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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세계일보]
1. 소송으로 번진 미세먼지 피해,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중국발 미세먼지 피해에 대해 한국과 중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됐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와 안경재 변호사 등 7명은 그제 한·중 정부를 상대로 각각 300만원의 정신적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미세먼지 피해와 관련해 양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최 대표 등은 소장에서 “현재 (중국발) 미세먼지 오염 정도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밝혔다. 미세먼지 70∼80%가 중국에서 날아오는 상황에서 국내 환경단체와 시민들이 행동으로 피해구제를 호소한 것이다.
올해 국내 대기질은 ‘숨이 막힐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서울의 일평균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나쁨’(1㎥당 50㎍ 이상) 이상을 기록한 날이 17일로, 초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한 2014년 이후 가장 많았다.
같은 기간 전국 초미세먼지 주의보 발령 횟수는 86회로, 전년 동기(47회)보다 82.9% 증가했다. 여기에다 5월까지는 미세먼지 고농도 현상이 자주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여간 우려스럽지 않다.
중국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태도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 측의 미세먼지 문제 제기에 대해 “중국 대기오염이 주변국에 영향을 미치는지 과학적인 전문적 입증절차가 필요하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한·중 양국이 주한미군 사드 배치 문제로 갈등을 빚는 터라 환경당국이 대응을 머뭇거린다고 한다. 한심한 일이다.
국민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문제인 만큼 뒷짐 지고 있어선 안 된다. 사드 여파로 중단된 미세먼지 한·중 공동 연구 재개를 위한 외교 노력을 펼쳐야 한다. 차제에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법적 효력이 있는 양국의 환경기구 설치도 추진해야 한다.
우리 정부와 민간 부문의 안일한 인식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교육 현장이 대표적 사례다.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 중인데도 일선 학교에선 강당과 체육관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무방비 상태에서 야외 체육활동을 하곤 한다.
지난해의 경우 16개 시·도교육청 중 5곳은 학생 실외활동이 곤란한 상황에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백 가지 미세먼지 저감 대책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정부는 미세먼지 실태부터 제대로 파악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동아일보]
2. 우병우 세 번째 소환한 檢, ‘봐주기 수사’ 넘어설 수 있나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어제 검찰에 3번째로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광주지검에 외압을 행사해 해양경찰의 부실 구조 수사를 방해한 혐의가 이번 조사의 핵심이다. 청와대와 최순실 씨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등 불법을 저지른 정황을 알고도 덮었을 뿐 아니라 되레 진상 은폐를 주도한 혐의에 대해서도 검찰은 강도 높은 조사를 했다고 한다.
우 전 수석에 대해 2월 박영수 특검은 공무원 좌천 인사를 주도하고 민간인을 사찰한 혐의 등으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된 바 있다. 이후 특검 수사에선 우 전 수석이 김수남 검찰총장과 지난해 7, 8월 12차례에 걸쳐 2시간 18분이나 통화한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엔 가족회사 정강 등 우 전 수석 자신의 사건에 대해 통화했을지 몰라도 평소엔 청와대의 주요 관심 사건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민정수석이 ‘대통령 뜻’을 내세워 정의로워야 할 검찰의 칼을 비틀었다면 ‘법 앞에 평등’이라는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검찰이 우 전 수석과 통화한 검찰 고위 간부들의 소환조사를 외면하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이 이르면 오늘 우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라지만 이번엔 구속만을 목표로 해선 안 될 것이다. 적당히 구속만 시켜 국민의 눈을 가릴 속셈으로 면피성 수사를 할 것이 아니라 우 전 수석과 관련한 의혹을 샅샅이 파헤쳐야 한다.
검찰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은 제 식구인 우 전 수석에 대해 유독 ‘봐주기 수사’를 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검찰엔 30명 안팎으로 추정되는 ‘우병우 사단’이 건재하다. 지난해 우 전 수석을 무혐의 처리한 검찰이 또다시 제 식구 봐주기를 한다면 차기 정권에서 개혁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검찰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이번엔 반드시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놔야 한다.
3. ‘가짜 뉴스’ 판치는 세상, 신문의 역할 더 중요해졌다
오늘은 ‘신문의 날’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 창간기념일(1896년 4월 7일)에 맞춰 한국신문편집인협회가 이날을 제정한 지 올해로 61회째다. 독립신문이 창간 사설에서 ‘백성이 정부 일을 자세히 알고, 정부에서 백성의 일을 자세히 아시면 피차에 유익한 일이 많이 있을 터’라고 밝혔듯이 공정한 보도로 권력을 감시하고 건강한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민주사회의 공론장 역할을 하는 신문의 사명을 되새기는 날이다. 그러나 독자의 알 권리를 위협하는 ‘가짜 뉴스(FakeNews)’가 판치는 현실에서 ‘신문의 날’을 맞는 심정은 그 어느 해보다 착잡하다.
5월 9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가짜 뉴스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짜 뉴스란 저널리즘 양식을 빌려와 정치적, 상업적 이득을 취하는 거짓 정보를 말한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카카오톡 대통령선거 관련 ‘오픈 채팅방’ 10곳을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5일까지 집중 분석한 결과 7곳에 가짜 뉴스가 뜬 것으로 나타났다. 카카오톡 참여자라면 익명으로도 쓸 수 있는 오픈 채팅방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맥을 타고 가짜 뉴스를 전방위로 확산시키는 신(新)유통 경로로 부상한 것이다.
가짜 뉴스는 과거 ‘카더라’식의 흑색선전과도 다르다. 언론에 보도됐다거나 유명 인사가 말했다는 식으로 공신력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대(對)국민 사기나 다름없다. 작년 미국 대선을 계기로 페이스북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된 가짜 뉴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나온다. 9월 총선을 앞둔 독일에서 가짜 뉴스 같은 유해 게시물을 방치하는 SNS 기업에 최고 5000만 유로(약 600억 원)의 벌금을 물리는 법안을 준비 중인 이유다.
탄핵정국에서 경험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가짜 뉴스의 폐해가 심각하다. 한국언론재단의 지난달 말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인 남녀 중 76%가 가짜 뉴스로 인해 진짜 뉴스를 접할 때도 가짜로 의심한다고 답했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가짜 뉴스로 인한 신뢰 저하 등 사회적 피해 비용이 연간 30조 원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카카오톡에서는 가짜 뉴스 방지를 위해 오픈 채팅 이용자가 가짜 뉴스 유포자를 신고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지만 익명의 공간인 만큼 유포자 색출도 쉽지 않다.
가짜 뉴스의 범람은 역설적으로 신문의 역할과 중요성을 각인시킨다. 가짜 뉴스를 가려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공신력 있는 신문이 보도한 내용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신문의 공정하고 정확한 보도와 독자의 올바른 판단이 합쳐질 때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가짜 뉴스를 물리칠 수 있다. 우리는 사회적 공기(公器)이자 깨어 있는 파수꾼으로 팩트를 존중하고 진실을 찾는 저널리즘 본연의 책임을 다할 것이다.
[조선일보]
4. 대선 판세 급변, 文·安 민심 제대로 읽으라
대선을 32일 앞두고 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간 양강(兩强) 구도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달 초 안 후보가 앞서는 양자 대결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더니 4~5일 실시된 다른 조사에서도 그런 흐름이 확인됐다. 그 격차도 다소 벌어지는 양상이다. 5자·6자 등 다자 대결에서는 문 후보가 여전히 안 후보를 앞섰지만 여기서도 차이가 전보다 확연히 좁혀졌다. 탄핵 정국에서 굳건히 유지됐던 '문재인 대세론'이 흔들리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문재인 후보가 스스로 만든 결과다. 탄핵 바람 속에서 쉽게 승리할 것으로 보고 '대청소, 적폐 청산'과 같은 구호에 주력했다. 많은 국민이 통합을 원하는데 문 후보는 반대로 갔다. 문 후보 주변의 완장 찬 듯한 오만한 언행, 상대를 증오하고 적대시하는 행태는 노무현식 편 가르기 정치가 재연될 것이란 우려를 낳았다.
북한 김정은의 이복형 독살, 이어지는 탄도미사일 도발 속에서도 문 후보는 사드 배치 국회 결정,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를 주장했다. 열성 지지층은 좋아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문 후보의 지지율은 줄지도 늘지도 않고 거의 비슷하다.
안철수 후보의 급부상은 '문재인은 안 된다'는 유권자들이 선거가 다가옴에 따라 가장 가능성이 큰 안 후보 쪽으로 몰린 결과일 것이다. 반사이익이다. 어제 관훈토론회에서 안 후보는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강점으로 '안보'와 함께 4차 산업혁명에 가장 잘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러나 안 후보가 미·중·일·러 정상들을 상대할 만한 외교적 식견이 있는지는 전혀 검증된 것이 없다. 안 후보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지지율이 10% 선에 묶여 있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새겨야 한다.
어제 안 후보는 비문(非文) 연대에 대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자유한국당, 바른정당과의 연대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후보 단일화 아닌 정책 연대까지 반대한다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 말을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선거 구도는 거의 확정돼가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엔 촛불과 태극기 대결이 만들어 놓은 분열의 골을 메우는 대통령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민이 통합돼야 안보도 경제도 대처할 수 있다. 문 후보의 재도약과 안 후보의 역전승도 여기에 달렸다. 자기 걱정이 아니라 나라 걱정을 더 하면 자연스레 큰 민심, 진짜 민심이 보일 것이다.
5. 유승민 "NATO식 核 공유 추진" 다음 정부 검토할 만하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지난 5일 발표한 안보 공약에서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전력을 한·미가 공동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미국에 요구해나가겠다고 했다. 지금이 6·25 이후 최대 안보 위기 상황이라며 '한·미 핵 공유'가 군사 주권 확대와 북핵 억지력 강화를 동시에 실행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했다.
