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노컷뉴스]
1. 한국말 연설 UN대사 "같은 민족에게 들으라고 그랬다"
오준 주유엔대표부 대사는 3일 오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채택된 대북제재 결의(2270호)와 관련, 중국이 제재 이행을 얼마나 충실히 할지 여부에 대해 "지키지 않을 것 같으면 왜 동의했겠느냐"며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오 대사는 이날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유엔대사들의 평가인데,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중국이 강력한 제재를 많이 받아들였다, 동의했다, 이렇게 봐야 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북한이 계속 도발을 해서 동북아에 긴장이 조성되고 군비경쟁이 일어나고 하는 것이 중국의 이해에 맞지 않는다 라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유엔 회원국이 안보리 제재 결의안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 대해서는 "(유엔 제재위원회가) 이행 감시를 통해 가급적 철저히 이행되도록 하기 때문에, 100% 이행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효과적인 이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 대사는 이번 제재안의 가장 큰 특징에 대해 웬만한 것은 다 잡아내는 '포괄적 방식'(catch all)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대량살상무기와)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외화벌이라든지 물자 이동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북한의 무기 개발에 기여할 수 있다면 차단하겠다는 것"이라며 "굉장히 범위가 확대되고 정도가 강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오 대사는 중국이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동시병행 논의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어떤 것을 '동시'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비핵화가 전제가 돼야 하는 점은 틀림없는 것 같다"고 말해 우리 정부의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오 대사는 이날 새벽 안보리 회의에서 영어 연설 도중 한국어로 '깜짝 발언'한 배경에 대해서는 "같은 민족으로서 그런 무기(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점을 좀 전달하기 위해서, 일부러 다른 이사국들도 들으라고 한국말 표현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회의 때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비판하며 "한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북한의 통치자에게 부탁합니다. 이제 그만 하세요(please stop it now)"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이데일리]
2. 필리버스터로 무엇을 얻었는가
우리 정치사에서 47년 만에 다시 등장한 필리버스터가 9일간이라는 세계 최장 기록을 세우면서 막을 내렸다. 개인 기록에 있어서도 김광진, 은수미, 정청래, 이종걸 의원이 과거의 기록을 연달아 갱신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당 의원 38명이 계속 릴레이로 연단에 나섰다는 점에서도 당연히 세계 기록이다.
야권에서는 이번 필리버스터로 상당한 정치적 성과를 거뒀다며 무척 고무된 듯한 분위기다. 실제로도 필리버스터에 찬동하는 박수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정치에 무관심했던 국민들의 눈길을 국회로 끌어들인 측면이 없지 않다. 의원들이 용변을 참으면서까지 단상을 지키며 열변을 토하는 모습에서 정치인들에 대해 새로운 면모를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표면적인 분위기로만 평가할 것은 아니다. 그 명분이 적절한 것이었는지부터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을 시정하려는 의도였다지만 일반 국민들을 납득시키기에는 설득력이 모자랐다. 유엔총회에서 대북 제재 결의안이 논의되고 북한이 청와대를 겨냥해 독설을 늘어놓는 시점이었다. 그런데도 서로 잘했다며 격려하고 부둥켜안는 모습은 하나만 알고 둘은 지나친 탓에 생겨난 결과다.
더구나 4·13 총선을 앞두고도 선거구를 획정짓지 못함으로써 유례없는 위헌 사태까지 초래됐던 마당이다. 우선적인 임무를 내팽개치고 9일 동안이나 필리버스터에 매달렸다는 사실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야만 한다. 민생법안에 이토록 열성을 보인 적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의원들이 그 자체로 선거운동 효과를 거두는 동안 경쟁자로 나선 예비후보들은 선거구가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불이익을 받아야 했으니, 올바른 상황은 아니었다.
이제 필리버스터가 끝나고 여야가 다시 본격적인 선거 국면으로 돌입하고 있다. 테러방지법과 선거법도 절차에 따라 이날 저녁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필리버스터로 변한 것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결국 선거운동에 지나지 않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야권으로서는 그것만으로도 소득으로 간주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발목잡는 야당’이라는 이미지는 더욱 굳어지게 됐음을 깨달아야 한다. 무기력하게 끌려다닌 여당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3. 유엔 제재 결의안 이후가 중요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오늘 새벽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따른 고강도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 러시아의 몽니로 하루 늦춰지긴 했지만 북 도발에 대한 유엔 차원의 국제 제재가 본격 시작된 것이다. 미국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한 목소리로 대북 제재에 나선 것은 반드시 북한의 핵 야욕을 포기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출이다.
이제 공은 북한으로 넘어갔다. 결의안은 북한의 모든 화물 검색, 항공유 수출 금지, 광물거래 차단 등 핵·미사일 개발 자금줄을 차단하는 조치를 거의 다 담았다. ‘주민생계 목적’ 등 예외 조항으로 허점이 없지 않지만 과거 20여년 간의 안보리 제재 가운데 가장 강력한 수준이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대화의 길로 나올 것인지, 제재에 맞서다 핵을 안고 고사할 것인지를 분명히 선택해야 할 것이다.관건은 중국이 결의안을 얼마만큼 성실하게 실천하느냐다. 중국이 겉으로는 “안보리 결의를 전면적으로 이행할 것”이라면서도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협정 병행협상’을 제안한 속내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제재보다는 대화에 방점을 찍은 행보다. 지속적으로 대북 제재에 나설지 의구심이 든다. 북한과의 국경지대 무역을 방치하는 등 구멍이 뚫린다면 제재가 무위에 그칠 우려가 없지 않다.
