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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중앙일보]
1. 물 위로 나온 세월호 … 의혹은 씻고 아픔은 치유해야
기다림과 고통의 시간은 길었다. 1073일이 걸렸다. 차갑고 어두운 44m 바닷속에 모로 누워있던 선체는 누렇게 녹슨 처참한 모습이었다. 인양 작업을 지켜보던 유가족들은 오열했다. 국민의 마음도 참담했다. 탑승자 304명(단원고 학생 266명 포함)이 숨진 세월호가 다시 물 위로 올라온 어제, 대한민국의 하루는 그리 지나갔다.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에 침몰한 지 3년, 인양 추진 702일 만이었다.
해양수산부는 세월호를 수면 밖 13m까지 부양해 24일 소조기까지 반잠수식 선박으로 옮길 예정이다.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세월호는 다음달 5일을 전후로 목포신항으로 옮겨진다. 길이 145m, 높이 24m, 너비 22m의 거대한 선체인 만큼 마지막까지 안전하게 인양해야 할 것이다.
온 국민에게 분노와 아픔을 남겼던 세월호의 인양은 끝이 아닌 시작일 뿐이다. 3년을 기다려 온 9명의 실종자 수습과 각종 의혹 해소, 사회적 갈등과 아픔 치유, ‘안전 대한민국’ 재설계의 과제가 기다리고 있어서다. 가장 큰 쟁점은 침몰 원인에 대한 의혹이다. 검찰은 과적과 고박 불량, 선체 구조 변경, 조작 미숙 등을 원인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세월호를 직접 조사할 수 없는 탓에 ‘잠수함 충돌설’ 같은 근거 없는 의혹과 루머가 난무했다. 과적의 경우도 그렇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철근 286t 등 총 2142t을 적재해 승인량(987t)을 두 배 초과했다고 추정했다. 반면 세월호특별조사위는 철근 410t을 포함해 총 2215t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시민단체가 제주해군기지용 철근을 실은 탓에 무리하게 운항하다 화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해경이 대통령 보고용 동영상을 촬영하느라 구조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의혹도 여전하다.
세월호 인양은 이런 의혹과 불신을 해소할 기회이기도 하다. 핵심 증거인 선체가 확보되고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특별법’도 발효(21일)된 만큼 신속하게 선체조사위를 구성해야 한다. 6개월간 활동할 전문가들이 과학적이고도 정밀한 ‘눈’으로 의혹을 해소하기 바란다. 그 과정에서 어떤 정치적 입김이나 진영 논리가 작용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유가족들의 아픔과 슬픔, 국민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지 않겠는가.
정치권은 세월호를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인양 시기가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에 따른 대선 정국과 맞물린 데다 세월호 3주기가 머지않았다. 정치권이 세월호 이슈를 5월 9일 대선까지 끌고 가려 한다면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더 격해질 수 있다.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도리가 아닐뿐더러 국민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는 국가개조까지 내걸었다. 하지만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철도·화재·선박 대형 인재(人災) 사고가 이어지고, 지진·조류인플루엔자(AI)·구제역 사태 때는 컨트롤타워까지 무너졌다.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대선주자들이 나서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 국가안전시스템부터 리셋하겠다고 약속해야 할 것이다. 그게 세월호 희생자들이 남긴 ‘안전 대한민국’의 교훈을 헛되게 하지 않는 일이다.
[이데일리]
2. 인양된 세월호, 모든 의혹 해소되기를
지난 3년간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던 세월호가 어제 새벽 드디어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해수부가 전날 저녁 전남 진도 앞바다 사고 현장에서 인양 작업을 시작한 가운데 20여m 깊이의 해저면에서 선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선체를 수면 13m 위까지 끌어올린다는 당초 계획이 도중에 약간 지연됨으로써 우려를 던져주기도 했으나 작업이 큰 차질 없이 진행되는 것 같아 천만다행이다.
그러면서도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것은 녹슨 선체의 모습에서 세월호 침몰사고로 인해 상처받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새삼 확인하게 되는 때문일 것이다. 어이없는 사고로 승객 295명이 목숨을 잃었고, 9명의 시신이 수습되지 못했다는 자체로 우리의 슬픔과 충격은 현재진행형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 가슴에서 노란 리본을 떼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더욱이 침몰사고와 관련해 근거 없는 의혹과 소문이 난무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든 측면이 없지 않았다. 선사 측의 무리한 선체 개조와 과적, 조타수의 미숙함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검찰의 수사 발표에도 불구하고 온갖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제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낸 만큼 사고 원인에 대한 정확한 규명 작업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사고 원인이 규명된다면 희생자들의 원혼도 편안히 잠들 수 있을 것이며, 유가족들도 어느 정도는 위안을 얻게 될 것이다. 물론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 것인지 장담하기는 이르다. 무엇보다 정치적 압력이나 사회적 분위기에 흔들리지 말고 과학적인 분석에 의해서만 원인을 규명한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과거 천안함 사태 때처럼 사고원인 발표로 인해 또 다른 의혹과 논란이 제기돼서는 곤란하다.
이제 세월호가 인양됐으니 우리 사회도 그 쓰라린 교훈을 가슴에 새긴 채 원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성세대의 무책임으로 애꿎은 학생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던 눈물과 슬픔의 대형사고가 다시는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다짐이 그것이다. 추가 진상규명 작업이 이뤄지게 되면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텐트도 자발적으로 철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앞으로 남아 있는 작업들이 차질없이 진행되기를 바란다.
[조선일보]
3. 세월호 3년, '안전 업그레이드'는 없고 政爭만 있었다
세월호가 23일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2014년 4월 16일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된 참사 후 1073일 만이다. 세월호는 앞으로 반(半)잠수식 선박에 실려 목포 신항으로 옮겨지게 된다. 시신이라도 찾고 싶다는 실종자 9명 가족의 고통과 애타는 마음을 함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선 배를 안전하게 육지까지 옮기는 일이 과제다.
여기에 만전을 기하고 다음으로 미수습자 시신과 희생자 유류품 수습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찢어지는 가슴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일이다. 세월호 선체 처리에 대해선 보전 전시, 해체 등 여러 제안이 있다. 유가족 의견을 존중하면서 현명한 결정을 해야 한다.
문제는 세월호 참사 후 우리 사회의 안전 시스템이 나아졌다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국가 개조(改造)'까지 선언하면서 국민안전처를 신설했지만 애꿎은 해경만 해체됐을 뿐 뭐가 달라진 게 있는지 답답한 마음뿐이다. 지난 3년 동안에도 지하철끼리 추돌하고, 환풍구가 무너지고, 요양원에서 불이 나고, 버스가 전복했다.
얼마 전 경기도 동탄 주상 복합 건물에서 난 화재로 52명이나 사상자가 나온 것은 상가 관리자들이 개장 후 6년 동안 화재경보기를 줄곧 꺼놨기 때문으로 확인됐다. 아무리 무슨 장관급 안전 부처를 만들어봐야 소용이 없다. 시민은 여전히 '설마' 하는 안전 불감증에 젖어 있고 공무원들은 점검하는 척만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도 선박 회사의 안전 불감증, 당국의 무사안일로 빚어진 것이다.
지난 3년 세월호는 끊임없는 정쟁(政爭) 대상이었다.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왜 구조가 안 됐는지는 이미 낱낱이 밝혀져 있다. 그 명백한 사실들을 외면하려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사실과 치유, 재발 방지는 뒷전으로 밀리고 삿대질만 난무했다. 세월호 문제를 조사하라고 만든 특별조사위원회는 1년 반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거의 기억에 없다. 사실 할 일이 있을 리도 없었다. 참사와 아무 관계 없는 '대통령 7시간'을 밝히겠다면서 분란만 키웠다.
그런데도 어제 유력 대선 후보가 "차기 정권은 제2 특조위를 구성해 세월호 진실을 낱낱이 규명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탄핵 날 팽목항을 찾아가 사망 학생들을 향해 '미안하고 고맙다'는 글을 썼다. 어이없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한 일이다. 세월호 정쟁의 극단을 보여주는 듯하다.
4. 5조8000억 또 지원받는 대우조선, 도덕적 해이는 그대로
정부가 23일 대우조선해양에 5조8000억원 규모의 지원을 결정했다. 채권단이 2조9000억원의 빚을 출자 전환해 주거나 만기를 3년 연장해주는 방식으로 손실을 떠안고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2조9000억원을 신규 지원하는 방안이다. 이번 지원 방침으로 대우조선은 한숨 돌리게 됐다.
하지만 과연 대우조선 추가 지원이 조선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의 상황 오판, 대우조선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으로 대우조선에는 혈세나 다름없는 국책은행 지원금을 총 7조1000억원 쏟아붓게 된다. 2015년 4조2000억원을 지원했다.
작년 말 2조8000억원 규모의 출자 전환까지 합하면 전체 지원 규모는 13조원에 이른다. 정부는 '더 이상의 지원은 없다'고 했다가 말을 바꿨다. 조선업 불황이 예상보다 길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세계 7위 해운사 한진해운을 문 닫게 한 원칙을 대우조선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정부 스스로 원칙을 어긴 것이었다.
