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미국과 거래를 할 때 우리나라는 돈을 지불하는 ‘갑(甲)’ 위치에 있으면서 자주 ‘을(乙)’처럼 끌려다니고 있다.

 

 지난해 감사원이 FMS 방식 무기 도입을 감사한 결과 납품되지 않았는데도 대금을 지급하거나 미국의 청구액보다 과다 지급한 사례가 드러났다. 통영함이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려면 500억원이 더 들어가야 한다. 일부 부패하고 무능한 군인들 때문에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방산 비리는 이적행위를 넘어 반역행위다. 이를 방치한다면 대한민국의 안보는 없다.

 

 

■ 유가 폭락, 러시아 금융위기, 신흥국 경제 위기

 

[한겨레신문 사설-20141218목] ‘강 건너 불’로 봐선 안 될 러시아 금융위기

 

러시아가 자국 통화가치 폭락으로 외환위기에 빠져 전세계 금융시장을 긴장시키고 있다.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속절없이 떨어져 일부 전문가들이 러시아의 채무 불이행(디폴트) 가능성까지 경고하고 있는 지경이다. 러시아발 금융 불안이 퍼지면 한국 경제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만큼 예의주시해야 할 상황이다.

 

루블화 가치 폭락의 실물경제적 원인은 최근 몇 달 새 벌어지는 급격한 유가 하락이다. 재정수입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원유와 가스 가격이 떨어지는 바람에 러시아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올해 초 우크라이나 사태로 빚어진 서방의 경제제재도 큰 타격을 줬다. 미국·유럽연합(EU)이 제재의 강도를 높이면서 러시아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외환운용에 큰 애로를 겪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외화 유출을 막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7.5%포인트나 인상하는 극약 처방을 했으나 흐름을 반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금융시장에선 오히려 러시아의 통화정책에 대한 불신감만 커졌다. 서방의 대형 투자기관들은 루블화로 표시된 유가증권이나 파생금융상품을 일시에 무더기로 처분해 루블화 폭락을 부추기고 있다.

 

러시아의 위기가 당장 국내 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주가·환율·금리 등 주요 금융지표의 변동성이 다소 커지긴 했으나 러시아 변수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대외투자와 교역에서도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러시아 비중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결코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러시아의 디폴트 가능성이 커질수록 금융 불안의 파고는 더 넓고 깊게 확산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처럼 원자재 수출 의존도가 높거나 재정 여건이 취약한 신흥국들은 이미 타격을 받고 있다. 터키,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이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이처럼 러시아발 금융위기의 파장이 신흥국으로 확산되면 금융자본의 안전자산 선호 경향이 더 높아진다. 이는 결국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 전반의 급격한 자본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

 

러시아 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게 아니라 반면교사로 삼으려면, 무엇보다 자본 유출입의 변동성을 낮추는 쪽으로 외환관리체계를 보강해야 한다. 국내외 금융시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것은 기본이다. 장기적으로는 대외환경의 변화에 취약한 경제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가계소득 증대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통해 내수와 수출이 균형을 이루는 성장전략으로 거시정책 기조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

 

 

[서울신문 사설-20141218목] 러시아發 금융불안 강건너 불 아니다

 

러시아발(發) 금융위기가 심상치 않다. 유가 급락으로 직격탄을 맞은 러시아 루블화의 가치가 급전직하하고 있다. 루블화 환율은 그제 장중 한때 달러당 80루블까지 폭락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10.5%에서 17%로 한꺼번에 6.5% 포인트나 올렸지만 루블화의 급락을 막지 못했다. 러시아는 금리를 올리면서 루블화의 가치를 유지시키려고 하고 있으나 금융불안에서 쉽게 벗어나기는 어려운 구조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러시아 경제가 어려워진 것은 국제유가가 급락해서다. 천연가스와 원유가 러시아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2가 넘는데 최근 국제유가가 반 토막이 났다. 배럴당 60달러선이 무너진 데 이어 50달러선도 위협받고 있다. 결국 내년 초쯤에는 러시아가 디폴트(채무불이행)나 모라토리움(지불유예)을 선택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올 정도로 러시아의 상황은 좋지 않다. 러시아는 이미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경제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러시아가 무너지면 유럽 등 다른 지역으로 위기가 전염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특히 자원에 의존하는 신흥국가들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유가 급락으로 산유국인 베네수엘라에서는 이미 디폴트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도 통화 가치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게 되면 타격은 더 커진다. 신흥국에 투입됐던 자금은 높은 금리를 좇아 대거 미국으로 몰리면서 신흥국의 통화가치는 더 가파르게 떨어질 수도 있다.

 

러시아가 1998년에 이어 또 한번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신흥국으로까지 번지면 1997~1998년의 외환위기가 재발될 수 있다는 공포도 확산되고 있다. 러시아는 한국의 10대 수출대상국으로 지난해 대러 수출은 111억 달러로 전체의 2% 정도다. 대러 수출 중에는 자동차, 자동차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넘는다. 유럽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루블화 폭락에 따라 자동차 수출업체들의 채산성이 나빠지고, 판매도 줄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발 위기가 다른 신흥국으로 옮겨 붙어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소규모 개방경제시스템인 우리나라도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러시아의 금융불안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쳐다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정부는 국내외 금융시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수출시장 다변화에 힘써야 한다. 외환보유액과 외채 등의 상황을 점검하고 필요 시 비상대책에 따라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내년 경제는 올해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는데, 우리로서는 예상치 못한 러시아의 금융위기라는 또 다른 악재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41218목] 유가 폭락이 부른 신흥국 위기, 남의 일이 아니다

 

국제유가가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는 가운데 원유수출 의존도가 높은 러시아의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디폴트(대외채무불이행)에 빠질 위험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루블화 방어를 위해 지난 16일(현지 시간) 전격적으로 기준금리를 10.5%에서 17.0%로 하룻밤 새 무려 6.5%포인트나 인상했으나 통화가치 하락세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디폴트 위기가 현실화할 경우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산업기반과 금융구조가 취약한 신흥국으로 위기가 번질 우려가 크다.

 

 이제 세계경제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신흥국들은 외환위기의 파고 앞에 그대로 노출될 위험이 커졌다. 바야흐로 산유국발 국제 금융위기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로선 러시아가 디폴트를 선언하고, 외환위기가 다른 신흥국으로 확산된다 해도 당장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들 국가에 대한 우리나라의 투자액이 그다지 많지 않고,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아직은 넉넉하기 때문에 위기가 즉각 전염될 가능성은 작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마냥 손을 놓고 방심했다간 자칫 큰코다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증시에서도 유가 하락이 본격화된 지난 10일 이후 1주일째 외국인들의 주식 매도가 이어지면서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신흥국 위험이 커지면서 국제 투자자들의 투자 재편이 이루어지는 와중에 우리나라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얘기다. 만일의 경우까지를 예상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이유다.

