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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매일신문]
1. 국민의당 ‘사드 반대’ 당론 재검토, 진심인가 정략인가
북한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의 피살 사건으로 안보 문제가 차기 대선판의 핵심 의제로 떠오르자 국민의당이 다급해졌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반대 당론의 변경에 착수한 것이다. 같은 당 대선주자인 안철수 의원도 “국제적 상황이 바뀌면 입장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며 ‘사드 반대’ 입장을 사실상 접었다.
국민의당의 당론 변경은 박지원 대표가 반대하고 있어 오는 21일에 열리는 의원총회에서 어떤 결론이 날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그러나 주승용 원내대표가 당론 변경을 언급한 것 자체는 큰 변화임은 분명하다. 그 이유에 대해 주 원내대표는 “상황이 변해서 사드 배치를 반대할 명분은 많이 약해졌다”고 했다.
이를 두고 일단은 ‘정상적 판단’으로 돌아왔다고 좋게 평가할 수는 있다. 하지만 왜 지금에야 그런 판단을 하게 됐는지는 납득하기 어렵다. 주 원내대표가 제기한 상황 변화란 북한의 IRBM(중거리탄도미사일) 발사와 김정남 독살이다.
그러나 ‘상황 변화’는 북한의 핵개발 이후 계속 있었다. 사드 배치 결정의 직접적 계기가 된 지난해 북한의 5차 핵실험도 IRBM 발사와 김정남 독살 못지않은 큰 상황 변화였다. 그때 국민의당은 사드 배치를 반대했다. 그때는 사드 배치를 반대해도 될 상황 변화이고 지금은 배치에 찬성해야 할 상황 변화라는 것인가?
일반인의 상식으로서는 구분할 수 없는 상황 변화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당의 당론 재검토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다. 바로 차기 대선에서 중도`보수층을 공략하기 위한 ‘우클릭’이 아니냐는 것이다. 안 의원의 입장 변화 역시 같은 맥락이라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지지율 하락을 반전시키기 위한 전략 수정이란 인상을 준다.
사드 말고는 북한의 미사일을 방어할 무기가 없는 현실에 비춰 당론 재검토는 칭찬받을 만하다. 또 ‘상황 변화’에도 여전히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비해서도 그렇다. 하지만 대선 전략 차원이란 점에서 진정성은 떨어진다. 국민의당이 신뢰받는 정당으로 뿌리내리려면 안보 문제에 정략적으로 접근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2. 복지법인들의 도의회 금품 로비, 저급한 집단이기주의
최근 경북에서는 노인복지사업 이익단체가 경북도의회를 상대로 금품 로비를 벌여 말썽을 빚고 있다. 그런데 로비 내용이 비상식적이고 치졸하다. 자기 단체에 대해 추가 지원 또는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니라, 경쟁 사업자에 대한 지원을 끊어달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15일 경찰은 개인요양시설 지원 예산 삭감 명목으로 500만원을 주고받은 혐의로 경북 법인요양시설협회(이하 협회) 임원과 경북도의원을 각각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협회는 경북도가 올해 첫 편성한 사설 노인요양시설 근무자 수당 2억4천만원을 삭감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협회가 로비 자금 명목으로 회원들로부터 4천700만원을 거뒀으며 도의원 12명을 순차적으로 만나는 등 조직적으로 움직인 정황을 포착했다. 해당 도의원은 돈을 그 자리에서 돌려줬다고 주장해 향후 법정 공방이 예상되지만, 로비는 성공했다. 도의회가 사설 노인요양시설에 대한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이다. 반면, 법인요양시설에 대한 근무자 수당 14억여원은 그대로 통과시켜줬다.
경북에는 법인 147개, 개인 228개의 노인요양시설이 있다. 이 중 법인 사업자에 대해서는 국가가 무상으로 시설을 지어주고 근무자 수당 등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 반면, 개인 사업자에게는 이렇다 할 혜택이 없다.
개인은 법인에 비해 규모 및 운영 여건에서 매우 불리한 상황이다. 이는 개인 노인요양시설 이용자들에 대한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상대적 강자인 법인 사업자들이 개인 사업자를 견제하기 위해 도의회에 금품 로비를 벌였다는 것은 상도덕에 어긋나며 집단 이기주의의 전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경북도의회도 특정 단체의 이익에 앞장섰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또한 일부 복지단체들이 법인을 사실상 사유화하고 보조금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인데 적폐 해소에 나서기는커녕 대변자 노릇을 한 셈이다. 경북도는 부정 청탁에 따라 예산 삭감이 이뤄졌다는 세간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만큼 잘못에는 책임을 묻고, 삭감된 예산을 되살리는 등 후속 대책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3. 나토부터 시작된 미국의 방위비·FTA 압박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그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에 “방위비 지출을 늘리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했다. 매티스 장관은 브뤼셀의 나토 본부에서 28개 회원국 국방장관들에게 “그러지 않으면 나토에 대한 미국의 방위 공약을 조정하겠다”고 사실상 ‘통보’했다고 한다.
