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16일 수요일 한국일보사설/한겨레신문사설/동아일보사설
[한국일보사설-160316수] 적신호 켜진 기업 조직문화, 구태 벗어나야
국내 기업의 조직문화에 적신호가 켜진 것으로 확인됐다. 기업에 상명하복식 업무지시, 상습야근, 비생산적 회의, 불합리한 평가방식 등으로 불통과 비효율, 불합리 등이 횡행하면서 조직의 건전성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지난해 6월부터 9개월 간 국내 기업 100개사의 임직원 4만 명을 조사해 이 같은 내용의 ‘기업문화 종합진단 보고서’를 발표했다.
진단에는 맥킨지의 조직건강도(OHI·Organizational Health Index) 분석기법이 활용됐다. 리더십, 조율ㆍ통제, 역량, 책임소재 등 9개 영역의 37개 세부항목을 평가 점수화해 글로벌 기업 1,800개사와 비교한 방식이다. 조사대상 100개사 중 최하위 수준 52개사를 포함해 77개사의 조직건강에 의문이 제기됐다. 중견기업은 91.3%가 하위수준으로 평가됐다. 진단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취약점은 리더십, 조율과 통제, 역량, 외부지향성에 있었다. 세부적으로는 상습야근과 주먹구구식 일 처리, 과도한 보고, 소통 없는 일방적 업무지시 등이 나쁜 점수를 받았다.
우리 기업은 제조혁신을 통해 앞서 나가는 해외기업을 따라잡는 전통적 성공 방정식에는 익숙하지만, 지식과 창의력 리더십 등을 발휘해 급변하는 시장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글로벌 기업의 역량을 따라잡기에는 힘이 달린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 주된 원인은 후진적 기업문화일 가능성이 드러난 셈이다. 상사의 불합리한 지시에도 임원 앞에서 정자세로 서서 불명확하고 불합리한 리더의 업무지시에 ‘왜(Why)’라고 묻거나 ‘아니(No)’라고 거부하지 못하고 무조건 따르는 상명하복의 불통문화가 단적인 예로 제시됐다. 또 “한국 기업의 임원실은 마치 엄숙한 장례식장 같다”는 국내 기업 외국인 임원의 지적은 뼈아프다. 이래서야 창의력이 싹틀 토대가 없다. 유교적 전통에 덧붙여 오랜 권위주의 통치에 따른 군사문화에 기업문화가 접목된 것이 배경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의 말대로 ‘피처폰’에 머물고 있는 기업문화를 스마트폰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할 때가 왔다. 4차 산업혁명의 파고가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구시대적 기업문화로는 생존과 성장이 어렵다. 아울러 기업문화의 획기적 개선에는 결국 기업 최고경영자의 인식과 의지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업과 종업원을 사유물 취급하는 구시대적 사고방식, 재벌 2ㆍ3세가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르는 세습경영으로는 난관을 타개할 수 없다. 한 기업과 경제전체를 위협할 수 있는 오너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후진적 황제경영 방식을 고집할 때가 아니다.
[한국일보사설-160316수] 국민 우롱하는 여당의 유승민 공천 배제 분란
새누리당 공천 갈등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오만과 독선이 느껴진다. 총선 공천이 기본적으로 정당 내부의 일이라고 하나 상식과 민주주의 원리를 벗어날 수는 없다.
작금 여당에서 벌어지는 일은 국민의 상식과 민주적 원리를 짓밟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기치 아래 오랜 기간 당내 토론을 거쳐 마련된 공천 원칙과 기준들이 무시된 대신 독단이 횡행하고 있다.
새누리당 공관위는 15일에도 유승민(대구 동을) 의원 공천 배제를 놓고 진통을 거듭하다 16일로 또 한번 결정을 미뤘다. 전날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현역의원 공천 배제 기준의 하나로 “당 정체성과 맞지 않는 행동은 한 사람”을 제시했다. 명백히 유 의원을 겨냥한 기준이다. 대구지역 권은희 홍지만 김희국 류성걸 의원, 이종훈(경기 성남분당갑) 조해진(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의원 등 유 의원과 친한 의원들을 대거 탈락시킨 것도 유 의원의 수족 자르기로 보인다. 눈밖에 벗어났다고 철저하게 유 의원을 배제하려는 권력의 집착에 소름이 돋는다.