미국이 '핵 공유'를 제공하고 있는 군사 파트너는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유일하다. 미국을 제외한 NATO 18개 회원국 중 5개국에 배치된 전술핵(B61 핵폭탄 200여 기)을 실제 사용하게 될 경우 결정도 공동으로 하고 해당 국가 전투기만 이용하도록 하는 협정을 맺었다. 소련의 핵 위협을 받은 서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핵우산 약속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고 하자 나온 방안이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국제사회에서는 이것을 미·NATO 동맹 결속력의 상징으로 본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는 아·태 지역 핵심 동맹이라고 하면서도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핵만이 아니라 미사일 사거리와 탄두 중량까지도 통제하고 있다. 지금은 북의 핵 위협이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바뀌고 있다.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고 이것을 실어나를 미사일이 미 본토를 위협하는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북핵이 코앞에 온 지금 최대 피해자인 우리가 생존을 미국의 구두 약속에만 의존하고 있다면 안보를 '설마'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서유럽 국가들은 미국에 '당신들 본토 희생을 각오하고 우리를 지켜주겠느냐'고 물었다. 우리도 같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핵 공유가 가능하게 되면 우리가 필요로 할 때 핵전력을 요구할 수 있고 필요치 않을 때 거부할 수도 있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주장이라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의지에 의해 바뀌는 것이 현실이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미사일 지침' 개정을 요구해 3년 만에 사거리를 300㎞에서 800㎞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그때도 과연 가능하겠냐는 얘기가 많았다. 이번에 우리 군이 북한 전역을 사정권으로 두는 사거리 800㎞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한 것도 지침 개정 덕분이었다. 현재로서는 유 후보의 집권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누가 대통령이 되든 대북(對北)만을 전제로 한·미 핵 공유 추진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서울신문]
6. 수출 호조 내수 살릴 마중물로 삼자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경상수지 흑자 폭이 크게 늘어나는 등 최근 들어 각종 경제지표가 호전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지난해만 해도 수출과 내수의 동반 위축으로 찬 바람이 쌩쌩 불던 우리 경제에 봄기운이 일면서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다소 회복되는 것 같아 반갑다.
수출은 지난해 11월 이후 지난달까지 5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2월 수출은 432억 달러(통관 기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넘게 늘었고 3월에는 14% 정도 늘어난 489억 달러로 집계됐다. 애초 우려했던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수출에 큰 충격을 주지 않은 것은 매우 다행스럽다.
지난 2월 수입이 24%쯤 늘었는데도 경상수지 흑자가 84억 달러로 지난 석 달 동안 증가 폭이 가장 큰 것은 특히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간의 경상수지 흑자가 수출보다 수입이 더 줄어 나타나는 이른바 ‘불황형 흑자’의 고리에서 벗어나 정상적 흑자 패턴으로의 방향 전환을 예고해 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올 1~2월 생산과 투자가 모두 증가하면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중심으로 성장률 전망치를 올려 잡을 움직임까지 감지되고 있다. 지난주 한국경제연구원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2.5%로 0.4% 포인트 올린 데 이어 KDI와 한국은행도 상향조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
우선 경제지표 호전은 지난해 실적이 워낙 저조한 데 따른 기저효과(基底效果)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미국이 앞장서 글로벌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면서 수출이 계속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당장 다음주에는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여부를 담은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가 기다리고 있다.
북한의 6차 핵실험과 중국의 사드 보복도 진행형이다. 무엇보다 체감경기가 냉골인 것이 걱정스럽다. 수출 대기업들과 달리 내수에 의존하는 영세 자영업과 중소기업, 서비스업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수출 증가가 내수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은 탓이다. 가계부채에 발목 잡힌 서민들은 6개월째 상승행진을 하는 생활물가 탓에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정부가 가장 우선적으로 할 일은 윗목의 수출 온기가 아랫목까지 이어지도록 내수에 힘쓰는 일이다. 그 해답은 일자리 창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모처럼 만들어낸 경기 회복의 ‘마중물’ 환경을 재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여기엔 대선 주자를 포함한 정치권도 힘을 보태야 한다.
7. 문 후보, 통합 막는 패권·분열정치 종식 약속해야
19대 대통령 선거가 본격화되면서 2강 3약의 구도로 압축되는 분위기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급속한 상승세를 타면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위협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후보 등은 비장한 출사표에도 불구하고 아직 폭발적인 세를 얻지 못한 것이다. 문 후보가 여전히 지지율 1위임은 틀림없지만 절대 찍지않겠다는 비토 세력 또한 만만치 않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오차범위 내로 안 후보가 따라붙을 정도로 대세론이 흔들거리는 것도 사실이다.
당장 문 후보와 관련된 의혹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문 후보 아들 준용씨와 관련된 채용 의혹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06년 고용정보원 채용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공고 기간 단축은 물론 응시원서 위조 의혹까지 번지고 있다. 문 후보나 캠프 측은 특혜는 있을 수 없고 이미 노동부의 감사까지 받아, 해명된 사안이라고 주장하지만 적지 않은 국민은 수긍하지 못하고 있다.
중앙선관위가 어제 문 후보의 아들 준용씨를 채용했던 한국고용정보원에 관련자료 제출을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최근엔 노무현 정부 당시 문 후보가 민정수석으로 재직할 때 노 전 대통령 사돈의 음주운전 사고를 은폐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안 후보의 국민의당 등은 일제히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 사태를 묵인 방조한 우병우 전 수석의 행태와 뭐가 다르냐”는 날 선 공세를 펴고 있다.
문 후보는 억울한 측면도 있겠지만 ‘대세론’을 굳히려는 지지율 1위 후보로서 피할 수 없는 검증 절차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문 후보가 안희정 지사와 이재명 시장과의 당내 경선에서 압승했다지만 이 역시 비당원을 포함해 고작 선거인단 214만명의 투표 결과인 것이다. 문 후보는 이제 당원이 아닌 국민 그것도 과거 당내 패권주의와 분열 정치를 모질게 비판했던 보수·중도세력들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다.
문 후보가 민주당의 공식 대선후보가 됐지만 이는 상당 부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보여준 촛불 민심에 편승한 측면도 있다. 문 후보가 국가 리더로서 당당하게 서려면 탄핵 정국에서 보여준 적폐 청산의 의지 이외의 능력과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우선 비판자들을 포용하고 함께 끌고 갈 수 있는 통합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시중에서 회자되듯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식’의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다. 최근 문자폭탄에 대해 ‘선거의 양념’이라고 발언했다가 문 후보가 결국 사과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우리 국민은 제대로 검증받지 않고 당선된 대통령으로 인해 이미 큰 상처를 입었다. 선거 전략에 따라 상대편 진영에서 행하는 부풀리기식 의혹일 수는 있지만 그 의혹의 진위와 해소 여부는 국민이 판단할 문제다. 문 후보의 눈 높이는 이제 당원이 아닌, 국민에게 맞춰야 한다.
8. 공시생 25만, 국가손실 17조란 우울한 현실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이른바 ‘공시생’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2011년 18만 5000명에서 지난해 25만 7000명으로 38.9%나 증가했다. 경기 침체와 취업난이 맞물린 상황에서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한 젊은이들의 몸부림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더욱이 학벌과 스펙이 채용 과정에서 영향을 미치는 현실에서 공무원을 향한 도전은 비록 합격률이 낮지만 자기 실력만으로 공정한 경쟁에 뛰어들 기회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기에 공직 특권을 좇는 공시생이라고 결코 깎아내릴 수 없다. 우리가 맞닥뜨린 사회의 단면인 까닭에서다.
문제는 젊은 인재들이 공무원 시험 준비에 능력을 집중시키는 데 따른 국가적 손실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그저께 ‘공시의 경제적 영향 분석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공시생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순손실을 연간 17조1429억원으로 추산했다.
시험 준비 과정에서 지출하는 학원비·교재비 등을 경제적 순기능으로 보면 4조 6260억원인 반면 일을 하지 않아 사회에 끼친 역기능은 21조 7689억원에 이른다. 순기능과 역기능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인 것처럼 국가 차원에서는 엄청난 인적자원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젊은이들의 공직 선호에는 달리 이유가 없다. 정년이 보장되는 데다 공무원 연금이라는 노후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있어서다. 뿌리 깊은 사농공상의 직업관 탓에 공직 자체를 사회적 권위이자 힘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또한 민간 기업들과는 달리 고교 졸업, 지방대 출신 등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지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내일 치러지는 올해 9급 공무원 공채시험에 무려 22만 8368명이 응시했다.
공시생들이 늘어나는 원인은 질 좋은 일자리의 부족이다. 쉽지 않은 해법이지만 그렇다고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정부는 우선 공시생을 포함해 청년 실업의 심각성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일부터 나서야 한다. 젊은이들이 일을 찾을 수 있는 여건 조성을 위해서다.
정책을 세우되 가능한 것부터 순차적으로 풀어갈 필요가 있다. 기업들도 사회 기여와 책임 차원에서 정규직 채용을 늘리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대선 후보들은 너나없이 뚜렷한 실행 계획 없이 일자리 대통령만을 외치고 있다.
[매일신문]
9. ‘병원 맘대로’ 비급여 진료비, 취약 계층 의료권 위협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의 진료비가 병원마다 제각각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들의 비급여 진료비 부담도 늘어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높고 환자가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하는 비급여 진료비가 병원마다 들쑥날쑥한 것은 의료계에 대한 불신을 낳고 취약 계층의 의료권을 위협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은 최근 ‘2017년 의료기관별 비급여 진료 비용’을 인터넷과 모바일앱으로 공개했다. 2013년부터 기관별 비급여 진료비를 공개하다가 올해부터는 대상 기관과 공개 항목을 1.8배, 2.1배로 각각 확대했다. 자료에 따르면 대구에서도 비급여 진료비는 병원마다 천차만별이다. 위 진정내시경의 경우 4배, 경부 초음파 검사료는 7배 차이가 난다. 대학병원보다 비급여 진료비를 높게 받는 병원급 의료기관도 있다.
