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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국정 교과서 논란 이쯤에서 끝내자
정부가 어제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을 발표하면서 검정교과서 집필기준도 함께 제시했다. 무엇보다 국정에서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하면서도 검정에서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이란 표현을 허용한 대목이 눈에 띈다. 작년 11월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 공개 이후 교사, 학자, 전문가, 시민 등의 의견 수렴과정에서 가장 많이 지적된 건국시기 서술 기준을 완화한 것이다. 국정 도입에 따른 논란을 줄이되 학문의 다양성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작년 말 국정교과서 현장적용 방안 발표 때만 해도 ‘대한민국 수립’은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 명시된 표현인 만큼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교육부로서는 한발 물러난 것이다. 이와 함께 국정 최종본에도 각계 의견을 반영해 친일·반민족 행위, 위안부, 제주 4·3사건 등에 관한 서술을 보강하고 과거 정부 주도로 추진된 새마을운동의 한계를 지적하는 내용 등을 추가했다.
이 정도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진보진영의 주장이 상당히 반영된 셈이다. 국정교과서 적용 시기도 당초 계획보다 1년 늦췄다. 이제는 논란을 접고 국·검정 혼용 체제를 시도해 볼 만하다는 얘기다. 금년에는 자원하는 곳만 ‘연구학교’로 지정해 국정교과서를 공급하고, 내년부터 각 학교 자율로 국정이나 검정을 택일하게 한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그런데도 진보성향 교육감들이 ‘국민의 뜻’을 내세워 국정교과서 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데다 검정교과서 일부 집필진은 집필거부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국민’이란 도대체 누구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그동안 검정교과서의 좌편향 행태를 거세게 질타했던 국민들의 지적을 애써 외면해선 안 된다.
이런 맥락에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최근 법사위원회로 넘긴 ‘역사 교과용 도서의 다양성 보장에 관한 특별법’(국정교과서 금지법)은 이율배반이며 자가당착이다. 겉으로는 학문 다양성 보장이란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는 자기들의 견해와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국정교과서를 원천 봉쇄하려는 기도다. 서로 시각이 다른 역사교과서를 학생들에게 함께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지름길이다.
2. 대선 출마 선언자들, 깜냥이나 되는가
이번 대선에서 잠룡의 한 명으로 꼽히던 원희룡 제주지사가 어제 불출마를 선언했다. 현직 지사로서 현안 업무와 대선 출마를 병행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는 이유다. 도정에 더욱 충실히 매달리겠다는 뜻으로 읽혀진다. 이에 앞서 박원순 서울시장도 며칠 전 불출마 선언을 했다. 박 시장 역시 “다시 시민 속으로 들어가 서울을 안전하고 시민들이 행복한 도시로 만들겠다”며 의지를 밝혔다.
이로써 유력 후보군에 포함돼 있던 사람들 중에서는 불출마 선언자가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에 이어 4명으로 늘어났다. 대선 가도에서 역부족을 느낀 때문이겠지만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적잖이 고민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특히 박 시장은 “그동안 열심히 했지만 국민의 마음을 사지 못했다”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낸 바 있다.
그런 반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이재명 성남시장 등이 앞서가는 가운데 여야 후보들의 출마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남경필 경기지사와 안희정 충남지사, 유승민 의원이 이미 예비후보 대열에 합류했으며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출마선언만을 남겨놓고 있다. 여기에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정운찬 전 국무총리를 포함해 다른 5~6명도 출마선언을 했거나 의사를 밝힌 상태다. 이러다간 예비후보들이 20명 가까이 이를 전망이다.
솔직히 말해서,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심판을 받고 있는 판국에서 역설적인 현상이다. 그렇다고 누구는 출마해도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누구라도 국가를 이끌어갈 비전과 능력이 있다면 출사표를 던져 국민의 뜻을 물어볼 수 있는 것이 민주사회의 장점이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것이 바로 그런 본보기다. 물론 대통령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것이냐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출마 선언자 가운데서도 도중에 탈락하는 사람들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기본적인 자질을 갖추고 나섰는지는 금방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일단 지지율 경쟁에서 대략적인 우열이 가려지게 된다. 깜냥이 안 되는 사람들은 제풀에 지쳐 떨어져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빨리 포기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꼴뚜기에 망둥이까지 마구 나대는 선거판이 돼서는 곤란하다. 불출마 선언자들의 뒷모습이 새삼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다.
[매일신문]
3. 일제 농간으로 개교일 바뀐 초교는 올바른 역사 되찾아야
일제(日帝)의 농간으로 전국 상당수 초등학교의 설립 시기가 바뀌었는데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니 충격적이다. 일제가 구한말 고종 때에 세운 학교를 마치 자신들의 시혜품처럼 왜곡시킨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 한국 사회가 아직도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채 우리 자신의 역사조차 제대로 정립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리진호 지적박물관 관장이 1895년부터 1910년 한일강제병탄까지 발행된 구한말 관보와 조선총독부 관보를 확인하니 전국 103개 초교의 설립 시기가 잘못 기록돼 있었다. 이들 초교는 1895년 고종의 조칙에 따라 관공립 소학교로 설립됐는데도, 1906년 일제 통감부가 ‘보통학교령’을 공포하면서 소학교를 그 이후의 날짜로 등록하게 했다는 것이다. 일제가 구국을 위해 애국지사와 지방 유지들이 설립한 사립학교를 공립보통학교로 전환하면서 그 이전의 학교 역사를 깡그리 말살한 사례도 많았다.
이들 학교는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 이상 개교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정확하다. 대구경북에만 16개 초교가 개교일을 잘못 알고 각종 기념식과 행사를 가져왔다고 하니 황당할 수밖에 없다. 일제가 마치 한국 국민을 위해 학교를 설립한 것처럼 꾸며놓은 일을 아직까지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 스스로 반성할 점이 적지 않다.
