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성완종 리스트 수사 - 이완구 국무총리 비리 연루설 ■ 성완종 리스트 수사 - 특별수사팀 ■ 해외 공관 무장 괴한 총격과 외교부의 거짓말 기강해이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성완종 리스트 수사 - 이완구 국무총리 비리 연루설
[한국일보 사설-20150415화] 이완구 총리, 이래 가지고 직무 수행할 수 있나
이완구 국무총리는 취임 한 달 즈음인 지난달 12일 발표한‘부정부패 관련 담화문’에서 “부정부패 척결이야말로 내각을 통할하는 국무총리로서 최우선 책무이며, 우리나라의 미래와 명운이 걸린 시급하고도 중차대한 과제”라고 말했다. 부패에 관한 한 철저한 무관용 원칙에 따라 다시는 부정부패가 우리 사회에 발붙일 수 없도록 근절해 나가겠다고도 했다. 그랬던 이 총리가 불법 선거자금 수수 혐의로 검찰의 부패수사 대상에 오르게 됐다. 자신이 쏟아낸 말의 그물에 걸려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처지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직을 내려놓고 검찰수사에 임하는 게 옳다.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2013년 4월 충남 부여ㆍ청양 재보선 당시 새누리당 후보였던 이 총리에게 불법 선거자금을 제공했다는 주장은 매우 구체적이다. 어제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성 전 경남기업 회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 인터뷰에서 “지난번 재ㆍ보궐선거 때 선거사무소에 가서 이 양반(이 총리)한테 3,000만원을 현금으로 주고 왔다”고 밝혔다. 이 총리야말로 “사정(司正) 대상 1호”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죽기를 작정한 상태에서 분에 받쳐 토로한 얘기라고만 치부해버릴 수 없는 내용이다.
물론 이 총리는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고 전면 부인하고 있다. 어제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야당의원들로부터 당시 선거사무소에서 성 전 회장을 만났느냐는 질문을 받고 “선거 때는 많은 사람이 오고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그러나 이 총리는 잣은 말 바꾸기와 미심쩍은 부인으로 이미 상당히 신뢰를 잃었다. 성 전 회장과의 관계에 대해서해도 “동향 출신의 현역 의원이라는 점 외에는 특별한 개인적 관계는 없다”고 말해 왔지만 그와 자리를 함께 한 사진이 여럿이다. 개인적 관계가 없다고 잘라 말하기 어려운 정황이다. 성 전 회장측은 DJP(김대중 김종필 연합)시절부터 밀접한 관계라고 주장한다. 태안 군의회 관계자들에게 15차례나 다급한 전화를 했다는 사실도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내각을 통할하는 국무총리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는가.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내부에서도 사퇴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도 하다. 새누리당은 어제 이 문제를 놓고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그만큼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치적 부담 탓인지 이 총리에 대한 조속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선에 그쳤다. 이 총리도 자신부터 검찰수사를 받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총리가 직을 유지한 상태에서 검찰수사가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다. 아무리 검찰이 성역 없는 수사를 외쳐도 무혐의 결과가 나올 경우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렵다.
총리 후보자의 잇단 낙마 트라우마가 극심한데 또 총리가 비리 문제로 낙마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크게 흔들리는 등 감당하기 어려운 혼란에 빠져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결코 아니다. 이 총리가 스스로 거취 결단을 내리는 수밖에 달리 길이 없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15수] 이완구, 총리직 물러나서 수사받아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2013년 국회의원 재선거 당시 이완구 국무총리에게 3000만원을 주었다고 숨지기 직전 언론 인터뷰에서 폭로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이 총리는 “돈을 한 푼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이 총리에게 쏠리는 의혹은 점점 짙어지고 있다. 이 총리가 성 전 회장의 측근들에게 15차례나 전화를 걸어 성 전 회장이 숨지기 전 나눈 대화 내용을 집요하게 캐물었던 것도 3000만원 수수 주장의 신빙성을 더하는 정황증거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현직 국무총리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피의자가 된 사상 초유의 사태는 결코 범상히 보아 넘길 수 없다. 이 총리는 “돈 받은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면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으나, 현 단계에서도 총리직을 수행하기 어려운 처지가 되고 말았다. 사실, 검찰 수사 결과 돈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 총리직을 그만두는 정도가 아니라 감옥에 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 총리는 그런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할 게 아니라 검찰 수사에 앞서 총리직에서 물러나든가, 아니면 최소한 무죄가 밝혀질 때까지는 총리직을 수행하지 않는 게 옳다.
우선 검찰 수사의 공정성이나 신뢰성을 위해서도 이 총리가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검찰이 현직 총리를 수사하는 데 느끼는 부담감이 얼마나 클지는 긴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게다가 총리는 마음만 먹으면 검찰 수사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 수사의 독립성이나 공정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설사 이 총리가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하더라도 검찰 수사 결과를 온전히 믿을 국민은 아무도 없다. 모든 것을 떠나 현직 총리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청사에 출석하는 참담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나라의 큰 수치다.
게다가 이 총리는 이미 총리로서 내각을 통할할 권위와 체통을 잃어버렸다. ‘피의자 총리’가 내리는 지시가 공직사회에서 무슨 영이 서겠는가. 이 총리 자신도 범죄 혐의 방어가 일차적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나랏일이 손에 잡힐 리 만무하다. 결국 이 총리가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한 국정운영은 헛바퀴만 돌아가고 내각은 식물 상태로 빠져들게 돼 있다. 차라리 이 총리가 물러나 자신의 무죄 입증에나 힘을 쏟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좋은 일일 것이다.
이 총리의 취임 후 첫 대국민담화의 주제는 부정부패 척결이었다. 이 총리는 “부정부패 척결은 국가의 명운이 걸린 과업”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 총리가 쏘아 올린 사정의 화살이 부메랑이 돼 돌아와 총리 자신이 “사정 대상 1호”로 지목되면서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말은 완전히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이 총리는 이제 스스로 자신의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그나마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길이다.
[중앙일보 사설-20150415수] 이완구 수뢰 의혹, 성역 없는 수사로 국정마비 막아라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인 이완구 국무총리가 14일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제 목숨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말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국민은 거의 없다.
이 총리는 그동안 “성 전 회장과 전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며 관련성 자체를 부인해 왔다. 하지만 마당발 인맥을 자랑해 온 성 전 회장이 동향에 연배도 비슷한 이 총리와 무관한 사이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 총리가 지난해 인사청문회에서 낙마 위기에 몰리자 성 전 회장이 충청 인사들을 앞세워 강도 높게 지지운동을 벌인 사실도 확인됐다.
성 전 회장의 폭로가 일방적인 주장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돈의 액수와 장소, 시점을 특정한 데다 홍준표 경남지사의 1억원 수뢰 의혹처럼 성 전 회장의 주장 일부는 사실에 근접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게다가 이 총리는 성 전 회장이 숨지기 직전 이 총리를 여러 번 거명하며 원망의 뜻을 표시했다고 공개한 태안군 의원 2명에게 15번이나 전화해 “다른 얘기 한 것은 없나”고 캐묻기도 했다.
그런 만큼 이 총리의 수뢰 의혹에 합리적 의심을 품는 건 당연하다. 그동안 이 총리의 언행을 보면 “절대로 그런 일 없었다”고 부인했던 사안들이 사실로 드러난 경우가 많았다. 인사청문회에서 병역 기피·땅 투기 의혹이 불거지자 앞뒤가 안 맞는 해명으로 일관했다. 또 그런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 간부들에게 전화해 기사를 빼라고 압박한 사실이 보도되자 부인했다가 녹취록을 통해 거짓말임이 들통 나 사과했다. 며칠 전엔 “2012년 대선 때 암 투병 중이라 유세를 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충청 지역에서 세 차례 이상 박근혜 후보 지지 유세를 한 사실이 확인돼 또다시 망신을 당했다. 그런 만큼 이 총리가 ‘목숨’ 같은 극단적 표현까지 쓰며 결백을 주장할수록 국민의 의혹은 더욱 증폭될 뿐이다. 지금 이 총리가 할 일은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 경망스러운 처신이 아니다. 국정 2인자의 양심을 걸고 자신에 제기된 의혹 하나 하나를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죽음을 각오했다면 무엇이 두려울 것인가.
총리가 금품 수뢰 의혹에 휘말리고, 여당이 “총리부터 수사하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 자체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행정 수반으로서 이 총리의 권위는 이미 크게 실추됐다. 빨리 손을 쓰지 않는다면 국정 마비와 국격 실추로 이어질, 국가적 비상사태다.
이 총리가 속히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아야 하지만, 그게 어렵다면 즉각 수사를 개시해 진상을 파헤쳐야 국정위기를 막을 수 있다. 이번 사안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도 공소시효가 5년이나 남아 있다. 이미 검찰은 성 전 회장의 의심스러운 돈 32억원을 찾아냈다. 이 돈의 흐름을 추적하면 수뢰 의혹 단서가 나올 수도 있다.
또 성 전 회장이 누군가와 함께 이 총리의 선거사무소를 찾았을 수도 있고,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선거사무소의 속성상 목격자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검찰이 이런 단서들에도 불구하고 이 총리 의혹을 제대로 파헤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이는 드물다. 검찰이 총리를 일반인 다루듯 자유롭게 수사할 수 있을지 극히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이 총리는 회의에 불참한 장관을 엄하게 질책하며 ‘군기반장’을 자임해 왔다. 또 성 전 회장과의 대화를 밝히기 거부한 태안군 의원에게 “내가 총리다. 내게 다 얘기하라. 5000만 국민이 시끄럽다”고 고압적으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그가 이런 권위적인 언행을 검찰수사 때도 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기 어렵다. 이 총리가 수사를 앞두고 총리 지위와 국회의원 특권을 내려놓든지, 아니면 당장 특검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그런 만큼 검찰은 사즉생의 각오로 의혹을 파헤쳐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한 ‘성역 없는 수사’ 1호는 이 총리 수사가 돼야 한다.
