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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1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동아일보]

1TK 방문한 박 대통령, ‘眞朴 마케팅’ 역풍 두렵지 않나

박근혜 대통령이 결국 대구를 방문했다. 어제 오전 대구지역 3곳의 행사에 참석했고, 오후엔 경북 안동에서 열린 경상북도 신청사 개청식에 참석했다. 청와대는 “도청 개청식 참석은 당연한 것이고 대구 방문은 경제와 문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했지만 그 설명을 믿을 사람은 없다. 신청사 개청식도 당초 총선 뒤인 5월 초에서 앞당겨졌다는 뒷말이 나온다. 게다가 개청식 일정에 맞춰 대구 방문 스케줄은 급히 끼워 넣은 듯하다. 대구 방문지 세 곳 중 두 곳의 진박(진짜 친박) 예비후보들이 유승민 의원계 현역들에게 도전장을 냈다.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을 총괄하는 2차관이 대구 방문에 동행한 것도 진박 후보들의 공약을 지원하려는 인상을 풍긴다. 

박 대통령의 대구 행사엔 현역 의원과 예비후보 같은 정치인들은 일절 참석하지 않았다. 선거나 정치 관련 발언도 없었다. 선거법 위반 논란을 피하려는 뜻일 게다. 그러나 총선을 불과 34일 앞두고 대구를 방문한 것 자체가 자제해야 할 정치 행위다. 박 대통령은 작년 9월 대구를 방문하면서 지역의 여당 국회의원을 한 명도 부르지 않아 유 의원을 비롯해 TK(대구경북) 비박계 의원들을 물갈이하려는 의도라는 논란을 촉발시켰다. 이후 6명의 진박 후보가 대구에서 출사표를 냈다. 친박 중진들까지 진박 마케팅에 발 벗고 나섰으나 오히려 역풍이 불자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고 볼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에선 영남권 3선 이상 현역 의원 교체론이 파다하다. 친박을 희생양 삼아 비박까지 왕창 쳐낸다는 소문이다. 더구나 대통령정무특보였던 윤상현 의원의 ‘김무성 대표 욕설 녹취록’ 파문으로 여권 전체가 벌집 쑤신 듯 난리다. 이런 상황이라면 박 대통령이 예정된 행사라도 취소하는 게 옳았다. 그런데도 대구 방문을 강행한 것은 ‘내 사람’ 심기에 꽂혀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과 같다. 9일엔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현기환 대통령정무수석을 극비리에 만났다는 채널A 방송 보도가 나왔다. 친박과 비박 간 공천 갈등의 중심에 권력의 생리에 민감한 박 대통령이 있다는 의구심이 나올 만하다. 그러나 선거에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면 되레 민심의 역풍을 맞았던 게 역사의 교훈이다. 

박 대통령이 대구를 방문한 시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해 북한의 동해상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박 대통령은 선거에서 정치적 중립을 의심받을 일을 삼가고 안보와 경제에 몰입하기 바란다.

2. 건드리면 툭 터지는 전국의 아파트 관리비 회계 비리

국무조정실 부패척결추진단이 전국 300가구 이상 8319개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실시한 첫 외부회계감사에서 19.4%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1% 안팎인 상장기업의 회계처리 부실비율과 비교하면 20배나 높을 만큼 회계 관리가 엉망이다. 이와 별도로 국토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아파트 입주민의 민원이 제기된 429개 단지를 대상으로 합동감사를 한 결과 무려 72%의 비위(非違)나 부적절 사례를 적발했다. 

국민의 70%가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살고 있는 나라에서 아파트 관리비 비리가 전국 곳곳에 만연해 있다. 남의 일이 아니라며 공분(公憤)을 느끼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월세처럼 매달 내는 아파트 관리비는 미루면 연체료를 물어야 한다. 이렇게 받은 돈을 아파트 5곳 중 한 곳에서 아파트 관리소장이나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동(棟) 대표가 주머닛돈처럼 썼다는 얘기다. 충남의 한 아파트 관리소장은 2011∼2014년 개인계좌로 16차례에 걸쳐 3억7000만 원을 이체했다. 이런 식으로 빼돌린 것으로 보이는 돈이 20억 원이다. 경찰청이 작년 11월부터 벌인 공동주택 관리비리 특별단속에서 입건된 153명 중 입주자 대표가 41.4%, 관리소장 35.3%, 동 대표 7.1%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정부의 아파트단지 회계감사는 2014년 배우 김부선 씨가 ‘난방비리’ 이의를 제기하면서 여론이 들끓어 시작됐다. 지금까지 아파트 관리비 문제는 사적인 영역의 자율을 보장해주는 차원에서 관리대상에서 제외했지만 앞으로는 주택법에 근거해 매년 외부회계 감사를 강제하기로 했다. 감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법을 개정해서라도 감사결과를 지자체에 제출토록 의무화할 방침이다. 

아파트 주민도 관리소장이나 입주자 대표들이 딴마음을 먹을 수 없도록 주인의식을 갖고 감시에 나서야 한다. 한국감정원이 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인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K-apt)을 통해 감사결과와 관리비 내용을 확인한 뒤 미심쩍은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을 요구해야 한다. 관리소장이나 입주자 대표 명의로 개설된 아파트 관리비 통장을 주민들이 수시로 확인하는 것도 비리를 감시해 사전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3. 김종인 개혁, 이해찬 빼놓고 '친노 패권'청산 어림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어제 발표한 44개 지역 공천 결과에서 정청래 의원을 포함해 최규성 강동원 부좌현 윤후덕 의원이 탈락했다. 정청래 의원은 막말, 강동원 의원은 위헌정당인 통합진보당 출신, 윤후덕 의원은 딸 취업 청탁, 최규성 부좌현 의원은 경쟁력이 열세라는 이유다. “당선 가능성이 제1의 기준이었다”고 밝힌 김종인 대표의 첫 현역 의원 물갈이다. 

친노(친노무현)의 대변인처럼 대포를 쏘아댄 정 의원의 컷오프가 발표되자 그의 지지자들이 강력히 반발하면서 어제 더민주당 홈페이지가 한때 다운됐다. 그러나 김 대표가 친노 패권주의를 쳐내겠다고 거듭 큰소리친 것에 비하면 정청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원식 이상호 이인영 의원, 송영길 전 의원 등 운동권 출신들과 최민희 배재정 박남춘 의원과 백원우 전 의원 등 친노 정치인은 단수 공천을 받았다. 