뒤늦게나마 이 사실을 알게 됐으니 반드시 바로잡고 넘어가야 한다. 일부 초교 관계자들이 학교와 동창회, 교육 당국과 협의해 개교일을 고치겠다는 의지를 밝힌 만큼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경북고가 지난해 개교 역사를 100주년이 아니라 117주년으로 바로잡은 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북고는 1916년 관립대구고등학교로 출발한 때를 개교일로 보지 않고, 1899년 영남지역 최초 근대학교로 문을 연 달성학교를 효시로 보고 역사를 고쳤다.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자부심과 민족정기 고양을 위해서는 꼭 해야 할 일이다. 독도, 위안부 같은 거대 담론도 중요하지만, 학교 역사 왜곡 같은 잔재는 우선적으로 없애야 한다. 왜곡되고 뒤틀린 학교 역사는 졸업생과 구성원 등이 뜻을 모아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4. 먹고살게 해달라는 설 민심, 대선주자들은 깊이 새겨라“제발 먹고살게 해달라.”
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이 청취한 지역의 설 민심은 이 한마디로 압축된다. 그만큼 서민들의 삶은 팍팍하고 어렵다. 새로운 얘기도 아니다. 국민경제 전체가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경제의 3대 축인 내수`투자`수출 모두 부진의 터널에 꼼짝 못하고 갇혀 있다. 경제성장률이 3%대를 지나 2%대로 내려앉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산층 이하 소득 감소와 빈부 격차 확대는 그 필연적 결과다.
이런 난국을 해결하는 길은 국민경제의 규모를 키우는 것밖에 없다. 경제가 성장해야 돈이 돌고, 돈이 돌아야 서민의 삶이 나아진다. 참으로 단순`명쾌한 사실이다. 그러나 대선주자들은 이런 진실을 외면한다. 2%대 저성장 기조에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없고, 그저 표를 모으기 위한 ‘표퓰리즘’ 공약의 남발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G20(주요 20개국) 가운데 가장 빨리 불어나고 있는 국가 채무의 심각성엔 입을 닫고 있다.
대선주자들의 공약을 보면 다음 정권은 누가 잡든지 국민은 잘살게 될 것처럼 보인다. 공무원을 81만 명이나 늘린다고 하니 일자리 걱정은 놓아도 된다. 청소년`노인`장애인 등 2천800만 명에겐 매년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도 연간 30만원의 토지배당금을 준다고 한다. 징병제도 모병제로 바꾸거나 군 복무 기간을 10개월로 단축하겠다고 하니 젊은이들도 살판나게 생겼다. 참으로 ‘좋은 세상’이 올 것 같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런 좋은 세상은 공짜로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금을 더 걷거나 그것이 안되면 빚을 내야 한다. 우리 경제 상황에서 세금을 더 걷는 것은 무리다. 결국 국민이 세금을 더 낼 수 있을 만큼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 한 ‘솜사탕’ 공약은 빚을 내야만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 부채는 이미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빚을 내는 것은 국가 파산을 앞당기는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대선주자들은 이런 불편한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이런 기만적 사탕발림을 가려낼 주체는 국민이다. 그들이 약속하는 좋은 세상은 지속 가능하지 않는 사상누각임을 국민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서울신문]
5. 8인 체제 헌재, 신속·공정성 잃지 말아야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어제 퇴임했다. 박 소장은 퇴임식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에 대해 “대통령의 직무정지 상태가 두 달 이어지고 있는 상황의 중대성에 비춰 조속히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점을 모든 국민이 공감하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3월 13일 이전의 조속한 탄핵 결정을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제 헌재의 탄핵 심판은 재판관 9명이 아닌 8명 체제로 진행된다. 공석인 소장 자리는 선임인 이정미 재판관이 권한대행을 맡는다.
탄핵 심판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심판 결정이 늦어지고 빨라지는 것이 누구에게 유불리한가를 따지는 게 아니다. 오직 공정하고도 엄격한 탄핵 심리를 위한 것이다. 지금 헌재는 소장의 공석으로 인한 8명 체제로 이마저도 다음달 13일 이정미 재판관이 물러나면 7명 체제가 된다. 이들 중 뜻밖의 사고로 추가 공석이 생긴다면 헌재는 모든 심리가 중단되는 헌법적 유고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재판관이 7명 이상일 때만 심리가 가능하고, 대통령 탄핵 심판은 6명 이상이 동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판관 1명의 공석이 주는 의미는 심판절차상 차질을 빚는다는 점 외에도 사건 심리와 판단에 영향을 주면서 심판 결과를 왜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가능한 한 8명 체제에서 결론이 나는 것이 마땅한 이유다. 더구나 비상시국이 길어질수록 나라 꼴은 더 험하게 돌아갈 게 뻔하다. 지금 광장의 촛불과 태극기 집회 간의 반목과 갈등 심화로 잇단 자살과 분신 등으로 나라가 분열되고 있다. 나라 안팎의 경제·안보의 위기까지 생각한다면 온 나라와 국민이 언제까지 탄핵 정국에 발목 잡혀 있어야 하는가.
상황이 이런데도 박 대통령은 ‘헌재 흔들기’ 행보로 국민을 더욱 실망시키고 있다. 지금 탄핵 심판이 몇 달 뒤로 한참 늦어지고 혹여 탄핵이 기각된다고 하더라도 박 대통령은 이미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할 권위를 상실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결론이 어떻게 나든 대통령이라면 하루라도 비정상적인 시국을 종식시켜야지 하는 마음으로 헌재의 심판에 최대한 협조하는 것이 도리다.