다음주 초에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도 나토 본부를 찾는다. 역시 방위비 증액이 집중 논의 대상이라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방위비를 늘리지 않는 나토 회원국에는 동맹 관계의 변화 가능성까지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미국의 나토에 대한 방위비 증액 요구가 걱정스러운 것은 한국이 다음 ‘타깃’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이해 당사국들에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발언을 잇따라 쏟아냈다. 나토에 대한 매티스 장관의 태도를 보면 트럼프는 취임 이후에도 일련의 과거 발언을 거두어들일 뜻이 전혀 없는 듯하다. 방위비는 나토 회원국은 물론 한국 및 일본을 당혹스럽게 하는 이슈다.
실제로 지난주 트럼프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정상회담을 가진 뒤 발표한 공동 성명에 “미·일 동맹은 일본에 더욱 큰 역할과 책임을 부과한다”고 명시했다. 경제적 부담을 뜻하는 문구가 없었음에도 ‘방위비 증액’을 뜻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적어도 방위비 문제에서 일본은 미국에 ‘백기투항’을 한 것과 다름없다.
한국에 가해지는 압박은 방위비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일성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이었다. 주지하다시피 트럼프는 후보 시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도 줄곧 강조했다.
우리가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 헤리티지재단의 설립자인 에드윈 퓰너가 엊그제 “5주년을 맞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다시 들여다보고 필요하면 재협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보수 성향의 헤리티지재단은 ‘트럼프의 싱크탱크’로 불린다. 퓰너는 정권인수위 선임고문을 지낸 트럼프의 핵심 측근이다. 그의 주장은 ‘한국의 양보’를 전제로 한다. 결국 FTA 재협상으로 수확을 늘리겠다는 뜻이다.
미국은 지금 전방위 압박을 우리에게 가하려 한다. 당장은 황교안 대통령 대행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국익을 지키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의 안보는 현실적으로 미국의 방위력에 상당 부분 의지하고 있지만, 미국의 안보 역시 일정 부분 한국이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두 나라 이익에 공통으로 부합하는 사드 배치 결정이 대표적이다.
대선 후보들도 사드 문제는 심각하게 접근하기 바란다. 우리가 부담하는 방위비는 그 역할에 비하면 작지 않다. 그럼에도 증액을 요구한다면 온당한 처사일 수 없음을 설득해야 한다. 한·미 FTA 역시 재협상에 앞서 공생 방안을 고민하라.
4. 용의자 체포돼도 오리무중인 김정남 암살 배후
김정남 암살 사건이 국내외에서 큰 관심사가 되고 있지만 사건의 실체 확인이 늦어져 궁금증과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국내 거주 탈북자들은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고 확인되지 않은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어 국정원 등 정보 당국의 신속한 대처가 요구되고 있다.
사건 발생 나흘째가 되도록 김정남 암살 사건은 그 실체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김정남은 지난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마카오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다 여성 2명으로부터 독극물 공격을 받았고, 병원으로 이송 중 사망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여성 2명과 남성 용의자 1명을 체포했다. 우리 정부가 말레이시아 당국과 외교 루트로 접촉 중이겠지만 언론 보도 외에 불안하고 궁금한 이들에게 전달되는 정확한 정보는 거의 없다.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라 살해 사건의 배후와 이유 등이 밝혀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하지만 배후 세력 등 사건의 실체가 빨리 확인되지 않음으로써 불필요한 추측성 소문들이 확산일로에 있다는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트위터로 불리는 웨이보(微博)에는 벌써 한국 음모론이 넘쳐난다고 한다. “김정남 피살 배후에 탄핵 국면을 전환하려는 박근혜 대통령과 한국 정부가 있다”는 글들이 진실처럼 나돌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김정남은 박 대통령의 북한 비선이었다”는 말도 안 되는 루머까지 번지고 있다.
국정원은 “이번 사건은 김정은 집권 후 내려진 ‘스탠딩 오더’(취소할 때까지 유효한 명령)를 북한 정보 당국이 실행에 옮긴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김정남의 편지와 함께 2012년 이후 5년간 살해 시도가 있었다는 것도 밝혔다. 비교적 신속한 대응이라 할 수 있지만 사건의 실체에 얼마나 접근한 정보인지는 알 길이 없고 국민의 궁금증과 불안감을 해소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국정원, 외교부 등은 말레이시아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하루빨리 사건의 실체부터 확인해 정확한 사실을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그래야 정부도 또 다른 테러 가능성에 대비해 대응책을 세울 수 있고 탈북자 등의 신변 보호에 대한 경각심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우리의 정보 수집 능력은 선진국들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안보의 바탕은 앞서가는 정보력이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과 외교 당국은 이럴 때 정보력을 발휘해야 한다. 국내외 언론 보도 수준의 정보 획득 및 분석 능력만으로는 존재 가치를 증명해 보일 수 없다.
