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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3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여름 오는데 모기향·제습제 무해한지 밝혀야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살균, 살충, 항균 관련 제품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세균이나 벌레를 퇴치하기 위한 제품들이 오히려 사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가습기 살균제 생산 업체인 옥시 제품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제습제나 탈취제, 섬유유연제 등 화학약품이 섞인 생활용품 자체의 매출도 급감하는 추세다. 자칫 살충·살균제에 대한 필요 이상의 거부감이 생길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해당 제품에 대한 정부 차원의 독성 검사와 사용 가이드라인 제정이 시급해 보이는 이유다.

인천시는 그제 시 청사와 모든 산하 공공기관에서 옥시 제품 사용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앞서 경기도와 서울시도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이번 사태의 중심에 있는 옥시의 그간 행태를 보면 이런 조치는 당연하다. 다만 일상에서 쓰이는 화학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지나칠 경우 벌레나 세균을 제어하지 못해 전염병 창궐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당장 날씨가 더워지면서 모기향이나 제습제 등 살충·살균제 사용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 소비자들은 이런 제품들에 어떤 화학물질이 들어가는지, 정말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줄 만큼 독성이 강한지 등에 대한 정보도 없이 막연한 불안감으로 사용을 꺼린다. 제습제는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이 52%나 줄었다고 한다. 방향제와 표백제도 30% 이상 덜 팔렸다.

이런 점 때문에 인천시 보건환경연구원은 옥시 제품 외에도 방역용 살충제, 모기향 등을 수거해 안전검사에 나선다고 한다. 경기도에서도 비슷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일반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지자체들의 이런 움직임은 매우 바람직하다.

반면에 정부 차원의 대책은 너무 미흡하다. 국민이 광범위하게 쓰는 살균·살충제에 대해 어떻게, 언제까지 조사를 하겠다는 계획조차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고위 책임자가 ‘장삿속만 챙기는 상혼 때문’이라고 언급하는 등 기업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는 듯한 인상마저 풍긴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그제 국회에 출석해 ‘가습기 살균제 환자를 만나 봤느냐’는 질의에 ‘내가 왜 환자를 만나야 하느냐’란 어처구니없는 답변으로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국민의 안전을 챙기고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책무다.


2. 적군 아닌 비리에 무너지는 안보 현장

군(軍)이 변화하는 안보 환경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신무기 체제를 갖추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신무기는 재래식 무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비용이다. 이렇듯 천문학적인 혈세의 투입을 국민이 흔쾌히 받아들인다면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군이 지금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은 신뢰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육·해·공군을 막론하고 도대체 비리가 개입되지 않은 획득 사업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말해 보라. 오늘도 야전에서 흙투성이가 되도록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진짜 군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군인이 명예를 먹고산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은 이제 거의 없다. 비리로 얼룩진 무기를 들고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사병들에게 적과 싸워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강요하는 것은 위선이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은 방산비리의 끝을 여전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그제 ‘무기·비무기체계 방산비리 기동점검’을 벌여 8건의 문제를 적발하고 2명의 징계를 요구했다고 한다. 아군과 적군으로 나눠 실전처럼 훈련하는 152억원 규모의 중대급 교전훈련장비(MILES) 시스템을 육군본부가 납품받았지만, 핵심 성능인 공포탄 감지율은 함량 미달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육군본부는 평가방식을 바꿔 ‘합격’으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전차가 특정 지점에 도착하면 자동으로 표적이 올라오는 전차표적기 자동운용 시스템도 성공률이 기준인 99%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72%에 불과한데도 합격 판정을 내렸다. 담당 사업팀장은 개발업체로부터 법인카드를 받아 사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런 정신 상태를 가진 자들에게 나라를 맡기고 있다는 현실이 한심스럽다. 엉터리 장비를 들고 나가 싸워야 하는 사병들이 안쓰럽기만 하다. 이런 짓이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賣國)이라는 것을 모르는가.