대통령이 보수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음모론’ 같은 황당한 주장을 펴며 동정 여론 조성과 지지층 결집에 나서는 것은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대통령 측 변호인단도 정공법 변론이 아닌 ‘중대결심’을 운운하며 탄핵 결정을 지연시키려는 ‘꼼수’ 전략을 접어야 한다. 헌재 역시 신속함은 물론이고 어떤 시빗거리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을 정도로 엄격하고도 공정한 심리를 진행해야 한다.
[경향신문]
6. 시대착오적인 청와대·삼성·극우단체의 3각 커넥션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극우 단체 10여곳의 ‘관제 데모’에 삼성 등 재벌이 기획 단계부터 적극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의 고위 임원은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마련한 회의에 직접 참여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동안 삼성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돈을 댔다며 피해자를 자처했는데 이번 청와대, 극우 단체의 3각 커넥션 의혹에는 뭐라고 변명할지 궁금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구속영장 청구에 극우 단체들이 ‘경제 위기’ 운운하며 강하게 반발한 것도 지금 보니 이해가 된다.
특검 등에 따르면 청와대와 재벌, 극우 단체의 유착은 2014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의 지시를 받아 정무수석실 주도로 관제 데모 기획 회의가 열렸다. 삼성 측은 부인하지만, 회의에는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외에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전무 등이 참석해 집회 주제와 일시, 장소, 지원 단체, 지원 금액 등을 논의했다고 한다.
그 결과 지난 3년간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재벌에서만 70억원가량이 건네졌다. 이 돈으로 극우 단체들은 박근혜 정권을 위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과 세월호 유족 비난 집회를 열었고, 삼성 등을 위해 재벌개혁 반대와 노동법 개정 찬성 구호 등을 외쳤다. 노인을 앞세운 극우 단체 시위는 막무가내였고, 박근혜 정부하에서 불가침의 성역이나 다름없었다. 뒤를 봐주는 정권과 재벌을 믿고 그랬던 것 같다.
검찰도 손을 놨다. 작년 초 어버이연합이 청와대 행정관을 통해 전경련 자금을 우회적으로 지원받아 관제 데모를 벌인 단서를 확보했지만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권력과 금권을 이용한 여론 조작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역시 이들 극우 단체가 적극 참여하고 있다. 참가자들 일당은 통상 2만원이지만 추운 날은 6만원, 유모차를 끌고 나오면 15만원을 준다는 관계자의 발언이 언론에 보도됐지만 박 대통령은 이를 자신의 방패막으로 활용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최근 인터뷰에서 “그분들이 눈 날리고, 추운 날씨에 계속 나오시는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법치를 수호하기 위해 고생을 무릅쓰고 나오는 것 같습니다. 가슴이 좀 미어지는 심정입니다”라고 했다. 재벌 돈으로 관제 데모를 열고 이를 건전한 여론인 양 호도했다.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다.
7. 원칙도 명분도 없는 ‘텐트론’ 언제까지 매달릴 건가
설 연휴를 지나며 정치권에 온갖 이합집산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을 ‘3월13일 이전’으로 천명하며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자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진 분위기다. 빅텐트론(論)은 친박근혜(친박)·친문재인(친문)계를 제외한 나머지 세력들이 제3지대에서 하나의 정당으로 모이자는 주장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기존 정당에 합류하지 않은 채 개헌과 패권주의 청산을 고리로 추진해왔으나 벽에 부닥친 상태다. 다급해진 반 전 총장은 31일 “모든 정당·정파 대표들로 개헌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개헌을 내세워 어떻게든 빅텐트를 세워 볼 심산이지만 개헌은 오갈 데 없는 정치인들이 정략적으로 추진할 일도 아니고, 추진되어서도 안된다.
스몰텐트론은 빅텐트론이 사실상 실패하자 여권은 반기문·유승민·남경필 등이 모여 보수연합으로, 야권은 안철수·손학규·정운찬 등 비문 세력끼리 별도로 뭉치자는 구상이다. 여야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을 빼고 각자도생의 길을 찾는 것이다. 모두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한마디로 말장난이요, 구태 정치다. 원칙도 명분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문재인 대세론’에 맞서기 위한 정치공학적 연대를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현대 민주주의는 정당정치로 대표된다. 정치는 정당을 중심으로 정책과 노선, 정체성을 놓고 서로 경쟁하며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권력을 좇아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것은 정당정치를 후퇴시키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사람들에겐 누구를 위해, 왜 정치를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가뜩이나 이번 대선은 짧은 선거기간으로 뚜렷한 비전과 정책보다 세력 간의 짝짓기로 흐를 것이 우려됐다. 대선에 나선 정당과 그 대표 주자는 분명한 정책과 확고한 국정운영 철학을 유권자에게 보여주는 게 당연하다. 정체불명의 이합집산이나 표를 노린 선거용 수사(修辭)는 정의 실현을 위한 적폐청산이란 대의명분과는 거리가 멀다.
촛불민심은 여야를 포함해 정치권 전체의 반성과 변화를 촉구하는 엄중한 항의였다. 정치인은 시민 앞에 먼저 고개 숙여 자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도리다. 그런데도 촛불을 아전인수 격으로 왜곡하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세력 확장이나 주도권 다툼에 골몰한다면 더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촛불시민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뒤늦게 숟가락을 들고 나타나 ‘내 상이니 네 상이니’ 하며 다툼을 벌이는 꼬락서니를 더는 두고 볼 수가 없다.
