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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서해 ‘꽃게 풍년’ 해경이 굳게 지켜야 한다
서해 꽃게 어장이 요즘 조용하다고 한다. 최근 봄철 꽃게 조업이 시작된 가운데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역에서 불법 조업하는 중국어선들이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해경에 따르면 어제 연평도 인근에는 중국어선이 한척도 보이지 않았다. 서해 5도 주변 전체적으로 이달 초만 해도 190여척에 이르던 중국어선이 최근에는 40여척으로 급감했다. 덕분에 작년 봄어기 380㎏에 그쳤던 꽃게 어획량이 올해는 9500㎏까지 급증했다. 꽃게 풍년에 어민들은 모처럼 함박웃음이라고 한다.
해경은 이를 지난 4일 창단한 서해5도 특별경비단의 효과로 분석했다. 400여명의 인력과 벌컨포 등을 갖춘 대형함정, 소방방탄정 등 12척의 함정으로 구성된 특경단은 창단 후 7일 동안 중국어선 5척을 나포하고 37척을 퇴거시켰다. 이전보다 한층 강력해진 단속에 중국어선이 70%가량 줄었다는 것이다. 북한의 6차 핵실험 가능성이 커지면서 미국 칼빈슨 항공모함 전단이 한반도 주변에 재배치되는 등 한반도 정세가 급격히 얼어붙은 점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법하다.
이유야 어찌됐든 우리 어장을 휘젓던 중국어선이 사라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전에도 단속을 강화하면 일시적으로 감소했지만 대부분 반짝 효과에 그치곤 했다. 지난해 10월 폭력적인 중국어선들에 대해 M60 기관총 등 공용화기를 사용하는 강경대응 방침을 밝히자 한동안 줄어드는 기미가 보였지만 잠시뿐이었다. 교활하고 흉포한 중국어선들의 행태로 보아 단속이 자칫 느슨해지면 언제라도 다시 준동할지 모른다.
중국어선들의 불법조업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서해뿐 아니라 최근에는 동해에까지 출몰하고 있다. 더구나 치어까지 싹쓸이하는 불법 남획으로 우리 바다에서 어족 자원의 씨를 말리고 있다. 머지않아 식탁에서 국내산 생선이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사드 보복’의 치졸한 중국에 우리 어민들의 터전까지 내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무력 대처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단 한척의 중국어선도 우리 해역을 넘보지 못하도록 원천 차단해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2. 80세도 부양의무자로 보는 독소조항 고쳐야
이번 대선에서 눈길을 끄는 복지 공약 중의 하나가 부양의무제 폐지다. 부양의무제란 부모나 자녀의 재산과 소득이 일정 기준을 넘으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되는 제도다. 아무리 생활고에 시달려도 부모나 자식 중 누구라도 재산이 있거나 일을 하게 되면 정부로부터 생계비나 의료비, 교육비 등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돼 있다. 그러다 보니 생활고를 감당하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이 나온다. 대선에 나온 문재인·안철수·유승민·심상정 후보가 의무부양제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들고 나온 이유다.
2000년 시행된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서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의 선정 기준인 부양의무자 기준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받기 어려워졌다. 경기 침체, 실업난, 물가난 등을 고려하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늘어나야 하는 게 정상이거늘 수급자가 감소하다가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은 부양의무제 때문이다. 이 제도로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한 극빈층이 117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법과 현실의 괴리가 빚어낸 복지 피해자들이다.
이 제도에 따라 80세 딸도 100세의 어머니를 부양해야 한다. 어머니는 아무리 곤궁해도 자신 못지않게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처지인 80세 딸이 있다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경제력을 상실한 노인이 노인을 봉양해야 하는 구조다. 고령화의 한 단면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제도가 갖는 ‘독소 조항’ 탓이다.
과거에는 부모 봉양이 당연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세태가 야박해진 탓도 있지만 교육비와 주거비 등으로 자식들도 제 앞가림을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노인들이 나랏돈을 지원받으려면 자식이 부모를 방임한다는 사실을 재판으로 증명을 해야 한다. 복잡하고도 인륜을 저버리는 절차를 거쳐야 하니 노인들은 가난을 안고 살 수밖에 없다.
스스로 자립할 수 없는 노약자는 국가와 사회 공동체가 책임져야 한다. 가족에게 모든 책임과 의무를 떠맡겨서는 안 된다. 하지만 문제는 재원이다. 부양의무제 폐지 때 연간 10조원이 더 들어간다. 선의의 정책이라도 당장 도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단계적으로 폐지하되 그러지 못한다면 도움이 절실한 이들만이라도 부양의무에서 우선 면제하는 등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복지예산 130조원 시대에 극빈층을 복지 사각지대에 내몰아서야 되겠나.
3. 4차 산업혁명 토대 세울 후보 꼼꼼히 따져 뽑자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4차 산업혁명의 성패는 19대 대통령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철학을 가지고 어떤 정책을 펴느냐에 따라 우리의 먹거리, 일거리가 차기 정부 5년 사이 대박을 터뜨릴 수도, 쪽박을 찰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들이 가장 역점을 들여 다듬고 있는 공약 중 하나가 4차 산업혁명 분야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을 일구는 방식과 어떻게 그 과실을 우리의 것으로 할 것인가 하는 각론에 들어가면 제각각이고 2% 부족하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대통령 직속의 위원회를 만들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컨트롤타워로 삼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즉 정부 주도인 것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이들과 정반대이다. 미래 예측은 불가능하고 정부가 계획을 세워서 끌고 가면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 있으므로, 민간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정부는 뒷받침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주도권을 쥐는 게 정부냐 민간이냐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는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5년 임기의 대통령이 만든 위원회가 성공한 사례가 없다면서 미래창조과학부와 산업 담당 부처의 통합 또는 기능 조정을 통한 맞춤형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 주도형의 문 후보는 과학기술정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총괄하는 과학기술부의 부활과 중소기업청의 중소벤처기업부로의 승격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홍 후보는 새만금을 4차 산업혁명의 전진기지로 삼겠다고 밝히고 있다. 심 후보는 태양광, 해상 풍력발전, 전기충전 기술 같은 생태혁신 투자를 주도하겠다고 말했다. 민간 주도형의 안 후보는 창업중소기업부 신설과 함께 4차 산업혁명의 주도적 민간 기업에서 일할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해 내는 과감한 교육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후보들의 4차 산업혁명 청사진은 모두 장밋빛이다.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준다. 연구 개발 지원, 기술 개발에만 머물고 있는 공약에서 한걸음 나아가 경제적 성과로 연결하는 방법론이 보이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기술이 진보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일자리 감소 등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대안 제시도 미흡하다.
그런 점에서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어제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 혁신으로 원치 않는 재취업을 했을 때 줄어든 소득의 일정 부분을 보전해 주는 임금보험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한 제안은 후보들이 참고할 만하다.
4차 산업혁명에 이르는 길을 주도하는 게 정부냐 민간이냐, 어느 쪽이 옳은지는 밟아 보지 못한 미지의 길이다. 따라서 정답은 없다. 5월 9일까지 후보 간 토론, 완성된 공약을 잘 따져 보고 유권자가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난마처럼 얽힌 규제를 과감히 풀어 창의가 춤추도록 한다는 대원칙만큼은 빼놓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4. 사드 철회만 종용하는 中 우다웨이
방한 중인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주요 정당 관계자 및 대선 후보들을 잇따라 만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철회를 요구했다. 지난 10일 우다웨이가 한국에 들어올 때만 해도 일각에서는 한반도를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는 북핵에 대한 양국의 공조방안이 논의의 중심이 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사드 배치가 중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에 큰 피해를 준다”는 중국 당국의 주장을 릴레이 면담을 통해 되풀이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방한은 대선을 20여일 앞둔 한국 정계의 분위기를 탐색하기 위한 ‘엿보기 방한’ 성격이 짙다.
우리가 우다웨이의 방한에 일말의 기대를 건 것은 그가 중국을 대표하는 아시아통이고 북한의 6차 핵실험 징후로 한반도가 격랑에 빠진 상황에서 사드 보복으로 불편해진 한·중 관계에 새로운 국면을 여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우리 측 인사들에게 보여준 행보는 ‘중화 이기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마치 앵무새처럼 자국의 안보 이익만 강조했을 뿐 우리의 안보 이익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없었다. 경제보복 중단 요구에 대해 “중국 국민의 자발적 행동이고 정부의 행위가 아니다”는 노회한 발언만 늘어놓았을 뿐이다. 더구나 사드 배치와 관련해 우리 측 인사들을 균열 내고 이간질하는 듯한 행보는 황당하고 괘씸하기 짝이 없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단호하고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사드의 레이더가 중국 전체의 절반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우다웨이에게 “사드는 이미 설치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더이상 얘기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한 김무성 바른정당 공동선대위원장의 응수는 높이 살 만하다. 국가 안보에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
사드는 중국 안방을 들여다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한 핵 공격에 대한 견제용이다. 딱 잘라서 얘기하는 것이 차기 정부가 출범한 뒤 중국과의 협상에서도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타국의 안보가 걸린 중대 사안에 치졸한 경제 보복으로 대응하는 중국의 방식은 자충수가 되면 됐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의 무역 제한 조치는 우리에게 잠시 고통을 줄 수는 있겠지만 자국 업체에도 피해는 주는 ‘양날의 검’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뒤통수를 치는 중국의 예측 불가능한 외교정책은 투자환경을 해치며, 상대국에 적대감의 씨앗을 뿌리는 행위라는 사실을 우다웨이는 깨닫고 돌아가길 바란다.