미국의 기류 변화도 간과할 수 없다. 미국은 결의안 논의과정에서 중국이 반발하는 주한미군 사드 배치 문제에서 한 발 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중국이 안보리의 고강도 북한 제재를 수용하는 대신 미국은 사드 배치에 유연성을 보이기로 전략적 거래를 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최근 북한과 비공식으로 평화협정 문제를 협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대북 제재가 실효를 거두려면 국제사회의 공조, 특히 중국과 미국의 역할이 긴요하다. 개성공단 폐쇄 등 우리의 독자 제재로는 한계가 있다. 외교력을 총동원해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면서 중국 등 주변국의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 대북제재가 본격화하기도 전에 ‘병행 협상론’이 힘을 받게 되면 우리는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대북 제재는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동아일보]
4. 총선 42일 전 ‘野통합 제안’ 김종인, 국민은 안중에 없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어제 “야권이 4·13총선 승리를 거두기 위해 통합에 동참하자는 제의를 드린다”며 ‘당 대 당’ 야권 통합을 제안했다. 대통령 후보를 염두에 두고 있을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를 겨냥해 김 대표는 “이기심에 집착하지 말고 총선에서 야권이 승리하고 내년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이루기 위해 단합된 모습을 보여줄 것”을 촉구했다. 이에 안 공동대표는 “지금 이 시점에 그런 제안을 하는 의도가 의심스럽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천정배 공동대표와 김한길 상임선대위원장은 “진의를 알아보겠다”며 온도 차를 보여 ‘통합 폭탄’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듯하다.
야권 통합 또는 후보 간 연대 논의는 김 대표가 꺼내지 않았더라도 불거졌을 일이었다. 불과 몇 %의 득표율 차로 당락이 갈리는 수도권 박빙 지역에서 ‘일여다야(一與多野)’는 야권에 불리한 구도임이 분명하다. 새롭게 획정된 선거구에서 수도권 의석이 10석이나 늘면서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선 수도권에서만이라도 선거연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나왔다. 더구나 19대 총선에서 더민주당의 전신인 통합민주당이 통합진보당과의 선거연대로 재미를 본 기억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 대표가 총선을 42일 앞둔 이 시점에 통합 제의를 한 것은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본보 인터뷰에서 안 대표에 대해 “정직성이 결여돼 있다”고 했고, 국민의당과의 통합에 대해서도 ‘시기상조’라고 했던 김 대표가 자신이 한 말조차 뒤집는데 납득할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통합 협상을 하기엔 시간이 부족한데도 사전 의사 타진도 없이 불쑥 통합을 말하니까 ‘필리버스터 국면 전환용’, ‘국민의당 흔들기용’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더민주를 탈당한 분들 대다수가 당시 지도부의 문제를 걸고 탈당을 했는데, 그 명분은 지금 다 사라졌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총선 지휘탑이라고 해서 실질적 오너인 문재인 전 대표와 친노(친노무현) 친문(친문재인) 세력이 정리됐거나, 운동권 체질이나 ‘낡은 진보’ 청산이 완결됐다고 보기도 어렵다. 안철수 대표가 “먼저 당내 정리부터 하기 바란다”고 일침을 놓은 것도 이 때문일 터다.
친노 패권주의 정당을 개혁해 ‘수권 정당’을 만들겠다던 김 대표가 총선 승리만을 위해 이미 떨어져 나간 당을 다시 붙이자고 하는 것은 정당 발전에도, 민주정치 발전에도 역행한다. 유권자의 선택권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과 더민주당 모두에 실망해 제3당에 기대를 걸었던 유권자는 선택할 기회마저 뺏기는 일이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회견에서 야권 분열에 대해 “4년 동안 제대로 일하지 않다가 국민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 하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김 대표가 창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국민의당을 분열시키면서 총선 정국을 주도하기 위해 ‘통합 폭탄’을 던진 것이라면 노회한 책사(策士)의 선거용 정치공학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선거 후 정책연대를 한다면 몰라도 선거 전에 당을 뗐다 붙였다 하는 건 선진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행태다.
5. 테러방지법 괴담, 개혁 못한 국정원 탓도 크다
더불어민주당이 어제 이종걸 원내대표를 마지막으로 192시간 25분 만에 필리버스터를 끝내면서 테러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미국의 9·11테러를 계기로 법안이 제출된 지 15년 만에 테러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단을 갖게 된 것이다.
그동안 야당 의원들은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국가정보원이 국민의 민감한 개인정보와 금융계좌까지 모두 들여다본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더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아마 국내 휴대폰 공장이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광주 서을 출마 예정인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는 영장 없이 개인정보를 정보기관에 제공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설계해야 하므로 정보통신 업계가 우려한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시민단체에 의해 고발됐다. 인터넷에선 ‘아이폰으로 갈아타야 한다’는 말도 파다하다. 2008년 ‘광우병 괴담’을 다시 듣는 듯하다.
테러방지법이 테러단체나 조직원, 위험인물로 대상을 한정한 취지를 무시하고 전 국민이 피해자가 될 것처럼 퍼뜨리는 것은 극단적인 과장이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국정원을 음습한 ‘악의 총본산’으로 몰아가는데도 국정원에서 적극 해명하지 않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과거 국정원의 불법 행위를 기억하는 이들은 국정원이 테러방지를 핑계로 공작을 할 수 있다고 의구심을 품고 있다. 김영삼 정부의 권영해 안전기획부장은 북풍·총풍 사건으로, 김대중 정부의 임동원·신건 국정원장은 불법 감청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의 원세훈 국정원장은 대선 댓글 개입으로 구속됐고 최근에는 대공수사에 문외한이지만 민정수석과 친한 최윤수 2차장이 임명돼 신뢰를 깎아먹기도 했다.
