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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성완종 리스트 수사

■ 오바마와 카스트로의 만남

■ 세월호 참사 1년

■ 러시아 2차대전 전승 70주년 기념행사 참가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성완종 리스트 수사

 

[한국일보 사설-20150413월] 청와대 검찰, ‘성완종 리스트’ 수사에 명운 걸어라

 

여권, “외압 행사 않겠다” 약속 지키고

檢은 정권 의식 않고 철저히 수사해야

불법 대선자금 수사도 예외 둬선 안 돼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 없이 엄정히 대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숨진 성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정치권 금품제공 의혹에 대해 본격 수사에 착수한다고 밝힌 직후다. 이에 앞서 어제 오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법리 문제를 떠나서 정치의 문제로 절대 의혹을 갖고 넘어갈 수 없다”고 전제하고 “검찰 수사에 외압이 없도록 새누리당이 앞장 서 책임지겠다”고 이례적인 의지를 보였다.

 

성 전 회장이 현 정부 실세들에게 거액의 자금을 전달했다고 폭로하면서 의혹은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더구나 2012년 대선 당시 대선캠프에서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은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에게 대선자금 용도로 2억 원을 건넸다는 성 전 회장의 주장이 추가로 나와 파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대선자금 문제는 현 정권의 창출과 직접 관련된 민감한 사안이어서 사태 흐름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존립 기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상황에 이끌려 가기 보다는 선제적으로 대응을 하는 게 상책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당초 “사실 관계 확인이 먼저”라는 소극적인 입장이었으나 여론이 급격히 악화하고 후속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방향을 선회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이다. 어쨌든 여권이 비교적 신속하게 정면돌파 기조로 가닥을 잡은 것은 다행스럽다.

 

문제는 앞으로다. 검찰이 얼마나 의지를 갖고 수사를 하겠느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검찰은 성 전 회장 수사과정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무리하게 수사를 밀어붙였다. 자원외교 비리와는 무관한 분식회계와 횡령 등 별건 수사에 매달리는 바람에 급기야 일을 내고 말았다. 그런 검찰에 성 전 회장의 폭로를 확인하는 수사를 맡기는 게 온당하느냐는 지적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보다 내키지 않는 것은 검찰이 그 동안 살아있는 권력을 의식해 눈치보기 수사를 해온 관행 탓이다. 올 초 ‘정윤회 문건 파문’만 해도 핵심인 비선 실세들의 국정 농단 의혹은 끝내 파헤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금의 검찰이 실세 권력자들을 상대로 의혹을 샅샅이 파헤칠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어렵다.

 

이렇게 본다면 이번 수사는 결국 특검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설사 그런 수순이 불가피하다 해도 검찰은 최선을 다해 수사해야 마땅하다. 정치검찰이라는 오욕을 씻고, 이번 사정 수사에서의 불명예를 씻기 위해서라도 오로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밝힌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정치권 금품 제공뿐만 아니라 지난 대선 당시의 불법대선 자금 여부도 빼놓지 않는 그야말로 성역 없는 수사를 해야 한다.

 

청와대 등 여권도 더 이상 검찰을 정치에 이용하려는 생각은 일체 하지 말아야 한다. 재보궐 선거나 정권에 미칠 도덕적 타격을 의식해서 검찰 수사에 외압을 행사하려다가는 헤어나오기 힘든 수렁에 빠질 지도 모른다. 청와대나 검찰이나 이번 수사에 명운이 걸려있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13월] 불법 대선자금이라면 더 철저히 수사해야

 

숨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박근혜 정부 실세들에게 금품을 건넸다고 폭로한 사건의 성격과 관련 정황들이 조금씩 구체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성 전 회장이 <경향신문> 인터뷰를 통해 2012년 대선 당시 홍문종 의원한테 2억원을 건넸다고 밝힌 부분이 주목된다. 홍 의원은 당시 중앙선거대책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다. 성 전 회장은 대통령 선거에 쓰라고 주었으며 공식 회계처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이 보도대로라면 홍 의원이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박 대통령 당선을 위해 사용했으며, 선관위 신고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성 전 회장은 언론 인터뷰를 자청해 녹음까지 하도록 하면서 정황을 구체적으로 폭로했다. 비록 돈을 주었다는 사람이 숨졌다고 해서 무시할 상황이 전혀 아니다. 정치자금법상 공소시효가 7년인 만큼, 수사 결과 관련자를 형사처벌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불법 대선자금을 주고받는 행위는, 우리 사회 부정부패와 비리 구조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모든 관련자를 철저히 수사하여, 사건의 전모를 단 한치의 숨김도 없이 밝혀내야 한다.

 

홍준표 경남지사한테 2011년 6월께 건넸다는 1억원은 한나라당 대표 경선 자금으로 보인다. 역시 선관위 신고를 하지 않은 불법 정치자금일 가능성이 크다. 이 돈에 대해서는 홍 지사의 측근도 받은 사실을 강하게 부인하지 않는다고 한다. 준 사람과 받은 쪽 모두가 자금 수수 행위를 사실상 인정하고 있으니, 당연히 수사 대상이다. 아직 성 전 회장이 몸에 지녔던 메모에 언급된 수준이긴 하지만 유정복 인천시장 3억원, 부산시장 2억원도 실체와 성격을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완구 국무총리 관련 부분도 마찬가지다.

 

우려되는 것은 이 정부에서 청와대와 검찰의 관계가 극히 비정상적이라는 점이다. 청와대는 수시로 검찰 수사 방향에 관여하고 검찰은 그 장단에 춤추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정치검찰 논란을 빚어왔다. 불과 몇달 전 정윤회 문건 사건 수사가 대표적으로, 현직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건 와중에 갑작스레 사퇴하는 일마저 벌어졌다. 현 정부의 핵심 실세들이 줄줄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 이번 사건의 특징이다. 특히 불법 대선자금이 맞다면 박 대통령한테 부담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검찰이 정말 성역 없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의문을 지우기 어려운 상황이다.

 

검찰이 12일 수사 착수를 선언하고 담당 부서를 배정했다. 검찰이 관련 정황들을 철저하게 조사하기를 일단 기대한다. 경우에 따라선 특별검사를 도입하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해야 할 일이 있다. 현 정부의 핵심 실세들이 연루되었다고 해서, 특히 대통령 자신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문제라고 해서 수사기관이 좌고우면해선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나서는 것이다.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성역 없는 수사를 요구하고 나섰으며, 그 결과 검찰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 후보 양쪽의 불법 자금을 밝혀냈다. 박근혜 대통령의 행동을 지켜보고자 한다. 수사기관이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철저하게 사건 수사에 몰입할 수 있도록, 대통령의 진정성 있는 의지 표명이 필요한 때다.

 

 

[중앙일보 사설-20150413월] 박 대통령, '성완종 사건' 정면 돌파해야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2년여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1년 전 세월호 침몰도 충격적인 위기였지만 그래도 그것은 국가 전체의 책임이었다. 반면 성완종 사건은 정권 핵심부와 관련된 것이다. 만약 사건이 2007년 대선후보 경선이나 2012년 대선과 관련된 자금 의혹으로 번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파도는 핵심부를 넘어 대통령에게 닿을 수도 있다. 줄줄이 이어졌던 인사파동이나 정윤회 문건사태와는 차원이 다르다. 대통령은 사건을 정권의 운명이 걸린 중대위기로 인식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항상 위기의 한가운데에 선택의 길이 있다. 핵심을 외면하고 미봉책이나 정치적 술수로 대처하면 더 큰 위기가 온다. 김영삼·김대중 정권은 아들들의 비리를 쉬쉬하다가 결국 아들의 사법처리와 도덕성의 추락이라는 대형 위기를 맞았다. 반면 결연한 각오로 상황에 대처하면 정권은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과 이회창 후보를 둘러싼 대선자금 수사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이번 사건은 대통령의 전·현직 비서실장 3인과 국무총리 그리고 친박계 핵심 인사들이 얽혀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말 그대로 ‘친박 게이트(gate)’ 의혹이다. 박 대통령은 16일 중남미 4개국 순방을 위해 출국한다. 16일은 세월호 참사 1주년이다. 뒤숭숭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정권이 이번 사건을 잘못 다루면 민심은 크게 이반하고 박근혜 정권은 국정 운영의 동력을 상실할 지도 모른다.

 

  국민의 의구심은 여러 갈래다. 관련자들이 권력에 깊숙이 연관된 인물들인 만큼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수사가 대선후보 경선이나 대선의 자금 의혹에 이르면 대통령이 그런 상황을 용납할 것인지 많은 국민이 의심한다. 이를 불식하기 위해선 대통령이 국민 앞에 나서야 한다. ‘성 전 회장의 진술만 있을 뿐’이라며 머뭇거려선 안 된다. 대통령은 어제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 없이 엄정히 대처하기를 바란다”고 대변인을 통해 밝혔다. 하지만 대통령의 의지를 읽기에 이 정도는 부족하다.

 

  성완종 리스트는 부분적으로 진실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성 전 회장이 1억원을 건넸다고 주장한 홍준표 경남지사의 측근이 사실상 이를 시인하고 나선 것이다. 성완종 녹취록이 전부 공개되거나 다른 증인이 나타나면 성완종의 ‘유언’은 더욱 진실에 다가갈 것이다. 경향신문사는 녹취록을 검찰에 제공하기로 했다. 이제부터 사건을 끌고 나가는 것은 사실(fact)이다.

 

  박 대통령도 사태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겠지만 만약에 수사가 대선자금으로 번져도 대통령이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커다란 줄기에서 부정(不正)이 없다면 모든 걸 정면으로 돌파하는 모습이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지켜줄 것이다. 정권의 허물이 무엇이든 솔직한 자세만이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 미국의 닉슨이 고꾸라진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은폐 때문이었다. 대통령은 시험에 들어있다.

