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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자본시장법 개정에 따른 연 5억 이상 보수 등기임원 개별보수 공시

■ 경남 무상급식 중단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자본시장법 개정에 따른 연 5억 이상 보수 등기임원 개별보수 공시

 

[한국일보 사설-20150402목] CEO와 일반직원 임금격차, 사회용인 수준 넘어

 

연 5억 원 이상 보수를 받는 등기임원의 개별보수를 공시토록 한 개정자본시장법에 따라 주요기업 최고경영자들의 지난해 보수내역이 공개됐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215억7,000만원을 받아 1위를 차지했고, 김승연 한화 회장이 178억9,000만원으로 2위였다. 전문경영인으로는 삼성전자 신종균 IT모바일부문 사장이 145억 7,200만원으로 최고연봉을 기록했다.

 

올해로 두 번째인 등기임원 보수공개는 회사자율에 맡겼던 지난해와 달리 기준서식에 따르도록 해 보수산정 기준과 근거가 보다 충실해졌다. 하지만 그 많은 보수가 과연 합당한 대가인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등기임원으로 등재되지 않은 대기업 총수일가의 보수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점도 여전히 문제다. 이런 맹점을 보완하고 보수책정 기준 등을 보다 명확히 하는 등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잘 나가는 대기업 임원들 연봉공개가 위화감만 부를 뿐이라는 지적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문제를 정확히 봐야 개선점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꼭 그렇게만 볼 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등기임원 보수 공개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최고경영인(CEO)과 일반 직원간의 연봉격차다. 기업총수 일가와의 비교는 차치하고라도 전문경영인과 일반직원 간 격차도 갈수록 크게 벌어지는 추세다. 삼성전자 신종균 사장의 연봉은 일반직원 평균연봉 1억200만원의 142.8배다. 주요 금융지주사 회장과 은행장들의 연봉이 실적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것도 일반직원과의 과도한 연봉격차로 이어진다. 이 같은 격차를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임금 불평등 심화의 한 지표임이 분명하다.

 

일반직원에 비해 기업의 CEO가 어느 수준의 보수를 받는 게 적정한지는 세계적으로도 항상 논란의 대상이다. 미국은 CEO가 최고 350배까지 받아 그 격차가 가장 큰데, 미국사회의 큰 문제인 소득불평등과 부의 양극화를 초래하는 주된 요인으로 지적 받고 있다. 일본과 유럽은 그 격차가 크게 낮은 20~50배 수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최근 보수 격차가 급격히 벌어지면서 미국의 불평등 심화 양상을 따라가고 있다.

 

최근 저서 한국자본주의로 주목 받고 있는 장하성 교수는 우리 사회의 임금불평등 심화 현상에 큰 우려를 표명했다. 국가경제의 꾸준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도 소득도 늘지 않는 모든 문제가 여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복지 등을 통한 재분배에 앞서, 이런 지나친 불평등 분배구조가 더 문제라는 지적이다. 대기업도 개별기업의 일이라는 인식을 넘어 사회적 책임을 공유하는 측면에서 진지하게 고심해봐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02목] 재벌 일가 빠진 임원 보수 공개의 허점

 

주요 대기업 등기 임원들의 지난해 연봉이 일제히 공개됐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라, 상장사들은 2013 회계연도 때부터 연봉 5억원이 넘는 등기 임원의 개인별 보수 내역을 이듬해 3월31일까지 공개해야 한다. 지난해 최고 연봉의 주인공은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으로, 정 회장은 계열사 3곳으로부터 모두 215억7000만원을 받았다.

 

시행 2년째를 맞는 이 제도는 여전히 허점투성이다. 공개 대상을 등기 임원으로 못박은 탓에, 상당수 재벌 총수 일가의 연봉은 여전히 베일에 감춰져 있다. 삼성그룹 총수 일가에선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연봉만 공개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이재용 부회장, 이서현 제일모직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 사장 등은 모두 미등기 임원이다. 올해 들어 새로 도입한 ‘기준서식’의 효과도 미미했다. 고위 임원에게 10억원이 넘는 상여금을 주면서 달랑 ‘준법 및 윤리경영 정착에 기여’, ‘회사의 발전 위해 리더십을 발휘한 점’을 보수 산정 이유로 적은 사례도 있다.

 

경영진 연봉 공개는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세계적 흐름이다. 현행 제도가 허울뿐인 요식행위로 전락하는 걸 막으려면 이제라도 서둘러 허점을 촘촘하게 메워야 한다. 공개 대상을 기업경영에 실질적 권한을 쥔 인물로 확대하고 보수 내역도 더욱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하는 게 맞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등기 여부와 관계없이 3인의 집행 임원을 포함해 10만달러(약 1억1000만원)가 넘는 상위 5명의 연봉은 무조건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심지어 회사가 임원에게 골프클럽 회원권을 사줬거나 자가용 비행기를 이용하도록 편의를 봐준 경우에도, 그 편익을 금액으로 환산해 공개해야 한다.

 

투명성 강화와는 별개로, 분배 형평성의 관점에서 경영진의 고액 연봉이 과연 적정한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논의를 시작해볼 시점이 아닌가 싶다. 10대 그룹 상장사 78곳을 기준으로, 가장 높은 임원 연봉과 직원 평균 연봉 격차는 평균 35배였다. 그나마 사정이 매우 나은 편이다. 시간당 5580원인 현행 최저임금을 연봉(주당 40시간 기준)으로 환산하면 1400만원 남짓 된다. 단순 셈법으로 무려 1540년을 일해야 정몽구 회장이 지난 한 해 동안 받은 연봉을 벌 수 있다는 얘기다.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227만명(2014년 기준)에 이르는 게 지금 우리 현실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402목] 연봉 공개는 피하면서 경영권은 왜 휘두르나

 

연봉 5억원 이상 기업 등기임원에 대한 보수 공개 결과 상당수 기업 총수나 후계자들이 등기임원이 아니라는 점을 내세워 공개 대상에서 빠져나갔다. 그물망을 벗어난 숫자가 지난해보다 더 늘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비겁한 총수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연봉공개는 피하면서 경영권은 왜 휘두르는지, 그러고도 책임경영을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보도에 따르면 공정위의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63곳과 한 곳 이상의 상장사를 거느린 그룹 등 총 239개 그룹 중 37개 그룹 오너 일가가 보수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담철곤 오리온 회장 등이 포함됐다. 이 중 정 부회장을 비롯해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 김상범 이수 회장, 허영인 SPC 회장 등 11개 그룹 오너는 법 시행 과정에서, 최태원 SK 회장과 김승연 한화 회장은 실형을 선고받은 뒤 등기임원에서 빠졌다.

 

등기임원의 연봉공개는 2013년 자본시장법 개정에 따른 것이다. 취지는 명확하다. 연봉 잔치를 벌이며 황제경영을 일삼는 총수를 견제하고 책임경영을 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 총수가 등기임원직을 사임한 뒤에도 경영에 대한 위치나 비중은 그대로인 채 실질적 경영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권한은 행사하되 책임은 지지 않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고도 사원들에게 주인의식이나 책임의식을 강조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공개한 보수 산정 기준이 애매한 것도 문제다. 경향신문 취재결과 내로라하는 기업들조차 구체적이고도 투명한 기준없이 그저 ‘내부 기준에 따라’ ‘리더십 발휘’ 등 막연하고 추상적인 이유만으로 거액의 상여금을 지급했다.

 

총수들이 연봉공개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급여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닐 터이다. 되레 감출수록 의구심은 커지기 마련이다. 재계는 마녀사냥, 여론재판 운운하지만 그런 행위 자체가 불신을 키우는 행위다. 굳이 해외사례를 들 필요도 없이 연봉공개는 세계적 추세다. 미국의 경우 등기, 비등기를 불문하고 주요 의사 결정구조에 있는 경영진의 보수를 공개한다. 제대로 일하고 그에 합당한 산정 기준을 통해 보수를 많이 받는 걸 시비할 사람은 없다. 신종균 사장 등 삼성전자의 전문경영인 3명이 지난해 거액의 연봉을 받은 것은 샐러리맨들에게 일할 의욕을 북돋는다. 올해는 코콤, 코맥스 등 일부 중소·중견기업 경영진들이 연봉 5억원 이하인데도 보수를 공개했다고 한다. 이런 시도가 투명경영을 이끌고, 건강한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굳이 법이 강제하지 않더라고 경영에 참여하는 총수일가라면 등기 여부에 관계없이 스스로 보수를 공개하는 것이 마땅하다.

 

 

[서울신문 사설-20150402목] 비정상·무책임 오너 경영 방치하면 안된다

 

자본시장법 개정에 따라 시행되고 있는 대기업 등기임원 보수공개 제도가 유명무실화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최근 연봉 5억원이 넘는 대기업 등기임원들의 보수가 공개됐지만 정작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재벌 총수나 오너 2세들의 연봉은 공개되지 않았다. 대부분 등기이사에서 물러났거나 아예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지 않는 편법을 썼기 때문이다. 최태원 SK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이재현 CJ 회장 등이 지난해 법원의 유죄판결로 등기 이사에서 물러난 것은 어느 면에서는 책임을 지겠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어 이해할 측면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 재벌 3세 경영인들도 등기 이사를 맡지 않아 연봉을 밝히지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사실상 그룹을 이끌고 있지만 지난 2월 열린 주주총회에서도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삼성 일가에서 연봉을 공개한 인물은 이건희 회장의 맏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유일하다. 기업분석 전문업체인 한국CXO 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239개 주요 그룹사 중 15.5%인 37개 그룹의 오너 일가가 이번에 연봉을 공개하지 않았다.