[한국경제]
8. 더 미룰 수 없는 방폐장, 국회의 직무유기다
30년 넘게 논란만 거듭해온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부지 선정 문제가 또 다음 정부로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해 5월 산업통상자원부가 2028년 부지 선정, 2053년 본격 가동을 골자로 하는 로드맵을 제시하고 관련 법안(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시설 부지선정 절차 및 유치지역 지원법안)을 11월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국회는 감감무소식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는 탄핵정국으로 해당 법안이 의원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진 탓이라고 하지만 도대체 그게 이유가 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시간적으로 보면 올해부터 정부가 부지 선정작업을 시작한다고 해도 지역 주민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는 게 전문가의 우려다. 이런 판국에 국회의원들의 직무유기로 첫 단추조차 끼우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 이러다 대선정국이 조기에 닥쳐오면 민감한 사안은 미루자며 법안 처리가 아예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다음 정부에서 법안이 처리된다는 보장도 없다. 야당은 탈핵을 부르짖는 데다 여당 또한 영화 ‘판도라’ 등 반(反)원전 분위기에 몸을 사리는 눈치다. 이런 식이면 차기 정부 또한 방폐장 문제를 무기한 연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그러는 사이 고준위 방폐물의 포화 시계는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2019년 월성원전을 시작으로 2024년 한빛·고리원전, 2037년 한울원전, 2038년 신월성원전이 차례로 포화상태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정부는 각 원전에 임시저장시설을 확충해 당장 급한 불을 끈다지만 방폐장 건설이 지연될수록 임시저장시설도 곧 한계에 이를 것은 자명한 일이다. 원전 인근 주민들의 아우성이 점점 고조되고 있는 점도 큰 부담이다.
정치권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방폐장은 찬핵, 탈핵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원전을 기동하는 상황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설령 향후 원전을 폐로한다고 하더라도 방폐장은 피해갈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고 미룰수록 손해다. 국회는 지금이라도 방폐장법을 통과시켜라.
[세계일보]
9. ‘합리적 진보’ ‘개혁적 보수’가 주목받는 이유
세계일보 창간 28주년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 추이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안희정 충남지사와 바른정당의 유승민 의원의 상승이 주목받고 있다. 안 지사는 야권 대선후보 적합도에서 12.7%로 2위를 차지했다. 1위 문재인 전 대표의 31.3%보다는 크게 떨어지지만 이재명 성남시장(11.1%)보다 약간 앞섰다. 유 의원은 여권 대선후보 적합도에서 13.4%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14.7%)과 비슷하다.
안 지사와 유 의원은 공통적으로 ‘합리적 개혁’을 표방하고 있다. 시대교체를 주창하는 안 지사는 ‘노무현의 적자’이면서도 ‘국익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통합과 협치를 외치고 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을 존중한다”며 외교안보의 초당 대처를 강조하고 “지난 여섯 명의 대통령이 펼친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했다. “천지창조 하듯 경제공약은 하지 말자”며 포퓰리즘을 반대한다. 이런 안정적 이미지가 부각되면서 보수층의 지지를 끌어내고 있다. 개혁적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유 의원은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용감한 개혁’을 주장하고 “경제는 살리고 안보는 지키겠다”고 했다.
이번 조사에서 문 전 대표는 여전히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지만 과거의 낡은 사고에 얽매여 미래를 보지 못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젊은 층과는 달리 50,60대에서 불안감이 여전한 이유다. 반 전 총장 역시 자신이 외친 ‘정치 교체’와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귀국 후 지지율이 계속 내리막길로 향하는 까닭을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안 지사와 유 의원은 아직 1위와 차이가 큰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합리적 진보’ ‘개혁적 보수’를 지향하며 실용적 개혁의 길을 걷는 것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이들의 원칙과 용기가 진영 논리에 빠진 구태 정치를 청산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
[동아일보]
10. 트럼프 측근의 대외정책
1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 12일이 지났다. 세계는 여전히 그의 정책, 정신세계, 화법에 적응하느라 고심 중이다. 재임 기간 1460일의 0.8%에 불과한 12일 동안 벌어진 혼란을 생각하면 앞으로 4년을 어떻게 보낼지 아찔하다.
대통령의 핵심 참모는 자신의 보스를 대변한다. 아산정책연구원이 1월 추천 도서로 ‘Death byChina’를 선정한 이유다.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 책은 피터 나바로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썼다. 나바로는 트럼프 행정부가 백악관에 신설한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이 된 인물이다. 아산연구원은 “동맹국에 더 많은 방위비 분담금 지불을 요구하고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주장하며 중국을 적대시하는 트럼프의 모든 언동이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이 책으로 알 수 있다”고 밝혔다.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책과 다큐멘터리의 핵심은 ‘중국이 미국의 이익을 갉아먹고 있다.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이다.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로 캔자스 주(州)를 사버릴 수 있으며 월마트에서 중국 제품을 살 때마다 미국인 일자리가 하나씩 없어진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중국이라는 탐욕에 맞서지 않으면 우리는 물론이고 후손의 삶도 곤궁해진다”는 경고와 함께.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중국의 부상(浮上)에서 비롯됐으며 중국의 군사력 증강도 경제 성장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인권 문제도 경제 관점에서 본다. 중국 노동자의 열악한 근무 환경, 저임금이 중국 제품의 원가 절감과 가격 경쟁력의 토대가 되므로 개선돼야 한다는 식이다. 중국의 보조금과 싼 임금을 노리고 산업시설을 옮겨 간 보잉, 제너럴일렉트릭(GE) 같은 미국 기업도 ‘나쁜 놈’으로 규정됐다. “우리는 전투기도 중국산 제품 없이는 못 만든다”는 구절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결론은 “잘못된 통상 정책을 바로잡아 중국이 더 이상 미국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익을 취하지 못하도록 하겠다”이다. “우리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불사할 준비가 돼 있다”는 대목도 나온다. 아산연구원은 “트럼프는 무역에서 취한 이익을 기반으로 중국이 미국에 군사 도발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의 통상 정책과 외교안보 정책은 긴밀히 연결돼 있다”고 분석했다.