현역 의원 50명의 심사 결과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국민의당이 ‘친노·패권·무능 86그룹’으로 지목해 표적공천 대상으로 꼽은 이해찬 이목희 정청래 김경협 전해철 의원 중 정 의원만 탈락했다. 당내 비노(비노무현) 진영을 ‘세작(간첩)’이라고 말해 당직 자격정지 2개월을 받았던 김경협 의원은 무사히 경선을 치를 수 있게 됐다. 비서관 월급 상납 논란을 빚은 이목희 정책위의장, 성완종 특별사면 때 대통령민정비서관이었던 전해철 의원의 심사 결과는 아직 발표 전이다.

친노 세력의 좌장인 이해찬 의원은 정밀심사 대상에 오르지 않아 컷오프에서 아예 빠졌다. 이 의원은 문재인 전 대표가 정치로 나오기 전까지 자타가 공인하는 친노 좌장이었고, 수감 중인 한명숙 전 의원, 배우 문성근 씨와 함께 친노를 당의 최대 세력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는 백낙청 함세웅 씨를 비롯한 진보좌파 원로와 함께 원탁회의의 일원으로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를 추진해 종북(從北)세력을 국회에 진출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의원을 빼놓고 대한민국 정치의 발목을 잡았던 친노 패권주의 청산은 어불성설이다. 당의 쇄신은 정치를 왜곡시켜 온 친노와 운동권 세력을 얼마나 배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지 않으면 총선이 끝난 뒤 더민주당은 전투력이 강한 친노 세력의 발호로 개혁은커녕 치열한 권력투쟁의 내홍에 빠져들 것이다. 김 대표가 도마뱀 꼬리 자르듯 개혁의 시늉만 하고 민심을 얻기를 바란다면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

[이데일리]

4. 활짝 열린 이란 하늘길서 높이 날려면

그동안 꽉 막혀 있던 한국과 이란의 직항 하늘길이 다시 열리게 됐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국토교통부에 테헤란 노선 국제항공운수권을 신청했다고 하니, 조만간 적절한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운항허가가 내려지면 대한항공 화물기가 1976년 이란으로 한 차례 운항한 지 40년 만에 국적 항공사가 직항로를 통해 이란 정기노선을 운항하게 되는 셈이다.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해제되면서 수십년 동안 닫혀 있던 이란의 하늘길이 뚫리게 된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경제적인 차원에서는 더욱 박수칠 만하다. 빗장이 풀린 이란이 중동의 거대 수출시장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더욱이 이란은 세계 자연자원 매장량에서 원유는 4위, 천연가스 2위, 구리 2위에 달하는 자원 부국이다. 인구가 8000만명에 육박하는데도 1인당 소득이 5000달러에 지나지 않아 향후 개발 수요가 적지 않다. ‘제2의 중동 특수’를 노리는 국내 기업들로서는 이란을 중동 진출의 허브로 삼을 필요가 있으며, 양국 간 항공노선이 이러한 경제 교류를 뒷받침해 줄 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경쟁국들보다 앞서 이란시장을 선점하려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이란 제재 해제 이후 외국 정상으로는 가장 먼저 이란 땅을 밟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연내에 이란을 방문할 예정이라지만 우리는 ‘기회의 땅’인 이란을 공략하는 데 한발 뒤처진 상황이다.

다시 열리는 이란 직항노선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경제에 호재임이 틀림없다. 정부로서는 이란 항공노선을 놓고 항공사들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정책과 방향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운수권 배분 규정상 주5회 이하 신규노선은 1개 항공사에 몰아주도록 돼있는 현재 관행도 손질할 필요가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테헤란 직항노선을 놓고 볼썽스럽게 싸우는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국내 건설업체들이 해외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자기들끼리 과당경쟁을 벌이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해오지 않았는가. 새로 열리는 중동의 거대 시장에서 항공사들이 웅비할 수 있도록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

5. 동네서점 살리려면 책읽기 운동부터

동네책방들이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격년으로 발간하는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전국의 순수 서점이 2013년 말 1625곳에서 2015년 말 1559곳으로 66곳(4.1%)이 줄었다고 한다. 정점을 찍었던 1996년의 5378곳에 비하면 10곳 중 무려 7곳 넘게 폐업했다는 얘기다. 그나마 127곳이 사라진 2011~2013년보다는 감소세가 둔화된 게 위안거리다.

문구류와 북카페를 겸하는 일반서점은 작년 말 2116개로, 2년 전보다 215개(9.2%) 감소했다. 문을 닫은 일반서점 10곳 중 9곳은 전용면적 165㎡ 미만의 소규모다. 전체의 절반을 훨씬 넘는 1178곳이 서울과 6대 광역시로 몰려 있는 지역 편중도 심각한 문제다. 인천 옹진, 경북 영양·울릉·청송·봉화, 전남 신안 등 6개 지역은 서점이 하나도 없고, 단 하나뿐인 ‘서점 멸종 예정지역’도 43개 지역에 이른다.

이쯤 되면 지방에선 일부러 대도시까지 행차하지 않으면 책 사기도 힘들다는 얘기다. 꼭 필요한 책이야 인터넷 주문으로 구입하면 되지만 책방에 들러 이것저것 둘러보며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는 ‘호사’는 포기해야 한다. 지역의 문화거점이라 할 수 있는 동네책방이 인터넷 서점과 대형서점에 밀려 사라지도록 방치할 수 없는 이유다.

이런 맥락에서 일부 지역에서 인문학 강연회, 작가와의 만남, 작은 음악회를 비롯한 각종 세미나와 독서클럽 등의 다양한 변신을 통해 ‘문화사랑방’으로 거듭나고 협동조합을 구성해 경쟁력을 키우는 책방들이 늘어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최근의 서점 감소세 둔화가 도서정가제를 비롯한 지역 서점 육성책 덕분이라는 분석은 정부 당국의 정책 지원이 왜 필요한지를 웅변으로 말해준다.

그러나 진정으로 책방을 살리고자 한다면 ‘책 읽는 사회’가 선결과제다. 대한민국은 ‘책 안 읽는 나라’로 정평이 나 있다. 국제조사기관인 NOP월드의 2005년 조사에서 한국 국민은 주당 독서시간이 평균 3시간 6분으로 조사대상 30개국 중 꼴찌였다. 부모의 학력과 재산에 상관없이 양극화를 극복하는 최상의 사다리인 책읽기를 즐기는 국민이 될 때 비로소 나라에 미래가 열리는 법이다.

