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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한겨레]

1. ‘화이트리스트’ ‘블랙리스트’ 배후에 역시나 국정원

국가정보원이 여전히 사찰과 공작에 관여하고 있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수사 과정에서 국정원이 보수우익단체들에 자금을 지원하는가 하면,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문화체육관광부에 전달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한다. 화이트리스트와 블랙리스트에 국정원이 모두 개입한 셈이다. 댓글 사건으로 원세훈 전 원장이 구속되는 등 곤욕을 치르고도 여전히 불법적인 ‘정치공작’을 벌이고 있는 사실이 확인된 이상 철저한 수사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조직도 확 뜯어고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병기 전 원장은 최근 특검 조사에서 “국정원의 민간단체 지원은 옛날부터 해오던 일”이라며 “내가 원장 시절에도 했고 지금도 하는 것으로 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청와대가 20여개 보수우익단체들에 주요 대기업에서 거둔 68억원을 지원하면서 관제시위에 동원해온 사실은 특검 수사 결과로 공개된 바 있다.



원세훈 전 원장 재판에서도 국정원 직원들이 시민단체와 언론기관으로 가장한 세력을 동원해 시위는 물론 출판물 발행까지 배후조종하며 공작을 벌여온 사실도 드러났다. ‘어버이연합 등을 동원한 박원순 서울시장 규탄 집회’나 ‘보수단체를 활용한 세월호 유족 맞대응 집회’ 계획 등 문건으로 확인된 것도 한둘이 아니다.

블랙리스트 역시 국정원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 국정원이 이미 2013년 하반기에 ‘예술위의 정부 비판 인사에 대한 자금지원 문제점 지적’이란 제목으로 청와대에 보고서를 보냈다고 한다. 조현재 전 문체부 1차관도 ‘진보 좌파 지원에 대해선 규제해야 한다’는 취지의 국정원 보고서를 봤다고 증언한 적이 있다.

이병호 국정원장이 헌법재판소를 담당하는 조직의 정보 수집 행위는 시인하면서도 “사찰이라면 도청이나 미행 그런 게 있어야 하는데 절대 그런 일은 없었다”고 주장한 것은 이들의 불법 불감증을 잘 드러내주는 사례다.

그동안 국정원의 불법 공작이 폭로된 적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제대로 단죄된 적이 없으니 여전히 불법 행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불법이 만성화된 조직 자체를 과감하게 도려내고 새로 태어나게 하지 않으면 이 괴물 조직은 계속 활개 치고 다니며 정치공작을 벌일 것이다. 이번에는 검찰이 제대로 밝혀야 한다.



[이데일리]

2. 내일, 우리 모두 촛불·태극기를 내려놓자

박근혜 대통령의 거취가 드디어 내일 결정된다. 대통령 직무에 복귀할 것인지, 아니면 직책을 박탈당한 채 자연인의 신분으로 돌아갈 것인지가 최종 가려진다. 대한민국의 향방이 달린 문제다. 헌법재판소는 어제 재판관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평의를 열고 10일을 선고기일로 잡아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가 탄핵소추를 결의했고, 그날로 헌재에 의결서를 접수한 이래 3달 동안 끌어온 탄핵 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탄핵에 찬성하는 쪽이든, 반대하는 쪽이든 헌재의 내일 결정에 무조건 승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헌재가 어느 쪽으로 결정을 내리든 간에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촛불과 태극기를 모두 내려놓겠다는 다짐이 미리부터 필요하다. 그동안 탄핵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주말마다 도심 거리에 몰려나왔던 시위 행렬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대선 주자들을 포함한 여야 정치권도 더 이상 국민들을 편 가르기로 몰아가서는 곤란하다. ‘찬탄(贊彈)’, ‘반탄(反彈)’으로 갈라진 민심을 자신의 득표에 유리하도록 이용하는 것은 정치 지도자로서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민심을 그런 식으로 유도할수록 그 부담이 언젠가는 반드시 본인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을 필요가 있다. 정치인들부터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더구나 지금 우리는 국정공백에 따른 중대한 시련에 직면해 있다. 사드 배치작업이 본격 시작됨으로써 중국의 경제 보복 움직임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우려되는 데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일본과의 외교 마찰도 장기화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도 강도를 더해가는 중이다. 경제난이 지속되는 가운데 조류인플루엔자(AI)가 다시 확산 기미를 보이는 등 내부 문제도 만만치 않다. 혼란이 가중될수록 그 폐해는 우리 사회 전체에 파급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탄핵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 사회를 지금의 혼란 상태로 몰아넣은 국정농단 책임에 대해서는 잊지 말아야 한다. 비선실세가 정부 인사와 정책에 깊이 개입할 수 있었다는 자체가 잘못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소문들이 사실처럼 자꾸 확대됨으로써 혼란을 키운 측면도 없지 않다. 그 모든 논란과 결함을 헌재의 결정 속에 묻어버리고 대한민국이 새출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3. 녹슨 원전 돌리려는 한수원의 안전의식

전남 영광의 한빛 1·2호기와 부산 기장 고리3호기 등에서 원자로 격납시설 내부 철판에 녹이 슨 사실이 드러났다. 방사선의 외부 유출을 막아주는 장치라는 점에서 이들 원전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하지만 한수원은 명확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채 해당 부분만 잘라내고 새 철판으로 용접하고는 재가동을 서두르고 있어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안전을 위해서는 녹이 왜 슬었는지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기 전까지 가동을 중단하는 게 옳다.