 

등기임원 연봉공개가 법률로 의무화된 2013년 11월 이후 11개 그룹사 오너 일가 구성원이 등기임원직에서 사임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이트진로, 이수그룹, SPC, 무림, 종근당, 동서식품 등 오너 일가들도 미등기 임원으로 바뀐 것이 확인됐다. 이런 상황이라면 등기임원의 연봉공개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연봉공개의 취지는 선진적인 투명경영 정착이다. 국민과 투자자들이 임원 연봉이 실적에 따라 결정되는지를 알 수 있게 하고 경영자들이 터무니없는 고액 연봉을 책정해서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을 막자는 의미도 크다.

 

등기이사의 경영에 대한 법적 책임 때문에 오너 일가들이 이를 고의로 피하는 것이 대한민국 재계의 한심한 현실이다. 1%도 안 되는 지분으로 그룹 경영권 전체를 쥐락펴락하며 권한은 황제처럼 누리지만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천박하고 뻔뻔한 의식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더이상 꼼수가 통하지 않도록 연봉 공개 대상을 이사 등재 여부와 상관없이 선진국처럼 보수총액을 기준으로 바꾸고 오너 일가는 모두 포함하는 등 개선할 필요가 있다. 대주주의 경영권 행사에 따른 책임도 명확히 해야 한다.

 

 

■ 경남 무상급식 중단

 

[중앙일보 사설-20150402목] 무상급식은 이념 갈등과 정쟁의 대상이 아니다

 

경상남도가 1일 무상급식 지원을 전면 중단했다. 예상대로 일부 학부모·단체는 거세게 반발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들은 ‘점심 한 끼 단식’을 벌이고 무상급식 토론수업을 진행했다. ‘친환경무상급식지키기’ 소속 학부모들은 홍준표 경남도지사 관사 앞에서 ‘도지사님, 애들 밥 굶겨 골프 접대 나가서 행복하십니까’란 현수막을 내걸고 시위를 벌였다. 일부 학부모는 급식비 납부 거부와 등교 거부까지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경남도의 무상급식 지원 중단 이슈가 정책 논쟁이 아니라 점차 이념 갈등, 정쟁(政爭)으로 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무상급식 전면 중단이 차라리 만우절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는 비난 논평을 냈다. 새정치연합은 “경남엔 새누리당 실세 의원들이 즐비하지만 누구 하나 홍준표 지사에게 문제 제기조차 못하고 있다”며 “무상급식 중단에 대한 입장과 해결방안을 지역주민 앞에서 밝혀야 한다”고 새누리당을 공격했다.

 

  경남도 홈페이지 ‘도지사에 바란다’ 코너에 무상급식 지원 중단을 지지하는 게시글이 제3자에 의해 삭제된 사건도 발생했다. 경남도는 “반대세력이 도민 여론을 왜곡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여기에 경남도까지 무상급식 운동단체를 ‘종북’으로 표현해 ‘색깔 논쟁’에 불을 붙였다. 이는 문제 해결은커녕 이념 갈등만 부추기는 매우 부적절한 대응이다.

 

  경남도는 무상급식에 지원하던 예산 643억원을 없애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 재원을 초·중·고 서민자녀 교육 지원으로 돌리겠다는 취지다. 서민층 입장에서 보면 혜택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늘어나게 된다. 가난한 집안의 학생은 계속 무상급식을 받을 것이고, 학습비·교재비 등을 추가로 지원받게 된다. 경남도의 시도가 성공하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무상보육 등 다른 무상복지 정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야가 경쟁적으로 추진한 무상복지 시리즈의 우려됐던 문제점이 이미 현실화됐다. 지난해 학교 무상급식 예산은 2조6000억원, 무상보육(누리과정) 예산은 3조8000억원에 이르고 있다. 무상복지는 매년 들어가야 하는 경직성 예산이다. 이 때문에 학생들의 안전과 관련 있는 학교시설물 보수 예산마저 5년 새 40%나 축소됐다. 일부에선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이면 충분히 무상복지를 감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학교 시설과 교육에 대한 투자가 불필요한 것인가.

 

  홍 지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정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좌파·우파나 보수·진보가 아닌 국익에 있다. 국익에 맞다면 좌파 정책도, 우파 정책도 선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념이나 정치 논리가 아니라 국익에 따라 급식 지원 중단을 결정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정치적·이념적 논란에 가세할 게 아니라 정책적·실용적 차원에서 묵묵히 일을 추진해야 한다.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면 선별적 복지가 빈곤층 학생들에게 더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조용히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 문제가 더 이상 정치인들의 지지율을 올리려는 게임이 돼서는 곤란하다.

 

 

■ 관련 칼럼

 

[한겨레신문 칼럼-세상 읽기/김창엽(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20150402목] 가난을 모욕(처벌)하는 국가

 

경남에서 무상급식이 중단되었다. 많은 시비가 있었으니 딱 한 가지, 학교급식은 허기를 면하고 영양을 보충하는 일 그 이상이라는 것만 다시 새긴다. 밥 먹이는 것이 곧 보살핌이라는 것을 잘 알 텐데도 그리했으니,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남을 상처가 같이 아프다.

 

그다음이 더 문제다. 경상남도는 급식 대신 공부시키는 데에 돈을 쓰겠다고 발표했다. 선별복지가 맞다면서 ‘서민 자녀’ 중에 지원받을 학생을 고르는 중이다. 그래도 이런 소리는 듣기 싫었을까, “가난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 대상자를 객관적으로 선정”하는 것이라고 보도자료까지 냈다.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어떤 방법이든 그 학생들이 ‘딱지’를 피할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무상급식으로 남겨 놓은 학생의 처지도 비슷하다. 아무리 부인해도 차별과 모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드러내 목표로 삼지는 않았지만, 나는 암묵적인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의료급여를 받는 가난한 사람들도 모욕을 당하게 생겼다. 복지부가 오는 7월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힌 ‘의료급여 진료비용 알림 서비스’ 때문이다. 얼마 이상 많이 쓴 사람에게 진료비 총액과 의료 이용량을 경고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만든 모범 통지문의 내용은 이렇다. “귀하께서는 …에 대한 의료 이용량이 매우 높아 적절한 관리가 요구됩니다.”

 

이런 통지를 받고도 불안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몇원까지 상세한 개인정보에다 으름장까지, 누구나 등골이 서늘할 일이다. 늘 따라붙던 ‘도덕적 해이’란 말만 쓰지 않았지, 필요하지 않은 병의원을 드나든다고 비난하는 것이 분명하다.

거기다가 “사용하신 총진료비용은 ○○○원이며 이 중 정부(의료급여)에서 ○○○원을 지원”한다는 문구도 들어간다고 한다. 국가의 시혜까지 내세웠으니, 도덕의 이름으로 가난한 자의 책임을 말하는 거리낌없는 차별이고 모욕이다.

국 가가 가난의 낙인효과에 유혹을 느끼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모욕을 통해 가장 은밀하게 가난을 ‘처벌’할 수 있어서다. 소설 <주홍 글씨>의 낙인이나 명단 공개를 통한 망신주기가 약한 처벌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터. 가난을 모욕하는 것에 빗대면, 그것은 현재의 사회경제 질서와 요구에 순응하게 하려는 채찍이자 당근이다.

 

하지만 그것이 국가의 통치방법인들 가난을 모욕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적어도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 개인에게 쉽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언제나 그랬지만 더구나 지금의 가난은 온통 사회경제체제의 틀에 좌우된다. 우루과이 라운드와 자유무역협정의 태풍을 맞은 농부가 왜 모욕을 받아야 하나.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고도 ‘5포 세대’가 되어야 하는 청년들은 또 어떤가.

 

가난 벗어나기가 보상이 아니라 권리라는 것도 강조해야겠다.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밝혀 놓았다. 착각하지 말자. 공부 잘하거나 출세한 사람, 큰 기업을 일군 사람만 누리는 것이 아니다. ‘모든’ 국민이 능력과 노력, 지금의 처지에 상관없이 기본권을 가진다. 가난으로 고통받지 않을 권리를 모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부쩍 자주 떠오르는 일이, 오래되었는데도 눈에 선하다. 육성회비를 내지 못했다고 이름을 칠판에 적고 벌을 주던 모습. 복도에 세운다고 없던 돈이 생길까만, 모두 보라고 그랬을 것이다. 그때도 국가는 가난을 모욕하고 처벌했다.

이젠 그만하자. 아무리 유혹이 강해도, 혹 그것이 국가 이성이어도, 이렇게 가난을 처벌하는 것은 복지도 정의도 아니다. 국가의 책임이 말에 그친다 한들, 또다시 가난을 모욕하지는 말라. 이미 충분히 힘들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50402목] 연금개혁 실패하면 여야 혹독한 추궁 각오해야

 

공무원연금 개혁 열쇠를 쥔 국회 특별위원회가 6일 회의를 열어 7일로 끝나는 특위 활동기간을 25일 연장하기로 했다. 오랫동안 활동중지 상태이던 특위의 가동이 반가울 만하지만, 여야가 곳곳에서 시각 차이를 보이고 있어 원만한 운영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여야가 현재의 줄다리기를 거듭한다면, 아무런 의견접근 없이 막을 내린 국민대타협기구의 전철을 밟게 마련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에 비추어 여야가 끝내 국민의 기대를 배신한다면, 그 책임을 똑똑히 가린 혹독한 추궁을 피할 수 없을 것임을 미리 경고한다.