[조선일보]
5. 조기 대선 무방비 상태서 맞은 한반도 정세 중대 고비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미국에서 만난 지 5일 만인 어제 다시 전화로 회담했다. 중국 공산당 선전 기관들에 따르면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며 평화적 방법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고 미국과 소통, 협력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서로 얼굴을 보고 만난 정상회담이 끝난 지 5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시 주석이 전화를 걸어야 했다면 뭔가 긴급하고 중대한 사정이 있거나 최소한 매우 우려하는 문제가 떠올랐다는 뜻이다. 일단 미국의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이끄는 전단이 한반도 인근 해역으로 이동 중이고 대북 선제 타격설, 북 미사일 요격설이 잇따라 나오자 시 주석이 직접 나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북핵을 막지 않으면 우리가 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혀왔다. 그는 어제도 언론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큰 실수를 하고 있다"며 "미국은 강력한 무적함대를 (북한에) 보내고 있다"고 다시 경고했다. 미 당국자들은 대북 군사 조치를 선택에서 빼지 않고 있다고 거듭 언급하고 있다. 물론 대북 군사 조치는 쉽게 실행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뉴욕타임스 보도대로 실질적 제약이 적지 않다. 한국에 거주하는 약 20만명의 미국인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은 지금 당장 군사 조치를 실행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실제 미국이 이지스함이 포함된 항모 전단을 한반도 해역에 배치하는 행동에 들어가자 트럼프 정부의 특성을 아직 잘 모르는 중국으로서는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대북 군사 조치는 확전 가능성을 안고 있다. 북은 이 가능성 때문에 국제사회가 어쩌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온갖 도발을 벌이고 있다. 중국도 북한과 같은 판단을 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이 미국 세력을 막는 완충 지대로서 가치가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라는 미지의 인물이 등장함으로써 북한과 중국의 이런 판단에 불확실성이 생긴 것이 지금 정세다.
우리는 북의 확전 위협에 인질로 잡힌 것과 같은 처지다. 대북 군사 조치를 적극 추구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무조건 막고 나서 북에 행동의 자유를 줄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북한과 중국도 안심할 수 없게 만들지 않으면 북핵 위기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안전하고 피해 없는 길만 찾아다니다가는 진짜 위험한 막다른 골목을 만날 수 있다.
결국 중국이 큰 방향 전환을 할 수밖에 없다. 평화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오직 중국만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는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한다면 대북 원유 공급 중단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의 사설을 썼다. 중국이 송유관을 잠그면 북한은 얼마 안 있어 마비된다. 손들 수밖에 없지만 북은 중국이 그럴 수 없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핵을 가진 북한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는 중국의 오랜 계산이 바뀌지 않을 것으로 믿는 것이다.
북의 이 확신과 믿음을 깨야 한다. 중국은 미국의 군사 조치를 우려한다면 대북 송유관을 막아 북이 기대고 있는 언덕을 송두리째 무너뜨림으로써 북의 전략적 셈법 변경을 강제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제는 중국의 국익도 위태로워진다. 그게 '트럼프 시대'다. 중국이 대북 송유관을 그대로 두고, 중·북 국경의 밀무역을 방치하면서, 북한인 노예 노동으로 김정은에게 달러 수입을 안겨주면서 주장하는 '평화적 해결'은 문제 해결을 방해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한반도 정세는 지금 우리가 잘 모르는 새 중대한 고비를 지나가고 있을 수 있다. 더구나 지금은 대통령이 부재한 가운데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 무방비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전쟁이냐 평화냐'는 국민 협박으로 정치적 득을 챙기려는 세력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직후 선거에서 실제 그런 일이 벌어졌다.
대선 주자들은 어떤 목적에서든 국민에게 두려움을 줘 표를 얻으려는 생각을 버리고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지도자 자질을 보여줘야 할 때다. 전쟁을 각오하고 전쟁에 대비하지 않는 국민은 전쟁을 막지 못한다는 것은 인류 역사의 진리다.
[동아일보]
6. 우병우 사건, ‘봐주기 기소’로 추가 수사도 못하게 되나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어제 법원에서 또다시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의 영장전담 판사는 기각 사유에 “범죄 성립을 다툴 여지가 있다”고 적시했다. 단순히 불구속 수사 원칙을 천명한 게 아니다. 한마디로 무죄가 날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뜻이다. 3번이나 한 검찰 수사가 얼마나 엉성했으면 판사가 이렇게 지적했을까 개탄할 수밖에 없다.
우 전 수석에 대한 첫 조사를 벌인 검찰 1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뒷북 압수수색’과 ‘황제 소환’ 등 시늉내기 수사로 일관했다. 특검은 우 전 수석이 지난해 7∼10월 김수남 검찰총장과 12회,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과 160회 등 검찰 간부들과 2000여 회에 걸쳐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은 사실을 확인해 2기 특수본에 넘겼다. 하지만 수사팀은 대상자 소환도 하지 않았다. 우 전 수석의 개인비리는 구속영장 혐의에 넣지도 않았다.
검찰은 2차례 영장 기각을 빌미로 우 전 수석을 불구속 기소하고 최순실 국정 농단 수사도 마무리할 모양이다. 하지만 이는 추가 수사마저도 가로막는 ‘봐주기 기소’다. 이러니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를 넘어 검찰 수뇌부가 우 전 수석에게 약점을 잡힌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닌가. 김 총장은 지금이라도 강골검사를 특임검사로 임명해 우병우 사건을 재수사해야 한다.
최순실 씨의 딸 부정 입학 및 학점 특혜 비리로도 이화여대 총장 등 5명의 교수가 줄줄이 구속되는 판에 국정 농단을 묵인·방조한 혐의를 받는 ‘몸통’이 건재하다면 납득할 사람이 없다. 안철수 문재인 후보 측 모두 어제 검찰을 강하게 질타했다. 검찰이 더 머뭇거린다면 차기 정권에서 ‘우병우 특검’과 개혁의 칼날을 맞게 될 것이다.
[중앙일보]
7. 인형뽑기 열풍과 불황기 청년의 불안한 미래
인형뽑기 열풍이다. 동네 편의점뿐 아니라 대학가나 젊은이들의 거리엔 인형뽑기방 골목이 조성됐을 정도다. 중·고생부터 청년들까지 인형뽑기 삼매경에 빠졌고, TV 오락프로그램 출연자들도 “인형뽑기로 시름을 잊는다”고 공개했을 정도다. 또 연간 1만5000개의 인형을 뽑은 중국 남성이 유튜브에 올린 ‘인형잘뽑기 방법’에 대한 영상은 청소년들의 성지 영상으로 꼽히기도 한다.
인형뽑기는 1000원짜리 한 장으로 즐기는 게임으로 불황기 청년들의 얇은 주머니로도 일단 접근이 쉽고, 특히 요즘 젊은 층의 혼자놀기 문화에 딱 맞아떨어지면서 거의 광풍으로 확산됐다. 전업 뽑기방 수도 확확 늘어 올 2월 말까지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수는 1433곳으로 3개월 전인 지난해 11월(500곳)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상품도 다양화돼 포켓몬 등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물론이고 요즘은 드론까지 상품으로 내걸면서 청소년들의 발길을 잡는다.
이에 한편에선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뽑은 인형을 온라인 장터에서 팔아 게임비를 충당하는가 하면, 몇 만원씩 한자리에서 탕진하는 청소년들이 늘면서 사행성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도 상품 가격을 규제하는 등 단속 의지를 비쳐 업계와 갈등을 빚고 있다.
하나 이 열풍에 가려진 더 큰 문제는 현재 뽑기방 공급 속도와 규모가 과잉 조짐을 보여 영세 청년자영업자 붕괴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경험칙상 유행 게임의 열풍은 오래가지 않아 지속 가능성이 적은데 시장진입 인구가 지나치게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서다. 이에 인형뽑기방도 기존의 일시적 유행 아이템들이 걸어왔던 ‘과잉공급-경쟁 심화-부동산 비용 증가-수요 감소-폐업’의 길을 갈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뽑기방의 경우 기계 한 대당 200만원 안팎으로 큰돈이 들지 않고 관리도 무인시스템에 현금 장사라는 이점을 내세워 실업청년과 젊은 투잡족이 대거 유입되고 있어 이 시장이 내리막으로 달리면 청년층 자영업자들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벌써 업계에선 인형뽑기방 다음으로 작은 공간에 관리자 없이도 운영할 수 있는 혼놀족 아이템으로 ‘코인노래방’ ‘VR방’ 등이 거론되며 청년창업자들을 겨냥하고 있는 실정이다. 3월 청년실업률도 11.3%로 두 달 연속 두 자릿수다.
청년 일자리 대책 없이 ‘청년창업’을 격려하는 무책임한 사회풍조가 청년들을 뚜렷한 창업의 철학이나 경험도 쌓지 못한 채 창업시장으로 내몰아 실패를 조장하는 건 아닌지 되짚어봐야 할 때다. 또 이미 자영업자 수가 550만 명이 넘고 자영업자 빚이 500조원을 넘어 경제 뇌관이 된 상황에서 청년마저 영세자영업자로 전락시키는 창업 열풍은 바람직하지 않다.
8. 미·중 정상 통화가 말하는 급박한 한반도 정세
‘4월 위기설’을 증권가 등에 떠도는 한낱 찌라시(사설 정보지) 정도의 낭설로만 치부하기엔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긴박한 흐름이 심상치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일 트위터에 “북한이 말썽이다. 중국이 돕는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돕지 않는다면 우리가 단독으로 해결하겠다”며 독자 행동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피력했다.
같은 날 숀 스파이서 미 백악관 대변인도 북한을 공습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통령은 행동할 준비가 돼 있고, 필요하다면 행동을 할 것”이라고 답했다. 미국이 독자적으로 북핵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가 강력하게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건 어제 이뤄진 미·중 정상 간의 긴급 통화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박2일의 정상회담을 가진 게 지난주다. 한데 불과 나흘 만에 다시 통화를 가졌다. 극히 이례적이다. 특히 통화 내용의 핵심이 ‘미·중 정상이 한반도 정세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는 것으로, 이는 양국 지도자가 한반도 정세를 얼마만큼 불안하게 보고 있는지 말해 준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등 쌍끌이 도발을 단행할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예단하기 힘든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도 어제 사설에서 “북한이 다시 핵·미사일 실험을 한다면 이는 대중 앞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뺨을 때리는 격으로 미국의 군사행동 가능성을 크게 높일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한반도가 자칫 무력 충돌의 혼란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전쟁은 피해야 한다. 전쟁을 부추기거나 근거 없이 불안을 조장하는 괴담도 막아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모든 가능성을 주시하며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자세 또한 필요하다. 행여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반도가 전란의 화마에 빠지지 않도록 모든 외교 역량을 동원해 미·중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동시에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위한 방안을 다각적으로 강구하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매일신문]
9. 늘어나는 교권 침해, 교육 포기로 이어질까 두렵다
해마다 교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발표한 ‘2016년 교권 회복 및 교직 상담 결과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다. 지난해 교총에 접수된 교권 침해 상담 사례는 572건으로 10년 전인 2006년의 179건보다 3배나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전년도(488건)보다 17.2%가 불었다. 오늘날 우리 교육 현장에서 빚어지는 교권 침해의 슬픈 자화상이다.