유 의원의 정체성 논란은 지난해 4월 당시 원내대표로서 한 국회교섭단체 연설에서 비롯됐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대목이 박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청와대와의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3개월 후 유 의원은 국회법 파동 속에 박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 낙인이 찍혀 원내대표직에서 밀려났다. 집권당 원내대표가 청와대와 호흡을 맞춰 입법활동과 국정의 조화를 꾀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철학은 접어두고 무조건 대통령의 뜻에 맞추라는 것은 3권 분립을 규정한 헌법 원리에 어긋난다.
정당이 노선과 정체성을 중심으로 일관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 다양성을 보일 때 더 많은 국민을 대표하고, 그만큼 외연확장 가능성도 커진다. 그런데 새누리당 공관위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는 현역의원들은 모조리 털어내려고 작심한 듯하다. 5선의 비주류 중진 이재오(서울 은평을) 의원과 복지부장관 시절 박 대통령과 마찰을 빚은 진영(서울 용산ㆍ3선) 의원을 탈락시킨 것도 충격이다. 공천 칼 바람의 선두에선 이한구 공관위원장이‘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인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최근 박 대통령의 대구 방문, 이 위원장과 현기환 청와대정무수석의 비밀회동설, 윤상현 의원 욕설 녹취록 파문 등은 권력 핵심부가 공천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음을 뒷받침한다. 윤 의원의 공천 배제만으로 그런 무리수와 비정상적 행태가 가려질 수는 없다.
[한국일보사설-160316수] 성큼 다가온 ‘인공지능 시대’에 대비하자
세계의 이목을 끈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 9단의 역사적 대결이 끝났다. 알파고는 마지막 다섯 번째 대국에서 인류 대표 이 9단을 불계승으로 물리쳤다.
4 대 1 완승이다. 그래도 이 9단이 1승을 거둬 알파고의 기능적 한계를 확인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첫 판에서 이미 인공지능(AI)의 엄청난 위력이 확인된 만큼 그 뒤의 승패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었다. 설령 이 9단이 4승1패 내지 3승2패로 승리를 거뒀더라도, AI의 발전 속도로 볼 때 알파고의 궁극적 승리는 예견된 수순이었던 셈이다.
이제 인류의 관심은 인간 지능을 능가하는 AI 기술이 삶에 침투한, 미래 사회의 모습에 쏠리고 있다. 알파고를 만든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AI가 발전하면 인간이 더 똑똑해지고 세상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다. 그럼에도 알파고의 승리를 목도한 많은 사람들이 기계시대의 도래와 인류의 종말을 떠올리는 게 사실이다. 정보기술(IT) 혁명으로 수많은 직업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 미국 노동력의 8.2%가 신기술과 연관된 새 일자리로 옮겼으나, 2000년대에는 그 비율이 0.5%로 축소됐다. AI 같은 첨단기술일수록 관련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속도가 늦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실제 콜센터 등 단순 업무는 물론 날씨예보 주식투자 의료 법률 언론 등 전문영역까지 AI에 잠식당하고 있다. 올해 초 다보스포럼에선 향후 5년 내 700만 개의 일자리가 기계로 대체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왔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거대 자본이 AI에 기반한 로봇 사물인터넷 등 융합기술을 장악할 경우 1 대 99가 아닌 1대 999의 세계가 열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또 북한과 같은 세력이 AI 기술을 탑재한 군사용 로봇을 대량인명살상 목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인류는 그 동안 다이나마이트, 원자력, 로켓 등의 신기술이 인류 문명을 파괴하는 대재앙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스티븐 호킹 교수가 “인류는 100년 내 AI에 의해 끝장이 날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를 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렇다고 AI 시대의 도래를 무조건 거부할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기술의 진보를 통해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킨 사례도 많다. 산업혁명을 잘 관리한 영국 등이 그런 예에 속한다. AI 혁명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가 됐다. 이제 인류가 어떻게 AI를 통제하면서 행복한 사회시스템을 갖추느냐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도 AI 기술을 제어할 국제협약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한겨레신문사설-160316수] ‘알파고 이후’의 과제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펼친 다섯 차례 대국이 모두 끝났다. 지난 일주일 사이 우리들은 인간의 직관과 추론 능력을 쏙 빼닮은 알파고의 위력에 충격을 금치 못했고, 동시에 포기를 모르는 투혼으로 알파고를 한 차례 무릎 꿇린 인간의 의지에 희열을 맛보기도 했다.
