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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특검팀은 왜 ‘이재용 구속’에 매달리는가

박영수 특검팀이 그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했다. 이미 영장이 기각됐던 1차 청구 때와 마찬가지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가 적용된 것은 물론 국외 재산도피와 범죄수익 은닉 등의 혐의가 추가됐다. 이번에는 반드시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특검팀의 의도를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오늘 열리는 법원의 영장실질심사 결과에 따라 이 부화장과 삼성의 명운이 갈리게 된다.

그러나 이번 특검 수사가 엉뚱하게도 ‘삼성 특검’으로 변질된 게 아니냐는 점에서 우려를 감출 수 없다. 특검팀이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혐의를 밝혀내려는 과정에서 삼성을 너무 무리하게 압박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촛불시위에서 드러난 일부 시위대의 ‘이재용 구속’ 구호에 은근히 편승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검 수사가 무분별한 반기업 정서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심지어 법조계에서조차 “특검이 이재용 구속에 모든 것을 걸은 것 같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이 부회장을 뇌물죄로 엮어 넣지 못한다면 박 대통령의 혐의가 입증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특검 수사도 실패로 귀결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특검은 이번 보강수사에서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새로운 혐의를 포착했다고 하지만 이들 기관의 해명과는 또 차이가 있다.

현재 특검팀이 어려운 여건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날짜가 잡혔던 박 대통령 대면조사가 청와대 측의 몽니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데다 법적으로 지정된 수사 기간도 이달 말로 끝나도록 돼있다. 특검팀의 심적 부담이 결코 작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과의 정면 대결로 마지막 승부수를 택한 것이라는 항간의 지적에 대해 스스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제 눈길은 다시 법원으로 쏠리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검찰이 제시한 혐의 사실에 대해 엄정한 법률적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삼성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잘못이 있다면 법에 의해 제재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 반대로 여론몰이에 따라 편향적인 결과가 빚어져서도 곤란하다. 누구라도 법 앞에 평등하기 때문이다.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2. 김정남 피살, 추후 도발이 더 걱정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살됐다. 북한 공작원으로 보이는 여성 2명에게 독침을 맞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고 한다. 김정은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이다. 핏줄을 나눈 이복형까지 암살한 것은 김정은식 공포정치가 얼마나 반인륜적이고 포악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김정은의 철권통치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걸림돌이 될 만한 인물은 누구든 제거했다. 2013년 12월 고모부 장성택을 죽인 것은 물론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김용진 내각 부총리 등 그동안 당·군·정 간부 100여명을 처형·숙청했다. ‘3대 세습’에 비판적인 김정남을 암살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1%의 체제도전 가능성마저 없애기 위해 마지막 싹을 자른 것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사건의 배경에 북한 내부에서 모종의 상황이 벌어졌을 가능성이다. 김정남은 일찌감치 권력승계 구도에서 밀려나 여러 나라를 떠돌며 사실상 낭인으로 지내왔다. 그런데도 그를 제거해야 할 정도라면 김정은 정권의 권력 기반이 아직도 불안정하고 취약하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김정은의 폭압정치에 대한 불만세력이 점차 늘어나면서 내부 급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북한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가의 정권이다. 안개 속에 숨어 갖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경우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당장은 말레이시아 당국과 협조해 사건의 전모를 신속히 파악하는 것은 물론 안보태세를 강화하는 게 시급하다. 지난해 망명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등 국내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의 신변보호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내부 급변 및 무력도발 가능성에도 치밀한 대응태세를 갖춰놔야 한다. 북한이 신형 중장거리 미사일(IRBM)을 발사한 바로 다음 날을 택해 김정남을 제거했다는 사실에서도 앞으로 호전적인 도발을 펼칠 공산이 큰 것으로 우려된다. 당장 내달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앞두고 또 다른 도발을 감행하고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도발이 이뤄진다면 강력히 대처한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신문]

3. 10대도 50대도 공직으로 몰리는 웃지 못할 현실

올해 9급 공무원 시험에 22만 8000여명이 몰렸다. 지난해보다 6500여명이나 늘어난 역대 최다 기록이다. 올해 지원자 중 20대(64%)가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30대(29.5%)다. 20~30대 응시생이 94%를 차지한다. 10대(3000여명), 50대(1000여명) 지원자도 있다. 청년 구직자들 사이의 공무원 열풍이 통계로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청년 취업난의 심각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공무원 쏠림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 해 공시생 45만명 시대다. 그중 절반 가까이가 9급 공채에 몰린다. 공무원 되겠다는 이들을 탓할 수만도 없는 것이 경기 침체로 청년들이 취업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줄었기 때문이다. 그들로서는 정년이 보장되는 공직은 안정적인 직장임이 틀림없다. ‘흙수저’ 청년들에게는 오로지 시험 성적으로만 합격 여부가 판가름나는 것도 매력적일 것이다. 노후 대책으로도 공무원 연금만 한 게 없다.

하지만 국가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인적 자원이 한쪽으로 몰리는 것은 많은 문제를 낳는다. 다양한 직종에서 인재들이 고루 분포돼 각 분야를 발전시켜야 국가의 경쟁력이 확보된다. 그런데 현실은 패기 있고 똑똑한 젊은 인재들이 너도나도 공무원이 되겠다고 몇 년씩 고시촌에 들어박혀 ‘공시족’, ‘공시폐인’이 되고 있다. 사회적 비용도 막대하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불행한 일이다.

