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매일신문]
1. 국민 6명 숨진 가해 선박 중국인 선장, 그대로 풀어주는 나라
포항 앞바다에서 발생한 선박 충돌사고로 선원 6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는데도 정작 사고를 일으킨 홍콩상선의 선장 등 중국인 3명은 벌금만 내고 중국으로 풀려났다. 수사당국은 국제협약 및 관련 국내법 때문에 신병을 더 이상 잡아둘 수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중국 눈치보기 저자세 수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포항 앞바다 공해상에서 채낚기 어선인 주영호와 충돌해 6명의 인명 피해를 낸 홍콩선적 상선 선장과 선원들이 지난달 말 출국정지 해제와 동시에 중국 등으로 떠났다. 이들이 대형사고를 내고도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수사당국이 형법(과실치사)이 아니라 해양환경관리법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선박 충돌 사고로 한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기름 오염을 유발시킨 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결국 중국인 3명은 구속을 면했고 3천만원씩 총 1억2천만원의 벌금만 냄으로써 출국금지에서 풀려났다. 반면, 주영호의 선장 박모 씨는 구속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포항 앞바다에서 대형 인명 사고가 발생했는데 발생 지점이 공해상이라는 이유로 외국인 가해자가 풀려나고 내국인이 구속된 것은 납득하기 어렵고 국민 정서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더욱이 우리 수사당국이 요청한 ‘형사 관할권 주장 여부’에 대해 중국 측이 회신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상황에서 답변도 듣지 않은 채 출국금지를 풀어준 것은 절차상으로 문제 소지가 있다. 해경 관계자 전언에 의하면 그 와중에 우리 외교부 측은 “빨리 풀어주라”고 수사당국에 전화했다고 하니 말문이 막힌다.
국제규약과 실정법 때문에 구속 수사에 무리가 있었다는 당국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 대한 우리 수사기관의 강력한 처벌 의지가 과연 있었던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중국과의 외교 마찰을 의식한 눈치보기 수사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중국인들의 불법 싹쓸이 조업과 단속 해경에 대한 폭력 행사로 서해와 동해가 무법천지가 되다시피하는 판국이다. 중국인들의 무례 못지않게 우리 국민 자존심에 더 큰 상처를 주고 국격도 떨어뜨리는 것은 당국의 소극적 자세일 수 있다.
2. 빗나간 대학 신입생 환영 행사, 창조적 파괴 아쉽다
대학 입학철을 맞아 대구경북의 대학에서 다양한 신입생 환영 행사가 열리고 있으나 희망보다 걱정이 앞서는 불미스러운 일이 잇따르고 있다. 새 출발과 각오를 다짐하며 학교 선후배 간 교류, 대화와 소통의 시간으로 도움을 주려는 행사의 당초 취지는 퇴색되고 폐해만 부각되고 있다. 신입생 환영 행사의 무용론이 나올 만하다.
대구의 한 대학에서는 신입생 환영회에서 두 시간 동안 벌을 세우고 밥을 먹게 한다거나 문을 잠그고 휴대폰까지 끄도록 했다고 한다. 다른 대학에서는 신입생들에게 술자리 참석과 장기자랑 강요를 비롯한 부당한 일들이 일어나 비판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면식이라는 그럴듯한 명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일도 있었다. 포스텍에서는 지난달 27일 MT 행사에서 선배 학생이 신입 여학생 2명을 성폭행, 성추행한 사건으로 가해 학생이 구속됐다. 이에 앞서 지난달 22일 교통사고로 1명이 숨지고 44명이 부상을 입은 구미의 금오공대 신입생 설명회 행사 때는 소주와 맥주 등 7천 병이 넘는 술을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신입생에 대한 배려 실종이다. 신입생은 대학에서의 새 삶의 설계에 부푼 새내기들이다. 낯선 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이 교차하는 긴장의 순간을 맞고 각종 행사에 참석하는 셈이다. 따라서 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살뜰한 배려의 길라잡이가 필요하지 주최 측의 일방적인 주입이나 강요가 필요하지 않다. 뼈아픈 자성이 필요할 때다.
또 지나친 술의 강요다. 술이 낯선 선후배 간의 서먹함이나 어색함을 덜어줄 수 있을지라도 결코 만족스럽지 않음은 수많은 선례들이 증명한다. 그럼에도 금오공대 사례처럼 대학 술 문화는 여전히 논란이다. 옛 사람의 구태를 젊은 세대들이 닮는 꼴이다. 행사를 마련하는 선배 세대의 낡은 틀을 깨는 창조적인 파괴가 절실한 까닭이다. 학교 당국의 방임은 더욱 문제이다. 책임이 담보되지 않는 이런 행사는 자제시키거나 세심한 관심이 마땅하다. 대학의 대학다움, 대학생의 대학생다움을 위해 말이다.
[서울신문]
3. 급박한 기업활동 위한 한시적 출금 해제 검토를
재계 총수의 출국 금지가 장기화하면 기업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점은 예견됐던 바다. 지난 연말 박영수 특검팀이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사건과 관련해 삼성과 롯데, SK 총수의 출국을 금지한 것은 진실 규명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그럼에도 총수의 발이 국내에 묶여 긴급한 대외 현안을 챙기지 못하는 현실은 안타깝다.
최태원 SK 회장은 세계 반도체 업계의 판도를 바꿀 일본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낸드플래시 시장 1위는 삼성, 2위는 도시바다. 세계 5위인 SK하이닉스가 인수하면 한국 반도체 산업은 D램에 이어 낸드플래시까지 장악할 수 있다. 도시바 반도체는 인수 가격이 25조원에 달해 단독 인수가 어렵다.
그러나 해외 파트너들이 초대형 투자 결정권은 최 회장이 가졌다고 믿는 까닭에 공동전선 구축이 여의치 않다. 신동빈 회장도 롯데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의 직격탄을 맞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중국 롯데마트의 절반인 50여곳이 영업정지를 당했지만 현지를 찾아 사태를 수습할 길이 없다고 한다.
하루라도 빨리 조사를 끝내 원활한 기업활동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모르고, 그 결과를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총수들의 출국 금지를 무조건 해제하라고 요구할 수만은 없다. 형평성 측면에서도 시비의 소지가 있다. 다만 급박한 경영 상황에 직면한 총수들에게는 최대한 융통성을 발휘해 한시적으로나 풀어 주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
법률상으로도 출국 금지를 일시 해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당사자가 수사기관에 출국금지 해제를 요청하고, 수사기관이 그 사유가 타당한 것으로 인정하면 법무부 장관에게 해제를 요청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수사기관이 귀국한 당사자에게 다시 출국금지를 하면 된다.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없지만 한국 경제는 미국 금리 인상과 중국의 사드 보복, 고용 없는 저성장이란 삼중고를 겪고 있다. 검찰은 대기업이 사업 목적상 총수의 해외 방문이 꼭 필요하다는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면 일시적으로라도 출국 금지를 해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길 바란다. 수사에 차질을 빚지 않는 범위에서 총수들이 경제 회생에 일조하도록 하는 것은 실보다 득이 클 것이다.
4. 탄핵당한 대통령의 ‘사저 정치’ 바람직하지 않다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축으로 한 정치적 흐름이 가시화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간 직후 박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한 자유한국당 친박(친박근혜)계 핵심 의원들이 이른바 친박 보좌 그룹을 만든 것이다. 총괄·정무·법률·공보·수행 등 구체적인 역할까지 분담하고 있다.
해당 의원들은 인간적 정리에 따른 자발적인 봉사라고 하지만 탄핵을 반대하지 않았다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현실과 동떨어진 시대착오적인 발상인 까닭에서다. 친박계 의원들은 박 전 대통령이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며 사실상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에 불복하는 메시지를 내놓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보좌 그룹을 구성한 데다 “역사적 판결은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며 탄핵 자체를 깡그리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으로 파면된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불러온 당사자다. 그럼에도 국민의 세비를 받은 의원들의 보좌 그룹을 묵인한다면 정치 생명의 연장을 위해 패거리 정치의 작태를 복원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사저 정치’의 출발이다. 헌재의 탄핵 심판 이후 국정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가능한 한 분열을 치유하며 통합으로 나가길 바라는 국민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친박계 핵심 의원들의 후안무치 역시 도를 넘었다. 탄핵과 동시에 폐족(廢族·큰 죄를 지어 벼슬할 수 없는 족속)을 선언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박 전 대통령을 내세워 정치적 입지를 지탱하고 지지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얄팍한 꼼수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90%가 탄핵에 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은 것이나 다름없다.
박 전 대통령이 한국 정치사에서 적잖은 족적을 남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라는 식의 사저 정치를 구상한다면 일찌감치 미몽에서 깨어나야 마땅하다. 소위 ‘삼성동계’는 정당 정치를 요구하는 시대의 흐름과도 전혀 맞지 않는다. 정치의 역사를 되돌리는 꼴이다.
상도동계나 동교동계는 공개적인 정치 활동을 극도로 탄압하던 군사정권 시절의 부산물로 등장했다. 비공개적인 정치 무대가 불가피했던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합법적인 절차와 공정한 심판에 의해 탄핵된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박 전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헌재 결정을 수호할 의무가 있는 것이 대통령”이라고 강조했던 과거 발언대로 헌재 결정에 승복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는 게 순리다. ‘진실’을 밝히지 못해 억울하다면 검찰의 수사에 당당하게 협조해 풀어 가야 한다. ‘보좌 그룹’을 중심으로 한 정치 세력화의 시도 자체를 포기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지지층을 겨냥한 정치적 언행을 삼가야 한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박 전 대통령 자신에 따른 혼란이 아닌 통합이다.