눈앞에서 지켜본 인공지능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과잉 열풍도, 과잉 불안도 모두 적절한 태도는 아닐 것이다. 인공지능은 위협적이었으되, 아직은 한계 또한 분명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토대로 기계학습(머신러닝) 방식을 따르다 보니, 스스로 학습한 적이 없는 돌발상황과 맞닥뜨렸을 땐 어이없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바둑과 같은 두뇌게임이 아니라 무인자동차나 의료 등 일상생활 분야에 곧장 적용됐더라면 치명적 피해를 입혔을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의 앞길이 아직은 꽤 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알파고와 함께한 일주일은 우리의 부족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줬다. 아프지만 값진 시간이라 할 만하다. 인공지능 분야란 첨단 과학기술이 한데 집약된 대표적인 융복합의 영역이자 자연과학·인문학·공학·의학 등을 두루 아우르는 연구개발 능력의 결정판이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가는 인내의 시간과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창의적 사고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쉽사리 넘보기도 따라가기도 힘들다. 떠들썩한 세기의 대결이 결국 구글의 잔치로 끝나버린 건, ‘구상’ 능력을 키우기보다는 모방과 실행에만 매달려온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해마다 수십조원에 이르는 연구개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도 단기적 효과의 가능성 위주로 인적·물적 자원을 배분해온 ‘추격자’ 모델이 더는 유효하지 않음을 일깨워준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종합적인 인공지능 육성방안을 다음달 발표할 예정이다. 국내 기업들이 참여하는 형태의 지능정보기술연구소 설립 움직임도 있다. 미래 인류 문명을 좌우할지도 모를 사업을 번갯불에 콩 볶듯 밀어붙이는 태도도 문제거니와, 정부가 결정하고 기업들은 무조건 따르도록 하는 행태는 여러모로 볼썽사납다. 창조경제 한답시고 전국 17곳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세워 사실상 기업에 할당하는 구닥다리 경제의 판박이가 아니고 무엇인가.
[한겨레신문사설-160316수] ‘핵 위협’ 강화하는 북한, 대북 경계심만 키울 뿐
북한이 미국 등을 겨냥해 핵 위협 수준을 부쩍 높이고 있다. 북쪽으로선 여러 목적이 있겠지만 결국 국제사회의 대북 경계심을 더 강화시킬 뿐이다. 북쪽은 이제라도 비핵화의 길을 선택해 국제사회와의 공존을 추구하길 바란다.
북쪽 관영언론이 15일 보도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체 기술을 자력으로 개발했다는 것으로, 며칠 전 주장한 핵탄두 소형화·다종화 기술과 결합할 경우 미국을 직접 공격할 역량을 갖추게 된다. 다른 하나는 ‘이른 시일 안에 핵탄두 폭발시험과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여러 종류의 탄도로켓 시험발사를 단행’하겠다는 것이다. 5차 핵실험에 대한 예고인 셈이다. 북쪽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면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버금가는 수준의 핵 기술을 확보한 게 된다. 하지만 정부는 북쪽이 아직 핵탄두 소형화와 재진입체 기술 등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북쪽이 최근 핵 위협 수준을 높이는 의도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대한 반발과 내부 결속, 강화된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대응, 핵 능력의 기정사실화 등이 그것이다. 북쪽이 연이어 발표한 핵 관련 내용 가운데는 믿기 어려운 게 적지 않지만 적어도 북쪽이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북쪽이 이런 태도를 고수하는 한 ‘위험한 나라’라는 국제사회의 인식은 더욱 커질 것이다. 각국의 독자적인 대북 제재가 더 강화될 수도 있다. 이는 김정은 정권에게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다.
