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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끝내 중도사퇴로 마감한 반기문 전 총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결국 대권도전 의지를 접고 말았다. 어제 기자회견을 갖고 불출마 방침을 전격 선언했다. 그는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에 지극히 실망했다.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됐다”는 실망감의 표현으로 국내 정치 풍토에 그 이유를 돌렸다. 유엔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나 지난달 12일 귀국과 함께 본격 행보를 해오다가 불과 20일 만에 포기 선언에 이른 것이다.
반 전 총장이 바로 전날만 해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개헌추진협의체 구성 방안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갑작스런 중도 사퇴는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더욱이 지난 설날 연휴를 전후로 여러 정치인들을 만나면서 보폭을 넓혔던 상황이다. 최근 지지율이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긴 하지만 선거판에 늦게 뛰어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완주할 만한 여건이었다. 하지만 역전이 어렵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이처럼 사태가 돌변하기까지는 처음부터 반 전 총장이 국내정치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판단한 측면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냈으므로 귀국하게 되면 여야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았는데도 보수진영을 대표해 지지도가 다른 예비후보들보다 높게 나왔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지난 연말 ‘최순실 게이트’가 확대되기 전까지의 분위기가 그러했다.
그러나 정치 현실은 냉혹했다. 그가 개헌을 매개로 삼은 ‘빅텐트’ 구상으로 여야를 아우르려 했지만 이해 당사자들을 설득하는데 한계를 실감해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일정에 따라 조기 대선 시계가 빨라지는 판국에 개헌을 먼저 하자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주장이었다. 여기에 자신의 과거 의혹을 검증하겠다고 달려드는 눈초리들도 차마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반 전 총장은 처음부터 출마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게 바람직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그냥 사회 원로로 남아 있는 편이 훨씬 좋을 뻔했다. 그의 높은 뜻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우리 정치판도 문제지만 그 역시 정치 현실을 너무 쉽게 여겼다는 질책을 피할 수는 없다. 앞으로 대선 판도가 확연히 달라지게 됐다는 점을 떠나서도 중도 사퇴에 이른 그의 정치 행보가 아쉬운 이유다.
2. 모처럼의 수출 호조, 그러나 낙관은 이르다
수출이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전년 동월 대비 2.3%, 12월 6.4% 증가로 회복 기미를 보이더니 1월에는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며 3달 연속 늘어났다. 두 자릿수 증가율은 2013년 1월 이후 무려 4년 만이다. 우울한 우리 경제에 모처럼 단비 같은 소식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월 수출은 전년 동월보다 11.2% 늘어난 403억 달러를 기록했다. 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상품과 석유화학제품이 증가세를 주도했다. 수입도 18.6% 늘어나 371억 달러를 나타냈지만 무역수지는 32억 달러 흑자다. 60개월이나 연속 흑자 행진중이다.
고무적인 것은 ‘사드 보복’의 한한령(限韓領)으로 상황이 어려워진 중에도 중국 수출이 13.5%로 3년 5개월 만에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동남아, 일본, 유럽연합, 인도 등 대부분 지역에서 증가세가 이어진 것도 긍정적이다. 화장품·의약품 등 새로운 효자 품목의 등장과 중소·중견기업의 선전도 의미가 크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는 2년 연속 깨졌던 무역 1조 달러 회복도 기대할 만하다.
하지만 아직 낙관은 이르다. 두 자릿수 증가는 지난해 1월 수출이 가라앉았던 기저 효과의 영향이 크다. 게다가 수출 환경은 온통 먹구름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와 미·중간 무역 분쟁이 본격화하면 우리가 희생양으로 직격탄을 맞을 공산이 크다. ‘한한령’이 본격화되면 중국 수출도 한순간에 꺾일 수 있다. 영국의 ‘하드 브렉시트’ 추진, 북한 핵 등도 우리 수출엔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수출은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다. 정부를 비롯한 모든 주체들이 함께 지혜를 모아 살아나기 시작한 수출 회복의 불씨를 살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통상외교를 강화하고, 기업은 수출 품목 및 시장의 다변화 등 수출 구조의 혁신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현재 58%인 수출의 부가가치율을 미국과 일본처럼 80% 이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제도 남아 있다.
정치권도 이번 임시국회에서 경제활성화 관련법안 처리로 수출 진흥을 뒷받침해야 함은 물론이다. 대권 주자들도 수출을 늘리고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내놓고 경쟁하기를 바란다.
[매일신문]
3. 제 편하자고 지역 중소업체 입찰 막은 경북개발공사
경북개발공사가 안동 도청 신도시 공공임대주택 건립 공사에 지역 중소시설 업체의 입찰을 가로막아 말썽이다. 경북개발공사는 전기`통신`소방시설 등의 공사를 분리 발주하지 않고 통합 발주해 사실상 대기업에 공사 전체를 몰아주려 한다는 것이다. 경북도 산하 공기업이라면 지역 중소업체의 어려움을 헤아려야 하는데도, 입찰 기회조차 차단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경북개발공사가 지난해 말 입찰 공고를 낼 때부터 말썽은 예견돼 있었다. 경북개발공사는 입찰을 ‘기술 제안’ 방식으로 하고 참가 자격도 시공 능력 공시액 1천억원 이상 업체로 정했다. ‘기술 제안’ 방식은 상징성`기념성`예술성 등이 필요하거나 어려운 기술이 필요한 시설물 공사에 적용하는 것인데, 임대주택 공사에 반드시 필요한지 의문스럽다.
불합리한 입찰 방식에 지역의 전기`통신`소방시설 업체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역 중소기업의 입찰 자격을 박탈하고 건설 분야 대기업의 배만 불리는 방식”이라는 중소업체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중소업체들은 가뜩이나 불경기로 일감이 없는 상황에서 공기업의 입찰마저 가로막혔으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경북개발공사는 적법한 입찰 방식이라며 고칠 생각이 없다. 경북개발공사 측은 “공사를 관리`감독할 만한 담당자가 한두 명뿐이어서 설계부터 시공까지 한몫에 해결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해명했다. 이는 대기업에 일괄 발주하면 편하게 관리`감독할 수 있는데, 굳이 소규모 업체에 발주해 불편함을 떠안기 싫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기업이라면 모를까, 공익을 우선하는 공기업의 해명치고는 너무나 저급하다.
경북개발공사는 도청 신도시의 땅장사를 벌여 지난해 상반기에만 2천억원 가까운 순이익을 얻었다. 그 엄청난 수익에 비해 전기`통신`소방시설의 공사비 총액이 236억원에 불과해 푼돈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영세업체에는 사활이 걸린 금액이다. 입찰 마감일이 13일까지라고 하니 입찰 방식을 고쳐야 한다. 지역 중소업체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공기업은 존재 의미가 없다.
4. 신라왕경 복원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천년고도 경주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문화의 국격을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특별법 제정이 드디어 가시권 안으로 들어왔다.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에 관한 특별법’이 가결 정족수를 넘는 공동 발의자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김석기 새누리당 의원(경북 경주)은 신라왕경 복원 특별법 발의를 위한 국회의원 서명을 163명 받아냈다고 1일 밝혔다. 전체 국회의원 수 300명의 54.3%에 해당하는 숫자다. 공동 발의자 수가 가결 정족수를 넘어섰기 때문에 특별법이 발의돼 상정되기만 하면 국회 통과는 따 놓은 당상인 셈이다.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는 지역 최대 현안 중 하나로 꼽힌다. 신라 왕궁 등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적임에도 불구하고 여태것 체계적 복원`정비가 이뤄지지 않았다. 유적 복원에 대한 마인드가 결여된 탓도 있지만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경주시 등은 2025년까지 9천450억원의 사업비가 투자되는 신라왕경 복원 계획을 수립했다. 왕궁인 월성과 황룡사`월정교 복원, 쪽샘지구 발굴`정비 등 모두 8개 부문에 이르는 대규모 국책 사업이다. 그러나 워낙 대형 프로젝트인지라 지방자치단체의 역량만으로는 추진에 한계가 있었고 안정적 사업비 마련도 불투명했다. 따라서 사업 추진을 위한 법적`제도적 토대 마련을 위한 특별법 제정 목소리가 높았지만 정부의 무관심 속에 진척이 없었다.
이번에 신라왕경 복원 특별법이 160여 명의 공동 발의자를 확보한 데에는 김석기 의원의 역할이 컸다. 당론으로 발의한 법안이 아닌, 개별 의원 법안에 대한 공동 발의자 수로는 역대 최고라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탄핵이라는 정국 혼란 속에서 지역 현안 해결에 적극 나서서 성과를 도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신라왕경 복원 특별법 국회 통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잇따른 지진 여파로 가뜩이나 고초를 겪고 있는 경주 시민들에게 모처럼 전해진 낭보가 아닐 수 없다. 늦었지만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사업을 촉진해 경주가 세계 최고의 역사 문화자원 도시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매일경제]
5. 반기문 대선 불출마를 바라보는 아쉬움, 씁쓸함, 다행스러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대통령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비정치인으로서 기성 정치권에 새바람을 불어넣어줄 것이란 기대가 무너진 데 대한 아쉬움이 우선 크다. 반 전 총장은 "정치권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가짜 뉴스가 판치는 우리 정치권이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다. 정치판을 새롭게 개편하려던 그의 시도가 좌절됐다 해도 정치권 개혁 노력은 중단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반 전 총장 지지율은 한때 25%에 육박하기도 했지만 귀국 후 줄곧 하락하다가 15% 선으로 추락했는데 그가 자초한 측면도 크다. 정치 교체와 국민 대통합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어느 정당이든 모셔가 주기만 바라는 듯한 이른바 꽃가마 타기 전략을 엿보이기도 했는데 냉엄한 정치판에서 보자면 허황돼 보이는 모습이다.