이 총리 의혹을 제대로 수사해야만 성완종 리스트에 거명된 다른 실세들은 물론 야당까지 무한 수사하겠다는 검찰의 다짐이 진정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도 이 총리 수사에 대해 청와대가 일절 보고받지도, 알아보지도 않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이 총리도 검찰의 수사에 성실히 응해야 한다. 만에 하나 “현금 수뢰의혹 사건의 속성상 물증을 찾기 힘들 것”이란 얄팍한 계산 아래 보여주기식 대응으로 일관한다면 국민여론은 악화될 것이다. 이 총리는 법리로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몰라도 민심의 추상같은 심판을 피할 길은 없을 것이다.
‘부패 척결’을 다짐한 총리가 부패척결 수사의 핵심 대상이 된 건 나라의 총체적 위기를 상징한다.
성 전 회장이 이 총리를 비롯한 권력 실세들에게 줬다고 주장한 돈은 정치인들이 수백억원씩 차떼기로 받았던 과거에 비하면 적은 액수라지만, 2000원 오른 담뱃값에도 호주머니를 걱정해야 하는 서민들로선 피를 토할 일이다.
성완종 리스트는 개발연대 시대에 성장한 엘리트들의 부패와 권위의식이 켜켜이 쌓인 끝에 터져 나온 추악한 자화상이다. 검찰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폭발 직전 상태에 이른 국민의 정부 불신이 사그라들기는 어려워 보인다. 청와대와 국회, 검찰이 절체절명의 각오로 이번 사건과 관련된 모든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415수] 이완구 총리, 최소한 직무 중단하고 수사 받아야
이완구 국무총리가 ‘부정부패와의 전면전’을 선포하는 대국민 담화문 발표 한 달 만에 자신이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르는 어이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지난번 (2013년 4월 부여·청양) 재·보궐선거 때 선거사무소 가서 이 양반(이 총리)한테 3000만원을 현금으로 주고 왔다”고 밝혔다. 성 전 회장은 “(박근혜 정부가) 개혁을 하고 사정을 한다고 하는데 이완구 같은 사람이 사정 대상 1호”라며 이러한 사실을 토로했다. 당시 이 총리가 회계 처리를 했느냐는 질문에는 “뭘 처리해요. 꿀꺽 먹었지”라고 답했다. 이 총리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수사 및 기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총리는 돈 수수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전날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성 전 회장으로부터 한 푼도 받은 적 없다”고 했던 그대로다.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지’에는 그의 이름만 적혀 있을 뿐 금액이 적시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은 인터뷰에서 돈의 액수와 장소, 돈을 건넨 동기 등을 특정했다. 또한 이 총리는 “(성 전 회장과)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 총리는 올 2월 국회 인사청문회 때 여론이 악화되자 성 전 회장이 만든 ‘충청포럼’에 지원을 부탁했고, ‘충청포럼’은 대대적인 옹호 운동을 벌였다. ‘김종필 자민련’ 때부터 밀접한 관계였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이 총리는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혈액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느라 2012년 대선에 관여하지 못했다”고 했으나, 당시 새누리당 충남 명예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여러 번 지원 유세를 벌인 사실이 확인됐다. 이 총리가 뻔히 드러날 사실마저 부인하거나 거짓말로 둘러대는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구린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는 의구심을 낳기에 충분하다.
성 전 회장의 증언이 공개되고 나니, 이 총리가 앞서 성 전 회장 지인들에게 ‘입막음’ 전화공세를 펼친 까닭을 짐작할 만하다. 이 총리는 성 전 회장이 자살 전날 만난 충남 태안군의회 의원 2명에게 15번이나 전화를 걸어 성 전 회장이 무슨 말을 했는지를 캐물었다. “내가 총리니까 다 얘기하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국무총리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란 차원을 넘어 ‘외압’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총리의 ‘3000만원 의혹’은 앞으로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것이다. 이 총리도 “수사 받겠다”고 나섰다. 문제는 이 총리가 직무를 수행하면서 수사를 받는다면 그 결과에 대해 국민의 신뢰를 얻기 힘들 것이란 점이다. 법무부 장관을 통해 사실상의 수사 조율 및 지휘권을 가진 ‘살아 있는 권력’을 상대로 제대로 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믿는 국민은 별로 없을 터이다. 현직 총리가 검찰에 소환되는 것 자체가 초유의 일이다. 내각을 통할하는 총리로서 도덕적·정치적 권위와 리더십을 잃을 수밖에 없다. 국정의 무거움과 국무총리의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있다면, 이 총리 스스로 사퇴하고 검찰 수사를 받는 게 정도다. 그것도 안된다면, 사법적 판단이 완결될 때까지 총리의 직무를 중단하고 수사에 임해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415수] 檢, 李총리 ‘3000만원 의혹’ 제대로 수사해야 Tweet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이완구 국무총리에게 3000만원을 줬다는 발언이 공개되면서 이 총리가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경향신문은 어제 성 전 회장이 자살하기 직전의 인터뷰를 또 공개했다. 경향신문은 성 전 회장이 2013년 4월 부여·청양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한 이 총리의 선거사무소로 가서 3000만원을 주고 왔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성 전 회장은 3000만원은 회사 돈을 빌려서 준 것으로, 현금으로 전달했다고 한다. “이 총리가 당시 회계 처리를 했느냐”는 질문에는 “뭘 처리해요. 꿀꺽 먹었지”라고 성 전 회장은 대답했다. 성 전 회장은 또 “개혁을 하고 사정을 한다고 하는데 이완구 같은 사람이 사정대상 1호”라고 비난했다. 이 총리는 전면 부인했지만, 성 전 회장이 진술한 액수와 돈을 준 장소 등은 매우 구체적이다. 신빙성을 갖춘 근거로 볼 수도 있다.
‘성완종 리스트’ 공개 이후 이 총리의 언행에는 미심쩍은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성 전 회장의 지인인 충남 태안군의회 의원 두 명에게 15번이나 전화를 걸어 성 전 회장과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캐물었다는 것부터가 의심을 사고 있다. 이 총리가 거짓말을 했다는 정황도 나온다. 이 총리는 그제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오전에는 “암투병 중이라 2012년 대선에 관여하지 못했다”고 했다가 오후 들어서는 “유세장에는 한두 번 간 적이 있다”고 말을 바꿨다.
그래서 이 총리가 “(성 전 회장으로부터)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한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이 총리는 어제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제 목숨을 내놓겠다”고 결백을 주장했다. 이 총리의 말대로 한 푼도 받지 않았을 수도 있다. 성 전 회장이 3000만원을 줬다는 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성 전 회장이 자신에게 섭섭하게 대했던 실세를 겨냥한 일방적인 주장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 총리의 이상한 행동과 거짓말이 이어지면서 신뢰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총리의 금품수수 의혹은 검찰이 밝혀야 할 몫이다. 새누리당은 어제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검찰이 제일 먼저 총리부터 수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총리부터 수사해 줄 것을 검찰에 요구한다”고 밝혔다. 현직 총리가 검찰에 불려가 수사를 받는 것은 초유의 일이다. 이 총리는 지난달 12일 뜬금없어 보이는 ‘부정부패 관련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 지 한 달여 만에 본인이 검찰 수사의 대상이 되는 기막힌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이 총리는 부패와의 전쟁을 주도하기는커녕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선 기소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야당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총리직을 유지한 채 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하는지, 사퇴하고 수사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 총리 본인의 판단이 중요할 수 있다. 총리가 검찰에 불려가는 것만으로도 정상적으로 집무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총리도 검찰 수사에 응하겠다고 밝힌 만큼 검찰은 국정 2인자인 총리부터 소환해 제대로 수사해야 한다. 검찰은 이번 ‘성완종 리스트’로 불거진 수사에 명운을 걸어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15수] '이 총리 의혹' 국정공백 막는 차원서 조속 규명하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지난 2013년 4월 국회의원 재선거 당시 이완구 국무총리에게 3,000만원을 건넸다는 주장이 메가톤급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여권 핵심 인사들에게 돈을 건넸다는 이른바 '55자 메모'에 이은 것으로 이 총리는 "그런 사실이 없다"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세간의 의혹은 커져만 가고 있다. 특히 이 언론 보도가 있기 전 이 총리가 태안군의회 의원들에게 15차례나 '추궁성 전화'를 거는 등 부적절한 처신까지 겹쳐지면서 논란은 증폭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은 물론 새누리당 내에서까지 이 총리 자진 사퇴론이 나오는 등 파장이 앞을 내다볼 수 없도록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이대로 뒀다가는 이 총리 개인의 정치적·도덕적 명운을 넘어 국정운영 자체가 마비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당장 북핵 문제와 경제 살리기 등 국정 현안에 대한 논의가 예정돼 있던 국회 대정부 질문도 이른바 '성완종 블랙홀'에 빠진 채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핵심은 성 전 회장이 자살 직전 한 일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의 실체적 진실 여부다. 물론 망자(亡者)의 증언이라고 해서 한 마디 한 마디를 진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럴수록 원점에서 전면적인 수사와 조사가 필요하다. 아직까지는 성 전 회장의 일방적인 주장일 가능성이 있음을 감안해 이 총리에게도 반론의 기회가 충분히 주어져야 할 것이다.
이 총리는 국정의 제2인자다. 검찰에 소환된다면 현직 총리로서는 초유의 사태다. 하루속히 진실이 규명되지 않는 한 정상적인 국정운영은 사실상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꾸려 이 사건을 조사하고 있고 정치권도 필요하다면 특검까지 하겠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도 이 총리의 금품수수 관련 부분 의혹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철저하고 신속한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이 총리 스스로도 떳떳하다면 국정 공백을 막는 차원에서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힐 방안을 별개로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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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권영설(논설위원)-20150415수] 뇌물의 역사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리스트가 일파만파의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다. 메모에 거명된 당사자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언론이 경쟁적으로 보도하면서 파장은 커져만 간다. 국민은 정치인들이 받았다는 억대가 넘는 돈 얘기에 혀를 찬다. 여론은 특히 뇌물에 민감하다.
뇌물은 인류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미국 연방법원 판사를 지낸 존 누난은 뇌물의 역사에서 기원전 15세기 고대 이집트에서도 공정한 재판을 왜곡한다며 뇌물을 단속했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적었다. 성경에도 ‘은밀히 안기는 선물은 화를 가라앉히고, 몰래 바치는 뇌물은 거센 분노를 사그라뜨린다’(잠언 21장 14절)고 기록돼 있다.
