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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동아일보]
1. 朴 구속 기소가 차기 대통령에 주는 메시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제 592억 원의 뇌물 수수와 직권 남용, 공무상 비밀 누설 등 18가지 범죄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자신이 임명한 검찰총장과 검사들에 의해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것이다. 검찰은 특검이 적용한 삼성의 433억 원 외에도 롯데에서 받았다가 돌려준 70억 원, SK그룹에 요구한 89억 원도 뇌물 혐의에 포함했다.
대한민국 최고위 공직자인 대통령이 공직범죄 중 죄질이 나쁜 뇌물수수 혐의로 피고인석에 서는 장면을 바라봐야 할 국민은 착잡하다. 박 전 대통령에게는 18가지나 되는 혐의가 적용됐지만, 불행한 사태의 근본 원인은 국리민복을 위해 사용하라고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최순실 같은 사인(私人)의 이익을 위해 썼다는 점이다.
대통령 주변에서 이를 감시하고 견제했어야 할 사람들은 한통속이 되거나 방조자 역할을 했다. 대선을 향해 뛰는 각 당 후보들은 지금은 남의 일 같을 것이다. 그러나 당선되는 후보는 전직 대통령이 형사피고인 신분이 된 오늘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을 구속 기소하면서 정작 국정농단을 감시할 자리에 있었음에도 묵인·방조·은폐 혐의를 받는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불구속 기소한 것은 검찰의 수치로 기록될 것이다. 우 전 수석은 대통령 측근 및 친인척 비리 감시를 위해 설치한 특별감찰관제도 무력화시켰다. 특임검사를 임명해 우 전 수석을 다시 수사하라는 여론을 무시하고, ‘봐주기 기소’를 강행한 것은 검찰 내 ‘우병우 사단’이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한 기도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문재인 안철수 등 차기 대선후보들은 모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 검찰 개혁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금 검찰은 차기 정권의 우병우 특검과 개혁의 칼날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차기 대통령도 청와대에 검사들을 파견 받아 민정수석실을 꾸리면서 검찰을 정권의 시녀로 쓰는 악습의 고리를 끊어야 할 것이다.
2. 한미동맹, 정권 따라 흔들리지 않는다는 상호신뢰 있어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17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회담을 갖고 북한을 향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결의를 시험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고 경고했다. 최근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보여준 트럼프 대통령의 무력 행동이 북한을 향한 메시지였음이 분명하며 북한도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미국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압박이다. 그는 비무장지대(DMZ)를 찾아서도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있다”며 미국의 대북정책이 인내에서 개입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한반도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는 상황에서 그의 방한은 시의적절했다. 2월 방한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공동발표는커녕 만찬도 하지 않고 떠난 것에 비해 펜스 부통령은 2박 3일 체류 동안 굳건한 한미동맹 의지를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2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3월 틸러슨 장관에 이어 이번엔 행정부 2인자를 서울로 보냈다. 짧은 기간에, 그것도 한국 정치 리더십이 공백인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펜스 부통령이 서울로 오는 전용기에서 백악관 외교고문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완료와 운용은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말한 것은 미묘한 파장을 일으킨다. 펜스 부통령은 어제 ‘사드 배치는 변함없이 추진할 것’이라며 “대선 결과가 어떻든 미국의 한국의 안전 안보에 대한 의지는 철갑처럼 확고하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럼에도 백악관 고문이란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꺼냈을 리는 없다는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 이후 ‘미중 빅딜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아무리 혈맹이라도 미국이 한국을 건너뛰는 ‘코리아 패싱’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동맹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태도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더라도 한미동맹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미국에 주어야 한다. 틸러슨 국무장관이 ‘일본은 동맹, 한국은 파트너’로 우리의 격을 낮춘 것을 말실수로만 치부할 일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반미면 어때’식 외교로 한미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것을 상기해야 한다. 누가 뭐래도 우리 안보의 근간은 한미동맹이다. 그러나 동맹의 우산에 숨어 자강을 소홀히 하는 것은 미국도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이데일리]
3. 시작된 대선, 유권자들이 두눈 부릅떠야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전이 드디어 시작됐다. 투표 전날인 내달 8일까지 22일 간에 걸친 공식 선거운동이다. 어제 첫날이 지나갔으니 이제 21일이 남은 셈이다. 남은 기간도 순식간에 지나가게 될 것이다. 후보들은 저마다 자신이 이 나라를 이끌어갈 적임자라고 주장하지만 결국 마지막 선택은 유권자들의 몫이다. 두 눈을 부릅뜨고 쭉정이와 알맹이를 가려내야 한다.
중앙선관위에 등록한 후보가 모두 15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는 자체에서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혼란상을 읽게 된다. 전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상황에서 후임자를 선출하는 선거라는 점부터가 그렇다. 탄핵과정에서 극심하게 부딪쳤던 ‘촛불’과 ‘태극기’ 민심의 괴리는 여전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위기 상황이다. 선거전 역시 최대 혼전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국방·안보의 위기다. 핵·미사일 개발에 집착하고 있는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로 한반도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무력충돌 위기에 휘말려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여차하면 강공책을 구사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에서도 북한 지도부는 도발 야욕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안보 문제를 원활히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을 다음 대통령으로 선택해야 한다.
경제 문제도 만만치 않다. 최근 지표상으로는 경제가 회복되는 과정임을 말해주고 있지만 체감 경기로는 아직 멀었다. 기업들은 여전히 신규 투자·고용을 꺼리고 있으며, 청년실업 문제도 쉽게 해결될 기미가 아니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일단 다행이지만 금리 인상에 따른 장기적인 파고에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중국의 사드보복 조치도 금방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를 구하겠다고 나선 후보들마다 인기에 영합하려는 포퓰리즘 공약에 골몰하고 있으니 걱정이다. 퍼주겠다는 정책으로는 나라를 거덜내기 십상이다. 포퓰리즘 약속으로 민심을 자극할 게 아니라 굳건한 믿음을 주는 리더십으로 민심을 얻어야 한다. 후보들마다 미래지향적인 리더십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안으로는 나라 살림을 키우고 밖으로는 우리의 터전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4. 정부는 국민연금에 눈독 들이지 말라
국민연금공단이 정부의 대우조선 채무 재조정안에 찬성하면서 연금기금 운용의 독립성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대우조선은 한고비를 넘기게 됐지만 정작 국민연금은 거센 후폭풍에 직면한 것이다. 정부 압박으로 회생 전망이 불확실한 기업에 국민 노후자금을 퍼주느냐는 비판 여론이 그것이다. 현 상황에서 손실을 최대한 줄이는 방안을 택했다고 하지만 일련의 과정에 정부 입김이 작용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국민연금 의사결정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찬성이 대표적이다. 특검 수사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중이다.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도 연금에 손실을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초 국민 노후자금의 손실을 우려한다며 반대했던 이번 결정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법정관리인 ‘P플랜’으로 가면 손실률이 50%에서 90%로 더 커질 수 있다는 현실론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사안이 아닌데도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한 고통분담이라는 명분으로 윽박지른 탓에 결국 손을 들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생활을 지탱할 마지막 보루다. 권력이나 정부가 필요할 때마다 맘대로 돌려쓰는 쌈짓돈이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국민연금을 틀어쥐고 있는 현행 구조 아래서는 언제든 이런 사태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유력 대선 후보가 “보육, 임대주택, 요양 분야 국공채를 발행하는 경우 국민연금이 적극 투자하도록 하겠다”는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뱉을 수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국민연금은 560조원의 막대한 기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운용은 이처럼 구시대적이다. 자칫 기금이 조기에 고갈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제대로 운용하려면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차제에 정부와 공단의 지휘·감독을 받는 기금운용본부를 독립시켜 기금 운용의 독립·투명·전문성을 확대해 정부와 정치권이 손톱만큼이라도 국민연금에 눈독 들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이나 보건복지부 장관, 금융위원장 등이 국민연금 운용에 간섭하려면 먼저 자기 재산을 걸고 연명으로 보증을 서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5. "트럼프를 시험하지 말라"는 美 부통령의 경고
한국을 방문 중인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17일 "지난 2주 동안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택한 우리의 행동에 의해 전 세계가 새로운 (트럼프) 대통령의 힘과 결의를 목격했다"며 "북은 우리 대통령의 결의를 시험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은 이날 황교안 총리와 회담 후 공동 회견에서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원한다"면서도 군사적 해결책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명백히 했다. 그는 "(20년간의)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펜스 부통령은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해 "한국의 방어 조치에 경제적 보복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중국은 방어 조치를 필요하게 만드는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만일 중국이 북한에 대처하지 못한다면 미국과 우리 동맹국들이 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도 상기시켰다.
펜스 부통령의 이날 회견은 미국의 정책 방향이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줬다. 북이 추가 도발을 하면 반드시 징벌적 조치가 따를 것이고, 중국이 북을 제어하지 못하면 미국이 직접 할 것이며, 중국의 사드 보복도 이런 차원에서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황교안 총리는 이날 회견에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한·미는) 북한의 추가 도발 시 (중국과의 협력을 토대로) 강력한 징벌 조치를 취해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중국의 대북 송유관 차단, 중국 정부의 대북 금융거래 단절, 북한인 노예 노동 금지와 같은 조치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이번만은 제재와 압박 수위를 높이는 듯하다가 적당히 물러서던 과거의 방식이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 북 정권이 핵·미사일과 정권 생존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야 한다. 중국이 나서지 않아 미국이 나서게 되는 일은 중국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일주일(4월 25일) 후면 북한군 창설 기념일이다. 북은 지금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대응 전략, 과거와 다른 중국에대한 대응 전략에 골몰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간 보기'와 같은 미사일 도발을 했다. 이제 6차 핵실험과 ICBM 발사 시험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면 "트럼프 대통령을 시험하지 말라"는 펜스 부통령의 경고를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한다.
이런 시점에 우리는 정치적 불확실성의 정점을 지나고 있다. 각 정당과 대선 후보들은 현 정세에 대한 국민의 경각심을 촉구하되 불필요하고 과도한 불안감이 아닌 국민적 결의가 모아질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주기를 당부한다.
