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2016년 3월 16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이런 ‘깜깜이 총선’으로 국회 개혁 하겠나

모든 선거가 그렇지만 다가오는 4·13 총선의 정치적 의미는 자못 크다. 우선 박근혜 정부 임기가 2년밖에 남지 낳은 시점에서 ‘정부 심판론’과 ‘야당 심판론’이 맞선 형국이다. 지금의 어려운 나라 형편이 실정 탓이냐, 아니면 국정 발목잡기 탓이냐가 총선으로 판가름 난다. 제19대 국회의 ‘사상 최악의 식물국회’란 오명을 떨치고 ‘민의의 전당’으로 거듭나느냐도 총선에 달렸다.

그러나 여야 정치권의 행태는 국민의 여망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무엇보다 선거가 코앞인데도 지역구마다 후보는 누구고, 공약은 무엇인지 모르는 ‘깜깜이 선거’가 문제다. 선거구 획정이 법정시한을 무려 5개월이나 넘기더니 이번엔 각 당의 공천이 진통을 거듭하는 바람에 지역구 후보 상당수가 정해지지 않았고 비례대표 후보는 아직 손도 못 댔다.

파벌정치의 원흉인 공천제도 개혁 논의는 이번에도 수포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정치 지도자들이 입만 열면 국민을 앞세우지만 실은 자기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내세우려고 사생결단하기 때문이다. 집권당에서 자행된 2008년 친이(親李)계의 ‘공천 학살’과 2012년 친박(親朴)계의 ‘보복공천 학살’이 좋은 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공천 혁명’을 내세워 밀어붙인 상향식 공천도 ‘친박’과 ‘비박’의 계파 싸움에 맥없이 밀려나는 모양새다.

야당도 매한가지다. 더불어민주당은 ‘친노’(親盧)가 ‘친문’(親文)으로 명패만 바꿔 달았다는 비판 속에 친노의 좌장 이해찬 의원이 공천 탈락에 반발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는 등 후폭풍이 거센데다 안철수 의원이 이끄는 국민의당은 아직도 야권연대 여부를 놓고 정치공학적 계산이 한창이다.

공천 과정에서 제시된 다선, 고령, 정체성 등의 물갈이 명분도 황당하기 그지없다. 정체성 같은 모호한 잣대도 그렇지만 나름대로 능력이 있는 사람들도 다선이나 나이 때문에 안 된다니 어처구니없다. 이른바 ‘386’을 국정 전반에 대거 내세웠다가 나라 망친 지 얼마나 됐다고 고령을 탓한단 말인가. 정치권이 못하면 나라의 주인인 유권자가 직접 나서야 한다. 국회를 꼭 개혁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로 진짜 선량을 가려내는 혜안을 유권자들 스스로 갖추는 수밖에 없다.

2. 대학 과학연구 풍토부터 바꿔야 한다

서울대를 비롯해 연세대, 고려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등 대표적인 이공계 5개 대학이 정부의 연구업적 평가 시스템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급변하는 세계의 연구 추세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라 한다. 외국에서는 이미 인공지능이 사람의 두뇌를 능가할 만큼의 연구 실적이 이뤄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현실에 대한 뼈저린 반성이기도 하다.

과학 분야에서 외국과의 연구 격차는 이번 이세돌 선수와 5번기 대국을 진행한 알파고의 사례에서 뚜렷이 확인된다. 비록 구글 등 일부 회사의 실적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연구 격차가 벌어져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당장 뒤쫓아 가더라도 단시일 내에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다간 산업 분야에서도 뒤처지기 마련이다. 결국 우리 기업들이 값비싸게 로열티를 주고 기술을 빌려써야 하는 처지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연구과제 수행의 성공 여부를 판정할 때 앞으로는 그 주제가 모험적이고 도전적이냐의 여부부터 제대로 따질 필요가 있다는 게 이들 대학의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동안의 평가가 연구 논문이 몇 편인가 하는 식으로 단기 실적을 따졌다면 앞으로는 그 내용 위주로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 연구에 매달리고 있는 당사자들이 뒤늦게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 아쉬울 뿐이다.

물론 연구자들 본인에게도 문제점은 없지 않다. 교수들 스스로 연구비와 단기 업적만을 쫓아 가시적으로 성과를 내기 쉬운 분야에 매달려 왔던 측면은 없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정량적 평가 기준도 연구는 젖혀놓고 팔짱만 낀 채 놀고먹으려는 사례를 막으려는 조치였다. 요즘도 남의 논문을 베끼거나 심지어 제자 논문에 이름을 슬쩍 끼워넣는 경우가 적잖게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과학 연구가 제대로 성과를 내려면 앞으로는 서로 바뀌어야 한다. 해마다 노벨상 타령이 이어지고 있지만 노벨상에 근접한 연구자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대학 연구에 관여하는 교육부·미래창조과학부·산업통상자원부 등의 정부 부처는 물론이고 대학 당국과 교수들 모두 각오를 다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알파고는 우리에게 귀중한 각성을 깨우쳐준 셈이다.

