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17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끝내 송사에 휘말린 정명훈 마에스트로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끝내 명예스럽지 못한 송사에 휘말리게 됐다.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로부터 위자료 손해배상 소송과 함께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당한 것이다. 그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박 전 대표의 성희롱과 폭언 의혹을 사실처럼 표현한 것이 문제가 됐다고 한다. 모든 문제를 떠나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마에스트로가 이처럼 불미스런 사건의 당사자가 됐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이번 민형사 소송은 서울시향 직원들에 의해 제기됐던 박 전 대표의 성추행 의혹이 경찰 수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난데 따른 것이다. 그동안 당하고만 있던 박 전 대표가 수사가 마무리되면서 반격에 나섰다는 얘기다. 해당 직원들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으며, 처음 의혹이 제기되자 이를 사실로 확인됐다고 발표한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 3명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소송이 청구됐다고 한다.
이번 사태가 서울시향의 운영과 콘서트를 각각 책임지고 있던 박 전 대표와 정 전 감독 사이의 미묘한 감정 대립에서 비롯됐다는 자체가 겸연쩍은 일이다. 피해자의 입장이던 박 전 대표는 사태의 배후에 정 전 감독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정 전 감독이 규정에 어긋난 회계처리를 해 왔고, 이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게 되면서 불편을 느꼈던 것 같다”는 것이었다.
어느 쪽을 두둔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껏 일련의 사태가 진행되면서 정 전 감독이 자신에 대한 문제 제기에는 아무런 해명도 없이 박 전 대표의 ‘인권 유린’에만 공격의 초점을 맞췄던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난 연말 서울시향을 떠나면서도 단원들에게 “전임 대표 때문에 직원들이 박해를 당했다”는 편지를 남겼다. 지금의 송사가 제기된 것이 그런 결과다.
예술은 예술의 논리로 풀어가는 게 합당하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모습은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시민단체 고발에 의해 경찰이 정 전 감독에 대한 업무비 횡령 여부를 추가 확인 중에 있으며, 이메일을 통해 서울시향 실무에 부당하게 개입해온 정황이 드러난 그의 부인은 기소중지 상태다. 예술로 풀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것 같다. 옳고 그른 것이 검찰과 법원에서 최종 가려지길 바란다.
2. 의사·변호사 속득탈루 발본색원해야
신용카드와 함께 현금영수증 발급이 의무화된 게 2010년부터다. 그러나 의사와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 상당수가 여전히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세금을 안 내려고 소득을 숨기려는 의도라고 밖에는 달리 생각하기 어렵다. 파렴치한 범죄행위인 동시에 봉급생활자 등 성실 납세자들과의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공평과세와 조세정의 차원에서도 엄벌해야 마땅하다.
국세청이 최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들이 지난해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아 적발돼 물린 과태료가 11억 5000만원이었다. 전체 액수로는 크지 않지만 2010년(8600만원)에 비해 무려 13배 이상 늘어났다는 사실이 심각하다. 2014년(8억8300만원) 보다도 30% 증가했다. 건당 평균 과태료도 165만원으로 나타났다. 소득을 감추려는 불법행위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수법은 대체로 일정하다. 고객들에게 대금 지급을 현금으로 하도록 유도하고는 차명계좌로 입금받는 방법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간이영수증을 써주거나 일부 액수에 대해서만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준다고도 한다. 특히 의사들에 있어서는 “현금으로 결제할 경우 수술비를 깎아준다”고 조건을 내걸고 현금영수증을 발행하지 않는 사례가 많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적발된 사례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라는 점이다. 현금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데다 일일이 현장을 쫓아다니며 적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4년 기준 전문직 자영업자 270명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 소득적출률이 33%였다. 100만원을 벌면 67만원만 소득으로 신고하고 33만원은 숨겼다는 것이다. 이로 미뤄 세금 탈루 규모가 엄청날 것으로 짐작만 할 뿐이다.
소득 탈루는 국가의 세수 누수뿐 아니라 지하경제의 온상이 된다. 공평과세의 원칙을 무너뜨려 계층 간 위화감을 키우기도 한다. 국세청은 현금영수증 미발행 사업체에 대해서는 즉각 세무조사에 착수하는 등 보다 철저하게 세원을 관리해야 할 것이다. 현금영수증 미발급액의 50%를 물리도록 돼있는 과태료를 높이는 등 처벌도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 고소득자들의 탈루 소득을 끝까지 찾아내겠다는 각오로 발본색원해야 한다.
