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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서울신문]
1. 블라인드 채용·지역할당제 민간으로 확대돼야
문재인 정부가 올 하반기부터 공공부문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전면 시행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수석·보좌관 회의를 통해 대선 공약이었던 블라인드 채용과 관련해 ‘공무원과 공공기관부터 시작하라’고 지시를 내린 것이다. 기획재정부와 행정자치부, 인사혁신처 등은 이달 중으로 관계 부처 합동의 공공부문 블라인드 실천 방안을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
블라인드 채용은 이력서에 사진과 학력, 출신지, 스펙 등을 쓰지 않도록 해 선입견과 차별적 판단 요소를 차단하고 오직 실력으로 취업의 문을 열게 하는 제도다. 지난 대선에서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4당의 공통 공약인 만큼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졸이든 고졸이든, 명문대든 지방대든 상관없이 실력으로 평가받아 공정사회로 나아가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문 대통령이 “서울에 있는 대학 출신이나 지방대 출신이 똑같은 출발선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집안 배경도 없고 명문대 출신도 아닌, 이른바 ‘흙수저’ 청년들, N포(모든 것을 포기한) 청년들에게 실력 하나로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희망을 줬다. 문 대통령이 어제 예로 든 KBS의 경우 2003년부터 5년 동안 블라인드 채용을 한 결과 지방대 출신이 3배 가까이 늘어나 실제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이 제도는 올 하반기부터 공공부문에 전면 도입되지만 민간 부문으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문 대통령 역시 “민간 쪽은 법제화되기 전까지 강제할 수는 없지만 권유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민간 기업의 채용까지 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인 만큼 자발적 참여가 중요하다. SK텔레콤 등 몇몇 대기업들이 지난 몇 년간 블라인드 채용을 한 결과 지방·비명문대 출신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도 사실이지만 강제할 일은 아니다.
지역할당제 확산 역시 의미 있는 변화다. 문 대통령은 “혁신도시 사업으로 지역으로 이전된 공공기관들이 신규 채용을 할 때 지역 인재를 적어도 30% 이상 채용해 달라”는 의지를 밝혔다. 지역할당제를 통해 지역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 국가 전체의 균형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다.
지방경제가 죽어 가는 결정적 원인이 일자리 부족이라는 점에서 시급한 현안이다. 그럼에도 공공에서 지역 인재를 35% 이상 뽑도록 하는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 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이 2104년 제정됐지만 권고에 그쳐 성과를 내지 못하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현행 권고 사항인 채용 규정을 의무 규정으로 바꾸는 작업이 시급하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무리하게 현실에 적용하면 동티가 날 수 있다. 공공부문에서 주도면밀하게 시행하면서 민간 자율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실사구시의 정신이다.
2.로스쿨 안 가도 변호사시험 볼 길 터줘야
사법시험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내일까지 치러지는 2차 시험을 끝으로 54년 만에 폐지되는 것이다. 사시 존폐를 둘러싼 논란은 오랫동안 뜨거웠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가 사시 폐지를 예정한 변호사시험법이 합헌이라고 결정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마지막 사시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그럼에도 안타까움이 크다. 애초 사시 폐지의 취지는 유능한 인재들의 ‘고시 낭인’을 막고, 법조 기수문화의 공고한 카르텔을 깨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안으로 도입된 로스쿨 체제에서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속출했다. 연간 수천만원인 학비가 서민들에게는 진입 장벽이며, 학벌과 집안이 입학과 수료 이후의 진출에 결정적인 배경이 된다는 지적이 끊임없는 논란거리였다. 입학 때 제출한 자기소개서에 부모 직업을 명시해 특혜를 누린 사례까지 드러나 공정성에 치명타를 입기도 했다. 실력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수 조건들이 당락을 결정하는 불투명한 입학 전형 때문에 현대판 음서제라는 뒷말이 따라다니는 게 현실이다.
법을 바꾸지 않는 한 내년부터는 3년 과정의 로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사람만이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있다. 로스쿨에도 물론 사회·경제적 취약 계층을 배려하는 특별전형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소수에 한정된 배려가 아니라 로스쿨 바깥에서도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변호사 자격을 얻을 수 있게 공정한 창구를 열어 달라는 사회적 요구가 여전히 높다.
대선 유세 과정에서 사시 존치를 요청하는 청년들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때) 내가 만든 정책을 내 손으로 접을 수가 없다”고 답변한 적이 있다.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약속한 대통령이라면 구멍 뚫린 제도는 겸허히 손보는 결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특목·자사고 폐지 논란이 거센데도 기회 균등의 대의를 위해 밀어붙이겠다는 것이 문 정부의 교육 철학이다. 식지 않는 사시 존치 여론에 무조건 귀를 닫아서는 모순 정책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여러 방안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논의를 시작해 볼 때다. 일본은 로스쿨 수료생이 아니어도 누구나 법조인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시험(예비시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학벌과 빈부에 상관없는 법조인 관문을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 공정사회의 징표를 만드는 작업이다.
3. 국정기획위가 통신료 내리는 반시장적 발상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어제 통신료 인하 방안을 발표했다. 선택요금 할인율을 20%에서 25%로 높이고 ‘보편 요금제’를 도입해 LTE를 기준으로 월 1만원 정도 깎아주기로 했다. 버스와 학교에 공공 와이파이 20만대를 설치해 데이터요금 부담도 덜어주기로 했다.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는 사실상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따른 요금절감 효과는 연간 약 2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소비자들은 무거운 통신비를 부담하고 있다. 무선통신비가 가계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에 가깝다. 역대 정부에서 통신료 인하를 추진한 것은 이 때문이다. 국민을 위해 유익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과연 옳은지는 곰곰 따져볼 일이다.
국정기획위는 말 그대로 자문기구다. 임기 5년 동안 추진할 정책과제를 100일 동안 선정하고 다듬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런 기구가 통신정책을 결정하고 발표하는 것은 난센스다. 이번 결정에서 통신정책 전문가들이 모인 미래창조과학부는 뒷전으로 밀려나다시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통신료 기본요금 폐지가 현실성이 없다고 한 미래부는 국정기획위에 5차례나 재보고를 해야 했다. 얼마나 현실성 없는 요구가 이루어졌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새 장관이 임명되지 않은 미래부는 선장 없는 배와 같다. 무엇이 급해 정책 결과를 책임지지 않을 자문기구가 정책을 밀어붙이는가. 이런 졸속 정책도 없다.
이번 요금 인하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한 반시장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벌써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이동통신사들은 행정소송을 불사하겠다고 했다. 이동통신 3사의 외국인 지분율이 40%를 웃돌고 있는 만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ISD(투자자국가소송제) 조항 위반으로 손해배상 청구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도 한다. 그런 만큼 이번 발표가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지도 의문이다. 아무리 대선공약이라도 충분한 검토 후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반시장적인 정책은 중장기적으로 소비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통신시장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술과 새 서비스가 등장한다. 시간이 지나면 요금 인하는 조삼모사로 변하기 십상이다. 포퓰리즘적 요금 인하에만 매달리면 또 다른 부작용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정부의 역할은 담합·불공정거래와 같은 시장질서를 무너뜨리는 불법을 뿌리뽑아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일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 정부가 이런 책무를 망각한 채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요금을 통제한 결과 지금의 암호 같은 통신요금 구조가 만들어진 게 아닌가. 근본 문제는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사탕발림 대책만 내놓는다면 후유증만 커질 뿐이다.
[세계일보]
4. ‘防産 전관예우’ 후보가 국방개혁 적임자라니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의 발탁 사유는 국방개혁이었다. 청와대는 지난 11일 송 후보자 지명을 발표하면서 “국민에게 신뢰받는 군 조직 확립 등 중장기 국방개혁을 추진할 적임자”라고 밝혔다. 당시 송 후보자의 위장전입 사실도 미리 공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직 배제 ‘5대 비리’ 원칙을 어기는 비난까지 감수하면서 국방개혁 추진을 위해 ‘송영무 카드’를 택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최근 드러난 송 후보자의 방산 관련 의혹을 보면 오히려 개혁 대상으로 전락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송 후보자는 해군참모총장 퇴임 후 2009년 1월부터 2년9개월 동안 법무법인 율촌에서 상임고문으로 근무하며 9억9000만원을 받았다. 그는 당시 제출한 겸직허가신고서에 ‘주 2일 14시간 근무, 약간의 활동비 정도만 받는다’고 썼다. 그게 월 3000만원이다. 또 2013년 7월 한 방산업체와 국방사업 관련 자문 계약을 맺어 2년6개월 동안 2억4000만원을 받았다. 이 방산업체는 그가 자문을 시작한 이후인 2014년 해군·해병 관련 사업 매출이 4371억원으로 1년 만에 3배나 급증했다고 한다. 방산 관련 업무로 12억원 이상을 벌면서 전관예우를 톡톡히 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관예우는 공정사회에 역행하는 대표적 적폐다. 2014년 안대희 총리 후보자가 전관예우 논란으로 전격 낙마한 데서 보듯 국민 반감이 엄청나다. 특히 송 후보자의 ‘방산 전관예우’는 여느 전관예우와는 차원이 다르다. 방산 업무가 국가의 안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방산비리 척결을 통한 자주국방’을 국방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고 천명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송 후보자는 해군참모총장 재직 시 발생한 ‘계룡대 납품 비리 사건’ 수사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당시 국방부 조사본부가 3억9000만원의 국고 손실을 확인한 수사 결과 보고서를 송 후보자가 결재하면서 사법처리 대신 행정조치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의 위장전입도 1건에서 4건으로 늘었다.
송 후보자는 10억원 자문료와 수사 중단 의혹에 대해 “전문지식을 설명한 데 따른 돈”, “엄정한 수사를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이 정도의 해명으로는 의혹이 해소되기는 힘들 것이다. 송 후보자 스스로 국방개혁의 적임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 돌아보라. 눈덩이처럼 불어난 의혹을 불식시키지 못한다면 자신의 거취를 놓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중앙일보]
5. 포르셰 제친 현대차와 도시바 인수한 SK에 박수를
현대자동차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가 포르셰와 메르세데스 벤츠를 제치고 ‘2017 신차품질조사(IQS)’에서 1위를 차지했다. 종합순위에서도 기아차가 1위를 차지했고 현대차 역시 상위권인 6위에 올랐다. 이들 현대차그룹 회사는 종합순위에서 BMWㆍ폴크스바겐ㆍ닛산ㆍ도요타ㆍ쉐보레 등 독일ㆍ일본ㆍ미국의 주요 경쟁 기업을 줄줄이 따돌렸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미국의 권위 있는 시장조사기관 JD파워가 어제 내놓은 것으로 현대차그룹의 제품 경쟁력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고무적이다.