[서울신문]

6. 야권은 '현역 물갈이'하는데 새누리는 뭘 하나

더불어민주당이 어제 현역의원 5명을 추가로 공천에서 배제했다. 이번 ‘2차 컷오프’에는 친노 386 운동권 그룹 내에서도 강경파로 꼽혀온 재선의 정청래 의원과 역시 친노로 분류되는 초선의 윤후덕 의원이 포함됐다. 정 의원은 문재인 대표 체제였던 지난해 5월 당시 주승용 최고위원을 상대로 “공갈치지 말라”고 막말해 물의를 빚었고, 윤 의원은 로스쿨 출신 딸을 대기업에 취업시키려고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특정 계파를 떠나 자질 논란에 휩싸였던 두 의원의 공천 배제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로써 더민주에서는 지금까지 15명의 현역 국회의원이 공천에서 배제됐고, 5명은 스스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중진 등 추가 탈락자들이 나올 가능성도 크다. ‘현역 물갈이’가 현실화된 셈이다.

국민의당도 그제 초선 임내현 의원의 공천 배제 사실을 밝혔다. 당 소속 현역의원이 19명에 불과한 국민의당으로서는 한 명의 의원도 아쉬운 상황이지만 준엄하게 현역 물갈이를 요구하는 민심을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두 야당의 현역 컷오프 기준에 대해서는 물론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더민주의 경우, 상대적으로 친노보다는 비노나 중립성향 인사들이 불이익을 받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2차 컷오프 대상자 중 한 명으로 고 김근태 전 상임의원계인 최규성 의원이 “재심을 청구하겠다”며 불복 방침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회를 협상보다는 투쟁의 장처럼 여긴 많은 ‘운동권 의원’들이 버젓이 살아남은 데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국민의당조차 “친노 패권주의 청산과는 거리가 멀다”고 혹평했다.

양적으로 미흡하고 질적으로 낮다 해도 야권이 현역 물갈이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을 여당인 새누리당은 혹독하게 반성해야만 한다. 역대 최악인 19대 국회에 실망한 국민들은 비효율 국회의 주역이었던 현역 의원들의 무더기 공천 배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더민주가 15명의 현역 의원을 내치는 동안 새누리는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달랑 친박계 3선 김태환 의원 한 명만 생색내듯 컷오프하지 않았는가. 그동안 살생부가 돌고 사전 여론조사가 유출됐는가 하면 친박계 핵심 윤상현 의원의 “김무성 죽여” 막말까지, 새누리는 그야말로 계파 갈등의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책임 있는 여당이라면 공천 갈등을 끝내고 야권을 뛰어넘는 과감한 현역 물갈이에 나서야만 한다.

7. 마지막 남북 연결고리마저 끊은 北 자해행위

어제 북한은 우리 정부의 독자적 대북 제재에 맞서 북에 있는 모든 남측 자산을 ‘청산’하겠다고 선언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담화를 통해 “북남 사이의 경제협력 및 교류사업과 관련한 모든 합의들을 무효로 선포한다”면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이후 연일 대남 위협 수위를 끌어올리던 북측이 자해성 강수를 둔 것이다. 그제 ‘핵탄두를 경량화했다’면서 관련 사진을 공개했던 북측은 어제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이로써 핵 포기를 할 의사도, 국제사회의 그물망 제재를 피할 길도 없는 김정은 정권의 딜레마가 드러났다면 우리도 장단기 대응 매뉴얼을 재점검할 때다.

북측이 날마다 대남 위협 강도를 높이는 배경이 뭐겠나. 조평통은 우리의 대북 제재 조치에 대해 “아무 데도 소용 없는 물건짝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이는 우리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예상 밖의 큰 위력을 보이고 있는 데 따른 역설적 반응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안보리 결의 이후 북측 내부의 장마당 물가가 들썩이고 일부 사재기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지 않은가. 지난 5년간 1% 수준의 경제성장률로 근근이 버티던 북한 경제가 혈맹인 중국의 강도 높은 대북 제재 가세로 한번 더 곤두박질치면서다. 이에 따른 내부 동요를 막는 차원에서 북측이 무력시위 카드를 잇달아 빼들고 있는 셈이다.

북 조평통은 어제 “남조선괴뢰패당이 일방적으로 개성공업지구 가동을 전면중단했다”면서 공단 내 남측 기업 및 정부 자산을 임의로 활용하겠다고 예고했다. 석탄과 철광석 등 최대 수출 품목이 유엔 제재 리스트에 오르자 개성공단 내 의류 제조시설을 가동해 벌충하려는 속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김정은 체제가 정상궤도로 돌아갈 잔도(棧道)마저 끊는 자충수일 게다. 금강산관광 중단 이후 북측은 우리 시설을 활용해 제3국 관광객을 끌어들이려 했지만 실패했다. 북측은 공단 내 남측 재산 강탈은 남북관계가 풀렸을 때 남측의 협력을 얻을 길마저 끊는 자해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북측의 막가는 행보는 아직은 내부 결속에 큰 방점이 찍혀 있는 듯하다. 5월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이렇다 할 업적이 없는 김정은의 고육책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갈수록 거칠어지는 북의 핵위협을 과소평가할 이유도 없다. 안보 위협에는 그 가능성이 1%라 하더라도 100%의 확신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경구를 떠올릴 때다. 그래야 북한의 사이버 테러나 국지 도발 소지도 외려 줄어들 것이다.

북한이 체제 위기 속에서 악수(惡手)를 연발하고 있다면 정교한 입체적 대응이 중요하다. 물론 김정은 정권을 겨냥한 빈틈없는 제재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다. 다만 제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비핵화를 이끌 수단이 아닌가. 그런 맥락에서 정부가 북한에 결핵약을 보내겠다는 유진벨재단의 요청을 긍정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우리는 북한을 변화시키려면 제재와는 별개로 북 주민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은 재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부는 북측이 퇴로를 찾도록 하는 차원에서 다자 회담 개최 시점도 미리 고민해야 할 것이다.

