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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매일신문]
1.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보수 재건 기대한다
유승민 의원이 바른정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이제 관심사는 유 후보가 본선에서 선전할지 여부다. 그러나 상황은 매우 어렵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유 후보의 지지율은 그야말로 바닥이다. 최근 리얼미터 조사에서 유 후보의 지지율은 2.2%에 그쳤다. 정당 지지율은 비교섭단체인 정의당에도 뒤진다. 유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전에 탄핵 심판 이후에는 지지율 추세가 달라질 것이라고 했지만 그런 변화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원인은 유 후보 개인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라 최순실 사태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보수 전체가 받은 타격에 있다고 봐야 한다. 유 후보가 박 전 대통령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지난해 총선에서는 공천도 받지 못하는 등 친박 세력과 다른 길을 걸으면서도 보수라는 정체성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보수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여론의 편향에서 그런 부정적 이미지와 거리가 있는 유 후보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유 후보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바로 보수의 재건이다. 유 후보도 이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는 수락 연설에서 “보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기”라며 “이 땅의 보수를 새로 세우는 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보수가 총체적 불신을 받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안보는 철저히 지키되 경제`사회 정책은 약자와 소외 계층을 배려한다는 그의 노선은 우리의 지정학적`시대적 요구에 잘 부응한다. 특히 안보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안보관은 믿음이 간다.
이런 점에 유권자가 주목한다면 이변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넘어야 할 큰 산이 있다. 바로 보수의 결집이다. 지금 대선 판도의 주도권은 야당이 쥐고 있다. 그러나 보수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분열돼 있다. 후보 단일화든 연대든 힘을 합치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
유 후보는 이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행동 방향을 정해야 한다. 앞으로 끝까지 완주할 것이냐 아니면 보수 재건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냐를 판단해야 할 시점이 분명히 올 것이다. 그때 결정의 기준은 보수의 결집이다.
2. 포스코 입사 지원 서류에 아는 직원 이름 쓰게 한 포철공고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는 지난해, 2학년 180명 재학생을 대상으로 취업 전형 절차를 진행하면서 포스코와 관련된 가족 관계를 사전에 파악했다. 가족 가운데 포스코에 다니는 직원의 이름을 명시하라고 한 탓에 학생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사돈의 팔촌에 이르기까지 조금이라도 연고가 있을 만한 포스코 직원을 찾는 소동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학교의 이 같은 사전 조사는 분명히 신중하지 못한 처사였다.
무엇보다도 학생의 능력과 성적 등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 기준만으로 취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포스코 가족 등 다른 요인이 작용할 수 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킨 점이 그렇다. 말하자면 공개경쟁의 기회 박탈 같은 좌절감을 느끼게 한 조치였다. 지난해 포스코와 포스코켐텍 등 계열사에 지원을 한 2학년 학생 180명 가운데 포스코와 계열사에 53명이 합격했다. 떨어져 졸업 전 다른 기업에 취업하는 등 구직 활동에 나설 127명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포스코에 가족이 없어서 떨어진 것 아니냐는 의혹을 품었고 그로 인해 논란을 빚은 것이 그 증거이다.
회사는 포스코 가족과 합격 학생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지만 학생과 학부모 불만은 당연하다. 해명의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진상은 밝혀져야 한다. 많은 포철공고 학생들의 꿈은 포스코와 포스코 계열사 입사이다. 적성에도 맞겠지만 안정적이고 괜찮은 보수에다 합격 후 군 입대에도 경력이 인정되는 등 취업 조건이 더없이 좋다. 따라서 학생들이 졸업 전 취업을 간절히 바라며 각종 자격증 획득과 봉사 활동 등 준비에 여념이 없었을 터인데 오해 여지가 충분한 조사를 했으니 학교 측에 대한 비난은 마땅하다.
다만 포스코와 계열사의 동시 입사 지원 방식은 평가할 만하다. 포스코와 계열사의 입사 지원 날짜를 다르게 한 종전 방식과 달리 취업의 기회가 여러 학생에게 고루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성적 상위자 등 특정층에게만 취업 기회를 주는 데 따른 다른 학생들의 역차별 문제를 없앨 수 있다. 포철공고는 철강 분야 마이스터고인 만큼 갈고닦은 실력과 능력, 공정한 기회와 공평한 평가로 취업이 결정되는 일이야말로 학생들이 바라는 꿈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데일리]
3. 어처구니없는 세월호 ‘돼지뼈 소동’
해양수산부의 세월호 인양 작업이 ‘돼지뼈 소동’으로 도마에 올랐다. 해수부는 그제 긴급 브리핑을 통해 세월호가 실려진 반잠수식 선박 갑판 위에서 미수습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 7점과 신발 등 유류품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불과 4시간여 만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결과 유골은 사람이 아닌 돼지의 뼈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밝혀졌다. 선체에 구멍을 뚫느냐를 놓고 갈팡질팡한 데 이어 어처구니없는 소동으로 혼란과 불신을 자초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해수부의 섣부른 발표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있는 미수습자 9명의 가족들에게 또 한 번의 좌절을 안겨주었다. 그들의 아픔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돼지뼈와 유류품이 세월호 선체가 아닌 반잠수식 선박 갑판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이다. 해수부가 설치했다는 3중 유실 대책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선체 유실방지망에 허점이 있다면 자칫 미수습자의 유골을 다 찾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세월호 인양으로 ‘잠수함 충돌설’, ‘고의 침몰설’, ‘폭발설’ 등 난무했던 괴담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논란은 가시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선체 인양 지연이 고의적이라느니 기술적인 문제로 램프를 자른 것을 두고 ‘증거를 인멸하려는 행위’라느니 하는 또 다른 음모론이 나돌고 있다. 정파성을 띤 특정 세력이 혼란을 부추기려 의도적으로 진실을 왜곡한 잘못이 크지만 정부의 부실한 초동대처와 불투명한 정보 공개 등이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없지 않다.
앞으로 본격화할 미수습자 수색과 선체 조사를 통한 사고원인 규명은 인양보다 몇 배나 더 힘든 과정일 수 있다. 해수부는 유가족, 선체조사위원회와 긴밀한 협의 체제를 갖추고 모든 과정을 국민에게 투명하고 신속하게 알려 터무니없는 논란이 생길 여지를 없앨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1차 작업을 거친 후 조사위와 협의하겠다”며 선체 절단 여부를 일단 유보한 것은 잘한 일이다. 미수습자 수색과 진상규명 못지않게 세월호가 더 이상 괴담에 편승한 정치적 놀음에 휩싸이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서울신문]
4. 대선 주자들, 저성장시대 ‘행복비전’ 내놓아야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을 넘는 데 또 실패했다. 벌써 10년째다. 엊그제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6년 국민계정’(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만 7561달러로 2만 달러대에 머물렀다.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8%로 수년째 2%대 박스권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고 있다. 보통 선진국으로 인정받으려면 1인당 GNI가 3만 달러를 넘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춘 나라는 미국·일본·영국 등 43개국이다. 46위인 우리는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고비를 넘지 못하고 있다.
물론 1인당 소득과 경제성장률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담보하는 잣대는 아니다. 하지만 부국(富國)이 뒷받침되지 않는 행복이란 추상적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교훈을 우리 현대사가 똑똑히 증명하고 있다. 우리 헌법 전문이 밝히고 있듯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도록 하는 데에는 무엇보다 경제가 밑받침이 돼야 한다.
그런 까닭에 앞으로 5년 대한민국을 이끌 국가지도자 역량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중진국 함정에 빠진 우리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켜 선진국에 진입시킬 비전과 청사진이 제시돼야 한다.
이처럼 저성장의 돌파구가 절실한 시점이지만 대선 주자들이 쏟아내는 경제성장 공약은 진단은 그런대로 맞지만 처방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뜬구름 잡기식 정책이 대부분이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성장 엔진이 꺼졌다는 것이다. 말을 바꾸면 한국 경제의 재도약은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산업구조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유력 대선 후보들이 4차 산업혁명을 주요 과제로 삼은 것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로봇 등 정보기술과 기존 제조업을 결합한 산업 구조의 혁신이 한국 경제의 돌파구가 될 것이다.
그러나 각 후보의 공약은 졸속이며 천편일률적이다. 무슨 무슨 위원회를 만들겠다느니, 창의적 교육이라느니, 학제를 개편하겠다느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당장 집권하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고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하는데 그저 논의하겠다는 식이니 답답할 따름이다. 우리 경제 신성장 엔진의 주체는 정부 부처가 아닌 민간 기업이다. 4차 산업혁명의 주체 역시 기업이다. 새로운 제품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비로소 우리 경제와 국민의 숨통이 열린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지금 기업 때리기에 주력할 게 아니라 기업이 열정을 갖고 혁신을 통해 꺼져 버린 경제 성장엔진을 다시 살릴 수 있도록 장애물, 즉 규제를 혁파하는 일이 급선무다. 차기 행정부가 총체적인 비전을 갖고 경제성장을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대선 주자들은 이에 걸맞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5. 내년 양극화 완화 예산 지침 주목한다
정부가 그제 내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 계획안 지침을 확정해 의결했다. 각 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 등이 내년 예산을 짤 때 적용해야 하는 기본 방향을 정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올해(400조 5000억원)보다 3.4% 늘어난 414조 3000억원 규모로 일자리 창출과 4차 산업혁명 대응, 저출산 극복, 양극화 완화 등 4개 분야에 예산을 집중 투자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4대 중점 분야 가운데 양극화 완화가 포함됐다는 점이다. 청년 실업과 저출산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반목과 갈등의 근저에 소득 양극화 문제가 자리 잡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지난해 소득 상위 1%가 국민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상위 10%의 소득도 48.5%에 이른다. 선진국 가운데 미국을 제외하곤 우리의 소득 양극화가 가장 심각하다는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가 나올 정도로 엄중한 사안이 됐다.