이제는 고교 졸업 후 대학을 포기하고 공무원이 되겠다는 10대들까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2012년에 비해 올해 3배나 증가한 3000여명이 9급 시험에 응시했다고 한다. 고교 졸업 후 부모에 등 떠밀려 대학에 가지 않고 자신의 진로를 찾는 10대들이 늘어난 것은 어찌 보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마저 요리사 등 수많은 직업이 있는데도 공무원이 되겠다고 목을 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도전보다 안정만을 추구하는 ‘늙은 사회’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이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지 못한 정부, 기업, 기성세대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대선 주자들이 공공부문 일자리 늘리기로 공시족들만 양산하는 것은 국가 재정 부담이나 인적자원 배분 면에서도 올바른 방향은 아니다. 먼저 민간 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무엇보다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들이 공시 열풍에서 벗어나 창업 등 새로운 길을 가도록 도전하는 사회 풍토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4. 4강 공조로 김정은 예측 못할 돌출 행동 대비를

이복형 김정남을 독살한 북한 김정은에게서는 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광기가 풍긴다.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지 하루 만에 반인륜적 행위를 저질렀다. 김정은이 국제사회의 비난과 고립을 자초하면서까지 예측 불가의 돌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와 국제사회를 향해 앞으로 무슨 짓을 더 할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또한 집권 5년에 접어들었지만 정권 내부가 아직 불안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김정은이 고모부인 장성택을 공개 처형한 데 이어 이복형까지 살해한 것은 장남인 김정남의 존재 자체가 김정은 정권에는 위협이 됐을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면서 중국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자 중국이 김정남을 김정은의 대체재로 옹립할 것이라는 설이 끊이지 않았다. 김정은 입장에서 보면 체제를 위협할 후환을 제거한 셈이다.

체제 유지에 걸림돌이 된다고 여겨지면 혈육이고 뭐고 가차 없이 피를 보고야 마는 김정은식 공포 정치의 끝이 어디인지 지금으로서는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다만 기습 도발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으며, 핵 불장난이 단순한 엄포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북극성 2형’ 시험발사가 ‘자위적 조치’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김정은 정권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북한을 아주 강력히 다룰 것”이라고 초강경의 태도를 보였다. 이에 김정은 역시 한 손엔 핵과 미사일로 국제사회와 맞서고, 다른 한 손엔 공포 정치를 틀어쥐고 내부 통제와 체제 강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어느 때보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커진 것이 사실인 만큼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도발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내일부터 독일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와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하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왕이 중국 외교부장,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등과 양자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조율 중이라고 한다. 북한의 핵 폭주를 저지하려면 무엇보다 국제적인 공조가 중요하다.



윤 장관은 다자 회의 참석을 계기로 미·중·일·러 등 한반도 주변 4강과 대북 압박의 새 틀을 짜야 한다. 김정남 독살에서 보듯 김정은 정권 내부가 요동칠 가능성도 있는 만큼 북한 권력층 내부의 이상 징후에 대한 정보교환 시스템도 구축돼야 한다.

김정은이 국내에서도 요인과 고위급 탈북 인사를 상대로 암살 기도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정남의 이종사촌 이한영 피살 사건에서 보듯 언제 어디서 경호에 구멍이 뚫릴지 모른다. 불순분자의 잠입을 막기 위해 공항만 경계와 국내 고정간첩들의 움직임에 대한 감시를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 긴장의 끈을 늦춰선 안 된다.



5. ‘독도는 일본 땅’ 초·중 의무 교육화 나선 일본

일본 정부가 초·중학교 교과서의 지침이 되는 학습지도요령 개정안에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것을 의무적으로 교육하라고 명시하면서 악화일로의 한·일 관계가 더 꼬이게 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현행 일본 초·중학교 교과서 20여종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법적 구속력을 가진 지도요령에 이런 내용을 넣는 것은 처음이다.



지도요령은 교육 현장에서 지침을 강제하는 효력을 갖기 때문에 일본의 모든 초·중 학생은 2020년부터 독도가 일본의 땅이라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의무적으로 배울 수밖에 없다.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 아베 정권은 부산 소녀상 문제로 자국의 외교사절을 느닷없이 소환해 양국 관계를 얼어붙게 하더니, 이제는 독도 영토 문제로 전선을 넓히는 모양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시정 연설에서 “한국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라고 언급했다. 이번 일로 그는 속 다르고 겉 다름을 한 달여 만에 드러내고 말았다.



그는 연초부터 개헌 추진을 공식화해 자위대에 무력 행사의 길을 터 놓았다. 한술 더 떠 독도 영유권 왜곡 교육을 의무화함으로써 극우 보수세력의 결집을 꾀하고 나선 것이다. 개헌 동력을 얻으려는 속셈이 뻔해 보인다.

정부는 그제 지도요령 개정안 고시의 즉각 철회를 촉구하고 “개탄을 금할 수 없는 일로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일본 공사를 불러 항의의 뜻도 전달했다. 그러나 공사를 불러 호통치고, 단호하게 대응한다고 으름장 놓는다고 해서 일본이 독도 도발을 멈추리라고 생각하는가. 독도에 대한 부당한 주장에 개탄을 금할 수 없고, 단호하게 대응한다고 엄포를 놓아도 그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을 것이란 점이 우리의 경험칙이다.

정부는 수세적·소극적인 태도를 그만둬야 한다. 우리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한다는 것으로 더이상 위안 삼아서도 안 될 일이다. 아베 정부가 체계적으로 도발하는 것에 맞춰 하나씩 행동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여 줄 때가 됐다. 이런 맥락에서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이번 일을 계기로 독도가 한국 땅임을 알려 주는 다국어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일본의 독도 정책을 다국어로 반박하는 영상을 담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하기로 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정부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아베 총리는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국사 교과서에 명시하자’거나 ‘독도를 군사기지화하고 주변 해역을 당장 개발하라’는 한국 국민의 빗발치는 요구가 있음을 직시하기 바란다.



[동아일보]

6. 박 대통령은 왜 獨 도피한 최순실과 '대포폰' 통화했나

박근혜 대통령과 ‘국정 농단 비선실세’인 최순실 씨가 지난해 4월 18일부터 10월 25일까지 570여 회나 차명 휴대전화로 통화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어제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압수수색·검증영장 집행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특검 측 대리인이 청와대 압수수색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공개한 내용이다. 이 중 127차례는 최 씨가 독일로 도피한 9월 3일부터 귀국 직전인 10월 25일까지의 국제전화였다. 