우리 역사에서도 뇌물 얘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신라의 김춘추가 고구려의 연개소문에게 억류됐다가 푸른색 베를 뇌물로 주고 풀려났다는 얘기부터 고려 조선시대 왕의 외척이나 지방 탐관오리들이 매관매직을 하면서 뇌물을 받았다는 얘기는 숱하게 나온다.
중국에서 ‘관시(關係)’를 넓혀나가려면 선물과 뇌물은 기본이다. 중동에도 ‘와스타(wasta)’라는 게 있는데 아랍어로 인맥이란 뜻이다. 수수료와 뇌물, 그리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등을 의미하는 단어다. 상인들이 권력과 결탁하면서 뇌물의 종류는 점점 다양해졌다. 뇌물은 돈이나 선물이 전형적이지만 예전에는 고기나 쌀 같은 음식이 주로 사용됐다. 금덩어리는 단골 메뉴였고 최근에 와서는 그림, 주식 등이 뇌물로 쓰인다. 뇌물은 관례적으로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기 때문에 칭찬이나 아부는 뇌물로 보지 않는다. 다만 성접대는 명백한 뇌물로 본다.
현대에 와서는 국제 거래에서도 뇌물 단속을 강화하는 분위기다. 미국은 1975년 록히드사가 일본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에게 뇌물을 줬다가 법적 처리된 사건을 계기로 1977년 해외부패방지법(FCPA)을 제정했다. 외국 관료에 대해 미국 기업이 뇌물을 주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중국도 최근 시진핑 국가주석이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외국계 기업에도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9월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영국계 제약회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에 대해 30억위안의 벌금을 매겼고 임원 2명을 구속했다.
선물과 뇌물을 구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뇌물을 뜻하는 ‘브라이브(bribe)’도 중세 영국에선 선물을 뜻하는 단어로 쓰였다고 한다. 이번 ‘성완종 리스트’도 정치자금인지 뇌물인지 가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참 혼탁한 세상이다.
■ 성완종 리스트 수사 - 특별수사팀
[한겨레신문 사설-20150415수] 특별수사팀, 지금 방식으론 신뢰 얻기 어렵다
‘성 완종 리스트’를 수사할 검찰 특별수사팀이 13일 발족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여야 가리지 않고 벌써 특별검사 얘기가 나오고 있다. 사안 자체가 ‘살아있는 권력’의 핵심을 겨냥하고 있으니 수사가 공정하게 이뤄질지, 실체에 다가서는 수사 결과가 나올지 세간의 의구심이 큰 탓이다.
검찰은 특별수사팀을 김진태 검찰총장이 직접 지휘하기로 하고, 팀장에 검사장 가운데 가장 기수가 높은 문무일 대전지검장을 앉히는 등 나름대로 자존심을 거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국민적 신뢰를 업고 수사를 시작하기에 역부족이다. 얼마 전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피습당했을 때 즉시 검사 13명을 동원해 특별수사팀을 구성하는 등 호들갑을 떨었던 것과 비교하면, 여론에 밀려 10명 안팎의 검사로 특별수사팀을 구성한 초기 대응 태도부터 사뭇 다른 느낌이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이나 정윤회씨의 국정농단 의혹 등 정권의 치부를 건드리는 사건에서 검찰이 보여온 기회주의적인 모습도 국민의 기억에 뚜렷하다.
특히나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이완구 국무총리,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검찰 수사 상황을 보고받을 수 있는 위치에 버젓이 앉아 있다는 사실은 애초부터 수사의 신뢰성을 지워버리기에 충분하다. 특별수사팀을 독립성이 보장된 특임검사처럼 운용하겠다는 말도 나오지만, 수사 상황을 윗선에 보고하는 한 청와대와 총리실, 여당에 그 내용이 전파되고 결국 수사가 외풍을 탈 것이 뻔하다. 정말로 특별수사팀의 독립성을 보장하려면 ‘특임검사 운영에 관한 지침’대로 “검찰총장 등 상급자의 지휘·감독을 받지 아니하고 수사 결과만을 검찰총장에게 보고”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물 론 신뢰의 충분조건은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사 결과를 내놓는 것이다. 검찰로서는 ‘권력의 시녀’라는 오래된 오명을 씻을 드문 기회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재수사나 특검으로 이어지는 사태가 온다면 검찰의 종언이 될 것이라는 각오로 수사에 임하길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20150415수] '성완종 리스트' 문무일 특별수사팀에 전권을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검찰 특별수사팀의 수사가 본격화됐다. 특별수사팀장인 문무일 대전지검장과 수사검사들은 어제 서울고검에 마련된 사무실에 모여 향후 수사 계획 등을 논의했다. 문 팀장은 기자회견에서 “결연한 의지를 갖고 국민적 의혹이 집중된 이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일체의 이해관계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박근혜 정부 최악의 정치적 부패 스캔들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향후 정국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수사팀이 성 전 회장의 주장을 근거로 관련 계좌에 대한 자금 추적에 나서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검찰이 즐겨 쓰는 표현처럼 ‘수사는 생물’이다. 어느 방향으로 튈지 수사팀조차 알 수 없다. ‘2012년 대선자금 불법 모금사건’으로 번질 공산이 큰 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여야가 함께 대선자금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사 상황에 따라 한국의 정치지형을 상당 부분 바꿀 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가 검찰 품 안에 들어온 것이다. 물론 수사팀은 정치적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수사팀의 명칭을 ‘경남기업 의혹 관련 특별수사팀’으로 표기해 달라고 요청한 데서도 이 같은 의미가 읽혀진다. 그렇다고 검찰이 처음부터 수사의 경계를 그었다고 해석하기에는 이르다. 검찰에 대한 여론의 과도한 기대와 정치적 논란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사팀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성완종 리스트’의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우선 청와대와 법무부는 검찰에 대한 통제의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현 정부 들어 국정원 댓글 사건의 수사 범위와 방향을 놓고 검찰은 큰 혼란을 겪었다. 이 사건 수사팀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이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추태를 보였던 것을 국민들은 기억한다. 논란의 배경에는 청와대와 법무부의 그림자가 있었다. 이 와중에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혼외자 파문’으로 옷을 벗은 것도 권력의 수사권 장악 시도로 해석됐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수사팀이 ‘성역 없는 수사’를 선언한 마당에 정치적 주문은 검찰을 흔들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특검제 도입 등의 논의는 수사 상황을 지켜본 뒤 해도 늦지 않다. “특검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중 삼중으로 수사를 할 필요가 있나”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검찰이 과연 살아 있는 권력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활동한 11차례 특검의 비효율성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검이 시행되기까지 3개월가량의 시간을 마냥 허비할 수만도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김진태 검찰총장의 수사팀 보호다. 정치적 외풍을 막아주고 수사팀의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 대검 중수부의 대선자금 수사가 한 예다.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은 “청와대에 들어와 상의를 하자”는 요구를 완곡하게 거절했다. “(대검 중수부를 없애려면) 내 목부터 쳐라”며 권력과 각을 세웠다. ‘국민의 검찰’이란 검찰 역사상 유례없는 평가를 받았던 배경이다. 김영삼 정부 때 한보 사건 2차 수사를 맡았던 대검 중수부가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를 구속할 수 있었던 것도 심재륜 중수부장이 지휘한 수사팀의 독립성을 보장한 데서 비롯됐다.
김 총장도 자신의 자리를 걸고 수사팀이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 대검의 반부패부를 통해 수사 상황을 보고받겠다는 계획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것을 간곡히 바란다. 특별검사나 특임검사의 형태처럼 수사팀에 모든 재량권을 주고 최종 수사 결과만 보고받는 것이 어떨까. 경남기업에 대한 수사 착수 배경을 놓고 이런저런 추측이 무성하다. 이 때문에 김 총장의 조언이나 지시는 정치적 주문으로 비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수사팀도 이 사건에 대한 특검의 재수사가 없도록 철저히 수사해야 할 것이다. 문무일 팀장의 표현처럼 검사로서의 마지막 양심을 걸고 수사만 생각하고 바라볼 것을 촉구한다. “수사에 대한 평가는 국민의 몫으로 남겨 놓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수사팀의 다짐이 허언(虛言)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관련 사설
[경향신문 사설-2010415수] 어이없는 여당 의원의 ‘경향신문 압수수색’ 발언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의 ‘경향신문 압수수색’ 발언은 참 어이가 없다. 권 의원은 그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게 경향신문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마지막 인터뷰 녹음파일을 입수했는지 물으며 “압수수색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다그쳤다. 이날 경향신문은 지면을 통해 지난 12일 검찰로부터 성 전 회장 인터뷰 녹음파일 제출을 요청받은 사실을 공개하고 검찰 수사가 한 점 의혹 없이 진실을 밝혀낼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할 것이며 녹음파일도 제공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도 권 의원은 압수수색까지 운운하며 마치 경향신문이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있기라고 한 것처럼 비치도록 정치적 공세를 폈다.
권 의원은 검찰 출신으로 국회 해외자원개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여당 간사를 맡고 있다. 압수수색이 무엇인지, 그리고 해외자원개발 비리 수사에서 비롯된 이번 ‘성완종 리스트’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위치에 있다. 무지나 실수에 의한 발언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권 의원은 어제도 MBC 라디오에 출연해 “경향신문이 아직 검찰에 음성파일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며 재차 압수수색 주장을 폈다. 그 이유를 묻자 증거인멸이나 분실이 우려돼서라고 했다. 주겠다는 녹음파일을 받으러 언론사를 압수수색하는 것도 민주국가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데, 그 이유가 녹음파일의 일부 삭제나 분실을 우려해서라니 지나가는 소까지 웃을 노릇이다.
‘성완종 리스트’ 보도로 여권이 느끼는 정치적 위기감은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권 의원의 경향신문 압수수색 발언은 그런 여권의 분위기를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성 전 회장 인터뷰 내용이 단계적으로 보도되자 전체 녹취록 공개를 요구했고, 대선자금 의혹으로 확산되자 “야당도 같이 조사를 받아야 한다”며 물귀신 작전을 폈다. 백번 사과하고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도 모자랄 판에 정치공세로 물타기를 하려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권 의원의 경향신문 압수수색 주장은 그런 새누리당의 정치적 처지와 대응 수준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기까지 하다.
