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2016년 3월 2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정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필리버스터 이후의 정국 순항할까

더불어민주당이 오늘 이종걸 원내대표의 발언을 마지막으로 필리버스터를 중단키로 한 것은 다행이다. 총선을 앞두고 꽉 막혔던 정국에 비로소 숨통이 트이게 됐다. 필리버스터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지난달 23일 오후 테러방지법 중재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한 이래 9일째에 이르면서 캐나다 새민주당이 2011년에 세운 종전 세계기록을 거뜬히 갈아치웠다. 이렇게 기록을 세우는 동안 국민들은 뒷전이었다.

더민주가 격론 끝에 필리버스터를 중단키로 한 데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더민주는 출구전략을 찾자는 당 지도부와 ‘빈손’으로 끝낼 수 없다는 원내지도부가 팽팽히 맞섰으나 김 대표가 그제 심야 비대위에서 “이념론을 경제론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종걸 원내대표를 설득함으로써 극적 타결을 봤다는 후문이다.

전후 사정이야 어쨌든 총선이 불과 40여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국회가 엉뚱한 쟁점에 발목 잡혀 선거구 획정조차 못했던 상황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물론 야당 책임만은 아니다. 그동안 야당의 법안 연계처리 전략을 맹비난하던 여당이 이번에는 테러방지법 등의 쟁점법안과 선거구 획정안을 함께 처리하자고 나섰으니 그야말로 남이 하면 불륜이요, 자기가 하면 로맨스란 식이다.

그러나 더민주가 진짜 힘을 내야 하는 것은 지금부터다. 마치 필리버스터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 분위기에 당내 강경파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바람에 필리버스터를 하루 더 연장해야 했지만 그 박수소리가 대부분 기존 지지층에서 나온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필리버스터 세계 신기록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지율은 더 오르는 추세이며 더민주는 제자리걸음인 게 그 증거다. 자기편의 환호에 열광하느라 국회를 마비시키고 선거운동에 악용한다는 여론의 역풍을 맞은 꼴이다.

새누리당도 집권당답지 않게 야당처럼 몽니나 부리다간 코앞에 닥친 총선에서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여당의 무능력이든,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든 국민의 정치혐오증을 키우기는 매한가지다. 국회는 많이 늦긴 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며칠 안 남은 19대 국회 마지막 회기를 깔끔히 마무리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유권자인 국민에 대해 속죄하는 길이다.

2. 광화문 현판의 색깔부터 틀렸다면

2010년 복원작업이 마무리된 광화문 현판을 둘러싸고 뒷말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현판의 원래 모습이 지금과 달리 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였다는 주장이 새로이 제기됐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복원작업 과정에서 고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차원에서 경복궁을 복원했다고 하지만 정문 현판에서부터 고증이 틀렸다면 다른 부분에서는 더 말하나 마나다.

광화문 현판의 원래 모습이 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였다는 것은 단순히 주장 차원이 아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 소장한 사진에서 그대로 확인되는 사실이다. 문화재제자리찾기 모임이 공개한 이 사진은 1893년 9월 이전에 촬영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뿐만 아니라 사진에 나오는 조선 군병들이 1895년 폐지된 군복을 착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사진의 역사적 시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광화문 현판이라고 해서 색깔이 고정불변인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광화문이 과거 왕조의 권력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그것을 바꾸려면 합당한 설명이 따라야만 한다. 더구나 문화재청은 광화문 복원과정에서 바탕색과 글씨 색깔이 바뀌었다는 전문가들의 일부 지적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현판을 복원했다. 이것이 문화재를 복원하고 관리하는 우리의 한심한 수준이다.

사실은 조선총독부를 헐고 경복궁을 복원하면서부터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화강암으로 건축된 총독부 청사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촘촘히 박혔던 9300여개의 소나무 말뚝을 그대로 놓아둔 채 복원작업을 밀어붙인 것이다. 전각과 담장의 겉모습이 복원됐다고는 하지만 경복궁 지하 4m 바닥에서는 바늘처럼 박힌 소나무 말뚝들이 지금도 신음소리를 내뱉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아찔하다. 그러고도 복원이 제대로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광화문 현판의 색깔 고증이 잘못됐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복원작업 이후 이미 현판이 갈라지는 사태까지 이어진 마당이다. 광화문 현판의 복원은 과거 책임자들의 잘못이지만 지금도 비슷한 사례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이러고도 민족정신을 되살리겠다며 입버릇처럼 외쳐대고 있으니 애처로울 뿐이다.

[동아일보]

3. 대기업 62%인 중소기업 임금, 격차 줄여야 청년실업 준다

지난해 중소기업의 평균 임금이 대기업의 62%로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8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벌어졌다. 통계청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5년 대기업 임금은 월평균 501만6705원으로 전년보다 3.9% 올랐지만 중소기업은 311만283원으로 3.4% 상승에 그쳤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대기업의 80% 수준이었던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2009년 65%, 2011년 62.6%로 점점 벌어지는 추세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중소기업의 경영난이 심해진 것이 큰 이유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 거래로 인한 압박을 많이 지적하지만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과 경쟁력이 대기업보다 낮아 임금 상승 여력이 크지 않은 점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014년 한국 대기업 정규직 대졸 신입사원 초임 연봉이 3만7756달러(약 3976만 원)로 일본보다 39% 많다는 보고서를 냈다. 일본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1.29배인 데 비하면 대기업 임금 수준이 너무 높은 것도 사실이다. 

