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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주요 이슈

 

■ 경기도 지방정부 연정

■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 : 해고 조건 완화 검토

■ 경비노동자 대량해고 위험과 최저임금제

■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사건

■ 여야 누리과정 예산 국고 지원 합의

■ 박근혜 대통령의 규제 개혁 발언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경기도 지방정부 연정

 

[한국일보 사설-20141126수] 지방정부 發 상생·협치 정치실험을 주목한다

 

지방정부 차원에서 권한과 책임 분산을 통한 상생(相生)ㆍ협치(協治)의 정치가 구체화하고 있다. 일찍이 우리 정치에서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정치실험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 집권여당 또는 제1야당 소속 단체장들의 이런 시도는 차기 대선주자로서의 이미지 고양과 치적 쌓기라는 측면도 있어 부작용이 우려되기도 한다. 하지만 승자의 권력독점과 전횡, 상대 측의 무조건 반대투쟁이 일상화한 기존 정치풍토를 떠나 권력공유를 통해 생산적인 상생정치를 추구하는 실험이라는 점에서 기존 정치에 염증을 느껴온 국민들의 기대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가장 앞서나가는 것은 경기도의 연정(聯政) 실험이다. 새누리당 소속 남 지사는 조만간 인사청문 절차가 정리되는 대로 연정파트너인 사회통합부지사에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기우 전 국회의원을 임명할 예정이다. 경기도의회는 어제 새정치민주연합이 추천한 이 전 의원을 사회통합부지사로 선출했다. 사회통합부지사는 도청 보건복지국과 환경국, 여성가족국을 실질적으로 관할하고 경기복지재단 등 6개 산하기관장의 추천권을 행사한다. 결코 작지 않은 권한이다. 임기도 보장되며 연임도 가능하다. 남 지사는 “국민들이 원하는 싸우지 않는 정치, 권력분산의 정치가 경기도에서 시작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원 제주지사가 추진 중인 협치는 야당인사가 아니라 민간인을 참여시킨다는 점에서 경기도의 연정과는 구별된다. 관이 일방적으로 수행하던 도정에 민간의 아이디어를 접목시켜 제주도의 발전동력으로 삼겠다는 게 원 지사의 생각이다. 민간에 권한과 책임을 나눠준다는 점에서 기존 민간자문 제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박 서울시장이 24일 새누리당 서울시당위원장인 나경원 의원을 비롯 새누리당 소속 지역당협위원장들과 만나 정책협의를 한 것도 새로운 시도다. 3년 전 서울시장보궐선거에서 격돌했던 박 시장과 나 의원은 내년 예산 확보 등 서울시 현안 해결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서울시와 새누리당 서울시당과의 정책협의 정례화에도 의견을 같이했다. 여소야대 시의회 구도 속에 무상급식 문제를 둘러싸고 주민투표 소동까지 벌였던 과거와는 판이한 모습이어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차기 대선 유력주자들이 주도하는 지방정부 발 새로운 정치실험이 꼭 성공한다고는 속단하기는 어렵다. 현실 속 복잡한 이해관계와 갈등을 가볍게 보고 섣부른 성과에 집착하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성을 갖고 인내와 지혜를 발휘한다면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이들의 신선한 정치실험이 승자독식,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낡고 소모적인 정치를 바꾸는 정치혁신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1041126수] 경기도 연정, ‘상생 정치’의 출발점 되길

 

새누리당 출신의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추진해온 야당과의 ‘연합정치’(연정)가 24일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이기우 전 국회의원을 사회통합부지사로 추천함으로써 본격화했다. 야당이 맡은 사회통합부지사는 명목상의 자리가 아니라 경기도 예산의 약 4분의 1을 담당하는 복지·환경·여성가족 분야를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자리라고 한다. 중앙정부에서든 지방정부에서든 여야가 권력을 공유하면서 함께 정치를 해나간 사례를 찾기 힘들다는 점에서 경기도의 ‘연정 실험’을 주의깊게 지켜보지 않을 수 없다.

 

단 한 표만 이겨도 권력을 100% 독점하는 대통령제 아래서 연합정치는 정도가 아니며 오히려 책임정치를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은 나름의 일리가 있다. 또 거대 정당 간 연정으로 소수 정당들의 목소리는 오히려 배제될 것이란 우려에도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럼에도 경기도의 연정이 주목되는 건 타협은 실종되고 갈등만 증폭되는 지금의 정치상황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 중간선거에서도 나타났듯이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분열과 정치적 양극화는 대통령제의 필연적 속성처럼 보일 정도로 심각해졌다. 이걸 뛰어넘지 않고서는 교육이든 보육이든 고령화든 사회적 합의가 중요한 핵심 현안들을 해결해낼 수 없다.

 

그렇기에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대선에서 ‘100% 대한민국’을 국민에게 약속했을 것이다. 그러나 집권 이후 현실은 정반대다. 사회 전체의 분열과 갈등은 심해졌고, 여야 정당뿐 아니라 중앙과 지방, 청와대와 국회의 불통도 악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비록 지방정부지만 서로 다른 정치세력이 타협과 협력을 통해 도정을 함께 꾸려나가는 시도를 하는 건 평가할 만하다. 경기도에서 연정이 순항하면 다른 시·도 또는 시·군·구로 비슷한 시도가 확산될 수 있다. 이미 제주도에선 원희룡 지사가 ‘협치’를 내세우고 있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새누리당 서울시당과 정책 협의를 시작했다.

 

지방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형태의 협치 경험을 쌓는 건, 중앙정치에서 타협을 이루고 갈등을 조정해내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흔히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고 말하지만,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요즘의 사회정치 현안들을 풀어내려면 과거와 같은 독단적 결정과 밀어붙이기식 추진만으론 불가능하다. 대통령 혼자 모든 걸 할 수 없고, 도지사 혼자서 도정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도 힘들다. 정치적 소통과 타협을 제도화할 수 있는 장치로 경기도의 연정이 기능하기를 기대한다.

 

 

[서울신문 사설-20141126수] 지방의 협치, 중앙의 상생정치로 확산돼야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추진해 온 야당과의 연합정치(聯政)가 첫발을 디뎠다. 경기도의회 새정치연합이 우여곡절 끝에 그제 야당 몫 사회통합부지사 후보로 이기우 전 국회의원을 추천했다. 시도지사가 부지사 자리를 야당에 내주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승자독식의 선거 제도로 인해 극심한 대립과 갈등이 일상화된 우리 정치에서 이번의 협치(協治) 정치는 우리 정치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다.

 

더욱이 경기도 사회통합부지사의 실제 권한은 막강하다고 한다. 사회통합부지사는 3개국(보건복지·환경·여성가족)과 대외협력담당관에 대한 인사권 및 예산편성권을 쥐고 있다. 이 외에도 경기복지재단·경기의료원 등 6개 공공기관장에 대한 인사추천권도 있다. 전체 도청 공무원 수의 10%를 관할하지만 예산으로 따지면 연간 4조 2300억원으로 경기도 전체 예산의 4분의1을 차지하고 있다. 복지 분야를 실질적으로 야당에 떼어 준 것이나 다름없어 명실상부한 연정이다. 이런 움직임은 다른 지자체에서 확산하고 있다. 지난 6월 당선과 함께 연정을 표방한 원희룡 제주지사도 제주시장 임명을 놓고 도 의회에서 발목이 잡혀 있지만 조만간 경기도에 이어 협치 정치에 합류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정은 독일처럼 내각책임제 정부 형태에서 자연스러운 제도로 우리나라에서는 연정을 시행하기에는 제도적으로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적인 진영 논리를 앞세워 극한 대결로 치닫는 우리 정치문화에서 대화와 타협의 새로운 정치발전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승자로서의 특권을 양보하면서 상대방과 상생의 정치를 펼치겠다는 의지에 많은 국민이 박수를 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기도의 연정 실험은 시작에 불과하다. 좋은 선례가 되려면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무엇보다 이번 연정이 성공하려면 남경필·이기우 콤비가 얼마나 자신의 정파와 거리를 두고 독립적으로 행정을 하느냐에 달렸다. 학연과 지연으로 얽힌 청탁에 선을 긋고 친노와 친박과 같은 패거리 논리에도 갇히면 안 된다. 지방의회는 물론 중앙정치권도 진정으로 필요한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벌써 ‘대선용 행보’니, ‘행정의 정치화’니 하며 의원들의 반발도 적지 않다. 공연한 트집만 잡아선 정치 발전은 요원할 뿐이다. 협치를 통한 상생의 정치는 국민의 절절한 요구다. 허구한 날 당리당략에 기대어 대립과 반목을 일삼는 여의도 중앙정치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경기도발(發) 통합과 상생의 바람이 2016년 4월 총선에서 폭풍으로 변해 여의도 정가를 휩쓸어야 정신을 차릴 것인지를 묻고 싶다.

