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성완종 리스트 수사 ■ IS의 한국대사관 공격 ■ 민주노총 총파업에 돌입 예정 ■ 제7차 세계물포럼 개회식, 무너진 자격루 ■ 경남도 무상급식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성완종 리스트 수사
[한국일보 사설-20150414화] ‘성완종 리스트’ 수사 두고 다들 오해 살 짓 말라
지금 ‘野 대선자금도’ 주장은 물타기
의구심만 키운 李 총리의 황망 처신
野도 과도한 정치공세 역효과 염두에
정치권이‘성완종 리스트’로 벌집을 쑤신 것처럼 소란하고 어지럽다. 명단에 오른 인사들이 현직 총리와 전ㆍ현직 청와대비서실장 등을 비롯한 현 정권 실세들이니 그럴 만도 하다. 더구나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진영의 대선자금이 사안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검찰수사 향방에 따라서는 정권의 정당성과 도덕성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초긴장 상황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여권 안팎에서 벌어지는 관련 인사들의 황망한 처신은 보기 민망하다. 서둘러 방어막 치기나 물타기 등의 본질 흐리기도 꼴사납기는 매 한 가지다.
무엇보다도 어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012년 대선자금 문제와 관련해“야당도 함께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한 것은 야당을 끌어들여 본질을 흐리는 전형적인 물타기다. 야당이 “물귀신 작전”이라고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성 전 회장이 목숨을 끊기 직전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선캠프의 홍문종 의원에게 2억 원의 대선자금을 제공했다고 밝힌 만큼 이에 대한 검찰 수사는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2012년 대선 박근혜 후보 진영 대선자금 전체를 넘어 야권 대선자금까지 수사를 확대하자는 주장은 지나치다.
선거판 생리상 파고 들면 범법이 드러날 가능성이 적지 않겠지만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과거 경험 상 여야가 이전투구에 매달려 가뜩이나 시급한 국정현안과 사회적 과제들이 모두 비껴날 개연성이 크다. 우선은 성완종 리스트에 관련된 수사에서부터 확실한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먼저다. 야당도‘친박 게이트’운운하며 무한정의 정치공세로 몰아가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새누리당 김 대표의 야당 대선자금 조사 언급도 야당의 공세가 촉발한 방어적 성격이 없지 않다.
이완구 총리는 성완종 리스트에 이병기 청와대비서실장과 함께 이름만 적힌 경우다. 그럼에도 성완종 리스트 회오리 속에 그의 존재감이 점점 도드라지고 있다. 이 총리는 엊그제 태안군 의회 부의장 등 2명에게 무려 15차례나 전화를 걸어 성 전 회장이 목숨을 끊기 전날 지역인사들과 만나 무슨 얘기를 했는지를 캐물었다고 한다. 누가 보더라도 뭔가 켕기는 게 있지 않은가라는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한 정황이다.
이 총리는 어제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이와 관련한 추궁을 받고 고인(성 전 회장)이 메모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 만큼, 친분 있는 지역인사들에게 전화 해서 알아보는 게 자연스럽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나 이 정도 해명으로 의구심이 풀리기는 어렵다. 이 총리는 지난달 12일 갑자기 비리척결 담화문을 발표해 뜬금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담화를 기점으로 성 전 회장의 경남기업 자원비리 등에 대한 검찰조사가 시작됐고 급기야 이번 사태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이 총리는 성 전 회장으로부터 절박한 구명 로비를 받은 정황이 드러나 이 사태와 전혀 무관할 수 없는 처지다. 야당이 요구하는 총리직 사퇴는 아니더라도 관련 보고 라인에서는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이 총리 스스로도 자숙하며 보다 신중한 처신이 필요하다. 성 전 회장에게서 상당한 액수의 돈을 받았다는 홍문종 의원, 홍준표 경남지사 등도 서둘러 결백을 외치기에 앞서 검찰 조사에 진실하게 응해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13화] 이 총리, 뭐가 켕기기에 15번이나 전화를 했나
이완구 국무총리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자살 전날 그를 만났던 측근들에게 15차례나 전화를 걸어 대화 내용을 캐물었다. 이 총리는 총리실 전화가 아닌 개인 휴대전화로 이용희 충남 태안군의회 부의장과 김진권 전 태안군의회 의장에게 각각 12차례, 3차례씩 전화를 걸어 “(성 전 회장과) 무슨 대화를 나눴느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두 사람은 성 전 회장이 자살하기 전날인 8일 한 시간가량 그를 만났던 사람들이다. 이용희 부의장은 “성 전 회장이 ‘이완구를… 이완구를… 어떻게…’라고 이완구 총리 이름을 불렀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한 나라의 국무총리가 비리 혐의로 수사받다 자살한 인사의 발언 내용을 개인적으로 알아보려 십수차례나 전화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뭔가 켕기는 게 있으니 그렇게도 성 전 회장의 입을 두려워한 게 아니겠나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성 전 회장이 자살 전날 이완구 총리의 이름을 여러 차례 불렀다는데, 왜 하필 이 총리를 그렇게 애타게 찾으며 배신감을 토로하는 듯한 얘기를 한 건지도 몹시 궁금하다.
이 총리는 “(이 부의장 등과) 통화한 건 서너 차례고 나머지는 통화가 안 됐다. … 2006년 이후 경남기업이나 성 전 회장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게 없다”고 무관함을 주장했다. 하지만 성완종 전 회장 쪽은 “(성 전 회장과의) 대화 내용을 밝히기를 거부하는 김진권 전 태안군의회 의장에게 이 총리가 ‘지금 5천만 국민이 시끄럽다. 내가 총리니까 나에게 (대화 내용을) 얘기하라’고 고압적 태도를 보였다”고 말한다. 국무총리의 처신으로선 매우 부적절하고, 오히려 국민적 의혹만 키우는 행동임이 분명하다.
이번 사건처럼 현 정권의 전·현직 핵심 인사들이 한꺼번에 수사 대상에 오르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여당 내부에서 특별검사 주장이 나올 정도로 검찰 수사의 공정성에 대한 감시 눈초리는 더욱 날카로울 수밖에 없다. 국무총리는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 장관에 대한 인사 제청권을 갖고 있다. 수사 내용을 알려고도 묻지도 말아야 할 국무총리가 성 전 회장 측근에게 개인적으로 전화를 걸어 “총리인 나에게 얘기하라”고 윽박지른 저의가 무엇인지 참으로 해괴하다. 이 총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훨씬 철저하게 이뤄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성 전 회장에게 이상하리만큼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이완구 총리만이 아니다.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성 전 회장의 전화를 직접 받아서 그의 호소를 들어줬다. 친박 실세로 통하는 서청원 의원도 성 전 회장이 자살하기 며칠 전 그의 전화를 받고 만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들이 성 전 회장의 전화를 거절하지 못한 건 단지 개인적 친분 때문이었을까, 그 이상의 뭔가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었던 건 아닐까, 국민들로선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경향신문 사설-20150314화] 김무성 대표의 치졸한 ‘대선자금 수사’ 물타기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2012년 박근혜 캠프의 대선자금 문제로 확장되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어제 “여야가 함께 2012년 대통령 선거 자금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의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김 대표는 “대선자금 수사에 응하겠다”며 “대선자금 조사하려면 야당도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완종 리스트’가 불법 대선자금 의혹으로 번지자 이를 차단하기 위해 야당을 끌어들이는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은 홍문종 의원에게 2억원의 선거자금을 건넸다고 밝혔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대선자금 의혹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김 대표의 주장은 대선자금 수사를 할 경우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측의 대선자금도 함께 해야 한다는, 검찰에 대한 노골적인 압박이다. “검찰에 외압이 없도록 새누리당이 앞장서 책임지겠다”던 다짐은 어디다 팽개친 것인가. 야당 대선자금도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타당성을 지니려면 구체적 근거나 혐의가 있어야 한다. 성 전 회장의 인터뷰나 ‘메모지’에는 야당의 ‘야’자도 나오지 않는다. 물론 ‘성완종 리스트’ 수사 과정에서 야당과 관련한 증거나 증언이 나오면 그때 가서 조사하면 될 일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야당 대선자금 수사를 운위하는 것은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가리기 위한 치졸한 정치공세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은 대통령의 전·현직 비서실장과 국무총리, 친박계 핵심 인사들이 한꺼번에 ‘검은돈 의혹’에 휩싸인 전대미문의 ‘권력형 게이트’이다. 거기에 ‘홍문종 2억’으로 불법 대선자금 의혹이 꼬리를 드러냈다.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나, 성 전 회장이 1억원을 건넸다고 한 홍준표 경남지사의 측근이 사실상 시인한 데서 보듯 ‘성완종 리스트’는 진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찰이 그야말로 성역없이 엄정한 수사로 임한다면 진실을 규명해내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문제는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느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러한 의구심과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연루된 사건이라고 해서 수사기관이 눈치 보고 좌고우면해선 안된다는 점을 직접 천명해 검찰이 독립적인 특검처럼 수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 판국에 여당 대표가 야당의 대선자금 수사를 거론하며 압박을 가하는 것은 엄정해야 할 검찰 수사의 발목을 비트는 일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414화] 이완구 총리의 처신 부적절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지난 9일 자살한 직후 이완구 국무총리의 부적절한 처신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총리는 지난 11일 성 전 회장의 측근들에게 십여 차례나 전화를 걸어 성 전 회장과 나눈 얘기를 캐물었다고 한다. 이 총리는 이용희 태안군의회 부의장과 김진권 전 태안군의회 의장에게 각각 12번과 3번 전화를 걸어 “그날(8일) 성 전 회장과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고 물었다. 성 전 회장은 자살하기 전날 이 부의장 등 측근 몇몇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 총리의 이름을 여러 차례 거명하면서 섭섭함을 토로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소위 ‘성완종 리스트’에 포함된 이 총리는 이 자리에서 무슨 말이 구체적으로 나왔는지를 알려고 전화를 한 것이다.