[서울신문]
3. 혼돈 정국에서 더 중요해진 유권자의 판단력
여야의 공천 작업이 마무리돼 가고 있지만 이번 총선 정국은 그 어느 때보다 어수선하다. 총선을 준비하면서 공천과 낙천으로 예비후보들의 희비는 엇갈릴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느 정도의 잡음과 혼돈 또한 ‘성장통’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객관적인 여론조사 결과든 계량화된 경쟁력 평가든 최소한 공천 기준만 명확하다면 사실 걱정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누가 봐도 부족한 사람인데 ‘진박’이라는 이유로 공천장을 거머쥐고, 이유도 댈 수 없는 정무적 판단으로 핵심 ‘친노’에게 낙천장을 내민 여야의 이번 공천은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공천은 능력과 인품을 갖춘 인재를 뽑아 유권자들에게 선택해 달라고 요청하는 정당의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현역 의원이라 해서 프리미엄을 누릴 수 없고, 특정 계파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아서도 안 된다. 새누리당의 ‘3·15 공천 결과’를 이른바 ‘비박 학살’로까지 부르며 비판하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배신의 정치인’으로 낙인찍힌 유승민 의원과 가까운 인사들이나 친이계의 수장 격인 이재오 의원, 기초연금 항명 파동의 진영 의원 등을 모두 배제하고, 그 자리를 진박 인사들로 채운 것은 사실상 ‘박심(朴心) 공천’과 마찬가지다.
유 의원의 사활 여부가 새누리당 공천의 화룡점정이 되겠지만 이미 클라이맥스는 넘어섰다. 새누리당은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지 않는 사람은 도덕성이나 경쟁력에 문제가 없더라도 함께 걸어갈 수 없다는 점을 이번 공천에서 분명히 보여 줬다. 정치권에서는 벌써 총선 이후 친박 핵심 A의원이 당대표, B의원이 국회의장에 올라 박 대통령 임기 후반기 당과 국회를 장악하려 한다는 시나리오까지 돌고 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국회 및 정치개혁과 무관한 사당(私黨) 정치라는 점에서 큰 충격을 던져 준다. 민심을 제대로 읽었는지 묻고 싶다.
당장 여당의 총선 전망에도 빨간불이 켜지고 있지 않은가. 실제 낙천 당사자들이 보복 정치라며 반발하고, 유권자들 또한 수긍하지 못하면서 탈락자들의 무소속 출마가 봇물을 이룰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청와대실장 출신인 임태희 전 의원은 이미 새누리당의 사당화를 비판하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새누리당 낙천자들 사이에서는 ‘비박 무소속 연대’ 움직임도 엿보인다고 한다. 친노 좌장 이해찬 의원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낙천자들도 대거 무소속 출마를 준비 중이라고 하니 일여다야 구도와 함께 그 어느 때보다 혼돈의 총선이 될 것 같다.
유권자들로선 이래저래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우후죽순처럼 늘어선 후보들 가운데 능력과 인품을 겸비한 인재를 고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공천 논리가 100% 잘못됐다고 볼 수도 없고, 양당의 낙천자들을 흡수하겠다는 국민의당의 태도를 비난만 하기도 힘들다. 무소속 출마자들 가운데 감춰진 보석이 있을 수도 있다. 유권자가 눈을 떠야 한다. 상향식 공천과 한참 먼 여야의 공천 파행, 특히 새누리당의 공천 독선은 결국 표로써 심판할 수밖에 없다. 더는 국민을 우습게 알지 못하도록 똑똑한 한 표를 행사해 혼돈을 바로잡아야 한다.
4. 실업률 역대 최고 12.5%, 슬픈 청년
청년실업률이 지난달엔 12.5%로 16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았던 지난해 같은 달의 청년실업률 11.1%보다도 1년 만에 1.4% 포인트나 높아졌다. 그동안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지만 청년층의 취업 여건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어제 통계청이 발표한 ‘2월 고용동향’에서 눈에 띄는 것은 청년실업률의 2개월 연속 최고 기록 행진이다. 2월 전체 실업률도 4.9%로 2010년 2월 이후 가장 높았지만 청년실업률이 그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청년층의 취업난이 더욱 악화되고 고용시장의 질도 더 나빠지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늘어난 청년층 취업자 중 아르바이트, 인턴, 비정규직 등이 증가세를 주도하고 있다. 청년 취업자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나 임시직 등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있다고 한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그만둬야 하는 곳을 첫 직장으로 잡은 청년 비중이 40%에 육박하고 있고 그나마 1년 이하의 계약직도 19.5%에 이른다. 정부는 청년 취업난 해결을 위해 다각적인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노동시장에서는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청년층의 ‘고용 절벽’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일깨워야 한다. 정부가 그동안 내놓은 청년 고용 대책은 숫자 채우기 등에만 급급한 보여 주기식이라는 비판도 많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앞다퉈 내놓는 대책들도 사탕발림성 공약이 대부분이다. 일자리 부족이나 취업난이 특정 세대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청년층이 미래의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에너지를 활용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의 장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현 정부 들어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쏟아부은 천문학적인 예산이 제대로 집행됐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전망도 좋지 않다. 정부와 민간 연구소들은 올해 신규 취업자 수가 지난해보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대로 두고만 보다가는 청년 취업난은 더욱 악화되고 노동시장의 질도 나빠진다는 것이다. 정부의 청년층 일자리 창출 정책이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 만큼 특단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 일자리 나누기, 창업과 고용 지원, 노동시장 경직성 완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다음달 청년·여성 고용 대책을 발표한다고 한다.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 대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5. 심각한 소득 양극화 언제까지 두고만 볼텐가
우리나라의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 가까이 벌어들이는 등 소득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어제 공개된 국제통화기금(IMF)의 ‘아시아의 불평등 분석’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소득 양극화 수준은 아시아 최고에 이르렀으며, 이런 현상이 사회적 계층 이동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기준 45%에 이르렀다. 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 아시아 국가 22개국 중 가장 높다. 한국에 이어 싱가포르가 42%, 일본이 41%로 뒤를 이었고, 뉴질랜드 32%, 호주 31%, 말레이시아 22% 순이었다. 특히 우리의 불평등 심화 속도는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빠르다. 1995년 29%에서 18년 사이에 16% 포인트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아시아 국가 전체의 평균이 1~2% 포인트 늘어난 데 비하면 불평등 심화 속도는 압도적이다. 한국의 소득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중은 5% 포인트 늘어난 12%로 싱가포르에 이어 2위였다.