 

 

■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 : 해고 조건 완화 검토

 

[한국일보 사설-20141126수] 정규직 줄여 비정규직 처우 개선하겠다는 정부

 

정부가 내달 내놓을 비정규직 종합대책과 관련해 기업의 부담을 덜기 위해 정규직을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혀 논란이다. 발단은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이 그제 기자간담회에서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고용유연성의 균형’ 방안으로 “해고의 절차적 요건 합리화”를 언급한 것이다. “노사정위원회 합의가 필요하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정부 방침이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보도되면서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파문이 일자 기재부는 “사실과 다르다. 관계부처와 협의한 바도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해명자료에서도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정규직 보호 합리화의 균형’을 거듭 강조한 것이나 기재부의 그간 행보로 볼 때 ‘와전 해프닝’이 아님은 분명하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정규직 과보호가 심한 상태에서 정년이 60세까지 늘어났는데 어떤 기업이 정규직을 뽑으려 하겠냐”며 고용유연성 확대 필요성을 수 차례 밝힌 바 있다.

 

비정규직 보호대책은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올 8월 기준 비정규직 노동자는 607만여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32.4%에 달한다. 임금은 정규직 대비 56%, 국민연금ㆍ건강보험 가입률도 30~40%대에 그친다. 더 심각한 것은 비정규직으로 몇 년을 일해도 정규직이 되는 경우는 10명 중 1~2명에 불과해 열악한 일자리의 덫에 갇힐 위험이 높다는 점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처우 개선의 방편으로 정규직을 쉽게 해고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은 방향이 틀려도 한참 틀렸다. 정부의 정책 실패와 손쉬운 인건비 절감에만 매달려 무분별하게 비정규직을 늘려온 기업의 책임까지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세계 최하위권인 ‘고용안전성’은 외면한 채 낮은 ‘고용유연성’ 순위만 들먹이거나 선진국의 탄탄한 사회안전망은 쏙 빼놓고 노동시장의 유연성만 끌어대는 논리도 문제다.

 

최근 대법원이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를 무효로 판단한 항소심 결과를 뒤집은 데서 보듯이, 현재도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 요건은 기업에 유리하고 노동자에게 불리한 상황이다. 더구나 일터에서 쫓겨난 정규직 대부분은 비정규직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결국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의 악순환으로 이어져 비정규직 해소도, 고용률 70% 달성도 요원해질 뿐이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노사관계뿐 아니라 복지와 교육, 성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등 사회적 의제들이 복잡하게 얽힌 사안이다. 어느 한 편의 이익이나 한 요인만 앞세워서는 사회적 혼란과 갈등만 키울 뿐이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치열한 논쟁에 기반한 사회적 대타협으로 해법을 찾았다. 정부는 애드벌룬을 동원한 여론몰이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유명무실한 노사정위원회를 정상화하는 등 투명하고 공정한 논의의 장부터 마련해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1041126수] 정부, 정리해고 요건 완화는 꿈도 꾸지 마라

 

정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과 관련해 기업 부담을 줄인다며 정규직의 해고 요건 완화 검토 방침을 거론했다. 노동계가 격앙된 반응을 내놓자 입장을 번복했지만 이대로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친기업 기조의 정부가 출범 때부터 이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운 데다 재계가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와 허약한 사회안전망을 감안할 때 해고 요건을 강화해도 시원찮을 판에 완화라니 절대 안될 말이다. 틈만 나면 “경제를 살려야 한다”며 노동자를 희생양으로 몰고가는 행태도 지겹다. 경제를 활성화하려면 정부와 기업의 자체 노력이 우선 필요한 것 아닌가.

 

정부의 해고 요건 완화 검토 방침은 근로기준법의 정리해고 사유인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폭넓게 해석하려는 재계의 이해와 맞닿아 있다. 경영이 당장 어렵지 않더라도 필요할 때 정리해고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게 재계 요구다. 기업의 부담 완화를 위해 ‘고용 재앙’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한국 노동자는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정리해고와 명예퇴직 등 상시적인 감원의 피해자로 전락해왔다. 정리해고 사유만 해도 ‘기업의 존폐 위기에 직면하는 급박한 경영상 필요’로 좁게 해석하던 것에서 외환위기 때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크게 완화됐다. 이로 인해 고용 불안정성은 이미 오래전에 임계치에 도달한 상태다. 더구나 실업급여나 연금을 주조로 하는 사회안전망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권이고 해고 후 재고용률도 낮다. 노동자는 처우 개선과 보호를 강화해야 하는 사회적 약자이다. 또한 기업과 함께 경제를 견인하는 중요한 기둥이지 경제 발목을 잡는 훼방꾼이 아니다.

 

비정규직 종합대책과 정규직의 정리해고를 연계하려는 정부의 의도도 불순해 보인다. 정규직의 자원을 빼앗아 비정규직 처우 개선으로 기업 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제로섬 게임 형태로 몰고가 갈등을 유발하려 한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근로자 소득을 키워 소비와 성장을 유도한다는 구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정규직의 정리해고 요건 완화 방침을 거두어야 한다.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으로 소비 증대가 이뤄진다고 해도 정규직이 정리해고되면 소비와 성장을 유도할 동력원이 사라져 정책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 아닌가. 아울러 기업의 고용 유연성 요구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행정부에 이어 사법부까지 노동분야에서 기업 편향성을 보이는 현실도 걱정스럽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1041126수] 우리 노동시장, 유연성 떨어지고 안정성 미흡하고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내년에 중점 추진할 정책과제 중 하나로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화두로 던지자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정부는 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정책방향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전해진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안의 골자는 정규직 해고를 쉽게 하는 대신 비정규직 처우는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대안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데 성공한 독일과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낸 아일랜드 모델이 거론되고 있다.

 

정부 방침은 기업의 투자심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고용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탄력근로시간제와 임금피크제를 활성화해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도 강구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채용과 해고 절차가 모두 경직된 우리 노동시장의 현실을 생각하면 적절한 접근법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정부의 고용정책은 그동안 유연성을 떨어뜨리고 안정성 개선 효과는 미흡한 방향으로 진행돼왔다. 1998년 첫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도입된 정리해고는 까다로운 조건 탓에 제대로 실행조차 되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비정규직 보호대책, 정년 60세 법제화, 통상임금 확대 등이 실시됐지만 되레 고용 유연성만 나빠졌다. 비정규직보호법은 시간제 일자리를 양산하는 풍선효과마저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고용유연성지수가 1998년 이후 계속 떨어져 지난해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국 중 프랑스·그리스에 이어 세 번째로 낮아졌고 안정성도 OECD 최하위권에 머무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저성장 구조가 고착되고 고용의 질이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노동시장을 개혁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임해야 하는 이유다. 그간 수차례 진행된 노동개혁 시도가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노조 반발이나 부실한 개혁안보다 정부의 의지부족 때문이었다는 지적을 되새겨봐야 한다.

 

 

■ 경비노동자 대량해고 위험과 최저임금제

 

[한겨레신문 사설-20141126수] 경비노동자 대량해고 사태는 없어야 한다

 

연말을 앞두고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이 해고 위험에 떨고 있다. 내년 1월부터 경비직 종사자에게도 법정 최저임금이 100% 적용되는데, 아파트 입주민들이 이에 따른 관리비 인상을 피하려고 경비 인원을 줄이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약 25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경비노동자의 대량해고 사태가 현실화할 경우 이는 ‘사회적 재난’이다. 정부와 시민사회의 선제적 대처가 절실하다.