 

 

[경향신문 사설-20150413월] ‘성완종 리스트’ 수사, 대선자금 의혹도 파헤쳐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불법 정치자금 제공 명단인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 검찰이 정식 수사에 들어갔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새누리당·청와대·정부 요직을 역임했거나 맡고 있는 권력의 실세들이 한꺼번에 ‘검은 돈 의혹’에 휩싸인 전대미문의 사건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된 것이다. 성 전 회장의 경향신문 인터뷰와 마지막 ‘메모지’ 등을 통해 정권의 실세들이 거액을 건네받은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공소시효’ ‘증거능력’ 등을 내세워 미온적 태도를 보이던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꾸려 전면 수사에 나선 데는 더 이상 국민적 의혹과 진상규명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일 터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마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성역없는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듯이 이번 사건의 진실을 철저히 밝히는 것은 달리 피해 갈 수 없는 과제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이들은 대부분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이나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다. 성 전 회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들에게 건넨 자금이 실은 ‘박근혜 후보 측’에 전달한 것이었음을 곳곳에서 내비치고 있다. 2007년 허태열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제공한 7억원은 ‘경선자금’이라고 했다. 특히 성 전 회장은 인터뷰에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중앙선대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고 있던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에게 2억원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자금의 용처에 대해선 “대통령 선거에 썼지”라고 말했고, 공식 회계처리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고 했다. 불법 대선자금으로 쓰였다는 증언이다. 조직총괄본부장은 시·도별 당조직과 외곽 조직을 관리하며 자금을 많이 쓰는 자리였다. 성 전 회장의 ‘메모지’에 적힌 유정복 인천시장은 당시 직능본부장, 서병수 부산시장은 선거자금을 통괄하는 당무조정본부장을 맡았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이들 3명이 박근혜 대선 캠프에서 조직·자금을 다루는 요직에 있었던 셈이다. 성 전 회장이 남긴 정치자금 제공 리스트가 2012년 대선자금과 연관될 소지가 크다는 얘기다. 이번 사건 자체로도 정권의 도덕성이 걸렸지만, 대선자금은 정권의 정통성을 흔들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다. 검찰이 과연 ‘살아 있는 권력’의 심부를 겨냥하는 대선자금 의혹을 제대로 손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만일 검찰 수사가 ‘살아 있는 권력’에 주춤거리거나 관련 의혹을 덮는 쪽으로 간다면 정권은 더욱 나락으로 내몰리고, 검찰도 ‘권력의 시녀’란 딱지를 떼지 못할 것이다.

 

‘성완종 리스트’는 대상 인물들이 대부분 박 대통령의 최측근들이고, 대선 및 경선 자금과 연관된 의혹이라는 점에서 대통령과 직결된 사안이다. 박 대통령은 어제 검찰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없이 엄정히 대처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내놨다. 박 대통령은 정권의 명운을 건다는 각오로, 드러난 의혹들을 한 점도 남김 없이 규명할 수 있도록 검찰의 공명정대한 수사를 보장해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413월] 檢, ‘성완종 리스트’ 파헤쳐 ‘정치검찰’ 오명 씻어라

검찰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정치권 금품 제공 의혹에 대해 정식 수사에 착수했다. 대검찰청은 어제 김진태 검찰총장 주재로 대검 간부회의를 소집해 특별수사팀을 구성하는 등 ‘성역 없는 수사’ 의지를 밝혔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실세 권력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정황을 담은 이른바 ‘성완종 메모’가 공개된 지 이틀 만에 검찰 수사 결정이 이뤄진 것이다. 이완구 국무총리와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금액까지 명기된 김기춘(10만 달러)·허태열(7억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 유정복(3억원) 인천시장, 홍문종(2억원) 새누리당 의원, 부산시장(2억원) 등이 명기된 이 메모는 자살한 성 전 회장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거명된 인사들은 대부분 현 정권의 실세인 친박(親朴) 정치인이다.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이 모두 거명되면서 메가톤급 게이트로 변할 기세다. 박 대통령은 어제 오후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 없이 엄정히 대처를 하기를 바란다”고 밝힌 것으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이에 앞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어제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성완종 리스트의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그는 “성역 없는 철저하고 신속한 검찰 수사를 통해 국민적 의혹을 씻어야 한다”며 공명정대한 검찰 수사를 수차례나 강조했다. 그만큼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민심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는 방증이다.

 

그 러나 검찰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금품을 제공했다는 당사자가 이미 고인이 돼 사실 여부 확인이 쉽지 않다. 게다가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이 한결같이 금품수수 자체를 부인하고 있고 공소시효 등 법리적 문제도 남아 있다. 무엇보다 현 정권 들어서 예민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했다고 믿는 국민들이 별로 없다. 그만큼 검찰에 대한 불신이 높다는 의미다. 여권 일각에서조차 특검 수사의 필요성마저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성 전 회장의 검찰조사 과정에서 터져 나온 가혹 행위설, ‘빅딜설’ 등은 물론 시신에서 메모지를 발견하고도 곧바로 공개하지 않은 정황들도 이런 회의적 시각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검찰이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부패 척결은 검찰 본연의 사명이자 존립 근거”라고 취임사에서 밝혔다. 그 말이 허언(虛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야 한다. 그가 과거 전임자처럼 윗선의 하명(下命)만 기다리며 좌고우면하다가는 검찰 전체가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은 불문가지다. 이런저런 핑계를 내세워 유야무야 덮으려 하다가는 정치검찰이란 불신만 커질 뿐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죽음으로써 항변한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성 전 회장이 자살 직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정황은 너무나 구체적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사실이라고 믿을 것이다. 돈을 건넨 시기와 장소, 액수를 특정한 것은 물론 당시 수행비서나 직원들의 동행 사실도 밝히고 있다. 검찰은 리스트 의혹의 실체적 진실을 명쾌하게 밝혀내야 한다.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머뭇거린다면 “검찰을 없애야 한다”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14월] '성완종 의혹' 수사에 국가와 검찰의 존망 달려

 

새누리당이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김무성 대표는 수사를 촉구하며 "검찰에 외압이 없도록 새누리당이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국민의 불신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새누리당의 이 같은 움직임은 당연한 수순이다.

 

마침 검찰이 12일 특별검사팀을 발족시키며 철저한 수사 의지를 천명했으니 지켜봐야겠지만 어느 때보다 결연한 자세가 요구된다. 돈을 받은 대상으로 지목된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강력 부인해도 새로운 정황들이 나와 국민의 의구심은 높아져만 간다.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해명에서 제시된 알리바이마저 신빙성이 없다. 유력 차기 대권 주자로 알려진 인물의 측근 입에서는 실토하는 듯한 이야기가 나왔다. 관련자들 모두가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극단적 선택을 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금품수수를 부인하고 있으나 연락을 취했던 상황만큼은 속속 드러났다. 거물급 정치인들과 예사로이 전화통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심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성완종 리스트는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넘어야만 하는 장애물이다. 하지만 검찰이 영 믿기지 않는다. 검찰이 정치로부터 당당하다고 믿는 국민은 많지 않다. 더욱이 검찰은 성 전 회장을 자살로 내몬 데 대해 도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럴수록 검찰은 본연의 자세를 찾아야 한다.

 

수사가 미진하다면 당장 특검 얘기가 나올 것이 뻔하다. 두고두고 정치적 논란거리로 남을 가능성도 높다. 모두 검찰에는 위기다. 그렇지 않아도 김영란법 시행으로 검찰에 무소불위의 힘이 실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마당이다. 성완종 리스트를 제대로 밝히지 못하면 어떤 형식으로든 검찰 개혁론이 지펴질 수밖에 없다. 검찰에는 조직의 명예와 존망을 걸고 한 치 의혹을 남기지 않는 수사를 펼쳐야 할 책무가 있다.

 

 

■ 오바마와 카스트로의 만남

 

[한국일보 사설-20150413월] 오바마와 카스트로, 그 역사적 만남의 의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11일(현지시간) 파나마에서 열린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에서 얼굴을 맞댔다. 1시간여 동안 비공식 양자대화를 한 두 정상의 만남은 라울의 형인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혁명을 일으키기 3년 전인 1956년 이후 59년 만이자 1961년 국교 단절 이후 54년 만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역사적인 만남”이라고 했듯이 두 정상의 만남은 과거 낡은 이념을 청산하고 새로운 화해의 시대를 알리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평가될 만 하다.

 

두 정상의 만남은 지난해 12월 양국이 국교정상화에 합의한 이후 진행되고 있는 후속조치의 일환이다. 올 1월 미국의 대 쿠바 무역ㆍ금융 제한이 완화되고 여행이 확대됐으며 지난달에는 양국 간 직통전화가 개설됐다. 지금까지 세 차례 진행된 국교정상화 협상에서 쿠바에 대한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대사관 재개설 문제 등이 논의되고 있다. 카스트로의 정상회의 참석도 미국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다가 정상화 합의 이후 미국이 쿠바에 초청장을 보내면서 성사됐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카스트로 의장은 이날 쿠바 봉쇄정책을 펴온 미국 역대 대통령들을 비난하면서도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서는 “봉쇄정책에 아무런 책임이 없기 때문에 사과한다”며 그를 “정직한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냉전이 끝난 지 오래”라며 “역사에 갇혀 있지 않겠다”고 화답했다.