북쪽의 핵 능력 강화 주장은 국제사회의 기존 대북 접근 방식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북쪽이 오랜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 능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면 김정은 체제가 무너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것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제재와 더불어 중국과 러시아가 강조하는 비핵화-평화협정 병행 논의를 시도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는 대북 대응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공조를 유지·강화한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특히 중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만큼이나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대해서도 우려한다.
정부는 대북 압박 일변도에서 벗어나 6자회담 재개로 향하는 동력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이는 북한의 새로운 핵실험과 로켓 발사를 막고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한겨레신문사설-160316수] ‘개혁 보수’ 축출로 ‘꼴통 보수’ 자인하려는가
새누리당이 유승민 의원의 공천 배제(컷오프)에 대한 최종 결정을 계속 미루고 있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15일 저녁 유 의원의 공천 여부 발표를 보류하면서 “내부 의견 통일이 안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친박계 핵심 의원들은 이날도 “새누리당 당헌에 어긋나는 대정부 질문을 했다”(박종희 사무2부총장), “당의 옷을 입고 엉뚱한 행동과 말로 민심을 호도했다”(홍문종 의원) 따위의 말로 공천 배제 분위기를 몰아갔다.
친박 의원들이 유 의원 공천 배제의 이유로 내세운 것은 그의 ‘정체성’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새누리당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잘 보여준다. 유 의원에 대해 대다수 국민은 ‘건강한 보수’ ‘개혁 보수’ ‘유연한 보수’ 등의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는 야당도 선뜻 나서지 못한 증세 문제를 공론화했고, 보수당의 금기라 할 재벌·대기업을 비판하면서 “새누리당은 가진 자, 기득권 세력의 편이 아니라 고통받는 서민·중산층의 편에 서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개혁보수의 아이콘’인 유 의원을 찍어내려는 것은 새누리당 스스로 ‘수구 보수’ 내지는 ‘꼴통 보수’임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유 의원이 ‘문고리 권력’의 과도한 국정 개입 문제를 지적하며 “청와대 얼라들”이란 말을 한 것을 공천 배제의 근거로 대는 것은 친박계의 정신 상태가 어떤지를 잘 보여준다.
지금 새누리당 친박계의 행태를 보면 ‘꼴통 보수’라는 말도 과분해 보인다. 이들이 유 의원을 기어코 찍어내려는 진짜 이유가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박 대통령이 유 의원을 향해 “배신의 정치”라는 저주를 퍼부었을 때부터 이들의 공천 작업 최종 목적지는 유 의원 축출이었다. 지금 친박계의 모습은 보스의 눈에서 벗어난 부하를 끝까지 쫓아가 숨통을 끊어놓는 뒷골목 조폭들이나 다를 바 없다. 잔인하고 냉혈하기 짝이 없는 보스, 그의 지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행동대원들이 득실대는 ‘조폭 집단’이야말로 지금의 새누리당 정체성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단어인지도 모른다.