이런 사실은 지난해 5월부터 올 1월까지 걸쳐 확인됐다고 한다. 상부인 원형 돔과 하부 몸통의 경계 지점에 1∼2㎜ 크기의 구멍이 생기고 두께도 10%쯤 줄어들었다고 한다. 더욱이 부식이 발생한 세 원전이 모두 같은 방식의 노형이라는 점에서 제작 및 시공 단계에서부터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는지 가리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한수원은 “녹슨 정도가 1~2% 정도에 불과해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만 해명하고 있을 뿐 납득할만한 부식 원인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최근 녹이 슨 부분을 오려내고 새로운 철판으로 용접한 뒤 원자력안전위원회에 가동 승인을 요청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문제의 원인을 찾지 못한 채 가동에 들어간다면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수원의 안전 점검이 엉터리라는 지적이 있었던 터다. 원안위가 한수원에 대해 고리1호기 등 16기의 원자로 용기 용접부 등에 대한 ‘가동중 검사’에서 40년 가까이 오류를 저질러 왔다며 과징금을 부과한 게 지난달의 일이다. “안전에 이상 없다”는 얘기를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려운 이유다.

이틀 뒤면 1만 6000여명이 숨지고 185조원의 피해를 낸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6주년이 된다. 최근 경주를 비롯한 원전 인근 지역에서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하면서 원전 안전에 대한 불안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작은 사고라도 자칫 대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 원전사고다. 늘 경각심을 갖고 안전에 최선을 기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원전 당국의 안전 불감증은 나아진 게 없다. 한수원은 가동에 집착할 게 아니라 이제라도 철저한 원인 규명에 나서는 것이 먼저다.



[매일신문]

4. 교사 채용 비리 근절, 교육청 의지에 달렸다

대구시교육청이 8일 지난해 불거진 학교법인 경암교육재단의 교사 채용 비리와 관련, 학교법인 소속 교사 10명의 신규 임용을 취소했다. 교육청은 또 비리에 가담한 재단 이사장 딸인 법인 소속 고교 행정실장의 파면 등 채용 비리 연루 교직원 9명에 대한 징계도 이사회에 요구했다. 이 같은 대규모 임용 취소는 초유의 일로 채용 비리를 끊겠다는 대구 교육 당국의 의지를 엿보게 한다.



이 재단 교사 채용 비리에 대한 교육청 일련의 조치는 어느 때보다 강하다. 환영할 만하다. 물론 이미 지원된 재정의 환수 같은 보다 근본적인 조치는 않았지만 각종 재정 지원 제한이나 중단 역시 잘한 일이다. 사학재단에 대한 첫 임시이사 파견도 바람직했다. 지난달 공립학교 교장의 경암재단 소속 경화여고 교장 파견 및 행정실장 파견 발령도 대구에서 첫 시도로 평가할 만하다. 이어 이번의 교사 10명의 신규 임용 취소 조치 단행에 이르기까지 잇단 조치는 다른 사립 재단에도 강력한 신호가 될 것이 틀림없다.



경암 학교법인은 지난 2015년 이뤄진 교사 채용에서 1인당 1억4천만~2억원을 받고 9명을 채용하고 1명은 면접 과정에서 비리를 저질러 관련자 5명이 구속 기소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그 후속으로 이뤄진 단계적인 불이익의 감수는 마땅하다. 이번에 임용이 취소된 채용 비리 관련 교사 10명은 앞으로 5년 동안 교사 공개 전형 채용시험에 응시할 수 없는 피해 또한 어쩔 수 없다. 이런 모든 조치는 채용 비리의 고리를 끊기 위한 고육책이 아닐 수 없다. 교육청이나 재단, 학교법인 모두 뼈아프게 자성할 일이다.



이는 어디까지 커지고, 번질지 모를 비리 싹을 자르기 위함이다. 가뜩이나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대한 젊은이의 좌절감이 하늘을 찌르는 현실에서 피할 수 없는 조치다.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으로 교사로서의 평생 꿈을 이루고 나라 앞날을 맡을 미래 세대 육성의 포부를 꺾는 부조리는 절대 그냥 둘 수 없는 일이다. 썩은 가지로 교육계 몸통이 삭는다면 국가적인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지역사회의 미래 역시 담보할 수 없어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될 일이다. 교육계의 오롯한 자정(自淨)을 위해서다.



5. 저조한 해외 기업 국내 유턴, 문턱 더 낮추고 독려해야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를 돕는 이른바 ‘유턴기업 지원’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해외에 나가 있는 기업이 국내로 돌아올 경우 일자리 창출에 큰 도움이 되는데도 공장 이전에 따른 이점이 별로 없어 유턴을 꺼리고 있어서다. 저성장 기조에다 경기 침체가 심각한 현실을 감안하면 특단의 유인책을 써서라도 많은 기업이 유턴하도록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제조업 유턴 촉진 방안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해외의 우리나라 기업은 모두 1만1천953개사다. 이들 기업이 현지에서 고용한 인력은 모두 338만4천여 명이다. 특히 제조업체 5천781개사의 현지 고용 인력만도 286만 명으로 추정된다. 만약 해외 현지공장 가운데 10%만 돌아와도 약 29만 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청년 일자리 난 해소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는 통계상 청년실업자 46만7천 명의 61%에 이르는 규모다.



정부는 2012년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일명 유턴기업지원법)을 제정해 유턴기업 지원을 제도화했다. 하지만 입법조사처 통계를 보면 5년간 공장을 국내로 이전한 기업은 고작 81곳이다. 제조업체 기준으로 유턴 기업이 전체의 2%도 안 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돌아오고 싶어도 인센티브가 미흡하거나 높은 인건비, 노동시장의 경직, 자금 조달의 어려움 등 여전히 걸림돌이 많다는 소리다.



현재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우리 기업과 상품을 겨냥한 중국의 경제 제재가 노골화하고 있다. 해외의 기업환경이 크게 바뀌는 등 상황이 유동적이다. 이런 분위기를 잘 살려 해외 진출 기업의 복귀가 늘어나도록 정부와 국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 자유한국당 정용기 의원이 8일 유턴기업 지원법률안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도 유턴기업 지원을 보다 체계화해 실효성을 살리자는 취지다.