임금 격차가 크다 보니 사회적 갈등은 대기업 취업난에 중소기업 구인난, 학력 인플레 유발 등 심각한 부작용이 적지 않다. 청년층이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하는 주된 이유도 낮은 임금 수준 때문이다. 중소기업에 들어갈 바에야 대기업이나 금융회사, 공무원이나 공기업 취업 준비를 하겠다는 취준생(취업준비생)이 늘면서 청년실업률은 9.5%로 치솟았다. 고실업과 중소기업 구인난의 고용시장 미스매치(부조화)를 줄이기 위해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축소는 시급한 과제다. 

일본의 중소기업 중에는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기술 경쟁력으로 임금 수준이 대기업 못지않은 ‘작지만 강한 기업’이 적지 않다.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를 통한 임금 상승과 병행해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 개편도 필요하다. 경총은 대졸 정규직 초임 3600만 원 이상(고정급)인 기업은 초임을 조정해 그만큼 신규 채용을 확대하고 임금 격차도 줄이자고 제안한 바 있다. 대기업 정규직 귀족노조의 과도한 기득권을 타파하는 노동개혁으로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야 임금 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신문]

4. 포스코·한전 이란 수주, 제2 중동 붐 기대 크다

핵 타결 이후 빗장이 풀린 이란에 진출하려는 우리 기업들의 발걸음이 본격화되고 있다. 포스코는 이란과 2조원대 제철소 건설에, 한전은 7400억원 규모의 발전소 건립에 참여하기로 했다. 때마침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이란을 방문해 양국 간의 경제 교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그동안 세계 각국이 이란 특수를 노리고 발 빠르게 움직여 도대체 우리 정부와 기업은 뭘 하나 걱정했는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포스코는 그제 이란 철강기업인 PKP사와 쇳물부터 각종 철강 제품까지 생산하는 일관제철소를 짓기로 합의각서(MOA)를 체결했다. 아니면 말고 식의 구두 계약이나 다름없는 업무협약(MOU)이 아니라 법적 구속력을 갖는 실질적인 계약서인 합의각서에 정식 사인한 것이다. 과거 정권에서 보면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 자원외교 등과 같은 사업에서 적지 않은 계약이 이뤄졌지만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보여 주기식 계약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포스코의 이란 진출은 실질적인 제철소 수출로 이어질 수 있는 단계까지 간 것이니 기대가 크다.

합의각서보다는 약하지만 한전의 이란과의 발전소 건설 계약 체결도 의미가 적지 않다. 해외 다른 기업들이 가로채지 않도록 본계약까지 성사시켜 나가야 한다. 한·이란 경제공동위원회에 참석한 주 장관도 이란으로부터 옛 도심 개발과 호텔 건설 사업에 ‘러브콜’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 이란은 37년 동안의 경제 제재 조치로 낙후된 도로, 철도, 항만 등 인프라 시설 등에 대한 재건 사업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만큼 우리 기업들이 뛰어들 사업이 널려 있는 ‘기회의 땅’이라는 얘기다.

이란은 원유 매장량 세계 4위, 천연가스 세계 1위의 자원 대국이다. 인구 8000만명의 거대 시장으로 내수 시장까지 고려하면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나라다. 글로벌 경제 침체 속에서 유일하게 시장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이란의 제재가 풀리자마자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만나 양국 교역 증대 방안을 합의한 이유가 거기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중동 4개국 순방 후 경제 재도약을 위해 ‘제2의 중동 붐’을 해법으로 내놓은 적이 있다. 바로 절호의 기회가 왔다. 활짝 열린 이란 시장을 잡기 위한 정부와 기업의 더 적극적인 도전이 필요하다.

5. 최악 국회에 남은 시간은 9일뿐이다

4·13 총선을 앞둔 2월 임시국회가 갈지자걸음이다. 그제 처리하기로 했던 선거구획정안도 테러방지법을 빌미로 한 무제한 토론 정국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그제 심야 비대위에서 필리버스터 중단을 결정하고도 3·1절인 어제 추인 여부를 놓고 의원총회 등에서 온종일 진통을 겪었다. 선거를 40여일 앞두고도 표밭 구획 정리도 마무리 짓지 못하는 판이다. 이러니 노동개혁이나 민생 법안 처리는 기약조차 할 수 없다. 여야는 19대 국회가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는 순간까지 정쟁으로 얼룩진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임을 유념하기 바란다.