국정원은 먼저 어두운 흑(黑)역사를 극복하고 개혁에 매진해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부터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테러방지도 제대로 할 수 있다.
[서울신문]
6. 사교육 배불리지 않는 자유학기제 실현을
새 학기 시작으로 중학교 자유학기제가 전면 시행에 들어갔다. 자유학기제는 중학교 한 학기 동안 지필고사를 치르지 않고 진로와 적성을 찾는 데 주력하게 하는 교육 과정이다. 전국의 모든 중학교가 2학년 1학기까지의 세 학기 중 한 학기를 선택하게 돼 있다. 요즘 아이들은 미래의 꿈이나 계획 없이 맹목적인 학습에 매달리는 것이 큰 문제다. 여전히 논란이 적지 않지만 그런 답답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다면 자유학기제는 무엇보다 가치 있는 교육 정책일 수 있다.
문제는 교육 현장에서 그 취지를 얼마나 살릴 수 있을지 하는 점이다. 첫 단추가 제대로 끼워져야 정책이 신뢰를 받아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학부모들은 걱정을 접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지필시험이 없으니 한 학기를 손놓고 보냈다가 다음 학년에서 낭패를 보게 되지나 않을지 불안할 뿐이다. 교과 평가 방식이나 대입제도 등은 바뀌는 게 없는데, 한 학기를 적성 찾기로만 자유롭게 보내 보라니 걱정이 앞서는 것은 당연하다.
부모들의 그런 불안감을 더 부추기는 쪽은 사설 학원들이다. 학원가에서는 자유학기제 집중 특강이란 이름의 사교육 마케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다른 지역들과 달리 중학교 1학년 두 학기 내내 자유학기제를 확대 적용하는 서울에서는 사정이 더할 수밖에 없다. 서울시교육청이 어제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학원 단속 대책을 내놓은 것은 그래서다. 정기적인 점검을 하되 자유학기제 정착을 방해하는 불법 마케팅을 반복하는 사설 학원은 등록 말소하겠다는 강경책을 내놓았다. 얼마 전에는 교육부 장관이 학원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협조해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기왕에 전면 시행된 자유학기제는 성공한 정책이 돼야 한다. 선행학습을 하지 못하도록 학원만 틀어 막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당국으로서야 오죽 다급하겠는가마는 자유학기제의 명운을 사설 학원들이 쥐고 있는 듯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는 딱하다. 공교육의 진로체험 프로그램을 튼실히 갖추는 작업이 관건이다.
취지만 던져 주고 정작 창의체험 교육 프로그램은 일선 학교와 교사들이 알아서 만들라고 떠넘기는 청맹과니 정책부터 손보기 바란다. 정책적인 배려 없이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알찬 체험 콘텐츠를 선보이라. 사설 학원을 곁눈질할 이유가 없어진다.
7. 노동개혁법 등 남은 법안도 속히 처리해야
국회가 어제 필리버스터 정국을 매듭짓고 선거구 획정과 함께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 등 다수의 법안을 처리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 등 비대위 지도부가 많은 소속 의원들과 지지자들의 반대에도 필리버스터를 중단하는 결정을 내린 것은 총선을 앞두고 이념 프레임에 걸려들지 않겠다는 고육책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야당은 이번 필리버스터를 통해 모처럼 많은 국민들로부터 ‘정치가 재미있고 살아 있다’는 공감을 받은 것만으로도 테러방지법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편 것 이상의 효과를 얻었다고 본다. 필리버스터의 장기화로 상당수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필리버스터 중단으로 국회가 정상화되고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 등 쟁점 법안이 처리된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 테러방지법은 상정 15년 만에, 북한인권법은 11년 만에 국회를 통과해 만시지탄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테러방지법의 국회 통과로 이슬람국가(IS)의 묻지마 테러와 북한의 핵 도발로 야기된 테러 가능성의 증가에 대비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시점과 맞물려 북한인권법을 처리한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정부는 테러 방지에 만전을 기하는 한편 국민들이 우려하고 있는 감청 오남용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회에는 아직도 경제 활성화를 위한 쟁점 법안들이 미처리 상태로 남아 있다. 현재 우리 경제는 위기 상황이다. 2월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2.2% 감소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연속 두 자릿수로 줄었고, 역대 최장기인 14개월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등 신흥국들의 경기 둔화로 이러한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기업 신용도도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기업신용등급이 떨어진 기업 수가 56곳에 이른다고 한다. 이 같은 수치는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가장 많다.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1월 중 전체 산업생산도 지난해 12월보다 1.2% 감소했고, 소매판매는 1.4% 줄었다. 여기에 주거비(월세 기준)는 월평균 7만 4227원으로 전년보다 20.8% 늘어나 가계 살림은 더 팍팍해지고 있다. 이 역시 2003년 집계 이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정부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업재해보상법·파견근로자법 등 노동 관련 4개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연일 촉구하고 있다. 우리는 국회가 정부의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는 게 옳다고 본다. 경제를 활성화하려면 무엇보다 기업구조 개혁과 함께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그래야만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소득의 양극화도 완화할 수 있다. 이 법안들은 이와 연관이 있다. 야당이 법안에 반대만 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책임 정치와 모순된다. 법안에 큰 문제만 없다면 정부가 일을 하게 한 뒤 그 결과를 놓고 책임을 묻는 게 순리다. 총선이 코앞에 다가와 미처리 쟁점 법안을 처리하는 데 충분한 시간은 없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야당은 심각한 경제 상황을 다시 한번 살펴보기 바란다. 무턱대고 반대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따져 봐야 한다.