 

민주노총의 서울일반노동조합이 파악한 바로는 서울의 일부 아파트단지에서는 벌써 집단해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입주민대표회의와 경비 용역회사 간의 계약 만료일이 갑자기 앞당겨지는가 하면, 해고 대상자를 고르기 위한 면접심사를 진행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얼마 전 입주민의 상습적인 폭언과 멸시를 참다못한 경비원이 분신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 강남의 한 아파트단지에서는 70여명에 이르는 전체 경비원이 ‘해고 예보 통보’를 받았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해당 아파트 입주민대표회의 쪽은 경비 용역업체와의 연말 계약 만료를 미리 공고한 것이지 해고 통보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겐 결과적으로 같은 얘기로 들릴 수밖에 없다. 강남의 아파트라면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이 사는 곳일 터이다. 그런데 늘 가까이서 보아온 사람들에게 이처럼 각박하게 굴 수 있는지 참담하면서도 의아할 뿐이다.

 

비인격적인 대우에 시달리고 있는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을 받게 된다는 이유로 대규모 해고 위기에 놓인 것은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자화상이다. 고용노동부는 24일 종합 방지대책을 내놓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많다. 예를 들어 경비 용역업체에 고령노동자 1명당 분기별로 18만원씩 지원해주는 제도를 3년간 연장한다는데, 예상 수혜자가 고작 3000명 남짓이다. 관련 예산 증액과 더불어 부당해고를 제도적으로 방지하고 다른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경비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고 인권 침해를 방지하려면 시민사회의 노력도 필요하다. 서울과 수도권만 보면 성인 두명 가운데 한명꼴로 아파트에 살고 있으면서 경비노동자에게는 사용자의 지위에 있다. 이들이 한달에 커피 한잔 값 정도의 추가 부담만 하더라도 경비노동자가 안정적으로 계속 일할 수 있게 된다. 세태가 아무리 모질고 사나워도 늘 얼굴을 마주치는 ‘경비아저씨’한테 이 정도 인정은 베풀 수 있지 않은가.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126수] 아파트 경비원을 실직으로 내모는 최저임금제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 경비원 수십명이 일시에 해고를 통보받아 일자리를 잃게 됐다고 한다. 입주민과 용역업체 간의 계약이 종료된 데 따른 것이지만, 내년부터 아파트 경비원들에 대해 최저임금 100%가 적용돼 인건비 부담이 급증하게 된 것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의 봉급은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까지 합쳐 올해보다 약 19% 올라갈 것이라는 게 고용노동부 추산이다. 기어이 대량실직 사태가 벌어질 것이란 관측이 무성하다.

 

결국 올 게 왔다. 3년 전 정부가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일자리를 잃는다는 아파트 경비원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최저임금 100% 적용 시기를 2012년에서 2015년으로 연기했지만, 이제 그 순간이 다가오고 만 것이다. 고용부가 올해로 끝나는 월 6만원의 보조금 지급을 2017년까지 3년간 연장한다고 하지만, 문제의 본질과는 별 관계가 없다. 아파트 경비원을 포함해 경비·시설관리 등 이른바 감시·단속업무 근로자는 비정규직을 포함해 모두 41만명에 이른다. 고용부는 3200명을 지원한다고 말하지만,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실직할지 통계조차 없다. 야당 요구대로 지원 예산을 늘려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경비원이 일자리를 잃게 생겼는데, 월급이 올라가봐야 뭐하느냐며 한탄하는 그대로다.

 

최저임금제의 피할 수 없는 역설이다. 최저임금은 어차피 대기업·중견기업이 아닌 영세·중소업체, 음식업체, 편의점 같은 영세 자영업에 적용된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일할 시간이 줄거나 아예 서민들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젊은 계층과 미숙련 근로자가 피해를 보고, 혜택은 그 상위계층에게 돌아가 실효성이 없다는 분석도 수두룩하다. 미국에서 시간당 7.25달러인 최저임금을 10.10달러로 올리는 이른바 텐텐법안이 여전히 의회에 묶여있고, 스위스 국민들이 세계 최고의 최저임금제 도입을 국민투표로 거부했던 이유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다. 임금이 올라가는 것만 보이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가. 한국 국회에서는 경제학 교과서를 나무랐다고 한다.

 

 

■ 관련 사설

 

[경향신문 사설-20141126수] 우려가 현실이 된 시간제 일자리 부작용

 

시간제 일자리는 박근혜 정부의 핵심 고용정책 중 하나다. 임신·육아 탓에 중간에 일을 그만둔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저출산·고령화시대에 맞춰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결하자는 게 기본 취지다. 정부는 이를 위해 2017년까지 정규직과 동일한 93만개의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하지만 시작부터 우려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박 대통령이 약속한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숫자놀음으로 전락할 경우 고용의 질만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됐다. 박근혜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성적표는 낙제점 수준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 8월 기준 시간제 일자리는 203만2000개로 1년 새 15만개 가까이 늘었다. 수적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정작 수혜 대상인 30~40대 경력단절 여성은 시간제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 것으로 나왔다. 30대 여성 근로자의 시간제 비중은 지난 1년간 오히려 줄었다. 대신 20대와 60대 취업자가 늘어난 시간제 일자리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 실업자나 퇴직자들이 생계수단을 찾지 못해 시간제로 몰렸기 때문이다.

시간제라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정부는 정규직과 다름없는 반듯한 시간제를 약속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시간제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전일제의 58% 수준에 그쳤다. 법에 정해진 최저임금도 못 받는 시간제 근로자가 40%에 육박할 정도니 자못 심각한 수준이다. 시간제의 속성상 근무시간이 짧다고 한들 최소 생계비조차 보장되지 않은 현실은 분명 문제가 있다. 경력단절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겠다는 당초 취지는 오간 데 없이 임시 일용직만 양산하고 있는 꼴이다. 박 대통령이 약속한 반듯한 시간제가 고작 이 정도 수준이었단 말인가.

박 대통령은 어제 국무회의에서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는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 처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자리가 복지라는 정부의 인식엔 100% 공감한다. 그러나 숫자에 매달린 고용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울 경우 후유증만 키울 수 있다. 지금의 시간제 일자리가 그렇다. 한 달에 150만원 받는 비정규직 일자리를 2~3개의 시간제로 나눈다면 그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숫자도 좋지만 고용의 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이런 일자리 만들자고 국민 세금을 펑펑 쓰는 것은 더더욱 재고해 봐야 한다.

 

 

■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사건

 

[한겨레신문 사설-20141126수] 민주주의 침해·훼손 더 우려되는 ‘정당해산 심판’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사건의 최종 변론이 25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헌정사의 첫 사건인 만큼, 이르면 올해 안에 선고될 결정이 미칠 영향도 크고 깊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애초 제기되지 말았어야 했다. 1960년 우리 헌법에 들어온 정당해산 제도는 정당해산의 길을 터놓기보다 “정당의 자유를 좀더 효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됐다. 1958년 자유당 정부의 진보당 등록 취소와 같은 사태를 예방하려는 조처였다는 것이다. 헌법 분야의 유엔이라는 ‘베니스위원회’도, 위헌정당 해산 제도는 ‘민주주의의 적’을 분쇄하려는 것이라기보다 다수 정파의 권력으로부터 소수 정당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정당해산 제도가 자칫 정치적 다수세력이 소수자를 억압하는 수단이 되면 민주주의 체제를 방어하기는커녕 관용과 다원성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되레 침해된다는 인식에서다. 그래서 정당해산 제도는 “집행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그럼에도 정당해산을 요청하려면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베니스위원회는 강조한다. 다른 조처로는 위험을 막을 수 없는지, 그 정당이 헌정 전복을 위해 폭력 사용을 실제 추구하는지, 그 폭력이 실질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불러오는 것인지 등이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

 

그 기준대로 통합진보당이 헌정에 대한 명백하고 실질적인 위험으로 입증됐는지는 의문이다. 법무부 주장을 봐도, 통진당 일부 구성원들의 행태와 발언은 실제 폭력과 전복의 위험이라기보다 한심하다는 조롱거리에 가까워 보인다. 통진당 핵심세력이라던 아르오(RO)도 법원에서 실체를 인정받지 못했다. 통합진보당 강령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 용어라는 정부 주장 역시, 이런 용어가 오래전부터 두루 사용됐다는 점에서 억지에 가깝다. 그렇게 ‘종북’을 문제 삼으려 한다면 정당해산이 아니라도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을 터이다. 정치적 주장의 표현에 시비를 하는 것 자체가 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일 수 있다.