교권 침해는 증가세였고 증가 폭도 컸다. 100건대의 교권 침해가 2007년 처음 200건을 넘었고, 2012년 이후 300건대, 2014년부터 400건대, 2016년 572건으로 늘었다. 교육부가 국회에 낸 2011~2015년 교권 침해 현황에 따르면 2만5천 건, 2011~2016년 상반기 현재 2만7천400여 건이다. 특히 교권 침해(572건)의 절반쯤인 267건(46.7%)이 학부모에 의한 피해였고, 학생과 제3자의 침해도 각각 58건(10.1%)과 32건(5.6%)이었다. 학부모`학생`제3자의 교육활동 침해가 전체의 62.4%(352건)였다.
이번 자료는 우리 학교 현장이 지금 학교 밖으로부터의 심각하고 일상화된 교권 침해로 몸살을 앓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아울러 학교 현장에서의 교권 환경이 날로 악화되는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한마디로 학교 교육 활동을 둘러싼 전통적인 신뢰 관계마저 무너지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전인 교육의 첨병 역할을 맡은 학교에서의 교권이 이처럼 침해받는 상황이라면 정상적인 교육을 기대하기 어렵다. 교권을 침해받으면서까지 굳이 교육에 애정과 정성을 쏟을 교육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사실상의 교육 포기와 다름없다.
이에 따른 최대의 피해자는 바로 학생들이다. 이 때문에 당국에서는 교권 침해 학부모 등에게 과태료 부과 같은 처벌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는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 대증 처방에 불과할 뿐이다. 무엇보다 학교에 대한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 교육 현장에서의 일탈(逸脫)도 곤란하다. 그렇지만 학부모 등 학교 밖의 교권 침해 행동은 더욱 삼갈 일이다. 교권 보호를 위한 학교장의 적극적인 역할도 절실하다. 이는 가장 중요한 교육 소비자인 학생을 위해서다.
10. 주목해야 할 ‘힘의 우위에 의한 무장평화’ 제안
‘4월 한반도 위기설’이 대선판을 흔들면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사드 배치에 긍정적 입장으로 선회한 가운데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무장평화”와 “공세적 국방 정책으로의 전환”을 들고 나왔다. 홍 후보는 1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포럼에서 “대선이 ‘탄핵 대선’에서 ‘안보 대선’ 국면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이같이 제안했다.
홍 후보는 이를 위한 방안으로 사드 배치는 물론 1991년 철수한 미군의 전술핵 재배치와 특수전 전문부대인 북한의 특수 11군단에 대응한 해병특전사령부 창설 등을 제시했다. 물론 이런 대책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중국을 설득하고 미국과는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는 외교`안보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그러나 어쨌든 제한적이나마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현재까지 대선판에서 거론되는 안보 대책은 사드 배치뿐이다. 그나마 ‘4월 위기설’이 터진 덕분이다. 그전까지는 다른 이슈에 밀려나 있었거나 ‘다음 정부에서 공론화’(문재인), ‘국가 간 합의는 존중’(안철수)처럼 사실상의 반대나 미온적 찬성의 틀에 갇혀 있었다. 대선 국면이 아니고 또 ‘4월 위기설’이 아니었다면 문 후보가 ‘사드 배치 불가피론’으로, 안 후보가 ‘사드 배치 반대 당론 철회’로 입장을 바꿨을까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야권 대선 주자들은 안보를 강조하면서도 그 실행 방법에는 말이 없다. 문 후보는 11일 “한반도에 참화가 벌어지면 저부터 총을 들고 나설 것”이라고 했다. 그런 정치적 수사(修辭)로는 전쟁을 막지 못한다. 안 후보도 원론적인 소리만 되풀이한다. 그는 “한반도 비핵화를 이뤄 핵무기도 없고 사드도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게 우리 모두의 지향점”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을 가능케 하는 수단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홍 후보의 제안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 다른 후보들보다 진일보한 안보 대책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다른 후보들도 홍 후보처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지층만 보지 말고 국가와 국민 전체를 보면 얼마든지 홍 후보보다 더 좋은 대책이 나올 것이다.
주요신문칼럼
1. [서울신문][씨줄날줄] 14세 테슬라의 질주
전기자동차업체 테슬라모터스는 지난해 3월 31일(현지시간) 모델3 블루스타를 전격 공개했다. 한 번 충전해 달릴 수 있는 주행거리는 356㎞로 기존 전기차의 두 배에 달했다. 가격은 3만 5000달러대로 8년 전 출시한 모델S에 비해 2만 5000달러나 낮췄다. 디자인도 파격적이었다. 앞 유리에서 지붕, 뒤 유리에 이르기까지 강화유리로 덮었다. 3일 만에 27만 6000대가 예약 판매됐다. 열광적이었다. 전기차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테슬라는 2003년 기업가이자 발명가인 일론 머스크와 엔지니어 마틴 에버하드, 마크 타페닝 등이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팰로알토에 설립한 자동차 전문회사다. 회사 명칭은 전기공학자 겸 물리학자인 니콜라 테슬라(1856~1943)의 이름에서 땄다. 2006년 전기 스포츠카인 로드스타를 시작으로 2012년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모델X, 2016년 프리미엄 세단 모델S를 내놓았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머스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난 캐나다계 미국인이다. 억만장자이자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괴짜 천재인 까닭에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 우주여행 벤처기업인 스페이스 엑스의 CEO와 태양광 발전기업 솔라시티의 회장직도 맡고 있다. 앞서 온라인 결제전문기업 페이팔을 공동창업해 큰돈을 거머쥐었다. 그 때문에 억만장자 외에 몽상가, 혁신창업가, 미래설계자라는 등의 별칭이 붙어 있다.
머스크는 모델3를 선보이는 자리에서 “환경과 인류에 덜 해로운 교통수단의 시대를 앞당긴 차”라고 소개했다. 머스크의 말처럼 테슬라는 전기차의 한계 돌파와 함께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이른바 ‘게임 체인저’다. 테슬라의 가치는 주가를 통해 현실화됐다. 지난 3일 시가총액이 114년 된 원조 자동차회사인 포드를 뛰어넘더니 1주일 만인 10일 109년 된 제너럴모터스(GM)마저 제치고 1위에 올랐다. 515억 달러(약 59조원)를 기록한 것이다. 누군가는 ‘다윗과 골리앗’에 비유했다. 14년 된 신생 업체의 질주다.
테슬라의 거품론도 없지 않다. 지난해 6억 8000만 달러의 순손실을 보는 등 지금껏 적자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판매량도 7만 6000대에 불과하다. 실적으로 보면 과대평가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시가총액은 현재도 중요하지만 미래 가치의 반영이기도 하다. 테슬라를 스마트폰처럼 생활의 도구, 문화로 보고 있는 것이다. 테슬라의 저력은 끊임없는 도전, 혁신에 있다. 4차 산업혁명에 직면한 우리 현실에 던지는 테슬라의 메시지다.
2.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우리 곁을 오래 지켜온 생선구이
한국은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로, 전통적인 노르웨이와 일본을 넘어섰다. 우리 국민들이 생선을 워낙 좋아한다는 것인데, 생선요리 중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것이 생선구이다. 생선구이는 말 그대로 생선에 소금을 뿌리거나 양념장을 발라서 숯불이나 연탄불에 구운 음식이다. 가정에서는 가스 불 혹은 오븐에 굽거나, 프라이팬에 기름을 자작하게 두르고 굽기도 한다.
생선구이는 생선을 먹는 가장 오래된 방법으로, 선사시대까지 그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 전통적 방법인 소금에 절이거나 소금을 뿌려 구우면 담백한 생선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고, 간장양념을 쓰면 풍미를 더할 수 있으며, 고추장양념을 하면 생선의 맛이 새롭게 변신한다.
생선구이는 청어, 고등어, 삼치, 전갱이, 도미, 대구, 가자미, 꽁치, 전어 등 한반도 해역에서 나는 대부분의 어종을 재료로 해서 우리 식탁에 오른다. 그래도 구이로 가장 많이 먹는 생선은 국민생선이라 불리는 고등어가 아닐까 한다.
고등어는 제주도 남부에서 많이 잡히는데, 지금은 가두리 양식도 하지만 북유럽의 노르웨이 등지에서 수입해 오는 물량도 많다.
고등어는 선도가 급속히 떨어지므로 안동 등지에서는 예부터 상하기 전에 소금으로 절여서 꾸덕꾸덕하게 말려 자반으로 먹거나 유통해 왔으며, 제주도 등지에서는 배에서 잡는 즉시 염장해서 말려 뱃자반을 만들어 먹었다. 옛날에는 국내 자연산이 대세였으나, 이제 회감으로는 양식을 많이 쓰고, 식당에서는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구이용으로 많이 사용한다. 노르웨이산 냉동 고등어는 국내산에 비해 무늬가 짙고 몸통이 덜 통통해서 구별이 쉬운 편인데, 저렴하고 식감도 좋으며 품질이 균등해서 인기가 높다.
생선구이, 특히 고등어구이는 크게 비싸지 않아 집에서나 또는 식당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메뉴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도 맛깔나게 요리하는 주부들이 많고, 전문 음식점 또한 많다.
종로5가 동대문시장 통에는 연탄불 생선구이 가게가 모여 있는 골목이 있다. 원조로 알려진 1974년 개업한 ‘호남집’, ‘삼천포집’(구 대중식당), ‘전주집’, ‘나주식당’ 등 30~40년 이상 된 생선구이 전문 가게가 10여곳 모여 있다. 연탄불에 은은하게 생선 굽는 냄새가 그냥 지나치기 어렵게 한다. 각종 생선구이가 있으나, 고등어와 삼치가 인기다. 생선을 푸짐하게 주고 반찬도 깔끔하다.
종로3가에도 생선구이 골목이 있다. 대로에서 안쪽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한일식당’이 보인다. 고등어, 꽁치, 삼치 등 구이 종류가 다양하다. 가게 바깥에서 초벌구이를 해두었다가 주문받으면 연탄불에 한 번 더 구워준다. 옷에 냄새도 배지 않고, 구이 냄새로 손님 끌기에도 좋다. 저렴하지만 생선구이가 푸짐하게 나오고 무쇠돌솥밥에 여러 반찬도 정갈하다. 인근 ‘전주식당’도 30년 된 집으로 돌솥밥으로 준다.