 

 세계 금융시장의 급변동과 함께 유가 하락세와 그로 인한 에너지 시장의 재편과 세계경제 판도의 변화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유가 하락으로 우리의 에너지 비용이 절감되는 이점도 있지만, 산유국의 경제 파탄과 그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 위축이 우리의 수출 수요를 줄이는 역효과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와 함께 세계 에너지 시장의 재편 이후 세계경제 판도의 변화에 따른 대응책도 강구해야 한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사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218목] 1997년 그때처럼, 국가시스템 고장난 것 아닌가, 경제는 꺼지고 세계는 저유가 쇼크 … 막장드라마에 빠져드는 한국 미래 있나

 

당신은 한국의 미래가 두렵지 않습니까

 

1997년 겨울처럼 어깨가 한없이 움츠러든다. 맹추위 탓만이 아니다. 지금도 어둡지만 미래는 더욱 두려운 때문이다. 곳곳에서 외환위기 때보다 심각하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 위기를 인지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문이다. 정치권도, 청와대도, 언론도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위기를 인지하고 대처방안을 고민하긴커녕 만인 대 만인의 갈등 강도만 증폭시킨다.

 

그해 겨울 터진 외환위기가 그랬다. 위기의 징후가 동남아에서 스멀스멀 북상했지만 나라의 관심은 온통 연말 대선에 쏠려 있었다. 부채로 쌓아올린 대기업들이 한보를 필두로 속속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기아차 국민기업!’이란 구호가 통했고 구조개혁의 마지막 기회도 스스로 날려버렸다. 위기가 닥치고서야 뒤늦게 청와대에 미리 보고했느니 않으니를 놓고 꼴사나운 ‘네 탓 공방’만 이어졌다.

 

지금도 다를 게 없다. 간판기업들부터 실적악화와 신용등급 강등의 칼바람을 맞고 있다. 중소기업, 자영업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경제가 무너지고 있는데도 나라의 관심은 온통 조현아, 정윤회에 쏠려 있다. 하나는 재벌녀 막장드라마요, 다른 하나는 궁중투쟁 비사 수준이다. 그러는 동안 나라 밖에선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온다. 셰일혁명으로 유가는 이미 반토막이다. 슈퍼달러의 기세가 등등할수록 신흥국들의 비명소리는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심지어 디폴트 위기다. 세계의 국부가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기류도 불안정하기 짝이 없다. 모든 게 안갯속이다.

 

하지만 청와대도, 정치권의 그 누구도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 지식인들마저 드라마에 골몰한다. 나라 밖 변화에 대해 정확하고 깊이 있는 현안 분석을 내놓는 지식 생태계의 실종이다. 언론은 또 어떤가. 언론은 사회적 담론을 담아내는 그릇이요 지식의 도관이다. 그러나 지금은 뒷골목 가십을 증폭하는 그 자체로, 찌라시일 뿐이다. 지금 한국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무엇을 고민하고 대처해야 할지를 한국 언론에선 찾아볼 수 없다.

 

포퓰리즘에 찌든 정치권은 더더욱 기대할 게 없다. 갈등과 파괴의 본산이 된 지 오래다. 예컨대 MB정부가 자원고갈론이란 그릇된 인식에 휩쓸려 자원개발에 ‘올인’했던 것도 문제지만, 이제와서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난리치는 것도 문제다. 지금은 오히려 싸게 매물로 나온 유전·광구를 물색할 때지만 당장 처분하라고 아우성이다. 비싸게 사고, 싸게 파니 한국은 국제 자원시장의 ‘호갱’이다.

 

국가적인 위기 감지능력의 총체적 고장 상태다. 지금이 막장드라마나 궁중비사의 다음 회를 궁금해 할 상황인가. 1987년 민주화 이후 말만 무성했지 제대로 된 개혁을 한 적이 있는가. 정치 개혁, 공공 개혁, 노동 개혁, 서비스업 규제혁파…. 외환위기 이후 17년간 말만 무성했지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위기는 쓰나미처럼 한순간에 들이닥친다. 이번에도 닥치고 나서야 우물 안 개구리처럼 배를 내밀며 “내 그럴 줄 알았다”고 장담할 텐가.

 

 

 

[한국경제신문 사설-21041218목] MB '묘한 기름값', 朴대통령 '묘한 전기료' … 왜들 이러시는지

 

박근혜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전기료가 10년 만에 인하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제유가 하락이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에 즉각 반영되도록 해 서민 가계의 주름살이 조금이나마 펴질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 산업통상자원부는 당장 연내 전기료 가격조정이 가능하도록 실행조치에 들어갔다고 한다. 한국전력 역시 인하폭 검토에 들어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발언을 들으면서 어쩔 수 없이 2011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묘한 기름값’ 발언을 떠올리게 된다. 이 대통령은 그해 1월 국민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기름값을 보면 주유소의 행태가 실로 묘하다”고 언급했다. 기름값을 내리라는 사인이었고 당시 지식경제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나서 정유사들을 일제히 압박해 들어갔다. 국제유가가 상승추세였고, 기름값의 절반이 세금이라며 반발하던 정유사들은 지경부의 압박이 계속되고 공정위가 주유소 원적지 관리 담합 카드까지 빼들자 결국 4월에 휘발유와 경유값을 L당 100원 내렸다. 그해 정유사들은 4000억원대의 과징금을 맞았고 수익도 반토막이 났다. 그러나 기름값은 억지로 내린 3개월을 빼곤 잡지 못했다.

이번 전기료도 사정은 비슷하게 움직일 것이다. 묘한 기름값 발언과 다를 것도 없다. 한국 전기료는 이미 충분히 싸고 전기료를 내릴 여건도 갖춰져 있지 않다. 석유와 가스 발전 비중이 26%밖에 안 되고 송배전설비 보상비 등 새로 떠안을 비용이 많다. 전문가들은 싼 전기료가 자원소비를 왜곡한다며 걱정해오던 참이었다. 전기료가 유가에만 연동돼 결정될 수도 없다. 대통령으로서는 당장의 전기료가 아니라 유가급락이 가져올 세계적 파장에 대해 심층분석, 보고하도록 지시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더 중요한 일이다.