보고서는 소득 상위계층의 소득 점유율이 높아지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중기적으로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반면 소득 하위계층의 점유율이 높아지면 고성장의 동인이 된다고 덧붙였다.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면 성장 속도가 지체되고, 지속성도 떨어진다는 의미다. IMF의 이번 분석은 경기 부양과 기업 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춘 우리의 경제 정책을 뒤돌아 봐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소비층의 다수를 차지하는 하위 90%의 소득을 늘리지 않고서는 경제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독일경제연구소(DIW)는 경기 부양과 디플레 방지를 위한 유럽중앙은행의 강력한 양적완화적 통화정책이 증권, 부동산 등을 보유한 고소득층의 주머니만 불려 오히려 빈부격차를 확대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얼마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서도 한국 사회가 역동성을 살려 경제 발전과 사회 통합을 이루기 위해선 소득 불평등 해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소득 불평등은 학력과 직업의 대물림 현상으로 이어져 사회적 이동을 어렵게 하고, 이는 빈곤의 고착화, 경제성장 지체로 진행되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적 어려움이 꼭 소득 불평등 심화 때문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소득 양극화가 우리 경제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사회 통합을 방해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소득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중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의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
[동아일보]
6. 총선을 '대통령 선거'로 끌고 가는 이유가 궁금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부산을 찾았다. ‘3·15 비박(비박근혜) 학살’이란 오명을 덮어쓴 새누리당 7차 공천 발표 바로 다음 날이고, 선거 불공정 논란을 빚은 대구 방문 엿새 만이다. 청와대는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 1주년에 맞춰 이뤄진 것”이라며 선거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찾은 사하사랑채 노인복지관에는 지역구에서 공천 경쟁을 벌이는 친박(친박근혜) 허남식 전 부산시장이 모습을 보였다. 창조경제센터가 있는 해운대갑과 그 옆 기장군에도 진박(진짜 친박) 예비후보들이 경선에 나선 상황이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대통령이 굳이 지방을 찾는 것은 공정성 시비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아도 시중에는 ‘이번 총선은 박근혜 선거’라느니, ‘공천이 아니라 박천(朴薦)’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박 대통령에게 미운털이 박힌 인사들이 사실상 모조리 컷오프(공천 배제)됐기 때문에 ‘보복 정치’라는 말도 나온다. 2008년 18대 공천에서 친박 인사들이 대거 공천에 탈락했을 때 당시 박 대통령은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는 말로 국민의 정서를 자극했다. 그 뒤 상당수가 살아 돌아왔고, 19대 총선에서 친이(친이명박)계에 보복도 했으며,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이제는 그 보복을 끊어야 했다. 그런데도 ‘진박 마케팅’이라는 비판까지 들으며 지방 방문을 계속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박 대통령이 4·13총선에 매달리는 것이 후반기 국정 운영의 동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는 설명도 있다. 그러려면 야당의 협조는 물론이고 여권 전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더 얻어야 하는데 정치 보복 공천으로 분열의 골이 깊게 파여서야 어떻게 국정에 협력을 이끌어낼지 걱정이다.
그렇게 밀어준 진박 또는 친박 후보들이 언제까지 충성을 바칠지도 모를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7대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지지를 호소했다가 탄핵소추까지 당했다. 그 역풍으로 당선된 운동권 출신 ‘탄돌이’ 의원들로부터 임기 말 철저히 배신당한 것을 박 대통령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대통령이 총선에 집착하는 것이 집권 후반기의 레임덕(권력누수) 방지를 넘어서 퇴임 후 정치 세력화를 겨냥하는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이번 지방 행차는 TK(대구경북)에 이은 PK(부산경남) 방문이라 지지기반인 영남의 세력화에 나선 것 아니냐는 설도 무성하다. 대통령이 사심 없이 국정을 운영하면 여당은 물론이고 국민도 대통령의 편이 된다. 그런데도 굳이 총선 개입 논란을 자초하는 것은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국민의 정치 수준이 훨씬 높다는 것을 대통령부터 깨달았으면 한다.