 

정당에 대한 선택은 선거 등 정치적 과정을 통해 국민에게 맡기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는 대신 국가가 해산시키겠다고 나서는 것이야말로 주권자인 국민의 정치적 선택을 불신하고 배제하는 것이 된다. 헌재가 정부의 그런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다원성과 관용의 민주주의 대신 국가가 국민의 선택을 대신하겠다며 함부로 여기를 막고 저기를 누르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로 되돌아가게 된다. 헌재의 이성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경향신문 사설-20141126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과 민주주의의 미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의 공개변론 절차가 마무리됐다. 헌법재판관들의 비공개 토론인 평의가 끝나면 선고만 남겨두게 된다. 우리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별개로, 해산심판 청구는 부적절하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청구를 철회하지 않은 이상, 이제는 헌재가 신중하고 엄정하게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에서 “연내 선고”를 압박하고 있으나 흔들려선 안될 것이다.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은 한 정당의 운명을 가름하는 차원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와도 직결되는 까닭이다.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헌법 제8조 2항)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그 존립과 해산 또한 선거를 통해 주권자가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럽평의회 자문기관이자 한국도 회원국인 ‘베니스위원회(법을 통한 민주주의 유럽위원회)’는 정당해산과 관련한 지침을 채택한 바 있다.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는 이 지침에 따르면, 정당해산은 민주적 헌법질서 전복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거나 폭력 사용을 주장하는 정당에만 극히 예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구성원의 개별적 행위에 대해 전체 정당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또한 덜 과격한 조치로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경우 해산해선 안된다. 한마디로 정당해산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게 요체다.

정부가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청구한 직접적 계기는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이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법무부 주장은 대부분 무너졌다. 법무부는 통합진보당이 북한의 대남혁명론을 따른다며 그 근거로 이 의원이 관여했다는 RO(혁명조직)의 활동을 들었다. 하지만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내란음모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고 RO의 실체도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이 유죄로 인정한 내란선동 혐의는 개인적·우발적 행위이지, 정당 전체의 문제로 볼 수 없다는 게 법조계의 다수 견해다. 결국 정부의 심판 청구는 정당활동 자유를 보장한 헌법정신과 국제사회의 공인된 기준 모두에 어긋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지난 20일 서울북부지법에선 전두환 정권 시절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등 ‘혁명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한 사람이 3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사법부가 불법 감금과 가혹행위를 눈감아 고통당한 피고인에게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헌재가 훗날 이러한 사죄를 하는 일이 없도록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기대한다.

 

 

■ 여야 누리과정 예산 국고 지원 합의

 

[한국일보 사설-20141126수] 해법 찾은 누리과정 갈등, 예산안 제때 처리해야

 

여야가 어제 내년도 예산안의 핵심 쟁점인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지원) 예산을 국고에서 우회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20일 황우여 교육부총리와 여야 교육문화체육관광위 간사들 간에 이루어진 5,600억원 국고 지원 합의에 대해 새누리당 지도부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깨뜨린 뒤 닷새 만에 봉합됐다. 지원 규모의 이견만 있을 뿐 결국 3자 합의내용대로 돌아간 셈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누리과정 예산을 일단 시도교육청이 부담하는 대신 국고에서 특성화고 장학금, 초등 돌봄학교와 방과후학교 지원 등에 5,233억원을 요구한 반면 새누리당은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규모를 결정하겠다면서 2,000억원을 제시했다고 한다. 여야의 격차는 예결위 심의 과정에 원만한 조정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정치권은 누리과정 예산 충당과 관련한 법ㆍ제도 정비에 조속히 나서야 할 것이다. 지금의 법규정으로는 매년 중앙정부와 지방교육청 간의 예산편성 갈등과 시도교육청의 예산편성 보이콧이 되풀이될 게 뻔하다. 원래 유치원생은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어린이집 원생은 보건복지부와 지자체가 맡았던 이원적 무상보육이 누리과정으로 통합되면서 시도교육청으로 일원화된 사정을 감안해 합리적 재정충당 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야가 누리과정 예산에 국고 지원을 합의했지만 예산안의 법정 처리 시한(12월 2일)을 지킬 수 있는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야당은 담뱃세와 연계해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고, 여당은 법인세 인상 불가로 맞서는 등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예산안 처리 시한이 1주일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샅바 싸움이 사납기는 하지만 담뱃세가 서민 증세라는 야당의 주장이나 법인세 인상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여당의 주장 모두 근거가 있다. 여야의 정치력이 주목되는 이유다.

 

여야의 타협정신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국회선진화법의 둑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난 10여년 동안 헌법과 법률이 정한 예산처리 시한은 여야의 마찰 속에 사문화되다시피 했지만, 올해 선진화법 적용으로 12월 1일 예산안이 본회의에 자동 상정됨에 따라 과반의석을 가진 여당이 단독으로 처리할 수도 있게 돼있다. 상임위, 본회의 상정에서 다수당에 대한 야당의 견제 기능이 두드러졌던 선진화법이 예산만큼은 다수당인 여당에 유리하게끔 돼 있다. 야당은 예산안 처리 시한의 연기 가능성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지만 선진화법 무력화를 노린 여당의 과거 공세를 감안하면 여러 측면에서 우를 범하는 일이다. 여야가 남은 기간 절충의 정신을 발휘해 법이 지켜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1041126수] 무상보육 재원 언제까지 땜질 처방만 할 건가

여야가 25일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지원) 예산에 대한 시도교육청의 재정난을 덜어주기 위해 2,000억원 이상을 우회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내년도 예산안 타결의 핵심 걸림돌 중 하나가 사라졌다. 재원이 부족해 몇 달 뒤면 어린이집 누리과정 무상보육 지원이 끊길 수 있다는 우려도 해소됐다.

 

하지만 언제까지 예산을 이렇게 땜질식으로 마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부 여당과 정책에 대한 신뢰도 땅에 떨어졌다. 당정은 당초 정부·지자체·교육청 간 합의에 따라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편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세수부족 등으로 교부금이 줄어 재정부담이 커진 교육청이 "보건복지부 소관이던 어린이집 누리과정 보육료는 지원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나오자 지방채를 발행해 부족한 예산을 충당하면 이자를 대신 내주겠다고 일보 후퇴했다. 이어 야당이 교육청 편을 들며 누리과정 예산 국고지원을 법인세 인상과 함께 예산안 타결의 2대 전제로 내세우자 교육부 예산증액을 통한 교육청 우회지원으로 이보 후퇴했다.

 

당정은 외형상 기본원칙을 지켜냈지만 실질적으로는 잃은 게 적지 않다. 우선 정부, 특히 기획재정부는 영악하지만 비겁했다. 세수부진 등으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줄어 이런 사태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원칙만 내세우며 정치권에 해결책 마련을 떠넘겼다. 감사원 등으로부터 문책 당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지낸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기재부·여당 간의 의사소통에서도 문제를 드러냈다.

 

여당과 정부는 누리과정 재원 조달의 지속 가능성을 재점검해야 한다. 누리과정을 포함한 0~5세 무상보육 공약을 재원대책도 없이 밀어붙여 화를 키워온 만큼 결자해지해야 할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의 규제 개혁 발언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126수] 단두대 보낼 규제? 어떤 규제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단통법·정가제·권리금…색깔만 좋은 독버섯 규제는 지금도 쏟아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또 규제혁파를 강조했다. 어제 국무회의에서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들은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 처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핵심 규제들을 중심으로 규제 기요틴을 확대해 규제혁명을 이룰 것”이라고 역설했다. ‘암덩어리 규제’ 발언에 이어 대통령의 규제개혁 의지가 한층 명확해졌다.