삼각지 대구탕 골목 뒤편에 ‘대원식당’이 있다. 작은 집이나 생선구이 정식 손님으로 줄이 길다. 가게 입구에서 할머니가 소금간을 미리 해놓은 고등어를 연탄불에 굽는데, 33년 경력이라 하신다. 가게는 조카가 경영한다. 고등어는 간이 적당하고 촉촉하게 구워져 입맛을 돋운다. 총 11가지 반찬을 내어오는데 어느 것 하나 허접한 것이 없다. 숭늉까지 준다. 저렴하지만 정성스레 차린 한 끼 밥상을 받는 기분이다.
완연한 봄이다. 주말 나들이를 겸해서 오랜만에 종로통이나 동대문시장을 둘러보고, 옛멋이 살아 있는 생선구이 골목에서 한 끼 식사를 즐기는 호사를 누려 보려 한다.
3. [서울신문][김용석의 상상 나래] 기업의 창조와 혁신, 르네상스 시대에서 배우자
올 초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 등을 돌며 수많은 천재 예술가의 작품을 만났다. 옛 모습 그대로의 건물, 좁은 골목길을 누비면서 중세 시대에 와 있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많은 회화, 조각물을 보면서 든 생각은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했을까’였다.
당시 작품에서 어떤 독창적인 것이 있었으며, 창의적인 생각은 어디서 나올 수 있었을까? 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인류 역사상 14~16세기 르네상스는 가장 창의적인 문화가 꽃피었던 시기로 불린다. 르네상스는 신 중심의 세계관이 인간 중심으로 바뀌면서 처음에는 문학, 미술, 건축 등에서 시작하였으나, 나중에는 사상과 생활방식이 바뀌게 되고, 그것이 과학혁명으로 이어졌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피렌체에서 시작되었다. 무역업과 금융업의 중심지였고, 당시의 피렌체는 상인이 아니면 존경을 받을 수 없다고 알려진 최초의 현대도시였다.
특히 가장 영향력 있는 상인의 가문은 메디치가이다. 15세기 후반 피렌체 르네상스의 부흥은 메디치 가문의 300여년간의 지속적인 후원 덕분이었다. 예술가, 철학자, 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간 이질적 집단의 교류를 통해 새로움을 창출해냈다. 레오나드로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갈릴레이, 마키아벨리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특히, 미켈란젤로는 15세 때부터 2년간 메디치 가문의 궁전에서 지내면서 성장했으니, 메디치 가문의 도움을 많이 받은 셈이다.
르네상스의 태동은 피렌체이었지만, 로마에서 더욱 발전했다. 시스티나 성당에서는 많은 사람이 자리를 뜨지 못한다.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인 천지창조와 제단 위에 있는 벽화인 최후의 심판이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었지만, 발걸음을 베드로 성당으로 옮겨서, 미켈란젤로 나이 25세 때의 대작인 피에타를 만났다.
예술가들의 창조적인 영감이 가장 크게 분출된 시기가 르네상스 시대가 아닌가 싶다. 요즈음으로 말하자면 메디치라는 기업이 미켈란젤로 같은 뛰어난 인재들을 발굴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기에 많은 걸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14세기나 지금의 21세기나 결국 시대를 이끌어 가는 것은 기업인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피렌체의 성공 요인을 한마디로 말하면, 창의적인 인재와 자본을 가지고 있는 기업과의 만남이다. 많은 창의적인 예술가, 철학자, 과학자 인재들이 있었고, 이질적인 그들 간의 교류를 통해서 독창성 있는 예술품이 나올 수 있도록 기업은 지원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너무나 흡사하다. 개방된 지역 문화의 지역으로 전 세계의 다양한 우수인력이 몰리고, 성공한 수많은 벤처기업인이 벤처자본가로 활동하면서 우수 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우리나라는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기업들의 고민은 깊다. 기업의 성장 동력이 줄어들고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창조와 혁신의 목소리가 크다. 피렌체에서 시작한 르네상스에서, 지금의 우리 기업은 무엇을 배워야 할까? 회화의 원근법은 중세가 아닌 르네상스 시대에 발명되었다. 신에서 인간 중심으로의 변화이다.
중세의 화가는 상상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눈으로 그렸지만, 르네상스 화가는 자신의 눈, 인간의 눈으로 표현했다. 내 눈에 가까운 곳은 크게, 먼 곳은 작게 보인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인간의 문제를 가장 먼저 고민하고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다. 인간(고객)의 욕구를 이성이 아닌 감성에서 찾은 결과이다.
조각가인 미켈란젤로에게는 천지창조의 프레스코 그림을 맡는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익숙지 않은 천정화를 그리느라 허리가 끊어지는 듯 고통을 이겨내며 혼자서 완성했다. 창조의 위대한 작품은 땀, 몰입, 열정에서 온다. 이러한 도전정신과 끈기를 기업은 배워야 한다. 또한 메디치 가문이 우수 인재를 발굴하고 장기적으로 키웠듯이, 기업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창의적인 인재 육성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장은 세상을 남들과 다르게 보는 데서 출발한다. 실패도 감수해야 한다. 개인과 조직의 창의, 혁신의 문화는 다양성, 자율성, 개방성에서 온다. 인간을 중시했던 르네상스 시대에서 배우고 실천하자.
4. [매일신문][매일춘추] 행간을 읽으면 그 내용이 보이죠
봄비가 창문을 두드린다. 세상이 온통 봄을 맞아 들썩이는데, 너는 무슨 일로 며칠씩 집안에 틀어박혀 외롭게 지내느냐고 가볍게 톡톡, 묻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받아둔 원고 청탁서가 한동안 나를 꼼짝없이 묶어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루 이틀 만에 끝이 날 수 있는 글 노동이 아닌데 말이다. 아! 이토록 어리석은 내 마음도 모르고 봄날은 자꾸 가려고만 한다.
정해진 약속 없이 혼자만의 외출에 새로운 매력을 느낀 것은 얼마 전부터다. 친구를 불러내어 만날 시간, 장소, 먹을 것까지 정하다 보면 이래저래 짧은 하루가 후딱 갈 것 같아 그저 편한 신 신고 가방 하나 메고 나는 가끔 혼자 영화를 보러 간다. 우리 푸른 시간이 곳곳에 배어 있는 익숙한 거리, 반월당에서 동성로를 향해 걷는 길은 덤으로 얻는 즐거움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이제는 단어조차 생소한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 경쟁이 극에 달했던 그 시기에 미국 항공 우주국(NASA)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숨겨진 인물들' 어쩌면 '숨겨진 천재들'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흑인 여성 3인의 활약과 그녀들의 열정을 실화를 바탕으로 그려낸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를 보았다. 성차별, 인종차별, 거기에 신분과 학력차별까지 겹겹의 장애를 뚫고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용감하고 지혜로운 여인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캐서린 존슨은 애초에 그녀를 무시해서 단순히 계산만을 하도록 하는 선임연구원의 요구에 굴하지 않고 현명하게 대처해서 누구도 찾지 못한 답을 찾아낸다. 군데군데 가려진 숫자와 부족한 정보만으로 어떻게 이런 결과에 이르렀는지 의구심을 보이는 최고 책임자에게 "행간을 읽으면 내용이 보이죠"라며 차분히 설명을 더한다.
행간이란 '행과 행 사이' '글에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지만, 그 글을 통하여 나타내려고 하는 숨은 뜻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란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더라도 주인공의 슬기로운 설명에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것은 허를 찌르는 대답인 동시에 한 편의 시(詩) 속에 숨겨둔 행간의 의미보다 더 진한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천부적인 수학 능력을 가진 흑인 여성 캐서린 존슨, NASA 프로그래머 도로시 본, 흑인 여성 최초로 NASA 엔지니어의 꿈을 이룬 매리잭슨. 영화 속 그녀들처럼 사회적으로 잘못된 편견을 용기 있게 바로잡아 나가고 자신을 보호하려면 무엇보다 각자의 마음 근육을 단련시켜야 한다. 그 힘으로 지혜로운 심안(心眼)을 가져 깊숙이 숨어 있는 행간을 읽어내야 한다. 그러기에 좀 더 깊어져야 한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봄 햇살이 환하다.
5. [세계일보][공감!문화재] 하회마을·중국 홍춘 ‘세계유산 인연’
세계유산제도는 명실상부한 유산보호시스템으로 자리매김했다. ‘문화주권’은 그 나라의 독보적 문화가치를 세계인들에게 인정받는 것으로,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충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한국과 중국은 자연환경과 기후가 유사하고 한자문화권이라는 맥락을 통해 오랜 세월 밀접하게 관련돼 왔다. 이 문화적 유사성은 양국이 문화주권을 선점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아리랑’의 중국 등재 과정에서 보이듯이 가깝고도 먼 나라였던 것이다.
세계유산 등재에 한·중 양국이 협력해 좋은 결과를 얻은 훈훈한 사례가 있다. 바로 역사마을 하회(사진)와 양동, 중국의 시디춘(西遞村)과 훙춘(宏村)이다. 중국은 2000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고, 한국은 10년 뒤인 2010년 등재에 성공했다.
하회마을 주민자치회장에 따르면 당시 공무원과 마을 주민들이 중국의 훙춘과 시디춘을 방문해서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사례와 등재 신청 과정의 노하우를 배우고 준비했다고 한다. 양국의 마을이 서로 협력한 결과가 세계유산 등재로 돌아온 것이다.
최근에는 중국의 세계유산 전문가들이 한국의 유산보호제도와 활용 사례를 보고 배우면서 당시의 고마움을 되갚게 되었다. 한국은 문화재청에서 유산등재를 일원화하고 지방자치단체는 관리에 힘쓰고 있다. 중국은 중앙정부의 역할이 지방자치단체에 비해 약한 편이고 조례 위주로 정책을 시행한다.
