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기업활동 가로막는 상법 개정안 안 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권이 재벌개혁을 명분으로 기업 대주주의 권한을 축소하는 상법 개정안을 이번 임시국회에서 강행처리할 방침이라고 한다. 개정안은 감사위원을 일반이사와 분리해 선출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이사 선임 때 주식 1주마다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는 ‘집중투표제’, 다중대표소송제, 전자투표 의무화 등이 골자다. 하나같이 대기업 경영의 근간을 흔들 소지가 다분한 민감한 내용들이다.

재벌 오너의 전횡을 막는다는 취지에서 불합리한 지배구조 개선의 당위성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규제는 독이 된다는 점이 문제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가 도입되면 외국계 헤지펀드가 국내 10대 대기업 가운데 6곳의 감사위원을 싹쓸이할 것이라는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이 단적인 예다. 집중투표제 역시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 미국계 해지펀드 칼 아이칸이 KT&G에 사외이사 1명을 내세워 부동산 매각, 자사주 소각 등을 요구하며 수천억원의 차익을 챙긴 2006년의 사례가 얼마든지 재연될 수 있다는 얘기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개정안이 규제 대상으로 삼은 상장회사 가운데 대기업은 14%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중소·중견기업이라는 사실이다. 재벌을 개혁한다며 재벌개혁과는 거의 연관이 없는 중소·중견기업들을 먼저 죽이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이 개정안에 반대한 것이 이 같은 정황을 잘 말해준다. 개정안이 재벌개혁이라기보다는 반기업 정서에 편승한 일방적인 기업 때리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일본·영국 등 선진국은 대주주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 차등 의결권 제도 등을 도입하고 있다. 워런 버핏의 클래스A 주식은 의결권이 1만개라고 한다. 집중투표제의 부작용으로 미국에서는 이를 의무화한 주가 7개 주에 불과하며, 일본도 1974년 자율화로 전환했다고 한다. 우리는 거꾸로 가는 셈이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과잉 규제는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뿐이다. 야권이 수적 우세를 믿고 밀어붙이기 식으로 처리할 일이 아니다. 개정안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살펴 재검토하길 바란다.



2. 북한 소행으로 좁혀지는 김정남 암살사건

말레이시아 국제공항에서 일어난 김정남 살해사건이 북한 지령에 의해 수행됐을 것이라는 정황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현장에서 독극물을 뿌린 2명의 여성 용의자에 이어 이들을 조종한 북한 국적자 리정철이 은신 중 체포됨으로써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현지 경찰 당국도 어제 첫 기자회견을 통해 도주한 공범들이 모두 북한인들이라며 북한 연계 가능성을 적극 시사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검거된 범인이 약학 전문가라는 점이다. 북한에서 약학을 전공하고 1년여 동안 인도 연구소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만큼 이번 범행에 사용된 신종 독극물 제작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제 그가 북한으로부터 지시 받았다는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작업이 남아 있다. 이미 도주한 공범들의 행적도 계속 추적할 필요가 있다.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의 철저한 수사를 기대한다.

애초 짐작대로 이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이복형인 김정남이 정권 유지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해 직접 지시를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쿠알라룸푸르에 주재하는 북한대사가 시신 인도를 요구하며 부검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미리부터 연막을 치는 것도 그런 배경으로 이해한다. 오히려 “남한 정부가 정치 스캔들에서 벗어나려고 북한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다”며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테러 공격에 더욱 경각심을 기울여야만 한다.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마찬가지다. 단순히 얼굴에 뿌리는 정도만으로 순식간에 목숨을 앗아가는 신종 화학물질이 개발된 데다 내막도 제대로 모르는 외국인들을 끌어들여 마치 장난치는 것처럼 꾸며 암살극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북한이 우리 사회에 불안감을 조성하기 위해 그동안 온갖 공작과 술책을 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더구나 지금 한반도 정세는 매우 유동적인 국면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개발 실험을 거의 마무리해가고 있으며, 이에 대해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전에 없이 강력한 제재수단을 동원한다는 방침이다. 김정은이 김정남 살해를 모의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 사회가 탄핵정국의 와중에서 ‘촛불 민심’과 ‘태극기 민심’으로 찢어져 서로 다툴 것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시각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매일신문]

3. 이러려고 국정 역사교과서 강행 무리수 뒀나

전국에서 국정 역사교과서를 채택하기로 희망한 학교는 단 1개교다. 경산 문명고가 유일하지만, 그것마저 확실하지 않다. 문명고 측이 안팎의 반발로 “23일에 최종 결정하겠다”고 유보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국정 역사교과서의 운명이 ‘1개교’ 아니면 ‘없음’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니,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이를 두고 1년 넘게 소모적인 논란과 대립을 빚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안 하는 것보다 훨씬 못한’ 결과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추진한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된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 문제이긴 하지만, 집필`배포`채택을 주도한 교육부의 책임도 그 못지않게 크다.