미국과 독일, 일본의 경우 유턴기업 지원 강화와 경영 환경 개선 등 대책을 세우고 자국 기업의 유턴을 독려해 큰 성과를 내고 있다. 우리도 더 이상 해외 진출 기업을 그냥 두고 볼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기업 활동을 할 수 있게끔 경영 환경을 개선하고 지원책을 강화하는 등 적극 팔을 걷어붙여야 할 때다.



6. 새 학기에도 중금속 범벅 우레탄 트랙 달리는 학생들

중금속이 검출된 우레탄 트랙을 신속히 교체하겠다는 교육 당국의 호언과 달리 학교 현장에서는 시설 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금속 범벅인 우레탄 트랙이 방치되면서 봄철 신학기를 맞아 등교한 학생들은 여전히 건강을 위협받고 있으며 운동장 사용상의 불편도 장기화하고 있다.



우레탄에서 배출되는 납`카드뮴 등 중금속과 환경호르몬은 사람의 신경 및 면역계에 치명적 손상을 주고 과잉행동장애(ADHD)를 일으킬 수 있는 유해물질이다. 경북에서는 우레탄 트랙이 있는 학교 180곳 가운데 126곳에서 기준치를 크게 웃도는 유해물질이 검출됐다. 대구에서는 우레탄 트랙이 있는 134곳 가운데 96곳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유해물질이 검출됐다.



학생들이 중금속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소식에 화들짝 놀란 교육 당국은 관련 예산을 확보하고 최대한 신속히 우레탄 시설 철거 및 교체 작업을 완료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대구에서는 2월 말 현재 21개교만이 우레탄 트랙을 걷어냈다. 경북에서는 지난 1월 말 현재 7곳에서 철거가 마무리돼 교체율이 5.6%에 그쳤다. 교육청으로부터 예산을 받아놓은 교육지원청이 학교에 예산을 제대로 내려 보내지 않은 지역도 있다.



우레탄 트랙 철거가 지지부진한 것은 상당수 학교들이 적극적으로 서두르지 않는 데다, 강화된 KS기준에 맞는 자재마저 조달청에 아직 등록되지 않는 등 교체 추진 환경이 여의치 않아서이다. 이 때문에 대다수 학교에서는 우레탄 트랙을 덮개로 덮거나 안내문을 붙이는 방법으로 사용 금지 조치만 하고 있어, 학생들이 신학기를 맞았음에도 운동장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 기약 없이 늘어지고 있다.



문제는 우레탄이 학교 운동장 말고도 배구장`농구장 등 다목적 운동시설과 어린이집`유치원 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 당국이 이런저런 핑계로 우레탄 교체를 미루는 사이 지금도 유해 중금속은 아동들과 학생들의 건강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 교육 당국은 가용 자원을 아끼지 말고 동원해 우레탄 트랙 교체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7. 트럼프 통상팀 잘못된 인식 어떻게 대처하나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이 "몇 달 안에 나쁜 무역협정들을 재협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1월 미국의 무역 적자가 5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통계가 나오자 성명을 내고 "미국인을 지키기 위해 무역정책을 더 강력하게 시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나쁜 무역협정'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하루 전엔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이 삼성과 LG를 찍어 '무역 부정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삼성·LG가 (관세 회피를 위해) 중국에서 베트남과 태국으로 생산지를 옮겼다. 이런 무역 부정행위는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주엔 미 무역대표부(USTR)가 연례 보고서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미국의 무역 적자를 확대시켰으며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언급했었다.



트럼프 행정부 책임자들의 통상(通商) 인식은 왜곡되거나 사실과 다른 것이 적지 않다. 전 세계를 무대로 최적의 생산지를 찾아다니는 것은 삼성·LG뿐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모든 글로벌 기업의 공통된 전략이다.



그러나 트럼프 통상팀의 인식이 잘못됐더라도 이 현실을 비판만 하고 있을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과 중국·일본 등이 불공정 무역으로 막대한 대미 흑자를 내고 있다는 전제 위에서 통상 정책을 짜고 있다. 따라서 통상 압박이 본격화되기 전에 우리가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지금처럼 개별 기업들이 미국 투자 계획을 내놓는 것으론 한계가 있다.



아베 일본 총리는 산업계의 협조를 받아 '일자리 70만개, 4500억달러 투자'라는 보따리를 트럼프에게 안겨주었다. 일본도 손해 보지 않는 거래일 것이다. 우리도 정부와 재계가 손잡고 미국 패키지(종합) 투자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그 안에서 한·미가 윈·윈할 수 있는 길이 반드시 있다.



8. 日 사드 레이더엔 아무 말 않는 中, 한국만 만만한가

중국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8일 "한국은 사드 배치를 즉각 중단하고 잘못된 길에서 더 멀리 가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사드 관측 범위는 한반도를 훨씬 넘어서고 중국의 전략 안보 이익을 침해한다"며 "사드는 분명히 잘못된 선택이고 이는 이웃 나라로서의 도리를 어긴 것이자 한국 안보를 더 위험하게 하는 행위"라고도 했다. 지난 6일 사드 장비 일부가 한국에 도착한 이후 나온 중국의 반응이다. 중국이 뭐라든 북핵·미사일을 막을 군사 대비는 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사드 레이더 때문이다. 그런데 사드 레이더는 이미 일본에 두 군데 배치돼 있다. 전진 배치용 레이더로 최대 탐지 거리는 2000㎞다. 한국에 배치될 사드 레이더는 종말 단계 요격용으로 탐지 거리가 1000㎞ 미만이다. 이상한 것은 사드 레이더를 목에 가시처럼 여긴다는 중국이 일본 사드를 문제 삼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에 사드를 배치한 후 탐지 거리를 늘릴 수 있다는 억지 논리도 있지만 북 미사일 요격도 벅찬데 중국 감시용으로 바꿀 까닭이 없다. 미국은 사드보다 성능이 더 뛰어난 중국 감시 장비를 이미 충분히 갖고 있다.