물론 경쟁력은 있지만 당장 유동성이 부족한 기업을 문 닫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대우조선은 작년 말 기준으로 114척, 340억달러어치의 수주 잔량을 갖고 있다. 세계 최대 수주 잔량이다. 조선업 특성상 주문받은 배를 건조해서 적기에 납품하지 않으면 그동안 들어간 비용 32조원도 다 날리게 된다. 추가 자금을 지원해 건조 중인 배를 완성하고 차츰 몸집을 줄여나가는 것도 우리 경제에 충격을 덜 주는 구조조정의 한 방식일 수는 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산 매각과 인력 감축 등 고강도 구조조정이 병행되어야 한다. 대우조선의 자구계획 이행률은 34%에 불과하다. 현대중공업 57%, 삼성중공업 40%보다 낮다. 이런 도덕적 해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대우조선 지원에 들어간 13조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말 것이다.
[매일신문]
5. 낙동강 식수원 위협하는 제련소 중금속 오염 논란
1천300만 영남인들의 식수원인 낙동강이 중금속 오염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최상류에 있는 제련소에서 중금속이 나와 토양과 낙동강을 오염시킨다는 의혹이 잇따라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뒷짐을 지고 있다.
세계 물의 날인 22일 안동시청에서는 주목할 만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 선 사람들은 안동시`봉화군`구미시`대구시`부산시`태백시의회 의원 등 11명이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낙동강 식수원 보호를 위해 영풍석포제련소를 폐쇄하라고 촉구했다.
영풍석포제련소가 낙동강 중금속 오염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70년에 준공된 이 제련소는 안동호 80㎞ 상류에 위치해 있다. 아연 등의 제련 과정에서 이곳에서는 각종 유해물질이 발생한다. 그래서 2014년 낙동강 물고기 떼죽음 사건과 제련소와의 연관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환경단체 조사 결과 제련소 주변 6곳의 토양에서는 심각한 수준의 카드뮴이 검출된 바 있다. 카드뮴은 일본에서 이타이이타이병으로 128명의 사망자를 낸 중금속이다.
이에 대해 제련소 측은 자신들이 물고기 폐사의 원인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 없으며 퇴적물에 쌓인 중금속도 과거 봉화지역 폐광산에서 흘러든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제련소 주변 토양에 축적된 중금속이 빗물에 씻겨 낙동강에 유입되고 있다는 우려는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안동호와 낙동강 상류에서 잡힌 물고기가 시장에서 냉대를 받고 있을 정도다.
정작 정부 차원의 본격 조사는 감감무소식이다. 지난해 환경부는 낙동강에 서식하는 어류에 카드뮴 등 중금속이 타 수계보다 높지만 낙동강의 수질 및 생태계는 양호하다는 이상한 발표를 내놓기도 했다. 오히려 정부는 경북도와 봉화군에 일을 떠넘긴다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고 했다. 정부는 낙동강 수계가 중금속에 노출돼 있다는 경고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체계적인 조사부터 서둘러 실시하고 중금속 오염원 차단 및 낙동강 유입 방지, 제련소 이전 등 종합적이고도 다각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6. 불황 속 재산은 불리고 신고는 거부한 국회의원
299명의 20대 국회의원 가운데 지난해 재산을 불린 의원은 전체의 79.3%인 237명이며, 143명은 1억원 넘게 늘었다. 또 정부의 재산신고 대상 고위 공직자 1천800명의 76.8%가 재산이 불었고 평균 증가 재산액은 7천600만원이다. 23일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와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2016년도 재산변동 신고내역을 분석한 결과이다. 의원과 고위 공직자는 재테크의 달인이었다.
지난해 우리 경제성장률은 2.7%, 1인당 국민소득은 2만7천달러로 2014년 2만8천달러 이후 뒷걸음질치고 있다. 국민 호주머니는 가벼워졌는데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의 호주머니만 두둑해진 것이다. 2017년 경제성장률도 2.6%로 전망될 만큼 불황과 저성장의 늪이 깊다.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제난은 더욱 심각하고, 나아질 기미가 없으니 국민은 절망한다.
이런 현실과 전혀 다른 이상 세계의 존재가 이번에 분명히 드러났다. 국민 모두가 어려운데도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 증식 고공행진 현장이 그것이다. 모두 아우성이지만 누군가 활짝 웃을 수 있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자본주의에서 이들의 놀라운 재산 증식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의 재산 증식이 과연 투명한지는 의문이다.
그 출발은 국가청렴도의 만성적인 저평가이다.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밝힌 2016년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는 역대 가장 낮은 순위다. 전 세계 176개국 중 52위로 전년보다 15단계나 추락했다. 1995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데다 가장 낮은 순위다. 최근 20년간 늘 30~40위권이니 새삼 놀랄 일이 아닐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의 늘어난 재산은 의심받아 마땅하다.
특히 우리 국회의 경우, 보수 대비 의회 효율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꼴찌 수준이다. 불린 재산만큼 제대로 의정활동을 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게다가 의원 10명 중 4명은 가족 재산 공개를 거부했다. 국민 신뢰를 뭉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투명하고 신뢰를 담보할 재산 공개제도의 보완이 필요한 까닭이다. 고위 공직자 역시 불린 재산이 과연 청재(淸財)인지 살펴볼 일이다.
[서울신문]
7. 대북 원유 공급 차단, 中 동참 필수다
미국이 초강경 대북 제재 법안을 통해 대북 압박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북한의 원유 수입을 막고 달러는 물론 위안화 유입마저 차단하는 것이 골자다. 에드 로이스 미 하원 외교위원장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대표 발의한 ‘대북 차단 및 제재 현대화법’(HR1644)이다. 지난해 1월 통과된 ‘대북 제재 이행 강화법’과 5차 핵실험 이후 만들어진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을 보완한 것이다. 역대 대북 제재 가운데 가장 강력하다.
이 법안은 북한의 경제 기반을 뒤흔들 수 있는 수단이다. 북한의 생명줄인 원유 및 석유 제품의 판매와 이전을 금지하면서 중국과의 외교적 갈등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인도적 목적의 중유는 금지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북한의 해외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고 미국 관할권 내 자산 거래를 금지했다. 하원에 이어 미 상원도 어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북한이 자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테러 행위 중 하나로 김정남 암살 사건도 적시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의 폐기를 공언한 이후 선제공격 등 군사적 대응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대북 제재 법안이 발의된 점을 주목해야 한다. 중국의 적극적 대북 제재 이행을 촉구하는 측면에서 제재 대상을 ‘외국’으로 명시해 ‘세컨더리 보이콧’의 요소를 담았다. 북한의 무모한 도발은 결국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압박 의지를 결집해 더욱 강력한 징벌을 부르는 악순환이 거듭될 것이란 경고다. 우리 외교부도 어제 미 하원의 신규 대북 제재 법안 발의와 관련해 “북한의 자금줄 차단 측면에서 매우 강력하고 실효적인 법안”이라고 평가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무모한 시도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핵·미사일 고도화라는 지상 목표를 위해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등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북한의 유일한 후원국인 중국이 대북 제재에 뒷짐만 지고 있는 상황에서 효율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국제사회에서 중국 역할론이 힘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다. 중국은 북핵·미사일 도발을 막기 위해 대북 제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때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해 경제 보복에 치중해서는 안 된다.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대북 제재에 앞장서는 모습과 함께 더 진전된 대북 정책을 통해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세계일보]
8. 이젠 영화관까지 청년 알바 울리는 ‘갑질 횡포’ 부리나
국내 내로라하는 영화관에서 청년들을 울리는 ‘임금 갑질’을 저질렀다고 한다. 고용노동부는 그제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알바)생 9978명이 연장근로수당과 휴업수당 등 3억6400만원의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3대 업체가 운영하는 전국 영화관 48곳을 근로감독한 결과 92%인 44곳에서 임금체불 사실을 확인했다.
3대 영화관 알바생의 밀린 임금은 1인당 평균 3만6480원이다. 대기업에는 푼돈이겠지만 청년에겐 목숨 같은 돈이다. 청년실업률은 작년 말 9.8%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많은 청년이 단시간 일자리로 내몰리면서 알바가 단순 용돈벌이가 아니라 생존 수단이 되고 있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아는 대기업이 불법과 꼼수로 청년 임금을 가로채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영화관 임금체불에는 30분 또는 15분 단위의 ‘임금 꺾기’, 조퇴 처리를 통한 휴업수당 미지급 등 불·편법이 동원됐다고 하니 행태가 고약하기 짝이 없다.
기업의 청년 알바 착취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프랜차이즈 기업 이랜드파크가 얼마 전 알바생 4만4360명에게 줘야 할 임금 83억여원을 빼돌린 사실이 들통 나 공분을 샀다. 당시에도 임금 꺾기, 조퇴 처리 같은 교묘한 방법이 동원됐다. 일부 대기업의 ‘열정 페이’ 등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음에도 청년 구직자들의 꿈을 짓밟는 갑질 횡포가 여전한 실정이다. 이번 영화관의 임금 갑질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정부의 지속적인 단속과 처벌, 기업과 사회의 개선 노력 등이 병행돼야 한다. 영화관 임금체불 실태는 지난해부터 시민단체와 언론에서 꾸준히 제기해 왔다. 하지만 해당 업체는 근로감독 결과가 나오고 나서야 시정대책을 내놓았다. 이번 영화관 근로감독도 서울 등 6개 지방노동청이 영화관 8곳씩 무작위로 선정해 이뤄졌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계층·계급적 불만을 토로하고 미래를 비관하는 말이 꼬리를 물고 있다. ‘n포·헬조선 세대’에 이어 지난해 ‘흙수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과 같은 신어가 회자됐다. 그런 청년들을 좌절의 늪으로 모는 게 기업의 임금 갑질이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 기업의 갑질 횡포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
9. 대북제재 공조 강조한 美… 어깃장 놓는 韓 대선주자
미국의 대북 제재·압박이 본격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북한 위협이 최우선 이슈”라며 새 대북 정책에 군사조치를 포함한 모든 옵션을 담을 것임을 예고했다. 최근 한·중·일을 순방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한 제3국 기업 제재) 등 추가 대북 제재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방미 중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 “미국은 한국과 철저히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미 의회도 트럼프 정부와 한목소리를 낸다. 미 하원은 21일 북한의 모든 자금줄을 차단하고 원유 수입을 봉쇄하는 초강력 대북 제재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은 윤 장관을 만나 “북핵 위협에 대해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포괄적인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초당적 공감대가 미 의회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지난 1월 하원에서 테드 포 하원의원이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촉구하는 법안을 낸 데 이어 상원에서도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이날 유사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북한은 예상했던 대로 도발로 맞서고 있다. 지난 6일 탄도미사일 4발을 쏜 데 이어 그제 신형 무수단급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수초 만에 공중 폭발했으나 곧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대북 제재로 외화벌이에 타격을 받자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계좌를 해킹해 8100만달러를 빼내가는 신종 ‘사이버 은행털이’까지 벌였다고 한다.