비급여 진료비가 제각각인 것은 병`의원이 임의로 가격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기관마다 의술과 장비`시설 수준이 다른 만큼 비급여 진료비를 획일적으로 정하라고 강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동일 항목의 진료비 차이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준을 넘어선다면 환자 입장에서는 ‘바가지’를 썼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번에 심평원이 비급여 진료비 공개를 확대한 것은 바람직한 조치이다. 그러나 의료 주 소비층인 노령층의 컴퓨터 및 스마트폰 활용 능력을 고려할 때 이것만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됐다고 볼 수 없다. 실제로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가 절실한데도 우리나라에서는 비급여 진료비 부담이 역주행하고 있다.
2014년 우리 국민이 지출한 비급여 진료비가 11조2천억원으로 2009년 6조2천억원보다 두 배 가까이 불어난 것만 봐도 그렇다. 같은 기간 건강보험보장률은 65%에서 63%로 오히려 낮아졌다. 이는 OECD 평균치 80%에 크게 밑도는 수치다.
상대적으로 고비용인 비급여 진료비는 실손보험에 가입할 여력이 없는 취약 계층의 의료권을 위협한다. 비급여 진료비 부담을 줄이고 건강보험 보장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향으로 건강보험 정책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10. 지역 국회의원, 지방분권형 개헌 의지 있기는 한가
대구경북지역 국회의원들은 지방분권형 개헌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었으나 자신들의 입지에 영향을 미칠 내용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거부감을 나타낸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24명의 지역 의원들을 대상으로 본지가 조사한 결과이다. 그러나 8명은 이런저런 이유로 아예 설문조사에 응하지 않아 평소 개헌을 외치던 모습과는 다른 이중적인 행동을 보였다.
이번 조사 결과는 한마디로 지역 의원과 지배 정당의 지방분권형 개헌에 대한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먼저 조사 불응 의원이 8명이고 특히 자유한국당 소속이 7명이나 된다는 점이 그렇다. 이유는 가지가지다. 당직 이유에서부터 정당 간 협상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거나 답변하기 곤란한 내용 때문이라는 등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만큼 분권형 개헌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나 제대로 된 연구가 없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또 응답자 상당수가 자신들의 입지에 미칠 사안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점도 분권형 개헌 의지의 빈곤을 엿보게 한다. 지역 대표로 구성된 상원 신설과 국민소환제`국민발안제(법률) 도입을 반대한 의원이 응답자 16명 중 각각 11명과 9명을 차지한 까닭이다. 이는 쉽게 말해 자신들의 권한은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집단이기적 속내를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들 밥그릇만큼은 손대지 않는 그런 개헌을 바란다는 뜻이다.
아울러 지방자치의 중대 요소인 지방정부의 조직 구성과 지방세 부과와 관련한 전권을 지방정부가 갖도록 하기 위해 헌법 조항을 바꾸는 내용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점도 지방분권을 바라는 국민들 생각과 달랐다. 원론적인 입장에서 찬성한 지방분권형 개헌 주장이 자칫 알맹이 없는 공허하고 선언적인 외침에 그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대구경북은 우리나라 분권운동의 출발지다. 그런 만큼 지역 의원들의 분권형 개헌에 대한 보다 치열한 고민과 연구가 뒷받침돼야 한다. 아울러 지방분권형 개헌에 대한 분명한 밑그림부터 갖고 개헌에 나서야 한다. 또한 자신의 권한 침해에 대한 걱정 같은 소아적인 사고의 틀도 깨트릴 때다.
주요신문칼럼
1. [경향신문][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 ‘귓속말’, 우리 시대 악에 대한 냉철한 탐구
어둑어둑한 새벽의 낚시터에서 한 남성이 살해된다. 그는 국내 최대 로펌과 방산업체의 비리 사건을 은밀히 취재하던 방송국 기자 김성식(최홍일)이었고, 그와 만나기로 약속했다가 시신을 발견하고 신고한 동료 신창호(강신일)는 오히려 살해 용의자로 몰려 긴급 체포당한다. 신창호는 김성식과 함께 같은 비리 사건을 추적하다가 정치적 압력을 받은 전력이 있는 전직 기자였다.
이 정도면 상식적으로 살인 사건의 배후에 대해 충분히 의문이 생겨날 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수사팀은 신창호만을 집중 추궁하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언론에서는 그가 언론노조 파업을 주도하다 해직 당하게 된 배경은 숨긴 채 사측 입장의 ‘전과 2범’이라는 수식어만을 강조해 보도한다. 끝까지 유일한 용의자였던 신창호는 어떠한 변호도 받지 못한 채 징역 15년을 선고받는다.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은 부패한 권력에 의해 입을 가로막힌 이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방산비리를 파헤치려던 기자는 잔혹하게 살해당했고 그와 더불어 진실을 알리려던 동료 기자는 살해 누명을 뒤집어썼다. 이보다 앞서서는 보도하려던 방송이 검열당하고 이에 저항하는 기자들은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해고당하는 언론 통제가 먼저 있었다. 해직기자 신창호는 그 직접적 피해자다.
김성식 살인 사건 발생 뒤 신창호에게 전과자 프레임을 씌우고 진실 은폐에 협력했던 기사들은 그러한 언론 통제의 병폐를 정확히 보여준다. 주인공 신영주(이보영)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부친 신창호와 살해당한 김성식을 대신해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사건의 진상을 폭로하려 나선다. <귓속말>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발언권을 독점하는 거대권력의 크고 강압적인 목소리와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작은 속삭임으로 거대한 함성을 만들어내려는 이들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귓속말>을 쓴 박경수는 시대의 악에 대해 뛰어난 성찰을 보여온 작가다. 그의 명성을 확실히 각인시킨 첫 작품 <추적자>를 비롯해 <황금의 제국> <펀치>로 이어지는 작품들은 최후에 정의의 손을 들어주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정의와 상대하는 악이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얼마나 교묘한 흡인력을 지닌 것인가를 동시에 그리고 있다.
실제로 <추적자>의 국내 최대 재벌 서 회장(박근형), <황금의 제국>의 재벌 형제 최동성(박근형)과 최동진(정한용), <펀치>의 검찰총장 이태준(조재현) 등 세 작품에서 각각 ‘최종 보스’에 해당하는 악역들은 모두 주인공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났다는 점이다.
전쟁통의 피란길에서 너무나 배가 고팠던 나머지 몰래 숨어 고구마를 먹다가 가족을 잃고, 꽁꽁 언 칡으로 허기를 달래야 했을 정도로 처절한 생존 본능이 온몸에 각인된 이들은 시청자들에게 분명 강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문제는 이 절실한 생존 본능이 타인을 짓밟고 더 잘살기 위한 상위포식자의 욕망으로 변질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어쩌면 그 분기점이 되는 첫 선택은 사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괴물은 한순간에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의 비윤리적인 선택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박경수의 악역들은 그렇게 평범한 악의 기원을 대변하기에 지극히 현실적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추적자> 서 회장의 가장 유명한 대사 하나를 살펴보자. “이 나라 국민들이 동윤이에게 속고 있다고 생각하나? 한오그룹 사위가 서민을 위해서 정치한다고 하는데 이 나라 국민들이 그걸 진짜 믿고 있다고 생각하나? 동윤이 공약을 한번 보래이. 집 가지고 있는 놈은 집값 올려준다하지, 땅 있는 놈 땅값 올리준다카제, 월급쟁이한텐 봉급 올리준다하제? 다 즈그들한테 이익이 되니까 지지하는기다. 그런데 집값 올려준다고 해서 지지한다고 하면 지가 부끄러운기라. 그래서 개혁의 기수다 뭐다 해서 지지하는 기다. 국민들은 자기가 자길 속이고 있는 거다.” 서 회장의 대사는 그들의 악마성이 실은 우리 모두의 일그러진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점을 통찰하고 있다.
박경수 작가는 이처럼 늘 이득을 얻는 비윤리적 삶과 아무 이득 없는 윤리적 삶 가운데서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고 질문을 던져왔다. <귓속말>에서도 이러한 질문은 여전하다. 이는 신영주가 정의의 판사에서 ‘법비’의 일부로 타락한 이동준(이상윤)에게 일갈한 대사를 통해 나타난다. 한 번의 잘못을 두고두고 참회하겠다는 그에게 영주는 냉소한다.
“입시부정에 가담한 교수가 있어요. 그 덕에 학과장이 됐죠. 한 번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도 모를 한 번의 타협…. 그런데 어떡하지? 입시는 해마다 돌아오는데. 처음엔 가담만 했던 사람이 공모를 하고, 주도를 하고. 총장 취임식날 내가 체포했어요. 열 명, 아니 백 명도 말해줄 수 있어, 당신 같은 사람.”
그리고 <귓속말>의 세계관이 더 비관적인 이유는 지금 이 시대가 오히려 이러한 비윤리적 선택을 합리화하는 시대라는 인식에 있다. 신창호와 같은 불의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탄압한 결과는 악의 논리가 진리가 된 세상이다. 한마디로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지옥도다. 정의는 그 지옥도를 다시 비정상적인 것으로 되돌리는 냉철한 현실인식에서 시작된다. 그런 측면에서 박경수식 악의 묘사는 최근 쏟아져 나오는 비슷한 소재의 사회파 드라마들이 거대한 공적을 설정하고 그 적이 얼마나 악마적이고 천박한가를 묘사하는 데 몰두하며 말초적 혐오와 분노를 자극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 부조리한 현실의 일부인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2. [경향신문][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식빵의 역사
요즘 동네마다 식빵만 파는 가게가 생기고 있다. 식빵 전성시대다. 이것저것 많은 빵과 과자를 갖추는 게 보통의 전통적인 제과점이자 제빵점이었다. 장비와 노동이 많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런 시장은 거개 대형 프랜차이즈 회사가 먹어버렸다. 개인 제빵사들이 한 가지 품목만 다루면서 비용을 줄이고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식빵전문점으로 나서고 있는 셈이다. 큰 욕심 안 부리고 적게 버는 대신 더 많은 개인의 자유를 누리려는 새로운 가치관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는 식빵의 원조 국가 중의 하나인 일본의 영향이 작용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국가 모델이었던 영국을 통해 빵을 받아들인다. 이때 식빵이 등장했다. 식(食)빵이라는 일본어(‘쇼쿠팡’) 자체에 그 역사가 들어 있다. 간식으로 먹는 달콤한 빵의 대척점에 있는 빵이란 뜻이다. 식빵은 일본의 근대와 개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나중에 건빵이 제조되고 군국주의의 식량이 되어 악명을 떨친 것도 아는 바와 같다.