 

 

■ 탈레반

 

[경향신문 사설-20141218목] 학생 132명을 살해한 탈레반의 악마성

 

2012년 10월9일 파키스탄 북서부 마을. 무장 탈레반은 하굣길의 학교버스를 세우고 “누가 말랄라냐”고 물었다. 여학생들이 머뭇거리자 탈레반은 말하지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이때 15살 소녀가 나섰다. “내가 말랄라다.” 탈레반은 곧 총을 발사했고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쓰러졌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예전에 하던 대로 여자의 교육권을 주창하는 운동을 계속했다. 말랄라의 요구는 단지 “여자 아이들도 학교를 가게 해달라”는 것이다. 말랄라는 이 당연한 권리를 말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다. 파키스탄에서는 여자 아이의 75%가 학교에 가지 못한다. 이런 현실을 세계 앞에 고발하며 국제적 관심을 환기시켜온 공로로 말랄라는 올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의 노벨 평화상은 어떤 이유로도 아이의 교육권을 박탈할 수 없다는 보편적 가치를 확인한 것이자, 세계가 교육을 부정하는 극단주의에 함께 맞서겠다는 연대와 공감의 표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탈레반의 야만적 행위는 2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말랄라를 죽이려 했던 바로 그 파키스탄 탈레반이 그제 북서부 페샤와르에서 똑같은 만행을 저질렀다. 군 부설 사립학교를 공격, 어린 학생 132명과 교사·교직원을 포함해 141명을 살해한 것이다. 이들은 교실 의자 밑에 숨어 공포에 떨고 있던 어린 아이를 찾아내 죽였다. 파키스탄 탈레반은 이걸 파키스탄군에 대한 보복이라고 발표했다. 단지 죽이기 쉽다는 이유로 아무 죄도 없는 그 많은 어린 생명을 보복 수단으로 삼는 행위는 짐승의 세계에서도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종교나 신도 인간의 존엄성 위에 군림할 수 없다. 인간 살육을 정당화하는 이념이나 종교는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21세기의 야만인들은 신의 이름으로 인간이 최고의 악행을 저질러도 좋다는 허가장을 받아 놓은 듯이 행동했다. 그러나 종교나 신은 핑곗거리일 뿐이다. 그런 행위는 신과 무관한, 어리석은 인간의 탐욕과 눈 먼 욕망의 적나라한 분출에 지나지 않는다.

 

불행한 것은 이런 인간파괴 전문 조직이 지구상에 파키스탄 탈레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슬람국가(IS), 보코하람, 알카에다도 세계 곳곳에서 인간의 악마성을 마음껏 떨치고 있다. 지구적으로 활동하는 이들 인류의 적을 지구상에서 몰아내기 위해서는 인종, 문화, 종교, 정치제도의 차이를 떠나 인류가 하나로 연대해야 한다. 세계인이 각성하고 함께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발호할 수 있는 빈부격차, 차별, 배제의 음습한 토양을 갈아 엎어야 한다.

 

 

■ 관련 칼럼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허언순(논설위원)-20141218목] 탈레반

 

학생이란 아랍 말 탈레반은 단지 배우는 사람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뭔가를 갈구하는’이란 뜻도 있다. 알라와 이슬람만으로 표상되는 신정(神政)체제를 갈망하는 것일까. 탈레반들이 꿈꾸는 세상이 제정(祭政)일치의 사회라면 그것만으로도 전근대적이다. 이성과 합리, 현대와 개방, 이런 개념은 스며들 여지조차 없다. 그래서 탈레반의 이미지는 주로 모자헤딘(무장게릴라), 지하드(성전), 이런 것과 겹친다.

 

탈레반이 세계의 골칫덩이로 부각된 계기는 2001년 9·11테러였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은 국제 테러리스트 조직인 알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덴을 인도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그렇게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시작됐다. 탈레반 정권의 야만적인 행위는 앞서 그해 3월에 이미 세계를 경악시켰다. 힌두쿠시 산맥의 간다라 유적으로 세계 최대인 53m, 37m 높이 마애불상을 파괴한 것이다. 우상을 금지한 이슬람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1500년 된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은 한순간에 산산조각 나버렸다. 189개 유엔 회원국이 인류의 문화유산을 훼손 말라고 만장일치로 의결했으나 무위였다.

 

9·11 한 달 만에 미군과 동맹군은 아프가니스탄으로 진군했다. ‘무한 정의 작전’이란 테러소탕전쟁은 한 달 만에 끝났다. 이때 밀려난 탈레반 정부의 잔당들은 아프가니스탄의 험준한 산악 오지로 도주했다. 일부는 국경너머 파키스탄으로 달아났다. 이후 탈레반의 보복 테러가 무수히 이어졌다. 엊그제 파키스탄 북부 페샤와르의 학교테러도 파키스탄 팔레반(TTP)의 광신적인 공격이었다.

 

파키스탄 군이 운영하는, 그래서 장교들 자녀가 많다는 게 표적이 된 이유 같다. 6명의 테러리스트는 특별한 요구도 주장도 하지 않았다. 인질로 잡으려는 시도도 없었다니 맥이 다 풀린다. 단지 TTP 소탕전에 대한 반격 테러였다는 얘기다. 그렇게 꺾인 10대 꽃봉오리들이 부상자까지 이백수십명이다. 저항능력이 없는 ‘소프트 타깃(soft target)’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더욱 용서 못 할 범죄다. 오죽하면 형제격인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까지 규탄 성명을 냈다.

 

TTP가 소프트 타깃이나 노리며 더욱 광적으로 되는 게 탈레반 소탕전의 성공을 반증한다는 시각도 있다. 탈레반은 어디에나 있다. 한국 정치권에도 그렇게 불린 그룹이 있었다. 강경 혹은 완장이란 수식어가 붙기도 했던 과격파들이다. 원리주의자들은 자신은 무오류라는 믿음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세상의 공적이 된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1041218목] 구제역 방역 '골든타임' 놓쳐선 안 된다

 

충남 천안의 한 돼지농장에서 구제역 발생이 확인됐다. 지난 3일 충북 진천에서 처음 시작된 구제역은 반경 5km 내 7곳의 양돈 농가로 번지더니 10여일 만에 도 경계를 넘어 충남에서도 발생했다. 이런 가운데 어제 충북 증평에서도 구제역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기온이 낮을수록 전파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추세라면 전국적으로 번지는 건 시간문제일 수 있다. 초동 대응에 실패해 비싼 대가를 치렀던 3년 전처럼 정부의 방역체계에 구멍이 뚫린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우선 감염 경로를 조속히 밝혀내 확산 기세를 꺾는 것이 급선무다. 천안 구제역의 경우 일단 축사 1개동 일부 개체에서만 증상이 나타난 점을 볼 때 충북 진천 구제역과 같은 혈청형 O형으로 추정된다는 게 축산당국의 판단이다. 기존의 ‘백신접종 유형’인 만큼 농가에서 예방접종만 철저히 한다면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진천은 물론이고 천안의 농장에서도 접종이 이뤄졌는데도 구제역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비육돈의 경우 예방접종을 해도 소와 달리 구제역 항체형성률이 50%가 안돼 여전히 전염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 구제역이 기존 백신에 면역력이 생긴 경우이거나, 변종이라면 사태는 더 심각할 수 있다.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축산 당국은 대비해야 한다.