걱정스러운 것은 2008년 이후 소득 분배가 다시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44만 7000원으로 전년보다 5.6% 줄었다. 사상 최대의 감소폭이다. 반면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834만 8000원으로 2.1% 늘었다. 빈부 격차가 심화되면서 대다수 국민의 가처분 소득이 감소하고 이것이 다시 내수와 경제 침체로 이어지는 저성장의 악순환 고리를 만들었다. 양극화의 폐해가 국가 성장의 발목을 잡는 위기까지 온 것이다.
양극화 폐해는 국가 전체적으로 중소기업과 임금 노동자 전반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지난 수십년 동안 대기업의 수출과 투자 중심으로 이뤄진 성장 제일주의 패러다임은 일부 대기업에 부를 몰아줬지만 정작 하청 구조인 중소기업과 서민 경제를 어렵게 하는 이중 구조를 고착화시켰다. 고용 파급력이 적은 대기업 선도형 성장 정책으로 낙수 효과는 사라진 채 중소기업의 목줄을 죄면서 고용 절벽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됐다. 진보·보수와 상관없이 대선 주자들이 앞다퉈 배분과 성장의 조화를 꾀하는 새로운 경제 정책을 제시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정부 예산으로 고질적인 양극화 문제가 단숨에 해소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선도자의 역할은 할 수 있다. 정부의 양극화 완화 지침이 단순한 시혜성 복지 정책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구체적인 정책으로 연결해 내수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6. ‘찍어 내기 감찰’ 우병우 수사 왜 좌고우면하나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국정 농단 수사의 정점을 향해 속도를 내고 있다. 특수본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도 예상과 달리 비교적 신속히 청구했다. 행여라도 좌고우면한다는 인상을 줄까 깊이 고심한 흔적이 엿보였다. 하지만 유독 꾸물거리는 인상을 주는 수사 대상이 우병우 전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이다. “우병우 수사를 안 하느냐, 못 하느냐”는 비판이 커진다. 2기 특수본이 우 전 수석의 수사를 개시했다는 말은 진작에 들렸지만 이렇다 할 진척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우 전 수석이 거의 횡포에 가까운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한 정황은 곳곳에서 이미 감지됐다. 그의 말 한마디가 곧 법으로 통했을 정도로 청와대 실세 중에서도 실세였다. 박영수 특검팀은 그가 정권의 입맛에 들지 않는 공직자를 찍어 내기 위해 감찰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당시 우 전 수석은 김재중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감시국장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CJ E&M을 조사해 불공정거래 행위로 검찰에 고발하라고 지시했다. 그 지시를 어기고 시정명령 조치만 했던 김 전 국장은 한직으로 밀려난 것도 모자라 민정수석실의 표적 감찰을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일부 감사관은 부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아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에 불려가 협박성 폭언을 듣기도 했다.
이뿐이 아니다. 자신의 측근인 검찰 수사관을 문체부 주도의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 책임자로 앉히려 한 혐의도 받고 있다.
특수본은 특검의 수사 내용을 고스란히 넘겨받았다. 이후 거의 한 달이 다 돼 가는데도 우 전 수석 수사는 왜 이리 잠잠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특검은 검찰이 보강 수사를 해서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하면 우 전 수석은 100% 구속될 거라고 장담까지 했다. 지금껏 외부에서 확인된 보강 수사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압수수색 정도다. 그마저도 임의 제출 형식으로 자료를 받았으니 유의미한 증거물이 얼마나 됐는지는 알 수도 없다. 면피성 수사가 아니었느냐는 의심이 나올 만도 하다.
서슬 퍼렜던 특검도 우 전 수석 수사는 이런저런 구실로 얼버무렸던 게 사실이다. 박 전 대통령 측근들의 국정 농단을 감독하기는커녕 ‘호위무사’ 역할을 했던 그는 온전히 법의 심판대에 올라야 한다. 검찰이 빼고 보태지 않는 엄정한 수사를 하고 있는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조선일보]
7. 중도·보수 단일화, 국민 감동시킬 수 있는가
조기 대선을 앞두고 보수·중도 단일화가 큰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력들이 연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의당의 안철수,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바른정당의 유승민 간의 후보 단일화 여부다. 이 단일화가 성사되면 문 전 대표의 일방 독주는 더 이상 계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홍 지사를 제외한 다른 두 사람은 아직 소극적이다. 안철수 전 대표는 '단일화'를 언급조차 않고 있고 유 의원은 바른정당 후보로 선출된 이후 일단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태도다.
그러나 지금의 여론조사 결과, 대선 구도를 '1대1'로 만들지 않고는 문 전 대표를 이기기 어렵다는 점에서 선거 막판까지 중도·보수 단일화 논의는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종인, 김무성, 박지원 같은 중견 정치인들이 가능성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제는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 측 최명길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하기도 했다. 안 전 대표도 실제로는 '1대1' 구도를 추구하고 있다. 31일 자유한국당에 이어 내달 4일 국민의당까지 후보를 확정하면 단일화 논의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것이다.
선거를 앞둔 단일화 논의는 주로 현 야권에서 벌어져 왔던 풍경이다. 누구만 아니면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다는 식이었다. 지금의 단일화 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정인에 대한 거부감만으로 다른 세력이 모두 뭉치자는 것은 원칙과 정도가 아니다. 두 정당 이상의 선거 연대는 유권자들에게 정치·정책의 공통분모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 없이 무조건 표만 합치자는 것은 야합(野合)에 가깝다. 유권자들이 다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실현되더라도 큰 효과도 없을 것이다.
지금 보수층은 문 전 대표의 대북·안보관에 대해 커다란 불안감을 갖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안보는 보수'를 지향하지만 국민의당은 여전히 햇볕정책을 따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사드를 놓고 안 후보와 국민의당 입장이 서로 다르다. 이 중대한 노선·정책 차이가 어떻게 접점을 찾을 수 있느냐가 단일화 논의의 관건이 돼야 한다. 자유한국당에 남아 있는 친박 핵심들의 존재도 단일화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과거의 후보 단일화가 '야합'으로 비판받던 때와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국민이 정치 세력 간의 협치(協治)를 선호하고 있다. 게다가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60% 이상의 국회 의석을 갖지 않으면 그 어떤 대통령도 국정을 제대로 끌고 가기 어렵다. 연정(聯政)을 하지 않으면 어느 당도 60%를 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문 전 대표가 집권하면 과거 노무현식 국민 편 가르기 국정 운영이 재연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노선·정책에서 다소 차이가 있어도 협치·연정의 시대로 가는 큰 비전을 담을 수 있다면 그런 정당 간 연대는 유권자들의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분권 시대를 열 개헌(改憲)도 단일화의 촉매가 될 수 있다.
지금 상당수 국민이 흔쾌히 선택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선 구도의 변화를 바라는 수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국민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단일화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노선·정책에 대한 진지한 논의, 협치·연정에 대한 진정한 공감대 없이 자리 나누기식 협상으로 억지로 단일화를 꿰맞춰 보려 한다면 아예 시작도 않는 것이 나을 것이다.
8. 정부 사업비 써서 정치에 학생 동원한 교수
전북 우석대 일부 학생이 민주당 정치 행사에 동원된 사건과 관련, 검찰이 어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은 지난달 문재인 전 대표 지지 모임 '전북포럼' 출범 행사에 태권도학과 학생 172명을 데려간 우석대 교수 연구실과 태권도특성화사업단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에 앞서 선관위는 우석대 교수 등 4명을 제3자 기부행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학생들은 행사 후 식사와 영화 관람을 했다. 이 돈은 교수 개인 돈이 아니라 교육부로부터 지원받은 지방 특성화 예산이었다고 한다. 대학교수가 정부로부터 받은 사업비를 정치에 사용할 생각을 했다는 발상 자체가 놀랍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학생들은 민주당 대선 경선 선거인단에도 참여하라고 요청받았다고 한다. 또 이번 사건이 알려지자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허위 증언을 하도록 종용받았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두드러진 현상 중의 하나는 유력 대선 주자 주변에 '폴리페서'(정치 지망 교수)들이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문 전 대표 캠프엔 무려 1000명을 넘었다고 한다. 문제의 교수도 그들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연구와 교육은 뒷전이고 대선 주자에 줄을 서 나중에 한자리해보려는 교수가 이렇게 많다.
교수인지 정치인인지 알 수 없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이야말로 대학 교육을 망치는 청산돼야 할 적폐(積弊)다. 문 전 대표가 우석대 교수 문제부터 분명히 처리하고 1000명이 넘게 몰려든 교수들도 정리하기 바란다. 지지율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교육이 아니라 정치가 본업인 교수들이 아무 제한 없이 활개치는 것은 명백한 제도적 허점이다. 바로잡아야 한다.
[동아일보]
9. 부모동의 장병만 지뢰제거 맡긴 軍 정상인가
육군의 한 공병대대가 지난달 6·25전쟁 당시 경기도에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는 작업에 투입될 병사를 선발하면서 부모로부터 동의를 구했다고 한다. 필요한 병사 30명 중 부모가 허락하지 않은 3명은 빼고 모자란 병력을 추가 선발했다. 이 대대는 작년에도 같은 이유로 병사 5명을 다시 선발했다고 한다. 부모의 사전 동의를 받고 움직이는 군이 얼마나 효율적인 군사 대응을 해낼 수 있는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일은 지뢰 제거 작업에 나선 병사의 부모가 이의를 제기해 드러났다. 규정에도 없는 부모 동의 절차를 넣어 병사들은 물론 부모들 사이에 형평성 논란을 일으킨 것은 해당 부대장의 중대한 실책이다. 육군은 “부적절했다며 즉각 시정 조치했다”고 했지만 군에 대한 불신만 커지고 말았다. 일선 부대에서 부모의 간섭을 허용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성인이 된 병사의 해외 파병 때 부모 동의가 필수항목이 된 지도 올해로 13년이 됐다. 2010년 예편한 이상의 합참의장은 이 절차가 ‘병영 내 포퓰리즘’이라며 없애려 했으나 실패했다.