[동아일보]

3. 조종사의 안전책임 가볍게 여기는 대한항공 회장님

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13일 대한항공 김모 부기장의 페이스북 글에 ‘개가 웃어요’ 운운하는 댓글을 달아 구설에 올랐다. 김 부기장은 최근 비행 전 브리핑을 고의로 오래 끌고 비행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박모 기장이 파면되자 페이스북에 조종사가 비행 전에 해야 하는 일을 상세히 적었다. ‘한 달에 100시간도 일하지 않으면서 억대 연봉을 받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말도 있지만 조종사들 하는 일이 많다는 내용이다. 이에 조 회장이 ‘조종사가 GO NO GO(갈지, 말지)만 결정하면 되는데 힘들다고요? 자동차 운전보다 더 쉬운 ‘AUTO PILOT’(자동항법장치)로 가는데. 비상시에만 조종사가 필요하죠. 과시가 심하네요. 개가 웃어요’라는 반박 글을 붙인 것이다.

현재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인 1, 2노조는 임금 인상을 내걸고 준법투쟁을 벌이고 있다. 1인당 평균 1억4000만 원의 연봉을 받는 조종사들이 규정에 어긋난다며 비행을 거부하고 페이스북에 업무가 과중하다는 글을 올린다. 조 회장이 얼마나 화가 났으면 댓글을 수정하면서 ‘개가 웃어요’ 구절을 넣었을까 싶다. 그렇더라도 그의 댓글은 재계 9위 그룹 회장으로서 품위를 잃었다. 이 댓글에서 재작년 12월 ‘땅콩회항’으로 불리는 딸 조현아 전 부사장의 ‘갑질’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많게는 500명이 넘는 승객이 탑승하는 여객기는 자동항법장치로 날지만 이를 작동하고 점검하는 일은 조종사 책임이다. 자동항법장치는 조종사를 돕는 보조 장치에 불과하다. 조종사 일이 뭐가 힘드냐 식의 글은 항공사 최고경영자로서 비행 안전을 소홀히 여긴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 

‘귀족 노조’로 불리는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경영진의 임금 상승률이 37%라며 그만큼 연봉을 올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회사 일반 직원 노조가 “절박한 생존권 요구가 아니다”는 성명을 낼 만큼 공감을 얻지 못하는 투쟁이다. 조 회장의 처신도 문제지만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역시 국내 다른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도 헤아리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4. 5차 핵실험 지시한 김정은의 막가파식 위협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5차 핵실험과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장거리 로켓 발사 준비를 지시하는 등 핵 위협 수위를 갈수록 높이고 있다.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 보유 의지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으로 읽힌다. 강공책을 선택함으로써 제재에 따른 내부 동요를 막고 체제 결속을 다지기 위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어제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탄두로켓 전투부(미사일 탄두 부분) 첨두의 대기권 재진입 모의실험을 현지 지도하는 자리에서 “빠른 시일 안에 핵탄두 폭발 실험과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탄도 로켓 시험발사를 단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몇몇 군사 대국들만이 보유한 대기권 재돌입 기술을 자력자강의 힘으로 당당히 확보했다”며 장거리 탄도 미사일 기술이 완성 단계에 있음을 강조했다. 따라서 대북 제재가 지속될 경우 실제로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오는 5월 제7차 당대회 전 성능이 개선된 증폭핵분열탄으로 제5차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일에도 신형 방사포 시험 사격을 지도하면서 “핵탄두들을 임의의 순간에 쏠 수 있게 항시 준비해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11일에는 “새로 제작한 핵탄두의 위력 판정을 위한 핵폭발 시험을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본격 이행된 이후 핵 위협 수위를 점점 높여 가고 있는 셈이다. 즉 제재에 굴복해 핵을 포기하는 대신 핵 군사력을 국제사회에 과시함으로써 향후 핵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가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 1월 4차 핵실험에 이은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의 상황을 되짚어 보면 북한의 이런 막가파식 위협과 도발이 먹힐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4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가 제재 움직임을 보이자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로 응수했다. 그러나 이는 국제사회의 제재 수위만 높였다. 추가 도발은 오히려 북한 스스로 극한상황으로 몰아 자멸의 시기만 앞당길 뿐이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제재를 풀어 줄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엄청난 착각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어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북한이 무리한 도발을 계속하면서 변화의 길로 나서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멸의 길을 걷는 길이 될 것”이라고 거듭 경고하지 않았는가. 북한이 제재에서 벗어나려면 핵 보유 망상을 버리는 길밖에 없다. 그게 북한 지도부는 물론 고통을 겪는 주민들이 사는 길이다.