 

한번 발생하면 무섭게 번지는 구제역은 2000년대 들어 빈발하는 추세다. 1934년 국내에서 처음 보고됐지만 그 동안 잠잠하다가 2000년, 2002년, 2010~11년 발병했고, 올해에는 지난 7월, 8월에 남부지방에서 발생했다. 특히 2011년의 경우 초동 대응에 미적대다가 방역시기를 놓쳐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무려 340만 마리 돼지가 살처분돼 3조원에 달하는 농가 피해가 있었다. 발병 시기도 종잡을 수 없는 추세다. 주로 겨울이나 초봄에 발생해 여름에 사라지던 양상이 바뀌어 최근에는 때를 가리지 않는다. 기후변화로 인한 가축의 환경 적응력이 약해진 데다, 집단사육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탓이다.

 

구제역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선제적 조치와 신속대응의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당국은 비상체제를 구축해 구제역의 확산 차단에 모든 역량을 투입하는 한편 권역별 거점별 방역체계를 촘촘히 짜야 한다. 돼지뿐 아니라 소와 염소 등으로 확산될 여지를 차단하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축산 농가 또한 백신 접종을 제 때 하고, 차량과 외부인의 농장출입 통제, 각종 연말모임 참석 자제 등 당국이 제시하는 기본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민관의 긴밀한 협업만이 구제역 재앙을 막을 수 있다.

 

 

[한국일보 사설-20141218목] 대통령 소통부재 작심하고 지적한 국회의장

 

정의화 국회의장이 연일 박근혜 대통령의 소통 문제를 지적했다. 삼권분립의 한 축 입법부 수장인 정 의장의 날 선 비판은 예삿일이 아니다. 정 의장이 그제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밝힌 박 대통령과의 핫라인 불통 전말은 씁쓸하다.

 

그는 의장 취임 직후 박 대통령에게 꼭 필요할 때 긴밀한 통화가 가능한 핫라인 개설을 요청해 비밀 전화번호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뒤 2번 통화를 시도했으나 그때마다 전화가 꺼져있어 통화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정무수석이 죄송하다며 수행비서 전화번호를 알려줬다니 대통령과 국회의장의 핫라인 개설은 해프닝으로 끝나고만 셈이다. 국정에 바쁜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받기가 쉬운 일은 아닐 터이지만 박 대통령의 불통을 상징하는 사례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정 의장은 전날 정홍원 국무총리 등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도 “총리가 대통령을 만나면 한 말씀 전해 주기 바란다”면서 박 대통령의 대(對)국회 소통 부족을 작심하고 지적했다. 정상외교 후 3부 요인이나 5부 요인을 청와대로 초청해 결과를 설명할 필요가 있는데 언론보도만으로 알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국회가 시급히 처리해야 할 법안이 있으면 대통령이 직접 전화도 하고, 청와대에 초청해 설명하는 등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법안을 던져 놓고 국회가 알아서 하겠지 하거나, 기한을 정해 놓고 그때까지 해 달라는 식의 자세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역대 정부에서도 대통령이 국회를 직접 설득하는 노력이 부족했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정도가 한층 더 심한 게 사실이다.

 

박 대통령의 불통과 대화 부족 문제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연말 정국을 강타한 비선 실세 국정농단 논란의 근원도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 중요한 인사와 정책결정을 장관들이나 수석비서관 등을 통해서보다는 이른바 문고리권력이라는 측근 비서관들에 의존하는 사례가 잣다 보니 비선 권력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여당 내부에서도 박 대통령의 소통 부족 등 국정 운영 스타일을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새누리당 중진인 심재철 의원은 어제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박 대통령에게 인사 혁신과 대내외적 소통 강화 등을 촉구했다. 새누리당 초ㆍ재선 의원 20여명이 주축인 ‘아침 소리’모임도 최근 비선 실세 논란이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 투명성이 낮고 소통이 부족해 일어난다며 대통령의 소통 강화를 주문한 바 있다.

 

이 정도 되면 박 대통령도 비서관 3인방을 감싸는 고집을 버리고 청와대 내부 인사쇄신과 함께 소통 강화 등 국정운영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 이거야말로 박 대통령 자신이 강조한 ‘비정상의 정상화’가운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이다.

 

 

[경향신문 사설-20141218목] 문희상 ‘취업 청탁’ 가벼이 넘길 수 없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이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에게 처남의 취업을 청탁하고, 이 처남은 8년간 일을 하지도 않은 채 급여 명목으로 8억여원을 수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문 위원장의 비위 사실은 처남 김모씨가 문 위원장과 누나 부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과정에서 뒤늦게 발각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문 위원장이 2004년 고교(경복고) 선후배 사이인 대한항공 회장(조양호)을 통해 미국에 거주하던 김씨의 취업을 부탁해 김씨가 미국 브리지웨어하우스에 컨설턴트로 취업했고, 2012년까지 74만7000달러(8억1027만원)를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김씨는 소송 과정에서 대한항공 쪽을 통해 받은 “급여”를 (문 위원장이 갚은) “이자 성격”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문 위원장이 대한항공에 처남의 위장취업을 부탁하고, 일을 하지도 않고 받은 급여를 이자로 갈음했다는 얘기가 된다. 부정청탁에 제3자 뇌물공여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하지만, 당시 명백한 부정이고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취업 청탁이 이루어진 2004년 문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을 거친 뒤 국회 정보위원장, 국방위원회 위원을 지낸 현역 의원 신분이었다. 대한항공은 방산업체를 거느리고 있어 국방위와 직무 관련성이 뚜렷하다. 문 위원장이 국방위원과 ‘정권 실세’ 배경으로 처남의 위장취업을 관철시키고, 부당한 급여를 수령할 수 있도록 했다면 분명한 이해충돌이고 불법이다.