■ 해외 공관 무장 괴한 총격과 외교부의 거짓말 기강해이
[중앙일보 사설-20150515수] 공관이 공격받는데 외교부가 대사 행방도 몰랐다니
지난 12일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발생한 한국 대사관 피습과 관련한 외교부의 ‘기강 해이’가 도를 넘고 있다. 외교부는 사건 당일 브리핑에서 “이종국 주리비아 대사가 이웃 나라인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 있는 임시공관에 머무르며 사건을 수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임기를 마치고 교대하던 이 대사는 이미 지난 1일 한국으로 귀임한 것으로 확인돼 결과적으로 외교부가 사실과 다른 말을 한 셈이 됐다.
더욱 황당한 일은 리비아를 관할하는 외교부의 아프리카·중동국이 13일 오후가 돼서야 이 대사의 귀국 사실을 파악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언론 보도를 본 이 대사가 직접 전화를 걸어 알려 왔기 때문이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더구나 바로 이날 현지에는 이 대사의 후임인 김영채 대사가 부임했다고 한다.
해외 공관이 극단주의 세력의 기관총 공격을 받는 긴급 사태를 맞았는데도 외교부가 해당 공관장이 들고 나는 일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니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대사를 비롯한 공관원의 행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교민 안전을 확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교 업무의 기본이다. 본부에서 대사와의 통화도,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그릇된 상황을 국민에게 전파한 것은 국민의 신뢰를 스스로 떨어뜨린 행동이다.
현재 중동·북아프리카 상황은 어느 때보다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극단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와 이라크 북부는 물론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리비아·나이지리아·케냐·튀니지 등지로 파고들어 세력을 넓히는 중이다. 예멘에서는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 부족 간의 종파 갈등이 내전으로 확대됐다. 주예멘 한국 대사관 직원들은 이달 초 수도 사나를 떠나 인근 아덴만의 청해부대 18진 왕건함에서 근무한다.
중동 대부분의 지역에서 교민 안전과 국가 이익이 위협받고 있다. 언제든지 긴급 상황이 터질 수 있다. 외교부는 급박한 현지 상황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부문별로 긴급 대응체계를 기민하게 가동해야 한다. 우선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있도록 근무 자세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경향신문 사설-20150415수] 거짓말, 기강해이… 외교부를 믿을 수 없다
해외 공관이 무장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주재국 대사의 행방조차 모르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일어났다. 지난 12일 리비아 트리폴리 주재 한국대사관이 무장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았을 당시 외교부는 리비아 주재 이종국 대사가 인접국인 튀니지에 머물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대사는 인사 발령에 따라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었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번 사건은 외교부가 국민들을 상대로 ‘거짓말 브리핑’을 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주무 책임자가 귀국한 지 10일이 넘었는데도 제대로 소재 파악을 못 한 점이나 중대한 외교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최근까지 대사직을 수행한 인물과 대책 협의도 이뤄지지 않은 점 등 외교부의 운용 시스템 전반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외교부의 첫 브리핑을 들은 기자들과 국민들은 이 대사가 당시에는 튀니지에서 사태 수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외교부도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이 대사는 인사 발령에 따라 지난 1일 이미 귀국한 상태였다. 심지어 사고 수습을 책임졌던 중동 지역 담당 당국자는 이 대사가 국내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13일 오후에야 파악했다.
그것도 이 대사가 트리폴리 주재 대사관이 피습받은 것을 보고 “공관에 대한 공격에 놀라서 전화했다”며 담당 지역국장과 귀국 후 첫 통화를 한 뒤에야 알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 전까지는 외교부가 사고 수습 과정에서 이 대사와 제대로 전화 한 통도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외교부의 기강이 얼마나 해이한지 다시 한번 확인됐다. 이런 외교관들이 외국에 있는 국민들의 안전을 제대로 챙길 리 만무하다. 큰일이 터졌는데도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도 않은 외교관들이 국익은 지킬 수 있겠나.
외교부는 그동안 정직을 최우선해야 하는 브리핑에서 이미 여러 차례 낙제점을 받았다. 과거 고(故) 김선일씨 사건이나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사태 등에서도 사실과 다른 정보로 국민을 오도했던 사례들이 아직도 선명하다. 사건이 터진 다음에야 허둥지둥 변명과 해명을 일삼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만 매번 구두선으로 그쳤다. 외교부는 대외적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부처이고 한 국가의 신뢰를 가늠하는 얼굴 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민심과 동떨어진 자화자찬이나 하지 말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나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외교부는 더이상 신뢰가 실추되지 않도록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 관련 칼럼
[한국경제신문 칼럼-취재수첩/전예진(정치부 기자)-20150415수] 외교부도 모르는 대사 행적
리비아 트리폴리에 있는 한국대사관 총격 당시 인근 튀니지에서 사건을 챙긴 것으로 알려진 이종국 리비아대사가 한국에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이 대사는 인사발령을 받고 지난 1일 귀국했으나 외교부는 이를 알지 못한 채 그가 튀니지에 있다고 브리핑했다.
이 대사의 거취는 총격 사건이 발생한 지 하루가 지나서야 밝혀졌다. 잘못된 언론 보도를 접한 이 대사가 13일 오후 외교부로 전화를 걸어 해명하면서다. 총격 사건을 수습하면서 현지 대사와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이 대사가 직접 나서지 않았다면 그의 소재지는 영영 파악되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외교부 아중동국 당국자의 해명대로 현지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브리핑을 하다보면 실수할 수 있다. 납치나 테러처럼 촌각을 다투는 긴급한 사안일 경우엔 더 그렇다. 담당국이 수십개인 데다 매일 수백통의 전보가 쌓이는 상황에서 대사들의 귀국, 출국 보고를 놓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귀국한 대사의 거취를 12일 동안이나 아무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재외공관장 관리가 얼마나 엉망으로 이뤄지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서울 출장을 핑계로 업무시간에 종적을 감춘 ‘사라진 세종시 김과장’보다도 심각하다.
183개 해외공관을 이끄는 대사와 영사들은 720만명의 재외동포와 1300만명의 해외여행객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수장이다. 그런 대사가 자신의 근무지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사건 발생 24시간 후에야 상황을 인지했다는 것은 업무 태만이다. 한국에 왔더라도 새 대사가 취임하기 전까지는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였어야 하지 않을까.
가장 최근까지 현장을 경험했고 현지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임에도 이 대사는 서울에서 열린 리비아 교민안전대책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외교부는 아직도 트리폴리의 ‘컨트롤 타워’가 누구인지 횡설수설하고 있다. 대사가 어디 있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외교부가 어떻게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50415수] 특별교부세 맘대로 배정, 투명화 방책 찾아야
특별교부세 배정을 둘러싼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역대 정권의 실세 정치인 지역구에 집중적으로 배정돼 온 관행이 아직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 이어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물론이고 행자부 실무담당 간부의 고향 땅에도 눈에 띄게 많은 액수가 배정된 것으로 드러났다. 오래 전부터 특별교부세를 ‘눈먼 돈’처럼 여겼던 정치권의 관행이 담당부처로까지 퍼진 듯한 양상이다. 오죽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1월 특별교부세 배정을 둘러싼 적폐 해소를 지시 했을까.
지난해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배정된 특별교부세는 총 9,861억 원이고, 이 가운데 기초단체에는 평균 27억 7,700만 원이 배정됐다. 그런데 정 장관의 출신지인 경북 경주에는 기초단체 가운데 네 번째로 많은 99억2,200만 원이 교부됐다. 또 특별교부세 배정을 담당하는 지방재정세제실 A과장 출신지인 경북 봉화와, 전임 담당과장 B씨의 출신지인 전북 전주에도 평균을 크게 웃도는 액수가 지원됐다.
이에 대해 행자부는 자체 ‘특별교부세 교부ㆍ운영지침’에 따라 공정하게 시행하고, 교부내역을 국회 소관 상임위에 보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주를 비롯한 개별 자치체 지원이 늘어난 이유도 해명했다. 경주의 경우는 노원구 도로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로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30억 원이 지원됐다는 식이다. 언뜻 그럴 듯하지만 실상과는 다르다. 노원구 방사성 아스팔트 폐기물 1,496드럼의 처분비용은 지역지원 수수료 9억7,000여만 원을 포함해 총 120억 원에 달했다. 방사성 폐기물 처분 비용은 발생자 부담 원칙이지만, 이 경우는 발생책임을 가리기 어려워 중앙정부가 떠안기로 했고, 최종적으로 전액을 방폐기금으로 부담하기로 했다. 따라서 행자부가 배정한 30억 원은 어디까지나 임의 결정에 따른 추가 지원일 뿐이다. 노원구 폐기물 반입을 앞둔 지역주민의 반발을 희석하기 위한 지역현안사업 지원이 별도로 이뤄진 바 있지만, 시민행복문화센터 건설(20억 원), 양남면 실내체육관 건립(10억 원), 감포 중앙 도시계획도로 개설(10억 원) 등 행자부가 밝힌 내역에 이미 충분히 잡혀있어 30억 원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
특별교부세 투명화에 일차적으로 행자부의 각성이 필요함을 일깨우는 대응이다. 자치체의 신청 없이도, 행자부 장관 재량으로 교부할 수 있도록 한 지방교부세법 조항도 즉각 손질해야 한다. 아울러 이해당사자인 국회 대신 제3의 기구나 국민이 직접 내용을 감시할 수 있어야 ‘적폐 해소’를 기대할 수 있다.