5. 다문화 인구 100만인데 여전한 제노포비아

2020년이면 우리나라 다문화 가족 인구가 100만명을 넘어선다. 현실이 이런데도 우리의 외국인 기피증(제노포비아)은 여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가족부가 전국의 성인 4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다문화 수용성 지수는 100만점 기준에 53.95점이 나왔다. 4년 전 조사치(51.17점)보다 약간 개선되긴 했으나 이주민을 터부시하는 인식은 변함없이 높았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의 인식에 비해서도 크게 열악하다. 구체적인 질문에도 외국인 기피증은 확인됐다.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자를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고 답한 사람은 10명 중 3명꼴이었다. 이민자에게 개방적인 스웨덴에 비하면 10배 가까이나 높다.

결혼 이민자, 그 배우자와 자녀를 포함한 국내 다문화 가족 인구는 지난해 82만명이었다. 2011년 66만명에서 4년 만에 24%나 늘었다. 다문화 인구만 4년쯤 뒤면 100만명이 넘을 전망이다. 이주 노동자와 불법 체류자까지 합하면 국내 거주 외국인은 이미 200만명이 넘는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다문화 사회에 부정적인 국민 인식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할 필요가 있다. 저출산, 고령화에 접어든 우리 사회에서 싫건 좋건 외국인 노동자들은 여러 취약점을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한다. 불청객이 아니라 그들이 없으면 공장이 멈춘다고 해도 엄살이 아니다. 편견도 그렇거니와 출신국과 인종에 따라 차별하는 이중 잣대가 더 견디기 어렵다고 이주 노동자들은 절망한다.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이방인에게 개방적인 시민 의식은 절대 조건이다. 내년부터는 15~64세의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든다는 경고가 나온다. 노동력 부족이 코앞에 닥친 냉엄한 현실이다. 최근 정부는 사회적 장벽으로 학업과 취업이 막힌 다문화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국민 인식이 받쳐 주지 못한다면 헛수고다.

정부가 다문화 지원 정책을 수립한 지가 벌써 10년, 다문화 가족 지원법을 제정한 지도 8년이다. 이주민들을 단순 노동력이나 보충해 주는 역할자로 인식하는 정책부터 변화가 앞서야 한다. 외국인 전문인력이 유입되지 않고 한국 국적 취득자 수도 몇 년째 정체 상태다. 그들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우리 사회의 당당하고 절실한 구성원이다. 정부의 지속적인 정책 배려와 홍보 교육이 국민 인식을 바꾸는 최고의 처방일 것이다.

6. 與 비박계 무더기 컷오프 후폭풍 감당하겠나

새누리당 4·13총선 공천심사가 막바지로 접어들었지만 계파 갈등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 같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어제 비박(비박근혜)계 5선인 이재오 의원,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진영 의원 등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그러나 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유승민 의원에 대해서는 또다시 컷오프를 보류했다. 김희국·류성걸 등 대구의 현역 의원은 또 공천에서 빠졌다. 대구 물갈이론을 앞세워 비박계 의원들을 대거 공천 탈락시킨다는 시나리오가 사실상 현실화됐다. 다만 비박계의 거센 반발을 의식해 유 의원에 대해서는 막판까지 고심하는 모양새다.

친박과 비박 간의 앙금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적지 않은 대구 현역 의원들을 공천에서 탈락시킨 조치는 투명한 원칙과 기준을 통해 공천권을 행사하겠다는 공천관리위의 의지를 퇴색시켰다는 평가가 많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그제 예고 없이 세 가지 공천 배제 기준을 발표한 것은 누가 봐도 석연치 않다. ‘국회의원으로서 품위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 ‘당 정체성과 관련해 심하게 적합하지 않은 행동을 한 사람’, ‘상대적으로 편한 지역에서 다선 의원의 혜택을 즐긴 사람’ 등 세 가지 원칙이 그것이다. 당 안팎에서는 즉각 ‘윤상현·유승민 의원을 동시에 처리하려는 꼼수’라는 지적이 터져 나왔다. 이 위원장도 한때 유 의원의 공천 배제를 강하게 주장하다 주위의 반대에 밀려 보류하는 선에서 컷오프를 미뤘다는 후문이다.