[조선일보]
5.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하는 사태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오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일정을 통보한다. 소환은 이르면 며칠 안이 될 것이라고 한다. 수하들이 줄줄이 구속 기소돼 재판이 진행되고 있으니 중심 당사자인 박 전 대통령의 출두는 피할 수 없는 사법적 절차이기도 하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과 특검 조사엔 응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소환에 응할 것으로 본다.
강제 수사를 해야 하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 하루빨리 나라가 정상화되기를 바라는 국민의 희망과도 배치된다. 박 전 대통령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 한 만큼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을 검찰에 나가 적극적으로 밝히는 것이 옳다.
헌재의 파면은 774억원 미르·K재단 관련이 주된 사유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이 재단 의사결정을 함께 했고 두 재단은 최의 사익 추구에 이용됐을 뿐이라고 했다. 정작 돈을 낸 기업들은 전혀 관여하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은 왜 최순실 같은 무자격자가 두 재단을 장악하게 했는지 설명한 적이 없다. 이 부분은 직권남용 여부와 직결된다. 헌재는 '삼성 뇌물 수수' 문제는 판단하지 않았으나 이 문제도 규명돼야 한다.
검찰 수사를 받은 다른 전직 대통령들의 전례에 비춰볼 때 박 전 대통령은 출두 시 포토라인에 설 가능성이 크다. 이번이 그렇게 되는 세 번째 전직 대통령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불행한 일이다. 검찰은 수사를 하더라도 예우를 갖추고 최대한 신속하게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대다수 국민은 수개월간 끌어온 탄핵 국면에 지칠 대로 지쳐 있다. 박 전 대통령 소환 조사가 이 모든 것의 종결점이 되어야 한다.
6. 대선 주자들 '私교육 고통 줄이기' 공약으로 승부를
지난해 초·중·고교생 1인당 사(私)교육비가 월평균 25만6000원인 것으로 교육부가 집계했다. 1인당 사교육비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간 24만2000원에서 23만6000원으로 줄었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 4년 동안은 계속 늘어왔다. 사회 전체 사교육비도 학령인구 감소 탓에 꾸준히 감소 추세였지만 지난해 7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서 18조1000억원이 됐다. 월 소득 700만원 이상 가구의 사교육비(한 달 44만3000원)는 소득 100만원 이하 가정(5만원)의 8.8배로 나타났다.
어느 정권이든 '사교육비 대책'을 발표해왔다. 박근혜 정부는 수능을 쉽게 출제하고, 수능 영어 과목을 절대평가로 바꾸는 걸 추진해왔다. 선행(先行) 학습 금지법도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에선 EBS-수능 연계 정책과 학원 시간 규제, 노무현 정부에선 수능 등급제 도입 등이 시행됐다. 그러나 대부분 효과가 없거나 미미했다. 잦은 교육제도 변경에 발 빠르게 대응한 사교육 업체만 돈을 벌었다. 이런 악순환이 수십 년 반복됐다.
사교육비 부담은 중산층의 재산 축적을 막고 이것이 노후 불안과 내수 위축으로 이어져 결국 저출산이란 악순환을 낳는다. 아이들을 암기식 문제 풀이 기계로 만들어 학문과 산업 발전, 국가 경쟁력 전체에 막대한 해악까지 끼치고 있다.
이번 대선에 나온 후보들도 다양한 사교육 대책을 내놓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국공립대 공동 학위제, 안철수 후보는 교육부 폐지와 학제 개편, 남경필 후보는 사교육 전면 폐지 국민투표, 유승민 후보는 자사고·외고 폐지를 공약했다. 하지만 '이거면 되겠다' 싶은 정책이 있는 것 같지 않다.
사교육 과열은 몇 가지 소소한 정책으로 가라앉히기 힘든 문제다. 학벌 사회 풍토와 기업들 인재 충원 방식을 동시에 바꿔야만 없어진다. 사교육 문제 해결의 뚜렷한 비전을 제시해주는 후보가 있다면 지지해주겠다는 유권자들이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이번 대선은 어떤 교육정책으로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고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것인지를 놓고 후보들과 유권자들이 함께 고민하고 결단을 내리는 선거가 돼야 한다.
[중앙일보]
7. 대선일 지정 머뭇거릴 이유가 뭔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어제 주재한 국무회의엔 대선일 지정 안건이 상정되지 않았다. 당연히 19대 대통령 선거일은 아직 미확정 상태다. 선거 관련 부처에선 ‘5월 9일 대선’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인데도 정부는 뚜렷한 이유조차 밝히지 않았다.
정치권에선 “황교안 권한대행이 대선 출마 여부를 확정하지 못해 대선일 지정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선거일 공고 후 출마 입장을 밝히면 심판이 선수로 뛴다는 공정성 시비가 커질 수 있어서란 것이다. 총리실 측은 “관계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대선일 지정을 위한 법정시한(3월 20일)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있긴 하다. 하지만 결정을 미룰 타당한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선거일 확정 지연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닷새나 지났다. 대선까지 남은 최대 일수는 55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우리 정치권은 여전히 탄핵 후유증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불확실한 대선 일정이 박 전 대통령과 친박계의 불복 움직임을 강화시키고 대선을 미래보다 과거에 더욱 얽매이게 하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오늘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날짜를 통보할 예정이어서 향후 정국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살얼음판이다. 정부는 무엇보다 정치적 불확실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대선일 확정은 그 출발선이다.
특히 황교안 권한대행은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입장을 하루속히 밝혀야 한다. 정부가 대선일을 확정하지 못하는 게 그의 대선 출마 여부 때문이란 말이 나도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애매한 태도를 보이며 정국 불확실성을 키우는 건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출마든 불출마든 분명한 입장을 당장 국민 앞에 밝히는 게 도리다. 만약 출마하는 쪽이라면 권한대행 사퇴가 당연하다.
가뜩이나 아슬아슬한 선거판에 선거법 위반 논란까지 불쏘시개가 될 경우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대혼란에 빠져들 수도 있다.
[매일경제]
8. 대기업 총수 출국금지 해제해야 마땅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으로 탄핵정국이 일단락됐지만 경제 불확실성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미국 금리 인상 등 널려 있는 대외 악재를 넘기 위해 기업들마다 악전고투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에게 내려진 출국금지 조치는 석 달째 해제되지 않고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90일 수사가 지난달 28일 종료됐는데도 해외 출장이 잦은 이들의 발을 묶어 두는 것은 과도하다.
롯데그룹은 사드 용지 제공 이후 중국 사업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롯데마트 영업 정지, 롯데제과 초콜릿공장 중단, 불매운동 확산 등 중국으로부터 융단폭격식 보복을 받고 있지만 신 회장이 출국금지 족쇄에 묶여 있다 보니 중국행 비행기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해외면세점 인수·합병(M&A) 추진 역시 동력이 떨어진 상태다. 신 회장은 한국과 일본을 자주 오가는 등 통상 1년의 3분의 1을 해외에서 보냈는데 글로벌 경영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셈이다.
SK도 총수의 출국금지가 해외 경영과 기업 M&A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25조원 규모 도시바 반도체 사업 인수에 나서고, SK이노베이션이 2조원 규모의 중국 석유회사 상하이세코 지분(50%)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총수의 행동반경이 제한되니 협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SK플래닛의 중국 투자 유치 무산 위기,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 보류 등 현안이 많아 최 회장의 중국 현장 방문이 절실하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오는 23~26일 중국 하이난성에서 열리는 보아오 포럼 참석도 불가능하다.
도주 위험이 없는 대기업 총수들의 출국금지 장기화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도 박 전 대통령 탄핵 결정문에서 '기업의 재산권과 기업경영의 자유'를 강조하지 않았던가. 출국금지 해제야말로 자유로운 경영을 보장하는 것이다. 일자리 부족, 투자 부진의 골이 깊어 기업 총수들을 뛸 수 있게 해줘도 경제가 살아날까 말까다. 검찰은 서둘러 출국금지를 해제해 기업 글로벌 경영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세계일보]
9. 박 전 대통령 오늘 소환통보… 검찰, 진실규명 최선 다하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다고 한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어제 “박 전 대통령 소환 날짜를 내일(15일) 정해서 통보하겠다”고 밝혔다. 조사 때 신분에 대해선 “피의자로 입건돼 있으니 신분은 피의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르면 이번 주 검찰 포토라인에 피의자 신분으로 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기 위해 대검찰청에 나와 포토라인에 섰다. 박 전 대통령이 출두하면 노태우·전두환·노 전 대통령에 이어 네 번째로 검찰 수사를 받는 전직 대통령이 된다.