 

미국과 쿠바 두 정상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은 모습은 반세기가 넘는 동안 피로 물들었던 굴곡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게릴라로 위장한 쿠바 난민들을 침투시켜 카스트로 공산정권을 전복하려 했던 중앙정보국(CIA)의 피그만 침공사건은 냉전시대 이념의 광기가 어디까지 치닫고 있었는지를 보여준 단적인 예였다. 정확히 54년 전인 1961년 4월 17일 CIA의 공작에 속아 피그만에 상륙했던 1,200여명의 쿠바 난민은 카스트로 군대에 모두 포로가 되거나 사살됐다. 이 사건은 쿠바와 소련의 밀착을 불러 이듬해 12월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 일보직전까지 가는 쿠바 미사일위기로 이어졌다.

 

미국과 쿠바의 관계정상화는 이달 초 타결된 이란 핵협상과 함께 오바마 대통령의 중요한 외교적 성과다. 이란과는 협상 타결 후속조치 여하에 따라 36년 만에 국교정상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09년 대통령 취임 전 쿠바 이란 북한을 거론하며 “적과의 악수”를 하겠다고 한 오바마의 약속이 하나씩 이뤄지고 있다.

 

이제 북한만 남았다. “이란과 북한은 다르다”는 패배주의적 인식은 접을 때가 됐다. 미국이 카스트로 정권에 손을 내밀었듯이 의지만 있다면 북미협상을 재개할 틀과 토대는 얼마든지 있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13월] ‘미국-쿠바 정상회동’의 역사적 의미와 남북관계

 

동서 냉전 체제의 최정점이기도 했던 오랜 ‘적국’ 미국과 쿠바의 두 정상이 59년 만에 얼굴을 맞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11일(현지시각) 파나마에서 열린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에서 비공식 양자 회동을 했다. 미국이 쿠바를 미주지구 정상회의에 처음 초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

 

두 정상의 ‘역사적 만남’은 지난해 12월 미국과 쿠바가 반세기 넘는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기로 뜻을 모은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간 행보다. 두 나라의 전격적인 국교 정상화 합의는 국제 정치질서의 전환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에는 쿠바의 정권 교체를 목표로 한 오랜 봉쇄정책이 실패했음을, 쿠바에는 경제개혁과 실용주의로의 노선 전환을 뜻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쿠바 점령(1902년)과 쿠바의 사회주의혁명(1959년) 등으로 상징되는 20세기 두 나라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보자는 의미였다.

 

이번 회동으로 국교 정상화 협상에도 탄력이 붙을 수 있다. 현재 두 나라는 대사관을 재개설하고 쿠바를 테러리스트 지원 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문제를 두고 실무협상 중이다. 오랜 적대관계 경험에 비춰볼 때, 정상화 협상이 하루아침에 급진전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긴 하다. 여전히 미국 정부 안에선 국교 정상화와 테러리스트 지원 국가 해제는 별개 사안이라는 목소리가 남아 있다.

 

그럼에도 약 열흘 전 미국 등 주요 6개국(P5+1)과 이란이 이란 핵 문제의 해법에 합의한 데 이어, 국제사회엔 연거푸 긍정적 신호음이 울리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첫 임기를 시작하며 밝힌 ‘적과의 악수’ 계획은 쿠바와 이란의 사례에서 보듯이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구체적 조건이 달라 똑같은 해법을 곧장 끌어댈 수는 없다 치더라도, 한반도 평화와 북한 핵 문제 해결이라는 엄중한 과제를 시급히 풀어야 할 우리로선 숨가쁘게 진행되는 국제정치 흐름이 결코 ‘남의 일’ 같을 수 없다. 그 출발점은 응당 남북관계 개선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413월] 오바마·카스트로 세기적 만남, 김정은은 봤는가

 

우리 시간으로 어제 새벽 파나마에서 세기의 만남이 이뤄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파나마 수도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화해의 손을 맞잡은 것이다. 라울의 친형 피델 카스트로가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킨 1956년 이후 60년간 계속돼 온 양국의 적대 관계에 마침표를 찍는 역사적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와 더불어 지구촌에 남은 냉전체제의 낡은 상흔 두 가지 가운데 하나가 마침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 사건인 것이다.

 

두 정상의 회담이 양국 관계 정상화로 이어지기까지 걸림돌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당장 쿠바에 대한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문제가 쉽사리 풀리지 않고 있다. 어제 회동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은 당장 해제하겠노라고 답하지 못했다. 북한·시리아 등과 연결된 쿠바의 무기 거래가 여전히 투명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장애 요소에도 불구하고 화해·협력의 길로 들어선 양국 관계의 커다란 물줄기가 다시 역류할 것으로 볼 수 없음은 분명해 보인다.

 

올 들어 지구촌은 국제 안보질서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를 맞고 있다. 이란과 서방세계의 핵 협상 타결이 대표적이다. 미국 등 6개 주요 서방국들이 이란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대신 이란은 진행 중인 핵 개발을 전면 중단하기로 합의하면서 1979년 이란 혁명과 함께 시작된 미국과 이란의 적대 관계 또한 상호협력을 모색하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악의 축’ 세 나라의 하나로 지목한 이란과 반세기 넘도록 중남미 반미(反美) 전선의 맏형으로 군림해 온 쿠바가 역사의 우연이라 할 만큼 거의 동시에 미국을 향해 화해의 깃발을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리비아와 베트남, 미얀마 그리고 지금 이란과 쿠바에 이르기까지 지난 몇 년간 서방세계와 화해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선 나라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피폐한 국민들의 삶을 더는 이대로 놔둘 수 없다는 국가 지도자의 결단이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완력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국민들의 굶주림을 더는 방치할 수 없기에 그들은 화해와 개방을 택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위해 그 권좌에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 부둥켜안은 핵으로는 결코 주민을 먹여 살리지 못한다. 자신의 체제를 보장받을 수 없음 또한 물론이다.

 

 

■ 세월호 참사 1년

 

[한겨레신문 사설-20150413월] 박 대통령 왜 하필 세월호 1주기에 출국을

 

오는 16일이면 안산 단원고 학생 250명을 비롯해 모두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빚어진 지 1년이 된다. 희생자 가족들의 고통은 그때나 지금이나 멈출 줄을 모른다. 많은 국민들 또한 세월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마당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사 1주기 날에 외국 방문길에 오른다고 한다. 국민 대다수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 같아 안타깝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콜롬비아와 페루, 칠레, 브라질 등 남미 4개국 순방을 위해 16일 오후 출국한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다만 출국일이 세월호 1주기인 점을 고려해 오전에 추모 일정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이왕 추모 일정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출국일을 하루 정도 늦출 수는 없었는지 궁금하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 운영 시스템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다. 박 대통령 스스로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의 개혁과 대변혁”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국민들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고 슬픔에 잠겼던지 경제활동 등도 영향을 받았다. 그런 만큼 대통령으로서 하루가량 희생자 가족들의 아픔을 달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런 바람을 뒤로한 채 오후에 출국한다고 하니 박 대통령의 공감과 소통 능력에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의 정무 판단력도 의심스럽다.

 

외국 정상과의 회동 일정을 늦추는 게 적절하지는 않다. ‘국익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중남미가 우리의 주요 시장으로 떠오르는 상황이니 더 그렇다. 하지만 국내 상황을 설명하면 상대국도 이해 못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이런 자세를 보이지 않으니 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박 대통령이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를 직접 조문한 것과 세월호를 대하는 태도를 비교해, 박 대통령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게 아니냐는 냉소적인 얘기도 한다. 박 대통령은 억울할지 모르지만 그게 민심이다. 지금이라도 박 대통령이 일정을 재고했으면 좋겠다.

 

 

■ 관련 칼럼

 

[중앙일보 칼럼-전수진의 한국인은 왜/전수진(정치국제부문 기자)-20150413월] 세월호 1년, 달라진 게 뭐야?

 

신호는 왜 꼭 내 앞에서만 깜빡일까. 달려가면 도로교통법 위반인데. 설마 걸리겠어. 뛰자.

 

  오늘 아침 내가 이랬다. 아니, 거의 매일 그렇다. 옹색한 변이 있다면 혼자가 아니라는 것. 대한민국 곳곳 출근길 횡단보도는 100m 달리기 경기장이 된다. 이 경주엔 선도 없다. 많은 이들이 횡단보도 선 밖 차도로 막판 스퍼트를 감행한다. 넘지 말라고 그어놓은 선인데 넘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뜬금없는 횡단보도 얘기를 꺼낸 건 사흘 뒤가 무서워서다. 1년 전 그날 아이들을 포함해 476명을 태운 배가 가라앉았다. 세월호는 우리 모두의 ‘설마’가 켜켜이 쌓인 무게로 가라앉은 건 아닐지. 인재(人災)로 아이들이 죽어가는 현장을 생중계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무력감 그 이후, 한국은 무엇을 배우고 바꿨을까. 노란 리본 달고 여전히 보행 안전조차 지키지 않는 게 우리의 2015년 4월 민낯이다. 1년이 지났지만 세월호도, 한국 사회도 그대로가 아닐까.

 

  이런 감상을 외국인으로부터 듣는 건 사실, 불편했다. 어느 영국인 서울특파원과 지난달 광화문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중 “포스트-세월호 한국에서 달라진 게 뭐냐”고 그가 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보기엔 없다”고 단언했다. 안전이 제일이라고 말만 하고 구호만 외칠 뿐 행동엔 달라진 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보행신호 무시부터 운전 중 휴대전화 확인 등을 근거로 들었다.

 

  어느 일본인 서울특파원이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도 떠오른다. “방금 서울 도심에서 자동차들이 앰뷸런스가 지나가자 질서정연하게 길을 비켜주는 광경 목격. 서울 생활 수년 동안 처음 봤다. (한국도) 하면 할 수 있네.” 차마 ‘좋아요’를 누를 순 없었다.