8. ‘공존’과 ‘경고’ 메시지 함께 던진 AI의 승리

공상과학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는 인공지능(AI)이 결코 인간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우리는 믿었다. 세계 최정상급 프로 기사인 이세돌 9단이 그제 구글의 AI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첫 대국에 이어 어제도 패하면서 허를 찔렸다. 기계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절대영역으로 의심치 않았던 것이 바둑이다. 그것이 기계에 무너진 것은 인류 문명사적 사건이다. 구글은 “달에 착륙했다”고 승리를 자축했지만 전 세계는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기술의 가치가 인간의 가치를 압도했다는 비관론도 높다. “으스스하다”는 소감이 쏟아진다. 이 9단과 알파고는 오는 15일까지 세 차례의 대국을 남겨 뒀다. 최종 성적이 어떻든 AI의 현주소는 이미 확인됐다.

알파고의 승리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컴퓨터가 인간의 통찰력과 직관만은 따라잡을 수 없다는 통념부터 깼다. 인간 뇌의 신경망 구조를 본떠 설계된 알파고는 사람의 직관까지 흉내 냈다. 인간이라면 평생 엄두도 못 낼 학습량을 단 몇 주 만에 소화하고 급속 진화했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은 앞으로 의료 등 다양한 분야로 활용 범위를 넓히겠다고 한다. AI의 현실과 미래를 냉정하게 짚고 예측할 때가 우리에게도 온 것이다.

정보기술(IT) 강국인 우리나라는 AI 분야에서는 미국 등 선진국에 한참 뒤져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을 앞세운 미국한테는 말할 것도 없다. 영국, 독일, 일본 심지어 중국의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지적을 아프게 새겨들어야 한다. 세계적인 IT기업들이 AI 연구와 상용화에 팔을 걷어붙인 지 오래다. 금융, 의료 분야를 넘어 자율주행 자동차, 무인 항공기, 개인 비서 서비스까지 등장한 현실이다. 그런데도 우리 기업이나 정부는 AI의 가능성을 제대로 주목하는 움직임이 없다. 독자적 연구로 내놓은 성과물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세계 시장이 IT에서 AI 무대 쪽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는 진단을 냉엄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시대적 대세에 합류할 수 있도록 지원책 마련에 사활을 걸어야 할 것이다.

세계경제포럼이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이 AI라고 예견한 것이 불과 두 달 전이다. AI의 급성장은 우리에게 위협이기도 하다. 예술가의 영역까지 파고든 판이니 인력 대체에 따른 대량실업 사태에 대비하는 일도 시급하다. 인류의 가치가 공격받지 않도록 AI 혁명에 다각도로 대처하는 것은 새로운 숙제다. 어떻게 통제하고 활용하는지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매일경제]

9. 정부는 면세점 시장 그만 흔들고 규제 걷어내라

정부가 면세점 특허 기간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을 담은 면세점제도 개선안을 이달 말에 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기획재정부 등이 참여한 '면세점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는 16일 공청회를 거쳐 개선안을 확정할 방침인데 추가 신규 면세점 허용설이 솔솔 흘러나오면서 정부의 '갈 지(之) 자 정책'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년 시한부 면세점 특허제도'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불리면서 잘 굴러가던 국내 면세점 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든 대표적인 입법 실패 사례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면세점 재승인 심사를 통해 2곳을 교체한 후 후폭풍은 생각보다 컸다. 각각 6월과 5월 폐점을 앞두고 있는 롯데 월드타워점과 SK워커힐점은 확장공사에 쏟아부은 수천억 원을 다 날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반면 지난해 말 새롭게 문을 연 '갤러리아 면세점 63'과 'HDC 신라면세점'의 매출은 기대 이하다. 5년짜리 사업권이 약점으로 작용하면서 명품 유치에 애를 먹고 있으니 매출이 단박에 올라갈 리가 없다. 지난해 매출이 6100억원이었던 롯데 월드타워점은 방을 빼야 하고, 신규 면세점 매출은 죽을 쑤고 있으니 악수도 이런 악수가 없다. 무디리포트가 "한국 정부가 자기 발에 총을 쏜 셈"이라고 비판했는데 어이없는 실업 사태나 공중으로 날아간 투자금 등을 볼 때 딱 그런 꼴이다.

서울 시내면세점 추가 허용설에 대해 관세청은 어제 결정된 바 없다고 발을 뺐지만 시장은 술렁거리고 있다. 롯데와 SK는 기사회생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고, 특허권을 따낸 신세계와 두산은 시장 과열을 우려하며 반대 의사를 내비치는 등 시장은 혼란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부는 오락가락할 게 아니라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정부의 개선안은 과거처럼 10년으로 돌아가자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지만, 혼란을 부추겨놓고 기계적으로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해법이 아니다. TF는 요건만 맞으면 모두 허용해주는 이른바 '등록제' 도입안에 대해서는 사실상 백지화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면세점 시장의 특허를 좌지우지하는 특권부터 내려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채점표 등 모든 것이 비공개로 진행되는 특허심사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등은 시내면세점의 경우 요건만 맞추면 자율적으로 사업할 수 있는 등록제를 채택하고 있다. 몸집을 불리고 있는 중국 일본과의 글로벌 전쟁에서 국내 면세점이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진입 장벽을 낮춰 무한경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10. 현역 물갈이 `시늉`만 하면서 국민 우롱하는 정치권

더불어민주당이 10일 친노 86그룹 강경파로 꼽혀온 서울 마포을의 정청래 의원(재선)을 포함해 현역 의원 5명을 공천배제했다. 정청래 의원은 "공갈치지 마라" "유대인의 히틀러 묘소 참배" 등 막말 정치로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 국회 품위를 손상시킨 책임이 크다. 로스쿨 출신 딸 취업청탁 논란의 윤후덕 의원, 대선 불복 발언으로 논란이 된 강동원 의원 등도 공천에서 배제됐다. 1차 컷오프 11명을 합쳐 지난달 24일 기준(재적 108명) 18.5%의 현역이 탈락한 셈이다. 하지만 친노 핵심인 이해찬(6선)·전해철 의원, 보좌관 월급 상납 논란의 이목희 의원은 아직 평가가 나오지 않았고 운동권 출신인 우상호·이인영 의원, 임종석·송영길 전 의원은 모두 살아남았다.김종인 대표가 호언장담했던 '친노 패권주의·운동권 정당 청산'은 온데간데없다. 국민의당은 "친노·486 성골 인사들의 친노 패권주의가 확대 재생산된 공천"이라고 혹평했는데 국민 일반의 평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새누리당도 이날 31개 지역구 공천 및 경선 명단을 발표했다. 현역 의원 탈락은 한 명도 없었다. 김무성 대표를 지목해 "죽여버려"란 막말을 쏟아낸 윤상현 의원조차 당내 친박계가 감싸고돌면서 대충 넘어가자는 분위기다. 친노 패권주의 운동권 체질만 문제가 아니라 국민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 안하무인 친박 패권주의가 더 한심하고 괘씸하다.