유 의원은 국회법 개정안 파문으로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에서 쫓겨나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헌법의 지엄한 가치는 여지없이 무너졌고, 나라는 민주공화국이 아닌 일인 지배 국가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동아일보사설-160316수] 이한구의 노골적 眞朴 살리기, 이번엔 ‘非朴학살’인가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어제 “김무성 죽여” 막말로 해당(害黨) 행위를 한 윤상현 의원의 컷오프(공천 배제)를 발표했다. ‘태풍의 눈’이던 유승민 의원(대구 동을)은 새누리당 현역 의원 중 유일하게 공천 발표가 보류됐다. 유 의원을 컷오프하려는 이한구 위원장 등 친박(친박근혜)계 공관위원과 총선 역풍을 우려하는 위원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져 결국 최고위원회의 안건으로 올린다고 한다. 이렇게 논란이 커질 정도면 경선을 붙여 투명하게 처리하는 게 민주주의 원칙에 맞는다.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 곽상도 전 민정수석, 윤두현 전 홍보수석,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 등 대구의 ‘진박(眞朴·진실한 친박) 5인방’은 모두 단수 추천이나 경선을 치르게 됐다. 현역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알려졌던 이들이 모두 1차 관문을 통과한 데는 꼼수도 작용했다. 공관위가 그제 대구의 주호영(수성을) 서상기 의원(북을)을 컷오프하고 각각 여성과 장애인 우선추천 지역으로 정하자 진박과 경쟁했던 예비후보들이 이쪽으로 옮길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이 30일도 안 남은 가운데 진박을 살리기 위해 이루어지는 후보 재배치는 대구를 아무렇게나 주물럭거려도 되는 ‘영지(領地)’쯤으로 생각한다는 의미다.
‘유승민계 4인방’으로 알려진 대구의 김희국(중-남) 류성걸 의원(동갑)과 조해진(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이종훈 의원(경기 성남 분당갑) 등은 모두 컷오프됐다. 친박계가 주도했던 2012년 19대 공천 당시 친이(친이명박)계의 수장 격인 이재오 의원만 살려 두고 측근인 진수희, 권택기 유정현 전 의원 등 친이계를 대거 쳐냈던 일을 연상케 한다. 이번에는 유 의원의 자진 사퇴를 유도하려는 ‘유승민 고사(枯死) 작전’이란 말이 무성하다.
박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던 서울의 이재오(은평을) 진영 의원(용산) 등 비박(비박근혜)계 핵심 인사들도 모두 공천이 배제됐다. 시중에는 ‘한 번 찍은 사람은 반드시 잘라내는 박 대통령이 정말 무섭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박 대통령은 ‘친박 학살’로 불렸던 2008년 18대 공천 때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고 토로했다. 2012년 19대 공천에서 친박계가 ‘친이 학살’을 한 것은 정치적 보복이었다.
이번 20대 공천에서도 ‘비박 학살’ 자행이라는 오명을 짊어지는 것이 새누리당이나 박 대통령, 그리고 정치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하다고 볼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 누구도 박 대통령에게 찍힐 경우 정치적 미래가 없다면 공천의 공정성 여부를 떠나 정치 혐오마저 불러일으킨다. 새누리당이 이러고도 국회 180석, 아니 과반수 의석을 노린다면 도둑놈 심보다.
[동아일보사설-160316수] 천정배, 또 “연대” 외칠 거면 차라리 국민의당 떠나라
더불어민주당과의 연대 필요성을 주장해온 국민의당 천정배 공동대표가 어제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와 회동한 뒤 “현재의 여러 여건상 당 차원의 수도권 연대는 여의치 않다”는 입장 발표문을 내놓았다. 안 대표와의 의견 교환에서 자신의 뜻을 밝혔으나 ‘여건상’ 수도권 연대가 여의치 않기 때문에 당무에 복귀한다는 것이다. 전날 천 대표는 안 대표와의 회동을 마지막으로 의견 조율을 시도하고 그 결과에 따라 행보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도부 갈등으로 창당 40여 일 만에 당이 깨질 위기까지 맞았던 국민의당으로서는 한숨을 돌리게 됐지만 이것으로 ‘연대 바람’이 잦아들 것으로 보긴 어렵다.