왜 트럼프가 대선 과정에서 한미 FTA(경제)와 방위비 분담(안보) 문제를 꺼냈는지, 이제 그림이 그려진다. 그에게 안보는 경제이고, 경제는 안보다. 중국만큼은 아니겠지만 트럼프는 한국도 나바로가 해석하는 프리즘을 통해 쳐다볼 가능성이 높다. 상대의 인식이 그런 만큼 우리의 대처도 상대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어야 한다. 외교는 경제처럼, 경제는 외교처럼 해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과 같은 부처별 제각기 대처로는 마땅치 않다. 그래서 당사자가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가 실현될까 봐 두렵다. 경제부총리가 경제-외교를 총괄하기에도 역부족인 상황에서 대선 관리까지 맡기겠다는 건, 해도 너무한 일이 아닐까 싶다.
주요신문칼럼
1. [한국경제][천자 칼럼] 스마트 안경
안경을 발명한 장인이 누군지는 기록에 없다. 단지 13세기 말 이탈리아 베네치아인이라는 사실만 확인될 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베네치아는 유리 제조 기술에선 독보적이다. 무색투명 유리도 그곳에서만 만들어졌다.
그 기술자는 광학적 원리를 유리 기술에 접목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안경을 발명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를 꺼렸다. 마녀사냥이 판치던 당시 유럽에서 안경은 초자연적인 것으로 간주됐다. 악마의 유물로도 여겼다. 광학적 원리를 밝힌 철학자 베이컨조차 마술을 부리는 이단아로 마녀 사냥을 당할 뻔했다는 기록이 있다. 장인이 자신의 이름을 비밀로 한 배경이다.
하지만 이 ‘신물(神物)’은 급속히 퍼졌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도구였던 것이다. 1445년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개발하면서 그 필요성은 점점 확산됐다. 안경 장인들로 구성된 안경 길드는 엄청난 부와 힘을 갖게 됐다. 16세기 들어 이들 길드가 모인 독일 뉘른베르크에선 대량 생산이 이뤄졌다. 외알 렌즈나 뿔테안경 등도 대중화됐다.
독일은 지금도 안경산업에 경쟁력을 갖고 있다. 정작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선 안경 발전이 더뎠다. 귀족층의 애호물이자 표상으로만 활용됐다. 스페인 여성들이 수다를 떨 때 안경을 착용했다는 점도 이채롭다.
우리나라에서도 17세기 이후 안경이 유행했지만 주로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다. 안경은 눈을 가리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무례한 것으로 인식됐다. 양반층만 착용할 수 있다는 예법까지 있었다. 조선 말기가 돼서야 일반인이 쓸 수 있었다. 20세기는 패션과 디자인 시대였다. 새로운 스타일이 사람들의 구매력을 집중시켰다.
구글은 6년 전 안경에 디지털기술을 접목해 스마트 안경 시대를 열었다. 안경의 기능성을 확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제품이 나올 때부터 의문이 따랐다. 무거운 게 치명적이었다. 팀 쿡 애플 CEO는 “안경이 필요 없는 이들이 구글 안경을 쓰려고 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결국 구글은 구글식 스마트 안경을 포기했다.
최근 카를로스 마스트라제로 미국 유타대 교수팀이 자동으로 초점이 맞춰지는 스마트 안경을 개발했다고 한다. 착용자가 보고 있는 물체와의 거리를 적외선으로 측정해 렌즈가 자동으로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다. 다초점 안경 등의 불편이 줄어들 모양이다. 지금도 라식이나 노안 수술 등에는 인공수정체가 활용되고 있다. AI(인공지능)형 렌즈가 사람 눈에 들어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안경의 진화는 끝이 없다.
2. [한겨레][곽병찬의 향원익청] 조선의 하늘을 그린 ‘별그대’ 류방택
홍건적이 1362년 20만 대군을 이끌고 다시 침입했다. 개경이 함락되고 왕은 남쪽으로 피난 갔다. 강화도로 피신했던 류방택은 달력을 제작해 강화병마사에게 제공했다. 전란 속에서 조정은 국가의 달력조차 만들지 못했고 백성은 시도 때도 절기도 모른 채 살아야 했다. 그제야 그의 천문지식이 조정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도비산으로 돌아가 나오지 않았다.
천상열차분야지도 석각은 1985년 국보 228호로 지정됐다. 2006년엔 보현산 천문대에서 발견한 소행성의 이름을 ‘류방택 별’이라 하였고, 2007년엔 만원권 지폐의 도안을 바꾸면서 뒷면에 천문시계인 혼천의와 보현산 천문대 천체망원경 그림을 넣고, 바탕은 천상열차분야지도를 깔았다. 낮을 지키는 건 세종대왕이지만 밤을 지키는 건 류방택이다.
서산군 부석면과 인지면에 걸쳐 있는 도비산,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은 새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얻은 이름이다. 지금은 천수만 간척사업으로 형편없이 쪼그라들었지만, 이전만 해도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온 천수만은 도비산을 삼면으로 에워싸고 있었다. 팔봉산으로 흘러가는 나지막한 구릉 때문에 간신히 뭍으로 이어져 있었다. 평지돌출인지라 도비산에선 어디로든 망망무제였다. 소년 류방택이 별을 헤아리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다.
6대조 서령부원군 류성간 이래 할아버지(류굉, 상호군), 아버지(류성거, 전객령)까지 모두 고려의 당상관에 오른 집안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등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낮에는 과거와 무관한 경서나 주역을 읽고, 해 지면 쏜살같이 들이나 산에 올라 별을 보았다. 사실 별을 보고 헤아리는 건 서산 갯마을 사람들의 일과였다. 바다로 나가건 들로 나가건 그들은 별을 보고 방위를 가늠하고, 별을 살펴 내일의 날씨를 예상했다.