 

  영국인 특파원과 식사를 마치고 나온 광화문 사거리엔 “진실은 아직도 바닷속에 있습니다”라는 분들과 “유가족 여러분, 진실을 호도하지 마시고 돌아가세요”라는 분들이 대치 중이었다. 세월호의 씁쓸한 유산이다.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선을 지켜가며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려 노력할 때 작지만 큰 변화들이 생기는 게 아닐지. 국제 뉴스에서 ‘세월(Sewol)’은 인재를 상징하는 고유명사로 자리 잡았다. 정작 우리는 세월호를 정치적으로만 소비하고 소모하는 건 아닐까. 서로의 골이 깊어지는 사이 변화의 골든타임은 놓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헛되이 시간만 보냄’으로 정의되는 말이 허송세월이라지만 세월호까지 ‘허송’의 대상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무섭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주철환(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20150413월] 기억의 숲에서 무엇을 기억할까

 

기억력 좋은 사람이 입시에서 유리한 건 예나 지금이나 같다. 그러나 시험이 끝난 후 중요한 걸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리한 자들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을 기억한다.

 

  2015년 4월. 기억하는 사람들과 기억하지 않는(못하는) 사람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라일락의 뿌리처럼 뒤엉켜 있다. 왜 하필 라일락인가. 해마다 4월이면 누군가 이 꽃을 ‘리마인드’시켜 준다. 제목은 황무지, 시인의 이름은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줄여서 T S 엘리엇이다.

 

“4 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잔인하지 않은 달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유독 4월은 가장 잔인한 달(the cruelest month)이라고 시인은 지목했다.

 

 시인이 된 사람은 적지만 시인의 감성으로 보낸 시기는 한 번쯤 있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일 년에 한두 번 기차를 탔는데 그때 시인의 기분을 누렸다. 중학생 때인가 차창 풍경을 보며 시를 지었다.

 

“눈 덮인 작은 봉우리에 마지막 사람이 살고 있네.” 제목은 ‘무덤’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산 자들이 뒤에서 말할 뿐이다. 하지만 이런 말도 있다. “가장 잔인한 거짓말은 종종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다(The cruelest lies are often told in silence).”

 

  지난해 4월 이후 광화문을 지날 때면 노래 하나가 자꾸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 깊은 바닷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아침이슬’의 작곡가 김민기씨가 고등학생 때 만든 ‘친구’라는 노래다. 친구가 바다에 빠져 실종된 후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지었다고 한다.

 

  친구가 실종된 바다는 거대한 무덤처럼 보인다. 4월에 그 자리에 이방인 가족이 나타났다. “저는 오드리 헵번의 아들입니다.” 세기의 연인까지는 기억하는데 그 아들은? 그는 ‘마음’을 들고 나타났다. 그 마음은 ‘기억’이다. 그는 ‘기억의 숲’을 제안했고 드디어 착공했다. 그의 착한 마인드가 무딘 우리를 ‘리마인드’시켜 준 것이다.

 

 미술관·박물관은 기억의 숲이다. 예술가는 우리를 ‘리마인드’시켜 준다. 묘지 역시 기억의 숲이다. 죽은 자들은 산 자에게 묻는다. 제대로 살고 있는가?

 

엘리엇은 시를 ‘리듬감 있는 불평’이라고 했다. 리듬만 있고 불평은 없는지, 불평만 있고 리듬은 없는지를 되돌아보는 지금은 4월이다.

 

 

■ 러시아 2차대전 전승 70주년 기념행사 참가

 

[한국일보 사설-20150413월] 대통령이 못 간다면 특사의 격이라도 높여야

 

정부가 내달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러시아 2차대전 전승 70주년 기념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의 불참을 공식 발표했다. 대신 대통령 정무특보인 윤상현 새누리당의원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러시아는 남북 정상을 동시 초청하면서 이미 북한 측으로부터는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참석에 대한 긍정적 답변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는 이번 행사를 두고 미ㆍ중ㆍ일이 유례없이 복잡하게 얽혀 갈등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대(對)러 관계개선을 위한 좋은 기회로 보고, 대통령의 참석을 주문한 바 있다. 무엇보다 형식과 내용을 떠나 박 대통령과 김 제1위원장과의 만남이 성사된다면 그 자체로 남북관계의 중요한 돌파구가 될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박 대통령 집권 3년 차인 올해 남북관계의 활로를 열지 못하면 다음 정권까지 대북 관리 공백이 10년을 넘기게 된다는 점도 고려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정부 결정은 크게 아쉽다.

 

물론 정부가 결론을 내리기까지의 고뇌를 짐작 못할 바는 아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서방 주요국 정상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에 대한 항의표시로 불참 결정을 한 상황이 크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더욱이 최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과 미일동맹 강화구도 등 여러 요인도 운신 폭을 더 좁혔을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뒤집어 러시아를 동북아 국면관리의 활용변수로 끌어들이는 등 상황에 보다 적극적, 공격적으로 대처하는 방안도 고려했어야 했다. 북한이 러시아를 대북 포위망의 출구로 삼으려는 시도를 사전 차단하는 효과 면에서도 그렇다.

 

어쨌든 기왕 대통령 불참을 결정했다면, 대신 참석하는 특사의 격(格)이라도 맞출 필요가 있다. 러시아가 어려운 입지 탈출의 돌파구로 이번 행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마당에 대통령 참모에 불과한 의원 한 명의 파견은 어울리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방러를 기대한 러시아 입장에서는 도리어 불쾌해할 가능성이 크다. 적극적으로 이익을 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최소한 손해를 피하는 방안은 찾아야 한다. 총리 등 국가의 대표성과 성의를 담보할만한 인사로 격을 높이는 것이 옳다.

 

 

[경향신문 사설-20150413월] 대통령 방러보다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다음달 9일 열리는 러시아 전승절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대통령 정무특보이자 친박 실세인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을 특사로 파견키로 했다. 정부는 지난 10일 외교 경로를 통해 이런 방침을 러시아 측에 통지했다고 한다. 이로써 남북정상회담 개최는 물론 박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국제외교 데뷔 무대에 동참할 기회도 무산됐다.

 

박 대통령의 러시아 정부 행사 참석 여부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행사 불참 결정 과정에서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내 체면을 구겼다. 주권국가로서의 결단성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행사 참석에 부정적인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시간을 끌다가 행사를 한 달도 안 남긴 시점에 와서야 가까스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서방의 러시아 제재와 서방 정상 대다수의 불참 방침을 이유로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둘 다 이미 오래전 결정된 것이어서 뒤늦은 결정에 대한 해명으로는 합당하지 않다.

 

박 근혜 정부는 이전에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국 배치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문제에서 능동적 대처를 못하고 미국과 중국에 휘둘려 시간만 끌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급기야 사드 문제에 대해 중국 외교부 고위인사가 한국 정부를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한국 외교의 핵심 가치인 중심과 균형을 잡지 못하고 강대국 의존과 편향을 선택한 대가다.

 

정 부의 이번 결정으로 남북은 장기화된 경색 국면의 반전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커졌다. 물론 남북정상회담이 ‘만능열쇠’는 아니다. 서로 간에 최고지도자까지 비난하는 현재 상황에서는 정상회담이 성사된다 해도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윤 의원이 특사 자격으로 북측과 접촉하는 것이 더 생산적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방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정부의 실천적 의지와 구체적인 실행 계획의 존재 여부다. 북한에 대한 정부의 근본적 태도 변화가 없다면 누가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의미 있는 결실을 맺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중앙일보 사설-20150413월] 그래도 개혁은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한다

 

지난해 우리의 국가 부채는 1211조2000억원에 달했다. 전년보다 93조3000억원이나 늘어났다. 그중 절반이 넘는 47조3000억원이 공무원과 군인연금 적자를 보전하는 데 쓰였다. 지금 공무원연금을 개혁하지 못하면 매일 80억원의 국민 혈세가 그 구멍을 메우는 데 흘러간다.

 

  한국노총의 이탈과 김대환 노사정위 위원장의 사퇴 표명으로 무산 위기에 처한 노동시장 개혁도 마찬가지다. 이 개혁이 실패하면 대한민국은 20대 고용률이 10% 선에 불과한 스페인·이탈리아 수준으로 전락한다. 한국은행이 예측한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은 3.1%에 그치고, 물가상승률도 0.9%밖에 되지 않는다. 저성장과 디플레 수렁에 빠진 경제를 구할 길은 과감한 구조 개혁뿐이다. ‘성완종 사건’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연금과 노동시장 개혁 같은 국가적 과제만큼은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하는 이유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정부·여당은 성완종 파문을 성역 없이 파헤쳐 진실을 밝히고, 비리가 드러난 인사는 엄벌해야 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12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건이 국정의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정권 핵심 실세들이 기업인 출신 전직 의원에게 거액을 챙겼다는 의혹을 덮어 둔 채로는 제아무리 중요한 국정도 추진력을 얻을 수 없다. 정권의 도덕성을 뒤흔드는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국정을 핑계로 넘어가려 했던 과거 정권들의 구태를 되풀이하면 안 된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 온 핵심 어젠다들은 사망선고를 받고, 새누리당은 4·29 재·보선과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의 철퇴를 맞을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역할도 중요하다. 성완종 파문을 한 점 의혹 없이 파헤치고 관련자를 엄벌토록 여권을 압박하되 공무원연금이나 노동시장 개혁만큼은 이와 연계하지 말고 조속히 처리되게끔 여당과 힘을 모아야 한다. 성완종 파문을 구실로 절체절명의 국가적 과제인 구조개혁을 회피한다면 엊그제 국회에서 ‘새경제연합’이 되겠다고 다짐한 문재인 대표의 연설은 빈말이었음을 자인하게 될 뿐이다.