더욱 기막힌 것은 문 위원장의 대응이다. 문 위원장은 당 대변인을 통해 “처남의 취업을 간접적으로 부탁한 사실은 있지만 직접 조양호 회장에게 부탁한 일은 없다”고 해명했다. 문 위원장이 ‘땅콩 리턴’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는, ‘제 발 저린’ 엉뚱한 변호도 내놨다. 간접 청탁이니 괜찮고, 새정치연합이 ‘땅콩 리턴’ 사태에 엄정히 대처했으니 면죄라는 것인가. 새정치연합이 고위공직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과거 비리·부정에 댄 잣대를 돌이켜보기 바란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일 순 없다. 심각한 비리가 확인됐음에도 대변인의 간접 해명으로 퉁치고, 도의적 책임조차 지지 않으려는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잘못에 책임도 지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의 몰염치를 추궁해온 문 위원장이다. 최소한 문 위원장은 국민 앞에 잘못을 소명하고 사과해야 한다. 제1야당 대표로서 그만한 윤리감, 정치적 책임의식도 없다면 그게 더 국민을 절망케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41218목] 연구개발비를 룸살롱에서 펑펑 쓴 공기업들

연구개발(R&D)비로 쓰라고 지원한 예산을 유흥비로 쓰거나 횡령한 연구원, 임직원들이 또 적발됐다. 감사원은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 등 21개 기관의 연구비 사용 실태에 대한 감사에 나서 60여건의 위반 사례를 적발해 7명의 문책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연구개발비를 빼먹은 실상을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룸살롱에서 양주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는 법인카드로 결제했는가 하면 개인적인 오디오 구입비로 7200만원을 유용하기도 했다. 창조경제의 선봉에 서서 한 푼이라도 아껴 연구에 매진해야 할 연구원들이 국가 예산을 유흥주점에 뿌리고 있으니 나라의 장래가 심히 걱정스럽다.

 

연구개발비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 신기술을 연구하라고 책정한 예산이다. 올해 연구개발 예산 규모는 17조 5500억원을 넘어선다. 혈세로 조성한 그런 돈 중에 수백억원대로 추정되는 금액을 연구원들이 제 잇속을 채우는 데 쓰고 있으니 납세자로서는 분통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연구개발비 횡령·유용 비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8월에도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연구원들이 정부 연구과제를 특정 업체가 맡도록 해 주고 15억원의 뒷돈을 챙겼다가 구속된 일도 있었다.

 

연구개발비 관련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누차 지적했는 데도 감시와 점검이 허술한 탓이다. 수억원, 수십억원을 쓰는 데도 어떻게 집행되고 어떤 결과물이 나왔는지 사전·사후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예산 집행 라인에 있는 담당자들이 한통속이 되어 비리를 함께 저지르고 있으니 적발해 내기가 쉽지 않다. 엉터리 연구과제를 내세워 비용을 뻥튀기하고 그 과정에 뇌물이 오고 가 횡령이나 유용을 묵인해 주는 일이 적지 않다.

 

감사원이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을 형사 고발하지 않고 단지 문책만 요구했다면 잘못이다. 비리를 막으려면 감시·감독과 평가를 철저히 하고 적발된 연구원들을 일벌백계해야 한다. 연구개발비 횡령·유용이나 뇌물 비리는 국가의 발전을 해치는 중차대한 범죄다. 그런데도 단순 경제사범처럼 가벼운 문책에 그치거나 솜방망이 처벌을 해 비리를 재발시키는 원인을 제공했다. 비리를 저지른 연구원들을 해당 기관에서 퇴출시키는 것은 물론 법에 따라 엄한 처벌을 해야 마땅하다. 횡령한 연구비도 전액 회수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나랏돈을 눈먼 돈으로 여기고 제 주머니에 든 쌈짓돈처럼 흥청망청 쓰는 그릇된 풍토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1041218목] 조현아는 조현아, 관광법은 관광법

 

대한항공의 소위 ‘땅콩 회항’ 여파로 관광진흥법 개정이 불투명해졌다고 한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대한항공의 숙원사업인 경복궁 옆 7성급 호텔 건립이 가능해지는 만큼 여론을 의식한 정치권이 처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국회 교문위 야당 간사인 새정치연합 김태년 의원은 “교육환경이 훼손되고 있는데 대한항공을 위해 호텔을 지을 수는 없다”며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새누리당 소속 의원 대부분도 법안 처리에 큰 부담을 느끼는 모양새다.

 

개정안은 유해시설이 없는 호텔은 학교 인근에도 지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비즈니스호텔 확충 목적으로 2012년 정부가 발의했다. 경제활성화 차원에서 국회 통과가 유력했지만 ‘땅콩 회항’ 사건으로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더욱이 조현아 전 부사장이 호텔 건립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부정적 여론이 비등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관광진흥법 개정은 서비스산업 육성과 경제활성화 차원에서 추진된 것이다. 이번 비행기 회항 사건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대한항공의 호텔 건립이 가능해진다는 이유만으로 법안 처리를 미룬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사주 일가가 밉다고 관광산업을 죽이자는 것이라면 이는 곤란하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한항공과 조 전 부사장은 관련법에 따라 응당한 처분을 받으면 그만이다. 왜 관광법 개정과 이 문제를 연계시키나.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18목] 노동시장 구조개선… 조세·재정·조달정책부터 고쳐야