일본의 빵 문화는 한국에 그대로 이식되었다. 근대가 식민지를 통해서 강제 이식된 것처럼. 해방 후 적산(敵産)이 된 제과점이 우리 현대 제과제빵 역사의 시작이 된 건 물론이다. 새로운 제빵 세대들이 유럽에서 빵 문화를 직수입하기 시작한 2000년대 전까지는 그랬다.
옛날, 미제장수가 드나드는 부잣집 친구네 가면 땅콩버터가 있었다. 식빵에 발라먹으면 최고였다. 마가린을 듬뿍 바르고 설탕을 왕창 뿌려서 먹는 방법도 있었다. 씹을 때마다 설탕 가루가 사각거렸다. 한때 ‘곱빼기’라는 이름의 빵이 있었다. 공장제품이었는데, 식빵의 양 옆면 그러니까 갈색으로 탄 부분만 세 장을 넣어서 파는 ‘빅사이즈’ 빵이었다. 보들하고 하얀 빵은 두 장을 겹쳐서 잼을 발라 파는데, 이건 어차피 값어치가 덜 나가는 부위여선지 세 장이 들어 있었다. 배고픈 시절에는 역시 양이 최고. 인기 있었던 식빵으로 기억한다.
부언하지만, 사실 갈색 부위의 양면 식빵이 제일 맛있는 부위다. 빵은 기름을 넣어 굽게 되는데 갈색으로 타면서 ‘마이아르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고기나 빵 등을 맛있게 만드는 과학적 방법이다. 제과점에서 식빵을 먹는 법도 있었다. 요즘 같으면 턱도 없을 일인데, 대여섯명의 청소년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자르지 않은 식빵 한 덩어리를 시킨다. 포크를 하나씩 들고 찢어낸 식빵에 설탕을 찍어 먹었다. 돈 안되는 손님이 와도 아무 말 없이 빵을 내주었던 그 시절의 마음씨 좋은 주인들 생각이 난다.
전 대통령의 구치소 수감 후 이틀 연속 아침식사로 식빵이 배급되었다고 한다. 구치소 납품용의 거친 빵을 어떻게 넘기셨나 모르겠다. 부디 그 식빵 맛에 익숙해지시길 바란다. 우리는 범죄혐의자에게도 적절한 식사를 제공하는 민주주의 국가다.
프랑스 혁명기 마리 앙트와네트(‘말이 안통하네트’가 아니다)가 했다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란 발언은 실은 케이크가 아니라 ‘브리오슈’라고 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식빵의 원조다. 식빵을 두고 두 여인의 운명이 다시금 겹쳐진다.
3. [국민일보][색과 삶] 립스틱 효과
소위 ‘불황형 소비품목’이라 불리는 립스틱 매출이 늘고 있다고 한다. 1930년대 미국 경제공황 시기에 유독 립스틱 매출만 오르는 기이한 현상을 두고 학자들은 ‘립스틱 효과(lipstick effect)’라고 했다. 립스틱만 발라도 기분을 바꾸는 효과가 최근의 소비 트렌드로 등장했다는 의미다. 위축된 소비심리를 작고 값싼 물건으로 극복해보려는 행동의 일종이다. 넥타이 효과, 매니큐어 효과와 같은 말들도 일맥상통한다.
값비싼 승용차는 사지 못하더라도 한 끼의 럭셔리 음식, 고급 초콜릿 구매도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와는 반대 경우인 과시욕구로 고가 상품이나 명품 구매가 늘어나는 ‘베블런 효과’도 공존하다보니 소비 패턴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생물학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짝짓기와 싸움 그리고 먹이활동을 보다 정교하게 진화시켜 왔다. 종족 번식을 위해 잠재적 배우자를 유혹하는 행동 또한 교묘해졌다. 이런 측면에서 화장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성이 아름답게 보이고자 하는 욕망은 수백만 년 진화 과정에서 유전자로 물려받은 본능이다. 모든 생물은 자신의 능력을 성장과 종족 번식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인간 또한 좋은 배우자를 선택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성이 립스틱을 바르는 행동은 남성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욕망 이전에 젊고 건강하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립스틱이란 물건은 타인에게는 단정한 인상을, 자신에게는 활력을 불어넣는 작고 아름다운 사치품이다.
최근 들어 특히 빨간 립스틱이 잘 팔리는 현상은 투자 대비 효과가 높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의상과 헤어컬러에 따라 효과가 다르긴 하지만, 검은 피부에는 밝고 선명한 빨강 립스틱이 잘 어울린다. 흰 피부 얼굴에 보라색이나 와인색 입술은 창백해 보일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붉은 피부에는 오렌지색이 좋은 느낌을 준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여성에 해당하는 황갈색 피부에는 레드나 핑크가 무난하다.
4. [매일경제][매경프리미엄] 죽음을 그린 영화 '크로닉'
우리는 살아가는 동시에 죽어간다. 우리의 시간은 죽음보다 삶에 집중된듯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살아가는 만큼 죽어가고 있다. 애석하게도 이것이 인간사의 순리다.
그 누구도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아무리 숱한 간접 경험들과 이론적인 학습을 선행해도 막상 죽음 앞에 선 인간은 한없이 나약해진다. 죽음과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명확한 징후는 병이다. 그 어떤 방법을 총동원해도 나을 수 없는 병에 걸린 인간은 곧 죽게 마련이다.
영화 ‘크로닉’ 속 '데이비드'는 호스피스 간호사다. 그는 죽음을 앞둔 다양한 환자들의 집에 머물며 그들의 최후까지 함께 한다. 데이비드는 헌신적인 간호사 이상으로 환자들과 가까이 지낸다. 환자들에게 소홀한 그들 가족들에 반해, 데이비드는 환자들의 일상을 공유하며 친가족처럼 생활한다. 따라서 데이비드는 누군가의 친구이자 연인, 또는 동생이기도 한 셈이다.
데이비드의 헌신은 다양한 모습들로 표출된다. 간호 외에도 환자들이 원하는 모든 것들을 다 해주려 노력한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데이비드의 모습은 어떨 때는 환자들보다 더 서글퍼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데이비드의 삶 역시 고달프다. 타인의 가족 역할은 곧잘 해내는 그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의 진짜 가족과는 멀어진 상태다. 이혼 후 친딸과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데이비드의 삶은 모순적이다. 하지만 이 모순은 데이비드의 삶만이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데이비드가 돌봐온 환자들의 가족처럼,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과 가장 먼 심적 거리를 두는 모순을 행하고 있다.
‘크로닉’은 관계의 모순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삶의 끝에 놓인 환자들은 신체적 통증보다 관계의 단절에서 더 깊은 고통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신체의 고통과 함께 삶의 끝을 맞는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관계의 고통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관계의 고통은 노력으로 덜 수 있다.
데이비드의 삶은 신체의 고통보다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관계의 단절 속에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죽은 것과 다름 아님을 인지시켜주는 영화 ‘크로닉’. 수많은 환자들의 죽음보다 더 저릿한 삶을 살아가는 데이비드의 일상을 통해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덕목을 일러주는 작품이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전함 야마토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해군력의 중요성을 실감한 전승국들은 너나없이 전함과 항공모함 증강 경쟁에 나섰다. 더 크게 더 많이…, 군비경쟁은 재정 압박으로 이어졌고, 미국 영국 등 5개국이 급기야 1921년 11월 미국 워싱턴DC에 모여 군축협상을 시작했다.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그렇게 체결됐다. 전함 수와 크기를 총 배수량(배를 띄워 밀려나는 물의 중량, 즉 배의 중량) 및 전함당 기준배수량으로 제한한 거였다.
전함 한 척의 기준 배수량 한도는 3만 5,000톤, 총배수량은 일본의 경우 30만톤. 예컨대 배수량 3만톤 규모의 전함을 최대 10척까지 보유할 수 있게 한 거였다. 배가 커질수록 주포 등 함포가 커진다. 함포가 클수록 화력과 방어력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게 그 무렵의 상식이었다.
1930년대 침략전쟁에 열 올리던 제국 일본의 세계 최대 전함 야마토(大和)호 건조 계획(1934)이, 워싱턴 조약을 무시한 채 극비리에 추진됐다. 전함 크기는 기준배수량 6만5,000톤, 주포도 조약 기준(16인치 이하)보다 큰 18.1인치였다. 야마토는 1940년 8월 진수해 42년 2월 태평양 전쟁에 투입됐다.
하지만 2차대전의 해전 양상은, 항공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전함간 함포 공방이 아닌 항공모함 함재기 기동공격으로 변해 있었다. 세계 최대 전함 야마토는 뾰족한 전과를 올리지 못했고,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연료 등 군수물자 부족 탓에 섣불리 움직이지도 못했다.
오키나와 전투(45.4.1~6.23)가 시작되자 일제는 야마토의 출진을 결정했다. 편도 항해에 필요한 연료만 채운 야마토에는 최대한 긁어 모은 포탄 등 화약과 군인 3,300여 명이 승선했다. 돌아오지 못할 항진을 시작한 그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미 함대를 격파한 뒤 오키나와 섬 앞바다에 좌초해 해안포대가 되라’는 거였다.
하지만 미 항모 USS베닝턴과 호넷은 야마토의 거대 주포로도 미치지 못할 거리에서 함재기로 야마토를 공략했고, 야마토의 대공포는 비행기를 잡기에 너무 느렸다. 45년 4월 7일, 전함 야마토는 어뢰와 함재기의 급강하 폭격에 전투 5시간여 만에 항해 불능상태에 빠졌고, 자체 폭발로 큐슈 남서쪽 200km 해상에서 침몰했다. 승선 군인 중 포로로 살아남은 이는 269명에 불과했다.