[동아일보]
5. 한진해운 17일 파산, 해운·조선업이 울고 있다
국내 1위, 세계 7위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이 오늘 법원에서 파산선고를 받는다. 1977년 설립된 한진해운은 2011년부터 해운업 불황과 고가의 용선료로 경영난에 시달리다가 지난해 9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수송보국’의 꿈을 뒤로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비싼 값에 배를 장기로 빌린 경영 실패와 금융 논리에 집착한 정부 판단이 초래한 비극이다.
지난해 자구 노력을 전제로 채권단의 지원이 결정된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구조조정과 올해 한진해운 파산으로 조선해운업이 기반인 부산 울산 경남의 한숨이 눈물로 변하고 있다. 대우조선 인원 감축의 여파가 중소업체로 확산되면서 조선업 전체에서 2만여 명이 실직했다. 퇴직금은 고사하고 월급도 못 받고 쫓겨난 퇴직자가 부지기수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핵심 기술을 보유한 인력이 일본 중동 등 경쟁국 조선소에 재취업하며 기술 경쟁력까지 훼손됐다. 1300명에 이르던 한진해운 직원은 지금 50여 명만 남아 가압류 재산을 정리하며 회사의 ‘장례’를 준비 중이다. 협력업체 직원 등 한진해운 파산으로 생긴 실업자가 전국적으로 1만여 명에 이른다.
구조조정의 명분만 강조해온 정부가 뒤늦게 조선해운업 경쟁력 강화 방안이라며 자금 지원을 들고나오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올해 해운업에 지원키로 한 6조5000억 원은 당초 한진해운의 부족자금인 4조∼4조6000억 원을 넘어선다.
수출입 물동량의 99% 이상을 수송해 국가경제 운영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해운산업이 무너지고 핵심 인재들은 외국으로 빠져나가는데 이제 와서 혈세로 현대상선 자본을 늘려주고 터미널 등 자산 인수자금으로 쓴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에 지원키로 한 4조2000억 원 가운데 3800억 원만 남은 상황에서 추가 자금 지원을 검토한다니 은행돈을 쌈짓돈으로 여기는 것인가.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다음 정부에서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하는 등 정치권에서도 분노하고 있다. 당장 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문책이 아니라 죽어가는 산업을 살려 일자리를 만들고 국가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안이다. 이는 금융 논리만으로는 안 되고 해당 산업과 국가경제 전체를 고려한 초당적 결단이 있어야 가능하다.
6. 24일 헌재 최종 변론… 정치권은 심판 이후를 대비해야
어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4차 변론기일에서 “그동안의 절차를 통해 사실관계가 충분히 파악된 만큼 22일 증인신문을 모두 마치겠다”며 24일 최종 변론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 달라고 요청했다. 23일까지 국회 소추인단과 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최종 입장을 문서로 제출하라는 주문이다. 최종 변론 이후 2주 정도의 결정문 작성 시간을 감안하면 탄핵심판 결정은 이 권한대행의 퇴임 예정일인 3월 13일 이전에 나올 것이 확실시된다.
이 권한대행이 최종 변론 날짜를 못 박음으로써 정치 일정에 대한 불확실성은 해소됐다. 국회의 탄핵 소추로 박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지 오늘로 71일이다. 박 대통령 측이 이번 주 요청한 증인 8명 중 출석은 단 2명에 불과했다. 어제도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증인 요청을 유지하겠다며 시간적 여유를 달라고 반발했으나 ‘지연작전’은 더는 용납되기 어렵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보호무역 확산으로 인한 경제 악화 등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내외 상황을 고려하면 국정 공백 사태가 더 길어져선 안 된다.
청와대가 진정 나라를 생각한다면 헌재의 일정에 협조해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이 “대통령이 최후변론에 직접 출석해 당당히 소명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힌 만큼 최종 변론일에 직접 출석해 자신을 뽑아준 국민에게 예를 다해줄 것을 당부한다.
일각에선 대통령의 범죄 행위가 확정돼야 탄핵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렇다면 대통령 탄핵은 내란, 외환죄 외에는 불가능해지는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 헌재가 헌법 논리와 헌법 가치에 따라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정치권은 정치적 선동을 해선 안 될 것이다. 박 대통령과 대선 주자들은 물론이고 촛불집회 참여자든, 태극기집회 참여자든 모두 승복하는 성숙한 시민정신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더는 흔들리지 않고 법치주의를 공고히 할 수 있다.