한국은 특별법인 문화재보호법의 규제가 엄격하지만, 중국은 관광 활용이 주는 경제적 효과에 치중하는 편이다. 이러한 상반된 정책 시행 과정에서 오는 교훈은 양국의 유산관리 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역사적으로 유사한 문화를 지녀온 한국과 중국이 세계유산 보존·관리에서도 그 인연의 끈을 지속해가야 하지 않을까.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서해 ‘꽃게 풍년’ 해경이 굳게 지켜야 한다
서해 꽃게 어장이 요즘 조용하다고 한다. 최근 봄철 꽃게 조업이 시작된 가운데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역에서 불법 조업하는 중국어선들이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해경에 따르면 어제 연평도 인근에는 중국어선이 한척도 보이지 않았다. 서해 5도 주변 전체적으로 이달 초만 해도 190여척에 이르던 중국어선이 최근에는 40여척으로 급감했다. 덕분에 작년 봄어기 380㎏에 그쳤던 꽃게 어획량이 올해는 9500㎏까지 급증했다. 꽃게 풍년에 어민들은 모처럼 함박웃음이라고 한다.
해경은 이를 지난 4일 창단한 서해5도 특별경비단의 효과로 분석했다. 400여명의 인력과 벌컨포 등을 갖춘 대형함정, 소방방탄정 등 12척의 함정으로 구성된 특경단은 창단 후 7일 동안 중국어선 5척을 나포하고 37척을 퇴거시켰다. 이전보다 한층 강력해진 단속에 중국어선이 70%가량 줄었다는 것이다. 북한의 6차 핵실험 가능성이 커지면서 미국 칼빈슨 항공모함 전단이 한반도 주변에 재배치되는 등 한반도 정세가 급격히 얼어붙은 점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법하다.
이유야 어찌됐든 우리 어장을 휘젓던 중국어선이 사라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전에도 단속을 강화하면 일시적으로 감소했지만 대부분 반짝 효과에 그치곤 했다. 지난해 10월 폭력적인 중국어선들에 대해 M60 기관총 등 공용화기를 사용하는 강경대응 방침을 밝히자 한동안 줄어드는 기미가 보였지만 잠시뿐이었다. 교활하고 흉포한 중국어선들의 행태로 보아 단속이 자칫 느슨해지면 언제라도 다시 준동할지 모른다.
중국어선들의 불법조업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서해뿐 아니라 최근에는 동해에까지 출몰하고 있다. 더구나 치어까지 싹쓸이하는 불법 남획으로 우리 바다에서 어족 자원의 씨를 말리고 있다. 머지않아 식탁에서 국내산 생선이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사드 보복’의 치졸한 중국에 우리 어민들의 터전까지 내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무력 대처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단 한척의 중국어선도 우리 해역을 넘보지 못하도록 원천 차단해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2. 80세도 부양의무자로 보는 독소조항 고쳐야
이번 대선에서 눈길을 끄는 복지 공약 중의 하나가 부양의무제 폐지다. 부양의무제란 부모나 자녀의 재산과 소득이 일정 기준을 넘으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되는 제도다. 아무리 생활고에 시달려도 부모나 자식 중 누구라도 재산이 있거나 일을 하게 되면 정부로부터 생계비나 의료비, 교육비 등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돼 있다. 그러다 보니 생활고를 감당하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이 나온다. 대선에 나온 문재인·안철수·유승민·심상정 후보가 의무부양제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들고 나온 이유다.
2000년 시행된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서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의 선정 기준인 부양의무자 기준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받기 어려워졌다. 경기 침체, 실업난, 물가난 등을 고려하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늘어나야 하는 게 정상이거늘 수급자가 감소하다가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은 부양의무제 때문이다. 이 제도로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한 극빈층이 117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법과 현실의 괴리가 빚어낸 복지 피해자들이다.
이 제도에 따라 80세 딸도 100세의 어머니를 부양해야 한다. 어머니는 아무리 곤궁해도 자신 못지않게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처지인 80세 딸이 있다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경제력을 상실한 노인이 노인을 봉양해야 하는 구조다. 고령화의 한 단면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제도가 갖는 ‘독소 조항’ 탓이다.
과거에는 부모 봉양이 당연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세태가 야박해진 탓도 있지만 교육비와 주거비 등으로 자식들도 제 앞가림을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노인들이 나랏돈을 지원받으려면 자식이 부모를 방임한다는 사실을 재판으로 증명을 해야 한다. 복잡하고도 인륜을 저버리는 절차를 거쳐야 하니 노인들은 가난을 안고 살 수밖에 없다.
스스로 자립할 수 없는 노약자는 국가와 사회 공동체가 책임져야 한다. 가족에게 모든 책임과 의무를 떠맡겨서는 안 된다. 하지만 문제는 재원이다. 부양의무제 폐지 때 연간 10조원이 더 들어간다. 선의의 정책이라도 당장 도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단계적으로 폐지하되 그러지 못한다면 도움이 절실한 이들만이라도 부양의무에서 우선 면제하는 등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복지예산 130조원 시대에 극빈층을 복지 사각지대에 내몰아서야 되겠나.
3. 4차 산업혁명 토대 세울 후보 꼼꼼히 따져 뽑자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4차 산업혁명의 성패는 19대 대통령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철학을 가지고 어떤 정책을 펴느냐에 따라 우리의 먹거리, 일거리가 차기 정부 5년 사이 대박을 터뜨릴 수도, 쪽박을 찰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들이 가장 역점을 들여 다듬고 있는 공약 중 하나가 4차 산업혁명 분야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을 일구는 방식과 어떻게 그 과실을 우리의 것으로 할 것인가 하는 각론에 들어가면 제각각이고 2% 부족하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대통령 직속의 위원회를 만들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컨트롤타워로 삼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즉 정부 주도인 것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이들과 정반대이다. 미래 예측은 불가능하고 정부가 계획을 세워서 끌고 가면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 있으므로, 민간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정부는 뒷받침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주도권을 쥐는 게 정부냐 민간이냐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는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5년 임기의 대통령이 만든 위원회가 성공한 사례가 없다면서 미래창조과학부와 산업 담당 부처의 통합 또는 기능 조정을 통한 맞춤형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 주도형의 문 후보는 과학기술정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총괄하는 과학기술부의 부활과 중소기업청의 중소벤처기업부로의 승격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홍 후보는 새만금을 4차 산업혁명의 전진기지로 삼겠다고 밝히고 있다. 심 후보는 태양광, 해상 풍력발전, 전기충전 기술 같은 생태혁신 투자를 주도하겠다고 말했다. 민간 주도형의 안 후보는 창업중소기업부 신설과 함께 4차 산업혁명의 주도적 민간 기업에서 일할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해 내는 과감한 교육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후보들의 4차 산업혁명 청사진은 모두 장밋빛이다.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준다. 연구 개발 지원, 기술 개발에만 머물고 있는 공약에서 한걸음 나아가 경제적 성과로 연결하는 방법론이 보이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기술이 진보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일자리 감소 등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대안 제시도 미흡하다.
그런 점에서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어제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 혁신으로 원치 않는 재취업을 했을 때 줄어든 소득의 일정 부분을 보전해 주는 임금보험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한 제안은 후보들이 참고할 만하다.
4차 산업혁명에 이르는 길을 주도하는 게 정부냐 민간이냐, 어느 쪽이 옳은지는 밟아 보지 못한 미지의 길이다. 따라서 정답은 없다. 5월 9일까지 후보 간 토론, 완성된 공약을 잘 따져 보고 유권자가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난마처럼 얽힌 규제를 과감히 풀어 창의가 춤추도록 한다는 대원칙만큼은 빼놓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4. 사드 철회만 종용하는 中 우다웨이
방한 중인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주요 정당 관계자 및 대선 후보들을 잇따라 만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철회를 요구했다. 지난 10일 우다웨이가 한국에 들어올 때만 해도 일각에서는 한반도를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는 북핵에 대한 양국의 공조방안이 논의의 중심이 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사드 배치가 중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에 큰 피해를 준다”는 중국 당국의 주장을 릴레이 면담을 통해 되풀이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방한은 대선을 20여일 앞둔 한국 정계의 분위기를 탐색하기 위한 ‘엿보기 방한’ 성격이 짙다.
우리가 우다웨이의 방한에 일말의 기대를 건 것은 그가 중국을 대표하는 아시아통이고 북한의 6차 핵실험 징후로 한반도가 격랑에 빠진 상황에서 사드 보복으로 불편해진 한·중 관계에 새로운 국면을 여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우리 측 인사들에게 보여준 행보는 ‘중화 이기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마치 앵무새처럼 자국의 안보 이익만 강조했을 뿐 우리의 안보 이익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없었다. 경제보복 중단 요구에 대해 “중국 국민의 자발적 행동이고 정부의 행위가 아니다”는 노회한 발언만 늘어놓았을 뿐이다. 더구나 사드 배치와 관련해 우리 측 인사들을 균열 내고 이간질하는 듯한 행보는 황당하고 괘씸하기 짝이 없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단호하고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사드의 레이더가 중국 전체의 절반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우다웨이에게 “사드는 이미 설치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더이상 얘기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한 김무성 바른정당 공동선대위원장의 응수는 높이 살 만하다. 국가 안보에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
사드는 중국 안방을 들여다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한 핵 공격에 대한 견제용이다. 딱 잘라서 얘기하는 것이 차기 정부가 출범한 뒤 중국과의 협상에서도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타국의 안보가 걸린 중대 사안에 치졸한 경제 보복으로 대응하는 중국의 방식은 자충수가 되면 됐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의 무역 제한 조치는 우리에게 잠시 고통을 줄 수는 있겠지만 자국 업체에도 피해는 주는 ‘양날의 검’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뒤통수를 치는 중국의 예측 불가능한 외교정책은 투자환경을 해치며, 상대국에 적대감의 씨앗을 뿌리는 행위라는 사실을 우다웨이는 깨닫고 돌아가길 바란다.