부모가 군에 있는 자녀의 안위에 노심초사(勞心焦思)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2년 전 비무장지대(DMZ)에서 일어난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부모들은 지뢰 제거에 더 예민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대장이 수색과 지뢰 제거는 다른 임무이고 철저히 준비하고 수칙을 지키면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부모를 안심시켰어야 했다.
강군(强軍)이 되려면 값비싼 첨단무기를 들여오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밑바탕에 장교와 병사, 그리고 군과 국민 간의 탄탄한 신뢰가 깔려 있어야 한다. 병력 운용에 부모의 동의가 필요했다는 점은 군과 국민 사이의 믿음에 크게 금이 갔다는 반증이다. 남북이 정전상태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군이 즉각 전투태세에 나서려면 신뢰만큼 중요한 자산이 없다. 병사는 물론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도 병역 의무만큼 나라를 사랑하는 일이 따로 없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세계일보]
10. 朴 오늘 영장심사 출석… 법원 판단에 모두 승복하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오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대통령 직에서 파면된 지 20일 만이다. 박 전 대통령은 영장심사를 받으러 판사 앞에 서는 첫 전직 국가원수라는 오명을 역사에 남기게 됐다. 탄핵 찬반 여부를 떠나 국가적으로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고 착잡한 심정이다.
박 전 대통령이 영장심사에 출석하게 된 데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뇌물수수 등 13개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상황에 서면 심사로만 구속 여부를 결정하게 되면 구속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직 당시 검찰과 특검 조사를 모두 외면했던 박 전 대통령이 법 절차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다행이다. 영장심사에서 박 전 대통령은 뇌물죄 등 혐의에 대해 직접 무죄를 항변할 것으로 보인다. 출석에 응한 만큼 억울한 점을 소명하는 것은 ‘자연인 박근혜’의 당연한 권리다.
헌정 사상 세 번째로 전직 대통령 구속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사법부로서도 고민이 작지 않을 것이다. 그럴수록 특정세력의 외압에 흔들리지 말고 법과 원칙에 근거해 현명하게 판단을 내려야 한다. 법조계에선 혐의의 중대성이나 공범으로 지목된 인사 대부분이 구속된 터라 법적용 형평성을 감안할 때 구속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고 한다. 반면 형법상의 불구속 수사원칙과 국격 추락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구속 여부는 법원이 법리에 따라 결정을 내릴 문제다. 그런 만큼 정치권은 논란이 될 만한 일은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유한국당 의원 82명이 불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청원서를 어제 법원에 제출한 것은 자칫 사법부에 대한 외압으로 비쳐질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법부의 결정에 국민 모두 깨끗이 승복하는 일이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여부가 갈등과 대립의 불쏘시개로 전락하는 일만은 결단코 없어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주간경향][편집실에서] 서바이벌 드라마
2013년 일본에서 방영된 <리미트>라는 드라마가 있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한 고등학교의 반 학생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농촌마을과의 교류 체험 캠프를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운전사는 졸음운전을 하고, 30여명이 탄 버스는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살아남은 학생은 여섯 명.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구조대가 즉각 출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못했다. 휴대전화는 통신 가능한 지역에서 벗어나 있었다. 운전사는 당초 가기로 한 마을이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 버스를 몰았다. 학교에서 부(副)담임선생은 인솔 선생이 학교로 도착 확인 전화를 한 것으로 착각했다. 한편 버스회사에서는 운전사에게서 도착 전화가 오지 않자, 낮에 사표를 내겠다고 하소연한 사실을 상기하며 화가 나 도망친 것으로 여겨버린다.
생존자들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깊은 숲속에서 생존경쟁을 벌인다. 12부작의 이 드라마는 두 축으로 진행된다. 한 축은 사고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 엉망진창인 모습을 그렸고, 다른 한 축은 여섯 명의 생존자들이 극한의 상황 속에서 따돌림·증오 등으로 생존경쟁을 벌이는 것을 그렸다. 관심을 끌었던 것은 사고의 발생과 수습 과정이다.
다음날 부담임선생은 교장에게 보고하고 경찰에 전화를 걸려 하지만 교장은 피해자 가족들이 학교의 책임을 물을까봐 신고를 하지 못하게 한다. 버스회사는 경찰이 수사할까봐 우선 근무자료를 찢어버린다. 운전사가 과도한 근무로 잠을 충분히 잘 수 없는 상태였던 데다 적절한 시간에 교대근무자를 배치해주지 않은 잘못을 숨기기 위해서다. 관련자들은 30여명 피해자의 구조가 아니라 오직 사고 책임 회피에만 신경쓴다.
나흘이 지나서야 경찰은 사고 현장이 어디인지 확인하게 된다. 이쯤되면 이 일본 드라마가 어떤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고 눈치챌 법하다. 2013년에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마치 세월호 침몰 후에 이 사건을 비유한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안개 속에서 세월호는 출항을 강행했다. 침몰 신고가 들어왔어도 해상관제센터는 무능력으로 일관했다. 현장으로 출동한 해경은 승객 구조를 위한 선내 진입을 하지 않았다. 승객들이 바깥으로 나오도록 적극적인 유도도 시도하지 않았다. 선장과 선원은 승객을 내팽개치고 자신들부터 먼저 탈출했다.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이 관저에 머물며 대면보고조차 제대로 받지 않았다. 돈만을 밝힌 불법 증축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관피아들의 문제도 드러났다. 하지만 사고 이후 관련자들에게 불리한 자료들은 은폐됐고, 세월호 특조위의 활동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수차례 벽에 부닥쳤다.
국회에서 세월호 관련 입법 세미나가 열려 취재를 한 적이 있다. 세미나가 거의 끝난 후 사회자가 피해자 가족에게 소감을 한마디씩 물었다. 한 피해자 부모가 마이크를 들었다. 이 부모는 소감 대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이 외마디 비명에 절절히 배어 있었다.
세월호 선체가 3년 만에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정확한 조사를 기피하는 한,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않는 한 이런 사고는 어디에서 다시 고개를 내밀지 모른다. ‘제2기 세월호 특조위’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정치적 현실은 여의치 않다. 이 같은 사고가 다시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우리 사회에서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는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각자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서바이벌의 세상이다.
2.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순댓국, 북방음식에서 국민메뉴로
순대는 평안도, 함경도 등 우리나라 북부지방에서 즐겨 먹던 음식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칭기즈칸의 몽골 기마군단이 돼지 창자에 곡식, 채소 등을 넣어 말리거나 얼려서 전투식량으로 활용했던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전통적인 순대는 찰밥에 숙주나 우거지 등 채소, 돼지고기와 선지 등을 고루 섞어 돼지창자에 밀어 넣은 다음 삶아서 만든다.
순댓국은 돼지 뼈를 푹 우려내어 육수를 만들어 뚝배기에 담고 순대, 머리고기, 내장 등을 고루 넣은 후 밥을 더해 끓여 먹는 음식이다. 아마도 어렵던 시절 구하기 쉽지 않은 순대를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을 수 있도록 탕으로 개발한 것이 아닐까 한다. 순댓국에는 다진 양념장, 새우젓, 부추, 들깨, 파 등을 식성에 따라 넣어 먹으면 제격이다. 또 비슷한 음식으로 돼지 뼈 육수에 편육과 밥을 넣어 끓이는 돼지국밥이 있다. 6·25전쟁의 피란길에 저렴하고 구하기 쉬운 재료를 활용할 수 있어서 부산, 대구, 밀양 등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순댓국은 이제 누구나 즐기는 서민 메뉴가 된 만큼 맛깔나게 잘하는 집들이 곳곳에 있어 맛집이 큰 의미가 없을 수 도 있으나 그래도 순댓국 하면 떠오르는 집들이 있어 몇 군데 소개한다.
서울 대림동 대림중학교 옆 골목에 ‘삼거리 먼지막 순대국’이 있다. 1959년에 개업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순댓국집이다. 근처 처음 가게를 하던 곳이 예전 시흥의 과수원이 있던 삼거리 ‘원지목’이어서, 부르기 쉽게 ‘먼지막’으로 이름 지었다. 진한 육수에 직접 만든 순대, 머리고기, 내장을 푸짐하게 넣어주는 구수한 옛날식 순댓국이다.
착한 가격으로, 창업 이래 순댓국 가격변동 내용을 가게에 써서 붙여 놓고 있다. 신대방동 보라매역 인근에는 20년 이상 영업해 온 ‘서일순대국’이 있다. 작고 허름한 가게였는데, 지금은 확장해서 꽤 커졌다. 시래기, 당면 등을 넣어 만든 야채순대가 특색이다. 육수가 진하고 구수하지만 잡내가 전혀 없어 깔끔하다.
강남 뱅뱅사거리 인근에 있는 ‘남순남순대국’은 20여년 전 ‘서초순대국’이란 상호로 조그맣게 시작했는데 지금은 큰 점포로 이전해 깔끔하게 단장했다. 진한 탕국에 당면을 넣은 쫄깃한 찹쌀순대와 돼지고기, 머리고기 등을 고루 넣어 준다. 중림동 약현성당 골목 입구에 있는 ‘황성집’은 아바이왕순대로 알려져 있으며 40년 넘는 역사와 맛을 자랑하는 집이다.
돼지국밥집도 서울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소문 충정로역 인근에 부산 출신 사장이 하는 ‘밀양돼지국밥’이 있다. 길에서는 잘 안 보이나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예쁜 노랑색 집이 나타난다. 드라마 촬영 장소로도 이용되는데, 지나는 기차소리도 들리고 테이블, 인테리어도 옛 멋이 나는 분위기다. 큰 뚝배기에 돼지고기를 푸짐하게 넣고 부추와 다진 양념을 얹어 주는데, 원조의 맛이라 한다. 필운동 서촌 초입에 있는 ‘송원가마솥 국밥집’은 잘 우려낸 육수에 돼지고기 편육을 듬뿍 넣고 부추를 더해 국밥 맛을 자랑한다.