우리는 북한 도발에 강력한 대응의지를 다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 정부·의회 관계자들은 한국 정권 교체 시 대북 정책이 바뀔지에 우려 섞인 관심을 보인다. 방한 중인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대선주자나 그 참모들을 연쇄 접촉한 데서 미국의 불안감을 엿볼 수 있다. 미국은 대북 공조를 강조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럴 태세인지 의문이다.
유력 대선주자들은 기존 대북 정책과 궤를 달리하는 발언을 내놓는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경선후보는 ‘대북 대화 재개’, ‘개성공단 재가동’ 등을 공언했고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도 유보적 입장이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에 나선 마당에 우리만 다른 길을 고집할 수는 없다. 우리 내부부터 국가 명운이 걸린 안보관을 확고히 해야 한다.
[매일경제]
10. 디체킹 코리아 ; 성장과 공동체가치 강조한 제2한국보고서
어제 본지가 주최한 제26차 국민보고대회는 위기 상황에 놓인 대한민국을 살릴 해법으로 '디체킹(D-checking) 코리아'를 제안했다.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대한민국이 비상하기 위해서는 어설픈 정비보다는 비행기를 완전히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수준의 '디체킹'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이 보고서는 성장 정체와 공동체 신뢰 붕괴를 한국의 최대 위협 요인으로 파악했다. 고장난 이 두 개의 날개를 고치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작이 어렵다는 게 핵심인데 끝없이 경고음이 울리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적절한 처방이다.
본지가 1997년 새로운 국가경영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해 발간한 '부즈앨런 한국보고서'는 외환위기를 예측해 화제가 됐다. '디체킹 코리아'는 20년 만에 다시 쓴 국가 대개조 보고서인 만큼 주목을 끈다. 지금 한국은 외환위기 직전 넛크래커에 낀 상황보다 낫다고 볼 수 없다. 1인당 GDP는 10년 넘게 2만달러의 늪에 갇혀 있고, 2%대의 저성장 고착화가 우려되고 있다. 인구·소비·고용·투자가 동시에 감소하는 4대 절벽은 성장절벽, 중산층 몰락이라는 재앙을 낳을 수 있다.
최순실게이트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국가에 대한 신뢰도 추락,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이념 대립도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전대미문의 폭풍이 밀려오고 있다. 지금 성장엔진에 다시 불을 붙이지 않으면, 공동체의 가치를 복원시키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 파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대한민국호의 앞날은 암담하다.
저성장 터널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유가 필수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성장 회복에 대해 "경제민주화나 동반성장과 같이 국민 정서에 호소하는 방법으론 문제를 풀 수 없다"며 '자유로운 경쟁'을 강조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기업가정신을 꺾고, 기업을 옥죄는 규제 역시 성장의 적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했다고 호들갑을 떨 게 아니라 신규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게 규제부터 걷어내야 한다. 아직 승자가 없는 게임이니 잘만 하면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보고서는 특히 빅데이터 규제 철폐, 의료산업에서의 일자리 혁명, 대우조선 처리에 대한 합의와 승복에 방점을 찍었는데 대선주자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새 정부는 국가 대개조를 행동으로 옮겨 대한민국에 희망의 불씨를 되살려야 할 것이다.
주요신문칼럼
1. [세계일보][세계에세이] 봄과 리쿠르트 슈트
일본의 봄이 되면, 검정색 정장을 입고 삼삼오오 도시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을 볼 수 있다. 옷차림만 얼핏 보면 상갓집 조문을 가는 것처럼 보인다. 검은색 양복, 하얀 와이셔츠, 남자는 넥타이를 매지만 여자는 치마에 넥타이를 하지 않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또한 구두, 양말, 허리띠까지도 거의 세트로 돼 있다. 일본에서 젊은이들이 입는 이런 검정색 정장을 ‘리쿠르트 슈트’라고 한다. 기업 입사를 위한 면접자나 올해 갓 입사한 기업의 신입사원들이 입는 옷이다.
가격은 젊은이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 다양하지만, 옷의 디자인은 거의 획일화돼 있고, 옷 색깔도 검은색이 대부분이며, 간간이 감색이 눈에 뛸 정도다. 일본에서는 리쿠르트 슈트를 판매하는 전국적인 체인점이 있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 이런 체인점에서 붕어빵처럼 만든 일률적인 디자인의 옷을 입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면접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원자의 개성이 아닐까 한다. 나의 상식으로는 그렇다. 지원자의 개성 있고, 깔끔한 복장은 우선 첫인상에서 호감이 간다. 우리에게 지원자의 개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은 대체로 장점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면접을 통해서 지원자 내면의 깊이가 그 옷차림만큼 뒷받침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럼에도 활기에 넘치고 개성을 발휘해야 할 젊은이들의 입사 면접이나, 첫 사회 활동을 내디디면서 획일화된 검정색 정장을 입는 것은 무엇을 설명하는 것일까.
필자는 일본에서 회사를 운영하면서 사원 채용을 위한 면접을 여러 번 했다. 일본인 지원자는 앞서 말한 것처럼 나이와 성별의 상관없이 모두 리쿠르트 슈트 차림으로 왔다. 그리고 심지어 한국인 지원자도 일본인과 같은 옷차림으로 왔다. 나는 지원자들의 똑같은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면접이 끝난 후, 왜 리쿠르트 슈트 차림으로 면접하러 왔는가라고 추가 질문을 던졌다. 지원자들의 대답은 거의 모두 같았다. 학교에서 면접을 위해서 리쿠르트 슈트를 입어야 한다고 배운 것은 아니지만, 주위에서 그렇게 하니까 그냥 따라 하는 일종의 관습이라고 했다.
사실 이러한 분위기는 일본의 초등학교로 거슬려 올라간다. 일본의 초등학생은 세 가지가 획일화돼 있다. 교복, ‘란도셀’이라는 가방과 모자다. 나의 자녀는 일본의 초등학교를 다녔다. 일본의 초등학교에서는 교복을 입어야 하는 규정은 없고, 자율복장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어느 누구의 강제성이 없더라도 학생들은 모두다 교복을 입고, 란도셀을 메고, 모자를 쓰고 학교에 간다. 특히 겨울의 쌀쌀한 날씨에도 초등학생들의 교복으로 짧은 양말에 반바지를 입고, 종아리를 드러내 놓고 학교 가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안쓰럽다. 그러나 학생들도 학부모도 누구 하나 불평을 드러내거나 자신만의 튀는 옷을 입으려고 하지 않는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속담처럼 개인의 개성보다 조직의 틀에 맞추려는 일본 사회의 암묵적인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일본에서도 기업의 취직과 관련이 없는 젊은이들의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은 우리의 젊은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개성을 중요시한다. 오히려 고등학생만 되어도 짙은 화장을 하고, 머리 색깔을 바꾸며, 화려한 장신구로 멋을 내는 모습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들의 자유분방한 행동을 오히려 기성세대들은 우려스러운 시선으로까지 보기도 한다.
그랬던 그 젊은이들이 기업이라는 조직에 들어가면서 바로 변신을 하는 것이다. 개성을 감추고 집단의 틀에 자신을 맞추는 그러한 일본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나는 소름이 돋았고, 그러한 힘이 어디로 뻗어나갈지 경계의 눈초리를 뗄 수 없는 것이다.
2. [국민일보][색과 삶] 색맹에 대하여
어린 시절 내 친구는 고추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돕다가 덜 익은 고추를 따는 바람에 혼이 났다고 한다. 초록 고추와 빨강 고추를 구분하지 못하는 그는 적록색맹, 즉 빨강-초록 색맹이었다.
색의 지각에 이상을 보이는 색맹은 빨강과 초록을 구분하지 못하는 적록색맹이 가장 흔한 경우이고 간혹 노랑-파랑 색맹도 있다. 적록색맹은 빨강이나 초록을 갈색으로 보는데, 언제나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친구의 경우처럼 색맹인줄 모르고 지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색맹의 정도가 약한 경우를 색약이라고 한다.