[한국일보 사설-20150415화] 반길 수만은 없는 코스피지수 2100 돌파
증시가 거침없는 상승세를 타고 있다. 연초 1,880선을 저점으로 출발한 코스피가 최근 3개월간 가파른 상승세를 탄 끝에 마침내 어제 2,100 고지를 돌파했다. 코스피지수 2,100 탈환은 3년 8개월여 만이다. 코스닥지수 역시 쌍끌이 강세를 보이며 장중 694.9까지 올라 700 고지 돌파를 눈앞에 뒀다. 증시에선 이번 상승세가 풍부한 유동성과 실적 개선 기대감에 따른 것으로 조만간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인 2,228.96까지 넘볼 것이라며 들뜬 모습이다. 하지만 왠지 살얼음을 걷는 듯한 불안감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최근 코스피 상승세를 이끈 핵심 동력은 외국인이다. 1월 중 국내 증시에서 1조389억 원을 팔아 치웠던 외국인은 2월 들어 1조3,257억 원 순매수로 돌아섰다. 이어 3월엔 순매수 규모를 더욱 늘려 2조9,110억 원을 샀고, 이달 들어서도 13일까지 8,135억 원을 샀다. 외국인 자금의 국내 증시 유입 배경은 유럽, 일본의 양적완화로 글로벌 유동성이 풍부한 가운데 우리 증시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는 인식 때문이다. 실제로 올 들어 독일 증시가 30%, 중국이 20%, 일본과 홍콩이 각각 14% 내외 급등하는 동안 코스피는 8% 정도의 상승률을 나타냈을 뿐이다.
강세장 속에선 호재만 보이는 법. 저유가 및 저금리 효과에 대한 기대감으로 기업실적 전망도 밝아지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올해 MSCI코리아 편입 종목 전체 이익 전망치가 지난주 122조7,000억 원에서 어제 기준 125조5,000억 원으로 오르고, 2분기 전망치도 30조7,000억 원에서 31조2,000억 원으로 상향 조정된 점 등을 강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전반적 경기회복 전망은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저유가, 저금리에 힘 입은 비용절감이 실적 개선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증시를 견인하고 있는 셈이다.
개인들이 여의도로 몰려드는 조짐도 뚜렷하다. 초저금리에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 보니 증시 쏠림이 나타나는 셈이다. 3월 말 50% 수준이었던 개인 거래비중이 최근 60%에 육박하고, 투자예탁금도 지난 3일 현재 19조원을 기록해 사상 최대치에 달했다.
문제는 강세장을 이끄는 동력이 신기루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금리인상은 일단 미뤄진 듯 하지만, 언제라도 단숨에 유동성을 위축시킬 위험이 크다. 실적 개선 기대감 역시 실제 매출 확대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공허하다. 지금의 상승 동력이 워낙 불안정한데다 성장전망도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인 만큼 특히 개인들로서는 거품장세를 염두에 두고 투자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15수] 경기부진에 제대로 대처 못하는 정부 재정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며칠 전 올해 성장률 전망치 등을 낮추면서 정부에 재정지출의 증가 폭을 늘리도록 요구한 바 있다. 이 총재는 “세수 부족이 생기면 그해 성장뿐 아니라 다음해 성장에도 크게 영향을 준다. 재정건전성도 무시할 수 없지만 재정이 성장을 위해 어느 정도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13일 “2월 이후 자산시장을 중심으로 실물지표가 완만하게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등의 말로, 한은과 조금 다른 전망을 내놨다. 이 총재의 재정 확대 요구를 당분간 받아들일 뜻이 없음을 내비친 것이다. 최 부총리와 이 총재의 경제 진단이 약간 어긋나긴 하나 당장 사달이 날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여러 지표를 살펴볼 때 정부 재정이 제구실을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한 만큼 정부의 재고가 필요하다고 본다.
최 부총리는 지난해 7월 취임 당시 ‘확장적 재정운용’을 공언한 뒤 작년과 올해에 걸쳐 재정지출을 11조7000억원 늘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정은 작년 4분기(10~12월) 국내총생산 성장률을 0.5%포인트나 떨어뜨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세수 부족으로 예산에 잡힌 재정지출이 줄어든 결과다. 재정의 이런 모습은 2010년 이후 계속되고 있다. 예산이 아닌 결산 기준으로 보면 더 그래, 정부 재정 기조가 5년간 긴축의 연속이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이 기간에 경기가 대체로 부진했다는 점에서 재정이 경기변동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런 문제가 생긴 데는 낙관적 경제전망에서 빚어진 세수 부족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세수 부족을 해결할 방도를 적극적으로 강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채를 더 발행하거나 세수 확보 방안을 강구해야 하는데도 이를 외면해왔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모두 국가채무의 위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동시에 증세가 아닌 감세 기조를 내세웠기에 정치적 부담이 컸던 것이다. 재정에 대한 균형을 잃은 인식이 낳은 업보이긴 하지만 나라 경제에 주는 부담이 적지 않다.
이제라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세수 부족이 이어지지 않도록 증세를 추진해야 한다. 이는 짙어지는 고령화 추세 등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능력이 있는 납세자에게 더 부담하도록 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추가경정예산의 편성 조건을 손질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엄격하게 묶어놓으면 지금처럼 재정이 적기에 구실을 하지 못할 수 있다.
[경향신문 사설-20150415수] 국민 혈세만 축내는 인천 아시안게임 경기장
인천 아시안게임을 위해 새로 지은 경기장이 결국 가뜩이나 열악한 인천시 살림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고 한다. 어제 경향신문이 보도한 인천 경기장 르포 기사는 1조7000억원을 들여 지은 세계 최고 시설의 경기장이 아무 쓸모없이 방치되고 있는 한심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인천시가 당초 남구 문학경기장을 리모델링해 활용하라는 정부의 권고를 무시한 채 경기장 건설을 강행할 때부터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우선 4700억원짜리 주경기장은 아시안게임이 폐막된 지 6개월이 되도록 국제행사를 치른 적이 한 번도 없다. 앞으로 계획도 없다. 경기장에 값비싼 양잔디를 깔아놓고도 축구경기 한 번 열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됐다니 참으로 기가 막힌다. 인천시는 먼지만 수북한 주경기장의 운영비로 연간 33억원을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주경기장을 포함해 신설 경기장 16곳의 연간 운영비는 134억원인 반면, 수익은 26억원에 불과한데도 대책이 없다. 적자를 메우기 위해 매년 혈세 108억원이 들어간다는 얘기다.
재정난을 가중시키는 골칫덩이인 주경기장에 영화관·예식장을 유치하려 했지만 교통불편 때문에 무산됐다. 중국 투자자에게 통째로 팔려던 계획도 불가능해졌다. 시민들의 땅을 강제수용해 관련법상 10년 동안은 매각할 수 없다. 결국 아시안게임을 테마로 한 관광단지 조성을 결정했지만 실제 수익을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이 정도로는 경기장 운영 적자를 메울 수도 없다.
인천시가 겪는 낭패는 제대로 된 사후 활용방안 없이 대형 경기장 건설을 밀어붙인 탓이 가장 크다. 전남도가 유치했던 국제자동차경주대회 포뮬러원(F1)이 지역에 엄청난 빚만 남긴 것도 마찬가지다. 외국의 나가노·소치 동계올림픽, 브라질 월드컵의 경우도 똑같은 후유증을 겪고 있다. 이제 평창 동계올림픽이 걱정이다. 강원도 역시 국제올림픽위원회가 개최 후유증을 우려해 분산 개최를 제안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원도는 인천 아시안게임을 반면교사로 삼아 지금이라도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활용방안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415수] 민주노총 파업 접고 대화의 場에 나와야
민주노총이 24일 총파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번 파업에는 노사정 대타협 결렬 선언과 함께 협상을 벗어던진 한국노총과 공무원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전국공무원노조도 가세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세월호 참사 1주년까지 겹쳐 어느 때보다 정치색 짙은 춘투(春鬪)가 될 전망이다.
노사정 협의 참여를 거부해 온 민주노총의 파업 선언은 이미 예고된 것이기는 하다. 그들은 파업 명분으로 노동시장과 공무원연금 개악 중단뿐 아니라 세월호 시행령 폐기,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퇴진 등도 내세웠다. 다분히 정치적 목적성이 읽히는 대목이다. 정부가 노사정위를 들러리로 내세워 쉬운 해고와 임금 삭감, 더 많은 비정규직 양산을 시도하려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지만 과연 얼마나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노동 개혁이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한 최우선적 과제임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고용 유연화가 이른바 ‘쉬운 해고’ 논란으로 이어져 적잖은 갈등을 빚고 있지만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경제 성장을 해치는 상황이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라도 노동 개혁은 더이상 미룰 수 없다. 선택이 아니라 당위의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민주노총이 노사정 대화 참여 자체를 거부하며 노동시장 개혁을 무작정 ‘죄악시’하는 태도는 온당치 않다. 정부도 지적했듯이 정부 정책이나 법 개정 사항 등은 파업의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런 만큼 민주노총의 총파업에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마땅하다. 혹시라도 세월호 희생자 1주기 추모 분위기에 편승해 대정부 투쟁의 동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생각이라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순수성이 훼손될수록 노동계는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무릅쓰는 ‘정치파업’ 집단이라는 비난을 뒤집어쓰게 될 게 뻔하다.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파업은 결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노동시장 구조 개선은 노사정 간의 원만한 합의가 이뤄져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지난한 과제다. 총파업을 선언한 민주노총 또한 우리 경제의 시름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민생을 파탄지경으로 몰아넣을 생각이 아니라면 민주노총은 지금이라도 당장 대화의 장에 동참해야 옳다. 정부 또한 불법 파업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대처하되 대화의 끈을 이어 가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15수] 공공기관 甲질에 대한 건설사들의 소송을 지지한다
공공기관을 상대로 한 건설회사의 소송이 확산할 조짐이다. 특히 현대건설 등 7개 건설회사가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한 공사 기간 연장에 따른 추가비용 청구 소송은 큰 파장이 예상된다(▶본지 4월14일자 A1, 8면 참조). 국가계약법에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관행으로 굳은 공공기관의 ‘내부지침에 따른 불공정 발주’에 건설회사들이 집단적으로 반기를 들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당장 삼성물산 등 다른 건설회사들도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계 전망이다. 소송결과에 따라서는 추가 소송이 봇물 터지듯 쏟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건설회사들의 이번 소송은 그동안 당연시되던 공공기관 불공정 발주 관행에 제동을 건 사건이라는 평가다. 사실 공공기관이 비용절감을 이유로 국가계약법에 상충하는 자체 규정을 만들어 건설회사에 부담을 떠넘겨 왔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건설회사로서는 발주처인 공공기관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다. 울며 겨자 먹기다. 공공공사는 손해만 안 보면 다행이라는 말이 일반화될 정도다.