이때는 최 씨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운영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이어 대통령 연설문은 물론이고 국정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이 쏟아져 나온 시기다. 박 대통령이 최 씨와 대응책을 논의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올 수밖에 없다. 최 씨의 귀국도 두 사람이 논의한 결과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성매매 보이스피싱 등에 주로 사용되는 차명 휴대전화인 일명 ‘대포폰’은 개설, 이용 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특검팀은 두 사람의 수백 회에 걸친 ‘몰래 통화’가 국정 농단의 공모와 은폐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청와대 측은 대통령 일정상 매일 3회 이상 통화하는 것이 가능하냐며 특검 주장을 부인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국민은 더 궁금한 것이다. 내부고발자인 고영태 씨가 “VIP(대통령)는 이 사람(최순실)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라고 한 말이 과연 맞는지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라고 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올해 1월 1일 기자간담회에선 “특검의 연락이 오면 성실히 임할 생각”이라고 말했으나 지금까지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 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지난해 10월 25일 1차 사과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모든 책임을 최 씨에게 떠넘긴 것도 최 씨와 통화해 논의한 결과인지 알 수 없다. 그러니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어 청와대 압수수색을 승인할 수 없다는 박 대통령 측의 주장도 믿기 어려운 것이다.



7. 김정은 ‘광기의 테러’로부터 우리는 안전한가

북한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독살 사건은 김정은 집권 이래 지속된 ‘스탠딩 오더(명령권자의 취소가 없는 한 끝까지 수행해야 할 명령)’의 집행이었다고 어제 국가정보원이 밝혔다. 2012년 초 이미 한 차례 암살 시도가 있은 뒤 김정남이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서신까지 보냈지만 이 명령은 취소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사건은 “김정은의 편집광적 성격에서 비롯됐다”는 게 국정원의 진단이다. 김정남 독살은 3대 세습왕조의 권력투쟁이 낳은 해외원정 테러 살인극이다.

이번 테러는 김정은 일파가 얼마나 광기 어린 야만집단인지 국제사회에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다. 굶주린 인민들은 쓰레기를 뒤지는데도 극소수 집권층은 최고급 샴페인을 터뜨리고 자세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최고 엘리트마저 고사총으로 공개 처형하는 ‘초현실 사회’ 북한의 실상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참수와 화형, 수장 등 온갖 야만적 살인 행위도 모자라 조직원을 해외로 보내 테러를 자행하는 이슬람국가(IS) 세력과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다.

북한은 앞으로 이번 사건에 침묵하거나 발뺌할 가능성이 높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공항 폐쇄회로(CC)TV에 잡힌 여성 2명 등 용의자들을 추적 중이지만 붙잡힌 여성 한 명은 베트남인으로 드러나는가 하면 일부 외신에선 테러범들이 범행 직후 사망했다는 ‘자결설’도 나오는 등 사건이 자칫 미궁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김정남의 전처와 후처 두 가족이 베이징과 마카오에 버젓이 있는데도 말레이시아 측에 시신 인도를 요구하는 뻔뻔함까지 보이고 있다. 당장 시신이 그들에게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우리 외교력을 모아야 한다.

북한으로선 이미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 같은 악명이 새삼스럽지 않다. 북한은 여기에 ‘테러광’이라는 낙인을 다시 추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KAL기 폭파 사건 이후 20년 넘게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랐다가 2008년에야 겨우 벗어났지만, 조만간 미 의회에선 테러지원국 재(再)지정 논의가 가시화될 공산이 크다. 김정남과 그 가족들을 보호해온 중국도 김정은의 잇단 도발 행위를 마냥 감싸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정남 독살은 우리 정부 요인 등 사회지도층은 물론 탈북자 사회 전체에 대한 공개적인 테러 협박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남파 공작원들이 부여받은 요인 암살테러 같은 ‘스탠딩 오더’를 철저히 봉쇄할 대테러 대책부터 재점검해야 한다. 정부가 김정남 피살 소식이 전해진 14일 밤 국가안전보장회의(NSC)까지 열 필요는 없다고 하다 어제서야 회의를 연 것은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키운다. 국가 리더십 공백으로 불안한 국민을 더욱 걱정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



[세계일보]

8. "노조가 혁신 막는다"는 쓴소리, 정치권은 어찌 듣나

송호근 서울대 교수가 현대차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차 개발로 자동차 조립 공정이 바뀌고 있지만 작업 규율은 1970, 80년대와 다르지 않다”고 했다. 송 교수는 “새로운 물건을 구시대적 조직이 만들어 내는 유례없는 모순에 봉착해 있다”고 꼬집었다. “노조 저항이 혁신을 막고 있다”고도 했다. 우리의 산업위기는 노조로부터 잉태된 것이라는 뜻이다. 그의 말이 천근 무게를 갖는 것은 1년간 울산 현대차 노동자 50여명을 심층 인터뷰해 내린 결론이기 때문이다.

강성 노조가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현대차 경영지표 몇 가지만 뒤져 보면 그 실상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통계에 따르면 국내 현대차가 자동차 한 대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15년말 현재 26.8시간이었다. 도요타 24.1시간, 폴크스바겐 23.4시간, GM 23.4시간보다 길다.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의 14.7시간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깝다.



하지만 국내 현대차 평균 연봉은 9400만원으로 도요타 7961만원, 폴크스바겐 7841만원보다 훨씬 많다. 이런 고질부터 고칠 생각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는 지난해에도 “해외투자 시 노조의 동의를 받으라”는 억지나 썼다. 그런 노조가 작업 규율까지 장악해 혁신을 가로막으니 경쟁력이 살아날 턱이 있겠는가.