[매일경제]
8. 무디스의 中 신용등급 하향이 한국에 던지는 경고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어제 중국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한 것은 한국 경제에도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 결정이라 예의 주시해야 한다.
무디스는 변경 이유로 중국 정부 부채 규모가 2012년 국내총생산(GDP)의 32.5%에서 지난해 40.6%로 상승하는 등 재정지표가 나빠졌고, 외환보유액이 최근 1년6개월간 큰 폭으로 감소해 유동성 부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중국 정부가 경제성장률 목표 달성에 연연하며 개혁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것도 신용등급 하향의 요인이 됐다.
중국 경제가 침체된 상황에서 국가 신용등급까지 떨어진 것은 한국 경제에도 적신호다. 한국의 대중 수출은 전체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시장 침체로 인한 위기 징후는 연일 나오고 있다. 2월 수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2.2% 줄었고 통계청이 어제 발표한 1월 전체 산업생산도 전월보다 1.2% 감소했다. 수출뿐만 아니라 내수와 투자가 부진했던 탓이다. 수출과 산업생산이 역주행하며 한계기업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은행권 부실채권(고정이하여신) 비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지난 1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지난해 말 은행권 부실채권비율은 1.71%로 전년 말보다 0.16%포인트 상승했다.
서둘러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으면 위기를 피할 수 없다는 데도 가시적 성과는 미미하다. 중국 정부의 개혁이 지지부진한 것도 국가신용등급 하락 요인이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정부와 기업이 경쟁력을 잃은 기존 산업들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바이오 의약 같은 신기술과 서비스 분야를 키워야 한다. 스마트폰과 자동차에 이어 한국을 먹여 살릴 신제품 개발과 인도와 동남아시아 등 중국을 대체할 신흥시장 공략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미 위기의 조짐이 곳곳에서 목격되는 만큼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9. 힐러리-트럼프 좁혀진 미 대선 향배에 미리 대비해야
지난 1일(현지시간) 13개주에서 동시에 치러진 미국 대선 경선 '슈퍼 화요일'에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과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가 각각 압승을 거두면서 양당 후보 지명에 바짝 다가선 분위기다. 경선 완주를 선언한 버니 샌더스 민주당 후보의 뒤집기 가능성도 없지는 않고, 공화당의 테드 크루즈와 마코 루비오 간 후보 단일화로 경선판을 흔들 수도 있으나 힐러리-트럼프 대세론을 뒤집기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물론 힐러리와 트럼프에게 각각 약점도 적지 않다. 힐러리는 이메일 스캔들 외에도 권모술수에 능한 구시대 정치인이라는 공격을 받는다. 트럼프는 극단적인 막말과 좌충우돌 행보로 주류나 당 지도부에서 후보 교체를 검토할 정도이지만 우파 보수층의 열성적인 지지를 얻는 양면성을 가졌다.
이번 대선 경선에서는 민주당 샌더스나 공화당 트럼프처럼 그동안 정치판의 아웃사이더들이 대중에게 각광을 받는다는 점에서 미국 사회의 현실을 다시 보게 만든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이민 정책과 의료개혁에 반발하는 백인 보수층과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트럼프의 극단적 주장에 환호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더 심해진 양극화에 샌더스의 사회민주주의 성향이나 월스트리트에 대한 공격이 지지를 받고 있으니 이례적이다.
우리로서는 군사적으로 동맹이자 최대 우방인 미국의 차기 대통령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힐러리가 한반도의 비핵화와 통일을 지지한다지만 그의 동아시아 정책에서 한국이 더 우선순위를 차지하도록 공을 들여야 한다. 주한미군 유지 비용을 더 부담하라며 한국의 무임승차를 거론하는 트럼프에게 실상을 제대로 이해시키고 관련 발언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어느 후보에게든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미 간 현안에 대해 우리의 입장과 전략을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 민간에 걸쳐 다양한 채널이 확보되도록 미리 준비해야 한다.
[조선일보]
10. 쪼그라드는 경제, '好況 맛' 한번 못 보고 5년 임기 끝낼 건가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7200달러를 기록, 9년째 3만달러 문턱을 넘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국민소득은 전년보다 1000달러 넘게 줄었다. 미국·일본·독일 같은 선진국은 소득 2만달러에서 3만달러로 가는 데 길어야 5년이 걸렸지만 우리는 9년째 '2만달러의 함정'에 갇혀 있다. 환율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론 경제가 저성장 늪에 빠졌기 때문이다. 수출도 14개월째 줄고 있다.
올해와 내년도 2%대 성장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임기 내 소득 4만달러'는커녕, 3만달러도 달성하지 못한 채 임기를 마칠 운명에 처했다. 이대로 가면 박근혜 정부는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 개발 계획을 추진한 이래 임기 중 호황을 단 한 순간도 맛보지 못하는 첫 번째 정권이 될 것이 확실하다. 김대중 정부는 벤처기업 붐,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발(發) 호황을 누렸고 이명박 정부도 글로벌 금융 위기를 넘어 2009년 6%대 반짝 고성장을 기록했다. 반면 박근혜 정부는 임기 내내 성장률 2~3%대를 맴돌며 온 국민을 불경기 속에서 지내도록 할 전망이다.