6. '한국 피란민 선별한다'는 아베의 치졸한 언행
아베 일본 총리는 어제 중의원에서 한반도 유사시 일본으로 피란민이 유입할 경우에 대한 대책을 질문받고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사람에 해당하는지 스크린하는 방식의 대응을 상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 긴장을 부추기는 듯한 질문과 답변 모두가 수준 이하의 치졸한 행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일부 언론 매체는 마치 한반도에서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일본으로 철수했다가 슬그머니 돌아온 일본 대사는 국방장관 면담을 요청하는 엉뚱한 행동을 했다. 이 역시 일본인 피란 문제를 논의한다는 이유라고 알려졌다. 빈손으로 한국으로 귀환한 데 대한 일본 내 비난이 크자 일부러 이런 무례한 행동으로 만회하려는 것이란 얘기도 있다고 한다.
지금 한·일 간에는 위안부 합의에 대한 한국 내 반발과 소녀상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 한국 내에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로 나아가기보다는 그 상처를 덧나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일본이 한국에 피해를 주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일본은 '언제까지 반성해야 하느냐'고 하지만 아무리 반성해 보았자 아베와 같은 사람들이 이런 저급한 언행을 하면 소용이 없다. 아베의 말은 소녀상에 대한 감정적 화풀이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한국 국회에서 '일본에 대지진이 발생해 한국으로 난민이 유입할 경우'에 대한 대책을 묻는 질문에 한국 공직자가 '스크린하겠다'고 답하는 풍경을 상상해보라. 지금 일부 일본인 사이에 반한(反韓) 감정이 퍼져 있다고는 하지만 공직자들이 마치 옆 나라의 불행을 바라고 즐기는 듯한 언행으로 여기에 영합하려 한다면 양국 관계 정상화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서울신문]
7. ‘북 도발 시 징벌조치’ 확인한 황-펜스 공동발표
최근 주한 미군 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차기 정부로 연기될 수 있다는 미 외교 관계자의 발언이 주목을 받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의 방한에 동행한 백악관의 외교정책 고문의 발언이다.
그는 전용기에 탑승한 취재진에게 “사드 배치 문제는 한국이 5월 초 대통령을 뽑을 때까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며 차기 대통령의 결정으로 미뤄지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밝힌 것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무역과 북핵 문제를 주고받는 ‘빅딜’ 카드까지 꺼내 든 상황이라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어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방한 중인 펜스 부통령과 첫 회동을 하고 굳건한 한·미 동맹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사드의 조속한 배치와 운용 및 포괄적 대응능력 발전 의지도 밝혔다. 또 북한이 도발하면 강력한 징벌적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다만 미국과 중국이 북핵과 무역 문제를 주고받는 빅딜설이 제기된 상황에서 사드 배치를 놓고 양국이 무언가의 거래를 했을 것이란 추측도 있다. 펜스 부통령이 중국의 경제보복이 잘못됐다고 지적했지만 지난 6~7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는 거론조차 안 된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중국이 최근 북한 관광을 중단하는 등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중국이 북핵 문제를 우리와 협력하는데 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부르겠느냐”는 의미심장한 트윗 글을 남겼다. 미국이 중국에 명분과 실리를 주기 위해 사드 배치 문제를 한국의 차기 정부 몫으로 돌렸을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우리로선 북핵 해결을 위한 국제 공조가 사드 배치 문제 때문에 훼손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경제제재가 힘을 받기 시작하다가 지난해 7월 한·미 양국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의 거센 반발과 함께 국제 공조가 흐트러진 것도 사실이다. 중국은 사드 배치가 자신을 향한 미사일방어(MD)체계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면서 북·중 관계가 복원되는 조짐마저 보였다.
지난해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에도 북한은 사드를 둘러싼 한·중 간 갈등이 커지면서 중국의 대북 압박 강도가 수그러졌다. 북한의 유일한 후원국인 중국의 대북 제재 공조 이탈로 사실상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최대 현안이 북핵 불용이라는 측면에서 탄탄한 국제 공조를 통해 북한의 핵 개발 의지를 꺾는 것이 우선이다.
8. 대우조선, 국민연금 희생 안 되게 책임져야
법정관리의 갈림길에 섰던 대우조선해양에 숨통이 트인 것은 다행스럽다. 국민연금이 대우조선 최대 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채무조정안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어제 열린 첫날 사채권자 집회에는 사학연금과 우정사업본부, 농협, 중기중앙회, 수협 등의 기관투자자가 참여해 국민연금과 같은 찬성 의견을 냈다고 한다. 사채권자들이 내일 열릴 사채권자 집회에서 내년 만기도래금에 대한 채무조정에 동의하면 대우조선은 살아날 기회를 잡게 된다.
그러나 아직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대우조선의 정상화 여정은 여전히 험난하다. 내년 조선 시황이 회복되지 않거나 자구노력이 지금처럼 계속 지지부진하면 대우조선은 정리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음이 시장에서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내년 9월을 전후해 내년 수주 목표(54억 달러)의 절반 이상을 달성하지 못하면 또다시 유동성 위기에 빠지고, 그렇게 되면 ‘백약이 무효’라는 것을 정부와 대우조선도 잘 알고 있다. 대우조선이 수주전에 말 그대로 사활을 걸어야 하는 까닭이다.
대우조선의 자구노력은 기대치에 턱없이 못미친다. 지난해 자구계획 이행률은 29%에 불과했다. 현대중공업(56%)이나 삼성중공업(40%)에도 크게 못 미쳤다. 여론이 좋지 않자 직원 1000여명을 추가로 줄이고 임직원 급여 10%를 반납하겠다고 나선 것이 고작이다. 시늉만 낸 것이다.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안일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대우조선 부실이 산업은행의 소홀한 관리·감독과 대우조선의 부실 경영이 낳은 총제적 산물이라는 감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산업은행이 퇴직 임직원들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면서 관리 감독은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을 이제 하나하나 엄중히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대우조선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우리 국민의 ‘피 같은’ 국민연금의 희생이 컸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국민연금이 대우조선 회사채 3887억원 중 절반을 출자전환하고, 나머지를 상환 보장받는 조건으로 만기 연장하지 않았으면 대우조선은 법정관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이 드물다. 대우조선은 2180만명에 이르는 국민연금 가입자를 생각하며 ‘국민의 노후가 우리에게 달렸다’는 비상한 각오로 회생에 나서길 바란다.
[세계일보]
9. 교육현장 미세먼지 기준 제각각… 아이 건강 지킬 수 있겠나
‘봄철 불청객’ 미세먼지 대책을 놓고 학교 현장이 혼란스럽다고 한다. 교육부가 지난 2월 권고한 매뉴얼에 따르면 현재 주의보(151㎍/㎥ 이상 2시간 지속) 이상인 경우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의 야외 수업 금지를 검토토록 하고 있다. 그런데 서울교육청이 지난 10일 미세먼지 종합관리대책을 발표하면서 교육부 매뉴얼보다 한층 강화된 기준을 발표했다.
보통 단계에서도 50㎍/㎥ 이상이면 야외수업을 자제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인천 등 다른 지역의 학부모들이 해당 시도교육청에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건강이 걱정되니 서울과 같은 기준을 강화해 달라는 것이다.
미세먼지는 ‘침묵의 암살자’로 불리는 1급 발암물질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4년 미세먼지에 따른 조기 사망자는 700만명으로 흡연 조기 사망자(600만명)를 웃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40년 뒤 한국이 대기오염에 따른 조기 사망률 1위에 오를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미세먼지에 마스크 쓰고 수업한다’는 학부모들의 원성이 일자 야외 수업 허용 기준을 발표했다. 미세먼지가 50㎍/㎥ 이상이면 야외수업을 실내수업으로 대체하고 54만명에게 마스크를 쓰게 한다는 것이다. 교육부와 조율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조치였다. 처음부터 혼선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울시교육청만 탓할 수도 없다. 올봄에 미세먼지 공포가 고조되고 있지만 교육부는 시도교육청과 변변한 협의나 회의를 가진 적이 없다. 일방적으로 기준을 정해 내려 보냈을 뿐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교육행정 그대로였다. 시도교육청들은 교육부가 ‘야외수업 자제’를 정확히 판단해 통보해주지 않는 이상 혼란은 계속될 것이라고 교육부를 비난하고 있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미세먼지 대책을 놓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구태가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미세먼지 기준을 놓고 교육당국 간에 티격태격하는 행태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대선기간이라고 교육당국이 뒷짐을 지고 있다는 비난도 나온다. 이제부터라도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머리를 맞대고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줄이면서 교육현장의 현실을 고려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
[중앙일보]
10. 박근혜의 '592억 뇌물'…기업-권력 관계 달라져야
4월 17일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재판에 넘긴 날인 동시에 그의 후임을 뽑는 대선 선거운동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날이었다. 권력의 부침이 교차하는 묘한 뉘앙스를 남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기소(起訴)는 수사 결과에 대해 법원의 심판을 구하는 행위로 처벌의 가능성을 높게 본다는 뜻이다. 온 국민에게 ‘이게 나라냐’는 한탄과 분노, 배신감과 좌절감을 안긴 박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피고인 박근혜'의 전철을 밟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박 전 대통령의 범죄 사실 중 가장 눈에 띄는 혐의는 뇌물 부분이다. 검찰은 삼성의 433억원 외에 롯데가 K스포츠재단에 추가로 낸 70억원, SK에 추가로 지원하라고 요구한 89억원 등 모두 592억원을 뇌물에 포함시켰다. 실제로 오간 돈은 물론이고 약속이나 요구에도 뇌물죄를 적용한 것이다. 앞으로 이권을 둘러싼 대기업과 권력의 물밑 거래를 차단하려면 미리 강력한 주문으로 경각심을 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이제 대기업들도 권력만을 탓할 게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과감하게 바로잡고, 권력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박 전 대통령 기소를 끝으로 ‘국정 농단 수사’는 일단락됐다. 그 실체가 어느 정도 수면 위로 드러났고, 농단 세력들을 단죄하는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부실 수사는 면죄부만 줬다는 비판과 함께 검찰 수사의 오점으로 두고두고 남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부패 혐의로 기소된 세 번째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남겼다. 공을 넘겨받은 법원은 기소 내용뿐 아니라 세월호 7시간의 행적 등 온갖 의혹과 국민의 궁금증을 풀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재판에 임해야 할 것이다. 박 전 대통령도 의혹과 진실을 밝히는 역사적 재판이 되도록 자발적으로 나서 치열한 공방을 벌여주길 기대한다.