가뜩이나 최악이라는 오명을 듣는 19대 국회였다. 그 까닭이 뭐였겠나. 민생을 돌보는 데 꼭 필요한 법안은 정쟁을 벌이며 끝없이 지연시키면서 없어도 그만인 법안들은 무더기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여야 의원들은 제 몫 찾기에는 서슴없이 짝짜꿍했다. 각계 이해집단의 민원을 반영하는 수많은 의원 입법에는 앞다퉈 총대를 멨지만, 공직 부패를 막기 위한 ‘김영란법’의 규율 대상에서 현역 의원들은 쏙 뺀 게 대표적이다. 그러니 야권이 재·보선 때마다 정권심판론을 들고나왔지만 먹혀들 턱이 없었다. 정부·여당이 민생을 살리는 데 별반 유능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유권자의 눈에는 각종 경제활성화법의 발목을 잡는 야권의 태도가 더 못 미더웠기 때문일 게다.

선거구획정안을 담은 공직선거법과 테러방지법을 놓고 벌인 여야의 정략은 목불인견이었다. 애초 여당이 테러방지법과 공직선거법 처리를 연계한 일도 잘못이었다. 아무리 테러방지법이 시급하더라도 발등의 불인 선거구 획정과 한데 묶어 야당식 연계 전략을 쓴 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일주일 넘게 해온 필리버스터 중단을 스스로 결정하고도 의원들이 뒷북 갑론을박을 벌인 것은 더 황당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지금의 법안보다 더 국가정보원에 폭넓은 수사권을 준 테러방지법을 발의했던 야당이 이제 뼈 빼고 살 뺀 ‘맹물 법안’으로 북한의 테러를 막겠다니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혹여 더민주는 필리버스터라는 정치 게임에 대한 일각의 관심을 다수 국민의 지지로 착각해선 안 될 게다. 필리버스터 이후 어디 여론조사에서 야당 지지도가 올라갔던가. 19대 국회가 비효율적인 정쟁 국회라는 오명을 20대 국회에 대물림해선 안 된다. 여든 야든 오늘부터 10일까지 남은 회기 중에라도 지지층 결집에만 골몰하지 말고 시급한 민생 법안 절충에 당력을 쏟기를 당부한다.

6. 北 핵포기 않고는 대화 없다고 밝힌 박 대통령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 채택을 목전에 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정권에 생존 차원의 핵 개발 포기를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어제 97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핵 개발에만 집중하는 것이 북한 정권을 유지시킬 수 없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며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와 압박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오늘 채택될 예정인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해 “가장 강력하고 실효적”이라고 평가하면서 북핵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단호한 메시지를 아울러 전했다. 유엔 안보리 제재로 압박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변화가 있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밝혔다. 박 대통령은 국제 공조를 강조하면서 주변국의 적극적인 동참을 언급했다. 중국과 러시아 등에 우회적으로 협조 요청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원칙적 수준이지만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처음으로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핵 문제에 대한 북한의 선택을 강조하면서 “대화의 문을 닫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태도 변화가 있을 경우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는 지속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지만, 북한이 선(先) 비핵화 의지를 밝힐 경우 6자회담 재개 등의 다양한 대화 채널을 가동하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존 켈리 미국 국무부 장관도 밝혔듯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목적에는 북한을 비핵화를 위한 대화의 장으로 이끄는 것도 포함돼 있다. 국제사회의 북핵 개발을 저지하려는 의지를 희석시키는 모호한 평화협정 논의를 차단하고 북한의 확실한 태도 변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한 것이다.

위안부 문제도 중요한 화두였다. 지난해 말 전격적으로 타결된 한·일 간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이행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성실한 합의 이행을 통해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합의의 취지와 정신을 온전히 실천으로 옮겨서 미래 세대에 대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은 이른바 ‘불가역적’ 합의의 성립은 일본의 향후 실천에 좌우된다는 점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아베 정권이 위안부 합의 이후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해 우리 국민들의 정서를 자극하고 있는 작금의 사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녹아 있다.

유례없이 강력한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이 오늘 채택될 예정이다. 북한의 주요 자금원을 차단하기 위해 육상과 해상은 물론 하늘까지 봉쇄하는 수준이다. 안보리 제재와 별도로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의 자체 제재도 조만간 발효된다. 북한의 후원국 격인 중국마저 강력한 대북 제재에 동참한다는 의미를 북한 김정은 정권은 되새길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경제 병진이란 망상에 집착하는 한 한반도 평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핵을 껴안고 패망의 길로 갈 것인가, 핵을 포기하고 공존공영의 길로 갈 것인가 선택은 북한에 달렸다.

[중앙일보]

7. 테러방지법 처리…노동개혁법도 서둘러야

국회가 오늘 본회의를 열어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 선거구획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오랜 갈등과 대립의 대상이었던 법안들에 대해 여야가 타협점을 찾은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테러방지법만 해도 야당은 일주일 넘게 필리버스터를 이어가며 법안의 문제점을 부각했다. 국가정보원에 의한 인권과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핵심이었다. 이런 우려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한 테러방지법안 가운데 특정인에 대한 통신제한조치(감청)의 목적을 ‘테러 방지를 위해’에서 ‘국가 안전 보장의 우려가 있는 경우 테러 방지를 위해’로 강화하는 중재안을 내놓음으로써 어느 정도 해소됐다. 그럼에도 남아 있는 의구심은 정부와 국정원이 충실한 법 집행으로 씻어내야 할 것이다. 북한인권재단을 설치하고 북한인권자문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의 북한인권법도 발의 11년 만에 국회를 통과한다.