이번 신차품질조사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미국 내 판매된 신차를 대상으로 구입 후 3개월이 지난 차량 고객들에게 233개 항목에 대한 품질만족도를 조사해 100대당 불만 건수를 나타낸 결과다. 이 조사에서 기아차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종합순위의 왕좌를 지켰다. 현대차는 종합순위 6위를 기록했지만 제네시스가 고급 브랜드 중 1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이뤘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자동차 판매 경쟁이 치열한 해외시장에서 경쟁하려면 고급차를 많이 팔아야 한다. 고급차는 우선 수익성이 높은 데다 일반 차종도 이 명성을 발판으로 소비자를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제네시스가 전통의 명차들을 모두 제친 것은 끊임없는 품질경영의 성과로,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현대차의 브랜드 경쟁력 제고에 힘이 된다. 부품 2만 개가 집약되는 자동차는 제조업의 총화여서 중소 부품ㆍ소재 업체 수천 개를 먹여 살린다는 점에서 완성차 업체의 경쟁력 향상은 박수를 칠 일이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의 핵심 사업인 낸드플래시 인수에 성공한 것도 희소식이다. 도시바는 투자 실패로 회사가 휘청거리자 고육지책으로 낸드플래시를 매물로 내놓았지만 기술 유출 우려 때문에 SK에 팔 가능성은 낮았다. 하지만 SK는 한ㆍ미ㆍ일 연합 인수단을 꾸려 일본 정부와 산업계의 경계심을 풀고 도시바 낸드플래시 인수에 성공했다. 이는 SK로선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고 한국 반도체산업을 추격하고 있는 대만ㆍ중국 업체를 따돌렸다는 점에서 국가 산업전략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
재벌 저격수를 자처해 온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오늘 4대 그룹과 간담회를 갖는다. 공정한 시장질서 구축을 위해 주문할 것이 있으면 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 경쟁력과 양질의 일자리는 이같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제조업에서 나온다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 된다. 우리 자동차가 해외 명차를 제치고, 반도체산업에서 전략적 투자에 성공한 것은 결국 이들 대기업이 일자리를 지키고 산업 경쟁력을 높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가동에 나선 세계 최대 평택 반도체단지는 1000개에 달하는 협력사와 상권까지 합쳐 일자리 15만 개에 영향을 미친다. 전기차 배터리 세계 1위 경쟁력을 갖춘 LG화학의 폴크스바겐 대량 공급설도 경쟁력이 있기에 나왔을 것이다. 중소기업 육성도 중요하지만 대기업의 도전과 혁신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가치들이다.
6. 부적절한 국방장관 후보자의 자문 경력
방산 유착 의혹을 받고 있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민간인 시절 고액 자문료를 받아 시험대에 올랐다. 송 후보자가 해군참모총장을 끝으로 예편한 시기는 2008년 3월이었다. 그는 한 달 뒤인 4월부터 국방과학연구소(ADD) 비상근 정책위원에 위촉됐다. 불과 3개월 뒤인 7월부터 그는 법무법인 율촌에서도 ‘국방공공계약팀’의 고문역을 맡아 겸직하게 됐는데 2년9개월 동안 받은 자문료가 9억9000만원이었다. 율촌에 겸직한 근무시간은 주 2일에 14시간이었다고 한다. 매주 이틀씩 일하고 매달 3000만원을 받았다니 일반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고액 자문료다.
큰 프로젝트에 대해 의미 있는 자문을 해 주고 고액의 대가를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송 후보자는 방산과 국방 분야의 어떤 자문과 행위를 해 줬기에 엄청난 자문료를 받았을까.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송 후보자 측은 “변호사들을 상대로 국방용어와 사업을 설명해 주는 역할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도통 석연치 않다.
그는 또 2013년 7월부터는 국내 방산업체와도 자문 계약을 맺었다. 송 후보자는 “인도네시아에 수출하는 잠수함의 전투체계 구성에 관한 자문이었다”며 “방산 수출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송 후보자가 방산업체 자문을 맡은 뒤 이 업체의 전체 수주액 가운데 해군·해병대 사업의 비중이 3배나 늘었다는 게 손금주 국민의당 의원의 주장이다. 송 후보자는 총장 시절 내부 고발자에 의해 제기된 ‘계룡대 납품 비리사건’ 수사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국내 방산업체의 비리가 수사에 의해 적발된 사례는 최근엔 거의 없다. 그러나 참모총장과 같은 고위직을 지낸 인사는 후배 장교들을 통해 구조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사업시기를 앞당긴다든지 사업의 필요성 등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송 후보자가 예편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법률회사에서 고문직을 맡고 방산업체 자문까지 한 처신은 부적절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방산 비리 척결을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성과를 낼지가 의문이다.
7. 외고·자사고, 개선 필요하지 폐지할 대상인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외국어고와 자율형사립고 폐지를 둘러싼 혼란이 극심하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등 친(親)전교조 교육감들이 폐지 움직임에 나서자 해당 학교 학부모·교장·단체들이 집단 반발했다. 자사고학부모연합회는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정권마다 뒤집히는 정책에 아이들이 실험용 생쥐가 되고 있다"며 공약 철회를 촉구했다. 학부모들은 26일 대규모 집회도 연다. 자사고 교장단과 외고교장협의회 등도 "진보 정치의 '획일적 평등' 논리로 우수 학교를 없애서는 안 된다"는 성명을 냈다.
학부모들은 특히 지도층의 이중성에 분노한다. 자기 자식은 특목고에 보내고 남의 자식은 안 된다는 '내로남불'의 위선이 드러나서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은 딸이 대원외고를 나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는데도 "설립 취지에 어긋나게 운영되고 있다"며 공약 이행을 강조했다.
진보 교육감들도 못지않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의 두 아들은 명덕·대일외고, 전교조 광주지부장 출신인 장휘국 광주교육감의 아들은 과학고를 나왔다. 조국 민정수석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교수 때 특목고 규제를 강조했는데 정작 딸은 한영외고와 이공 계열을 거쳐 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닌다.
물론 전국의 외고 31곳과 자사고 46곳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수월성·다양성 교육에 대한 수요로 일부 과잉 사교육이 발생하고, 학생 선발권이 없는 일반고가 위기인 것도 현실이다. '외국어 우수 인재 양성'이라는 외고의 30년 전 설립 취지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고, 등록금만 비쌀 뿐 일반고와 다를 바 없는 자사고도 더러 있다.
그렇다면 문제점을 개선해 외고·자사고·일반고의 경쟁력을 함께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 치밀한 대책 없이 공약에만 집착하면 일반고가 살아나기는커녕 하향 평준화를 부를 수 있다. 외고·자사고는 5년 단위 재지정 원칙을 준수해 엄격히 옥석을 가리되 좋은 학교는 더 발전시켜야 한다. 일반고에 자율권을 확대하고 고입 전형을 동시에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그 과정에서 학생·학부모 여론 수렴과 공론화 과정은 필수다. 이념과 정치 논리로만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경향신문]
8. 업계 반발로 흐지부지된 통신비 인하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22일 휴대전화 통신비 절감대책을 내놨다. 오는 9월부터 약정기간 요금 할인(선택약정 할인)율을 20%에서 25%로 높이고, 기초연금을 받는 노년층과 저소득층에게 기본료에 해당하는 1만1000원을 감면해주는 게 골자다. 또 월 2만원대의 ‘보편적 데이터 요금제’ 도입, 지하철·버스, 학교 등에 공공 와이파이 구축 확대 등을 중장기 과제로 추진키로 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기본료 폐지는 이동통신업계의 거센 반발로 무산됐다.
통신비 인하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치만 한껏 높여 놓고,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대책을 내놨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국정기획위가 주무부처인 미래부의 보고를 4차례나 퇴짜를 놓은 뒤 내놓은 통신비 절감대책치고는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게다가 기본료 폐지를 공언했다가 업계에 굴복한 모양새여서 정책실현 의지가 부족하다는 의구심마저 든다.
국정기획위는 당장 적용할 수 있는 대상이 제한된 기본료를 폐지하지 않고, 약정기간 요금 할인율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료가 있는 2G와 3G 이용자의 기본료를 폐지하면 전체 가입자의 84%를 차지하는 4G(LTE) 이용자가 제외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약정기간 요금 할인은 소비자가 단말기 보조금을 받지 않는 대신 매달 내는 통신비에서 보조금에 상응하는 요금을 할인받는 제도다. 보조금을 받고 단말기를 구입한 소비자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약정기간 요금 할인율을 높이는 것과 더불어 ‘보편적 데이터 요금제’ 도입을 의무화하면 기본료 폐지에 버금가는 통신비 인하 효과를 낼 수 있는데도 국정기획위는 이를 중장기 과제로 돌렸다.
한국의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통신비는 14만4000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 견줘 매우 높은 편이다. 특히 스마트폰 가격이 날로 치솟는 상황에서 이통사들이 단통법 시행으로 줄어든 마케팅 비용을 제대로 돌려주지 않아 소비자 부담은 더욱 커졌다. 그럼에도 이통사들은 정부가 민간기업의 상품 가격을 통제하는 것은 반(反)시장적 정책이라며 법적 대응도 불사할 태세다.
통신비 인하 못지않게 이통시장 구조를 바로잡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정부는 단말기 제조사의 보조금과 이통사의 요금 할인액을 구분해 표기하는 분리공시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또 5 대 3 대 2로 시장점유율이 고착화된 이통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춰 제4의 이통사를 선정하는 등 경쟁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경쟁이 사라진 이통시장에선 소비자 편익을 고려한 조치보다 요금 담합이 성행할 수밖에 없다. 과감한 이통시장 개혁이 절실하다.
[한국일보]
9. '호식이 방지법' 조속 처리로 영세 가맹점 눈물 닦아 줘야
프랜차이즈 본사 경영진의 잘못으로 영세 가맹점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실추된 브랜드 이미지가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으로 이어져 가맹점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하지만 가맹점이 제대로 보상이나 배상을 받을 수 있는 보호장치가 전무해 대책 마련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치킨 프랜차이즈 ‘호식이 두마리치킨’ 최호식 전 회장이 여비서를 성추행한 혐의로 입건되자 전국적으로 불매운동이 벌어져 가맹점이 직격탄을 맞았다. 상당수 가맹점은 매출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반토막 났다고 한다. 프랜차이즈 오너의 추문으로 인한 가맹점의 피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4월에는 미스터피자 운영사인 MP그룹 정우현 회장의 ‘경비원 폭행’ 사건으로 가맹점이 줄줄이 문을 닫는 사태가 벌어졌다. 가맹점 60곳이 폐업하고 매출도 30% 이상 감소했다는 게 점주들의 주장이다. 떡볶이 프랜차이즈 ‘아딸’도 창업자 부부의 이혼으로 상표권 분쟁에 휘말려 가맹점이 피해를 보고 있다.
문제는 프랜차이즈 경영진의 일탈로 가게 문을 닫거나 매출이 떨어져도 피해보상 등의 별도 보호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가맹점 계약이 본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돼 있어 ‘갑의 이미지 실추 책임’과 관련한 규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현행법에도 가맹본부나 경영진의 영업외적 행위로 가맹점이 피해를 보더라도 별다른 구제방법이 명시돼 있지 않다.
가맹점주들이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낼 수는 있지만 피해 사유를 명확히 입증해 내기가 쉽지 않아 승소 가능성이 거의 없다. 더구나 을의 입장인 점주들로서는 재계약 문제가 걸려 있어 제대로 항의조차 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김관영 의원 등 국회의원 15명이 지난 20일 일명 ‘호식이 방지법’(가맹사업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것은 의미가 있다. 개정안에는 프랜차이즈 본사와 경영진의 브랜드 이미지 실추행위 금지 의무조항이 신설되고, 이들의 잘못으로 가맹점주들의 손해가 발생했을 경우 본사의 배상책임을 계약서에 명기하도록 했다.