현대차가 이런 지경이니 다른 기업이 어떠할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GM 노조 간부들이 검은돈을 챙기며 ‘취업 장사’를 하는 모습에는 퇴락한 집단으로 변한 노조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취업 한파는 매섭다. 1월 실업자는 100만9000명으로, 7년 만에 100만명선을 다시 돌파했다. 이런 사태도 강성 노조를 피해 투자선을 해외로 돌린 기업의 선택이 한몫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4차 산업혁명의 수레바퀴는 빠르게 구르고 있다. 세계가 사활을 건 혁신에 뛰어든 것은 이 때문이다. 기업을 혁신하자면 전근대적인 노조의 고질부터 도려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첫걸음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 정국을 맞아 노동개혁의 외침이 사라진 지 오래다. 대선주자치고 노동개혁을 부르짖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자리는 근로시간 단축이나 재벌 개혁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선주자들은 말로만 일자리를 외치기 앞서 당장 노동개혁 법안부터 처리하기 바란다.



9. '천부적 인권' 재확인한 대법원 한센인 국가배상 판결

한센인들에게 시행한 단종(정관 절제)·낙태 수술에 국가가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처음 나왔다. 대법원은 어제 한센인 19명의 국가소송 상고심에서 낙태 피해자 10명에게 4000만원, 단종 피해자 9명에게 3000만원씩을 배상하라고 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이들에게 시행된 수술 등을 “위법한 공권력 행사”라고 했다. “헌법상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태아의 생명권, 행복을 추구할 권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인격권 및 자기결정권, 내밀한 사생활의 비밀 등을 침해하거나 제한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결정은 한센인 강제 수술이 무지속에 이루어진 국가 폭력임을 인정한 것이다. 국가가 저지른 잘못을 국가 스스로 책임지도록 한 것은 당연하다. 정부는 2011년 손해배상 소송이 시작된 이후 지난 5년여간 수술 등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배상을 거부하며 한센인들을 좌절케 했다.



정부가 2007년부터 시작한 한센인 인권유린 실태 진상조사 결과 피해자는 6462명에 이른다. 그러나 국가가 배상을 거부하면서 한센인 540여명이 소송을 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나머지 소송에 대한 재판도 신속하게 마무리되기를 기대한다. 정부도 한센인들 배상에 적극 나서 이들이 평생 흘린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국회 차원의 입법 지원도 필요하다.

한센인들이 평생 안고 살아온 고통은 인간의 무지와 이기심이 빚어낸 현대사의 비극이다. 소록도에서는 일제 강점기인 1936년부터 1980년대까지 부부 동거의 조건으로 단종수술을 내걸었다. 소록도를 비롯해 인천, 익산, 칠곡, 안동 등지에서도 많은 한센인이 천부적 인권을 잃은 채 뱃속 아이를 떠나보냈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도 상상 이상이다. 소록도 사람들 스스로 “세 번 죽는다”고 말할 정도다. 한센병 때문에 고통 겪고, 죽어서 해부되고, 해부된 뒤 화장된다는 것이다. 사회의 차가운 시선도 국가 폭력 못지않은 폭력이다. 국가 배상금 몇 푼으로 이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다. 국가는 물론 사회도 함께 반성하고 이들을 보듬는 데 앞장서야 한다.



[매일경제]

10. 송호근 교수의 현대차 노조 질타, 핵심 짚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가 귀족화된 현대자동차 노조의 전횡과 나태에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지난 1년간 울산공장과 해외공장에서 50여 명을 심층 인터뷰해 쓴 책 '가 보지 않은 길'에서 그는 현대차의 혁신을 가로막고 자신들의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한 노조를 질타했다.



송 교수는 "그들은 사실상 중산층이지만 일터에서는 노동자로 이중적 정체성을 지녔다"며 "이는 계급적 연대가 아닌 내부자 연대로 변질돼 갔다"고 쓴소리를 했는데 핵심을 잘 짚어냈다고 본다.

노조가 '일은 적게' '돈은 많이' '고용은 길게'라는 3가지 목표에 매달리면서 작업장의 권력을 장악하고 기업을 위기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기자동차·자율주행차 등의 신기술 개발에도 불구하고 노조의 저항에 조립공정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심히 우려되는 대목이다. 권력화된 노조가 산업현장을 정체시키고 있는 것은 산업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간 걱정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현대차 노조가 귀족노조·강성노조라는 얘기가 나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연평균 소득이 9600만원으로 근로자 평균 연봉 3%에 속하지만 이들은 걸핏하면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줄파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파업횟수는 24회나 되고 이로 인한 손실은 총 3조1000억원에 달했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현대차 노조 파업에 중소기업 근로자들과 비정규직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노조가 약자이기는커녕 경영진을 뒤흔들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노조는 정몽구·정의선 부자가 받은 주식배당금의 20%(200억원)를 요구하는 등 본분을 망각한 행동을 자행했다. 마음대로 일을 당겨서 해치우고 퇴근하는 '야리끼리' 문화, 비정규직에게 일을 떠넘기는 군림문화 등도 있다니 내부에 도사린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한 듯하다.

송 교수는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조선업과 같은 파국을 맞지 않으려면 불황에 대비해 미리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귀담아들어야 할 진단이다. 강성노조가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것은 시간문제다. 노조의 권력화를 막아야 비정규직 처우 문제도 개선될 수 있다. 채용장사, 고용세습 등 노조의 횡포를 막으려면 하루빨리 노동개혁에 나서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매일 600만 그릇 팔리는 '짜장면'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외식 메뉴는 아마도 짜장면이 아닐까 한다. 예전에는 입학이나 졸업식 때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지만, 이제는 언제든지 쉽게 즐길 수 있는 국민 메뉴가 되었다.