설을 전후해 여야 지도자들을 두루 만나는 자리에서도 정책과 비전을 뚜렷이 제시하지 못하다 보니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정립하지 못하고 부평초처럼 겉돌기만 했다. 현실 정치의 높은 벽을 극복하기에는 결기가 부족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은 다행스러운 측면도 지닌다. 그는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됐다"고 했는데 말 그대로다. 처음부터 논란이 됐던 일이다. 유엔은 창설 초기인 1946년 '여러 나라 비밀을 취득할 수 있는 사무총장은 퇴임 직후 개별 회원국 정부직을 맡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 후 실제로 역대 사무총장 7명 중 퇴임하자마자 곧바로 반 전 총장처럼 자기 나라 공직선거에 뛰어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반 전 총장은 이 결의안의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점을 강조해왔는데 설혹 그렇다 해도 국제사회에서 신사협정을 어기는 행위는 우리나라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기도 하다. 늦었지만 다행스럽다고 판단하는 이유다.
이제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을 계기로 보수 진영은 보수 진영대로, 진보 진영은 진보 진영대로 정책·비전 경쟁을 통해 조속히 후보를 결정해 국민의 선택에 도움을 줘야 할 일이다.
6. 트럼프의 환율전쟁…글로벌 금융시장 혼란을 주시한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글로벌 환율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저께 백악관에서 제약업계 경영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과 일본이 수년간 무슨 짓을 했는지 보라"며 "이들은 시장을 조작했고 우리는 얼간이처럼 지켜보고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이 유로화 가치를 절하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을 착취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시장은 화들짝 놀랐다. 달러화 가치는 두 달 만에 최저로 떨어졌고 엔화 가치는 급등했다. 달러 대비 원화값은 어제 개장 초 12원 넘게 뛰었다 장 후반 상승 폭이 줄었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중 줄곧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불공정 무역을 응징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제 일본과 독일을 비롯해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큰 주요 교역 파트너들을 싸잡아 비난하며 맹렬한 통상 공세를 예고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해 10월 이 세 나라와 더불어 한국, 대만, 스위스를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다. 연간 대미 무역흑자가 200억달러를 넘고 경상수지 흑자와 외환시장 개입 규모가 각각 국내총생산(GDP) 대비 3%와 2%를 넘으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데 한국은 시장 개입 규모가 작아 가까스로 환율조작국 오명을 피했다.
하지만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곧 파상적으로 퍼부을 통상 공세의 주요 타깃 중 하나다. 우리는 2013년부터 4년 내리 연간 200억달러가 넘는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한 만큼 대미 교역과 투자 전략의 근본적인 재조정을 통해 흑자 규모를 적절히 관리해야 통상 압력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GDP 대비 7%가 넘는 경상수지 흑자를 장기균형(3~4%) 수준으로 줄여갈 수 있도록 내수 부문을 더 키우는 것도 긴요하다.
또한 트럼프발 환율전쟁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대혼란을 불러올 수 있는 만큼 그에 대한 대비도 빈틈이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 환율 변동성이 지나치게 커지거나 급격한 자본 유출입이 국내시장을 교란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복잡한 글로벌 교역 구조를 고려하면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중에는 달러 가치가 되레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컨틴전시플랜을 짜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7. 최순실, 다른 해외 이권 넘본 것은 없나
최순실씨가 유재경 주(駐)미얀마 대사를 임명하는 데 관여했다는 특검 발표에 기가 막힌다. 삼성전기에서 일한 것이 유일한 경력인 유 대사다. 자격 미달에 가까운 ‘자기 사람’을 특정 국가 대사로 보낸 이유가 해외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서 뒷돈을 챙기기 위함이었다니 더욱 개탄스럽다.
최씨가 문화체육관광부 장·차관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등의 인사에 개입했다는 것은 특검 수사에서 드러난 바와 같다. 대사급 외교관 인사마저 좌지우지했다니 박근혜 대통령 위에 최씨가 군림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지 않으면 비정상일 지경이다.
직업 외교관이 아닌 사람을 해외 공관장에 임명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대사 후임에 투자회사 대표인 윌리엄 하가티를 기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케네디 대사도 이전에는 외교와 무관한 직함을 가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어느 때보다 미·일 동맹을 굳건히 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나라에는 15명 남짓한 특임 공관장이 있다. 그런데 전대주 전 베트남 대사에 이어 유 대사마저 비선 실세가 임명했다는 의심이 깊어진다. 이쯤 되면 최씨와 관련 없는 특임 공관장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특검의 시각은 이렇다. 정부는 760억원을 들여 양곤에 컨벤션센터를 지어 한류의 거점으로 삼는 ‘K타운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최씨는 사업을 주도한 업체의 지분을 차명으로 받아 이권을 챙기려 했다. 처음부터 타당성이 부족했던 사업은 결국 무산됐지만, 유 대사 임명은 이 사업을 본궤도에 오르게 하려는 포석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특검의 추정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다른 나라의 비(非)외교관 출신 해외 공관장들이 국익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때 우리 특임 공관장은 비선 실세의 돈주머니를 채우고자 여념이 없었던 꼴이다.
최씨의 이권 개입이 다른 사업도 아닌 ODA를 노렸다는 것은 당황스럽다. 결과적으로 적지 않은 기대를 가졌을 상대국과 그 국민을 기만했기 때문이다. ODA는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 발전 및 복지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유·무상 원조를 말한다.
올해 우리나라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거쳐 집행하는 원조는 아시아·태평양, 아프리카, 중남미, 중동·중앙아시아 지역을 합쳐 3354억원에 이른다. 미얀마에는 170억원이 편성돼 있다. 최씨가 넘본 이상 ODA를 포함한 정부의 해외 사업 전반에 의심스러운 대목이 없는지 철저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8. 속속 드러나는 박 대통령의 ‘커다란 산’ 같은 거짓말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단의 ‘헌법재판소 흔들기’가 도를 넘고 있다. 박 대통령 측 이중환 변호사는 어제 열린 10차 변론에서도 박한철 전 헌재 소장의 ‘3월 13일 이전 선고’ 발언을 거론하며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재벌 그룹 회장 등 15명의 증인을 무더기로 신청하면서 “헌재가 대통령 측이 신청한 증인을 채택하지 않고 검찰 수사기록에 의존하는 것은 국회 측에는 예리한 일본도를, 대통령 측에는 둔한 부엌칼을 각각 건네며 공정한 진검승부를 하라는 것과 같다”는 말까지 했다. 이미 증언한 최순실 씨와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까지 ‘재탕 신청’한 것은 누가 봐도 ‘탄핵심판 지연 전술’에 해당한다.
박 대통령은 특검 조사까지 거부할 명분을 찾는 모양새다.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특검에 구속 기소된 인사들의 공소장에 박 대통령과의 공모 혐의가 적시돼 있다는 이유로 대면조사를 위한 사전 협의를 불편해한다고 한다. 지난달 25일 인터넷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특검 조사에는 임할 생각입니다”라는 답변과는 영 딴판이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압수수색도 거부하고 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지만 피의자 신분이라는 걸 망각한 듯한 모습이다.
박 대통령은 탄핵심판 지연 전술이 유리하다고 볼지 모르나 특검의 조사가 진행될수록 박 대통령의 거짓 해명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최근 인터뷰에서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인사 추천’이 문화 쪽 외에는 없었다고 강조했으나 특검은 최 씨가 유재경 주미얀마 한국대사의 임명에 깊숙이 개입한 사실을 밝혀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를 “거짓말로 쌓아올린 커다란 산”이라고 주장한다. 이만저만한 적반하장이 아니다.
박 대통령 측은 또 “최 씨와 고영태 씨의 불륜이 이번 사건의 발단이며 고 씨가 자기 이익을 위해 (언론에) 왜곡 제보했다”는 주장도 폈다. 박 대통령과 대리인단은 3월 13일과 이달 말을 학수고대하는 모양이다. 3월 13일이 지나면 헌재 재판관 2명만 기각해도 탄핵은 기각된다. 이달 28일이면 특검의 1차 수사기간이 만료된다. 하지만 박 대통령 측의 지연 전술이 계속되면 야당의 특검 연장 요구도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일보]
9. “광장 불법 점유” 서울시 주장, 왜 공허하게 들리나
서울광장의 천막 설치를 놓고 서울시와 일부 보수단체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강태웅 서울시 대변인은 그제 “(보수단체 천막과 분향소는) 신고도 하지 않고 광장을 점유하고 있다”며 “행정 대집행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양측의 대립은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등 50여개 보수단체가 참여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가 지난달 21일 서울광장에 천막 40개동을 설치해 천안함 희생자 등을 추모하면서 시작됐다. 30일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무효를 요구하며 투신한 조모(61)씨의 분향소를 추가로 설치하는 과정에서 이를 저지하는 서울시 측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서울시는 “광장은 한 단체가 아닌 여러 시민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광장을 사용하려면 ‘서울특별시 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등에 따라 사용 신청을 해야 한다. 서울광장은 2월에만 6건의 사용 신청이 들어온 상태다. 일부 보수단체가 설치한 천막은 서울시로부터 사용 허가를 받지 못한 만큼 명백한 위법이다.
하지만 “서울광장 분향소는 불법”이라는 서울시 지적은 어쩐지 공허하게만 들린다. 사실 세월호 천막들로 난민촌을 연상시키는 광화문광장의 어지러운 모습은 서울시가 자초했다. 2014년 7월 세월호 유족들이 국민적인 추모 열기에 힘입어 무허가 천막 3개를 세웠을 때 철거하기는커녕 추가 설치를 지원하기까지 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묵인해줘 버린 것이다.
물론 국가적 책임이 있는 세월호 참사를 투신 자살한 60대의 사망 사건 등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국민적 상처로 자리 잡은 안타까운 사고는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치유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3년 가까이 광화문 광장을 점거하고 있는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광장은 특정 단체가 아니라 전체 시민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서울시의 주장은 광화문 광장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 진영 논리에 따라 예외를 두게 되면 법치는 무너진다. 서울광장에 무단으로 천막을 설치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 그런 처지에 불법을 저지른 당사자들이 거꾸로 서울시를 향해 삿대질을 해댄다. 이런 모순이 없다. 서울광장 천막 논란은 법치의 원칙이 무너지면 어떤 사태가 일어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경향신문]
10. 2월 국회는 구체제 청산 개혁입법에 집중하라
2월 임시국회가 문을 열었다. 이번 회기에서 제 정당이 할 일은 명백하다. 현재 국정 마비 상황을 불러온 과거 적폐를 해소할 개혁입법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는 100일 가까이 계속된 촛불집회의 명령이다. 더욱이 2월은 정치 일정이 거의 없어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하는 데 적기다.