이 총리는 어제 국회 답변을 통해 “고인이 메모에 (저의) 이름을 남겼고, 태안군 부의장 등이 도지사 시절에 알던 친분이 있는 분들이어서 전화해 알아보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겠느냐”고 해명했다. 이 총리 입장에서야 궁금하겠지만 적절한 처신은 아니었다. 더구나 이 총리는 대화 내용을 밝히기를 거부하는 김 전 의장에게는 “내가 총리인데, 나에게 다 이야기하라. 5000만 국민이 다 시끄럽다”고 고압적으로 보일 수 있는 말을 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제 “검찰은 성역 없이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여당이 검찰 수사의 외압을 막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총리가 고압적으로 보일 수 있는 전화를 한 상황이고 보면 국민들은 과연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 독립적·중립적인 검찰 수사가 가능할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검찰을 믿을 수 없으니 특검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지 않은가. 이 총리가 전화를 한 것은 무슨 변명과 해명을 하더라도 매우 부적절했다.
이 총리는 성 전 회장이 자살한 직후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성 전 회장과 측근의 대화 내용 파악에 애썼으니 ‘제 발 저린 속사정이 있었나’ 하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오이밭에서는 벗어진 신발을 다시 신지 말고, 오얏나무 밑에서 머리에 쓴 관을 고쳐 쓰지 않는 법이다. 이 총리는 여당 원내대표 시절에는 박 대통령을 ‘각하’라고 여러 차례 부르고, 총리 인사청문회 기간 중에는 언론과 언론인을 좌지우지했다는 부적절한 발언으로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총리뿐 아니라 ‘성완종 리스트’에 있는 ‘살아 있는 권력’ 모두 압력으로 비쳐질 수 있는 언행을 삼가야 할 것이다.
■ IS의 한국대사관 공격
[한국일보 사설-20150414화] IS의 한국대사관 공격, 가볍게 넘길 일 아니다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 있는 한국대사관이 12일(현지시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소행으로 보이는 총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대사관을 경비하던 리비아 내무부 소속 현지 경찰관 2명이 숨졌다. 당시 대사관내 관저에는 우리 외교관 2명과 행정원 1명이 있었으나 다행히 무사했다. 이번 사건이 우리 대사관을 직접 노린 것인지, 현지인 경비인력을 겨냥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현지에선 한국이 아닌 현지 경찰관을 노린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IS 세력이 한국대사관을 공격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IS가 본거지인 시리아, 이라크를 넘어 리비아로까지 세력을 확산하자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방 국가들은 지난해 일제히 대사관을 철수했다. 한국이 미국 주도의 IS 소탕작전에 군사적 지원을 하지 않는 ‘인도적 지원 국가’로 분류돼 있음에도 피습된 것은 트리폴리에 남아 있는 18개 대사관 중 한국이 가장 친서방 국가로 인식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카다피 축출 이후 내전이 극에 달했던 2011년에는 한국대사관이 무장괴한들에 의해 약탈됐고, 지난해 1월에는 트리폴리 주재 한석우 코트라 무역관장이 무장세력에 납치됐다 풀려난 적도 있다.
지금 리비아는 1,700여 개의 무장세력들이 난립해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고, 여기에 IS 세력까지 가세한 무정부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리비아 정부도 지난해 민병대의 공격에 수도 트리폴리를 포기하고 동부로 피신한 상태다. 리비아에는 아직 교민 40여명이 잔류해 있다. 경제적으로 리비아는 우리의 3대 해외건설 시장 중 하나다. 그러나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정세가 불안해지는 상황에서는 교민 철수를 적극 권고하고 대사관을 일시 폐쇄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 기회에 중동 전체 우리 교민들과 현지 공관에 대한 전면적인 안전대책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여행금지국으로 지정된 이라크에는 우리 근로자 1,000여명이 나가있고 예멘에도 40여명이 머물고 있다. 중동을 비롯, 아프리카, 동남아 등 IS 세력권에 있는 한국인은 2만5,000여명에 달한다. 국내에서는 테러혐의로 강제추방된 외국인이 최근 부쩍 늘고 있고, IS에 경도된 자생적 추종세력도 생겨나는 상황이다. 테러에 대한 정부의 엄중한 위기의식을 다시 다잡을 필요가 있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14화] 계속되는 ‘이슬람국가의 만행’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 있는 한국 대사관이 12일(현지시각) ‘이슬람국가(IS) 리비아지부’를 자처하는 무장세력의 공격을 받아 현지인 경찰관 2명이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올해 초 김아무개(18)군이 이슬람국가에 가담한 사실이 확인된 데 이어 우리나라와 이슬람국가가 연관된 두 번째 사건이다.
괴한들의 목적이 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들은 한밤중에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기관총 40여발을 난사했다. 건물 안 별채에서 잠자던 대사관 직원을 겨냥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운 정황이다. 이슬람국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국 대사관 경비 2명을 제거했다”고 했다. 다른 나라 대사관들에 테러를 가한 뒤 ‘○○대사관을 공격했다’고 했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이슬람국가를 퇴치하기 위한 군사작전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이슬람국가가 우리 대사관을 목표로 만행을 저지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이슬람국가 리비아지부는 지난해 10월부터 부상했다. 여러 조직으로 나뉘어 있어 이들 사이에 ‘테러 경쟁’이 벌어지는 양상마저 보인다. 2월에는 동부 해안에서 기독교도인 이집트 콥트교도 21명을 집단 참수했으며, 1월에는 트리폴리의 호텔을 공격해 외국인 10명을 죽였다. 이슬람국가의 본거지인 이라크에서는 최근 고대 유적들을 마구 파괴하기도 했다. 이번 공격도 이런 만행의 연장선에 있다.
이슬람국가는 이미 중동 여러 나라로 확산된 상태다. 우리나라 교민이나 공관, 기업체 등이 이들의 무차별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 만큼 이들의 동향을 주시하며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그렇잖아도 리비아에는 2011년 무아마르 카다피 정부의 붕괴 이후 1700여 개의 무장세력이 난립하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재외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정부의 기본 책무 가운데 하나다.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는 이미 너무 많은 죄를 저질렀다. 이들이 발붙일 터전을 없애는 것은 지구촌의 과제가 됐다. 하지만 문제가 다 해결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건이 더 일어날지 모른다.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경향신문 사설-20150414화] IS 영향권 중동지역 한국인 안전대책 시급하다
이슬람국가(IS) 대원으로 보이는 무장괴한들이 리비아 주재 한국대사관을 공격한 것은 한국이 IS의 공격으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한국 공관원이나 교민이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 아니다. 리비아를 비롯해 IS의 영향권에 있는 중동지역에 거주하는 2만5000여명의 한국인에 대한 안전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정부는 어제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열어 중동지역 거주 교민과 현지 공관원의 일시 철수 등 안전 문제를 논의했다고 한다. 중동지역은 한국 경제의 핵심 이해가 걸린 곳이다. IS가 발호하고 이슬람 무장단체 간 전투 격화 등 정정 불안이 심화되고 있음에도 교민과 한국 공관이 위험을 무릅쓰고 현지에 체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4개국 방문을 계기로 한국 인력의 중동 진출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점을 감안해 정부는 긴급연락망 가동 등 언제든 교민과 공관원의 안전한 대피와 철수가 가능하도록 안전망을 갖춰야 한다. 대테러정보 교환 등 국제 공조도 다져놓을 필요가 있다.
괴한들의 소속과 범행 의도도 중요한 문제다. 정부는 이번 공격이 한국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닐 것으로 관측했다. 대규모 인명살상을 노린 건물 폭격이나 폭탄 테러가 아니라 현지인 경비원을 겨냥한 총격인 점, IS가 공격 직후 트위터에 올린 “칼리파(이슬람 최고지도자를 일컫는 호칭)의 전사들이 한국대사관 경비 2명을 제거했다”는 글이 그 근거다. 과거 아랍에미리트연합이나 이란 대사관 폭탄 테러 후 “칼리파의 전사가 대사관을 공격했다”고 밝힌 것과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한국은 국제사회의 IS 격퇴작전에 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고, 이 작전을 주도하는 미국의 동맹국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참에 근본적 대책을 모색하기 바란다. 당장은 교민 안전대책 수립과 실천이 중요하지만 임기응변식 대처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아랍 젊은이들이 반문명적인 IS를 ‘탈출구’로 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이 다시 꿈을 꾸고 일자리를 얻도록 하는 일은 국제적 차원의 과제이지만 차제에 한국이 앞장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못할 이유가 없다. 공관 피습과 교민 안전대책 마련을 반복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414화] IS 추가 테러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해야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 있는 한국 대사관이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괴한들로부터 무차별 총격을 받아 현지 경비경찰 2명이 숨지고 1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에 대한 IS의 테러 공격은 이번이 처음으로 우리 대사관 직원들 피해는 없었다지만 우리나라도 더이상 IS 테러 공격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진 셈이다. 특히 미국을 위시해 IS와 무력 대결을 펼치고 있는 서방 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이들 국가의 대(對)테러 활동을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하는 국가인데도 불구하고 테러 공격을 받았다는 점에서 향후 추가적인 테러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IS의 이번 공격을 놓고 일각에선 한국이 아니라 현지 경비원을 목표로 했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주요 서방국들이 대부분 리비아 주재 대사관을 폐쇄하는 바람에 주(主)공격 대상을 찾기가 여의치 않게 된 IS가 한국을 표적으로 삼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듯하다. 실제로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도 국가정보원장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 2월 국회 정보위에 출석해 더이상 우리나라가 테러 안전지대가 아님을 강조한 바 있다. 그의 경고는 최근 5년간 국내에서 국제 테러조직 관련 활동을 하던 외국인들을 강제 추방한 건수가 50여건에 이르는 사실에서도 뒷받침된다. 일본만 해도 우리처럼 대테러 군사활동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있는데도 자국민 2명이 IS에 참수당하는 아픔을 겪은 바 있다.