[조선일보]
5. 조기 대선 무방비 상태서 맞은 한반도 정세 중대 고비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미국에서 만난 지 5일 만인 어제 다시 전화로 회담했다. 중국 공산당 선전 기관들에 따르면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며 평화적 방법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고 미국과 소통, 협력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서로 얼굴을 보고 만난 정상회담이 끝난 지 5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시 주석이 전화를 걸어야 했다면 뭔가 긴급하고 중대한 사정이 있거나 최소한 매우 우려하는 문제가 떠올랐다는 뜻이다. 일단 미국의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이끄는 전단이 한반도 인근 해역으로 이동 중이고 대북 선제 타격설, 북 미사일 요격설이 잇따라 나오자 시 주석이 직접 나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북핵을 막지 않으면 우리가 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혀왔다. 그는 어제도 언론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큰 실수를 하고 있다"며 "미국은 강력한 무적함대를 (북한에) 보내고 있다"고 다시 경고했다. 미 당국자들은 대북 군사 조치를 선택에서 빼지 않고 있다고 거듭 언급하고 있다. 물론 대북 군사 조치는 쉽게 실행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뉴욕타임스 보도대로 실질적 제약이 적지 않다. 한국에 거주하는 약 20만명의 미국인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은 지금 당장 군사 조치를 실행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실제 미국이 이지스함이 포함된 항모 전단을 한반도 해역에 배치하는 행동에 들어가자 트럼프 정부의 특성을 아직 잘 모르는 중국으로서는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대북 군사 조치는 확전 가능성을 안고 있다. 북은 이 가능성 때문에 국제사회가 어쩌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온갖 도발을 벌이고 있다. 중국도 북한과 같은 판단을 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이 미국 세력을 막는 완충 지대로서 가치가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라는 미지의 인물이 등장함으로써 북한과 중국의 이런 판단에 불확실성이 생긴 것이 지금 정세다.
우리는 북의 확전 위협에 인질로 잡힌 것과 같은 처지다. 대북 군사 조치를 적극 추구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무조건 막고 나서 북에 행동의 자유를 줄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북한과 중국도 안심할 수 없게 만들지 않으면 북핵 위기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안전하고 피해 없는 길만 찾아다니다가는 진짜 위험한 막다른 골목을 만날 수 있다.
결국 중국이 큰 방향 전환을 할 수밖에 없다. 평화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오직 중국만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는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한다면 대북 원유 공급 중단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의 사설을 썼다. 중국이 송유관을 잠그면 북한은 얼마 안 있어 마비된다. 손들 수밖에 없지만 북은 중국이 그럴 수 없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핵을 가진 북한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는 중국의 오랜 계산이 바뀌지 않을 것으로 믿는 것이다.
북의 이 확신과 믿음을 깨야 한다. 중국은 미국의 군사 조치를 우려한다면 대북 송유관을 막아 북이 기대고 있는 언덕을 송두리째 무너뜨림으로써 북의 전략적 셈법 변경을 강제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제는 중국의 국익도 위태로워진다. 그게 '트럼프 시대'다. 중국이 대북 송유관을 그대로 두고, 중·북 국경의 밀무역을 방치하면서, 북한인 노예 노동으로 김정은에게 달러 수입을 안겨주면서 주장하는 '평화적 해결'은 문제 해결을 방해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한반도 정세는 지금 우리가 잘 모르는 새 중대한 고비를 지나가고 있을 수 있다. 더구나 지금은 대통령이 부재한 가운데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 무방비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전쟁이냐 평화냐'는 국민 협박으로 정치적 득을 챙기려는 세력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직후 선거에서 실제 그런 일이 벌어졌다.
대선 주자들은 어떤 목적에서든 국민에게 두려움을 줘 표를 얻으려는 생각을 버리고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지도자 자질을 보여줘야 할 때다. 전쟁을 각오하고 전쟁에 대비하지 않는 국민은 전쟁을 막지 못한다는 것은 인류 역사의 진리다.
[동아일보]
6. 우병우 사건, ‘봐주기 기소’로 추가 수사도 못하게 되나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어제 법원에서 또다시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의 영장전담 판사는 기각 사유에 “범죄 성립을 다툴 여지가 있다”고 적시했다. 단순히 불구속 수사 원칙을 천명한 게 아니다. 한마디로 무죄가 날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뜻이다. 3번이나 한 검찰 수사가 얼마나 엉성했으면 판사가 이렇게 지적했을까 개탄할 수밖에 없다.
우 전 수석에 대한 첫 조사를 벌인 검찰 1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뒷북 압수수색’과 ‘황제 소환’ 등 시늉내기 수사로 일관했다. 특검은 우 전 수석이 지난해 7∼10월 김수남 검찰총장과 12회,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과 160회 등 검찰 간부들과 2000여 회에 걸쳐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은 사실을 확인해 2기 특수본에 넘겼다. 하지만 수사팀은 대상자 소환도 하지 않았다. 우 전 수석의 개인비리는 구속영장 혐의에 넣지도 않았다.
검찰은 2차례 영장 기각을 빌미로 우 전 수석을 불구속 기소하고 최순실 국정 농단 수사도 마무리할 모양이다. 하지만 이는 추가 수사마저도 가로막는 ‘봐주기 기소’다. 이러니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를 넘어 검찰 수뇌부가 우 전 수석에게 약점을 잡힌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닌가. 김 총장은 지금이라도 강골검사를 특임검사로 임명해 우병우 사건을 재수사해야 한다.
최순실 씨의 딸 부정 입학 및 학점 특혜 비리로도 이화여대 총장 등 5명의 교수가 줄줄이 구속되는 판에 국정 농단을 묵인·방조한 혐의를 받는 ‘몸통’이 건재하다면 납득할 사람이 없다. 안철수 문재인 후보 측 모두 어제 검찰을 강하게 질타했다. 검찰이 더 머뭇거린다면 차기 정권에서 ‘우병우 특검’과 개혁의 칼날을 맞게 될 것이다.
[중앙일보]
7. 인형뽑기 열풍과 불황기 청년의 불안한 미래
인형뽑기 열풍이다. 동네 편의점뿐 아니라 대학가나 젊은이들의 거리엔 인형뽑기방 골목이 조성됐을 정도다. 중·고생부터 청년들까지 인형뽑기 삼매경에 빠졌고, TV 오락프로그램 출연자들도 “인형뽑기로 시름을 잊는다”고 공개했을 정도다. 또 연간 1만5000개의 인형을 뽑은 중국 남성이 유튜브에 올린 ‘인형잘뽑기 방법’에 대한 영상은 청소년들의 성지 영상으로 꼽히기도 한다.
인형뽑기는 1000원짜리 한 장으로 즐기는 게임으로 불황기 청년들의 얇은 주머니로도 일단 접근이 쉽고, 특히 요즘 젊은 층의 혼자놀기 문화에 딱 맞아떨어지면서 거의 광풍으로 확산됐다. 전업 뽑기방 수도 확확 늘어 올 2월 말까지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수는 1433곳으로 3개월 전인 지난해 11월(500곳)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상품도 다양화돼 포켓몬 등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물론이고 요즘은 드론까지 상품으로 내걸면서 청소년들의 발길을 잡는다.
이에 한편에선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뽑은 인형을 온라인 장터에서 팔아 게임비를 충당하는가 하면, 몇 만원씩 한자리에서 탕진하는 청소년들이 늘면서 사행성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도 상품 가격을 규제하는 등 단속 의지를 비쳐 업계와 갈등을 빚고 있다.
하나 이 열풍에 가려진 더 큰 문제는 현재 뽑기방 공급 속도와 규모가 과잉 조짐을 보여 영세 청년자영업자 붕괴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경험칙상 유행 게임의 열풍은 오래가지 않아 지속 가능성이 적은데 시장진입 인구가 지나치게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서다. 이에 인형뽑기방도 기존의 일시적 유행 아이템들이 걸어왔던 ‘과잉공급-경쟁 심화-부동산 비용 증가-수요 감소-폐업’의 길을 갈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뽑기방의 경우 기계 한 대당 200만원 안팎으로 큰돈이 들지 않고 관리도 무인시스템에 현금 장사라는 이점을 내세워 실업청년과 젊은 투잡족이 대거 유입되고 있어 이 시장이 내리막으로 달리면 청년층 자영업자들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벌써 업계에선 인형뽑기방 다음으로 작은 공간에 관리자 없이도 운영할 수 있는 혼놀족 아이템으로 ‘코인노래방’ ‘VR방’ 등이 거론되며 청년창업자들을 겨냥하고 있는 실정이다. 3월 청년실업률도 11.3%로 두 달 연속 두 자릿수다.
청년 일자리 대책 없이 ‘청년창업’을 격려하는 무책임한 사회풍조가 청년들을 뚜렷한 창업의 철학이나 경험도 쌓지 못한 채 창업시장으로 내몰아 실패를 조장하는 건 아닌지 되짚어봐야 할 때다. 또 이미 자영업자 수가 550만 명이 넘고 자영업자 빚이 500조원을 넘어 경제 뇌관이 된 상황에서 청년마저 영세자영업자로 전락시키는 창업 열풍은 바람직하지 않다.
8. 미·중 정상 통화가 말하는 급박한 한반도 정세
‘4월 위기설’을 증권가 등에 떠도는 한낱 찌라시(사설 정보지) 정도의 낭설로만 치부하기엔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긴박한 흐름이 심상치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일 트위터에 “북한이 말썽이다. 중국이 돕는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돕지 않는다면 우리가 단독으로 해결하겠다”며 독자 행동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피력했다.
같은 날 숀 스파이서 미 백악관 대변인도 북한을 공습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통령은 행동할 준비가 돼 있고, 필요하다면 행동을 할 것”이라고 답했다. 미국이 독자적으로 북핵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가 강력하게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건 어제 이뤄진 미·중 정상 간의 긴급 통화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박2일의 정상회담을 가진 게 지난주다. 한데 불과 나흘 만에 다시 통화를 가졌다. 극히 이례적이다. 특히 통화 내용의 핵심이 ‘미·중 정상이 한반도 정세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는 것으로, 이는 양국 지도자가 한반도 정세를 얼마만큼 불안하게 보고 있는지 말해 준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등 쌍끌이 도발을 단행할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예단하기 힘든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도 어제 사설에서 “북한이 다시 핵·미사일 실험을 한다면 이는 대중 앞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뺨을 때리는 격으로 미국의 군사행동 가능성을 크게 높일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한반도가 자칫 무력 충돌의 혼란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전쟁은 피해야 한다. 전쟁을 부추기거나 근거 없이 불안을 조장하는 괴담도 막아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모든 가능성을 주시하며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자세 또한 필요하다. 행여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반도가 전란의 화마에 빠지지 않도록 모든 외교 역량을 동원해 미·중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동시에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위한 방안을 다각적으로 강구하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매일신문]
9. 늘어나는 교권 침해, 교육 포기로 이어질까 두렵다
해마다 교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발표한 ‘2016년 교권 회복 및 교직 상담 결과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다. 지난해 교총에 접수된 교권 침해 상담 사례는 572건으로 10년 전인 2006년의 179건보다 3배나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전년도(488건)보다 17.2%가 불었다. 오늘날 우리 교육 현장에서 빚어지는 교권 침해의 슬픈 자화상이다.