당초 교육부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올해 3월부터 전국 중`고교에 일괄 적용할 계획이었다가 반대여론에 밀려 희망 학교에 한해 시범 사용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희망 학교가 전국 중`고교의 20%가량은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결국에는 모든 학교가 외면하는 정책을 추진했다니 이런 분들에게 아이들의 교육을 맡겨야 할지 걱정할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이런 상황에 대해 교육청과 전교조의 비협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댔다. 그것도 이유 가운데 하나일 수 있지만, 수준 이하의 엉성한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들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지난해 11월 현장 검토본이 공개되자마자, 수백 건의 내용 오류 및 편향 기술, 오탈자, 비문 등이 발견돼 부실 제작 비판이 일었다. 진보`보수를 떠나 현장 교사들이 부실한 국정 역사교과서를 전혀 신뢰하지 않았기에 처참할 정도로 외면받게 된 것이다. 결국, 국정 역사교과서는 출발부터 제작, 배포까지 상식과 순리를 따르지 않았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이제 역사를 대통령이나 특정 정파의 시각에 맞춰 기술하겠다는 전근대적 발상은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없음을 알게 됐다. 그렇더라도, 역사교과서에 대한 좌우편향 논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의 사회적 논란과 대립은 없어야 한다. 편향성 논란이 재발하지 않도록 역사교과서를 다양한 해석이 담긴 토론형 자료로 다시 개발하는 방안이 필요한지 모른다.



4. 일본 순시선의 잦은 독도 출몰, 경계할 흉계다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본부 홍익태 본부장이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연간 100여 회 즉 사나흘에 한 번꼴로 독도에 오고 있으며 이는 분쟁에 대비해 기록을 남기고 명분을 쌓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순시선이 마치 독도를 제집 드나들 듯이 하는 셈이다. 민간 선박이 아닌 일본 정부 함선의 잦은 독도 출몰이 예사롭지 않다.



무엇보다 일본 순시선의 의도적인 독도 주변 해상 출몰은 그의 분석처럼 혹시 뒷날의 분쟁을 대비한 활동임이 분명하다. 거꾸로 이를 근거로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과거 일본이 여러 분쟁과 침략에서 익히 써먹은 사례가 증명한다. 일본의 기록 정신과 자료 축적은 잘 알려진 터이다.



국제적인 분쟁과 갈등은 당사국 외에는 원인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왜곡 또는 날조된 거짓 자료와 기록이 흔히 동원되는 까닭이다. 제3국을 설득하고 제편으로 이끌 수 있어서다. 일본의 꼼수이자 노림수다. 독도 출몰 역시 같은 맥락이다. 숱한 사실(史實)의 왜곡과 날조도 모자라 없던 역사조차 만들던 일본이어서 더욱 그렇다.



이런 활동과 함께 최근 두드러진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압박도 심상치 않다. 일본은 이미 지난달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 설치 소녀상을 빌미로 주한 일본 대사를 불러들였다. 또 한`일 간 ‘통화 스와프’ 논의도 중단했다. 한발 더 나아가 일본 문부과학성은 지난 14일 초`중학생들에게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왜곡된 영토 교육을 강화토록 하는 학습지도요령 개정안을 마련해 고시했다.



우리의 독도가 자신들의 고유 영토라는 억지 내용을 의무적으로 가르치도록, 말하자면 법적 구속력이 있는 학습지도요령에 이를 명시했다.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는 이 같은 일련의 일들이 불안한 국내 상황과 맞물려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기간에 걸친 탄핵 정국에다 정치권 분열과 갈등, 남북 긴장 등 여러 악재가 겹겹인 ‘불난 집’ 같은 어수선한 이웃나라의 틈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의도임이 틀림없다. 평화 시 분열하는 우리 약점을 지렛대 삼아 의도한 목표를 이루려는 흉계(凶計)의 전조(前兆)일 수 있다. 우리가 되새겨 경계할 일이다.



[서울신문]

5. 2단계 추락한 수출, 신성장 동력으로 활로 뚫어야

수출대국 한국의 위상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수출액은 4955억 달러로 전년보다 5.9% 줄었다. 재작년 8% 줄어든 데 이어 2년째 뒷걸음질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세계 수출 순위도 세계 주요 71개국 중 8위로 전년도 6위에서 2단계 더 추락했다. 올해도 대내외 경제 여건 악화로 수출 전선에 먹구름이 더 낄 수밖에 없어 걱정이다.

우리나라 수출이 2년 연속 감소한 것은 1956년 통계 작성 이래 58년 만에 처음이다. 그만큼 수출 부진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사실 수출 감소가 우리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은 다소 위안을 준다. 지난해 세계 무역규모가 줄어들면서 세계 각국의 수출도 재작년 11%, 지난해 2.6% 각각 감소했다. 10대 수출대국 중 6개국의 수출이 줄었다. 그렇다 해도 우리의 수출 하락폭이 세계 무역 감소의 폭보다 크고 가파르게 감소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저성장과 보호무역주의 부상에 따른 세계무역의 부진이 우리 수출 감소의 첫 번째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런 외적인 환경에서만 이유를 찾는다면 수출 부진의 근본적인 해법을 찾기 어렵다.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독일과 일본의 수출액은 전년보다 1%와 3.2%나 각각 늘어난 것은 기업의 혁신 등으로 극복했기 때문일 게다.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소득의 절반 이상을 수출이 차지하다 보니 수출에 따라 경제 기상도가 확 바뀐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환경에 취약한 우리의 경제구조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 없이는 수출대국의 위상은 언제든지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세계 경제는 이미 미국 트럼프발 보호무역주의 등으로 불확실성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무역전쟁에서 우리가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정교한 정책이 필요하다. 그동안 역대 정부는 고환율 고수, 저리의 자금 지원 등 대기업 중심의 수출 지원책에 치중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균형 성장을 초래했다.