노동시장 구조를 개선하려면 조세·재정·금융·조달정책 전반을 수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7일 개최한 '노동시장 구조개혁, 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정책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김태기 단국대 교수(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와 KDI의 윤희숙 박사는 정부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국내 노동시장은 노사 양측으로부터 유연성과 안정성이 모두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고임금과 고용안정을 상당 부분 보장 받는 대기업·공기업 정규직과 그렇지 못한 비정규직, 중소기업 근로자 간의 양극화가 심해진 탓이다. 해고·파견근로 등에 대한 규제장벽은 높고 퇴직 무렵의 임금이 초임의 2.7배나 돼 민간기업에서는 조기 퇴직이 일상화돼 있다. 정부도 정치권과 노사의 눈치를 보며 소극적으로 대처, 문제를 키웠다. 통상임금과 해고요건을 둘러싼 혼란도 고용노동부가 관련 법에 판례를 제때 반영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복잡한 수당과 호봉제 중심의 과도한 연공(年功) 급여가 임금체계의 병폐라면 법인세·소득세법을 고쳐 고정급·수당보다 성과급 등에 대한 세제혜택을 강화해 노사가 성과급·직무급 중심으로 개편할 수 있도록 유도했어야 마땅하다. 중소 하청업체의 근로조건을 악화시켜 양극화를 심화하는 데 일조해온 최저가낙찰제 역시 고용노동정책과 무관하게 이뤄져 온 조달정책의 소산이다.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려면 정부가 국가혁신 차원에서 상품·노동시장을 꿰뚫는 개혁 방향을 제시하면서 조세·재정금융·조달 등 종합적인 정책을 통해 노사를 유인하고 지원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노사정이 노사정위원회 등에서 타협안 도출을 시도하고 있으나 정부는 아직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노사정위에 힘을 실어주려는 측면도 있지만 정부 부처 간 이견과 노사 눈치 보기도 한몫한다. 정부는 이런 때일수록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벨기에·덴마크 등의 사회적 대타협도 정부 여당과 공익대표의 강력한 리더십 덕분에 가능했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18목] 대학입시 현실 경시한 교육부의 사교육 대책

교육부가 17일 사교육 경감 대책과 공교육 정상화 방안을 내놓았다. 세월호 참사 때문에 발표시기가 미뤄졌다고는 하나 현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라고 하니 뒤늦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책의 핵심은 사교육 수요가 높은 영어와 수학에 집중돼 있으나 벌써부터 근본적인 처방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장고 끝의 악수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교육부의 대책에 따르면 영어는 EBS 수능연계 영어교재의 어휘가 교과과정 수준을 뛰어넘지 않도록 난이도를 낮추고 수학은 교재의 종류와 문항 수를 줄이기로 했다. 교육부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의 외국인 강사 채용을 금지하고 학원비의 옥외가격표시제 등도 도입할 계획이다. 전반적인 하향 평준화로 사교육 수요를 잡아보겠다는 기본 구상으로 풀이할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학원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교육부는 이번 대책의 사교육 억제 효과를 장담했지만 문제는 그렇게 믿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 정도 대책으로는 '망국적'으로까지 불리는 사교육의 폐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국민 불신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과거 여러 번의 사교육 대책들도 '풍선효과'처럼 새로운 종류의 사교육 시장을 만들어내 결국 정부 말만 믿고 있다가는 손해라는 것이 반복학습을 통해 학부모들의 뇌리에 박혀 있는 것이다.

 

교육부의 대책이 근본적으로 빠뜨리고 있는 것은 교육현장의 엄연한 경쟁환경이다. 출제 오류에 변별성까지 떨어져 '물 수능'이라고 평가 받은 이번 대학입시도 결국 수시 무더기 탈락과 재수를 선택하는 학생들의 급증 등 부작용을 야기했다는 사실조차 간과했다. 누군가는 떨어뜨려야 하고 누군가는 붙어야 하는 대학 입시제도의 현실을 도외시한 어떤 사교육 대책도 국민에게 공허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교육 당국자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18목] 개인회생 신청 최다, 제도 악용 철저히 가려내라

올해 개인회생 신청자가 사상 최대인 11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가계부채가 급증하면서 빚을 감당하지 못한 채무자들이 개인회생 창구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도입된 개인회생제도는 최대 5년간 생활비를 제외하고 전체 부채의 3~5%만 갚고 원리금의 최대 95%를 탕감해준다. 근무하는 회사에 통보되지 않아 흔적이 남지 않은데다 개인파산보다 인가 받기도 쉽다.

 

이런 점 때문인지 2010년 4만7,000명선이던 개인회생 신청자는 지난해에는 10만6,000명으로 125%나 늘었다. 이는 같은 기간의 가계부채 증가율 21%의 6배에 이른다. 올 들어서는 잇따른 대출규제 완화로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어난 탓에 개인회생 신청자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더 큰 문제는 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의도적으로 과도한 대출을 일으키고 재산을 다양한 방법으로 숨긴 뒤 1~3개월 내에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고 한다. 의사가 아르바이트생으로 꾸며 신청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모럴해저드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악성 신청자들로 인해 금융기관이 떠안아야 하는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0월 말 현재 80개 저축은행의 신용대출 연체금액 7,323억원 가운데 60%인 4,393억원이 개인회생 부실채권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채무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혜택을 엉뚱한 사람들이 가로채 배를 채우는 세태는 불신을 키우고 사회질서를 좀먹는 행위다. 법원이 이를 막기 위해 갑작스러운 소득변동이나 재산 명의이전 신청자 등을 솎아내고 있다니 다행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부업체 대출정보가 저축은행·캐피털·은행 등 다른 금융회사에 공유되지 않는 것과 같은 제도적 허점을 시급히 보완해야 할 것이다. 미국처럼 사전 신용상담을 의무화해 개인회생 신청 남용을 줄이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야! 한국사회/권명아(논설위원)-20141218목] 사랑의 깃발이 드높다

 

히틀러의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것’이다. 히틀러의 ‘그것’에 대한 논의는 그가 동성애자라거나 위장한 동성애자라는 소문으로도 이어졌다. 히틀러는 동성애자를 유대인만큼이나 혐오했다. 동성애에 대한 히틀러의 강박적 혐오 때문에 히틀러의 ‘그것’에 대한 뜬소문이 끊이지 않았다는 논의도 있다. 그래서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반파시즘 진영에서 동성애 코드를 활용하여 나치를 희화화하는 방식이 자주 나타나곤 했다. 역사적으로 파시즘과 반파시즘은 동성애를 ‘절멸의 대상’이나 ‘선전의 도구’로 이용하였다.

 

<한겨레>가 동성애 혐오 발화를 전면 광고로 게재하여 물의를 빚었다. 논란이 일자 한겨레 쪽이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 입장을 가진 의견 또한 정보”라고 해명했다. 이는 혐오 발화의 폭력성에 대한 무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혐오 발화는 ‘의견’이 아니고, 표현의 자유로 보장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혐오 발화를 하나의 ‘의견’이라고 하는 것은,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한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이 사태를 통해 우리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혐오 발화의 폭력성을 사유하고 대처해 나가는 데 무지하다는 점을 거듭 확인해야 한다. 파시즘은 증오 정치를 동력으로 진행된다. 파시즘은 낙인찍기, 혐오 발화, 증오 행동을 거쳐 대량 학살로 향했다. 혐오 발화가 하나의 ‘의견’이나 ‘보수적인 정치적 견해’가 아니라, 학살의 예고편이라는 것은 무수한 사례가 보여준다. 그 사례들에 따르면, 혐오에는 이유가 없다. 혐오란 이유가 없이, 대상을 바꿔가며 들러붙는 신체적 힘들의 결집체이다. 파시즘이 여성, 성적 소수자, 인종적 타자를 혐오하며 절멸시킨 데에는 어떤 논리적 이유도 없다. 물론 이들이 혐오의 대상이 된 것은 이들 집단이 당대 주요하게 부상한 ‘새로운 세력’이라는 점과도 관련된다. 대표적인 파시스트인 무솔리니는 파시즘이란 “현존하는 모든 것에 대한 안티테제”라고 주장했다. 즉 파시즘의 혐오는 논리적 근거가 아닌, ‘안티’의 역학을 따라 촉발된다.