최저가낙찰제 등으로 가뜩이나 수익성이 나빠지는 상황에서 공사 중 발생하는 온갖 추가비용까지 다 건설회사 몫이다. 설계 변경으로 공사비를 낮추고, 법적으로 보장된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깎고, 공기연장 추가비용을 건설사에 전가하는 공공기관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공공기관 부채문제가 불거지면서 그 횡포는 더욱 심해지는 추세다. 2010~2014년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 공사 부대비용 소송만 32건에 달한다는 게 이를 말해준다. 공공기관의 불공정 발주에 더는 견디기 힘든 건설회사들이 소송으로 맞서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공공기관 불공정 발주가 사회간접자본(SOC)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소프트웨어(SW) 사업 등 다른 발주 또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단가 후려치기, 일방적 과업 변경 등 국가계약법을 위반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러니 시장의 생태계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공공기관 정상화를 외치지만 갑의 지위를 악용하는 이런 불공정 관행을 뿌리뽑지 않는 한 공공기관 정상화는 공염불이나 다름없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15수] "돈부터 내라"는 징세편의주의에 제동 건 법원
서울고등법원이 세금을 낼 형편이 못 되는 기업이 납부시기 연기를 신청한 데 대해 처음으로 세금부과 집행정지 판결을 내렸다는 한경 보도(▶4월14일자 A9면 참조)다. 2년간 적자를 낸 동부하이텍이 영업권에 부과된 세금 778억원을 낼 경우 회사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보고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한 것이다. 법원은 영업권 과세도 부정적으로 봤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거액의 세금을 추징당한 기업 수십 곳이 관련 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전언이다.
국세청은 선고 이후 추가 체납처분(가산세 부과)을 정지한다는 뜻이지 세금부과를 취소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또 1998년에도 상속세 부과처분 집행정지를 결정한 원심을 대법원이 기각한 적이 있어 최종심을 두고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무리한 과세에 대해서도 일단은 세금을 납부한 다음에 소송을 하더라도 하라는 징세편의적 관행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은 의미가 크다고 본다.
세금에 관한 한 국가가 갑(甲)으로 군림하는 세법의 독소조항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컨대 연말정산에서 회사 실수로 소득신고가 누락돼도 근로자 책임으로 간주해 불성실신고 가산세를 물린다. 그렇다고 미리 많이 뗀 세금에 이자를 주는 것도 아니다. 중간예납은 세금을 선납하는 것임에도 자동차세처럼 할인(10%)은커녕, 납부기한을 못 지키면 오히려 가산세를 매긴다. 더구나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여서 위헌 시비마저 일고 있다. 납세자에 물리는 환급불성실 가산세는 연 10.95%인데 국가가 토해내는 국세환급 가산금은 연 2.9%로 3배 이상 차이가 나 형평에 문제가 있다는 지난해 국회 입법조사처의 지적도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무리한 과징금 부과도 오십보백보다. 지난 10년간 과징금 처분 중 87%가 행정소송으로 이어졌을 정도다. 지난해 과징금 소송 중 공정위 패소율이 20%를 웃돌고 과징금 취소율은 40%에 이를 정도다. 국가기관이 국민 위에 군림하고 ‘갑질’한다는 비판까지 듣는 게 정상일 수 없다. 관료들이 편해질수록 국민은 억울한 일이 많아진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15수] 전직 장관들이 로펌에서 너무 열심히 일하신다면…
2년의 취업제한에서 풀려난 장관급 고위 경제관료들이 속속 민간기업에 자리잡고 있다는 소식이다. ‘관피아’나 전관예우 논란 등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기관장이나 대기업 CEO보다 로펌 고문이나 사외이사 등을 많이 맡는다고 한다. 물론 고위공직자들의 다양한 취업처를 모두 백안시할 이유는 없다. 공직사회에서 쌓은 경륜과 전문 지식을 활용해 사회 발전에 기여하면 그 자체로 좋은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맡는 임무가 결국 대관(對官)업무요 로비 활동이라면 문제가 있다. 공직에서 구축한 인맥과 정보를 활용해 사건을 수임하거나 옛 근무처로부터 정보를 수집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비스트로서의 역할이라면 실망이다. 특히 규제기관의 수장이 자신의 관할 아래에 있던 기업으로 전직하는 경우 이런 활동이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경제학자 게리 베커가 말하는 소위 ‘특수한 인적자본(specific human capital)’ 관계가 판을 치면서 부패 구조가 더욱 심해지는 사회다.
한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공직사회의 결속이 강해 로비활동이 아주 수월하다는 평가가 많다. 일반 기업체나 로펌들이 퇴직 고위 관료를 고용하는 건 바로 이런 로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특히 규제 권한이 많은 경제부처의 퇴직 관료들은 더욱 로비 활동에 동원된다. 의원 입법이 폭주하고 법 집행이 왜곡되는 것은 이런 로비 생태계의 결과다. 전관예우가 다시 살아나면서 부패 구조의 사슬이 만들어지고 또 소비되는 것이다.
퇴직 후 일반인의 생활과 별 차이가 없는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등 북유럽국가의 전직 관료들을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의 직업으로 돌아가거나 사회 봉사에 심취하는 전직 장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농촌으로 돌아가 농민으로서의 삶을 사는 장관도 적지 않다. 전직 공직자가 그저 국회에 줄대기 바쁘고 후배 관료들을 찾아다니기 바쁜 ‘로비형 인적 자본’으로만 쓰인다면 한국 사회의 부패 고리는 더욱 악화될 뿐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415수] 선진국 부활·신흥국 추격 속 뒷걸음치는 고부가산업
최첨단 고부가가치산업이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반도체·컴퓨터·항공우주 등 우리나라 첨단기술제조업의 부가가치가 2010년 반등에 이어 2011년부터 다시 마이너스 성장에 빠졌다. 특히 컴퓨터·사무용기기의 경우 2003~2012년 세계 시장은 연평균 4.6% 커졌지만 한국 제품은 -4.5%로 성장은커녕 후진했다.
금융·교육 등 지식집약서비스업도 4년 전부터 감소세다. 두 업종에서 창출된 부가가치 역시 2010년 전년 대비 27.2% 증가한 후 2011년 5.2%, 2012년에는 -0.7%로 급전직하했다. 고부가산업이 뒷걸음치는 것은 미국 등 선진국의 제조업 부활에다 신흥국의 추격이 가속화하는 데 따른 결과다. 무엇보다 중국의 추격이 두려울 정도다. 우리 산업의 미래를 생각하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지금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고부가산업으로의 변신이 시급한 상황이다. 고착화 조짐을 보이는 저성장 기조를 돌파하고 취업난 해소 차원에서도 고부가산업 비중을 끌어올리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고부가산업의 부가가치를 10% 늘린다면 첨단기술제조업에서 4만명, 지식집약서비스업에서 25만여명 등 약 30만명의 좋은 일자리가 생긴다는 통계도 있다.
고부가산업은 다른 산업 부문의 성장을 이끄는 파급효과가 크다. 현 정부 들어 다양한 산업구조 고도화 정책을 내놓고 있는 것도 고부가산업 육성의 중요성 때문이다.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에 끼인 우리 산업은 중간재나 소비재만으로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게 돼 있다. 기술 우위 없이 경쟁력을 오래 유지할 수 없고 지속 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맞춤형 마스터플랜과 연구개발(R&D) 지원, 전문인력 양성 등 고부가산업을 키우는 데 필요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짜임새 있는 전략을 세워 실천에 옮기는 일만 남았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15수] 대한민국 문화영토 세계로 넓히려면
우리나라 문화콘텐츠산업 규모가 100조원 수준으로 커졌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허장성세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10대 베스트셀러 가운데 1위와 2위를 포함한 5개가 번역서였고 흥행 10대 뮤지컬 중 9개가 라이선스 아니면 내한공연이었다. 우리 것은 없이 외국 것을 가져다 모양만 바꿔 소비하거나 재가공해 수출하는 식으로는 문화 강대국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가수 싸이(PSY)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 최다 조회 수 기록을 세우며 정상 등극을 알릴 때만 해도 K팝은 우리 문화콘텐츠산업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듯했다. 그로부터 2년 만에 K팝이 성장을 멈추고 주춤하는 배경에는 스타의 매력에만 의존해 진득한 준비 없이 과실만 찾으려 한 얄팍한 상술이 있었다.
당장 K팝 스타가 부르는 노래는 외국 작곡가가 만들고 이들이 추는 춤은 해외 안무가가 짠다. 외국 것 일색으로 얼굴만 한국인 상품으로는 K팝이 세대를 넘어 영속하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기 힘들다. 한식 세계화도 보여주기식 이벤트에만 치중해 겉돌고 있다. 정부는 지난 6년간 한식 세계화를 외치며 1,200억원이나 투입했지만 결과물이 없다. 미국 CNN이 꼽은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50가지 음식'에 태국·일본·인도·홍콩·베트남은 2개 이상씩 들어 있지만 불고기·비빔밥 등 우리 음식은 하나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우리 문화콘텐츠산업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머나멀고 실체 또한 미약하기만 하다. 산업 규모 100조원을 운운한다지만 서울경제신문 기획 시리즈 '문화영토를 넓혀라'에 따르면 세계 문화콘텐츠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2.8%다. 문화콘텐츠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라도 깊이와 새로움을 더하는 창조역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최근에는 중국의 온라인 방영 규제와 일본의 반한 분위기 등으로 한류 위기론까지 제기되는 마당이다. 보편적 스토리 구성, 정보기술(IT)과의 융복합, 정부 지원과 민간 투자 확대 등 삼위일체 노력으로 문화의 새 영토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한겨레 프리즘/김양중(의료전문기자)-20150415수] 준비되지 않은 죽음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에 켄 머리 남캘리포니아대 의대 교수가 실은 글을 보면 죽음이 소개돼 있다. 68살의 의사가 췌장암을 진단받은 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있는데, 이 의사는 보통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수술은 물론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를 전혀 받지 않은 것이다. 암 진단 뒤 곧바로 일을 그만두고 가족들과 남은 시간을 보냈다. 많은 의사들은 현대의학의 효과와 한계를 알기 때문에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낼지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머리 교수는 다른 사례도 소개했다. 뇌로 전이된 폐암이 진단된 60살 사촌의 죽음이었다. 병원에서는 일주일에 3~5번의 항암제 치료 등을 받으면 넉달을 살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 사촌은 뇌 조직의 팽창을 막는 몇몇 알약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냈다. 평생 가 본 적이 없는 디즈니랜드에도 갔다. 이렇게 8개월을 지낸 뒤, 혼수상태에 빠져 사흘 뒤 숨졌다. 8개월 동안 그가 쓴 의료비는 20달러에 불과했다. 머리 교수는 미국의 한 연구에서 의사들을 상대로 조사해 보니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자신에 대한 치료 방침에 대해,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체적으로 가족들에게 주문해 놓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심폐소생술 등을 하지 말아 달라는 등 많은 의사들이 죽는 과정을 미리 준비했다.