공천관리위가 어제 김무성 당 대표에 대해 입에 담기도 어려운 막말 파문을 일으킨 윤상현 의원을 공천에서 탈락시킨 조치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사필귀정이다. 술에 취해서라고 해명했지만 집권당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윤 의원의 행위를 봐줄 경우, 공천 원칙을 제대로 적용할 수 없어서다. 하지만 윤 의원을 희생양 삼아 친박계가 눈엣가시로 여기는 유 의원을 동시에 공천에서 제외시키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유 의원은 원내대표 시절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발언 등으로 박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인’으로 비판받았다. 원내 사령탑으로 복지국가의 비전과 방법론을 소신껏 제시했다지만 청와대의 국정 철학과 맞지 않았다. 이후 알다시피 원내대표에서 물러났다. 이런 유 의원을 퇴출시키려는 움직임 자체가 새누리당이 건전한 보수 세력이 아니라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 물론 공천관리위의 속내도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유 의원이 원내대표 시절 국회 지도자로서 행한 언행을 당 정체성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는 건 국민의 눈높이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여태까지 명확한 심사 기준을 공개도 하지 않다가 불쑥 공천 배제 기준을 발표하면서까지 유 의원을 공천에서 탈락시킨다면 그 후폭풍은 선거판 전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당 정체성이 문제라면 여론조사 경선에 참여시켜 당원과 유권자의 판단을 구하는 것이 순리다. 새누리당은 이제라도 계파 갈등을 접고 공정하고 투명한 기준을 통해 유권자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공천을 해야 한다. 계파 챙기기에 급급한 비상식적 공천은 당원과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매일경제]

7. 한국서 열린 `세기의 대국` AI 연구 기폭제 되길

아름다운 승부였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세기의 바둑 대결'은 4승1패 알파고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최종 승자는 알파고지만 이세돌은 인공지능(AI)에 맞서 인간의 투지와 바둑의 낭만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세 번을 내리 지고도 포기하지 않고 알파고의 약점을 공략해 값진 승리를 얻어냈는가 하면 마지막 5국에서 패배했지만 초읽기에 몰리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진한 감동을 안겼다. 특히 이세돌은 5국에서 불리함을 자청하고 흑돌을 잡는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다. 도전과 희망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는 결코 진 것이 아니다.

이번 대국의 최대 수혜자가 구글이라면 두 번째 수혜자는 바로 대국이 벌어진 대한민국이다. 인간의 직관까지 흉내 내는 AI의 괴력에 경악하고 좌절했지만 온 국민이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을 생생히 지켜보고 온몸으로 체험한 것은 큰 축복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AI 기술 개발을 서두르지 않고는 미래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다는 경각심을 갖게 된 것도 소득이 아닐 수 없다. 구글의 AI 빅쇼가 서울 한복판에서 열리지 않았다면 미국 영국 등의 AI 기술을 탐색하고 우리의 열악한 수준을 돌아볼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 AI 시장 규모는 지난해 1270억달러에서 내년 1650억달러로 14%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이에 비하면 한국 AI 시장은 내년 6조4000억원으로 추정돼 황무지 수준이다. AI 특허 수도 전체의 3%로 미국의 20분의 1밖에 안 되는 참혹한 상황이다. 정부는 AI산업 육성을 위해 매년 38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는데 미국(30억달러), 일본(1000억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AI 붐이 일자 미래창조과학부가 전담 조직을 만든다며 분주한데 정부 주도로 하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민간에 맡겨야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꽃을 피운 신산업들은 관치로 성장한 것이 아니다. 구글의 자율자동차가 330만㎞ 시범주행을 할 때 우리 기업들이 겨우 시동을 거는 것은 부처 간 교통정리가 안 되는 중구난방 정책과 꽉 막힌 규제 때문이었다. AI산업 성장을 위해 정부가 할 일은 규제를 허물어 신산업이 싹틀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본격적인 AI 시대에 대비해 AI의 기술적 오류, 윤리적 문제뿐 아니라 일자리 소멸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서둘러 시작해야 한다.

8. 대기업 국내 유턴 파격 지원해 일자리 창출해야

LG전자가 대기업 중에 처음으로 멕시코와 중국에 있는 생산기지를 국내로 옮기는 리쇼어링에 나서기로 한 것은 고용 창출 측면에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LG전자는 연산 30만대 규모의 멕시코 몬테레이 세탁기 공장을 6월부터 창원으로 이전하고, 중국 생산기지도 순차적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이 인건비는 높지만 생산성이 높은 데다 원화값 하락으로 수출 채산성을 맞출 수 있고, 컨테이너선 운반 비용도 낮아져 리쇼어링으로 인한 비용이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는 점이 고려됐다.

해외 공장의 국내 유턴은 고용 창출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장려할 만한 일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내수 불황으로 기업 채용이 점점 줄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기업들의 리쇼어링은 고용 절벽을 해소하는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은 해외 생산기지를 국내로 이전하는 기업에 파격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세금 감면은 물론 공장 이전 비용까지 지원한다. 이에 포드는 18조원을 미국 본토에 투자해 수천 개 일자리를 만들었고, 일본에서는 혼다와 파나소닉 등이 리쇼어링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한국도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을 2013년 8월 제정해 법인세와 소득세, 자본재 수입에 대한 관세를 최대 100% 감면하는 등 지원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까지 국내로 복귀한 기업은 76개에 불과했다. 이 중 대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그 이유는 세금 감면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유턴 이후에도 동일 업종을 유지해야 하고 수도권 공장 설립을 막는 등 규제가 많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해외 공장을 완전히 청산해야 하는 조건까지 붙는다.