여야 모두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개혁입법 처리를 공언해왔다. 막상 1월 들어서면서 새누리당에서는 분당 사태가 벌어져 바른정당이 떨어져 나왔다. 국민의당은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하느라 바빴다. 주요 개혁입법 처리 ‘0건’이라는 성적표는 촛불시민 앞에서 내밀기에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대선 구도의 불확실성도 줄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이 받아들여질 경우 치르게 될 다음 대통령을 뽑기 위한 절차가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후 60일 동안 정치권은 물론 시민 시선도 대선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사이에 낀 2월 임시국회는 적폐해소의 골든타임이다. 어떤 개혁안을 처리할지도 대체로 드러나 있다.
대통령 탄핵 사태를 불러온 구시대적 관행과 잘못을 바로잡는 게 먼저다. 정치·재벌·검찰·언론이 바로 서지 않으면 현 상황은 재연될 것이다. 재벌개혁을 위한 경제민주화 법안, 검찰개혁을 위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법, 세월호 침몰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 등 되풀이되는 사회적 참사를 막을 특별법 등이 우선이다. 정권만 바뀌면 언론의 인사와 논조가 뒤집히는 사태를 막기 위한 언론장악방지법, 정치개혁에 물꼬를 틀 선거연령 18세로 하향 조정 등도 처리해야 한다.
우려스러운 쪽은 여당이다. 촛불집회와 개혁입법에 거부감을 가진 친박계만 남은 새누리당이 2월 임시국회에 협조하지 않을 태세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어제 라디오에 출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허탈감을 갖고 실망해서 처음에 나온 촛불이 지금 다른 단체라든지 어떤 다른 세력에 의해 작동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진 분도 많이 계신 것 같다”고까지 말했다.
다만 야당 172석과 개혁적 보수를 자처하는 바른정당 32석을 합치면 204석으로, 재적 과반이다. 이들이 합의하면 23일과 다음달 2일로 예정된 본회의에서 개혁법안들을 처리할 수 있다. 연인원 1100만 촛불시민의 요구를 법과 제도로 완성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을 정치권이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초동여담] 소시지, 똥개, 心
소시지 하나에 하나 더. 녀석은 결국 소시지 두 개를 날름 잡수고서야 손, 아니 발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소시지 하나에 왼발, 또 하나에 오른발인 셈이다. 손! 손! 손!을 외치던 우리 가족은 그제야 미소를 찾았다.
설 연휴에 찾은 목포 누이집에서다. 오랜만에 해후한 녀석은 쌀쌀맞았다. '똥개가 비싸게 굴기는 ….' 녀석이 삐질까봐 입 밖으론 꺼내지 않았다. 누이 주장대로 진돗개 후손이라는 녀석은 눈치 백 단이다. 그나마 '천하장사' 소시지여서 두 개로 끝난 거다. 입에 안 맞는 '꼬마장사' 소시지면 세 개쯤 들이밀어야 겨우 마음을 열어줄 터. 그러니 '두 개로 끝내줘서 고맙다'며 넙죽 절이라도 올려야 하나.
실은 이게 다 헛수고다. 이제 헤어져 다시 만날 때면 녀석은 또다시 쌀쌀맞게 굴 것이다. 눈치 백 단이 하품을 해댄다. '개 마음을 얻기가 어디 그리 쉬운지 알았어' 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마음이란, 어쩌면 돈으로 겨우 살 수 있는 것. 견심(犬心)뿐 아니라 인심(人心)도 그렇다. 머리 굵은 조카들은 세뱃돈을 넉넉히 쥐어줘야 조금은 살가운 척한다. '그래, 요즘 뭐하고 지내니 …' 따위의 질문은 장문이건만 돌아오는 대답은 '네, 아니오' 단문이다. 그마저도 몇 차례 오가면 침묵이 끼어든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소원한 관계'를 탓할 일도 아니다. 한 집에서, 한 방에서 뒹구는 자식들도 아빠와 엄마에게 내비치는 마음의 크기가 다르다. 초승달(아빠)과 보름달(엄마)이랄까. 장난감이 아쉬울 때는 아빠에게 달라붙지만 졸음이 몰려올 때는 엄마 품을 파고든다. 용돈이 궁할 때는 "아빠 돈 좀 …"이라고 말을 걸지만 대화가 궁할 때는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간다. 이것이 이 땅의 애비된 자들의 숙명이다. '배 아파 낳지 않았을 뿐 내가 어찌 지들을 키웠는데 …'라며 서운해봤자다. 생물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엄마보다 마음을 덜 쓴 탓이니 어쩌겠나.
마음이란, 어쩌면 돈으로도 결코 살 수 없는 것. 구복심불복(口服心不服)이라고, 우리 삶이 그렇다. 입은 열되 마음은 쉬이 열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강자 앞에서는 누구나 머리를 조아리지만 마음까지 허락하지 않는다. 권력자에게 자신의 운명을 잠시 의탁해도 언제든 때가 되면 제 갈 길을 찾는다. 그러니 인재를 구하려면 마음부터 얻어야 하는 법.
유비는 삼고초려 끝에 제갈량을 끌어안았고, 유방은 한신을 곁에 두고서 천하를 품을 수 있었다. 반면에 피카소는 11명의 공식ㆍ비공식 연인들을 뒀음에도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허락하지 않는 '뿌리 없는 삶'을 살았다. 스페인 철학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사람을 얻는 240개의 마법>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나의 마음을 열어 상대방의 마음을 잡아라"다.
연말 조직 개편 이후 기업마다 연초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새로운 만남은 으레 불편과 불안을 동반하지만 그 '마음'에 따라 표정이 엇갈린다. 마음이 통하는 선배(또는 상사)를 만난 후배들은 발걸음이 가볍다. 마음을 닫은 선배와 일해야 하는 후배들은 출근길이 지옥길이다. 그러니 뒷담화는 기본이요 '마음 속 사표'는 옵션이다. 그런 조직이 제대로 항해할 리도 없다.
그래서다. 좋은 조직의 필수조건은 무소불위의 권위도, 임전무퇴의 추진력도, 군계일학의 아이디어도 아니다. 결국은 아랫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 이를 위해 윗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기꺼이 내주는 것. 그러지 않고서는 권위도, 추진력도, 아이디어도 무용지물이다. 이것이 이 시대의 곧은 진리다.
2. [아시아경제]일터삶터] 삼계탕과 닭도리탕
"누나, 저도 삼계탕 좋아하는데 …". 삼계탕도 아닌 닭도리탕을 해먹는데 불현 듯 귓전에 돋아난 음성. 별 친분도 없던 20대 초반의 청년. 여럿이 함께한 한 번의 식사와, 수업 사이 마주침에 호응했던 짤막한 인사.
여행을 위해 탐색한 곳의 체류를 늘리고 목적을 어학연수로 변경했다. 애써 가라앉히던 생존강박이 잠시 수면위로 나온 것이다. 깊은 고민 없이 선택한 어학원에는 나와는 이십 년 가까운 터울의 타국과 한국 청년들로 그득했다.
오래 앓아 온 내 지병 중엔 '상상공감'이란 게 있다. 깊이 사정을 알지 못함에도 저간의 상황과 상상으로 입장을 가늠해보다 덜컥, 때로 지나치게, 공감을 품게 되는. 그러니까, 타국의 어학원에서 다양한 타국 청년들 사이 빛나던 한국 청년들에게도 그랬던 것이다. 그 명민함들이 뿌듯했고 밝음이 부러웠고 고민들이 보여 안쓰러웠고 너무나 건실함에 착잡했다.
한창 무모할 수 있는, 무모해야 할 20대가 아닌가. 타국의 또래들은 저토록 마음껏 무모하고 스스럼없이 무례한데, 이런 규수들과 샌님들이라니. 그다지 다르지 못한 내 20대가 겹쳐져 괜히 더 안타까웠을 게다.
'안녕하세요. 언니~', '안녕하세요. 누나~'. '세상에 공짜 없다'를 몸소 마음속 겪어온 나로선 그들의 무상(無償) 예의에 나보다 힘든 사람의 것을 얻어 쓰는 듯 겸연쩍었다. 빚이 이래저래 늘어가는 기분이었다. 당시 나름의 빚 갚는 방식은 음식을 해서 나눠 먹는 것이었다. 아직은 요리가 익숙지 않을 나이에 타국에서 스스로 매 끼니를 해결한다는 게 쉬울 리가 있나.
내 것을 만들 때 양을 더해 같은 숙소에 머무는 어린 친구들과 나눠 먹곤 했다. 기회를 만들어 몇몇을 초대해 파티를 열기도 했다. 타국 친구들을 부르기도 했지만, 한국 친구들이 우선이었다.
친한 녀석들의 배고프단 말에 흔들려, 혼자 몸보신할 요량으로 한국서 가져간 백숙용 약재를 죄 털어 넣어, 삼계탕 파티를 연 적이 있다. 다음날, 어학원에서 마주친 H가 다짜고짜 서운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누나 저도 삼계탕 좋아하는데 …", "아 미안, 다음엔 초대할 게." 덜컥 미안했다가, 이내 볼멘 심상이 생겨났다. '어떻게 수십 명을 다 불러?'
'다음엔 초대할게'란 의례적인 말은 '닭도리탕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변해 마지막까지 압박이었다. 유례없이 푹푹 찌는 긴 여름은 그곳도 마찬가지였고 에어컨도 없이 오래 불을 쓰고 파티를 한다는 게 도무지 말이 안 돼 냉국수나 만들어 몇몇과 식사만 몇 번 하고 말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일주일 후, 페이스북에 연결된 친구를 통해 H의 포스팅이 떠올랐다. 그가 아닌 그의 누나가 올린 것이었다. "2016년 9월 00일. 너무 예쁘고 의젓하고 착한 OO이가 다시는 올 수 없는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 횡경막께가 잠시 일렁였다.