이렇게 소개하다 보니 지금은 없어져 아쉬운 집이 더 생각난다. 을지로4가역 부근에 ‘전통아바이순대’라는 작은 집이 있었다. 순대, 고기, 밥을 푸짐하게 담아 토렴해서 내는데 시골장터를 떠올리게 했다. 그 맛과 분위기에 취해 언제나 긴 줄을 섰었는데 얼마 전 문을 닫았다.
가난했던 피란 시절 많은 이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 주던 순댓국과 돼지국밥은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인 지금도 대표적인 서민 메뉴로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3. [중앙일보][분수대] 염라대왕의 거울
전시장에 청동거울이 매달려 있다. 고려시대 것이다. 그 옆에 무시무시한 그림이 있다. ‘염라대왕과 대애지옥’이다. 그림에도 거울이 등장한다. 업경(業鏡)이다. 줄지어 있는 사람들이 생전에 지은 죄가 거울에 비친다. 그림 하단 가운데 거울에 가축을 죽이는 모습이 또렷하다. 그 밑에는 죗값을 치르는 장면이 나타난다. 사람을 절구에 넣고 짓이기고 있다. 끔찍한 형벌이다. 거울 앞에 다가서기가 망설여진다.
그림은 ‘시왕도(十王圖)’ 중 하나다. 시왕은 인간의 죄를 심판하는 왕 열 명을 가리킨다. 염라대왕은 그중 다섯 번째다. 사람들의 행적을 두루마리 종이에 일일이 기록한다. 한 개인의 대차대조표라고나 할까. 세상만사를 담는 거울처럼 죄를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가 없다. 분식회계는 불가능하다. ‘시왕도’는 열 폭으로 이뤄졌다. 이를테면 지옥 연작이다. 그림 모두 섬뜩하다.
예컨대 가장 먼저 등장하는 ‘진광대왕의 철정지옥’. 뜨겁게 달군 철판에 죄인을 눕히고 온몸에 쇠못을 박고 있다. 손·발·머리 등 어디 한 곳 빠짐없이 무려 500번의 고통을 준다고 한다. 세 번째 ‘송제대왕의 발설지옥’도 공포스럽다. 남을 비방, 혹은 욕한 사람을 기둥에 묶어 놓고 혀를 뽑아 버린다. 이게 끝이 아니다. 늘어진 혀 위에서 소를 몰며 쟁기질을 한다. 역시 입단속이 중요하다.
이들 ‘시왕도’는 서울 강남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볼 수 있다. 조선 후기인 1764년에 제작된 것이다. 평범한 주인공 김자홍을 내세워 저승세계를 둘러본 주호민 작가의 인기 웹툰 ‘신과 함께’ 이미지를 곁들이며 관객의 이해를 돕고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불화가 보다 가깝게 다가온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도 돌아보게 된다. “과연 나는 열 명의 심판관을 통과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반성과 각오가 겹친다.
‘시왕도’는 죽은 이들을 기리는 절집의 명부전(冥府殿)에 걸었다. 그렇다고 두려움에 휩싸일 필요는 없다. 명부전의 주인장은 지장보살(地藏菩薩). 무서운 시왕과 달리 인자한 보살이다.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러 부처가 되기를 거부하고 몸소 지옥에 내려왔다. 사람들에게 선업(善業)을 쌓으라고 권한다. 다만 기억할 것 하나, 명부전은 임진왜란·병자호란 양란 이후 활발하게 세워졌다. ‘시왕도’ 또한 18세기에 성행했다. 작품마다 내용·구성은 조금씩 다르지만 고단한 현실에 대한 반작용 비슷하다. 세월호 인양과 대통령 심판, 두 고난에 직면한 지금 ‘시왕도’가 더욱 아리기만 하다.
4. [한국일보][삶과 문화] 이 봄, 우리는 꽃보다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며칠 전 지방에 다녀왔습니다. 당연히 서울보다 봄이 일러 매화나 산수유 같이 일찍 피는 꽃들은 말할 것도 없고, 능수버들까지 물기를 머금고 능청능청하는 것이었습니다. 봄이 오는 것을 내가 눈치 채기도 전에 벌서 봄이 왔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봄이 빨리 왔다고 생각하는 저를 보고 반성케 되었습니다. 봄이 제 생각보다 빨리 온 것도 사실이지만 세월이 가고 봄이 오는 것조차 눈치 채는 것에 민감치 못했던 저를 보게 된 겁니다. 봄이 빨랐던 것이 아니라 제가 느린 것이었지요. 그럼에도 저는 저를 중심으로 봄이 빨리 왔다고 하며 제가 늦었다고는 생각지 않았던 겁니다.
그랬습니다. 봄이 오는데 저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고, 봄이 오는 것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면 봄이 오는 것이라도 일찍 눈치 채고 사람들에게 봄의 기쁜 소식을 나르기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최순실씨 사건이 드러난 작년 10월 이후 오늘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거의 모두 봄소식보다 더 큰 뉴스들 때문에 봄 손님 오시는 것을 영접하는 데 소홀한데 저도 그랬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봄 손님 오시는 것을 환영치 못하게 만든 사람들이 참 나쁘다고 남 탓하다가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는 제가 과연 천주교 신부요 환경의 수호자인 성 프란치스코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지 반성을 했습니다.
그런데 반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봄이 이 꽃들을 피우는 데 내가 한 것이 너무 없었던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이 꽃들만큼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 반성이 되었습니다. 꽃들은 실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까! 이 꽃들은 누구를 행복하게 하겠다고 하지 않으면서도 실로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행복하게 합니다.
만일 꽃이 누구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꽃의 탓이 아니라 그 꽃을 보지 않은 사람의 탓이요, 보고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그 사람의 불감증이 탓이겠지요. 그런데 저라는 사람은 본래 나의 행복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까지 행복하게 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 나는 몇 사람이나 행복하게 하고 있는지. 아니, 오히려 남을 힘들게 하고, 더 나아가 불행하게 하고 있지나 않은지 부끄러움과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저를 반성하면서 이런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봅니다. 아름답기로만 치면 꽃이 사람보다 더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러니 아름다움이 주는 행복만 놓고 보면 꽃이 저보다 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겠지요. 그런데 아름다움보다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하는 것이 있고, 꽃의 아름다움보다 더 인간을 아름답게 하는 것도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사실 꽃의 아름다움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아름다움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꽃이 우리를 사랑해주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꽃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가 꽃을 사랑하지 꽃이 우리를 사랑하겠습니까? 꽃은 무위(無爲)의 행복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반대로 우리는 사랑하겠다고 하면서 나도 불행하고 남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아무튼 꽃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도 우리는 꽃을 사랑합니다. 더 위대하고 더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지 않아도 사랑하고, 싫어도 사랑하고, 미워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행복하게 함에 있어서 우리가 꽃의 아름다움을 능가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사랑하는 것입니다. 꽃보다 우리가 더 사랑하는 것이고, 꽃이 사랑치 않는 미운 사람까지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사랑할 때 오는 것이기에 우리는 미운 사람 때문에 사랑하지 않고 나를 위해 사랑하며, 행복하기 위해 사랑합니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마취
진통제는 체내 통증유발물질의 생성을 억제함으로써 통증을 잡고, 마취제는 뇌와 척수의 신경전달 메커니즘을 차단함으로써 감각(전신마취의 경우 의식)을 잠정적으로 없앤다.
진통제가 주로 사후적으로 처방되는 반면, 마취(제)는 대개 본격적인 의료행위에 앞서 선제적으로 행해진다. 마취는 환자 입장에서 통증을 경감하는 효과도 있지만, 의료진에게 수술 등 복잡하고 정교한 처치를 통제된 조건에서 할 수 있게 하는 데도 필수적인 의료행위다. 화타의 마비산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명성은 마비산의 효능에 크게 의존했을 것이다.
근대적 의미의 마취가 1842년 3월 30일 미국의 젊은 외과의 크로포드 롱(Crawford Long, 1815~1878)에 의해 행해졌다. 그는 목에 난 종기 제거 시술을 받으러 온 환자에게 수건에 뿌린 황산에테르(sulfuric ether) 기체를 들이마시게 하는 방법으로 마취에 성공했다. 롱은 이후 수년 간 분만을 포함한 다양한 처치에 그 방법을 활용했고, 1849년 ‘The southern Medical and SurgicalJournal’에 결과를 발표했다.
조지아 주 매디슨카운티에서 태어난 그는 조지아 주립대와 캔터키 주 트랜실베이니아대를 거쳐 펜실베이니아대에서 학위를 받고 의사가 됐다. 조지아 주 잭슨카운티의 제퍼슨에서 개업한 그는 수련의 시절 알게 된 에테르의 효능을 혼자 연구했고, 독자적으로 임상 실험했다. 그건 지금 관점에서 보자면 극도로 위험한 의료행위였다. 마취가 뇌와 중추신경에 직접 개입하는 과정인 만큼, 그르칠 경우 혼수상태와 뇌사, 호흡 마비로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롱은 신중했고, 행운도 누렸다.
에테르를 이용한 마취 시술 효능을 처음 발표한 이는 보스턴의 외과의 윌리엄 모턴(WilliamMorton)이었다. 그는 1846년 12월 ‘MedicalExaminer’라는 학술지에 시술 성과를 발표했다. 그 사실을 안 크로포드 롱은 42년 이래 자신의 마취 환자들의 진료 기록과 증언 등을 수집, 뒤늦게 자신의 성과를 공개했다. 그에겐 그 성과를 증언해 줄 동료 의사들이 적지 않았다. 그는 마취시술 후유증 등을 살피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고, 그보다 앞서 마취 시술을 시행한 이가 있을 수 있어 발표를 미뤘노라고 해명했다. 의학계가 그의 업적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그의 사후인 1879년이었다.