한국 경제는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다. 국제 환경이 어려워 어느 정도 감속(減速) 성장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뚜렷한 성장 전략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난 3년간 정부가 성장 엔진에 불꽃을 지피기 위해 어떤 청사진을 갖고 노력했는지 떠오르는 게 없다. 집권 초엔 대선 공약을 지키겠다며 135개나 되는 국정 과제를 들고 나와 방황을 거듭했고, 성장 목표조차 제시하지 않았다. 창조 경제라는 도무지 국민이 이해하기 힘든 개념으로 경제 부흥을 꾀하겠다고 했다. 취임 초 1년의 골든타임을 허비해버린 뒤, 재작년 하반기부터 노동·교육·금융·공공의 4대 개혁을 들고 나왔지만 말로만 부산 떨었을 뿐 국민이 체감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양적(量的) 성장이 한계에 부딪힌 한국 경제가 활력을 찾으려면 구조 개혁 외에 답이 없다. 부실·좀비 기업을 정리하고 경쟁력이 떨어진 취약 산업을 과감히 손질하면서 새로운 성장 산업을 발굴해 규제를 풀어주고 국가 자원을 집중 투입해야 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뼈를 깎는 구조 개혁 대신 추경예산을 뿌리고 금리를 내리는 손쉬운 대증(對症)요법에 치중하다 결국 성장 엔진에 불을 지피는 데 실패했다. 정부가 만병통치약처럼 내세우는 '창조 경제' 역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무슨 기여를 했는지 체감하는 국민이 많지 않다.
그런데도 정부 당국자들은 수출 부진은 세계 경제 침체 탓, 내수 침체는 국회 탓이라며 '남 탓'만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엊그제 3·1절 기념사에서도 "경제가 어려운데 국회가 마비 상태"라고 또다시 국회를 겨냥했다. 국회의 무책임 행태는 아무리 비판받아도 모자라지만, 경제 침체를 극복해야 할 주도적 책임은 어디까지나 청와대와 정부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대로 2년을 허비하면 현 정부는 재임 중 평균 성장률이 2%대 중반으로 역대 정부 최저를 기록할 것이다. 역사의 냉정한 평가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주요 신문칼럼
1. [뉴시스][기자수첩]영화 '스포트라이트'와 기레기“
영화의 소재나 이야기보다 쾌적한 근무환경과, 야근없고 권위없고 마초없고 알아서 일 잘하는 취재팀 분위기에 충격받은 1인.” 영화 ‘스포트라이트’가 지난달 29일 제88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하자 한국의 어느 기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다른 기자들은 “한국 근무환경과 비교하다니 당신 실수한거야”, “자료조사원이 따로 있고 한 사건에만 몇 달 간 여럿이 추적 조사하는 놀라운 환경”이라고 반응했다.
올해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은 이렇듯 한국 기자는 경험해 보지 못한 환경에서 일한 미국의 일간지 탐사보도팀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다. 2002년 가톨릭 교회에서 수십년에 걸쳐 벌어진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폭로한 보스턴글로브 신문의 ‘스포트라이트’팀 기자들의 실화다. 각본상까지 따내며 2관왕에 올랐다.
속도와 검색어가 우선적 가치처럼 돼버리며 ‘기레기’라는 신조어까지 출현한 한국의 언론계 종사자들에게 시사점이 많은 작품이다. 특히 최근 한국영화에서 그려진 기자들의 부정적인 모습을 떠올리면 더욱 더.
물론 기자뿐 아니다. 전 직종에서 ‘밥벌이의 무게’가 모든 가치를 앞지르면서 직업윤리가 퇴색된 지 오래다. 지난 여름 ‘베테랑’이 ‘사이다 영화’로 관객의 사랑을 받은 것은 직업윤리를 회복한 형사가 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언론을 ‘킹 메이커’로 그린 ‘내부자들’에서도 조승우가 연기한 검사는 출세욕이 사건 추적의 동기지만, 결국 정의감이 우선적 가치가 되면서 관객의 막힌 속을 펑 뚫었다.
다행스럽게도 ‘스포트라이트’에는 그렇게 영웅적인 기자가 나오지는 않는다. 자신의 일을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성실하고 집요한 기자들일 따름이다. 팀의 특성도 작용했겠지만 모든 것은 협업의 결과다. 3명의 팀원과 1명의 팀장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는 편집국이 합심해 언론의 구실과 기능을 고민하면서 같은 목표를 향해 한 발짝씩 내딛어 마침내 놀라운 성과를 거둔다는 점에서 이상적이지만 보다 현실적이다.
성직자의 아동성폭행이라는 선정적 사건을 재연하지 않고 취재 자체에 초점을 맞춘 점도 주목된다. 비슷한 소재의 한국영화 ‘도가니’(2011)가 가해자의 폭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면서 감정에 호소했다면 이 영화는 아무래도 기자들이 주인공이어서인지 이성적이다. 다소 지나칠 정도로. 중요한 팩트를 알아낸 순간에도 쉽게 감정을 나타내지 않고 그저 수고했다는 인사만 건넨다.
관객들의 분노를 끌어내는 데 시간을 할애하지도 않는다. 취재 과정을 통해 가해자의 잘못과 피해자의 고통을 분명히 짚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사건을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와 권력관계 등 다양한 처지와 목소리를 다룬다.
무엇보다 자사의 실적을 위해 독자를 자극하거나 공분을 유도하지 않는다. 기사가 보도됐을 때 사회적 파급력과 행여나 선정적 이슈에 본질이 희석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한 뒤에야 보도를 결정하는 인내와 숙성의 시간이 돋보인다.