7. 역대 최고 청년실업이 공무원시험 탓이라는 정부
지난달 15∼29세 청년실업률이 관련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1999년 6월 이후 최고 수준인 12.5%를 기록했다고 통계청이 어제 발표했다. 해마다 졸업시즌인 2월의 청년실업률이 높긴 했지만 전달보다 3%포인트 치솟은 실업률은 예사롭지 않다. 전체 실업률은 4.9%로 2010년 2월 이후 6년 만의 최고치다. 이런 추세라면 정부는 올해 고용률 66.3%, 신규 일자리 35만 개 창출 목표치를 일찌감치 수정해야 할지 모른다.
고용노동부는 청년실업률 증가가 1월 말 공무원 9급 공채 원서를 낸 인원이 예년보다 3만 명 이상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험 준비만 하면 사실상 백수라도 실업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원서를 내면 구직활동으로 간주되는 바람에 실업자 수가 늘었다는 수박 겉핥기 식 진단이다. ‘공시’에 청년이 몰리는 것은 괜찮은 일자리가 민간 부문에 없다는 구조적 문제인데도 일시적 현상으로 우기는 정부의 시각이 걱정스럽다.
한국의 고용시장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대졸자 가운데 일을 하지 않고 교육도 받지 않는 니트(NEET)족 비율이 24.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세 번째로 높다. 아르바이트생, 취업준비생 등 사실상 실업자를 포함한 체감 실업률은 공식 실업률(4.9%)의 2배를 웃도는 12.3%다. 20년 전 일본처럼 청년실업률이 10년 이상 상승하는 장기침체기에 우리도 빠져 있다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다.
정부는 21일로 예정했던 청년·여성 일자리 대책 발표를 4월 말로 연기했다. 총선을 앞두고 준비해온 청년 구직수당제도가 포퓰리즘으로 비판받을 것을 우려한 일보 후퇴다. 남은 기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신산업의 세상에서 일자리를 늘리는 대책을 만들기를 바란다. 어제 국무조정실이 내놓은 규제 정비 계획이 그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산업 투자위원회’ ‘규제 최소성의 원칙’ 같은 용어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화려한 명칭의 기구와 현학적인 구호의 이면에서 관료들은 집요하게 새 규제를 만들어낸다. 장고에 들어간 고용대책이 실효를 거두려면 규제의 판을 갈아엎는 혁신적 구상이 나와야 한다.
8. 親文 살린 野 김종인, ‘잃어버린 8년’ 심판할 자격 있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가 어제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이번 총선은 ‘새누리당 정권의 잃어버린 8년’을 심판하는 선거”라고 규정했다. 4년 전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공약(公約)에 관여했던 그가 정부여당의 공약(空約)을 비판하며 ‘경제 심판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제 킹메이커 노릇은 더 이상 안 할 것”이라고 밝힌 김 대표가 스스로 킹이 되겠다고 나설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듣기에 따라선 새누리당을 심판하고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하려면 자신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대체로 총선은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의 성격을 띠는데 이번 총선은 좀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제도 “정치권에서 진정으로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를 고민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야당 심판론을 재차 강조했다. 경제민주화 전도사로 꼽히는 김 대표로서는 이런 프레임을 새누리당 심판론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마침 어제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3년 현재 45%로 아시아 국가 중 최대라는 ‘아시아 불평등 분석’ 보고서를 내놓았다. 김 대표가 2017년 대선의 시대정신을 ‘양극화와 불평등 해소’라고 진단한 것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가 ‘만능열쇠’인 양 강조하는 김 대표의 발언에는 전폭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경제 살리기가 절실한 상황에서 더민주당은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들을 악(惡)인 것처럼 국회 통과를 가로막았다. 김 대표도 열흘 전 민주노총을 방문한 자리에서 “노조가 사회 문제에 집착하면 근로자 권익 보호는 소외된다”고 지적했지만 노조가 반대하는 노동개혁 4법 처리에는 협조하지 않고 있다.
한국 경제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정치라는 말이 있다.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정치 문제를 해결하려면 야당의 정치 행태도 반드시 뜯어고쳐야 한다. 김 대표가 친노(친노무현) 패권주의를 청산한다며 ‘개혁 공천’을 했다지만 친문(친문재인) 의원들은 대부분 공천 관문을 통과했다. 과연 김 대표가 총선 전에 더민주당의 DNA와 정강 정책까지 바꿔 놓을 수 있는가. 친노와 체질이 다르지 않은 친문세력을 이끌고 새누리당의 8년을 심판할 자격이 있는지 김 대표는 돌아보기 바란다.