색맹은 어머니 쪽을 통해 유전된다. 어머니는 색맹이 아니더라도 그 아들은 색맹이 될 수도 있다. 매우 드물긴 하지만 후천적인 색맹은 눈과 관련한 병을 앓아 생겨날 수 있고 악성빈혈, 비타민 결핍, 납중독 등으로 인해서 생기기도 한다. 색맹은 남성이 여성보다 10배 이상 많다. 여성이 남성보다 색을 훨씬 정확하게 볼 뿐 아니라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색을 전혀 보지 못하는 완전색맹은 흑백영화 보듯이 세상을 바라보는데 이런 경우는 백만명 중 한 명일 정도로 지극히 드물다. 색은 보는 것의 결과지만 감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색맹이 삶의 질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적록색맹인 사람이 생활하는 데 별다른 불편을 겪지 않는 이유는 언제나 상식으로 알고 있는 사실대로 색을 지각하기 때문이다. 운전을 할 때에도 신호등 불빛의 위치와 밝기에 익숙하게 반응하여 정상적인 사람이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하지 않다.
그러나 의사나 간호사, 비행기 조종사와 같이 생명의 위험과 직결되는 업무에 종사할 경우에는 반드시 색맹검사를 거치게 된다. 인간과 같이 색을 보는 포유류는 일부 원숭이밖에 없다. 붉은 깃발에 흥분하는 황소나 연분홍 옷을 입은 애완견 또한 색맹이다. 세상의 예쁜 색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3. [한겨레][조한욱의 서양 사람] 한 여성의 노력
여성 참정권을 최초로 인정한 나라가 어디일까? 그것은 민주주의 확립에 결정적 역할을 한 시민 혁명들을 주도했던 영국이나 미국이나 프랑스가 아니며, 평등을 기치로 내세우는 사회주의 국가들도 아니다. 그 나라는 국제 정치의 중심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뉴질랜드인데, 한 여성의 집요한 노력이 이끌어낸 결과였다.
영국에서 태어난 케이트 맬컴은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자라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년 뒤 어머니는 자식들을 이끌고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결혼해 케이트 셰퍼드가 된 그는 아들 하나를 낳은 주부였다. 그러다가 ‘여성 기독교인 절주 연합’과 관련을 맺게 된 일을 계기로 더 큰 활동을 시작했다. 절주 운동에 대한 지지가 주로 여성들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챈 그는 점차 여성 참정권 운동에 관심을 보이며 두각을 나타냈다.
사실 여성 참정권 획득은 당시의 정황에 비춰볼 때 비현실적인 목표일 수 있었다. 그러나 뛰어난 연설가로서 조직 활동에도 능력을 보인 그는 “인종이건, 계급이건, 종교건, 성별이건 분리하는 것은 비인간적이며 극복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자신의 명분에 대한 지지를 쌓아갔다. 1888년 그는 “뉴질랜드 여성들이 투표해야 할 이유”라는 팸플릿을 통해 그 필요성을 논증했다.
1891년 그가 초안을 작성하여 의회에 제출한, 여성의 참정권을 청원하는 법안은 결국 3년이 지난 1893년에 통과되었다. 예상할 수 있겠지만, 이 법안에 대한 가장 큰 반대 세력은 주조업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셰퍼드는 선거인 등록을 독려하여 임박한 선거에서 여성 유권자의 3분의 2가 투표했다.
뉴질랜드에서 여성 참정권을 획득한 뒤에도 셰퍼드는 영국과 미국의 참정권 운동가들과 교류하며 그들을 도왔고,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쇠약해진 뒤에도 계속 글을 써 여성의 권리 확장에 헌신했다. 뉴질랜드의 10달러 지폐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4. [아시아경제][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낙화(落花)
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하여 먼 데 사는 현학(顯學)이며 예술가들과 소통한다. 그들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같은 SNS 계정에는 어느 사이 봄꽃이 흐드러졌다. 춘신(春信)은 거침없이 북상하고 있다. 전
라도 화순에 사는 소설가 정찬주 선생이 지난 4일에 홍매 향을 가득 담아 '카톡'으로 보내자 경기도 안산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시인 윤제림 교수가 13일에 수양매화 한 떨기를 사진 찍어 화답하였다. 소설가는 안되겠다 싶었던지 나흘 뒤 광양 매화꽃비를 냅다 흩뿌려 '춘신보도경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사진 속 광양의 꽃비는 장하기 그지없어, 상춘객들이 우산으로 꽃세례를 가까스로 감당할 지경이었다.
무릇 꽃이란 그 생애의 모든 국면에서 우리에게 행복과 상념을 동시에 안겨준다. 가지에 물이 올라 기어코 싹을 틔울 때 우리는 생명의 힘과 인내를 실감한다. 꽃이 피어 여린 잎이 바람에 흔들리다 이내 만개하여 지천에 봄을 외치니 마침내 기운생동(氣韻生動). 그러나 절정은 그 마지막에 있으매 낙화(落花), 곧 작별의 의식이다.
마당 한편 고고한 목련이 생채기 하나 없는 순결한 몸을 대지 위에 던질 때이거나 벚꽃 소나기 아래에 섰을 때 우리는 설레는 마음 저 뒤에서 밀려드는 비애를 감지한다. 그래서 뭇 시인이 그 장렬함을 노래했거니와 나는 우리말로 시를 지은 무리 중에 으뜸을 다투기로 이형기와 지훈 조동탁을 꼽아 마땅하리라 본다. 두 시인이 모두 시제를 '낙화'라 하였다.
꽃이 지기로소니/바람을 탓하랴//주렴 밖에 성긴 별이/하나 둘 스러지고//귀촉도 울음 뒤에/머언 산이 다가서다//촛불을 꺼야 하리/꽃이 지는데/꽃 지는 그림자/뜰에 어리어//하이얀 미닫이가/우련 붉어라//묻혀서 사는 이의/고운 마음을/아는 이 있을까/저어하노니//꽃이 지는 아침은/울고 싶어라 <조지훈>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 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 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헤어지자/섬세한 손길을 흔들며/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나의 사랑, 나의 결별/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
지훈은 내면의 창을 슬쩍 열어 뜨락에 물든 계절의 징후를 진찰한다. 그의 내면은 공명하거니와 은은한 빛은 미닫이를 넘어 마음 속 깊은 자리를 물들이지 않는가. 은둔한 선비의 올곧음, 그 굳센 단절이 잠시 서글프다. 이형기는 결별을 감내하고 있다. '나'는 '그'의 등 뒤에 서서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오래 오래. 그는 멀어져 한 뼘, 한 점 크기로 지워져간다.
이윽고 나는 걸음을 돌이켜 제 길을 걷는다. 등은 작별의 언어다. 마지막 한 모금 사랑을 머금었다가 왈칵 눈물 한 방울, 흐느낌 한 호흡으로 삶의 절정을 환기한다. 아직 서울에 꽃소식이 없으나 서둘러 낙화를 이야기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우리는 등에 너무 오래 매달려 있었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오스카 로메로
1970년대 말 중앙아메리카 엘살바도르의 정정은 우파 군부정권과 좌익 반군의 대립으로 혼미했다. 폭력과 테러가 일상이었고, 가톨릭 교회도 대상에서 빠지지 않았다. 오스카 로메로(OscarRomero) 대주교가 벨기에 카톨리크 드 루방(deLouvain)대를 방문한 건 1980년 2월. 직전 3년 사이 50여 명의 신부가 정부 암살단 등에게 테러를 당했고, 6명이 숨졌다.
로메로 주교는 연설에서 “중요한 것은 왜 교회가 박해를 당하는가 하는 점이다. 모든 성직자가 공격받는 것도 아니고, 모든 교회가 타깃이 되는 것도 아니다. 공격받은 이들은 모두 시민들의 편에 서고자 한 이들이었다. 핵심은 빈자에 대한 태도다.”
한 달 뒤인 80년 3월 24일,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 병원의 ‘천주 섭리 소성당’에서 가진 그의 강론 요지도 그거였다. 빈자의 편에 서서 억압에 저항하며 불의와 폭력에 굴하지 말라는 것. 이날 뒤이은 미사 도중 그는 4명의 무장괴한이 쏜 총에 숨졌다. 향년 62세.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150여 년 동안 엘살바도르를 지배한 건 군벌과 지주였다. 1920년대 말 대공황으로 커피 수출이 격감하고 궁핍이 극에 달하자 농민ㆍ인디오들의 저항운동이 시작됐다. 아우구스타 파라분도 마르티가 주도한 반란과 그의 사후 창설된 좌익 반군 ‘파라분도 마르티 해방전선(FMLN)’은 북부와 동부를 거점으로 급속히 세력을 확장해갔다.
잦은 쿠데타와 정권교체 속에서도 집권 우익 군벌은 암살단까지 조직해 게릴라 및 잠재적 저항세력에 대한 테러를 일삼았다. 가톨릭 해방신학자들이 타깃이 된 건, 그들이 좌파여서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옹호하며 폭력을 비판해서였다.
보수 성향의 로메로가 성직생활을 하는 동안 점차 빈자에게 다가간 것도 그 곳이 교회의 자리, 신앙의 자리라 여겨서였다. 그는 스스로를 해방신학자라 여기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선명한 해방신학자였다.
그의 사후 영국 성공회를 비롯해 여러 기독교 교파와 교단이 그의 순교를 기렸지만, 정작 로마교황청의 평가는 인색했다. 그의 좌파 성향 때문이었다. 1997년에야 그의 시성 검토를 시작한 바티칸은 2015년 5월에야 그를 복자로 시복했다. 교황청의 판단과 무관하게 그를 진정한 성인으로 여겨온 세계인들은 그가 천국에 든 3월 24일을 로메로 축일로 기린다.