이제는 대기업 중심에서 벗어나 중소기업의 수출 지원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이 제시돼야 한다. 신성장 동력을 확보해 수출품목의 다변화 추진도 서둘러야 한다. 과감한 규제 혁파 등의 수출 환경개선과 함께 일본처럼 새로운 무역 환경에 대비한 통상조직 등의 재정비도 시급한 과제다. 정부와 무역업계가 한 몸으로 수출 활로 모색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6. ‘사드 보복’ 철회 정식 요구한 한·중 외교 회담

중국이 어제부터 북한산 석탄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중국 상무부는 홈페이지 공고를 통해 유엔 안보리 2321호 결의와 중화인민공화국 대외무역법 등에 근거해 북한산 석탄 수입을 올 연말까지 전면 중단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는 역대 최고 수위의 대북 제재로 평가된다. 석탄은 북한의 최대 수출품으로 전체 중국 수출에서 40%에 달해 북한에 엄청난 압박이 될 전망이다.

중국의 초강경 대북 제재는 그동안 유엔 안보리 결의를 중국이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국제적 논란을 잠재우는 동시에 계속된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력한 경고성 메시지라는 분석이 많다. 북한의 북극성 2형 등 중거리 탄도미사일 도발은 물론 최근 친중파로 알려진 김정남의 피살사건까지 터지면서 중국이 북한 김정은 정권의 도발을 더이상 좌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핵·미사일 도발은 물론 전통적인 북·중 우호 분위기마저 건드리며 마지노선을 넘는 북한에 대한 최고 수위의 불만 표시로 볼 수 있다.

중국의 대북 제재 강화가 북한에 대한 석유 공급 중단이라는 마지막 수단까지 동원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중국이 의장국인 6자 회담을 거부하고 북·미 회담을 고집하다가 대북 석유공급 중단에 직면한 사례도 있기 때문에 북한의 추가 핵실험 시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은 이번 강경 조치를 반드시 실천에 옮겨야 한다.



지난해에도 중국 정부가 다양한 대북 제재안을 발표했지만 단둥을 비롯해 압록강 접경 지역에서 금수 물자의 밀거래가 성행했다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김정은 정권은 마지막 남은 우방국마저 초강경 제재에 나서는 국제 정세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해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중국은 대북 강경 조치와 달리 주한미군 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해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우려된다. 윤병세 외교장관과 왕이 외교부장이 그제(현지시간) 독일에서 양국 외교장관 회담을 가졌다. 왕 부장은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는 중국 정부의 기존 입장을 거듭 확인하면서 사드 배치를 서두르지 말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에 윤 장관은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한 ‘자위적 방어조치’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면서 양국 간 갈등의 골을 확인했다. 하지만 윤 장관은 최근 경제와 문화, 인적 교류 분야에서 중국의 보복성 조치에 대한 강한 우려를 표명했고 보복 조치의 철회를 요구했다. 이는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에 대해 공식적으로 철회를 요구했다는 의미가 있다. 중국 당국은 자국의 국익을 위해 이웃 나라에 부당하게 가하는 보복 조치가 양국 관계를 심각하게 해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세계일보]

7. 북한 석탄 수입 금지한 중국, 이번엔 ‘어물쩍 제재’ 말라

중국 상무부가 유엔 대북제재 결의 이행을 위해 19일부터 북한산 석탄 수입을 전면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입 중단 조치는 올해 12월31일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만시지탄이다. 이번 조치는 ‘친중파’ 김정남 독살과 탄도미사일 도발을 잇달아 감행한 북한을 제재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한국에 사드 배치 철회를 압박하기 위한 다중 포석으로 해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이후 미국의 압박이 컸던 것도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중국이 북한 석탄 수입을 끊으면 중국에 전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북한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포기하도록 숨통을 조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중국이 유엔 제재의 ‘뒷문’을 번번이 열어둔 행태에 비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발동된 지난해 북·중 무역이 전년보다 7.3% 증가했다는 통계가 웅변해준다.



최근에는 중국이 북한과 4000t 규모의 액화석유가스(LPG) 수입 계약을 맺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중국 같은 뒷배가 버티고 있으니 국제사회가 아무리 칼을 뽑아들어도 북한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것이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그제 독일 뮌헨에서 가진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서두르지 말라”고 한국을 압박했다. 사드 배치에 부정적인 야권 대선주자들의 부정적 기류를 감안한 조치로 해석된다. 자국 이기주의에 기반한 내정 간섭이 아닐 수 없다. 사드 배치는 대한민국이 생존권 차원에서 불가피하게 추진하는 방어적 조치다. 만약 중국의 안보가 적국의 핵·미사일 공격에 완전히 노출된 상황이라면 자국 안전을 위한 대응 조치를 다음으로 미룰 수 있겠는가.