짜장면은 원래 중국 산둥 지역의 작장면(炸醬麵)에서 유래하며, 우리나라에는 1900년대 초 들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짜장면은 6·25 전쟁 이후에 많은 양을 값싸게 제공할 수 있게 변형된 것이다. 우리식 짜장면은 춘장에 식은 면을 말아 먹는 중국식과는 달리 양파, 고기, 감자, 채소를 고루 넣고 볶은 뒤 전분을 풀어 묽게 끓여 뜨거운 면에 얹어 먹는다. 짜장 소스 위에 오이채나 완두콩을 얹고 입맛에 따라 식초, 고춧가루를 더하고 단무지, 양파를 곁들인다. 맛과 레시피가 우리 환경과 입맛에 맞게 놀라운 변신을 한 것이다.

짜장면에 얽힌 에피소드는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필자 또한 예외가 아니다. 1997년 11월 IMF경제위기로 치닫던 당시 재정경제원 외화자금과장의 직책에 있었다. 매일매일을 사투를 벌이다시피 하던 시절인데, KBS 9시 뉴스에서 우리가 일하는 현장을 국민에게 소개하겠다고 강권해서 할 수 없이 응했던 적이 있다.



녹화가 막 끝난 저녁 즈음, 여느 날과 다름없이 자동으로 미리 시켜 둔 짜장면이 배달되었다. 우리는 무심코 취재팀에게도 권하고 식사를 했다. 그런데 이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고 그대로 방송된 것이다. 참 계면쩍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TV를 보다가 갑자기 짜장면 생각이 나서 다음날 오랜만에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는 인사를 도처에서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짜장면은 과거 정부 시절 물가관리 대표품목이 될 정도로 국민 메뉴여서 수준급 식당도 곳곳에 많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곳을 몇 군데 소개하려 한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 이화여대 후문 쪽에 ‘효동각’이 있다. 메뉴는 짜장면뿐이다. 일·월요일은 휴무인 데다 평일에도 점심만 하고 그것도 3시까지만이다. 주인, 부인, 아들 세 사람이 하는 집이다. 주문 후 요리를 시작하므로 꽤 기다려야 한다. 면발이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고 짜장 소스에 버섯이 들어가 식감이 좋다.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은 순한 맛인데도 이 집만의 특유의 풍미가 가득하다.



마포구 공덕동 효창운동장 뒷담 쪽에는 1981년에 문을 연 ‘신성각’이 있다. 테이블이 몇 개 안 되는 작은 집으로, 주방은 보조도 없이 주인 혼자서 하고 부인은 홀 담당이다. 메뉴는 짜장면 등 총 여섯 가지. 기다리는 동안 볼 수 있는 수타 모습은 감동마저 준다. 주인은 짜장면을 예술로 믿는다. 순수 그 자체의 맛이라는 것이다. 점심때 줄이 길다. 중구 명동 중앙우체국 옆에는 ‘개화’란 식당이 60년 넘게 자리잡고 있다. 화교가 하는 중국집인데, 다소 가는 면발에 걸쭉한 짜장 소스를 비벼 먹는다. 소고기를 다진 유니짜장을 많이 시킨다. 단맛이나 고소한 맛은 적으나 중독성 있는 특별한 맛이다.

마포 불교방송 건물 지하에는 1953년에 개업한 ‘현래장’이 있다. 인근 작은 건물에 있다가 재개발로 옆 건물로 이사했다. 이사 전에는 길에서 유리 너머로 수타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수타의 원조 격이어서 맛볼 만하다. 용산 삼각지 전쟁기념관 옆에는 ‘명화원’이 있다. 테이블이 몇 개 안 되는 작은 점포로, 얼마 전 가게를 새로 단장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줄이 길어졌다. 메뉴는 짜장면, 탕수육 등 다섯 가지뿐이다. 탕수육과 군만두도 유명하다.

졸업과 입학 시즌이다. 이 시절이면 가족들과 함께 즐기던 옛날의 그 짜장면 생각이 절로 난다. 얼른 가서 한 그릇 사 먹어야겠다.



2. [서울신문][정찬주의 산중일기] 사립문과 고드름

부산 사상구에 거주하는 문화탐방팀 100여명이 내 산방을 다녀갔다. 폭설이 내린 뒤끝이라 눈길이 걱정됐지만 버스로 온다고 해서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내 산방에서 5리 일대의 응달은 한 번 눈이 내리면 며칠 동안 위험한 빙판길이 되기 때문이었다. 사상구에서 온 문화탐방팀원들은 계절마다 전국을 답사하는 모양인데, 이 또한 우리 선조의 멋이었던 풍류(風流)가 아닐까 싶다.



걸림 없는 바람의 흐름처럼 뜻 맞는 사람끼리 가고 싶은 명산명소를 찾아다니는 답사도 우리의 문화 전통인 것이다. 문화탐방팀 손님들이 내 산방을 보고 가장 흥미를 느끼는 것은 사립문이었다. 사람들은 사립문 앞에서 기념사진부터 찍었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대나무문을 떠올리는 듯했다.

추억을 되새기게 해 주는 것은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도 그 자체로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3년마다 썩은 대나무와 지지대를 바꾸어 왔지만 아직도 사립문을 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립문을 새로 교체할 때마다 그 번거로움이란 정말 머리를 무겁게 한다.



대나무는 누런빛을 띠는 묵은 것이 습기에 강하다. 지지대는 산속을 뒤지며 강도가 센 노간주나무를 구해야 한다. 나의 이런 진정성이 이 지역 사람들에게 읽혔는지 어느 날인가는 사립문에 느티나무로 만든 ‘집필중’이란 작은 피객패(避客牌)가 걸려 있었다. 글 쓰는 이의 산방이니 무례하게 방문하지 말라는 뜻의 나무패였다. 하긴 나도 오전 중에는 밀린 청탁 원고를 해결해야 하니 웬만하면 손님을 받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멀리서 온 손님을 어찌하랴. 더구나 오는 손님 막지 않고 가는 손님 잡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세워 놓은 원칙이다. 한 번은 피객패를 보고 돌아가는 손님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문득 미안한 생각이 들어 뒤쫓아 나갔다. 그런데 그 손님이 “이 집 주인 성은 ‘집’씨이고 이름은 ‘필중’인가 보다” 하고 나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가는 것이 아닌가.