 

현재 공무원연금 개혁특위의 순항 전망을 우선 흐리고 있는 것은 이른바 ‘실무기구’에 대한 여야의 시각 차이다. 야당은 공무원 노조까지 참여한 실무기구의 활동기간을 특위 활동기간과 같게 하자고 주장하는 반면, 여당은 실무기구의 활동시한을 늦어도 이달 중순까지로 못박아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와 관련, 어제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등 여당 지도부가 일제히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결단을 촉구했다. 4ㆍ29 재보선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공무원과 그 가족의 눈치를 보지 말라는 지적이다. 앞서 야당이 국민대타협기구에 독자안을 내놓으면서 공무원 노조의 눈길을 의식해 ‘최종 수치’를 가린 데 비추어 개연성이 크다. 또 이미 국민대타협기구를 통해 공무원이나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 마당이다. 아울러 실무기구가 단일안에 합의하든 대타협기구처럼 복수안 제시에 그치든, 어차피 최종적으로 특위가 이를 법안으로 다듬어야 한다. 따라서 이 문제는 야당이 무리한 주장을 포기해 마땅하다. 다만 여당도 야당의 결정을 존중하는 뜻에서라도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실무기구의 활동시한을 이달 하순까지 정도로 늦출 수 있어야 한다.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다면 그만이다.

 

진정한 문제는 앞으로 특위가 국민대타협기구를 통해 제시된 다양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선택적으로 가다듬어 단일안을 도출할 수 있느냐이다. 정부안과 여당안, 이를 수정한 ‘김태일 안’과 ‘김용하 안’, 야당안 등이 나와 있다. 크게 보아 부담률(보험료/급여)과 소득대체율, 지급률(총부담보험료/연금액) 등의 수치를 조정하자는 모수개혁안과 이런 수치 조정과 함께 연금구조의 개혁을 병행하자는 구조개혁안으로 나뉜다. 그러나 국민이나 이해당사자인 공무원의 눈길은 결국 ‘얼마를 더 내고, 얼마나 덜 받나’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개혁 이상론에 사로잡히는 대신 이런 현실까지 감안한다면 합리적 방안에 이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여야의 새로운 각오를 촉구한다.

 

 

[한국일보 사설-20150402목] 박범훈 전 수석 비리에 적극 맞장구 친 교육당국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둘러싼 의혹이 줄줄이 드러나고 있다. 중앙대 캠퍼스 통합과 적십자간호대학 인수, 중앙국악연수원 건립과 주변 땅 투기, 딸 교수 채용 특혜 등 비리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박 전 수석은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준비위원장을 지낸 학계의 대표적인 ‘MB맨’이다. 중앙대 총장을 6년 동안 지내다 청와대 수석에 임명돼 MB정부의 교육문화 정책을 책임졌다. 그런 중책을 맡은 사람이 대통령의 신임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바빴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박 전 수석의 특혜와 비리는 교육부에 대한 전방위 외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검찰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중앙대 캠퍼스 통폐합이 대표적이다. 당시 중앙대는 서울캠퍼스와 안성캠퍼스 통합을 추진했다. 그러나 통합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돼있지 않자 박 전 수석은 교육부에 압력을 행사해 관련 규정을 개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인의 압력에 교육 정책이 이처럼 쉽게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부당한 압력에 대한 교육부의 직ㆍ간접적인 협조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는 대상에는 교육부에서 파견 나간 청와대 교육비서관과 교육부의 고위관료 2명이 포함돼있다. 당시 중앙대 캠퍼스 통폐합에 반대하던 실무진은 지방으로 전근되는 보복인사를 당했다. 청와대 ‘실세 수석’의 압력을 거부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해도 실무진을 쫓아내고 법령까지 고친 교육부 고위관료들의 행태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박 전 수석과 중앙대와의 커넥션도 의혹의 대상이다. 박 전 수석은 모교인 중앙대에 캠퍼스 통합뿐 아니라 전문대인 적십자간호대학 인수과정에도 특혜를 준 의혹을 받고 있다.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서울에 위치한 대학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기존 정원을 줄여야 하지만 예외규정을 둬 정원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 혐의다. 이런 특혜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수백 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반대 급부로 박 전 수석의 딸이 중앙대 교수로 전격 채용됐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와 교육부, 대학간의 비리와 유착관계의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충격적이다. 외압에 의해 교육 정책과 관련 법령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이 보여줬다. 정원조정이나 캠퍼스 통폐합 등 불가능할 것 같은 난제도 대학 측이 로비만 잘하면 해결이 가능하다는 잘못된 신호를 교육계에 심어줬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할 핵심 교육정책이 비리와 특혜로 얼룩져있다는 의심을 받게 되면 그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권력형 비리에 대한 단죄는 물론이거니와 교육 당국의 책임도 엄중히 물어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02목] 세수 확충 없이 복지 구조조정만 하겠다는 건가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일 세입 여건의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재정 운용 여건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며 “강도 높은 재정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이를 위해 “제로베이스 예산 방식과 보조금 일몰제를 엄격히 적용해 성과가 미흡하거나 관행화된 예산사업을 과감히 폐지 또는 대폭 삭감하는 등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역대 경제부총리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해온 얘기이긴 하나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는 재정개혁을 제대로 추진해 좋은 성과를 내기 바란다. 하지만 최 부총리가 세수 확충 방안을 언급하지 않고 지출 구조 조정만 강조하는 듯해 걱정스럽다.

 

재정개혁의 필요성은 어느 모로 보나 분명하다. 우선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복지 수요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정부도 이에 맞춰 복지재정을 확대하고 있지만 선진국에 견주면 갈 길이 멀다. 반면, 여기에 쓸 재원은 기대만큼 늘어나지 않고 있다. 지난해까지 3년간 세수는 예산에서 잡은 금액에 미치지 못했다. 재정건전성에 더 신경을 써야 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재정지출 가운데 효율적으로 집행되지 못하는 항목이 적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세입과 세출 모두 서둘러 정비해야 한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그런데 최 부총리는 세입 정비 방안을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 앞으로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세수 부족 등을 생각할 때 적절한 자세는 아니라고 본다. 1월 연말정산 파동을 계기로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증세-복지 논쟁이 활발하게 펼쳐졌던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세수 확충을 위해 세제를 어떤 식으로 손질할 것인지 방향이라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논의가 탄력을 받으면서 사회적 합의점을 찾기가 수월해질 것이다.

 

최 부총리가 강조했듯이 재정지출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이에 반대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대상이 복지분야에 쏠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지출의 효율성을 중요한 잣대로 내세우고 있어서다. 복지제도가 이제 뿌리내리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빈틈이 있는 게 현실이다. 이를 빌미로 복지지출에 마구잡이로 칼을 대면 복지제도는 제대로 뻗어나갈 수 없다. 그런 만큼 세심하게 접근해야 한다. 마침 이완구 국무총리가 1일 주재한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논의한 ‘복지재정 효율화 추진방안’을 보니 우려가 가시지 않는다. 군걱정으로 드러나면 좋겠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02목] 말로만 끝나선 안 될 유승민의 ‘세월호 관심’

 

여당인 새누리당의 유승민 원내대표가 3월31일 세월호 가족협의회 대표들과 만났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지금 정부가 입법예고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철회를 요구하면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농성중이다. 유 원내대표의 손을 꼭 잡은 전명선 세월호 가족협의회 대표는 “면담 요청을 받아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 전날 가족들은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청와대 쪽으로 행진을 하려다 경찰과 충돌했고, 몇몇은 머리를 다치거나 입술이 터졌다.

 

세월호 참사 직후엔 대통령·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 고위인사들과 정치인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희생자 가족들의 손을 한 번이라도 더 잡으려 애썼던 때가 있었다. 불과 1년 만에 상황은 일변했다. 책임 있는 당국자들은 이제 세월호 가족을 따뜻하게 감싸안기는커녕 아예 만나는 것도 꺼린다. 정치인들, 특히 집권여당의 힘있는 의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 원내대표가 그래도 얘기를 들어주니 가족들에겐 고마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얘기를 듣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면담에서 가족들은 정부의 특별법 시행령안 철회를 유 대표에게 재차 요청했고, 유 대표는 “시행령은 정부 결정 영역이지만 정부에 건의해 보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유 대표는 1일 기자들과 만나 “가족들 의견을 (정부에) 전달했고, 기다려보겠다”고 밝혔다. 책임 있는 집권여당이라면, 가족 의견을 정부에 전달하고 ‘다음은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란 방관적인 태도에 그쳐선 안 된다. 잘못된 정책이나 민심과 어긋나는 결정에 대해선 정부를 다그쳐서라도 방향을 바꾸도록 해야 옳다.

 

정부가 만든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은 세월호 가족뿐 아니라 많은 국민이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참사의 발생 원인과 구조·수습 과정에서 정부 잘못이 무엇인지를 가리는 게 진상조사의 핵심인데, 그걸 담당할 특위 운영을 사실상 정부 공무원들에게 맡기려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더구나 세월호 특별법은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만든 것이다. 정부가 핵심 내용을 뒤집는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는데도 방관하는 지금의 여당 태도는 명백히 잘못됐다.