왕 부장은 한국을 겨냥해 “국가의 안전은 다른 나라의 안전을 희생하고 달성해서는 안 된다”고 훈계까지 했다. 우리가 중국에 하고 싶은 말이다. 사드 배치를 철회하라는 것은 중국의 안전을 위해 한국의 안전을 희생하라는 억지 주장이 아닌지 묻고 싶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왕 부장에게 “모든 가용한 수단을 동원해 안정을 저해하는 북한의 행동을 완화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은 겉으로 대북 유엔 제재에 동참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걸맞은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 예전처럼 제재 시늉만 한 채 어물쩍 넘기려 해선 안 된다.



8. 김정남 ‘청부살해’ 북 정권, 국제사회 철저 응징해야

말레이시아 경찰이 어제 수사 발표를 통해 김정남 피살에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공식 거론했다. 17일 체포한 리정철(또는 리종철)을 비롯해 신원이 확인된 남성 용의자 5명의 국적이 모두 북한이라는 것이다. 4명은 사건 당일 말레이시아를 출국했다. 경찰은 또 다른 북한인 3명도 연루자로 추적 중이라고 한다. 현지 언론은 리정철이 북한의 대표적인 대외정보공작 기관인 정찰총국 요원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리정철은 북한 소행을 입증하는 ‘스모킹 건’일 개연성이 짙다. 리정철은 북한 외교관조차 집단생활을 하는 게 일반적인데 수년간 쿠알라룸푸르에서 별도로 가족을 동반해 생활했다고 한다. 그가 말레이시아 내 북한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해외 정보를 수집하는 스파이였을 공산이 크다.

이번 사건은 치밀하게 준비된 조직적 테러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 요원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을 감추기 위해 다국적 여성을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남에게 쉽게 접근하면서 동시에 그의 여성 편력을 부각시켜 테러 의혹을 희석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경찰에 체포된 여성들은 한결같이 “장난인 줄 알았다”, “몰래카메라 촬영으로 알았다”고 진술했다. 사건 전에 현장을 찾아 스프레이를 뿌리는 예행연습까지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정찰총국이 개입했다면 김정남의 이복동생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모른 채 이뤄졌을 리가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리 정보당국은 사건 초기부터 김 위원장의 ‘스탠딩 오더’에 따라 북한 정보당국이 실행했을 것으로 의심해 왔다. 하지만 북한은 억지와 발뺌으로 일관한다. 김정은에 대한 부검에 반대하고 시신 인도를 요구하더니 의사가 관철되지 않자 말레이시아 당국의 부검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친다. 강철 주말레이시아 대사는 남측의 공작 의혹까지 제기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이다.

북한 배후설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면서 북한의 잔학성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이복형제까지 살해하는 정권임이 분명해진 것이다. 미국 의회에서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만큼은 북의 만행을 묵과해선 안 된다. 반인륜적 테러의 배후를 끝까지 추적해 배후를 밝혀내야 한다. 국제사회가 테러를 일삼는 북한 정권을 단호하게 응징해야 한다.



[매일경제]

9. SNS의 사회적 책임 강조한 저커버그의 결단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가족과 친구들을 연결하는 지금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넘어 전 세계를 하나의 공동체로 묶는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하겠다고 최근 선언했다.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글로벌 공동체 건설(Building GlobalCommunity)'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자유와 번영을 확산하고, 평화와 이해를 증진하고, 가난에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 등 반세계화로 치닫고 있는 '트럼피즘'에 대한 일침일 뿐 아니라 최근 가짜 뉴스로 훼손된 페이스북의 역할과 이미지를 대대적으로 쇄신하기 위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지난 10년간 친구와 가족을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 페이스북은 전 세계 18억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해 세계 최강의 파워를 가진 SNS로 성장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가짜 뉴스 확산의 온상이라는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가짜 뉴스에 엄청난 리액션과 댓글이 달렸을 뿐 아니라 전통 미디어 뉴스의 조회 수를 초월했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연결된 세상'이라는 좋은 비전에도 불구하고 반대 의견이 충돌하면서 가짜 뉴스의 범람 등 분열이라는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저커버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팩트체크로 가짜 뉴스 퇴치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플랫폼을 세계화를 위한 사회기반시설로 재구성하겠다는 새로운 비전을 꺼내든 것인데 SNS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가짜 뉴스의 생성과 유통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페이스북, 구글 등이 가짜 뉴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엉터리 뉴스들이 SNS를 타고 무한대로 퍼지면서 사회를 혼란과 분열로 몰아넣고 있다. 4월 대선을 치르는 프랑스, 9월 총선을 앞둔 독일 등 전 세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선 국면이 본격화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가짜 뉴스와 SNS의 악성 댓글은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분열시키는 흉기가 될 수 있다.