그분이 다시 찾아온다면 요즘 즐겨 마시는 따뜻한 발효차 한 잔 올려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서재 방문에도 종이에 쓴 피객패가 있는데 그분이 본다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왜냐하면 서재의 피객패에는 ‘집필 중’이라고 띄어쓰기가 돼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 집 주인의 성은 ‘집필’씨이고 이름은 ‘중’이라고 할 것만 같다.

부산에서 온 문화탐방팀 손님들에게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 또 하나는 추녀 끝에 매달린 고드름이었다. 나 역시 땅꼬마 시절에 냇가 버들강아지 잔가지 밑에 달린 수정고드름을 마치 얼음과자인 양 따먹은 기억이 있다. 내 산방이 북향집이기 때문에 고드름이 잘 열리는 것 같다. 햇볕이 잘 드는 남향집에서는 고드름이 금세 녹아 버린다고 한다.



법정 스님께서 살아생전에 내 산방에 오셔서 “왜 북향집을 지었소?”라고 물은 적이 있다. 고찰이 내려다보이는 서향집을 짓지 않고 앞산이 첩첩한 북향집을 지었으니 의아하셨으리라. 상량문에도 나는 ‘백두산 천지 향해 이불재(耳佛齋)를 앉히다’라고 북향집임을 밝혔다.

내가 솔직하게 “천년 고찰을 내려다보고 사는 게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랬습니다. 아래 절 풍경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피했습니다”라고 말씀드리자, 법정 스님께서 “잘했소. 절이 보이게끔 지었으면 절을 지키는 경비초소가 될 뻔했어요”라고 나의 의도에 동조해 주셨다.

나는 이와 같은 사연도 문화탐방팀원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더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내친김에 한마디 더 보탰다. 우리가 진정 사랑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소유하려 하거나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끔 한 번씩 목말랐을 때 그리움으로 만나야 한다. 소유와 집착은 사랑이 아니다. 나는 바닷가에 통유리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의 취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나라면 5분, 10분 걸어야만 바다가 보이는 그런 곳에 오두막집을 마련할 것 같다. 바다를 옆에 두고 사는 부산의 문화탐방팀 손님들이 모두가 내 말에 공감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이제 내 산방의 겨울철 특산물로 추녀 끝에 매달린 동장군의 긴 칼 같은 고드름이 하나 더 추가되지 않을까 싶다.



3. [서울신문][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바닷가에서

'기탄잘리'는 인도의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타고르(1861~1941)가 1909년에 157편의 시들을 묶어 벵골어로 발표한 시집이다. 위 시집에 실린 시 53편과 그의 다른 시집에서 추린 50편의 시들을 시인 자신이 영어로 번역한 ‘Gitanjali’란 제목의 시선집이 1912년 런던에서 출판되었다. ‘기탄잘리’는 벵골어로 “바치는 노래들”을 뜻하는데, 우리말로는 ‘신에게 바치는 노래’가 적당한 번역이리라.

영어판 기탄잘리 시집의 초판본에 서문을 쓴 사람은 시인 예이츠이다. 무슨 서문이 이리 긴가. 지금 내 눈엔 다소 장황스러워 보이는 예이츠의 서문을 읽노라면, 어느 낯선 인도인의 언어가 유럽인의 가슴에 일으킨 파문을 짐작할 수 있다.

“타고르의 번역시들이 내 피를 휘젓고 있다. 요 몇년간 그 어떤 것에도 지금처럼 동요한 적이 없었다.”

예이츠가 인도 출신의 여행자에게 타고르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시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뛰어나, 그의 노래들은 인도의 서쪽지방에서부터 버마까지, 벵골어를 사용하는 곳이면 어디에서든지 불리고 있다. 그는 첫 소설을 쓴 열아홉 살 때부터 이미 유명했다. 그가 쓴 연극들이 지금도 콜카타에서 무대에 오른다.… 그는 하루 종일 명상에 잠겨 정원에 앉아 있곤 한다. 스물다섯 살 무렵부터 서른다섯 살까지 깊은 슬픔을 경험하고 우리 언어로 된 가장 아름다운 연애시를 썼다.”

예이츠에 의하면 “인도 문명 그 자체와도 같은 타고르는 영혼을 발견하고 자신을 그 영혼의 자발성에 맡기는 데 만족해 왔다.



”예이츠의 긴 서문은 기탄잘리 60을 인용하는 것으로 끝난다. 어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타고르의 시도 기탄잘리 60인데, 한국에서는 ‘바닷가에서’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산문시를 한글로 옮겨 적는다.

기탄잘리 60
-타고르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입니다. 한없는 하늘이 머리 위에 멈춰 있고 쉼 없는 물결은 사납지요.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소리치고 춤추며 모입니다.

그들은 모래로 집을 짓고 빈 조개껍질로 놀이를 합니다. 시든 가랑잎으로 배를 만들고 웃으며 이 배들을 넓고 깊은 바다로 띄워 보내지요. 아이들은 세계의 바닷가에서 놀이를 합니다.

그들은 헤엄치는 법을 알지 못하고, 그물을 던지는 방법도 알지 못합니다. 진주잡이 어부들은 진주를 찾아 물에 뛰어들고, 장사꾼은 배를 타고 항해하지만, 아이들은 조약돌을 모으고 다시 흩뜨립니다. 그들은 숨은 보물을 찾으려 하지 않고, 그물을 던지는 방법도 알지 못합니다.