주요신문사설
[매일신문]
1.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보수 재건 기대한다
유승민 의원이 바른정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이제 관심사는 유 후보가 본선에서 선전할지 여부다. 그러나 상황은 매우 어렵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유 후보의 지지율은 그야말로 바닥이다. 최근 리얼미터 조사에서 유 후보의 지지율은 2.2%에 그쳤다. 정당 지지율은 비교섭단체인 정의당에도 뒤진다. 유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전에 탄핵 심판 이후에는 지지율 추세가 달라질 것이라고 했지만 그런 변화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원인은 유 후보 개인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라 최순실 사태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보수 전체가 받은 타격에 있다고 봐야 한다. 유 후보가 박 전 대통령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지난해 총선에서는 공천도 받지 못하는 등 친박 세력과 다른 길을 걸으면서도 보수라는 정체성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보수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여론의 편향에서 그런 부정적 이미지와 거리가 있는 유 후보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유 후보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바로 보수의 재건이다. 유 후보도 이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는 수락 연설에서 “보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기”라며 “이 땅의 보수를 새로 세우는 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보수가 총체적 불신을 받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안보는 철저히 지키되 경제`사회 정책은 약자와 소외 계층을 배려한다는 그의 노선은 우리의 지정학적`시대적 요구에 잘 부응한다. 특히 안보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안보관은 믿음이 간다.
이런 점에 유권자가 주목한다면 이변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넘어야 할 큰 산이 있다. 바로 보수의 결집이다. 지금 대선 판도의 주도권은 야당이 쥐고 있다. 그러나 보수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분열돼 있다. 후보 단일화든 연대든 힘을 합치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
유 후보는 이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행동 방향을 정해야 한다. 앞으로 끝까지 완주할 것이냐 아니면 보수 재건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냐를 판단해야 할 시점이 분명히 올 것이다. 그때 결정의 기준은 보수의 결집이다.
2. 포스코 입사 지원 서류에 아는 직원 이름 쓰게 한 포철공고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는 지난해, 2학년 180명 재학생을 대상으로 취업 전형 절차를 진행하면서 포스코와 관련된 가족 관계를 사전에 파악했다. 가족 가운데 포스코에 다니는 직원의 이름을 명시하라고 한 탓에 학생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사돈의 팔촌에 이르기까지 조금이라도 연고가 있을 만한 포스코 직원을 찾는 소동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학교의 이 같은 사전 조사는 분명히 신중하지 못한 처사였다.
무엇보다도 학생의 능력과 성적 등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 기준만으로 취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포스코 가족 등 다른 요인이 작용할 수 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킨 점이 그렇다. 말하자면 공개경쟁의 기회 박탈 같은 좌절감을 느끼게 한 조치였다. 지난해 포스코와 포스코켐텍 등 계열사에 지원을 한 2학년 학생 180명 가운데 포스코와 계열사에 53명이 합격했다. 떨어져 졸업 전 다른 기업에 취업하는 등 구직 활동에 나설 127명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포스코에 가족이 없어서 떨어진 것 아니냐는 의혹을 품었고 그로 인해 논란을 빚은 것이 그 증거이다.
회사는 포스코 가족과 합격 학생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지만 학생과 학부모 불만은 당연하다. 해명의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진상은 밝혀져야 한다. 많은 포철공고 학생들의 꿈은 포스코와 포스코 계열사 입사이다. 적성에도 맞겠지만 안정적이고 괜찮은 보수에다 합격 후 군 입대에도 경력이 인정되는 등 취업 조건이 더없이 좋다. 따라서 학생들이 졸업 전 취업을 간절히 바라며 각종 자격증 획득과 봉사 활동 등 준비에 여념이 없었을 터인데 오해 여지가 충분한 조사를 했으니 학교 측에 대한 비난은 마땅하다.
다만 포스코와 계열사의 동시 입사 지원 방식은 평가할 만하다. 포스코와 계열사의 입사 지원 날짜를 다르게 한 종전 방식과 달리 취업의 기회가 여러 학생에게 고루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성적 상위자 등 특정층에게만 취업 기회를 주는 데 따른 다른 학생들의 역차별 문제를 없앨 수 있다. 포철공고는 철강 분야 마이스터고인 만큼 갈고닦은 실력과 능력, 공정한 기회와 공평한 평가로 취업이 결정되는 일이야말로 학생들이 바라는 꿈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데일리]
3. 어처구니없는 세월호 ‘돼지뼈 소동’
해양수산부의 세월호 인양 작업이 ‘돼지뼈 소동’으로 도마에 올랐다. 해수부는 그제 긴급 브리핑을 통해 세월호가 실려진 반잠수식 선박 갑판 위에서 미수습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 7점과 신발 등 유류품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불과 4시간여 만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결과 유골은 사람이 아닌 돼지의 뼈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밝혀졌다. 선체에 구멍을 뚫느냐를 놓고 갈팡질팡한 데 이어 어처구니없는 소동으로 혼란과 불신을 자초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해수부의 섣부른 발표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있는 미수습자 9명의 가족들에게 또 한 번의 좌절을 안겨주었다. 그들의 아픔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돼지뼈와 유류품이 세월호 선체가 아닌 반잠수식 선박 갑판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이다. 해수부가 설치했다는 3중 유실 대책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선체 유실방지망에 허점이 있다면 자칫 미수습자의 유골을 다 찾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세월호 인양으로 ‘잠수함 충돌설’, ‘고의 침몰설’, ‘폭발설’ 등 난무했던 괴담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논란은 가시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선체 인양 지연이 고의적이라느니 기술적인 문제로 램프를 자른 것을 두고 ‘증거를 인멸하려는 행위’라느니 하는 또 다른 음모론이 나돌고 있다. 정파성을 띤 특정 세력이 혼란을 부추기려 의도적으로 진실을 왜곡한 잘못이 크지만 정부의 부실한 초동대처와 불투명한 정보 공개 등이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없지 않다.
앞으로 본격화할 미수습자 수색과 선체 조사를 통한 사고원인 규명은 인양보다 몇 배나 더 힘든 과정일 수 있다. 해수부는 유가족, 선체조사위원회와 긴밀한 협의 체제를 갖추고 모든 과정을 국민에게 투명하고 신속하게 알려 터무니없는 논란이 생길 여지를 없앨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1차 작업을 거친 후 조사위와 협의하겠다”며 선체 절단 여부를 일단 유보한 것은 잘한 일이다. 미수습자 수색과 진상규명 못지않게 세월호가 더 이상 괴담에 편승한 정치적 놀음에 휩싸이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서울신문]
4. 대선 주자들, 저성장시대 ‘행복비전’ 내놓아야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을 넘는 데 또 실패했다. 벌써 10년째다. 엊그제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6년 국민계정’(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만 7561달러로 2만 달러대에 머물렀다.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8%로 수년째 2%대 박스권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고 있다. 보통 선진국으로 인정받으려면 1인당 GNI가 3만 달러를 넘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춘 나라는 미국·일본·영국 등 43개국이다. 46위인 우리는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고비를 넘지 못하고 있다.
물론 1인당 소득과 경제성장률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담보하는 잣대는 아니다. 하지만 부국(富國)이 뒷받침되지 않는 행복이란 추상적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교훈을 우리 현대사가 똑똑히 증명하고 있다. 우리 헌법 전문이 밝히고 있듯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도록 하는 데에는 무엇보다 경제가 밑받침이 돼야 한다.
그런 까닭에 앞으로 5년 대한민국을 이끌 국가지도자 역량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중진국 함정에 빠진 우리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켜 선진국에 진입시킬 비전과 청사진이 제시돼야 한다.
이처럼 저성장의 돌파구가 절실한 시점이지만 대선 주자들이 쏟아내는 경제성장 공약은 진단은 그런대로 맞지만 처방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뜬구름 잡기식 정책이 대부분이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성장 엔진이 꺼졌다는 것이다. 말을 바꾸면 한국 경제의 재도약은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산업구조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유력 대선 후보들이 4차 산업혁명을 주요 과제로 삼은 것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로봇 등 정보기술과 기존 제조업을 결합한 산업 구조의 혁신이 한국 경제의 돌파구가 될 것이다.
그러나 각 후보의 공약은 졸속이며 천편일률적이다. 무슨 무슨 위원회를 만들겠다느니, 창의적 교육이라느니, 학제를 개편하겠다느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당장 집권하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고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하는데 그저 논의하겠다는 식이니 답답할 따름이다. 우리 경제 신성장 엔진의 주체는 정부 부처가 아닌 민간 기업이다. 4차 산업혁명의 주체 역시 기업이다. 새로운 제품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비로소 우리 경제와 국민의 숨통이 열린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지금 기업 때리기에 주력할 게 아니라 기업이 열정을 갖고 혁신을 통해 꺼져 버린 경제 성장엔진을 다시 살릴 수 있도록 장애물, 즉 규제를 혁파하는 일이 급선무다. 차기 행정부가 총체적인 비전을 갖고 경제성장을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대선 주자들은 이에 걸맞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5. 내년 양극화 완화 예산 지침 주목한다
정부가 그제 내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 계획안 지침을 확정해 의결했다. 각 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 등이 내년 예산을 짤 때 적용해야 하는 기본 방향을 정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올해(400조 5000억원)보다 3.4% 늘어난 414조 3000억원 규모로 일자리 창출과 4차 산업혁명 대응, 저출산 극복, 양극화 완화 등 4개 분야에 예산을 집중 투자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4대 중점 분야 가운데 양극화 완화가 포함됐다는 점이다. 청년 실업과 저출산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반목과 갈등의 근저에 소득 양극화 문제가 자리 잡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지난해 소득 상위 1%가 국민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상위 10%의 소득도 48.5%에 이른다. 선진국 가운데 미국을 제외하곤 우리의 소득 양극화가 가장 심각하다는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가 나올 정도로 엄중한 사안이 됐다.