주요신문칼럼
1. [중앙일보][삶의 향기] 로즈힙, 장미의 큰 선택
손대기 애처롭다. 간밤 봄비가 거세었는데 내 작업실 뒷마당에 어린 장미의 몽우리들이 가지 끝에 돋았다. 새로운 계절에 거리낌 없이 피어나고 세상에 도도하게 제 모양을 뽐낼 준비를 하는 중이다. ‘메릴린 먼로 로즈’-화단에 꽂힌 푯말이 그 장미의 품종을 알려준다. 화려하게 살다가 젊은 날에 세상을 떠난 여배우의 이름이다. 그녀는 장미의 한 종류로 남아 영영 잊히지 않는 이름으로 이 뜰에서 자란다 싶다. 곧 화창한 날이면 골목골목마다, 아파트 울타리마다 장미 향으로 온 도시가 진동할 거다.
화가인 나에게 정치는 온통 색깔이었다. 대선이나 총선 때마다 황색 돌풍, 녹색 혁명, 청명한 파랑과 뜨거운 빨강의 대비가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선 특정한 색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한때 4월 대선 가능성에 맞춰 ‘벚꽃 대선’이라는 말이 나왔다. 지금은 오로지 5월 9일의 대선 날짜를 상징하는 ‘장미 대선’이란 단어가 온 사방을 도배하고 있다. 다양한 빛깔의 장미들이 다투어 피어오르는 모습이다.
미술에서도 장미는 중요한 소재다. 해바라기의 화가로 알려진 고흐는 알고 보면 장미의 화가이기도 하다. 고흐가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낸 프랑스의 프로방스는 장미의 고장이다. 그가 남긴 해바라기의 그림 수만큼 장미도 많이 그렸다. 그의 해바라기 그림의 열정적 붓 자국은 꿈틀대는 태양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반면에 고흐는 장미 앞에서 자신의 들끓는 개성과 기질을 누그러뜨리고 꽃이라는 대상을 더 존중하는 듯하다. 이처럼 장미는 천재의 광기마저 굴복시키는 마력의 꽃이다.
어느 때, 어느 지역에서든 장미들은 여자를 불러들이고 남자를 불러들인다. 나비며 벌 그리고 온갖 벌레를 모은다. 그들은 탐스러운 꽃잎을 따기 위해, 향을 좇아서, 달콤한 꿀을 얻기 위해, 그들 나름의 이해관계로 장미에게 간다. 고대 로마의 귀부인들은 화폐로 쓰기 위해 그 꽃잎을 땄고 클레오파트라는 그의 삶 사분의 일을 장미 속에 파묻혀 보냈다고 한다.
장미는 정치의 꽃이기도 하다. 1908년 3월 여성 섬유노동자 1만5000명이 뉴욕에 모여 “빵을 달라, 장미를 달라”고 외쳤다. 세계 여성의 날이 시작되는 사건이다. 빵은 생존권을 그리고 장미는 참정권을 의미한다. 여기서 장미는 헌사와 대접의 상징으로 쓰였다. 장미를 받는 것은 존중과 귀하다는 인정이다. 그 노동자들은 장미를 받는 것으로 그들 스스로 세상의 일을 선택할 자격을 요구했다.
사람들이 장미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다. 장미는 꽃만 있는 게 아니다. 찬바람이 불고 모여들었던 열망들이 사라진 자리에 장미는 한 알의 열매를 맺는다. 이 장미의 열매를 “로즈힙(rose hip)”이라고 한다. 장미의 가장 큰 선택은 로즈힙이다. 이 열매를 맺기 위해 장미는 100여 일 이상 화려한 꽃잎들 속에 몰래 씨방을 숨기고 부풀린다. 물결치는 풍성한 치마 속에 숨겨진 엉덩이 같아서 그 이름이 로즈힙인가 보다. 장미는 화려한 날 그를 찾아왔던 열망들을 선택하지 않는다.
로즈힙에는 온갖 영양소가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여인들은 로즈힙을 사랑했다. 영국의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비가 세월을 역행하는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로즈힙 오일 덕분이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영국군에게 비타민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로즈힙이 지급됐다고 한다. 젊음과 건강을 위하는 소수의 사람들 말고는 장미의 로즈힙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장미의 큰 선택은 그 꽃을 보고 달려드는 많은 열망에도, 그렇다고 그 열매를 찾는 소수의 사람에게도 있지 않다. 장미의 가장 큰 선택은 끊임없이 생명을 영속시키는 열매를 맺고 그 속의 씨앗을 땅에 떨구는 일이다.
내 작업실 마당에서 본 먼로 로즈의 여린 꽃봉오리가 활짝 필 때 우리는 우리대로 큰 선택을 하게 된다. 바로 장미 대선이다. 형형색색의 장미들이 각기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무수한 기대와 열망들이 그들에게 이끌릴 것이다. 온갖 요란한 캠페인이 벌어질 것이고, 현란한 말들과 장밋빛 약속들이 우리의 신념을 부를 것이다. 알 수 없는 미래를 개척하고 밝혀 갈 제대로 된 선택에 올곧은 순리가 작용했으면 한다.
2. [서울신문][재미있는 원자력] 건강하게 쓸 수 있는 방사선
‘방사선’은 공포의 단어가 됐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국내 원전 비리부터 경주 지진, 지난해 말 개봉한 원전 사고를 주제로 한 국내 영화까지 공포를 가중시키는 요인들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 방사선은 우리 일상생활 가까이 존재하고 있다. 일반 암석, 지표면, 콘크리트 등에서 일정량의 방사선은 끊임없이 방출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자연 방사선의 세기가 미미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공포의 대상인 방사선이 최근에는 일상 편의 영역까지 들어오고 있다. 건강 기능성 식품 원료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식물에서 유래한 ‘플라보노이드’라는 물질이다. 화학적 합성 기술의 발달로 식물성 플라보노이드를 대량 합성하기도 하지만 소비자들은 화학적으로 합성된 물질보다는 식물로부터 추출한 천연물질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화학 기술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현재까지 화학적으로 합성이 어려운 천연물질들도 있다. ‘센티페드그라스’라고 불리는 잔디에 존재하는 메이신과 메이신에서 비롯된 유도체가 대표적이다. 메이신과 메이신 유도체는 당뇨 치료 효과는 물론 항암 효능 등이 있는 인간에게 매우 유용한 식물성 플라보노이드의 한 종류다. 그러나 그 구조가 복잡해 현재 화학적으로 합성이 불가능하다. 메이신 및 메이신 유도체는 식물 중에서도 오직 센티페드그라스와 옥수수수염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학적 합성이 어렵다면 식물성 플라보노이드의 추출 효율(수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방사선이다. 센티페드그라스에 방사선 처리를 하면 메이신의 함량이 2~4배 증가한다. 식물이 플라보노이드를 만드는 이유는 대부분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방사선 처리를 할 경우 식물 입장에서 방사선은 ‘외부로부터의 공격’으로 인지되기 때문에 플라보노이드의 생산이 평소보다 더 많아지게 되는데, 연구자들은 이런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물론 건강검진 후 엑스레이가 몸에 남지 않고 햇볕에 말린 빨래에 빛이 저장되지 않듯 식물에 방사선 처리를 한다고 해서 방사선이 남진 않는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인간에게 유익한 것이라도 안전을 무시할 수는 없다. 방사선 역시 영화 ‘판도라’처럼 안전을 무시하고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인간에게 커다란 재앙이 될 수 있다. 불을 발견한 인류가 이를 잘 활용해 문명을 일궈 왔듯 방사선의 안전한 사용을 위해 방사선 사용에 대한 제도를 공고히 하고 사용자의 안전의식 고취 방안을 꾸준히 고민한다면 원자력과 방사선은 우리에게 ‘이로운’ 물질이 될 것이다.
3. [서울신문][김주영의 구석구석 클래식] 봄에 듣는 브람스
교양이나 취미로 음악을 듣는 분들을 위해 강의를 하기 전 가끔 주최 측에서 부탁을 받을 때가 있다. “선생님! 주제는 자유롭게 정하셔도 좋은데, 가급적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의 이야기는 빼주세요. 너무 많이 나온 이야기래서요….” 로베르트 슈만과 그의 부인 클라라, 함부르크에서 온 젊은 음악가이자 슈만의 후계자였던 브람스, 이들의 음악과 사랑 이야기는 확실히 언제 들어도 매력적이다. 거기에 세 음악가의 예술적 영감에 넘치는 작품까지 어우러지면 한 편의 영화 이상으로 흥미로운 음악사의 한 장면이 완성된다.
세 사람이 빚어낸 특이한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은 역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평생을 가슴앓이했던 브람스가 아닐까 한다. 올해는 요하네스 브람스가 세상을 떠난 지 120년이 되는 해다. 브람스 같은 대가의 음악을 특별한 이슈에 따라 들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위대한 걸작이 모두 그렇듯 듣고 또 들어도 익숙한 작품 가운데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기에 2017년은 최적의 시기라고 생각된다.
클라라를 향한 동경에 가까운 짝사랑과 타고난 내성적 성격, 어딘가 우수 어린 멜로디와 고독한 분위기 때문에 브람스는 ‘가을의 음악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브람스의 음악이 마냥 쓸쓸하거나 슬프지만은 않으며 은근히 따사로운 햇살, 기분 좋게 살랑대는 바람의 계절 봄과 어울리는 작품도 많다.
먼저 그의 교향곡 2번 작품 73을 추천한다. 존경하던 베토벤의 교향곡과 맞먹는 작품을 남기겠다는 강한 의지로 43세라는 늦은 나이에 교향곡 1번을 발표해 큰 성공을 거둔 브람스는 거기에 응원을 받아 이듬해인 1877년 바로 두 번째 곡을 완성한다. 이 곡은 알프스산맥과 가까운 페르차하라는 휴양지에서 쓰여서인지 편안하고 목가적인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전곡을 감싸는 행복한 기분도 인상적이어서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과 비교해 ‘브람스의 전원 교향곡’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이보다 4년 후인 1881년 완성된 피아노 협주곡 2번 작품 83 역시 낙천적이면서 외향적인 분위기로 브람스의 곡 가운데 밝은 색채를 지닌 대표적 작품이다. 작품의 성격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은 그가 처음으로 경험한 이탈리아 여행과 거기서 받은 밝은 정서였다.
