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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0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새누리당 내부에서 불거진 막말파동

총선이 임박한 시점에서 새누리당 내부에서 원색적인 막말 파동이 불거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윤상현 의원이 비박계인 김무성 대표를 향해 내지른 언사가 언론에 불쑥 공개된 것이다. 공천작업이 한창 진행되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더욱 미묘한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장막으로 가려진 우리 정치의 부끄러운 현주소를 여과없이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녹취록으로 공개된 문제의 발언부터가 심상치 않다. “김무성이 죽여 벼려”라거나 “먼저 그런 사람부터 솎아내라”는 등의 김 대표 공천 배제를 촉구하는 발언이다. 군데군데 원색적인 욕설도 섞여 있다. 윤 의원이 최근 지인과의 통화에서 말했다는 내용이다. 당사자인 윤 의원도 이에 대해 사과의 뜻을 표명하고 있으니, 발언 내용이 사실인 것만은 틀림없다. 야당으로부터 ‘막장 드라마’라는 비아냥이 쏟아지는 것도 당연하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끼리 최소한의 위계나 윤리의식이 있기나 한 것인지 물어보고자 한다. 스스로 정통 보수계의 맥락을 이어 왔다고 자부하는 집권당이 아닌가. 공천작업 과정에서 ‘친박’과 ‘비박’ 사이의 알력이 드러나고 있다손 치더라도 이런 식이라면 곤란하다. 더구나 선거를 앞두고 여야를 가리지 않고 막말을 포함한 추태 의원들을 걸러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한 마당이다.


이미 윤 의원이 여러 차례에 걸쳐 김 대표를 공격한 전례도 없지 않다. 김 대표의 오픈 프라이머리 구상에 대해 반기를 들었는가 하면 다음 대선에서 김 대표가 후보로 나서는 데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비치기도 했다. 친박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장이었다. 이번에는 공천 살생부 논란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고 하지만 역시 그 밑바닥에는 서로에 대한 불신감이 도사리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이러한 개인적인 통화 내용이 녹음 상태로 외부에 유출된 경위도 석연치는 않다. 그 배경에 의도적인 음모가 깔려 있다는 반박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렇다고 정치인으로서 문제의 발언에 대한 책임이 면제될 수는 없다. 따지고 보면 어차피 그런 사람들끼리 섞여 있는 집단이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지 유권자들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2. TV홈쇼핑 '속임수 광고' 그냥 놔둘 건가

 텔레비전 홈쇼핑업체들의 선전 문구가 대부분 거짓이거나 과장인 것으로 드러났다. ‘방송사상 최저가’, ‘단 한 번도 없던 초특가’, ‘방송에서만 판매’라는 등의 문구가 그것이다. 효능과 성능을 부풀렸는가 하면 중도해지 위약금과 추가 비용 등 계약 체결에 불리한 정보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엉터리 광고로 소비자를 속인 것이므로 사기와 다름없다.

한국소비자원이 최근 롯데홈쇼핑과 현대홈쇼핑, CJ오쇼핑, GS홈쇼핑 등 6개 업체의 100개 방송을 조사한 결과 70개 선전이 ‘최저가’, ‘방송에서만 판매’ 등으로 광고했다. 그러나 이 중 82.9%는 거짓으로 밝혀졌다. 방송에서만 판다던 물건을 실제로는 방송 후에도 자사 인터넷몰에서 계속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저가’라는 상품이 다른 인터넷 쇼핑몰의 가격보다 비싼 경우도 없지 않았다.

100개 방송 중 39개 선전에서는 상품의 효능과 성능을 속이기도 했다. 일부 업체의 모바일앱은 소비자가 크게 할인받는 것으로 오인하도록 일시불, 자동주문 할인 등을 적용한 최저가를 판매가처럼 표시했다. 뿐만 아니라 렌털 및 여행상품 30개 중 93.3%는 반품, 중도해지 위약금 등 중요 정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부도덕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이들의 부도덕한 행태는 고질적이다. 홈앤쇼핑, NS홈쇼핑 등 4개 업체 간부 7명이 2012년 납품업체로부터 뒷돈을 챙겼다가 사법처리됐다. 2014년엔 롯데홈쇼핑 간부 2명이 같은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지난해에는 납품업체에 일방적인 판매조건 강요 등 불공정행위를 한 사례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비리와 ‘갑질’이 만연해 있다는 방증이다.

TV홈쇼핑은 지난 20여년 동안 고속 성장해 왔다. 그에 비례해 납품업체에 대한 횡포와 비리도 늘어났다. 피해는 고스란히 납품업체와 소비자가 떠안아야 했다. 공정위는 일이 터지면 재발 방지를 장담했지만 달라진 건 거의 없다. 경고나 시정조치, 과징금 처분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달라져야 한다. 속임수 광고를 엄중 처벌해 홈쇼핑업체들의 부도덕한 행태를 뿌리 뽑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동아일보]

3. 대통령측근 윤상현의 “김무성 죽여”… 공천 개입 靑뜻인가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인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 “김무성이 죽여 버려 이××. (비박계) 다 죽여”라고 한 ‘막말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윤 의원은 ‘공천 살생부’ 보도가 나온 지난달 27일 밤 다른 친박 의원과 통화한 경위에 대해 “너무나 격분해 술을 많이 마신 상태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어제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취중의 사적 대화를 녹음해…의도적인 음모”라고 역공했다. 막장으로 치닫는 새누리당 공천 드라마의 끝은 도대체 어디인가.