시급한 민생법안도 일부 처리된다. 금융회사의 법정 최고금리를 27.9%로 제한하는 대부업법과 워크아웃의 근거가 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서민금융진흥원을 설립하는 내용의 서민금융생활지원법 등이다. 이들 법안은 여야 간 이견이 없었던 무쟁점 법안이거나 지난 연말로 자동 일몰되는 한시법이었다. 그럼에도 선거법 등 다른 쟁점에 막혀 처리가 늦어지면서 아슬아슬한 법적 공백이 초래됐다.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업과 채권단,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가슴을 졸여야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여야의 각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회가 미루고 있는 중요한 법안들이 아직 남아 있다. 노동개혁법안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다. 노동개혁법안은 지난해 9월 노사정 대타협을 근거로 만들어졌지만 야당의 반대와 한국노총의 무효 선언으로 진통을 겪어 왔다. 관련 법안 5개 중 기간제법과 파견법 등 2개가 완전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발의된 게 불씨가 됐다. 대통령도 이를 감안해 기간제 근무를 4년으로 늘리는 내용의 기간제법을 철회했다. 하지만 중장년층 파견업종 제한을 풀고 뿌리산업에 대한 파견을 허용하는 파견법이 여전히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나마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테러방지법이 발등의 불이 되면서 여야 간 논의에서 뒷전으로 밀린 상태다. 서비스산업발전법 역시 의료영리화의 단초가 될 것이라는 의료계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고용 안정성과 의료의 공공성을 걱정하는 이런 지적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법안이 통과된다고 바로 경제가 좋아질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들 법안이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노동개혁법안은 한국 경제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촉매가 될 수 있다. 서비스산업발전법은 내수산업 육성이라는 시급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토대다. 한두 가지 문제를 이유로 전체를 반대할 사안은 아니다. 영 문제가 있으면 테러방지법처럼 타협하면 될 일이다. 19대 국회의 마지막 숙제인 이들 법안을 조속히 해결하는 여야의 노력을 촉구한다.

8. 비자 수수료 파동 따른 징계, 당장 거둬들여라

최근 벌어진 비자수수료 면제 논란과 이에 따른 외교부 좌천 파동은 잇따라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번 소동은 지난해 12월 그달 말로 끝날 예정이던 중국 등 5개국 단체관광객에 대한 비자 수수료 면제가 1년 연장되면서 시작됐다. 지난해 5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관광객이 격감하자 수수료 면제 시한을 올 연말까지로 늘린 것이다. 문제는 비자 수수료가 120명에 달하는 현지 비자 담당 보조 인력의 인건비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한 거였다. 수입이 없어지게 되자 외교부는 뾰족한 대책 없이 이들을 몽땅 해고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이는 현지 보조인력들이 사라지면 비자 발급에 큰 차질이 빚어질 거라는 점을 무시한 주먹구구식 조치였다. 뒤늦게 막심한 후유증을 깨달은 외교부는 별도의 예산을 편성해 해고를 철회하기에 이른다.

여기까지의 조치들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삼척동자도 알 부작용을 헤아리지 못한 채 현지직원 해고라는 단세포적 대응으로 파문을 일으킨 것 자체만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아무리 현지 직원이라지만 그처럼 쉽게 자른다면 누가 충성을 다해 일하겠는가.

그 뒤에 벌어진 정부의 대응은 유치하다 못해 기가 막힌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와 법무부에 수수료 면제 연장을 재고해 달라는 공문을 보낸 외교부 담당자들이 보복성 인사 조치를 당했다고 한다. 청와대에서 항명성 ‘공직기강 위반’이라며 좌천성 인사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각 부처 수뇌부들이 결정한 사안이라도 부작용이 막대하다고 판단되면 시정을 건의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조직을 살리는 소통이다. 자유롭고 원활한 말길은 절대 막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비자대란’을 막은 외교부 담당 직원들에게 상은 못줄 망정 좌천을 지시했다고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다. 청와대는 지금이라도 즉각 징계 조치를 거둬들여야 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공무원을 벌하면 누가 고언을 하고 잘못을 바로잡으려 하겠는가.

9. ‘세월호 교실’ 갈등, 부모의 마음으로 풀 때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이 쓰던 교실을 둘러싼 갈등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풀릴지 주목된다. 한국 사회의 갈등이 교실이란 공간에 집약돼 있다는 점에서 그 매듭이 소통의 정신으로 풀리길 기대한다.

경기도교육청과 학교 측, 재학생 학부모 대표, 유가족 대표 등이 지난달 28일 단원고 정상화를 위한 협의회를 열고 ‘사회적 합의로 교실 문제 등을 해결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유가족과 재학생 학부모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조기에 풀기로 한 것이다. 이날 모임은 한국종교인평화회의(KDRP)가 4·16연대와 도교육청의 중재 요청을 수용해 이뤄졌다.