브람스의 협주곡들은 모두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대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나누며 교향곡을 연상시키는 오케스트라의 커다란 스케일이 특징인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세 악장으로 꾸며지는 보통의 협주곡과는 달리 네 악장 구성으로 긴 연주시간과 탁월한 기교가 요구되는 난곡이나, 소박한 민요 선율과 사색적인 분위기가 달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유명한 대학축전서곡 작품80은 작품이 발표된 이후 한 번도 그 인기가 식지 않은, 영원한 젊음의 고전이라고 하겠다. 브람스가 브레슬라우대의 명예 박사학위를 받는 일과 연관돼 만들어진 이 작품은 오페라 등과 상관없이 독립된 모습으로 만들어진 관현악곡으로, 약 10분의 연주시간 동안 시종 즐거움과 희망찬 활기가 넘친다. 독일인들에게 친숙한 행진곡, 민요와 학생찬가 등이 메들리 풍으로 엮이며 발전을 이루는 장대한 오케스트라의 음향이 멋지다.
많은 이들에게 친숙한 ‘헝가리 무곡집’ 역시 어느 계절에 들어도 좋은 음악이다. 브람스는 젊은 시절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와 함께 연주여행을 다닌 적이 있었는데, 당시의 영향으로 집시 민족들의 전통 멜로디와 리듬을 스물한 곡의 춤곡으로 정리해 발표했다.
이 작품은 이전부터 내려오던 집시들의 가락을 사용했기 때문에 브람스의 순수한 창작은 아니지만, 뛰어난 작곡기법을 통해 춤곡들을 정리해 놓은 브람스의 공로도 매우 중요하다. 원곡은 피아노 연탄(한 대의 피아노에 두 명이 앉아서 연주함)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후 여러 가지 편곡들이 나오며 더욱 유명해졌다.
4. [서울신문][황인숙의 해방촌에서] 꽃 피는 재래시장
옥상에 나가 남산을 바라보니 한 폭 파스텔화 같다. 한창 흐드러졌을 꽃을 인 벚나무들이 줄지어진 저 능선은 남산도서관에서 서울타워로 이어진다. 처음 그 길을 걸었던 때는 나도 젊었고 나무들도 젊었다. 가지 여렸던 벚나무들이 늠름한 골격으로 바뀐 30여년 세월. 나의 연례행사인 남산 벚꽃 나들이를 언제부터인가 간간 거르고 산다.
어젯밤에는 집을 나섰다가 어디선가 훅 끼쳐오는 향기에 가슴이 철렁했다. 이것은 라일락꽃 향기! 그렇다면 벚꽃이 벌써 다 피었다는 거네. 이럴 수는 없어. 벚꽃 아래를 거닐어 보지 않고 봄을 보낼 수는 없어. 그러나 줄줄이 약속과 할 일이 있다. 그래도 케이블카 하우스에서 국립극장으로 이어지는 저 건너편 골짜기는 벚꽃이 늦게 피고 늦게 지니 한 주일쯤은 말미가 있을 것도 같고. 바람은 왜 저리도 부는 걸까. 벚꽃 다 떨어지겠네.
남산도서관과 하얏트 호텔 사이의 남산 순환도로에 보성여고 쪽으로 내려가는 비탈길이 있다. 30m쯤의 짧은 그 길 한편에는 이런저런 점포들이 자주 상호가 바뀌며 여전히 조랑조랑 매달려 있는데, 그 건너편은 화단이다. 그 화단의 폭은 저기 어떻게 여인숙이랑 레코드가게랑 밥집 등이 들어 있었나 싶게 좁다. 상호가 아마 ‘멜로디 레코드’였지. 운영자인 젊은 부부는 가게에 딸린 방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림도 살았다.
문화적 감수성과 현실의 간극이 큰 듯했던 그들에게 호시절이 주어져서 그 간극을 대폭 줄였기를! 비탈을 내려가면 바로 해방촌 오거리다. 그 오거리 중 두 거리 사이에 신흥시장이 있다. 내가 해방촌에 산 세월이 30년 훌쩍 넘었는데, 맨 처음 둥지를 튼 곳이 신흥시장 안이었다. 한 층 열 평 남짓의 3, 4층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서 종으로 횡으로 섰고, 이층 높이로 지붕을 이어 전체를 덮었다. 일층은 가게들, 위층들은 살림집들이었다.
나는 한 신발가게 집 3층의 부엌 딸린 한 칸 방에서 8년을 살았다. 거기 사는 동안 거의 밥을 해 먹지 않은 것이, 집주인 며느님이 끼니마다 나를 챙겨주셨던 것이다. 내 또래인 그이는 외로움 많이 타고 정 많은 사람이었다. 가난하고 젊은 내가 그이와 그 가족을 만나 따뜻하고 안전하고, 그리고 자유롭게 8년 세월을 지낸 걸 생각하면 두고두고 고맙다.
그 시장 이름을 나는 오랫동안 해방촌시장으로 알고 있었다. 신흥시장이라고 제대로 안 게 몇 년 안 되는데, 이미 시장이 망가진 뒤다. 지물포도 신발가게도 이불가게도 문을 닫은 지 오래고, 어물전이며 채소가게며 과일가게도 하나하나 사라져 휑하기 짝이 없었다. 가게가 거의 빈 재래시장은 쓸쓸했다. 그런데 한두 해 전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시장으로 회생한 건 아니지만, 드물게 남은 옛날 시장의 구조와 형태가 젊은이들에게 ‘핫한’ 공간으로 소문나서 공방이나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땅값이 엄청나게 올랐다니, 남은 희망이었던 재개발도 무산돼서 실의에 찼던 건물주들, 특히 내 옛날 집주인을 위해서 잘된 일이다. 부동산으로 부를 쌓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지만, 그들 대개가 억척스레 살아오면서 그 작은 땅 하나 지킨 걸 아느니만큼 행운이 그들을 피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인적 없던 시장에 이제 젊은 사람들도 흔히 눈에 띈다. 사람뿐인가. 며칠 전에는 샛길을 통해 시장에 들어서 막 모퉁이를 도는데 어둠 속에서 한 동물의 실루엣이 어른거려 나는 흠칫했다. 그 역시 순간적으로 흠칫했으나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매대였던 낡은 판자때기 위에 흩뿌려진 뭔가를 열심히 먹을 따름이었다. 믿기지 않게도 그것은 나귀였다! 그 목덜미를 한번 쓸어보고 싶었지만 불쑥 만지면 싫어할 것이었다.
지그시 눈을 들여다보면서 “너를 한번 만져 봐도 괜찮겠니?” 양해를 구할 시간은 없었다. 맛있는 거라도 하나 주고 싶었는데 내 보따리에는 반추동물이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고양이 사료뿐이었다. 아, 물이라도 주고 올 걸 그랬네. 그나저나 웬 나귀가 혼자 거기 있을까. 걱정이 되고 궁금하던 차에 평상에 걸터앉은 청년을 만나 물어봤다. 다행히 그가 답을 알고 있었다. 시장에 책방을 냈다는 방송인 노홍철씨의 나귀라고 했다. 아, 예쁜 나귀, 또 보고 싶다.
5. [매일신문][매일춘추] 자연이 주는 선물
눈을 뜨니 커튼 사이로 알맞은 햇살이 방안 가득 들어와 있었다.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한동안 몸살 기운 때문에 아침이면 밤새 목구멍이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말라 내 미간을 찌푸리게 했기 때문이다.
어찌 된 게 매년 더위가 심해지듯 매년 감기도 독해지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감기가 독하게 느껴지는 걸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헛웃음을 칠 만큼 일주일간 나를 괴롭힌 그 독한 감기는 오늘 아침 비가 갠 맑은 하늘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창가로 가서 문을 활짝 열었다. 감기 탓에 맡을 수 없었던 봄 향기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는 봄바람이었다. 식욕도 돌아와 커피를 한잔하며 늦은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 구수한 된장찌개와 어머니가 보내주신 반찬들은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밥상이 되어 주었다. 적당히 부른 배는 내 의욕을 왕성하게 만들어 줬고 적당히 내 방과 집 주변 건물들을 비추던 햇살은 나를 집 밖으로 끌어내었다. 일주일 만의 외출이었다.
우선 가벼운 발걸음으로 느긋이 골목을 걸어 책방으로 향했다. 별거 아닌 외출인데도 봄이라 그런가? 설레었다. 무작위로 선곡된 음악도 오늘따라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나름 만족한 오후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서 컴퓨터 앞에 앉아 커피숍에서 읽다 만 책을 꺼내 들었다. 그때, 열어 둔 창으로 들어온 저녁 바람이 책장을 넘기는 내 손에 닿았다. 시선은 바람이 들어온 창밖으로 향했다. 어느 순간 창밖의 어둑해진 풍경은 낮의 들떠 있던 나의 설렘을 삼키고 없었다. 그 대신 밤의 쌀쌀하면서도 고독한 봄바람이 내 마음속에 조용하고도 쓸쓸한 기분이 되어 자리 잡았다. 낮의 설렘과 다른 감정이었다.
문득,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지 궁금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무언가 가슴 가득 수많은 감정이 오고 갔다. 그저 참 좋은 시간이었다. 어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평소보다 감성적이었다.
일주일간 내 몸의 감각들은 오로지 바이러스라는 감옥에 갇혀 아픔만을 느끼다 해방과 동시 밀려드는 오감에 감동했던 것일까? 그것만으로도 밀려드는 감정에 나의 행위들이 뜻있게 느껴지고 쓸쓸함마저 벅차게 느껴지게 했던 걸까? 잠시 책을 덮고 잔잔히 밀려드는 쌀쌀한 바람을 마주했다.
보고 듣고 숨 쉬고 느끼고 맛볼 수 있었던 감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큰일이었던 것이었다. 당연히 여긴 나의 오감이 오늘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 것이고 어느 하나 빠지지 않음을 감사하게 여기게 해준 날이었다. 오늘 밤은 익숙해지면 잊힐 오늘의 감동을 오래 만끽하고 싶어 늦은 시간 동안 책을 내려놓지 못할 것 같다.