'아까워라 …' 도무지 무엇이 아까운지 분명치 않은 채 머리와 입안을 맴돌았다. H의 페이스북 담벼락엔 애통함이 담긴 친구들의 애도 글 아래, 불과 얼마 전 그가 포스팅한, 청년답게 개구진 글들과 여행지의 사진들이 있었다. 사진 속 그는 여전히 생생한
눈빛으로 화면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리움을 영사할 기억 하나 없고 비통할 수 있는 친분도 관계도 아닌, 그저 '아는 청년'의 비보였다.
명절은 신정에 이미 지냈으니, 설 연휴기간 먹을거리를 위해 장만 미리 봐 뒀다. 연휴 중 하루, 냉장고 속 재료를 꺼내 닭도리탕을 만드는데 불쑥 H가 떠올랐다. 우연인지 어떤 무의식이 작용했던지, 그 9월 이후 삼계탕도 닭도리탕도 해먹지 않고 있었고, 그날이 처음이었다.
손질한 재료를 냄비에 넣어 불 위에 올리고 불 조절을 위해 서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는 유리 너머에 까닭 흐린 '아까움'이 보글거렸다.
3. [조선일보][일사일언] 수의엔 주머니가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지난 연말이다.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바쁜 세밑, 왕복 하루가 꼬박 걸리는 지방에까지 오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뒤늦게 알게 된 지인들이 죄인을 만들었다고 원망한다. 부친상만큼은 알리는 게 도리라고 했다. 그런 원망을 들으면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아버지와 유난히 친했다. 평생 싫은 소리를 안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며느리들에게까지 인기가 좋았다. 그런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늘 원망과 한숨의 대상이었다. 나는 안다. 살아오면서 온갖 궂은일은 어머니 몫이었다. 유산 갈등에서도 아버지는 당신의 형제에게 대폭 양보했다. "장남이 책임만 지고 권리를 포기했다"며 어머니는 두고두고 원망하셨다. 일평생 샌님처럼 곱게 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는 요즈음 통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아버지의 무게는 컸다. 해마다 명절엔 부자지간 산행을 나섰다. 막걸리라도 한잔 걸치면 무척 행복해 하셨다. 몇 년 전 힘에 부쳐 산행 중단을 선언했을 때 우리 형제는 할 말을 잊었다. 영원한 이별이 가까워 왔음을 눈치 챈 것이다. 아버지는 당신의 몸을 소진시켜 우리를 키워내셨다. 일과도 바뀌었다. 마당 잔디는 걷히고 고추 묘목이 대신했다. 우렁찬 자목련은 고추밭에 그늘이 진다는 이유로 싹둑 잘렸다. 우리가 불평이라도 하려 치면 가만히 응답했다. "세월이 답이다. 늙어봐라. 꽃보다도 고추·상추 키우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뜨거운 불이 들어가는 것을 오열 속에 지켜보길 두어 시간, 유골함이 전해졌다. 당신의 마지막을 담은 상자는 놀랍도록 가벼웠다. 선산으로 가는 길, 내 몸에 전해지는 유골함의 따뜻함에 진저리쳤다. 천붕(天崩)이라고 하는 이유를 비로소 알았다. 잠을 설친 새벽,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손에 쥔다. 학창 시절 의미도 모르고 읽었던 책이 왜 위대한 고전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황제가 그토록 강조했던 진리를 아버지의 죽음으로 오늘 문득 깨달았다. 우리 모두 언젠가 빈손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수의에는 주머니조차 없다.
4.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얼큰하고 시원한 ‘대구탕’
대구(大口)는 회유성 한류 어종으로, 입과 머리가 크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겨울철 산란장인 가덕도, 진해만 등 동남해안에서 11월 하순에서 2월 중순까지 많이 잡힌다. 예전에 참으로 흔했던 대구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어획량이 급격히 감소해 서민 밥상에 오르기 어려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민과 당국의 오랜 노력으로 이제는 어획량이 늘어나 대구를 먹을 기회가 많아졌다. 대구는 회, 찜, 탕, 구이, 조림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알, 창자, 아가미로는 맛깔난 젓갈을 만들고 내장 곤이는 탕을 끓일 때 넣은 고급 재료로 대접받는다. 그래서 대구는 머리에서 꼬리까지 버릴 것이 없다고 한다.
대구 요리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메뉴가 대구탕이다. 해장국으로도 손꼽히는 메뉴다. 멸치 육수에 손질한 대구와 곤이, 무를 푸짐하게 넣고 소금, 간장 등으로 간을 해 끓인 다음 식성에 따라 미나리, 콩나물 등 야채를 넣고 파, 마늘, 고추, 양파 등 양념을 더하면 시원한 대구탕이 완성된다. 다대기를 풀어 얼큰한 매운탕으로도 즐길 수 있다.
대구탕으로 이름난 식당들은 주변에 꽤 있다. 생대구를 쓰면 맛이 더 낫다고 하지만, 한철 음식인 데다 가격도 높다. 그래서 굳이 생대구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러시아 캄차카 해역 등지에서 잡아 즉시 냉동하는 냉동대구로도 그 맛을 즐길 수 있다. 해동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로 대구탕은 이제 계절 불문하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대구탕을 맛깔스럽게 끓여내는 음식점도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별관 뒤편 정우빌딩 지하 1층에 ‘뒤풀이’라는 대구탕집이 있다. 이름 그대로 아침 해장 손님이 많다. 대구 뼈와 머리로 국물을 우려내 얼큰하고 시원하다. 큰 양푼대접에 식감 좋은 대구 살이 푸짐하게 나온다. 마니아들은 대구머리탕을 선호한다. 시원한 국물은 무한 리필이다. 값싸고 푸짐해서 가성비에 감동하게 되는 집이다.
여의도역 인근 신송빌딩 지하에는 ‘신송한식’이라는 또 다른 대구탕 맛집이 있다. 큰 양푼대접에 대구, 무 그리고 파만 약간 더해 나오는데, 대구 육질이 좋고 국물도 칼칼하고 시원하다. 식사는 물론 해장국으로도 일품이다. 머리탕, 내장탕도 있다. 점심시간에는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다.
삼각지역 인근 대구탕집이 모여 있는 골목 안에 ‘원대구탕’이 있다. 1975년 개업한 삼각지 대구탕의 원조집이다. 처음에는 국방부, 육군본부가 인접해 있어 군인들이 많이 찾았다. 넓적한 냄비에 탕을 담아 식탁에서 직접 끓여 준다. 대구, 내장, 미나리, 콩나물 등에 매운 양념을 더해 다소 진한 맛이다. 매운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손님들에게는 지리로도 요리해 준다. 대구 아가미 젓갈 등 반찬도 괜찮다. 밥을 볶아먹기도 하나, 탕 국물에 말아 먹는 것도 별미다.
서울역 바로 건너편 동자동 골목길에는 ‘맛고마 대구탕’이 있다. 전남 함평 출신의 1965년생 사장이 1999년 개업한 집이다. 고향에서 어머니가 깻잎, 김치 등 밑반찬을 지금도 보내 주신다. 뚝배기에 졸깃한 대구살과 맑은 국물의 대구탕이 나온다. 대구 머리와 뼈로 낸 육수는 시원하고 담백하고 깔끔하다.
차가운 바람이 유난히 더 차갑게 느껴지는 올겨울이다. 대구탕은 이제 사철음식이 됐지만, 그래도 역시 겨울에 먹어야 제격이다. 요즘처럼 이런 날씨에는 더욱 그렇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버트런드 바셀의 '사랑'
95세의 버트런드 러셀은 자서전(1967~69년 출간, 송은경 옮김, 사회평론) 프롤로그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의 첫 문장을 이렇게 썼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마치 거센 바람과도 같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나는 사랑을 찾아 헤매었다. 그 첫째 이유는 사랑이 희열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얼마나 대단한지 그 기쁨의 몇 시간을 위해서라면 남은 여생을 모두 바쳐도 좋으리라 종종 생각한다. 두 번째 이유는 사랑이 외로움- 이 세상 언저리에서, 저 깊고 깊은 차가운 무생명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몸서리치도록 만드는 그 지독한 외로움-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인들과 시인들이 그려온 천국의 모습이 사랑의 결합 속에 있음을, 그것도 신비롭게 축소된 형태로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추구한 것이며, 비록 인간의 삶에서 찾기엔 너무 훌륭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나는 결국 그것을 찾아냈다.”
일전에 본 스탕달과 달리, 그는 4번의 결혼(3번의 이혼)을 포함, 여러 다채롭고 격정적인 연애를 경험했다. 그 연애들 사이사이 공백기를 그는, 노벨 문학상(1950) 작가의 저 실감나는 외로움의 묘사에서 엿보이듯, 힘겨워했다. 물론 그 고통의 시간은 대개 그리 길지 않았고, 그는 외로움에 앙갚음하듯 뜨겁게 사랑했다.
뿌리가 휘그당의 처음에 닿아 있는 자유주의 전통의 백작가 차남으로 태어나 근대 100년을 거의 채워 사는 동안, 수학자로, 철학자로, 역사가로, 그리고 반전ㆍ반핵 평화운동가로 인류 지성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그였다. 초년의 스승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의 첫 영역으로 꼽았던 내면적 의식의 자유, 즉 양심과 생각과 감정과 의견과 주장의 자유를 그는 생애 내내 실천했다.