주요신문사설
[세계일보]
1. 소송으로 번진 미세먼지 피해,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중국발 미세먼지 피해에 대해 한국과 중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됐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와 안경재 변호사 등 7명은 그제 한·중 정부를 상대로 각각 300만원의 정신적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미세먼지 피해와 관련해 양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최 대표 등은 소장에서 “현재 (중국발) 미세먼지 오염 정도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밝혔다. 미세먼지 70∼80%가 중국에서 날아오는 상황에서 국내 환경단체와 시민들이 행동으로 피해구제를 호소한 것이다.
올해 국내 대기질은 ‘숨이 막힐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서울의 일평균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나쁨’(1㎥당 50㎍ 이상) 이상을 기록한 날이 17일로, 초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한 2014년 이후 가장 많았다.
같은 기간 전국 초미세먼지 주의보 발령 횟수는 86회로, 전년 동기(47회)보다 82.9% 증가했다. 여기에다 5월까지는 미세먼지 고농도 현상이 자주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여간 우려스럽지 않다.
중국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태도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 측의 미세먼지 문제 제기에 대해 “중국 대기오염이 주변국에 영향을 미치는지 과학적인 전문적 입증절차가 필요하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한·중 양국이 주한미군 사드 배치 문제로 갈등을 빚는 터라 환경당국이 대응을 머뭇거린다고 한다. 한심한 일이다.
국민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문제인 만큼 뒷짐 지고 있어선 안 된다. 사드 여파로 중단된 미세먼지 한·중 공동 연구 재개를 위한 외교 노력을 펼쳐야 한다. 차제에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법적 효력이 있는 양국의 환경기구 설치도 추진해야 한다.
우리 정부와 민간 부문의 안일한 인식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교육 현장이 대표적 사례다.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 중인데도 일선 학교에선 강당과 체육관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무방비 상태에서 야외 체육활동을 하곤 한다.
지난해의 경우 16개 시·도교육청 중 5곳은 학생 실외활동이 곤란한 상황에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백 가지 미세먼지 저감 대책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정부는 미세먼지 실태부터 제대로 파악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동아일보]
2. 우병우 세 번째 소환한 檢, ‘봐주기 수사’ 넘어설 수 있나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어제 검찰에 3번째로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광주지검에 외압을 행사해 해양경찰의 부실 구조 수사를 방해한 혐의가 이번 조사의 핵심이다. 청와대와 최순실 씨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등 불법을 저지른 정황을 알고도 덮었을 뿐 아니라 되레 진상 은폐를 주도한 혐의에 대해서도 검찰은 강도 높은 조사를 했다고 한다.
우 전 수석에 대해 2월 박영수 특검은 공무원 좌천 인사를 주도하고 민간인을 사찰한 혐의 등으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된 바 있다. 이후 특검 수사에선 우 전 수석이 김수남 검찰총장과 지난해 7, 8월 12차례에 걸쳐 2시간 18분이나 통화한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엔 가족회사 정강 등 우 전 수석 자신의 사건에 대해 통화했을지 몰라도 평소엔 청와대의 주요 관심 사건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민정수석이 ‘대통령 뜻’을 내세워 정의로워야 할 검찰의 칼을 비틀었다면 ‘법 앞에 평등’이라는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검찰이 우 전 수석과 통화한 검찰 고위 간부들의 소환조사를 외면하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이 이르면 오늘 우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라지만 이번엔 구속만을 목표로 해선 안 될 것이다. 적당히 구속만 시켜 국민의 눈을 가릴 속셈으로 면피성 수사를 할 것이 아니라 우 전 수석과 관련한 의혹을 샅샅이 파헤쳐야 한다.
검찰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은 제 식구인 우 전 수석에 대해 유독 ‘봐주기 수사’를 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검찰엔 30명 안팎으로 추정되는 ‘우병우 사단’이 건재하다. 지난해 우 전 수석을 무혐의 처리한 검찰이 또다시 제 식구 봐주기를 한다면 차기 정권에서 개혁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검찰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이번엔 반드시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놔야 한다.
3. ‘가짜 뉴스’ 판치는 세상, 신문의 역할 더 중요해졌다
오늘은 ‘신문의 날’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 창간기념일(1896년 4월 7일)에 맞춰 한국신문편집인협회가 이날을 제정한 지 올해로 61회째다. 독립신문이 창간 사설에서 ‘백성이 정부 일을 자세히 알고, 정부에서 백성의 일을 자세히 아시면 피차에 유익한 일이 많이 있을 터’라고 밝혔듯이 공정한 보도로 권력을 감시하고 건강한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민주사회의 공론장 역할을 하는 신문의 사명을 되새기는 날이다. 그러나 독자의 알 권리를 위협하는 ‘가짜 뉴스(FakeNews)’가 판치는 현실에서 ‘신문의 날’을 맞는 심정은 그 어느 해보다 착잡하다.
5월 9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가짜 뉴스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짜 뉴스란 저널리즘 양식을 빌려와 정치적, 상업적 이득을 취하는 거짓 정보를 말한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카카오톡 대통령선거 관련 ‘오픈 채팅방’ 10곳을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5일까지 집중 분석한 결과 7곳에 가짜 뉴스가 뜬 것으로 나타났다. 카카오톡 참여자라면 익명으로도 쓸 수 있는 오픈 채팅방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맥을 타고 가짜 뉴스를 전방위로 확산시키는 신(新)유통 경로로 부상한 것이다.
가짜 뉴스는 과거 ‘카더라’식의 흑색선전과도 다르다. 언론에 보도됐다거나 유명 인사가 말했다는 식으로 공신력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대(對)국민 사기나 다름없다. 작년 미국 대선을 계기로 페이스북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된 가짜 뉴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나온다. 9월 총선을 앞둔 독일에서 가짜 뉴스 같은 유해 게시물을 방치하는 SNS 기업에 최고 5000만 유로(약 600억 원)의 벌금을 물리는 법안을 준비 중인 이유다.
탄핵정국에서 경험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가짜 뉴스의 폐해가 심각하다. 한국언론재단의 지난달 말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인 남녀 중 76%가 가짜 뉴스로 인해 진짜 뉴스를 접할 때도 가짜로 의심한다고 답했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가짜 뉴스로 인한 신뢰 저하 등 사회적 피해 비용이 연간 30조 원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카카오톡에서는 가짜 뉴스 방지를 위해 오픈 채팅 이용자가 가짜 뉴스 유포자를 신고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지만 익명의 공간인 만큼 유포자 색출도 쉽지 않다.
가짜 뉴스의 범람은 역설적으로 신문의 역할과 중요성을 각인시킨다. 가짜 뉴스를 가려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공신력 있는 신문이 보도한 내용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신문의 공정하고 정확한 보도와 독자의 올바른 판단이 합쳐질 때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가짜 뉴스를 물리칠 수 있다. 우리는 사회적 공기(公器)이자 깨어 있는 파수꾼으로 팩트를 존중하고 진실을 찾는 저널리즘 본연의 책임을 다할 것이다.
[조선일보]
4. 대선 판세 급변, 文·安 민심 제대로 읽으라
대선을 32일 앞두고 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간 양강(兩强) 구도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달 초 안 후보가 앞서는 양자 대결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더니 4~5일 실시된 다른 조사에서도 그런 흐름이 확인됐다. 그 격차도 다소 벌어지는 양상이다. 5자·6자 등 다자 대결에서는 문 후보가 여전히 안 후보를 앞섰지만 여기서도 차이가 전보다 확연히 좁혀졌다. 탄핵 정국에서 굳건히 유지됐던 '문재인 대세론'이 흔들리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문재인 후보가 스스로 만든 결과다. 탄핵 바람 속에서 쉽게 승리할 것으로 보고 '대청소, 적폐 청산'과 같은 구호에 주력했다. 많은 국민이 통합을 원하는데 문 후보는 반대로 갔다. 문 후보 주변의 완장 찬 듯한 오만한 언행, 상대를 증오하고 적대시하는 행태는 노무현식 편 가르기 정치가 재연될 것이란 우려를 낳았다.
북한 김정은의 이복형 독살, 이어지는 탄도미사일 도발 속에서도 문 후보는 사드 배치 국회 결정,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를 주장했다. 열성 지지층은 좋아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문 후보의 지지율은 줄지도 늘지도 않고 거의 비슷하다.
안철수 후보의 급부상은 '문재인은 안 된다'는 유권자들이 선거가 다가옴에 따라 가장 가능성이 큰 안 후보 쪽으로 몰린 결과일 것이다. 반사이익이다. 어제 관훈토론회에서 안 후보는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강점으로 '안보'와 함께 4차 산업혁명에 가장 잘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러나 안 후보가 미·중·일·러 정상들을 상대할 만한 외교적 식견이 있는지는 전혀 검증된 것이 없다. 안 후보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지지율이 10% 선에 묶여 있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새겨야 한다.
어제 안 후보는 비문(非文) 연대에 대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자유한국당, 바른정당과의 연대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후보 단일화 아닌 정책 연대까지 반대한다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 말을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선거 구도는 거의 확정돼가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엔 촛불과 태극기 대결이 만들어 놓은 분열의 골을 메우는 대통령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민이 통합돼야 안보도 경제도 대처할 수 있다. 문 후보의 재도약과 안 후보의 역전승도 여기에 달렸다. 자기 걱정이 아니라 나라 걱정을 더 하면 자연스레 큰 민심, 진짜 민심이 보일 것이다.
5. 유승민 "NATO식 核 공유 추진" 다음 정부 검토할 만하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지난 5일 발표한 안보 공약에서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전력을 한·미가 공동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미국에 요구해나가겠다고 했다. 지금이 6·25 이후 최대 안보 위기 상황이라며 '한·미 핵 공유'가 군사 주권 확대와 북핵 억지력 강화를 동시에 실행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했다.