“다른 회사에서 냄새 맡기 전에 빨리 보도하자”는 한 기자의 주장에 상사들은 꿈적도 하지 않는다. 신부들의 개인문제로 사건이 축소될까봐 경계해서다. 이들에게는 신부들의 수장인 보스턴 대주교가 사건의 내막을 알고도 묵인했는지 그 여부가 더 중요하다. 시스템을 파헤쳐야 한다는 것이다.
극중 인상적인 장면. ‘스포트라이트’팀을 이끄는 로비 팀장(마이클 키튼)은 보스턴 대교구를 위해 일했던 변호사에게 보도에 앞서 성추행을 한 신부들의 리스트를 건네며 확인을 요구한다. 자신의 일을 했을 뿐이라며 확인을 거부하는 그에게 로비는 정의를 부르짖는다. 처음에는 미동도 않던 변호사가 뒤늦게 마음을 바꾸고 로비를 따라 나와 서류를 확인한 뒤 말한다.
“그러는 너희 언론은 그동안 뭘했느냐. 왜 이렇게 늦게 이 사건을 다뤘느냐.” 성폭력 피해자가 ‘스포트라이트’ 팀이 요구하는 자료들을 이미 5년 전 신문사로 다 보냈다고 말하는 부분도 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언론은 발 빠르게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보도한다. 그렇게 공분을 일으키고 또 다른 뉴스로 이동한다. 이 영화는 공분만 일으키고 그 자리를 떠나는 언론의 모습이 과연 옳은지 묻는다. 좋은 뉴스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뉴스를 발굴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미 일어난 뉴스 속에 여전히 살아있음도 상기시킨다.
더불어 아동학대가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오늘날 한국사회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 나온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고 학대하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다.”
2. [머니투데이]타이완의 타이베이에는 한국이 없었다
타오위앤(桃園)국제공항. 타이완(臺灣)의 수도인 타이베이(臺北) 서북쪽 40Km에 위치해 있다. 한국의 인천국제공항에서 2시간30분 정도면 날아갈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곳이다.
지난 2월27일 오전 11시20분(현지시간, 한국보다 1시간 느리다), 타오위앤공항에 내리고 나서 잠시 눈을 의심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한국 관련 광고판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세계 어느 공항을 가더라도 쉽게 볼 수 있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반면 일본 기업의 광고는 자주 눈에 띄었다.
공항이라서 그런가 하고 시내로 향했다. 하지만 시내로 연결된 고속도로 주변이나, 타이베이 시내에서도 삼성전자 현대차를 비롯한 한국 기업의 광고판이나 매장은 찾기 힘들었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는 스린야시장(士林夜市場)과 서울의 명동 같은 시먼딩(西門町), 타이베이101빌딩이 들어서 중심가로 통하는 신이취(信義區)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먼딩에서 눈에 번쩍 뜨인 이니스프리(innisfree, 화장품) 매장과 101빌딩 지하1층에 있는 이랜드의 ‘Teenie Weenie 매장’만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너무 없으면 섭섭하니 구색이나 맞추려는 듯이 말이다.
타이베이에서 머무르는 2박3일 동안 한국 관련 광고나 매장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거의 찾지 못했다. 저층 건물 외벽에 있는 삼성갤럭시S 기어2 광고와 돌아올 때 타오위앤공항의 면세점에서 아주 자그마한 삼성전자 매장을 제외하고서는 말이다.
하지만 일본 기업 상품은 도처에 넘쳐 났다. 택시는 도요타이고, 자가용은 도요타 혼다 미쓰비시가 대부분이고, 전자제품은 소니 파나소닉 히타치이고, 옷은 유니클로와 무지(無印)였다. 편의점은 세븐일레븐과 패밀리마트가 거의 전부였고, 식당도 요시노야 같은 체인점이 수두룩했다.
타이완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반일(反日) 감정이 없을 리 없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일본판일까? 반면 한국은 소련이 무너지기 전까지 타이완과 국교를 맺고 있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였는데 어떻게 이렇게 한국의 모습을 찾을 수 없을까?
타이완 인구는 2335만 명 세계 51위(2014년 7월 기준)이고 면적은 3만5980㎢다. GDP(국내총생산)은 5278억 달러로 세계 22위(IMF 기준)에 달한다. 인구와 면적 및 경제규모가 한국의 절반 정도 수준이다. 하지만 놀랍게도(한국사람 대부분은 이렇게 클 정도로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에서) 타이완은 한국의 5대 교역국이다. 중국 일본 홍콩 미국 다음이다.
그런데도 타이완에서 한국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꽃보다 할배’에서 타이베이의 고궁박물관이 소개된 이후 한국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지만, 타이완에서 경제활동을 더욱 넓힐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에 비해선, 존재감이 거의 없다.
무엇 때문일까?
한국이 1992년에 중국과 수교를 하면서 타이완과의 국교를 단절할 때 타이완이 많이 섭섭해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산업구조상 타이완 기업들은 한국 기업들을 경쟁상대로 여겨 협력하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타이완은 중국과 경제협력을 확대하다가 중국이 수입대체 전략으로 전환하면서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월 총통(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이 압도적 표차로 승리한 것은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젊은이들이 경제적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의 ‘88만원 세대’라는 말처럼 타이완에서는 ‘22K 세대, 2만2000달러(약83만원) 세대’가 유행어가 되면서 젊은 층 표가 야당으로 쏠렸다.한국도 중국에 ‘올인’하다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타이완 수출은 2014년에 약150억 달러에서 2015년에 120억 달러로 급감했다고 한다. 올 들어서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수출과 경제가 어려울 때 타이완과의 관계를 회복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는 것도, 난관에 부딪쳐 있는 한국 경제의 돌파구를 찾는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한다.