윤 의원은 통화 유출 경위를 추적하겠다고 했지만 적반하장이다. 통화 내용의 진위부터 먼저 규명돼야 한다. 그는 “내일 (김무성을) 쳐야 돼!” “내가 ○○형한테다가…정두언이하고 이야기할 준비가 돼 있어”라며 살생부 발언을 폭로한 정 의원과 조율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다음 날부터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과 서청원 최고위원을 비롯한 친박계가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결국 김 대표는 사과했고, 지도력에 상처를 입었다.


이 위원장과 서 최고위원 등은 ‘취중실언(失言)’이라며 덮고 가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안될 말이다. 새누리당은 먼저 윤 의원과 통화한 사람과 친박 핵심들이 실제로 ‘김무성 죽이기’에 나섰는지, ‘공천에서 떨어뜨리겠다’는 윤 의원의 말과 살생부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형’은 친박 고위 핵심을 지칭한다는 말이 무성하다. 이재오 의원은 “‘내일부터 공략하라’ ‘다 빼라’ 지시하는 건 공천 지침을 하달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러니 새누리당 공천의 공정성을 누가 믿겠는가. 국민에게 약속한 상향식 공천은 이한구 위원장이 사실상 전략공천인 단수·우선추천제와 컷오프를 단행하면서 물 건너갔다. 이 위원장이 ‘보이지 않는 손’의 지침을 따른 것은 아닌지, 김 대표가 침묵을 지키는 것이 완장 찬 친박 실세의 ‘김무성 죽이기’와 관련은 없는지 의구심이 눈덩이처럼 부풀고 있다. 의혹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공천(公薦)’이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사천(私薦)’ ‘박천(朴薦)’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대통령정무특보를 지냈고 박 대통령을 사석에서 ‘누나’라고 부르는 윤 의원은 ‘박근혜의 남자’로 통한다. 그의 ‘취중진담’에 청와대가 개입했는지도 확인돼야 한다. 당의 공천에 친박 핵심과 청와대가 공모해 개입했다면 일종의 국정농단이다. 청와대 개입 없이 그렇게 했다면 ‘친박 패권주의’의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삼권분립 논란에도 윤 의원을 정무특보로 임명해 감쌌던 박 대통령의 인사 탓도 크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심각한 해당(害黨) 행위를 한 윤 의원은 공천 배제, 아니 출당 같은 엄중한 조치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4. 北김정은 “핵탄두 소형화” 발언도 정부는 가볍게 듣나

북한 김정은이 “핵탄을 경량화해 탄도 로켓에 맞게 표준화, 규격화를 실현했다. 이것이 진짜 핵 억제력”이라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어제 보도했다. 김정은이 핵무기연구소를 찾아 소형 핵탄두로 보이는 모형 앞에서 지도하는 모습도 공개했다. 

김정은이 소형 핵탄두 개발에 성공했다고 주장한 것은 처음으로 국제사회의 핵·미사일 포기 요구를 일축한 것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달 초 대북제재 결의 2270호를 통과시켰다.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은 독자 제재에도 나서며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김정은은 이를 무시하듯 “위력이 있고 정밀화, 소형화한 핵무기들과 운반수단을 더 많이 만들라”며 실전 배치한 핵무기로 미국과 한국을 선제 타격하겠다고 협박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북한이 소형화한 핵탄두와 KN-08 실전 능력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마크 웰시 미국 공군참모총장도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통일부는 “핵과 관련한 소형화 기술은 어느 정보 확보하고 있지 않느냐”고 밝힌 바 있다. 국내 일부 전문가들도 북의 4차 핵실험이 수소폭탄 아닌 증폭핵분열탄이라 해도 핵탄두 소형화와 연결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작년 말 북이 수소폭탄 보유를 밝혔을 때도 “수소폭탄 제조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던 정부가 또 판단 잘못을 한다면 국민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핵탄두 무게가 2t 정도면 노동미사일에 실어 주한미군 기지를 비롯해 한국 어디든 공격할 수 있다. 정부는 김정은의 말을 무시할 것이 아니라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대비해야 한다. 한미 공동실무단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는 물론이고 탄도미사일에 대응한 4D(탐지 교란 파괴 방어) 작전계획을 하루빨리 보완해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5.해남군 출산율 4년 연속 1위의 교훈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2001년 1.3명 이하로 떨어진 이후 15년째 1.2명 수준에 그치고 있다. 2005년에는 1.07명까지 떨어졌고 이후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2014년 기준 합계 출산율은 세계에서 꼴찌인 1.21명이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실행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친다. 정부에서 아무리 좋은 출산 장려 정책을 내놓아도 당사자인 젊은 부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출산율 증가는 헛구호일 뿐이다. 그런데 땅끝마을 전남 해남으로부터 출산율 1위라는 희망의 소식이 4년째 전해지고 있다.