미국이 '핵 공유'를 제공하고 있는 군사 파트너는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유일하다. 미국을 제외한 NATO 18개 회원국 중 5개국에 배치된 전술핵(B61 핵폭탄 200여 기)을 실제 사용하게 될 경우 결정도 공동으로 하고 해당 국가 전투기만 이용하도록 하는 협정을 맺었다. 소련의 핵 위협을 받은 서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핵우산 약속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고 하자 나온 방안이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국제사회에서는 이것을 미·NATO 동맹 결속력의 상징으로 본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는 아·태 지역 핵심 동맹이라고 하면서도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핵만이 아니라 미사일 사거리와 탄두 중량까지도 통제하고 있다. 지금은 북의 핵 위협이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바뀌고 있다.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고 이것을 실어나를 미사일이 미 본토를 위협하는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북핵이 코앞에 온 지금 최대 피해자인 우리가 생존을 미국의 구두 약속에만 의존하고 있다면 안보를 '설마'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서유럽 국가들은 미국에 '당신들 본토 희생을 각오하고 우리를 지켜주겠느냐'고 물었다. 우리도 같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핵 공유가 가능하게 되면 우리가 필요로 할 때 핵전력을 요구할 수 있고 필요치 않을 때 거부할 수도 있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주장이라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의지에 의해 바뀌는 것이 현실이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미사일 지침' 개정을 요구해 3년 만에 사거리를 300㎞에서 800㎞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그때도 과연 가능하겠냐는 얘기가 많았다. 이번에 우리 군이 북한 전역을 사정권으로 두는 사거리 800㎞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한 것도 지침 개정 덕분이었다. 현재로서는 유 후보의 집권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누가 대통령이 되든 대북(對北)만을 전제로 한·미 핵 공유 추진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서울신문]
6. 수출 호조 내수 살릴 마중물로 삼자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경상수지 흑자 폭이 크게 늘어나는 등 최근 들어 각종 경제지표가 호전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지난해만 해도 수출과 내수의 동반 위축으로 찬 바람이 쌩쌩 불던 우리 경제에 봄기운이 일면서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다소 회복되는 것 같아 반갑다.
수출은 지난해 11월 이후 지난달까지 5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2월 수출은 432억 달러(통관 기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넘게 늘었고 3월에는 14% 정도 늘어난 489억 달러로 집계됐다. 애초 우려했던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수출에 큰 충격을 주지 않은 것은 매우 다행스럽다.
지난 2월 수입이 24%쯤 늘었는데도 경상수지 흑자가 84억 달러로 지난 석 달 동안 증가 폭이 가장 큰 것은 특히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간의 경상수지 흑자가 수출보다 수입이 더 줄어 나타나는 이른바 ‘불황형 흑자’의 고리에서 벗어나 정상적 흑자 패턴으로의 방향 전환을 예고해 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올 1~2월 생산과 투자가 모두 증가하면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중심으로 성장률 전망치를 올려 잡을 움직임까지 감지되고 있다. 지난주 한국경제연구원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2.5%로 0.4% 포인트 올린 데 이어 KDI와 한국은행도 상향조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
우선 경제지표 호전은 지난해 실적이 워낙 저조한 데 따른 기저효과(基底效果)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미국이 앞장서 글로벌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면서 수출이 계속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당장 다음주에는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여부를 담은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가 기다리고 있다.
북한의 6차 핵실험과 중국의 사드 보복도 진행형이다. 무엇보다 체감경기가 냉골인 것이 걱정스럽다. 수출 대기업들과 달리 내수에 의존하는 영세 자영업과 중소기업, 서비스업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수출 증가가 내수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은 탓이다. 가계부채에 발목 잡힌 서민들은 6개월째 상승행진을 하는 생활물가 탓에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정부가 가장 우선적으로 할 일은 윗목의 수출 온기가 아랫목까지 이어지도록 내수에 힘쓰는 일이다. 그 해답은 일자리 창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모처럼 만들어낸 경기 회복의 ‘마중물’ 환경을 재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여기엔 대선 주자를 포함한 정치권도 힘을 보태야 한다.
7. 문 후보, 통합 막는 패권·분열정치 종식 약속해야
19대 대통령 선거가 본격화되면서 2강 3약의 구도로 압축되는 분위기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급속한 상승세를 타면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위협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후보 등은 비장한 출사표에도 불구하고 아직 폭발적인 세를 얻지 못한 것이다. 문 후보가 여전히 지지율 1위임은 틀림없지만 절대 찍지않겠다는 비토 세력 또한 만만치 않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오차범위 내로 안 후보가 따라붙을 정도로 대세론이 흔들거리는 것도 사실이다.
당장 문 후보와 관련된 의혹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문 후보 아들 준용씨와 관련된 채용 의혹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06년 고용정보원 채용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공고 기간 단축은 물론 응시원서 위조 의혹까지 번지고 있다. 문 후보나 캠프 측은 특혜는 있을 수 없고 이미 노동부의 감사까지 받아, 해명된 사안이라고 주장하지만 적지 않은 국민은 수긍하지 못하고 있다.
중앙선관위가 어제 문 후보의 아들 준용씨를 채용했던 한국고용정보원에 관련자료 제출을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최근엔 노무현 정부 당시 문 후보가 민정수석으로 재직할 때 노 전 대통령 사돈의 음주운전 사고를 은폐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안 후보의 국민의당 등은 일제히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 사태를 묵인 방조한 우병우 전 수석의 행태와 뭐가 다르냐”는 날 선 공세를 펴고 있다.
문 후보는 억울한 측면도 있겠지만 ‘대세론’을 굳히려는 지지율 1위 후보로서 피할 수 없는 검증 절차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문 후보가 안희정 지사와 이재명 시장과의 당내 경선에서 압승했다지만 이 역시 비당원을 포함해 고작 선거인단 214만명의 투표 결과인 것이다. 문 후보는 이제 당원이 아닌 국민 그것도 과거 당내 패권주의와 분열 정치를 모질게 비판했던 보수·중도세력들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다.
문 후보가 민주당의 공식 대선후보가 됐지만 이는 상당 부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보여준 촛불 민심에 편승한 측면도 있다. 문 후보가 국가 리더로서 당당하게 서려면 탄핵 정국에서 보여준 적폐 청산의 의지 이외의 능력과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우선 비판자들을 포용하고 함께 끌고 갈 수 있는 통합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시중에서 회자되듯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식’의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다. 최근 문자폭탄에 대해 ‘선거의 양념’이라고 발언했다가 문 후보가 결국 사과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우리 국민은 제대로 검증받지 않고 당선된 대통령으로 인해 이미 큰 상처를 입었다. 선거 전략에 따라 상대편 진영에서 행하는 부풀리기식 의혹일 수는 있지만 그 의혹의 진위와 해소 여부는 국민이 판단할 문제다. 문 후보의 눈 높이는 이제 당원이 아닌, 국민에게 맞춰야 한다.
8. 공시생 25만, 국가손실 17조란 우울한 현실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이른바 ‘공시생’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2011년 18만 5000명에서 지난해 25만 7000명으로 38.9%나 증가했다. 경기 침체와 취업난이 맞물린 상황에서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한 젊은이들의 몸부림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더욱이 학벌과 스펙이 채용 과정에서 영향을 미치는 현실에서 공무원을 향한 도전은 비록 합격률이 낮지만 자기 실력만으로 공정한 경쟁에 뛰어들 기회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기에 공직 특권을 좇는 공시생이라고 결코 깎아내릴 수 없다. 우리가 맞닥뜨린 사회의 단면인 까닭에서다.
문제는 젊은 인재들이 공무원 시험 준비에 능력을 집중시키는 데 따른 국가적 손실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그저께 ‘공시의 경제적 영향 분석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공시생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순손실을 연간 17조1429억원으로 추산했다.
시험 준비 과정에서 지출하는 학원비·교재비 등을 경제적 순기능으로 보면 4조 6260억원인 반면 일을 하지 않아 사회에 끼친 역기능은 21조 7689억원에 이른다. 순기능과 역기능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인 것처럼 국가 차원에서는 엄청난 인적자원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젊은이들의 공직 선호에는 달리 이유가 없다. 정년이 보장되는 데다 공무원 연금이라는 노후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있어서다. 뿌리 깊은 사농공상의 직업관 탓에 공직 자체를 사회적 권위이자 힘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또한 민간 기업들과는 달리 고교 졸업, 지방대 출신 등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지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내일 치러지는 올해 9급 공무원 공채시험에 무려 22만 8368명이 응시했다.
공시생들이 늘어나는 원인은 질 좋은 일자리의 부족이다. 쉽지 않은 해법이지만 그렇다고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정부는 우선 공시생을 포함해 청년 실업의 심각성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일부터 나서야 한다. 젊은이들이 일을 찾을 수 있는 여건 조성을 위해서다.
정책을 세우되 가능한 것부터 순차적으로 풀어갈 필요가 있다. 기업들도 사회 기여와 책임 차원에서 정규직 채용을 늘리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대선 후보들은 너나없이 뚜렷한 실행 계획 없이 일자리 대통령만을 외치고 있다.
[매일신문]
9. ‘병원 맘대로’ 비급여 진료비, 취약 계층 의료권 위협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의 진료비가 병원마다 제각각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들의 비급여 진료비 부담도 늘어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높고 환자가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하는 비급여 진료비가 병원마다 들쑥날쑥한 것은 의료계에 대한 불신을 낳고 취약 계층의 의료권을 위협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은 최근 ‘2017년 의료기관별 비급여 진료 비용’을 인터넷과 모바일앱으로 공개했다. 2013년부터 기관별 비급여 진료비를 공개하다가 올해부터는 대상 기관과 공개 항목을 1.8배, 2.1배로 각각 확대했다. 자료에 따르면 대구에서도 비급여 진료비는 병원마다 천차만별이다. 위 진정내시경의 경우 4배, 경부 초음파 검사료는 7배 차이가 난다. 대학병원보다 비급여 진료비를 높게 받는 병원급 의료기관도 있다.