국회는 법안 심의를 앞당겨 영세 자영업자인 가맹점주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 김상조 위원장 취임 후 골목상권과 경제적 약자 보호 정책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도 행정력을 총동원해 가맹점 보호조치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오너 리스크’를 경영자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고 나 몰라라 할 게 아니라 점주들의 피해 보상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10. 한국당, 대승적 차원에서 민생 추경 논의에 참여하길
여야 4당 원내대표가 22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 이후 파행을 겪어온 6월 임시국회 정상화를 위해 회동했으나 최종 합의에 실패했다. 전날 물밑 협상에서 사실상 합의문 초안을 마련한 상태여서 정상화 타결에 대한 기대가 높았으나, 자유한국당이 ‘추경 문제는 계속 논의한다’는 합의문 표현을 끝까지 반대해 협상이 결렬됐다. 한국당은 7월 임시국회 개회 때 조국 민정수석을 출석시키는 문제를 놓고도 여당과 충돌했다.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회동 후 “추경은 국가재정법이 정한 요건이 되지도 않고 내일모레면 관둘 장관을 상대로 추경 정책질의를 하는 것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가 “한국당은 ‘국정농단당’”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한국당 입장에 변화가 없을 경우 국민의당, 바른정당과 다음주부터 추경 심사에 들어간다는 방침이어서 당분간 국회 파행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여당은 11조2,000억원 규모의 일자리 추경안을 빨리 통과시키기 위해 야당의 협조를 요청해왔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이번 추경안이 법률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면서도 국회 논의에는 나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국당 정 원내대표는 “세금으로 공무원을 1,500명 증원한다는 것은 도저히 받을 수 없는 내용”이라며 추경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한국당은 추경안과 맞물려 있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에도 부정적이다. 다만, 인사청문회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국회 발목잡기라는 비난을 피하려는 궁여지책으로 보인다.
일자리 추경안은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 추진하는 공약이다. 문 대통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에서 추경 연설을 하며 야당의 동참을 호소했던 것도 일자리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세 차례 추경안은 법적 논란에도 모두 통과됐다. 일자리 추경안이 영 못마땅하다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 된다. 논의조차 안 하겠다는 건 국민의 절박한 민생 요구를 외면하는 것이다.
한국당은 대승적인 차원에서 국회 정상화에 협력해야 한다. 반년 이상 국정공백을 초래한 책임이 있는 한국당이 새 정부 출범 초부터 탄핵을 입에 올리는 등 막말과 폭언, 발목잡기로 일관한다면 국민의 지탄을 피하기 어렵다. 국민의당, 바른정당도 국정 운영의 한 축으로서 국민이 부여한 야당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여권 또한 국회 파행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야당을 포용하며 협치와 상생의 정치를 이뤄낼 주된 책임은 여권에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요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윤제림의 행인일기] 병원에서
시인 이백(李白)이 그의 시 '장진주(將進酒)'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덩그런 집 속/거울과 마주앉아 백발을 슬퍼함을!/아침에 푸른 실 같던 머리,/저녁엔 눈이 하얗게 내렸어라'. 군불견(君不見) … 조여청사모성설(朝如靑絲暮成雪). 이 대목에서 독자는 두 부류로 나뉩니다.
'무슨 헛소리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과 '옳거니! 과연 이태백이다!' 하면서 무릎을 치는 사람. 앞쪽에 가깝다면 청년입니다. 후자라면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선 나이겠지요. 장강(長江)의 물결이 한 번 바다로 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음을 깨달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마시자!' 콜롬비아 대학 출판부가 영어로 옮긴 이 시의 제목은 더 적나라합니다. "Bring the Wine!" 거나하게 취한 사나이의 얼굴이 보입니다. 그가 외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술 가져와!" 누구겠습니까. 한 번에 삼백 잔은 마셔야 한다고 쓴 사람, 이백입니다.
인생의 '덧없음'과 허락된 시간의 소중함을 생각합니다. 뜬금없이 어떤 상호(商號)를 떠올립니다. 멋대로 지어봅니다. '장안주점(長安酒店)' 혹은 '황하반점(黃河飯店)'. 술집이나 밥집이 아니라, 호텔입니다. 중국은 호텔을 그렇게들 부르지요. 거기에 가까운 이들을 불러놓고, 여러 날 함께 먹고 자면서 향연을 펼치고 싶습니다.
호화롭지도 사치스럽지도 않은 곳입니다. 로비도 연회장도 정갈하고 소박합니다. 아무 것도 꾸미지 않았는데 아름답고 그윽합니다. 홀 가운데엔 커다란 술통이 하나 놓여있습니다. 이태백 같은 주당들 열두어 명이, 밤새 마셔도 바닥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크기입니다.
만병통치의 '술 샘(酒泉)'입니다. 몸에 좋은 것은 맛이 없게 마련이지만, 이 술은 예외입니다. 마실 때마다 새로운 맛이, 자꾸 새 잔을 채우게 합니다. 과음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 잔이나 삼백 잔이나 취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춤추고 노래하면서 술을 마십니다. 인생의 행복을 몸으로 느끼면서 잔을 비웁니다.
미래의 병원은 호텔과 다름없을 것이라지요. 아픈 사람들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이 모여서 더 복된 삶을 설계하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지금 이곳을 생각하면,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여기는 병원입니다. 제가 아픈 것은 아닌데, 요즘 저는 병원 출입이 잦습니다. 아픈 식구가 둘입니다.
이웃에 사는 선배의 이야기가 자꾸 생각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인체에도 '내구연한(耐久年限)'이 있다. 60년쯤 된다. 우리 몸은 그 정도 세월에 견디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 이상 쓰려면 겸허한 마음으로, 살살 달래가며 써야 한다. 보증기간을 훨씬 넘긴 물건에서 어찌 신제품의 성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제 가족들이 병원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수리(修理)'가 빈번해질 수밖에 없는 육신들이니까요. 특히, 여든 세 해나 쓴 몸은 이제 더 이상 고쳐 쓰기도 힘들답니다. 의사의 이야기를 나름대로 해석해보니 이런 뜻으로 읽혔습니다. "이제 그만 쓰시지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더러 '그만 쓰라'고? 그렇다. 세상에 어떤 물건이 저절로 못쓰게 되랴. 쓴 사람 잘못이다. '가족'이란 물건의 사용자는 다른 가족들 모두 아닌가. 어느 식구의 몸이 제 홀로 망가지랴. 모두의 책임이다. 막 쓰고 함부로 취급한 탓이다. 험하게 다루고 무심하게 버려둔 결과다."
우리는 누군가를 환자로 만듭니다. 가족과 친척, 친구와 이웃을 아프게 합니다. 귀찮게 하고, 애간장을 녹이고, 끼니를 거르게 하고, 고약한 숙제를 안기고, 시험에 들게 하고, 약점을 흔들고, 급소를 건드리고 …. 그리하여, 한 사람과 관계있는 모든 사람이 한 사람을 병들게 합니다.
병상을 지키는 보호자들과 면회객의 절반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면식범(面識犯)'. 아침에 '푸른 실'처럼 빛나던 머리를, 저녁에 '백발'이 되게 한 용의자들입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릴 수밖에요. 병원에 들어서면, 경찰에 연행된 범죄자처럼 오금이 저립니다. 의사와 간호사가 형사로 보이고, 각종 서식들이 취조문서처럼 보입니다.
미래의 병원에 가보고 싶습니다. 호텔을 닮은 병원 말입니다. 세상 모든 병원이 간판을 내리고, 일제히 호텔로 바뀌는 날을 기다려봅니다. 너무 아파서, 도망치듯이 하늘로 간 동화작가 정채봉 형이 꿈꾸던 세상입니다. 그의 시 '노란 손수건'에 담긴 마음 풍경입니다.
"병실마다 밝혀있는 불빛을 본다/환자들이 완쾌되어 다 나가면/저 병실의 불들은 꺼야 하겠지//감옥에 죄수들이 없게 되면/하얀 손수건을 건다던가/병실에 환자들이 없게 되면/하늘색의 파란 손수건을 걸까//아니,/ 내 가슴속 미움과 번뇌가/다 나가서 텅 비게 되면/노란 손수건을 올릴까 보다"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을 닮은 병원, '장안주점'이나 '황하반점'에도 노란 깃발이 나부낄 것만 같습니다.
2. [경향신문][먹거리 공화국] 프랜차이즈 계약서 제대로 읽기
혹했다. “월 매출 3000만원이면 원가 750만원에 순수익 750만원 정도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750만원을 살뜰히 굴려 희망찬 미래를 점쳐보았다. 다만 3억원에 육박하는 창업비용은 사실 은행에 기대야 하고 순수익에서 대출이자와 원금 갚고 가족들 건사도 해야 한다. 간신히 창업비용을 마련했다손 쳐도 좋은 가게 자릿세는 이미 천정부지. 무엇보다 월 매출 3000만원이 어디 그리 쉬운가. 한여름밤의 꿈이다.
카페 창업설명회는 치킨점 창업설명회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치킨은 뭐랄까, 퍽퍽한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모 브랜드 카페 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은 노트북을 꺼내들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아마 카페 운영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곁다리로 카페 운영을 해본 적이 있어서 귀동냥 정도는 하지만 그들의 질문은 차원이 달랐다.
종종 외식업 설명회나 박람회에 들러보곤 한다. 연구자로서, 가끔은 정말 노후 고민 때문에 말이다. 이날은 토종 브랜드를 내세우며 한때 승승장구하던 모 카페 프랜차이즈 설명회였다. 무리한 사업 확장과 부실 경영으로 오너가 회사를 넘기고 전문경영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이제 오너는 외국계 펀드다. 자본잠식 등 어려운 사정이 많이 알려져 있어 과한 프로모션 없이 그저 제2의 도약 계획을 밝히는 정도였지만 우리 모두의 머릿속에는 오직 이것뿐. ‘3000만원 벌 수 있을까?’
전체 자영업의 외식업 비율은 약 10%로 잡지만 실제로는 20%에 육박한다. 한편 등록된 프랜차이즈 가맹 브랜드 5300개 중 76%가 외식업종이다. 프랜차이즈 산업은 곧 음식산업이다. 그만큼 프랜차이즈의 분쟁은 외식업 분쟁인데, 회사끼리의 분쟁도 많고 본사와 가맹점 간 분쟁은 더 많다.
분쟁 유형은 다양하지만 계약서상 ‘갑’이고 진짜 갑이기도 한 가맹본부(본사)의 갑질 분쟁이 많다. 영업권 축소와 계약해지 통보와 리뉴얼 강요, 판촉비 전가 등이 대표적이다. 그중 영업권 축소란 신규 출점을 하려고 기존의 영업권 거리를 좁힌다는 것이다. 동일 브랜드 지근거리 출점은 상권 침해다. 가맹점주들에게 상권은 곧 생명권이다. 하지만 본사는 기존 가맹점의 매출 확대보다는 신규 출점으로 일시불을 당기려 한다.
5년 계약을 보장한다면서도 실제로 계약서 조항에는 해마다 계약 갱신을 요구한다. 일종의 충성맹세인 셈이다. 가게를 차려놓은 마당에 접을 수도 없으니 본사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다. 종종 원부자재 밀어내기와 중단이라는 방식이 등장한다.
프랜차이즈 가맹계약서는 공정거래위의 ‘표준가맹계약서’ 양식을 따른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본사들은 양식만 가져다 쓸 뿐, 독소조항은 곳곳에 있다. 의무조항은 많고 권리조항은 취약한 프랜차이즈의 가맹계약서부터 불행은 시작된다. 가맹거래사나 변호사에게 문의하라며 또 돈 드는 소리만 해댈 뿐.