검찰은 헌재 결정 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착수 시점을 놓고 고심해 왔다. 두 달 뒤 치러질 조기 대선에 대한 정치적 파급력이 부담이었으나 신속한 수사를 요구하는 여론을 의식해 속전속결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만큼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대선 국면이 본격화하기 전 수사를 끝내는 게 바람직하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조사 때 전직 대통령 예우 등을 감안해 서면질의서를 보내고 답변서를 받은 뒤 소환 일자를 통보했다. 이번에 곧바로 소환 일자를 통보하는 것은 신속 수사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본격화한 지난해 10월 이후 검찰과 특검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적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사를 계속 회피해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수사의 편파성, ‘일정 유출’ 의혹 등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했다.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도 무산시켰다. 당시엔 박 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이라 그럴 수 있었으나 이젠 불소추 특권이 사라진 자연인 신분인 만큼 출석을 피하기 어렵다. 박 전 대통령은 명멱백백하게 진실이 규명될 수 있도록 검찰의 조사에 적극 응해야 한다.
국민들은 국정농단사건에 최씨가 어느 정도 개입했고 이 과정에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궁금해 한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의 모금과 운영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철저히 밝혀야 한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실체 규명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역사 앞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결과물을 내놔야 할 것이다. 어떤 정치적 의도나 외압에 흔들린다면 검찰은 설 자리를 잃고 만다. 사즉생의 각오로 나서길 바란다.
[이데일리]
10. 협정 발효 5년을 맞는 한·미 FTA의 교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오늘로 5년이 지났다. 2012년 3월 15일 협정 발효 이래 양국 간 교역이 증가세를 유지한 것은 물론 상대국 내 시장 점유율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의 대미 교역은 수출이 연평균 3.4% 늘어난 데 힘입어 전체적으로는 1.7%의 증가세를 유지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시작된 한·미 FTA가 양국 교역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거뒀다는 얘기다.
이러한 현상은 이 기간 중 우리의 전체 교역이 오히려 연평균 3.5%나 줄어든 것과도 비교된다. 대미 수입도 연평균 0.6% 감소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선방한 셈이다. 경제 성장이 내수보다는 수출에 달려 있는 우리 여건에서 한·미 FTA가 중요한 버팀목 구실을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자동차와 반도체 분야가 대미 수출 증가를 이끌어 왔다.
문제는 한·미 FTA의 골격을 뜯어고치겠다는 미국의 움직임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대한(對韓) 무역수지가 적자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자동차·쇠고기·LPG 등 관세인하 품목을 중심으로 수입이 늘어나고 있는 데다 서비스 분야에서는 미국이 월등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재협상을 요구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는 쉽게 꺾일 것 같지가 않다.
협정 내용을 일부 손보자는 미국 측 주장에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미 FTA의 원래 취지가 교역을 통해 서로 윈윈하자는 데 있으므로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어느 정도는 양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삼성·LG·현대차 등이 떠밀리다시피 현지에 대규모 공장을 새로 세우겠다는 방침을 발표해야 할 만큼 미국의 압력이 강화되는 추세다. 적극적인 협상으로 우리의 이익을 최대한 지켜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한·미 FTA를 바라보던 우리 사회 내부의 부정적인 눈길이다. 협정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당장 국가 경제가 결딴이라도 나는 듯이 몰아붙인 정치인들이 적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 측이 협상이 공정하지 않다며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주장이 틀렸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섣부른 정치 선동으로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5년에 이른 한·미 FTA의 교훈이다.
주요신문칼럼
1. [경향신문][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 사람을 이어주는 책방 주인
할아버지께서 하시던 자전거포 옆에 책방이 들어선 건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다. 과자나 신발처럼 책을 파는 가게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약방, 미곡상회, 신발가게, 비료가게, 철물점, 솜틀집, 기름집이 늘어서 있는 장터 초입에 들어선 책방의 주인은 젊은 부부였다. 둘은 번갈아가며 책방을 지켰고, 나는 가게가 한가하다 싶으면 슬그머니 들어가 책 구경을 했다.
소년·소녀의 영원한 세계의 명작 문고 <부활>은 내가 가장 좋아한 책이었다. 나는 주인아주머니가 허락해준 만화책을 보는 틈틈이 <부활>을 슬쩍슬쩍 읽었는데, 그 책을 다 읽기 전에 책방은 문을 닫아버렸다.
울진 읍내에는 내가 어릴 적 드나들었던 책방과 같은 작은 책방이 있다. 책방 벽은 화사한 페인트칠이 되어 있고, 커피 냄새가 은은하게 퍼진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빼곡하게 꽂힌 책 제목을 목이 아프게 올려다보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아마도 책방에 스스럼없이 드나드는 아이들 때문인지 모른다.
학원 가방을 멘 초등학생이 혼자 들어와 여기저기 둘러본 뒤 휙 나가고, 야간 자율학습을 빠졌다는 고등학생은 소설책을 꺼내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책방 주인은 아이들과 친숙하게 눈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는다. 그는 아이들에게 책을 외상으로 내주기도 한다. 외상 장부가 있는 책방이라니….
사람들은 점점 책을 읽지 않고, 동네 책방은 거의 사라져 곧 유물로 남을지 모르는 세상에서 20년을 용케 버티고 있는 책방 주인은 느긋하기만 하다. 아마도 그에게 책은 파는 게 아니라 나누는 것인지 모른다. 그 책방에서는 수시로 작가 초청 강연과 토론회 자리가 열린다. 그는 책으로 사람과 사람을 잇고 있는 것이다.
“여기가 우리 읍내 사랑방이지요. 그래서 문을 닫을 수가 없어요.”
그는 책이 잘 팔리는 세상을 바라지 않는다. 한 달에 책 한 권 사는 일쯤은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는 세상, 퇴근하고 나면 책 읽을 여유가 있고, 사람들과 마주 앉아 책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마음 넉넉한 세상을 꿈꾼다.
하지만 봄이 온다고 해도 삶이 바뀌기는 쉽지 않을 터, 나는 그저 그 작은 책방이 오래오래 잘 버텨내길 바랄 뿐이다.
2. [매일신문][매일춘추] 일회용 시대
일회용 컵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일회용 티백 하나를 까서 넣고, 서너 번 휘휘 흔들고는 쓰레기통에 툭 던진다. 서류를 뒤적이며 전화 응대를 한다. 전화를 받으며 메모를 하고, 자판을 두들긴다. 정신이 없다.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 바닥을 드러낸 종이컵. 똑같은 방법으로 다시 한 잔을 준비한다.
책상 위에 일회용 컵 서너 개가 널브러져 있다. 손바닥으로 아가리를 움켜쥔다. 탁탁탁, 잽싸게 컵에 컵을 포개어 쓰레기통에 툭 던진다. 톡톡, 물티슈 두어 장을 뽑아 컵이 사라진 책상을 닦는다. 오늘 하루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버린 일회용품들이 쓰레기통에 가득하다. 누구는 물 한 모금을, 누구는 한 끼 식사를 위해 거리낌 없이 일회용품을 사용했을 것이다. 편하고, 위생적이고, 값도 싸서 쉽게 다가오던 것들. 마음만 먹으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 수도 있겠다.
방문객에게 차 한 잔을 건넸던 적이 있다. 일회용 컵에 담긴 일회성 차 한 잔이었다. 얼마 후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그날의 방문객이었다. 낯선 곳을 여행하며 몹시 갈증을 느끼던 차에 나를 만난 것이었다. 내가 무심히 건넨 차 한 잔에 목을 축이고, 무심히 해주었던 말에 여행이 더 행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른 봄, 두메산골에서 그가 직접 따고 말려 수차례 덖어 만든 매화차라 했다. 그의 매화는 다기 안에서 서서히 피어났다. 나는 그를 까맣게 잊었지만 나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는 그에게 미안하고 감사했다.
세상이 온통 일회용으로 변해간다. 일회성 직업이 생겨나고, 잠깐 부리고 마는 일회용 계약 아래 일회성 사람들이 존재한다. 기억하지 않고 잊기도 쉬워졌다. 쉽게 쓰고 버리는 것과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뭐가 다르랴. 친구도 연인도 심지어 부모와 자식 간에도 쉽게 연을 끊는 시대가 되었다.
사랑도 우정도 단칼에 끊어지는 세상이 온 건가. 오래 기억될 친구, 너 아니면 못 산다던 애틋한 사랑은 어디로 갔나. 그 속에 존재하던 수많은 약속과 언약, 죽어서도 지킬 서약은 모두 사라진 걸까. 가장 존엄하다는 인간도 일회용으로 전락하고 있으니 얼마나 씁쓸한 세상인가.
일회용품들을 보라. 비록 일회용으로 만들어졌을 뿐 두 번, 세 번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한 번 사용하고 쓰레기통으로 내쳐지는 일회용품들 속에 내가 무심코 흘려보냈을 수많은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닌지. 또한, 나의 씁쓸한 자화상은 아닌지. 뒤늦은 후회 속에 수고하고 정성을 다하는 모습으로 오래오래 기억되는 사람이기를 그려본다.
버리려던 컵에 다시 물을 붓는다. 조금 불편하면 어떠랴. 단 한 번으로 잊히는 그런 인연이 아니라, 그대 오래오래 내 곁에 남아 있으라.
3. [서울신문][이호준의 시간여행] 전당포에 맡겨 놓은 눈물
작은 도시를 지나는 중이었다. 모퉁이 건물 2층에 붙은 ‘전당포’라는 간판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아직도 저런 곳이 남아 있구나…. 왠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전당포야말로 어렵던 시절의 상징이자 가난한 이들의 눈물이 배어 있는 곳 아니던가.