그런데도 합참은 K2 흑표전차 100대를 추가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비리를 공개한 같은 날이다. 북한군이 보유한 전차는 4500대 남짓으로 우리의 2배 가깝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그럼에도 국민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80억원짜리 흑표전차 100대라면 8000억원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으로 방산비리가 되풀이될 것이 뻔한데 제대로 된 성능의 전차가 생산되겠느냐는 의구심이 가득하다. 이렇듯 국민은 국방부나 합참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자업자득이다. 이제라도 군은 신뢰받지 못하는 전력증강 계획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방산비리부터 척결하라.

3. 총선 참패한 與, 쇄신 의지 있는지 의심스럽다

4·13 총선 참패 이후 한 달 만에 모습을 드러낸 새누리당의 관리형 비상대책위원회를 둘러싸고 당 안팎에서 논란이 거세다. 정진석 신임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을 겸임하고 당 쇄신 작업은 혁신위원회를 중심으로 추진하는 ‘투 트랙 방안’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 원내대표는 이를 의식한 듯 어제 혁신 의지와 역량을 갖춘 인물을 영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강력한 혁신 드라이브를 예고하면서 “마누라를 빼고 다 바꾸게 될지,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당 내부에서조차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다. 충격적인 총선 참패에 대해 변화의 고통을 보이지도 않는 모습으로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어렵다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 당장 다음주에 열리는 전국위원회에서 상당한 저항이 예상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친박계 지지로 당선된 정 원내대표가 이끄는 비대위는 그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7월께 열리는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임시기구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도 크다. 총선 직후 친박계가 추진하려다 역풍으로 무산된 원유철 원내대표 비대위와 무엇이 다른지 국민은 궁금해하고 있다. 총선 참패 후 한 달 만에 내놓은 집권당의 수습책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민심과 동떨어져 있다는 인상이다. 당내에서조차 총선 책임론을 피하고 7월께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장악하기 위한 친박계의 의지가 현실화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총선 참패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친박계가 다시 당의 전면에 등장하는 모습으로는 집권 여당의 위상을 되찾기 어렵다. 여당의 달라진 모습을 기대하는 국민과 지지자들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새누리당의 원내 지도부 역시 친박 인사들이 포진함으로써 ‘도로 친박당’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김도읍 신임 원내수석부대표뿐 아니라 새로 선임된 원내부대표단 13명 중 친박·범친박계가 11명이나 된다.

당 쇄신 방안을 논의할 혁신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한다지만, 의미 있는 개혁이 이뤄질 수 있을지 회의적 시각이 많다. 특별기구로 꾸려질 혁신위가 형식적인 자문기구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2014년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보수혁신위원장을 맡아 각종 혁신안을 마련했으나 대부분 실천도 하지 못하고 유야무야로 끝났다. 2011년 4·27 재보선 패배 후 혁신을 위해 구성됐던 ‘정의화 비대위’ 역시 계파 간 충돌로 이와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총선에서 표출된 민심은 집권 여당의 구조와 체질을 혁신하라는 메시지였다. 아직 국민은 총선에서 굴욕적인 참패를 겪은 새누리당의 대오각성과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한 달간 책임 있는 공당의 모습 대신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지긋지긋한 계파 간 이전투구 양상은 더욱 심화된 느낌이다. 국민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집권 여당의 위상을 되찾으려면 무엇보다 대대적인 쇄신을 통해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민심과 동떨어진 권력의 오만함이 재연되면 새누리당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

4. 美 오바마 움직인 일본외교… 한국외교는 속수무책인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방문은 집요하게 미국을 설득한 일본 외교의 승리이자 한국 외교의 한계를 보여준다. 외교부는 오바마 대통령이 평화공원의 원폭 사망자 위령비에서 불과 200m 떨어진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도 방문하도록 요청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의 관심사가 협의를 통해 미 측에 전달돼 있다”며 “구체적으로 언급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어제 밝혔다. 그러면서도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이해한다”며 이와 관련해 “한미 양국이 긴밀한 소통을 유지해 왔다”니 무슨 ‘소통’을 어떻게 해왔다는 건지 납득하기 어렵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일은 26, 27일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이 주목적이다. 이 회의에선 세계 경제 위기와 테러 대응 외에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가 중요 의제로 다뤄진다. G7 정상들이 북한 김정은의 핵보유국 주장에 엄중히 경고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작 북핵에 직접 노출돼 있는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는다. 2008년 일본서 열린 G8 회의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초청으로 참석해 한미, 한-러 정상회담까지 가진 것과 비교된다.