정부는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에서 기업 리쇼어링 지원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국내로 유턴한 기업들이 우수 인재를 확보할 수 있도록 수도권에 공장을 세우는 것을 과감하게 허용하고, 대기업에 대한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 세금 감면뿐만 아니라 공장 이전 비용까지 지원하는 미국 등 선진국 정책을 적극 벤치마킹해 더 많은 기업들이 해외 공장을 국내로 이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는 침체된 내수를 살리고, 일자리도 창출하는 묘수이기도 하다.

[헤럴드경제]

9.  대주주 CEO가 기업문화 혁신 전면에 나서라

우리 기업의 조직 건강도가 너무 허약하다. 열에 일곱, 여덟(77%)은 평균 이하 체력이고, 다섯 이상(52%)이 중병을 앓고 있다. 권위주의적 상명하복식 업무지시와 상습적 야근, 비효율적인 회의, 지나치게 잦고 형식적인 보고 등이 기업 건강을 갉아먹는 요인이라고 한다. 그만큼 기업문화가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이란 얘기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글로벌 컨설팅 전문업체인 매킨지와 9개월간 국내 기업 100개사와 임직원 4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업문화 종합보고서 내용이 그렇다. 리더십, 조율과 통제, 역량, 책임소재 등 9개 영역 37개 항목에 걸쳐 평가해 글로벌 기업 1800개와 비교 분석한 것이라 실제 상황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상태가 훨씬 심각하다. 특히 습관화된 야근과 상명하복식 업무지시는 기업 경쟁력 제고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건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한국의 직장인들은 일주일에 평균 2.3일 야근을 한다. 하루 걸러 한번은 야근을 하는 셈이다. 이러니 직장인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은 요원한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한다고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매일 1시간 40분 가량 더 일한 직장인의 생산성(45%)이 그렇지 않은 사람(57%)보다 오히려 낮았다. 

상사가 불합리한 지시를 해도 ‘노(NO)’ 또는 ‘왜(WHY)라고 말하지 못하고 무조건 복종하는 ‘불통’도 문제다. 이런 조직문화에서 경쟁력과 창의력을 요구하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얻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한국 기업의 임원실은 장례식장 같다”는 말이 나올까. 

구시대적 기업문화는 생산성만 떨어뜨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영국의 딥마인드가 알파고를 만들어 낸 원천도 따지고보면 자유분방한 기업문화다. 질식할 것같은 한국의 기업문화속에서 이런 창의력의 싹을 틔울 인재가 남아날 리 없다. 야근과 휴일 출근을 밥 먹듯 하면 결국 지역 소비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낡고 병든 기업문화를 확 뜯어 고치는 일이 그만큼 시급하다는 것이다. 대한상의 보고서가 좋은 촉매제가 되길 바란다. 기업문화를 하루 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최고경영자(CEO), 특히 대주주 CEO가 마음을 먹으면 못할 것도 없다. 기업문화를 혁신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결국 낙오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부터 느껴야 한다. 기업 문화가 건강해야 가정은 물론 국가와 사회도 건강해진다.

[중앙일보]

10. ‘진박 마케팅’ 현실로 드러난 새누리당 공천

새누리당의 3·15 공천 결과 현역 의원 9명이 탈락했다. 친이계 좌장인 5선 이재오 의원을 비롯해 진영(3선)·조해진(재선)·이종훈(초선) 의원 등 친이·비박계 의원이 대다수다. 대구에선 친유승민계 김희국(중-남)·류성걸(동갑) 의원이 고배를 마셨다. 이미 공천에서 탈락한 권은희·홍지만 의원과 조해진·이종훈 의원 모두 유 의원과 친한 관계인 만큼 유승민계가 사실상 초토화된 셈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류성걸 의원 지역구엔 ‘진박’ 정종섭 후보가 단수 공천됐고 김희국 의원 지역구에도 ‘진박’ 곽상도 후보가 경선 기회를 잡았다. 또 다른 ‘진박’ 추경호 후보도 이종진 의원이 불출마한 달성에서 단수 공천을 거머쥐었다. 반면 이날 공천에서 배제된 친박계는 김무성 대표에게 폭언을 퍼부어 물의를 일으킨 윤상현 의원이 유일하다. 설로만 떠돌던 ‘진박 마케팅’ 시나리오가 현실로 굳어지고 있는 셈이다.