지난해 11월 뇌종양으로 투병하던 29살 여성이 이른바 ‘존엄사법’이 발효된 미국의 한 주로 이사해 결국 안락사를 선택했다. 외신 기사를 요약해 공급하는 <뉴스 페퍼민트>에 실린 글을 보면, 원래 의사들은 환자에게 해를 주면 안 되므로 조력 자살에 대해 반대하는 집단이지만 최근에는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최근 미국과 유럽의 의사 2만여명에게 물은 결과 응답자의 54%가 조력 자살 허용에 찬성한다고 답해, 4년 전 46%보다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조력 자살은 환자가 원해 의사들이 약을 투여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은 최선의 치료를 다 해야 한다. 하지만 치료가 불가능하면 인공호흡기를 꽂은 채 사망하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작별인사도 하고 죽고 싶은 환자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되는 것이다.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가 쓴 책인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회복 불가능한 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을 하거나 인공호흡기 등을 사용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인식이 늘고 있다. 인공호흡기를 꽂아 말도 하지 못하는 상태로 병상에 누워 있는 것이 환자가 죽음으로 가는 고통만 더 크게 한다는 것이다. 결국 연명의료에 대해 환자의 자율성을 중시하자는 쪽으로 변해 가고 있는 것이다. 윤 교수는 최근 호스피스 관련 토론회에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진 환자가 연명치료 대신 질병의 고통을 덜고 남은 삶의 질을 높이는 호스피스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호스피스 시설, 인력 등을 크게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기 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죽는 과정 자체가 고통이라는 것이다.
의사들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이별인 죽음은 모두 싫어한다. 하지만 맞아야 하는 삶의 일부로 생각하고 미리 준비한다. 이렇듯 나이 들었고 또 준비하고 있어도 슬픈 것이 죽음이다. 그런데 바로 1년 전 세월호에 탄 많은 고등학생들과 승객들이 죽었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죽음이었다. 그들은 ‘곧 구조될 거야’라는 믿음 속에 죽어갔다. 죽음을 준비하는 의사들과 이들은 똑같이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 죽음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크다.
[중앙일보 칼럼-세상읽기/김종윤(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20150415수] 최악의 세 단어 '연말정산 소급 적용'
납세자들이 흔히 말하는 ‘13월의 보너스’는 잘못된 용어다. 매년 연말정산을 한 뒤 돌려받는 세금을 샐러리맨들은 그렇게 불렀다. 반대로 세금을 토해내면 ‘세금 폭탄’이라고 분개했다. 연말정산은 연간 낸 세금에서 소득을 올리기 위해 들어간 각종 비용 등을 정산한 뒤 최종 세액을 확정하는 절차다. 쉽게 말하면 납세자가 원래 내야 할 세금보다 더 많이 냈으면 그 차액을 돌려받고, 적게 냈으면 차액을 메우는 걸 말한다.
13월의 보너스를 받았다면 샐러리맨들이 기분 좋아하는 건 이해가 간다. 생각지도 못한 공돈이 생겼으니 싫어할 이유가 없다. 이건 착각이다. 세금을 환급받은 납세자는 사실상 손해를 본 것과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매월 세금을 많이 낸 뒤 다음 해에 초과분을 돌려받은 것이기 때문에 이 기간만큼 이자 손실을 본 셈이다. 거꾸로 세금을 토해냈다고 해서 울분을 터뜨릴 일도 아니다. 손해 본 게 아니라 원래 덜 낸 걸 냈을 뿐이다.
이쯤 되면 연말정산의 본질이 이해됐을 게다. 연말정산 결과를 놓고 ‘보너스’니 ‘세금 폭탄’이니 왈가왈부하는 것은 애초부터 난센스였다. 연말정산 결과는 특별히 누구에게는 보너스가 되고, 누구에게는 폭탄이 되는 게 아니다. 막판에 세금을 뭉텅이로 돌려받거나, 토해 내면서 희비가 엇갈리지만 본질은 득(得)도 없고, 실(失)도 없는 절차다.
올 초 우리 사회를 혼란 속으로 몰고 갔던 연말정산 파동은 한 편의 코미디였다. 이번 파동의 계기는 소득세법을 고쳐 정산 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꾼 것이었다. 이 방식은 문제가 없었다.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전환되면 고소득층은 세금을 좀 더 부담하고, 저소득층은 덜 내게 된다. 소득 분배 차원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정부가 더 걷을 수 있는 세금은 대략 1조원 정도였다. 정부는 늘어난 세수를 복지 분야 등에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꼬였다. 정부는 이런 취지를 납세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무능·무책임했다. 납세자와 소통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소란은 그래서 시작됐다. 더 큰 문제는 이후부터였다. 일부 반대 블록의 강력한 선전전에 밀린 정부는 연말정산 보완 대책을 들고 나왔다. 그 카드라는 게 황당하게도 ‘소급 적용’이었다. 현 연말정산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짚고 보완하는 고민은 안 보였다. 중장기 나라 살림을 고려한 장기적인 그림도 보이지 않았다. 당장 불만만 잠재우면 된다는 미봉책만 남발했다.
이미 낸 세금을 반발 목소리가 크다고 법을 바꿔 돌려주는 건 조세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짓이다. 떼를 쓰면 세금을 돌려주는데 앞으로 누군들 가만있겠나. 사람이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게 세금이다. 그래서 국민의 의무 중 하나가 납세의 의무인 것이다.
한 나라의 조세 정책은 바람에 떠밀려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와 같아서는 안 된다. 조세 정책의 원칙은 분명해야 한다. 그 원칙이 훼손되면 나라가 흔들리고, 정권은 무너질 수 있다.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는 조지 H W 부시였다. 그는 선거전 초반에는 민주당 마이클 듀커키스 후보에게 밀렸다. 부시는 회심의 카드로 여섯 단어를 앞세워 분위기를 뒤집었다. ‘나를 믿으세요. 새로운 세금은 없습니다(Read my lips:No new taxes)’. 감세를 앞세운 부시는 당당히 백악관에 입성했다.
문제는 4년 뒤에 터졌다. 90년대 초 경기 불황과 정부 의무지출 증가로 미국의 재정적자는 심각해졌다.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은 증세를 도입하지 않는 한 정부 지출 축소에 동의하지 않겠다고 공세를 폈다. 부시는 타협했다. 소득 상위계층의 세금 부담을 10% 늘렸다. 술·담배·자동차·요트 등에 대한 특별소비세도 올렸다. 부시에 대한 믿음은 바닥에 떨어졌다. 92년 선거에서 클린턴에게 진 건 당연했다. 부시를 당선시켰던 조세 공약이 다음 선거 때는 대통령의 ‘최악의 여섯 단어’로 꼽혔다.
지난 3년간 한국의 예산 대비 세수 부족액은 22조2000억원에 달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올해도 세금이 3조4000억원 덜 걷힐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복지예산(보건·복지·고용) 규모만 115조7000억원에 달한다. 들어오는 돈은 부족한데 쓸 곳만 많아지면 나라 곳간은 거덜 날 게 뻔하다. 경기를 살려 세수를 늘리는 게 최상의 해법이지만 이미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덫에 갇힌 게 아니냐는 우려가 큰 현실이다. 그러면 납세자에게 곳간 사정을 설명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연말정산 후폭풍으로 앞으로 납세자를 설득하기는 더 힘들어졌다. 이미 행정자치부가 추진해 왔던 주민세·자동차세 등 지방세 인상 카드도 슬그머니 접은 상태다.
그렇다고 빚을 내 버틸 수도 없지 않은가. 이건 후손들의 신용카드를 긁어 쓰는 파렴치한 짓과 같다. 더구나 빚을 영원히 낼 수도 없는 법이다. 빚이 쌓이면 나라 살림이 파탄 나는 건 시간문제다. 무너진 조세 원칙,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말정산 소급 적용’은 조세 정책 최악의 세 단어로 기록될 것이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이기환(논설위원)-20150415수] 제노사이드
1941년 8월24일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가 BBC 생방송 연설에서 나치독일의 만행을 규탄했다. 그는 나치의 민간인 대량 학살을 두고 “우리는 ‘이름 없는 범죄(a crime without a name)’에 직면해 있다”고 표현했다.
“이처럼 조직적이고 잔혹한 살육은 없었습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고….”
독일의 살인특무무대가 빨치산 소탕을 명목으로 소련땅에서 자행한 민간인 학살을 지칭한 것이었다. 나치독일의 만행은 300만명의 유대인이 한 줌의 재로 변할 때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이어졌다. 뭐라 딱히 표현할 단어가 없었다. 군대 간 전쟁이 아니라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전쟁(war against peoples)’이었기 때문이다.