해남군은 2014년까지 3년 연속 출산율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2015년에도 출산율 1위가 확실시된다고 한다. 지난해 10월까지 태어난 신생아는 681명이다. 예년과 비교하면 이 숫자로도 전국 1위라고 한다. 해남군의 2014년 합계 출산율은 2.43명. 전국 평균 1.21명의 두 배다. 인구 7만명의 해남에서 한 해 800명, 4년 동안 3000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다. 전문가들은 이를 ‘해남의 혁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해남의 출산율은 그저 얻은 게 아니다. 출산에서 보육, 교육에 이르기까지 원스톱 서비스라는 정책 수행과 이를 믿고 따른 주민들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먼저 해남군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출산장려금 예산을 보통 3억~4억원을 책정하는 것보다 10배나 많은 40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아울러 젊은이들을 끌어들일 유인책으로 경제적인 뒷받침을 하고 있다. 5년 전 100가구에 그쳤던 1억원대 부농이 5년이 지난 지금 651가구로 증가했다. 적극적인 귀농정책으로 800가구 2000여명이 귀농했다고 한다. 특히 다문화 가정 535가구에 대한 지원책도 입체적이다. 다문화 가정 여성들의 취업을 군에서 지속적으로 챙기는 등 출산율 장려에 진력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아이가 늘면서 지역경제도 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저출산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들이 결혼보다는 자기 계발을 중시하면서 결혼 시기를 늦추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출산율을 떨어뜨린다고 한다. 해남군의 출산율 증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 결과인 셈이다. 정부는 물론 전국의 시·군·구에서 해남군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면 좋을 것 같다. 지역마다 특성이 있는 만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지역에 맞는 정책을 개발해 지속적으로 시행하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해남군의 교훈’이 전국으로 확산되기 바란다.

6. 막장으로 치닫는 與 계파 갈등

새누리당 친박계 핵심 윤상현 의원의 김무성 대표를 겨냥한 막말 파문은 4·13총선 공천을 둘러싸고 가뜩이나 신경을 곧추세우고 있는 당 전체를 들쑤셔 놓고 있다. 공천 방식 갈등, 살생부 논란, 여론조사 문서 유출 등 쉴 새 없이 터져 나온 악재 가운데 파장이 가장 클 수밖에 없다. 막말 이전의 사건들은 공천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측면이 강했던 탓에 계파들은 유불리를 따져 비교적 조심스러운 자세를 취해 왔다. 그러나 이번은 차원이 다르다. 당 대표를 특정해 공천 배제를 노골적으로 거론한 데다 육두문자까지 서슴지 않은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생중계되듯 드러났다. 집권 여당 내에서 벌어지는 계파 간 진흙탕 싸움의 실상과 수준이 까발려진 것이나 다름없다. 당 기강뿐만 아니라 공천의 투명성마저 의심하고 있다. 윤 의원 개인의 자질 문제로 치부해 넘기기 어려운 이유다.

윤 의원은 ‘여당 의원 40명 살생부’ 파동이 불거진 지난달 27일 누군가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 대표를 거명하며 “죽여 버려. 다 죽여. 가장 먼저 그런 ××부터 솎아 내”라는 등의 막말을 쏟아 냈다. 발언은 당시 윤 의원을 만난 제3의 인사에 의해 녹음돼 폭로됐다. 윤 의원은 김 대표에게 공개 사과하면서도 “취중의 사적 대화까지 녹음해서 언론에 전달한 행위는 의도적인 음모”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누구랑 대화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의원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 있다. 그러나 궁색하기 짝이 없다. 술에 취했다 해도 넘지 않아야 할 선이 있다. 윤 의원은 말 그대로 청와대 정무특보를 겸직했을 만큼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자 실세이고, 사무총장·대변인 등 당 요직을 두루 거친 중진 정치인이다.

윤 의원은 무엇보다 먼저 ‘누구와 통화했는지’를 밝혀야 한다. 당 대표의 공천 여부까지 거론할 수 있는 지인이라면 비박계 이재오 의원의 말처럼 “공천을 통하거나 권력을 통하거나 김 대표를 죽여 버릴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취중을 빌미로 얼렁뚱땅 넘어가기에는 너무 심각한 사안이다. 자칫 공천관리위원회의 권위와 함께 공정성 자체를 훼손할 수 있다. 윤 의원 스스로 책임지는 태도도 필요하다. 새누리당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 국민에게 설명해야 함도 당연한 절차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진상을 규명하는 게 우선”이라고 밝혔지만 진상 결과에 따라 엄중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새누리당만이 아닌 정치 쇄신을 위해서다.

막말 파문은 새누리당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친박·비박의 계파 갈등이 막장으로 치닫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상향식 공천이 사실상 물 건너가고 살생부 파동으로 궁지에 몰린 김 대표 측에게는 친박을 압박해 주도권을 다시 잡을 수 있는 기회다. 실제 비박계가 총공세에 나섰다. 하지만 공방이 계속될 경우 당 전체에 미치는 악영향은 자명하다. 새누리당 대표 회의실의 백보드에 쓰인 글귀 ‘진짜 잘하자’가 헛구호라는 사실을 자인하는 꼴이기도 하다. 자중이 요구된다. 대신 공천 개혁을 보여 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새누리당 스스로 말해 왔듯 한순간 훅 갈 수 있다. 유권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매일경제]

7. 부실기업 구조조정 정치논리에 밀리면 공멸로 간다

대우조선해양의 지난해 5조5000억원 영업손실은 대한민국 기업사에 전대미문 기록으로 남을 듯하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았을 때 공룡기업 대우가 한 해 9조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바 있지만 조선업 단독으로 평시에 이런 적자를 본 건 전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우조선뿐 아니라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도 각각 지난해 수조 원씩 적자를 보면서 조선업 전체가 애물단지 신세다. 조선 외에 해운, 철강, 석유화학까지 과거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중후장대 산업의 주력 업체들이 줄줄이 추락 중이다. 공급과잉 업종 기업의 사업 재편을 돕기 위한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을 마련했지만 가야 할 길이 만만치 않으니 걱정이다. 