주요신문사설
[중앙일보]
1. 물 위로 나온 세월호 … 의혹은 씻고 아픔은 치유해야
기다림과 고통의 시간은 길었다. 1073일이 걸렸다. 차갑고 어두운 44m 바닷속에 모로 누워있던 선체는 누렇게 녹슨 처참한 모습이었다. 인양 작업을 지켜보던 유가족들은 오열했다. 국민의 마음도 참담했다. 탑승자 304명(단원고 학생 266명 포함)이 숨진 세월호가 다시 물 위로 올라온 어제, 대한민국의 하루는 그리 지나갔다.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에 침몰한 지 3년, 인양 추진 702일 만이었다.
해양수산부는 세월호를 수면 밖 13m까지 부양해 24일 소조기까지 반잠수식 선박으로 옮길 예정이다.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세월호는 다음달 5일을 전후로 목포신항으로 옮겨진다. 길이 145m, 높이 24m, 너비 22m의 거대한 선체인 만큼 마지막까지 안전하게 인양해야 할 것이다.
온 국민에게 분노와 아픔을 남겼던 세월호의 인양은 끝이 아닌 시작일 뿐이다. 3년을 기다려 온 9명의 실종자 수습과 각종 의혹 해소, 사회적 갈등과 아픔 치유, ‘안전 대한민국’ 재설계의 과제가 기다리고 있어서다. 가장 큰 쟁점은 침몰 원인에 대한 의혹이다. 검찰은 과적과 고박 불량, 선체 구조 변경, 조작 미숙 등을 원인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세월호를 직접 조사할 수 없는 탓에 ‘잠수함 충돌설’ 같은 근거 없는 의혹과 루머가 난무했다. 과적의 경우도 그렇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철근 286t 등 총 2142t을 적재해 승인량(987t)을 두 배 초과했다고 추정했다. 반면 세월호특별조사위는 철근 410t을 포함해 총 2215t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시민단체가 제주해군기지용 철근을 실은 탓에 무리하게 운항하다 화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해경이 대통령 보고용 동영상을 촬영하느라 구조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의혹도 여전하다.
세월호 인양은 이런 의혹과 불신을 해소할 기회이기도 하다. 핵심 증거인 선체가 확보되고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특별법’도 발효(21일)된 만큼 신속하게 선체조사위를 구성해야 한다. 6개월간 활동할 전문가들이 과학적이고도 정밀한 ‘눈’으로 의혹을 해소하기 바란다. 그 과정에서 어떤 정치적 입김이나 진영 논리가 작용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유가족들의 아픔과 슬픔, 국민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지 않겠는가.
정치권은 세월호를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인양 시기가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에 따른 대선 정국과 맞물린 데다 세월호 3주기가 머지않았다. 정치권이 세월호 이슈를 5월 9일 대선까지 끌고 가려 한다면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더 격해질 수 있다.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도리가 아닐뿐더러 국민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는 국가개조까지 내걸었다. 하지만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철도·화재·선박 대형 인재(人災) 사고가 이어지고, 지진·조류인플루엔자(AI)·구제역 사태 때는 컨트롤타워까지 무너졌다.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대선주자들이 나서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 국가안전시스템부터 리셋하겠다고 약속해야 할 것이다. 그게 세월호 희생자들이 남긴 ‘안전 대한민국’의 교훈을 헛되게 하지 않는 일이다.
[이데일리]
2. 인양된 세월호, 모든 의혹 해소되기를
지난 3년간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던 세월호가 어제 새벽 드디어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해수부가 전날 저녁 전남 진도 앞바다 사고 현장에서 인양 작업을 시작한 가운데 20여m 깊이의 해저면에서 선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선체를 수면 13m 위까지 끌어올린다는 당초 계획이 도중에 약간 지연됨으로써 우려를 던져주기도 했으나 작업이 큰 차질 없이 진행되는 것 같아 천만다행이다.
그러면서도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것은 녹슨 선체의 모습에서 세월호 침몰사고로 인해 상처받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새삼 확인하게 되는 때문일 것이다. 어이없는 사고로 승객 295명이 목숨을 잃었고, 9명의 시신이 수습되지 못했다는 자체로 우리의 슬픔과 충격은 현재진행형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 가슴에서 노란 리본을 떼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더욱이 침몰사고와 관련해 근거 없는 의혹과 소문이 난무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든 측면이 없지 않았다. 선사 측의 무리한 선체 개조와 과적, 조타수의 미숙함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검찰의 수사 발표에도 불구하고 온갖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제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낸 만큼 사고 원인에 대한 정확한 규명 작업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사고 원인이 규명된다면 희생자들의 원혼도 편안히 잠들 수 있을 것이며, 유가족들도 어느 정도는 위안을 얻게 될 것이다. 물론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 것인지 장담하기는 이르다. 무엇보다 정치적 압력이나 사회적 분위기에 흔들리지 말고 과학적인 분석에 의해서만 원인을 규명한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과거 천안함 사태 때처럼 사고원인 발표로 인해 또 다른 의혹과 논란이 제기돼서는 곤란하다.
이제 세월호가 인양됐으니 우리 사회도 그 쓰라린 교훈을 가슴에 새긴 채 원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성세대의 무책임으로 애꿎은 학생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던 눈물과 슬픔의 대형사고가 다시는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다짐이 그것이다. 추가 진상규명 작업이 이뤄지게 되면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텐트도 자발적으로 철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앞으로 남아 있는 작업들이 차질없이 진행되기를 바란다.
[조선일보]
3. 세월호 3년, '안전 업그레이드'는 없고 政爭만 있었다
세월호가 23일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2014년 4월 16일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된 참사 후 1073일 만이다. 세월호는 앞으로 반(半)잠수식 선박에 실려 목포 신항으로 옮겨지게 된다. 시신이라도 찾고 싶다는 실종자 9명 가족의 고통과 애타는 마음을 함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선 배를 안전하게 육지까지 옮기는 일이 과제다.
여기에 만전을 기하고 다음으로 미수습자 시신과 희생자 유류품 수습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찢어지는 가슴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일이다. 세월호 선체 처리에 대해선 보전 전시, 해체 등 여러 제안이 있다. 유가족 의견을 존중하면서 현명한 결정을 해야 한다.
문제는 세월호 참사 후 우리 사회의 안전 시스템이 나아졌다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국가 개조(改造)'까지 선언하면서 국민안전처를 신설했지만 애꿎은 해경만 해체됐을 뿐 뭐가 달라진 게 있는지 답답한 마음뿐이다. 지난 3년 동안에도 지하철끼리 추돌하고, 환풍구가 무너지고, 요양원에서 불이 나고, 버스가 전복했다.
얼마 전 경기도 동탄 주상 복합 건물에서 난 화재로 52명이나 사상자가 나온 것은 상가 관리자들이 개장 후 6년 동안 화재경보기를 줄곧 꺼놨기 때문으로 확인됐다. 아무리 무슨 장관급 안전 부처를 만들어봐야 소용이 없다. 시민은 여전히 '설마' 하는 안전 불감증에 젖어 있고 공무원들은 점검하는 척만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도 선박 회사의 안전 불감증, 당국의 무사안일로 빚어진 것이다.
지난 3년 세월호는 끊임없는 정쟁(政爭) 대상이었다.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왜 구조가 안 됐는지는 이미 낱낱이 밝혀져 있다. 그 명백한 사실들을 외면하려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사실과 치유, 재발 방지는 뒷전으로 밀리고 삿대질만 난무했다. 세월호 문제를 조사하라고 만든 특별조사위원회는 1년 반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거의 기억에 없다. 사실 할 일이 있을 리도 없었다. 참사와 아무 관계 없는 '대통령 7시간'을 밝히겠다면서 분란만 키웠다.
그런데도 어제 유력 대선 후보가 "차기 정권은 제2 특조위를 구성해 세월호 진실을 낱낱이 규명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탄핵 날 팽목항을 찾아가 사망 학생들을 향해 '미안하고 고맙다'는 글을 썼다. 어이없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한 일이다. 세월호 정쟁의 극단을 보여주는 듯하다.
4. 5조8000억 또 지원받는 대우조선, 도덕적 해이는 그대로
정부가 23일 대우조선해양에 5조8000억원 규모의 지원을 결정했다. 채권단이 2조9000억원의 빚을 출자 전환해 주거나 만기를 3년 연장해주는 방식으로 손실을 떠안고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2조9000억원을 신규 지원하는 방안이다. 이번 지원 방침으로 대우조선은 한숨 돌리게 됐다.
하지만 과연 대우조선 추가 지원이 조선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의 상황 오판, 대우조선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으로 대우조선에는 혈세나 다름없는 국책은행 지원금을 총 7조1000억원 쏟아붓게 된다. 2015년 4조2000억원을 지원했다.
작년 말 2조8000억원 규모의 출자 전환까지 합하면 전체 지원 규모는 13조원에 이른다. 정부는 '더 이상의 지원은 없다'고 했다가 말을 바꿨다. 조선업 불황이 예상보다 길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세계 7위 해운사 한진해운을 문 닫게 한 원칙을 대우조선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정부 스스로 원칙을 어긴 것이었다.