정당 공천의 핵심은 능력과 인품을 갖춘 인재를 뽑는 것이다. 현역 의원이 그런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거나 지역구에서 지지를 얻지 못하면 물갈이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3·15 공천 결과는 그런 기준에서 이뤄졌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특히 대구에서 낙천 당한 두 의원은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진박 후보들을 앞섰거나 적어도 뒤지지 않는 수치를 기록해왔다. 경선으로 공천을 결정할 경우 진박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약할 것을 우려해 뚜렷한 이유 없이 현역을 탈락시키고 진박 후보를 전략공천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제 새누리당 공천의 초점은 유승민 의원, 한 사람만 남았다. 친박계는 유 의원의 원내대표 시절 발언이 당의 정체성에 부적합했다는 이유로 공천 배제를 주장해왔다. 하지만 유 의원은 그 때문에 원내대표직에서 쫓겨나는 엄벌을 받았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끝난 것이지 의원직 재도전 기회까지 막는 건 민주주의에 앞서 상식에 어긋난다고 할 수밖에 없다. 만약 새누리당이 윤상현 의원의 낙천을 명분 삼아 국민이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유 의원 공천 배제를 강행한다면 여론의 거센 반발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주요 신문칼럼


1. [헤럴드경제][프리즘] 한의사는 동의보감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허준의 동의보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한의사 A씨와의 대화 한토막이다. 황당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명의로 꼽히는 허준과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친 동의보감을, 그것도 한의사가 좋아하지 않는다니…

내막은 A씨가 최근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논란과 관련해 울분을 토하면서 드러났다. 의사들이 “X-레이나 초음파 기기가 동의보감 어디에 나오느냐”며 말끝마다 동의보감을 들먹여서 그렇다는 거다. 의사들은 첨단의료기술을 맘껏 누리면서 한의사는 동의보감에 나오는 대로만 진료를 하라는 얘긴데 괘변이다. 한옥에 산다고 세탁기, 냉장고, 가스렌지를 들이지 말라는 격이다.

의사와 한의사 간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은 어쩌면 ‘밥그릇싸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그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본다는 사실이다. 장보러 가다가 손목을 접질려 한의원을 찾은 가정주부 A씨는 X-레이를 찍기위해 아픈 몸으로 정형외과를 왕복해야 하고, 그 와중에 안써도 될 병원 초진진찰료 1만4000원까지 덤터기를 썼다. 퇴근길에 발목을 삐끗해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은 외근직 영업사원 B씨는 사후 병가처리를 하려다보니 회사에 거짓말을 한 모양새가 돼 당혹스럽다. 회사에 제출한 X-레이 사진상 발목은 멀쩡한 것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침치료로 상태가 호전된 후 따로 병원에 가서 찍어야했기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현행 의료법에는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다. 때문에 주무부처인 복지부가 지침을 내려줘야 한다. 하지만 국민건강과 직결된 문제인데도 복지부는 소극적으로 일관하며 세월만 허송했다. 2014년 12월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규제 개선을 위한 지침을 만들겠다고 밝혀놓고도 1년을 훌쩍 넘긴채 아무런 조치가 없다. 이로 인해 한의사가 특정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를 사법부의 판단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 되풀이 된다.

한의사가 X-레이나 초음파 같은 의료기기를 활용하는 것은 정확한 진료와 국민불편 해소를 위한 일이기도하지만 한의학의 과학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의료기기사용 제한이 없는 중국의 중의학은 객관적 진단과 예후 관찰이 가능하다. 이런게 원동력이 돼서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세계 전통의약시장은 2050년 60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의학육성계획만 발표하고 강건너 불구경인 우리와 달리, 중국정부는 중의약의 세계화를 위해 예산을 집중투입하고 있다.

더이상 방관할 때가 아니다. 자꾸 실현가능성이 요원한 ‘양한방 일원화’라는 방패 뒤로 숨은 채 그때까지 국민에게 불편을 강요해선 안된다. 오직 어느 쪽이 국민건강에 보탬이 되고 국가 전체적으로 더 이익이 되느냐를 기준으로, 국민의 불편을 신속하게 해소하는 쪽으로 움직이면 될 일이다. 그게 복지부의 존재이유 아닌가.

2. [한국일보][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당장 듣고 싶은 말

등단 직전, 선배에게 습작시를 건네줬었다. 선배는 줄줄이 빨간 펜을 그어댔다. 내뱉는 말도 지청구 일색이었다. 버럭 자존심이 상했지만 계속 듣고 있자니 내 시에 대한 의견이 아닌, 자기 살아온 얘기가 더 많았다. 뜬금없었으나 시에 대한 품평보다 그 얘기들에 더 공감이 갔다. 그러면서 살짝 마음이 풀렸다. 얼마 후, 그 시들을 한 글자도 고치지 않은 채 그대로 투고해 당선이 됐다. 선배의 의견을 수긍할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내 선에서 손대고 반영할 수 있는 맥락이 아니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선배의 ‘고견’은 이후 다른 방식으로 잔향을 남기면서 오래 영향을 끼쳤다. 당시, 내가 듣고 싶어 했던 말이 무엇인지 선배는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일부러 그 말을 아낀 것 아니었을까. 이편에서 미리 듣고 싶은 답과 나누고 싶은 감정을 암시하면 할수록 상대가 제시할 수 있는 답은 더 미뤄지고 에둘러진다는 법칙을 그때 깨달았다. 당장 듣고 싶은 말, 한시적인 위안으로 잠깐이나마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는 말의 효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더 깊숙이 채워줄 수 없는 것이라면 스스로 상처와 결락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게 더 근본적인 애정의 조언일 것이다. 누군가 답을 달라는 말에 나도 선배처럼 응대했었다. 매도나 무시라 여겼는지 모르겠다. 고백컨대, 너무 답을 주고 싶어 그랬던 거라고 이제는 말해야겠다.