‘호식이두마리치킨’의 최호식 회장이 경찰서에서 ‘폴더 사과’를 했다. 추잡한 성추행 사건은 가족들이 함께 즐겨먹는 치킨 이미지에 큰 타격을 안겨주었다. 최호식씨야 회장에서 물러나지만(주식은 갖고 있죠?), 간판 걸고 영업하는 가맹점들은 어쩌란 말인가. 반짝 2주 할인행사로 넘겨보려 하지만 2년도 아니고 2주 정도로 회복이 될 리 만무하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의 표준가맹계약서에는 눈 씻고 찾아봐도 ‘오너 리스크’에 따른 가맹점주 피해에 대한 보상 조항은 없다. 의무만 나부끼고 권리는 약한 가맹계약서 자체가 불공정의 실체다.
3. [경향신문][여적] 사우디 왕자
사우디아라비아는 왕족의 천국이다. ‘인구 1700만명에 왕족만 3만명에 이른다’는 비아냥이 인구에 회자된다. 이들은 한 달에 2만~27만달러의 왕족수당까지 받고 있다. 이런 금수저가 없다. 그중 순수왕족은 4000~7000명에 달한다.
사우디 왕족은 18세기 중반 사우디 1차 왕국을 건설한 무함마드 빈 알 사우드(재위 1744~1765)의 후손들이다. 그러나 왕족이라고 다 같은 왕족은 아니다. 1932년 사우디 왕국을 건국한 압둘 아지즈의 후손이어야 ‘왕자 중 왕자’다. 약 17명의 여인과 결혼한 압둘 아지즈는 왕자만 50~60명을 낳았다. 이름에는 예외 없이 ‘사우드 가문의 압둘 아지즈의 아들’이라는 뜻인 ‘빈 압둘 아지즈 알 사우드’가 붙는다.
이게 다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핵심그룹이 또 있다. 바로 압둘 아지즈의 부인들 중에 핫사 빈트 알 수다이리라는 여인이 낳은 아들 7명이다. 수다이리는 압둘 아지즈 국왕의 8번째이자 가장 사랑한 부인으로 알려져 있다. ‘수다이리 7형제’ 중에서 국왕이 2명이나 배출됐다. 파드(첫째·재위 1985~2005)와 살만(여섯째·2015~) 국왕이다. 왕위는 원래 형제승계가 원칙이었다. 그런데 1992년 ‘압둘 아지즈의 직계 아들과 자손’으로 규정을 바꿈으로써 왕위승계의 범위를 넓혔다.
엊그제 살만 국왕은 기존의 왕위 계승자였던 조카(58)를 밀어내고 자신의 아들(31·무함마드)을 왕세자로 교체했다. 물론 수다이리 가계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대목에서 1100년 전에 고려 태조 왕건이 내린 훈요 10조 중 제3조가 떠오른다. ‘맏아들 승계가 원칙이지만 맏아들이 어리석으면 인망 있는 아들로 바꾸라’는 당부였다. 제 아무리 절대 왕정의 시대였다 해도 왕위계승의 으뜸 덕목은 아들·형제가 아니라 ‘인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우디의 왕위계승조건에도 역시 ‘가장 고결한 인물’이라는 단서는 붙어 있다. 그러나 ‘사우디 왕자’의 느낌은 좋은 편이 아니다. 아직까지도 석유를 뒤집어쓴 졸부의 냄새가 강하다. 여기에 인권탄압과 왕족끼리 다 해먹는다는 지독한 부패까지 겹쳐 있다. 사촌형을 밀어내고 후계자가 된 무함마드 왕세자의 사우디는 어떤 모습일까. 세계는 예멘을 공격하고, 카타르를 봉쇄하면서 대이란 강경책을 이끈 31살 왕세자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4. [경향신문][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가해와 피해, 뻔하지 않은 윤리학
가해자의 날이 있다면 어떨까? 우리는 다행히도 대개 분별 있는 관찰자이기 때문에 꽤나 합리적으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판단한다. 보이지 않는 손을 주창한 애덤 스미스는 먼저 분별 있는 관찰자로서의 인간을 믿었다. 법이 아니라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상식이라는 분별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도덕감정을 기반으로 해서 인류는 보편적인 윤리와 도덕을 마련한다.
타인들과 특별한 이해관계를 갖지 않을 때, 그 분별력은 더욱 공정해진다. 그래서 대개 사람들은 피해자들에게 공감을 하고, 위로를 건네고, 격려를 보탠다. 최근에 벌어진 한 사립 초등학교의 폭력 사태만 해도 그렇다. 네 명의 아이가 해를 가했고, 한 명의 아이가 해를 입었다. 그런데,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가 없다. 여론이 들끓었다. 분별 있는 관찰자로서 사람들은 공평한 처사를 요구했다.
그 누구도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나와 관계없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일에 관심을 갖고 진지하게 참여하곤 한다. 세상이 조금씩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누군가는 그 특정한 가해자의 편에 서기도 한다. 이때 활용되는 논리 중 하나는 그 가해자도 ‘어린이’이며, 이런 논란으로 인해 사건과 관계없는, 같은 초등학교의 선량한 다수가 피해를 입고 있다는 식이다. 심지어, 피해자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음모론까지 들린다.
그런데, 이런 논리들은 이미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피해자의 경험을 나와 무관한 ‘일회적 사고’로 만들고 가해자의 폭력을 인간적 실수로 환원하는 것, 우리는 지금껏 수많은 사건들이 이런 식으로 희석되는 순간들을 목격해왔다. 그래서 엉뚱한 생각이 든 것이다. 가해자임이 분명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누가 더 억울한지 서로에게 고변하도록 해보면 어떨까? 가해자들끼리 모여서, 네가 더 나쁘다 넌 좀 억울하겠다와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게 하면 어떨까? 아마 서로 자기만 억울하고, 다른 가해자들은 뻔뻔하다며 더 호되게 비난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 말이다.
폴 버호벤 감독의 <엘르>는 그런 점에서 피해자와 그들에게 쏟아지는 다양한 시선의 폭력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 미쉘(이자벨 위페르)은 어느 날 갑자기 복면을 쓴 괴한에게 폭행을 당한다. 그런데, 이 여성의 다음 행동이 놀랍다. 미쉘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스스로 폭행범과 맞서고자 한다.
무섭지도 않을까 싶지만, 사실 이미 그녀는 세상이 피해자를 어떤 방식으로 한 번 더 가해하는지 경험한 바 있다. 열한 살 소녀였던 시절, 미쉘은 아버지의 엽기적인 살인으로 세상에 무차별적으로 두드려 맞은 경험이 있다. 그녀 역시 피해자였지만 아무도 그녀를 피해자로 보아주지 않았다. 살인자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감독이 미쉘이라는 인물을 그려나가는 방식이다. 미쉘은 여러 면에서 그렇게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이지 않다. 게임 회사 대표인 그녀는 더 잔인하고 선정적인 게임을 만들어내라고 조직원들을 닦달한다. 남자 직원들을 다루는 모습을 보자면 마초적인 남성 상사 그 이상이다. 심지어 미쉘은 오랜 친구를 속이고 그 남편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 그거로도 모자라,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이웃집 부부를 초대해놓고는 식탁 아래로 발을 뻗어 그 이웃을 유혹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웃집을 훔쳐보며 음란한 상상을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미쉘이 그렇다고 해도, 대낮에 복면을 쓰고 침입한 괴한에게 맞고 유린당해도 되는 것인가? 불륜을 저지르니 독실한 가톨릭 신자에게 성폭행을 당해 마땅한가? 다시 말해, 그녀가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적 삶과 다르게 산다고 해서 미쉘이 폭력의 희생자라는 사실이 바뀌는가 말이다. 당연히 그렇지 않다. 미쉘이 어떤 사람이든 간에 그녀는 대낮에 자신의 응접실에 있다가 괴한에게 폭행을 당한 희생자가 맞다. 개인의 도덕과 윤리의 영역에서의 염결성 문제와 피해, 가해의 문제는 엄격히 분리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피해 여부와 관련 없는 문제들을 동원해 사실을 흐리고, 피해자들을 엉뚱한 방식으로 괴롭히곤 한다. 만일, 미쉘이 공공의 권력에 기대, 말하자면 경찰에 신고하고 그래서 다수의 언론에 보도되었더라면, 선정적인 게임을 만드는 사업자이자 불륜을 저지르는 여성이라는 사실이 그녀의 피해 여부와 무관하게 다뤄질 수 있었을까? 혹시나 피해 사실은 어느새 잊혀지고 피해자의 과거사와 도덕성에 대한 여론만 들끓지는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런 피해자들을 이미 보아왔다. 가령, 어떤 사람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울분에 대해 더 많은 합의금을 원한다는 모욕적 발언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세월호 유족들을 향해 개인적 사고에 불과하며 그 사고를 통해 사적 이익을 얻으려 한다는 망언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혼을 하고, 어떤 사람은 실직자라는 식의 매우 사적인 삶의 영역을 끌고 와 피해 사실과 섞어 그 경계를 흐리게 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분별력 있는 관찰자로서의 자리를 포기하고 진실과 무관한 편견들을 폭력으로 둔갑시키고 있는 것이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국제 과부의 날
쓸 때마다 머뭇거려지는 단어 중 하나가 ‘과부’(寡婦)다. 국어사전은 “남편을 잃고 혼자 사는 여자”라고 풀이하고 있지만, 한자어 뜻풀이로 보면 “결핍된 지어미(아내)”란 의미다. 쓰기 머뭇거려지는 까닭은 아마, 의미 자체보다는 단어를 더럽혀 온 어떤 문맥과 거기서 비롯된 꺼림칙한 뉘앙스 때문일 것이다.
같은 의미로 쓰이는 ‘미망인’(未亡人)이 있지만, 거기에는 ‘(남편을 따라 죽어야 하는데) 아직 죽지 않은 여자’라는 아연한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렇다고 ‘배우자와 사별한 여성의 날’이라고 풀어 말하기도 그래서, 그냥 과부의 날이라 쓴다.
국제 과부의 날은 2010년 유엔이 정했다. 앞서 인도 펀잡 지방 출신 기업인 라즈 룸바(Raj Loomba, 1943~)가 과부로 그를 포함한 7남매를 기른 어머니를 기려 2005년 영국에서 ‘룸바 재단’을 설립했다. 과부와 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불의를 세상에 알려 그들을 도울 길을 찾자는 취지였다.
그의 어머니는 37세에 과부가 되면서 온갖 사회ㆍ경제적 차별과 가난에 허덕여야 했다고 한다. “내 할머니는 젊은 어머니에게 반지 등 장신구를 벗고 빈디(기혼여성의 표식으로 이마에 찍는 점)를 지우게 한 뒤 애도의 의미로 오직 흰 옷만 입게 했다. 내 아버지의 숨이 멎던 날, 개인으로서의 어머니의 삶도 멎었다”고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과부뿐 아니라 싱글맘과 편모 가정 등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차별은 인도나 그의 어머니만의 문제는 아니다. 재단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세계에는 2억5,900만 명의 과부가 5억8,500만 명의 자녀를 양육하고 있다. 그 가운데 과부 1억1,500만 명이 가난 때문에 생존을 위협 당한다.
그의 재단 활동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면서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부인 체리 블레어(Cherie Blair)와 가봉의 퍼스트 레이디 실비아 봉고 온딤바(SylviaBongo Ondimba)가 캠페인에 동조했고, 유엔이 움직였다. 현 재단 회장이 체리 블레어다. 체리의 공을 칭송하는 인도 현지 신문의 한 기사에는, 하지만 이런 댓글도 달려 있다. “이라크를 가장 과부가 많은 나라로 만든 책임이 그의 남편에게 있는데, 그가 재단 회장이라고?”