물론 경쟁력은 있지만 당장 유동성이 부족한 기업을 문 닫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대우조선은 작년 말 기준으로 114척, 340억달러어치의 수주 잔량을 갖고 있다. 세계 최대 수주 잔량이다. 조선업 특성상 주문받은 배를 건조해서 적기에 납품하지 않으면 그동안 들어간 비용 32조원도 다 날리게 된다. 추가 자금을 지원해 건조 중인 배를 완성하고 차츰 몸집을 줄여나가는 것도 우리 경제에 충격을 덜 주는 구조조정의 한 방식일 수는 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산 매각과 인력 감축 등 고강도 구조조정이 병행되어야 한다. 대우조선의 자구계획 이행률은 34%에 불과하다. 현대중공업 57%, 삼성중공업 40%보다 낮다. 이런 도덕적 해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대우조선 지원에 들어간 13조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말 것이다.
[매일신문]
5. 낙동강 식수원 위협하는 제련소 중금속 오염 논란
1천300만 영남인들의 식수원인 낙동강이 중금속 오염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최상류에 있는 제련소에서 중금속이 나와 토양과 낙동강을 오염시킨다는 의혹이 잇따라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뒷짐을 지고 있다.
세계 물의 날인 22일 안동시청에서는 주목할 만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 선 사람들은 안동시`봉화군`구미시`대구시`부산시`태백시의회 의원 등 11명이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낙동강 식수원 보호를 위해 영풍석포제련소를 폐쇄하라고 촉구했다.
영풍석포제련소가 낙동강 중금속 오염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70년에 준공된 이 제련소는 안동호 80㎞ 상류에 위치해 있다. 아연 등의 제련 과정에서 이곳에서는 각종 유해물질이 발생한다. 그래서 2014년 낙동강 물고기 떼죽음 사건과 제련소와의 연관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환경단체 조사 결과 제련소 주변 6곳의 토양에서는 심각한 수준의 카드뮴이 검출된 바 있다. 카드뮴은 일본에서 이타이이타이병으로 128명의 사망자를 낸 중금속이다.
이에 대해 제련소 측은 자신들이 물고기 폐사의 원인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 없으며 퇴적물에 쌓인 중금속도 과거 봉화지역 폐광산에서 흘러든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제련소 주변 토양에 축적된 중금속이 빗물에 씻겨 낙동강에 유입되고 있다는 우려는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안동호와 낙동강 상류에서 잡힌 물고기가 시장에서 냉대를 받고 있을 정도다.
정작 정부 차원의 본격 조사는 감감무소식이다. 지난해 환경부는 낙동강에 서식하는 어류에 카드뮴 등 중금속이 타 수계보다 높지만 낙동강의 수질 및 생태계는 양호하다는 이상한 발표를 내놓기도 했다. 오히려 정부는 경북도와 봉화군에 일을 떠넘긴다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고 했다. 정부는 낙동강 수계가 중금속에 노출돼 있다는 경고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체계적인 조사부터 서둘러 실시하고 중금속 오염원 차단 및 낙동강 유입 방지, 제련소 이전 등 종합적이고도 다각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6. 불황 속 재산은 불리고 신고는 거부한 국회의원
299명의 20대 국회의원 가운데 지난해 재산을 불린 의원은 전체의 79.3%인 237명이며, 143명은 1억원 넘게 늘었다. 또 정부의 재산신고 대상 고위 공직자 1천800명의 76.8%가 재산이 불었고 평균 증가 재산액은 7천600만원이다. 23일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와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2016년도 재산변동 신고내역을 분석한 결과이다. 의원과 고위 공직자는 재테크의 달인이었다.
지난해 우리 경제성장률은 2.7%, 1인당 국민소득은 2만7천달러로 2014년 2만8천달러 이후 뒷걸음질치고 있다. 국민 호주머니는 가벼워졌는데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의 호주머니만 두둑해진 것이다. 2017년 경제성장률도 2.6%로 전망될 만큼 불황과 저성장의 늪이 깊다.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제난은 더욱 심각하고, 나아질 기미가 없으니 국민은 절망한다.
이런 현실과 전혀 다른 이상 세계의 존재가 이번에 분명히 드러났다. 국민 모두가 어려운데도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 증식 고공행진 현장이 그것이다. 모두 아우성이지만 누군가 활짝 웃을 수 있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자본주의에서 이들의 놀라운 재산 증식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의 재산 증식이 과연 투명한지는 의문이다.
그 출발은 국가청렴도의 만성적인 저평가이다.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밝힌 2016년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는 역대 가장 낮은 순위다. 전 세계 176개국 중 52위로 전년보다 15단계나 추락했다. 1995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데다 가장 낮은 순위다. 최근 20년간 늘 30~40위권이니 새삼 놀랄 일이 아닐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의 늘어난 재산은 의심받아 마땅하다.
특히 우리 국회의 경우, 보수 대비 의회 효율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꼴찌 수준이다. 불린 재산만큼 제대로 의정활동을 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게다가 의원 10명 중 4명은 가족 재산 공개를 거부했다. 국민 신뢰를 뭉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투명하고 신뢰를 담보할 재산 공개제도의 보완이 필요한 까닭이다. 고위 공직자 역시 불린 재산이 과연 청재(淸財)인지 살펴볼 일이다.
[서울신문]
7. 대북 원유 공급 차단, 中 동참 필수다
미국이 초강경 대북 제재 법안을 통해 대북 압박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북한의 원유 수입을 막고 달러는 물론 위안화 유입마저 차단하는 것이 골자다. 에드 로이스 미 하원 외교위원장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대표 발의한 ‘대북 차단 및 제재 현대화법’(HR1644)이다. 지난해 1월 통과된 ‘대북 제재 이행 강화법’과 5차 핵실험 이후 만들어진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을 보완한 것이다. 역대 대북 제재 가운데 가장 강력하다.
이 법안은 북한의 경제 기반을 뒤흔들 수 있는 수단이다. 북한의 생명줄인 원유 및 석유 제품의 판매와 이전을 금지하면서 중국과의 외교적 갈등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인도적 목적의 중유는 금지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북한의 해외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고 미국 관할권 내 자산 거래를 금지했다. 하원에 이어 미 상원도 어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북한이 자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테러 행위 중 하나로 김정남 암살 사건도 적시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의 폐기를 공언한 이후 선제공격 등 군사적 대응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대북 제재 법안이 발의된 점을 주목해야 한다. 중국의 적극적 대북 제재 이행을 촉구하는 측면에서 제재 대상을 ‘외국’으로 명시해 ‘세컨더리 보이콧’의 요소를 담았다. 북한의 무모한 도발은 결국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압박 의지를 결집해 더욱 강력한 징벌을 부르는 악순환이 거듭될 것이란 경고다. 우리 외교부도 어제 미 하원의 신규 대북 제재 법안 발의와 관련해 “북한의 자금줄 차단 측면에서 매우 강력하고 실효적인 법안”이라고 평가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무모한 시도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핵·미사일 고도화라는 지상 목표를 위해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등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북한의 유일한 후원국인 중국이 대북 제재에 뒷짐만 지고 있는 상황에서 효율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국제사회에서 중국 역할론이 힘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다. 중국은 북핵·미사일 도발을 막기 위해 대북 제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때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해 경제 보복에 치중해서는 안 된다.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대북 제재에 앞장서는 모습과 함께 더 진전된 대북 정책을 통해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세계일보]
8. 이젠 영화관까지 청년 알바 울리는 ‘갑질 횡포’ 부리나
국내 내로라하는 영화관에서 청년들을 울리는 ‘임금 갑질’을 저질렀다고 한다. 고용노동부는 그제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알바)생 9978명이 연장근로수당과 휴업수당 등 3억6400만원의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3대 업체가 운영하는 전국 영화관 48곳을 근로감독한 결과 92%인 44곳에서 임금체불 사실을 확인했다.
3대 영화관 알바생의 밀린 임금은 1인당 평균 3만6480원이다. 대기업에는 푼돈이겠지만 청년에겐 목숨 같은 돈이다. 청년실업률은 작년 말 9.8%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많은 청년이 단시간 일자리로 내몰리면서 알바가 단순 용돈벌이가 아니라 생존 수단이 되고 있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아는 대기업이 불법과 꼼수로 청년 임금을 가로채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영화관 임금체불에는 30분 또는 15분 단위의 ‘임금 꺾기’, 조퇴 처리를 통한 휴업수당 미지급 등 불·편법이 동원됐다고 하니 행태가 고약하기 짝이 없다.
기업의 청년 알바 착취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프랜차이즈 기업 이랜드파크가 얼마 전 알바생 4만4360명에게 줘야 할 임금 83억여원을 빼돌린 사실이 들통 나 공분을 샀다. 당시에도 임금 꺾기, 조퇴 처리 같은 교묘한 방법이 동원됐다. 일부 대기업의 ‘열정 페이’ 등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음에도 청년 구직자들의 꿈을 짓밟는 갑질 횡포가 여전한 실정이다. 이번 영화관의 임금 갑질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정부의 지속적인 단속과 처벌, 기업과 사회의 개선 노력 등이 병행돼야 한다. 영화관 임금체불 실태는 지난해부터 시민단체와 언론에서 꾸준히 제기해 왔다. 하지만 해당 업체는 근로감독 결과가 나오고 나서야 시정대책을 내놓았다. 이번 영화관 근로감독도 서울 등 6개 지방노동청이 영화관 8곳씩 무작위로 선정해 이뤄졌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계층·계급적 불만을 토로하고 미래를 비관하는 말이 꼬리를 물고 있다. ‘n포·헬조선 세대’에 이어 지난해 ‘흙수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과 같은 신어가 회자됐다. 그런 청년들을 좌절의 늪으로 모는 게 기업의 임금 갑질이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 기업의 갑질 횡포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
9. 대북제재 공조 강조한 美… 어깃장 놓는 韓 대선주자
미국의 대북 제재·압박이 본격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북한 위협이 최우선 이슈”라며 새 대북 정책에 군사조치를 포함한 모든 옵션을 담을 것임을 예고했다. 최근 한·중·일을 순방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한 제3국 기업 제재) 등 추가 대북 제재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방미 중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 “미국은 한국과 철저히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미 의회도 트럼프 정부와 한목소리를 낸다. 미 하원은 21일 북한의 모든 자금줄을 차단하고 원유 수입을 봉쇄하는 초강력 대북 제재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은 윤 장관을 만나 “북핵 위협에 대해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포괄적인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초당적 공감대가 미 의회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지난 1월 하원에서 테드 포 하원의원이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촉구하는 법안을 낸 데 이어 상원에서도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이날 유사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북한은 예상했던 대로 도발로 맞서고 있다. 지난 6일 탄도미사일 4발을 쏜 데 이어 그제 신형 무수단급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수초 만에 공중 폭발했으나 곧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대북 제재로 외화벌이에 타격을 받자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계좌를 해킹해 8100만달러를 빼내가는 신종 ‘사이버 은행털이’까지 벌였다고 한다.