일본 언론은 당초 일본이 박 대통령을 G7 정상회의에 초청하려 했으나 한국 측 일정이 맞지 않아 무산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청와대와 외교부는 일본이 공식적으로 초청을 타진하거나 초청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설명이고 실제로는 박 대통령의 첫 일본 방문이 남의 잔치에 들러리 서는 형식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작년 12월 한일 위안부 협상이 타결됐지만 아직 진전이 없어 박 대통령이 방일할 만큼 양국 관계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G7 회의 하루 전인 25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박 대통령은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와 프랑스를 국빈 방문한다. 대통령이 내 놓을 ‘코리아 에이드’라는 아프리카 정책 비전이 이동검진 차량과 푸드트럭, 문화영상트럭으로 구성된 봉사단이고 보면 과연 G7 회의 참석을 못할 만큼 일정 조정이 어려웠는지 의문이다.

결국 박 대통령은 G7 정상들과 북핵에 대해 한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도 얻지 못했고, 오바마 대통령의 방일로 한미 관계가 미일 관계에 밀리는 것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박 대통령의 방일이 어려웠다면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에 앞서 한국을 방문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손이라도 잡아주도록 총력외교를 펼쳤어야 했다. 여러모로 대통령 눈치만 보는 듯한 우리 외교 당국의 안이한 자세가 답답하다.

5. 의원회관 2→3층을 ‘전용 엘리베이터’로 이동한 초선들

20대 국회 초선 당선자들이 그제 연찬회가 열린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의원회관까지 300m, 걸으면 5분에 불과한 거리를 대형 버스 6대에 나눠 타고 이동했다. 이들이 ‘의원 특권의 상징’이라는 의원 전용 출입문을 통해 의원회관에 들어가서는 2층 로비에서 3층 오찬장까지 한 층을 올라가는 데 국회사무처 여직원들이 잡아 놓은 엘리베이터를 타느라 민원인들은 불편을 겪어야 했다. 아직 금배지도 안 단 초선들이 별다른 이의 제기도 않고 이런 과잉 의전에 편승한 것은 실망스럽다. 첫 의정 오리엔테이션인데도 20여 명은 지각했고 20여 명은 불참까지 했다. 

이번 국회에서 초선 당선자는 132명(300명 중 44%)으로 탄핵 역풍이 불었던 17대 국회 때(187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초선들이 당적을 불문하고 똘똘 뭉쳐 과거의 잘못된 국회 관행과 의원들의 과도한 특권, 국민이 눈살을 찌푸리는 갑(甲)질을 타파하려 든다면 못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번 당선자들한테 그런 패기는 없는 모양이다. ‘영감님’ 대접을 받기 시작한 이들이 “끝까지! 초심으로!” 건배사를 외쳤다니 끝까지 이럴까봐 겁이 더럭 난다.

국회의원 세비(歲費) 1억3796만1920원에다 의정활동 경비와 보좌진 7명에게 지급되는 인건비 등을 합치면 의원 한 사람에게 국민이 바치는 혈세가 연간 6억7600여만 원이다. 의원들이 누리는 특권과 특혜가 무려 200가지나 된다고 한다. 지금까지 여야는 큰 선거를 앞두거나 국민의 눈총을 받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앞다퉈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를 약속했다. 그러나 실천에 옮긴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올해 총선에서도 여야 3당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의 실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및 면책특권 개선, 정당 고액 특별당비 명세 인터넷 공개, 정치인 낙하산 임명 금지, 국회의원 소환제 도입 등을 공약했다. 당 차원이나 의원 개개인별로 세비 삭감과 일정 기간 세비 반납을 약속한 경우도 있다. 초선 당선자들이 선배들의 구습에 물들기 전에 특권 내려놓기 실천에 나서기를 기대해선 안 되는 것인가.