전당포(典當?)는 남의 물건을 맡아 두고 돈을 빌려주는 곳이다. 대신 기한 내 찾아가지 않으면 처분해서 이익을 얻는다. 전당포를 기쁜 일과 함께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보통은 지긋지긋한 가난과 비정한 쇠창살, 그리고 인색한 이미지의 주인이 함께 떠오르기 마련이다.
전당포 단단한 쇠창살에는 애달픈 사연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죽자사자 공부했지만 계속 낙방하고 더이상 버틸 수 없어 법전을 들고 찾아간 고시생, 아버지의 유일한 유물인 손목시계를 품고 문 앞을 뱅뱅 돌던 청년, 아내의 병원비 때문에 단벌 양복을 맡겨야 했던 어느 가장…. 아무리 애써도 하루를 살아 내는 것조차 숨 가빴던 이들이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곳이 전당포였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절박했던 건 아니었다. 돈이 급한 사람들이 찾던 곳은 분명하지만, 그리 가난하지 않은 대학생들도 단골 고객이었다. 술값이나 용돈이 떨어지면 시계나 미니카세트, 전자계산기, 심지어 교과서까지 들고 전당포를 찾는 청년들도 꽤 많았다. 시골 출신 학생들은 물건을 맡겼다가 집에서 용돈을 보내 주면 다시 찾으러 가고는 했다. 물론 제때 찾지 못해서 새 주인의 품으로 넘어간 물건들도 많았다.
전당포의 전성기는 1970~80년대였다. 70년대는 양복·구두 같은 것들이, 80년대에는 컬러TV 같은 가전제품이 단골 품목이었다. 잘나가던 전당포를 밀어낸 건 신용카드였다. 1990년대 들어 신용카드 보급이 확산되면서 전당포를 찾는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비교적 쉽게 대출받을 수 있는 금융 상품들이 쏟아지면서 90년대 후반 이후에는 하나둘 문을 닫더니, 결국 카지노 촌에서나 연명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쉽사리 만나기 어렵던 전당포가 곳곳에서 부활하고 있다고 한다. 당장 포털 검색창에 ‘전당포’라고 치면 수없이 많은 이름이 쏟아진다. 불황이 길어지면서 전당포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아르바이트 자리가 부족한 방학 중에는 정보기술(IT) 기기를 맡기고 소액 대출을 받는 ‘IT전당포’가 인기라고 한다. 대학생들은 스마트폰과 노트북컴퓨터, 태블릿PC 등을 맡기고 20만∼40만원씩 대출받는다.
이와는 다른 개념의 전당포도 많다. 청담동, 압구정동 등에는 이른바 ‘명품전당포’들이 성업 중이다. 이곳에서는 주로 고가의 물건들이 오간다. 노트북컴퓨터나 디지털카메라는 그나마 고전에 속한다. 주요 품목은 루이비통이나 샤넬 같은 상표를 단 가방, 고가의 양복, 명품 시계들이다. 고급 골프 세트도 나온다고 한다.
물론 쇠창살 안으로 쭈뼛쭈뼛 시계나 반지를 디밀던 전당포는 아니다. 쇠창살은 아예 없다. 입학 기념으로 받은 시계와 용돈을 바꾸던 대학생은 물론 아이를 업은 채 눈물을 삼키며 결혼반지를 맡기던 새댁도 없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었다. 새삼 그 옛날 ‘눈물의 전당포‘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허덕이며 걷던 시절의 고통이 가슴에 새겨져 시간으로도 지우지 못하는 이들은 여전히 전당포라는 이름이 바늘 끝처럼 아플 것이다.
4. [서울신문][씨줄날줄] 칼빈슨호와 일석이조
미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CarlVinson·CVN 70)이 오늘 부산항에 입항한다. 2001년 제작된 존 무어 감독의 ‘에너미 라인스’를 본 사람이라면 이 전쟁 영화에 등장하는 항공모함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주인공 오언 윌슨이 보스니아 상공 촬영의 임무를 안고 전투기 FA18 슈퍼호닛을 몰고 이륙하는 곳이 바로 항모 칼빈슨 선상이었다.
9·11 테러를 주도한 테러 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과도 인연이 있다. 미 해군의 특수부대 네이비실은 파키스탄에 잠복해 있던 빈 라덴을 찾아내 살해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시체를 인수할 국가나 개인을 찾지 못하자 갑판에서 장례 의식을 치르고 수장한 곳이 칼빈슨이었다.
칼빈슨은 1975년 건조돼 1982년 취역했으니 퇴역을 앞둔 42살의 노병이다. 길이 333m, 높이 76.8m, 배수량 10만t으로 갑판이 축구장 3배 크기이며 7000명의 승조원이 생활한다. 폭격기, 조기 경보기, 대잠수함 헬리콥터 등 함재기 90대에 장거리 순항미사일도 탑재하고 있다. 호위하는 5~6척의 이지스 군함, 1~2척의 핵 잠수함 공격력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떠다니는 요새이자 군사기지다.
2차 세계대전 때 야마토 등 일본의 항모에 대항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미 항모다. 지금은 10척의 항모가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가상 적국 러시아 2척, 중국 1척과 비교할 수 없는 세계 최고의 군사강국 미국의 상징이다.
미국의 항공모함이 한국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된 1996년 2월 군산 앞바다에 들어온 미 7함대 소속 인디펜던스호(1998년 퇴역)에 탑승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데이브 플라티 함장(대령)은 이륙이 20초에 1대꼴로 이뤄져 76대의 함재기가 26분이면 공격에 나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플라티 함장의 말대로라면 칼빈슨호의 함재기 90대는 하루에 7500차례 출격이 가능하다. 24시간 안에 세계 어디든 주요 군사기지를 초토화할 수 있는 가공할 전력인데, 북한이 항모만 떴다 하면 신경질적이 되는 것이 이해가 된다.
일본 요코스카항에 있는 로널드 레이건호를 놔두고 미 샌디에이고가 모항인 칼빈슨이 한국에 온 것은 이례적이다. 세계 최강의 특수부대 네이비실을 태우고 참수훈련에도 참가한다고 하니 김정은의 오금이 저릴 법도 하겠다.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수행하고 온 칼빈슨의 부산 입항은 중국도 겨냥하는 미국의 일석이조 전략이 엿보인다.
칼빈슨호는 페이스북에도 계정을 가지고 있는데, 14일 현재 14만 1278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13일 한·미 훈련 격려차 승선한 이순진 합참의장과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의 사진을 올렸는데 홍보에도 기민한 칼빈슨이다.
5. [국민일보][살며 사랑하며] 퍼스널컬러
‘오렌지색 립스틱이 더 어울릴까, 핑크색 립스틱이 더 어울릴까?’ ‘실버가 어울릴까, 골드가 어울릴까?’ 그건 ‘앞머리를 자르는 게 나을까, 기르는 게 나을까’와 더불어 어떤 선택을 해도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을 보이게 되는, 그런 질문들이었다. 그러던 참에 퍼스널컬러 진단이라는 것을 받게 됐다. ‘퍼스널’ 같은 단어가 붙으면 내 지갑은 경계심이 좀 약해지곤 했는데, 게다가 색채 진단이라니 호기심이 솟았다. 비슷한 호기심을 갖고 있던 소설가 Y가 합류했다.
화장을 지운 두 명의 여자가 흰 벽 앞에 앉아 있고, 그 민낯 위아래로 다양한 색의 천 조각이 오가기를 한참. 내가 깊고 진한 컬러가 어울리는 가을-웜(warm)-딥(deep) 톤이라면 Y는 하늘하늘하고 가벼운 컬러가 어울리는 여름-쿨(cool)-라이트(light) 톤이었다. 핑크를 좋아하던 나는 오렌지가 더 어울린다는 결과를, 오렌지를 좋아하던 Y는 핑크가 더 어울린다는 결과를 받았다. 가방 속 립 제품을 서로 교환해야 할 판이었다. 각자에게 어울리는 컬러표도 받았는데, 확실히 나는 가을에, Y는 여름에 있었다.
재미있는 건 그 컬러표가 생각보다 유연해서 어느 유형이라도 아주 못 가질 컬러는 없다는 거였다. 핑크에도 무수히 많은 핑크가, 오렌지에도 무수히 많은 오렌지가 있다. 다만 명도와 채도, 톤의 차이가 있을 뿐. 그래서 모든 유형의 컬러를 쭉 늘어놓고 보면 사계절과 간절기까지 포함한 한 세계로 연결되는 걸 느낄 수 있다.