우리는 북한 도발에 강력한 대응의지를 다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 정부·의회 관계자들은 한국 정권 교체 시 대북 정책이 바뀔지에 우려 섞인 관심을 보인다. 방한 중인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대선주자나 그 참모들을 연쇄 접촉한 데서 미국의 불안감을 엿볼 수 있다. 미국은 대북 공조를 강조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럴 태세인지 의문이다.
유력 대선주자들은 기존 대북 정책과 궤를 달리하는 발언을 내놓는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경선후보는 ‘대북 대화 재개’, ‘개성공단 재가동’ 등을 공언했고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도 유보적 입장이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에 나선 마당에 우리만 다른 길을 고집할 수는 없다. 우리 내부부터 국가 명운이 걸린 안보관을 확고히 해야 한다.
[매일경제]
10. 디체킹 코리아 ; 성장과 공동체가치 강조한 제2한국보고서
어제 본지가 주최한 제26차 국민보고대회는 위기 상황에 놓인 대한민국을 살릴 해법으로 '디체킹(D-checking) 코리아'를 제안했다.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대한민국이 비상하기 위해서는 어설픈 정비보다는 비행기를 완전히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수준의 '디체킹'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이 보고서는 성장 정체와 공동체 신뢰 붕괴를 한국의 최대 위협 요인으로 파악했다. 고장난 이 두 개의 날개를 고치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작이 어렵다는 게 핵심인데 끝없이 경고음이 울리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적절한 처방이다.
본지가 1997년 새로운 국가경영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해 발간한 '부즈앨런 한국보고서'는 외환위기를 예측해 화제가 됐다. '디체킹 코리아'는 20년 만에 다시 쓴 국가 대개조 보고서인 만큼 주목을 끈다. 지금 한국은 외환위기 직전 넛크래커에 낀 상황보다 낫다고 볼 수 없다. 1인당 GDP는 10년 넘게 2만달러의 늪에 갇혀 있고, 2%대의 저성장 고착화가 우려되고 있다. 인구·소비·고용·투자가 동시에 감소하는 4대 절벽은 성장절벽, 중산층 몰락이라는 재앙을 낳을 수 있다.
최순실게이트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국가에 대한 신뢰도 추락,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이념 대립도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전대미문의 폭풍이 밀려오고 있다. 지금 성장엔진에 다시 불을 붙이지 않으면, 공동체의 가치를 복원시키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 파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대한민국호의 앞날은 암담하다.
저성장 터널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유가 필수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성장 회복에 대해 "경제민주화나 동반성장과 같이 국민 정서에 호소하는 방법으론 문제를 풀 수 없다"며 '자유로운 경쟁'을 강조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기업가정신을 꺾고, 기업을 옥죄는 규제 역시 성장의 적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했다고 호들갑을 떨 게 아니라 신규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게 규제부터 걷어내야 한다. 아직 승자가 없는 게임이니 잘만 하면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보고서는 특히 빅데이터 규제 철폐, 의료산업에서의 일자리 혁명, 대우조선 처리에 대한 합의와 승복에 방점을 찍었는데 대선주자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새 정부는 국가 대개조를 행동으로 옮겨 대한민국에 희망의 불씨를 되살려야 할 것이다.
주요신문칼럼
1. [세계일보][세계에세이] 봄과 리쿠르트 슈트
일본의 봄이 되면, 검정색 정장을 입고 삼삼오오 도시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을 볼 수 있다. 옷차림만 얼핏 보면 상갓집 조문을 가는 것처럼 보인다. 검은색 양복, 하얀 와이셔츠, 남자는 넥타이를 매지만 여자는 치마에 넥타이를 하지 않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또한 구두, 양말, 허리띠까지도 거의 세트로 돼 있다. 일본에서 젊은이들이 입는 이런 검정색 정장을 ‘리쿠르트 슈트’라고 한다. 기업 입사를 위한 면접자나 올해 갓 입사한 기업의 신입사원들이 입는 옷이다.
가격은 젊은이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 다양하지만, 옷의 디자인은 거의 획일화돼 있고, 옷 색깔도 검은색이 대부분이며, 간간이 감색이 눈에 뛸 정도다. 일본에서는 리쿠르트 슈트를 판매하는 전국적인 체인점이 있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 이런 체인점에서 붕어빵처럼 만든 일률적인 디자인의 옷을 입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면접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원자의 개성이 아닐까 한다. 나의 상식으로는 그렇다. 지원자의 개성 있고, 깔끔한 복장은 우선 첫인상에서 호감이 간다. 우리에게 지원자의 개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은 대체로 장점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면접을 통해서 지원자 내면의 깊이가 그 옷차림만큼 뒷받침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럼에도 활기에 넘치고 개성을 발휘해야 할 젊은이들의 입사 면접이나, 첫 사회 활동을 내디디면서 획일화된 검정색 정장을 입는 것은 무엇을 설명하는 것일까.
필자는 일본에서 회사를 운영하면서 사원 채용을 위한 면접을 여러 번 했다. 일본인 지원자는 앞서 말한 것처럼 나이와 성별의 상관없이 모두 리쿠르트 슈트 차림으로 왔다. 그리고 심지어 한국인 지원자도 일본인과 같은 옷차림으로 왔다. 나는 지원자들의 똑같은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면접이 끝난 후, 왜 리쿠르트 슈트 차림으로 면접하러 왔는가라고 추가 질문을 던졌다. 지원자들의 대답은 거의 모두 같았다. 학교에서 면접을 위해서 리쿠르트 슈트를 입어야 한다고 배운 것은 아니지만, 주위에서 그렇게 하니까 그냥 따라 하는 일종의 관습이라고 했다.
사실 이러한 분위기는 일본의 초등학교로 거슬려 올라간다. 일본의 초등학생은 세 가지가 획일화돼 있다. 교복, ‘란도셀’이라는 가방과 모자다. 나의 자녀는 일본의 초등학교를 다녔다. 일본의 초등학교에서는 교복을 입어야 하는 규정은 없고, 자율복장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어느 누구의 강제성이 없더라도 학생들은 모두다 교복을 입고, 란도셀을 메고, 모자를 쓰고 학교에 간다. 특히 겨울의 쌀쌀한 날씨에도 초등학생들의 교복으로 짧은 양말에 반바지를 입고, 종아리를 드러내 놓고 학교 가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안쓰럽다. 그러나 학생들도 학부모도 누구 하나 불평을 드러내거나 자신만의 튀는 옷을 입으려고 하지 않는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속담처럼 개인의 개성보다 조직의 틀에 맞추려는 일본 사회의 암묵적인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일본에서도 기업의 취직과 관련이 없는 젊은이들의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은 우리의 젊은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개성을 중요시한다. 오히려 고등학생만 되어도 짙은 화장을 하고, 머리 색깔을 바꾸며, 화려한 장신구로 멋을 내는 모습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들의 자유분방한 행동을 오히려 기성세대들은 우려스러운 시선으로까지 보기도 한다.
그랬던 그 젊은이들이 기업이라는 조직에 들어가면서 바로 변신을 하는 것이다. 개성을 감추고 집단의 틀에 자신을 맞추는 그러한 일본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나는 소름이 돋았고, 그러한 힘이 어디로 뻗어나갈지 경계의 눈초리를 뗄 수 없는 것이다.
2. [국민일보][색과 삶] 색맹에 대하여
어린 시절 내 친구는 고추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돕다가 덜 익은 고추를 따는 바람에 혼이 났다고 한다. 초록 고추와 빨강 고추를 구분하지 못하는 그는 적록색맹, 즉 빨강-초록 색맹이었다.
색의 지각에 이상을 보이는 색맹은 빨강과 초록을 구분하지 못하는 적록색맹이 가장 흔한 경우이고 간혹 노랑-파랑 색맹도 있다. 적록색맹은 빨강이나 초록을 갈색으로 보는데, 언제나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친구의 경우처럼 색맹인줄 모르고 지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색맹의 정도가 약한 경우를 색약이라고 한다.