박 대통령 탄핵 여부 못지않게 그 이후 상황도 중요하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내각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국정을 운영하는 데 목숨을 걸기 바란다. 헌재 심판 이후 정치권이 어떤 자세를 보이느냐에 따라 나라의 명운이 달라질 수도 있다.
[세계일보]
7. “정부가 김정남 암살 청탁”… 유언비어 도 넘었다
김정남 독극물 살해를 두고 ‘유언비어 고질’이 어김없이 또 도졌다. 인터넷과 SNS에는 황당한 거짓 주장이 나돌기 시작했다. 인터넷 딴지일보 게시판에는 “김정남 피살 사건은 우리나라 보수 세력이 주도한 쇼”라는 글이 올랐다. “정부가 탄핵 국면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김정남을 살해하고 언론에 흘린 것”이라고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오늘의 유머’에는 “탄핵 기각을 위해 별수 다 쓰다 결국 김정은에게 김정남 암살을 청탁한 것”이라는 글도 올랐다. “처음에는 독침에 맞아 죽었다고 하더니 이제는 독 스프레이로 죽었다고 한다. 외신에는 크게 언급도 안 되는 것 보니 우리나라 수구들과 언론이 짜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황당한 글도 있다.
이런 식의 유언비어는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천안함 폭침, 세월호 침몰 때의 판박이다. 당시에도 미국 핵잠수함 충돌설, 정부 공작설 등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지금도 그것을 철석같이 믿고 유포하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중국 관영매체는 이번 사건에 침묵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중국 매체 주변에서는 김정남 독살 음모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인민일보 해외판의 소셜미디어인 샤커다오(俠客島)에는 그제 “한국이 일으켰을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는 글이 올랐다. 정세 분석을 가장해 국내 유언비어와 똑같은 내용을 늘어놓았다. 북한을 거드는 내용이다.
우리 내부에 ‘김정남 독살 배후에 우리 정부가 있다’는 식의 얼토당토않은 거짓이 난무한다면 북한과 중국이 이용하려 할 것은 너무도 빤한 일이다. 북한이 “남한이 저지른 일”이라고 덮어씌울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안보 상황은 엄혹하다. 거짓이나 퍼뜨리며 안보 위기의 격랑을 헤쳐갈 수는 없다.
우리 사회는 유언비어에 멍든 지 오래다. 최근에는 가짜뉴스까지 판친다. 그 결과 건강한 국민의식은 마비되고, 국론은 증오로 갈가리 찢기고 있다. 유언비어는 사회를 병들게 하는 독버섯이다.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 정부는 더 적극적인 대응을 해야 하며, 인터넷 사이트는 자정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언비어를 배격하는 건강한 시민정신을 갖는 일이다.
8. 기후변화 대책 모범국이 ‘낙제국’으로 전락해서야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성적표’가 갈수록 후퇴하고 있다. 미국의 비영리 민간 환경보건단체 보건영향연구소(HEI)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우리나라의 인구가중치를 반영한 연평균 미세먼지(PM2.5) 농도가 29㎍/㎥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치 15㎍/㎥의 두 배에 육박한다. 터키를 제외하면 회원국 중에서 가장 나쁘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1990년 미세먼지 농도는 26㎍/㎥였다. 2011년 한때 개선되는 조짐을 보였다가 점차 나빠졌다. 오염 농도가 개선된 OECD 국가들과는 정반대였다. 오존 농도도 덩달아 악화되고 있다. OECD 국가 평균치가 1990년 61㎍/㎥에서 2015년 60㎍/㎥으로 낮아졌으나 한국은 66㎍/㎥에서 68㎍/㎥으로 높아졌다. 오존 농도가 OECD 국가 중 4번째로 높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 규모는 5억7000만t으로 세계 7위이다. 석탄화력발전소가 몰린 충남의 경우 공기의 질이 좋지 않아 자주 경보음이 울린다고 한다. 당진, 태안, 보령, 서천 등 화력발전소가 있는 4개 시·군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9500만t에 달한다. 대기오염이 악화하는 것은 화력발전소와 대형 오염 배출사업장이 가동된 탓이 크지만 경유차 증가 등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기오염은 인체에 치명적인 위해를 불러온다. 미세먼지와 오존 등 대기오염으로 인한 우리나라의 연간 사망자 수는 2015년 1만8200명이었다. 희생자가 1990년 1만5100명에서 크게 늘어난 것이다. 선진국들은 대기오염 희생자를 줄이고 있지만 우리는 희생자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녹색기후기금(GCF) 본부를 인천 송도에 유치하는 등 한때 기후변화 대책 모범국으로 꼽혔다. 하지만 정부가 바뀌면서 녹색정책이 휴지조각이 됐다. 2020년 파리협정이 발효된다. 우리를 포함해 197개 나라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기후·환경 개선은 국제적 의무일 뿐만 아니라 국민 생존권과 직결된 일이다. 정부가 국가 의제로 정해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석탄연료 사용을 줄이고 친환경적인 활동을 지원하는 범국가적 노력이 절실하다.