주요신문사설
[서울신문]
1. 블라인드 채용·지역할당제 민간으로 확대돼야
문재인 정부가 올 하반기부터 공공부문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전면 시행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수석·보좌관 회의를 통해 대선 공약이었던 블라인드 채용과 관련해 ‘공무원과 공공기관부터 시작하라’고 지시를 내린 것이다. 기획재정부와 행정자치부, 인사혁신처 등은 이달 중으로 관계 부처 합동의 공공부문 블라인드 실천 방안을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
블라인드 채용은 이력서에 사진과 학력, 출신지, 스펙 등을 쓰지 않도록 해 선입견과 차별적 판단 요소를 차단하고 오직 실력으로 취업의 문을 열게 하는 제도다. 지난 대선에서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4당의 공통 공약인 만큼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졸이든 고졸이든, 명문대든 지방대든 상관없이 실력으로 평가받아 공정사회로 나아가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문 대통령이 “서울에 있는 대학 출신이나 지방대 출신이 똑같은 출발선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집안 배경도 없고 명문대 출신도 아닌, 이른바 ‘흙수저’ 청년들, N포(모든 것을 포기한) 청년들에게 실력 하나로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희망을 줬다. 문 대통령이 어제 예로 든 KBS의 경우 2003년부터 5년 동안 블라인드 채용을 한 결과 지방대 출신이 3배 가까이 늘어나 실제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이 제도는 올 하반기부터 공공부문에 전면 도입되지만 민간 부문으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문 대통령 역시 “민간 쪽은 법제화되기 전까지 강제할 수는 없지만 권유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민간 기업의 채용까지 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인 만큼 자발적 참여가 중요하다. SK텔레콤 등 몇몇 대기업들이 지난 몇 년간 블라인드 채용을 한 결과 지방·비명문대 출신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도 사실이지만 강제할 일은 아니다.
지역할당제 확산 역시 의미 있는 변화다. 문 대통령은 “혁신도시 사업으로 지역으로 이전된 공공기관들이 신규 채용을 할 때 지역 인재를 적어도 30% 이상 채용해 달라”는 의지를 밝혔다. 지역할당제를 통해 지역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 국가 전체의 균형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다.
지방경제가 죽어 가는 결정적 원인이 일자리 부족이라는 점에서 시급한 현안이다. 그럼에도 공공에서 지역 인재를 35% 이상 뽑도록 하는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 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이 2104년 제정됐지만 권고에 그쳐 성과를 내지 못하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현행 권고 사항인 채용 규정을 의무 규정으로 바꾸는 작업이 시급하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무리하게 현실에 적용하면 동티가 날 수 있다. 공공부문에서 주도면밀하게 시행하면서 민간 자율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실사구시의 정신이다.
2.로스쿨 안 가도 변호사시험 볼 길 터줘야
사법시험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내일까지 치러지는 2차 시험을 끝으로 54년 만에 폐지되는 것이다. 사시 존폐를 둘러싼 논란은 오랫동안 뜨거웠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가 사시 폐지를 예정한 변호사시험법이 합헌이라고 결정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마지막 사시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그럼에도 안타까움이 크다. 애초 사시 폐지의 취지는 유능한 인재들의 ‘고시 낭인’을 막고, 법조 기수문화의 공고한 카르텔을 깨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안으로 도입된 로스쿨 체제에서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속출했다. 연간 수천만원인 학비가 서민들에게는 진입 장벽이며, 학벌과 집안이 입학과 수료 이후의 진출에 결정적인 배경이 된다는 지적이 끊임없는 논란거리였다. 입학 때 제출한 자기소개서에 부모 직업을 명시해 특혜를 누린 사례까지 드러나 공정성에 치명타를 입기도 했다. 실력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수 조건들이 당락을 결정하는 불투명한 입학 전형 때문에 현대판 음서제라는 뒷말이 따라다니는 게 현실이다.
법을 바꾸지 않는 한 내년부터는 3년 과정의 로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사람만이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있다. 로스쿨에도 물론 사회·경제적 취약 계층을 배려하는 특별전형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소수에 한정된 배려가 아니라 로스쿨 바깥에서도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변호사 자격을 얻을 수 있게 공정한 창구를 열어 달라는 사회적 요구가 여전히 높다.
대선 유세 과정에서 사시 존치를 요청하는 청년들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때) 내가 만든 정책을 내 손으로 접을 수가 없다”고 답변한 적이 있다.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약속한 대통령이라면 구멍 뚫린 제도는 겸허히 손보는 결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특목·자사고 폐지 논란이 거센데도 기회 균등의 대의를 위해 밀어붙이겠다는 것이 문 정부의 교육 철학이다. 식지 않는 사시 존치 여론에 무조건 귀를 닫아서는 모순 정책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여러 방안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논의를 시작해 볼 때다. 일본은 로스쿨 수료생이 아니어도 누구나 법조인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시험(예비시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학벌과 빈부에 상관없는 법조인 관문을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 공정사회의 징표를 만드는 작업이다.
3. 국정기획위가 통신료 내리는 반시장적 발상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어제 통신료 인하 방안을 발표했다. 선택요금 할인율을 20%에서 25%로 높이고 ‘보편 요금제’를 도입해 LTE를 기준으로 월 1만원 정도 깎아주기로 했다. 버스와 학교에 공공 와이파이 20만대를 설치해 데이터요금 부담도 덜어주기로 했다.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는 사실상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따른 요금절감 효과는 연간 약 2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소비자들은 무거운 통신비를 부담하고 있다. 무선통신비가 가계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에 가깝다. 역대 정부에서 통신료 인하를 추진한 것은 이 때문이다. 국민을 위해 유익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과연 옳은지는 곰곰 따져볼 일이다.
국정기획위는 말 그대로 자문기구다. 임기 5년 동안 추진할 정책과제를 100일 동안 선정하고 다듬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런 기구가 통신정책을 결정하고 발표하는 것은 난센스다. 이번 결정에서 통신정책 전문가들이 모인 미래창조과학부는 뒷전으로 밀려나다시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통신료 기본요금 폐지가 현실성이 없다고 한 미래부는 국정기획위에 5차례나 재보고를 해야 했다. 얼마나 현실성 없는 요구가 이루어졌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새 장관이 임명되지 않은 미래부는 선장 없는 배와 같다. 무엇이 급해 정책 결과를 책임지지 않을 자문기구가 정책을 밀어붙이는가. 이런 졸속 정책도 없다.
이번 요금 인하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한 반시장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벌써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이동통신사들은 행정소송을 불사하겠다고 했다. 이동통신 3사의 외국인 지분율이 40%를 웃돌고 있는 만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ISD(투자자국가소송제) 조항 위반으로 손해배상 청구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도 한다. 그런 만큼 이번 발표가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지도 의문이다. 아무리 대선공약이라도 충분한 검토 후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반시장적인 정책은 중장기적으로 소비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통신시장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술과 새 서비스가 등장한다. 시간이 지나면 요금 인하는 조삼모사로 변하기 십상이다. 포퓰리즘적 요금 인하에만 매달리면 또 다른 부작용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정부의 역할은 담합·불공정거래와 같은 시장질서를 무너뜨리는 불법을 뿌리뽑아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일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 정부가 이런 책무를 망각한 채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요금을 통제한 결과 지금의 암호 같은 통신요금 구조가 만들어진 게 아닌가. 근본 문제는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사탕발림 대책만 내놓는다면 후유증만 커질 뿐이다.
[세계일보]
4. ‘防産 전관예우’ 후보가 국방개혁 적임자라니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의 발탁 사유는 국방개혁이었다. 청와대는 지난 11일 송 후보자 지명을 발표하면서 “국민에게 신뢰받는 군 조직 확립 등 중장기 국방개혁을 추진할 적임자”라고 밝혔다. 당시 송 후보자의 위장전입 사실도 미리 공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직 배제 ‘5대 비리’ 원칙을 어기는 비난까지 감수하면서 국방개혁 추진을 위해 ‘송영무 카드’를 택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최근 드러난 송 후보자의 방산 관련 의혹을 보면 오히려 개혁 대상으로 전락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송 후보자는 해군참모총장 퇴임 후 2009년 1월부터 2년9개월 동안 법무법인 율촌에서 상임고문으로 근무하며 9억9000만원을 받았다. 그는 당시 제출한 겸직허가신고서에 ‘주 2일 14시간 근무, 약간의 활동비 정도만 받는다’고 썼다. 그게 월 3000만원이다. 또 2013년 7월 한 방산업체와 국방사업 관련 자문 계약을 맺어 2년6개월 동안 2억4000만원을 받았다. 이 방산업체는 그가 자문을 시작한 이후인 2014년 해군·해병 관련 사업 매출이 4371억원으로 1년 만에 3배나 급증했다고 한다. 방산 관련 업무로 12억원 이상을 벌면서 전관예우를 톡톡히 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관예우는 공정사회에 역행하는 대표적 적폐다. 2014년 안대희 총리 후보자가 전관예우 논란으로 전격 낙마한 데서 보듯 국민 반감이 엄청나다. 특히 송 후보자의 ‘방산 전관예우’는 여느 전관예우와는 차원이 다르다. 방산 업무가 국가의 안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방산비리 척결을 통한 자주국방’을 국방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고 천명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송 후보자는 해군참모총장 재직 시 발생한 ‘계룡대 납품 비리 사건’ 수사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당시 국방부 조사본부가 3억9000만원의 국고 손실을 확인한 수사 결과 보고서를 송 후보자가 결재하면서 사법처리 대신 행정조치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의 위장전입도 1건에서 4건으로 늘었다.
송 후보자는 10억원 자문료와 수사 중단 의혹에 대해 “전문지식을 설명한 데 따른 돈”, “엄정한 수사를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이 정도의 해명으로는 의혹이 해소되기는 힘들 것이다. 송 후보자 스스로 국방개혁의 적임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 돌아보라. 눈덩이처럼 불어난 의혹을 불식시키지 못한다면 자신의 거취를 놓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중앙일보]
5. 포르셰 제친 현대차와 도시바 인수한 SK에 박수를
현대자동차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가 포르셰와 메르세데스 벤츠를 제치고 ‘2017 신차품질조사(IQS)’에서 1위를 차지했다. 종합순위에서도 기아차가 1위를 차지했고 현대차 역시 상위권인 6위에 올랐다. 이들 현대차그룹 회사는 종합순위에서 BMWㆍ폴크스바겐ㆍ닛산ㆍ도요타ㆍ쉐보레 등 독일ㆍ일본ㆍ미국의 주요 경쟁 기업을 줄줄이 따돌렸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미국의 권위 있는 시장조사기관 JD파워가 어제 내놓은 것으로 현대차그룹의 제품 경쟁력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고무적이다.