좀비기업의 가장 큰 해악은 자신과 해당 업종을 넘어 연관된 정상기업이나 모그룹을 감염시켜 함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는 데 있다. 그룹 내 계열사의 빚 돌려막기로 연명하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대표적이다. 한진해운이 발행한 영구채 2200억원어치를 받아준 그룹 맏형 대한항공은 자기 앞가림도 어려운 판에 그만큼의 재무 리스크를 더 떠안았다. 현대그룹 주력사인 현대엘리베이터도 현대상선에 운영자금을 수혈해주고,현대상선 보유 주식을 매입하기 위해 2000억원 규모 전환사채를 발행해 가며 총대를 멨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재무구조 개선 여부가 그룹과 핵심 주력사를 흔드는 족쇄가 돼버린 것이다. 

부실기업 처리가 이렇게 시급한데도 앞장서 수술을 주도해야 할 주체들이 눈치만 보고 있으니 심각하다. 특히 4·13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노골적인 압력에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마냥 휘둘리고 있어 실망스럽다. 당장 정리해야 할 조선업체들의 일부 사업장을 해당 지역 여당 의원들 입김에 미루면서 부실만 더 커지고 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떠안거나 주채권은행을 맡은 부실기업의 경우 신속한 매각과 정리를 해야 하지만 사실상 손놓고 있어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까지 의심스럽다. 정치권에 휘둘리는 정부, 채권단의 보신주의, 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어우러진 전형적인 수건 돌리기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자꾸 미루다가는 한국 경제 전체가 공멸로 갈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중앙일보]

8. 인공지능 시대의 본격화 알린 알파고의 승리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가 프로기사 이세돌 9단과의 첫 대결에서 완승했다. 아직은 인간을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라는 대다수의 예상과 달리 186수 만에 이 9단에게 불계승을 거뒀다. 알파고는 초반 포석부터 끝내기까지 허점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대국 내내 보여준 수읽기는 프로기사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탄탄했다. 컴퓨터가 강점을 갖고 있는 형세 판단과 계산 능력을 유감 없이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목할 점은 많은 바둑 전문가가 “컴퓨터가 아니라 사람이 두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는 점이다. 알파고는 초반 이 9단의 실리 작전에 맞서 두터운 세력을 형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중반에 결정적인 침입수를 날려 승기를 잡아 나갔다. 응수타진과 손빼기처럼 프로기사가 둘 법한 수단도 종종 등장했다. AI가 인간 고유의 영역인 인지·판단·추론의 영역에 들어서기 시작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알파고와 이 9단의 대국은 아직 네 판이 남아 있다. 승부의 최종 결과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첫 대국만으로도 AI는 이미 그 잠재력을 입증했다. 알파고는 지난해 10월만 해도 ‘프로기사 저단자 수준’으로 평가됐지만 불과 넉 달 새 세계 최고수 반열에 올라섰다. 이런 발전 속도는 이미 AI가 핵심 기술이 되고 있는 무인자동차와 원격진료, 금융투자 같은 분야에서도 체감하게 될 것이다. 알파고의 승리를 계기로 AI의 현재와 미래를 냉철히 그려볼 필요가 있다.

이는 AI에 대한 활발한 연구개발(R&D)과 상용화를 통해 가능하다. 하지만 이 분야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투자가 뒤처져 있는 게 현실이다. 미국만 해도 구글과 IBM·MS·애플·페이스북 등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이 모두 나서 다방면에 걸친 연구와 제품화를 서두르고 있다. AI를 어떻게 통제하고 활용할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국가적 전략도 아직 없다. 역사적인 대국에서 알파고가 승리한 의미를 곰곰이 되짚어야 할 이는 이세돌 9단만이 아니다.

[부산일보]

9. 높아진 북항·원도심 관심은 '균형 발전 부산' 위한 희소식

최근 부산 북항 재개발지와 인근 원도심에 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난달 '북항 그랜드 마스터플랜'이 발표된 이후 이 일대의 부동산을 바라보는 투자자들과 시민들의 시선이 크게 바뀌고 있다. 이곳이 앞으로 명품 주거지로 부상할 것이란 기대감으로 인해 현재 분양 중이거나 분양 예정인 아파트들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단다. 여기에다 우암 1·2 재개발 지역이 국토부의 '뉴스테이 연계형 정비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북항 일대가 골고루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 

이런 기대가 반영되어선지 여러 공공기관이 부속청사의 북항 이전에 큰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북항에 들어설 부산지방합동청사의 규모가 기존 계획에 비해 배 이상 늘어나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이 사안들이 계획대로 이뤄진다면, 그간 기형적이란 지적을 받아 온 부산 도시구조가 크게 개선되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선진국은 일찍부터 거대 도시의 중심을 원도심으로 옮겨 오려는 노력을 부단히 해 왔다. 끝 모르게 외곽으로만 뻗어 나가는 도시 발전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였다. 마구잡이 개발과 시설 확충으로 환경 훼손, 예산 낭비 등이 잇따른 데다 도심 슬럼화에 따른 악성 문제들이 폭증했던 것이다. 부산시도 이만큼은 아니지만, 동서 격차나 원도심 낙후 같은 고질이 지적돼 온 게 사실이다. 