 

유 대표는 ‘시행령은 정부 소관’이란 태도를 버리고 정부와 실질 협의를 진행해 시행령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유 대표가 세월호 가족들을 만난 게 의미가 있고, 그런 면담이 4·29 재보선을 의식한 정치적 행동이라는 의심을 피할 수 있다.

 

 

[중앙일보 사설-20150402목] 사드, 차분한 당·정·청 협의로 결정해야

 

중요한 외교·안보 현안으로 등장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가 어제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다뤄졌다. 이로써 사드 논의는 정치권으로 번진 셈이다. 발언한 의원의 대부분은 북한 미사일에 대한 방어로 사드가 필요하며 이런 주권적 사안에 외국의 입김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개진된 의견에 대한 평가와 별도로 ‘의총 논의’라는 형식은 여러 문제를 던진다. 사드처럼 고도로 전문적인 군사적 사안에 국방위원회도 아니고 ‘일반적인’ 전체 의원들이 당론 비슷한 걸 정하는 게 바람직한 의사결정 과정이냐는 것이다. 의총 전부터 우려가 있었는데 이날 윤상현 의원은 매우 전문적인 문제를 비전문가인 의원들이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무특보 3인 중 한 사람이다. 반면 유승민 원내대표는 “외교·국방 이슈는 의총에서 다루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드는 국민 생존과 국가 존망이 달린 문제여서 토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드 배치를 옹호하는 이들은 여당이 의총으로 당론을 모으면 정부가 중국의 압력에 대처하는 데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의총 같은 공개적인 형식은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만약 야당의 의총에서 ‘배치 신중론’이 부각되면 이는 우려되는 사태발전이다. 이런 대립에 시민세력까지 가세하면 국론 분열은 가중되고 다른 나라가 이를 이용할 가능성도 있다.

 

  기본적으로 사드는 군사 사안이다. 국방부는 “사드 배치에 관해 미국 정부가 협의를 요청해 올 경우 군사적 효용성과 국가 안보 이익을 고려해 우리 주도로 판단하고 결정할 계획”이라는 입장이다. 이는 ‘효용성’과 ‘안보 이익’이라는 판단 기준을 명시한 것이며 원칙적으로 옳은 접근방법이다. 사드는 국회 입법이 아니라 행정부의 정책 사안이다. 결정이 필요할 경우 국방부가 면밀히 실무적인 검토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핵심 당·정·청 협의기구에서 결론을 내리면 된다. 이런 차분하고 냉정한 절차가 국가의 주권적 대처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중앙일보 사설-20150402목] 헌재 심판으로 김영란법 완결성 갖추기 바란다

 

하나의 법이 만들어지고 시행되기 위해서는 입법의 목적 못지않게 절차와 내용의 정당성도 중요하다. 법은 상식적이고 건전한 판단을 통해 국민적 지지를 확보할 때 생명력을 갖는다. 사법정의의 실현이라는 공감대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법의 수용자인 국민은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믿음 속에 법 집행에 동의하게 된다. 하지만 지난달 국회가 의결하고 대통령이 공포한 속칭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금지법)은 시작부터 위헌 논란에 휩싸였다.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 만들기’라는 입법 취지와는 달리 국회가 졸속·과잉 입법을 했다는 비판 속에 국론도 분열됐다.

 

  이런 와중에 헌법재판소가 김영란법에 대한 대한변협의 헌법소원 사건을 전원재판부에 넘겨 심사키로 한 것은 입법 과정의 흠결을 찾아내고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사건의 심판기간은 접수일로부터 180일을 넘기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사안에 따라 이보다 더 길어질 때도 많다. 헌재에 접수된 사건 중 30%가량은 이 기간 내 처리되지만 50%는 접수 1년 안에 결정 난다고 한다. 김영란법의 시행일이 내년 9월인 점을 감안할 때 헌재가 심리할 시간은 충분하다. 헌재는 이번 기회에 변론기일을 열어 당사자들의 법적 논리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변론을 통해 국민의 의견이 직·간접적으로 전달될 수 있고 헌법적 가치에 대한 토론의 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모든 국민이 행복할 권리를 추구할 수 있도록 차별 없이 균등하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힘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금품을 받고, 끼리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는 행태는 척결돼야 할 적폐(積弊)이고 구악(舊惡)이다. 김영란법 같은 충격적 요법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위헌 논란을 촉발시킨 법률까지 무조건 따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헌재는 김영란법이 법으로서의 완결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무엇이 문제인지를 꼼꼼히 살피고 지적해줬으면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402목] 김기종씨 기소와 ‘공안몰이 꼼수’의 결말

검찰이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한 김기종씨(구속 중)를 재판에 넘겼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김씨를 기소하며 살인미수, 외교사절폭행,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했다. 경찰이 적용을 공언했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공소장에서 빠졌다. 검찰은 ‘배후세력’도 찾지 못한 채 김씨 단독범행으로 결론 냈다.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뒤 검경 수사인력 100여명이 한 달 가까이 매달린 결과다. 검경은 망신살 제대로 뻗치게 됐다.

 

김씨가 북한 간행물을 갖고 있었고 북한 주장을 추종하는 등의 행동을 했지만 보강수사가 필요하다며 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국가보안법을 신중하고 엄격하게 적용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 간부 입에서 보안법을 두고 이런 발언이 나오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배후세력 여부와 관련해서도 검찰은 “1년간의 후원금과 통화내역 등을 살폈지만 배후나 단체와의 연계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어제 수사결과 발표를 끝으로 특별수사팀은 사실상 해체됐다. 현행범 한 명 재판에 넘기자고 이토록 난리법석을 피웠다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기실 웃지 못할 소극(笑劇)은 예고된 것이었다. 리퍼트 대사 피습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박근혜 대통령은 “단독으로 했는지 배후가 있는지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배후세력의 존재에 무게를 두며 반드시 찾아내라고 엄명을 내린 셈이다. 정부와 청와대 비서실, 새누리당 우두머리들은 한자리에 모여 이번 사건을 ‘종북세력’ 소행으로 규정하고 배후를 파헤칠 것이라고 다짐했다. 검경이 허겁지겁 ‘윗분’들의 뜻을 받들어 대규모 수사팀을 꾸린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어마어마한 배후가 생겨나거나 경천동지할 종북 행각이 드러날 리 있겠는가. 정치적 국면전환용 꼼수는 결국 ‘단체 헛발질’로 끝나고 말았다.

 

이번 사건 수사 과정을 살피면 살필수록 부끄럽고 참담해진다. 대통령이 개별 사건에 ‘수사 지휘’를 하고, 피의사실조차 확정되지 않았는데 수사기관이 적용 법조(法條)부터 거론하는 게 법치국가에서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나마 검경이 1970~1980년대풍의 ‘용공조작’을 흉내내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집권세력은 더 이상 반이성적 공안몰이로 나라를 분열과 혼란으로 몰아넣어선 안될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402모] 수능, 쉽게 출제하는 원칙은 맞지만

오는 11월 치러질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쉽게 출제될 것 같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그제 수능 난이도와 관련해 “작년과 같은 출제 기조를 유지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지난해 수능은 특히 영어와 수학이 쉬워 만점자가 속출했다. 이에 따라 상위권 학생들을 중심으로 변별력 약화에 따른 ‘물수능’ 논란이 벌어졌다. 따라서 교육 당국 말대로라면 올 수능은 최소한 작년보다 어렵지 않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수능이 초·중·고 교육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감안하면 ‘쉬운 출제’ 기조는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렇다고 공교육 살리기의 대의에만 골몰해 변별력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쉬우면서도 변별력을 갖춘 수능, 교육 당국의 묘안을 기대한다.

 

수능 난이도는 학생들의 사교육 의존도와 연계된다. 쉽게 내면 사교육의 필요성이 줄고 어려우면 늘어난다. 또한 수능이 교육당국의 장담처럼 “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이라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출제된다면 수렁에 빠진 공교육 활성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1년 예산이 300조원을 조금 넘는 나라에서 사교육에 20조원가량 지출하는 것은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다. 쉬운 수능이 곧바로 사교육 광풍을 잠재우고 공교육을 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 출발점은 될 수 있다.

 

물론 수능만 쉽게 낸다고 해서 곧바로 공교육이 살아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공교육 위축 현상은 사교육 탓이라기보다 오히려 단순주입식 암기와 경쟁 원리가 판을 치는 공교육 내부의 모순이 응축된 결과물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과도한 대학서열화 체제와 구태의연한 인재 등용 방식 등 엇나간 사회 제도가 이를 부추긴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물수능’ 문제로 교육 현장이 혼란을 겪는 것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다. 수능과 내신을 학생 선발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 현행 대입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적정 수준의 변별력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학생을 모집하는 대학들이 다양하고 합리적인 학생 선발 기준을 마련하도록 교육 당국이 유도해야 한다. 대학들이 설립 취지에 맞춰 공교육과 연결되고 사회적 공감도 얻을 수 있는 학생 선발 기준을 자율적으로 정해 시행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다. 대입제도의 모순을 해결하는 대책이기도 하다.