그간 희생 학생들이 사용했던 10개 교실을 놓고 유가족이 “안전 교육의 장으로 활용돼야 한다”며 존치 입장을 고수한 반면 재학생 학부모들은 재학생들에게 교실을 돌려 달라고 요구해왔다. 지난달 16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교실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재학생 학부모 등의 저지로 무산되는 등 갈등이 외부로 분출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이 같은 대립에 대해 사회적 차원에서 해법을 모색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원통하게 희생된 자녀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교실을 남겨두고 싶은 희생 학생 부모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울감과 불안감 등으로 정상적인 교육을 받기 힘들다는 재학생 학부모들의 하소연에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300여 명의 신입생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문제 해결을 더 이상 늦출 수도 없다. 종교계가 중재에 나선 만큼 서로 마음을 터놓고 협의에 나서길 바란다. 특히 경기도 교육 행정을 책임지는 이재정 교육감은 “교실은 본래의 교육 목적대로 써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하지 말고 적극적인 자세로 설득과 지원에 나서야 한다.

오늘 입학식에 재학생 학부모와 유가족 대표가 함께 참석해 신입생 등과 학부모들에게 논의 결과를 기다려 달라고 호소한다고 한다. 이제 같은 부모의 마음으로 최선의 결론을 내야 할 때다.

[매일경제]

10. 3개월째 두자릿수 감소한 수출 특단대책 필요하다

수출이 14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다. 2001년 3월~2002년 3월(13개월) 역대 최장 기간 마이너스 성장 기록도 갈아치웠다. 특히 작년 12월(-13.8%), 지난 1월(-18.5%)에 이어 3개월 연속 두 자릿수대 감소세가 이어져 우리 경제의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월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2.2% 감소한 364억달러로 잠정 집계됐다. 중국 경기 둔화, 저유가 등 대외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은 데다 소비심리 급랭, 주택 가격 하락 반전 등 내수 침체가 심해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수출마저 최장기 감소세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행인 것은 1월 수출은 단가·물량 모두 감소했지만 2월에는 물량이 11.2% 증가했다는 점이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29.7%) 화장품(22.4%) 등 신규 품목 수출이 늘고 컴퓨터(6.2%) 일반기계(2.4%) 등 일부 주력 품목 수출이 증가세로 돌아선 점, 지역별로는 베트남·미국 수출이 증가세로 전환된 점도 반가운 대목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2월 차이신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전월(48.4)보다 또 떨어진 48.0을 기록한 것은 불길한 징조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밝힌 2월 제조업 PMI도 49.0으로 2011년 11월 이후 4년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지난달 29일 대형 은행의 지급준비율을 17.5%에서 17%로 0.5%포인트 전격 인하하며 경기 방어에 나섰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준율 인하로 7000억위안(약 132조원)의 유동성 공급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지만 유럽, 일본 등 주요국들 간에 양적 완화와 환율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고 각국이 돈을 풀수록 통화 유통 속도는 더 떨어지는 추세라는 점에서 단기간 내 반전은 힘들어 보인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가 각오를 다져야 한다. 의례적인 무역투자진흥회의가 아니라 대통령 직속 수출 증대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막힌 곳은 어딘지, 애로사항은 뭔지 발로 뛰며 독려해야 한다. 수출 품목과 수출 지역을 하나라도 더 발굴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게 중요하다. 민감한 시기인 만큼 통화 환율 정책에도 비상한 관심을 기울여야 함은 물론이다.

주요 신문칼럼 

1. [뉴시스][기자수첩]휴대폰 액정이 깨지니 보이는 것들

최근 액정 내부가 깨졌는지 화면이 나오지 않았다. 비싼 수리비를 핑계로 새 폰을 사기로 했다. 새 기기를 알아보고 온라인 가입신청서를 작성했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넣고, 사용 중인 번호를 입력했다. 본인인증이 필요하단다. 방법은 세 가지다. 첫 번째, 자기 명의의 휴대폰 문자를 통해 본인을 인증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휴대폰 액정이 나갔다. 문자를 볼 수 없다.' 

두 번째, 공인인증서를 통한 방법. 최근 컴퓨터를 포맷해 공인인증서가 없다. 은행 홈페이지에서 인증서 재발급을 신청했다. 절차가 있다. 자기 명의의 휴대폰 문자를 통해 본인을 인증해야 한다. 

그런데 '핸드폰 액정이 나갔다. 문자를 볼 수 없다.' 

세 번째, 아이핀 번호를 이용한 방법이다. 아이핀에 로그인했다. 아이핀 번호 발급을 클릭했다. 절차가 있다. 앱이나 자기 명의의 휴대폰 문자를 통해 본인을 인증해야 한다. 

그런데 '휴대폰 액정이 나갔다. 문자를 볼 수 없다.' 

인터넷을 통해 휴대폰 없이 문자를 확인하는 방법을 찾았다. 통신사에 계정을 만들어 문자를 컴퓨터로 확인하는 방법이다. 유료다. 이 서비스를 신청하기 위해 통신사에 전화했다. ARS를 통해 전화번호와 생년월일을 입력했다. 본인이 인증됐다는 기계음과 함께 상담원이 연결됐다. 

휴대폰 액정이 나갔다. 그래도 문자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상담원이 명의자를 확인하고 용건을 물었다. "컴퓨터로 문자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본인 명의의 휴대폰 문자를 통해 본인을 인증해야 한다"고 했다. 전화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문자를 보냈다고 했다.