바다는 웃음소리를 내며 끓어오르고 해변의 미소는 희미하게 빛납니다. 죽음을 흥정하는 물결은 아이들에게 뜻 없는 노래를 불러 주지요, 아가의 요람을 흔드는 어머니처럼. 바다는 아이들과 놀고, 해변의 미소는 희미하게 빛납니다.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입니다. 폭풍은 길 없는 하늘을 떠돌고, 배들은 흔적 없는 물 위에서 난파하고, 죽음이 도처에 널려 있는데 아이들은 놀고 있습니다.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의 위대한 모임이 있습니다.



*
애써 모은 조약돌을 다시 흩뜨리는 아이들. 아이들은 소유하지 않는다. (어른들처럼 재화를) 축적하지도 않는다. 욕심 없는 아이들과 욕심 많은 어른들, 순수한 동심과 이익을 추구하는 세상을 아름답게 대비시켰다.

굽이치며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웃음에 비유했다. 희미하게 빛나는 ‘해변의 미소’는 해변에 닿아 부서지는 하얀 물거품을 떠올리면 되리라.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의 위대한 모임을 들여다보다, 2월의 어느 날 고등학교 졸업식에 다녀왔다. 고2 때 터진 메르스 사태 때문에 수학여행도 못 가봤다는 조카가 딱했다. 어려서부터 공부 공부…. 이 나라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입시학원들이 번창한다. 입시와 취업에 짓눌린 한국의 아이들. 바닷가에서 친구와 놀아보지도 못하고 학창 시절을 마감해야 하는 청춘이 불쌍하다.

학원 간판이 한 개도 보이지 않는 서울을 보고 싶다. 모래로 집을 짓고 가랑잎으로 배를 만드는 아이들이 춤추고 떠드는 바닷가. 끝없는 하늘이 머리 위에 멈춰 있는 해변을 아이와 걷고 싶다. 언제 우리는 죽음의 교육을 끝내고, 바다와 아이를 되찾을까.



4. 경향신문][역사와 현실] 왕의 측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텔레비전 사극에 국왕이 가까운 신하와 독대하는 장면이 가끔씩 나온다. 이런 일은 조선시대에 실제로 가능하지 않았다. 국왕은 복수의 사람들에게 늘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 각자의 임무와 성격이 달랐는데, 그 임무와 성격의 구성이 조선왕조 권력의 단면을 보여준다. 왕 주변에는 크게 5개 그룹이 있었다. 왕이 심정적으로 가깝게 느끼는 순서로 따지면 내시, 승지, 대신, 언관, 사관이 그들이다.

내시(內侍)는 원칙적으로 국왕의 사적 요구에 응하는 존재였다. 국왕의 개인적 사정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왕에게 ‘노(No)’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들에게는 어떤 공적 역할도 맡겨지지 않았다. 국왕에 대한 사적인 보필 이외에 그들은 아무런 책임도 요구받지 않았다.



승지(承旨)는 승정원에 소속되었고 모두 6명이었다. 정3품 벼슬이고, 요즘으로 말하면 대통령 비서실 비서관들이다. 이들 임무는 ‘국왕의 말을 정부조직과 연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6명의 승지는 정부조직인 6조 중 하나씩과 연결되었다. 수석승지인 도승지는 이조, 좌승지는 호조, 우승지는 예조와 연결되는 식이다. 조선시대에 내시나 승지들이 일으킨 정치적 물의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들의 ‘정치적’ 역할이 전혀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물의를 일으켰다는 기록은 눈에 잘 안 띈다.

대신(大臣)은 주로 3명의 정승과 6명의 판서를 가리킨다. 각각 정1품과 정2품의 최고위 관직자들이다. 관직자들로서 국정현안을 실무적으로 책임지는 사람들이었다.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 사이에 대과(大科)에 합격한 후, 말단에서 시작하여 적어도 50세가 넘어야 도달할 수 있는 자리이다. 이들 역시 가능하면 국왕 의견을 존중했다. 하지만 이들의 임무는 내시는 물론이고 승지와도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들은 때로 왕의 의견에 반해서 ‘안됩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국왕의 명령이기에 따랐다고 말하는 것으로 자기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국왕과 의견이 다르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조선 조정의 원칙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것이 어찌 그때만의 원칙이겠는가. 자기 몫의 책임이 있기에 안 된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선이 남긴 방대한 기록 덕분에 왕에게 영합하여 책임을 못한 대신이 누군지 지금도 확인이 가능하다.

내시, 승지, 대신이 정도 차이는 커도 국왕 의견을 존중하는 쪽이라면, 언관과 사관은 국왕에게 불편한 존재들이다. 언관(言官)은 명칭 그대로 바른말 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관리로, 사간원과 사헌부 관원을 말한다. 지금으로 치면 강경한 야당 성향 언론, 검찰 및 감사원에 해당한다. 지금과 다른 것은 대신과 국왕에 대한 비판이 언관의 중심 업무였다는 점이다.



두 기관의 중추는 4~6품 정도의 관리들이다. 이들은 거의 대과 출신 엘리트들이고, 나이는 주로 30대가 중심이었다. 대신과는 부모·자식 정도의 나이 차이가 났다. 이들은 그 나이와 스펙으로 인해서 무례할 정도로 원칙적이었다. 그들은 아직 젊고, 승진 때문에 높은 사람에게 신세진 적이 없고, 똑똑한 젊은이가 대개 그렇듯 이상적이었다. 국왕의 주변에는 늘 그들이 있었다.