혼자 뚝 떨어진 컬러는 없는 것이고, 모든 컬러는 계절을 타며 조금씩 익어간다. 어찌 보면 퍼스널컬러는 누군가의 선택을 제한하려는 게 아니라 경계와 경계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더 세심하게 보도록 돕는 장치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티타임을 하러 가면 Y가 이렇게 말한다. “가을 딥 웜 톤의 케이크로 골라봤어요.” 또는 “오늘은 여름 쿨 라이트 톤 케이크를 먹을까요?” 케이크뿐이랴. 간판과 난간과 보도블록까지 미묘한 색감을 읽다보면 눈이 심심할 틈이 없다.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매일신문]
1. 국민 6명 숨진 가해 선박 중국인 선장, 그대로 풀어주는 나라
포항 앞바다에서 발생한 선박 충돌사고로 선원 6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는데도 정작 사고를 일으킨 홍콩상선의 선장 등 중국인 3명은 벌금만 내고 중국으로 풀려났다. 수사당국은 국제협약 및 관련 국내법 때문에 신병을 더 이상 잡아둘 수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중국 눈치보기 저자세 수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포항 앞바다 공해상에서 채낚기 어선인 주영호와 충돌해 6명의 인명 피해를 낸 홍콩선적 상선 선장과 선원들이 지난달 말 출국정지 해제와 동시에 중국 등으로 떠났다. 이들이 대형사고를 내고도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수사당국이 형법(과실치사)이 아니라 해양환경관리법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선박 충돌 사고로 한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기름 오염을 유발시킨 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결국 중국인 3명은 구속을 면했고 3천만원씩 총 1억2천만원의 벌금만 냄으로써 출국금지에서 풀려났다. 반면, 주영호의 선장 박모 씨는 구속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포항 앞바다에서 대형 인명 사고가 발생했는데 발생 지점이 공해상이라는 이유로 외국인 가해자가 풀려나고 내국인이 구속된 것은 납득하기 어렵고 국민 정서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더욱이 우리 수사당국이 요청한 ‘형사 관할권 주장 여부’에 대해 중국 측이 회신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상황에서 답변도 듣지 않은 채 출국금지를 풀어준 것은 절차상으로 문제 소지가 있다. 해경 관계자 전언에 의하면 그 와중에 우리 외교부 측은 “빨리 풀어주라”고 수사당국에 전화했다고 하니 말문이 막힌다.
국제규약과 실정법 때문에 구속 수사에 무리가 있었다는 당국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 대한 우리 수사기관의 강력한 처벌 의지가 과연 있었던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중국과의 외교 마찰을 의식한 눈치보기 수사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중국인들의 불법 싹쓸이 조업과 단속 해경에 대한 폭력 행사로 서해와 동해가 무법천지가 되다시피하는 판국이다. 중국인들의 무례 못지않게 우리 국민 자존심에 더 큰 상처를 주고 국격도 떨어뜨리는 것은 당국의 소극적 자세일 수 있다.
2. 빗나간 대학 신입생 환영 행사, 창조적 파괴 아쉽다
대학 입학철을 맞아 대구경북의 대학에서 다양한 신입생 환영 행사가 열리고 있으나 희망보다 걱정이 앞서는 불미스러운 일이 잇따르고 있다. 새 출발과 각오를 다짐하며 학교 선후배 간 교류, 대화와 소통의 시간으로 도움을 주려는 행사의 당초 취지는 퇴색되고 폐해만 부각되고 있다. 신입생 환영 행사의 무용론이 나올 만하다.
대구의 한 대학에서는 신입생 환영회에서 두 시간 동안 벌을 세우고 밥을 먹게 한다거나 문을 잠그고 휴대폰까지 끄도록 했다고 한다. 다른 대학에서는 신입생들에게 술자리 참석과 장기자랑 강요를 비롯한 부당한 일들이 일어나 비판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면식이라는 그럴듯한 명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일도 있었다. 포스텍에서는 지난달 27일 MT 행사에서 선배 학생이 신입 여학생 2명을 성폭행, 성추행한 사건으로 가해 학생이 구속됐다. 이에 앞서 지난달 22일 교통사고로 1명이 숨지고 44명이 부상을 입은 구미의 금오공대 신입생 설명회 행사 때는 소주와 맥주 등 7천 병이 넘는 술을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신입생에 대한 배려 실종이다. 신입생은 대학에서의 새 삶의 설계에 부푼 새내기들이다. 낯선 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이 교차하는 긴장의 순간을 맞고 각종 행사에 참석하는 셈이다. 따라서 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살뜰한 배려의 길라잡이가 필요하지 주최 측의 일방적인 주입이나 강요가 필요하지 않다. 뼈아픈 자성이 필요할 때다.
또 지나친 술의 강요다. 술이 낯선 선후배 간의 서먹함이나 어색함을 덜어줄 수 있을지라도 결코 만족스럽지 않음은 수많은 선례들이 증명한다. 그럼에도 금오공대 사례처럼 대학 술 문화는 여전히 논란이다. 옛 사람의 구태를 젊은 세대들이 닮는 꼴이다. 행사를 마련하는 선배 세대의 낡은 틀을 깨는 창조적인 파괴가 절실한 까닭이다. 학교 당국의 방임은 더욱 문제이다. 책임이 담보되지 않는 이런 행사는 자제시키거나 세심한 관심이 마땅하다. 대학의 대학다움, 대학생의 대학생다움을 위해 말이다.
[서울신문]
3. 급박한 기업활동 위한 한시적 출금 해제 검토를
재계 총수의 출국 금지가 장기화하면 기업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점은 예견됐던 바다. 지난 연말 박영수 특검팀이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사건과 관련해 삼성과 롯데, SK 총수의 출국을 금지한 것은 진실 규명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그럼에도 총수의 발이 국내에 묶여 긴급한 대외 현안을 챙기지 못하는 현실은 안타깝다.
최태원 SK 회장은 세계 반도체 업계의 판도를 바꿀 일본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낸드플래시 시장 1위는 삼성, 2위는 도시바다. 세계 5위인 SK하이닉스가 인수하면 한국 반도체 산업은 D램에 이어 낸드플래시까지 장악할 수 있다. 도시바 반도체는 인수 가격이 25조원에 달해 단독 인수가 어렵다.
그러나 해외 파트너들이 초대형 투자 결정권은 최 회장이 가졌다고 믿는 까닭에 공동전선 구축이 여의치 않다. 신동빈 회장도 롯데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의 직격탄을 맞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중국 롯데마트의 절반인 50여곳이 영업정지를 당했지만 현지를 찾아 사태를 수습할 길이 없다고 한다.
하루라도 빨리 조사를 끝내 원활한 기업활동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모르고, 그 결과를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총수들의 출국 금지를 무조건 해제하라고 요구할 수만은 없다. 형평성 측면에서도 시비의 소지가 있다. 다만 급박한 경영 상황에 직면한 총수들에게는 최대한 융통성을 발휘해 한시적으로나 풀어 주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
법률상으로도 출국 금지를 일시 해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당사자가 수사기관에 출국금지 해제를 요청하고, 수사기관이 그 사유가 타당한 것으로 인정하면 법무부 장관에게 해제를 요청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수사기관이 귀국한 당사자에게 다시 출국금지를 하면 된다.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없지만 한국 경제는 미국 금리 인상과 중국의 사드 보복, 고용 없는 저성장이란 삼중고를 겪고 있다. 검찰은 대기업이 사업 목적상 총수의 해외 방문이 꼭 필요하다는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면 일시적으로라도 출국 금지를 해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길 바란다. 수사에 차질을 빚지 않는 범위에서 총수들이 경제 회생에 일조하도록 하는 것은 실보다 득이 클 것이다.
4. 탄핵당한 대통령의 ‘사저 정치’ 바람직하지 않다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축으로 한 정치적 흐름이 가시화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간 직후 박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한 자유한국당 친박(친박근혜)계 핵심 의원들이 이른바 친박 보좌 그룹을 만든 것이다. 총괄·정무·법률·공보·수행 등 구체적인 역할까지 분담하고 있다.
해당 의원들은 인간적 정리에 따른 자발적인 봉사라고 하지만 탄핵을 반대하지 않았다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현실과 동떨어진 시대착오적인 발상인 까닭에서다. 친박계 의원들은 박 전 대통령이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며 사실상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에 불복하는 메시지를 내놓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보좌 그룹을 구성한 데다 “역사적 판결은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며 탄핵 자체를 깡그리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으로 파면된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불러온 당사자다. 그럼에도 국민의 세비를 받은 의원들의 보좌 그룹을 묵인한다면 정치 생명의 연장을 위해 패거리 정치의 작태를 복원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사저 정치’의 출발이다. 헌재의 탄핵 심판 이후 국정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가능한 한 분열을 치유하며 통합으로 나가길 바라는 국민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친박계 핵심 의원들의 후안무치 역시 도를 넘었다. 탄핵과 동시에 폐족(廢族·큰 죄를 지어 벼슬할 수 없는 족속)을 선언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박 전 대통령을 내세워 정치적 입지를 지탱하고 지지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얄팍한 꼼수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90%가 탄핵에 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은 것이나 다름없다.
박 전 대통령이 한국 정치사에서 적잖은 족적을 남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라는 식의 사저 정치를 구상한다면 일찌감치 미몽에서 깨어나야 마땅하다. 소위 ‘삼성동계’는 정당 정치를 요구하는 시대의 흐름과도 전혀 맞지 않는다. 정치의 역사를 되돌리는 꼴이다.
상도동계나 동교동계는 공개적인 정치 활동을 극도로 탄압하던 군사정권 시절의 부산물로 등장했다. 비공개적인 정치 무대가 불가피했던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합법적인 절차와 공정한 심판에 의해 탄핵된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박 전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헌재 결정을 수호할 의무가 있는 것이 대통령”이라고 강조했던 과거 발언대로 헌재 결정에 승복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는 게 순리다. ‘진실’을 밝히지 못해 억울하다면 검찰의 수사에 당당하게 협조해 풀어 가야 한다. ‘보좌 그룹’을 중심으로 한 정치 세력화의 시도 자체를 포기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지지층을 겨냥한 정치적 언행을 삼가야 한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박 전 대통령 자신에 따른 혼란이 아닌 통합이다.