3. [한국일보]경구피임약의 재료를 합성한 미라몬테스

1951년 10월 15일 멕시코의 신텍스(Syntex)라는 제약회사에서 경구용 활성 황체호르몬 노르에티스테론(norethisterone)이 합성됐다. 그 호르몬을 주성분으로 최초의 먹는 피임약 ‘에노비드’가 미국서 시판된 건 9년 뒤였다. 

저 연구의 리더가 지난해 별세한 ‘경구피임약의 아버지’ 칼 제라시(Carl Djerassi, 1923~2015)다. 그는 멕시코 출신 화학자 루이스 미라몬테스(Luis Miramontes, 1925~2004)와 신텍스의 책임자 조지 로젠크란츠(1916~)와 함께 연구를 진행했다. 하지만 노르에티스테론을 실제로 합성한 이는 미라몬테스였고, 셋은 공동으로 물질특허를 등록했다. 제라시는 부신피질호르몬 코르티손 합성 등 뛰어난 업적을 남긴 과학자였고 존경 받을 만한 여러 활동을 했지만, 경구피임약에 관한 한 그가 과한 영광을 누렸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다. 3월 16일은 미라몬테스의 생일이다. 

먹는 피임약은 인류사 특히 여성의 삶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그 전 주된 피임법은 체외사정 콘돔 자연주기법 페서리 등이었다. 체외사정과 콘돔은 남성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한 피임법이고, 페서리는 시술이 번거롭고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기독교가 유일하게 허락한 자연주기법은 ‘바티칸 룰렛’이라 불릴 만큼 실패율이 높았다. 여성들은 심지어 레몬즙을 묻힌 스펀지를 질에 삽입하기도 했다. 

먹는 피임약도 물론 부작용은 있다. 구토증상 소화불량 체중증가 월경불순 등. 페미니스트들이 초기 경구피임약을 경계한 것도 모성 건강 때문이었다. 피임이 여성 책임처럼 인식돼 양육 등에서 남성에게 면죄부를 주는 역작용도 우려됐다고 한다. 물론, 피임 실패와 낙태 후유증이 모성 건강에 미친 영향이 더 컸다. 

당시의 국가가 여성들 못지않게 경구피임약에 환호했다. 서기 원년 세계 인구가 2배로 느는 데 1500년이 걸렸다. 다시 2배가 되는 데는 300년이 걸렸고, 130년 뒤 또 2배가 됐다. 1930년 세계 인구는 20억 명이었지만, 2000년에는 65억 명이었다. 20세기 중반의 서구 사회는 경구피임약을 멜서스의 어두운 예언에서 벗어날 구명 줄이라 여겼다.(지구 차원에서 보자면 멜서스 전망은 아직 유효하다.) 

한국은 60년대 산아제한ㆍ가족계획이라는 국가 사업 덕에 먹는 피임약의 수혜를 선진적으로 누린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서구와 달리, 국가가 임신권을 통제한 사례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경구피임약을 가장 뜨겁게 반긴 건 68혁명의 주체들이었다. 그들에게 경구피임약은 성 해방의 상징이었다.

 4. [동아일보][이기호의 짧은 소설]나의 폭풍 다이어트 돌입기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사랑스러운 동생 슬기에게.

이렇게 가끔 늦은 시간까지 혼자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가족 생각이 많이 납니다. 될 수 있는 한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 사실 가족 생각을 하면 허기가 더 많이 지거든요. 그러면 또 잠들기도 어렵고 신경이 많이 날카로워지기도 합니다. 내가 지금 무슨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생각이 이어지다 보면 당장에라도 짐을 싸서 다시 집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버스 한 번 타면 삼십 분 만에 도착하는 나의 집, 아늑한 침대가 있고, 손때 묻은 피아노가 있고, 또 냉장고 한편 냉동 삼겹살과 군만두와 콜라와 조각 피자가 소박한 모습으로 쌓여 있는 집.