[매일경제]
9. 특검의 무리한 대기업 옥죄기 위험 수위 넘었다
특검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국정농단의 실체를 밝힌다는 명분으로 삼성 수사에 집중하면서 경제계의 피로도가 극에 달하고 있다. 특검은 국정농단 사건을 조사하다보니 삼성을 수사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두 번이나 구속 영장을 청구하는 등 '삼성 특검'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대기업들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제공하고 최순실을 지원한 것은 누가 봐도 대통령의 강요에 따른 것이라는 정황이 강하다. 반면 대가성과 부정 청탁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검이 박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적용하겠다는 집착으로 사실관계나 확실한 증거 없이 한국의 간판기업들을 무리하게 옭아매는 것이라면 큰일이다. 이런 짜맞추기 수사로는 국정농단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는커녕 국익과 국가 경제에도 나쁜 영향을 줄 게 뻔하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경영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최소한의 정기인사만 단행하고 있을 뿐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 개편이나 신성장동력 발굴을 목적으로 하는 인수·합병(M&A) 또는 신규 투자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검이 이 부회장을 비롯해 대기업 총수들을 두 달 가까이 출국금지하면서 글로벌 전략에도 지장을 받고 있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총수들의 발이 묶이고 국내외 투자가 지연되면 결국 대외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글로벌 시장에서는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경쟁에서 밀려나기 십상인데 기업들을 뇌물죄로 엮으려는 특검과 반기업 정서 등 대기업 뒷덜미를 잡는 국내 악재들이 쏟아지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우리 경제는 3년 연속 2%대 저성장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실업자도 지난달 7개월 만에 다시 100만명을 돌파하는 등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선과 철강 등 주요 업종의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터라 매서운 고용 한파가 몰아칠 가능성이 높다. 벼랑 끝에 몰리고 있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기업들의 경영 활동을 촉진해 일자리를 늘리고 돈을 돌게 하는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실체는 밝혀야 하겠지만 이를 빌미로 지나치게 대기업들을 옥죄는 것은 백척간두에 서 있는 우리 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삼성에 대한 특검의 수사는 위험 수위를 넘었다.
10. 40년만에 파산 한진해운이 남긴 뼈아픈 교훈
한때 국내 1위, 세계 7위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이 오늘 법원 파산선고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수송보국(輸送報國)을 꿈꾸며 40년 세월을 견뎌온 한진해운의 침몰은 이 기업뿐 아니라 무역대국인 한국에 뼈아픈 교훈을 던진다.
한진해운의 파산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비전문적인 오너 일가의 경영, 호황을 예측한 무리한 확장이 화근이었다. 최은영 전 회장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시장이 침체되는 상황에서 시세보다 5배나 비싼 용선료로 선박 계약을 체결하는 등 확장 경영을 한 것이 위기를 불러왔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회사 상황을 늦게 파악해 자율협약 신청이 늦어진 데다 강도 높은 자구안을 내놓지 못한 것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정부와 금융권도 한진해운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마불사는 없다'는 구조조정 원칙을 지켰지만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의 현실을 간과한 결정이었다. 해운업이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것을 무시한 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법정관리 이후 50만개가 넘는 컨테이너가 바다에 떠도는 물류대란이 발생했고, 수천 명이 일자리를 잃는 등 후폭풍은 만만치 않았다. 덴마크의 한 해운물류분석 업체는 지난해 말 "한진해운 같은 정기선사를 이런 식으로 파산시켜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문제는 한진해운 파산이 끝이 아니라 해운업 위기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국내 수출입 화물의 99.7%를 담당하는 해운산업의 한 축이 무너지면서 화주들의 수출입 운송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한진해운 파산으로 6m 컨테이너 106만개를 운송할 수 있던 국내 선사의 선복량은 51만개로 반 토막 났다.