그런데 '휴대폰 액정이 나갔다. 문자를 볼 수 없다.' 

은행에서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아이핀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이스에선 아이핀 번호 발급을 위해 "서울 여의도 본사로 직접 찾아와 얼굴을 보여달라"고 주문한다. 

이게 인터넷 가입자 비율 세계 최고라는 IT강국의 현주소다.

과거 웹사이트 회원 가입하기 위해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를 통한 본인인증, 집주소, 직장, 취미 등이 필요하던 시절이 있었다. 해도 해도 너무하는 규제라는 반발로 이젠 이메일만 있으면 본인을 인증해 가입이 가능하다.

정부는 핀테크 활성화를 위해 각종 규제를 풀겠다고 나섰고, 나름 여러 방면에서 열심히 한다고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도 이렇게 암담하다. 휴대폰 액정이 나가면 문자를 볼 수 없고, 본인 인증 하나 맘대로 못 한다. 결국 계좌이체든 송금이든 초보적 금융거래조차 막힌다. 

정부나 금융계는 부인하지만 분명한 건 모든 것을 휴대폰 문자로 통하게 획일화한, 우리의 정보 및 금융서비스 수준은 '우간다'만도 못하다는 점이다. 

휴대폰 액정이 깨지니 많은 것들이 보였다.


2. [이데일리]피자값만 598만원‥미국의 '돈' 선거

최근 뉴욕타임스(NYT)에 아주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젭 부시 전(前) 플로리다 주지사가 1억3000만달러(약 1607억원)를 어떻게 날려 먹었는가란 내용이다. 

부시 전 주지사는 아버지와 형이 모두 대통령인 미국의 대표적인 ‘로열패밀리’ 출신이다.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끌어모았던 부시지만 그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사퇴했다. 

존재감 없이 사라지면서 부시가 쓴 돈도 허공으로 날아갔다. NYT에 따르면 부시 캠프는 광고에 8400만달러(1039억원), 컨설팅 회사에 1000만달러(124억원), 인건비로 830만달러(103억원), 각종 지역모임 지원에 9만4100달러(1억1635만원)를 사용했다. 심지어 발레 파킹하는데 1만5800달러(1954만원), 그리고 피자를 주문하는 데에도 4837달러(598만원)를 썼다. NYT는 “부시는 인기가 떨어지는 와중에도 자신의 팀을 배고픈 상태로 놔두질 않았다”고 평했다. 

미국의 대선은 그야말로 ‘쩐(錢)의 전쟁’이다. 그것도 상당히 많은 부분이 공개적으로 이뤄진다. 미국 갑부들은 대통령이 될 것 같은 사람에게 막대한 정치자금을 제공한다. 뒷돈이 아니라 자기 이름으로 당당하게 싸인까지 해서 준다. 마치 주식에 투자한 것과 비슷하다. 

미국 정치인은 돈을 낸 사람을 외면할 수 없다. 기부금 장부는 미국 정치인의 족쇄이자 자금의 원천이다. 소수 자산가들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은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일이다. 

NYT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전체 1억2000만가구 가운데 단지 159가구가 낸 돈이 정치 기부금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NYT는 이들 미국 갑부들이 사는 집을 항공사진을 공개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난 대저택이다.)  미국 금융의 심장부 월스트리트 역시 미국 정치판의 핵심적인 돈줄이다. 비영리 정치자금 감시단체 CRP(Center for Responsive Politics) 자료에 따르면 미국 주요 대선 후보의 기부금 2억9000만달러 중에서 3분의 1 이상이 월스트리트에서 나왔다. 

월스트리트의 돈은 보통 공화당으로 몰리기 마련이지만 이번엔 민주당 유력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前) 국무장관에게도 상당한 돈이 집중됐다. 클린턴 전 장관이 지난해 하반기에 모은 2500만달러 중에서 1500만달러가 월스트리트에서 흘러나왔다. 헤지펀드계 거물 조지 소로스는 700만달러 이상을 클린턴에게 투자했다. 클린턴은 부시 다음으로 많은 돈을 모았다. 

월스트리트의 돈을 거의 받지 않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클린턴은 월가를 개혁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공격하는 건 상당히 근거 있는 얘기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는 클린턴과 비교하면 모은 정치자금이 5분의1도 안된다. 원래 돈이 많은 트럼프는 남의 돈을 받을 필요가 없다. 어쩌면 정치자금에서 가장 자유로운 후보가 트럼프다. 그는 자신 있게 부자 증세를 외친다. 

부시는 엄청난 돈을 날려 먹었지만 그가 돈을 댄 부자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건 부시에게 돈을 낸 사람들의 선구안이 부족한 탓이니까 말이다. 미국 정치판은 철저히 주는 대로 받는(give and take) 문화다.


3. [동아일보][횡설수설/한기흥]이토 히로부미에게 현혹된 조선

영국 ‘데일리메일’의 특파원으로 한국에서 러일전쟁과 3·1운동을 취재한 프레더릭 매켄지는 한국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일본을 신랄히 비판하는 글을 남겼다. 그런 그가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선 “한국의 독립을 박탈하는 일에 종사했지만 한국의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다른 일본인들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호감을 얻었으며 존경을 받았다”고 평했다. 친일파들만 만났나 싶어 관련 자료를 뒤적이다 보니 마음이 편치 않다.