주요신문사설
[동아일보]
1. 朴 구속 기소가 차기 대통령에 주는 메시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제 592억 원의 뇌물 수수와 직권 남용, 공무상 비밀 누설 등 18가지 범죄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자신이 임명한 검찰총장과 검사들에 의해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것이다. 검찰은 특검이 적용한 삼성의 433억 원 외에도 롯데에서 받았다가 돌려준 70억 원, SK그룹에 요구한 89억 원도 뇌물 혐의에 포함했다.
대한민국 최고위 공직자인 대통령이 공직범죄 중 죄질이 나쁜 뇌물수수 혐의로 피고인석에 서는 장면을 바라봐야 할 국민은 착잡하다. 박 전 대통령에게는 18가지나 되는 혐의가 적용됐지만, 불행한 사태의 근본 원인은 국리민복을 위해 사용하라고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최순실 같은 사인(私人)의 이익을 위해 썼다는 점이다.
대통령 주변에서 이를 감시하고 견제했어야 할 사람들은 한통속이 되거나 방조자 역할을 했다. 대선을 향해 뛰는 각 당 후보들은 지금은 남의 일 같을 것이다. 그러나 당선되는 후보는 전직 대통령이 형사피고인 신분이 된 오늘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을 구속 기소하면서 정작 국정농단을 감시할 자리에 있었음에도 묵인·방조·은폐 혐의를 받는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불구속 기소한 것은 검찰의 수치로 기록될 것이다. 우 전 수석은 대통령 측근 및 친인척 비리 감시를 위해 설치한 특별감찰관제도 무력화시켰다. 특임검사를 임명해 우 전 수석을 다시 수사하라는 여론을 무시하고, ‘봐주기 기소’를 강행한 것은 검찰 내 ‘우병우 사단’이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한 기도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문재인 안철수 등 차기 대선후보들은 모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 검찰 개혁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금 검찰은 차기 정권의 우병우 특검과 개혁의 칼날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차기 대통령도 청와대에 검사들을 파견 받아 민정수석실을 꾸리면서 검찰을 정권의 시녀로 쓰는 악습의 고리를 끊어야 할 것이다.
2. 한미동맹, 정권 따라 흔들리지 않는다는 상호신뢰 있어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17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회담을 갖고 북한을 향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결의를 시험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고 경고했다. 최근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보여준 트럼프 대통령의 무력 행동이 북한을 향한 메시지였음이 분명하며 북한도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미국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압박이다. 그는 비무장지대(DMZ)를 찾아서도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있다”며 미국의 대북정책이 인내에서 개입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한반도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는 상황에서 그의 방한은 시의적절했다. 2월 방한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공동발표는커녕 만찬도 하지 않고 떠난 것에 비해 펜스 부통령은 2박 3일 체류 동안 굳건한 한미동맹 의지를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2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3월 틸러슨 장관에 이어 이번엔 행정부 2인자를 서울로 보냈다. 짧은 기간에, 그것도 한국 정치 리더십이 공백인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펜스 부통령이 서울로 오는 전용기에서 백악관 외교고문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완료와 운용은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말한 것은 미묘한 파장을 일으킨다. 펜스 부통령은 어제 ‘사드 배치는 변함없이 추진할 것’이라며 “대선 결과가 어떻든 미국의 한국의 안전 안보에 대한 의지는 철갑처럼 확고하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럼에도 백악관 고문이란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꺼냈을 리는 없다는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 이후 ‘미중 빅딜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아무리 혈맹이라도 미국이 한국을 건너뛰는 ‘코리아 패싱’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동맹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태도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더라도 한미동맹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미국에 주어야 한다. 틸러슨 국무장관이 ‘일본은 동맹, 한국은 파트너’로 우리의 격을 낮춘 것을 말실수로만 치부할 일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반미면 어때’식 외교로 한미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것을 상기해야 한다. 누가 뭐래도 우리 안보의 근간은 한미동맹이다. 그러나 동맹의 우산에 숨어 자강을 소홀히 하는 것은 미국도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이데일리]
3. 시작된 대선, 유권자들이 두눈 부릅떠야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전이 드디어 시작됐다. 투표 전날인 내달 8일까지 22일 간에 걸친 공식 선거운동이다. 어제 첫날이 지나갔으니 이제 21일이 남은 셈이다. 남은 기간도 순식간에 지나가게 될 것이다. 후보들은 저마다 자신이 이 나라를 이끌어갈 적임자라고 주장하지만 결국 마지막 선택은 유권자들의 몫이다. 두 눈을 부릅뜨고 쭉정이와 알맹이를 가려내야 한다.
중앙선관위에 등록한 후보가 모두 15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는 자체에서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혼란상을 읽게 된다. 전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상황에서 후임자를 선출하는 선거라는 점부터가 그렇다. 탄핵과정에서 극심하게 부딪쳤던 ‘촛불’과 ‘태극기’ 민심의 괴리는 여전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위기 상황이다. 선거전 역시 최대 혼전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국방·안보의 위기다. 핵·미사일 개발에 집착하고 있는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로 한반도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무력충돌 위기에 휘말려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여차하면 강공책을 구사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에서도 북한 지도부는 도발 야욕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안보 문제를 원활히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을 다음 대통령으로 선택해야 한다.
경제 문제도 만만치 않다. 최근 지표상으로는 경제가 회복되는 과정임을 말해주고 있지만 체감 경기로는 아직 멀었다. 기업들은 여전히 신규 투자·고용을 꺼리고 있으며, 청년실업 문제도 쉽게 해결될 기미가 아니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일단 다행이지만 금리 인상에 따른 장기적인 파고에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중국의 사드보복 조치도 금방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를 구하겠다고 나선 후보들마다 인기에 영합하려는 포퓰리즘 공약에 골몰하고 있으니 걱정이다. 퍼주겠다는 정책으로는 나라를 거덜내기 십상이다. 포퓰리즘 약속으로 민심을 자극할 게 아니라 굳건한 믿음을 주는 리더십으로 민심을 얻어야 한다. 후보들마다 미래지향적인 리더십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안으로는 나라 살림을 키우고 밖으로는 우리의 터전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4. 정부는 국민연금에 눈독 들이지 말라
국민연금공단이 정부의 대우조선 채무 재조정안에 찬성하면서 연금기금 운용의 독립성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대우조선은 한고비를 넘기게 됐지만 정작 국민연금은 거센 후폭풍에 직면한 것이다. 정부 압박으로 회생 전망이 불확실한 기업에 국민 노후자금을 퍼주느냐는 비판 여론이 그것이다. 현 상황에서 손실을 최대한 줄이는 방안을 택했다고 하지만 일련의 과정에 정부 입김이 작용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국민연금 의사결정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찬성이 대표적이다. 특검 수사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중이다.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도 연금에 손실을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초 국민 노후자금의 손실을 우려한다며 반대했던 이번 결정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법정관리인 ‘P플랜’으로 가면 손실률이 50%에서 90%로 더 커질 수 있다는 현실론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사안이 아닌데도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한 고통분담이라는 명분으로 윽박지른 탓에 결국 손을 들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생활을 지탱할 마지막 보루다. 권력이나 정부가 필요할 때마다 맘대로 돌려쓰는 쌈짓돈이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국민연금을 틀어쥐고 있는 현행 구조 아래서는 언제든 이런 사태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유력 대선 후보가 “보육, 임대주택, 요양 분야 국공채를 발행하는 경우 국민연금이 적극 투자하도록 하겠다”는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뱉을 수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국민연금은 560조원의 막대한 기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운용은 이처럼 구시대적이다. 자칫 기금이 조기에 고갈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제대로 운용하려면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차제에 정부와 공단의 지휘·감독을 받는 기금운용본부를 독립시켜 기금 운용의 독립·투명·전문성을 확대해 정부와 정치권이 손톱만큼이라도 국민연금에 눈독 들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이나 보건복지부 장관, 금융위원장 등이 국민연금 운용에 간섭하려면 먼저 자기 재산을 걸고 연명으로 보증을 서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5. "트럼프를 시험하지 말라"는 美 부통령의 경고
한국을 방문 중인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17일 "지난 2주 동안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택한 우리의 행동에 의해 전 세계가 새로운 (트럼프) 대통령의 힘과 결의를 목격했다"며 "북은 우리 대통령의 결의를 시험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은 이날 황교안 총리와 회담 후 공동 회견에서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원한다"면서도 군사적 해결책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명백히 했다. 그는 "(20년간의)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펜스 부통령은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해 "한국의 방어 조치에 경제적 보복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중국은 방어 조치를 필요하게 만드는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만일 중국이 북한에 대처하지 못한다면 미국과 우리 동맹국들이 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도 상기시켰다.
펜스 부통령의 이날 회견은 미국의 정책 방향이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줬다. 북이 추가 도발을 하면 반드시 징벌적 조치가 따를 것이고, 중국이 북을 제어하지 못하면 미국이 직접 할 것이며, 중국의 사드 보복도 이런 차원에서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황교안 총리는 이날 회견에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한·미는) 북한의 추가 도발 시 (중국과의 협력을 토대로) 강력한 징벌 조치를 취해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중국의 대북 송유관 차단, 중국 정부의 대북 금융거래 단절, 북한인 노예 노동 금지와 같은 조치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이번만은 제재와 압박 수위를 높이는 듯하다가 적당히 물러서던 과거의 방식이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 북 정권이 핵·미사일과 정권 생존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야 한다. 중국이 나서지 않아 미국이 나서게 되는 일은 중국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일주일(4월 25일) 후면 북한군 창설 기념일이다. 북은 지금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대응 전략, 과거와 다른 중국에대한 대응 전략에 골몰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간 보기'와 같은 미사일 도발을 했다. 이제 6차 핵실험과 ICBM 발사 시험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면 "트럼프 대통령을 시험하지 말라"는 펜스 부통령의 경고를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한다.
이런 시점에 우리는 정치적 불확실성의 정점을 지나고 있다. 각 정당과 대선 후보들은 현 정세에 대한 국민의 경각심을 촉구하되 불필요하고 과도한 불안감이 아닌 국민적 결의가 모아질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주기를 당부한다.