그런 그가 생의 말년 자서전의 첫 줄을 저렇게 시작한 것은, 사랑에 대한 사랑 고백이었을 것이다. 그의 자서전은 스탕달의 연애론보다 훨씬 알찬 연애론이기도 하다. 그건 이성이 경험을 통해 감성과 결합함으로써 빚어낸, 좌절과 성취의 고백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1970년 2월 2일 98세로 별세했다.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끝내 중도사퇴로 마감한 반기문 전 총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결국 대권도전 의지를 접고 말았다. 어제 기자회견을 갖고 불출마 방침을 전격 선언했다. 그는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에 지극히 실망했다.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됐다”는 실망감의 표현으로 국내 정치 풍토에 그 이유를 돌렸다. 유엔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나 지난달 12일 귀국과 함께 본격 행보를 해오다가 불과 20일 만에 포기 선언에 이른 것이다.
반 전 총장이 바로 전날만 해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개헌추진협의체 구성 방안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갑작스런 중도 사퇴는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더욱이 지난 설날 연휴를 전후로 여러 정치인들을 만나면서 보폭을 넓혔던 상황이다. 최근 지지율이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긴 하지만 선거판에 늦게 뛰어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완주할 만한 여건이었다. 하지만 역전이 어렵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이처럼 사태가 돌변하기까지는 처음부터 반 전 총장이 국내정치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판단한 측면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냈으므로 귀국하게 되면 여야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았는데도 보수진영을 대표해 지지도가 다른 예비후보들보다 높게 나왔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지난 연말 ‘최순실 게이트’가 확대되기 전까지의 분위기가 그러했다.
그러나 정치 현실은 냉혹했다. 그가 개헌을 매개로 삼은 ‘빅텐트’ 구상으로 여야를 아우르려 했지만 이해 당사자들을 설득하는데 한계를 실감해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일정에 따라 조기 대선 시계가 빨라지는 판국에 개헌을 먼저 하자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주장이었다. 여기에 자신의 과거 의혹을 검증하겠다고 달려드는 눈초리들도 차마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반 전 총장은 처음부터 출마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게 바람직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그냥 사회 원로로 남아 있는 편이 훨씬 좋을 뻔했다. 그의 높은 뜻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우리 정치판도 문제지만 그 역시 정치 현실을 너무 쉽게 여겼다는 질책을 피할 수는 없다. 앞으로 대선 판도가 확연히 달라지게 됐다는 점을 떠나서도 중도 사퇴에 이른 그의 정치 행보가 아쉬운 이유다.
2. 모처럼의 수출 호조, 그러나 낙관은 이르다
수출이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전년 동월 대비 2.3%, 12월 6.4% 증가로 회복 기미를 보이더니 1월에는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며 3달 연속 늘어났다. 두 자릿수 증가율은 2013년 1월 이후 무려 4년 만이다. 우울한 우리 경제에 모처럼 단비 같은 소식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월 수출은 전년 동월보다 11.2% 늘어난 403억 달러를 기록했다. 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상품과 석유화학제품이 증가세를 주도했다. 수입도 18.6% 늘어나 371억 달러를 나타냈지만 무역수지는 32억 달러 흑자다. 60개월이나 연속 흑자 행진중이다.
고무적인 것은 ‘사드 보복’의 한한령(限韓領)으로 상황이 어려워진 중에도 중국 수출이 13.5%로 3년 5개월 만에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동남아, 일본, 유럽연합, 인도 등 대부분 지역에서 증가세가 이어진 것도 긍정적이다. 화장품·의약품 등 새로운 효자 품목의 등장과 중소·중견기업의 선전도 의미가 크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는 2년 연속 깨졌던 무역 1조 달러 회복도 기대할 만하다.
하지만 아직 낙관은 이르다. 두 자릿수 증가는 지난해 1월 수출이 가라앉았던 기저 효과의 영향이 크다. 게다가 수출 환경은 온통 먹구름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와 미·중간 무역 분쟁이 본격화하면 우리가 희생양으로 직격탄을 맞을 공산이 크다. ‘한한령’이 본격화되면 중국 수출도 한순간에 꺾일 수 있다. 영국의 ‘하드 브렉시트’ 추진, 북한 핵 등도 우리 수출엔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수출은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다. 정부를 비롯한 모든 주체들이 함께 지혜를 모아 살아나기 시작한 수출 회복의 불씨를 살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통상외교를 강화하고, 기업은 수출 품목 및 시장의 다변화 등 수출 구조의 혁신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현재 58%인 수출의 부가가치율을 미국과 일본처럼 80% 이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제도 남아 있다.
정치권도 이번 임시국회에서 경제활성화 관련법안 처리로 수출 진흥을 뒷받침해야 함은 물론이다. 대권 주자들도 수출을 늘리고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내놓고 경쟁하기를 바란다.
[매일신문]
3. 제 편하자고 지역 중소업체 입찰 막은 경북개발공사
경북개발공사가 안동 도청 신도시 공공임대주택 건립 공사에 지역 중소시설 업체의 입찰을 가로막아 말썽이다. 경북개발공사는 전기`통신`소방시설 등의 공사를 분리 발주하지 않고 통합 발주해 사실상 대기업에 공사 전체를 몰아주려 한다는 것이다. 경북도 산하 공기업이라면 지역 중소업체의 어려움을 헤아려야 하는데도, 입찰 기회조차 차단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경북개발공사가 지난해 말 입찰 공고를 낼 때부터 말썽은 예견돼 있었다. 경북개발공사는 입찰을 ‘기술 제안’ 방식으로 하고 참가 자격도 시공 능력 공시액 1천억원 이상 업체로 정했다. ‘기술 제안’ 방식은 상징성`기념성`예술성 등이 필요하거나 어려운 기술이 필요한 시설물 공사에 적용하는 것인데, 임대주택 공사에 반드시 필요한지 의문스럽다.
불합리한 입찰 방식에 지역의 전기`통신`소방시설 업체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역 중소기업의 입찰 자격을 박탈하고 건설 분야 대기업의 배만 불리는 방식”이라는 중소업체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중소업체들은 가뜩이나 불경기로 일감이 없는 상황에서 공기업의 입찰마저 가로막혔으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경북개발공사는 적법한 입찰 방식이라며 고칠 생각이 없다. 경북개발공사 측은 “공사를 관리`감독할 만한 담당자가 한두 명뿐이어서 설계부터 시공까지 한몫에 해결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해명했다. 이는 대기업에 일괄 발주하면 편하게 관리`감독할 수 있는데, 굳이 소규모 업체에 발주해 불편함을 떠안기 싫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기업이라면 모를까, 공익을 우선하는 공기업의 해명치고는 너무나 저급하다.
경북개발공사는 도청 신도시의 땅장사를 벌여 지난해 상반기에만 2천억원 가까운 순이익을 얻었다. 그 엄청난 수익에 비해 전기`통신`소방시설의 공사비 총액이 236억원에 불과해 푼돈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영세업체에는 사활이 걸린 금액이다. 입찰 마감일이 13일까지라고 하니 입찰 방식을 고쳐야 한다. 지역 중소업체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공기업은 존재 의미가 없다.
4. 신라왕경 복원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천년고도 경주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문화의 국격을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특별법 제정이 드디어 가시권 안으로 들어왔다.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에 관한 특별법’이 가결 정족수를 넘는 공동 발의자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김석기 새누리당 의원(경북 경주)은 신라왕경 복원 특별법 발의를 위한 국회의원 서명을 163명 받아냈다고 1일 밝혔다. 전체 국회의원 수 300명의 54.3%에 해당하는 숫자다. 공동 발의자 수가 가결 정족수를 넘어섰기 때문에 특별법이 발의돼 상정되기만 하면 국회 통과는 따 놓은 당상인 셈이다.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는 지역 최대 현안 중 하나로 꼽힌다. 신라 왕궁 등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적임에도 불구하고 여태것 체계적 복원`정비가 이뤄지지 않았다. 유적 복원에 대한 마인드가 결여된 탓도 있지만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경주시 등은 2025년까지 9천450억원의 사업비가 투자되는 신라왕경 복원 계획을 수립했다. 왕궁인 월성과 황룡사`월정교 복원, 쪽샘지구 발굴`정비 등 모두 8개 부문에 이르는 대규모 국책 사업이다. 그러나 워낙 대형 프로젝트인지라 지방자치단체의 역량만으로는 추진에 한계가 있었고 안정적 사업비 마련도 불투명했다. 따라서 사업 추진을 위한 법적`제도적 토대 마련을 위한 특별법 제정 목소리가 높았지만 정부의 무관심 속에 진척이 없었다.
이번에 신라왕경 복원 특별법이 160여 명의 공동 발의자를 확보한 데에는 김석기 의원의 역할이 컸다. 당론으로 발의한 법안이 아닌, 개별 의원 법안에 대한 공동 발의자 수로는 역대 최고라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탄핵이라는 정국 혼란 속에서 지역 현안 해결에 적극 나서서 성과를 도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신라왕경 복원 특별법 국회 통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잇따른 지진 여파로 가뜩이나 고초를 겪고 있는 경주 시민들에게 모처럼 전해진 낭보가 아닐 수 없다. 늦었지만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사업을 촉진해 경주가 세계 최고의 역사 문화자원 도시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매일경제]
5. 반기문 대선 불출마를 바라보는 아쉬움, 씁쓸함, 다행스러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대통령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비정치인으로서 기성 정치권에 새바람을 불어넣어줄 것이란 기대가 무너진 데 대한 아쉬움이 우선 크다. 반 전 총장은 "정치권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가짜 뉴스가 판치는 우리 정치권이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다. 정치판을 새롭게 개편하려던 그의 시도가 좌절됐다 해도 정치권 개혁 노력은 중단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반 전 총장 지지율은 한때 25%에 육박하기도 했지만 귀국 후 줄곧 하락하다가 15% 선으로 추락했는데 그가 자초한 측면도 크다. 정치 교체와 국민 대통합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어느 정당이든 모셔가 주기만 바라는 듯한 이른바 꽃가마 타기 전략을 엿보이기도 했는데 냉엄한 정치판에서 보자면 허황돼 보이는 모습이다.