“이토 통감은 덕과 공로가 높고 학문은 고금을 통달하였으며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실로 크게 떠받들고 지탱하여 준 공로가 있기에 짐은 언제나 존중하는 사람이다.”(순종실록 1907년 11월 19일) 순종이 이토를 태자태사로 임명해 영친왕 교육을 맡기고 황족인 친왕(親王)으로 예우하겠다며 한 발언이다. 1905년 을사늑약 후 국권을 빼앗기면서도 왕이 그런 생각을 했으니 대신들이라고 침략의 원흉에 감히 맞섰겠는가.

이토가 초대 한국통감으로 서울에 온 것은 꼭 110년 전인 1906년 3월 2일이었다. “조선을 독립국으로 승인해야 한다고 처음 말한 사람은 바로 본인이다. … 일본은 한국을 합병할 필요도, 그런 생각도 없다….” 부임 직후 ‘제1회 한국시정에 관한 협의회’에서 그는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았지만 당시 지도층은 도로망과 교육시설 건설 등 그가 내보인 당근에만 관심을 쏟았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이토 처단에 대해 고종과 순종의 탄식을 전한 일본 기록을 보면 배신감이 들 정도다. 망국엔 다 이유가 있다. 

이토는 “한국에 인물이 있었다면 오늘과 같은 상태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나라를 빼앗겼으니 항변도 어렵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은 어떤지 국정을 책임진 정관계 인사들을 떠올려본다. 격동의 한반도에 대한 주변 4강의 이해와 전략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지, 행여 검은 속내를 숨긴 현대판 이토에게 현혹당하는 일은 없을 것인지…. 당대에도 걱정이 태산인데 후대는 이 시대를 과연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다.


4. [동아일보][@뉴스룸/임희윤]비틀스, 스키틀즈, 기틀즈

“잘하면 아이유처럼 차트 줄세우기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준비 많이 했어요. 워낙에 전설이잖아요.”(지난달 28일 N 음악 서비스 사이트 관계자)

지난달 29일 0시, 비틀스 17개 앨범의 국내 디지털 음원 서비스가 반세기 만에 처음 개시됐다. 합법적 방식으로 비틀스의 음원을 국내에서 구입해 듣는 법은 그 전까지는 없었다.

멜론, 지니, 엠넷, 벅스, 네이버뮤직을 포함한 국내 10개 음원 서비스 사이트들은 이날 일제히 메인 화면에 비틀스 배너를 게시했다. 음원을 듣거나 내려받으면 음반이나 티셔츠를 주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엑소, 빅뱅의 컴백에 맞먹는 대규모 프로모션이었다. ‘Yesterday’ ‘I Want to Hold Your Hand’를 비롯한 주요 10∼20곡을 완전 무료 공개하는 파격적인 홍보수단도 동원됐다. 국내 한 음원 서비스 관계자는 “음악 팬으로서 비틀스의 역사적인 디지털 서비스 개시에 일조하게 돼 영광이다. 기대가 크다”고 했다. 그러나 희망은 꿈이었다.

1일 발표된 2월 29일자 멜론의 일간 종합(가요, 팝 통합) 차트 100위권에 비틀스의 음원은 한 곡도 안 들어갔다. 팝 차트 100위권에 그나마 든 9곡도 전부 메인 화면에 노출된 히트곡 모음집 ‘1’에 담긴 것뿐이었다.

한국에서 비틀스를 누른 2월 말의 팝스타는 단연 밀젠코 마티예비치다. 미국 헤비메탈 밴드 스틸하트의 보컬. ‘She‘sGone’(1990년)으로 유명한 그는 팝 음악계 주류에선 이미 몇 발짝 물러난 옛 록스타이지만 MBC TV ‘일밤―복면가왕’에 출연한 ‘번개맨’이 실은 그였음이 지난달 28일 저녁에 밝혀지자 10, 20대에게도 화제가 됐다. ‘(복면을) 쓰고 부르면 유명해지고 벗고 부르면 망한다’는 가요계 격언이 물 건너온 마티예비치에게도 맞아떨어진 셈이다.

‘2분 30초 안에 끊어라.’ 1960년대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런 공식이 있었다. 길이가 3분이 넘어가면 히트가 힘들다는 것이다. 팝 제작자들은 인상적 후렴구를 2, 3번 반복한 뒤 서둘러 끝나도록 음악을 자르는 데 골몰했다. 비틀스는 여기에 반기를 들었다.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년) 같은 음반을 통해 앨범 전체를 통으로 들었을 때 쾌감을 느끼도록 길을 개척했다. 곡 아닌 앨범의 예술을 만들었다.

비틀스, 핑크 플로이드, 롤링 스톤스…. 옛 음악 전설들의 젊은 팬 확보 전략은 요즘 글로벌 거대 음반사에 의해 거의 매년 계속 역부족으로 보인다. 지금의 음악 소비자들은 수많은 채널에서 밀려오는 정보와 재미의 홍수 속에 산다. ‘I Want toHold…’(2분 24초)는 스마트폰 속 52초짜리 드라마보다 두 배 더 길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과자처럼 문화를 즐긴다고 해서 그런 걸 ‘스낵 컬처’라 부른다.