원도심의 부흥을 통해 부산의 틀을 바로잡을 '북항 그랜드 플랜'은 그간의 도시 침체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안겨 주고 있다. 북항 재개발 성공으로 부산이 유라시아 출발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원도심이 기존의 해운대·강서 지역 등과 시너지 효과를 올린다면 도시 경쟁력이 급격하게 올라가게 된다. 이제부터 중요한 건 부산시, 부산항만공사 등이 지역 경제계와 힘을 똘똘 뭉쳐 이 꿈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해양수도 부산의 발전이 곧 국가경쟁력이라는 점을 내세워 중앙정부의 지원을 최대한 받아 내도록 해야 한다. 또 북항 재개발지에 고부가가치의 시설을 유치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지금 계획에 더욱 탄력이 붙게 된다. 이를 소홀히 하다 매립지가 빈터로 남아 고생한 외국의 전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10. 경남교육감 주민소환 허위 서명, 과연 몸통은 없나

박종훈 경남도교육감 주민소환을 위한 허위 서명의 윤곽이 드러났다. 경남 창원서부경찰서가 지난 8일 밝힌 중간수사 결과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박 교육감 주민소환 허위 서명을 홍준표 경남지사의 측근들이 주도한 것으로 밝혀진 때문이다. 무상급식 문제를 놓고 홍 지사와 박 교육감이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경찰에 따르면 경남도 산하기관인 경남FC 박치근(구속) 전 대표와 박재기 경남개발공사 사장의 주도하에 범행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범행에 가담한 24명은 경남개발공사 직원 11명, 경남FC 직원 4명, 대호산악회 회원 3명, 박 전 대표의 지인 등이다. 이들은 박 전 대표와 박 사장의 지시를 받고 특정 장소에 모여 허위 서명에 동참했다는 게 경찰의 발표 내용이다. 두 기관 직원들은 준공무원 신분인데도 평일 업무 시간에 출장계까지 내어 범행에 가담했고, 박 사장은 간부들을 대동해 격려 방문까지 했다고 하니 말문이 막힐 뿐이다.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과연 뭔가. 정말 박 전 대표와 박 사장의 홍 지사에 대한 과잉 충성이 빚은 돌출 행위인가. 홍 지사는 도민 사과문을 통해 '도 산하기관 임직원의 개인적 일탈'로 선을 그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홍 지사는 지난해 7월 경남의 학부모와 시민단체들이 자신의 주민소환을 예고하자 기자 간담회를 통해 "나를 지지하는 그룹이 박종훈 교육감 주민소환에 나설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홍 지사의 의미심장한 발언이 이번 사건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경찰의 남은 수사 과제는 박 전 대표와 박 사장의 윗선 및 추가 개입 여부를 밝히는 일이다. 이와 함께 당시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도민 2만 4천여 명분의 주소록이 어떤 경로를 통해 유출됐는지 명백히 밝혀져야 한다. 행정기관의 협조 없이 이처럼 많은 주소록과 신상 확보가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경찰은 명예를 걸고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가려야 할 것이다. 



주요 신문칼럼


1. [머니투데이]가난에 대한 차별을 가르치는 어른들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휴거라고 알아?"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들과 만나 소주 한잔 기울이던 중 한 놈이 뜬금포(?)를 날린다. '종말론 얘기가 다시 도나? 요즘 세상이 하도 어수선하니….' 지레짐작하는 사이 뜬금포의 주인공이 답을 내어놓는다. 
이제 막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조카에게서 듣고 자기도 깜짝 놀랐단다. 요즘 초등학교 아이들 사이에서는 임대주택 사는 아이를 '휴거'라고 부른다고. 휴거는 종말론도 뭣도 아닌 '휴먼시아 거지'의 줄임말이라고.

'말도 안 돼. 같은 반 친구한테 그렇게까지 하겠어.' 설마 하는 생각은 얼마 가지 못했다. 포털사이트를 검색했더니 실제 '휴거' 얘기가 적잖다. 공공 임대주택 사는 사람인데 자기 아이도 그런 놀림을 받을까 고민이라는 글부터 아이들에게 그런 생각을 갖게 한 부모가 문제라는 격앙된 말까지 '휴거'를 걱정(?)하는 글들이 넘쳐난다. '임대아파트 거지', '초등학생 휴거' 등 관련 검색어도 부지기수다.

휴먼시아는 불과 몇년 전까지 쓰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임대아파트 브랜드다. 휴먼시아는 한때 판교신도시, 서울 상암동 등 요지에 임대아파트를 공급하며 성공적인 브랜드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휴먼시아 브랜드는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휴먼시아=가난한 아파트'라는 낙인이 브랜드 사용을 중단하게 된 이유라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휴먼시아는 'human(인간, 인류)과 'sia'(넓은 공간, 대지)를 합친 말이다. 말 그대로 '인간의 공간', '함께 하는 공간'이란 의미다. 그런 휴먼시아가 어느새 가난 그리고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는 말이 돼버렸다.