공개 참수와 화형, 집단학살을 마다하지 않는 테러 집단으로부터 우리만은 안전할 것이라는 요행을 바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중동 지역과 북아프리카 등 IS의 주된 활동 무대에 거주하는 교민과 이들 지역을 방문하는 여행객과 성지순례객들의 안전을 담보할 특단의 대책을 정부는 강구해야 한다. 여행금지 조치를 보다 적극적으로 취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테러 세력의 국내 잠입 가능성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IS는 80여개국에서 몰려든 1만 5000여명의 무장 조직원을 둔 다국적 조직이다. 여기엔 터키를 여행하다 사라진 우리나라의 김모군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IS가 언제 어떤 형태로 국내에서 테러를 자행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정부에 대책을 촉구하는 차원을 넘어 여야 정치권도 대테러 방지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테러 앞에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 민주노총 총파업에 돌입 예정
[중앙일보 사설-20150414화] 노사정 협상 결렬, 위원장이 책임질 일인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김대환 위원장이 노사정 대타협 결렬의 책임을 지고 청와대에 사퇴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를 반려할 것이라고 한다. 김 위원장은 이전부터 노사정 협상이 실패하면 위원장 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타협이 무산된 마당에 더 이상 위원장 직을 유지하는 게 의미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김 위원장이 사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우선 노동시장구조개혁특위의 활동시한인 오는 9월까지 마무리할 일이 많다. 대타협이 불발됐지만 그동안 합의된 부분을 토대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제도화 작업은 계속 진행해야 한다. 지난 3개월여 동안 집중적으로 논의했던 노사정 협상에서 합의에 가까운 입장 접근을 이룬 부분들이 있다. 통상임금 범위, 근로시간 단축, 정년 연장 등 3대 현안은 어느 정도 의견이 모아진 상태다. 정부는 공감대를 형성한 부분부터 제도적 후속조치를 추진하는 플랜B를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노동계 대표인 한국노총이 빠진 상태에서 김 위원장까지 사퇴하면 이마저도 동력을 잃을 우려가 있다.
또 협상 결렬은 김 위원장 혼자 책임질 문제가 아니다. 노사가 첨예하게 맞선 상황에서 김 위원장은 중립을 견지하며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상당히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노총 김동만 위원장도 협상 결렬을 선언하면서 노사정위원회에 대해선 감사를 표시했을 정도다. 중재자 역할을 했던 김 위원장이 빠지면 노사는 더욱 극한적인 갈등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이미 노동계는 강경 투쟁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민주노총은 13일 “총파업을 위한 조합원 투표가 찬성률 84.5%로 가결돼 오는 24일부터 총파업을 전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노사정 협상에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았던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한상균 위원장은 민주노총 역사상 첫 직선제로 당선되자마자 총파업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2012년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참여율이 저조했다. 하지만 이번엔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된다.
세월호 1주기에 4·29 재·보선을 앞둔 상황에서 ‘성완종 리스트’ 사건까지 터졌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성완종 게이트에서 드러난 것처럼 불의한 정권에 맞서 싸우라는 시대적 요구에 온몸을 다해 응답하려 한다”며 이번 총파업을 대정부 투쟁으로 몰고 가려는 뜻을 내비쳤다.
이미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전국교직원노조는 공무원연금 개혁에 반대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파업에 동참키로 했다. 또 노사정 협상에 참여했다 결렬을 선언한 한국노총까지 총파업에 연대할 가능성이 있다. 재계도 노동계가 투쟁에 나서면 최저임금 협상 등에서 양보할 뜻이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정위까지 손을 놓아버리면 안 된다. 비록 대타협엔 실패했지만 노사정 간에서 조정·소통하는 노사정위의 역할은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노사정위가 완전히 무력화된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노사정 대타협은 시도조차 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414화] 노동개혁 이전에 노동계와 소통 방식 개혁해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정부가 주도하는 노동시장 구조 개선 등에 반대해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한다. 민주노총은 어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8일까지 실시한 총파업 투표가 84.35%(36만1743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돼 오는 24일부터 총파업을 전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도 오는 16일 3000여명이 모이는 전국단위노조 대표자회의에서 노사정 대타협 결렬을 보고하고 민주노총과 연대하는 방안을 논의키로 했다고 한다. 노동계의 양대 축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연대해 정부와 정면 충돌하는 양상이다.
노동계의 연대투쟁은 이미 예상됐던 바이고 그 주된 원인 제공자가 정부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민주노총은 총파업의 핵심 의제로 노동시장 구조 개악 저지, 공무원연금 개악 중단,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 등을 내세우고 있다. 결국 정부 정책과 관련된 것으로 하나같이 노동계와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대형 현안이다. 정부는 지난 6개월 동안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동계와의 대화에 공을 들여왔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타협에 실패했다. 대화의 방식과 내용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 민주노총을 참여시키지 못한 것이나 한국노총이 제시한 ‘5대 수용 불가 사항’을 거부해 파국으로 몰고간 것이 그런 예다. 한국노총이 노사정 대타협 결렬을 선언하자 정부가 기다렸다는 듯이 독자적으로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화하려는 자세가 부족하기는 재계도 마찬가지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어제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목적상·절차상 불법파업으로 규정했다. 민주노총이 파업의 명분으로 내건 사안들은 정부 정책과 법 개정 사항으로 파업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산하 노조들이 노동위원회 조정 절차를 거치지 않는 등 파업 절차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원칙적이고 엄정한 법집행을 해야 한다는 게 경총의 주장이다.
노동시장 구조 개선과 공무원연금 개혁 등이 시급한 과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노동계를 배제하고 정부가 독단적으로 추진해서는 성공할 수 없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노사정 대타협 결렬과 정부의 독자적인 노동시장 구조 개선 추진 선언 등으로 노동계의 파업 동력이 예년보다 커진 데다 양대 노총의 연대투쟁으로 올 춘투는 어느 때보다 격렬해질 것으로 보인다.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해결책은 결국 기본에서 찾아야 한다. 노동계와 소통하고 신뢰를 얻는 것이다. 대화의 문을 닫을 게 아니라 여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 개혁 이전에 노동계와 소통하는 방식부터 개혁해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14화] 노동계 총파업 결의, 청년실업 신음소리 안 들리나
노사정의 사회적 대타협을 원초적으로 거부해온 민주노총이 결국 총파업을 강행할 태세다. 민주노총은 조합원 총파업 투표에서 투표자 대비 84.35%의 찬성률을 보였다며 24일 전국대회를 시작으로 공무원연금 개혁 및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에 항의하는 총파업에 들어간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총파업에는 한국노총과 공무원노조까지 가세할 것으로 보여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한 춘투(春鬪)가 우려되고 있다.
민주노총의 파업 선언은 예상된 것이지만 아무런 실익도, 명분도 없다는 점에서 당장 철회돼야 마땅하다. 민주노총이 4대 핵심 요구로 내건 노동시장 및 공무원연금 구조개선, 대학 구조조정 등은 국민들의 한결같은 요구인데도 이를 개악이라며 반대하고 나서니 여론의 철저한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들 주장은 대부분 정부 정책이나 법 개정 등에 관한 것으로 노동법에서 보장하는 근로조건 개선과 무관한데다 사전에 노동위원회 조정신청도 거치지 않아 절차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특히 핵심 사업장인 현대차의 경우 찬성률이 전체 조합원의 절반을 넘지 못해 사실상 총파업이 부결됐는데도 지역본부별 개표라는 꼼수까지 동원해 억지 파업을 밀어붙이려 한다. 심지어 세월호 시행령 개정이라는 구호까지 슬쩍 끼워넣어 세월호 1주기 추모 분위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
지금 한국 경제는 미약한 회복세를 보인다지만 수출마저 뒷걸음질 치고 성장률도 하향 조정되는 등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청년들은 당장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도 소수 정규직 노조가 기득권을 지키겠다며 뜬금없는 파업이나 벌인다면 국민들의 엄중한 질타를 면하기 어렵다. 민주노총은 과거의 무분별한 정치파업의 값비싼 대가를 반성하고 극한투쟁을 벗어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정부 또한 정치적 혼란기에 편승하려는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엄정 대처한다는 확고한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 제7차 세계물포럼 개회식, 무너진 자격루
[한국일보 사설-20150414화] 세계적 행사 유치해 놓고 되레 국제적 망신을
해외 국가 정상급 인사와 국제적 기업의 CEO들이 대거 참석한 ‘제7차 세계물포럼’ 개회식에서 황망한 일이 발생했다. 참석자들이 경악하고 대통령 경호원들이 단상위로 뛰어오르는 다급한 상황이 빚어졌다. 12일 오후 대구 엑스코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각국의 내빈 들이 단상에 올라 자격루(물시계) 퍼포먼스를 위해 줄을 당기는 순간, 높이 2m의 자격루 구조물이 내빈들 쪽으로 넘어지면서 항아리에 담긴 물이 쏟아진 것이다. 줄을 당기면 구조물 위에 있는 항아리에 담긴 물이 아래로 흘러내려 개막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리도록 설계되어 있었으나, 아예 구조물 자체가 자빠져버렸다.
인명사고는 없었으나 대통령까지 참석한 국가행사에서 우리의 변변치 않은 행사진행 수준을 보여줌으로써 국제적 망신을 당한 꼴이 됐다. 특히 청와대는 행사 전에 안전을 이유로 자격루 퍼포먼스를 생략하도록 요구했으나 대회 조직위원회가 무리하게 강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행사는 사전에 리허설을 철저히 하는 것이 원칙이다. 조직위 측은 사전에 수 차례 줄을 당겨 물이 제대로 흘러내리는 것을 확인했지만 내빈들이 직접 예행연습을 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내빈들이 줄을 너무 강하게 잡아당기는 바람에 구조물 자체가 쓰러졌다는 주장이지만 변명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17일까지 계속되는 물포럼은 전 세계가 물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응 방안을 모색키 위해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 전문기관, 기업, 시민단체 등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물 올림픽’으로도 불리는 세계적 행사다. 이번 행사는 그래서 정부와 대구시 경북도가 중심이 돼 주관하고 있다. 이런 행사의 준비가 이 정도로 안이했다니 차마 믿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오는 7월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비롯,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이르기까지 우리 정부나 지자체가 주최하는 굵직한 국제행사가 즐비하다.