한때 해외 유명 과자 ‘스키틀즈(Skittles)’를 모방한 ‘비틀즈’란 국산 제품이 출시돼 인기를 끌었다. ‘진짜’나 ‘전통’ 같은 말을 너무 강조하면 거부감이 든다. 요즘 세상에 진짜가 어디 있나. 그래도 가끔 핏줄을 확인하고 싶어질 때는 있다. 역사를 이룬 세계 예술의 기틀들, 또는 대동맥.


 5. [동아일보][이기호의 짧은 소설] 아들의 기도

늦었다. 그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계속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저녁 8시 25분. 담임목사 부부와 장로, 안수집사가 집으로 찾아온다고 약속한 시각은 저녁 8시. 저녁도 먹지 않고 최대한 빨리 온 것인데…. 그래도 또 아내는 찬바람 쌩쌩 날리면서 두 눈을 흘겨대겠지. 그는 쩝, 입맛을 다셨다. 아, 아니다. 목사님도 있고 하니까 내색은 못 하겠구나. 속 깊고 인자한 척, 모든 걸 다 이해한다는 듯 나를 대하겠지. 그런 걸 생각하면 이렇게 목사님이 집으로 직접 찾아오는 심방이 꼭 나쁜 것만도 아니네. 좀 귀찮기는 하나, 어쨌든 목사님 앞에서는 화목한 가정 흉내라도 낼 수 있으니까. 자기도 느끼는 게 있으면 목사님 가자마자 남편을 쥐 잡듯 닦달해대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그는 조금 화가 나기도 했다. 그는 한 교통사고 취급 전문 로펌에 소속되어 있는 변호사였다. 보험회사를 상대로 교통사고 피해자들의 위임을 받아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그의 주된 업무였다. 사망 사고는 7%, 일반 부상은 10% 하는 식으로 그는 보험회사로부터 받아내는 보상비의 일부를 수임료로 받았다. 교통사고는 매일 끊임없이 일어났고, 원만하게 합의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도시락을 먹어가며 교통사고 사실확인원이나 신체감정서를 들여다보며 피고답변서를 준비했다. 의뢰인에게 화해권고를 받아들일 것을 전화로 종용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자정을 훌쩍 넘기는 때가 많았다. 그러면….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남들 남편보다 많은 월급을 가져다주면, 고마워하고 소중하게 생각해야지, 이건 무슨 옆집 강아지 대하듯 말 한 번 따뜻하게 건네는 법이 없으니…. 그저 이제 겨우 초등학교 4학년 아들 하나만 금이야 옥이야 하고 앉아 있으니…, 그는 괜스레 위축됐던 마음을 풀어보려고 길게 호흡을 한 번 했다. 그리고 집 현관문을 열었다.

심방은 다 함께 찬송가를 부르고, 담임목사의 축복 기도를 받고, 성경 말씀을 듣는 순서로 이루어졌다. 그는 아내와 아들 사이에 앉아 경건하게 기도를 하고, 찬송가를 불렀다. 힐끔힐끔 아내의 얼굴을 살폈으나, 역시나 그의 예상대로 별다른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심방이 그럭저럭 마무리되어 갈 때쯤 담임목사가 말했다.

“제가 이렇게 심방을 하면 제 기도만 하는 게 아니고, 성도님들 한 분 한 분 기도를 듣는 시간을 꼭 갖습니다. 그래야 저도 성도님들의 어려움을 알고 함께 기도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 김승우 어린이 먼저 기도를 하고, 그 다음에 김성철 성도님, 이정은 집사님 순서로 기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담임목사가 그렇게 말하자 장로와 안수집사가 먼저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었다. 그와 그의 아내는, 어리둥절 자신들을 쳐다보는 아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그의 아들은 잠시 주눅이 든 표정을 짓더니 두 눈을 감고 소리 내어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주님, 그럼 제 소원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소원은…. 이 땅에서 특목고와 자사고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특목고와 자사고 때문에 작년부터 영어와 수학 과외를 받았습니다. 내년부터는 스펙을 쌓기 위해서 과학경시대회도 나가야 한답니다. 그거 때문에 과외도 또 하나 늘었습니다. 일반고에 들어가면 대학도 다 끝이라고 엄마가 말했습니다. 이 땅의 많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특목고와 자사고 좀 꼭 문 닫게 해주세요…. 주님, 그리고 엄마와 아빠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엄마와 아빠가 각방을 쓰지 않게 도와주세요. 엄마는 아빠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싫다고 하십니다. 아빠는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술을 많이 마신다고 합니다. 주님, 아빠 일이 줄어들도록 교통사고 사망자가 많이 늘어나게 해주세요. 그래야 아빠 일이 깔끔해진다고,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 아빠가 돈도 더 많이 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 우리 아빠와 엄마를 위해서 교통사고 사망자가 더 많이….”

그의 아들은 기도를 하다가 끝내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그는 감고 있던 눈을 떠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내와 그의 눈이 아들의 머리 위에서 마주쳤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