저커버그는 "현재 우리는 더 연결된 세상으로 갈지, 아니면 단절된 세상으로 갈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했다. 고립주의를 막고 세계화를 추구하는 그의 큰 도전이 성공하려면 현재 페이스북 등 SNS가 직면하고 있는 가짜 뉴스라는 독버섯을 뿌리 뽑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10. 북한핵과 김정남 암살이 별개라는 안일한 안보의식

김정남 암살에 북한 비밀요원들이 개입한 정황이 말레이시아 경찰 수사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최근 검거된 리정철을 비롯해 북한 국적 용의자가 모두 5명이며 이 중 4명이 범행 당일 말레이시아를 출국하는 등 암살 배후에 북한이 있는 것으로 본다고 19일 밝혔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지난 12일 이동식 발사대와 고체연료를 이용해 한미 양군의 '킬체인'을 무력화하는 '북극성 2호' 미사일을 쏘아올렸고 14일엔 이복형(兄) 김정남을 말레이시아에서 독살했다. 두 사건은 김정은 정권의 모험주의적 위험성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 일부 세력은 '김정남을 북한이 죽였다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며 북핵은 북핵, 김정남은 김정남이라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에 대한 경계를 허물려는 의도적 외면이 아니면 국가안보 인식 부재에서 비롯된 안이함으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선 '대북 선제타격론'이 여러 차례 흘러나왔다. 김정은은 몸을 사리기는커녕 '어디 한번 해볼 테면 해봐라'는 식으로 도발을 서슴지 않는다. 북한 정권의 판단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징후로 읽힌다. 과거 김일성과 김정일은 국제사회를 상대로 공갈과 협박을 일삼았지만 지금 같지는 않았다. 그들은 나름의 전략적 스케줄과 철두철미 계산된 노림수에 입각해 행동했다. 또 미국 국내 상황과 정권 성격을 고려해 완급 조절도 했다. 그 결과 국제사회 입장에선 북핵을 초기에 억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측면이 있지만 어쨌든 결정적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그만큼 낮았다. 김정은은 노회했던 전임자들과 달리 휘발유통 옆에서 계속 성냥을 그어대는 객기를 보여주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는 북한의 미사일이 서울 한복판을 향해 날아드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김정은의 암살 지령이 남한에서 활동하는 고위급 탈북 귀순자들을 겨냥할 가능성 역시 배제돼서는 안된다. 국가안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함으로써 그것이 현실화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의 모험주의보다 소위 '북풍'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더 힘을 얻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주요신문칼럼



1. [중앙일보][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쓸데없는 짓을 합시다.

종영 전 한 번 더 보겠다며 찾아간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사진) 상영관에서 말로만 듣던 ‘혼모노’를 만났다. 올 초 국내 개봉해 360만 명의 관객을 모은 이 영화와 함께 떠오른 신조어 ‘혼모노(本物)’란 무엇이냐. ‘진짜, 실물’이란 뜻의 일본어로, “말로만 듣던 ‘진짜’ 오타쿠(광팬)가 여기 있었네”라는 의미를 담아 사용한다.

앞줄에 나란히 앉은 10대로 보이는 남학생 3명이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신나게 따라 부른다. “다음 생에는 도쿄의 꽃미남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라는 여주인공의 대사를 성우보다 더 크게 외칠 땐 귀가 멍멍. 어리둥절해 극장을 나오다 ‘합창상영’이라는 안내 문구를 발견했다. 이 작품 광팬들의 ‘만행’이 속출하자 극장에서 따로 이들만을 위해 마련한 상영회였던 것. 같이 간 친구가 감탄과 비아냥을 함께 담아 말한다. “쓸데없는 짓을 참 열심히들 하고 있네.



”이런 장면, 애니메이션 팬들에겐 이미 익숙하다. 3년 전 개봉한 디즈니의 ‘겨울왕국’도 주제곡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관객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며 영화를 보는 ‘싱어롱(sing a long)’ 상영회를 연 적이 있다. 노래만으론 심심하지. 한·일 합작 애니메이션 ‘꿈의 라이브 프리즘스톤’의 극장판인 ‘킹 오브 프리즘’이 지난해 한국과 일본에서 개봉했을 땐 관객들이 아예 야광봉을 하나씩 들고 영화관에 들어갔다. 실제 공연장에 온 것처럼 “꺄~” 비명을 지르며 화면 속 아이돌 그룹의 공연을 즐긴다. “자, 너희에게 할 말이 있어”라는 화면 속 캐릭터의 오글오글한 대사에 관객들이 한목소리로 답한다. “뭔데~?”

고백하자면 요즘 ‘하이큐’라는 배구 애니메이션을 보며 내 안에도 ‘혼모노 본능’이 꿈틀댐을 알았다. 극 중 한 배구팀의 팬이 되어 “고고레츠고레츠고~” 하는 만화 속 응원 구호를 따라 외치고 있는 나. 지난 1월 ‘하이큐’ 극장판이 개봉했을 땐 관람객들이 아예 좋아하는 팀별로 나눠 앉아 실제 배구 경기를 보듯 응원하며 영화를 보는 행사도 열렸다고 한다. 아, 얼마나 신났을까. 아쉽고 아쉽도다.

쓸데없는 짓을 좋아한다. 도무지 쓸모없어 보이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런 쓸데없음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누구도 상상치 못한 기발한 무언가가 나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생각한다. 꼭 뭔가 이뤄내지 못하면 어떤가. 소소한 것에서 나만의 재미를 찾아내 즐길 줄 아는 능력, ‘혼모노 정신’이 없이는 좀처럼 행복해지기 힘든 요즘이다.