 

그러나 의심도 따른다. 장관이나 참모들이 대통령의 의지를 읽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손톱 밑 가시들을 제거하기 위해 끝장토론까지 했지만 그 이후에도 규제는 쏟아졌다. 고집불통의 단통법이 그렇고 뜬금없는 도서정가제도 그렇다. 사외이사에 무소불위 권한을 부여한 ‘금융회사 모범규준’과 정치적 흥정거리가 된 전·월세 상한제, 권리금 보호 등 신설되는 악성규제는 나열하기도 어지럽다.

 

물론 청와대가 각 부처와 지자체 업무의 세부사항까지 시시콜콜하게 다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통령이 현장의 구체적인 행정을 일일이 알 필요도 없다. 그러나 무엇이 규제이며, 어떤 경로를 통해 새로운 규제들이 좀비처럼 끊임없이 고개를 드는지, 그리고 규제에 대한 청와대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다. 인식의 공유 자체가 없는 것 같다. 핵심 규제를 단두대로 보내겠다는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할 이유는 없지만 무엇이 기요틴으로 실려갈 규제인지는 전혀 정리되지 않고 있다.

 

단두대로 보낼 규제란 게 어떤 것인가. 정부·여당 내에서 이 문제부터 명확하게 정리해야 한다. 그런 다음 범정부 차원에서 대국민 규제철폐 선언을 다시 하고, 국회에도 동참을 촉구하는 게 순서다. 대통령 혼자 고독하게 규제철폐를 외치고 각 부처는 기준도 없이 새로운 악성 규제나 만들어대면 투자도 일자리 창출도 기대할 수 없다. 규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그럴듯한 명분과 신기루 같은 이상을 좇는다면 규제혁파는 언제나 구두선에 그칠 뿐이다. ‘대통령의 말 자체는 맞다’고 공감하면서도 ‘같은 얘기가 왜 반복되는지는 납득이 안 된다’는 식이라면 규제혁파는 간판만 남을 것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1041126수] "투자 막는 규제 단두대에 올리는 규제혁명 이룰 것“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개혁과 관련해 '단두대'라는 강한 표현까지 동원하고 나섰다. 박 대통령은 25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국민 안전과 생명에 관련없는 규제들 가운데 정부부처가 존재이유를 명확히 소명하지 못하면 일괄 폐지하는 규제 기요틴을 확대해 규제혁명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또한 "규제 타당성 여부를 조속히 검토해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들은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 처리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단두대라는 표현까지 동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경제 분야의 규제 실태가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규제건수는 2003년 7,855개에서 올해 10월 말 현재 1만4,987건으로 불어났다. '손톱 밑 가시' '암 덩어리'로 규제를 지목하며 개혁을 외친 현 정부 들어서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1월과 비교해 환경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등 6개 부처는 규제를 하나도 줄이지 못했고 금융위원회와 농림축산식품부는 되레 늘렸을 정도다. 심지어 감축목표로 정부가 제시한 규제항목 중 상당수는 이미 폐지됐거나 중복된 것들이 많아 '꼼수 규제완화'라는 눈총까지 받는 실정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규제개혁을 강조해도 공무원의 '규제 본능'은 전혀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의원입법 규제는 말할 것도 없다. 19대 국회 들어 의원발의 법안은 1만2,000건가량으로 18대 국회 전체 건수 수준에 육박했다.

 

규제개혁은 우리에게 실로 화급한 과제다. 일본의 아베노믹스가 나락에 빠진 것도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규제개혁'에 실패한 탓이다. 이 점을 규제당국과 국회가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 경제는 이미 금리인하와 확장적 재정지출이라는 두 개의 화살을 쏜 상태다. 뒤이어 구조개혁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는다면 일본처럼 경제후퇴를 초래할 수도 있다.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규제를 과감하게 혁신하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1041126수] 부동산 3법 개혁, 정치타협으로 도루묵 되나

 

분양가 상한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 등을 담은 ‘부동산 3법’이 대폭 수정되거나 일부 시행 유예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한경 보도에 따르면 정부와 새누리당은 전·월세 상한제의 도입을 요구하는 야권의 공세를 저지하기 위해 부동산 3법의 핵심 내용을 대폭 수정키로 했다는 것이다.

 

우선 분양가 상한제 탄력 적용지역을 민간택지로 한정하고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는 5년 유예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재건축 때 보유 주택수만큼 새 주택을 주려던 것도 3가구까지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대신 새정치연합은 전·월세 상한제에서 한발 물러나 세입자에게 1년 계약갱신 청구권을 주자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부동산 3법 개정은 과거 부동산 가격 급등기에 깊은 생각 없이 도입됐던 규제를 혁파하자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부동산시장 침체를 걱정해야 하는 시점이다. 규제를 없앤다고 바로 부동산시장이 살아난다는 보장은 없지만 시황과 상관 없이 당연히 폐지해야 할 규제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까지 부동산은 곧 투기로 간주하고 소위 세입자 대책과 맞바꾸려는 듯한 정치권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쉽게 통과시켜 주지는 못하겠다는 몽니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야권에서 주장하는 계약갱신 청구권은 사실상 전세기간 연장과 다를 바 없다. 과거 사례를 보더라도 전셋값만 폭등시킬 것이 뻔하다. 전세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늘어난 1990년 초, 불과 4개월 만에 전셋값이 20% 이상이나 급등했던 적이 있다.

 

갈팡질팡하는 국토교통부도 문제다. 서승환 장관은 불과 한 달여 전 “전셋값 상한제나 전세기간 연장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랬던 국토부가 이제와서 정치권의 압박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면 결과적으로 시장에 혼란만 가중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정부와 여야가 소위 협상이라는 것에 매달리면서 변칙적인 합의에 도달하게 된다면 부동산 규제는 그대로 온존하면서 전셋값만 오르게 될 것이 뻔하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협상인가.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중앙일보 사설-20141126수] 가계부채 놔두고는 경제 못 살린다

 

석 달 새 22조 급증 … 또 사상 최고 기록

가계 소득 늘려 빚 비중 줄여나가되

부채 축소 위한 전방위 대책 내놔야

 

가계부채가 다시 ‘사상 최고’와 ‘사상 최대 급증’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3분기 가계 빚(잠정)은 9월 말 1060조3000억원으로 석 달 만에 22조원(2.1%)이 늘었다. 한은이 2002년 가계 빚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3분기에 20조원 넘게 빚이 늘어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리인하와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가 맞물려 주택담보대출이 7년여 만에 최대폭으로 늘어난 탓이 크다. 계절적 요인 때문에 가계 빚은 연말로 갈수록 증가한다는 특성을 감안하면 빚이 늘어나는 속도는 더 가팔라질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쓸 수 있는 돈(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60.7%(2013년 말 기준)다. 미국(115.1%)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35.7%, 2012년 기준)보다 많이 높다. 가계가 파산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얘기다. 몇 년 전부터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한국 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로 가계부채를 지목하며 시한폭탄 취급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늘어나는 속도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가계부채는 지난 5년간(2008~2013년) 해마다 평균 8.7%씩 늘었다. 같은 기간 미국·일본 등 선진국이 가계 빚을 줄여간 것과는 큰 차이다. 질도 나쁘다. 이른바 생계형 대출이 많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저신용자 대출이 전체 가계 대출의 20%를 차지한다. 이 중 3개 금융기관 이상에서 빚을 진 다중채무자가 10명 중 6명꼴(63%)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자영업자다. 한 달 소득이 100만원 안팎이라 돈을 벌어 이자도 갚지 못하는 소득 하위 20% 자영업자가 170만 명이나 된다. 실제 주택담보대출자의 절반 정도는 돈을 빌려 생활과 경영에 쓰고 있다. 자영업자의 빚을 더 쉽게 늘려주는 건 시한폭탄의 위력을 더 강화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정부의 해법은 경제 활성화로 소득을 더 늘려 가계부채 비중을 떨어뜨리면 된다는 쪽이다. 그러나 규제를 풀었는데 소득은 안 늘고 가계부채만 불어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성장률 높이기도 쉽지 않지만 성장을 한들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4.7%, 2013년 가계 가처분 소득 증가율)보다 가계부채가 증가하는 속도(6.0%, 2013년 가계신용 증가율)가 빠른 상황에선 부채가 늘어나는 속도를 가능한 한 늦춰야 한다.