'선생님, XXX동 아이들은 따로 모아서 공부시키면 안 돼요? 다른 아이들이랑 함께 섞이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XXX동은 이쪽 출입구랑 엘리베이터 사용하지 말아요. 그 돈 내고 이 아파트 사는 것만도 감지덕지지. 어딜….' 일반 주민 중 일부는 임대주택의 '임'자만 들어도 경기에 걸리는 듯하다. 그들에게 싼 임대료를 내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임대주택 주민들이 비싼 돈 주고 분양받은 내 집의 가치를 갉아먹는 적들이다.

아이들에게도 예외는 없다. '저 집 아버지는 대기업 임원이라는데. ○○이 학원 어딘지 좀 알아봐', '그 집은 임대잖아. □□이랑은 같이 다니지 마' 요즘 초등학생들은 친구를 사귀기 전 그 아이가 몇동에 사는지, 집은 몇 평인지, 아버지 직업은 무엇인지 사전 호구조사가 필수다.

조금 더 가진 어른들은 덜 가진 어른들을 향해 치졸하기 그지없는 우월감을 드러내고 이는 다시 아이들에게서 가난에 대한 그릇된 편견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아이들은 임대주택 사는 친구들을 스스럼없이 '거지'로 부르고 가난한 사람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이재를 밝힌다는 유대인조차 가난한 사람을 경멸하고 손가락질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경멸하는 것은 가난과 그 가난을 가져오는 게으름이다. 그 경멸스런 가난이 널리 퍼지지 않도록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 또한 유대인의 오랜 철칙이다. 알량한 우월감으로 차별을 가르치기보다 서로 도와가며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알려주는 게 먼저다.

2. [동아일보][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때가 왔다

최근에 심상치 않은 책제목을 보았다. ‘노후파산’이다. 한때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제목만으로도 널리 회자되었는데 ‘노후파산’이란 제목 역시 관심을 끈다. 파산이 노후라는 힘없는 단어와 만나니 더욱 파괴적으로 느껴진다. 아무리 아파도 청춘에겐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위로가 되지만 파산한 노후는 말만으로도 아프다.

노후에 대해 생각하면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드는 한 분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충무로에 상업사진 스튜디오를 낸 김한용 선생이다. 1950년대 이후 80년대까지 그분에게 사진을 찍히지 않은 톱스타가 없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했지만, 그분도 초창기에는 가난해서 충무로 스튜디오에서 마포에 있는 집까지 걸어서 출퇴근하고 점심을 거르기도 했다고 말한다.

“버스비가 없을 때는 ‘얍! 드디어 걸어야 할 때가 왔다!’, 점심 값이 없으면 ‘얍! 드디어 점심을 굶을 때가 왔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씩씩하게 걸어 다니고 굶고 그랬어요. 어허허허.”

마치 신나는 일이라도 생긴 듯 그렇게 기합을 넣으며 어려운 시절을 이겨냈다는 것이다. 충무로의 명물로 꼽혔던 그분의 힘찬 기합소리와 웃음소리는 구십의 연세에도 여전하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 시절 충무로의 스튜디오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수년 전, 오랜 세월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좀처럼 지갑을 여는 일이 없던 그분이 폭탄선언을 했다. 

“팔십이 넘으면서 결심했어요. 앞으로 내가 점심을 사면 몇 번이나 살 기회가 있겠어요. 이제부턴 내가 점심 값을 내기로 했소. 야압! 어허허허.” 

그날 한바탕 웃음으로 우리 모두 기분이 좋았다. 80년 몸에 밴 습관을 버리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그 연세에 획기적인 전환을 할 수 있다는 유연함이 놀랍고 유쾌했다. 그 이후로도 두어 번 더 점심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뵐 때마다 기합소리의 음량은 줄고 있었지만 대신 마음의 여유가 커지는 모습이 ‘참 멋진 노후’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사실 “때가 왔다”는 것은 곧 “때가 갈 것이다”라는 말과 통한다. 행복하든 고통스럽든 담대하고 의연하게 견디면 결국 그 시간은 흘러가고 더 강하게 단련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픈 청춘이든 파산한 노후든 새봄에 어울리는 기합 한 번 넣어보면 어떨까. “이야아압! 희망을 가져야 할 때가 왔다”라고.

3. [동아일보][림펜스의 한국 블로그]‘안 되면 되게 하라’는 정신의 독소

‘안 되면 되게 하라.’ 이 말을 처음 들은 지 10년 정도 된 것 같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 친구 문수가 군대 얘기를 하다가 이 말을 가르쳐 줬다. (문수야, 연락 너무 안 해서 미안해. 곧 방문할게, 약속한다.) 군대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이라고 했다. 이를 듣고 놀랍고 또 신기했다. ‘이게 뭐야, 무슨 무책임한 태도일까’ 하며 의아해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생각해 볼 만한, 그러니까 내게는 새로운 접근이었던 것 같아 ‘괜찮다!’ 또 ‘역시 한국의 정신이 대단하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정신은 분명 대한민국이 ‘경제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일 것이라고 여겨졌다. 아무리 어려워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 굴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서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 마음만 먹으면 어떤 문제든, 어떤 장애든 극복할 수 있다는 그 확신, 새로운 문제가 생기면 창의적인 해결법을 찾아내는 능력…. 그 사고방식을 이해해야 신기술, 스포츠, 문화 등 한국의 인상적인 다양한 성과를 설명할 수 있다. 요새 ‘올드 유럽’에서는 이런 투쟁심을 잃어버린 사람이 많다는 것도 되새겨봤다.