2. [아시아경제][여성칼럼] 삶은 어디에나

톨스토이는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사람은 사랑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속에 존재하는 사랑 때문에 행복해진다. 그러므로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만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

니콜라이 야로센코(러시아 화가, 1846-1898)는 이 소설에 깊은 감흥을 받는다. 그리고 <삶은 어디에나>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정의를 화폭에 담고자 한다. 

러시아 차르에 반대해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는 정치범들의 열차 안에도 삶이, 생명이 있음을, 형극의 수형길 앞에서도 잠깐의 햇볕을 즐기며 새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나눠줄 수 있는 여유가 있음을, 많음에서 비롯되는 것이 사랑의 실천이 아님을, 빵 조각을 나눠주는 고사리 손을 통해 일깨워준다. 화려하지 않아도 빛날 수 있고 가난할지라도 풍요로운 영혼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엄마의 품에 안겨 미소 짓는 아기의 천진한 얼굴에서 우리는 순수의 절대 정의를 읽을 수 있으며, 혹한의 현실 앞에 굴하지 않고 찰나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혁명가들의 풍요로운 영혼을 통해서 미래의 희망찬 역사를 점칠 수 있다는 거다.
그렇게 삶은 어디에서나 아름답게 빛날 수 있으며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말한다. 그리고 삶에 겸손하고 진지해지며 작은 사랑일지라도 실천할 것을 그림이 가르친다. 

삶이 절망적일 때가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 채 삶의 무게에 허덕일 때, 그 슬픔이 쓰나미처럼 밀려들 때 모두가 저마다의 방법으로 현실을 이겨낸다.

난 그림을 본다. 그림 속에 내 슬픔을 올려 놓고 어두운 현실을 어루만지다 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림이 전하는 메시지에 마음이 정화되고 그렇게 그림으로 치유받는다.



17년 전 모스크바에 첫발을 내디딘 후 쓰지도 읽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서른 살의 아기였던 나는 깊은 절망을 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두려워하던 내게 야로센코의 이 그림이 말을 걸어오더라. 삶에 허덕이지 말고 현실에 발을 디디고 겸손하게 살아가라, 어떤 척박한 상황에도 삶은 존재하는 것이니 세상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라 그림이 가르쳐 주었다.



삶의 궁극적 목적은 화려함에 있지 않고 진솔한 모습으로 현실을 대면하며 작은 실천을 이뤄갈 때 빛을 발한다 일러준다. 지금의 절망이 마지막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거름이란 것을 전율로 느끼게 해 준 야로센코의 <삶은 어디에나>. 인생의 새로운 출발선상에서 삶의 기본자세를 가르쳐 준 소중한 그림이다. 그렇게 러시아 그림과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에 이런 구절이 있다.

<감동이 발작처럼 갑자기 그에게 복받쳐 올랐다. 한꺼번에 그의 마음은 녹아 내렸고 눈물이 쏟아졌다. 그는 서 있던 모습 그대로 땅에 엎드렸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센나야 광장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는 달콤한 쾌감과 행복감을 느끼면서 더러운 땅에 입을 맞추었다.>

야로센코의<삶은 어디에나>를 처음 만난 그날, 나도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가 되어 그렇게 러시아 그림과 깊은 입맞춤을 나누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 사랑은 풍요로운 아름다움이라 표현될 수 있으며, 영원히 이별하지 않을 거라 자신한다. 20년 가까이 내 삶의 터전이 되어 준 러시아 그림 사랑이다.



3. [중앙일보][중앙선데이] 봉인이 열리면 추억도 새록새록

사람에게 출생연도가 있듯 와인에는 빈티지가 있다. 빈티지란 포도를 수확한 해를 의미한다. 와인에 있어 빈티지는 중요하다. 특히 신대륙보다 구대륙에서는 빈티지에 따라 품질 차이가 심해 가격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빈티지를 잘 따지는 것은 시음 시기나 보관 기간을 결정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빈티지는 와인의 품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우선 포도의 품질이다. 인간이 10개월 동안 어머니 몸속에서 영양을 공급받으며 자라는 것처럼 포도는 사계절 동안 포도나무로부터 모든 공급을 받는다. 때문에 포도나무가 자라는 주변 자연 환경(전문 용어로 떼루아)이 무척 중요하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수확이 이루어지는 순간까지 포도나무가 자연으로부터 얻은 모든 기록이 포도 속에 저장된다. 이런 것들이 양조 과정을 거치면서 그 해만의 개성을 가진 와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빈티지의 특성이 되는 것이다.

필자가 강의 중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와인의 오픈 시기다. 수많은 와인이 존재하는 만큼 하나하나 오픈 시기를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와인마다 품종이 다르고 또 빈티지에 따라 차이가 많기 때문이다. 같은 빈티지라 해도 소위 그랑 크뤼를 생산하는 포도밭에서 나왔는지 등급이 없는 포도밭에서 생산된 것인지에 따라 오픈 시기가 몇 년 이상 차이가 날 수 있다. 같은 와인을 한 박스 구입해 6개월이나 1년 단위로 한 병씩 오픈 해 마셔보고 기록해 놓으면 좋지만, 단점은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와인 평론가들의 자료를 참고하는 일인데, 100% 신뢰할 수는 없지만 많은 도움이 될 수는 있다.