이번 신차품질조사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미국 내 판매된 신차를 대상으로 구입 후 3개월이 지난 차량 고객들에게 233개 항목에 대한 품질만족도를 조사해 100대당 불만 건수를 나타낸 결과다. 이 조사에서 기아차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종합순위의 왕좌를 지켰다. 현대차는 종합순위 6위를 기록했지만 제네시스가 고급 브랜드 중 1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이뤘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자동차 판매 경쟁이 치열한 해외시장에서 경쟁하려면 고급차를 많이 팔아야 한다. 고급차는 우선 수익성이 높은 데다 일반 차종도 이 명성을 발판으로 소비자를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제네시스가 전통의 명차들을 모두 제친 것은 끊임없는 품질경영의 성과로,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현대차의 브랜드 경쟁력 제고에 힘이 된다. 부품 2만 개가 집약되는 자동차는 제조업의 총화여서 중소 부품ㆍ소재 업체 수천 개를 먹여 살린다는 점에서 완성차 업체의 경쟁력 향상은 박수를 칠 일이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의 핵심 사업인 낸드플래시 인수에 성공한 것도 희소식이다. 도시바는 투자 실패로 회사가 휘청거리자 고육지책으로 낸드플래시를 매물로 내놓았지만 기술 유출 우려 때문에 SK에 팔 가능성은 낮았다. 하지만 SK는 한ㆍ미ㆍ일 연합 인수단을 꾸려 일본 정부와 산업계의 경계심을 풀고 도시바 낸드플래시 인수에 성공했다. 이는 SK로선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고 한국 반도체산업을 추격하고 있는 대만ㆍ중국 업체를 따돌렸다는 점에서 국가 산업전략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
재벌 저격수를 자처해 온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오늘 4대 그룹과 간담회를 갖는다. 공정한 시장질서 구축을 위해 주문할 것이 있으면 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 경쟁력과 양질의 일자리는 이같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제조업에서 나온다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 된다. 우리 자동차가 해외 명차를 제치고, 반도체산업에서 전략적 투자에 성공한 것은 결국 이들 대기업이 일자리를 지키고 산업 경쟁력을 높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가동에 나선 세계 최대 평택 반도체단지는 1000개에 달하는 협력사와 상권까지 합쳐 일자리 15만 개에 영향을 미친다. 전기차 배터리 세계 1위 경쟁력을 갖춘 LG화학의 폴크스바겐 대량 공급설도 경쟁력이 있기에 나왔을 것이다. 중소기업 육성도 중요하지만 대기업의 도전과 혁신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가치들이다.
6. 부적절한 국방장관 후보자의 자문 경력
방산 유착 의혹을 받고 있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민간인 시절 고액 자문료를 받아 시험대에 올랐다. 송 후보자가 해군참모총장을 끝으로 예편한 시기는 2008년 3월이었다. 그는 한 달 뒤인 4월부터 국방과학연구소(ADD) 비상근 정책위원에 위촉됐다. 불과 3개월 뒤인 7월부터 그는 법무법인 율촌에서도 ‘국방공공계약팀’의 고문역을 맡아 겸직하게 됐는데 2년9개월 동안 받은 자문료가 9억9000만원이었다. 율촌에 겸직한 근무시간은 주 2일에 14시간이었다고 한다. 매주 이틀씩 일하고 매달 3000만원을 받았다니 일반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고액 자문료다.
큰 프로젝트에 대해 의미 있는 자문을 해 주고 고액의 대가를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송 후보자는 방산과 국방 분야의 어떤 자문과 행위를 해 줬기에 엄청난 자문료를 받았을까.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송 후보자 측은 “변호사들을 상대로 국방용어와 사업을 설명해 주는 역할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도통 석연치 않다.
그는 또 2013년 7월부터는 국내 방산업체와도 자문 계약을 맺었다. 송 후보자는 “인도네시아에 수출하는 잠수함의 전투체계 구성에 관한 자문이었다”며 “방산 수출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송 후보자가 방산업체 자문을 맡은 뒤 이 업체의 전체 수주액 가운데 해군·해병대 사업의 비중이 3배나 늘었다는 게 손금주 국민의당 의원의 주장이다. 송 후보자는 총장 시절 내부 고발자에 의해 제기된 ‘계룡대 납품 비리사건’ 수사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국내 방산업체의 비리가 수사에 의해 적발된 사례는 최근엔 거의 없다. 그러나 참모총장과 같은 고위직을 지낸 인사는 후배 장교들을 통해 구조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사업시기를 앞당긴다든지 사업의 필요성 등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송 후보자가 예편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법률회사에서 고문직을 맡고 방산업체 자문까지 한 처신은 부적절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방산 비리 척결을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성과를 낼지가 의문이다.
7. 외고·자사고, 개선 필요하지 폐지할 대상인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외국어고와 자율형사립고 폐지를 둘러싼 혼란이 극심하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등 친(親)전교조 교육감들이 폐지 움직임에 나서자 해당 학교 학부모·교장·단체들이 집단 반발했다. 자사고학부모연합회는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정권마다 뒤집히는 정책에 아이들이 실험용 생쥐가 되고 있다"며 공약 철회를 촉구했다. 학부모들은 26일 대규모 집회도 연다. 자사고 교장단과 외고교장협의회 등도 "진보 정치의 '획일적 평등' 논리로 우수 학교를 없애서는 안 된다"는 성명을 냈다.
학부모들은 특히 지도층의 이중성에 분노한다. 자기 자식은 특목고에 보내고 남의 자식은 안 된다는 '내로남불'의 위선이 드러나서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은 딸이 대원외고를 나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는데도 "설립 취지에 어긋나게 운영되고 있다"며 공약 이행을 강조했다.
진보 교육감들도 못지않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의 두 아들은 명덕·대일외고, 전교조 광주지부장 출신인 장휘국 광주교육감의 아들은 과학고를 나왔다. 조국 민정수석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교수 때 특목고 규제를 강조했는데 정작 딸은 한영외고와 이공 계열을 거쳐 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닌다.
물론 전국의 외고 31곳과 자사고 46곳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수월성·다양성 교육에 대한 수요로 일부 과잉 사교육이 발생하고, 학생 선발권이 없는 일반고가 위기인 것도 현실이다. '외국어 우수 인재 양성'이라는 외고의 30년 전 설립 취지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고, 등록금만 비쌀 뿐 일반고와 다를 바 없는 자사고도 더러 있다.
그렇다면 문제점을 개선해 외고·자사고·일반고의 경쟁력을 함께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 치밀한 대책 없이 공약에만 집착하면 일반고가 살아나기는커녕 하향 평준화를 부를 수 있다. 외고·자사고는 5년 단위 재지정 원칙을 준수해 엄격히 옥석을 가리되 좋은 학교는 더 발전시켜야 한다. 일반고에 자율권을 확대하고 고입 전형을 동시에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그 과정에서 학생·학부모 여론 수렴과 공론화 과정은 필수다. 이념과 정치 논리로만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경향신문]
8. 업계 반발로 흐지부지된 통신비 인하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22일 휴대전화 통신비 절감대책을 내놨다. 오는 9월부터 약정기간 요금 할인(선택약정 할인)율을 20%에서 25%로 높이고, 기초연금을 받는 노년층과 저소득층에게 기본료에 해당하는 1만1000원을 감면해주는 게 골자다. 또 월 2만원대의 ‘보편적 데이터 요금제’ 도입, 지하철·버스, 학교 등에 공공 와이파이 구축 확대 등을 중장기 과제로 추진키로 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기본료 폐지는 이동통신업계의 거센 반발로 무산됐다.
통신비 인하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치만 한껏 높여 놓고,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대책을 내놨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국정기획위가 주무부처인 미래부의 보고를 4차례나 퇴짜를 놓은 뒤 내놓은 통신비 절감대책치고는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게다가 기본료 폐지를 공언했다가 업계에 굴복한 모양새여서 정책실현 의지가 부족하다는 의구심마저 든다.
국정기획위는 당장 적용할 수 있는 대상이 제한된 기본료를 폐지하지 않고, 약정기간 요금 할인율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료가 있는 2G와 3G 이용자의 기본료를 폐지하면 전체 가입자의 84%를 차지하는 4G(LTE) 이용자가 제외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약정기간 요금 할인은 소비자가 단말기 보조금을 받지 않는 대신 매달 내는 통신비에서 보조금에 상응하는 요금을 할인받는 제도다. 보조금을 받고 단말기를 구입한 소비자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약정기간 요금 할인율을 높이는 것과 더불어 ‘보편적 데이터 요금제’ 도입을 의무화하면 기본료 폐지에 버금가는 통신비 인하 효과를 낼 수 있는데도 국정기획위는 이를 중장기 과제로 돌렸다.
한국의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통신비는 14만4000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 견줘 매우 높은 편이다. 특히 스마트폰 가격이 날로 치솟는 상황에서 이통사들이 단통법 시행으로 줄어든 마케팅 비용을 제대로 돌려주지 않아 소비자 부담은 더욱 커졌다. 그럼에도 이통사들은 정부가 민간기업의 상품 가격을 통제하는 것은 반(反)시장적 정책이라며 법적 대응도 불사할 태세다.
통신비 인하 못지않게 이통시장 구조를 바로잡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정부는 단말기 제조사의 보조금과 이통사의 요금 할인액을 구분해 표기하는 분리공시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또 5 대 3 대 2로 시장점유율이 고착화된 이통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춰 제4의 이통사를 선정하는 등 경쟁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경쟁이 사라진 이통시장에선 소비자 편익을 고려한 조치보다 요금 담합이 성행할 수밖에 없다. 과감한 이통시장 개혁이 절실하다.
[한국일보]
9. '호식이 방지법' 조속 처리로 영세 가맹점 눈물 닦아 줘야
프랜차이즈 본사 경영진의 잘못으로 영세 가맹점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실추된 브랜드 이미지가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으로 이어져 가맹점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하지만 가맹점이 제대로 보상이나 배상을 받을 수 있는 보호장치가 전무해 대책 마련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치킨 프랜차이즈 ‘호식이 두마리치킨’ 최호식 전 회장이 여비서를 성추행한 혐의로 입건되자 전국적으로 불매운동이 벌어져 가맹점이 직격탄을 맞았다. 상당수 가맹점은 매출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반토막 났다고 한다. 프랜차이즈 오너의 추문으로 인한 가맹점의 피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4월에는 미스터피자 운영사인 MP그룹 정우현 회장의 ‘경비원 폭행’ 사건으로 가맹점이 줄줄이 문을 닫는 사태가 벌어졌다. 가맹점 60곳이 폐업하고 매출도 30% 이상 감소했다는 게 점주들의 주장이다. 떡볶이 프랜차이즈 ‘아딸’도 창업자 부부의 이혼으로 상표권 분쟁에 휘말려 가맹점이 피해를 보고 있다.
문제는 프랜차이즈 경영진의 일탈로 가게 문을 닫거나 매출이 떨어져도 피해보상 등의 별도 보호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가맹점 계약이 본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돼 있어 ‘갑의 이미지 실추 책임’과 관련한 규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현행법에도 가맹본부나 경영진의 영업외적 행위로 가맹점이 피해를 보더라도 별다른 구제방법이 명시돼 있지 않다.
가맹점주들이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낼 수는 있지만 피해 사유를 명확히 입증해 내기가 쉽지 않아 승소 가능성이 거의 없다. 더구나 을의 입장인 점주들로서는 재계약 문제가 걸려 있어 제대로 항의조차 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김관영 의원 등 국회의원 15명이 지난 20일 일명 ‘호식이 방지법’(가맹사업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것은 의미가 있다. 개정안에는 프랜차이즈 본사와 경영진의 브랜드 이미지 실추행위 금지 의무조항이 신설되고, 이들의 잘못으로 가맹점주들의 손해가 발생했을 경우 본사의 배상책임을 계약서에 명기하도록 했다.