3. [한국일보]딘 헤스 ‘전쟁고아의 아버지’?
미 극동공군사령부 소속 딘 헤스(Dean Hess, 1917~2015) 중령은 6ㆍ25전쟁 중 F-51D 머스탱 전투기로 250여 회 출격했고, 한국 공군 창설 작전(일명 ‘Bout One’) 책임자로 활약했다. 그는 50년 말 1ㆍ4후퇴의 혼란기에 C-47 수송기 15대를 동원, 서울 각 고아원에 수용돼 있던 전쟁 고아 950여 명과 보모 등 직원 80여 명을 안전지대인 제주도로 안전하게 피난시켜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알려졌고, 그 공로로 한ㆍ미 양국에서 무공훈장 등을 탔다.
미국 오하이오 출신인 그는 41년 메리에타 칼리지 신학 전문인과정을 졸업, 클리블랜드 교회 목사로 서임됐다. 그 해 11월 진주만 피습 사건이 터졌다. 그는 공군에 입대, P-47 전투기 조종사로 프랑스 전선에 투입돼 모두 63차례 출격했다고 한다. 2차대전 종전 후 예편했다가 48년 7월 현역으로 복귀했고, 연합군 점령지 일본에서 근무하던 중 한국 전선에 투입됐다.
‘영웅’서사는 부풀려지곤 한다. 그가 작전 후 부대로 복귀할 때 전투기에 전쟁 고아를 태워오기도 했다는, 믿기 힘든 얘기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가 1ㆍ4후퇴 때 수송대를 편성해 서울의 전쟁 고아 1,000여 명을 우선 대피시킨 사실은 여러 차례 국내 언론에도 보도됐고, 56년 자서전 ‘Battle Hymn 전쟁 송가’의 인세 전액을 한국 전쟁고아 후원 기금으로 기탁하기도 했다. 책을 각색한 같은 제목의 영화(록 허드슨 주연)도 이듬해 개봉됐다. 영화 속 그는 자서전에서보다 더 ‘영웅’이었다고 한다. 그는 65년 대령으로 예편했다.
6ㆍ25전쟁 베테랑으로 제대 후 지역사회운동가가 된 조지 드레이크(George F. Drake)라는 이가 2004년 와이오밍의 한국전쟁 아동 희생자 추모단체 홈페이지에 ‘헤스: 기만적 영웅(Fraudulent Hero)’이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요지는 그가 전쟁고아 대피 작전(Operation of Kiddy Car Airlift)의 공을 가로챘다는 거였다. 실질적인 주역은 공군 군목 러셀 블레이스델 중령과 멀 스트랭 하사였고, 헤스의 역할은 제주도에 고아 수용시설을 마련해준 게 전부라는 거였다. 드레이크는 “헤스는 그 작전을 계획하지도, 지휘하지도, 참여하지도, 보지도 않았고, 심지어 연기시키려고 했다”고 썼다. 2000년 블레이스델은 뒤늦게 작전의 공을 인정받았지만, 스트랭은 98년 숨졌다. 헤스는 지난해 3월 3일 별세했다. 향년 97세.
4. [동아일보][@뉴스룸/신수정]수입차에 뿔난 소비자들
최근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는 일부 수입차 업체의 개별소비세(개소세) 환급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논란은 정부가 지난해 말 종료된 개소세 인하 혜택을 6월 말까지 연장하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정부는 지난달 초 개소세 세율을 5%에서 3.5%로 낮췄다. 개소세에 붙는 교육세와 부가가치세 인하 효과 등을 더해 자동차 업체들은 가격을 일제히 1.8% 낮췄다. 이와 함께 1월에 개소세를 내고 차를 산 소비자들에게는 개소세 인하분만큼 환급을 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메르세데스벤츠, BMW, 폴크스바겐, 인피니티 등 일부 수입차 업체는 “이미 프로모션을 통해 개소세 인하분만큼 할인해 줬기 때문에 환급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해당 수입차 업체들은 1월에 판매한 차 대부분이 12월에 통관돼 개소세 인하 적용을 받은 만큼 이를 반영한 가격으로 고객에게 차를 팔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입차 업체들의 주장과 달리 1월에 수입차를 산 많은 소비자들은 “차를 살 당시 개소세 인하분을 반영했다는 등의 안내를 전혀 받지 못했다”며 “개소세를 환급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부 소비자는 수입차 업체가 계속 개소세 인하분 환급을 거부하면 집단소송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바른 소속 하종선 변호사는 “수입차 업체들이 지난해 12월 개소세를 인하받고 수입해온 차를 1월에 팔면서 마치 개소세를 대신 내주는 것처럼 프로모션했다면 과장 광고 또는 허위 광고에 해당한다”며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이므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 등을 통해 이러한 논란이 확산되자 수입차 업체들은 “개소세 관련 부당 이득은 없었다”며 억울하다고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억울함만을 호소할 뿐 통관 가격 등 정확한 정보 공개는 여전히 하지 않고 있다.
수입차 판매 가격은 통관 가격에 개소세, 교육세를 합한 ‘소비자 공급가액’에 수입차 업체와 딜러 마진, 부가세를 붙여 정한다. 상당수 수입차 업체는 마진이 드러난다는 이유로 통관 가격 공개를 꺼리고 있어 소비자들은 수입신고필증을 확인하지 않으면 개소세 인하분이 판매 가격에 제대로 반영됐는지 알기 어렵다.