비급여 진료비가 제각각인 것은 병`의원이 임의로 가격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기관마다 의술과 장비`시설 수준이 다른 만큼 비급여 진료비를 획일적으로 정하라고 강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동일 항목의 진료비 차이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준을 넘어선다면 환자 입장에서는 ‘바가지’를 썼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번에 심평원이 비급여 진료비 공개를 확대한 것은 바람직한 조치이다. 그러나 의료 주 소비층인 노령층의 컴퓨터 및 스마트폰 활용 능력을 고려할 때 이것만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됐다고 볼 수 없다. 실제로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가 절실한데도 우리나라에서는 비급여 진료비 부담이 역주행하고 있다.
2014년 우리 국민이 지출한 비급여 진료비가 11조2천억원으로 2009년 6조2천억원보다 두 배 가까이 불어난 것만 봐도 그렇다. 같은 기간 건강보험보장률은 65%에서 63%로 오히려 낮아졌다. 이는 OECD 평균치 80%에 크게 밑도는 수치다.
상대적으로 고비용인 비급여 진료비는 실손보험에 가입할 여력이 없는 취약 계층의 의료권을 위협한다. 비급여 진료비 부담을 줄이고 건강보험 보장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향으로 건강보험 정책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10. 지역 국회의원, 지방분권형 개헌 의지 있기는 한가
대구경북지역 국회의원들은 지방분권형 개헌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었으나 자신들의 입지에 영향을 미칠 내용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거부감을 나타낸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24명의 지역 의원들을 대상으로 본지가 조사한 결과이다. 그러나 8명은 이런저런 이유로 아예 설문조사에 응하지 않아 평소 개헌을 외치던 모습과는 다른 이중적인 행동을 보였다.
이번 조사 결과는 한마디로 지역 의원과 지배 정당의 지방분권형 개헌에 대한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먼저 조사 불응 의원이 8명이고 특히 자유한국당 소속이 7명이나 된다는 점이 그렇다. 이유는 가지가지다. 당직 이유에서부터 정당 간 협상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거나 답변하기 곤란한 내용 때문이라는 등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만큼 분권형 개헌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나 제대로 된 연구가 없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또 응답자 상당수가 자신들의 입지에 미칠 사안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점도 분권형 개헌 의지의 빈곤을 엿보게 한다. 지역 대표로 구성된 상원 신설과 국민소환제`국민발안제(법률) 도입을 반대한 의원이 응답자 16명 중 각각 11명과 9명을 차지한 까닭이다. 이는 쉽게 말해 자신들의 권한은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집단이기적 속내를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들 밥그릇만큼은 손대지 않는 그런 개헌을 바란다는 뜻이다.
아울러 지방자치의 중대 요소인 지방정부의 조직 구성과 지방세 부과와 관련한 전권을 지방정부가 갖도록 하기 위해 헌법 조항을 바꾸는 내용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점도 지방분권을 바라는 국민들 생각과 달랐다. 원론적인 입장에서 찬성한 지방분권형 개헌 주장이 자칫 알맹이 없는 공허하고 선언적인 외침에 그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대구경북은 우리나라 분권운동의 출발지다. 그런 만큼 지역 의원들의 분권형 개헌에 대한 보다 치열한 고민과 연구가 뒷받침돼야 한다. 아울러 지방분권형 개헌에 대한 분명한 밑그림부터 갖고 개헌에 나서야 한다. 또한 자신의 권한 침해에 대한 걱정 같은 소아적인 사고의 틀도 깨트릴 때다.
주요신문칼럼
1. [경향신문][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 ‘귓속말’, 우리 시대 악에 대한 냉철한 탐구
어둑어둑한 새벽의 낚시터에서 한 남성이 살해된다. 그는 국내 최대 로펌과 방산업체의 비리 사건을 은밀히 취재하던 방송국 기자 김성식(최홍일)이었고, 그와 만나기로 약속했다가 시신을 발견하고 신고한 동료 신창호(강신일)는 오히려 살해 용의자로 몰려 긴급 체포당한다. 신창호는 김성식과 함께 같은 비리 사건을 추적하다가 정치적 압력을 받은 전력이 있는 전직 기자였다.
이 정도면 상식적으로 살인 사건의 배후에 대해 충분히 의문이 생겨날 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수사팀은 신창호만을 집중 추궁하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언론에서는 그가 언론노조 파업을 주도하다 해직 당하게 된 배경은 숨긴 채 사측 입장의 ‘전과 2범’이라는 수식어만을 강조해 보도한다. 끝까지 유일한 용의자였던 신창호는 어떠한 변호도 받지 못한 채 징역 15년을 선고받는다.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은 부패한 권력에 의해 입을 가로막힌 이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방산비리를 파헤치려던 기자는 잔혹하게 살해당했고 그와 더불어 진실을 알리려던 동료 기자는 살해 누명을 뒤집어썼다. 이보다 앞서서는 보도하려던 방송이 검열당하고 이에 저항하는 기자들은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해고당하는 언론 통제가 먼저 있었다. 해직기자 신창호는 그 직접적 피해자다.
김성식 살인 사건 발생 뒤 신창호에게 전과자 프레임을 씌우고 진실 은폐에 협력했던 기사들은 그러한 언론 통제의 병폐를 정확히 보여준다. 주인공 신영주(이보영)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부친 신창호와 살해당한 김성식을 대신해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사건의 진상을 폭로하려 나선다. <귓속말>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발언권을 독점하는 거대권력의 크고 강압적인 목소리와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작은 속삭임으로 거대한 함성을 만들어내려는 이들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귓속말>을 쓴 박경수는 시대의 악에 대해 뛰어난 성찰을 보여온 작가다. 그의 명성을 확실히 각인시킨 첫 작품 <추적자>를 비롯해 <황금의 제국> <펀치>로 이어지는 작품들은 최후에 정의의 손을 들어주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정의와 상대하는 악이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얼마나 교묘한 흡인력을 지닌 것인가를 동시에 그리고 있다.
실제로 <추적자>의 국내 최대 재벌 서 회장(박근형), <황금의 제국>의 재벌 형제 최동성(박근형)과 최동진(정한용), <펀치>의 검찰총장 이태준(조재현) 등 세 작품에서 각각 ‘최종 보스’에 해당하는 악역들은 모두 주인공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났다는 점이다.
전쟁통의 피란길에서 너무나 배가 고팠던 나머지 몰래 숨어 고구마를 먹다가 가족을 잃고, 꽁꽁 언 칡으로 허기를 달래야 했을 정도로 처절한 생존 본능이 온몸에 각인된 이들은 시청자들에게 분명 강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문제는 이 절실한 생존 본능이 타인을 짓밟고 더 잘살기 위한 상위포식자의 욕망으로 변질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어쩌면 그 분기점이 되는 첫 선택은 사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괴물은 한순간에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의 비윤리적인 선택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박경수의 악역들은 그렇게 평범한 악의 기원을 대변하기에 지극히 현실적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추적자> 서 회장의 가장 유명한 대사 하나를 살펴보자. “이 나라 국민들이 동윤이에게 속고 있다고 생각하나? 한오그룹 사위가 서민을 위해서 정치한다고 하는데 이 나라 국민들이 그걸 진짜 믿고 있다고 생각하나? 동윤이 공약을 한번 보래이. 집 가지고 있는 놈은 집값 올려준다하지, 땅 있는 놈 땅값 올리준다카제, 월급쟁이한텐 봉급 올리준다하제? 다 즈그들한테 이익이 되니까 지지하는기다. 그런데 집값 올려준다고 해서 지지한다고 하면 지가 부끄러운기라. 그래서 개혁의 기수다 뭐다 해서 지지하는 기다. 국민들은 자기가 자길 속이고 있는 거다.” 서 회장의 대사는 그들의 악마성이 실은 우리 모두의 일그러진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점을 통찰하고 있다.
박경수 작가는 이처럼 늘 이득을 얻는 비윤리적 삶과 아무 이득 없는 윤리적 삶 가운데서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고 질문을 던져왔다. <귓속말>에서도 이러한 질문은 여전하다. 이는 신영주가 정의의 판사에서 ‘법비’의 일부로 타락한 이동준(이상윤)에게 일갈한 대사를 통해 나타난다. 한 번의 잘못을 두고두고 참회하겠다는 그에게 영주는 냉소한다.
“입시부정에 가담한 교수가 있어요. 그 덕에 학과장이 됐죠. 한 번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도 모를 한 번의 타협…. 그런데 어떡하지? 입시는 해마다 돌아오는데. 처음엔 가담만 했던 사람이 공모를 하고, 주도를 하고. 총장 취임식날 내가 체포했어요. 열 명, 아니 백 명도 말해줄 수 있어, 당신 같은 사람.”
그리고 <귓속말>의 세계관이 더 비관적인 이유는 지금 이 시대가 오히려 이러한 비윤리적 선택을 합리화하는 시대라는 인식에 있다. 신창호와 같은 불의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탄압한 결과는 악의 논리가 진리가 된 세상이다. 한마디로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지옥도다. 정의는 그 지옥도를 다시 비정상적인 것으로 되돌리는 냉철한 현실인식에서 시작된다. 그런 측면에서 박경수식 악의 묘사는 최근 쏟아져 나오는 비슷한 소재의 사회파 드라마들이 거대한 공적을 설정하고 그 적이 얼마나 악마적이고 천박한가를 묘사하는 데 몰두하며 말초적 혐오와 분노를 자극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 부조리한 현실의 일부인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2. [경향신문][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식빵의 역사
요즘 동네마다 식빵만 파는 가게가 생기고 있다. 식빵 전성시대다. 이것저것 많은 빵과 과자를 갖추는 게 보통의 전통적인 제과점이자 제빵점이었다. 장비와 노동이 많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런 시장은 거개 대형 프랜차이즈 회사가 먹어버렸다. 개인 제빵사들이 한 가지 품목만 다루면서 비용을 줄이고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식빵전문점으로 나서고 있는 셈이다. 큰 욕심 안 부리고 적게 버는 대신 더 많은 개인의 자유를 누리려는 새로운 가치관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는 식빵의 원조 국가 중의 하나인 일본의 영향이 작용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국가 모델이었던 영국을 통해 빵을 받아들인다. 이때 식빵이 등장했다. 식(食)빵이라는 일본어(‘쇼쿠팡’) 자체에 그 역사가 들어 있다. 간식으로 먹는 달콤한 빵의 대척점에 있는 빵이란 뜻이다. 식빵은 일본의 근대와 개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나중에 건빵이 제조되고 군국주의의 식량이 되어 악명을 떨친 것도 아는 바와 같다.