 

 

[서울신문 사설-20150402목] 여야, 허튼 공약으로 민심 현혹하지 말라

 

여야가 그제 4·29 재·보궐선거 정책공약을 각각 내놓았다. 국정안정론과 정권심판론을 맞세우는 상투적 선거구도의 틀을 넘어선 것은 아니나 여야 모두 거대담론 대신 주민 생활과 직결된 정책공약들을 발굴해 제시하려 노력한 점은 평가할 만한 일이라고 하겠다. 새누리당이 재·보선 지역의 현안을 중심으로 한 공약들을 중점 제시한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중앙당 차원의 굵직한 공약들을 내세워 차별화를 꾀한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그러나 여야의 공약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쪽이 더 문제랄 것도 없이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 공약(空約)에 그칠 내용이 상당수라는 점에서 그저 표심 확보만 노린 선심성 구호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듯하다.

 

‘새줌마(새누리당 아줌마), 우리 동네를 부탁해’라는 제목으로 내세운 새누리당의 정책 공약은 상당수가 지역 개발 사업으로 채워져 있다. 인천 서·강화을의 안상수 후보의 경우 인천 지하철 2호선 조기 개통, 검단신도시 개발, 강화도와 영종도를 잇는 연도교 건설 등을 약속했다. 대부분 자신이 인천시장을 지낼 당시 계획했거나 추진했으나 야당 소속인 후임 송영길 시장이 예산과 타당성 부족 등을 이유로 중단 내지 취소한 일들이다. 전국 17개 광역단체 가운데 가장 극심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인천시의 궁핍한 형편을 감안할 때 과연 이들 사업 가운데 하나라도 이행할 수 있는지부터가 의문이다. 당장 지하철 2호선 건설만 해도 지난해 6월 준공할 계획이었으나 재정난으로 인해 2년 늦춰졌고, 이 바람에 인천시 측은 지금도 시공사들로부터 공기 연장에 따른 추가사업비 900억원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안 후보 측은 지방채 발행 운운하고 있으나 1조 2000억원의 빚더미에 깔려 허덕이는 인천시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입도 벙긋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경기 성남 중원의 ‘위례~성남~광주 지하철 건설’이나 광주 서을의 ‘문화예술관광단지 조성’ 같은 공약도 아무런 재원대책이 없다는 점에서 헛구호로 비쳐진다.

 

새정치연합의 공약들도 실현 가능성보다는 대여(對與) 공세에 초점을 맞춘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최저임금 8000원으로 인상’이나 ‘재정투입 일자리 매년 10만개 창출’ ‘국공립어린이집 매년 600개 확충’ 등 10대 공약 대부분이 중앙당의 정책목표일지언정 재·보선 공약으로 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심지어 카드 수수료 인하와 자영업자 세금 감면, 아파트 관리비·교통비·통신비 절감 등은 식상하기까지 할뿐더러 공약은커녕 정책목표로 볼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운 내용들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대표 체제가 들어선 뒤 경제 정책을 앞세운 대안정당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으나 이들 구호성 공약만 놓고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여야의 장밋빛 헛공약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유권자들이다. 여야 스스로 규정하고 있듯 이번 선거가 박근혜 정부 중반의 국정 안정이나 문재인 대표 체제의 순항을 가름 짓는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 그에 걸맞을 진중한 선거운동을 펼쳐 나가야 한다. 사탕발림식 선심공약은 정책능력 부재를 자인하는 꼴일 뿐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402목] 배달앱 횡포 공정위가 조사 나서야

 

음식점과 소비자를 중간에서 연결해 주는 ‘배달앱’ 시장은 1조원대로 성장했다. 그러나 한국여성소비자연합이 7개 배달앱 서비스 업체를 조사한 결과, 드러난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 음식점이 부담하는 수수료가 10%가 넘을 정도로 과도하고 미성년자도 마음대로 술을 주문할 수 있으며, 배달 음식에 원산지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다. 또 주문은 쉬워도 취소나 환불 절차는 몹시 까다로웠다. 모바일을 활용한 상거래는 유용한 점이 많다. 소비자들은 휴대전화로 간편하게 주문하고 결제한다. 또한 상거래 업체 간의 경쟁으로 가격이 오프라인보다 싼 상품도 많다. 편리하고 가격도 싸니 소비 진작에도 도움을 주기도 한다. 소비를 창출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등장한 지 수년이 되어가는 배달앱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단지 음식을 고르고 주문을 하기가 편리하다는 점 때문에 배달앱 다운로드 건수는 3700만 건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음식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가맹해서 배달앱 업체가 요구하는 수수료를 떼이다시피 하고 있다. 1만원짜리 음식을 팔면 1000원이 넘는 돈을 업체가 가져가는 것이다. 음식점의 이윤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그 손실을 음식점들은 가격을 올리거나 음식의 양을 줄여서 소비자에게 전가한다.

 

배달앱 서비스는 전화로 주문을 하는, 생산자(음식점)와 소비자 간의 직거래에 불필요한 유통업체가 끼어들어 이득을 취하고 있는 꼴이다. 소비자가 얻는 이득이란 모바일로 주변 음식점에 대한 정보를 얻고 쉽게 주문을 하는 것뿐이다. 대신에 전보다 비싸거나 양이 적은 음식을 먹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한 단계를 더 거치기 때문에 전화 주문보다 배달도 늦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배달음식업이 배달앱의 덕에 신규 수요가 창출된 것도 아니다. 음식점으로서는 매출은 변함이 없는데 배달앱 업체에 지불하는 공연한 수수료만 늘어난 셈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자영업자들에겐 거간 역할을 하는 배달앱 업체가 고마울 까닭이 없다. 수많은 소비자가 앱을 이용하니 음식점도 가맹하지 않을 수 없고 을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광고비를 내지 않는 업체는 음식점 순위를 내린다는 주장도 있다. 무엇보다 영세한 음식점의 고혈을 빠는 과도한 수수료는 시정돼야 한다. 적어도 신용카드 수수료만큼은 내려야 한다. 횡포에 가까운 배달앱 업체들의 요구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불합리한 유통 구조를 개선하려면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02목] 한국은 개혁이 불가능한 나라 되고 말았나

 

도무지 개혁이라고 말할 게 없다. 공무원연금 개혁, 노동 개혁이 다 그렇다. 합의안을 만들기로 했던 시한이 지났는데도 여태 아무것도 나온 게 없다. 국회 공무원연금특위가 소위 대타협기구로부터 공을 넘겨받아 오는 6일부터 재가동키로 하고, 노사정위원회는 지금도 돌아가고 있다지만 시간을 더 줘봐야 의미 있는 합의가 이뤄질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 개혁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노총만 봐도 그렇다. 쟁점인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임금피크제 등 3대 현안과 비정규직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 저성과 근로자 일반해고 요건 등 5개 사항 전부에 대해 모두 수용불가 입장이다. 노·사·정 합의안이 나오면 한국노총 내부에서 최종 결정하겠다고 한다. 개혁 주체와 객체의 전도다. 비정규직, 청년실업 문제가 절실한데 노조단체가 아무것도 포기하지 못 하겠다고 주장하니 무슨 개혁을 하겠다는 것인지, 당초 예상했던 대로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노동 개혁은 ‘불가’라는 소리가 나온다.

 

구조개혁의 틀부터 잘못됐다.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으로 개혁 대상이 되는 당사자를 소위 대타협기구와 노사정위원회에 끌어들여 개혁하겠다고 했던 것부터가 문제였다. 이해 당사자가 들어와 있으니 타협은 몰라도 개혁은 설 자리가 없다. 더구나 노조단체의 대표성도 낮다. 노조 조직률이 10%를 겨우 넘는 상황이다. 5%가 안 되는 한국노총은 고연봉 근로자의 기득권이고, 민주노총은 아예 총파업을 외치고 있다. 전체 근로자의 90%인 일반 근로자의 목소리는 안 들리고, 실업자와 비정규직은 아예 울타리 밖에 있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표를 의식하는 상황에서 개혁안은 의미가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공무원연금 핵심수치를 공란으로 비운 해괴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게 그렇다. 국회 특위가 재가동해봐야 시간만 끌 뿐,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사회적 합의라는 것이 오히려 개혁을 막고 집단적·이기적 투쟁의 빌미만 주는 꼴이다. 노조단체는 90%의 근로자와 실업자는 외면한 채 귀족노조를 대변하고 있다. 공무원들조차 재정고갈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기득권을 고집한다. 야당은 노·사·정이 합의해도 국회 법제화 과정에서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끝없는 토론이 이어질 뿐이다. 국회는 개혁 불능의 조직이다. 무언가 합의안이 나오더라도 국민의 분노는 더 커질 것이다. 자율 개혁은 불가능하다. 또 위기를 맞아야 그때 개혁할 것인가.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02목] 한국은행의 이상한 돈 찍어내기, 누가 허락한 것인가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중소기업과 금융공기업에 빌려준 대출금이 1년 새 66.5% 급증해 15조3761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외환위기 때보다도 많다. 중소기업 지원용 금융중개지원대출이 11조9081억원, 회사채시장 정상화 명분으로 지난해 3월 정책금융공사에 빌려준 3조4590억원이 그 내역이다. 아울러 한은이 주택금융공사에 4450억원, 수출입은행에 1조1650억원을 출자한 것도 발권력에 의한 것이다.