한진해운을 대신하겠다고 했던 현대상선의 선복량은 컨테이너 40만개에서 46만개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국적 선사가 힘이 약한 상황에서 글로벌 선사들이 한국을 외면하면 운임료 인상은 불가피하다. 정부는 국내 해운업 회복을 위해 최대 20척의 선박 건조를 지원하고 국적 터미널운영사를 만들겠다고 15일 발표했다.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소 잃고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려면 한진해운 사태가 남긴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정부의 해운업 살리기는 국가경쟁력 향상이라는 긴 안목에서 이뤄져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조선일보][일사일언] 사랑니 뽑던 날
동네 치과에서 사랑니 하나를 뽑고 나왔다. 지뢰가 터진 듯 황망한 자리에 솜뭉치를 악물고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렸다. 사랑니를 처음 뽑는 것도 아닌데 이번엔 참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턱이 부서질 것 같은데도 새끼손가락 끝 마디만 한 것이 뽑히지 않았다. 통증을 참다 못해 두 번이나 의사의 손목을 잡고 "잠깐만요, 잠깐만요!"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사정을 했다.
마취가 덜 풀린 눈으로 건너편 신호등을 보고 있을 때였다. 내 쪽으로 빠르게 날아오는 뭔가를 봤다. 본능적으로 머리를 숙였다. 그것은 급선회하며 길 건너편으로 날아가는 까치였다. 어릴 적 뽑은 젖니를 지붕으로 던지며 아버지 따라 외우던 주문이 생각났다. "까치야 까치야, 헌니 줄게, 새 이 다오."
집으로 가는 길엔 할머니들이 좌판을 깔아놓고 군것질거리며 채소를 팔고 있었다. 연탄 화덕에 얹혀 아득한 후각을 불러내는 번데기, 뜨거움을 견디다 못해 터지는 군밤, 종잇장이 된 쥐치는 생전의 제 모습을 기억할까? 의문이 드는 사이, 나물거리 푼 헌 보자기만큼 주름진 할머니 손등에서 진한 더덕 향내도 더듬었다. 좌판이 끝나는 부분에서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오던 길을 되돌아봤다. 치과 갈 때 걸어간 길인데 그때도 좌판이 있었나 낯설었다. 하긴, 연못에 떨어지는 빗줄기에도, 담장에 핀 찔레꽃에도 덤덤해진 요즘이 아니었던가.
집에 돌아와 조간신문을 펼쳤다. 면면마다 볕바른 어제 하루의 소사(小史)가 빽빽하다. 며칠 뒤에도 이 이야기들을 다 기억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마취가 풀렸는지 솜뭉치를 물고 있는 자리가 아프다. 솜뭉치를 뱉고 어금니에 기대 투정 부린 사랑니의 빈자리를 더듬어 봤다. 지금껏 살아오며 소홀히 해온 많은 것이 불현듯 존재를 드러낸다.
2. [중앙일보][최민우의 블랙코드] 빈둥거림의 경쟁력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폐지설에 휩싸였다. 15일 한 인터넷 매체는 “‘스케치북’이 시즌제 프로그램으로 전환된다”며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는다고 보도했다. 이건 단지 TV 예능 하나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등 20년 넘게 이어져 온 정통 음악프로그램의 명맥이 끊긴다는 의미다.
KBS는 부랴부랴 “사실 무근이다. 계속 간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높은 제작비, 저조한 시청률 등 사정은 여전히 녹록지 않아 보인다. 담당 김호상 CP는 “요즘 시청자들은 오롯이 음악만 듣는 걸 지나치게 한가하게 여긴다”고 토로했다.
올해 들어 화제의 방송콘텐트는 단연 tvN 설민석의 ‘어쩌다 어른’이다. 강연 프로그램으로는 이례적으로 시청률 8%를 상회했다. 대통령 탄핵 정국과 국정교과서 논란으로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새삼 환기된 데다 설민석의 스타성,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 등이 맞물린 덕이다. 여기에 달라진 시청 패턴도 한몫했다. “TV를 보면서 실컷 낄낄대 놓곤 오히려 찜찜해한다.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는 건 죄악이라며 놀면서도 지식·교훈 등 뭔가 남는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교양예능·정치예능이 인기있는 이유”(성기완 계원예술대 교수)라는 진단이다.
언제부터 우린 노는 걸 폄하했을까. 근면·성실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긴 근대화의 산물일 것이다. 여기에 스마트 세상은 걸을 때도, 밥 먹을 때도, 심지어 잘 때도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낙오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쉬지 않고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의 일상화다.
그런데 혹시 아는가. 우리 뇌는 아무 것도 안 하고 멍 때릴 때조차 스스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2000년대 초반 미국 뇌과학자 마커스 라이클 교수는 인간이 아무런 인지 활동을 하지 않을 때 더 활성화되는 뇌의 특정 부위를 발견하고, 이 두뇌 회로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network)’라 명명했다. 역할은 창의성과 자아 성찰 지원. “문제를 안고 잠이 들었다가 답을 안고 깬다”는 속설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셈이다. 통찰력의 근원이 휴식이라는 역설이다.