 

 석 달 새 12조원 넘게 늘어난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정부는 “2금융권에서 1금융권으로 가계부채의 질이 좋아진 것”이라며 위험과 의미를 애써 축소하고 있다. 낙관과 자신은 좋지만 과하면 곤란하다. 특히 금융은 임계점에 이르면 해일이 일듯 붕괴가 한꺼번에 일어난다는 점에서 각별한 대비가 필요하다. 지금 당장은 안 터진다며 눈에 보이는 국가 파탄의 뇌관을 방치해선 안 된다. 은행의 대출 심사를 강화하는 미시 대책부터 재정을 동원해 생계형 한계 대출자의 빚을 탕감해주는 식의 적극적인 정책도 고려할 만하다. 17년 전 외환위기, 6년 전 금융위기의 교훈을 기억해보라. 우리 경제가 빚 때문에 치른 대가가 얼마나 많았는가.

 

 

[중앙일보 사설-20141126수] 통탄할 부실 통영함 투입 … 비리는 철저히 수사하라

 

군이 대표적 방위산업 비리로 지목된 수상함구조함 통영함(3500t)의 조기 전력화를 추진키로 해 논란이 되고 있다. 해군은 그동안 통영함의 성능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인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지난 4월의 세월호 침몰 사고 때 2년 전 진수식을 한 통영함이 투입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군은 현재 수상함구조함이 너무 낡아 올해 말 퇴역이 불가피해 통영함을 전력화하는 방안을 합동참모회의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해군이 운용 중인 수상함구조함은 1968년과 72년에 건조된 광양함과 평택함 2척이다. 미 해군에서 퇴역한 함정을 97년에 도입해 전력화한 것으로 수명 주기(30년)를 각각 16년, 12년 넘겼다. 수상함구조함은 좌초한 함정 구조나 침몰한 함정과 항공기 탐색·인양·예인을 한다.

 

 문제는 통영함의 조기 전력화가 결정되면 작전요구성능(ROC)을 충족하지 못한 핵심 장비를 장작한 채 투입된다는 점이다. 방위사업청 실무자들이 특정 업체에 유리하도록 시험성적서를 조작하는 바람에 성능 미달의 음파탐지기(HMS), 수중무인탐사기(ROV)가 도입됐다. 두 장비는 수중 침몰 물체를 탐지하는 눈 역할을 한다. 더구나 음파탐지기는 천안함 사건 때 제구실을 못한 평택함에 장착된 것과 비슷한 구형 모델이다. 통영함 사업을 진행한 방위사업청은 내년 상반기에 통영함을 해군에 넘기되 두 장비는 교체할 방침이라고 한다. 통영함은 두 장비의 부실로 수중탐색 및 식별 능력은 제한되지만 예인과 인양, 잠수 지원 등 구조함의 기본 임무는 수행할 수 있다.

 

 1590억원을 들인 통영함이 부실한 상태로 작전에 투입되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 통영함의 전력화 추진이 혹 방산 비리를 서둘러 봉합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면 용납될 수 없다. 방산 비리의 결정판인 통영함에 대한 수사와 감사는 전력화와는 별개의 문제다. 합동수사단은 한 점의 의혹도 남기지 말고 비리의 책임 소재를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41126수] ‘안구마우스’ 보조공학, 약자 배려이자 신산업

 

루게릭병 같은 근육병 환자는 온몸이 굳어 손발을 움직일 수 없다. 정신은 멀쩡한데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없는 정신적 감옥에 갇혀 산다. 대다수 근육병 환자에게도 눈동자 근육은 살아 있다. 장애인이 눈동자를 움직여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게 하는 보조기기가 ‘안구마우스’다. 지금까지 이런 착한 기계가 보급되지 못한 이유는 두 가지다. 기기의 인식 능력이 떨어져 사용하기 불편했던 게 첫째 이유다. 다른 이유는 서민층은 엄두도 못 낼 정도로 고가(대당 1000만원)라는 점이다.

 

 어제 삼성전자가 이런 문제를 해결한 안구마우스를 자체 개발해 선보였다. 인식 정확도가 높으며 가격이 5만원대라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소외계층에는 무료로 보급하며 벤처기업에 기술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장애인과 노인 등이 독립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접근 방식을 ‘보조공학(補助工學)’이라고 부른다. 세계의 일류기업은 자신의 기술역량을 보조공학에 쏟아부어 수준 높은 사회환원을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수많은 보조기기 개발의 후원자로 유명하다.

 

 우리 기업은 기업 규모에 비해 이런 ‘기술 환원’에 인색한 편이었다. 직접적인 구호사업에는 선진 기업 못지않게 지원을 하면서도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극복하게 도와주는 따뜻한 기술 개발에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이번 삼성전자의 안구마우스 개발과 보급이 우리 보조공학 선진화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아울러 보조공학 산업에도 주목해야 한다. 보조기기 산업의 세계시장 규모는 120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 중 미국이 40% 이상을 차지하고 독일·스웨덴이 뒤를 따르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대만에만 훨체어를 비롯한 이동기기를 중심으로 산업이 형성돼 있다. 중후장대한 산업에서 한계에 부딪힌 우리 기업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새로운 성장 분야다. 초고령화 추세는 필연적으로 보조기기 욕구를 상승시키게 될 것이다. 1998년 보조공학법을 제정한 미국처럼 보조기기 활용을 지원하고 관련 산업을 진흥하는 법의 제정도 검토할 만하다.

 

 

[서울신문 사설-20141126수] 예산안과 현안 연계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자

 

새해 예산안이 헌법이 정한 시한(12월 2일) 내에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고질병이 도질 조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처리 시한을 이레 앞둔 어제까지 법인세 증세 등에 먼저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다. 1987년 개헌 이래 26번의 예산안 중 기일을 지킨 경우는 6번에 그쳤다. 여야가 다른 시국 쟁점을 놓고 드잡이하다 해를 넘겨 건성으로 심의한 예산안에 방망이를 두드린 적도 많았다. 이런 악습을 깨려고 2012년 국회법을 고쳐 법정 시한 내 예산안 표결이라는 안전장치를 뒀다. 그런데도 여야 합의만 있으면 이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궤변 앞에 ‘국회선진화법’이란 이름이 무색할 지경이다. 국회는 개정 국회법의 애초 취지에 맞춰 이제부터라도 밀도 있는 예산 심의에 나서기 바란다.

 

국회선진화법은 그동안 숱한 논란을 불렀다. 당 대 당 합의가 없으면 다수당이라 할지라도 안건 처리를 강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 탓이다. 여당이 주도한 민생경제 살리기 법안들이 세월호 침몰 이후 6개월 동안이나 묶이게 된 것도 야권이 선진화법 조항을 카드로 삼았기 때문이다. 국회선진화법을 주도했던 새누리당이 뒤늦게 자기 발등을 찍었음을 깨닫고 헌법재판소에 ‘위헌 제소’하는 등 호들갑을 떤 이유다. 물론 다수결 원리를 무시하는 국회법이 법리상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법이 개정되거나, 최소한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는 현행 국회법을 지켜야 한다. 이달 말까지 예산안 심사를 끝내고 그러지 못할 경우 12월 1일 국회 본회의에 자동 회부된다는 조항을 만든 입법부가 시행 첫해부터 이를 어긴다면 이만저만 자가당착이 아니다.