어제 비호남지역 야권 연대를 요구해온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광민회)가 “(안 대표의) 후보자 간의 야권 연대 허용 운운은 무책임한 선동이며 혹세무민”이라며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수도권 야권 연대에 대한 답을 주지 않으면 강력히 대처하겠다”고 주장했다. 야권을 지지하는 이른바 진보적 단체의 이런 주장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국민의당은 2일 김종인 더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가 야권 통합을 제의했을 때부터 찬성파, 소극파, 반대파로 나뉘어 갈팡질팡했다. 4일 당론으로 ‘통합 거부’ ‘수도권 연대도 없다’고 결론 냈음에도 김한길 전 상임선대위원장과 천 대표는 다시 연대를 들고 나왔다. 안 대표가 “지역 후보들끼리 이기기 위한 단일화는 막을 수 없다”고 개인 차원의 야권 연대를 사실상 허용했음에도 천 대표나 김한길 의원은 당 대 당 연대를 주장했다. 당론을 깨고 후보를 나눠 먹자는 야합이며, 제3당이란 대의를 포기하자는 얘기다.
천 대표는 꼭 1년 전 4·29보궐선거를 앞두고 지금의 더민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다. “기성 정당의 안팎에서 새판을 짜겠다”며 광주 서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해 당선됐다. 그 뒤 기득권 양당 구도의 극복을 창당 명분으로 내세운 국민의당에 입당했다. 이제 와서 ‘새누리당의 어부지리와 압승 저지’를 주장하며, 뛰쳐나왔던 더민주당과 연대를 하자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유리할 때는 탈당하고 불리할 때는 무조건 뭉쳐야 산다고 외친다면 제3당이란 영원히 실현 불가능하다. 천 대표가 만일 또다시 연대를 주장할 거면 차라리 당을 떠나는 게 낫다.
[동아일보사설-160316수] 조종사의 안전책임 가볍게 여기는 대한항공 회장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13일 대한항공 김모 부기장의 페이스북 글에 ‘개가 웃어요’ 운운하는 댓글을 달아 구설에 올랐다. 김 부기장은 최근 비행 전 브리핑을 고의로 오래 끌고 비행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박모 기장이 파면되자 페이스북에 조종사가 비행 전에 해야 하는 일을 상세히 적었다. ‘한 달에 100시간도 일하지 않으면서 억대 연봉을 받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말도 있지만 조종사들 하는 일이 많다는 내용이다. 이에 조 회장이 ‘조종사가 GO NO GO(갈지, 말지)만 결정하면 되는데 힘들다고요? 자동차 운전보다 더 쉬운 ‘AUTO PILOT’(자동항법장치)로 가는데. 비상시에만 조종사가 필요하죠. 과시가 심하네요. 개가 웃어요’라는 반박 글을 붙인 것이다.
현재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인 1, 2노조는 임금 인상을 내걸고 준법투쟁을 벌이고 있다. 1인당 평균 1억4000만 원의 연봉을 받는 조종사들이 규정에 어긋난다며 비행을 거부하고 페이스북에 업무가 과중하다는 글을 올린다. 조 회장이 얼마나 화가 났으면 댓글을 수정하면서 ‘개가 웃어요’ 구절을 넣었을까 싶다. 그렇더라도 그의 댓글은 재계 9위 그룹 회장으로서 품위를 잃었다. 이 댓글에서 재작년 12월 ‘땅콩회항’으로 불리는 딸 조현아 전 부사장의 ‘갑질’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많게는 500명이 넘는 승객이 탑승하는 여객기는 자동항법장치로 날지만 이를 작동하고 점검하는 일은 조종사 책임이다. 자동항법장치는 조종사를 돕는 보조 장치에 불과하다. 조종사 일이 뭐가 힘드냐 식의 글은 항공사 최고경영자로서 비행 안전을 소홀히 여긴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
‘귀족 노조’로 불리는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경영진의 임금 상승률이 37%라며 그만큼 연봉을 올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회사 일반 직원 노조가 “절박한 생존권 요구가 아니다”는 성명을 낼 만큼 공감을 얻지 못하는 투쟁이다. 조 회장의 처신도 문제지만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역시 국내 다른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도 헤아리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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