교권 침해는 증가세였고 증가 폭도 컸다. 100건대의 교권 침해가 2007년 처음 200건을 넘었고, 2012년 이후 300건대, 2014년부터 400건대, 2016년 572건으로 늘었다. 교육부가 국회에 낸 2011~2015년 교권 침해 현황에 따르면 2만5천 건, 2011~2016년 상반기 현재 2만7천400여 건이다. 특히 교권 침해(572건)의 절반쯤인 267건(46.7%)이 학부모에 의한 피해였고, 학생과 제3자의 침해도 각각 58건(10.1%)과 32건(5.6%)이었다. 학부모`학생`제3자의 교육활동 침해가 전체의 62.4%(352건)였다.
이번 자료는 우리 학교 현장이 지금 학교 밖으로부터의 심각하고 일상화된 교권 침해로 몸살을 앓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아울러 학교 현장에서의 교권 환경이 날로 악화되는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한마디로 학교 교육 활동을 둘러싼 전통적인 신뢰 관계마저 무너지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전인 교육의 첨병 역할을 맡은 학교에서의 교권이 이처럼 침해받는 상황이라면 정상적인 교육을 기대하기 어렵다. 교권을 침해받으면서까지 굳이 교육에 애정과 정성을 쏟을 교육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사실상의 교육 포기와 다름없다.
이에 따른 최대의 피해자는 바로 학생들이다. 이 때문에 당국에서는 교권 침해 학부모 등에게 과태료 부과 같은 처벌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는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 대증 처방에 불과할 뿐이다. 무엇보다 학교에 대한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 교육 현장에서의 일탈(逸脫)도 곤란하다. 그렇지만 학부모 등 학교 밖의 교권 침해 행동은 더욱 삼갈 일이다. 교권 보호를 위한 학교장의 적극적인 역할도 절실하다. 이는 가장 중요한 교육 소비자인 학생을 위해서다.
10. 주목해야 할 ‘힘의 우위에 의한 무장평화’ 제안
‘4월 한반도 위기설’이 대선판을 흔들면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사드 배치에 긍정적 입장으로 선회한 가운데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무장평화”와 “공세적 국방 정책으로의 전환”을 들고 나왔다. 홍 후보는 1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포럼에서 “대선이 ‘탄핵 대선’에서 ‘안보 대선’ 국면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이같이 제안했다.
홍 후보는 이를 위한 방안으로 사드 배치는 물론 1991년 철수한 미군의 전술핵 재배치와 특수전 전문부대인 북한의 특수 11군단에 대응한 해병특전사령부 창설 등을 제시했다. 물론 이런 대책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중국을 설득하고 미국과는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는 외교`안보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그러나 어쨌든 제한적이나마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현재까지 대선판에서 거론되는 안보 대책은 사드 배치뿐이다. 그나마 ‘4월 위기설’이 터진 덕분이다. 그전까지는 다른 이슈에 밀려나 있었거나 ‘다음 정부에서 공론화’(문재인), ‘국가 간 합의는 존중’(안철수)처럼 사실상의 반대나 미온적 찬성의 틀에 갇혀 있었다. 대선 국면이 아니고 또 ‘4월 위기설’이 아니었다면 문 후보가 ‘사드 배치 불가피론’으로, 안 후보가 ‘사드 배치 반대 당론 철회’로 입장을 바꿨을까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야권 대선 주자들은 안보를 강조하면서도 그 실행 방법에는 말이 없다. 문 후보는 11일 “한반도에 참화가 벌어지면 저부터 총을 들고 나설 것”이라고 했다. 그런 정치적 수사(修辭)로는 전쟁을 막지 못한다. 안 후보도 원론적인 소리만 되풀이한다. 그는 “한반도 비핵화를 이뤄 핵무기도 없고 사드도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게 우리 모두의 지향점”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을 가능케 하는 수단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홍 후보의 제안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 다른 후보들보다 진일보한 안보 대책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다른 후보들도 홍 후보처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지층만 보지 말고 국가와 국민 전체를 보면 얼마든지 홍 후보보다 더 좋은 대책이 나올 것이다.
주요신문칼럼
1. [서울신문][씨줄날줄] 14세 테슬라의 질주
전기자동차업체 테슬라모터스는 지난해 3월 31일(현지시간) 모델3 블루스타를 전격 공개했다. 한 번 충전해 달릴 수 있는 주행거리는 356㎞로 기존 전기차의 두 배에 달했다. 가격은 3만 5000달러대로 8년 전 출시한 모델S에 비해 2만 5000달러나 낮췄다. 디자인도 파격적이었다. 앞 유리에서 지붕, 뒤 유리에 이르기까지 강화유리로 덮었다. 3일 만에 27만 6000대가 예약 판매됐다. 열광적이었다. 전기차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테슬라는 2003년 기업가이자 발명가인 일론 머스크와 엔지니어 마틴 에버하드, 마크 타페닝 등이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팰로알토에 설립한 자동차 전문회사다. 회사 명칭은 전기공학자 겸 물리학자인 니콜라 테슬라(1856~1943)의 이름에서 땄다. 2006년 전기 스포츠카인 로드스타를 시작으로 2012년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모델X, 2016년 프리미엄 세단 모델S를 내놓았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머스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난 캐나다계 미국인이다. 억만장자이자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괴짜 천재인 까닭에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 우주여행 벤처기업인 스페이스 엑스의 CEO와 태양광 발전기업 솔라시티의 회장직도 맡고 있다. 앞서 온라인 결제전문기업 페이팔을 공동창업해 큰돈을 거머쥐었다. 그 때문에 억만장자 외에 몽상가, 혁신창업가, 미래설계자라는 등의 별칭이 붙어 있다.
머스크는 모델3를 선보이는 자리에서 “환경과 인류에 덜 해로운 교통수단의 시대를 앞당긴 차”라고 소개했다. 머스크의 말처럼 테슬라는 전기차의 한계 돌파와 함께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이른바 ‘게임 체인저’다. 테슬라의 가치는 주가를 통해 현실화됐다. 지난 3일 시가총액이 114년 된 원조 자동차회사인 포드를 뛰어넘더니 1주일 만인 10일 109년 된 제너럴모터스(GM)마저 제치고 1위에 올랐다. 515억 달러(약 59조원)를 기록한 것이다. 누군가는 ‘다윗과 골리앗’에 비유했다. 14년 된 신생 업체의 질주다.
테슬라의 거품론도 없지 않다. 지난해 6억 8000만 달러의 순손실을 보는 등 지금껏 적자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판매량도 7만 6000대에 불과하다. 실적으로 보면 과대평가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시가총액은 현재도 중요하지만 미래 가치의 반영이기도 하다. 테슬라를 스마트폰처럼 생활의 도구, 문화로 보고 있는 것이다. 테슬라의 저력은 끊임없는 도전, 혁신에 있다. 4차 산업혁명에 직면한 우리 현실에 던지는 테슬라의 메시지다.
2.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우리 곁을 오래 지켜온 생선구이
한국은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로, 전통적인 노르웨이와 일본을 넘어섰다. 우리 국민들이 생선을 워낙 좋아한다는 것인데, 생선요리 중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것이 생선구이다. 생선구이는 말 그대로 생선에 소금을 뿌리거나 양념장을 발라서 숯불이나 연탄불에 구운 음식이다. 가정에서는 가스 불 혹은 오븐에 굽거나, 프라이팬에 기름을 자작하게 두르고 굽기도 한다.
생선구이는 생선을 먹는 가장 오래된 방법으로, 선사시대까지 그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 전통적 방법인 소금에 절이거나 소금을 뿌려 구우면 담백한 생선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고, 간장양념을 쓰면 풍미를 더할 수 있으며, 고추장양념을 하면 생선의 맛이 새롭게 변신한다.
생선구이는 청어, 고등어, 삼치, 전갱이, 도미, 대구, 가자미, 꽁치, 전어 등 한반도 해역에서 나는 대부분의 어종을 재료로 해서 우리 식탁에 오른다. 그래도 구이로 가장 많이 먹는 생선은 국민생선이라 불리는 고등어가 아닐까 한다.
고등어는 제주도 남부에서 많이 잡히는데, 지금은 가두리 양식도 하지만 북유럽의 노르웨이 등지에서 수입해 오는 물량도 많다.
고등어는 선도가 급속히 떨어지므로 안동 등지에서는 예부터 상하기 전에 소금으로 절여서 꾸덕꾸덕하게 말려 자반으로 먹거나 유통해 왔으며, 제주도 등지에서는 배에서 잡는 즉시 염장해서 말려 뱃자반을 만들어 먹었다. 옛날에는 국내 자연산이 대세였으나, 이제 회감으로는 양식을 많이 쓰고, 식당에서는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구이용으로 많이 사용한다. 노르웨이산 냉동 고등어는 국내산에 비해 무늬가 짙고 몸통이 덜 통통해서 구별이 쉬운 편인데, 저렴하고 식감도 좋으며 품질이 균등해서 인기가 높다.
생선구이, 특히 고등어구이는 크게 비싸지 않아 집에서나 또는 식당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메뉴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도 맛깔나게 요리하는 주부들이 많고, 전문 음식점 또한 많다.
종로5가 동대문시장 통에는 연탄불 생선구이 가게가 모여 있는 골목이 있다. 원조로 알려진 1974년 개업한 ‘호남집’, ‘삼천포집’(구 대중식당), ‘전주집’, ‘나주식당’ 등 30~40년 이상 된 생선구이 전문 가게가 10여곳 모여 있다. 연탄불에 은은하게 생선 굽는 냄새가 그냥 지나치기 어렵게 한다. 각종 생선구이가 있으나, 고등어와 삼치가 인기다. 생선을 푸짐하게 주고 반찬도 깔끔하다.
종로3가에도 생선구이 골목이 있다. 대로에서 안쪽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한일식당’이 보인다. 고등어, 꽁치, 삼치 등 구이 종류가 다양하다. 가게 바깥에서 초벌구이를 해두었다가 주문받으면 연탄불에 한 번 더 구워준다. 옷에 냄새도 배지 않고, 구이 냄새로 손님 끌기에도 좋다. 저렴하지만 생선구이가 푸짐하게 나오고 무쇠돌솥밥에 여러 반찬도 정갈하다. 인근 ‘전주식당’도 30년 된 집으로 돌솥밥으로 준다.