 

무차별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할 중앙은행이 정부를 대신하는 차별적 선택적 지원에 동원되는 것은 깊이 우려할 대목이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금융중개대출은 최근 5조원이 증액돼 한도가 20조원으로 늘어났다. 3년째 매년 한도가 늘어나고 있어 어디까지 불어날지 알 수 없다. 금융당국이 안심전환대출을 40조원으로 늘리면서 한은은 주택금융공사에도 2000억원을 또 출자해야 할 판이다. 재정으로 할 일을 마치 예비군 동원하듯 한은을 끌어들인 셈이다. 정부가 한은법상 금융안정 임무를 들어 요구한다지만 그런 식이면 발권력을 동원해 못 할 일이 무엇이 있겠나.

 

한은 발권력은 조세 수입에 기반한 정부 재정 투입과는 전혀 다르다. 문자 그대로 고성능 인쇄기계로 찍어내면 그만이다. 바로 그런 위험성 때문에 한은법은 중앙은행의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변덕스런 정치적 고려에서 탈피해 통화가치를 유지하라는 임무를 부여한 것도 그 때문이다. 돈이 가치를 지니는 것은 금으로 교환되거나 누군가의 땀과 눈물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관리통화 시대라 해도 발권력이 통제도 없이 남용돼선 안 된다.

 

일각에선 각국 중앙은행이 돈을 푸는데 한은은 소극적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미국의 양적 완화도 균형고용에 필요한 화폐량을 엄밀하게 계산하는 등 내부 기준이 있다. 정부가 한은을 찍어눌러 발권력을 빌리는 것은 양적 완화보다 질이 더 나쁘다. 과거 한은은 정부의 외환은행 출자 요구에 법에 위배된다며 버티는 결기라도 있었다. 지금은 하라는 대로 금통위의 의사봉 두드리기 바쁘다. 국회 심의조차 받지 않는 발권력을 누가 동원했나. 이럴 바엔 한은도 중소기업·서민대출창구를 만드는 편이 낫지 않겠나.

 

 

 

[한국경제신문 사설-2010402목] KTX 전국망 시대…수도권·지방 타령 이젠 그만

 

KTX가 2004년 4월1일 경부고속철도 개통으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이 땅에 고속철 시대를 연 지 11주년을 맞았다. 개통 당시 7만2300명이던 하루 이용객 수가 지금은 15만5628명,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누적 승객수로 따지면 약 47억명으로 전 국민이 아홉 번 이상 탑승했다고 할 정도다. KTX 운행노선은 2004년 687.6㎞에서 1512.4㎞로 증가했다. 시속 300㎞ 속도 혁명이 바야흐로 전국을 구석구석 이어주는 생활상의 일대 혁명을 몰고 온 것이다.

 

특히 올해는 KTX가 또 한 번 도약한 해로 기록될 만하다. 오송~광주송정 간 호남고속철도와 신경주~포항 간 직결선이 완공돼 오늘 개통한다. 이로써 서울~광주는 최단 1시간33분, 서울~포항은 2시간15분으로 단축돼 그야말로 반나절 생활권으로 바뀌었다. 벌써부터 부동산이 들썩이는 등 지역경제에 상당한 파급효과가 예상된다는 분석이다. 다른 지역도 관광 등 새로운 발전 기회를 맞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여전히 일각에서는 ‘빨대효과’를 들먹이며 수도권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 당일쇼핑 등으로 지역 상권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우려다. 하지만 그런 지역일수록 막상 새로운 유통망이 들어오려고 하면 각종 규제나 반발, 돈 뜯어내기 등으로 진입을 가로막아 왔다. 지역 간 경계를 허문 KTX 시대에조차 1960~70년대 균형발전 논리에 사로잡혀 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KTX를 반대한다고 더 빠른 속도를 향한 기술혁신이 멈출 것도 아니다. 전국이 하나의 생활권으로 좁혀지는 건 시간문제다. 그렇다면 각 지역이 KTX를 발판삼아 전국을, 해외를 자신의 무대로 만드는 과감한 발전전략을 펼 때가 아닌가.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03목] 외자 우대 줄이는 중국, 우리 기업 피해 최소화해야

 

중국이 외자기업에 대한 우대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180도 선회하고 있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해 말 지방정부가 자체 제정한 조세감면 등 외자기업 우대정책을 전면 청산해 조세법정주의를 준수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최근 알려졌다. 이번 조치는 2008년에 단행한 외국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혜택 철회에 이은 것이지만 대상 범위와 중앙정부의 강력한 의지까지 감안할 경우 우리를 포함한 외자기업 모두에 훨씬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무원 지침에 따르면 지방정부의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앞으로 국무원 허가 없이 세금우대 정책을 제정할 수 없도록 했다. 또 지방정부는 외자기업이 부담하는 사업성 요금과 사회보험 등을 엄격히 집행해야 하며 토지 등 국유자산의 저가 매각도 엄금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국무원은 특히 3월 말까지 이행사항을 지방정부에 보고하도록 해 이달부터는 이번 조치의 파장과 진출기업의 피해가 본격화할 조짐이다. 가뜩이나 중국 내 임금·준조세·지가상승 등으로 운영비용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현지 진출기업 입장에서는 이번 조치를 계기로 중국 사업을 접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에서 무작정 철수하는 것은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 특히 최근 들어 중국 정부가 세금우대 정책을 지역 중심에서 하이테크 등 산업 중심으로 전환하는 만큼 사업구조 재편 등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우리 정부도 대상 기업의 한국 U턴 방안 등을 포함한 다각적인 지원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02목] 노동개혁 과연 '사회적 대화'만으로 풀 수 있겠나

 

공무원연금에 이어 노동시장 개혁마저 좌초될 위기다. 지난해 9월부터 올 3월 말까지 6개월간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논의해온 노사정 대화가 아무 성과 없이 협상시한을 넘겼다. 후진적인 노동시장 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대타협의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서로의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대화를 이어간다지만 개혁 안건들에 대한 입장차가 커 극적 타결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설사 합의에 이르더라도 견해차가 큰 사안은 빠지고 낮은 수준의 타협안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빈손으로 끝났다는 비난을 피하려는 미봉책에 불과할 따름이다.

 

공무원연금 국민대타협기구에 이어 노사정위 협상마저 위기에 처한 가장 큰 이유는 집단이기주의다. 국민들의 압박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기는 했으나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노조는 노조대로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집착했다. 사측마저 현 상태를 유지해도 손해 볼 게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협상에 임했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이러니 제대로 된 대화가 이뤄지고 성과가 나올 수 있었겠는가.

사회적 대화는 경제위기 극복 방안 등 사회적 의제에 대해 국회가 아닌 노사·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합의점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 독일의 하르츠 개혁이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모두 노사가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고 양보해 결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노사정 협상에서 보듯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대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사회적 신뢰가 낮고 합의를 존중하는 문화가 약한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정책 이슈가 순조롭게 풀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정부가 중재자나 심판 역할만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 경제여건은 노사 타협을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는 상태다. 정부가 독자적인 안을 만들어 국회를 설득하는 방안을 고려할 때다. 유럽의 사회적 대화 성공은 노사 양보와 함께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2003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도 정치인으로 실패할 수 있다는 각오로 노동개혁에 성공함으로써 지금의 독일 경제를 가능케 했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02목] 물가 또 마이너스… 2년차 한은 총재 어깨 무겁다

 

담뱃값을 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취임 1주년을 맞은 1일 발표된 3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0.4% 오르는 데 그쳤다. 담뱃값 2,000원 인상 효과 0.58%포인트를 제외하면 2월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마이너스 물가'다. 월별 물가 상승률도 지난해 12월 0.8%와 올해 1월 0.8%, 2월 0.5%에 이어 0.4%로 하락세가 계속되는 추세다. 이래저래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디플레이션 걱정은 말라고 한다. 되레 실물경제 회복세가 점차 강화되면서 물가상승 압력이 예상된다는 논평까지 내놓았다. 하기야 농산물 및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이달에도 2.1%를 지켜내긴 했다. 2월 광공업 생산이 전월 대비 2.6% 증가하고 소매판매와 설비투자 증가율이 2.8%와 3.6%에 달하는 등 경제지표에도 긍정적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그래도 낙관은 금물이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만 봐도 전년보다 0.3%포인트 떨어져 안심할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 최근의 지표호전 또한 설 연휴에 자극받은 '반짝 효과'에 그칠 수 있다.

특히 한은 총재 2년차를 맞은 이 총재는 세 차례의 금리 인하에도 물가하락을 막지 못한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통화정책을 주도한 지난 1년간 기대인플레이션율이 2.8%에서 2.5%로, 소비자심리지수가 108에서 101로, 기업경기실사지수가 81에서 77로 내려앉은 것은 스스로 곱씹어야 할 부분이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소통부족'과 '신뢰상실'이라는 쓴소리를 귀담아듣고 남은 임기 3년을 위한 묘약으로 삼는 지혜도 이 총재에게 필요하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기획재정부와 새누리당의 '입조심'이다. 권력자의 섣부른 간섭으로 통화정책의 중립성이 의심받게 된다면 이 총재에 대한 믿음은 물론 디플레이션 위험을 함께 극복해야 할 모든 경제주체 간의 신뢰까지 해치는 반갑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세상 읽기/김창엽(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20150402목] 가난을 모욕(처벌)하는 국가

 

 

경남에서 무상급식이 중단되었다. 많은 시비가 있었으니 딱 한 가지, 학교급식은 허기를 면하고 영양을 보충하는 일 그 이상이라는 것만 다시 새긴다. 밥 먹이는 것이 곧 보살핌이라는 것을 잘 알 텐데도 그리했으니,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남을 상처가 같이 아프다.