[매일경제]
9. 기준도 원칙도 없는 공천학살, 유권자를 뭘로 보나
새누리당이 253개 지역구 중 250개 지역에 대해 후보 공천 작업을 마무리한 가운데 김무성 대표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공천 원칙과 공정성을 놓고 또 충돌했다. 15일 공천에서 이재오·안상수·주호영·진영·조해진 의원 등을 대거 탈락시킨 데 따른 갈등이다. 지난 4년 동안 의정활동 평가는 제쳐두고 친이계·친유승민계라는 이유로 이들을 대거 탈락시킨 마당에 굳이 유승민 하나만 두고 여론 눈치를 보는 것도 어쭙잖다.
이번 새누리당 공천 과정은 대한민국 정치 후진성의 결정판이다. 2008년 친이계의 공천 학살, 2012년 친박계의 보복 공천 학살에 이어 올해는 친박계의 전횡이 극에 달했다. 제 아무리 분탕질을 쳐도 다수당, 집권당 위치를 유지하는 데다 주요 선거마다 연전연승이니 안하무인, 오만함이 하늘을 찌른다.
비례대표조차 인재 영입은커녕 박근혜 대선캠프 인사들의 나눠먹기 장(場)으로 변질됐다. 예의도, 염치도, 최소한의 정치 도의도 찾아볼 수 없다.
파벌정치의 원흉인 공천 제도 개혁 논의는 이번에도 수포로 돌아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상향식 공천을 밀어붙였지만 그 자신 계파 싸움의 한복판에 선 데다 선거구 획정 지연, 당원 명부·여론조사 허점 등으로 인해 결국 현역에게만 유리한 결과가 됐다. 새누리당 공천 결과 현역 157명 중 26명만 탈락해 현역 물갈이 비율이 16.5%에 그친 것이 그 증거다. 19대 국회 전면 물갈이를 원하는 국민 여론과 크게 동떨어진 결과다.
한국 정치의 수준을 지적할 때 흔히 "경제는 이류, 행정은 삼류, 정치는 사류"라는 표현이 자주 거론되는데 현재 우리 정치는 '사류'에도 머물지 못하고 '오류'로 퇴보한 느낌이다.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국회로 기록된 것은 여당의 무능함과 야당의 국정 발목 잡기가 결합한 탓이었다. 집권 여당이 이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이나 사죄도 없이 방약무인 구태 공천을 자행했으니 유권자들의 냉엄한 심판이 곧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10. 생산성 없는 '야근 공화국' 이제 벗어날 때다
한국 기업이 상습적인 야근과 상명하복 업무 지시 등 후진적인 기업문화로 골병이 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가 국내 기업 100개사 임직원 4만명을 대상으로 '조직 건강도(OHI)'를 조사한 결과 국내 기업 77%가 글로벌 기업 평균보다 약체인 것으로 평가됐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피처폰급인 기업 운영 소프트웨어를 스마트폰급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했는데 백번 옳은 얘기다.
한국의 조직문화가 전근대적이란 지적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상사의 지시에 'No'를 못하는 불통 문화, 비합리적 평가 시스템 등 구태의 뿌리는 깊다. 최악의 기업문화는 '습관화된 야근'이다. 한국 직장인은 주5일 중 평균 2.3일 야근을 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농업적 근면성을 직원 평가의 바로미터로 삼으면서 '야근=성실'이라는 악습이 자리 잡았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상사 눈치가 보여 휴가도 제대로 못 가는 문화에서 생산성이 오르고 창의성이 나올 리 없다. 한국인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057시간으로 세계 3위다. 하지만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13년 OECD 34개국 중 25위에 머무르고 있다. 대한상의 조사에서도 상습적 야근자의 업무생산성(45%)이 일반 직장인(57%)보다 떨어지는 '야근의 역설'이 확인됐다.
불필요한 야근은 저출산 문제와도 관련이 깊다. 장시간 근로 탓에 일·가정 양립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CEO가 확실한 의지를 갖고 구태를 수술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알파고 쇼크에서 목도했듯 창의적인 기업이 미래의 주도권을 쥐게 되는 시대다. 구글, 애플 등은 직원들의 창의성을 북돋우는 기업문화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도 과거의 낡은 조직엔진을 새로운 것으로 바꿔 끼우지 않으면 안된다. '야근 공화국'의 굴레를 벗어나 '칼퇴'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그 출발점이 돼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연합뉴스]<권영석의 통일시대> 알파고 만들어 김정은과 맞붙게 하자
그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다. 강해도 너무 강하다. 세계 바둑 최강자 이세돌 9단을 단숨에 무찔렀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이 핵무기로 우리를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위협하는 바람에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니 답답하고 암울했다. 그런데 구원 투수가 등장한 것이다. 어떤 위기가 닥쳐도 꿈쩍 않는 기계다운 냉철함, 치밀한 수 읽기와 강한 전투력. 그 정도면 북한 김정은도 무릎을 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알파고가 절실해진 것은 기존의 대북정책이 쓸모없어졌기 때문이다. 북한은 곧 소형화된 핵무기를 발사할 시험을 한다고 한다. 남한을 공격할 수 있는 핵무기는 실전 배치 단계라고 한다. 안보 위기 국면이다. 나라의 생존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기존 대북정책은 완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시대와 상황이 변하면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햇볕정책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물 건너갔다. 이제 원점에서 대북정책의 틀을 새로 짜야 할 때다.