6. '한국 피란민 선별한다'는 아베의 치졸한 언행
아베 일본 총리는 어제 중의원에서 한반도 유사시 일본으로 피란민이 유입할 경우에 대한 대책을 질문받고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사람에 해당하는지 스크린하는 방식의 대응을 상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 긴장을 부추기는 듯한 질문과 답변 모두가 수준 이하의 치졸한 행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일부 언론 매체는 마치 한반도에서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일본으로 철수했다가 슬그머니 돌아온 일본 대사는 국방장관 면담을 요청하는 엉뚱한 행동을 했다. 이 역시 일본인 피란 문제를 논의한다는 이유라고 알려졌다. 빈손으로 한국으로 귀환한 데 대한 일본 내 비난이 크자 일부러 이런 무례한 행동으로 만회하려는 것이란 얘기도 있다고 한다.
지금 한·일 간에는 위안부 합의에 대한 한국 내 반발과 소녀상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 한국 내에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로 나아가기보다는 그 상처를 덧나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일본이 한국에 피해를 주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일본은 '언제까지 반성해야 하느냐'고 하지만 아무리 반성해 보았자 아베와 같은 사람들이 이런 저급한 언행을 하면 소용이 없다. 아베의 말은 소녀상에 대한 감정적 화풀이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한국 국회에서 '일본에 대지진이 발생해 한국으로 난민이 유입할 경우'에 대한 대책을 묻는 질문에 한국 공직자가 '스크린하겠다'고 답하는 풍경을 상상해보라. 지금 일부 일본인 사이에 반한(反韓) 감정이 퍼져 있다고는 하지만 공직자들이 마치 옆 나라의 불행을 바라고 즐기는 듯한 언행으로 여기에 영합하려 한다면 양국 관계 정상화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서울신문]
7. ‘북 도발 시 징벌조치’ 확인한 황-펜스 공동발표
최근 주한 미군 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차기 정부로 연기될 수 있다는 미 외교 관계자의 발언이 주목을 받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의 방한에 동행한 백악관의 외교정책 고문의 발언이다.
그는 전용기에 탑승한 취재진에게 “사드 배치 문제는 한국이 5월 초 대통령을 뽑을 때까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며 차기 대통령의 결정으로 미뤄지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밝힌 것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무역과 북핵 문제를 주고받는 ‘빅딜’ 카드까지 꺼내 든 상황이라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어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방한 중인 펜스 부통령과 첫 회동을 하고 굳건한 한·미 동맹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사드의 조속한 배치와 운용 및 포괄적 대응능력 발전 의지도 밝혔다. 또 북한이 도발하면 강력한 징벌적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다만 미국과 중국이 북핵과 무역 문제를 주고받는 빅딜설이 제기된 상황에서 사드 배치를 놓고 양국이 무언가의 거래를 했을 것이란 추측도 있다. 펜스 부통령이 중국의 경제보복이 잘못됐다고 지적했지만 지난 6~7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는 거론조차 안 된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중국이 최근 북한 관광을 중단하는 등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중국이 북핵 문제를 우리와 협력하는데 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부르겠느냐”는 의미심장한 트윗 글을 남겼다. 미국이 중국에 명분과 실리를 주기 위해 사드 배치 문제를 한국의 차기 정부 몫으로 돌렸을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우리로선 북핵 해결을 위한 국제 공조가 사드 배치 문제 때문에 훼손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경제제재가 힘을 받기 시작하다가 지난해 7월 한·미 양국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의 거센 반발과 함께 국제 공조가 흐트러진 것도 사실이다. 중국은 사드 배치가 자신을 향한 미사일방어(MD)체계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면서 북·중 관계가 복원되는 조짐마저 보였다.
지난해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에도 북한은 사드를 둘러싼 한·중 간 갈등이 커지면서 중국의 대북 압박 강도가 수그러졌다. 북한의 유일한 후원국인 중국의 대북 제재 공조 이탈로 사실상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최대 현안이 북핵 불용이라는 측면에서 탄탄한 국제 공조를 통해 북한의 핵 개발 의지를 꺾는 것이 우선이다.
8. 대우조선, 국민연금 희생 안 되게 책임져야
법정관리의 갈림길에 섰던 대우조선해양에 숨통이 트인 것은 다행스럽다. 국민연금이 대우조선 최대 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채무조정안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어제 열린 첫날 사채권자 집회에는 사학연금과 우정사업본부, 농협, 중기중앙회, 수협 등의 기관투자자가 참여해 국민연금과 같은 찬성 의견을 냈다고 한다. 사채권자들이 내일 열릴 사채권자 집회에서 내년 만기도래금에 대한 채무조정에 동의하면 대우조선은 살아날 기회를 잡게 된다.
그러나 아직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대우조선의 정상화 여정은 여전히 험난하다. 내년 조선 시황이 회복되지 않거나 자구노력이 지금처럼 계속 지지부진하면 대우조선은 정리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음이 시장에서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내년 9월을 전후해 내년 수주 목표(54억 달러)의 절반 이상을 달성하지 못하면 또다시 유동성 위기에 빠지고, 그렇게 되면 ‘백약이 무효’라는 것을 정부와 대우조선도 잘 알고 있다. 대우조선이 수주전에 말 그대로 사활을 걸어야 하는 까닭이다.
대우조선의 자구노력은 기대치에 턱없이 못미친다. 지난해 자구계획 이행률은 29%에 불과했다. 현대중공업(56%)이나 삼성중공업(40%)에도 크게 못 미쳤다. 여론이 좋지 않자 직원 1000여명을 추가로 줄이고 임직원 급여 10%를 반납하겠다고 나선 것이 고작이다. 시늉만 낸 것이다.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안일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대우조선 부실이 산업은행의 소홀한 관리·감독과 대우조선의 부실 경영이 낳은 총제적 산물이라는 감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산업은행이 퇴직 임직원들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면서 관리 감독은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을 이제 하나하나 엄중히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대우조선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우리 국민의 ‘피 같은’ 국민연금의 희생이 컸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국민연금이 대우조선 회사채 3887억원 중 절반을 출자전환하고, 나머지를 상환 보장받는 조건으로 만기 연장하지 않았으면 대우조선은 법정관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이 드물다. 대우조선은 2180만명에 이르는 국민연금 가입자를 생각하며 ‘국민의 노후가 우리에게 달렸다’는 비상한 각오로 회생에 나서길 바란다.
[세계일보]
9. 교육현장 미세먼지 기준 제각각… 아이 건강 지킬 수 있겠나
‘봄철 불청객’ 미세먼지 대책을 놓고 학교 현장이 혼란스럽다고 한다. 교육부가 지난 2월 권고한 매뉴얼에 따르면 현재 주의보(151㎍/㎥ 이상 2시간 지속) 이상인 경우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의 야외 수업 금지를 검토토록 하고 있다. 그런데 서울교육청이 지난 10일 미세먼지 종합관리대책을 발표하면서 교육부 매뉴얼보다 한층 강화된 기준을 발표했다.
보통 단계에서도 50㎍/㎥ 이상이면 야외수업을 자제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인천 등 다른 지역의 학부모들이 해당 시도교육청에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건강이 걱정되니 서울과 같은 기준을 강화해 달라는 것이다.
미세먼지는 ‘침묵의 암살자’로 불리는 1급 발암물질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4년 미세먼지에 따른 조기 사망자는 700만명으로 흡연 조기 사망자(600만명)를 웃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40년 뒤 한국이 대기오염에 따른 조기 사망률 1위에 오를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미세먼지에 마스크 쓰고 수업한다’는 학부모들의 원성이 일자 야외 수업 허용 기준을 발표했다. 미세먼지가 50㎍/㎥ 이상이면 야외수업을 실내수업으로 대체하고 54만명에게 마스크를 쓰게 한다는 것이다. 교육부와 조율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조치였다. 처음부터 혼선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울시교육청만 탓할 수도 없다. 올봄에 미세먼지 공포가 고조되고 있지만 교육부는 시도교육청과 변변한 협의나 회의를 가진 적이 없다. 일방적으로 기준을 정해 내려 보냈을 뿐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교육행정 그대로였다. 시도교육청들은 교육부가 ‘야외수업 자제’를 정확히 판단해 통보해주지 않는 이상 혼란은 계속될 것이라고 교육부를 비난하고 있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미세먼지 대책을 놓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구태가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미세먼지 기준을 놓고 교육당국 간에 티격태격하는 행태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대선기간이라고 교육당국이 뒷짐을 지고 있다는 비난도 나온다. 이제부터라도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머리를 맞대고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줄이면서 교육현장의 현실을 고려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
[중앙일보]
10. 박근혜의 '592억 뇌물'…기업-권력 관계 달라져야
4월 17일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재판에 넘긴 날인 동시에 그의 후임을 뽑는 대선 선거운동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날이었다. 권력의 부침이 교차하는 묘한 뉘앙스를 남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기소(起訴)는 수사 결과에 대해 법원의 심판을 구하는 행위로 처벌의 가능성을 높게 본다는 뜻이다. 온 국민에게 ‘이게 나라냐’는 한탄과 분노, 배신감과 좌절감을 안긴 박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피고인 박근혜'의 전철을 밟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박 전 대통령의 범죄 사실 중 가장 눈에 띄는 혐의는 뇌물 부분이다. 검찰은 삼성의 433억원 외에 롯데가 K스포츠재단에 추가로 낸 70억원, SK에 추가로 지원하라고 요구한 89억원 등 모두 592억원을 뇌물에 포함시켰다. 실제로 오간 돈은 물론이고 약속이나 요구에도 뇌물죄를 적용한 것이다. 앞으로 이권을 둘러싼 대기업과 권력의 물밑 거래를 차단하려면 미리 강력한 주문으로 경각심을 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이제 대기업들도 권력만을 탓할 게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과감하게 바로잡고, 권력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박 전 대통령 기소를 끝으로 ‘국정 농단 수사’는 일단락됐다. 그 실체가 어느 정도 수면 위로 드러났고, 농단 세력들을 단죄하는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부실 수사는 면죄부만 줬다는 비판과 함께 검찰 수사의 오점으로 두고두고 남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부패 혐의로 기소된 세 번째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남겼다. 공을 넘겨받은 법원은 기소 내용뿐 아니라 세월호 7시간의 행적 등 온갖 의혹과 국민의 궁금증을 풀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재판에 임해야 할 것이다. 박 전 대통령도 의혹과 진실을 밝히는 역사적 재판이 되도록 자발적으로 나서 치열한 공방을 벌여주길 기대한다.