국회는 법안 심의를 앞당겨 영세 자영업자인 가맹점주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 김상조 위원장 취임 후 골목상권과 경제적 약자 보호 정책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도 행정력을 총동원해 가맹점 보호조치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오너 리스크’를 경영자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고 나 몰라라 할 게 아니라 점주들의 피해 보상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10. 한국당, 대승적 차원에서 민생 추경 논의에 참여하길
여야 4당 원내대표가 22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 이후 파행을 겪어온 6월 임시국회 정상화를 위해 회동했으나 최종 합의에 실패했다. 전날 물밑 협상에서 사실상 합의문 초안을 마련한 상태여서 정상화 타결에 대한 기대가 높았으나, 자유한국당이 ‘추경 문제는 계속 논의한다’는 합의문 표현을 끝까지 반대해 협상이 결렬됐다. 한국당은 7월 임시국회 개회 때 조국 민정수석을 출석시키는 문제를 놓고도 여당과 충돌했다.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회동 후 “추경은 국가재정법이 정한 요건이 되지도 않고 내일모레면 관둘 장관을 상대로 추경 정책질의를 하는 것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가 “한국당은 ‘국정농단당’”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한국당 입장에 변화가 없을 경우 국민의당, 바른정당과 다음주부터 추경 심사에 들어간다는 방침이어서 당분간 국회 파행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여당은 11조2,000억원 규모의 일자리 추경안을 빨리 통과시키기 위해 야당의 협조를 요청해왔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이번 추경안이 법률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면서도 국회 논의에는 나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국당 정 원내대표는 “세금으로 공무원을 1,500명 증원한다는 것은 도저히 받을 수 없는 내용”이라며 추경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한국당은 추경안과 맞물려 있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에도 부정적이다. 다만, 인사청문회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국회 발목잡기라는 비난을 피하려는 궁여지책으로 보인다.
일자리 추경안은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 추진하는 공약이다. 문 대통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에서 추경 연설을 하며 야당의 동참을 호소했던 것도 일자리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세 차례 추경안은 법적 논란에도 모두 통과됐다. 일자리 추경안이 영 못마땅하다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 된다. 논의조차 안 하겠다는 건 국민의 절박한 민생 요구를 외면하는 것이다.
한국당은 대승적인 차원에서 국회 정상화에 협력해야 한다. 반년 이상 국정공백을 초래한 책임이 있는 한국당이 새 정부 출범 초부터 탄핵을 입에 올리는 등 막말과 폭언, 발목잡기로 일관한다면 국민의 지탄을 피하기 어렵다. 국민의당, 바른정당도 국정 운영의 한 축으로서 국민이 부여한 야당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여권 또한 국회 파행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야당을 포용하며 협치와 상생의 정치를 이뤄낼 주된 책임은 여권에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요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윤제림의 행인일기] 병원에서
시인 이백(李白)이 그의 시 '장진주(將進酒)'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덩그런 집 속/거울과 마주앉아 백발을 슬퍼함을!/아침에 푸른 실 같던 머리,/저녁엔 눈이 하얗게 내렸어라'. 군불견(君不見) … 조여청사모성설(朝如靑絲暮成雪). 이 대목에서 독자는 두 부류로 나뉩니다.
'무슨 헛소리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과 '옳거니! 과연 이태백이다!' 하면서 무릎을 치는 사람. 앞쪽에 가깝다면 청년입니다. 후자라면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선 나이겠지요. 장강(長江)의 물결이 한 번 바다로 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음을 깨달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마시자!' 콜롬비아 대학 출판부가 영어로 옮긴 이 시의 제목은 더 적나라합니다. "Bring the Wine!" 거나하게 취한 사나이의 얼굴이 보입니다. 그가 외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술 가져와!" 누구겠습니까. 한 번에 삼백 잔은 마셔야 한다고 쓴 사람, 이백입니다.
인생의 '덧없음'과 허락된 시간의 소중함을 생각합니다. 뜬금없이 어떤 상호(商號)를 떠올립니다. 멋대로 지어봅니다. '장안주점(長安酒店)' 혹은 '황하반점(黃河飯店)'. 술집이나 밥집이 아니라, 호텔입니다. 중국은 호텔을 그렇게들 부르지요. 거기에 가까운 이들을 불러놓고, 여러 날 함께 먹고 자면서 향연을 펼치고 싶습니다.
호화롭지도 사치스럽지도 않은 곳입니다. 로비도 연회장도 정갈하고 소박합니다. 아무 것도 꾸미지 않았는데 아름답고 그윽합니다. 홀 가운데엔 커다란 술통이 하나 놓여있습니다. 이태백 같은 주당들 열두어 명이, 밤새 마셔도 바닥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크기입니다.
만병통치의 '술 샘(酒泉)'입니다. 몸에 좋은 것은 맛이 없게 마련이지만, 이 술은 예외입니다. 마실 때마다 새로운 맛이, 자꾸 새 잔을 채우게 합니다. 과음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 잔이나 삼백 잔이나 취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춤추고 노래하면서 술을 마십니다. 인생의 행복을 몸으로 느끼면서 잔을 비웁니다.
미래의 병원은 호텔과 다름없을 것이라지요. 아픈 사람들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이 모여서 더 복된 삶을 설계하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지금 이곳을 생각하면,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여기는 병원입니다. 제가 아픈 것은 아닌데, 요즘 저는 병원 출입이 잦습니다. 아픈 식구가 둘입니다.
이웃에 사는 선배의 이야기가 자꾸 생각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인체에도 '내구연한(耐久年限)'이 있다. 60년쯤 된다. 우리 몸은 그 정도 세월에 견디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 이상 쓰려면 겸허한 마음으로, 살살 달래가며 써야 한다. 보증기간을 훨씬 넘긴 물건에서 어찌 신제품의 성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제 가족들이 병원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수리(修理)'가 빈번해질 수밖에 없는 육신들이니까요. 특히, 여든 세 해나 쓴 몸은 이제 더 이상 고쳐 쓰기도 힘들답니다. 의사의 이야기를 나름대로 해석해보니 이런 뜻으로 읽혔습니다. "이제 그만 쓰시지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더러 '그만 쓰라'고? 그렇다. 세상에 어떤 물건이 저절로 못쓰게 되랴. 쓴 사람 잘못이다. '가족'이란 물건의 사용자는 다른 가족들 모두 아닌가. 어느 식구의 몸이 제 홀로 망가지랴. 모두의 책임이다. 막 쓰고 함부로 취급한 탓이다. 험하게 다루고 무심하게 버려둔 결과다."
우리는 누군가를 환자로 만듭니다. 가족과 친척, 친구와 이웃을 아프게 합니다. 귀찮게 하고, 애간장을 녹이고, 끼니를 거르게 하고, 고약한 숙제를 안기고, 시험에 들게 하고, 약점을 흔들고, 급소를 건드리고 …. 그리하여, 한 사람과 관계있는 모든 사람이 한 사람을 병들게 합니다.
병상을 지키는 보호자들과 면회객의 절반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면식범(面識犯)'. 아침에 '푸른 실'처럼 빛나던 머리를, 저녁에 '백발'이 되게 한 용의자들입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릴 수밖에요. 병원에 들어서면, 경찰에 연행된 범죄자처럼 오금이 저립니다. 의사와 간호사가 형사로 보이고, 각종 서식들이 취조문서처럼 보입니다.
미래의 병원에 가보고 싶습니다. 호텔을 닮은 병원 말입니다. 세상 모든 병원이 간판을 내리고, 일제히 호텔로 바뀌는 날을 기다려봅니다. 너무 아파서, 도망치듯이 하늘로 간 동화작가 정채봉 형이 꿈꾸던 세상입니다. 그의 시 '노란 손수건'에 담긴 마음 풍경입니다.
"병실마다 밝혀있는 불빛을 본다/환자들이 완쾌되어 다 나가면/저 병실의 불들은 꺼야 하겠지//감옥에 죄수들이 없게 되면/하얀 손수건을 건다던가/병실에 환자들이 없게 되면/하늘색의 파란 손수건을 걸까//아니,/ 내 가슴속 미움과 번뇌가/다 나가서 텅 비게 되면/노란 손수건을 올릴까 보다"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을 닮은 병원, '장안주점'이나 '황하반점'에도 노란 깃발이 나부낄 것만 같습니다.
2. [경향신문][먹거리 공화국] 프랜차이즈 계약서 제대로 읽기
혹했다. “월 매출 3000만원이면 원가 750만원에 순수익 750만원 정도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750만원을 살뜰히 굴려 희망찬 미래를 점쳐보았다. 다만 3억원에 육박하는 창업비용은 사실 은행에 기대야 하고 순수익에서 대출이자와 원금 갚고 가족들 건사도 해야 한다. 간신히 창업비용을 마련했다손 쳐도 좋은 가게 자릿세는 이미 천정부지. 무엇보다 월 매출 3000만원이 어디 그리 쉬운가. 한여름밤의 꿈이다.
카페 창업설명회는 치킨점 창업설명회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치킨은 뭐랄까, 퍽퍽한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모 브랜드 카페 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은 노트북을 꺼내들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아마 카페 운영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곁다리로 카페 운영을 해본 적이 있어서 귀동냥 정도는 하지만 그들의 질문은 차원이 달랐다.
종종 외식업 설명회나 박람회에 들러보곤 한다. 연구자로서, 가끔은 정말 노후 고민 때문에 말이다. 이날은 토종 브랜드를 내세우며 한때 승승장구하던 모 카페 프랜차이즈 설명회였다. 무리한 사업 확장과 부실 경영으로 오너가 회사를 넘기고 전문경영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이제 오너는 외국계 펀드다. 자본잠식 등 어려운 사정이 많이 알려져 있어 과한 프로모션 없이 그저 제2의 도약 계획을 밝히는 정도였지만 우리 모두의 머릿속에는 오직 이것뿐. ‘3000만원 벌 수 있을까?’
전체 자영업의 외식업 비율은 약 10%로 잡지만 실제로는 20%에 육박한다. 한편 등록된 프랜차이즈 가맹 브랜드 5300개 중 76%가 외식업종이다. 프랜차이즈 산업은 곧 음식산업이다. 그만큼 프랜차이즈의 분쟁은 외식업 분쟁인데, 회사끼리의 분쟁도 많고 본사와 가맹점 간 분쟁은 더 많다.
분쟁 유형은 다양하지만 계약서상 ‘갑’이고 진짜 갑이기도 한 가맹본부(본사)의 갑질 분쟁이 많다. 영업권 축소와 계약해지 통보와 리뉴얼 강요, 판촉비 전가 등이 대표적이다. 그중 영업권 축소란 신규 출점을 하려고 기존의 영업권 거리를 좁힌다는 것이다. 동일 브랜드 지근거리 출점은 상권 침해다. 가맹점주들에게 상권은 곧 생명권이다. 하지만 본사는 기존 가맹점의 매출 확대보다는 신규 출점으로 일시불을 당기려 한다.
5년 계약을 보장한다면서도 실제로 계약서 조항에는 해마다 계약 갱신을 요구한다. 일종의 충성맹세인 셈이다. 가게를 차려놓은 마당에 접을 수도 없으니 본사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다. 종종 원부자재 밀어내기와 중단이라는 방식이 등장한다.
프랜차이즈 가맹계약서는 공정거래위의 ‘표준가맹계약서’ 양식을 따른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본사들은 양식만 가져다 쓸 뿐, 독소조항은 곳곳에 있다. 의무조항은 많고 권리조항은 취약한 프랜차이즈의 가맹계약서부터 불행은 시작된다. 가맹거래사나 변호사에게 문의하라며 또 돈 드는 소리만 해댈 뿐.