 

더군다나 예산안 자동 부의 규정을 지키지 않으려고 동원하고 있는 야권의 논리는 그야말로 이율배반이다. 새정치연합 이윤근 원내대표는 “여야가 예산안을 합의 처리하라는 게 국민의 명령”이라며 “(정기국회 종료일인) 12월 9일까지 처리해도 법상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화급한 법안의 다수결 표결을 가로막는 국회법 조항을 고치자는 여당의 주장에는 반대하면서 그 선진화법이 규정한 예산안의 처리 시한은 편의대로 해석하는 모양새다.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선진화법이 예산안 처리에만 유독 과반수 원칙을 보장하는 이유가 뭔지부터 곱씹어 보자. 내년도 국가가계부를 논의하는 데 정쟁이 끼어들어서도 곤란하지만, 이로 인해 예산 집행이 지연돼 국민 살림살이에 주름이 져선 안 된다는 취지 아닌가. 예산안 처리 시한도 시한이지만, 차제에 다른 쟁점과 연계하는 구태부터 고쳐야 한다.

 

새정치연합은 법인세 증세와 누리과정 예산 배정을 고리로 대여 압박에 나선 듯하다. 나아가 이른바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산업 비리) 국정조사를 예산안과 연계하려는 낌새다. 물론 법인세를 올려 복지재원으로 충당하는 등 소득 재분배를 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이 일리는 있다. 그러나 자칫 재벌보다는 중소기업에 타격을 주고 외국인 투자에 악영향을 미쳐 경제회복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서민을 되레 어렵게 만든다는 여당의 반론도 경청할 소지는 있다. 결국 법인세 문제든, 방산 비리든 그것대로 치열하게 논의·규명할 일이지 예산안과 묶어 무한정 시간을 끌 일은 아니란 얘기다. 예산심의와 다른 현안은 분리해 투 트랙으로 논의하는 것이 국회 선진화의 첩경임을 명심해야 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김동춘 칼럼/김동춘(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20141126수] 대학입시라는 덫

 

수능이 끝나자 어김없이 또 출제 오류가 드러나고, ‘물수능’ 논란이 제기된다. 그런데 문제를 비틀어서 다섯 개 중 하나의 답안 맞히라는 시험에서 100% 정답이 있을까 의문이다. 그리고 이런 수능에서 ‘오류’ 논란은 예고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수능’ 공격은 상위 1, 2% 학부모들의 관심을 표현한 것인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결국 변별력이라는 명분으로 본고사를 부활하자는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것일 게다. 모든 사람이 “수능 이대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유와 대안은 완전히 다르다.

 

‘미신’은 자연력이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던 시대의 일이라고들 말하지만, 이 문명사회에서도 인간이 자신이 만든 세상을 마치 불가항력의 자연처럼 믿고 따르는 일이 있는데 한국에서 ‘일류 대학’이라는 미신이 바로 그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상당수의 학부모들은 남들이 모두 ‘거름 지고 장에 가니’ 자신도 ‘거름 지고 장에 갈 수밖에 없다’고 습관처럼 수천만원을 사교육과 대학 등록금으로 쏟아부을 것이다. 64만명의 수험생 중 63만명은 최상위 1만명들에게 해당되는 ‘게임’에 들러리 서고, 그 1만명의 지위 세습을 위한 게임에 온 국가와 사회가 심각한 홍역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중고등학교는 ‘교육 불능’ 상태가 된 지 오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행복감이 가장 낮은 수백만명의 청소년들은 학교가 감옥이며, 가정 경제를 마비시키고서 대학 졸업장을 가져도 실업자로 전락한다. 그런데 혹독한 입시경쟁의 승리자들은 과연 행복할까? 서울대 학생들 중 약 7%가 자해 또는 자살 충동을 지닌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며 3~8%의 학생들은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상태이며, 수백명이 여러 이유로 자퇴를 한다고 한다.

 

나는 한국의 일류 대학이 잠재력은 있으나 입시 성적은 떨어지는 학생들을 잘 교육해서 국가나 인류문명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로 길러내야 진정한 일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적 우수 학생 싹쓸이하는 데 온 신경이 곤두서 있는 ‘학부’ 대학은 우리의 대안이 아니다. 더구나 지식융합, 지식팽창의 시대, 세계 유명대학 교수들의 강의를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는 시대에 지금과 같은 한국의 대학이 30년 이후에도 남아 있을지도 의문이다.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한 문제다. 그러나 사람이 만들어낸 세상을 사람이 못 바꾼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나는 한국에서 교육 문제는 노동 문제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고 땀 흘리는 노동자를 사람대접하는 일이 대학 문제, 곧 교육 문제 해결의 기본 원칙이요 길이라고 본다. 노동시장에서의 학력별 임금 격차 축소와 차별 철폐, 공기업이나 대기업의 고졸자 특례 채용의 활성화 등을 통해 대학 진학의 유인을 확 줄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능은 기초학력 평가 정도의 시험으로 정착시키고, 내신 성적으로만 단일화해서 입학생 선발을 하되 졸업정원제를 실시해서 대학을 학문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방 국립대학을 무상으로 하고 계층 할당을 확대하여 잠재력 있는 학생을 흡수하되, 전국의 모든 국립대학을 통합운영해서 학생, 교수 이동을 활성화하여 자연스럽게 특성화하도록 해야 한다. 서울대의 학부는 없애고 대학원 대학으로 육성해야 한다. 전국 단위 대학평가는 대학 단위가 아니라 학과 단위로 해서 지원을 차등화하면 학벌 간판의 폐해도 줄일 수 있다. 학령인구가 크게 줄어드는 시대에 상당수 대학은 평생교육기관으로서 기능을 해야 할 것이다.

 

‘대입성적 = 능력 = 높은 보상’이라는 신화에 사로잡힌 기성세대, 특히 우리 사회의 상층 사람들의 생각과 기득권을 건드리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그분들의 게임’의 허구성을 간파한 청소년들이 이미 거리에 넘쳐난다. 국민의 99%가 피해자인 이 대입, 교육 제도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기 해서 국민들이 주체로 나서야 한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영희(문화스포츠부문 기자)-20141126수] 나의 아름다운 동네서점

동네에 작은 서점이 생겼다. 빨간 벽돌 빌라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택가 한가운데다. 몇 달 전부터 뚝딱뚝딱 공사를 하기에 작업실이라도 꾸미나 했더니 흰 서가가 알록달록한 책으로 조금씩 채워졌다. 음악도 하고 그림도 그리는 젊은 부부가 미국·유럽 등지에서 직접 골라 들여온 그림책과 그래픽 노블을 파는 서점이란다. 주인장도 아니면서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과연 장사가 되려나’ 괜스레 걱정이다. 그런데 주말에는 제법 손님이 찾아오는 모양이다.

 

 어렸을 땐 동네서점에 가는 게 주말의 주요 일과였다. 보물섬도 사고 참고서도 사고, 엄마가 기분 좋은 날엔 소설도 몇 권 골랐다. 이런 동네서점이 하나둘 사라지고 대형 오프라인 서점과 인터넷 서점이 주요 책 구매 창구가 된 건 이미 오래다. 문화체육관광부 통계를 보면 1994년에 5683개였던 지역서점 수가 2003년에는 2247개로 절반 이상 줄었고 2011년엔 1752개, 2013년에는 1625개가 됐다. 2013년 전국 읍·면·동 수는 3468개라고 하니 두 개의 읍·면·동에 하나의 서점이 있을까 말까 한 수준이다.

 

 알다피시 문제는 할인경쟁이었다. 21일 시행된 새 도서정가제는 책의 할인율을 일정 수준(15%)으로 제한해 이런 작은 책방들의 숨통을 터 주기 위한 제도다. 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주말 동안 돌아본 작은 서점 주인들은 “동네서점은 15%까지 할인을 해 주기도 힘들고, 책 구매도 습관이라 한 번 떠난 손님이 다시 찾기는 어려울 것”이란 반응이었다. 단, 조금 위안은 된다는 이도 있었다. “큰 기대는 안 하죠. 그래도 손님들에게 정가로 책을 파는 게 왠지 미안했는데, 그런 마음을 갖지 않아도 돼 좋네요.”