사실 좀 전, 침대에 눕기 전 마지막으로 체중계에 한 번 올라갔다가 많이 시무룩해졌습니다. 아마 제가 지금 이렇게 센티멘털해진 이유도 그 때문이겠죠. 저녁도 고구마로 때우고, 스쿼트와 윗몸일으키기도 땀 날 때까지 했는데, 그랬는데도 몸무게는 92kg입니다. 그러니까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집까지 나와 혼자 자취를 시작한 지도 60일이 지났는데, 몸무게는 겨우 0.5kg 줄어든 겁니다. 이 페이스대로라면 제가 목표로 삼은 75kg까지는 5년 하고도 8개월이 더 걸린다는 계산이 나오네요. 후…. 곰도 마늘을 100일만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데, 왜 나는 고구마를 5년 8개월 동안이나 먹어야 하는 것일까, 고구마 먹는 게 무슨 주택청약 붓는 것도 아니고…. 이참에 저녁을 고구마에서 마늘로 바꿔볼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우울해진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제가 단순하게 몸매 때문에, 연애라도 한 번 해볼 마음으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고 생각하고 계시겠지만…. 사실, 제 나름대로 상처가 있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제가 장남으로 태어나 다른 남자들과 다르게,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유치원에 취직한 데에는 다 그만한 신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신념이라는 말이 좀 거창하다면, 그냥 적성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네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90kg이 넘었지만, 몸무게와 상관없이 아이들을 돌보는 게 좋았고,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행복했습니다(물론 그건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태어난 우리 막내 슬기 탓도 있었죠). 그래서 남들이 뭐라 하든 유아교육과를 선택했고, 이렇게 바라던 대로 임용고시를 거쳐 유치원 교사가 되었습니다. 조금 뚱뚱하다는 것이, 남자라는 것이, 내 꿈을 향해 나아가는 데 전혀 방해되지 않았습니다. 유치원엔 정말 남자 교사로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았거든요. 힘을 쓸 일도 많고, 에너지도 많이 필요하고…. 그래서 어쩌면 더 보람 같은 것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게 다 아이들 때문에 생긴 상처입니다. 아이들이, 그러니까 제가 달래주려고 안아준 아이들이, 제 가슴을 손으로 계속 조물락 만지는 거까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뭐, 아이들이 엄마 생각도 나고, 그럴 수도 있지요. 하지만 자기 앞으로 나온 간식이 사라졌을 때, 같은 반 친구 생일잔치에 나온 바나나 하나가 감쪽같이 사라졌을 때, 그때마다 모두 짠 것처럼 저를 바라보던 그 눈길을, 방귀 냄새가 날 때마다 저를 돌아다보던 그 순진한 산새반 아이들의 눈길을, 신념이나 적성만으로 이겨내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아기 돼지 삼형제 책을 읽어주면 저를 빤히 바라보는 그 눈길 때문에, 책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저 자신이 한심스럽고 창피했습니다. 진짜 신념이 있다면 살부터 빼자, 자꾸 아이들이 미워지기 전에 다이어트를 하자, 그렇게 결심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지 어머니. 자꾸 제 자취방에 찾아오셔서 얼굴이 핼쑥해졌다, 핏기가 하나 없다, 고구마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 안 찐다, 그런 말씀은 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저도 마음이 약해져서 한 개 먹으려고 했던 고구마를 세 개 네 개씩 먹게 됩니다. 아이들도 이미 겉모습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 내리는 세상입니다. 제 신념과 적성을 위해서 저를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론 해남고구마 말고요, 그냥 평범한 고구마를 보내주세요. 이러다간 정말 해남고구마, 제가 다 먹어버리고 말 거 같습니다. 밤은 이미 깊었지만, 허기가 져 잠이 오지 않네요. 아버지 어머니의 건강을 기원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아들 올림.

5. [동아일보][내 생각은]책을 읽읍시다 이왕이면 사서 읽읍시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일반 도서를 한 권이라도 읽은 성인 비율은 65.3%라고 한다. 교과서, 참고서, 잡지, 만화책 등이 아닌 단행본을 1년에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은 성인 10명 중 7명이 채 안된다는 얘기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소식은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 같은 소식이 나는 우울하다. 책을 팔아 생계를 꾸리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책을 안 읽는다’는 것보다 ‘책이 안 팔린다’는 소식이 더 우울하다. 

자료를 찾아보니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도서구입비가 1만6000원이란다. 전년 대비 2000원 정도 떨어진 수준이다. 여기엔 참고서, 문제집 등도 포함돼 있을 테니 일반 도서를 구입하는 데 지출한 비용은 더욱 떨어질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서점에서조차 책을 안 사도 수십 명이 맘 놓고 독서할 수 있는 책상을 들여놨다. 그저 ‘읽지 않는 것’만 걱정하니 ‘읽어만 줘도’ 고마워해야 하는 상황이다.

출판도 엄연한 산업이고 책도 상품이다. 팔리지 않고 사주지 않으면 작가는 더 좋은 원고를 쓰기 어렵다. 출판사도 다양한 신간 출판에 모험을 거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살 만한 책이 없어 독서를 안 한다’는 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읍소하고 싶다. “책을 읽읍시다. 이왕이면 사서 읽읍시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