러시아가 최근 중국 땅 전체를 겨냥해 구축한 레이더 시스템의 경우, "중국에서 파리 한 마리가 날더라도 추적"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러시아 언론은 전한다. 이에 대해서도 중국 정부는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다. 물론 자신들도 대한민국을 샅샅이 훑는 레이더를 가동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 사드에 대해서만 우리 정부가 설명하려 해도 듣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아주 막무가내다.



한때는 한·미·일 체제에서 한국을 떼내려 중국이 이런다는 분석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진핑 주석이 공개적으로 반대했는데 한국이 강행한 데 대한 '괘씸죄'라는 설명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한국을 만만하게 보고 길들일 수 있다고 여기는 이 시대착오 사고방식이 더 큰일일 수 있다.



주한미군 장비 배치가 국회 비준 대상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어제 민주당은 사드 배치에 대한 국회 비준 동의를 당론으로 정했다. 경북 성주에선 사드 장비 반입을 막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중국 나팔수로 나설 사람들도 곧 등장할 것이다. 나라 지키는 일을 '남 일'로 여기는 나라는 그것이 '내 일'이 됐을 때는 결코 감당할 수 없다.



[세계일보]

9. 내일 탄핵심판 선고… 국민 모두 헌재 결정에 승복하자

내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여부를 판가름하는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내려진다. 헌재는 어제 평의에서 탄핵심판 선고기일을 10일 오전 11시로 확정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퇴임일인 13일 이전에 선고를 마무리짓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지난해 12월9일 국회 탄핵소추 의결서가 접수된 지 91일 만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것이다. 헌재 재판관 8명 중에서 6인 이상이 인용(탄핵 찬성) 의견을 내면 박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파면되고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그러나 3인 이상이 반대하면 기각돼 박 대통령은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

우려스러운 일은 선고가 가까워질수록 더욱 극단으로 치닫는 찬반 갈등이다. 최근에는 전쟁터에서나 나올 법한 죽창과 단두대가 등장했다. 박영수 특검의 부인이 극우단체의 위협에 놀라 혼절을 했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이 권한대행도 테러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반이성적 행동은 광화문 촛불집회에서도 나타났다. 박 대통령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인신공격을 예사로 한다.



어떤 참가자는 목이 잘린 채 피를 흘리는 박 대통령의 얼굴 모형을 쇠막대기에 매달았다. 광장 사거리에 섬뜩한 칼날이 달린 4m 높이의 단두대가 설치되기도 했다.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반인권적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 탄핵 여부를 놓고는 각자 의견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 표현만큼은 민주적 절차와 정신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탄핵사건은 대통령이 국정 운영과정에서 중대한 위법행위를 했는지를 따지는 게 관건인데, 찬반 양측은 모두 자신의 견해가 헌법과 민주주의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헌법 수호를 내세우면서 헌법적 가치인 인간의 기본권을 짓밟는 행위는 자기모순이자 헌법 모독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헌재 선고 이후가 더 걱정이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결정이 나오면 승복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연령대에 따라선 절반이 넘는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어느 한쪽이 선고에 불복해 거리로 뛰쳐나올 경우 나라 전체가 소용돌이에 휩쓸릴 위험이 없지 않다. 이런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선 양측 모두 집단으로 헌재를 압박하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 대선주자를 비롯한 정치인들은 국론 분열을 부르는 언행을 절대 해서는 안 된다. 헌재에서 어떤 결정이 나오든 무조건 승복하겠다고 공개선언을 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 위중한 시기를 맞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 중국의 사드 보복 등으로 국가 안보가 더없이 위태롭다. 국민 모두가 헌재의 선고를 차분히 기다리고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



10. 삼성·LG 생산기지 이전이 사기라는 美의 억지 통상압력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무역 정책 사령탑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의 억지스러운 통상압력 발언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나바로는 지난 6일 기업인 행사에서 삼성과 LG를 콕 집어 무역 부정행위(tradecheating)라는 표현을 쓰며 비난했다.



삼성과 LG가 반덤핑 관세 부과 판정을 받은 후 관세 회피를 위해 중국에서 태국과 베트남으로 생산기지를 옮겼는데 이는 무역 부정행위이므로 중단돼야 한다는 것이다. 나바로의 공격은 중국이나 동남아 공장에서 생산해 세계 시장을 공략해온 한국 기업들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반덤핑 관세 등 일련의 공세가 거세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삼성과 LG는 트럼프 신정부 출범 후 미국 내 현지 공장 건설 등 투자 계획을 밝히기도 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맞았으니 어처구니없다. 

나바로 위원장은 중국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대표적인 경제학자로 초강경 보호무역주의자다. 그가 중국, 독일, 인도에다 한국까지 넣어 16개국을 미국의 무역적자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라고 지목했는데 적자 감축을 위한 통상압력을 높일 수 있다는 공개적인 의사 천명이니 긴장해야 한다.



한국의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는 277억달러로 미국의 무역 상대국 중 여덟 번째였다. 다음달 미국 재무부가 발표할 환율보고서에서 중국 등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지도 우리에게 미칠 직간접적인 영향을 감안하면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이달 초 낸 보고서에서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를 거론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시사한 것도 신경 쓰인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적인 통상압력에 현명한 대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초동여담] 영화로 만나는 소록도 '할매 천사'

고흥반도에 어린 사슴을 닮은 섬이 있다. 소록도(小鹿島)다. 송림과 기암이 어우러져 다도해 절경을 볼 수 있는 소록도는 과거 한센인들의 애환이 깃든 곳이다. 고흥 8경 중 2경에 들지만 편히 섬을 즐길 여유를 갖기란 쉽지 않다. 어디건 슬픔과 한숨이 배어있지 않은 곳은 없기 때문이다.