 

 

[중앙일보 사설-20150413월] IS 자처한 괴한들의 리비아 한국 대사관 공격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 있는 한국 대사관이 어제 이슬람 수니파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 소속으로 추정되는 괴한들의 공격을 받았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한국 대사관이 IS 추정 세력의 공격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경비 초소에 있던 리비아 경찰관 3명이 괴한들이 난사한 기관총 총탄에 맞았다고 한다. 그중 2명이 숨지고, 한 명이 부상했다. 외교관 2명과 행정원 1명 등 대사관에서 근무 중이던 우리 국민의 피해는 없었다고 하지만 전 세계로 번지고 있는 IS의 테러 위험에서 한국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사건 발생 두 시간 후 IS 트리폴리 지부를 자처하는 단체가 트위터를 통해 “IS는 한국 대사관 경비 2명을 제거했다”고 발표했다. 일단 IS 관련자들의 소행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시리아와 이라크에 칼리프가 통치하는 이슬람국가 건설을 목표로 내세운 IS는 참수·화형·집단학살 등 반인륜적 잔혹 범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이집트·리비아·튀니지 등 북아프리카로 활동 무대를 넓히며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은 IS를 국제사회에 대한 최대 위협 중 하나로 간주하고, 대대적인 격퇴 작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어 IS의 위협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한국은 국제사회의 대(對)테러 연합전선에서 군사적 지원 대신 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다. 대테러전을 주도하는 미국의 동맹국이기도 하다. IS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도 ‘작은 적’이기 때문에 주요 표적은 아니어도 보조 표적은 될 수 있다. 트리폴리 한국 대사관에 대한 이번 공격은 이런 점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여행금지국으로 지정된 이라크에는 한국 근로자 1000여 명이 체류 중이고, 예멘과 리비아에도 각각 40여 명이 머물고 있다. 추가 테러 가능성에 대비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신속한 철수를 검토해야 한다.

 

  국제 테러조직 관련 활동을 하다 국내에서 강제 추방된 외국인 건수가 최근 5년간 50여 건에 이를 정도로 한국도 잠재적인 테러위험국이다. 유엔이 테러 대응책 입법을 권고한 이유이기도 하다. 테러 방지를 위한 입법도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413월] 시행 5개월 만에 흔들리는 도서정가제

 

영세 서점을 살리고 거품 낀 책값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도서정가제가 시행 5개월 만에 위기에 빠진 모양이다. 최근 민음사 계열인 비룡소, 미래엔, 삼성출판사, 시공사 계열 시공주니어, 김영사 계열 주니어김영사 등 주로 대형 출판사들이 홈쇼핑 채널을 통한 도서 할인 판매에 나서는 등 도서정가제 취지에 반하는 행태를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또한 알라딘, 인터넷 교보문고, 예스24 등 주요 인터넷 서점들도 사은품 증정 등 ‘꼼수’ 마케팅으로 도서정가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것이다.

 

도서정가제 전면 시행을 강하게 요구했던 출판인들이 스스로 제도 취지를 훼손하면서 기존의 할인 마케팅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해당 출판사들은 규정을 어긴 적이 없다고 항변한다. 정가제는 도서 정가의 15%까지만 할인이 가능하지만 세트 도서로 판매할 경우 예외 규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대형 출판사들이 정가제의 허점을 파고들어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행태는 출판계 합의 정신을 깨는 일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사실 이런 결과는 제도 마련 때부터 예견됐다. 정가제가 편법 할인, 경품 제공, 처벌 기준 등에서 불완전하고 허점이 많아서다. 현재 반쪽짜리 도서정가제를 보완하는 버팀목은 출판·유통업계의 ‘자율협약’뿐이다. 그동안 정부가 “도서정가제가 연착륙했다”고 홍보했지만 현장의 평가는 정반대다. 대다수 출판사들은 불황의 늪에 빠져 있다. 독자들은 가격은 내리지도 않고 할인제도만 없앴다고 비판한다. 혜택을 볼 것이라던 중소 서점들조차 정가제가 되레 손님을 쫓았다고 불만이다.

 

이번 대형 출판사들의 ‘일탈’도 아동출판 매출 감소에 따른 자구책이었다고 한다. 출판사들이 대형서점에는 싸게, 일반서점에는 비싸게 책을 공급하는 것도 문제다. 도서정가제가 결국 대형 출판사와 대형서점, 인터넷 서점의 배만 불릴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도서정가제로 출판시장을 살리겠다고 나선 정부의 안이한 발상에서 비롯된 정책 실패라고 본다. 지금이라도 출판사와 서점, 독자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도서정가제가 되도록 관련 규정의 허점을 확실히 보완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413월] 장관 고향에 특별교부금 몰아주는 행자부

정부의 특별교부금은 갑자기 새로운 재정수요가 발생하거나 재정수입이 감소한 지방자치단체를 지원하는 용도로 쓴다. 재정 규모에 따라 기계적으로 지급하는 보통교부금만으로는 급작스러운 재정수요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지방자치의 균등 발전을 위한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자치단체들에는 생명수와도 같은 특별교부금을 배정하는 데 사실상 전권을 갖고 있는 중앙행정기관이 행정자치부다. 그런데 정종섭 장관을 비롯한 행자부 관료들의 고향에 유독 많은 특별교부금이 배정됐다는 소식은 듣는 이들을 착잡하게 한다. 그동안에도 이른바 ‘쪽지예산’만큼이나 국회의원들이 지역구를 챙기는 중요한 수단으로 변질되곤 했던 것이 특별교부금이다. 그런데 지방자치 발전에 역행하는 정치권의 잘못된 관행에 제동을 걸어도 시원치 않을 행자부가 구성원들의 ‘고향 챙기기’에 나섰다니 어이없는 일이다.

 

행자부의 ‘2014년 지자체별 특별교부세 배정 내역’에 따르면 지난해 특별교부세의 전국 시·군·구 평균 배정액은 27억 7700만원이다. 그런데 지난해 7월 부임한 정종섭 장관의 고향인 경북 경주시에는 평균 배정액의 약 3.6배인 99억 2200만원이 배정됐다고 한다. 경주보다 배정액이 많은 기초단체는 전국에 세 곳뿐이다. 창원시와 청주시는 자치단체 통합에 따라 재정 수요가 크게 늘어났고, 기장군은 지난해 집중호우로 대규모 피해를 입었으니 특별한 지원이 이해가 간다. 경주시는 방폐장에 폐기물 추가 반입에 따른 반대급부라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 뿐만 아니라 특별교부세 배정을 담당한 행자부 간부들의 고향에도 의심을 살 만한 몰아주기가 있었다고 한다.

 

‘공직 이후’를 겨낭한 관료들의 고향 챙기기가 행자부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국가예산 편성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에서도 해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 이상의 움직임이 없지 않다. 나아가 다른 부처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문제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럴수록 특정 관료의 정치적 야심을 부처 차원에서, 그것도 국민의 세금인 예산으로 뒷받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올해는 행자부 관료들 먼저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매지 말라’는 옛말을 실천했으면 좋겠다. 건전한 지방자치 발전을 위한 모범 사례를 제시한다면 고향 사람들도 더 큰 박수를 쳐 주지 않겠는가.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13월] 시장이 포화라고? 세븐일레븐을 보라

 

일본 최대 편의점 체인인 세븐일레븐이 지난해에도 4조82억엔의 매출을 거둬 41년 연속 매출 증가세를 기록했다는 한경 보도(11일자)가 있었다. 영업이익도 2233억엔으로 사상 최대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대목은 점포 수가 41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점포 수를 1172개나 늘렸고, 올해도 1700개를 더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편의점 시장은 이미 포화돼 더 이상 설치할 곳이 없다는 일각의 평가를 무색하게 만든다.

 

이는 모두 혁신의 결과다. 세븐일레븐은 상식을 뒤엎는 새로운 상품과 판매방식 등을 끊임없이 개발해 성공했다. 1978년 개발한 주먹밥은 아직도 인기상품이고 편의점 내에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설치한 것도 이 회사의 아이디어다. 택배서비스는 물론 공공요금 수납 대행, 사진 인화등 기발한 서비스를 제공해 손님을 끌었다. 100엔짜리 즉석 커피 또한 카페에서 커피를 팔아야 한다는 상식을 여지없이 깬 역발상이었다. 끊임없이 블루오션을 찾고 혁신을 강조하는 기업의 참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비단 세븐일레븐만이 아니다. 바늘 하나 꽂을 데가 없다는 의류 유통시장에서 성공한 유니클로도 대표적 혁신 기업이다. 유니클로는 상품 기획에서 디자인 생산 유통 판매까지 일괄 처리하는 수직계열화를 통해 원가를 획기적으로 절감했다. 소비자들이 자유롭게 상품을 고르고 비교할 수 있게 안내 직원도 줄였다. 이런 혁신을 통해 가격을 낮춰 시장을 개척하고,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통상 경쟁에서 실패한 기업들은 대부분 시장이 포화상태여서 생존 자체가 쉽지 않다고 푸념하기 일쑤다. 하지만 시장은 항상 변화하는 생물과 같다. 기존 시장에서도 신제품이 먹힐 여지는 얼마든지 있고 새로운 틈새시장도 널려 있다. 블루오션이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물론 변화와 혁신은 힘들고, 기업 내부 저항도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혁신 비용 중 40% 이상이 이런 내부의 저항을 조정하는 데 쓰인다는 연구도 있다. 문제는 시장을 혁신시키고 생태계의 룰을 바꿔보려는 과감한 의지와 노력이다. 세븐일레븐과 같은 기업들이 필요한 때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13월] 노동개혁은 멀고, 청년 취업문은 더 좁아지고…

 

올해 청년 취업 사정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한다. 경영자총협회가 중소기업과 대기업 377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 신규 채용이 작년보다 3.6%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은 채용인원을 올해 6.5% 축소해 지난해(1.7% 감소)보다 더 줄이고, 대기업조차 지난해엔 그래도 0.5% 늘렸던 채용 규모를 올해는 3.4% 줄일 것이라고 한다. 채용인원 감축은 대졸자(-3.1%)와 고졸자(-4.9%) 구분도 없다. 더구나 신규인력 채용계획이 있거나 이미 채용했다고 응답한 기업은 59.1%에 불과했다. 고용시장이 점점 나빠져 간다.