[이데일리]

6. 제2, 제3의 가습기 사태 피하려면

전국을 강타한 ‘가습기 살균제’ 파문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또 다른 가습기 살균제인 세퓨 제조사 버터플라이이펙트도 추가로 도마에 올랐다. 가습기 살균제는 물론 유아용 살균 분무액 등 영유아 제품에 유독물질을 사용했다는 정황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살균제 사태의 단초를 제공한 옥시레킷벤키저의 전(前) 대표 등 관련자를 조사하고 있는 가운데 사태가 계속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옥시와 세퓨가 사용한 원료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은 대표적인 독성물질로 꼽힌다. 특히 버터플라이이펙트 전(前)대표는 살균제 제조에 뛰어들면서 인터넷 관련 사이트를 참조해 옥시보다 4배나 강한 독성물질을 사용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다. 이들 업체의 비윤리적 경영 행태로 인해 피해자가 200명 이상이나 나온 것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지만 정부 대응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주무부처인 환경부의 윤성규 장관은 국회에서 가습기 사건을 ‘장삿속 상혼이 빚은 대규모 인명 살상행위’라고 지적했다.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지만 정부의 감독 잘못을 일부 시인한 대목이라 여겨진다. 그러면서도 이번 사태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공식사과를 하지 않았다. 초동대처 부실에 대한 반성은 고사하고 사건 초기 담당부처가 산업부였다며 소관부처 타령만 했다. 살균제 파문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정부 관계자가 보여줘야 할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제2의 가습기 살균제 파문을 막기 위해서는 국내에 유통되는 화학물질에 대한 전반적인 안전점검에 즉각 나서야 한다. 현재 국내에 유통되는 4만여개 화학물질 가운데 환경부에 등록된 것은 510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PGH처럼 인체에 치명적 피해를 줄 수 있는 화학물질들이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아울러 소비자집단소송법과 징벌적손해배상제와 같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반사회적 기업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반기업 정서와는 무관하다. 시장이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중심으로 바뀐 현실에서 소비자 건강을 보장하지 못하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

7. “실업이 테러보다 더 위험하다”는데

프랑스가 노동개혁을 둘러싸고 한바탕 홍역을 치르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직접적인 교훈이다. 사회당 정부가 노동법 개정을 강행하면서 노동계가 총파업으로 맞섰고, 야당은 내각 불신임을 벼르는 상황이다. 긴급상황에는 정부가 각의 의결만으로도 의회 통과와 똑같은 효력을 발휘하는 헌법 조항을 발동한 데 따른 움직임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이런 초강수를 둔 것은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도 표밭인 노동계 눈치를 보느라 반대하는 세력이 만만치 않아 노동개혁안의 의회 처리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프랑스 실업률은 작년 말 10.6%로 독일과 영국의 2배를 웃돌고 청년은 4명에 1명꼴로 실업자다. 올랑드 대통령은 실업률을 떨어뜨리지 못하면 내년 4월 대선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했을 만큼 노동개혁에 모든 것을 걸었다. 사회당이 2000년 도입한 ‘주 35시간 근로제’의 사실상 폐기와 해고조건 완화 등 친(親)기업 조치들을 과감히 밀어붙이는 것도 노동시장 수술 없이는 실업률 인하나 성장동력 확충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실업, 특히 청년실업은 우리나라도 여간 심각하지 않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실업률은 지난 2월 12.5%, 3월 11.8%에 이어 지난달에도 10.9%로 석 달 내리 전년 대비 월간 최고기록을 연달아 갈아치웠다. 제조업 부진이 주원인으로 현재 추진 중인 조선·해운 구조조정이 본궤도에 오르면 더욱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업 해소를 위해선 무엇보다 국회의 입법 노력이 시급하다. 3당 체제를 선택한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받들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규제프리존특별법, 노동4법 등의 ‘일자리 법안’은 19대 국회 폐회 전에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부도 입법 타령만 해선 안 된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수출진흥회의처럼 박근혜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을 위한 촉진대회를 직접 챙기며 각 부처와 업계를 독려하는 것도 일책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테러보다 실업이 더 중대한 도전”이라고 했다. 우리도 사안의 심각성을 절감하고 해결책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 업계가 서로 미닥질하며 때를 놓쳤다간 우리의 미래인 청년들에게 좌절만 안겨 줄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매일경제]