소록도에 한센인 병원이 들어선 것은 1916년이었다. 당시 한센병은 전염병으로 인식돼 천형(天刑)으로 여겼다. 일제에 의해 강제 수용된 환자들은 가족과 생이별을 했고 지독한 오해와 편견에 시달려야 했다. 불법감금은 예사였고 골수를 빼고 생식기를 자르는 만행도 저질러졌다. 지금도 남아 있는 소록도갱생원 검시실(등록문화재 제66호)과 감금실(등록문화재 제67호)은 일제 강점기에 인권 유린이 자행되었던 현장이다. 검시실에는 수술대와 세척 시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광복 후 천사처럼 환자들을 돌본 헌신적인 사랑도 배어 있다. 1960년대 초 병원장으로 부임해 '오마도 간척사업'을 주도한 조창원씨, 환자들의 손ㆍ발톱까지도 손수 깎아주었던 신정식씨 등이 그들이다.



푸른 눈의 천사들도 있었다. 1962년 외국인 수녀가 소록도를 찾아왔다. 오스트리아에서 파견된 마리안느 스퇴거(83ㆍMarianne Stger)와 마가렛 피사렉(82ㆍMargaritha pissarek) 수녀였다. 당시 한센인은 '하늘도 버린 존재'로 여겼다. 한국 의사와 간호사들조차 환자들과 접촉을 피하던 때였다.



두 수녀는 달랐다. 연고도 없는 소록도에서 환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보살피며 사랑을 실천했다. 맨손으로 환부 피고름을 짜내고 진물을 닦아내며 상처를 치료했다. 환자들과 얘기할 땐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기도 하고, 모두가 기피할 때 환자를 집으로 초대해 함께 밥을 먹곤 했다.

소록도 어르신들의 생일이 되면 손수 구운 빵과 함께 생일을 축하했다. '당신의 탄생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라는 의미였다. 세상과 등진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는 의사이자 엄마였다. 소록도 환자들은 '할매 천사'라고 불렀다. 

그들이 남긴 건 사랑뿐만이 아니었다. 오스트리아 부인회 도움으로 영아원과 결핵병동, 정신과 병동, 목욕탕 건물을 지었다. 치료에 필요한 의약품과 의료기기도 받았다. 그럼에도 자신들 삶은 한없이 청빈했다. 43년 간 보수를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봉사와 사랑을 실천했다.

2005년 두 사람은 '그곳에서 참 행복했습니다' 라는 편지 한 통만 남기고 모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1년만인 지난해 마리안느 수녀가 소록도로 돌아왔다. 환자들은 할매 천사를 울음으로 환영했다. 

지난 주 고흥 출장길에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애환과 슬픔을 간직한 소록도와 두 수녀의 지고지순한 삶을 다룬 영화가 내달 개봉을 확정했다는 이야기다.


윤세영 감독이 연출한 휴먼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두 수녀가 소록도에서 겪었던 43년간의 삶을 기록영상과 실제 촬영을 통해 관객과 만난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서툰 한국말로 전하는 사랑과 희망 메시지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진한 진심을 전한다. 내레이션은 이해인 수녀가 직접 맡아 두 사람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더욱 의미 있게 전달한다.



모쪼록 '수녀'라는 호칭보다 친근한 '할매'로 불리기를 원했던 두 수녀의 사랑 가득한 삶을 되새겨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길 바래본다. 사랑은 전염병이라고 했다.  



2. [매일신문][데스크 칼럼] 하루 두 번 맞는 시계

자신만의 개똥철학을 설파하며 전국을 유랑하는 개똥거사가 국민님을 찾아왔다. 집안일로 한참 골머리를 앓고 있던 차에 늘 조언을 아끼지 않는 거사가 찾아오니 국민님은 여간 기쁘지 않았다. 지난 몇 달간 그를 괴롭히던 문제가 이미 풀려버리기나 한 듯 기쁘게 거사를 맞아들였다.



그동안 집안일을 집사 한 사람에게 맡겨두고 있었는데, 이 집사가 큰 사고를 일으킨 것이었다. 평소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아들은 길길이 뛰며 당장 쫓아내자 하는데, 오랫동안 그를 믿고 부리던 아내는 의리에 맞지 않는다고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집사 쫓아내는 일도 일이지만, 아내와 아들이 다퉈 말도 안 하고 토라져 있으니 그야말로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평소 그의 좌우에서 늘 도움을 아끼지 않던 두 사람이니 더 골치가 아팠다.



간단히 문안 인사를 받은 국민님, 무릎을 당겨 앉더니 다짜고짜 질문부터 던진다.



“그래 어찌하면 좋겠소. 그간의 사정이야 들어서 알고 있겠지요? 이 집사 놈을 당장에라도 쫓아내 버려야 옳겠소, 그래도 그간의 정리를 생각해서 혼뜨검을 낸 후 용서하는 것이 옳겠소? 시원한 대답을 좀 주시오. 그리고 내 양옆에 앉아 있는 이 두 사람도 화해를 좀 시켜주시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거사가 봇짐을 뒤지더니 뭔가를 꺼내 놓는다.



“여기 두 개의 시계가 있습니다. 이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어떤 걸 선택하시겠습니까. 하나는 하루에 두 번 정확히 맞는 시계이고, 다른 하나는 늘 시간이 조금씩 늦지요. 부인과 영식께서도 함께 골라 보시죠.”



먼저 국민님이 입을 연다. “하루에 두 번 정확하다? 아니 이건 고장 난 시계가 아니오? 고장이 나서 바늘이 움직이질 않으니 당연히 하루에 두 번 맞는 것이겠지. 이쪽 건 시간이 늦어지긴 하지만 움직이긴 하는군? 둘 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난 움직이는 시계를 택하겠소.” “저도 마찬가지예요.” 부인과 아들도 이번에는 이구동성이다.