그러므로 이번 사고를 한낱 해프닝 정도로 가볍게 치부해버릴 일은 아니다. 국가 전반의 기강이 크게 해이돼 있는 징표로 볼 수도 있다. 으레 그렇듯 이번에도 기관들끼리 서로 미루기를 하고 있으나 제대로 책임소재를 밝혀 추후 재발을 방지하는 엄중한 경계로 삼을 필요가 있다. 작은 일일 수도 있지만 의미와 사후 처리는 크게 다뤄야 할 일이다.
■ 관련 칼럼
[경향신문 칼럼-여적/이기환(논설위원)-20150414화] 무너진 자격루
주나라 시대에 계인(鷄人)이라는 벼슬아치가 있었다. 닭을 관장하면서 새벽을 알리는 관리였다(<주례> 춘관). 이렇듯 ‘하늘을 공경하여 백성에게 때를 알려주는(欽若昊天 敬授人時)’(<서경>) 직책은 매우 중요했다. 만약 농사철에 ‘때(인시·人時)’를 잘못 일러주면 농사를 천하의 근본으로 여기는 백성들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1434년 세종이 자격루의 제작을 명한 이유가 될 것이다(<세종실록>).
“시각을 잘못 알리면 중벌을 받았다. 장영실에게 명해 시각을 알릴 목각인형을 만들었다. 사람의 힘이 들지 않았다.”
장영실의 자격루(自擊漏)는 물시계와 자동시보장치를 겸비한 조선의 표준시계다. 물시계(아날로그)의 물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다시 일정한 시차로 구슬과 인형을 건드려 자격장치(디지털)가 작동하도록 설계됐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변환기로 접속되는 디지털 시계가 이미 581년 전에 제작된 것이다. 하늘을 존중하는 마음씨로, 백성의 노고 없이 자동으로 작동되는 시계를 기어코 만든 것이다. 대단한 세종의 경천애민 정신이다.
장영실의 신분은 노비였다. 실록은 “아비는 원나라 소·항주 출신의 귀화인이었지만 어미 신분(기생)을 좇아 천민(노비)이 됐다”고 했다. 세종은 스스로의 표현처럼 ‘솜씨는 물론 성질 또한 빼어난’ 장영실을 과감하게 발탁한 것이다. 세종은 “원나라 때도 절로 작동하는 물시계가 있었지만 정교함에서는 장영실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 칭찬했다. 당대 사람들 역시 “장영실은 세종대왕을 위해 태어난 인물”이라고 치켜세웠다(<필원잡기>).
자격루의 정교함은 6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혀를 내두를 만큼 대단하다. 내로라하는 과학자 30여명과 최첨단 장비까지 총동원하고도 23년 만에 겨우 복원했다(2007년). 쇠구슬의 크기가 1㎜만 달라도 제대로 시간을 측정할 수 없단다.
지난 12일 대구 세계물포럼 개막식 행사에서 퍼포먼스를 벌이다가 자격루 모형이 넘어지는 불상사가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국가정상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니 그 민망함이란…. 그저 해프닝이었으리라. 다만 세종 임금이 자격루를 만들 때의 마음씨를 한번 되새겨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김성수(논설위원)-20150414화] 자격루
자격루(自擊漏)는 조선 세종 때 만들어진 물시계다. ‘스스로 종을 울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세종 16년인 1434년 장영실이 왕의 지시로 김조, 이천 등과 2년여의 연구 끝에 만들었다. 물을 흘러내리게 하는 그릇과 물받이 그릇, 톱니바퀴, 자동 시보(時報) 장치들로 이뤄져 있다. 흘러든 물의 양에 따라 각 기계 장치들이 연쇄작용을 하고 자동으로 종이 울리면서 시간을 알려 주는 정교한 물시계다. 세종 때 만들어진 것은 고장 나서 없어졌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중종 31년인 1536년에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를 개량해 새로 제작한 것이다. 덕수궁에 보관돼 있는데 1985년 국보 제229호로 지정됐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물항아리와 물받이 그릇만 남아 있다.
요 며칠 자격루가 엉뚱한 사건 때문에 입길에 오르고 있다. 지난 12일 오후 대구 엑스코 전시장에서 있었던 제7차 세계물포럼 개막 행사의 해프닝 때문이다. 행사에서는 ‘자격루 줄당기기’ 퍼포먼스가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국가 정상급 인사 등 내빈들이 자격루를 본떠 나무로 만든 2m 높이의 구조물을 잡아당기는 행사였다. 원래 각본대로라면 자격루에 연결된 줄을 당기면 구조물 상단의 항아리에 담긴 물이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개막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야 했다. 그런데 민망하게 박 대통령을 비롯한 내빈 13명이 줄을 잡아당기자 구조물이 내빈들이 있는 쪽으로 ‘와르르’ 하고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놀란 대통령 경호원들은 황급히 무대로 뛰어올랐다. 박 대통령도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행사는 난장판이 됐다. 국제적인 망신이었다. 물과 전통, 정보통신기술을 융합시킨 퍼포먼스로 이색 볼거리를 제공하겠다는 주최 측의 의도도 완전히 빗나갔다. 조직위 측에 따르면 구조물은 5000만원을 주고 대행 기획사에 맡겼다고 한다. 사전 리허설을 많이 했는데 내빈들이 너무 세게 줄을 당겨서 사고가 일어났다는 변명도 나온다. 행사를 준비한 권영진 대구시장의 말처럼 ‘옥에 티’라고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포럼은 지난 12일 개막해 17일까지 6일간 대구와 경주 등에서 열린다. 세계 170여개국에서 3만여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다.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걸 보여 주려고 무리를 하려다 화를 불렀다. 전 국민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했다. 누가, 어떤 이유로 안 해도 될 퍼포먼스를 굳이 강행해서 망신을 자초했는지 책임 소재를 명백히 밝혀야 한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제행사까지 이렇게 건성건성 준비할 수 있는 두둑한 ‘배포’도 놀랍다.
관노(官奴) 출신의 천재과학자 장영실의 위대한 유산인 ‘자격루’가 희화화된 것 같아 무엇보다 가슴이 아프다. 자격루 모형물이 무너지면서 대한민국의 국격(國格)도 함께 무너졌다는 지적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된다.
■ 세월호 참사 1년
[한겨레신문 사설-20150414화] 세월호 1주기를 모독하는 뻔뻔한 정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정부의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 폐기를 요구하는 유가족 등 시민들을 향해 경찰이 최루액을 뿌렸다. 11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화제를 연 유가족과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려 하자 차벽을 설치하고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려 진압한 것이다. 경찰이 세월호 관련 집회에 대응해 최루액을 사용한 것은 처음이다. 참사를 애도하고 책임을 통감해야 할 공권력이 되레 추모 행렬에 주먹질을 한 셈이다. 참사 1주기가 다가오면서 정부가 내놓는 ‘세월호 인양 검토’ 등 온갖 유화 발언보다 이런 행동 하나야말로 세월호를 대하는 정부의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 보여준다.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이 여덟 차례 해산명령에 불응하고 경찰 방패를 뺏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고 이유를 댔다. 정당한 요구를 표출하는 시민들을 가로막은 뒤 충돌이 벌어지면 폭력행위자로 매도하는 낡은 수법이다. 유가족과 시민들의 평화로운 행진을 경찰이 폭압적으로 차단하지 않았어도 그런 충돌이 벌어졌겠는가. 나아가 정부는 시민들이 왜 분노하는지부터 헤아려야 했다.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은 누가 봐도 진상 규명을 방해하는 독소조항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시행령안을 고치라는 요구를 보름 넘게 묵살해온 정부가 급기야 그 요구를 최루액으로 틀어막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어이없는 행보는 이뿐만이 아니다. 세월호 인양을 두고도 말이 뒤죽박죽이다. 모르쇠로 일관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선체 인양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밝히더니, 9일에는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이 인양의 위험성과 실패 가능성, 추가 비용 등을 고려해 인양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신중론을 폈다. 대통령과 장관의 말이 전혀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게다가 하루 뒤인 10일에는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인양이 가능하다’는 기술 검토 결과를 예정보다 이틀이나 앞당겨 급작스레 발표했다. 마침 ‘성완종 리스트’가 보도된 날이었다. 이렇게 속 보이는 태도를 취하니 정부의 진정성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당일에 추모제 대신 ‘국민안전다짐대회’를 연다. 참사와 관련된 내용도 담지 않은 고색창연한 관변행사나 열겠다는 발상이 한심하다 못해 놀랍기만 하다. 반면 유족과 시민들이 참여하는 16일 추모집회에는 다시 경찰 차벽을 설치하겠다고 경찰청장이 나서 당당히 밝히고 있다. 박 대통령은 그날 외국 순방을 떠난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뻔뻔한 정부다.
[서울신문 사설-20150414화] 세월호 참사 1년, 여전히 불안한 대한민국
16일은 세월호 사고가 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막 피어난 어린 생명들을 저세상으로 보내고 슬픔에 젖어서 지낸 지 벌써 한 해가 흘러간 것이다. 필설로 다 하지 못할 유가족들의 고통은 여전하고 국민들의 아린 가슴 또한 치유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길다면 길다고 할 1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지만 사실 별반 달라진 것도 없다. 크고 작은 안전사고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도리어 더 많이 발생했다. 최근 실시한 서울신문의 여론 조사에서도 ‘국가의 안전의식이 변화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60.1%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언제 어디서 사고가 또 터질지 모를 정도로 여전히 우리 사회는 불안하다.
세월호 사고의 근인(近因)으로 지목된 불법 과적 행위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한 보도에 따르면 어느 지방 소도시 항구에서 섬을 오가는 여객선은 레미콘과 사료를 가득 실은 대형트럭 등 화물을 과적한 채 운항하고 있다. 그런데도 화물을 만재한 트럭들을 서류상으로는 빈 차로 처리해 선적 중량을 속이는 일이 많다고 한다. 세월호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불법 행위들이 근절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대로라면 세월호 사고의 재판(再版)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6일 운항 관리자 증원, 벌칙 강화, 승객 신분 철저 확인 등을 담은 ‘여객선 안전관리 개선 현황’을 발표했다. 많이 달라졌다는 정부의 자화자찬식 자평이다. 규정이 없다면 새로 만들고 느슨하다면 강화해야 하지만 지키지 않으면 헛일이다. 사고는 안전 규정이 없어서라기보다 있는데도 지키지 않아서 일어난다. 영종대교 106중 추돌 사고는 안개 속 서행 의무를 어긴 관광버스 때문에 일어났다. 16명이 목숨을 잃은 판교 환풍구 추락 사고는 설계도와 다르게 환풍구를 시공했기 때문이었다.