‘호식이두마리치킨’의 최호식 회장이 경찰서에서 ‘폴더 사과’를 했다. 추잡한 성추행 사건은 가족들이 함께 즐겨먹는 치킨 이미지에 큰 타격을 안겨주었다. 최호식씨야 회장에서 물러나지만(주식은 갖고 있죠?), 간판 걸고 영업하는 가맹점들은 어쩌란 말인가. 반짝 2주 할인행사로 넘겨보려 하지만 2년도 아니고 2주 정도로 회복이 될 리 만무하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의 표준가맹계약서에는 눈 씻고 찾아봐도 ‘오너 리스크’에 따른 가맹점주 피해에 대한 보상 조항은 없다. 의무만 나부끼고 권리는 약한 가맹계약서 자체가 불공정의 실체다.
3. [경향신문][여적] 사우디 왕자
사우디아라비아는 왕족의 천국이다. ‘인구 1700만명에 왕족만 3만명에 이른다’는 비아냥이 인구에 회자된다. 이들은 한 달에 2만~27만달러의 왕족수당까지 받고 있다. 이런 금수저가 없다. 그중 순수왕족은 4000~7000명에 달한다.
사우디 왕족은 18세기 중반 사우디 1차 왕국을 건설한 무함마드 빈 알 사우드(재위 1744~1765)의 후손들이다. 그러나 왕족이라고 다 같은 왕족은 아니다. 1932년 사우디 왕국을 건국한 압둘 아지즈의 후손이어야 ‘왕자 중 왕자’다. 약 17명의 여인과 결혼한 압둘 아지즈는 왕자만 50~60명을 낳았다. 이름에는 예외 없이 ‘사우드 가문의 압둘 아지즈의 아들’이라는 뜻인 ‘빈 압둘 아지즈 알 사우드’가 붙는다.
이게 다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핵심그룹이 또 있다. 바로 압둘 아지즈의 부인들 중에 핫사 빈트 알 수다이리라는 여인이 낳은 아들 7명이다. 수다이리는 압둘 아지즈 국왕의 8번째이자 가장 사랑한 부인으로 알려져 있다. ‘수다이리 7형제’ 중에서 국왕이 2명이나 배출됐다. 파드(첫째·재위 1985~2005)와 살만(여섯째·2015~) 국왕이다. 왕위는 원래 형제승계가 원칙이었다. 그런데 1992년 ‘압둘 아지즈의 직계 아들과 자손’으로 규정을 바꿈으로써 왕위승계의 범위를 넓혔다.
엊그제 살만 국왕은 기존의 왕위 계승자였던 조카(58)를 밀어내고 자신의 아들(31·무함마드)을 왕세자로 교체했다. 물론 수다이리 가계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대목에서 1100년 전에 고려 태조 왕건이 내린 훈요 10조 중 제3조가 떠오른다. ‘맏아들 승계가 원칙이지만 맏아들이 어리석으면 인망 있는 아들로 바꾸라’는 당부였다. 제 아무리 절대 왕정의 시대였다 해도 왕위계승의 으뜸 덕목은 아들·형제가 아니라 ‘인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우디의 왕위계승조건에도 역시 ‘가장 고결한 인물’이라는 단서는 붙어 있다. 그러나 ‘사우디 왕자’의 느낌은 좋은 편이 아니다. 아직까지도 석유를 뒤집어쓴 졸부의 냄새가 강하다. 여기에 인권탄압과 왕족끼리 다 해먹는다는 지독한 부패까지 겹쳐 있다. 사촌형을 밀어내고 후계자가 된 무함마드 왕세자의 사우디는 어떤 모습일까. 세계는 예멘을 공격하고, 카타르를 봉쇄하면서 대이란 강경책을 이끈 31살 왕세자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4. [경향신문][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가해와 피해, 뻔하지 않은 윤리학
가해자의 날이 있다면 어떨까? 우리는 다행히도 대개 분별 있는 관찰자이기 때문에 꽤나 합리적으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판단한다. 보이지 않는 손을 주창한 애덤 스미스는 먼저 분별 있는 관찰자로서의 인간을 믿었다. 법이 아니라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상식이라는 분별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도덕감정을 기반으로 해서 인류는 보편적인 윤리와 도덕을 마련한다.
타인들과 특별한 이해관계를 갖지 않을 때, 그 분별력은 더욱 공정해진다. 그래서 대개 사람들은 피해자들에게 공감을 하고, 위로를 건네고, 격려를 보탠다. 최근에 벌어진 한 사립 초등학교의 폭력 사태만 해도 그렇다. 네 명의 아이가 해를 가했고, 한 명의 아이가 해를 입었다. 그런데,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가 없다. 여론이 들끓었다. 분별 있는 관찰자로서 사람들은 공평한 처사를 요구했다.
그 누구도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나와 관계없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일에 관심을 갖고 진지하게 참여하곤 한다. 세상이 조금씩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누군가는 그 특정한 가해자의 편에 서기도 한다. 이때 활용되는 논리 중 하나는 그 가해자도 ‘어린이’이며, 이런 논란으로 인해 사건과 관계없는, 같은 초등학교의 선량한 다수가 피해를 입고 있다는 식이다. 심지어, 피해자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음모론까지 들린다.
그런데, 이런 논리들은 이미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피해자의 경험을 나와 무관한 ‘일회적 사고’로 만들고 가해자의 폭력을 인간적 실수로 환원하는 것, 우리는 지금껏 수많은 사건들이 이런 식으로 희석되는 순간들을 목격해왔다. 그래서 엉뚱한 생각이 든 것이다. 가해자임이 분명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누가 더 억울한지 서로에게 고변하도록 해보면 어떨까? 가해자들끼리 모여서, 네가 더 나쁘다 넌 좀 억울하겠다와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게 하면 어떨까? 아마 서로 자기만 억울하고, 다른 가해자들은 뻔뻔하다며 더 호되게 비난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 말이다.
폴 버호벤 감독의 <엘르>는 그런 점에서 피해자와 그들에게 쏟아지는 다양한 시선의 폭력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 미쉘(이자벨 위페르)은 어느 날 갑자기 복면을 쓴 괴한에게 폭행을 당한다. 그런데, 이 여성의 다음 행동이 놀랍다. 미쉘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스스로 폭행범과 맞서고자 한다.
무섭지도 않을까 싶지만, 사실 이미 그녀는 세상이 피해자를 어떤 방식으로 한 번 더 가해하는지 경험한 바 있다. 열한 살 소녀였던 시절, 미쉘은 아버지의 엽기적인 살인으로 세상에 무차별적으로 두드려 맞은 경험이 있다. 그녀 역시 피해자였지만 아무도 그녀를 피해자로 보아주지 않았다. 살인자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감독이 미쉘이라는 인물을 그려나가는 방식이다. 미쉘은 여러 면에서 그렇게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이지 않다. 게임 회사 대표인 그녀는 더 잔인하고 선정적인 게임을 만들어내라고 조직원들을 닦달한다. 남자 직원들을 다루는 모습을 보자면 마초적인 남성 상사 그 이상이다. 심지어 미쉘은 오랜 친구를 속이고 그 남편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 그거로도 모자라,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이웃집 부부를 초대해놓고는 식탁 아래로 발을 뻗어 그 이웃을 유혹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웃집을 훔쳐보며 음란한 상상을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미쉘이 그렇다고 해도, 대낮에 복면을 쓰고 침입한 괴한에게 맞고 유린당해도 되는 것인가? 불륜을 저지르니 독실한 가톨릭 신자에게 성폭행을 당해 마땅한가? 다시 말해, 그녀가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적 삶과 다르게 산다고 해서 미쉘이 폭력의 희생자라는 사실이 바뀌는가 말이다. 당연히 그렇지 않다. 미쉘이 어떤 사람이든 간에 그녀는 대낮에 자신의 응접실에 있다가 괴한에게 폭행을 당한 희생자가 맞다. 개인의 도덕과 윤리의 영역에서의 염결성 문제와 피해, 가해의 문제는 엄격히 분리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피해 여부와 관련 없는 문제들을 동원해 사실을 흐리고, 피해자들을 엉뚱한 방식으로 괴롭히곤 한다. 만일, 미쉘이 공공의 권력에 기대, 말하자면 경찰에 신고하고 그래서 다수의 언론에 보도되었더라면, 선정적인 게임을 만드는 사업자이자 불륜을 저지르는 여성이라는 사실이 그녀의 피해 여부와 무관하게 다뤄질 수 있었을까? 혹시나 피해 사실은 어느새 잊혀지고 피해자의 과거사와 도덕성에 대한 여론만 들끓지는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런 피해자들을 이미 보아왔다. 가령, 어떤 사람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울분에 대해 더 많은 합의금을 원한다는 모욕적 발언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세월호 유족들을 향해 개인적 사고에 불과하며 그 사고를 통해 사적 이익을 얻으려 한다는 망언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혼을 하고, 어떤 사람은 실직자라는 식의 매우 사적인 삶의 영역을 끌고 와 피해 사실과 섞어 그 경계를 흐리게 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분별력 있는 관찰자로서의 자리를 포기하고 진실과 무관한 편견들을 폭력으로 둔갑시키고 있는 것이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국제 과부의 날
쓸 때마다 머뭇거려지는 단어 중 하나가 ‘과부’(寡婦)다. 국어사전은 “남편을 잃고 혼자 사는 여자”라고 풀이하고 있지만, 한자어 뜻풀이로 보면 “결핍된 지어미(아내)”란 의미다. 쓰기 머뭇거려지는 까닭은 아마, 의미 자체보다는 단어를 더럽혀 온 어떤 문맥과 거기서 비롯된 꺼림칙한 뉘앙스 때문일 것이다.
같은 의미로 쓰이는 ‘미망인’(未亡人)이 있지만, 거기에는 ‘(남편을 따라 죽어야 하는데) 아직 죽지 않은 여자’라는 아연한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렇다고 ‘배우자와 사별한 여성의 날’이라고 풀어 말하기도 그래서, 그냥 과부의 날이라 쓴다.
국제 과부의 날은 2010년 유엔이 정했다. 앞서 인도 펀잡 지방 출신 기업인 라즈 룸바(Raj Loomba, 1943~)가 과부로 그를 포함한 7남매를 기른 어머니를 기려 2005년 영국에서 ‘룸바 재단’을 설립했다. 과부와 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불의를 세상에 알려 그들을 도울 길을 찾자는 취지였다.
그의 어머니는 37세에 과부가 되면서 온갖 사회ㆍ경제적 차별과 가난에 허덕여야 했다고 한다. “내 할머니는 젊은 어머니에게 반지 등 장신구를 벗고 빈디(기혼여성의 표식으로 이마에 찍는 점)를 지우게 한 뒤 애도의 의미로 오직 흰 옷만 입게 했다. 내 아버지의 숨이 멎던 날, 개인으로서의 어머니의 삶도 멎었다”고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과부뿐 아니라 싱글맘과 편모 가정 등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차별은 인도나 그의 어머니만의 문제는 아니다. 재단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세계에는 2억5,900만 명의 과부가 5억8,500만 명의 자녀를 양육하고 있다. 그 가운데 과부 1억1,500만 명이 가난 때문에 생존을 위협 당한다.
그의 재단 활동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면서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부인 체리 블레어(Cherie Blair)와 가봉의 퍼스트 레이디 실비아 봉고 온딤바(SylviaBongo Ondimba)가 캠페인에 동조했고, 유엔이 움직였다. 현 재단 회장이 체리 블레어다. 체리의 공을 칭송하는 인도 현지 신문의 한 기사에는, 하지만 이런 댓글도 달려 있다. “이라크를 가장 과부가 많은 나라로 만든 책임이 그의 남편에게 있는데, 그가 재단 회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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