걱정스러운 것은 2008년 이후 소득 분배가 다시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44만 7000원으로 전년보다 5.6% 줄었다. 사상 최대의 감소폭이다. 반면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834만 8000원으로 2.1% 늘었다. 빈부 격차가 심화되면서 대다수 국민의 가처분 소득이 감소하고 이것이 다시 내수와 경제 침체로 이어지는 저성장의 악순환 고리를 만들었다. 양극화의 폐해가 국가 성장의 발목을 잡는 위기까지 온 것이다.
양극화 폐해는 국가 전체적으로 중소기업과 임금 노동자 전반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지난 수십년 동안 대기업의 수출과 투자 중심으로 이뤄진 성장 제일주의 패러다임은 일부 대기업에 부를 몰아줬지만 정작 하청 구조인 중소기업과 서민 경제를 어렵게 하는 이중 구조를 고착화시켰다. 고용 파급력이 적은 대기업 선도형 성장 정책으로 낙수 효과는 사라진 채 중소기업의 목줄을 죄면서 고용 절벽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됐다. 진보·보수와 상관없이 대선 주자들이 앞다퉈 배분과 성장의 조화를 꾀하는 새로운 경제 정책을 제시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정부 예산으로 고질적인 양극화 문제가 단숨에 해소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선도자의 역할은 할 수 있다. 정부의 양극화 완화 지침이 단순한 시혜성 복지 정책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구체적인 정책으로 연결해 내수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6. ‘찍어 내기 감찰’ 우병우 수사 왜 좌고우면하나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국정 농단 수사의 정점을 향해 속도를 내고 있다. 특수본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도 예상과 달리 비교적 신속히 청구했다. 행여라도 좌고우면한다는 인상을 줄까 깊이 고심한 흔적이 엿보였다. 하지만 유독 꾸물거리는 인상을 주는 수사 대상이 우병우 전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이다. “우병우 수사를 안 하느냐, 못 하느냐”는 비판이 커진다. 2기 특수본이 우 전 수석의 수사를 개시했다는 말은 진작에 들렸지만 이렇다 할 진척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우 전 수석이 거의 횡포에 가까운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한 정황은 곳곳에서 이미 감지됐다. 그의 말 한마디가 곧 법으로 통했을 정도로 청와대 실세 중에서도 실세였다. 박영수 특검팀은 그가 정권의 입맛에 들지 않는 공직자를 찍어 내기 위해 감찰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당시 우 전 수석은 김재중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감시국장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CJ E&M을 조사해 불공정거래 행위로 검찰에 고발하라고 지시했다. 그 지시를 어기고 시정명령 조치만 했던 김 전 국장은 한직으로 밀려난 것도 모자라 민정수석실의 표적 감찰을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일부 감사관은 부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아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에 불려가 협박성 폭언을 듣기도 했다.
이뿐이 아니다. 자신의 측근인 검찰 수사관을 문체부 주도의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 책임자로 앉히려 한 혐의도 받고 있다.
특수본은 특검의 수사 내용을 고스란히 넘겨받았다. 이후 거의 한 달이 다 돼 가는데도 우 전 수석 수사는 왜 이리 잠잠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특검은 검찰이 보강 수사를 해서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하면 우 전 수석은 100% 구속될 거라고 장담까지 했다. 지금껏 외부에서 확인된 보강 수사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압수수색 정도다. 그마저도 임의 제출 형식으로 자료를 받았으니 유의미한 증거물이 얼마나 됐는지는 알 수도 없다. 면피성 수사가 아니었느냐는 의심이 나올 만도 하다.
서슬 퍼렜던 특검도 우 전 수석 수사는 이런저런 구실로 얼버무렸던 게 사실이다. 박 전 대통령 측근들의 국정 농단을 감독하기는커녕 ‘호위무사’ 역할을 했던 그는 온전히 법의 심판대에 올라야 한다. 검찰이 빼고 보태지 않는 엄정한 수사를 하고 있는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조선일보]
7. 중도·보수 단일화, 국민 감동시킬 수 있는가
조기 대선을 앞두고 보수·중도 단일화가 큰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력들이 연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의당의 안철수,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바른정당의 유승민 간의 후보 단일화 여부다. 이 단일화가 성사되면 문 전 대표의 일방 독주는 더 이상 계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홍 지사를 제외한 다른 두 사람은 아직 소극적이다. 안철수 전 대표는 '단일화'를 언급조차 않고 있고 유 의원은 바른정당 후보로 선출된 이후 일단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태도다.
그러나 지금의 여론조사 결과, 대선 구도를 '1대1'로 만들지 않고는 문 전 대표를 이기기 어렵다는 점에서 선거 막판까지 중도·보수 단일화 논의는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종인, 김무성, 박지원 같은 중견 정치인들이 가능성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제는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 측 최명길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하기도 했다. 안 전 대표도 실제로는 '1대1' 구도를 추구하고 있다. 31일 자유한국당에 이어 내달 4일 국민의당까지 후보를 확정하면 단일화 논의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것이다.
선거를 앞둔 단일화 논의는 주로 현 야권에서 벌어져 왔던 풍경이다. 누구만 아니면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다는 식이었다. 지금의 단일화 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정인에 대한 거부감만으로 다른 세력이 모두 뭉치자는 것은 원칙과 정도가 아니다. 두 정당 이상의 선거 연대는 유권자들에게 정치·정책의 공통분모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 없이 무조건 표만 합치자는 것은 야합(野合)에 가깝다. 유권자들이 다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실현되더라도 큰 효과도 없을 것이다.
지금 보수층은 문 전 대표의 대북·안보관에 대해 커다란 불안감을 갖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안보는 보수'를 지향하지만 국민의당은 여전히 햇볕정책을 따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사드를 놓고 안 후보와 국민의당 입장이 서로 다르다. 이 중대한 노선·정책 차이가 어떻게 접점을 찾을 수 있느냐가 단일화 논의의 관건이 돼야 한다. 자유한국당에 남아 있는 친박 핵심들의 존재도 단일화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과거의 후보 단일화가 '야합'으로 비판받던 때와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국민이 정치 세력 간의 협치(協治)를 선호하고 있다. 게다가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60% 이상의 국회 의석을 갖지 않으면 그 어떤 대통령도 국정을 제대로 끌고 가기 어렵다. 연정(聯政)을 하지 않으면 어느 당도 60%를 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문 전 대표가 집권하면 과거 노무현식 국민 편 가르기 국정 운영이 재연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노선·정책에서 다소 차이가 있어도 협치·연정의 시대로 가는 큰 비전을 담을 수 있다면 그런 정당 간 연대는 유권자들의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분권 시대를 열 개헌(改憲)도 단일화의 촉매가 될 수 있다.
지금 상당수 국민이 흔쾌히 선택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선 구도의 변화를 바라는 수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국민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단일화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노선·정책에 대한 진지한 논의, 협치·연정에 대한 진정한 공감대 없이 자리 나누기식 협상으로 억지로 단일화를 꿰맞춰 보려 한다면 아예 시작도 않는 것이 나을 것이다.
8. 정부 사업비 써서 정치에 학생 동원한 교수
전북 우석대 일부 학생이 민주당 정치 행사에 동원된 사건과 관련, 검찰이 어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은 지난달 문재인 전 대표 지지 모임 '전북포럼' 출범 행사에 태권도학과 학생 172명을 데려간 우석대 교수 연구실과 태권도특성화사업단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에 앞서 선관위는 우석대 교수 등 4명을 제3자 기부행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학생들은 행사 후 식사와 영화 관람을 했다. 이 돈은 교수 개인 돈이 아니라 교육부로부터 지원받은 지방 특성화 예산이었다고 한다. 대학교수가 정부로부터 받은 사업비를 정치에 사용할 생각을 했다는 발상 자체가 놀랍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학생들은 민주당 대선 경선 선거인단에도 참여하라고 요청받았다고 한다. 또 이번 사건이 알려지자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허위 증언을 하도록 종용받았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두드러진 현상 중의 하나는 유력 대선 주자 주변에 '폴리페서'(정치 지망 교수)들이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문 전 대표 캠프엔 무려 1000명을 넘었다고 한다. 문제의 교수도 그들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연구와 교육은 뒷전이고 대선 주자에 줄을 서 나중에 한자리해보려는 교수가 이렇게 많다.
교수인지 정치인인지 알 수 없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이야말로 대학 교육을 망치는 청산돼야 할 적폐(積弊)다. 문 전 대표가 우석대 교수 문제부터 분명히 처리하고 1000명이 넘게 몰려든 교수들도 정리하기 바란다. 지지율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교육이 아니라 정치가 본업인 교수들이 아무 제한 없이 활개치는 것은 명백한 제도적 허점이다. 바로잡아야 한다.
[동아일보]
9. 부모동의 장병만 지뢰제거 맡긴 軍 정상인가
육군의 한 공병대대가 지난달 6·25전쟁 당시 경기도에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는 작업에 투입될 병사를 선발하면서 부모로부터 동의를 구했다고 한다. 필요한 병사 30명 중 부모가 허락하지 않은 3명은 빼고 모자란 병력을 추가 선발했다. 이 대대는 작년에도 같은 이유로 병사 5명을 다시 선발했다고 한다. 부모의 사전 동의를 받고 움직이는 군이 얼마나 효율적인 군사 대응을 해낼 수 있는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일은 지뢰 제거 작업에 나선 병사의 부모가 이의를 제기해 드러났다. 규정에도 없는 부모 동의 절차를 넣어 병사들은 물론 부모들 사이에 형평성 논란을 일으킨 것은 해당 부대장의 중대한 실책이다. 육군은 “부적절했다며 즉각 시정 조치했다”고 했지만 군에 대한 불신만 커지고 말았다. 일선 부대에서 부모의 간섭을 허용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성인이 된 병사의 해외 파병 때 부모 동의가 필수항목이 된 지도 올해로 13년이 됐다. 2010년 예편한 이상의 합참의장은 이 절차가 ‘병영 내 포퓰리즘’이라며 없애려 했으나 실패했다.