정부의 대응은 역시나 미덥지 못하다. 대책이라고 내놓았지만 재탕·잡탕식의 보여 주기식 전시형 대책뿐이었다. 해경을 해체하고 국민안전처를 신설했지만 자리조차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있으니 안전 컨트롤타워 역할을 어떻게 하겠는가. 조삼모사식 조직 개편이나 이름 변경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음이 증명된 셈이다. 온갖 안전 법안들이 국회에서 발의됐어도 극히 일부만 처리된 것은 사고 직후 현장에서도 그랬듯이 세월호 사고를 이용하려 한 정치인들의 속셈을 다시 한번 확인해 준 꼴이 됐다.
허울 좋은 제도와 못 믿을 정부를 탓하기에 앞서 우리 국민 개개인의 안전 의식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사실은 그것이 첫째다. 있는 규정만 따르더라도 안전사고는 훨씬 줄어든다. 녹색 신호와 규정 속도를 철저히 지킨다면 자동차 사고가 큰 폭으로 줄어들 수 있다. 자동차 운전자가 같은 사람인 보행자를 치는 것처럼 우리는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건설 현장, 화학 공장, 교통수단 등 안전사고 우려가 큰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제각기 규정을 지켜서 안전 여부를 확인·점검하면 사고는 예방된다. 세월호 사고의 아픔과 교훈은 시간이 지나더라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한순간의 호들갑으로 끝내다가는 더 큰 시련을 맞을 수도 있다.
■ 그 밖의 신문사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14화] 규제완화가 일자리 창출효과 더 크다는 실증 분석
고용노동부가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한 정책들의 실제효과를 분석한 2014년 고용영향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고용부는 평가대상 23개 정책과제 중 정부 예산이 직접 투입된 창조경제 분야 3건, 별도 예산이 없는 규제분야 3건 등 일자리 창출효과 상위 6대 과제도 발표했다. 이번 고용영향평가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정부의 재정 투입 없이도 기업들의 고용 애로사항을 없애고 고용창출 유인을 제공하면 더 많은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는 점이다.
이는 상위 6대 과제에서도 금방 드러난다. 창조경제 분야 1위로 약 1057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국토교통부의 공간정보 융·복합사업의 고용효과는 예산 10억원당 35명으로 분석됐다. 2위 환경부의 환경기술 R&D 투자사업(6797억원 투입)과 3위 중소기업청의 중소기업 상용화 기술 지원사업(815억원 투입)은 10억원당 각각 28명, 25명이었다. 그러나 별도 예산이 없는 규제개선의 고용효과는 고용부의 장시간 근로개선을 통한 신규채용 확대 14만~15만명, 국토부의 자동차 튜닝시장 활성화 1만3323~2만3786명, 산업통상자원부의 도시 첨단산업단지 필지면적 규제완화 4854명 등으로 나타났다. 한눈에 봐도 규제개선 쪽이 비용 대비 효과가 훨씬 크다.
더구나 정부 예산을 투입해 벌이는 사업의 경우 그로 인해 사라질 수도 있는 민간 일자리, 예컨대 구축효과 등이 잘 계상되지 않을 수 있고, 정부 예산 지원이 끝나면 일자리가 지속된다는 보장도 없다. 국토부 공간정보 융·복합사업은 참여업체와 미참여업체 간 고용효과가 달랐고, 환경부 환경기술 R&D 투자사업도 수혜기업 대부분이 정부 지원이 끝나면 바로 인력을 감축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규제개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일자리 창출까지 감안하면 그 효과가 더 클 수 있고, 지속가능성도 높다. 흔히 정부 재정사업이 승수효과가 있다지만 그 효과는 기대만큼 크지 않다는 실증분석이 적지 않다.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적극적인 규제개선을 통해 민간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정답일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14화] 6만원 송사로 대법원까지 간다는 한국인의 법의식
재판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는 상고 사건 수가 지난해 3만7600여건으로 최근 20년 사이에 무려 3배 이상 늘어났다고 한다. 대법관 1명당 연간 3100여건씩, 주말도 없이 하루 평균 8.5건을 처리해야 하는 셈이다. 대법원 상고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미국(8806건) 영국(259건) 등과 비교하면 엄청난 숫자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대법원에 올라오는 형사사건의 4분의 1이 소액의 벌금형으로 끝날 가벼운 사건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6만원짜리 교통범칙금을 내지 않기 위해 대법원까지 가는 경우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소송 남발로 인한 부작용과 사회적 비용은 막대할 수밖에 없다. 정작 법률적·사회적으로 중요해 대법원의 충실한 심리가 필요한 사건들은 선고가 늦어지기 일쑤다. 최근 5년간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 가운데 2년을 넘긴 사건만도 민사 1527건, 형사 1858건이다. 2007년에 접수돼 8년째 대법원에서 낮잠을 자는 사건도 있다. 대법관 전원이 참석하는 전원합의체 심리를 열기도 점점 어려워져 2012년 28건에서 2013년 22건, 2014년 14건으로 줄어들고 있다.
삐뚤어진 법의식부터 문제다. 분쟁이 생겼을 때 협상이나 타협을 통한 해결보다는 ‘법대로’ 끝까지 가보자는 심리가 사회 전체에 팽배해 있다. 법에 대한 불신으로 평소에는 법을 잘 지키지 않으면서도 분쟁시에는 더욱 법에 집착하는 이중적인 모습도 보인다. 힘이나 돈이 있으면 재판에서 이길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도 소송 남발의 원인 중 하나다.
법조에 대한 불신 역시 대법원을 바쁘게 만든다. 통상임금의 경우에서 보듯이 대법원 판결 뒤에도 하급 법원마다 판결이 오락가락이다. 동일한 사건은 동일한 판결이 나와야 한다는 보편법정 이념이 재판부 재량으로 부정되고 있는 것이다. 판사의 개인적 신념과 이념에 따라 판결이 들쭉날쭉인 경우도 있다. 1심 판결의 30~40%가량이 2심에서 뒤집어지는 것은 바로 그런 결과다. 법원을 못 믿으니 다들 대법원까지 달려가는 것이다. 왜곡된 법의식과 소송 남발, 사법 불신의 악순환이 쳇바퀴처럼 돌아가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14화] 알고나 계신지 ? 지방 복지사업이 무려 1만개라는 사실
복지부가 이달 들어 각 지방자치단체의 복지사업을 전면 조사 중이라고 한다. 지역 간 형평이 어긋나거나 중앙정부의 복지사업과 겹치면 조정토록 유도하려는 의도에서다. 놀라운 것은 전체 지자체의 복지업무가 1만개나 된다는 점이다. 재원은 도외시한 채 모두가 보편적 복지로 달려온 결과다.
복지정책이 스며들지 않은 분야가 없다. 주거와 의식, 의료와 고용에서부터 노인과 독거인, 장애인과 저소득층, 보육과 교육, 다문화와 다자녀 등 끝이 없다. 성남시처럼 이제는 중학생 무상교복에다 산후조리원 비용까지 대겠다는 판이다. 지방행정은 복지를 추가할 곳만 찾고, 지방선거는 복지확대의 경연장처럼 됐다. 가짓수만 많은 게 아니다. 지방예산에서 복지 비중도 2000년 10%에서 올해 25%로 급증했다. 시·도, 시·군·구가 벌여온 무한 복지경쟁의 결과다.
지금껏 파악도 안 된 이 많은 현장의 복지사업을 과연 어떻게 제대로 관리하겠나. 자연히 구청이나 동사무소 주변을 요령 있게 맴도는 복지족들만 눈먼 돈인 양 따먹을 것이다. 집행 공무원들의 복지예산 횡령사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더 큰 문제점은 지난해 소위 ‘송파 세 모녀 사건’처럼 정작 지원이 절실한 사회적 약자한테는 가지도 않는 엉터리 전달체계라는 점이다. 중앙과 지방 모두 포퓰리즘 경쟁 속에 껍데기만 도입했을 뿐 내실은 돌보지 않았다.