이번엔 지속가능한 대북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폐기되는 정책은 너무 소모적이다. 한번 만들어 놓으면 스스로 끊임없이 진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북한과의 대국은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무쌍한 게임이다. 북한에 맞서 최적의 수를 찾아내고 그 수를 놓았을 때 승률을 빅데이터 기반으로 지속적으로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절대 자기 입맛에만 맞는 정책을 내놓아서는 안 된다. 알파고 같은 대북정책에 특화한 인공지능 시스템을 만들어 둬야 하는 이유다.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는 이대로 간다면 시한부 인생이다. 이 통준위를 대북정책의 알파고로 한번 키워보자. 그러자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통준위 조직과 기능을 완전 개편해야 한다. 통일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여당측 대표와 야당측 대표를 부위원장으로 임명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다. 그래야 대북정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통준위 위원 임명과 대북정책 입안도 변증법에 기반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찬성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보수가 있으면 진보가 있다. 정반합을 하고 또 정반합을 하는 과정을 거듭하며 의사결정을 한다면 그런 대북정책은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통준위 시스템을 알파고처럼 만들자는 것은 모든 자원을 무한정으로 사용해 어떤 게임에도 지지 않는 묘수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산한 묘수는 통일특사에게 맡겨 실행에 옮기면 된다. 이왕이면 고려 시대 서희 같은 외교관을 특사로 맞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다. 탁월한 협상력을 갖춘 특사는 전쟁도 없이 통일을 앞당기는 능력이 있다. 그런 특사를 발탁해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을 설득하고 남북 평화통일을 이룩해 보자.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이 아니던가. 냉전 시대가 끝난 게 언젠데 아직도 지구 상 마지막 분단국으로 남아 힘자랑만 하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이제 우리도 미지의 통일 시스템에 본격 도전해야 할 때가 왔다.
2. [서울신문] [문화마당] 당신은 소설을 열심히 읽었습니까/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1995년 3월 20일 월요일 아침. 도쿄 지하철 마루노우치선, 히비야선, 지요다선의 다섯 개 차량에서 신경가스계 독가스가 살포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지하철에 타고 있던 시민들은 눈이 멀거나 호흡곤란 증세를 일으켰고 부상자는 5000여명에 달했다. 인간의 중추신경계를 손상시키는 이것의 정식 명칭은 ‘사린’이며 나치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개발한 맹독 가스로 알려져 있다.
아사하라 쇼코는 1955년 3월 2일 구마모토현 야쓰시로에서 태어났다. 소작으로 겨우 집안을 건사하던 부모가 일곱 번째로 낳은 자식이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눈에 이상이 있었는데 자라면서 거의 보이지 않게 돼 구마모토 현립 맹인학교에 다녀야 했다. 아사하라와 같은 처지의 학생들이 많았고 그중에는 미나마타의 수은 중독이 원인인 경우도 있었다. 야쓰시로에서 미나미타까지는 차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으며 같은 바다에 면해 있다.
하지만 아사하라의 형이 아사하라를 미나마타병 환자로 관청에 신고했을 때 돌아온 것은 아사하라를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소문과 괴롭힘”이었다. 후지와라 신야는 ‘황천의 개’에 이렇게 적었다. “미나마타의 질소 공장은 패전 후 국가 재건에 앞장선 선봉이었다. 그 국가적 산업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을 알면서도 미나마타 앞바다에 수은을 방류했다. 중앙정부는 냉혹하게도 국가 재흥에는 다소간의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아사하라가 고향을 떠나 도쿄에 머물며 옴진리교를 설립한 것은 1984년이었다. 10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1만여명에 가까운 이들이 모였다. 변호사와 생화학자, 의사, 과학자, 심지어 정부 관료와 경찰의 수도 상당수에 달했다. 이른바 사회 엘리트층인 그들을 향해 아사하라는 핵전쟁을 예언하고 옴진리교의 신자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최첨단 무기와 독가스를 개발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반론은 허용되지 않았다. 교단 내부에서 아사하라의 예언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은 조용히 제거됐다. 교단의 활동에 항의한 인근 주민들에게는 테러가 가해졌다. 문제는 살인과 납치, 폭력이 자행됐음에도 경찰 당국은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옴진리교에 대한 경찰 내부의 움직임이 교단에 소속된 경찰 간부에 의해 시시각각 보고될 정도였다. 1995년의 대참사가 벌어진 그 순간까지도 사린에 대한 방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문학 수업을 맡고 있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뉴스를 접하고 일본으로 돌아가 책을 쓸 결심을 한다. 그는 피해자 140명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언더그라운드’라는 제목의 르포르타주를 출간하며 평범한 사람들이 허무하게 죽어갈 수밖에 없었던 주된 이유로 “무방비 상태의 정치가와 경직된 관료 시스템”을 들었다. 한편으로 사건에 가담한 신자들과 인터뷰할 때는 공통 질문 하나를 던진다.