19대 국회는 5개월간의 국회 공전, 국회선진화법 악용, 자동 폐기 법안 1만건 등 역대 최악의 기록을 쏟아냈다. 그 어느 때보다 현역 물갈이 여론이 비등한 이유다. 그런데도 여야는 상향식 공천, 20% 컷오프 등 혁신 시늉만 했을 뿐 현역 물갈이 비율은 턱없이 낮다. 2012년 19대 공천에서 현역 교체 비율은 새누리당 41.7%, 민주통합당 27.0%였다. 결과는 새누리당의 단독 과반 확보, 민주통합당의 참패였다. 이번 총선의 승패는 여야를 막론하고 막말·부패 의원은 물론 세비값 못하는 다선·중진들을 얼마나 과감하게 쳐내느냐가 판가름할 것이다.

주요 신문칼럼


1. [매일경제][드라마로 보는 노동법] 태후. 송혜교는 우르크에 안가도 되지 말입니다.

시청율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 여주인공 송혜교(강모연 역)는 혜성병원의 의사이다. 병원 이사장은 여주인공인 송혜교를 호텔 스위트룸으로 불러 하룻밤을 같이 보내자는 제안을 하고, 송혜교가 이를 거절하자, 전쟁 중인 우르크에 의료봉사단으로 전보명령을 한다. 송혜교는 우르크에서 남자 주인공인 송중기(유시진 역)를 만나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는게 5회까지의 내용이다.

남여주인공의 달달한 러브스토리 때문에 여주인공의 인사상 부당함은 부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서울에서 잘나가는 의사였던 여주인공이 이사장 때문에 먼 이국땅으로 전보되는 것이 만일 실제라면, 쉽게 수용될 수 일이 아니다. 드라마의 달달함을 빼고, 법률적으로 들여다보면, 이사장은 직장내 성희롱과 부당 전보로 관련법을 여러 가지 위반한 사용자이다.

1. 직장내 성희롱한 이사장. 처벌받을 수 있다.

이사장은 병원 직원인 여주인공에게 성적 언동으로 성적 수치심을 들게 했고, 개인적인 요구가 거절되자 인사상 전보조치를 내려 근무조건을 악화시켰으니, 이는 남녀고용및일가정양립지원에관한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 직장내 성희롱에 해당된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2조는 사업주, 상급자, 근로자의 직장내 성희롱을 금지하고, 특히 사업주가 직장내 성희롱을 하면 1천 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사장도 사업주에 해당하므로 1천 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가 가능하다고 보여진다. 이외에도 사업주는 성희롱의 피해자에게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하여야 한다.

2. 우르크 간 송혜교는 부당전보.

또한, 여주인공의 근무지가 서울에서 우르크로 변경되는 것은 노동법상 ‘전보’ 조치에 해당한다. 전보조치가 정당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어야 하고, 이건에서는 병원의 업무상의 필요성 보다는 이사장의 개인적 감정에 기인한 보복조치이기 때문에 부당 전보에 해당한다. 따라서 병원은 우르크 전보처분을 취소하고 원직에 복직 조치하여야 하며, 만일 전보처분으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하였다면 이에 대해 배상하여야 한다. 즉, 여주인공 송혜교는 우르크에서 근무하지 않고, 서울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는 것이다. 덧붙여,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는 사업주가 직장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에 불리한 조치를 하는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므로 부당전보로 인하여 병원 이사장은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드라마처럼 여자 주인공이 우르크에 가지 않았으면 남자주인공과 러브스토리는 없다. 필자의 직업이 노무사이다 보니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이러한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같다. 오늘밤 남녀 주인공이 우르크에서 어떠한 사랑을 키워 나갈지 6회를 기다려 본다.

2. [매일신문][소리와 울림] 귀향(鬼鄕), 전과 후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영화 '귀향'이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개봉 10일 만에 200만 명을 돌파했다. '귀향'은 감독이 사비를 털고 부족한 재원을 시민 후원으로 채우면서 14년 만에 완성한 영화다. 애초에 상업적으로 기획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흥행 돌풍 자체가 또 다른 화제다. 이 추세를 유지한다면 '귀향'은 조만간 '국민 영화'의 지위에 오를 것 같다. 궁금증이 생겼다. 사람들은 왜 이 영화에 열광할까? 

위안부 실화라는 소재 자체가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긴장된 마음으로 영화관을 찾았다. 애초에 세련된 극영화를 기대하진 않았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으로 영화를 봤다. 신파조의 격렬한 감정 분출이 부담스러웠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었을 현실은 더 했을 것이란 생각에 양해가 됐다. 어쨌거나, 나는 이 영화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을 얻었다. 지금까지 익히 사진으로 보고 글로 읽어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을 눈으로 확인하는 건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다! 나는 그들의 존재와 고통을 알고 있었지만 진정으로 공감하고 이해하진 못했다. 영화는 이 사실을 분명히 가르쳐주었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으로 올라오는 후원 시민 7만5천여 명의 명단을 보면서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막연한 의무감이 밀려왔다.

사실 그동안 위안부의 존재는 늘 우리 곁을 풍문처럼 떠돌았다. 누구나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았다. 역대 어느 정권도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2005년 3`1절 기념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대해 사과하고 배상하라며 강력하게 항의한 것이 전부이다. 시민들도 미온적이긴 마찬가지였다. 20년 넘게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일본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수요집회가 열렸지만 참여자는 소수였다. 현재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세계적인 이슈로 20여 개국 60여 도시에서 수만 명이 참여하는 연대집회로 발전했지만, 이는 오로지 위안부 피해자 당사자와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을 비롯한 소수 활동가들의 노력의 결과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위안부 피해자를 자기의 문제로 껴안은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귀향'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동정받아야 할 '그들'이 아니라 위로받아야 할 '우리'로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제목이 귀향(歸鄕)이 아니라 귀향(鬼鄕)인 까닭은 종전 후 살아 돌아온 피해자뿐만 아니라, 죽어서 돌아오지 못한 피해자까지 껴안자는 뜻으로 읽힌다. 그건 위안부 피해자 전체를 정당한 우리 역사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자는 권유일 터이다. 나는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영화 '귀향'이 한국 시민사회가 위안부 피해자를 껴안는 새로운 전기가 될지, 껄끄러운 사회적 문제를 영화 관람이라는 의사행위로 흘려보내는 일회용 소비로 그칠지는 두고 봐야 안다. 관건은 앞으로 우리 사회가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다.