1944년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법학자 라파엘 렘킨은 ‘이름 없는 전쟁’에 ‘제노사이드(genocide)’란 이름을 붙였다. 종족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genos)와 살인의 라틴어(cide)를 결합시켰다. 제노사이드는 반드시 한 집단의 ‘즉각적인 파괴’만을 뜻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어떤 집단의 절멸을 위해 자행되는 다양한 행위를 지칭했다. 집단의 존재기반을 서서히 와해시키는 ‘부드러운 절멸’도 포함시켰다. 창씨개명(정치), 모국어사용 금지 및 우민화정책(문화) 등도 역시 제노사이드라는 것이다. 제노사이드를 국제법상의 범죄로 만들려고 동분서주한 렘킨의 노력은 1948년 유엔총회에서 제노사이드 협약을 맺음으로써 결실을 얻었다. 제노사이드 범죄는 ‘국민·인종·민족·종교집단 전체 또는 부분을 파괴할 의도를 가지고 실행된 행위’로 규정됐다(협약 제2조). 그렇지만 ‘…파괴할 의도’ 문구는 두고두고 문제가 됐다. 아무리 끔찍한 제노사이드 가해자라도 ‘의도 없는 우발적 사건’이라 우기면 소모적인 논쟁으로 변질되기 일쑤였으니까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1차대전 도중 오스만제국(터키)이 자행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제노사이드라고 규탄하자, 터키가 ‘내전의 일부였다’고 반발했단다. 익숙한 변명이다. 지난 100년간 제노사이드로 희생된 민간인 수가 1억75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아무리 봐도 제노사이드의 기질은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서동철(논설위원)-20150415수] 한국문학번역원
소설가이자 번역작가인 안정효는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사례로 들곤 한다. 미국 작가 마거릿 미첼에게 1937년 퓰리처상을 안겨 준 이 소설을 마무리하는 독백은 빅터 플레밍이 연출한 1939년 작 동명 영화에서도 마지막 대사로 쓰였다. 배우 비비안 리가 연기한 스칼릿 오하라의 유명한 대사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결국,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까!”로 번역되면서 명대사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번역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은 이 구절이 어려운 일을 참지 못하고 놀기만 좋아하는 스칼릿 오하라의 입버릇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여주인공의 성격을 생각하면 오히려 “꼭 오늘 해야 하는 것은 아니야”라는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는 것이다. 불필요하게 멋을 부린 번역이라고 입을 모은다. 더구나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분다”는 일본 속담을 그대로 활용했다는 의심도 있다.
문화한류(文化韓流)의 시대 번역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역시 소설가이자 번역작가인 박찬순은 태국에 수출된 한국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애인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대사가 “brother”로 나가기도 했으니 현지인들은 “한국에 이상한 풍속이 있는 모양”이라고 여겼을 것이라고 허탈해한다. 이것 말고도 영화 대사의 김치찌개, 떡볶이, 장어구이는 아예 번역을 하지 않는가 하면 정(情)이나 한(恨) 같은 표현도 그저 ‘jeong’나 ‘han’으로 표기하니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번역의 취약성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정설이다. ‘한국 문학의 해외 소개와 교류’를 목적으로 한국문학번역원이 2001년 출범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앞서 1996년 ‘문학의 해’를 맞아 당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 설립된 한국문학번역금고가 발전적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번역원은 그동안 3000종에 이르는 성과를 해외에 내놓았다. 한국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물량도 물량이지만 질을 높여 실질적인 독자를 확보해야 한다는 반성은 내부에서부터 나온다. 시장의 호응을 얻을 수 있도록 영향력 있는 출판사와 제휴하고, 번역 아카데미는 대학원 과정으로 승격시켜 체계적으로 인력을 길러내겠다는 생각이다. 영화·뮤지컬 등 한류 콘텐츠의 질을 높이는 데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번역원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통폐합시키는 기획재정부의 방침이 알려졌다. 오늘 열리는 ‘공공기관 기능조정 방향에 대한 정책토론회’에서 번역원 통폐합을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겠다는 것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속담이 아마도 우리 문화의 처지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도 문화융성의 시대라고 한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권영설(논설위원)-20150415수] 뇌물의 역사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리스트가 일파만파의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다. 메모에 거명된 당사자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언론이 경쟁적으로 보도하면서 파장은 커져만 간다. 국민은 정치인들이 받았다는 억대가 넘는 돈 얘기에 혀를 찬다. 여론은 특히 뇌물에 민감하다.
뇌물은 인류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미국 연방법원 판사를 지낸 존 누난은 뇌물의 역사에서 기원전 15세기 고대 이집트에서도 공정한 재판을 왜곡한다며 뇌물을 단속했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적었다. 성경에도 ‘은밀히 안기는 선물은 화를 가라앉히고, 몰래 바치는 뇌물은 거센 분노를 사그라뜨린다’(잠언 21장 14절)고 기록돼 있다.
우리 역사에서도 뇌물 얘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신라의 김춘추가 고구려의 연개소문에게 억류됐다가 푸른색 베를 뇌물로 주고 풀려났다는 얘기부터 고려 조선시대 왕의 외척이나 지방 탐관오리들이 매관매직을 하면서 뇌물을 받았다는 얘기는 숱하게 나온다.
중국에서 ‘관시(關係)’를 넓혀나가려면 선물과 뇌물은 기본이다. 중동에도 ‘와스타(wasta)’라는 게 있는데 아랍어로 인맥이란 뜻이다. 수수료와 뇌물, 그리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등을 의미하는 단어다. 상인들이 권력과 결탁하면서 뇌물의 종류는 점점 다양해졌다. 뇌물은 돈이나 선물이 전형적이지만 예전에는 고기나 쌀 같은 음식이 주로 사용됐다. 금덩어리는 단골 메뉴였고 최근에 와서는 그림, 주식 등이 뇌물로 쓰인다. 뇌물은 관례적으로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기 때문에 칭찬이나 아부는 뇌물로 보지 않는다. 다만 성접대는 명백한 뇌물로 본다.
현대에 와서는 국제 거래에서도 뇌물 단속을 강화하는 분위기다. 미국은 1975년 록히드사가 일본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에게 뇌물을 줬다가 법적 처리된 사건을 계기로 1977년 해외부패방지법(FCPA)을 제정했다. 외국 관료에 대해 미국 기업이 뇌물을 주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중국도 최근 시진핑 국가주석이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외국계 기업에도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9월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영국계 제약회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에 대해 30억위안의 벌금을 매겼고 임원 2명을 구속했다.
선물과 뇌물을 구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뇌물을 뜻하는 ‘브라이브(bribe)’도 중세 영국에선 선물을 뜻하는 단어로 쓰였다고 한다. 이번 ‘성완종 리스트’도 정치자금인지 뇌물인지 가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참 혼탁한 세상이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취재수첩/전예진(정치부 기자)-20150415수] 외교부도 모르는 대사 행적
리비아 트리폴리에 있는 한국대사관 총격 당시 인근 튀니지에서 사건을 챙긴 것으로 알려진 이종국 리비아대사가 한국에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이 대사는 인사발령을 받고 지난 1일 귀국했으나 외교부는 이를 알지 못한 채 그가 튀니지에 있다고 브리핑했다.
이 대사의 거취는 총격 사건이 발생한 지 하루가 지나서야 밝혀졌다. 잘못된 언론 보도를 접한 이 대사가 13일 오후 외교부로 전화를 걸어 해명하면서다. 총격 사건을 수습하면서 현지 대사와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이 대사가 직접 나서지 않았다면 그의 소재지는 영영 파악되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외교부 아중동국 당국자의 해명대로 현지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브리핑을 하다보면 실수할 수 있다. 납치나 테러처럼 촌각을 다투는 긴급한 사안일 경우엔 더 그렇다. 담당국이 수십개인 데다 매일 수백통의 전보가 쌓이는 상황에서 대사들의 귀국, 출국 보고를 놓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귀국한 대사의 거취를 12일 동안이나 아무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재외공관장 관리가 얼마나 엉망으로 이뤄지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서울 출장을 핑계로 업무시간에 종적을 감춘 ‘사라진 세종시 김과장’보다도 심각하다.
183개 해외공관을 이끄는 대사와 영사들은 720만명의 재외동포와 1300만명의 해외여행객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수장이다. 그런 대사가 자신의 근무지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사건 발생 24시간 후에야 상황을 인지했다는 것은 업무 태만이다. 한국에 왔더라도 새 대사가 취임하기 전까지는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였어야 하지 않을까.
가장 최근까지 현장을 경험했고 현지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임에도 이 대사는 서울에서 열린 리비아 교민안전대책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외교부는 아직도 트리폴리의 ‘컨트롤 타워’가 누구인지 횡설수설하고 있다. 대사가 어디 있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외교부가 어떻게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문성진(논설위원)-20150415수] 구동존이(求同存異)
1955년 4월 인도네시아의 반둥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회의'에 참석한 29개국 대표들은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참여국 모두가 식민지 피해를 입었다는 점은 같았으나 사회체제 등의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이때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가 "같은 것은 함께 추구하고 다른 것은 남겨두자(求同存異·구동존이)"고 말했다. 이 한마디로 식민주의 문제에 대한 논의가 급진전해 '반둥 10원칙'이라는 합일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후론 구동존이가 중국의 핵심 외교전술이 됐다. 1999년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제네바 4자회담의 기조연설에서도 지난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도 중국은 구동존이를 역설했다.
'같음'을 강조하는 구동존이지만 '다름'을 부각시키는 사례가 왕왕 있다. 리진쥔 신임 북한주재 중국대사의 발언이 그런 경우다. 14일 미국의 소리(VOA)에 따르면 리 대사는 최근 김영남 위원장을 만나 "중국은 새로운 시기와 정세하에서 북한과 상호존중·평등상대·구동존이·협력공영을 통해 양국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북중 관계에서 구동존이라는 표현이 쓰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양국의 혈맹 관계를 정상국가의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중국의 메시지로 해석해도 전혀 무리가 없는 발언이다.
말썽 많은 북한이지만 때론 남과 북이 '같음'을 추구할 부분도 있다.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대응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일본이 역사 왜곡 행위를 본격적으로 감행하는 것은 과거 조선에 대한 식민지 통치를 정당화해 재침의 길을 열려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거짓 주장하는 것 외에 한민족 역사에 대한 날조를 일삼는 일본의 악행을 막으려면 남북간 구동존이가 필요하다. 더구나 지난 13일엔 '독도는 조선 땅'이 표기된 일본 정부의 1897년 제작 지도까지 발견돼 독도의 한국령은 반발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진실로 판명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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