 

무엇보다 고용비용 급증이 고용시장을 최악으로 몰아가고 있다. 실제로 기업들은 이번 조사에서 고용을 회피하는 이유로 체감경기 미회복(28.2%) 다음으로 정년 60세 연장, 통상임금 확대 를 꼽았다. 아예 채용계획이 없다는 기업이 15%를 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업들이 더는 고용을 늘릴 여력이 없어 현 인원이 줄지 않는 이상 굳이 신입사원을 뽑지 않는다는 상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미 11%를 넘은 청년(만 15~29세) 실업률이 더 올라갈 일만 남았다.

 

그런데도 노동개혁은 요원하기만 하다. 끝내 노사정위원회도 결렬됐다. 한국노총이 통상임금 등 5대 현안을 모두 거부했던 때부터 예견됐던 결과였다. 협상 막바지엔 근로자 상위 10%의 임금동결, 임금피크제 도입 등으로 재원을 조성해 80만개를 넘는 청년 일자리를 만들자는 제안조차 거부했다. 지금의 노동시장은 근로자의 10%인 고연봉자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비정규직과 청년 등 실업자가 희생하는 구조라는 게 확연히 드러났다.

 

노동개혁은 멀고 청년들의 취업문은 갈수록 더 좁아지고 있다. 노동계의 개혁의지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상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 임금피크제 등 보완대책은 언급도 않고 덜컥 정년만 연장했던 국회에 맡길 일이 아니다. 이런 노동시장을 개혁하지 않으면 청년실업을 막지 못한다. 10%의 기득권 근로자가 아니라 비정규직을 포함한 90%의 근로자와 청년 등 실업자를 위한 노동개혁이라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13월] 대기업 M&A 막으면 중소기업은 어디서 활로 찾나

 

“대기업들이 마음놓고 중소기업을 살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저성장을 돌파할 수 있다”는 박종훈 한국전략경영학회장의 주장은 정부와 정치권이 깊이 새겨들을 만하다. 그는 한경과의 인터뷰에서 “통상 아이디어로 창업해 제품화까지 3~4년, 기업공개(IPO)까진 13년이 걸리지만 기술을 대기업이 사주면 창업에서 성공까지 5년 정도로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청년창업 활성화와 청년실업 해결, 혁신생태계 조성이란 선순환 구조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은 벤처투자업계에선 너무도 당연한 진리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창업한 신생기업이 IPO까지 기나긴 시간을 버티라는 것은 죽음의 계곡으로 떠미는 것과 진배없다. 정부가 창업을 독려하지만 투자금 회수에 병목현상을 빚어 생태계 형성이 지지부진한 게 현실이다. 벤처투자금의 70% 이상이 자금 상환이나 프로젝트를 통한 회수이고 M&A는 고작 0.5%뿐이다. 미국 중국에선 M&A를 통한 회수가 70% 이상인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의식해 사모펀드 출자 규제완화 등 대기업의 M&A를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인수하면 당장 문어발이니, 기술 탈취니 비난부터 쏟아진다. 관료들은 M&A는 투자로 안 보겠다는 기업소득환류세제 수준의 발상에 갇혀 있다. 대기업은 각종 출자규제가 난마처럼 얽혀 있어 운신의 여지도 별로 없다. 삼성전자가 지난 10개월간 성사시킨 8건의 M&A 가운데 국내 기업은 단 한 건도 없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스타트업의 활성화가 저성장의 돌파구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중소기업 정책자금 비중은 국내총생산(GDP)의 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높은 데도 중소기업은 항상 돈가뭄이다. 오히려 창업단계에 편중된 눈먼 정책자금이 시장의 창업·투자·회수의 생태계 형성을 가로막고 있다. 기술력 있는 중소·벤처기업을 대기업이 인수해 숨통을 틔워준다면 뛰어난 인재들이 더 많이 창업에 뛰어들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창조경제가 아닌가.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13월] 내수 부진에 수출 감소까지… 신발 끈 조일 때다

 

한국은행이 우울한 수출 전망을 내놓았다. 올해 우리나라 수출액이 5,620억달러로 전년의 5,727억달러보다 1.9%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맞아 떨어지면 2012년 이후 3년 만에 다시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간다. 올 들어 수출이 이미 3개월째 뒷걸음질 치는 것을 보면 전망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매우 커 보인다. 1~3월 수출액은 모두 1,336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375억달러보다 39억달러(2.8%) 줄었다.

 

수 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60년대 초반부터 수출은 우리 경제 전체를 떠받치는 성장엔진 역할을 해왔다. 수출 감소는 경제 전반에 걸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만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막아야 하겠지만 감소 원인을 살펴보면 대책을 세우기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수출이 줄어드는 큰 원인 중 하나는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수출단가 하락이다. 유가의 영향을 크게 받는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의 수출 비중이 높다 보니 전체 수출이 감소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유가 하락에 따른 긍정적인 효과가 생각보다 작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수출량을 늘리는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어 보인다. 엔저와 중국의 경기둔화는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외생변수라 더 심각할 수 있다. 우리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엔저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유지될 것이며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중국의 경기둔화 역시 중국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흐름을 돌리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지난해 최경환 경제팀 출범 이후 내수진작을 위한 부양책을 줄곧 펴왔다. 재정·통화·구조개혁에 이어 최근 민자사업 활성화 방안까지 발표했지만 소비와 투자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마저 줄어든다면 우리 경제는 큰 어려움을 맞을 수 있다. 수출을 늘리기 위한 단기 처방은 환율 절하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만큼 근본적으로 우리 제품과 서비스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 정부와 기업이 다시 한 번 신발 끈을 조여 매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13월] 주식·부동산 시장에 부동자금 유입 반갑긴 하지만

 

저금리 기조로 시중 부동자금이 주식과 부동산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요즘 들어 자산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주식시장은 개인투자자까지 가세해 상승탄력을 더하고 있다. 10일에는 코스피지수가 2,090선에 육박해 지루한 박스권(1,800~2,100) 탈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주가가 뛰자 기록도 풍년이다. 코스피가 2,050포인트를 뚫은 8일 거래대금이 10조1,488억원에 달해 2년7개월 만에 10조원을 돌파했다. 주식활동계좌는 2,050만개를 넘어서 최고치에 올라섰고 증시 주변 자금인 머니마켓펀드(MMF) 순자산총액도 5년 만에 110조원을 돌파했다.

 

부동산시장에도 돈이 돌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주택거래량은 11만2,000여건으로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서울의 경우 올 1·4분기에 4만3,883건이나 거래돼 2006년 실거래가 신고제 시행 이후 최대치였다.

 

증시와 부동산 시장에 훈풍이 부는 것은 경기 활성화에 긍정적이라는 점에서 반길 일이다. 문제는 과도한 쏠림 현상으로 인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증시가 그렇다. 개인들이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하는 신용거래 증가세가 걱정스럽다. 신용융자 잔액은 9일 기준 6조7,781억원으로 2011년 5월의 역대 최고치(6조9,128억원)에 근접했다.

 

아직 염려할 수준은 아니라지만 과열론이 불거지는 중국 증시를 보면 안심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상하이지수는 잇따른 금리인하·부동산부양책 등 정부 정책 덕분에 1년 새 88%나 급등했다. 무엇보다 한 달여 전부터 개인들이 묻지마 투자에 나서면서 적색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경제 펀더멘털과 시장의 괴리가 커지고 있어 2008년의 폭락사태 재연을 걱정할 정도다.

 

지금 우리 자산시장의 흐름도 정책효과 등 중국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는 모양새다. 증시와 부동산시장을 띄우는 것 못지않게 거품이 끼지 않도록 세심히 점검·관리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세계의 창/딘 베이커(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20150413월] 미국 경제호황의 종말

 

미국 경제가 3월에 12만6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미국 노동부가 발표했다. 앞서 3개월의 월평균 29만개보다 크게 줄어든 수치다. 이는 많은 경제학자들이 미국 경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탄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게 했다.

 

이 재평가는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대체 왜 이렇게 많은 경제 전문가와 경제부 기자들이 우리 경제의 현황을 그토록 잘못 판단했는지 강한 의문을 갖게 한다. 애초에 호황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많지 않았다. 잘못된 주장을 했던 이들은 데이터를 지나치게 선별적으로 봤다.

2014년 4분기 미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연율 2.2% 상승에 그쳤다. 이는 대부분의 잠재성장률 추정치와 대략 비슷한 선상에 있다. 즉 잠재성장률을 쫓아가기 바빴다는 것으로, 2008~2009년 침체로부터 이어지는 잠재 국내총생산과 실질 국내총생산의 큰 간극을 전혀 메우지 못했다는 뜻이다.

 

호황론을 주장하는 쪽은 2014년 2~3분기에 평균 4.8% 성장했다는 사실을 꼽으며 밋밋했던 4분기 성장률을 이례적인 것으로 취급했다. 이 근거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다. 2~3분기의 성장세는 2014년 1분기의 마이너스 성장을 만회하는 것일 뿐이다. 기상 악화와 정부 셧다운 등 몇가지 요인으로 인해 경제는 지난해 첫 분기에 연율 기준 2.1%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이런 문제가 해소되자 이어진 분기의 성장률이 상대적으로 높아진 것이다.