위안부 문제를 일본군이 우리 소녀들을 집단 강간한 사건으로 해석하면 위안부 피해자는 또 다른 가부장적 민족주의 담론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 이 시각으로 위안부 문제를 보면 일본에 대한 분노를 증폭시켜 민족주의 정서를 동원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정작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온전한 수용은 어려워진다. 낡은 정조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깊은 위로와 후원이 필요한 그들을 멸시와 냉대의 속마음으로 대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위안부 문제는 제국주의 열강의 약소국에 대한 국가 간의 폭력과, 남성이 여성에 가하는 가부장적 폭력이 중첩된 문제다. 이 시각으로 위안부 문제를 바라볼 때만 위안부 피해자들은 부당한 국가폭력의 희생자로 회복에 대한 정당한 사회적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다. 한국 시민사회에서 이런 사회적 인정이 자리 잡아 집단적 힘을 발휘할 때, 가해당사자인 일본의 공식사과와 법적 배상도 앞당겨질 것이다.

3. [이데일리][허영섭 칼럼] 알파고, 바둑판에 뛰어든 도깨비

마치 도깨비에 홀렸다고나 할까. 바둑 최고수인 이세돌과 알파고가 맞붙은 ‘세기의 대국’ 5번기 2국이 끝난 지금의 얼떨떨한 기분이 바로 그것이다. 밤새 붙잡고 씨름을 했으나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채 주저앉았다는 옛날이야기 속의 그 도깨비 말이다. 알파고를 직접 상대하고 있는 이세돌의 심정은 더할지도 모른다.

내리 두 판을 졌으니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적어도 첫 판만큼은 이길 것이라는 게 바둑계의 장담이었다. 알파고가 뛰어난 인공지능이긴 하지만 바둑에 있어서만큼은 아직 10년 이상 뒤져 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조차 무의미해지고 말았다. 이제 앞으로 남은 세 판에서 이세돌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관심사가 되어 버렸다.

변화무쌍한 수읽기에서 순간적인 직관과 감각이 요구되는 것이 바둑의 영역이다. 상상력도 필요하다. 경우의 수가 무한하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울타리까지 컴퓨터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인공지능도 인간이 만들었으므로 어느 쪽이 이기든 인간의 승리”라는 찬사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체스와는 또 다르다. 체스의 착점이 64개에 그치는 반면 바둑에서는 361개에 이른다. 그만큼 복잡하고도 오묘한 게 바둑이다. 바둑이 3000년 이상 전해 내려오면서 인간이 만든 최고의 ‘두뇌 오락’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1997년 IBM의 슈퍼컴퓨터 ‘디퍼블루’가 체스 세계 챔피언이던 카스파로프를 꺾었을 때와 충격의 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알파고가 교과서적인 정석에 능할 뿐이라는 생각 자체가 오산이었다. 최적의 착점을 찾아낼 수 있겠지만 앞을 내다보는 착점은 어려울 것이라고 낮춰 보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응수 타진이나 흔들기에도 끄떡하지 않았다. 확률적으로 계량화하기 어려운 부분에서도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기존 기보를 흉내내는 차원이 아니다.

비록 컴퓨터일망정 사람의 두뇌처럼 신경망 구조로 작동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나름대로 판단력과 직관력까지 갖추고 있음을 말해준다. 기존 데이터를 시행착오로 걸러내면서 새로운 전략을 찾아낸다는 것이니, 스스로 진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 셈이다. 바둑에서 이세돌을 쩔쩔매게 만들 정도가 됐다면 과거 수천만년에 걸친 인류의 진화 단계를 훌쩍 건너뛰고 있다고도 여겨진다.

바둑의 영역만은 아니다. 이미 특정 기능을 대신해 주는 인공지능 로봇들이 우리 주변에 서서히 등장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물론 국내에서도 거의 상용화 단계까지 이른 무인자동차가 대표적인 사례다. 각종 센서와 고성능 GPS시스템을 갖추고 자기가 알아서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자율주행 자동차다. 혼자서 농지를 경작하는 트랙터도 최근 일본에서 선보였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예술 분야에도 버젓이 발을 디밀고 있다. 구글의 인공지능 ‘딥드림’은 추상화를 그리고 예일대가 개발한 인공지능 ‘쿨리타’는 음계를 조합해 척척 작곡까지 해낸다. 이와 더불어 빅데이터를 이용한 인공지능 기술이 의료 분야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중이다. 그러고 보면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것도 새삼스럽게 볼 일만은 아니다.

이젠 이러한 인공지능이 인간 사회에 널리 파고들 경우 우리 생활이 과연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걱정해야 하는 단계다. 공상과학영화인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스카이넷 만큼은 아니라도 최소한 사람들이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빈부의 양극화가 더욱 극심해질 것이라는 것만큼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그런 불행한 현실이 다가오지 않게 미리 대처하는 것 또한 우리의 몫이다. 그래야만 알파고가 이번 시합에서 최종 승리하더라도 진정한 인류의 승리라고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라는 현대판 도깨비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진화해갈지 지켜볼 일이다.

4. [동아일보][하숙 톡톡]오늘도 타향 학생들 부대끼며 추억을 쌓는다

“밥상에서 장난치던 남녀, 부부가 되기도”
《 ‘응답하라 1994’ 속 식탁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하숙생들의 얼굴이 비칩니다. 그들의 일상과 성장 스토리에 많은 시청자가 공감했지요. 하숙은 누군가 나를 위해 해준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입니다. 따뜻한 밥과 따뜻한 말 한마디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팍팍했던 하루를 위로받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요. 그런 생활을 끝내고 고된 세상살이를 거친 뒤에도 하숙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숙생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

내가 하숙을 하는 이유
“스무 살 자취 생활에 대한 환상이 잔뜩 있었죠. 매일 인테리어용 가구를 사들이고 친구들 불러서 집에서 파티를 열었어요. 친구들은 놀다 가면 끝이지만 전 다음 날 너무 힘들었어요.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 그릇들도 부담스럽고, 분리수거도 번거로웠죠. 점점 친구들과는 밖에서 만나고 밥도 밖에서 먹고 들어왔어요. 몸이 많이 상했어요. 안 되겠다 싶어 올해부턴 하숙을 시작했죠. 생활이 규칙적으로 바뀌고 식사도 제때 하게 되니 몸이 회복되고 있는 것 같아요.”―대학생 김모 씨(21) 