주요신문칼럼
1. [중앙일보][삶의 향기] 로즈힙, 장미의 큰 선택
손대기 애처롭다. 간밤 봄비가 거세었는데 내 작업실 뒷마당에 어린 장미의 몽우리들이 가지 끝에 돋았다. 새로운 계절에 거리낌 없이 피어나고 세상에 도도하게 제 모양을 뽐낼 준비를 하는 중이다. ‘메릴린 먼로 로즈’-화단에 꽂힌 푯말이 그 장미의 품종을 알려준다. 화려하게 살다가 젊은 날에 세상을 떠난 여배우의 이름이다. 그녀는 장미의 한 종류로 남아 영영 잊히지 않는 이름으로 이 뜰에서 자란다 싶다. 곧 화창한 날이면 골목골목마다, 아파트 울타리마다 장미 향으로 온 도시가 진동할 거다.
화가인 나에게 정치는 온통 색깔이었다. 대선이나 총선 때마다 황색 돌풍, 녹색 혁명, 청명한 파랑과 뜨거운 빨강의 대비가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선 특정한 색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한때 4월 대선 가능성에 맞춰 ‘벚꽃 대선’이라는 말이 나왔다. 지금은 오로지 5월 9일의 대선 날짜를 상징하는 ‘장미 대선’이란 단어가 온 사방을 도배하고 있다. 다양한 빛깔의 장미들이 다투어 피어오르는 모습이다.
미술에서도 장미는 중요한 소재다. 해바라기의 화가로 알려진 고흐는 알고 보면 장미의 화가이기도 하다. 고흐가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낸 프랑스의 프로방스는 장미의 고장이다. 그가 남긴 해바라기의 그림 수만큼 장미도 많이 그렸다. 그의 해바라기 그림의 열정적 붓 자국은 꿈틀대는 태양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반면에 고흐는 장미 앞에서 자신의 들끓는 개성과 기질을 누그러뜨리고 꽃이라는 대상을 더 존중하는 듯하다. 이처럼 장미는 천재의 광기마저 굴복시키는 마력의 꽃이다.
어느 때, 어느 지역에서든 장미들은 여자를 불러들이고 남자를 불러들인다. 나비며 벌 그리고 온갖 벌레를 모은다. 그들은 탐스러운 꽃잎을 따기 위해, 향을 좇아서, 달콤한 꿀을 얻기 위해, 그들 나름의 이해관계로 장미에게 간다. 고대 로마의 귀부인들은 화폐로 쓰기 위해 그 꽃잎을 땄고 클레오파트라는 그의 삶 사분의 일을 장미 속에 파묻혀 보냈다고 한다.
장미는 정치의 꽃이기도 하다. 1908년 3월 여성 섬유노동자 1만5000명이 뉴욕에 모여 “빵을 달라, 장미를 달라”고 외쳤다. 세계 여성의 날이 시작되는 사건이다. 빵은 생존권을 그리고 장미는 참정권을 의미한다. 여기서 장미는 헌사와 대접의 상징으로 쓰였다. 장미를 받는 것은 존중과 귀하다는 인정이다. 그 노동자들은 장미를 받는 것으로 그들 스스로 세상의 일을 선택할 자격을 요구했다.
사람들이 장미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다. 장미는 꽃만 있는 게 아니다. 찬바람이 불고 모여들었던 열망들이 사라진 자리에 장미는 한 알의 열매를 맺는다. 이 장미의 열매를 “로즈힙(rose hip)”이라고 한다. 장미의 가장 큰 선택은 로즈힙이다. 이 열매를 맺기 위해 장미는 100여 일 이상 화려한 꽃잎들 속에 몰래 씨방을 숨기고 부풀린다. 물결치는 풍성한 치마 속에 숨겨진 엉덩이 같아서 그 이름이 로즈힙인가 보다. 장미는 화려한 날 그를 찾아왔던 열망들을 선택하지 않는다.
로즈힙에는 온갖 영양소가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여인들은 로즈힙을 사랑했다. 영국의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비가 세월을 역행하는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로즈힙 오일 덕분이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영국군에게 비타민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로즈힙이 지급됐다고 한다. 젊음과 건강을 위하는 소수의 사람들 말고는 장미의 로즈힙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장미의 큰 선택은 그 꽃을 보고 달려드는 많은 열망에도, 그렇다고 그 열매를 찾는 소수의 사람에게도 있지 않다. 장미의 가장 큰 선택은 끊임없이 생명을 영속시키는 열매를 맺고 그 속의 씨앗을 땅에 떨구는 일이다.
내 작업실 마당에서 본 먼로 로즈의 여린 꽃봉오리가 활짝 필 때 우리는 우리대로 큰 선택을 하게 된다. 바로 장미 대선이다. 형형색색의 장미들이 각기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무수한 기대와 열망들이 그들에게 이끌릴 것이다. 온갖 요란한 캠페인이 벌어질 것이고, 현란한 말들과 장밋빛 약속들이 우리의 신념을 부를 것이다. 알 수 없는 미래를 개척하고 밝혀 갈 제대로 된 선택에 올곧은 순리가 작용했으면 한다.
2. [서울신문][재미있는 원자력] 건강하게 쓸 수 있는 방사선
‘방사선’은 공포의 단어가 됐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국내 원전 비리부터 경주 지진, 지난해 말 개봉한 원전 사고를 주제로 한 국내 영화까지 공포를 가중시키는 요인들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 방사선은 우리 일상생활 가까이 존재하고 있다. 일반 암석, 지표면, 콘크리트 등에서 일정량의 방사선은 끊임없이 방출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자연 방사선의 세기가 미미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공포의 대상인 방사선이 최근에는 일상 편의 영역까지 들어오고 있다. 건강 기능성 식품 원료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식물에서 유래한 ‘플라보노이드’라는 물질이다. 화학적 합성 기술의 발달로 식물성 플라보노이드를 대량 합성하기도 하지만 소비자들은 화학적으로 합성된 물질보다는 식물로부터 추출한 천연물질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화학 기술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현재까지 화학적으로 합성이 어려운 천연물질들도 있다. ‘센티페드그라스’라고 불리는 잔디에 존재하는 메이신과 메이신에서 비롯된 유도체가 대표적이다. 메이신과 메이신 유도체는 당뇨 치료 효과는 물론 항암 효능 등이 있는 인간에게 매우 유용한 식물성 플라보노이드의 한 종류다. 그러나 그 구조가 복잡해 현재 화학적으로 합성이 불가능하다. 메이신 및 메이신 유도체는 식물 중에서도 오직 센티페드그라스와 옥수수수염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학적 합성이 어렵다면 식물성 플라보노이드의 추출 효율(수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방사선이다. 센티페드그라스에 방사선 처리를 하면 메이신의 함량이 2~4배 증가한다. 식물이 플라보노이드를 만드는 이유는 대부분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방사선 처리를 할 경우 식물 입장에서 방사선은 ‘외부로부터의 공격’으로 인지되기 때문에 플라보노이드의 생산이 평소보다 더 많아지게 되는데, 연구자들은 이런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물론 건강검진 후 엑스레이가 몸에 남지 않고 햇볕에 말린 빨래에 빛이 저장되지 않듯 식물에 방사선 처리를 한다고 해서 방사선이 남진 않는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인간에게 유익한 것이라도 안전을 무시할 수는 없다. 방사선 역시 영화 ‘판도라’처럼 안전을 무시하고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인간에게 커다란 재앙이 될 수 있다. 불을 발견한 인류가 이를 잘 활용해 문명을 일궈 왔듯 방사선의 안전한 사용을 위해 방사선 사용에 대한 제도를 공고히 하고 사용자의 안전의식 고취 방안을 꾸준히 고민한다면 원자력과 방사선은 우리에게 ‘이로운’ 물질이 될 것이다.
3. [서울신문][김주영의 구석구석 클래식] 봄에 듣는 브람스
교양이나 취미로 음악을 듣는 분들을 위해 강의를 하기 전 가끔 주최 측에서 부탁을 받을 때가 있다. “선생님! 주제는 자유롭게 정하셔도 좋은데, 가급적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의 이야기는 빼주세요. 너무 많이 나온 이야기래서요….” 로베르트 슈만과 그의 부인 클라라, 함부르크에서 온 젊은 음악가이자 슈만의 후계자였던 브람스, 이들의 음악과 사랑 이야기는 확실히 언제 들어도 매력적이다. 거기에 세 음악가의 예술적 영감에 넘치는 작품까지 어우러지면 한 편의 영화 이상으로 흥미로운 음악사의 한 장면이 완성된다.
세 사람이 빚어낸 특이한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은 역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평생을 가슴앓이했던 브람스가 아닐까 한다. 올해는 요하네스 브람스가 세상을 떠난 지 120년이 되는 해다. 브람스 같은 대가의 음악을 특별한 이슈에 따라 들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위대한 걸작이 모두 그렇듯 듣고 또 들어도 익숙한 작품 가운데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기에 2017년은 최적의 시기라고 생각된다.
클라라를 향한 동경에 가까운 짝사랑과 타고난 내성적 성격, 어딘가 우수 어린 멜로디와 고독한 분위기 때문에 브람스는 ‘가을의 음악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브람스의 음악이 마냥 쓸쓸하거나 슬프지만은 않으며 은근히 따사로운 햇살, 기분 좋게 살랑대는 바람의 계절 봄과 어울리는 작품도 많다.
먼저 그의 교향곡 2번 작품 73을 추천한다. 존경하던 베토벤의 교향곡과 맞먹는 작품을 남기겠다는 강한 의지로 43세라는 늦은 나이에 교향곡 1번을 발표해 큰 성공을 거둔 브람스는 거기에 응원을 받아 이듬해인 1877년 바로 두 번째 곡을 완성한다. 이 곡은 알프스산맥과 가까운 페르차하라는 휴양지에서 쓰여서인지 편안하고 목가적인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전곡을 감싸는 행복한 기분도 인상적이어서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과 비교해 ‘브람스의 전원 교향곡’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이보다 4년 후인 1881년 완성된 피아노 협주곡 2번 작품 83 역시 낙천적이면서 외향적인 분위기로 브람스의 곡 가운데 밝은 색채를 지닌 대표적 작품이다. 작품의 성격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은 그가 처음으로 경험한 이탈리아 여행과 거기서 받은 밝은 정서였다.