대부분 와인은 2~3년 내에 빈티지의 특성과 품질을 알 수 있지만 10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좋은 와인들은 이 정도 시간에는 자신의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 최고의 빈티지는 어떤 것인가. 완벽하게 익은 최상의 포도로 만든 최고의 빈티지는 다른 빈티지에 비해 오랫동안 좋은 풍미를 유지한다. 사람으로 이야기하면 지성과 미모를 모두 갖추고 아름답게 오랫동안 살면서 우아하게 늙어가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지성은 있으나 미모가 없고 미모는 뛰어나나 지성이 모자라면 세월과 더불어 불균형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처럼, 와인은 향과 색과 맛으로 그 조화로움과 모자람을 보여준다.

요즘에는 인공위성의 도움으로 물 주는 구역과 시기를 조절하고는 있지만, 변화무쌍한 사계절을 거치며 생존한 포도의 맛은 이보다 다양할 수밖에 없다. 과학의 힘으로 어느 정도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닌 것과도 같다. 맛의 평준화로 많은 사람이 가격과 품질에서 혜택을 보는 반면 개성 있는 맛은 그만큼 줄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와인은 수 년에서 수십 년 숙성을 통해 완성되는 산물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와인 병 속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변화를 인간은 아직 알 수 없다. 오직 인내하고 기다렸다가 마셔보는 수밖에.

고대 그리스의 알카이오스는 “와인에는 진실이 있다”고 했다. 와인의 빈티지엔 그 해만의 진실이 담겨 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오랫동안 간직했던 와인을 어느 날 오픈하면 아름답고 싱싱했던 옛 시절을 추억할 수 있다. 와인 빈티지엔 한 해의 자연 특성과 그 해 인간의 기억을 회상할 수 있는 모든 진실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4. [부산일보사][아침향기] 세상에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추웠다는 그날, 대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나왔다. 방학 중이라 늘 한산한 편이었지만 그날은 날씨 탓인지 도서관 앞 광장에서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길에 거의 사람이 없었다. 종종걸음을 하며 주차장으로 가고 있는데 한 여자가 주차장 언덕에 멈춰 서서 가방을 열고 있었다.



여자가 가방을 다 열기도 전에 고양이가 두 마리 나타났다. 예쁜이, 삼색이 왔구나, 여자는 물병과 먹이를 꺼내며 고양이를 반겼다. 햇반 빈 용기에 물과 먹이를 나눠 주자 고양이가 더 나타나 네 마리가 꼬리를 세우며 밥그릇에 코를 박고 있었다. 그르릉 그릉, 바람결에 기분 좋은 고양이의 목 울림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금련산 골짜기를 빠져나온 바람이 얼마나 찬지 골이 얼얼한데도 여자는 바람에 날리는 외투 깃을 여미지도 않고 검정코는 왜 보이지 않냐고 묻고 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한 걸음씩 여자와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여자는 내가 다가가자 눈도 마주치지 않고 허겁지겁 가방을 추려 경사로를 따라 올라갔다. 십여 미터쯤 올라가 다시 고양이를 만난 여자는 가방을 열어 물과 먹이를 담아 주고 있었다. 추웠지, 입으로 들어온 바람에 심장까지 얼 것 같은데도 여자의 목소리에는 사랑과 반가움이 담겨 있었다. 헐벗고 굶주린 듯한 고양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여인과 딸 통해 만난 고양이 
늘 자신이 중심이지만 사람과 닮아 
한 편 영화에서 바라본 생명의 의미 
길고양이는 아마도 우리의 이웃

몇 년 전 딸아이가 태어난 지 2주일 됐다는 고양이를 데리고 오겠다고 했다. 원룸 주인이 못 키우게 한다는 것이다. 남편은 당장 반대했다. 나도 키우고 싶지는 않았지만 일단 데려오라고 했다. 그건 꼭 고양이의 문제가 아니라 딸이 부모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는 신호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대학생이었던 딸은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부녀는 얼음처럼 단단하고 냉정하게 맞섰다. 남편은 딸이 객지에 나가 얼마나 고생할까 하는 것보다는 보내는 돈의 액수에 더 예민했고 딸은 그런 남편의 말 이면의 사랑과 걱정을 애써 외면하려는 것 같았다. 가족 간의 갈등이 대개 그렇듯이 나는 두 사람의 시시비비를 도저히 가릴 수 없었다. 

겨우 남편을 설득해서 고양이를 키우기로 했다. 키우지 않으면 아이는 더 멀어질 것 같다는 말에 남편도 더 반대를 하지 않았다. 그 후 아이는 고양이를 보러 오는 건지 부모를 보러 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자주 왔다. 그리고 더 오래 머물다 고양이와 긴 작별 인사를 했다.