조선은 언관을 왕 옆에 둠으로써 권력에 대한 견제와 국정운영 원칙에 대한 끊임없는 환기를 제도화했다. 연산군 대에 사간원이 폐지되고 사헌부 기능이 크게 위축되었던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조선 조정을 구성하는 중요한 기관들에는 그 운영과 회의를 꼼꼼하게 기록하는 사관(史官)이 있었다. 국왕이 참석하는 모든 자리에도 그들이 있었다. 사관의 중심축을 이루는 관리들은 이제 막 대과를 통과한 7품에서 9품까지의 관리들이었다. 그들은 언관들처럼 국왕을 상대로 언성을 높이지도 집요하지도 않았다. 다만 국왕의 말과 행동을 묵묵히 기록했다. 그 기록은 매년 차곡차곡 쌓였지만 국왕은 그 기록을 보지 않았고, 사관들도 왕에게 보고할 의무가 없었다.

사관의 기록 행위는 언관의 발언 못지않게 국왕을 강력히 견제했다. 연산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임금이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책뿐이다. 사관은 정부 관련 일만 기록해야 한다. 임금과 관련된 일을 기록하는 것은 마땅치 못하다. 이제 이미 사관에게 임금에 관한 일을 쓰지 못하게 했지만 아예 역사가 없는 것이 더욱 낫다.”(<연산군일기>12년 8월14일) 연산군이 이 말을 하고, 보름쯤 후에 중종반정이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언관 조직이 복구되었고 그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조선 국왕은 이런 사람들에 둘러싸여 왕 노릇을 해야 했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을 만약 조선의 왕이 듣는다면 무슨 뜻인지 잘 모를 것이다. 그런 덕분에 조선은 장수할 수 있었다. 14세기에 성립하여 20세기까지 지속된 왕조는 세계적으로도 조선이 거의 유일하다.



5. [매일경제][세상읽기] '검은 코끼리'와 운명의 시계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근작 '늦어줘서 고마워요(Thank you for beinglate)'라는 책에서 지구를 변화시키는 세 가지 힘으로 기술, 글로벌라이제이션 그리고 기후변화를 손꼽았다. 2007년 스티브 잡스의 스마트폰으로 시작된 21세기형 기술혁명은 이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로 연결되며 4차 산업혁명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 끝을 알 수는 없으나 기계지능의 총량이 인간지능의 총량을 넘어서는 '특이점'이 속속 다가오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는 요즘이고 보면 기술이 인간 세상을 바꾼다는 그의 지적은 당연히 공감이 간다. 

'세계는 평평해졌다(the World is flat)'며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위력을 갈파하던 프리드먼은 브렉시트와 같은 '반동의 힘'과 더불어 지구적 차원의 '경제적 불평등'에도 주목하는데 어쨌든 '세계화'는 앞으로도 강력한 변화의 동력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구글 비즈니스 X 공동창업자 서배스천 스런은 여기에 '대중화(democratization)'의 힘이 가세하며 변화의 가속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갈수록 어지러운 세상을 보면 이 또한 동의하게 된다. 

그렇다면 기후변화는 무엇일까? 프리드먼은 이를 '검은 코끼리(Black Elephant)'에 비유한다. 

검은 코끼리는 '검은 백조(Black Swan)'와 '방 안의 코끼리'를 합성한 말이다. 검은 백조는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인데 실제로 발생해 엄청난 충격을 몰고 오는 사건을 뜻한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킨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월가의 그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장담하며 자신들의 잇속을 챙겼던 그 사건 말이다. 

방 안의 코끼리는 이미 커다란 코끼리가 눈앞에 보이는데도 못 본 척하며 행동을 미루는 경향을 뜻한다. 그 이유가 관성이든, 부정이든, 두려움이든 코끼리가 온 집안을 풍비박산 낼 때까지 모른 척한다는 것인데 기후변화의 경우 이미 방 안의 코끼리처럼 눈앞에 와 있는데도 검은 백조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같이 무시하다가 더욱 크게 당할 '검은 코끼리'가 되리란 것이다.



2009년 필자는 프리드먼을 한국에 초청해 '기후변화와 녹색성장'에 관한 회의를 가진 바 있다. 당시 그는 기후변화야말로 인류가 겪어보지 않은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라 역설했는데 이번에 펴낸 책을 보면 기후변화라는 코끼리는 그사이 더욱 커졌고 더욱 가까이 왔다는 걸 절규하듯 웅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얼마 전 과학자들이 만든 '운명의 시계(Doomsday Clock)'는 인간문명이 종말을 고할 시간까지 불과 2분30초 남았다고 발표했다. 1953년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 경쟁으로 치달은 이래 운명의 시간까지 가장 가까이 다가간 기록이라고 하는데 이번에 운명의 시계를 앞당긴 건 다름 아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보다 정확히는 세계 1위의 슈퍼파워 미국이 기후변화를 부정하고 석탄을 비롯해 온실가스의 근본 원인인 화석연료의 과거로 회귀해 인류를 살릴 글로벌 리더십에 커다란 위기가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프리 색스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엑손모빌 사장을 국무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석탄업계 로비스트를 환경청(EPA) 수장으로 둔 사례를 거론하며 "미국 정치는 이제 세계 최대의 비상장 기업이자 (연매출 100조원의) 화석연료기업 코크 인더스트리가 소유하게 된 셈"이라고 꼬집었다.



색스 교수는 "트럼프는 유엔을 비롯해 (그를 반대하는) 세계를 하나로 뭉치게 한다"며 "트럼프는 결코 시저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그가 재임하는 한, 정책기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검은 코끼리는 더욱 커져갈 것이란 우려는 가시지 않을 듯하다. 적어도 미국 안에서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적어도 두 마리의 검은 코끼리는 확실히 커나가고 있다. 세계 평균 두 배 이상의 기후변화를 겪고 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많이 석탄발전소를 증설하는 한국.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냉전지대로 세습왕조의 핵무기 위협을 머리에 이고 사는 한국…. 그러고 보니 몇 마리 더 있는 듯도 하다. 경제는 계속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 안에다 총질하듯 네 편, 내 편하며 싸워대는 걸로 허송세월하는 우물 안 구체제 정치. 이러다 남의 집 코끼리를 걱정할 여유는 영영 없어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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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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