“서울이 집인데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게 됐어요. 기숙사 추첨에 떨어지고 자취를 하고 싶었지만 아빠가 엄하신 편이라 하숙을 하게 됐죠. 처음엔 모든 게 낯설었어요. 사투리를 한 번에 못 알아들어서 몇 번씩 되묻곤 했죠. 어느 날 하숙집 언니들이 작은 파티를 열어 저를 환영해줬어요. 그 언니들 덕분에 점점 대구 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같이 자고, 같이 먹는다는 게 유대감을 주더라고요.” ―대학생 박모 씨(20)

“집이 서울인데도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느라 작년부터 하숙을 시작했어요. 학교까지 걸어서 10분이라 통학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요. 하숙은 시험만을 위해 집중하는 사람에겐 최적의 시스템이에요. 오늘 해먹을 반찬이나 공과금 납부 같은 사소한 일엔 신경 안 써도 되니까요. 고충이 있긴 했죠. 하숙집 아주머니의 두 살배기 손자가 자주 놀러 왔거든요. 처음엔 귀여웠지만 벽 밖에서 들려오는 까르륵 웃는 소리와 울음소리 등이 신경 쓰여서 견딜 수 없을 때가 있었어요.” ―취업준비생 류모 씨(23)

“시어머니가 ‘니 음식 진짜 맛있다’고 칭찬해 주셔서 1995년에 하숙을 시작했어요. 하숙생들과 정 나누는 게 좋습니다. 우리 집에 한번 들어오면 3년씩은 살아요. 첫 보너스를 탄 날 선물을 사서 서울에서 대구까지 내려온 학생도 있어요. 지금도 제 생일엔 전국에 퍼져 있는 우리 집 출신 하숙생이 다들 모입니다. 부모님들도 감자, 밤, 귤 등 고향의 음식을 보내 주시지요. 방학 때 집에 돌아간 아들이 ‘엄마 밥보다 하숙집 밥이 맛있다’고 했다며 토라진 어머니도 있습니다. 진심이 아니면 사람을 대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그걸 귀신같이 압니다. 늘 꿀과 매실청을 준비해 놔요. 술 먹고 속 쓰린 학생들에게 ‘일찍 댕기라’고 잔소리하는 대신 ‘꿀물 한잔 무라’ 하지요.” ―대구 북구 조정희 씨(62)

추억을 만드는 생활

“92학번입니다. 당시 하숙비가 26만 원이었습니다. 친구 여동생의 수학 과외를 해주고 한 달에 30만 원 받았어요. 그때는 한 학기 등록금이 60만 원, 학생식당 백반이 700원, 지하철 1구간 요금이 200원 정도였습니다. 하숙집 형들과 전공 이외의 모든 것을 공유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에요. 거실에는 기타, 노래책 같은 게 늘 놓여 있었어요. 금요일만 되면 도서관 앞 공터에서 시위를 했고 이념 서적도 읽었습니다. 미팅에서 만난 여학생과 서로 학보도 부쳐주고 음악회도 가고 그랬지요. 그 여학생이 롤케이크를 사서 하숙집에도 종종 놀러 왔어요. 형들은 넙죽넙죽 케이크를 입에 넣으면서 ‘너희 언제 결혼하니’라며 짓궂게 놀렸지요. 아직도 형들을 종종 만납니다. 다들 배 둘레를 걱정하고 자기 삶과 가족에 치여 살지만 만나면 금세 그때의 기개나 분위기가 되살아나서 얼큰하게 취하곤 합니다.” ―변리사 홍모 씨(44)

“건국대 행정학과 87학번입니다. 집이 제주도라서 2년간 하숙을 했어요. 3학년 하숙 때 주인아주머니는 전라도 분이셨고, 4학년 하숙 때 아주머니는 경상도 분이셨지요. 꼭 어떤 분이 음식을 더 잘하셨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음식은 두 분 다 잘하셨어요. 친구들을 데려가도, 서귀포에서 올라온 막냇동생을 하루 재워도 싫은 내색 없이 웃으며 푸짐한 아침을 차려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하숙’이란 단어를 들으면 젊은 날의 추억과 함께 따뜻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감귤 농사를 하는 문형천 씨(49)

“25년째 여성 전용 하숙을 하고 있어요. 우리 학생들이 밥이 정갈하고 담백하다는 말을 많이 해줍니다. 그 덕에 흐트러지지 않고 식사 준비를 해요. 지금 서른다섯 살인 손자가 초등학생 때부터 온 가족이 열심히 도와서 하숙을 꾸려왔지요. 요즘 같은 어려운 시기에 우리 집 학생이 대기업에 입사하고 고시에 합격하면 대견하지요. 날이 어두워지면 남편이 직접 현관문에 불을 밝혀 놓아요. 학생들 안전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H하숙 주인 한부용 씨(79)

“21년째 하숙을 하고 있어요. 2층은 여학생, 3층은 남학생이 써요. 2002년 월드컵 즈음이었던 거 같아요. 아침에 학생들 국을 떠주다 보니 마주 앉은 여학생이랑 남학생이 장난을 치고 있었어요. 분위기가 훈훈했어요. 몇 년 전 두 명이 예쁜 과일바구니를 들고 찾아왔어요. 앳된 얼굴이 겹친다 싶었는데 둘이 글쎄 부부라는 거예요. 그 말을 들으니 그날 아침 기억이 슬슬 나더라고요. 그 둘은 우리 하숙집에서 처음 만나서 캠퍼스 커플로 거의 8년을 사귀다 결혼했대요.” ―B하숙 주인 김왕희 씨(68)

원룸형 외국인 전용도 등장
“자취를 하면 밥을 챙겨 먹기 힘들고 하숙을 하면 독립적인 공간 확보가 어렵죠. 그 절충으로 원룸형 하숙에 들어온 지 2년 반 됐어요. 각 방에 화장실, 냉장고, 에어컨이 있어요. 밥은 1층에서 먹을 수 있고요. 원룸형 하숙은 기본적으로 평소엔 자기 공간에서 생활을 하는 구조예요. 다른 학생들은 밥 먹을 때나 간혹 마주칠 뿐이죠. 각자 시간표도 다르고 아르바이트 때문에 일과도 다르다 보니 전통적인 하숙과는 다른 이런 형태의 하숙도 나타나는 것 같아요.” ―대학생 김광현 씨(25)