“당신은 소설을 열심히 읽었습니까?”라는 것이었다. 철학이나 종교, 과학 서적을 탐독해 온 신자들 대부분이 소설에는 흥미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그들의 대답을 종합해 하루키는 “아사하라가 내세운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픽션이었다. 그러나 픽션에 익숙하지 않은 신자들은 아사하라가 제시한 픽션을 사실과 뒤죽박죽 섞어 고스란히 받아들였다”고 진단했다. 일리가 있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소설을 읽지 않게 되는 것도 어쩌면 비슷한 맥락일지 모른다. 하긴 읽지 않는 것이 어디 소설뿐이겠냐만.
3. [동아일보][@뉴스룸/박재명]화장지는 변기에
지난해 초 기자는 동아일보의 2015년 연중 기획 시리즈인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에 참여했다.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 총 250회에 걸쳐 연재한 장기 기획물이었던 만큼 독자를 비롯해 동아일보 편집국 기자들, 사회 각계각층의 명사들로부터 다양한 아이디어를 받았다.
그때 두 건 이상의 개선 제안이 나왔지만 쓰지 못한 아이템이 하나 있다. 바로 ‘화장실 휴지통’ 문제다. 한 편집국 기자는 “외국인이 한국에서 가장 놀라는 문화가 바로 뚜껑 없는 휴지통”이라며 “변기 옆 휴지통이 악취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외국 근무를 오래한 고위공무원 역시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혐오문화 중 하나가 화장실 휴지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아이템은 지면에 실리지 않았다. 아침에 독자들이 읽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또 화장실 휴지통이 화장실 관리를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도 만만찮게 제기됐다.
하지만 전 세계인이 사용하는 구글 검색창에서 ‘한국 화장실(Korean Toilet)’을 검색하면 더러운 한국 화장실 사진만 등장한다. 대부분 변기 옆에 파란색 뚜껑 없는 휴지통이 놓여 있는 사진이다. 한국인이 자주 찾는 일본 오사카(大阪)의 한 화장실에는 한글로 “부탁! 사용 후 화장지는 변기에 넣어 흘려보내 주세요”라는 종이까지 붙었다.
화장지를 그냥 변기에 흘려버리면 배수 문제가 생긴다고 아는 사람이 많다. 화장지 제조사인 유한킴벌리에 물어 보니 “화장실에서 쓰는 소위 두루마리 화장지는 ‘화장실용 화장지’라는 별도 품명으로 판매한다”며 “20초 만에 물에 풀어지는 만큼 변기에 흘려버려도 배관 막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변기 옆에 왜 휴지통을 놓을까. 기자가 자주 찾는 서울 중구 일대의 사무실 4곳의 화장실을 조사해 보니 2곳에 변기 옆 휴지통이 있었다. 환경미화원 아주머니에게 휴지통을 유지하는 이유를 묻자 “휴지통이 없으면 더 귀찮아진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각종 위생용품과 스타킹, 물티슈 등을 변기에 버려 배관이 자주 막히는 문제 때문에 휴지통을 없앴다가 다시 만든 곳도 있었다.
한국에 첫 화장실용 화장지가 선보인 것은 1971년. 그 이전까지는 신문지나 공책 등 다양한 종이를 화장실에서 썼다. 당연히 휴지통에 모아 버려야 했다. 그때의 습관이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유한킴벌리가 2013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사용한 화장지를 변기에 바로 흘려버리는 비율은 응답자의 51%에 그쳤다.
그동안 우리가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익숙해진 표어가 바로 ‘휴지는 휴지통에’다. 사람들은 으레 뒤처리를 끝낸 화장지를 휴지로 생각해 휴지통에 버렸다. “화장실에 휴지통이 없으면 불안하다”는 사람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시민들의 고정관념을 바꿔야 할 때다. 최근 남미 지역에서도 변기 옆 휴지통 없애기 캠페인이 시작됐다고 한다. ‘화장지는 변기에,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정도의 표어를 화장실마다 부착하는 건 어떨까. 중요한 볼일을 보면서 휴지통에서 흘러나오는 타인의 냄새를 맡는 문화는 이제 바꿀 때가 됐다.
4. [동아일보][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매듭
택배로 물건을 받는 일이 잦다. 대부분은 사무적인 일이지만 가끔은 정이 듬뿍 담긴 상자를 받기도 한다. 시골에서 참기름을 짰다, 갓김치를 담갔다, 땅콩이 정말 고소하니 먹어보라며 요거조거 골고루 넣은 상자를 받을 때가 있다. 그런데 국물이 샐까, 병이 깨질세라 염려하여 얼마나 단단히 포장하고 묶었는지 칼과 가위로 싹둑거리고 난도질을 하는 한바탕 실랑이를 벌여야 할 경우가 있다.