 

최근 한국 사회의 혐오 세력이 특별한 공통점이 없는 집단들을 향해 혐오 발화와 증오 행동을 수행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그때마다 ‘쟁점이 되는’ 집단을 찾아다니며 혐오 발화나 방해 시위를 자행하고 있다. 혐오가 특별한 이유가 없이, 대상을 바꿔가며 들러붙는 신체적 힘들의 결집체라는 건 바로 이런 뜻이다. 혐오가 대상에게 부정적으로 들러붙는 속성을 지닌다면, 그 강도가 높을수록 혐오의 주체는 대상에 들러붙어 휘감겨버린다. 히틀러가 동성애를 혐오하는 강도가 높아질수록, ‘그것’에 대한 추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 최근 서울시민인권헌장을 둘러싼 사례에서도 보이듯이, 혐오의 강도는 이에 맞서는 저항의 강도를 높이기도 한다. 물론 혐오 덕분에 저항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혐오에 맞선 사랑은 추상적으로 논의된 사랑의 정치성에 구체적인 현실성을 부여했다. 이 일은 ‘나른한’ 진보 이론의 대가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혐오에 맞서 행동한 수많은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 2014년 한국 사회는 혐오에 맞서는 새로운 ‘사랑의 깃발’과 그 사랑으로 형성된 새로운 정치적 주체들을 만난 해로 기록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혐오의 공허한 열광을 마주하며, 우리는 단지 파시즘의 도래만을 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한국 사회의 정치적 지형도가 다시 그려지는 현장을 보고 있다. 2014년, ‘진보’라는 말로 다 포함할 수 없는, 혐오에 맞서는 새로운 저항의 정치가, 사랑이 일어나고 있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상언(중앙SUNDAY 차장)-20141218목] '공진초' 의 비극, 내 안의 조현아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전교생이 120여 명인 ‘미니 학교’가 있다. 공진초등학교 가양 분교다. 서울에 하나뿐인 초등 분교다. 이 학교는 내년 2월에 문을 닫는다. 학생들은 다른 학교로 전학 가야 한다.

 

 교육청은 그 자리에 정신지체 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를 만들기로 했다. 강서구에 약 200명의 정신지체 학생이 있는데, 딱 하나 있는 이 구의 특수학교(교남학교)에서 교육할 수 있는 인원은 그중 절반에 불과하다. 약 100명의 학생은 멀리 다른 구에 있는 학교에 다닌다. 장거리 통학은 자녀와 함께 등·하교를 하는 부모들에게도 고통을 준다.

 

 그런데 이 특수학교 신설에 제동이 걸렸다. 주민들의 ‘민원’ 때문이다. 주민들이 내세운 이유는 도서관·체육관 같은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면에는 집값 하락 걱정이 깔려 있다. 반대에 앞장선 곳은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 단지다. 40, 50평대 아파트가 많은, 이 일대에서는 가장 잘사는 동네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들은 서명 운동을 벌이고 여러 차례 교육청을 찾아가 집단 항의를 했다.

 

 17년 전 강남구 일원동에 있는 특수학교인 ‘밀알학교’가 문을 열 때도 반대가 심했다. 통학버스 출입로 봉쇄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특수학교는 혐오시설도 기피시설도 아닌 그냥 ‘학교’다. 단지 보호가 좀 더 필요한 아이들이 다닐 뿐이다.

 

 공진초 분교가 생겨난 사연은 더 기구하다. 이 학교는 임대아파트 단지 옆에 붙어 있다. 처음 생긴 1992년에만 해도 수백 명의 학생이 다녔지만 최근엔 해마다 신입생이 크게 줄었다. 임대아파트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집이 드물어 단지 전체가 ‘고령화’됐기 때문이다. 결국 공진초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마곡지구로 지난 9월에 옮겨갔다. 당시 교육청은 공진초에 다니는 학생들은 길 건너의 탑산초등학교로 전학시킬 계획이었다. 그런데 공진초 학부모들이 반대했다. 이유 중 하나는 “탑산초 아이들과 부모들은 우리 자녀를 ‘임대 애들’이라고 부른다. 아이들이 ‘왕따’당하면서 학교에 다니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논란 끝에 ‘한 학기 동안 분교로 유지’라는 절충안이 나왔다.

 

 특수학교를 막아서고, 길 하나 사이로 갈라져 산다. 누구나 약자에 대한 배려를 말하지만 내 문제가 되면 ‘몸의 털 하나 뽑는 것’도 아까워한다. 오만과 편견이 넘실댄다. 그 속에서 많은 ‘조현아’가 자라고 있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신동호(논설위원)-20141218목] 대통령기록 유출

 

검찰이 그제 밤 박관천 경정을 전격 체포해 사법처리를 서두르고 있다. 박 경정은 자신이 작성한 이른바 ‘정윤회 문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표현처럼 ‘대한민국이 부끄러울 정도로 나라 전체를 흔든’ 사건의 중심 인물이 됐다. 그 죄과가 얼마나 클까. 검찰의 태도를 보면 매우 무거운 것 같다. 그가 지난 2월 청와대 파견근무를 마치고 경찰로 복귀하면서 내부 문건들을 갖고 나온 것을 대통령기록물 무단 유출로 판단한 것을 보면 그렇다.