봉화대가 있는 도비산 산마루에선 별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별들의 운행이 한눈에 들어왔다. 북두칠성은 하룻밤에 한 번씩 북녘 하늘을 한 바퀴씩 돌았다. 할머니는 북두칠성 일곱 개 별들이 인간의 수명과 길흉화복을 주관한다고 했다. 그런 북두칠성은 한 번도 북극성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북두칠성은 하늘의 임금 곧 천제가 순라를 돌 때 타는 수레라고 했다.
별들은 계절에 따라 저마다 짝을 이뤄 온갖 형상을 드러냈다. 봄부터 여름까지 도비산 남쪽 하늘에선 청룡 형상의 별들(서양에선 전갈자리)이 무리지어 떠오르고, 가을 겨울엔 호랑이 형상의 별무리(서양에선 오리온자리)가 떠올랐다. 북두칠성 국자 밑에는 별 두 개씩 계단 모양을 이루는 삼태육성이 있었다. 탄생과 생육을 관장한다 하여 할머니들이 치성 드리는 별자리였다.
소년은 성년이 되어 예조판서 손애의 맏딸과 결혼했다. 하지만 그의 일과는 바뀌지 않았다. 낮에는 주역과 경서를 읽고 밤에는 별자리를 헤아렸다. 이웃에는 20대 초반에 출사한 사촌 류숙이 살았다. 그는 공민왕이 왕자 시절(강릉대군) 인질로 원나라에 갈 때 그를 시종해 4년간 살기도 했다. 그 인연으로 중국을 드나들게 된 류숙은 올 때마다 새로운 책들을 가져왔다. 준기지학(천문학) 관련 서적도 포함돼 있었다.
류방택은 32살(1352년)이 되어서야 환로에 오른다. 종8품 섭산원. 7년 만에 한 품계 오른 수직랑이 되었으니, 벼슬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1359년 침입했던 홍건적이 1362년 20만 대군을 이끌고 다시 침입했다. 개경이 함락되고 왕은 남쪽으로 피난 갔다. 강화도로 피신했던 그는 사력(개인이 제작한 달력)을 제작해 강화병마사에게 제공했다.
전란 속에서 조정은 국력(국가의 달력)조차 만들지 못했고 백성은 시도 때도 절기도 모른 채 살아야 했다. 강화병마사는 월과 일, 절기와 일식 월식, 물의 들고 남을 따져 군령과 군정에 이용했다. 그제야 그의 천문지식이 조정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도비산으로 돌아가 나오지 않았다.
중국 천문학은 음양오행설과 결합돼 하늘의 뜻을 읽고 땅의 도리를 전해주는 제왕의 학문이었다. 제왕은 하늘의 명을 받아 제위에 오르고 백성을 다스리는 존재였다. 천체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천문도는 왕조의 정통성과 권력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증거였다. 하늘을 공경하고 부지런히 백성을 보살핀다는 경천근민(敬天勤民)은 제왕의 기본 책무였다.
그러나 전통사회에서 천체의 변화를 읽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춘분점과 추분점이 매년 서쪽으로 미세먼지만큼 이동하고 별자리도 바뀐다. 별의 위치도 2만6000년을 주기로 순환한다. 언젠가 북극성도 그 이름을 잃어버리리라. 그건 자전축이 23.5도 기운 채 돌아가는 지구의 세차운동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류방택의 눈에 그런 변화가 들어왔다. 초저녁과 새벽 자오선을 지나 남쪽에 걸리는(남중) 별들이 고구려 때 다르고 고려 때 달랐다. 대제학을 지낸 정이오는 그런 그에 대해 “낙구의 이치와 천체의 운행을 꿰뚫어 통하지 않음이 없었다”(금헌 류방택 행장)고 했다.
전통천문학은 하늘을 3원 28수로 나눠 관찰했다. 자미궁, 태미궁, 천시궁이 3원이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자미궁은 천상의 권부로, 천제와 종실이 거주하는 정궁이다. 태미원은 북두칠성 뒤편 남쪽 하늘에 위치한, 인간 역사를 관장하는 정무궁으로, 태미오제라는 다섯 천제가 번갈아가면서 주인 구실을 한다. 은하수를 끼고 있는 천시원은 하늘의 도시이자 시장이다. 천구를 둘러싼 하늘엔 28개 구역이 있고 제각각 대표 별자리(28수 수거성)가 있었다. 하늘은 1개의 특별시와 2개의 직할시 그리고 28개의 도로 이루어진 것이다.
태미오제는 수덕 화덕 금덕 목덕 토덕을 가진 다섯 천제로, 오덕의 운행에 따라 대위에 올라 세상을 관장한다. 누가 오르느냐에 따라 세상도 그에 맞는 덕의 소유자가 나라를 열고 제위에 오른다. 수덕이 화덕을 이기고, 화덕이 금덕을, 금덕이 목덕을, 토덕이 수덕을 딛고 일어섬에 따라(오행상승설) 나라의 흥망성쇠가 이루어진다.
1367년 12월 조정의 부름에 따라 서운관에 들어가고, 1375년 실무책임자인 부정(종4품)이 되고, 1379년 원윤으로서 서운관을 총괄하는 판서운관사를 겸직한다. 예감대로 왕씨는 저물어가고 이씨가 일어서고 있었다. 1392년 공양왕이 왕위를 이성계에게 선위했다. 역성혁명이었지만 선위의 형식을 취했기에 고려의 서운관 일관들은 길일을 잡아 태조가 즉위식을 거행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서운관 책임자 류방택은 “천시를 점쳐서 대위에 오를 일시를 선택”(<태조실록>)했고, 그 공로로 원정공신에 책봉됐다. 그러나 다시 도비산으로 숨는다.
새 왕조는 피의 숙청을 통해 권력은 장악했지만 백성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부패하고 무능한 고려왕조에 등은 돌렸지만 신생 조선 또한 미덥지 않았다. 그런 백성의 마음을 잡아야 했다. 그러자면 조선의 개국과 이성계의 즉위가 ‘천명’에 따른 것임을 세상에 알려야 했다. 아울러 경천근민의 의지를 천명해야 했다.