8. 野, 성과연봉제 반대만 말고 협치의 모습 보이길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을 놓고 정부와 여당, 야권과 노동계가 대결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어 걱정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어제 정부세종청사에서 한 간담회에서 "호봉제가 청년 직접 채용을 기피하게 하고 비정규직을 선호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며 성과연봉제 도입을 거듭 촉구했다.

지난 10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120개 공공기관 모두 성과연봉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문했고, 같은 날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성과연봉제 도입이 지연되는 금융공기업에 대해서는 임금과 예산, 인력 충원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양대 노총과 노조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성과연봉제가 노사 합의 대상인데도 정부가 직원들에게 개별적으로 동의를 받는 등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노동계의 반대는 예상됐던 일이다.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야당들이 노조에 동조하며 갈등이 증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1일 금융노조와의 간담회에서 "진상조사단을 꾸려 현장의 불법성을 조사해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이 성과연봉제 도입 자체를 반대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서는 곤란하다. 성과연봉제는 당리당략 차원에서 볼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노동시장 구조로는 청년 취업 절벽과 중장년 고용 단축 등 현안을 해결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임금이 상승해 장기근속자와 신입사원 간 연봉 차이가 2~3배에 달하는 호봉제는 기업들이 청년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을 꺼리게 하는 동시에 고임금 중장년들의 조기 퇴직을 강요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 같은 노동시장 구조를 바꾸려면 성과제로 임금체계를 바꿔야 하는데 그동안 '철밥통' 소리를 들었던 공공기관부터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생각이다. 노조들은 성과연봉제가 임금을 낮추고 해고를 쉽게 하려는 꼼수라고 말하지만 야당들까지 이런 주장에 동조해서는 안 된다.

특히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노조를 설득해 성과연봉제가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제대로 정착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그것이 왜곡된 노동시장 구조를 개선하고 다수당으로서 책임을 지는 자세이기도 하다.

9. 사라진 軍침대 예산 2조원 감사원이 찾아내라

국방부의 '병영생활관 현대화 작업' 예산이 2조6000억원 구멍 난 데 대해 국방연구원이 심층 분석에 나섰지만 뚜렷한 진상 규명 결과를 내놓지 못해 예산 낭비 의혹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연구용역을 맡긴 국방연구원으로부터 중간보고를 받았으나 내용 미흡을 이유로 추가 조사를 지시했다고 한다. 지역별로 사업 규모가 어떻게 변동돼 얼마의 예산이 날아갔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가 빠졌다는 것이 이유다.

이 사업은 침상형 구조의 병영생활관을 침대형으로 바꾸는 것으로 2003년부터 2012년까지 혈세 6조8000억원이 투입됐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사업이 거의 마무리될 시점인 지난해 육군이 예산 2조6000억원을 추가 요청하면서부터다. 육군에 배정된 예산은 5조1000억원이었는데 이 금액의 절반도 넘는 액수를 추가로 달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국방부는 "기본계획 변경으로 해체하기로 했던 대대가 유지되거나 현대화 대상이 100명 이하 부대까지로 확대되면서 예산이 증액됐다"고 해명했다. 2012년 기준 현대화 작업을 완료할 예정이었던 666개 대대가 851개로 증가하면서 예산이 더 들게 됐다는 것이다. 2조6000억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올해 국방 예산 39조원의 5%에 해당하는 규모로, 국방 연구개발(R&D) 전체 예산과 맞먹는 액수다. 국방부는 예산 방만 운용이 아니라 잘못된 수요예측 탓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그것도 정책 실패인 만큼 무능하다는 비판에서 비켜갈 수 없다. 