“그렇습니다. 이 시계는 고장 난 시계입니다. 하루에 두 번은 정확하게 시간을 가리키지만 아무도 이 시계를 선택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 시계는 일종의 극단(極端)입니다. 흑과 백이라고 말씀드려도 좋을 것입니다. 옳고 그름이 분명한 반면 다름을 용납할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반면 조금씩 늦어지는 시계는 비록 정확하진 않지만 바로잡을 수가 있습니다.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치가 아닐까 합니다. 이 세상 일이 늘 명명백백하고, 옳음과 그름만 있을 수 있을는지요. 그것은 바로 이 고장 난 시계와 같지 않을는지요.



부인과 영식님께 말씀드립니다. 두 분이 다투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집안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한 분의 뜻이 더 훌륭하고 다른 분의 생각이 못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겁니다. 뜻은 같으나 방법이 다를 뿐이지요.



한집안의 가족이라고 해서 불화와 다툼, 갈등이 없을 수만은 없습니다. 한 가지에서 나온 나뭇잎이라도 다 모양이 다르듯, 가족끼리라 하더라도 의견이 다르고 생각이 다 다른 게 당연하지요. 그래서 다투기도 하겠지만 그런다고 해서 남이 될 수는 없지 않겠는지요. 내 어버이이고 내 자식인데 어찌 등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기에 가족이 아닐는지요. 시계가 잘 맞지 않는다고 아예 두드려 깨버리겠습니까. 좀 성가시긴 하겠지만 고치고 맞춰 사용해야 하지 않을지요.



국민님, 집사 문제는 알아서 처결하십시오. 집사야 갈아치운들 어떻고 용서하고 데리고 있은들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가족은 다른 문제입니다. 가족은 영원히 내 곁에 있을 사람들입니다. 어려울 때나 기쁠 때나 함께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진정 무엇이 소중하겠습니까. 하루 두 번만 맞는 고장 난 시계입니까. 조금씩 시간이 틀리긴 하지만, 그래서 귀찮고 성가시긴 하지만 살아 있는 시계입니까.”



3. [서울신문][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미니멀한 삶과 장식 과잉의 아르누보

연전에 아버님을 여의고 어머님을 요양원으로 모셨다. 단출한 삶을 사셨다고 생각했던 어른들의 세간을 정리하면서 사람이 살면서 필요한 것들이 이렇게 많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낡은 앨범과 서랍 속 잡동사니 하나까지 소중한 기억이고 추억의 실마리가 됐다. 세간을 정리하는 시간보다 그것을 두고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영화 ‘여름의 조각들’(L’Heure D’t, 2008)도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어머니의 죽음 후에 유품을 정리하고 살림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겪는 삼형제의 갈등과 그 화해의 방법을 그리고 있는데 사람들의 삶이란 동서양이, 잘살고 못살건 간에 너무도 닮아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영화는 오르세미술관 개관 2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어머니의 유산을 정리하며 각자의 처지와 입장 때문에 갈등하던 자식들이 상속세 등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많은 그림과 아르누보풍의 세간을 오르세에 기증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세금을 돈으로 내는 것이 아니라 미술품으로 내는 것이다. 사실 외국 주요 미술관의 소장품 대부분이 세금을 대신해 기증된 작품들이다. 루브르가 소장한 페르메이르의 ‘레이스 짜는 여인’도 로실드가문이 상속세를 대신해 기증한 것이다.



어머니 엘렌은 75세 생일을 맞아 한집에 모인 파리와 중국, 미국에 따로 사는 자식들에게 자신의 삶을, 삶의 찌꺼기를 정리하고자 한다. 하지만 자식들은 의례적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하다 서둘러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다시 고향집에 모이고, 구석구석에서 어머니의 삶의 흔적과 화가였던 삼촌의 기억들을 찾아낸다.



19세기 중반 동양의 산수화처럼 풍경을 주제로 삼았던 바르비종파의 대표적인 화가로 신고전주의에서 근대 풍경화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한 코로의 풍경화를 비롯해서 독특하고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를 그린 상징주의 선구자 르동의 마거릿꽃 그리고 아름답고 품위 있는 아르누보풍의 생활용품들이 영화의 또 다른 축을 이룬다.

이 물건들은 어머니에게는 귀한 삶이었고, 자식들에게는 애틋한 추억이지만 손자들에겐 별 의미 없는 물건일 뿐이다. 생일날 자식들을 보내고 어머니는 혼자 말한다. “내가 떠날 땐 많은 것들이 함께 떠날 거야”라고. 그리고 “이젠 아무도 재미있어 하지 않는 일들만 남을 것”이라고.



어머니는 코로의 그림이 걸려 있는 거실에서 루이 마조렐의 식물문양이 돋보이는 아르누보의 상징인 마호가니 책상을 쓰며, 오스트리아 빈 공방에서 분리파 양식의 가구를 만든 건축가 요제프 호프만의 수납장에 어린 시절 아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보관해 놓았다. 이름 없는 야생화라 할지라도 유리공예로 유명한 펠릭스 브라크몽이나 수잔 랄리크, 앙토넹 돔의 화병에 꽂아 식탁에 올려놓아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차 한잔을 마셔도 단순한 선이 되려 장식적인 절제된 은공예가 게오르그 옌센이 만든 차세트를 사용했다.