 

 동네서점의 실종이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최근 출간된 『나의 아름다운 책방』은 존 그리셤, 애덤 로스 등 84명의 작가가 자신이 사랑하는 미국 동네서점에 바치는 러브레터를 모은 책이다. 오래도록 살아남은 동네서점에는 ‘낭만’이 있다. 마음 편하게 머물 수 있는 따뜻한 분위기는 물론 낭독회·독서토론 등 작은 모임을 꾸준히 열어 독자들과 직접 소통한다. 무엇보다 주인의 안목이 드러나는 책 선정과 추천이 중요하다. 샌타바버라의 초서북스에는 주인의 밝은 눈에 포착된 “아주 오래된 책, 이미 절판된 책, 다른 체인 서점이라면 이미 오래전에 폐지로 만들었거나 떨이로 팔아 버렸을 책들”이 있다. 취향을 공유하는 공간으로서의 서점, 이 책이 제시하는 동네서점의 미래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석종(논설위원)-20141126수] 집으로 가는 길

 

이정향 감독의 영화 <집으로>에서 외할머니에게 맡겨진 7살 난 도시 아이 상우(유승호)는 외딴 산골 생활이 심심하고 짜증나서 말 못하고 글도 못 읽는 외할머니에게 투정을 부리고 짓궂게 괴롭힌다. 할머니는 그런 상우를 단 한번도 나무라지 않고 사랑으로 감싼다. 우리 마음속에서 집은 이런 할머니의 품처럼 따뜻한 곳이다. 살면서 누구나 집을 떠난다. ‘집 떠나면 개고생’인 줄은 알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떠나온 옛집을 그리워하며 평생 저마다의 새집을 짓는 게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집은 귀소 본능의 대상이기도 하다.

 

예컨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는 전쟁에 참가했다가 귀향하는 과정의 모험담이다. <오즈의 마법사>는 회오리바람에 휩쓸린 도로시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법사 오즈를 만나러 길을 떠나는 이야기다. 카프카도 <집으로 가는 길>을 썼다. 방은진 감독의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은 프랑스 오를리 공항에서 마약 운반범으로 오인돼 외딴 섬에 수감된 한국인 주부의 실화를 그렸다. 주인공 송정연(전도연)은 이렇게 절규한다. “저는…, 집으로 가고 싶습니다.”

 

성경에서 집은 우리가 떠나온 낙원 혹은 천국으로 비유된다. “우리는 모두 집에서 왔고, 집으로 가고 있다.” 미국 작가 리 캐럴이 쓴 우화 소설 <집으로 가는 길>은 성경 속 ‘탕자의 비유’와 궤를 같이한다. 안락한 ‘집’을 떠나 험난한 여정에 지친 주인공이 집에 돌아오자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으로 꼬옥 껴안아준다.

 

불교에서는 세속의 인연을 딱 끊어버리고 수행 생활에 들어가는 것을 출가(出家)라 한다. 이번에 합천 해인사 원철 스님이 새로 낸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라는 산문집을 보내왔다. 법정 스님 이후 불교계 최고의 문장가이자 수필가라는 원철 스님에게 ‘집’이란 원래 있어야 할 자리,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이다. 불교용어로 ‘본래 면목’을 뜻한다. “어디에 있든 집으로 돌아갈 때는 멀다고 느끼지 않는다. 지금 어디서 출발해도 결코 멀지 않다.” 어느새 나무들이 옷을 벗고 외풍을 맞고 있다. 올겨울 유난히 추위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런 때 “각자 자기가 선 자리가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원철 스님의 말을 곱씹어본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오춘호(논설위원)-20141126수] 미국의 입학 할당제

 

입학사정관 제도를 가장 먼저 도입한 하버드의 애버트 로웰 총장은 오늘의 하버드를 만든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1909년부터 24년간 총장직을 맡으면서 학생 수를 2배, 기부금을 7배나 늘렸다. 하지만 그의 재임 당시 유대인 입학이 늘면서 여러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크리스천 전통의 대학 정체성도 위기에 봉착했다.

 

1926년 유대인 비율이 27%에 이르자 로웰은 입학사정관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이 제도를 만든 지 4년 만에 유대인 비율은 15%로 떨어졌다. 물론 흑인들은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로웰의 성공 이후 미국 대학들은 대부분 쿼터제와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고 유대인과 흑인의 대학 입학에 제한을 가했다. 특히 미국 대학에서 흑인 비율은 1950년대만 해도 5%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의 소수인종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은 흑인들의 입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수능 격인 SAT에서 총점의 14%를 공짜로 얻는 특혜를 받았다. 흑인은 성적이 나빠도 대학에 쉽게 들어갔다. 그 결과 흑인 대학생 비율이 1970년 7.8%, 2010년대에는 15%를 넘어섰다.

 

백인 학생들이 발끈한 것은 물론이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의대생 바키는 1978년 인종쿼터제 때문에 자신의 입학이 좌절됐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헌법상 평등 조항을 위배한 역차별이라는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바키의 편을 들어주긴 했지만 입학 사정에서 인종을 고려사항으로 간주하는 것 자체를 위법으로 판결하지는 않았다. 당시 파월 대법관은 다양한 인종이 캠퍼스의 다양성을 더욱 크게 할 수 있다며 적법하다는 논리를 폈다. 최근에는 흑인들 중에서도 할당제를 거부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역할당제라는 형태로 이 제도가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하버드에서는 이제 아시아계 학생들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최근 아시아 학생들이 주축이 된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모임(SFAA)이란 단체가 하버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할당제가 오히려 아시아 학생을 차별한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8년 동안 하버드대에 입학한 아시아 출신은 17.6~20.7%선에 머무르고 있다. 이공계 명문 칼텍의 아시아계 학생비율은 지난해 45.2%에 달했다.

 

1960년대 신좌익이 대학가를 점령한 이후 소위 다양성 입학도 확산됐다. 그러나 대학은 역시 수학능력으로 선발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도 여전히 지지를 받고 있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온종훈(논설위원)-20141126수] 엄마의 가방

 

남성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여성의 특성 중 하나가 가방, 그것도 해외 명품 백에 대한 유별난 애착이다. 그래서 '명품 백을 좋아하는 이유'라고 인터넷 검색창에 쳐봤다. 블로그 등에 나타난 첫째 답변은 "이유는 없다, 맹목적이다"였다. 또 "여자로서의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해주고 나의 가치를 업(상승)시켜준다"는 이유가 뒤따랐다. 남성의 로망인 자동차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함부로 '여자의 허영'이라고 비난하지 말라는 점잖은 일침도 덧붙어 있다.

 

"엄마에게 가방을 사드릴 예정이에요. 엄마도 이제 기대할 것 같거든요." 지난 24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시즌 최종전에서 우승을 거머쥔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가 "우승상금을 어디에 쓸 거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4차 연장까지 가는 대담한 승부를 펼친 10대 소녀가 거액의 상금(약 16억7,000만원)의 첫 사용처로 떠올린 것이 '엄마의 가방'이었다. 앞서 9월 에비앙 마스터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해 내년에 LPGA로 진출하는 김효주도 "우선 엄마에게 가방을 사드리고 나머지 돈은 아빠에게 맡기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두 10대 소녀뿐 아니라 요즘 청소년들이 어머니에게 선물하는 최고의 아이템은 '가방'이다. 그뿐만 아니다. 요즘 TV에 비친 아이돌들은 이름이 알려지고 난 후 가장 먼저 밝히는 소망이 엄마에게 가방을 사드린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하이힐을 포기한 엄마에게 가방을 선물하세요"라는 광고 문구까지 나오겠는가. 가정의 달 인터넷 쇼핑몰에서 가방을 포함한 잡화 매출이 매년 수백%씩 신장하고 있다.

 

과거에는 성공한 자녀들이 흔히 "부모에게 집을 사드리고 싶다"는 희망을 내비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혹시나 이것이 명품 백으로 대체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씁쓸한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어쨌거나 '골프 대디'나 '딸 바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엄마 못지않게 딸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있는 아빠들도 많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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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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