 

그다음이 더 문제다. 경상남도는 급식 대신 공부시키는 데에 돈을 쓰겠다고 발표했다. 선별복지가 맞다면서 ‘서민 자녀’ 중에 지원받을 학생을 고르는 중이다. 그래도 이런 소리는 듣기 싫었을까, “가난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 대상자를 객관적으로 선정”하는 것이라고 보도자료까지 냈다.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어떤 방법이든 그 학생들이 ‘딱지’를 피할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무상급식으로 남겨 놓은 학생의 처지도 비슷하다. 아무리 부인해도 차별과 모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드러내 목표로 삼지는 않았지만, 나는 암묵적인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의료급여를 받는 가난한 사람들도 모욕을 당하게 생겼다. 복지부가 오는 7월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힌 ‘의료급여 진료비용 알림 서비스’ 때문이다. 얼마 이상 많이 쓴 사람에게 진료비 총액과 의료 이용량을 경고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만든 모범 통지문의 내용은 이렇다. “귀하께서는 …에 대한 의료 이용량이 매우 높아 적절한 관리가 요구됩니다.”

 

이런 통지를 받고도 불안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몇원까지 상세한 개인정보에다 으름장까지, 누구나 등골이 서늘할 일이다. 늘 따라붙던 ‘도덕적 해이’란 말만 쓰지 않았지, 필요하지 않은 병의원을 드나든다고 비난하는 것이 분명하다.

거기다가 “사용하신 총진료비용은 ○○○원이며 이 중 정부(의료급여)에서 ○○○원을 지원”한다는 문구도 들어간다고 한다. 국가의 시혜까지 내세웠으니, 도덕의 이름으로 가난한 자의 책임을 말하는 거리낌없는 차별이고 모욕이다.

국 가가 가난의 낙인효과에 유혹을 느끼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모욕을 통해 가장 은밀하게 가난을 ‘처벌’할 수 있어서다. 소설 <주홍 글씨>의 낙인이나 명단 공개를 통한 망신주기가 약한 처벌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터. 가난을 모욕하는 것에 빗대면, 그것은 현재의 사회경제 질서와 요구에 순응하게 하려는 채찍이자 당근이다.

 

하지만 그것이 국가의 통치방법인들 가난을 모욕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적어도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 개인에게 쉽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언제나 그랬지만 더구나 지금의 가난은 온통 사회경제체제의 틀에 좌우된다. 우루과이 라운드와 자유무역협정의 태풍을 맞은 농부가 왜 모욕을 받아야 하나.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고도 ‘5포 세대’가 되어야 하는 청년들은 또 어떤가.

 

가난 벗어나기가 보상이 아니라 권리라는 것도 강조해야겠다.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밝혀 놓았다. 착각하지 말자. 공부 잘하거나 출세한 사람, 큰 기업을 일군 사람만 누리는 것이 아니다. ‘모든’ 국민이 능력과 노력, 지금의 처지에 상관없이 기본권을 가진다. 가난으로 고통받지 않을 권리를 모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부쩍 자주 떠오르는 일이, 오래되었는데도 눈에 선하다. 육성회비를 내지 못했다고 이름을 칠판에 적고 벌을 주던 모습. 복도에 세운다고 없던 돈이 생길까만, 모두 보라고 그랬을 것이다. 그때도 국가는 가난을 모욕하고 처벌했다.

이젠 그만하자. 아무리 유혹이 강해도, 혹 그것이 국가 이성이어도, 이렇게 가난을 처벌하는 것은 복지도 정의도 아니다. 국가의 책임이 말에 그친다 한들, 또다시 가난을 모욕하지는 말라. 이미 충분히 힘들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상언(사회부문 차장)-20150402목] 울지마, 차두리

 

인간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쉼 없는 달리기 때문에 차로봇·차미네이터 등으로 불린 그는 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전압 220V로 충전한다는(그의 등번호 22번에서 유래) ‘사이보그 의혹’이 해소됐다. 동시에 ‘차두리는 왜 공보다 빨리 달릴까’라는 오래된 의문도 풀렸다. 차 선수는 국가대표 은퇴 경기(3월 31일) 뒤의 인터뷰에서 울먹이며 말했다. “너무 축구를 잘하는 아버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근처에 못 가니까 … 전 잘하지는 못했지만 항상 열심히 하려고 애썼고….”

 

  아버지 같은 레전드급 선수가 못된 것이 끝내 한스러운지 모르겠으나 사실 그는 이미 축구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왔다. ‘다이내믹 코리아’에서 ‘엉거주춤 코리아’가 된 나라에서 국민은 그가 내달리는 것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했다. 가끔 엉뚱한 곳으로 공을 차면 어떤가. 발재간이 좀 떨어지면 어떤가. 공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서성이는 선수보다 공을 향해 질주하는 선수가 보기에 좋지 않은가.

 

  아버지와 아들 또는 딸이 같은 분야에서 당대 최고의 재능을 보이는 것은 쉽지 않다. 어느 정도는 세상이 공평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인지 유전자가 완벽히 대물림되지는 않는다. 후광으로 남들보다 쉽게 인생을 앞서 나간 이들은 늘 부모의 성취와 비교당하거나 스스로 비교하는 ‘주니어 콤플렉스’에 시달리기 십상이다. 차두리의 눈물은 그 부담의 무게를 말해준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 개조’를 역설할 때 유독 말이 강해진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조국 근대화’를 외칠 때의 모습이 비쳐진다. 박 대통령이 “국가와 결혼한 삶”이라고 말할 때도 그 위로 아버지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라고 한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내각의 핵심 각료였다. 아베 총리가 평화헌법 수정까지 노리며 패권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것도 태생적 연원으로 풀이가 가능하다.

 

  선수로서의 차두리는 아버지라는 큰 산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지도자로서는 아버지를 능가할 가능성이 있다. 특급 선수가 일류 지도자가 된 예는 많지 않다. 역대 최고급 야구 선수 출신 선동열·김시진도 감독으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차범근도 감독으로서는 별로였다. 반면 명장 거스 히딩크·조제 모리뉴(영국 첼시 감독)는 그다지 유명한 선수도 아니었다. 차두리, 축구 인생 2막이 기다리고 있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이대근(논설위원)-20150402목] 두 손 든 아이

아이를 두고 흔히 순수하다, 순진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건 희망을 담은 표현일 뿐이다. 아이들을 한 방에 모아서 먹을 것을 주고 지켜보면 아이의 본성을 금방 알 수 있다. 아마 서로 빼앗고 할퀴고 울고 난리 날 것이다. 이게 바로 어른들이 아이에게 사회 규범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사회상이 없으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무인도에 고립된 소년들은 살아갈 방법을 두고 의견이 갈리고 그에 따라 패도 나뉘며 갈등한다. 결국 권력을 쥐게 된 소년과 그에 맞서는 소년들은 서로 죽고 죽이는 살육전을 전쟁놀이 하듯 한다.

 

얼마전 이집트 어린이들이 IS의 인질 참수를 흉내내는 놀이를 하자 세계가 놀란 적이 있지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아이들은 세상이 가르친 대로 따라하기 때문이다. 아이와 침팬지를 비교하는 유명한 실험이 있다. 나뭇가지로 검은 상자 위쪽을 두드리는 등의 세 가지 행동을 한 뒤 상자 한 면에 달린 창을 열어 나뭇가지로 사탕을 꺼내는 것이다. 아이와 침팬지 모두 잘 따라 했다. 그 다음 투명한 상자로 같은 실험을 했다. 사탕이 잘 보이므로 상자 위쪽을 두드리는 행동은 불필요했다. 그냥 창을 열고 사탕을 꺼내면 된다. 그러나 아이는 세 가지 절차를 다 따랐다. 반면 침팬지는 바로 사탕을 꺼냈다. 침팬지가 아이보다 똑똑했다! 그런데도 침팬지는 문명을 만들지 못한다. 모방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방할 줄 알기 때문에 선례를 배우고 지식을 습득해 후대에 전수할 수 있다.

 

이런 장점은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어제 보도된 시리아 난민촌 사진 한 장을 보자. 사진에서 네 살짜리 아이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두 손을 들고 있다. 누군가가 긴 쇠뭉치를 꺼내 양손에 잡고 자기를 겨냥하자 살려달라며 두 손을 든 것이다. 터키 신문기자가 아이를 촬영할 때 그렇게 항복의사를 나타냈다고 한다. 아이가 생존법부터 배운 것이다.

 

인간의 문명이 아이에게 왜 공포가 됐는지 이 사진은 묻고 있다. 남의 일이 아니다. 사진은 아이에게 생존경쟁의 정글 사회를 물려주려는 한국인의 어깨도 죽비처럼 내리친다.