어머니는 장신구 디자인을 하는 딸 아드리엔(쥘리에트 비노슈)에게 이를 주고 싶어 했다. 이런 어머니 앞에서 딸은 1830년 설립된 크리스토플사의 연꽃 문양 은쟁반을 들고 어린 시절 비 오는 날 연잎이 쟁반에서 피어나던 추억을 어리광 부리듯 이야기한다. 어느 구석에선 깨어진 드가의 조각상이 비닐봉지에 담겨 나오고. 어머니의 소박하지만 품위 있는 삶을 지켜준 것들은 다름 아닌 이런 아르누보 스타일의 세간, 도구들이었다. 이런 작은 사치는 이혼하고, 화가인 삼촌을 뒷바라지하며 사는 한 여성의 무거운 삶을 이겨내는 힘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삶이 예전보다 풍요해졌지만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도 아마 넓은 집과 큰 자동차에 대한 집착 때문일 것이다. 작지만 의미 있는 문화가 있는 삶, 예술이 있는 저녁을 살며 아름다운 것들에 눈을 돌리는 미니멀한 삶을 산다면 얼마든지 누구보다 행복해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어머니가 사용하던 세간들은 거개가 ‘새로운 예술’이란 의미의 아르누보풍 공예품들이다. 아르누보운동은 역사적인 전통을 버리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하고자 했다. 이들은 예술이란 높고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생활 속의 예술이며 삶의 일부라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아르누보운동은 벨기에에서 시작해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갔는데 프랑스에서는 이를 발전시켜 ‘900년 양식’을 완성해 최전성기를 이루었고 이를 ‘기마르 양식’이라고도 불렀다.

독일의 ‘유겐트스틸’이나 이탈리아의 ‘스틸 리버티’,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스페인에서는 ‘아르테 호벤’, 오스트리아의 ‘제세션’, 영국과 미국에서는 ‘모던스타일’이 모두 같은 범주의 예술 활동이었다. 이는 짧게는 1890년쯤부터 1910년쯤까지 또는 20세기 전반까지 유럽은 물론 미국까지 유행한 ‘범세계적인’ 양식이다.



아르누보는 그림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과 직접 관련이 있는 공예와 건축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그림은 물론 가구, 유리공예, 보석,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용 포스터 등등의 장식미술을 통해 예술을 일상으로 끌어들였다. ‘청춘’, ‘근대’, ‘자유’, ‘새로움’ 이라는 뜻을 지닌 아르누보는 주로 식물에서 모티브를 따와 곡선을 사용한 것이 특징인데 그래서 ‘꽃의 양식’, ‘물결양식’ 또는 ‘당초양식’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아르누보는 새로운 세기를 향하면서도 옛것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영혼의 자각 시대라고도 한다.

이런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작가로는 ‘장식미술’을 처음으로 강의한 윌리엄 모리스를 비롯한 수공예운동가 그룹과 찰스 레니 매킨토시, 헨리 반 데 벨더, 설리번, 안토니 가우디, 엑토르 기마르 등이 있다. 순수회화에는 영국의 라파엘전파, 블레이크, 상징주의와 나비파 화가들과 클림트와 알퐁소 무하, 뭉크, 로트레크가 있다. 공예가로는 낭시를 아르누보의 중심으로 만든 에밀 갈레, 르네 랄리크,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 그리고 영화 속에서 소품으로 등장하는 가구와 화병, 쟁반을 만든 이들이 그들이다.

아무튼 기록과 보존이라는 미술관의 사명과 이를 통해 문화라는 공공재의 의미 그리고 개인의 삶의 깊이를 아르누보와 병치시킨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선택은 탁월했다. 그리고 그 틈에서 가족의 의미, 추억의 자리, 삶에서 남는 것, 또 남기는 것들을 잔잔하면서도 진지하게 다룬다. 누군가는 떠나고 그 자리에 남은 물건들 그리고 남은 것들을 두고 일어나는 현실적인 문제와 새로운 세대에게는 단지 아무 의미 없는 물건이라는 현실이 무겁게 다가온다.



내가 떠난 자리, 나의 삶의 찌꺼기로 인해 다음 세대들이 불편해한다면 글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조바심이 인다. 하지만 그들에게 내가 ‘아르누보처럼 아름답게’ 남고 싶어 하는 욕심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4. [여성신문][김효선 칼럼] 모두를 위한 ‘빵과 장미’

올해 3월 8일 여성의 날 행사는 한층 뜨거웠다. 1908년 뉴욕 루트거스 광장에서 1만5천명의 여성노동자들이 행진하며 ‘빵과 장미 달라고’ 외쳤다. 빵은 생존권을, 장미는 참정권을 의미한다. 100여년 전 미국 여성노동자들의 요구는 처절하고 정당했다. 현재는 전 세계에서 이 날을 기억하며 새롭게 연대하는 여성들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5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33회를 맞았다. 올해의 이슈는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대체로 낙태죄 폐지, 성별임금격차 폐지, 정치대표성 확대, 차별금지법 제정이 눈에 뜨인다. 성별임금격차와 관련해서는 ‘3시 퇴근’을 주장한다. 여성들이  남성평균임금의 64%만 받고 있으니 일도 그만큼만 하자는 뜻이다.



성별임금격차는 OECD 국가 중 최하위로 여성들의 일자리 불안정과 빈곤 등 삶의 질이 불량함을 총체적으로 뜻하는 지표로 해석해야 한다. 정치대표성도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준 17%는 세계평균 22.4%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2016년 성별격차 지수(GGI)144개국 중 116위라는 미진한 성적표의 큰 원인이 되는 지표이다.



여기에 또 고려해야 할 지표는 30대 기업의 여성임원 비율 2.4%라는 통계다. 올해 임원 승진대상 17개 그룹의 수치로, 그나마 신입 임원인 상무에 거의 다 몰려 있고, 여성전무는 세 사람, 그 중 두 사람인 ‘로열패밀리’의 일원이다. 우리나라 유리천장 역시 OECD에서 가장 두껍다. 