고마운 마음이야 이를 데가 없지만 포장을 뜯느라 한참 진땀을 빼고 나면 ‘뭘 이렇게까지 칭칭 동여맸을까’ 생각했는데 장흥진 시인의 ‘매듭’이란 시를 읽으며 숙연해졌다.
시인도 어머니가 보낸 택배를 받는다. 칭칭 동여맨 상자를 보며 난감해하자 시인의 아이가 칼을 건넨다. 상자 속엔 가을걷이한 곡식과 채소가 들어 있을 터. 하나라도 더 보내려다 보니 상자가 닫히지 않자 어머니는 꾹꾹 눌러가며 가로세로 수십 번 비닐 끈으로 동여매신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뭉툭한 손이 떠올라 시인은 차마 단칼에 잘라내지 못한다.
‘힘이 들수록 오래 기도하시던 어머니처럼/무릎을 꿇고/밤이 이슥해지도록 상자의 매듭과 대결한다/이는 어쩌면 굽이진 어머니의 길로 들어가/아득히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시인도 어렸을 적엔 평생 지름길을 모르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시인은 ‘지름길을 지향하는 칼’을 버리고 차근차근 어머니의 매듭을 풀어내면서 이음매 없이 길고 부드러운 어머니의 길을 본다고 썼다. 나는 이 대목에서 비로소 딸이 어머니를 이해하고 일치가 되는 감동을 느꼈다.
지난 일요일에는 봄맞이 겸사겸사 엄마 산소에 다녀왔다. 나도 예전에는 평생 지름길을 모르는 엄마에게 화를 냈다. 그리고 단칼에 베어내지 못하는 속 좋은 엄마가 못마땅해서 “그러면 남들이 우습게 본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래도 엄마는 “냅둬라. 괜찮다”라면서 빙그레 웃고 말아 나를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엄마 버전으로 가고 있는 나를 본다. 나도 딸에게 “괜찮아. 돌아서 가도 결국은 다 도착하게 되어 있어”라는 당치 않은(?) 말을 한다. 세상의 매듭을 푸는 방법이 칼로 싹둑 자르는 것만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나하나 차근차근 풀다 보면 비로소 보이는 길이 있다. 진정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풀리지 않을 매듭이 어디 있을까.
5. [중앙일보][새미 라샤드의 비정상의 눈] 한국어만의 특징, 얼마나 알고 있나
전 세계 언어는 7000~8000개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유엔의 공식 언어는 중국어·영어·스페인어·아랍어·러시아어·프랑스어밖에 없다. 이 여섯 가지만 전 세계 지도자들이 만나는 유엔에서 의사소통 수단이다. 유엔에서 회의나 연설을 할 때는 이 언어를 사용하고, 능통한 언어가 없으면 유엔에서 통역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한국어의 위치는 어디일까? 최근 국립국어원이 공개한 정보에 따르면 한국어는 사용자 숫자에서 세계 13위를 차지한다. 사용자가 7720만 명에 이른다. 남북한은 물론 중국·일본·러시아·태국·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거주하고 있다.
한국어를 처음 접한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어보다 한글이 더 매력적이었다. 해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인 선생님들은 한국어가 아니라 한글의 우수성을 주로 칭찬한 때문인 듯하다. 심지어 한글과 한국어를 혼동해 한국어가 과학적이어서 위대하고 우수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어떤 언어도 과학적일 수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한글과 한국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글이 과학적이라고 자랑하는 대학생에게 과학적인 부분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보라고 주문하면 당황하기 일쑤다. 한글이나 한국어의 특징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더듬거리는 분이 적지 않다. 모든 한국 사람이 언어 전문가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한국어에 대한 기본적인 언어학 지식은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실 한국어는 아름답고 개성이 뚜렷하다. 한국인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한국어만큼 요긴한 것은 없을 것이다. 어떤 외국어로도 ‘알콩달콩’ ‘깡충깡충’ 등 한국인만의 특별한 심리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 사람들에게 한국의 특징이 무엇이냐 물으면 ‘빨리빨리’ ‘한복’ ‘추석’ 등 여러 가지를 꼽으면서도 ‘한국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한글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는 교육은 많이 받지만 한국어에 관심을 두는 교육은 소홀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글날도 있고 한글 패션쇼도 있지만 ‘한국어를 기념하는 날’은 없지 않은가. 한국어를 잘 쓰는 교육보다 외국어 학습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풍조도 한 이유가 아닐까.
한글만큼 한국어의 중요성이나 특징을 제대로 알려주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어가 전 세계에 더욱 널리 퍼져나가려면 본고장에서 제대로 대접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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