 

전문가들의 호황론과 어긋나는 다른 데이터들도 있다. 시설투자는 전년에 견줘 아주 조금 증가했을 뿐이다. 주택 건설은 약간 상승세를 타고 있으나 경기 부양에 큰 도움이 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저축률은 약간 내려가, 수입이 증가하지 않고서는 소비를 끌어올리기 어렵다. 달러 강세에 일부 기인한 무역적자 증가세는 성장에 더욱 장애가 되고 있다. 그리고 긴축재정 지지자들로 인해 정부가 이끄는 수요 증대도 기대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높은 고용 수치가 이례적인 것이다. 국내총생산 성장이 미미한 경제에서는 높은 일자리 증가율이 생산성 저하를 의미하는데, 그게 바로 미국 경제의 현실이다. 2013년과 2014년 생산성 증가율은 연평균 1%를 밑돌았다. 많은 이들의 추정치보다 훨씬 낮다.

 

이런 상황이 주는 시사점은, 3월 지표에서 보듯 경제성장률이 호전되지 않으면 고용 증대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3월 고용 지표는 기상 악재에 영향을 받은 게 분명해 보이지만, 12만6000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 숫자는 그 이전 석달간의 월평균 29만개 일자리보다는 더 현실적으로 경제 저변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이 수치조차 3월 보고에서 하향 조정됐다)

 

여기에는 일자리 숫자를 뛰어넘는 교훈이 존재한다. 경제에 대한 엉뚱한 분석이 경제정책 전문가들 사이에 널리 받아들여져 논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학자들이 독립적 분석을 하는 것보다 일단 발언하고 보는 게 하나의 유행처럼 돼있다. 그것이 경제정책 전문가들이 계속해서 실제 경제 상황에 놀라게 되는 이유다. 마치 그들이 주택 버블 붕괴와 뒤이은 침체에 놀랐던 것처럼 말이다.

 

독립적인 분석의 부재는 그 전문성이 갖는 인센티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주택 버블 붕괴 이후 봤듯이, 의견이 일치되는 쪽과 같은 무리에서 잘못했다면 아무도 경력에 문제를 겪지 않는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나 국제통화기금(IMF) 혹은 그 어떤 주요 경제정책 기관이나 규제 기관에서 주택 버블과 그것이 경제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해고된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이는 재앙적인 판단 실수를 하고도 전혀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는 얘기다. 반면 경제 전문가들의 ‘합의’와 동떨어진 입장을 가지는 것은 항상 위험을 동반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주요 경제학자들이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틀린 분석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의 대부분은 이런 ‘합의된 관점’을 반영한다. 주택 버블이 터지기 직전 상황처럼 말이다. 주요 언론에서 신뢰를 받는 미국 경제 호황론 같은 바보 같은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중앙일보 칼럼-전수진의 한국인은 왜/전수진(정치국제부문 기자)-20150413월] 세월호 1년, 달라진 게 뭐야?

 

신호는 왜 꼭 내 앞에서만 깜빡일까. 달려가면 도로교통법 위반인데. 설마 걸리겠어. 뛰자.

 

  오늘 아침 내가 이랬다. 아니, 거의 매일 그렇다. 옹색한 변이 있다면 혼자가 아니라는 것. 대한민국 곳곳 출근길 횡단보도는 100m 달리기 경기장이 된다. 이 경주엔 선도 없다. 많은 이들이 횡단보도 선 밖 차도로 막판 스퍼트를 감행한다. 넘지 말라고 그어놓은 선인데 넘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뜬금없는 횡단보도 얘기를 꺼낸 건 사흘 뒤가 무서워서다. 1년 전 그날 아이들을 포함해 476명을 태운 배가 가라앉았다. 세월호는 우리 모두의 ‘설마’가 켜켜이 쌓인 무게로 가라앉은 건 아닐지. 인재(人災)로 아이들이 죽어가는 현장을 생중계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무력감 그 이후, 한국은 무엇을 배우고 바꿨을까. 노란 리본 달고 여전히 보행 안전조차 지키지 않는 게 우리의 2015년 4월 민낯이다. 1년이 지났지만 세월호도, 한국 사회도 그대로가 아닐까.

 

  이런 감상을 외국인으로부터 듣는 건 사실, 불편했다. 어느 영국인 서울특파원과 지난달 광화문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중 “포스트-세월호 한국에서 달라진 게 뭐냐”고 그가 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보기엔 없다”고 단언했다. 안전이 제일이라고 말만 하고 구호만 외칠 뿐 행동엔 달라진 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보행신호 무시부터 운전 중 휴대전화 확인 등을 근거로 들었다.

 

  어느 일본인 서울특파원이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도 떠오른다. “방금 서울 도심에서 자동차들이 앰뷸런스가 지나가자 질서정연하게 길을 비켜주는 광경 목격. 서울 생활 수년 동안 처음 봤다. (한국도) 하면 할 수 있네.” 차마 ‘좋아요’를 누를 순 없었다.

 

  영국인 특파원과 식사를 마치고 나온 광화문 사거리엔 “진실은 아직도 바닷속에 있습니다”라는 분들과 “유가족 여러분, 진실을 호도하지 마시고 돌아가세요”라는 분들이 대치 중이었다. 세월호의 씁쓸한 유산이다.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선을 지켜가며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려 노력할 때 작지만 큰 변화들이 생기는 게 아닐지. 국제 뉴스에서 ‘세월(Sewol)’은 인재를 상징하는 고유명사로 자리 잡았다. 정작 우리는 세월호를 정치적으로만 소비하고 소모하는 건 아닐까. 서로의 골이 깊어지는 사이 변화의 골든타임은 놓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헛되이 시간만 보냄’으로 정의되는 말이 허송세월이라지만 세월호까지 ‘허송’의 대상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무섭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주철환(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20150413월] 기억의 숲에서 무엇을 기억할까

 

기억력 좋은 사람이 입시에서 유리한 건 예나 지금이나 같다. 그러나 시험이 끝난 후 중요한 걸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리한 자들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을 기억한다.

 

  2015년 4월. 기억하는 사람들과 기억하지 않는(못하는) 사람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라일락의 뿌리처럼 뒤엉켜 있다. 왜 하필 라일락인가. 해마다 4월이면 누군가 이 꽃을 ‘리마인드’시켜 준다. 제목은 황무지, 시인의 이름은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줄여서 T S 엘리엇이다.

 

“4 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잔인하지 않은 달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유독 4월은 가장 잔인한 달(the cruelest month)이라고 시인은 지목했다.

 

 시인이 된 사람은 적지만 시인의 감성으로 보낸 시기는 한 번쯤 있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일 년에 한두 번 기차를 탔는데 그때 시인의 기분을 누렸다. 중학생 때인가 차창 풍경을 보며 시를 지었다.

 

“눈 덮인 작은 봉우리에 마지막 사람이 살고 있네.” 제목은 ‘무덤’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산 자들이 뒤에서 말할 뿐이다. 하지만 이런 말도 있다. “가장 잔인한 거짓말은 종종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다(The cruelest lies are often told in silence).”

 

  지난해 4월 이후 광화문을 지날 때면 노래 하나가 자꾸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 깊은 바닷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아침이슬’의 작곡가 김민기씨가 고등학생 때 만든 ‘친구’라는 노래다. 친구가 바다에 빠져 실종된 후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지었다고 한다.

 

  친구가 실종된 바다는 거대한 무덤처럼 보인다. 4월에 그 자리에 이방인 가족이 나타났다. “저는 오드리 헵번의 아들입니다.” 세기의 연인까지는 기억하는데 그 아들은? 그는 ‘마음’을 들고 나타났다. 그 마음은 ‘기억’이다. 그는 ‘기억의 숲’을 제안했고 드디어 착공했다. 그의 착한 마인드가 무딘 우리를 ‘리마인드’시켜 준 것이다.

 

 미술관·박물관은 기억의 숲이다. 예술가는 우리를 ‘리마인드’시켜 준다. 묘지 역시 기억의 숲이다. 죽은 자들은 산 자에게 묻는다. 제대로 살고 있는가?

 

엘리엇은 시를 ‘리듬감 있는 불평’이라고 했다. 리듬만 있고 불평은 없는지, 불평만 있고 리듬은 없는지를 되돌아보는 지금은 4월이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석종(논설위원)-20150413월] 소양강 처녀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 너마저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반야월 작사, 이호 작곡의 흘러간 뽕짝 ‘소양강 처녀’다. 2절은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로 이어진다. 이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 산새인 두견새가 갈대밭에서 울 리 없고, 소양강에는 동백꽃이 피지 않는다며 가사를 트집 잡기도 했다. 두견새는 그렇다 쳐도 강원도에서 생강나무꽃을 동백꽃이라고 부른다는 걸 모르고 하는 얘기다.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이 바로 생강나무꽃이다.

 

소양강은 설악산 북천·방천, 계방산 내린천 등을 받아들여 북한강으로 흘러든 뒤 남한강과 합쳐 한강이 된다. 인제 일대 심산유곡에서 베어낸 목재를 한양으로 실어나르던 소양강 뗏목은 유명했다. 1973년 소양강댐이 세워지면서 거대한 호수로 바뀌었다. 노래는 댐이 세워지기 직전인 1970년 김태희가 불렀고, 그 후 한서경 등이 리메이크하면서 온 국민의 애창곡이 됐다. 1992년에는 노래방 인기순위 1위에 올랐다.