설을 전후해 여야 지도자들을 두루 만나는 자리에서도 정책과 비전을 뚜렷이 제시하지 못하다 보니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정립하지 못하고 부평초처럼 겉돌기만 했다. 현실 정치의 높은 벽을 극복하기에는 결기가 부족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은 다행스러운 측면도 지닌다. 그는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됐다"고 했는데 말 그대로다. 처음부터 논란이 됐던 일이다. 유엔은 창설 초기인 1946년 '여러 나라 비밀을 취득할 수 있는 사무총장은 퇴임 직후 개별 회원국 정부직을 맡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 후 실제로 역대 사무총장 7명 중 퇴임하자마자 곧바로 반 전 총장처럼 자기 나라 공직선거에 뛰어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반 전 총장은 이 결의안의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점을 강조해왔는데 설혹 그렇다 해도 국제사회에서 신사협정을 어기는 행위는 우리나라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기도 하다. 늦었지만 다행스럽다고 판단하는 이유다.
이제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을 계기로 보수 진영은 보수 진영대로, 진보 진영은 진보 진영대로 정책·비전 경쟁을 통해 조속히 후보를 결정해 국민의 선택에 도움을 줘야 할 일이다.
6. 트럼프의 환율전쟁…글로벌 금융시장 혼란을 주시한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글로벌 환율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저께 백악관에서 제약업계 경영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과 일본이 수년간 무슨 짓을 했는지 보라"며 "이들은 시장을 조작했고 우리는 얼간이처럼 지켜보고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이 유로화 가치를 절하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을 착취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시장은 화들짝 놀랐다. 달러화 가치는 두 달 만에 최저로 떨어졌고 엔화 가치는 급등했다. 달러 대비 원화값은 어제 개장 초 12원 넘게 뛰었다 장 후반 상승 폭이 줄었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중 줄곧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불공정 무역을 응징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제 일본과 독일을 비롯해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큰 주요 교역 파트너들을 싸잡아 비난하며 맹렬한 통상 공세를 예고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해 10월 이 세 나라와 더불어 한국, 대만, 스위스를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다. 연간 대미 무역흑자가 200억달러를 넘고 경상수지 흑자와 외환시장 개입 규모가 각각 국내총생산(GDP) 대비 3%와 2%를 넘으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데 한국은 시장 개입 규모가 작아 가까스로 환율조작국 오명을 피했다.
하지만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곧 파상적으로 퍼부을 통상 공세의 주요 타깃 중 하나다. 우리는 2013년부터 4년 내리 연간 200억달러가 넘는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한 만큼 대미 교역과 투자 전략의 근본적인 재조정을 통해 흑자 규모를 적절히 관리해야 통상 압력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GDP 대비 7%가 넘는 경상수지 흑자를 장기균형(3~4%) 수준으로 줄여갈 수 있도록 내수 부문을 더 키우는 것도 긴요하다.
또한 트럼프발 환율전쟁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대혼란을 불러올 수 있는 만큼 그에 대한 대비도 빈틈이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 환율 변동성이 지나치게 커지거나 급격한 자본 유출입이 국내시장을 교란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복잡한 글로벌 교역 구조를 고려하면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중에는 달러 가치가 되레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컨틴전시플랜을 짜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7. 최순실, 다른 해외 이권 넘본 것은 없나
최순실씨가 유재경 주(駐)미얀마 대사를 임명하는 데 관여했다는 특검 발표에 기가 막힌다. 삼성전기에서 일한 것이 유일한 경력인 유 대사다. 자격 미달에 가까운 ‘자기 사람’을 특정 국가 대사로 보낸 이유가 해외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서 뒷돈을 챙기기 위함이었다니 더욱 개탄스럽다.
최씨가 문화체육관광부 장·차관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등의 인사에 개입했다는 것은 특검 수사에서 드러난 바와 같다. 대사급 외교관 인사마저 좌지우지했다니 박근혜 대통령 위에 최씨가 군림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지 않으면 비정상일 지경이다.
직업 외교관이 아닌 사람을 해외 공관장에 임명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대사 후임에 투자회사 대표인 윌리엄 하가티를 기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케네디 대사도 이전에는 외교와 무관한 직함을 가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어느 때보다 미·일 동맹을 굳건히 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나라에는 15명 남짓한 특임 공관장이 있다. 그런데 전대주 전 베트남 대사에 이어 유 대사마저 비선 실세가 임명했다는 의심이 깊어진다. 이쯤 되면 최씨와 관련 없는 특임 공관장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특검의 시각은 이렇다. 정부는 760억원을 들여 양곤에 컨벤션센터를 지어 한류의 거점으로 삼는 ‘K타운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최씨는 사업을 주도한 업체의 지분을 차명으로 받아 이권을 챙기려 했다. 처음부터 타당성이 부족했던 사업은 결국 무산됐지만, 유 대사 임명은 이 사업을 본궤도에 오르게 하려는 포석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특검의 추정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다른 나라의 비(非)외교관 출신 해외 공관장들이 국익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때 우리 특임 공관장은 비선 실세의 돈주머니를 채우고자 여념이 없었던 꼴이다.
최씨의 이권 개입이 다른 사업도 아닌 ODA를 노렸다는 것은 당황스럽다. 결과적으로 적지 않은 기대를 가졌을 상대국과 그 국민을 기만했기 때문이다. ODA는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 발전 및 복지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유·무상 원조를 말한다.
올해 우리나라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거쳐 집행하는 원조는 아시아·태평양, 아프리카, 중남미, 중동·중앙아시아 지역을 합쳐 3354억원에 이른다. 미얀마에는 170억원이 편성돼 있다. 최씨가 넘본 이상 ODA를 포함한 정부의 해외 사업 전반에 의심스러운 대목이 없는지 철저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8. 속속 드러나는 박 대통령의 ‘커다란 산’ 같은 거짓말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단의 ‘헌법재판소 흔들기’가 도를 넘고 있다. 박 대통령 측 이중환 변호사는 어제 열린 10차 변론에서도 박한철 전 헌재 소장의 ‘3월 13일 이전 선고’ 발언을 거론하며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재벌 그룹 회장 등 15명의 증인을 무더기로 신청하면서 “헌재가 대통령 측이 신청한 증인을 채택하지 않고 검찰 수사기록에 의존하는 것은 국회 측에는 예리한 일본도를, 대통령 측에는 둔한 부엌칼을 각각 건네며 공정한 진검승부를 하라는 것과 같다”는 말까지 했다. 이미 증언한 최순실 씨와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까지 ‘재탕 신청’한 것은 누가 봐도 ‘탄핵심판 지연 전술’에 해당한다.
박 대통령은 특검 조사까지 거부할 명분을 찾는 모양새다.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특검에 구속 기소된 인사들의 공소장에 박 대통령과의 공모 혐의가 적시돼 있다는 이유로 대면조사를 위한 사전 협의를 불편해한다고 한다. 지난달 25일 인터넷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특검 조사에는 임할 생각입니다”라는 답변과는 영 딴판이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압수수색도 거부하고 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지만 피의자 신분이라는 걸 망각한 듯한 모습이다.
박 대통령은 탄핵심판 지연 전술이 유리하다고 볼지 모르나 특검의 조사가 진행될수록 박 대통령의 거짓 해명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최근 인터뷰에서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인사 추천’이 문화 쪽 외에는 없었다고 강조했으나 특검은 최 씨가 유재경 주미얀마 한국대사의 임명에 깊숙이 개입한 사실을 밝혀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를 “거짓말로 쌓아올린 커다란 산”이라고 주장한다. 이만저만한 적반하장이 아니다.
박 대통령 측은 또 “최 씨와 고영태 씨의 불륜이 이번 사건의 발단이며 고 씨가 자기 이익을 위해 (언론에) 왜곡 제보했다”는 주장도 폈다. 박 대통령과 대리인단은 3월 13일과 이달 말을 학수고대하는 모양이다. 3월 13일이 지나면 헌재 재판관 2명만 기각해도 탄핵은 기각된다. 이달 28일이면 특검의 1차 수사기간이 만료된다. 하지만 박 대통령 측의 지연 전술이 계속되면 야당의 특검 연장 요구도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일보]
9. “광장 불법 점유” 서울시 주장, 왜 공허하게 들리나
서울광장의 천막 설치를 놓고 서울시와 일부 보수단체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강태웅 서울시 대변인은 그제 “(보수단체 천막과 분향소는) 신고도 하지 않고 광장을 점유하고 있다”며 “행정 대집행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양측의 대립은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등 50여개 보수단체가 참여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가 지난달 21일 서울광장에 천막 40개동을 설치해 천안함 희생자 등을 추모하면서 시작됐다. 30일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무효를 요구하며 투신한 조모(61)씨의 분향소를 추가로 설치하는 과정에서 이를 저지하는 서울시 측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서울시는 “광장은 한 단체가 아닌 여러 시민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광장을 사용하려면 ‘서울특별시 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등에 따라 사용 신청을 해야 한다. 서울광장은 2월에만 6건의 사용 신청이 들어온 상태다. 일부 보수단체가 설치한 천막은 서울시로부터 사용 허가를 받지 못한 만큼 명백한 위법이다.
하지만 “서울광장 분향소는 불법”이라는 서울시 지적은 어쩐지 공허하게만 들린다. 사실 세월호 천막들로 난민촌을 연상시키는 광화문광장의 어지러운 모습은 서울시가 자초했다. 2014년 7월 세월호 유족들이 국민적인 추모 열기에 힘입어 무허가 천막 3개를 세웠을 때 철거하기는커녕 추가 설치를 지원하기까지 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묵인해줘 버린 것이다.
물론 국가적 책임이 있는 세월호 참사를 투신 자살한 60대의 사망 사건 등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국민적 상처로 자리 잡은 안타까운 사고는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치유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3년 가까이 광화문 광장을 점거하고 있는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광장은 특정 단체가 아니라 전체 시민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서울시의 주장은 광화문 광장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 진영 논리에 따라 예외를 두게 되면 법치는 무너진다. 서울광장에 무단으로 천막을 설치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 그런 처지에 불법을 저지른 당사자들이 거꾸로 서울시를 향해 삿대질을 해댄다. 이런 모순이 없다. 서울광장 천막 논란은 법치의 원칙이 무너지면 어떤 사태가 일어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경향신문]
10. 2월 국회는 구체제 청산 개혁입법에 집중하라
2월 임시국회가 문을 열었다. 이번 회기에서 제 정당이 할 일은 명백하다. 현재 국정 마비 상황을 불러온 과거 적폐를 해소할 개혁입법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는 100일 가까이 계속된 촛불집회의 명령이다. 더욱이 2월은 정치 일정이 거의 없어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하는 데 적기다.