‘안 되면 되게 하라.’ 그 마인드가 어찌 보면 수십 년 동안 한국의 성공 비결이었다. 그러나 이 나라에 살다 보니 이 대단한 사고방식이 ‘양날의 칼’이라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되게 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버릇이 되면 큰일이다. 

첫째로 일단 확고한 계획이 세워지기 힘들다. 차질이 생기지 않게끔 계획을 제대로 세울 수 있음에도 다수의 한국 사람은 습관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 보지 뭐’ 하며 계획 없이 진행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물론 일할 때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지만, 계획보다 순간적인 반응성이 중요한 환경에서는 높은 생산성을 이루기 어렵다. 모든 일을 이번 주, 오늘, 지금 처리하게 되면 모두 급하게 해내야 한다. 모든 일이 급하다면 결국 아무것도 급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는 이런 환경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힘겹고 납득이 안 가는 순간이 꽤 있다. 

‘되게 하라’라는 말의 두 번째 큰 문제는 규칙을 무시하게 된다는 점이다. 무엇을 하면 안 되는 경우가 있어 규칙이 생기지만, 그럼에도 ‘되게 해야’ 한다면 규칙을 위반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출퇴근시간 나의 통근버스 2200번은 승객들이 위험할 만큼 초만원이 되어 붐빈다. 세월호 사고와 같은 비극도 무질서한 규칙이 난무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나 다름없다.

세 번째로 ‘되게 하라’고 말하는 사람의 99% 정도는 그 명령이 실행되기 힘든 사항임을 충분히 아는 사람이라는 점이 문제다. 그런 상황이라면 명령하는 사람은 무시당하게 될 수밖에 없다. 불가능한 것을 어쩔 수 없이 도전하게 만드는 것이니 이점(利點)을 얻기 힘들다. 게다가 ‘마음만 먹으면 다 해낼 수 있다’고 확신한 결정자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은 희생자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무모하게 자신감 있는 상사 아래서 일하는 직원이 참 불쌍하다. ‘야근의 왕’이 되어 수고해도 결국 인정을 못 받을 가능성이 크다. 비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면 실행자가 책임감을 완전히 잃게 되고 효율적으로, 적극적으로 일할 마음, 혹은 동기가 사라진다. 직원으로부터 개인적인 의견을 듣기 싫어지고 “알겠습니다”란 말만 듣고 싶은 보스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기는 힘들다. 이의가 있으면 안 되는 환경에서는 의견의 자유가 없어지고 직원의 결단력 또한 약해진다. 그런 환경에는 비전(vision)을 갖고, 창의적으로 일할 수가 없다. 

요즘 얼핏 보이는 사회병리 현상도 어느 정도 그 ‘되게 하라’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 같다. 결점이 많은 비뚤어진 사고방식이 대표적인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다. 판단력 없이 실행하면 역효과를 가져오는 법이다. 규칙과 계획을 무시하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무시하고 또 인간의 지능을 무시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다른 나라처럼 한국 사회도 ‘안 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상당히 개선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점에 대한 한국인의 의견이 참으로 궁금하다.

4. [중앙일보][카를로스 고리토의 비정상의 눈] 왜 지구 반대쪽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까

며칠 전 한국에 사는 브라질 학생들을 집에 초대해 고국 음식을 대접했다. 이들은 2~3년 전 브라질 정부가 지원하는 ‘국경 없는 과학회’ 프로그램에 따라 교환학생으로 한국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시 나는 주한 브라질 대사관 교육담당관으로서 이들을 지원했다.

이들이 한국행을 택한 이유는 대개 비슷했다. 대개 K팝·드라마 등으로 접한 한국 문화나 한국 대기업의 세계적 명성 때문이었다. 지구 반대편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나 장학금 때문인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대개 한국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좋은 기억과 이미지를 간직하곤 브라질로 귀국해 본래의 삶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일부는 브라질에 가서도 한국을 그리워하며 어떻게든 다시 돌아오기를 꿈꾼다. 며칠 전 초대한 학생들은 용기를 내어 이를 실행에 옮겼다.

왜 돌아왔을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취업이다. 최근 브라질 경기가 나빠지면서 취업이 힘들어지자 자연스럽게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됐는데 한국은 가장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한국엔 브라질 등 중남미에 해외 지사를 둔 대기업이 많은데, 수출을 많이 하려면 그 나라 언어·문화를 이해하는 현지 출신이 필요하다. 둘째는 한국 사람의 정이다. 브라질 정서와도 어느 정도 맞닿는 부분이다. 친절하고 매력적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만난 여자친구와 결혼하거나 사귀던 남자친구를 다시 만나려고 돌아왔다는 학생도 있다. 마지막 이유는 한국의 안전성과 편리함이다. 치안이 좋지 않은 브라질에서 지내다 한국에 오면 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본인도 안전한 곳에서 자유롭게 다니며 살 수 있고, 부모님도 안심시킬 수 있어 한국을 택한 것이다.물론 한국이라고 행복한 일만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브라질 특유의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정신에 따라 어려움을 이겨내려고 한다. 한국의 ‘하면 된다’와 비슷하다. 지구 반대쪽까지 다시 날아온 이들은 아끼고 사랑하는 이 나라에서 좋은 사람들과 많은 것을 배우며 살고 싶어 한다.