브람스의 협주곡들은 모두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대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나누며 교향곡을 연상시키는 오케스트라의 커다란 스케일이 특징인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세 악장으로 꾸며지는 보통의 협주곡과는 달리 네 악장 구성으로 긴 연주시간과 탁월한 기교가 요구되는 난곡이나, 소박한 민요 선율과 사색적인 분위기가 달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유명한 대학축전서곡 작품80은 작품이 발표된 이후 한 번도 그 인기가 식지 않은, 영원한 젊음의 고전이라고 하겠다. 브람스가 브레슬라우대의 명예 박사학위를 받는 일과 연관돼 만들어진 이 작품은 오페라 등과 상관없이 독립된 모습으로 만들어진 관현악곡으로, 약 10분의 연주시간 동안 시종 즐거움과 희망찬 활기가 넘친다. 독일인들에게 친숙한 행진곡, 민요와 학생찬가 등이 메들리 풍으로 엮이며 발전을 이루는 장대한 오케스트라의 음향이 멋지다.
많은 이들에게 친숙한 ‘헝가리 무곡집’ 역시 어느 계절에 들어도 좋은 음악이다. 브람스는 젊은 시절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와 함께 연주여행을 다닌 적이 있었는데, 당시의 영향으로 집시 민족들의 전통 멜로디와 리듬을 스물한 곡의 춤곡으로 정리해 발표했다.
이 작품은 이전부터 내려오던 집시들의 가락을 사용했기 때문에 브람스의 순수한 창작은 아니지만, 뛰어난 작곡기법을 통해 춤곡들을 정리해 놓은 브람스의 공로도 매우 중요하다. 원곡은 피아노 연탄(한 대의 피아노에 두 명이 앉아서 연주함)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후 여러 가지 편곡들이 나오며 더욱 유명해졌다.
4. [서울신문][황인숙의 해방촌에서] 꽃 피는 재래시장
옥상에 나가 남산을 바라보니 한 폭 파스텔화 같다. 한창 흐드러졌을 꽃을 인 벚나무들이 줄지어진 저 능선은 남산도서관에서 서울타워로 이어진다. 처음 그 길을 걸었던 때는 나도 젊었고 나무들도 젊었다. 가지 여렸던 벚나무들이 늠름한 골격으로 바뀐 30여년 세월. 나의 연례행사인 남산 벚꽃 나들이를 언제부터인가 간간 거르고 산다.
어젯밤에는 집을 나섰다가 어디선가 훅 끼쳐오는 향기에 가슴이 철렁했다. 이것은 라일락꽃 향기! 그렇다면 벚꽃이 벌써 다 피었다는 거네. 이럴 수는 없어. 벚꽃 아래를 거닐어 보지 않고 봄을 보낼 수는 없어. 그러나 줄줄이 약속과 할 일이 있다. 그래도 케이블카 하우스에서 국립극장으로 이어지는 저 건너편 골짜기는 벚꽃이 늦게 피고 늦게 지니 한 주일쯤은 말미가 있을 것도 같고. 바람은 왜 저리도 부는 걸까. 벚꽃 다 떨어지겠네.
남산도서관과 하얏트 호텔 사이의 남산 순환도로에 보성여고 쪽으로 내려가는 비탈길이 있다. 30m쯤의 짧은 그 길 한편에는 이런저런 점포들이 자주 상호가 바뀌며 여전히 조랑조랑 매달려 있는데, 그 건너편은 화단이다. 그 화단의 폭은 저기 어떻게 여인숙이랑 레코드가게랑 밥집 등이 들어 있었나 싶게 좁다. 상호가 아마 ‘멜로디 레코드’였지. 운영자인 젊은 부부는 가게에 딸린 방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림도 살았다.
문화적 감수성과 현실의 간극이 큰 듯했던 그들에게 호시절이 주어져서 그 간극을 대폭 줄였기를! 비탈을 내려가면 바로 해방촌 오거리다. 그 오거리 중 두 거리 사이에 신흥시장이 있다. 내가 해방촌에 산 세월이 30년 훌쩍 넘었는데, 맨 처음 둥지를 튼 곳이 신흥시장 안이었다. 한 층 열 평 남짓의 3, 4층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서 종으로 횡으로 섰고, 이층 높이로 지붕을 이어 전체를 덮었다. 일층은 가게들, 위층들은 살림집들이었다.
나는 한 신발가게 집 3층의 부엌 딸린 한 칸 방에서 8년을 살았다. 거기 사는 동안 거의 밥을 해 먹지 않은 것이, 집주인 며느님이 끼니마다 나를 챙겨주셨던 것이다. 내 또래인 그이는 외로움 많이 타고 정 많은 사람이었다. 가난하고 젊은 내가 그이와 그 가족을 만나 따뜻하고 안전하고, 그리고 자유롭게 8년 세월을 지낸 걸 생각하면 두고두고 고맙다.
그 시장 이름을 나는 오랫동안 해방촌시장으로 알고 있었다. 신흥시장이라고 제대로 안 게 몇 년 안 되는데, 이미 시장이 망가진 뒤다. 지물포도 신발가게도 이불가게도 문을 닫은 지 오래고, 어물전이며 채소가게며 과일가게도 하나하나 사라져 휑하기 짝이 없었다. 가게가 거의 빈 재래시장은 쓸쓸했다. 그런데 한두 해 전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시장으로 회생한 건 아니지만, 드물게 남은 옛날 시장의 구조와 형태가 젊은이들에게 ‘핫한’ 공간으로 소문나서 공방이나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땅값이 엄청나게 올랐다니, 남은 희망이었던 재개발도 무산돼서 실의에 찼던 건물주들, 특히 내 옛날 집주인을 위해서 잘된 일이다. 부동산으로 부를 쌓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지만, 그들 대개가 억척스레 살아오면서 그 작은 땅 하나 지킨 걸 아느니만큼 행운이 그들을 피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인적 없던 시장에 이제 젊은 사람들도 흔히 눈에 띈다. 사람뿐인가. 며칠 전에는 샛길을 통해 시장에 들어서 막 모퉁이를 도는데 어둠 속에서 한 동물의 실루엣이 어른거려 나는 흠칫했다. 그 역시 순간적으로 흠칫했으나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매대였던 낡은 판자때기 위에 흩뿌려진 뭔가를 열심히 먹을 따름이었다. 믿기지 않게도 그것은 나귀였다! 그 목덜미를 한번 쓸어보고 싶었지만 불쑥 만지면 싫어할 것이었다.
지그시 눈을 들여다보면서 “너를 한번 만져 봐도 괜찮겠니?” 양해를 구할 시간은 없었다. 맛있는 거라도 하나 주고 싶었는데 내 보따리에는 반추동물이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고양이 사료뿐이었다. 아, 물이라도 주고 올 걸 그랬네. 그나저나 웬 나귀가 혼자 거기 있을까. 걱정이 되고 궁금하던 차에 평상에 걸터앉은 청년을 만나 물어봤다. 다행히 그가 답을 알고 있었다. 시장에 책방을 냈다는 방송인 노홍철씨의 나귀라고 했다. 아, 예쁜 나귀, 또 보고 싶다.
5. [매일신문][매일춘추] 자연이 주는 선물
눈을 뜨니 커튼 사이로 알맞은 햇살이 방안 가득 들어와 있었다.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한동안 몸살 기운 때문에 아침이면 밤새 목구멍이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말라 내 미간을 찌푸리게 했기 때문이다.
어찌 된 게 매년 더위가 심해지듯 매년 감기도 독해지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감기가 독하게 느껴지는 걸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헛웃음을 칠 만큼 일주일간 나를 괴롭힌 그 독한 감기는 오늘 아침 비가 갠 맑은 하늘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창가로 가서 문을 활짝 열었다. 감기 탓에 맡을 수 없었던 봄 향기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는 봄바람이었다. 식욕도 돌아와 커피를 한잔하며 늦은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 구수한 된장찌개와 어머니가 보내주신 반찬들은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밥상이 되어 주었다. 적당히 부른 배는 내 의욕을 왕성하게 만들어 줬고 적당히 내 방과 집 주변 건물들을 비추던 햇살은 나를 집 밖으로 끌어내었다. 일주일 만의 외출이었다.
우선 가벼운 발걸음으로 느긋이 골목을 걸어 책방으로 향했다. 별거 아닌 외출인데도 봄이라 그런가? 설레었다. 무작위로 선곡된 음악도 오늘따라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나름 만족한 오후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서 컴퓨터 앞에 앉아 커피숍에서 읽다 만 책을 꺼내 들었다. 그때, 열어 둔 창으로 들어온 저녁 바람이 책장을 넘기는 내 손에 닿았다. 시선은 바람이 들어온 창밖으로 향했다. 어느 순간 창밖의 어둑해진 풍경은 낮의 들떠 있던 나의 설렘을 삼키고 없었다. 그 대신 밤의 쌀쌀하면서도 고독한 봄바람이 내 마음속에 조용하고도 쓸쓸한 기분이 되어 자리 잡았다. 낮의 설렘과 다른 감정이었다.
문득,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지 궁금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무언가 가슴 가득 수많은 감정이 오고 갔다. 그저 참 좋은 시간이었다. 어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평소보다 감성적이었다.
일주일간 내 몸의 감각들은 오로지 바이러스라는 감옥에 갇혀 아픔만을 느끼다 해방과 동시 밀려드는 오감에 감동했던 것일까? 그것만으로도 밀려드는 감정에 나의 행위들이 뜻있게 느껴지고 쓸쓸함마저 벅차게 느껴지게 했던 걸까? 잠시 책을 덮고 잔잔히 밀려드는 쌀쌀한 바람을 마주했다.
보고 듣고 숨 쉬고 느끼고 맛볼 수 있었던 감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큰일이었던 것이었다. 당연히 여긴 나의 오감이 오늘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 것이고 어느 하나 빠지지 않음을 감사하게 여기게 해준 날이었다. 오늘 밤은 익숙해지면 잊힐 오늘의 감동을 오래 만끽하고 싶어 늦은 시간 동안 책을 내려놓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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