[조선일보]
5.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하는 사태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오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일정을 통보한다. 소환은 이르면 며칠 안이 될 것이라고 한다. 수하들이 줄줄이 구속 기소돼 재판이 진행되고 있으니 중심 당사자인 박 전 대통령의 출두는 피할 수 없는 사법적 절차이기도 하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과 특검 조사엔 응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소환에 응할 것으로 본다.
강제 수사를 해야 하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 하루빨리 나라가 정상화되기를 바라는 국민의 희망과도 배치된다. 박 전 대통령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 한 만큼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을 검찰에 나가 적극적으로 밝히는 것이 옳다.
헌재의 파면은 774억원 미르·K재단 관련이 주된 사유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이 재단 의사결정을 함께 했고 두 재단은 최의 사익 추구에 이용됐을 뿐이라고 했다. 정작 돈을 낸 기업들은 전혀 관여하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은 왜 최순실 같은 무자격자가 두 재단을 장악하게 했는지 설명한 적이 없다. 이 부분은 직권남용 여부와 직결된다. 헌재는 '삼성 뇌물 수수' 문제는 판단하지 않았으나 이 문제도 규명돼야 한다.
검찰 수사를 받은 다른 전직 대통령들의 전례에 비춰볼 때 박 전 대통령은 출두 시 포토라인에 설 가능성이 크다. 이번이 그렇게 되는 세 번째 전직 대통령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불행한 일이다. 검찰은 수사를 하더라도 예우를 갖추고 최대한 신속하게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대다수 국민은 수개월간 끌어온 탄핵 국면에 지칠 대로 지쳐 있다. 박 전 대통령 소환 조사가 이 모든 것의 종결점이 되어야 한다.
6. 대선 주자들 '私교육 고통 줄이기' 공약으로 승부를
지난해 초·중·고교생 1인당 사(私)교육비가 월평균 25만6000원인 것으로 교육부가 집계했다. 1인당 사교육비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간 24만2000원에서 23만6000원으로 줄었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 4년 동안은 계속 늘어왔다. 사회 전체 사교육비도 학령인구 감소 탓에 꾸준히 감소 추세였지만 지난해 7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서 18조1000억원이 됐다. 월 소득 700만원 이상 가구의 사교육비(한 달 44만3000원)는 소득 100만원 이하 가정(5만원)의 8.8배로 나타났다.
어느 정권이든 '사교육비 대책'을 발표해왔다. 박근혜 정부는 수능을 쉽게 출제하고, 수능 영어 과목을 절대평가로 바꾸는 걸 추진해왔다. 선행(先行) 학습 금지법도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에선 EBS-수능 연계 정책과 학원 시간 규제, 노무현 정부에선 수능 등급제 도입 등이 시행됐다. 그러나 대부분 효과가 없거나 미미했다. 잦은 교육제도 변경에 발 빠르게 대응한 사교육 업체만 돈을 벌었다. 이런 악순환이 수십 년 반복됐다.
사교육비 부담은 중산층의 재산 축적을 막고 이것이 노후 불안과 내수 위축으로 이어져 결국 저출산이란 악순환을 낳는다. 아이들을 암기식 문제 풀이 기계로 만들어 학문과 산업 발전, 국가 경쟁력 전체에 막대한 해악까지 끼치고 있다.
이번 대선에 나온 후보들도 다양한 사교육 대책을 내놓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국공립대 공동 학위제, 안철수 후보는 교육부 폐지와 학제 개편, 남경필 후보는 사교육 전면 폐지 국민투표, 유승민 후보는 자사고·외고 폐지를 공약했다. 하지만 '이거면 되겠다' 싶은 정책이 있는 것 같지 않다.
사교육 과열은 몇 가지 소소한 정책으로 가라앉히기 힘든 문제다. 학벌 사회 풍토와 기업들 인재 충원 방식을 동시에 바꿔야만 없어진다. 사교육 문제 해결의 뚜렷한 비전을 제시해주는 후보가 있다면 지지해주겠다는 유권자들이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이번 대선은 어떤 교육정책으로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고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것인지를 놓고 후보들과 유권자들이 함께 고민하고 결단을 내리는 선거가 돼야 한다.
[중앙일보]
7. 대선일 지정 머뭇거릴 이유가 뭔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어제 주재한 국무회의엔 대선일 지정 안건이 상정되지 않았다. 당연히 19대 대통령 선거일은 아직 미확정 상태다. 선거 관련 부처에선 ‘5월 9일 대선’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인데도 정부는 뚜렷한 이유조차 밝히지 않았다.
정치권에선 “황교안 권한대행이 대선 출마 여부를 확정하지 못해 대선일 지정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선거일 공고 후 출마 입장을 밝히면 심판이 선수로 뛴다는 공정성 시비가 커질 수 있어서란 것이다. 총리실 측은 “관계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대선일 지정을 위한 법정시한(3월 20일)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있긴 하다. 하지만 결정을 미룰 타당한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선거일 확정 지연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닷새나 지났다. 대선까지 남은 최대 일수는 55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우리 정치권은 여전히 탄핵 후유증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불확실한 대선 일정이 박 전 대통령과 친박계의 불복 움직임을 강화시키고 대선을 미래보다 과거에 더욱 얽매이게 하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오늘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날짜를 통보할 예정이어서 향후 정국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살얼음판이다. 정부는 무엇보다 정치적 불확실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대선일 확정은 그 출발선이다.
특히 황교안 권한대행은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입장을 하루속히 밝혀야 한다. 정부가 대선일을 확정하지 못하는 게 그의 대선 출마 여부 때문이란 말이 나도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애매한 태도를 보이며 정국 불확실성을 키우는 건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출마든 불출마든 분명한 입장을 당장 국민 앞에 밝히는 게 도리다. 만약 출마하는 쪽이라면 권한대행 사퇴가 당연하다.
가뜩이나 아슬아슬한 선거판에 선거법 위반 논란까지 불쏘시개가 될 경우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대혼란에 빠져들 수도 있다.
[매일경제]
8. 대기업 총수 출국금지 해제해야 마땅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으로 탄핵정국이 일단락됐지만 경제 불확실성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미국 금리 인상 등 널려 있는 대외 악재를 넘기 위해 기업들마다 악전고투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에게 내려진 출국금지 조치는 석 달째 해제되지 않고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90일 수사가 지난달 28일 종료됐는데도 해외 출장이 잦은 이들의 발을 묶어 두는 것은 과도하다.
롯데그룹은 사드 용지 제공 이후 중국 사업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롯데마트 영업 정지, 롯데제과 초콜릿공장 중단, 불매운동 확산 등 중국으로부터 융단폭격식 보복을 받고 있지만 신 회장이 출국금지 족쇄에 묶여 있다 보니 중국행 비행기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해외면세점 인수·합병(M&A) 추진 역시 동력이 떨어진 상태다. 신 회장은 한국과 일본을 자주 오가는 등 통상 1년의 3분의 1을 해외에서 보냈는데 글로벌 경영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셈이다.
SK도 총수의 출국금지가 해외 경영과 기업 M&A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25조원 규모 도시바 반도체 사업 인수에 나서고, SK이노베이션이 2조원 규모의 중국 석유회사 상하이세코 지분(50%)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총수의 행동반경이 제한되니 협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SK플래닛의 중국 투자 유치 무산 위기,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 보류 등 현안이 많아 최 회장의 중국 현장 방문이 절실하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오는 23~26일 중국 하이난성에서 열리는 보아오 포럼 참석도 불가능하다.
도주 위험이 없는 대기업 총수들의 출국금지 장기화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도 박 전 대통령 탄핵 결정문에서 '기업의 재산권과 기업경영의 자유'를 강조하지 않았던가. 출국금지 해제야말로 자유로운 경영을 보장하는 것이다. 일자리 부족, 투자 부진의 골이 깊어 기업 총수들을 뛸 수 있게 해줘도 경제가 살아날까 말까다. 검찰은 서둘러 출국금지를 해제해 기업 글로벌 경영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세계일보]
9. 박 전 대통령 오늘 소환통보… 검찰, 진실규명 최선 다하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다고 한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어제 “박 전 대통령 소환 날짜를 내일(15일) 정해서 통보하겠다”고 밝혔다. 조사 때 신분에 대해선 “피의자로 입건돼 있으니 신분은 피의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르면 이번 주 검찰 포토라인에 피의자 신분으로 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기 위해 대검찰청에 나와 포토라인에 섰다. 박 전 대통령이 출두하면 노태우·전두환·노 전 대통령에 이어 네 번째로 검찰 수사를 받는 전직 대통령이 된다.
검찰은 헌재 결정 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착수 시점을 놓고 고심해 왔다. 두 달 뒤 치러질 조기 대선에 대한 정치적 파급력이 부담이었으나 신속한 수사를 요구하는 여론을 의식해 속전속결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만큼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대선 국면이 본격화하기 전 수사를 끝내는 게 바람직하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조사 때 전직 대통령 예우 등을 감안해 서면질의서를 보내고 답변서를 받은 뒤 소환 일자를 통보했다. 이번에 곧바로 소환 일자를 통보하는 것은 신속 수사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본격화한 지난해 10월 이후 검찰과 특검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적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사를 계속 회피해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수사의 편파성, ‘일정 유출’ 의혹 등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했다.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도 무산시켰다. 당시엔 박 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이라 그럴 수 있었으나 이젠 불소추 특권이 사라진 자연인 신분인 만큼 출석을 피하기 어렵다. 박 전 대통령은 명멱백백하게 진실이 규명될 수 있도록 검찰의 조사에 적극 응해야 한다.