부모가 군에 있는 자녀의 안위에 노심초사(勞心焦思)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2년 전 비무장지대(DMZ)에서 일어난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부모들은 지뢰 제거에 더 예민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대장이 수색과 지뢰 제거는 다른 임무이고 철저히 준비하고 수칙을 지키면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부모를 안심시켰어야 했다.
강군(强軍)이 되려면 값비싼 첨단무기를 들여오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밑바탕에 장교와 병사, 그리고 군과 국민 간의 탄탄한 신뢰가 깔려 있어야 한다. 병력 운용에 부모의 동의가 필요했다는 점은 군과 국민 사이의 믿음에 크게 금이 갔다는 반증이다. 남북이 정전상태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군이 즉각 전투태세에 나서려면 신뢰만큼 중요한 자산이 없다. 병사는 물론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도 병역 의무만큼 나라를 사랑하는 일이 따로 없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세계일보]
10. 朴 오늘 영장심사 출석… 법원 판단에 모두 승복하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오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대통령 직에서 파면된 지 20일 만이다. 박 전 대통령은 영장심사를 받으러 판사 앞에 서는 첫 전직 국가원수라는 오명을 역사에 남기게 됐다. 탄핵 찬반 여부를 떠나 국가적으로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고 착잡한 심정이다.
박 전 대통령이 영장심사에 출석하게 된 데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뇌물수수 등 13개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상황에 서면 심사로만 구속 여부를 결정하게 되면 구속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직 당시 검찰과 특검 조사를 모두 외면했던 박 전 대통령이 법 절차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다행이다. 영장심사에서 박 전 대통령은 뇌물죄 등 혐의에 대해 직접 무죄를 항변할 것으로 보인다. 출석에 응한 만큼 억울한 점을 소명하는 것은 ‘자연인 박근혜’의 당연한 권리다.
헌정 사상 세 번째로 전직 대통령 구속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사법부로서도 고민이 작지 않을 것이다. 그럴수록 특정세력의 외압에 흔들리지 말고 법과 원칙에 근거해 현명하게 판단을 내려야 한다. 법조계에선 혐의의 중대성이나 공범으로 지목된 인사 대부분이 구속된 터라 법적용 형평성을 감안할 때 구속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고 한다. 반면 형법상의 불구속 수사원칙과 국격 추락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구속 여부는 법원이 법리에 따라 결정을 내릴 문제다. 그런 만큼 정치권은 논란이 될 만한 일은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유한국당 의원 82명이 불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청원서를 어제 법원에 제출한 것은 자칫 사법부에 대한 외압으로 비쳐질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법부의 결정에 국민 모두 깨끗이 승복하는 일이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여부가 갈등과 대립의 불쏘시개로 전락하는 일만은 결단코 없어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주간경향][편집실에서] 서바이벌 드라마
2013년 일본에서 방영된 <리미트>라는 드라마가 있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한 고등학교의 반 학생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농촌마을과의 교류 체험 캠프를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운전사는 졸음운전을 하고, 30여명이 탄 버스는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살아남은 학생은 여섯 명.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구조대가 즉각 출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못했다. 휴대전화는 통신 가능한 지역에서 벗어나 있었다. 운전사는 당초 가기로 한 마을이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 버스를 몰았다. 학교에서 부(副)담임선생은 인솔 선생이 학교로 도착 확인 전화를 한 것으로 착각했다. 한편 버스회사에서는 운전사에게서 도착 전화가 오지 않자, 낮에 사표를 내겠다고 하소연한 사실을 상기하며 화가 나 도망친 것으로 여겨버린다.
생존자들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깊은 숲속에서 생존경쟁을 벌인다. 12부작의 이 드라마는 두 축으로 진행된다. 한 축은 사고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 엉망진창인 모습을 그렸고, 다른 한 축은 여섯 명의 생존자들이 극한의 상황 속에서 따돌림·증오 등으로 생존경쟁을 벌이는 것을 그렸다. 관심을 끌었던 것은 사고의 발생과 수습 과정이다.
다음날 부담임선생은 교장에게 보고하고 경찰에 전화를 걸려 하지만 교장은 피해자 가족들이 학교의 책임을 물을까봐 신고를 하지 못하게 한다. 버스회사는 경찰이 수사할까봐 우선 근무자료를 찢어버린다. 운전사가 과도한 근무로 잠을 충분히 잘 수 없는 상태였던 데다 적절한 시간에 교대근무자를 배치해주지 않은 잘못을 숨기기 위해서다. 관련자들은 30여명 피해자의 구조가 아니라 오직 사고 책임 회피에만 신경쓴다.
나흘이 지나서야 경찰은 사고 현장이 어디인지 확인하게 된다. 이쯤되면 이 일본 드라마가 어떤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고 눈치챌 법하다. 2013년에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마치 세월호 침몰 후에 이 사건을 비유한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안개 속에서 세월호는 출항을 강행했다. 침몰 신고가 들어왔어도 해상관제센터는 무능력으로 일관했다. 현장으로 출동한 해경은 승객 구조를 위한 선내 진입을 하지 않았다. 승객들이 바깥으로 나오도록 적극적인 유도도 시도하지 않았다. 선장과 선원은 승객을 내팽개치고 자신들부터 먼저 탈출했다.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이 관저에 머물며 대면보고조차 제대로 받지 않았다. 돈만을 밝힌 불법 증축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관피아들의 문제도 드러났다. 하지만 사고 이후 관련자들에게 불리한 자료들은 은폐됐고, 세월호 특조위의 활동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수차례 벽에 부닥쳤다.
국회에서 세월호 관련 입법 세미나가 열려 취재를 한 적이 있다. 세미나가 거의 끝난 후 사회자가 피해자 가족에게 소감을 한마디씩 물었다. 한 피해자 부모가 마이크를 들었다. 이 부모는 소감 대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이 외마디 비명에 절절히 배어 있었다.
세월호 선체가 3년 만에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정확한 조사를 기피하는 한,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않는 한 이런 사고는 어디에서 다시 고개를 내밀지 모른다. ‘제2기 세월호 특조위’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정치적 현실은 여의치 않다. 이 같은 사고가 다시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우리 사회에서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는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각자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서바이벌의 세상이다.
2.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순댓국, 북방음식에서 국민메뉴로
순대는 평안도, 함경도 등 우리나라 북부지방에서 즐겨 먹던 음식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칭기즈칸의 몽골 기마군단이 돼지 창자에 곡식, 채소 등을 넣어 말리거나 얼려서 전투식량으로 활용했던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전통적인 순대는 찰밥에 숙주나 우거지 등 채소, 돼지고기와 선지 등을 고루 섞어 돼지창자에 밀어 넣은 다음 삶아서 만든다.
순댓국은 돼지 뼈를 푹 우려내어 육수를 만들어 뚝배기에 담고 순대, 머리고기, 내장 등을 고루 넣은 후 밥을 더해 끓여 먹는 음식이다. 아마도 어렵던 시절 구하기 쉽지 않은 순대를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을 수 있도록 탕으로 개발한 것이 아닐까 한다. 순댓국에는 다진 양념장, 새우젓, 부추, 들깨, 파 등을 식성에 따라 넣어 먹으면 제격이다. 또 비슷한 음식으로 돼지 뼈 육수에 편육과 밥을 넣어 끓이는 돼지국밥이 있다. 6·25전쟁의 피란길에 저렴하고 구하기 쉬운 재료를 활용할 수 있어서 부산, 대구, 밀양 등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순댓국은 이제 누구나 즐기는 서민 메뉴가 된 만큼 맛깔나게 잘하는 집들이 곳곳에 있어 맛집이 큰 의미가 없을 수 도 있으나 그래도 순댓국 하면 떠오르는 집들이 있어 몇 군데 소개한다.
서울 대림동 대림중학교 옆 골목에 ‘삼거리 먼지막 순대국’이 있다. 1959년에 개업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순댓국집이다. 근처 처음 가게를 하던 곳이 예전 시흥의 과수원이 있던 삼거리 ‘원지목’이어서, 부르기 쉽게 ‘먼지막’으로 이름 지었다. 진한 육수에 직접 만든 순대, 머리고기, 내장을 푸짐하게 넣어주는 구수한 옛날식 순댓국이다.
착한 가격으로, 창업 이래 순댓국 가격변동 내용을 가게에 써서 붙여 놓고 있다. 신대방동 보라매역 인근에는 20년 이상 영업해 온 ‘서일순대국’이 있다. 작고 허름한 가게였는데, 지금은 확장해서 꽤 커졌다. 시래기, 당면 등을 넣어 만든 야채순대가 특색이다. 육수가 진하고 구수하지만 잡내가 전혀 없어 깔끔하다.
강남 뱅뱅사거리 인근에 있는 ‘남순남순대국’은 20여년 전 ‘서초순대국’이란 상호로 조그맣게 시작했는데 지금은 큰 점포로 이전해 깔끔하게 단장했다. 진한 탕국에 당면을 넣은 쫄깃한 찹쌀순대와 돼지고기, 머리고기 등을 고루 넣어 준다. 중림동 약현성당 골목 입구에 있는 ‘황성집’은 아바이왕순대로 알려져 있으며 40년 넘는 역사와 맛을 자랑하는 집이다.
돼지국밥집도 서울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소문 충정로역 인근에 부산 출신 사장이 하는 ‘밀양돼지국밥’이 있다. 길에서는 잘 안 보이나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예쁜 노랑색 집이 나타난다. 드라마 촬영 장소로도 이용되는데, 지나는 기차소리도 들리고 테이블, 인테리어도 옛 멋이 나는 분위기다. 큰 뚝배기에 돼지고기를 푸짐하게 넣고 부추와 다진 양념을 얹어 주는데, 원조의 맛이라 한다. 필운동 서촌 초입에 있는 ‘송원가마솥 국밥집’은 잘 우려낸 육수에 돼지고기 편육을 듬뿍 넣고 부추를 더해 국밥 맛을 자랑한다.