어느 때 보다 새로운 나라에 대한 열망이 뜨겁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탐욕은 민낯을 드러내지만 우리나라의 리더십은 부재한 상태. 위기 중의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성평등 국가를 만들어가야 한다. 다음 대통령이 꼭 페미니스트 리더십을 갖추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유감스럽게도 현재 대선 후보들의 젠더 인식은 그다지 신통치 않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현재까지는. 

대부분 보육, 일·가정 양립, 일자리 정책 자체를 성평등 정책으로 이해하는 프레임 속에서 갇혀서 여성을 바라본다. 이런 시각에서 여성은 자기결정권을 가진 주권자가 아니라, 경제구조와 사회구조의 안정과 효율을 위한 도구적인 의미로 자리매김 되어 있다. 

여성신문과 한국여성단체연합이 공동으로 주최한 ‘성평등 마이크’에서 일부 대선주자들이 성평등 정책 공약을 발표했다.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성평등을 국정기조로 삼겠다는 의지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문재인, 심상정, 안철수, 이재명 등 네 후보는 성평등 동수 내각 구성, 성별임금 격차 해소, 성평등 교육 공교육화, 육아와 일·가정 균형 등 돌봄 사회 구축, 돌봄 공동책임의 법제화 등의 솔깃한 공약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실천과 검증은 필수이다.



이러한 대선 주자들의 성평등 공약들은 진수성찬의 수사가 아니라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어야 한다. 여성은 국가발전의 과정이나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하는 주권자이다. 성평등 국가 그 자체가 국정의 목표이자 기조가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진정한 변화다. 

100여년전 뉴욕 여성노동자들이 빵과 장미를 달라는 외침 속에는 ‘우리의 요구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들이고, 가족인 남성들의 위한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들의 주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5. [경향신문][문화와 삶] 내면과 풍경

소설에서 풍경 묘사는 언제나 심리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시선에 포착된 풍경은 그 시선에 의해 새로이 부각되거나 부식되거나 하기 때문이다.

바람 한 점 없이 맑은 날 바다 앞에 선 이가 고요하고 잔잔한 바다를 가리켜 사납게 으르렁거린다 해도, 이와 반대로 폭풍우가 치는 날 바다 앞에 선 이가 숨 막힐 듯 고요하다 말한다 해도 기꺼이 동감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이가 보는 바다가 그이의 내면이 그려낸 풍경임을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풍경은 내면의 연장이며 형상을 부여받은 내면이다.



풍경과 내면은 구분하기 힘들 만큼 뒤엉켜 선명하게 그려지는 경우도 있고, 완벽하게 무관한 것처럼 암시적으로 그려지는 경우도 있다. 전자의 유명한 예 가운데 하나는 플로베르가 <보바리 부인>에서 에마의 내면을 묘사하는 장면이다. “그녀의 삶은 마치 햇빛받이 창이 북쪽으로 나 있는 지붕 밑 골방처럼 냉랭했고 소리없는 거미와도 같은 권태가 그녀의 마음 구석구석의 그늘 속에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에서 에마의 내면은 골방의 거미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후자의 유명한 예 가운데 하나는 헤밍웨이의 단편 ‘흰 코끼리 같은 언덕’의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강 건너 저 멀리에 산들이 있었다. 구름 한 점이 그림자를 드리우며 곡식밭을 가로질러 지나고 있었고 아가씨는 나무 사이로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 건너의 산, 구름 한 점이 떠가는 곡식밭, 나무 사이로 보이는 강 등은 인물의 시선과는 무관해 보이는, 순수하게 객관적인 풍경으로 비치지만 두 인물의 대화 도중 한 인물의 시선에 포착된 이 무심한 풍경이야말로 시선을 보낸 이의 내면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회피하기 위한 의도적인 머뭇거림이자 부드러운 질책이며 잠시 상대방을 잊어버린 자기몰입이기도 하다.

플로베르와 헤밍웨이는 풍경과 내면을 긴밀하게 엮었느냐 아니냐는 스타일의 차이는 있지만 풍경이 내면의 연장이며 형상을 부여받은 내면이라는 태도를 취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겨울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그날은 하루 종일 스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창가에 선 채 목탄화로 그린 듯한 바깥 풍경을 보고 있었다. 이 쓸쓸하고 막막한 풍경이야말로 어린 시절부터 내가 무척 좋아하던 풍경이었다. 해가 질 무렵 갑자기 사위가 어두워지면서 광야에 내던져진 기분이 들던 시간들, 차갑지는 않으나 질감이 느껴지는 근육질의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오던 시간들, 장막이라도 쳐버린 듯 새까맣게 내리던 눈과 비의 시간들, 불길하게 새떼가 날아오르고 먹장구름이 순식간에 하늘을 점령해버리던….

그 시간들처럼 사위가 온통 잿빛으로 물들고 습한 공기를 호흡하며 불안에 떨어야 했던 그날 하루는 정말로 스산하기 짝이 없었다. 비가 내리는 어둑어둑한 세상 풍경에 마음이 끌리는 건 풍경이 내면의 반영이기 때문이며 나의 황량한 내면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다는 기이함과 그 풍경이 생각처럼 추하기는커녕 아름답기까지 하다는 데서 오는 위로와 안도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문득 이 풍경이 나의 내면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누군가의 내면이기도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쓸쓸한 풍경은 누구의 내면일까. 창가에 바투 붙어 커튼을 살짝 젖혀 밖을 내다보는 당신의 내면이 아니던가. 우산을 쓰고 가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비스듬히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는 당신의 내면이 아니던가. 버스 차창에 이마를 대고 우울한 눈으로 바깥을 내다보는 당신의 내면이 아니던가.

저기 광화문광장의 촛불도 누군가의 내면일 것이며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자라면 그게 누구든 미래와 희망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 그 풍경은 내가 만들어 낸 것은 아니지만 내 안으로 들어와 버렸고 내면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므로 내면은 풍경의 연장이며 의미를 부여받은 풍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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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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