마구잡이로 도입된 복지정책이니 평가는 뻔하다. 노인·장애인 쪽은 서비스 점수가 90.5점인데 비해 보육기반 조성 쪽은 68.8점이라는 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분석이다. 급속한 고령화 추세 속에 노인 표를 의식한 복지체계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음 세대, 미래사회 준비를 위한 복지가 아니라 기껏 선거 때 표얻기 수단이었을 뿐이다. 이번에 복지부가 처음으로 지방복지를 전수조사한다지만 어디까지나 조사일 뿐이다. 과잉복지로 드러나도 중앙정부의 ‘개선 권고’를 해당 지자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강제 수단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자체들과 지방 정치꾼들은 또 어떤 기발한 복지제도를 짜내느라 골몰하고 있을 것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14화] 한국 사회에 울리는 '노후 난민' 경고
우리나라에서도 일본과 같은 '노후 난민화'가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험연구원이 '노후 난민화 가능성 검토의…'란 보고서를 통해 경고했다. 일찍이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노인의 고립사가 늘어나면서 노후 난민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차츰 일본의 전철을 밟는 듯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노후 난민화 원인으로 꼽히는 효에 대한 의식변화와 무소득 고령층의 증가 현상이 우리에게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 울리는 '노후 난민' 경보음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심지어 한국의 노후 난민화는 여러모로 일본보다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2014년 12.7%였지만 2026년에는 20.8%로 예상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다. 노인 빈곤율은 2011년 48.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배를 넘는다. 노인 자살률도 인구 10만명당 82명으로 OECD 국가 중 으뜸이다. 게다가 한국은 노후 난민화에 전혀 무방비 상태다.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5%로 OECD 평균(66%)의 3분의2 수준을 맴돌고 있고 국민연금 중 노령연금 수급자의 월평균 수령액 또한 2014년 말 기준으로 월 33만원에 불과하다. 그뿐 아니라 노부모를 자녀가 부양해야 한다는 국민 인식은 2002년 70%대에서 2014년에는 30%대 초반으로 뚝 떨어져 노인들의 고립현상은 가속화하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선진국 진입을 앞두고 있다는 한국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 노후세대 인프라의 새 판을 서둘러 짜야 한다. 노인 세대의 자립을 돕는 일자리 제공과 복지 확충 등을 위한 공공 부문의 정책실행이 필요하다. 재정의 역할에 한계가 있는 만큼 민영보장 시스템으로 보완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유념할 것은 노후 난민화를 포함한 노인 문제는 사회 모든 주체의 힘이 합쳐져야 해결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정부·가정·사회가 한뜻으로 협력해야 곧 다가올 100세 장수시대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14화] 원가 이하 싸구려로는 관광 한국 미래 없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3일 중국인 관광객(유커)을 유치하기 위해 출혈경쟁을 감수하는 여행 업체가 많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유커가 600만명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달성했지만 정작 관광 업계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은 이유가 따로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상의가 국내 여행 업체 3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난 1년간 원가 이하로 유커를 유치한 적이 있다'고 답한 기업이 무려 43.4%에 달했다. 원가 이하로 상품을 판매한다는 것은 다른 어디선가 부족한 만큼을 보충한다는 뜻이다. 손실분을 보충하는 방법으로는 '쇼핑·옵션 확대'가 54.8%로 가장 많았고 이어 '다른 여행상품에 비용 전가(27.0%)' '미래투자로 손해 감수(11.9%)' '품질수준 하향 조정(6.3%)' 순이었다. 손실분을 보충하는 방법을 보면 유커 1,000만명 시대는 고사하고 지금의 유커 600만명선을 지켜내기도 어려워 보인다. 비싼 값에 물건만 사게 하고 음식이나 숙박 등 여행품질을 낮추는 식으로 대응한다면 어떤 유커가 한국을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들겠는가.
유커가 많이 오는데도 출혈경쟁이 갈수록 심해지는 주요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관광 인프라 부족에 있다. 볼거리는 물론 한류체험 및 즐길 거리, 숙박시설, 관광 가이드 등 인력, 먹거리 등에 이르기까지 관광자원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된다. 쇼핑 위주나 서울·제주에 편중된 관광 프로그램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한류 특화형 상품, 휴양림·문화자원을 활용한 지역관광 상품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나와야 한다. "일본 관광 업계 인사들의 말이 '서울에 다녀올 사람(일본인)은 다 다녀왔다고 한다"는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전언은 유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볼 것도, 먹을 것도, 즐길 것도 별로 없이 품질 낮은 관광상품만 강요한다면 관광한국에 미래는 없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 경남도 무상급식
[중앙일보 칼럼-사설 속으로-20150414화] 오늘의 논점-경남도 무상급식 중단 논란
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중앙일보 <2015년 4월 2일 30면>
무상급식은 이념 갈등과 정쟁의 대상이 아니다
경상남도가 1일 무상급식 지원을 전면 중단했다. 예상대로 일부 학부모·단체는 거세게 반발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들은 ‘점심 한 끼 단식’을 벌이고 무상급식 토론수업을 진행했다. ‘친환경무상급식지키기’ 소속 학부모들은 홍준표 경남도지사 관사 앞에서 ‘도지사님, 애들 밥 굶겨 골프 접대 나가서 행복하십니까’란 현수막을 내걸고 시위를 벌였다. 일부 학부모는 급식비 납부 거부와 등교 거부까지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경남도의 무상급식 지원 중단 이슈가 정책 논쟁이 아니라 점차 이념 갈등, 정쟁(政爭)으로 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무상급식 전면 중단이 차라리 만우절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는 비난 논평을 냈다. 새정치연합은 “경남엔 새누리당 실세 의원들이 즐비하지만 누구 하나 홍준표 지사에게 문제 제기조차 못하고 있다”며 “무상급식 중단에 대한 입장과 해결방안을 지역 주민 앞에서 밝혀야 한다”고 새누리당을 공격했다.
경남도 홈페이지 ‘도지사에 바란다’ 코너에 무상급식 지원 중단을 지지하는 게시 글이 제3자에 의해 삭제된 사건도 발생했다. 경남도는 “반대 세력이 도민 여론을 왜곡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여기에 경남도까지 무상급식 운동단체를 ‘종북’으로 표현해 ‘색깔 논쟁’에 불을 붙였다. 이는 문제 해결은커녕 이념 갈등만 부추기는 매우 부적절한 대응이다.
경남도는 무상급식에 지원하던 예산 643억원을 없애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 재원을 초·중·고 서민자녀 교육 지원으로 돌리겠다는 취지다. 서민층 입장에서 보면 혜택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늘어나게 된다. 가난한 집안의 학생은 계속 무상급식을 받을 것이고, 학습비·교재비 등을 추가로 지원받게 된다. 경남도의 시도가 성공하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무상보육 등 다른 무상복지 정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야가 경쟁적으로 추진한 무상복지 시리즈의 우려됐던 문제점이 이미 현실화됐다. 지난해 학교 무상급식 예산은 2조6000억원, 무상보육(누리과정) 예산은 3조8000억원에 이르고 있다. 무상복지는 매년 들어가야 하는 경직성 예산이다. 이 때문에 학생들의 안전과 관련 있는 학교 시설물 보수 예산마저 5년 새 40%나 축소됐다. 일부에선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이면 충분히 무상복지를 감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학교 시설과 교육에 대한 투자가 불필요한 것인가.
홍 지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정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좌파·우파나 보수·진보가 아닌 국익에 있다. 국익에 맞다면 좌파 정책도, 우파 정책도 선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념이나 정치 논리가 아니라 국익에 따라 급식 지원 중단을 결정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정치적·이념적 논란에 가세할 게 아니라 정책적·실용적 차원에서 묵묵히 일을 추진해야 한다.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면 선별적 복지가 빈곤층 학생들에게 더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조용히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 문제가 더 이상 정치인들의 지지율을 올리려는 게임이 돼서는 곤란하다.
한겨레 <2015년 4월 1일 31면>
‘어린이 밥그릇’까지 종북 딱지 붙이나
경남도가 무상급식 문제를 두고 결국 종북몰이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경남도청은 30일 성명을 발표해 최근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무상급식 중단 반대 운동을 “종북세력을 포함한 반사회적 정치집단의 불순한 정치투쟁”이라고 규정하고, “불순한 정치적 목적으로 도정을 훼손하려는 행위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성명서를 접하면서 맨 먼저 드는 의문은 과연 홍준표 지사나 경남도청 공무원들이 정신이 온전한 사람들인가 하는 점이다. 새누리당과 일부 보수세력이 걸핏하면 종북 딱지를 갖다 붙이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 경우는 해도 너무했다.
다른 사안도 아닌 아이들의 밥그릇 문제에 종북 딱지를 붙이겠다는 발상이 도대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무상급식 중단에 반대하는 경남도 학부모들의 바람과 호소는 매우 소박하고도 간단하다. “못사는 아이, 잘사는 아이가 차별받지 않고 사이좋게 학교에 다니며 건강한 밥을 먹게 하자”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어떻게 종북이라는 말인가.
홍 지사의 좌충우돌식 정치 행태를 두고는 그동안에도 ‘돈키호테’라는 비아냥이 많았지만 이번 경우는 단순한 돈키호테 차원을 넘어선다.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면 무조건 종북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가공할 만한 폭력이자 저질 선동 정치다.
경남도가 무상급식 중단 반대를 종북이라고 규정한 근거는 이 운동을 벌이는 ‘친환경무상급식지키기 경남본부’의 대표에 예전의 민주노동당 간부가 참여하고 있다는 점 따위가 고작이다.
종 북이라는 굴레를 씌우려면 뭔가 그럴듯한 근거라도 찾아내야 하는데 최소한의 논리도 갖추지 못한 궁색하기 짝이 없는 억지 주장이다. 이런 수준 이하의 논리 구사력과 머리 구조를 지닌 사람들이 경남 도정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경남도는 이번 성명 발표를 통해 무상급식 중단 반대 운동을 벌이는 단체와 개인들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했다. 홍 지사와 경남도는 이 대목에 대해 분명히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홍 지사가 이런 무리수를 둔 배경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무상급식 지원 중단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발이 예상외로 심각한 데다, 미국 출장 중 평일 부부동반 골프 등으로 궁지에 몰리자 탈출구로 종북몰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꺼낸 것이다. 하지만 홍 지사는 정말로 잘못된 무기를 선택했다.
홍 지사의 유치한 종북몰이는 자신의 ‘저질 정치인’ 면모만 부각시키며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논리 vs 논리] “선별적 복지로 빈곤층 도와야” vs “차별 없이 건강한 밥 나눠야”
지난 1일 경상남도가 무상급식 지원을 중단했다. 이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는 무상급식을 둘러싼 복지 논쟁이 격렬하게 진행 중이다. 이에 앞서 발표된 경남도청 성명서는 논란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경남도청은 무상급식 지원을 촉구하는 단체를 ‘반국가적 종북 활동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 간부 출신 등이 대표를 맡고 있는 종북 좌파 정치집단’으로 규정하고, “종북 세력을 포함한 반사회적 정치집단이 경남도를 상대로 정치투쟁을 하려는 일체의 행위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에 대해 한겨레와 중앙은 한목소리로 우려를 보낸다. 한겨레는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면 무조건 종북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가공할 만한 폭력이자 저열한 선동 정치”라며 경남도청을 강하게 비판한다. 중앙 또한 “경남도까지 무상급식 운동 단체를 ‘종북’으로 표현해 ‘색깔 논쟁’에 불을 붙인 것은 문제 해결은커녕 이념 갈등만 부추기는 매우 부적절한 대응”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문제에 접근하는 한겨레와 중앙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 중앙은 ‘선별적 복지’의 틀에서 무상급식 논란에 접근한다. 선별적 복지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만 복지 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입장을 말한다. 중앙은 학교 무상급식에 2조6000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나머지 학생들의 안전과 관련 있는 학교 시설물 보수 예산마저 5년 새 40%나 축소된 현실을 짚어준다. 나아가 무상급식에 경상남도가 지원하던 예산 643억원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재원을 초·중·고 서민자녀 교육 지원으로 돌리겠다는 홍준표 지사의 입장도 들려준다.