마침 고구려 초기 제작된 옛 천문도 탁본이 입수됐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되어 별의 위치가 달라져 있었다. 관측과 계산을 통해 천문도를 다시 작성해야 했다. 서운관 관원들은 말했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류방택뿐입니다.’ 태조는 서산으로 사람을 보냈다. 얼마나 급했던지 태조가 몸소 예산 연봉장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고민 끝에 류방택은 부름에 따른다. ‘이것 또한 저의 운명’이었다. 그는 서운관 책임자(제조)가 되어 한양을 기준점으로 삼아, 고구려본과 비교하며 별자리의 위치 변화를 관찰했다. 우선 절기별로 초저녁과 새벽녘 남중을 하는 별을 헤아려 남중 시각과 거극도(천구 북극으로부터 거리 값)를 계산해 혼효중성도수를 완성했다.
아울러 28수 수거성들 사이의 거리인 수거도를 계산해 천문도를 다시 그렸다. 을해년 작성된 류방택 천문도에는 3원 28수의 별 1467개가 포함됐다. 그가 작성한 혼효중성도수와 천문도는 <신법중성기>라는 이름으로 1395년 6월 태조에게 보고됐다. 태조는 돌에 새겨 소실되거나 인멸되지 않도록 명했다. 그것이 ‘석각 천상열차분야지도’였다.
그 직후 다시 잠적한 그는 82살 송도 취령산 밑 어디에선가 눈을 감았다. 두 아들에게 “나는 고려 사람으로 개성에서 죽으니, 내 무덤을 봉하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라”(‘금헌 공 행장’)고 유언했다. 별에서 내려와 다시 별이 되어 올라간 그였으니, 이 땅에 무덤을 둘 이유가 무엇일까.
가로 122.5, 세로 211, 두께 12㎝의 흑요석에 새겨진 천상열차분야지도 석각은 1985년 국보 228호로 지정됐다. 2006년엔 보현산 천문대에서 발견한 소행성의 이름을 ‘류방택 별’이라 하였고, 2007년엔 만원권 지폐의 도안을 바꾸면서 뒷면에 천문시계인 혼천의와 보현산 천문대 천체망원경 그림을 넣고, 바탕은 천상열차분야지도를 깔았다. 낮(앞면)을 지키는 건 세종대왕이지만 밤(뒷면)을 지키는 건 류방택이다.
3. [한국일보][편집국에서] 문화는 무엇으로 사는가
몇 년 전 한 무명배우와 술자리를 함께 했다. 상업영화에선 단역에 그쳐도 독립영화계에선 주연급으로 활동하는 배우였다.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상까지 받은 영화에 출연한(그가 연기한 장면은 다 편집되고 그는 사진으로만 등장한다)이력을 은근히 자랑스러워했다.
저예산 독립영화를 활동 근거로 삼으니 그의 생계는 간단치 않았다. 그는 주차장에서 주차관리 일을 하며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고 했다. 언제 출연 제의를 받을지 몰라 당장 그만둬도 고용주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일거리만 찾는다고 덧붙였다. 이후 그가 출연하는 영화를 1년에 한 두 편 꼴로 마주하고 있는데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힘겨운 삶을 잘 버텨내며 자기 길을 꿋꿋이 걷는 듯해서다.
그가 등장하는 영화 대부분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지원으로 만들어졌거나 영진위의 지원을 받는 독립영화전용관에서 만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화에 대한 공공지원이 무명배우의 활동에 작은 응원이 된 셈이다.
문화를 만드는 이의 삶은 종종 고통스럽다. 시장의 논리는 비정하여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허름한 연극 무대든 문화계 어느 곳에나 예외 없이 적용된다. 아니 저예산이나 예술 등의 수식이 붙는 문화 활동일수록 시장은 더 가혹하게 작동한다. 제작비 1억원을 들인 영화가 100억원짜리 블록버스터보다 자본을 회수하기 어렵고, 무명배우들로 진용을 꾸린 연극이 아이돌을 앞세운 뮤지컬보다 물질적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작다. 문화계에 대한 공공 지원이 낮은 곳으로 향해야 하는 이유다.
“이제야 아귀가 맞는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드러난 뒤 문화계 여러 인사들이 공통적으로 내놓는 반응이다. 지원사업에 신청을 했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밀려난 관계자일수록 복잡다단한 심경을 비춘다. 자신들의 작품이 열등해서가 아니라 정부에 ‘찍혀서’ 지원 대상이 되지 않았다는 점에 안도하면서도 황당해 하고, 앞으로의 삶에 막막해 한다.
문화계라는 테두리 안에서 삶을 일궈가는 사람들은 전복적 기질이 다분하다. 예술은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과 반발을 에너지 삼아 전진한다.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조직적으로 네 편 내 편을 확연히 가르고 정부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지원을 하겠다는 발상부터가 반달리즘과 다름없다.
2011년 가을 프랑스 출신의 유명 영화감독 뤽 베송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베송은 영화학도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 연출 강의를 한 뒤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한 일본 청년이 기가 죽은 목소리로 시작해 울먹임으로 끝나는 질문을 했다. “(그 해 봄 발생한)동일본 대지진의 충격이 워낙 커 미래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는 하소연이었다. 베송은 “그 힘든 감정을 영화에 담으라”고 격려했다. 상처가 예술로 승화될 수 있다는, 상투적인 답변이었으나 일본 청년은 큰 위안을 얻은 표정이었다.