최근 미니멀 라이프가 트렌드다. 집안에 쓸모없는, 아니 설레지 않는 물건은 과감히 처분하라는 주문이다. 버려야 공간도 마련된다. 비움과 채움의 조화다. 마찬가지로 주말 하루쯤 뒹굴대도 괜찮지 않을까. 우두커니 음악만 들어도 된다. 멍 때림은 이제 낭비가 아닌, 시간의 여백이다. 빈둥거림은 최고의 창의성 훈련일지 모른다.
3. [매일경제][사랑에 대한 단상] 영화 '비포 미드나잇'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시리즈' 세 편은 청년들의 만남, 성숙한 남녀로서의 재회, 지극히 현실적인 부부가 된 남녀를 날 것 그대로 묘사한다. 우리는 제시와 셀린느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그들의 역사와 삶의 다양한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비포 미드나잇’은 비포 시리즈의 마지막 시리즈다. ‘비포 선라이즈’에서 첫 눈에 반했던 그들은 헤어졌고, ‘비포 선셋’에서 9년 만에 재회한다. 제시는 결혼한 상태이지만, 여전히 셀린느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비포 미드나잇’에서 우리는 부부가 된 제시와 셀린느를 만나게 된다.
영화의 첫 신은 제시가 공항에서 아들 헨리를 배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후, 제시는 셀린느가 기다리는 차에 탄다. 뒷좌석에는 쌍둥이가 잠들어 있다.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이내 작은 말다툼이 시작된다. 제시와 셀린느가 이전부터 줄곧 해왔던 대화 그 이상의 논쟁은 ‘비포 미드나잇’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제시와 셀린느는 각자의 방식대로 제법 똑똑한 삶을 살아온 인물들이다. 이는 ‘비포 선셋’에서 두드러진다. ‘비포 선라이즈’에서도 이들의 지식과 상식은 여과 없이 드러나지만, 특별함을 추구했던 그들도 결국 여느 직장인들처럼 비슷하게 취직하고 무언가에 쫓기듯 바삐 살아간다. 그야말로 너나 할 것 없는 전쟁 같은 현실 속 개인일 뿐이다.
셀린느는 하룻밤 사건으로 부엌데기가 된 자신을 한탄하고, 제시는 운명적인 사랑을 지켜내고자 과거의 무게를 감당해가며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제시와 셀린느의 그리스 휴가 속에서 별별 상황들을 다 본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서로를 헐뜯고, 각자가 망가져가는 둘의 모습은 무섭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기적처럼 사랑을 확인한다. 이들의 사랑은 환상적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이다. 중년의 그들은 보다 행복한 부부가 되기 위한 방법들을 터득해나간다.
‘비포 미드나잇’이 여느 시리즈와 다른 점은, 현실성이 반영된 로맨스라는 것이다. '내가 비록 이 남자와 쌍둥이를 돌보느라 사색의 시간이라고는 회사에서 똥 누는 시간밖에 없다지만, 이 남자가 바로 그토록 하룻밤을 함께하고 싶었던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지!'라는 셀린느의 대사만으로도 알 수 있지 않은가? 특히, 그리스 게스트하우스 파티에서의 다양한 연령대 남녀가 펼치는 이야기는 관객들 스스로를 성찰하게 만든다.
결국 제시와 셀린느는 서로를 인정하고 다독여준다. 이들이 깨달은 것은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좋은 관계를 이어 부부가 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게다가 우리는 일까지 해야 한다. 이 많은 역할들을 완벽히 소화해낼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아니,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그러다 보면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불만을 표하고 비난할 경우도 생기게 마련이다.
사실 우리는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힘든 때일수록 함께여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곧잘 잊는다. 함께인 사람의 소중함을 말이다. 완벽하지 않은 개인이라도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나간다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사랑과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제시와 셀린느가 서로를 인정하고 화해한 것처럼, 상대와 갈등 중이라면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보자.
4. [매일신문][매일춘추] 냉정과 열정 사이
지하철 광경을 담은 동영상이 잊히지 않습니다.
대구 말씨의 한 할머니가 장황하게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중년의 아저씨가 그만하라고 합니다. 할머니가 요즘 사람들은 굶어보지 않아서, 보릿고개를 몰라서, 6`25전쟁을 겪지 않아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합니다. 그 아저씨 소리가 더 커집니다. 그만하라고. 여기 혼자 탄 것이 아니니 조용히 하라고 합니다. 언성이 높아지고 이야기가 서로 겉돌더니 급기야 욕설이 튀어나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습니다.