 

[서울신문 칼럼-곽태헌 칼럼/곽태헌(논설실장)-20150402목] 이젠 운 좋은 ‘586세대’가 양보해야 한다

 

1990년대 들어 ‘386세대’라는 조어(造語)가 나왔다. 30대, 대학 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을 종합한 게 ‘386세대’다. 어원(語源)은 당시 성능이 좋았던 386급 컴퓨터다. 종전의 286급 컴퓨터에 비해 기능이 훨씬 뛰어났던 386급 컴퓨터와 같은 자랑할 만한 좋은 별칭이다. ‘386세대’가 제대로 업그레이드됐는지를 논할 생각은 없다. 세월이 지나면서 30대가 40대가 되고, 50대가 됐다. ‘486세대’를 거쳐 ‘586세대’가 되면서 요즘에는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86세대’로도 불린다.

 

기자도 여기에 포함되지만, 이 세대는 운이 참 좋다. 입시 지옥이라는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쉽게 들어갔다. 1980년 7월30일 전두환 정권은 느닷없이 과외와 본고사를 없애고, 예비고사와 내신성적으로만 대학에 들어가는 내용의 ‘교육개혁안’을 내놓았다. 당시 모든 언론이 찍소리를 할 수 없었던 군사정권이었으니 가능했다. 대학 정원도 늘리고 여기에 덧붙여 졸업정원제라고 해서 30%를 더 뽑게 했다. 대학에 들어와서 데모하지 말고, 공부를 하도록 하려는 꼼수가 깔려 있었지만 어쨌든 입학의 문은 활짝 열린 셈이다.

1981학년도 4년제 대학 입학정원은 18만 7050명으로 전년보다 7만 350명 늘어났다. 졸업정원제 첫해인 그해에는 원서접수에 제한이 없어 허수(虛數) 지원이 많았다.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치러진 면접에는 한 곳만 선택해야 했으니, 서울대 법대를 비롯해 곳곳이 미달이었다. 1984년에는 30%를 더 뽑을 수 있도록 된 것을 대학 자율로 하도록 바뀌었고, 1988년에는 졸업정원제는 완전 폐지됐다.

 

‘86세대’는 직장도 골라서 갔다. 전두환 정권 시절의 3저(달러·유가·금리) 호황을 타고 이들이 졸업할 1980년대 말에는 취업도 쉬운 편이었다. 요즘 웬만한 기업의 경쟁률은 100대1이 넘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1980년대 말, 상경계 출신들은 투자금융·종합금융·리스·증권·투자신탁 등 당시 잘나가는 금융회사를 골라서 가기 바빴다. 상경계 출신들은 요즘 인기가 있는 시중은행은 안중에도 없었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터져 여기저기서 구조조정을 했지만 입사 경력 10년을 넘지 않았던 ‘86세대’들은 이 위기도 비교적 수월하게 넘어갔다. 보통 기업에서는 고참 위주로 구조조정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운 좋은 ‘86세대’는 국회의원들의 도움까지 받았다. 재작년 국회 본회의에서는 직원이 300명 이상인 기업의 경우 2016년부터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내용의 법을 통과시켰다. 고비마다, 외부의 도움을 받으며 넘어가니,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다. 기업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보통 55~58세가 정년이던 곳에서는 1958~61년생도 혜택을 보게 된 것이다.

 

이제는 ‘86세대’를 비롯한 기성세대들이 사랑하는 우리의 아들과 딸을 위해 양보할 때가 됐다. 요즘 20대는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이다, 과외다 하면서 힘들게 살아왔다. 부모 세대보다 입시를 위한 공부는 더 많이 힘들게 했지만,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훨씬 어려워졌다. 어렵게 들어간 학교를 졸업해도 갈 곳은 없다. 지난 2월 청년(15~29세) 실업률은 11.1%로 1999년 7월 이후 최고치였다.

 

취업하는 게 본인과 가족에 가장 큰 축복인 상황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일자리를 늘리는 것과는 정반대인 주문을 해왔다. 배당을 늘리라고 압박하고, 임금을 올리라고 압박한 게 최 부총리다. 배당을 늘리고 임금을 올리면 기업의 여윳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배당 압박을 할 게 아니라, 고용 압박을 해야 한다. 임금을 올리라고 할 게 아니라, 임금을 동결해서라도 채용을 늘리라고 압박하는 게 맞다. 정책에는 우선순위가 있는 법이다

 

정치권, 정부, 재벌을 믿을 수 없다면 기성세대들이라도 나서야 한다.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이고, 임금동결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희망을 잃어가는, 꿈을 잃어가고 있는 청년들의 일자리를 위해 기성세대가 양보해야 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콩 한쪽이라도 나눠 먹으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단군 이래 최고라는 지금 누리고 있는 물질적인 풍요를 우리의 아들, 딸이 더이상 누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 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402목] 117세 할머니

 

1960년대 중반 프랑스의 한 중년 변호사가 90대 여성 고객과 특별한 계약을 맺었다. 그녀가 죽을 때까지 매월 일정액을 주는 대가로 아파트 소유권을 받기로 했다. 그녀는 여생을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고, 그는 집을 싸게 사는 셈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30년 후인 122세 164일까지 살다 갔다. 세계 최고령자 잔 루이즈 칼망(1875~1997)의 실화다.

 

그녀는 85세에 펜싱을 시작했고, 110세까지 자전거를 탔다. 21세부터 117세까지 담배를 피웠다. 조사 결과 그녀의 조상들도 일반인보다 평균 10.5년이나 더 오래 살았다. 학자들은 이를 두고 생활양식이나 음식보다 희귀한 장수 유전자 덕분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녀가 “자주 웃고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내는 게 비결”이라고 했지만, 지루할 틈 없는 변호사가 훨씬 일찍 죽은 걸 보면 장수 DNA는 타고나는 모양이다.

 

남자 최고령 공인 기록 보유자인 일본인 이즈미 시게치요(1865~1986)는 120년 237일을 살았다. 그는 91세가 돼서야 재혼을 단념할 정도로 열정적이었고, 105세 때까지 젊은이처럼 일했다. 담배는 116세에 끊었다. 그러면서도 어린아이 같은 동심을 갖고 있었다. 매일 술 한 잔의 여유와 태평한 마음가짐, 유머가 장수 비결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110세 이상을 산 사람은 100명에 육박한다. 100세를 넘긴 사람은 수십만명이다. 국내에도 100세 이상 노인이 1만5000여명 있다. 일본은 6만여명이나 된다. 물론 여성이 세 배 정도 많다. 현재 남성 최고령자는 112세인 일본인 모모이 사카리다. 그는 지난해 기네스 인증서를 받고 “건강 비결은 하루 세 끼를 생선 위주로 잘 먹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욕심이 없어 “2년만 더 살고 싶다”고 했다.

 

학자들은 성장 발육기간(24세 전후)의 5배가 인간의 한계수명이라는 점을 근거로 우리가 120세까지는 충분히 살 수 있다고 본다. 성경 창세기 6장 3절에도 ‘그들의 날은 백이십년’이라고 했으니 이 또한 비슷하다.

 

어제 세계 최고령자인 일본의 오카와 미사요 할머니가 117세로 세상을 떴다. 지난달 생일잔치에서 머리에 분홍색 꽃핀을 꽂고 수줍게 웃던 그 모습이 아직 선하다. 그동안의 인생이 길었느냐는 질문에 “짧았다”는 대답을 남기고 ‘만년 소녀’는 하늘로 갔다. 스시를 즐기며 하루 8시간 이상 자는 게 건강비결이었다고 했는데, 아쉽다. 인간 수명 120세에 3년을 남겨놓고 갔으니.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정상범(논설위원)-20150402목] 가장 가난한 대통령

 

중국의 전설적인 성왕인 순임금은 논밭을 매는 가난한 농부로 생활하다 전격 등용돼 임금 자리에 올랐다. 그는 왕위에 오른 후 단 한 번도 산해진미를 맛보지 않은 채 거친 밥과 나물국을 상식했다. 초가집에 살면서 질그릇으로 식사를 하는 바람에 신하들이 이를 말리느라 애를 써야 했다. 조선 시대 영조는 야참과 낮것상을 줄여 하루 세 끼만 들었으며 반찬의 가짓수가 지나치게 많다면서 늘 3첩 반상만 고집했다. 거처하던 대궐의 방문이 뚫어지면 손수 종이 조각으로 발랐으며 비단 대신 무명천으로 용상을 만들게 하고 버선도 해진 데를 일일이 기워 신었다. 어느 날 호조판서가 무명천에 솜을 집어넣어 방석을 만들어 올리자 몸이 편하면 마음도 게을러지기 마련이라며 도로 가져가라고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비록 통치자의 자리에 있지만 백성의 고통을 외면하고 호의호식하는 것은 하늘의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통치철학이다.

 

지난달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의 검소한 생활이 우리 사회에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재임 시절 대통령 관저를 노숙자 쉼터로 양보하고 자신은 수도 몬테비데오 외곽에 있는 허름한 시골농장에서 지냈다. 재산이라곤 1987년산 폭스바겐 비틀 중고차 1대뿐이다. 급여의 90%를 극빈층을 위해 내놓고 자신은 나머지 10%의 돈으로 생활한다고 해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국민들이 그에게 70%의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 것은 단지 청렴한 생활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재임 시절 실업률은 역대 최저치인 6.5%로 떨어졌고 빈곤율도 11.5% 수준까지 낮아지는 등 경제사정이 크게 좋아졌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대통령 혼자 검소한 생활을 해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다 돕지 못하므로 우루과이 사회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임무는 가난한 생활을 경험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국민을 가난의 수렁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소중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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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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