“10년 전엔 유럽이나 미국 학생들이 많았어요. 요즘엔 인도 러시아 태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공부를 하러 와요. 토스터, 커피메이커, 전자레인지, 시리얼, 우유와 달걀을 비치해 놨어요. 저녁은 한국식으로 김치찌개나 생선구이를 먹고요. 영어는 안 써요. 한국에 공부하러 왔으니 한국어를 사용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처음 하숙비 독촉을 할 때에는 노크하기 전 문고리를 잡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한참 망설였어요. 요즘엔 ‘하숙비 밀렸어요’ 하고 바로 말해요.” ―C하숙 주인 윤경자 씨(60)

“방학을 통해 ‘집구하기 A TO Z’ 같은 상담과 교육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어요. 자취나 하숙이나 사실 집을 보는 기준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 청년들을 위해 계약 전 단열, 방음, 방충 등을 함께 살펴주는 동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경험도 적고 예산도 충분하지 않다 보니 모를 수 있는 부분이 많거든요. 주거상담사 양성 과정도 마련해놓고 있는데 기수당 서른 명 정도가 수료해요.” ―민달팽이 유니온 주거사업국장 최지희 씨(26)

“서울대의 경우 학생 정원에 비해 기숙사 수용률은 11%밖에 되질 않아요. 나머지 89%는 자취든 하숙이든 살기 위한 방을 구해야 하는 거지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의 하우스’라는 주거 실험에 돌입하게 됐어요. 보증금과 월세를 함께 사는 사람과 나눠서 내고 욕실, 주방 등은 함께, 방은 각자 쓰는 방식이에요. 2월 말까지 총 56명의 입주자가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았어요. 이런 실험들이 점점 실제적인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서울대 총학생회 주거복지팀장 안혜린 씨(31)

5. [동아일보][지금 SNS에서는]다 지나갈 일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런 고민들도 다 별것 아닌 게 되겠지….’

서랍을 정리하다 발견한 학창 시절 일기장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더군요. 입시에 대한 압박감, 친한 친구와의 말다툼…. 당시 고민이라 하면 이런 사소한 것들이었지요. 10년이 지난 지금, 고민의 내용은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걱정들은 바람대로 정말 ‘별것 아닌’ 일이 됐지요. 당시엔 꽤나 심각했던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오늘을 사는 10대들도 예전의 저와 비슷해 보입니다. 지난 한 주 익명 커뮤니티 사이트 ‘네이트 판 톡톡’에 ‘10대 이야기 베스트 톡’으로 꼽힌 게시 글을 보고 든 생각입니다. 

‘여기 고민 말해 봐. 반 년 뒤에 답글 달아 줄게’라는 제목이었습니다.

‘내가 답글 달았을 때는 고민이 싹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때 댓글 보면서 ‘맞아 이런 고민이 있었지ㅋㅋㅋ 쓸데없는 고민이었네’ 하고 웃어넘기길 바라면서! 댓글로 고민 말해 봐 여름방학쯤에 답글 달아 줄게.’

글쓴이는 자신의 고민도 덧붙입니다. ‘난 새 학기 친구랑 친해질 수 있을까 고민이고 내신 관리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돼. 너네는??’

기다렸다는 듯 주렁주렁 댓글이 달렸습니다. ‘반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고 지금 상설 동아리 지원서 넣는 거 붙었으면 좋겠다. 중간고사 잘 보고’, ‘같은 반에 좋아하는 애 있는데 6개월 뒤엔 잘 만날 수 있을까’, ‘독서실에서 독학하는 재수생인데 사람을 못 만나서 너무 외롭다. 9개월 뒤에는 친구들이랑 다 같이 웃고 싶다!!’

이 글엔 댓글이 3700건 넘게 달렸습니다. 작성자가 댓글을 6개월 뒤에 달아 주기로 한 만큼, 댓글을 단 사람들끼리 대화를 주고받았지요. ‘사람들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안 받았으면 좋겠어’, ‘동아리는 꼭 붙길 바라’, ‘중간고사 파이팅!’

이 시기 학생들로부터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고민들, 그에 대한 조언들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10대를 지나온 어른들이 이들의 고민을 사소하게만 치부한다면, 그야말로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하는 꼴’일 겁니다. 친구와의 관계가, 자꾸만 떨어지는 내신 등급이, 좋아하는 학우의 마음을 얻고 싶은 그 간절함이 지금 10대들에겐 너무도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죠. 그 시절 저 또한 그랬듯이 말입니다.

고민은 많지만 막상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요즘, 온라인은 고민 상담 창구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도 차마 말하기 부끄러운 그런 사소한 고민들을 익명의 공간에선 편하게 얘기할 수 있죠. 상담 전용 페이스북 페이지, 카카오톡 익명 상담 모임방 등이 활성화되는 이유입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딱히 해결책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고 위로받고 싶을 뿐입니다. ‘다 지나갈 일들’이라며.

누리꾼들의 고민을 읽다 보니 최근 방영된 MBC 무한도전 ‘나쁜 기억 지우개’ 편이 떠올랐습니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서울 노량진과 광화문 등지에 ‘나쁜 기억을 지워 드립니다’라고 쓰인 푸른 천막을 쳐 놓고 사람들을 기다렸습니다. 그곳에서 잊고 싶은 기억을 종이에 쓴 다음 지우개로 지워 보는 시간을 가졌죠. 천막을 찾은 사람들 대부분은 ‘지우고 싶은 기억이 뭐냐’라고 물었을 때 선뜻 얘기하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현재의 고민을 토로했습니다. 오랜 취업 준비로 인한 불안감,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등을 꺼냈죠. 나쁜 기억은 다시 떠올리기 싫어 기억의 저편에 묻어 두었기 때문에, 곧장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사실 지금의 고민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면, 그 일이 더 나쁘게 진행돼 훗날 안 좋은 기억으로 남겨질 수 있습니다. 방송이 나간 뒤 한동안 SNS에선 ‘내가 지우고 싶은 기억은 무엇인가’는 물론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힘든가’를 돌아보는 글들이 여럿 올라왔습니다.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도 모른 채 살아가던 이들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사는 이들을 보며 공감하고, 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거죠.

여하튼 지금 안고 있는 고민들, 너무 심각해하지 않길 바랍니다. 먼 훗날엔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넘길 일이겠죠. 이 또한 다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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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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