일본의 빵 문화는 한국에 그대로 이식되었다. 근대가 식민지를 통해서 강제 이식된 것처럼. 해방 후 적산(敵産)이 된 제과점이 우리 현대 제과제빵 역사의 시작이 된 건 물론이다. 새로운 제빵 세대들이 유럽에서 빵 문화를 직수입하기 시작한 2000년대 전까지는 그랬다.
옛날, 미제장수가 드나드는 부잣집 친구네 가면 땅콩버터가 있었다. 식빵에 발라먹으면 최고였다. 마가린을 듬뿍 바르고 설탕을 왕창 뿌려서 먹는 방법도 있었다. 씹을 때마다 설탕 가루가 사각거렸다. 한때 ‘곱빼기’라는 이름의 빵이 있었다. 공장제품이었는데, 식빵의 양 옆면 그러니까 갈색으로 탄 부분만 세 장을 넣어서 파는 ‘빅사이즈’ 빵이었다. 보들하고 하얀 빵은 두 장을 겹쳐서 잼을 발라 파는데, 이건 어차피 값어치가 덜 나가는 부위여선지 세 장이 들어 있었다. 배고픈 시절에는 역시 양이 최고. 인기 있었던 식빵으로 기억한다.
부언하지만, 사실 갈색 부위의 양면 식빵이 제일 맛있는 부위다. 빵은 기름을 넣어 굽게 되는데 갈색으로 타면서 ‘마이아르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고기나 빵 등을 맛있게 만드는 과학적 방법이다. 제과점에서 식빵을 먹는 법도 있었다. 요즘 같으면 턱도 없을 일인데, 대여섯명의 청소년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자르지 않은 식빵 한 덩어리를 시킨다. 포크를 하나씩 들고 찢어낸 식빵에 설탕을 찍어 먹었다. 돈 안되는 손님이 와도 아무 말 없이 빵을 내주었던 그 시절의 마음씨 좋은 주인들 생각이 난다.
전 대통령의 구치소 수감 후 이틀 연속 아침식사로 식빵이 배급되었다고 한다. 구치소 납품용의 거친 빵을 어떻게 넘기셨나 모르겠다. 부디 그 식빵 맛에 익숙해지시길 바란다. 우리는 범죄혐의자에게도 적절한 식사를 제공하는 민주주의 국가다.
프랑스 혁명기 마리 앙트와네트(‘말이 안통하네트’가 아니다)가 했다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란 발언은 실은 케이크가 아니라 ‘브리오슈’라고 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식빵의 원조다. 식빵을 두고 두 여인의 운명이 다시금 겹쳐진다.
3. [국민일보][색과 삶] 립스틱 효과
소위 ‘불황형 소비품목’이라 불리는 립스틱 매출이 늘고 있다고 한다. 1930년대 미국 경제공황 시기에 유독 립스틱 매출만 오르는 기이한 현상을 두고 학자들은 ‘립스틱 효과(lipstick effect)’라고 했다. 립스틱만 발라도 기분을 바꾸는 효과가 최근의 소비 트렌드로 등장했다는 의미다. 위축된 소비심리를 작고 값싼 물건으로 극복해보려는 행동의 일종이다. 넥타이 효과, 매니큐어 효과와 같은 말들도 일맥상통한다.
값비싼 승용차는 사지 못하더라도 한 끼의 럭셔리 음식, 고급 초콜릿 구매도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와는 반대 경우인 과시욕구로 고가 상품이나 명품 구매가 늘어나는 ‘베블런 효과’도 공존하다보니 소비 패턴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생물학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짝짓기와 싸움 그리고 먹이활동을 보다 정교하게 진화시켜 왔다. 종족 번식을 위해 잠재적 배우자를 유혹하는 행동 또한 교묘해졌다. 이런 측면에서 화장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성이 아름답게 보이고자 하는 욕망은 수백만 년 진화 과정에서 유전자로 물려받은 본능이다. 모든 생물은 자신의 능력을 성장과 종족 번식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인간 또한 좋은 배우자를 선택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성이 립스틱을 바르는 행동은 남성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욕망 이전에 젊고 건강하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립스틱이란 물건은 타인에게는 단정한 인상을, 자신에게는 활력을 불어넣는 작고 아름다운 사치품이다.
최근 들어 특히 빨간 립스틱이 잘 팔리는 현상은 투자 대비 효과가 높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의상과 헤어컬러에 따라 효과가 다르긴 하지만, 검은 피부에는 밝고 선명한 빨강 립스틱이 잘 어울린다. 흰 피부 얼굴에 보라색이나 와인색 입술은 창백해 보일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붉은 피부에는 오렌지색이 좋은 느낌을 준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여성에 해당하는 황갈색 피부에는 레드나 핑크가 무난하다.
4. [매일경제][매경프리미엄] 죽음을 그린 영화 '크로닉'
우리는 살아가는 동시에 죽어간다. 우리의 시간은 죽음보다 삶에 집중된듯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살아가는 만큼 죽어가고 있다. 애석하게도 이것이 인간사의 순리다.
그 누구도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아무리 숱한 간접 경험들과 이론적인 학습을 선행해도 막상 죽음 앞에 선 인간은 한없이 나약해진다. 죽음과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명확한 징후는 병이다. 그 어떤 방법을 총동원해도 나을 수 없는 병에 걸린 인간은 곧 죽게 마련이다.
영화 ‘크로닉’ 속 '데이비드'는 호스피스 간호사다. 그는 죽음을 앞둔 다양한 환자들의 집에 머물며 그들의 최후까지 함께 한다. 데이비드는 헌신적인 간호사 이상으로 환자들과 가까이 지낸다. 환자들에게 소홀한 그들 가족들에 반해, 데이비드는 환자들의 일상을 공유하며 친가족처럼 생활한다. 따라서 데이비드는 누군가의 친구이자 연인, 또는 동생이기도 한 셈이다.
데이비드의 헌신은 다양한 모습들로 표출된다. 간호 외에도 환자들이 원하는 모든 것들을 다 해주려 노력한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데이비드의 모습은 어떨 때는 환자들보다 더 서글퍼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데이비드의 삶 역시 고달프다. 타인의 가족 역할은 곧잘 해내는 그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의 진짜 가족과는 멀어진 상태다. 이혼 후 친딸과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데이비드의 삶은 모순적이다. 하지만 이 모순은 데이비드의 삶만이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데이비드가 돌봐온 환자들의 가족처럼,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과 가장 먼 심적 거리를 두는 모순을 행하고 있다.
‘크로닉’은 관계의 모순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삶의 끝에 놓인 환자들은 신체적 통증보다 관계의 단절에서 더 깊은 고통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신체의 고통과 함께 삶의 끝을 맞는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관계의 고통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관계의 고통은 노력으로 덜 수 있다.
데이비드의 삶은 신체의 고통보다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관계의 단절 속에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죽은 것과 다름 아님을 인지시켜주는 영화 ‘크로닉’. 수많은 환자들의 죽음보다 더 저릿한 삶을 살아가는 데이비드의 일상을 통해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덕목을 일러주는 작품이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전함 야마토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해군력의 중요성을 실감한 전승국들은 너나없이 전함과 항공모함 증강 경쟁에 나섰다. 더 크게 더 많이…, 군비경쟁은 재정 압박으로 이어졌고, 미국 영국 등 5개국이 급기야 1921년 11월 미국 워싱턴DC에 모여 군축협상을 시작했다.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그렇게 체결됐다. 전함 수와 크기를 총 배수량(배를 띄워 밀려나는 물의 중량, 즉 배의 중량) 및 전함당 기준배수량으로 제한한 거였다.
전함 한 척의 기준 배수량 한도는 3만 5,000톤, 총배수량은 일본의 경우 30만톤. 예컨대 배수량 3만톤 규모의 전함을 최대 10척까지 보유할 수 있게 한 거였다. 배가 커질수록 주포 등 함포가 커진다. 함포가 클수록 화력과 방어력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게 그 무렵의 상식이었다.
1930년대 침략전쟁에 열 올리던 제국 일본의 세계 최대 전함 야마토(大和)호 건조 계획(1934)이, 워싱턴 조약을 무시한 채 극비리에 추진됐다. 전함 크기는 기준배수량 6만5,000톤, 주포도 조약 기준(16인치 이하)보다 큰 18.1인치였다. 야마토는 1940년 8월 진수해 42년 2월 태평양 전쟁에 투입됐다.
하지만 2차대전의 해전 양상은, 항공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전함간 함포 공방이 아닌 항공모함 함재기 기동공격으로 변해 있었다. 세계 최대 전함 야마토는 뾰족한 전과를 올리지 못했고,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연료 등 군수물자 부족 탓에 섣불리 움직이지도 못했다.
오키나와 전투(45.4.1~6.23)가 시작되자 일제는 야마토의 출진을 결정했다. 편도 항해에 필요한 연료만 채운 야마토에는 최대한 긁어 모은 포탄 등 화약과 군인 3,300여 명이 승선했다. 돌아오지 못할 항진을 시작한 그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미 함대를 격파한 뒤 오키나와 섬 앞바다에 좌초해 해안포대가 되라’는 거였다.
하지만 미 항모 USS베닝턴과 호넷은 야마토의 거대 주포로도 미치지 못할 거리에서 함재기로 야마토를 공략했고, 야마토의 대공포는 비행기를 잡기에 너무 느렸다. 45년 4월 7일, 전함 야마토는 어뢰와 함재기의 급강하 폭격에 전투 5시간여 만에 항해 불능상태에 빠졌고, 자체 폭발로 큐슈 남서쪽 200km 해상에서 침몰했다. 승선 군인 중 포로로 살아남은 이는 269명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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