고양이는 개처럼 꼬리를 흔들지도 집에 왔다고 반갑게 맞이하지도 않는다. 늘 혼자 어슬렁거리다 푹신한 곳에서 실컷 자고 난 후 목청을 돋워 운다. 그때 잠자리가 달린 장난감 낚싯대를 들고 놀아주면 끝이다. 늘 거리를 유지하고 깨끗하고 조용하고 빠르다. 처음엔 무척 독특해 보였지만 몇 년 데리고 사니까 사람과 크게 다른 것 같지도 않다. 고양이도 따뜻한 데를 좋아하고 깨끗한 물을 먹고 전용 변기에 용변을 보고 배고프면 울고 심심하면 같이 놀자고 조른다. 사람의 호의에 고마워하고 기쁨을 드러내는 것도 닮았다. 그런데, 언제나 중요한 건 밥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 자신이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사람과 가장 닮은 점인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에 우연히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이란 일본 영화를 보았다. 뇌종양으로 죽게 되는 주인공에게 악마가 거래를 시작한다. 주인공이 소유한 뭔가를 없애면 하루씩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전화, 영화, 시계를 차례대로 지우고 자신의 삶을 3일 연장한다. 4일째 되는 날 악마는 고양이를 없애자고 한다.



주인공은 고민하다 고양이는 놔두라고 한다. 왜 고양이는 놔두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밝히지 않지만, 그 이유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죽기 전에 그는 고양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던 아버지에게 간다. 아버지는 아마 아들이 맡긴 고양이를 키울 것이다. 개도 마찬가지겠지만, 고양이는 누군가에겐 가족인 것이다. 그러면 길고양이는? 아마도 우리의 이웃일 것이다.



5.[아시아경제][초동여담] 솔로몬의 판결

공돈이 생기는 건 즐거운 일이다. 그것이 부정한 돈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최근 자그마치 30만원이라는 공돈이 생겼다. 회사에서 중학생이 되는 자녀가 있으면 교복비 명목으로 중학교 입학 축하금을 준다는 것이다. 사규를 본 적도 없어 이런 제도가 있는 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술자리에서 딸내미가 벌써 중학생이 된다고 했더니 회사 동료가 귀띔해 줬다. '자식 키우는 보람'이 이런 걸까, 용돈은 되겠다 싶어 은근히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딱 거기까지였다.

솔직한 것도 때론 병이 된다고 했던가. 최근 가족과 시장을 보던 길에 이 얘기를 꺼내고선 후회가 바로 밀려왔다. 공돈 30만원의 기쁨이 '말짱 도루묵'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문제를 먼저 제기한 것은 딸아이였다. 딸은 "비록 아빠 회사에서 나오는 돈이지만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지 않았으면 아예 받지도 못했을 돈이니까 당연히 내가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며 공돈에 대한 지분을 주장했다. 이럴 때 또 가만있으면 지분 강탈은 불 보듯 뻔한 일. "틀린 말이 아니긴 하지만 애초에 아빠가 이 회사를 다니지 않았으면 그 돈은 생기지도 않았을 거니까 당연히 아빠가 챙겨야지"라고 응수했지만 딸은 자신의 논리를 굽히지 않았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는 고금으로부터 내려오는 해묵은 인과관계의 딜레마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네가 누구 덕에 태어났느냐'고 태생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나이깨나 먹은 어른으로서 할 도리가 아니다.

추후 딸과 조용히 재협상을 해보려고 넘어가려는 찰나, 부녀의 대화를 듣고 있던 마눌님이 드디어 말을 꺼냈다. "아니 교복값은 내가 치렀는데 왜 두 사람이 나서는 거야?" 아내는 회심의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아내는 "교복 맞추는 데 딱 28만원이 들었는데 회사가 얼추 교복값에 맞춰 지급한 게 용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뿔사. 아마도 이 돈은 보나마나 아내 수중으로 고스란히 들어가겠구나. 딸내미가 손꼽아 기다리던 방탄이들(방탄소년단) 새 앨범을 선물하는 것으로 퉁쳤으면 무마됐을 텐데 일이 커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뒷거래는 언젠가 들통나는 법.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듯이 '웬 강남 아주머니'가 청와대의 '그 분'과 공모해 국정농단을 일으킨 사태가 그 대표적인 예가 아니던가.

아내의 판단은 이랬다. 모름지기 엄마와 아빠는 성인인데다 돈의 출처와 쓰임이 모두 두 사람에게 달렸으니 14만원씩 나눠 갖고 나머지 2만원은 딸이 갖는다. 교복값 절반을 부부가 나눠 낸 것으로 갈음하고 나머지는 딸의 용돈으로 주자는 것이다. 아내는 이미 지불했던 교복값의 절반을 환급받는 느낌이고 나로서는 공중에 증발해버리나 싶었던 돈을 절반 가까이 챙겼으니 나름 흡족한 결말이다.



딸은 딸대로 한달 용돈에 버금가는 돈을 받게 됐으니 흔쾌히 만족할 수밖에. 세 식구를 모두 만족시키는 솔로몬의 판결이었다. 공돈 30만원 착복 미수사건은 그렇게 종결되고 말았다.

그나저나 이번 월급날에 문제의 그 '공돈'이 함께 나온다는데 이 글을 보고 하이에나(?)들이 덤비면 안될 텐데.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