 

그간 소양강 처녀의 실제 모델을 두고 박경희씨(65)설과 윤기순씨(62)설이 팽팽했던 모양이다. 소양강변 여관집 딸이었던 17세 처녀 박경희씨는 ‘작사가 선생님’이 보름간 여관에 머물 때 노를 저어 소양강 뱃놀이를 시켜줬다고 했다. 그때 “너의 사연을 노랫말로 썼다”는 말을 들었단다. 열여덟 살 윤기순씨는 가수의 꿈을 품고 상경했다. 이 처녀가 반야월 등 노래 스승들을 소양강에 초대했는데, 이때 가사를 구상했다는 것이다. 윤씨는 밤무대를 떠돌며 ‘슬피우는 두견새’처럼 노래를 하다가 10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강원도가 나서서 “두 명 모두 가사의 주인공”으로 인정했다고 한다. 반야월이 두 차례 춘천을 방문했고, 박씨와 윤씨를 모두 만난 뒤인 1969년 가사를 지은 것으로 결론을 냈다. 반야월은 생전 인터뷰에서 “1960년대 말 소양강변에 살던 모든 처녀가 가사의 주인공”이라고 했다. 어찌 그들뿐이랴. 이 노래를 부르며 가슴 아픈 시대를 지나온, 한때는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순정’이었던 이 땅의 모든 누이들이 주인공 아닐까.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문소영(논설위원)-20150413월] 대부업체

 

대부업자는 쉽게 말해 사채업자들이었다. 대부업 관련 법이 2002년 8월 제정되기 전까지 말이다. 대부업은 제도권 금융이 아니므로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의 관리감독 대상이 아니다. 결국 ‘금융을 모르는’ 지방정부에 등록한 뒤 영업한다. 대부업법은 서민들의 사채시장 이용이 급증하고 대부업자들의 불법행위가 사회적 문제로 확산하자 서민 보호 차원에서 제정했다. 연 1000%대의 천문학적 수준의 이자율뿐만 아니라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들을 인신매매도 했다. ‘신체포기 각서’가 근거였다. 불법 추심으로 자살자도 나왔다. 사채시장 양성화 시도에도 비인륜적인 행위를 일삼는 사채업자들을 한꺼번에 정화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2007년 6월 이자제한법이 부활했다. 애초 이자제한법은 1962년 이자가 연 4할(40.0%)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한 대통령령이었다. 1960년대 자금 사정이나 사채시장을 고려하면 유명무실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정부가 약탈적 금융을 제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40%의 법정 최고이자율은 1983년 12월 시행령 개정으로 연간 25%로 낮아졌다. 외환위기로 1997년 말에 다시 40%로 올라갔다.

 

외환위기를 틈타 국내 금융시장을 간섭하던 국제통화기금(IMF)이 “이자율 상한이 자금의 흐름을 왜곡한다”고 권고하자 정부는 1998년 1월 이자제한법을 폐기했다. 법정 최고이자율은 9년여 뒤에 부활해 대부업체를 포함해 모든 이자를 40% 미만으로 받도록 대통령령으로 정했다. 이때 중요한 점은 사례금, 할인금 등 명칭과 관계없이 대부와 관련해 대부업자가 받은 것을 모두 이자로 간주하기로 한 것이다. 더 나아가 대부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경우는 이자제한법의 적용을 받아 1년에 30% 이상의 이자율을 받지 못하도록 억제했다. 이 부활한 이자제한법으로 ‘등록’ 대부업자가 받는 최고 이자율은 종전의 연 66%에서 연 49%로 낮아졌고, 현재는 40% 미만이다.

 

이런 이자율 제한에도 한국에 진출한 일본계 대부업체들은 고수익을 내고 잘나가고 있다. ‘러시앤캐시’로 잘 알려진 아프로금융그룹는 자산 2조원의 ‘공룡’으로 산와머니, KJI 등 3개사 등과 함께 한국 대부업 시장의 42.2%를 점유하고 있다. 일본계 대부업체는 SBI저축은행, OSB저축은행, 친애저축은행, OK저축은행, JT저축은행도 소유했다. 제도권 금융으로도 진입한 것이다. 한국계 대부업체인 웰컴론은 업계 3위지만 시장 점유율 7% 미만으로 왜소하다. 과거 은행들은 일본계 대부업체는 금리가 0%대인 자금을 조달해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해명 겸 변명을 했는데, 한국의 기준금리도 1.75%이다. 대부업도 전주가 튼튼해야 경쟁할 수 있다. 말로만 서민경제 안정이 아니라 주택담보대출로 ‘거대한 전당포’로 전락한 시중은행들이 고수익의 서민금융시장을 위해 제대로 투자해 볼 만하지 않겠나.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 칼럼/권영설(논설위원)-20150413월] 일본식 한자

 

서울시가 일본식 한자어 등 행정용어 23개를 순화해 쓰기로 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견출지는 ‘찾음표’로, 시말서는 ‘경위서’로, 식비와 식대는 ‘밥값’으로 바꾼다는 식이다.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재 잔재를 우리말로 순화하겠다는 뜻은 이해한다. 그러나 23개 용어 정도로 될 일이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민법에서 일본식 민법용어를 그대로 차용한 어휘가 60%나 된다. 우리가 쓰는 말에 일본식 한자가 이렇게 많은 것은 19세기 말~20세기 초 근대화 과정에서 한 발 앞선 일본이 서양 용어를 한자어로 먼저 번역했기 때문이다. 특히 일제강점기간 동안 한국에 일본식 한자가 대량 유입됐다.

 

일본은 서양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조어력이 좋은 한자를 사용해 수많은 개념어를 선점했다. 이 작업에는 후쿠자와 유키치, 니시 아마네 등 당대 학자들이 참여했다. 희랍어에 연원을 둔 필로소피(philosophy)를 밝은 학문이라는 뜻의 ‘철학(哲學)’으로, 에듀케이션(education)은 가르치고 기른다는 ‘교육(敎育)’으로 번역했다. 기존 한자어의 의미를 잃고 현대적 의미를 갖게 된 문화, 경제, 자유, 대학, 민주, 회사 등이 모두 일본식 한자다.

 

일본은 조어법을 발전시키며 글로벌 용어들을 계속 번역해왔다. 원래 쓰이던 한자어에 새로운 의미를 넣는 방법을 보면 ‘죄인들을 놓아 보내다’는 말인 방송(放送)은 ‘전파를 활용한 매스컴’이란 뜻을 갖게 됐다. 초상화의 뜻으로 쓰였던 사진(寫眞)은 포토그라피(photography)를 번역하는 데 썼다. 각각의 한자를 합쳐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에어포트’를 번역하면서 하늘(空)과 항구(港)를 합쳐 공항이라고 했고, 오토모빌(automobile)은 스스로 가는 차라는 뜻의 자동차라고 불렀다.

 

그래도 중국은 뒤늦게 자체적으로 번역어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비행기, 기차, 야구, 회사, 영화 등은 한국과 일본에서만 쓰인다. 중국에선 각각 비기(飛機), 화차(火車), 봉구(棒球), 공사(公司), 전영(電影)이라고 한다.

 

서울시의 뜻을 모르지 않지만 일본식 한자를 순화하자면 교과서나 신문 용어도 다 바꿔야 할 것이다. 문화의 힘이 개념어에서 나오는 것임을 생각할 때 더욱 안타깝다. 영어로 된 새로운 용어들이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온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식 번역어를 만들어 새로운 개념어를 선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조어에 도움이 되는 한자도 더 전향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온종후(논설위원)-20150413월] 신라 남녀의 사랑

 

신라 21대 소지왕은 죽기 3개월 전인 서기 500년 날이군을 방문했다가 유력자 파로(波路)의 딸 벽화(碧花)라는 여인과 관계한 설화로 유명하다. 벽화는 당시 16세의 소녀였고 소지왕이 60대 후반에서 70대로 추정되니 당시로서도 충격적이어서 이 기록은 삼국사기를 통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소지왕은 비단 보자기에 싸여 바쳐진 소녀를 돌려보냈으나 왕궁으로 돌아온 뒤에도 계속 생각나 다시 찾아가 만났으며 나중에는 아들을 하나 낳기에 이르렀다는 것이 설화의 결말이다.

 

이 설화는 1970년대 중반 경주 황남대총 발굴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무덤에서 나온 60대의 남자와 10대 여자 인골이 설화와 들어맞는데다 신라의 순장풍속이 소지왕 다음 대인 지증왕 3년(502년)에야 비로소 없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 주장은 벽화가 법흥왕의 후비가 됐다는 다른 기록과 맞지 않고 연대 측정 등으로 볼 때 5세기 초반 내물왕과 눌지왕의 무덤으로 봐야 한다는 반론이 강하게 제기되면서 힘을 잃었다. 발굴 인골을 터부시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다시 묻었다고 하니 현재로는 확인할 길이 없다.

 

최근 문화재청은 황남대총과 가까운 경주 황남동의 5세기 후반 신라 무덤에서 30대 귀족으로 보이는 여성 유골과 20대 남성으로 보이는 유골이 겹쳐져 출토됐다고 발표했다. 부장품이나 유골이 포개져 있는 형태로 보아 귀족으로 보이는 여성 무덤에 남성이 순장된 행태로 보인다는 평가다. 남성이 순장된 첫 사례여서 호위 무사나 시종 등이 같이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나 연인 관계일 가능성도 점쳐진다.

 

황남대총에서도 남자에게서는 금동관, 여자에게서는 신분이 높음을 의미하는 금관이 나와 역사학계는 지금껏 논란 중이다. 황남대총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우리가 신라 사회를 너무 오늘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도시 구석구석이 신라 박물관인 경주다. 1,500년 전 신라인의 실제 생활과 그들의 사랑이 실제 어땠는지 궁금증은 더욱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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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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