홍 지사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다. 부유층과 서민층 사이의 교육비 격차가 8배로 벌어진 지금의 현실에서는 빈부격차와 신분 세습이 고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홍 지사는 선별적 복지를 통해 교육 기회의 차이부터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중앙은 “정치적·이념적 논란에 가세할 게 아니라 정책적·실용적 차원에서 묵묵히 일을 추진해야 한다”며 홍 지사 입장에 지지를 보낸다. 아울러 “선별적 복지가 빈곤층 학생들에게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조용히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충고를 건넨다.
반면에 한겨레의 입장은 ‘보편적 복지’ 쪽에 가깝다. “못사는 아이, 잘사는 아이가 차별받지 않고 사이좋게 학교에 다니며 건강한 밥을 먹게 하자”는 문장 속에는 보편적 복지의 철학이 오롯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차별’이란 급식비를 지원받는 학생들에게 돌아갈 ‘점심값도 못 내는 학생’이라는 ‘낙인 효과’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선별적인 복지가 반(反)복지의식을 키울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시민들 머릿속에 “복지는 가난한 사람들만 받는 것이라 나와는 상관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가 확산될수록 복지 확대를 통한 부의 재분배, 전반적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노력은 힘이 빠지게 마련이다. 보편복지를 펼치는 나라 중 상당수가 빈부격차가 적고 소득재분배 효과가 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겨레는 “무상급식 지원 중단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발이 예상 외로 심각한 데다 미국 출장 중 평일 부부동반 골프 등으로 궁지에 몰리자 종북몰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꺼낸 것”이라며 홍 지사의 무상급식 중단을 ‘정치적 술수’로 해석한다.
이러한 주장 뒤에도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측의 논리가 묻어난다. 무상급식에 들어가는 예산은 경상남도 전체 예산의 0.5%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99.5%의 예산은 무상급식보다 중요한 일에 쓰이고 있을까? 세금으로 출장을 간 홍 지사가 골프를 쳤다는 사실에는 예산 낭비야말로 무상급식 재원 부족의 진짜 원인이라는 결론이 숨어 있다.
복지국가는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하지만 복지국가를 이루는 일에는 재원 마련, 증세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복지 논란의 해법은 정책을 통해 빈부격차를 줄이고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지에 있다. “복지 문제가 더 이상 정치인들의 지지율을 올리려는 게임이 돼서는 곤란하다”는 중앙일보의 주장, 무상급식 논쟁을 이념 논쟁으로 확대하려는 경남도의 성명서를 비판하는 한겨레의 입장이 울림 크게 다가오는 이유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 그 밖의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기고/우실하(한국항공대 교양학과 교수·중국 내몽고 적봉대학 홍산문화연구원 방문교수)-20150414화] ‘중화문명선전공정’이 시작된다
올 3월에 열린(3월3~15일) 중국 최대의 정치행사인 양회(兩會: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제안들이 건의되고 의결되었다. 대부분의 신문들은 정치, 경제적 정책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양회는 정치, 경제 분야만이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의 정책이 건의되고 결정되는 매우 중요한 회의이다. 여기에서 건의된 안건들은 대부분 실행된다.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소장이자 전인대 대표인 왕웨이는 ‘제12차 전인대 3차회의’에서 ‘중화문명선전공정’(中華文明宣傳工程)을 제안하였다. 핵심적인 내용은 “국민들이 5000년 중화문명을 확실히 이해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 는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으면서 중화문명 5000년의 찬란한 역사가 드러났는데, 아직도 많은 중국인과 국내외 학계에서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선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왕웨이 소장은 5000년 중화문명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 중화문명선전공정을 제안하고, 이를 위한 5가지 구체적인 기획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첫째, 중화문명 초기의 유구하고 찬란한 역사를 보여줄 티브이 특집프로그램 ‘중화문명의 형성’을 100회 정도의 연속 다큐멘터리로 제작할 것. 둘째, 중화문명의 찬란한 역사를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게 ‘대중서’ 형태로 지속적으로 출판하여 총서로 만들 것. 셋째, 중화문명의 찬란한 역사를 사진으로 보여줄 수 있는 대형 사진도록 <중화문명> 시리즈를 만들 것. 넷째, 중화문명의 찬란한 역사를 소개하는 ‘대학교, 중고등학교, 초등학교의 교재와 보조교재’를 편찬할 것. 다섯째, 중화문명의 찬란한 역사를 국내외에 전시·소개하는 ‘중화 조기문명 문물순회전’(中華早期文明文物巡廻展)을 실시할 것.
이 외에도 도굴범들은 일벌백계하고 문화재관리 관련법의 집행을 엄격하게 집행할 것 등도 건의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요서지역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새로운 요하문명의 등장으로, 중국은 ‘중화문명 5000년’을 당당하게 주장하고 있다. 중국학계는 요하문명의 주도세력이 중화민족의 조상이라는 황제족이라고 보고 있다. 요하문명의 꽃으로 불리는 홍산문화 후기(기원전 3500~3000년)에 이미 ‘초기 국가단계’ 혹은 ‘초기 문명단계’에 들어선다는 것이다. 필자는 요하문명은 중국만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 공통의 시원문명’이라고 본다. 많은 요소들이 고대 한반도, 일본, 몽골 등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요하문명의 새로운 발견 이후, 상고사와 고대사를 재정립하려는 ‘동북공정 → 중화문명탐원공정 → 국사수정공정(國史修訂工程) → 중화문명선전공정’ 등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기껏 발굴해 놓은 한반도 최대의 청동기 주거유적지인 춘천 중도 유적지를 덮고 그 위에 레고랜드라는 외국계 놀이공원을 만들고 있는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유적지의 34.8%만 발굴했는데도 917기의 주거지와 100여개의 지석묘(고인돌)가 발견된 곳에!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찬란한 5000년 역사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대한민국 정부는 5000년 찬란한 역사를 밝히고 알리려는 국가 기획이나 계획이 있습니까?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엄을순(문화미래이프 대표)-20150414화] 내 나이가 어때서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 덕에 실력도 인정받고 나름 존경까지 받으며 65세에 당당하게 정년퇴직을 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엊그제 95세 생일날. 엄청나게 울었단다. 정년퇴직하며 이제 다 살았다 생각하고 고통 없는 죽음만을 기다리며 허비한 30년이 너무나 아까워서라는데. 퇴직할 때 30년이란 세월이 더 남았음을 진즉에 알았더라면 지난 30년을 그렇게 덤으로 사는 인생같이 보내진 않았을 거란다. 아직 정신도 또렷하고 얼마를 더 살지도 모르고, 또 10년 후 맞이할 105세 생일에 10년 전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그동안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했다는 호서대 설립자 강석규 명예총장의 이야기.
가까운 지인 중에 이런 사람이 또 있다. 정년퇴직하며 인생의 끝이라 생각해서 모은 재산 자식들에게 다 나눠주고 품위 있는 죽음만을 기다리며 지내길 15년.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몸은 아직 팔팔하고 건강한데 돈은 자식들에게 다 나눠줘 더 이상 쓸 돈이 없더란다. 이리 오래 살 줄 몰랐다나. 남은 인생 이토록 길 줄 알았더라면 그동안 벌어놓은 돈 가지고 새로운 인생이나 도전해 볼걸 그랬다며 후회하더라.
지금은 ‘백세시대’다. 예전 70세시대 패턴을 그대로 따라 하면 남는 인생은 그야말로 산지옥일 게다. 퇴직하고 나오면 예전에는 길어야 10년 정도의 인생을 마무리하다 갔겠지만 백세시대엔 40년이나 남는다. 그 긴긴 세월을 어쩔거나. 시간은 ‘널널’한데 할 일은 없고, 그렇다고 마무리를 40년 동안 할 수도 없고.
7년 전이던가. 누군가의 생일파티에서 아코디언을 멋들어지게 연주했던 후배가 있었다. 그 모습에 반해 난 드럼을, 옆에 있던 친구는 아코디언을 배우기로 약속하고 헤어진 후 엊그제 분당에서 그 친구를 만났다. 뭐하며 지내느냐고 묻기에 드럼에 미쳐 있다고 했더니 자긴 아코디언이 무거워 한 달 만에 그만뒀단다. 후회하고 부러워하고 또 망설이던 그녀.
그 분야 선생님 연락처를 손에 쥐여 주며 ‘너와 나의 다른 점은, 난 지금도 하고 있고 넌 지금도 하려고만 하고 있다는 거야’ 했다. 어쩌면 몇 년 후에 또 다시 무언가를 그녀 손에 쥐여 줘야 할지도 모른다.
새로운 인생 2막. 악기 한번 배워 보자. 귀에 즐거워 좋고 뇌를 사용해 좋고 운동도 되니 더더욱 좋다. 내일, 혹은 내년, 혹은 10년 후. 자꾸 후회만 되풀이하지 말고 지금 시작하자. 노래도 있더라.
[경향신문 칼럼-여적/이기환(논설위원)-20150414화] 무너진 자격루
주나라 시대에 계인(鷄人)이라는 벼슬아치가 있었다. 닭을 관장하면서 새벽을 알리는 관리였다(<주례> 춘관). 이렇듯 ‘하늘을 공경하여 백성에게 때를 알려주는(欽若昊天 敬授人時)’(<서경>) 직책은 매우 중요했다. 만약 농사철에 ‘때(인시·人時)’를 잘못 일러주면 농사를 천하의 근본으로 여기는 백성들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1434년 세종이 자격루의 제작을 명한 이유가 될 것이다(<세종실록>).
“시각을 잘못 알리면 중벌을 받았다. 장영실에게 명해 시각을 알릴 목각인형을 만들었다. 사람의 힘이 들지 않았다.”