여야 모두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개혁입법 처리를 공언해왔다. 막상 1월 들어서면서 새누리당에서는 분당 사태가 벌어져 바른정당이 떨어져 나왔다. 국민의당은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하느라 바빴다. 주요 개혁입법 처리 ‘0건’이라는 성적표는 촛불시민 앞에서 내밀기에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대선 구도의 불확실성도 줄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이 받아들여질 경우 치르게 될 다음 대통령을 뽑기 위한 절차가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후 60일 동안 정치권은 물론 시민 시선도 대선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사이에 낀 2월 임시국회는 적폐해소의 골든타임이다. 어떤 개혁안을 처리할지도 대체로 드러나 있다.
대통령 탄핵 사태를 불러온 구시대적 관행과 잘못을 바로잡는 게 먼저다. 정치·재벌·검찰·언론이 바로 서지 않으면 현 상황은 재연될 것이다. 재벌개혁을 위한 경제민주화 법안, 검찰개혁을 위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법, 세월호 침몰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 등 되풀이되는 사회적 참사를 막을 특별법 등이 우선이다. 정권만 바뀌면 언론의 인사와 논조가 뒤집히는 사태를 막기 위한 언론장악방지법, 정치개혁에 물꼬를 틀 선거연령 18세로 하향 조정 등도 처리해야 한다.
우려스러운 쪽은 여당이다. 촛불집회와 개혁입법에 거부감을 가진 친박계만 남은 새누리당이 2월 임시국회에 협조하지 않을 태세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어제 라디오에 출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허탈감을 갖고 실망해서 처음에 나온 촛불이 지금 다른 단체라든지 어떤 다른 세력에 의해 작동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진 분도 많이 계신 것 같다”고까지 말했다.
다만 야당 172석과 개혁적 보수를 자처하는 바른정당 32석을 합치면 204석으로, 재적 과반이다. 이들이 합의하면 23일과 다음달 2일로 예정된 본회의에서 개혁법안들을 처리할 수 있다. 연인원 1100만 촛불시민의 요구를 법과 제도로 완성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을 정치권이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초동여담] 소시지, 똥개, 心
소시지 하나에 하나 더. 녀석은 결국 소시지 두 개를 날름 잡수고서야 손, 아니 발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소시지 하나에 왼발, 또 하나에 오른발인 셈이다. 손! 손! 손!을 외치던 우리 가족은 그제야 미소를 찾았다.
설 연휴에 찾은 목포 누이집에서다. 오랜만에 해후한 녀석은 쌀쌀맞았다. '똥개가 비싸게 굴기는 ….' 녀석이 삐질까봐 입 밖으론 꺼내지 않았다. 누이 주장대로 진돗개 후손이라는 녀석은 눈치 백 단이다. 그나마 '천하장사' 소시지여서 두 개로 끝난 거다. 입에 안 맞는 '꼬마장사' 소시지면 세 개쯤 들이밀어야 겨우 마음을 열어줄 터. 그러니 '두 개로 끝내줘서 고맙다'며 넙죽 절이라도 올려야 하나.
실은 이게 다 헛수고다. 이제 헤어져 다시 만날 때면 녀석은 또다시 쌀쌀맞게 굴 것이다. 눈치 백 단이 하품을 해댄다. '개 마음을 얻기가 어디 그리 쉬운지 알았어' 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마음이란, 어쩌면 돈으로 겨우 살 수 있는 것. 견심(犬心)뿐 아니라 인심(人心)도 그렇다. 머리 굵은 조카들은 세뱃돈을 넉넉히 쥐어줘야 조금은 살가운 척한다. '그래, 요즘 뭐하고 지내니 …' 따위의 질문은 장문이건만 돌아오는 대답은 '네, 아니오' 단문이다. 그마저도 몇 차례 오가면 침묵이 끼어든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소원한 관계'를 탓할 일도 아니다. 한 집에서, 한 방에서 뒹구는 자식들도 아빠와 엄마에게 내비치는 마음의 크기가 다르다. 초승달(아빠)과 보름달(엄마)이랄까. 장난감이 아쉬울 때는 아빠에게 달라붙지만 졸음이 몰려올 때는 엄마 품을 파고든다. 용돈이 궁할 때는 "아빠 돈 좀 …"이라고 말을 걸지만 대화가 궁할 때는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간다. 이것이 이 땅의 애비된 자들의 숙명이다. '배 아파 낳지 않았을 뿐 내가 어찌 지들을 키웠는데 …'라며 서운해봤자다. 생물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엄마보다 마음을 덜 쓴 탓이니 어쩌겠나.
마음이란, 어쩌면 돈으로도 결코 살 수 없는 것. 구복심불복(口服心不服)이라고, 우리 삶이 그렇다. 입은 열되 마음은 쉬이 열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강자 앞에서는 누구나 머리를 조아리지만 마음까지 허락하지 않는다. 권력자에게 자신의 운명을 잠시 의탁해도 언제든 때가 되면 제 갈 길을 찾는다. 그러니 인재를 구하려면 마음부터 얻어야 하는 법.
유비는 삼고초려 끝에 제갈량을 끌어안았고, 유방은 한신을 곁에 두고서 천하를 품을 수 있었다. 반면에 피카소는 11명의 공식ㆍ비공식 연인들을 뒀음에도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허락하지 않는 '뿌리 없는 삶'을 살았다. 스페인 철학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사람을 얻는 240개의 마법>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나의 마음을 열어 상대방의 마음을 잡아라"다.
연말 조직 개편 이후 기업마다 연초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새로운 만남은 으레 불편과 불안을 동반하지만 그 '마음'에 따라 표정이 엇갈린다. 마음이 통하는 선배(또는 상사)를 만난 후배들은 발걸음이 가볍다. 마음을 닫은 선배와 일해야 하는 후배들은 출근길이 지옥길이다. 그러니 뒷담화는 기본이요 '마음 속 사표'는 옵션이다. 그런 조직이 제대로 항해할 리도 없다.
그래서다. 좋은 조직의 필수조건은 무소불위의 권위도, 임전무퇴의 추진력도, 군계일학의 아이디어도 아니다. 결국은 아랫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 이를 위해 윗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기꺼이 내주는 것. 그러지 않고서는 권위도, 추진력도, 아이디어도 무용지물이다. 이것이 이 시대의 곧은 진리다.
2. [아시아경제]일터삶터] 삼계탕과 닭도리탕
"누나, 저도 삼계탕 좋아하는데 …". 삼계탕도 아닌 닭도리탕을 해먹는데 불현 듯 귓전에 돋아난 음성. 별 친분도 없던 20대 초반의 청년. 여럿이 함께한 한 번의 식사와, 수업 사이 마주침에 호응했던 짤막한 인사.
여행을 위해 탐색한 곳의 체류를 늘리고 목적을 어학연수로 변경했다. 애써 가라앉히던 생존강박이 잠시 수면위로 나온 것이다. 깊은 고민 없이 선택한 어학원에는 나와는 이십 년 가까운 터울의 타국과 한국 청년들로 그득했다.
오래 앓아 온 내 지병 중엔 '상상공감'이란 게 있다. 깊이 사정을 알지 못함에도 저간의 상황과 상상으로 입장을 가늠해보다 덜컥, 때로 지나치게, 공감을 품게 되는. 그러니까, 타국의 어학원에서 다양한 타국 청년들 사이 빛나던 한국 청년들에게도 그랬던 것이다. 그 명민함들이 뿌듯했고 밝음이 부러웠고 고민들이 보여 안쓰러웠고 너무나 건실함에 착잡했다.
한창 무모할 수 있는, 무모해야 할 20대가 아닌가. 타국의 또래들은 저토록 마음껏 무모하고 스스럼없이 무례한데, 이런 규수들과 샌님들이라니. 그다지 다르지 못한 내 20대가 겹쳐져 괜히 더 안타까웠을 게다.
'안녕하세요. 언니~', '안녕하세요. 누나~'. '세상에 공짜 없다'를 몸소 마음속 겪어온 나로선 그들의 무상(無償) 예의에 나보다 힘든 사람의 것을 얻어 쓰는 듯 겸연쩍었다. 빚이 이래저래 늘어가는 기분이었다. 당시 나름의 빚 갚는 방식은 음식을 해서 나눠 먹는 것이었다. 아직은 요리가 익숙지 않을 나이에 타국에서 스스로 매 끼니를 해결한다는 게 쉬울 리가 있나.
내 것을 만들 때 양을 더해 같은 숙소에 머무는 어린 친구들과 나눠 먹곤 했다. 기회를 만들어 몇몇을 초대해 파티를 열기도 했다. 타국 친구들을 부르기도 했지만, 한국 친구들이 우선이었다.
친한 녀석들의 배고프단 말에 흔들려, 혼자 몸보신할 요량으로 한국서 가져간 백숙용 약재를 죄 털어 넣어, 삼계탕 파티를 연 적이 있다. 다음날, 어학원에서 마주친 H가 다짜고짜 서운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누나 저도 삼계탕 좋아하는데 …", "아 미안, 다음엔 초대할 게." 덜컥 미안했다가, 이내 볼멘 심상이 생겨났다. '어떻게 수십 명을 다 불러?'
'다음엔 초대할게'란 의례적인 말은 '닭도리탕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변해 마지막까지 압박이었다. 유례없이 푹푹 찌는 긴 여름은 그곳도 마찬가지였고 에어컨도 없이 오래 불을 쓰고 파티를 한다는 게 도무지 말이 안 돼 냉국수나 만들어 몇몇과 식사만 몇 번 하고 말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일주일 후, 페이스북에 연결된 친구를 통해 H의 포스팅이 떠올랐다. 그가 아닌 그의 누나가 올린 것이었다. "2016년 9월 00일. 너무 예쁘고 의젓하고 착한 OO이가 다시는 올 수 없는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 횡경막께가 잠시 일렁였다.