색맹은 어머니 쪽을 통해 유전된다. 어머니는 색맹이 아니더라도 그 아들은 색맹이 될 수도 있다. 매우 드물긴 하지만 후천적인 색맹은 눈과 관련한 병을 앓아 생겨날 수 있고 악성빈혈, 비타민 결핍, 납중독 등으로 인해서 생기기도 한다. 색맹은 남성이 여성보다 10배 이상 많다. 여성이 남성보다 색을 훨씬 정확하게 볼 뿐 아니라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색을 전혀 보지 못하는 완전색맹은 흑백영화 보듯이 세상을 바라보는데 이런 경우는 백만명 중 한 명일 정도로 지극히 드물다. 색은 보는 것의 결과지만 감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색맹이 삶의 질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적록색맹인 사람이 생활하는 데 별다른 불편을 겪지 않는 이유는 언제나 상식으로 알고 있는 사실대로 색을 지각하기 때문이다. 운전을 할 때에도 신호등 불빛의 위치와 밝기에 익숙하게 반응하여 정상적인 사람이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하지 않다.
그러나 의사나 간호사, 비행기 조종사와 같이 생명의 위험과 직결되는 업무에 종사할 경우에는 반드시 색맹검사를 거치게 된다. 인간과 같이 색을 보는 포유류는 일부 원숭이밖에 없다. 붉은 깃발에 흥분하는 황소나 연분홍 옷을 입은 애완견 또한 색맹이다. 세상의 예쁜 색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3. [한겨레][조한욱의 서양 사람] 한 여성의 노력
여성 참정권을 최초로 인정한 나라가 어디일까? 그것은 민주주의 확립에 결정적 역할을 한 시민 혁명들을 주도했던 영국이나 미국이나 프랑스가 아니며, 평등을 기치로 내세우는 사회주의 국가들도 아니다. 그 나라는 국제 정치의 중심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뉴질랜드인데, 한 여성의 집요한 노력이 이끌어낸 결과였다.
영국에서 태어난 케이트 맬컴은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자라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년 뒤 어머니는 자식들을 이끌고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결혼해 케이트 셰퍼드가 된 그는 아들 하나를 낳은 주부였다. 그러다가 ‘여성 기독교인 절주 연합’과 관련을 맺게 된 일을 계기로 더 큰 활동을 시작했다. 절주 운동에 대한 지지가 주로 여성들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챈 그는 점차 여성 참정권 운동에 관심을 보이며 두각을 나타냈다.
사실 여성 참정권 획득은 당시의 정황에 비춰볼 때 비현실적인 목표일 수 있었다. 그러나 뛰어난 연설가로서 조직 활동에도 능력을 보인 그는 “인종이건, 계급이건, 종교건, 성별이건 분리하는 것은 비인간적이며 극복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자신의 명분에 대한 지지를 쌓아갔다. 1888년 그는 “뉴질랜드 여성들이 투표해야 할 이유”라는 팸플릿을 통해 그 필요성을 논증했다.
1891년 그가 초안을 작성하여 의회에 제출한, 여성의 참정권을 청원하는 법안은 결국 3년이 지난 1893년에 통과되었다. 예상할 수 있겠지만, 이 법안에 대한 가장 큰 반대 세력은 주조업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셰퍼드는 선거인 등록을 독려하여 임박한 선거에서 여성 유권자의 3분의 2가 투표했다.
뉴질랜드에서 여성 참정권을 획득한 뒤에도 셰퍼드는 영국과 미국의 참정권 운동가들과 교류하며 그들을 도왔고,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쇠약해진 뒤에도 계속 글을 써 여성의 권리 확장에 헌신했다. 뉴질랜드의 10달러 지폐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4. [아시아경제][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낙화(落花)
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하여 먼 데 사는 현학(顯學)이며 예술가들과 소통한다. 그들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같은 SNS 계정에는 어느 사이 봄꽃이 흐드러졌다. 춘신(春信)은 거침없이 북상하고 있다. 전
라도 화순에 사는 소설가 정찬주 선생이 지난 4일에 홍매 향을 가득 담아 '카톡'으로 보내자 경기도 안산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시인 윤제림 교수가 13일에 수양매화 한 떨기를 사진 찍어 화답하였다. 소설가는 안되겠다 싶었던지 나흘 뒤 광양 매화꽃비를 냅다 흩뿌려 '춘신보도경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사진 속 광양의 꽃비는 장하기 그지없어, 상춘객들이 우산으로 꽃세례를 가까스로 감당할 지경이었다.
무릇 꽃이란 그 생애의 모든 국면에서 우리에게 행복과 상념을 동시에 안겨준다. 가지에 물이 올라 기어코 싹을 틔울 때 우리는 생명의 힘과 인내를 실감한다. 꽃이 피어 여린 잎이 바람에 흔들리다 이내 만개하여 지천에 봄을 외치니 마침내 기운생동(氣韻生動). 그러나 절정은 그 마지막에 있으매 낙화(落花), 곧 작별의 의식이다.
마당 한편 고고한 목련이 생채기 하나 없는 순결한 몸을 대지 위에 던질 때이거나 벚꽃 소나기 아래에 섰을 때 우리는 설레는 마음 저 뒤에서 밀려드는 비애를 감지한다. 그래서 뭇 시인이 그 장렬함을 노래했거니와 나는 우리말로 시를 지은 무리 중에 으뜸을 다투기로 이형기와 지훈 조동탁을 꼽아 마땅하리라 본다. 두 시인이 모두 시제를 '낙화'라 하였다.
꽃이 지기로소니/바람을 탓하랴//주렴 밖에 성긴 별이/하나 둘 스러지고//귀촉도 울음 뒤에/머언 산이 다가서다//촛불을 꺼야 하리/꽃이 지는데/꽃 지는 그림자/뜰에 어리어//하이얀 미닫이가/우련 붉어라//묻혀서 사는 이의/고운 마음을/아는 이 있을까/저어하노니//꽃이 지는 아침은/울고 싶어라 <조지훈>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 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 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헤어지자/섬세한 손길을 흔들며/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나의 사랑, 나의 결별/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
지훈은 내면의 창을 슬쩍 열어 뜨락에 물든 계절의 징후를 진찰한다. 그의 내면은 공명하거니와 은은한 빛은 미닫이를 넘어 마음 속 깊은 자리를 물들이지 않는가. 은둔한 선비의 올곧음, 그 굳센 단절이 잠시 서글프다. 이형기는 결별을 감내하고 있다. '나'는 '그'의 등 뒤에 서서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오래 오래. 그는 멀어져 한 뼘, 한 점 크기로 지워져간다.
이윽고 나는 걸음을 돌이켜 제 길을 걷는다. 등은 작별의 언어다. 마지막 한 모금 사랑을 머금었다가 왈칵 눈물 한 방울, 흐느낌 한 호흡으로 삶의 절정을 환기한다. 아직 서울에 꽃소식이 없으나 서둘러 낙화를 이야기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우리는 등에 너무 오래 매달려 있었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오스카 로메로
1970년대 말 중앙아메리카 엘살바도르의 정정은 우파 군부정권과 좌익 반군의 대립으로 혼미했다. 폭력과 테러가 일상이었고, 가톨릭 교회도 대상에서 빠지지 않았다. 오스카 로메로(OscarRomero) 대주교가 벨기에 카톨리크 드 루방(deLouvain)대를 방문한 건 1980년 2월. 직전 3년 사이 50여 명의 신부가 정부 암살단 등에게 테러를 당했고, 6명이 숨졌다.
로메로 주교는 연설에서 “중요한 것은 왜 교회가 박해를 당하는가 하는 점이다. 모든 성직자가 공격받는 것도 아니고, 모든 교회가 타깃이 되는 것도 아니다. 공격받은 이들은 모두 시민들의 편에 서고자 한 이들이었다. 핵심은 빈자에 대한 태도다.”
한 달 뒤인 80년 3월 24일,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 병원의 ‘천주 섭리 소성당’에서 가진 그의 강론 요지도 그거였다. 빈자의 편에 서서 억압에 저항하며 불의와 폭력에 굴하지 말라는 것. 이날 뒤이은 미사 도중 그는 4명의 무장괴한이 쏜 총에 숨졌다. 향년 62세.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150여 년 동안 엘살바도르를 지배한 건 군벌과 지주였다. 1920년대 말 대공황으로 커피 수출이 격감하고 궁핍이 극에 달하자 농민ㆍ인디오들의 저항운동이 시작됐다. 아우구스타 파라분도 마르티가 주도한 반란과 그의 사후 창설된 좌익 반군 ‘파라분도 마르티 해방전선(FMLN)’은 북부와 동부를 거점으로 급속히 세력을 확장해갔다.
잦은 쿠데타와 정권교체 속에서도 집권 우익 군벌은 암살단까지 조직해 게릴라 및 잠재적 저항세력에 대한 테러를 일삼았다. 가톨릭 해방신학자들이 타깃이 된 건, 그들이 좌파여서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옹호하며 폭력을 비판해서였다.
보수 성향의 로메로가 성직생활을 하는 동안 점차 빈자에게 다가간 것도 그 곳이 교회의 자리, 신앙의 자리라 여겨서였다. 그는 스스로를 해방신학자라 여기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선명한 해방신학자였다.
그의 사후 영국 성공회를 비롯해 여러 기독교 교파와 교단이 그의 순교를 기렸지만, 정작 로마교황청의 평가는 인색했다. 그의 좌파 성향 때문이었다. 1997년에야 그의 시성 검토를 시작한 바티칸은 2015년 5월에야 그를 복자로 시복했다. 교황청의 판단과 무관하게 그를 진정한 성인으로 여겨온 세계인들은 그가 천국에 든 3월 24일을 로메로 축일로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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