일촉즉발 더 험악해질 수도 있겠다 싶을 즈음 아저씨가 먼저 자리를 피해보지만, 할머니가 뒤따라갑니다. 승객들은 무표정한 듯 불편한 기색으로 묵묵히 있습니다. 할머니 목소리가 쩌렁쩌렁합니다. 아저씨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갑갑한 이야기 그만하라고 욕설을 섞어 소리 지릅니다. 끝까지 보지를 못하겠습니다. 거기까지만 봤습니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정말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이 이렇게 쪼개지고 있습니다. 분노로 가득한 사람들이 두 편으로 갈립니다. 철천지원수처럼 대적합니다. 그러나 당연히 원수가 아닙니다.
살아온 궤적과 거기서 얻은 교훈이 다릅니다. 정보를 얻는 출처가 다르고 그것을 평가하는 잣대가 다릅니다. 사회적 경험과 지위, 삶의 과제와 자기표현 방식이 다릅니다. 생활 습관이 다르고 문화가 다릅니다. 굉장히 큰 ‘다름’이지요.
그렇다고 그것이 서로에게 서슬 퍼런 칼날을 들이댈 명분이 되지는 않습니다.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은 따로 있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속성을 가진 개별체인 동시에 공동체 일원입니다. 각자의 생각이나 행동이 자신이나 사회에 해가 가지 않는 한 각자의 것을 인정합니다. 인정한 후 이를 반영하거나 통과시킬 수 있습니다.
이번 경우도 그렇습니다. 할머니나 아저씨가 사회에 나쁜 영향을 미친 것은 없습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토론이나 연설은 서로 동의가 될 때 하는 건 어떨까요. 이참에 토론문화가 융성하기를. 나의 근거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 하지 말고 나의 판단으로 진실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가짜 뉴스를 편식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다 해결될 일도 아니지요. 성조기는 또 얼마나 뜬금없나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지하철 할머니에게서 사랑하는 저의 어머니를 봅니다. 그 할머니가 나라 망할 징조라고 너무 걱정하지도 말고 몸 상하지도 말기를 바랍니다. 지하철 아저씨에게서는 저를 봅니다. 그 아저씨 역시 너무 속 끓이지 말고 이렇게 오래가리라고 생각지도 못했기에 절대 지치지도 말기 바랍니다. 제가 차마 보지 못한 결론은 묵묵히 있던 주변 사람들이 침착하게 두 분을 잘 보듬어 숨 고르게 하고 내릴 곳은 어딘지 물어봐 주는 것으로 끝났기를 바랍니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조르다노 브루노
16세기 종교개혁은 종교적 관용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성서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온갖 이설들로 뭉치고 흩어지곤 하던 르네상스의 종교적 활기는 마르틴 루터의 카리스마와 도그마 속에 급속도로 종적을 감춰 갔다. 1600년 2월 17일, 그 시대적 분수령 위에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사상가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1548~1600)의 화형대가 놓였다.
그는 ‘무한 우주론’과 ‘지동설’의 신봉자였다. 그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일 뿐이라는 코페르니쿠스적 우주론에서 나아가 우주는 무한하고 밤하늘의 뭇 별들이 모두 항성이며, 태양은 그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와 유사한 주장은 15세기 철학자 쿠자누스 등에 의해서도 모색돼 온 것이었지만, 브루노의 시대는 신ㆍ구교가 종교 이념과 권력을 두고 전쟁을 하던 시대였다.
직업군인의 아들로 1548년 태어나 10대에 나폴리에서 고전문학과 논리학 등을 공부한 그는 65년 도미니크 수도회에 들어 24세이던 72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던 아리우스파의 이단 학설을 탐구한 탓에 이단 시비가 일자 76년 로마로 피신했고, 북부 이탈리아와 스위스 등지를 떠돌다 칼뱅주의로 개종했지만, 역시 주류와의 불화 속에 신교 역시 비관용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등을 돌린다.
프랑스와 영국 등지를 주유하며 옥스퍼드대 등서 강의하며 자신의 우주론과 신학-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부정, 신비주의적ㆍ범신론적 사고, 마리아의 처녀성 부정 등- 이론을 펼쳤다.
종교재판에 회부된 그는 무려 8년 동안 심문을 받으면서도 끝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예수회 추기경 로베르토 벨라르미노가 사형을 선고하자 “내 형량이 선고되는 것을 듣는 당신들의 두려움이 나의 두려움보다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는 설이 있다.
그를 과학의 순교자로 보는 데는 이견이 있다. 그의 우주관은 근대적인 면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는 과학과 거리가 먼 신비주의자였고, 마술이나 점성술 등에도 관심을 쏟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지적 탐구와 사상ㆍ신념의 자유, 다시 말해 저무는 르네상스의 어둠을 밝히고자 목숨을 바쳤다.
1899년 빅토르 위고 헨리크 입센, 바쿠닌 등이 로마 캄포데 피오레 광장에 그의 동상을 세우며 쓴 문구가 그러했다. “브루노에게- 그대의 몸에 지펴진 불로 시대의 미래가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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