'아까워라 …' 도무지 무엇이 아까운지 분명치 않은 채 머리와 입안을 맴돌았다. H의 페이스북 담벼락엔 애통함이 담긴 친구들의 애도 글 아래, 불과 얼마 전 그가 포스팅한, 청년답게 개구진 글들과 여행지의 사진들이 있었다. 사진 속 그는 여전히 생생한
눈빛으로 화면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리움을 영사할 기억 하나 없고 비통할 수 있는 친분도 관계도 아닌, 그저 '아는 청년'의 비보였다.
명절은 신정에 이미 지냈으니, 설 연휴기간 먹을거리를 위해 장만 미리 봐 뒀다. 연휴 중 하루, 냉장고 속 재료를 꺼내 닭도리탕을 만드는데 불쑥 H가 떠올랐다. 우연인지 어떤 무의식이 작용했던지, 그 9월 이후 삼계탕도 닭도리탕도 해먹지 않고 있었고, 그날이 처음이었다.
손질한 재료를 냄비에 넣어 불 위에 올리고 불 조절을 위해 서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는 유리 너머에 까닭 흐린 '아까움'이 보글거렸다.
3. [조선일보][일사일언] 수의엔 주머니가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지난 연말이다.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바쁜 세밑, 왕복 하루가 꼬박 걸리는 지방에까지 오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뒤늦게 알게 된 지인들이 죄인을 만들었다고 원망한다. 부친상만큼은 알리는 게 도리라고 했다. 그런 원망을 들으면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아버지와 유난히 친했다. 평생 싫은 소리를 안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며느리들에게까지 인기가 좋았다. 그런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늘 원망과 한숨의 대상이었다. 나는 안다. 살아오면서 온갖 궂은일은 어머니 몫이었다. 유산 갈등에서도 아버지는 당신의 형제에게 대폭 양보했다. "장남이 책임만 지고 권리를 포기했다"며 어머니는 두고두고 원망하셨다. 일평생 샌님처럼 곱게 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는 요즈음 통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아버지의 무게는 컸다. 해마다 명절엔 부자지간 산행을 나섰다. 막걸리라도 한잔 걸치면 무척 행복해 하셨다. 몇 년 전 힘에 부쳐 산행 중단을 선언했을 때 우리 형제는 할 말을 잊었다. 영원한 이별이 가까워 왔음을 눈치 챈 것이다. 아버지는 당신의 몸을 소진시켜 우리를 키워내셨다. 일과도 바뀌었다. 마당 잔디는 걷히고 고추 묘목이 대신했다. 우렁찬 자목련은 고추밭에 그늘이 진다는 이유로 싹둑 잘렸다. 우리가 불평이라도 하려 치면 가만히 응답했다. "세월이 답이다. 늙어봐라. 꽃보다도 고추·상추 키우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뜨거운 불이 들어가는 것을 오열 속에 지켜보길 두어 시간, 유골함이 전해졌다. 당신의 마지막을 담은 상자는 놀랍도록 가벼웠다. 선산으로 가는 길, 내 몸에 전해지는 유골함의 따뜻함에 진저리쳤다. 천붕(天崩)이라고 하는 이유를 비로소 알았다. 잠을 설친 새벽,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손에 쥔다. 학창 시절 의미도 모르고 읽었던 책이 왜 위대한 고전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황제가 그토록 강조했던 진리를 아버지의 죽음으로 오늘 문득 깨달았다. 우리 모두 언젠가 빈손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수의에는 주머니조차 없다.
4.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얼큰하고 시원한 ‘대구탕’
대구(大口)는 회유성 한류 어종으로, 입과 머리가 크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겨울철 산란장인 가덕도, 진해만 등 동남해안에서 11월 하순에서 2월 중순까지 많이 잡힌다. 예전에 참으로 흔했던 대구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어획량이 급격히 감소해 서민 밥상에 오르기 어려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민과 당국의 오랜 노력으로 이제는 어획량이 늘어나 대구를 먹을 기회가 많아졌다. 대구는 회, 찜, 탕, 구이, 조림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알, 창자, 아가미로는 맛깔난 젓갈을 만들고 내장 곤이는 탕을 끓일 때 넣은 고급 재료로 대접받는다. 그래서 대구는 머리에서 꼬리까지 버릴 것이 없다고 한다.
대구 요리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메뉴가 대구탕이다. 해장국으로도 손꼽히는 메뉴다. 멸치 육수에 손질한 대구와 곤이, 무를 푸짐하게 넣고 소금, 간장 등으로 간을 해 끓인 다음 식성에 따라 미나리, 콩나물 등 야채를 넣고 파, 마늘, 고추, 양파 등 양념을 더하면 시원한 대구탕이 완성된다. 다대기를 풀어 얼큰한 매운탕으로도 즐길 수 있다.
대구탕으로 이름난 식당들은 주변에 꽤 있다. 생대구를 쓰면 맛이 더 낫다고 하지만, 한철 음식인 데다 가격도 높다. 그래서 굳이 생대구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러시아 캄차카 해역 등지에서 잡아 즉시 냉동하는 냉동대구로도 그 맛을 즐길 수 있다. 해동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로 대구탕은 이제 계절 불문하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대구탕을 맛깔스럽게 끓여내는 음식점도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별관 뒤편 정우빌딩 지하 1층에 ‘뒤풀이’라는 대구탕집이 있다. 이름 그대로 아침 해장 손님이 많다. 대구 뼈와 머리로 국물을 우려내 얼큰하고 시원하다. 큰 양푼대접에 식감 좋은 대구 살이 푸짐하게 나온다. 마니아들은 대구머리탕을 선호한다. 시원한 국물은 무한 리필이다. 값싸고 푸짐해서 가성비에 감동하게 되는 집이다.
여의도역 인근 신송빌딩 지하에는 ‘신송한식’이라는 또 다른 대구탕 맛집이 있다. 큰 양푼대접에 대구, 무 그리고 파만 약간 더해 나오는데, 대구 육질이 좋고 국물도 칼칼하고 시원하다. 식사는 물론 해장국으로도 일품이다. 머리탕, 내장탕도 있다. 점심시간에는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다.
삼각지역 인근 대구탕집이 모여 있는 골목 안에 ‘원대구탕’이 있다. 1975년 개업한 삼각지 대구탕의 원조집이다. 처음에는 국방부, 육군본부가 인접해 있어 군인들이 많이 찾았다. 넓적한 냄비에 탕을 담아 식탁에서 직접 끓여 준다. 대구, 내장, 미나리, 콩나물 등에 매운 양념을 더해 다소 진한 맛이다. 매운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손님들에게는 지리로도 요리해 준다. 대구 아가미 젓갈 등 반찬도 괜찮다. 밥을 볶아먹기도 하나, 탕 국물에 말아 먹는 것도 별미다.
서울역 바로 건너편 동자동 골목길에는 ‘맛고마 대구탕’이 있다. 전남 함평 출신의 1965년생 사장이 1999년 개업한 집이다. 고향에서 어머니가 깻잎, 김치 등 밑반찬을 지금도 보내 주신다. 뚝배기에 졸깃한 대구살과 맑은 국물의 대구탕이 나온다. 대구 머리와 뼈로 낸 육수는 시원하고 담백하고 깔끔하다.
차가운 바람이 유난히 더 차갑게 느껴지는 올겨울이다. 대구탕은 이제 사철음식이 됐지만, 그래도 역시 겨울에 먹어야 제격이다. 요즘처럼 이런 날씨에는 더욱 그렇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버트런드 바셀의 '사랑'
95세의 버트런드 러셀은 자서전(1967~69년 출간, 송은경 옮김, 사회평론) 프롤로그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의 첫 문장을 이렇게 썼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마치 거센 바람과도 같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나는 사랑을 찾아 헤매었다. 그 첫째 이유는 사랑이 희열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얼마나 대단한지 그 기쁨의 몇 시간을 위해서라면 남은 여생을 모두 바쳐도 좋으리라 종종 생각한다. 두 번째 이유는 사랑이 외로움- 이 세상 언저리에서, 저 깊고 깊은 차가운 무생명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몸서리치도록 만드는 그 지독한 외로움-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인들과 시인들이 그려온 천국의 모습이 사랑의 결합 속에 있음을, 그것도 신비롭게 축소된 형태로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추구한 것이며, 비록 인간의 삶에서 찾기엔 너무 훌륭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나는 결국 그것을 찾아냈다.”
일전에 본 스탕달과 달리, 그는 4번의 결혼(3번의 이혼)을 포함, 여러 다채롭고 격정적인 연애를 경험했다. 그 연애들 사이사이 공백기를 그는, 노벨 문학상(1950) 작가의 저 실감나는 외로움의 묘사에서 엿보이듯, 힘겨워했다. 물론 그 고통의 시간은 대개 그리 길지 않았고, 그는 외로움에 앙갚음하듯 뜨겁게 사랑했다.
뿌리가 휘그당의 처음에 닿아 있는 자유주의 전통의 백작가 차남으로 태어나 근대 100년을 거의 채워 사는 동안, 수학자로, 철학자로, 역사가로, 그리고 반전ㆍ반핵 평화운동가로 인류 지성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그였다. 초년의 스승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의 첫 영역으로 꼽았던 내면적 의식의 자유, 즉 양심과 생각과 감정과 의견과 주장의 자유를 그는 생애 내내 실천했다.
그런 그가 생의 말년 자서전의 첫 줄을 저렇게 시작한 것은, 사랑에 대한 사랑 고백이었을 것이다. 그의 자서전은 스탕달의 연애론보다 훨씬 알찬 연애론이기도 하다. 그건 이성이 경험을 통해 감성과 결합함으로써 빚어낸, 좌절과 성취의 고백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1970년 2월 2일 98세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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