장영실의 자격루(自擊漏)는 물시계와 자동시보장치를 겸비한 조선의 표준시계다. 물시계(아날로그)의 물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다시 일정한 시차로 구슬과 인형을 건드려 자격장치(디지털)가 작동하도록 설계됐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변환기로 접속되는 디지털 시계가 이미 581년 전에 제작된 것이다. 하늘을 존중하는 마음씨로, 백성의 노고 없이 자동으로 작동되는 시계를 기어코 만든 것이다. 대단한 세종의 경천애민 정신이다.
장영실의 신분은 노비였다. 실록은 “아비는 원나라 소·항주 출신의 귀화인이었지만 어미 신분(기생)을 좇아 천민(노비)이 됐다”고 했다. 세종은 스스로의 표현처럼 ‘솜씨는 물론 성질 또한 빼어난’ 장영실을 과감하게 발탁한 것이다. 세종은 “원나라 때도 절로 작동하는 물시계가 있었지만 정교함에서는 장영실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 칭찬했다. 당대 사람들 역시 “장영실은 세종대왕을 위해 태어난 인물”이라고 치켜세웠다(<필원잡기>).
자격루의 정교함은 6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혀를 내두를 만큼 대단하다. 내로라하는 과학자 30여명과 최첨단 장비까지 총동원하고도 23년 만에 겨우 복원했다(2007년). 쇠구슬의 크기가 1㎜만 달라도 제대로 시간을 측정할 수 없단다.
지난 12일 대구 세계물포럼 개막식 행사에서 퍼포먼스를 벌이다가 자격루 모형이 넘어지는 불상사가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국가정상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니 그 민망함이란…. 그저 해프닝이었으리라. 다만 세종 임금이 자격루를 만들 때의 마음씨를 한번 되새겨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김성수(논설위원)-20150414화] 자격루
자격루(自擊漏)는 조선 세종 때 만들어진 물시계다. ‘스스로 종을 울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세종 16년인 1434년 장영실이 왕의 지시로 김조, 이천 등과 2년여의 연구 끝에 만들었다. 물을 흘러내리게 하는 그릇과 물받이 그릇, 톱니바퀴, 자동 시보(時報) 장치들로 이뤄져 있다. 흘러든 물의 양에 따라 각 기계 장치들이 연쇄작용을 하고 자동으로 종이 울리면서 시간을 알려 주는 정교한 물시계다. 세종 때 만들어진 것은 고장 나서 없어졌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중종 31년인 1536년에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를 개량해 새로 제작한 것이다. 덕수궁에 보관돼 있는데 1985년 국보 제229호로 지정됐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물항아리와 물받이 그릇만 남아 있다.
요 며칠 자격루가 엉뚱한 사건 때문에 입길에 오르고 있다. 지난 12일 오후 대구 엑스코 전시장에서 있었던 제7차 세계물포럼 개막 행사의 해프닝 때문이다. 행사에서는 ‘자격루 줄당기기’ 퍼포먼스가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국가 정상급 인사 등 내빈들이 자격루를 본떠 나무로 만든 2m 높이의 구조물을 잡아당기는 행사였다. 원래 각본대로라면 자격루에 연결된 줄을 당기면 구조물 상단의 항아리에 담긴 물이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개막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야 했다. 그런데 민망하게 박 대통령을 비롯한 내빈 13명이 줄을 잡아당기자 구조물이 내빈들이 있는 쪽으로 ‘와르르’ 하고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놀란 대통령 경호원들은 황급히 무대로 뛰어올랐다. 박 대통령도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행사는 난장판이 됐다. 국제적인 망신이었다. 물과 전통, 정보통신기술을 융합시킨 퍼포먼스로 이색 볼거리를 제공하겠다는 주최 측의 의도도 완전히 빗나갔다. 조직위 측에 따르면 구조물은 5000만원을 주고 대행 기획사에 맡겼다고 한다. 사전 리허설을 많이 했는데 내빈들이 너무 세게 줄을 당겨서 사고가 일어났다는 변명도 나온다. 행사를 준비한 권영진 대구시장의 말처럼 ‘옥에 티’라고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포럼은 지난 12일 개막해 17일까지 6일간 대구와 경주 등에서 열린다. 세계 170여개국에서 3만여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다.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걸 보여 주려고 무리를 하려다 화를 불렀다. 전 국민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했다. 누가, 어떤 이유로 안 해도 될 퍼포먼스를 굳이 강행해서 망신을 자초했는지 책임 소재를 명백히 밝혀야 한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제행사까지 이렇게 건성건성 준비할 수 있는 두둑한 ‘배포’도 놀랍다.
관노(官奴) 출신의 천재과학자 장영실의 위대한 유산인 ‘자격루’가 희화화된 것 같아 무엇보다 가슴이 아프다. 자격루 모형물이 무너지면서 대한민국의 국격(國格)도 함께 무너졌다는 지적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된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414화] 도화동(桃花洞)
옛날 한 마을에 마음씨 고운 노인과 외동딸이 살았다. 딸의 아름다움이 천궁에 알려져 하늘나라로 시집가게 되자 노인은 기쁘면서도 섭섭했다. 이에 선관이 천도복숭아 한 개를 선물로 주고 갔다. 먹으면 천년을 산다는 복숭아였지만 노인은 딸 생각에 먹지 못했다. 결국 과일은 썩었다. 그러나 씨가 남았고, 덕분에 복숭아꽃이 만발했다.
사람들은 이 복숭아꽃 마을을 복사골이라고 불렀다. 서울 마포 도화동(桃花洞)의 유래다. 지금은 아파트촌으로 바뀌었지만, 밤섬에서 보면 산비탈의 분홍색 꽃밭과 쪽빛 한강물이 어우러져 그림 같았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도 복사골 전설은 많다. 복숭아꽃은 살구와 함께 집 주변에서 흔히 보는 것이어서 한때 국화(國花)로 정하자는 논의까지 있었다.
복숭아 원산지는 중국 황하 상류다. 원래 봄볕에 타는 듯 붉은 꽃을 가득히 피우므로 어느 꽃보다도 양기가 충만하다고 해서 무병장수의 상징으로 쳤다. ‘귀신에 복숭아나무 방망이’라는 속담처럼 나쁜 것을 쫓는 용도로도 썼다. 복숭아꽃의 상징 중에서 가장 강한 것은 미(美)와 색(色)이다. 복숭아를 먹으면 예뻐진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전한다. 달밤에 복숭아 벌레까지 먹으면 더 예뻐진다는 속설에 ‘복숭아는 밤에 먹고 배는 낮에 먹으랬다’는 속담까지 생겼다.
복숭아 중에서도 살과 물이 많고 단 수밀도(水蜜桃)의 맛은 일품이다. 연분홍 색감에 둥두렷한 곡선, 가는 봉합선의 골이 있는 외양도 탐스럽다. 그래서 여성의 이미지와 연결시키곤 한다. 서구에서는 서양배처럼 생긴 엉덩이를 으뜸으로 치고, 동양에서는 복숭아처럼 생긴 엉덩이를 제일로 꼽는다니 더욱 그럴듯하다. 복숭아 빛깔인 도색(桃色)의 뜻이 도색 사진, 도색 영화 등 섹스 영역으로 쓰이는 것도 이런 연유일까.
도화살(桃花煞)은 호색과 음란을 뜻한다. 이 때문인지 선조들은 복숭아나무를 집안에 심지 않았다. 기생이나 애첩을 도엽(桃葉), 도근(桃根), 도화(桃花)라고 부르고, 도(桃)자가 들어간 이름은 유녀(遊女)에게나 붙였다. 그러고 보니 화류계 여인들의 부채도 도화선(桃花扇)이 아닌가.
하지만 복숭아밭은 낙원 사상의 무릉도원(武陵桃源)이나 성스러운 도원결의(挑園結義)의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만큼 아름답고 높고 기품이 있다. 마포 도화동 사람들이 복사골 공원 복원에 나서 곧 완공할 모양이다. 봄마다 복숭아꽃 천지가 되는 부천에서도 내달 2~5일 복사골예술제가 열린다고 한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임석훈(논설위원)-20150414화] 이멀트 로드맵
1980년대 들어 항공기 엔진제작 등 주력 사업 부문의 활황세가 꺾였으나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직원들은 태평했다. 옛 영광에 취한 채 악화일로인 경영환경을 애써 외면한 것이다. 당시 부임한 잭 웰치 회장은 변화 없이는 미래는 없다며 사업구조를 확 뜯어고쳤다. 1990년대 중반까지 수백개의 사업이 매각되거나 중단된다.
웰치 회장이 새롭게 집중한 분야는 금융사업. 인류에 꼭 필요한 것을 개발해 사회에 공헌한다는 토머스 에디슨의 창업정신을 뒤로 한 채 GE를 사실상의 금융회사로 탈바꿈시켰다. 방향전환은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는 성공적인 듯했다. "둔한 공룡을 춤추게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86~1993년 사이 금융 부문 수익이 15억달러에서 155억달러로 10배 이상 급증했으니 그런 말이 나올 만하다.
당시 제조업이 휘청거렸던 미국 산업계에 "세계 1위 또는 2위가 될 수 없는 사업에서는 철수한다"는 웰치의 지론은 금과옥조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과도한 금융 쏠림은 오래지 않아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만다. 금융위기가 터지자 GE는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GE 금융 부문이 당국의 주요 감시대상 비은행 금융기관 4곳 중 한 곳에 지정됐을 정도다.
경영여건이 녹록하지 않은 판에 저성장에 저금리까지 겹치자 최근 제프리 이멀트 현 GE 회장이 '잭 웰치의 유산'인 금융 부문을 2년 내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다. 창업 초기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본업인 제조업에 충실하기로 했단다. '이멀트 로드맵'이다. 123년 GE 역사상 가장 큰 분기점이자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지 싶다.
천하의 GE도 이 정도니 장기 불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기업들은 오죽하랴. 알짜기업의 대명사였던 현대중공업마저 '과거의 성공과 현재의 번영에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고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끊임없는 변신과 도전이야말로 모든 기업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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