국민들은 국정농단사건에 최씨가 어느 정도 개입했고 이 과정에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궁금해 한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의 모금과 운영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철저히 밝혀야 한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실체 규명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역사 앞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결과물을 내놔야 할 것이다. 어떤 정치적 의도나 외압에 흔들린다면 검찰은 설 자리를 잃고 만다. 사즉생의 각오로 나서길 바란다.
[이데일리]
10. 협정 발효 5년을 맞는 한·미 FTA의 교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오늘로 5년이 지났다. 2012년 3월 15일 협정 발효 이래 양국 간 교역이 증가세를 유지한 것은 물론 상대국 내 시장 점유율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의 대미 교역은 수출이 연평균 3.4% 늘어난 데 힘입어 전체적으로는 1.7%의 증가세를 유지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시작된 한·미 FTA가 양국 교역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거뒀다는 얘기다.
이러한 현상은 이 기간 중 우리의 전체 교역이 오히려 연평균 3.5%나 줄어든 것과도 비교된다. 대미 수입도 연평균 0.6% 감소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선방한 셈이다. 경제 성장이 내수보다는 수출에 달려 있는 우리 여건에서 한·미 FTA가 중요한 버팀목 구실을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자동차와 반도체 분야가 대미 수출 증가를 이끌어 왔다.
문제는 한·미 FTA의 골격을 뜯어고치겠다는 미국의 움직임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대한(對韓) 무역수지가 적자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자동차·쇠고기·LPG 등 관세인하 품목을 중심으로 수입이 늘어나고 있는 데다 서비스 분야에서는 미국이 월등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재협상을 요구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는 쉽게 꺾일 것 같지가 않다.
협정 내용을 일부 손보자는 미국 측 주장에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미 FTA의 원래 취지가 교역을 통해 서로 윈윈하자는 데 있으므로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어느 정도는 양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삼성·LG·현대차 등이 떠밀리다시피 현지에 대규모 공장을 새로 세우겠다는 방침을 발표해야 할 만큼 미국의 압력이 강화되는 추세다. 적극적인 협상으로 우리의 이익을 최대한 지켜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한·미 FTA를 바라보던 우리 사회 내부의 부정적인 눈길이다. 협정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당장 국가 경제가 결딴이라도 나는 듯이 몰아붙인 정치인들이 적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 측이 협상이 공정하지 않다며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주장이 틀렸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섣부른 정치 선동으로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5년에 이른 한·미 FTA의 교훈이다.
주요신문칼럼
1. [경향신문][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 사람을 이어주는 책방 주인
할아버지께서 하시던 자전거포 옆에 책방이 들어선 건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다. 과자나 신발처럼 책을 파는 가게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약방, 미곡상회, 신발가게, 비료가게, 철물점, 솜틀집, 기름집이 늘어서 있는 장터 초입에 들어선 책방의 주인은 젊은 부부였다. 둘은 번갈아가며 책방을 지켰고, 나는 가게가 한가하다 싶으면 슬그머니 들어가 책 구경을 했다.
소년·소녀의 영원한 세계의 명작 문고 <부활>은 내가 가장 좋아한 책이었다. 나는 주인아주머니가 허락해준 만화책을 보는 틈틈이 <부활>을 슬쩍슬쩍 읽었는데, 그 책을 다 읽기 전에 책방은 문을 닫아버렸다.
울진 읍내에는 내가 어릴 적 드나들었던 책방과 같은 작은 책방이 있다. 책방 벽은 화사한 페인트칠이 되어 있고, 커피 냄새가 은은하게 퍼진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빼곡하게 꽂힌 책 제목을 목이 아프게 올려다보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아마도 책방에 스스럼없이 드나드는 아이들 때문인지 모른다.
학원 가방을 멘 초등학생이 혼자 들어와 여기저기 둘러본 뒤 휙 나가고, 야간 자율학습을 빠졌다는 고등학생은 소설책을 꺼내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책방 주인은 아이들과 친숙하게 눈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는다. 그는 아이들에게 책을 외상으로 내주기도 한다. 외상 장부가 있는 책방이라니….
사람들은 점점 책을 읽지 않고, 동네 책방은 거의 사라져 곧 유물로 남을지 모르는 세상에서 20년을 용케 버티고 있는 책방 주인은 느긋하기만 하다. 아마도 그에게 책은 파는 게 아니라 나누는 것인지 모른다. 그 책방에서는 수시로 작가 초청 강연과 토론회 자리가 열린다. 그는 책으로 사람과 사람을 잇고 있는 것이다.
“여기가 우리 읍내 사랑방이지요. 그래서 문을 닫을 수가 없어요.”
그는 책이 잘 팔리는 세상을 바라지 않는다. 한 달에 책 한 권 사는 일쯤은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는 세상, 퇴근하고 나면 책 읽을 여유가 있고, 사람들과 마주 앉아 책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마음 넉넉한 세상을 꿈꾼다.
하지만 봄이 온다고 해도 삶이 바뀌기는 쉽지 않을 터, 나는 그저 그 작은 책방이 오래오래 잘 버텨내길 바랄 뿐이다.
2. [매일신문][매일춘추] 일회용 시대
일회용 컵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일회용 티백 하나를 까서 넣고, 서너 번 휘휘 흔들고는 쓰레기통에 툭 던진다. 서류를 뒤적이며 전화 응대를 한다. 전화를 받으며 메모를 하고, 자판을 두들긴다. 정신이 없다.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 바닥을 드러낸 종이컵. 똑같은 방법으로 다시 한 잔을 준비한다.
책상 위에 일회용 컵 서너 개가 널브러져 있다. 손바닥으로 아가리를 움켜쥔다. 탁탁탁, 잽싸게 컵에 컵을 포개어 쓰레기통에 툭 던진다. 톡톡, 물티슈 두어 장을 뽑아 컵이 사라진 책상을 닦는다. 오늘 하루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버린 일회용품들이 쓰레기통에 가득하다. 누구는 물 한 모금을, 누구는 한 끼 식사를 위해 거리낌 없이 일회용품을 사용했을 것이다. 편하고, 위생적이고, 값도 싸서 쉽게 다가오던 것들. 마음만 먹으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 수도 있겠다.
방문객에게 차 한 잔을 건넸던 적이 있다. 일회용 컵에 담긴 일회성 차 한 잔이었다. 얼마 후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그날의 방문객이었다. 낯선 곳을 여행하며 몹시 갈증을 느끼던 차에 나를 만난 것이었다. 내가 무심히 건넨 차 한 잔에 목을 축이고, 무심히 해주었던 말에 여행이 더 행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른 봄, 두메산골에서 그가 직접 따고 말려 수차례 덖어 만든 매화차라 했다. 그의 매화는 다기 안에서 서서히 피어났다. 나는 그를 까맣게 잊었지만 나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는 그에게 미안하고 감사했다.
세상이 온통 일회용으로 변해간다. 일회성 직업이 생겨나고, 잠깐 부리고 마는 일회용 계약 아래 일회성 사람들이 존재한다. 기억하지 않고 잊기도 쉬워졌다. 쉽게 쓰고 버리는 것과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뭐가 다르랴. 친구도 연인도 심지어 부모와 자식 간에도 쉽게 연을 끊는 시대가 되었다.
사랑도 우정도 단칼에 끊어지는 세상이 온 건가. 오래 기억될 친구, 너 아니면 못 산다던 애틋한 사랑은 어디로 갔나. 그 속에 존재하던 수많은 약속과 언약, 죽어서도 지킬 서약은 모두 사라진 걸까. 가장 존엄하다는 인간도 일회용으로 전락하고 있으니 얼마나 씁쓸한 세상인가.
일회용품들을 보라. 비록 일회용으로 만들어졌을 뿐 두 번, 세 번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한 번 사용하고 쓰레기통으로 내쳐지는 일회용품들 속에 내가 무심코 흘려보냈을 수많은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닌지. 또한, 나의 씁쓸한 자화상은 아닌지. 뒤늦은 후회 속에 수고하고 정성을 다하는 모습으로 오래오래 기억되는 사람이기를 그려본다.
버리려던 컵에 다시 물을 붓는다. 조금 불편하면 어떠랴. 단 한 번으로 잊히는 그런 인연이 아니라, 그대 오래오래 내 곁에 남아 있으라.
3. [서울신문][이호준의 시간여행] 전당포에 맡겨 놓은 눈물
작은 도시를 지나는 중이었다. 모퉁이 건물 2층에 붙은 ‘전당포’라는 간판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아직도 저런 곳이 남아 있구나…. 왠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전당포야말로 어렵던 시절의 상징이자 가난한 이들의 눈물이 배어 있는 곳 아니던가.
전당포(典當?)는 남의 물건을 맡아 두고 돈을 빌려주는 곳이다. 대신 기한 내 찾아가지 않으면 처분해서 이익을 얻는다. 전당포를 기쁜 일과 함께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보통은 지긋지긋한 가난과 비정한 쇠창살, 그리고 인색한 이미지의 주인이 함께 떠오르기 마련이다.