삼각지 대구탕 골목 뒤편에 ‘대원식당’이 있다. 작은 집이나 생선구이 정식 손님으로 줄이 길다. 가게 입구에서 할머니가 소금간을 미리 해놓은 고등어를 연탄불에 굽는데, 33년 경력이라 하신다. 가게는 조카가 경영한다. 고등어는 간이 적당하고 촉촉하게 구워져 입맛을 돋운다. 총 11가지 반찬을 내어오는데 어느 것 하나 허접한 것이 없다. 숭늉까지 준다. 저렴하지만 정성스레 차린 한 끼 밥상을 받는 기분이다.
완연한 봄이다. 주말 나들이를 겸해서 오랜만에 종로통이나 동대문시장을 둘러보고, 옛멋이 살아 있는 생선구이 골목에서 한 끼 식사를 즐기는 호사를 누려 보려 한다.
3. [서울신문][김용석의 상상 나래] 기업의 창조와 혁신, 르네상스 시대에서 배우자
올 초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 등을 돌며 수많은 천재 예술가의 작품을 만났다. 옛 모습 그대로의 건물, 좁은 골목길을 누비면서 중세 시대에 와 있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많은 회화, 조각물을 보면서 든 생각은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했을까’였다.
당시 작품에서 어떤 독창적인 것이 있었으며, 창의적인 생각은 어디서 나올 수 있었을까? 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인류 역사상 14~16세기 르네상스는 가장 창의적인 문화가 꽃피었던 시기로 불린다. 르네상스는 신 중심의 세계관이 인간 중심으로 바뀌면서 처음에는 문학, 미술, 건축 등에서 시작하였으나, 나중에는 사상과 생활방식이 바뀌게 되고, 그것이 과학혁명으로 이어졌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피렌체에서 시작되었다. 무역업과 금융업의 중심지였고, 당시의 피렌체는 상인이 아니면 존경을 받을 수 없다고 알려진 최초의 현대도시였다.
특히 가장 영향력 있는 상인의 가문은 메디치가이다. 15세기 후반 피렌체 르네상스의 부흥은 메디치 가문의 300여년간의 지속적인 후원 덕분이었다. 예술가, 철학자, 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간 이질적 집단의 교류를 통해 새로움을 창출해냈다. 레오나드로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갈릴레이, 마키아벨리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특히, 미켈란젤로는 15세 때부터 2년간 메디치 가문의 궁전에서 지내면서 성장했으니, 메디치 가문의 도움을 많이 받은 셈이다.
르네상스의 태동은 피렌체이었지만, 로마에서 더욱 발전했다. 시스티나 성당에서는 많은 사람이 자리를 뜨지 못한다.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인 천지창조와 제단 위에 있는 벽화인 최후의 심판이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었지만, 발걸음을 베드로 성당으로 옮겨서, 미켈란젤로 나이 25세 때의 대작인 피에타를 만났다.
예술가들의 창조적인 영감이 가장 크게 분출된 시기가 르네상스 시대가 아닌가 싶다. 요즈음으로 말하자면 메디치라는 기업이 미켈란젤로 같은 뛰어난 인재들을 발굴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기에 많은 걸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14세기나 지금의 21세기나 결국 시대를 이끌어 가는 것은 기업인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피렌체의 성공 요인을 한마디로 말하면, 창의적인 인재와 자본을 가지고 있는 기업과의 만남이다. 많은 창의적인 예술가, 철학자, 과학자 인재들이 있었고, 이질적인 그들 간의 교류를 통해서 독창성 있는 예술품이 나올 수 있도록 기업은 지원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너무나 흡사하다. 개방된 지역 문화의 지역으로 전 세계의 다양한 우수인력이 몰리고, 성공한 수많은 벤처기업인이 벤처자본가로 활동하면서 우수 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우리나라는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기업들의 고민은 깊다. 기업의 성장 동력이 줄어들고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창조와 혁신의 목소리가 크다. 피렌체에서 시작한 르네상스에서, 지금의 우리 기업은 무엇을 배워야 할까? 회화의 원근법은 중세가 아닌 르네상스 시대에 발명되었다. 신에서 인간 중심으로의 변화이다.
중세의 화가는 상상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눈으로 그렸지만, 르네상스 화가는 자신의 눈, 인간의 눈으로 표현했다. 내 눈에 가까운 곳은 크게, 먼 곳은 작게 보인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인간의 문제를 가장 먼저 고민하고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다. 인간(고객)의 욕구를 이성이 아닌 감성에서 찾은 결과이다.
조각가인 미켈란젤로에게는 천지창조의 프레스코 그림을 맡는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익숙지 않은 천정화를 그리느라 허리가 끊어지는 듯 고통을 이겨내며 혼자서 완성했다. 창조의 위대한 작품은 땀, 몰입, 열정에서 온다. 이러한 도전정신과 끈기를 기업은 배워야 한다. 또한 메디치 가문이 우수 인재를 발굴하고 장기적으로 키웠듯이, 기업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창의적인 인재 육성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장은 세상을 남들과 다르게 보는 데서 출발한다. 실패도 감수해야 한다. 개인과 조직의 창의, 혁신의 문화는 다양성, 자율성, 개방성에서 온다. 인간을 중시했던 르네상스 시대에서 배우고 실천하자.
4. [매일신문][매일춘추] 행간을 읽으면 그 내용이 보이죠
봄비가 창문을 두드린다. 세상이 온통 봄을 맞아 들썩이는데, 너는 무슨 일로 며칠씩 집안에 틀어박혀 외롭게 지내느냐고 가볍게 톡톡, 묻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받아둔 원고 청탁서가 한동안 나를 꼼짝없이 묶어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루 이틀 만에 끝이 날 수 있는 글 노동이 아닌데 말이다. 아! 이토록 어리석은 내 마음도 모르고 봄날은 자꾸 가려고만 한다.
정해진 약속 없이 혼자만의 외출에 새로운 매력을 느낀 것은 얼마 전부터다. 친구를 불러내어 만날 시간, 장소, 먹을 것까지 정하다 보면 이래저래 짧은 하루가 후딱 갈 것 같아 그저 편한 신 신고 가방 하나 메고 나는 가끔 혼자 영화를 보러 간다. 우리 푸른 시간이 곳곳에 배어 있는 익숙한 거리, 반월당에서 동성로를 향해 걷는 길은 덤으로 얻는 즐거움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이제는 단어조차 생소한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 경쟁이 극에 달했던 그 시기에 미국 항공 우주국(NASA)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숨겨진 인물들' 어쩌면 '숨겨진 천재들'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흑인 여성 3인의 활약과 그녀들의 열정을 실화를 바탕으로 그려낸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를 보았다. 성차별, 인종차별, 거기에 신분과 학력차별까지 겹겹의 장애를 뚫고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용감하고 지혜로운 여인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캐서린 존슨은 애초에 그녀를 무시해서 단순히 계산만을 하도록 하는 선임연구원의 요구에 굴하지 않고 현명하게 대처해서 누구도 찾지 못한 답을 찾아낸다. 군데군데 가려진 숫자와 부족한 정보만으로 어떻게 이런 결과에 이르렀는지 의구심을 보이는 최고 책임자에게 "행간을 읽으면 내용이 보이죠"라며 차분히 설명을 더한다.
행간이란 '행과 행 사이' '글에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지만, 그 글을 통하여 나타내려고 하는 숨은 뜻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란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더라도 주인공의 슬기로운 설명에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것은 허를 찌르는 대답인 동시에 한 편의 시(詩) 속에 숨겨둔 행간의 의미보다 더 진한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천부적인 수학 능력을 가진 흑인 여성 캐서린 존슨, NASA 프로그래머 도로시 본, 흑인 여성 최초로 NASA 엔지니어의 꿈을 이룬 매리잭슨. 영화 속 그녀들처럼 사회적으로 잘못된 편견을 용기 있게 바로잡아 나가고 자신을 보호하려면 무엇보다 각자의 마음 근육을 단련시켜야 한다. 그 힘으로 지혜로운 심안(心眼)을 가져 깊숙이 숨어 있는 행간을 읽어내야 한다. 그러기에 좀 더 깊어져야 한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봄 햇살이 환하다.
5. [세계일보][공감!문화재] 하회마을·중국 홍춘 ‘세계유산 인연’
세계유산제도는 명실상부한 유산보호시스템으로 자리매김했다. ‘문화주권’은 그 나라의 독보적 문화가치를 세계인들에게 인정받는 것으로,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충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한국과 중국은 자연환경과 기후가 유사하고 한자문화권이라는 맥락을 통해 오랜 세월 밀접하게 관련돼 왔다. 이 문화적 유사성은 양국이 문화주권을 선점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아리랑’의 중국 등재 과정에서 보이듯이 가깝고도 먼 나라였던 것이다.
세계유산 등재에 한·중 양국이 협력해 좋은 결과를 얻은 훈훈한 사례가 있다. 바로 역사마을 하회(사진)와 양동, 중국의 시디춘(西遞村)과 훙춘(宏村)이다. 중국은 2000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고, 한국은 10년 뒤인 2010년 등재에 성공했다.
하회마을 주민자치회장에 따르면 당시 공무원과 마을 주민들이 중국의 훙춘과 시디춘을 방문해서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사례와 등재 신청 과정의 노하우를 배우고 준비했다고 한다. 양국의 마을이 서로 협력한 결과가 세계유산 등재로 돌아온 것이다.
최근에는 중국의 세계유산 전문가들이 한국의 유산보호제도와 활용 사례를 보고 배우면서 당시의 고마움을 되갚게 되었다. 한국은 문화재청에서 유산등재를 일원화하고 지방자치단체는 관리에 힘쓰고 있다. 중국은 중앙정부의 역할이 지방자치단체에 비해 약한 편이고 조례 위주로 정책을 시행한다.
한국은 특별법인 문화재보호법의 규제가 엄격하지만, 중국은 관광 활용이 주는 경제적 효과에 치중하는 편이다. 이러한 상반된 정책 시행 과정에서 오는 교훈은 양국의 유산관리 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역사적으로 유사한 문화를 지녀온 한국과 중국이 세계유산 보존·관리에서도 그 인연의 끈을 지속해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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