박 경정의 죄는 ‘정윤회 문건’의 성격에 달려 있다. 청와대가 처음에 그를 검찰에 고소하면서 규정했던 공공기록물이라면 최고 징역 3년에 해당하는 죄다. 하지만 검찰의 판단대로 대통령기록물이라면 최고 징역 7년에 해당하는 중죄가 된다. 그런데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과 박 대통령의 언급처럼 ‘찌라시’라면 애매해진다. 지금까지 검찰 조사로는 박 경정은 문건을 언론사나 기업 등에 유포하는 과정에는 연루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명예훼손죄조차도 적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

대통령기록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유출’했다고 볼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논란거리다. 유출은 보통 유포의 개념을 동반한다. 이를테면 비밀을 취급하던 사람이 퇴직했다고 해서 비밀이 유출됐다고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유출이란 그것이 누설되거나 유포된 결과를 말한다는 얘기다. 원본이 아닌 사본을 가져나간 것이 유출에 해당하는지도 법적으로는 다툼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이중잣대도 도마에 오른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과 관련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무혐의 처분, 정문헌 의원은 약식기소한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이다. 대화록을 공공기록물이라고 주장한 국정원의 논리도 같은 맥락이다. 정상외교 기록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은 이번 청와대 문건 유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중대사안인데도 말이다. 대통령기록이 번번이 정치공방의 소재가 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기록이 정쟁의 도구가 되는 역사적 비극의 고리를 언제 끊을 수 있을까. 지난해 ‘계사사화’와 이번 ‘갑오사화’가 대통령기록 게이트의 끝이 될 수 있을까.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허언순(논설위원)-20141218목] 탈레반

 

학생이란 아랍 말 탈레반은 단지 배우는 사람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뭔가를 갈구하는’이란 뜻도 있다. 알라와 이슬람만으로 표상되는 신정(神政)체제를 갈망하는 것일까. 탈레반들이 꿈꾸는 세상이 제정(祭政)일치의 사회라면 그것만으로도 전근대적이다. 이성과 합리, 현대와 개방, 이런 개념은 스며들 여지조차 없다. 그래서 탈레반의 이미지는 주로 모자헤딘(무장게릴라), 지하드(성전), 이런 것과 겹친다.

 

탈레반이 세계의 골칫덩이로 부각된 계기는 2001년 9·11테러였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은 국제 테러리스트 조직인 알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덴을 인도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그렇게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시작됐다. 탈레반 정권의 야만적인 행위는 앞서 그해 3월에 이미 세계를 경악시켰다. 힌두쿠시 산맥의 간다라 유적으로 세계 최대인 53m, 37m 높이 마애불상을 파괴한 것이다. 우상을 금지한 이슬람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1500년 된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은 한순간에 산산조각 나버렸다. 189개 유엔 회원국이 인류의 문화유산을 훼손 말라고 만장일치로 의결했으나 무위였다.

 

9·11 한 달 만에 미군과 동맹군은 아프가니스탄으로 진군했다. ‘무한 정의 작전’이란 테러소탕전쟁은 한 달 만에 끝났다. 이때 밀려난 탈레반 정부의 잔당들은 아프가니스탄의 험준한 산악 오지로 도주했다. 일부는 국경너머 파키스탄으로 달아났다. 이후 탈레반의 보복 테러가 무수히 이어졌다. 엊그제 파키스탄 북부 페샤와르의 학교테러도 파키스탄 팔레반(TTP)의 광신적인 공격이었다.

 

파키스탄 군이 운영하는, 그래서 장교들 자녀가 많다는 게 표적이 된 이유 같다. 6명의 테러리스트는 특별한 요구도 주장도 하지 않았다. 인질로 잡으려는 시도도 없었다니 맥이 다 풀린다. 단지 TTP 소탕전에 대한 반격 테러였다는 얘기다. 그렇게 꺾인 10대 꽃봉오리들이 부상자까지 이백수십명이다. 저항능력이 없는 ‘소프트 타깃(soft target)’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더욱 용서 못 할 범죄다. 오죽하면 형제격인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까지 규탄 성명을 냈다.

 

TTP가 소프트 타깃이나 노리며 더욱 광적으로 되는 게 탈레반 소탕전의 성공을 반증한다는 시각도 있다. 탈레반은 어디에나 있다. 한국 정치권에도 그렇게 불린 그룹이 있었다. 강경 혹은 완장이란 수식어가 붙기도 했던 과격파들이다. 원리주의자들은 자신은 무오류라는 믿음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세상의 공적이 된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문성진(논설위원)-20141218목] 고려인 포로의 망향가

 

1930년대 조선인 청년 준식은 일본군에 강제 징집돼 만주에 배치됐다가 전투 과정에서 소련군 포로가 된다. 이후 준식은 독일의 소련 침공 때 사로잡혀 독일로 끌려가더니 노르망디 전투에는 독일군으로 참전한다. 2011년 개봉된 한중일 합작영화 '마이웨이'의 줄거리다. 노르망디에서 독일군 소속으로 있었던 동양인이 연합군에 포로로 잡혔다는 기록과 관련 사진이 모티브가 된 영화에는 나라 잃은 청년의 비극적인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조정래의 소설 '오 하느님'의 내용은 더욱 처참하다. 일본에 의해 관동군으로 징집된 주인공 신길만은 포로 신세로 소련에 끌려가 스탈린 군대에 들어간다. 이후 나치의 소련 침공 때 사로잡혀 독일로 끌려가서는 나치군으로 노르망디 전투에 참여했다 미국의 포로가 된다. 미국에 끌려간 그를 포함한 조선인 포로들은 신분이 분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모두 소련으로 내쳐진다. 그리고 소련은 '조국(소련)을 지키지 못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갖다 붙여 이들을 총살한다. 소련의 이런 만행은 허구로 치부할 수 없다. 러일전쟁 때 조선인 포로들을 핀란드 인근 포로수용소까지 끌고 가 끝내 송환하지 않았던 실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와 왔던고 와 왔던고 타도타관 월사동이 산도 설코 물도 설코 금수초목 생소한 곳에…" 1917년 독일 포로수용소에서 이 노래를 부른 강 바르엘을 포함한 고려인 포로 5인의 신세도 매한가지다. 17세에 시베리아로 이주했다 전쟁에 끌려나갔던 강씨는 물론 모두가 끝내 조국 땅을 밟지 못했다. 그나마 이들은 목소리라도 후대에 남겼다. 국립국악원이 당시 한 독일 민속학자가 채록한 고려인 포로들의 노래를 디지털 음원으로 최근 복원했다. '아리랑' '수심가' '대한사람의' '조국강산' 등 구슬픈 가락과 더불어 그들의 망향 혼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환생한 셈인가. 그렇다고 나라가 허약해 이역만리 타국에서 생을 마칠 수밖에 없었던 포로들의 설움까지 치유될 수는 없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의 패권주의가 다시 고개를 드는 요즘 고려인 포로들의 망향 노래를 듣자니 우리의 민족애사(哀史)에 가슴이 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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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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