전당포 단단한 쇠창살에는 애달픈 사연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죽자사자 공부했지만 계속 낙방하고 더이상 버틸 수 없어 법전을 들고 찾아간 고시생, 아버지의 유일한 유물인 손목시계를 품고 문 앞을 뱅뱅 돌던 청년, 아내의 병원비 때문에 단벌 양복을 맡겨야 했던 어느 가장…. 아무리 애써도 하루를 살아 내는 것조차 숨 가빴던 이들이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곳이 전당포였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절박했던 건 아니었다. 돈이 급한 사람들이 찾던 곳은 분명하지만, 그리 가난하지 않은 대학생들도 단골 고객이었다. 술값이나 용돈이 떨어지면 시계나 미니카세트, 전자계산기, 심지어 교과서까지 들고 전당포를 찾는 청년들도 꽤 많았다. 시골 출신 학생들은 물건을 맡겼다가 집에서 용돈을 보내 주면 다시 찾으러 가고는 했다. 물론 제때 찾지 못해서 새 주인의 품으로 넘어간 물건들도 많았다.
전당포의 전성기는 1970~80년대였다. 70년대는 양복·구두 같은 것들이, 80년대에는 컬러TV 같은 가전제품이 단골 품목이었다. 잘나가던 전당포를 밀어낸 건 신용카드였다. 1990년대 들어 신용카드 보급이 확산되면서 전당포를 찾는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비교적 쉽게 대출받을 수 있는 금융 상품들이 쏟아지면서 90년대 후반 이후에는 하나둘 문을 닫더니, 결국 카지노 촌에서나 연명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쉽사리 만나기 어렵던 전당포가 곳곳에서 부활하고 있다고 한다. 당장 포털 검색창에 ‘전당포’라고 치면 수없이 많은 이름이 쏟아진다. 불황이 길어지면서 전당포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아르바이트 자리가 부족한 방학 중에는 정보기술(IT) 기기를 맡기고 소액 대출을 받는 ‘IT전당포’가 인기라고 한다. 대학생들은 스마트폰과 노트북컴퓨터, 태블릿PC 등을 맡기고 20만∼40만원씩 대출받는다.
이와는 다른 개념의 전당포도 많다. 청담동, 압구정동 등에는 이른바 ‘명품전당포’들이 성업 중이다. 이곳에서는 주로 고가의 물건들이 오간다. 노트북컴퓨터나 디지털카메라는 그나마 고전에 속한다. 주요 품목은 루이비통이나 샤넬 같은 상표를 단 가방, 고가의 양복, 명품 시계들이다. 고급 골프 세트도 나온다고 한다.
물론 쇠창살 안으로 쭈뼛쭈뼛 시계나 반지를 디밀던 전당포는 아니다. 쇠창살은 아예 없다. 입학 기념으로 받은 시계와 용돈을 바꾸던 대학생은 물론 아이를 업은 채 눈물을 삼키며 결혼반지를 맡기던 새댁도 없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었다. 새삼 그 옛날 ‘눈물의 전당포‘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허덕이며 걷던 시절의 고통이 가슴에 새겨져 시간으로도 지우지 못하는 이들은 여전히 전당포라는 이름이 바늘 끝처럼 아플 것이다.
4. [서울신문][씨줄날줄] 칼빈슨호와 일석이조
미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CarlVinson·CVN 70)이 오늘 부산항에 입항한다. 2001년 제작된 존 무어 감독의 ‘에너미 라인스’를 본 사람이라면 이 전쟁 영화에 등장하는 항공모함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주인공 오언 윌슨이 보스니아 상공 촬영의 임무를 안고 전투기 FA18 슈퍼호닛을 몰고 이륙하는 곳이 바로 항모 칼빈슨 선상이었다.
9·11 테러를 주도한 테러 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과도 인연이 있다. 미 해군의 특수부대 네이비실은 파키스탄에 잠복해 있던 빈 라덴을 찾아내 살해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시체를 인수할 국가나 개인을 찾지 못하자 갑판에서 장례 의식을 치르고 수장한 곳이 칼빈슨이었다.
칼빈슨은 1975년 건조돼 1982년 취역했으니 퇴역을 앞둔 42살의 노병이다. 길이 333m, 높이 76.8m, 배수량 10만t으로 갑판이 축구장 3배 크기이며 7000명의 승조원이 생활한다. 폭격기, 조기 경보기, 대잠수함 헬리콥터 등 함재기 90대에 장거리 순항미사일도 탑재하고 있다. 호위하는 5~6척의 이지스 군함, 1~2척의 핵 잠수함 공격력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떠다니는 요새이자 군사기지다.
2차 세계대전 때 야마토 등 일본의 항모에 대항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미 항모다. 지금은 10척의 항모가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가상 적국 러시아 2척, 중국 1척과 비교할 수 없는 세계 최고의 군사강국 미국의 상징이다.
미국의 항공모함이 한국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된 1996년 2월 군산 앞바다에 들어온 미 7함대 소속 인디펜던스호(1998년 퇴역)에 탑승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데이브 플라티 함장(대령)은 이륙이 20초에 1대꼴로 이뤄져 76대의 함재기가 26분이면 공격에 나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플라티 함장의 말대로라면 칼빈슨호의 함재기 90대는 하루에 7500차례 출격이 가능하다. 24시간 안에 세계 어디든 주요 군사기지를 초토화할 수 있는 가공할 전력인데, 북한이 항모만 떴다 하면 신경질적이 되는 것이 이해가 된다.
일본 요코스카항에 있는 로널드 레이건호를 놔두고 미 샌디에이고가 모항인 칼빈슨이 한국에 온 것은 이례적이다. 세계 최강의 특수부대 네이비실을 태우고 참수훈련에도 참가한다고 하니 김정은의 오금이 저릴 법도 하겠다.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수행하고 온 칼빈슨의 부산 입항은 중국도 겨냥하는 미국의 일석이조 전략이 엿보인다.
칼빈슨호는 페이스북에도 계정을 가지고 있는데, 14일 현재 14만 1278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13일 한·미 훈련 격려차 승선한 이순진 합참의장과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의 사진을 올렸는데 홍보에도 기민한 칼빈슨이다.
5. [국민일보][살며 사랑하며] 퍼스널컬러
‘오렌지색 립스틱이 더 어울릴까, 핑크색 립스틱이 더 어울릴까?’ ‘실버가 어울릴까, 골드가 어울릴까?’ 그건 ‘앞머리를 자르는 게 나을까, 기르는 게 나을까’와 더불어 어떤 선택을 해도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을 보이게 되는, 그런 질문들이었다. 그러던 참에 퍼스널컬러 진단이라는 것을 받게 됐다. ‘퍼스널’ 같은 단어가 붙으면 내 지갑은 경계심이 좀 약해지곤 했는데, 게다가 색채 진단이라니 호기심이 솟았다. 비슷한 호기심을 갖고 있던 소설가 Y가 합류했다.
화장을 지운 두 명의 여자가 흰 벽 앞에 앉아 있고, 그 민낯 위아래로 다양한 색의 천 조각이 오가기를 한참. 내가 깊고 진한 컬러가 어울리는 가을-웜(warm)-딥(deep) 톤이라면 Y는 하늘하늘하고 가벼운 컬러가 어울리는 여름-쿨(cool)-라이트(light) 톤이었다. 핑크를 좋아하던 나는 오렌지가 더 어울린다는 결과를, 오렌지를 좋아하던 Y는 핑크가 더 어울린다는 결과를 받았다. 가방 속 립 제품을 서로 교환해야 할 판이었다. 각자에게 어울리는 컬러표도 받았는데, 확실히 나는 가을에, Y는 여름에 있었다.
재미있는 건 그 컬러표가 생각보다 유연해서 어느 유형이라도 아주 못 가질 컬러는 없다는 거였다. 핑크에도 무수히 많은 핑크가, 오렌지에도 무수히 많은 오렌지가 있다. 다만 명도와 채도, 톤의 차이가 있을 뿐. 그래서 모든 유형의 컬러를 쭉 늘어놓고 보면 사계절과 간절기까지 포함한 한 세계로 연결되는 걸 느낄 수 있다.
혼자 뚝 떨어진 컬러는 없는 것이고, 모든 컬러는 계절을 타며 조금씩 익어간다. 어찌 보면 퍼스널컬러는 누군가의 선택을 제한하려는 게 아니라 경계와 경계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더 세심하게 보도록 돕는 장치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티타임을 하러 가면 Y가 이렇게 말한다. “가을 딥 웜 톤의 케이크로 골라봤어요.” 또는 “오늘은 여름 쿨 라이트 톤 케이크를 먹을까요?” 케이크뿐이랴. 간판과 난간과 보도블록까지 미묘한 색감을 읽다보면 눈이 심심할 틈이 없다.
반응형
LIST
'뉴스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년 3월 16일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0) | 2017.03.16 |
---|---|
2017년 3월 16일 신문 브리핑(약식) (0) | 2017.03.16 |
2017년 3월 15일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0) | 2017.03.15 |
2017년 3월 15일 신문 브리핑 (0) | 2017.03.15 |
2017년 3월 14일 화요일 주요 신문사설·칼럼 (0) | 2017.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