이렇게 소개하다 보니 지금은 없어져 아쉬운 집이 더 생각난다. 을지로4가역 부근에 ‘전통아바이순대’라는 작은 집이 있었다. 순대, 고기, 밥을 푸짐하게 담아 토렴해서 내는데 시골장터를 떠올리게 했다. 그 맛과 분위기에 취해 언제나 긴 줄을 섰었는데 얼마 전 문을 닫았다.
가난했던 피란 시절 많은 이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 주던 순댓국과 돼지국밥은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인 지금도 대표적인 서민 메뉴로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3. [중앙일보][분수대] 염라대왕의 거울
전시장에 청동거울이 매달려 있다. 고려시대 것이다. 그 옆에 무시무시한 그림이 있다. ‘염라대왕과 대애지옥’이다. 그림에도 거울이 등장한다. 업경(業鏡)이다. 줄지어 있는 사람들이 생전에 지은 죄가 거울에 비친다. 그림 하단 가운데 거울에 가축을 죽이는 모습이 또렷하다. 그 밑에는 죗값을 치르는 장면이 나타난다. 사람을 절구에 넣고 짓이기고 있다. 끔찍한 형벌이다. 거울 앞에 다가서기가 망설여진다.
그림은 ‘시왕도(十王圖)’ 중 하나다. 시왕은 인간의 죄를 심판하는 왕 열 명을 가리킨다. 염라대왕은 그중 다섯 번째다. 사람들의 행적을 두루마리 종이에 일일이 기록한다. 한 개인의 대차대조표라고나 할까. 세상만사를 담는 거울처럼 죄를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가 없다. 분식회계는 불가능하다. ‘시왕도’는 열 폭으로 이뤄졌다. 이를테면 지옥 연작이다. 그림 모두 섬뜩하다.
예컨대 가장 먼저 등장하는 ‘진광대왕의 철정지옥’. 뜨겁게 달군 철판에 죄인을 눕히고 온몸에 쇠못을 박고 있다. 손·발·머리 등 어디 한 곳 빠짐없이 무려 500번의 고통을 준다고 한다. 세 번째 ‘송제대왕의 발설지옥’도 공포스럽다. 남을 비방, 혹은 욕한 사람을 기둥에 묶어 놓고 혀를 뽑아 버린다. 이게 끝이 아니다. 늘어진 혀 위에서 소를 몰며 쟁기질을 한다. 역시 입단속이 중요하다.
이들 ‘시왕도’는 서울 강남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볼 수 있다. 조선 후기인 1764년에 제작된 것이다. 평범한 주인공 김자홍을 내세워 저승세계를 둘러본 주호민 작가의 인기 웹툰 ‘신과 함께’ 이미지를 곁들이며 관객의 이해를 돕고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불화가 보다 가깝게 다가온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도 돌아보게 된다. “과연 나는 열 명의 심판관을 통과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반성과 각오가 겹친다.
‘시왕도’는 죽은 이들을 기리는 절집의 명부전(冥府殿)에 걸었다. 그렇다고 두려움에 휩싸일 필요는 없다. 명부전의 주인장은 지장보살(地藏菩薩). 무서운 시왕과 달리 인자한 보살이다.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러 부처가 되기를 거부하고 몸소 지옥에 내려왔다. 사람들에게 선업(善業)을 쌓으라고 권한다. 다만 기억할 것 하나, 명부전은 임진왜란·병자호란 양란 이후 활발하게 세워졌다. ‘시왕도’ 또한 18세기에 성행했다. 작품마다 내용·구성은 조금씩 다르지만 고단한 현실에 대한 반작용 비슷하다. 세월호 인양과 대통령 심판, 두 고난에 직면한 지금 ‘시왕도’가 더욱 아리기만 하다.
4. [한국일보][삶과 문화] 이 봄, 우리는 꽃보다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며칠 전 지방에 다녀왔습니다. 당연히 서울보다 봄이 일러 매화나 산수유 같이 일찍 피는 꽃들은 말할 것도 없고, 능수버들까지 물기를 머금고 능청능청하는 것이었습니다. 봄이 오는 것을 내가 눈치 채기도 전에 벌서 봄이 왔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봄이 빨리 왔다고 생각하는 저를 보고 반성케 되었습니다. 봄이 제 생각보다 빨리 온 것도 사실이지만 세월이 가고 봄이 오는 것조차 눈치 채는 것에 민감치 못했던 저를 보게 된 겁니다. 봄이 빨랐던 것이 아니라 제가 느린 것이었지요. 그럼에도 저는 저를 중심으로 봄이 빨리 왔다고 하며 제가 늦었다고는 생각지 않았던 겁니다.
그랬습니다. 봄이 오는데 저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고, 봄이 오는 것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면 봄이 오는 것이라도 일찍 눈치 채고 사람들에게 봄의 기쁜 소식을 나르기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최순실씨 사건이 드러난 작년 10월 이후 오늘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거의 모두 봄소식보다 더 큰 뉴스들 때문에 봄 손님 오시는 것을 영접하는 데 소홀한데 저도 그랬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봄 손님 오시는 것을 환영치 못하게 만든 사람들이 참 나쁘다고 남 탓하다가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는 제가 과연 천주교 신부요 환경의 수호자인 성 프란치스코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지 반성을 했습니다.
그런데 반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봄이 이 꽃들을 피우는 데 내가 한 것이 너무 없었던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이 꽃들만큼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 반성이 되었습니다. 꽃들은 실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까! 이 꽃들은 누구를 행복하게 하겠다고 하지 않으면서도 실로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행복하게 합니다.
만일 꽃이 누구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꽃의 탓이 아니라 그 꽃을 보지 않은 사람의 탓이요, 보고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그 사람의 불감증이 탓이겠지요. 그런데 저라는 사람은 본래 나의 행복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까지 행복하게 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 나는 몇 사람이나 행복하게 하고 있는지. 아니, 오히려 남을 힘들게 하고, 더 나아가 불행하게 하고 있지나 않은지 부끄러움과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저를 반성하면서 이런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봅니다. 아름답기로만 치면 꽃이 사람보다 더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러니 아름다움이 주는 행복만 놓고 보면 꽃이 저보다 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겠지요. 그런데 아름다움보다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하는 것이 있고, 꽃의 아름다움보다 더 인간을 아름답게 하는 것도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사실 꽃의 아름다움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아름다움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꽃이 우리를 사랑해주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꽃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가 꽃을 사랑하지 꽃이 우리를 사랑하겠습니까? 꽃은 무위(無爲)의 행복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반대로 우리는 사랑하겠다고 하면서 나도 불행하고 남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아무튼 꽃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도 우리는 꽃을 사랑합니다. 더 위대하고 더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지 않아도 사랑하고, 싫어도 사랑하고, 미워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행복하게 함에 있어서 우리가 꽃의 아름다움을 능가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사랑하는 것입니다. 꽃보다 우리가 더 사랑하는 것이고, 꽃이 사랑치 않는 미운 사람까지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사랑할 때 오는 것이기에 우리는 미운 사람 때문에 사랑하지 않고 나를 위해 사랑하며, 행복하기 위해 사랑합니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마취
진통제는 체내 통증유발물질의 생성을 억제함으로써 통증을 잡고, 마취제는 뇌와 척수의 신경전달 메커니즘을 차단함으로써 감각(전신마취의 경우 의식)을 잠정적으로 없앤다.
진통제가 주로 사후적으로 처방되는 반면, 마취(제)는 대개 본격적인 의료행위에 앞서 선제적으로 행해진다. 마취는 환자 입장에서 통증을 경감하는 효과도 있지만, 의료진에게 수술 등 복잡하고 정교한 처치를 통제된 조건에서 할 수 있게 하는 데도 필수적인 의료행위다. 화타의 마비산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명성은 마비산의 효능에 크게 의존했을 것이다.
근대적 의미의 마취가 1842년 3월 30일 미국의 젊은 외과의 크로포드 롱(Crawford Long, 1815~1878)에 의해 행해졌다. 그는 목에 난 종기 제거 시술을 받으러 온 환자에게 수건에 뿌린 황산에테르(sulfuric ether) 기체를 들이마시게 하는 방법으로 마취에 성공했다. 롱은 이후 수년 간 분만을 포함한 다양한 처치에 그 방법을 활용했고, 1849년 ‘The southern Medical and SurgicalJournal’에 결과를 발표했다.
조지아 주 매디슨카운티에서 태어난 그는 조지아 주립대와 캔터키 주 트랜실베이니아대를 거쳐 펜실베이니아대에서 학위를 받고 의사가 됐다. 조지아 주 잭슨카운티의 제퍼슨에서 개업한 그는 수련의 시절 알게 된 에테르의 효능을 혼자 연구했고, 독자적으로 임상 실험했다. 그건 지금 관점에서 보자면 극도로 위험한 의료행위였다. 마취가 뇌와 중추신경에 직접 개입하는 과정인 만큼, 그르칠 경우 혼수상태와 뇌사, 호흡 마비로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롱은 신중했고, 행운도 누렸다.
에테르를 이용한 마취 시술 효능을 처음 발표한 이는 보스턴의 외과의 윌리엄 모턴(WilliamMorton)이었다. 그는 1846년 12월 ‘MedicalExaminer’라는 학술지에 시술 성과를 발표했다. 그 사실을 안 크로포드 롱은 42년 이래 자신의 마취 환자들의 진료 기록과 증언 등을 수집, 뒤늦게 자신의 성과를 공개했다. 그에겐 그 성과를 증언해 줄 동료 의사들이 적지 않았다. 그는 마취시술 후유증 등을 살피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고, 그보다 앞서 마취 시술을 시행한 이가 있을 수 있어 발표를 미뤘노라고 해명했다. 의학계가 그의 업적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그의 사후인 1879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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