지난해 국내에서 수입차는 24만3900대가 팔려 전체 승용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5%나 됐다. 수입차 연간 판매량이 20만 대를 돌파한 것은 지난해가 처음으로, 수입차는 국내에서 2년 연속 20%대 성장률을 보이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수천만 원을 주고 ‘드림카’를 장만했던 국내 소비자들을 더욱 화나게 하는 건 최근 벌어지고 있는 논란에 대한 일부 수입차 업체의 대응 태도다. 억울하다는 항변만 늘어놓거나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침묵만 하고 있으면 의혹만 커질 뿐이다. 수입차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1월 구매 고객들에게 통관 가격 및 개소세 인하분을 명확히 밝히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먼저다.
5. [동아일보][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슈퍼히어로의 조건
1. “당신(관객)은 아마 지금 이런 생각을 하겠지? ‘남자친구가 슈퍼히어로 영화라고 해서 함께 보러왔는데 주인공이 지금 저 남자를 엿 같은 케밥처럼 (칼로) 쑤셔대고 있잖아’ 하고.”
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데드풀’에서 주인공은 관객을 힐끗 꼬나보며 조롱하듯 이런 대사를 내뱉는다. 이런 슈퍼히어로는 시쳇말로 ‘듣보잡’이다. 특수부대 출신의 주인공은 말기 암인 자신을 치료해 준다는 악당의 꾐에 빠져 의문의 실험에 참여하고, 실험 후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놀라운 세포재생능력을 갖게 되지만, 얼굴은 흉측하게 변한다. 주인공은 복면을 쓴 채 자신의 몰골을 망친 악당들에게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을 펼친다.
마블코믹스의 캐릭터인 영화 속 데드풀은 기존 슈퍼히어로들과는 당혹스러울 만큼 다르다. 일단 입에 ‘걸레’를 물었다. 인도계 택시운전사에게 “홀쭉한 갈색친구”라며 인종차별적 발언을 퍼붓는 데다 “씨×” 하는 쌍욕을 입에 달고 산다. 또 적의 머리통을 댕강댕강 날리기를 무슨 사이다병 뚜껑 따듯 할 만큼 잔인무도하며, 무엇보다도 세계 평화나 정의란 대의명분이 없다.
“난 슈퍼히어로가 아니야. ‘슈퍼’이긴 하지만 ‘히어로’는 아니지.”
2. 그렇다. 슈퍼이긴 하지만 히어로는 아니다. 하긴, 어려서부터 영화 속 슈퍼히어로들을 연구해온 나로선 진정한 슈퍼히어로라고 인정한 대상이 별로 없다. 팬티를 바지 밖으로 입고 다니는 변태 같은 슈퍼맨은 중력의 제한을 받지 않은 채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므로 고난과 한계를 극복하고 인류를 구원한다는 슈퍼영웅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은 또 어떤가. 이들은 얼굴을 복면으로 가린다는 점이 치명적 문제다. 정의를 지킨답시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폭력을 통해 상대를 응징하니 얼굴을 감출 수밖에 없겠지. 캡틴 아메리카는 성조기가 그려진 방패로 무장한 채 아메리카만 지키므로 활동 범위가 너무 좁고, 헐크는 제정신이 아닌, 일종의 공황장애 상태에서만 지구를 지키므로 ‘주폭(酒暴)’에 가까우며,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나 나올 법한 명품 황금밧줄을 채찍 삼아 휘두르며 상대를 동여매고 희열을 느끼는 원더우먼은 일종의 사도마조히즘 환자가 아닐까 말이다.
양영순의 상상력 넘치는 성인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누들누드’에 등장하는 ‘정의의 사도 Z.O.T.’도 진정한 슈퍼영웅이라 보기 힘들다. 그는 악당을 물리치고 인질을 구출하는 정의로운 과업을 수행하지만, 야한 장면을 보고 치솟아 오르는 세 번째 다리를 이용할 때에만 적을 퇴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지박약 혹은 호르몬 결핍으로 봐야 한다.
외려 잘생긴 얼굴을 감추지 않고 엄청난 재산을 기반으로 특수 슈트를 개발해 그것을 입고 날아다니면서 연예인인 양 스스로를 뽐내는 아이언맨이야말로 자본주의 시대의 슈퍼영웅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영혼까지 살 수 있다는 돈이야말로 ‘슈퍼’이고, 신의 영역까지 파헤치는 첨단 과학이야말로 ‘히어로’가 아닌가 말이다.
3. 얼마 전 나는 이준익 감독의 ‘동주’란 최신작에서 진짜 영웅을 발견했다. 시인 윤동주를 사려 깊게 그린 이 시적인 영화에서 윤동주는 ‘슈퍼’는 아니지만 진정한 ‘히어로’다. 소심한 그는 늘 스스로를 부끄러워한다.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럽고, 남의 나라 일본에서 시를 쓰는 자신이 부끄럽다. 하지만 그는 후쿠오카 감옥에서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내용의 진술서에 서명하라는 강요에 일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며 이렇게 절규한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 시를 쓰기를 원하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 게 너무나 부끄럽고, 앞장서지 못하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만 한 게 부끄러워서 서명을 못하겠습니다!”
적을 부숴버리는 일보다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였던 윤동주의 숙명 같은 자괴감이야말로 진짜 슈퍼파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출처] 2016년 3월 3일 속기·칼럼 자료 |작성자 넷스쿨영등포속기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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