지난해 12월 개봉해 일본영화 역대 한국 흥행 기록을 매일 갈아치우고 있는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영진위 집계 30일 기준 342만5,904명)을 보며 저 장면을 떠올렸다. 질문을 던진 일본 청년은 아니어도 일본 영화인들은 대재난으로 마음을 크게 다친 일본 국민에게 이 영화로 따스한 위안을 건넨다. 죽은 자들이 살아 돌아온다는 판타지가 한국 관객의 목젖까지 뜨겁게 한다. 세월호 참사가 연상돼서일 것이다.
‘너의 이름은’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너의 이름은’의 시나리오를 쓰던 때 세월호 참사에 대한 소식을 연일 접했다”며 “그 때 느낀 것들이 이 작품에 어느 정도 녹아 들어 있다”고 밝혔다. 지원금을 무기 삼아 문화인들을 일렬종대로 세우려 하고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지지한 문화인들에게 불이익을 주려 한 정부의 국민으로서 부끄러울 뿐이다. 한국에서 문화는 무엇으로 사는가, 과연 문화로 살 수는 있는 것인가, 문화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근원적인 질문을 자꾸 던지게 되는 요즘이다.
4. [경향신문][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 할머니와 온천
한때 그곳은 휴일이면 관광버스가 줄지어 드나들던 이름난 온천이었다. 그곳에서 맨 먼저 생겼다는 목욕탕의 이름은 그냥 온천탕이었다. 온천탕은 사시사철 몰려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손가락 끝이 쭈글쭈글해질 때까지 탕 안에 들어가 앉아 있다가 나온 사람들은 목욕탕 안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유황 냄새나는 물을 물통에 받느라 줄을 서곤 했다.
그 동네에서 나고 자란 할머니는 으리으리한 목욕탕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도 허름한 온천탕으로 다녔다. 할머니는 늘 설을 쇠러 온 손녀들한테 솜을 두껍게 넣고 누빈 버선을 신겨 온천탕에 데려갔다.
평생 농사를 지은 할머니의 손힘은 어찌나 억센지 손녀들의 등짝을 시뻘겋도록 밀고서도 끄떡없었다. 목욕을 다 하고 나오면 할머니는 유황 냄새나는 약수를 질색하는 손녀들한테 우유를 하나씩 사서 쥐여줬다. 볼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손녀들은 우유 하나를 먹고 목욕탕에 올 때처럼 할머니 뒤를 졸졸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데, 1시간은 족히 걸어야 했다.
흙탕물이 밴 지저분한 눈은 바짓부리에 엉겨 붙어 걸음을 뗄 적마다 어석버석거렸다. 성미 급한 할머니는 휘적휘적 저만치 앞서 걸었다. 손녀들이 힘들다고 해도 쉬어가는 법이 없었다. 신작로에서 샛길인 자드락길로 들어서면 할머니는 그제야 뒤를 힐끗 돌아보며 돌부리에 걸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일렀다.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신 지 오래되었고, 고향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 할머니가 등을 밀 때마다 아프다고 짜증 내던 손녀가 반백년을 살았으니, 설음식 만드느라 목욕탕 갈 틈도 없이 며칠 동안 부엌에서 종종걸음치던 새파랗게 젊었던 내 어머니는 할머니가 되었다.
내 어머니는 설 쇠고 온 딸을 내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산 너머 온천에 데려갔다. 앉을 틈도 없는 곳에서 빈자리를 잘도 찾아낸 어머니는 맨 먼저 딸의 등을 밀었다. 얼마나 세게 미는지 쭈그리고 앉아 있던 딸은 그만 제 나이를 잊고 아파 죽겠다고 몸을 뒤틀 뻔했다. 따끔거리는 등에 차가운 물을 끼얹다 설핏 보니 내 어머니는 내 할머니와 닮아 있었다. 할머니는 떠나셨지만, 여전히 내 등을 밀어줄 어머니가 그곳에 있었다.
5. [서울경제][만파식적] 항공로 트래픽 잼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 아니라 불과 30년 전만 해도 아무나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1983년 여권 발급제한이 풀리기는 했지만 해외여행을 떠나려면 통장에 200만원이 1년 동안 예금돼 있어야 했다.
당시 돈 200만원은 대학교 1년 치 등록금. 외화 낭비를 막겠다는 취지였다. 봄·가을철 제주행 비행기를 타면 온통 신혼부부 일색이었던 것도 그래서다. 제주에는 늘 정장을 차려입은 신랑과 연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신부로 넘쳐 났다.
그랬던 해외여행의 빗장이 풀린 것은 1989년 1월1일.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른 뒤다. 은행에 돈이 없어도 빚을 내 여행을 할 수 있게 된 일종의 ‘여행독립일’인 셈이다. 다만 하루 동안은 반드시 반공교육(1992년 폐지)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때부터 해외여행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항공여객 수는 1억391만명. 1948년 민간항공기가 최초로 취항한 후 68년 만에 처음으로 1억명을 넘어섰다. 1987년 1,000만명을 넘긴 후 5,000만명을 태우기까지 무려 20년(2007년 5,732만명)이 소요됐는데 1억명을 넘기기까지는 불과 9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노선별로도 지난해 국제선 여객 7,300만명, 국내선 여객 3,091만명으로 국제선 여객이 국내선을 압도한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비행기를 타다 보니 이제는 하늘길마저 막히는 시대가 됐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73만대가 넘는 항공기가 운항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가운데 가장 붐볐던 시간대는 오전10시로 시간당 평균 147대가 운항했다고 31일 밝혔다. 차량의 월요일 출근 시간, 평일 퇴근 시간처럼 항공로의 교통체증(트래픽 잼) 시간대인 셈이다.
공항별로 가장 붐빈 시간대는 인천공항 오후3시, 제주공항 오후7시, 나머지 13개 공항은 오전이었다. 이를 해소하려면 하늘길도 고속도로처럼 확장해야 한다니 격세지감이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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