이들을 보며 내 과거가 떠올랐다. 장학생으로 한국에서 공부한 뒤 귀국했다가 다시 한국행을 택했기 때문이다. 당시엔 정말 많이 고민했고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한국의 매력을 잊지 못하고 다시 이 땅을 밟은 브라질 학생들이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되는 인재로 성장하길 바란다. 

5. [중앙일보][이정재의 시시각각] ‘님티’들의 천국

보름쯤 전 헬스클럽에서 가슴에 통증이 왔습니다.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심장이 멎는 느낌이라더니. 3분쯤? 통증은 사라졌지만 불안·불쾌한 기억은 남았습니다. 며칠 뒤엔 늘 오르던 회사 계단 6층에서 멈춰야 했습니다. 한걸음도 더 디딜 수 없었습니다. 병원을 찾았습니다. 협심증. 관상동맥 두 곳이 하나는 많이 또 하나는 좀 길게 막혔다고 합니다. 친구 의사 녀석은 걱정하는 제게 쿨하게 말했습니다.

“사람 몸은 오래 쓰면 낡고 고장 나. 혈관도 그래. 오래되면 헐고 막혀. 운이 좋아 일찍 발견하면 약물로, 좀 늦으면 스텐트 시술, 더 많이 늦으면 수술로 처리하지. 한날, 한시라도 빨리 하는 게 좋아. 그래야 심장이 사니까.”

혈관이 막히면 심장이 멎는다. 심장이 멎은 생물은 살 수 없다. 생물이라? 흔히 경제는 생물이라고 합니다. 막힌 혈관이 뚜렷이 보이는 심장 사진을 들여다보며 난데없이 왜 저는 한국 경제를 떠올렸을까요. 직업병이라면 이런 직업병도 없겠지요.

5년쯤 전 우리 수출에 통증이 왔습니다. 수출 단가가 급락했습니다. 한번 시작된 통증은 멈출 줄 몰랐습니다. 14개월 연속 마이너스, 역대 최장입니다. 10년 전 5% 넘게 늘던 소비는 2%대로 주저앉은 지 몇 년 됐습니다. 기업 매출은 지난해엔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섰습니다. 총체적 협심증. 한국 경제가 멈춘 겁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경제의 심장으로 가는 주요 혈관 10개(제조업 가동률, 수출 물량·단가, 소비·생산성 증가율 등)가 모조리 막혔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세계 경제가 어렵고, 중국이 쪼그라들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구조개혁을 안 했기 때문입니다. 산업도 기업도 오래되면 낡고 병듭니다. 수시로 약물 치료나 외과 수술을 해줘야 합니다. 그걸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안 했습니다. 그 결과 병이 골수에 찼습니다. 500대 기업의 10%(111개)가 벌어들인 돈으로 빌린 이자도 못 갚는 좀비 기업입니다. 누군가 칼을 들고 피를 흘리며 환부를 도려내야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습니다. 그저 미루고 덮고 떠넘기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진짜 문제는 이것입니다. ‘내 임기 중엔 안 된다(Not in my time)’는 이른바 ‘님티족’이 정·관·재계에 널렸다는 겁니다. 지난 정부의 실세 한 분은 STX·동부·동양 등의 구조조정 요구에 대해 “이 정권에선 안 된다”며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정부도 다르지 않습니다. 돈을 풀고, 부동산을 띄우는 마약 치료에만 집중했습니다. 하다하다 안 되니 지난해 말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산업별 구조조정 계획을 한 차례 내놓기는 했습니다. 그나마 시한도 방법도 기준도 없었습니다.

주무부서인 금융위원회도 미적거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구조조정 전문기업 유암코에 “속도를 안 낸다”며 책임을 떠넘기는 게 고작입니다. 그러니 작년 말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일몰로 폐지됐을 때 “국회가 법을 안 통과시켜서 구조조정을 못 한다”고 아우성을 친 게 다 쇼였다는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총선의 계절입니다. 정부 관계자는 “총선이 코앞이라 구조조정은 엄두도 못 낸다”고 말합니다. 정치권은 오로지 공천, 공천, 공천입니다. 경제를 가끔 말하기는 합니다만, 온통 총선용 퍼주기뿐입니다. 구조조정을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대통령도 ‘경제살리기법’만 말할 뿐, 힘든 수술을 견디자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야당 압박용 아니냐고 의심받는 것입니다. 이래서야 20대 국회가 열릴 때까지 4~5개월은 또 허송하게 생겼습니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은 5조원 넘는 적자를 냈습니다. 수술을 미룬 결과입니다. 그런데도 관계자들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되레 영전한 사람도 꽤 됩니다. 대우조선 같은 회사가 널렸습니다. 경제의 협심증이 그만큼 깊고 위중합니다. 자기 혈관이 막혔더라도 대통령·관료·국회의원·기업인이 과연 이렇게 보고만 있었겠습니까. 경제의 심장이 멈추면 국가도 멈춰섭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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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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