기재부는 사라진 예산에 대한 원인 규명과 국방부의 소명 없이는 내년 예산에 편성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재부가 '보완 요구'를 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국방부가 예산을 집행하는 국방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맡긴 것부터가 문제다. 군부대라는 특수성 때문에 민간이 조사하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산하기관이 국방부의 예산 낭비 의혹 규명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결국 시간만 낭비한 꼴이 됐다. 국방부는 이 사안에 대해 2008년 자체 감사에서 '문제 없음' 결론을 낸 만큼 현재 진행 중인 2차 내부 감사도 신뢰하기 힘들다. 감사원이 하루빨리 감사에 착수해 사라진 군 침대 예산의 행방을 밝혀내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다.

10. 수명 연장 원전 확실한 안전 확보 후이 재가동해야

설계수명을 연장해 재가동에 들어간 월성원전 1호기가 고장으로 발전 정지 사태를 맞아 불안감을 키운다. 고장은 지난 11일 밤 10시께 압력조절밸브에서 발생한 것인데 원자로 보호 신호가 자동으로 작동해 발전도 자동으로 정지됐다고 한다.

무엇보다 지난 2월 말부터 들어간 100일간의 종합 예방정비를 마치고 재가동에 들어간 지 한 달도 안 돼 멈췄다는 점에서 안전성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예방정비 기간에 원자력안전법에 따른 법정검사, 원자로 건물 종합누설률 시험, 저압터빈·발전기 분해점검 등을 했다는데 부실 점검이었거나 노후한 원전 자체에 문제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초 정해진 기간의 설계수명을 다한 노후 원전에 대한 계속 운전은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팽팽한 논쟁을 벌이는 사안이다. 세계 2위 원전 강국, 프랑스는 올 초 원전 수명을 기존 40년에서 50년으로 10년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천명하기도 했다. 인도에서는 47년간 운영 중인 원전도 있다. 우리나라에 수명을 다한 원전은 고리원전 1호기와 월성원전 1호기 두 기다.

고리원전 1호기는 10년 수명을 연장했고, 2017년 6월 연장 기한도 마감돼 폐쇄될 예정이다. 월성 1호기는 2012년 11월 30년 설계수명을 다해 멈췄다가 10년 계속운전 승인을 얻어 지난해 6월 발전을 재개했지만 이번에 가동 중단 사태를 맞은 것이다. 환경단체 등은 원자력안전위의 수명 연장 결정을 위한 안전성 평가가 부실했다는 문제를 계속 제기해왔는데 발전을 재개한 지 1년여 만에 멈춰섰으니 총체적 점검에 고삐를 조여야 한다.

세계 각국은 신재생에너지의 친환경성에도 불구하고 낮은 경제성으로 원전에 대한 의존도를 당장 줄이지 못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안전에 대한 규제를 한층 강화하는 추세다. 사고 시 다른 부문과 비교할 수 없는 원전의 파괴력을 다시 확인했기 때문이다.

우선 월성 1호기에 대해서는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빈틈없는 안전장치를 마련한 뒤 재가동에 들어가야 한다. 국민에게 일말의 불안감이라도 남겨서는 안 될 일이다. 아울러 설계수명을 다한 원전이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만큼 수명 연장에 대한 확실한 원칙을 세워야 할 것이다.

주요 신문칼럼


1. [머니투데이][신혜선의 쿨투라4.0]'시빌 워'도 천만 영화에 등극할까

대한민국에서 '천만 영화'는 뉴스거리가 아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등장한다. 작년에만 3편의 영화가 천만 영화에 등극했다. '베테랑'(1300만여명), '암살'(1200만여명) 그리고 '어벤져스'(1000만여명).

천만 영화 소식이 들리면 대표적인 반응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우선 "그렇다고 그 정도나(많이 볼) 된다고 생각해?"이다. 본인이 보고도 '천만 명이나 볼 정도인가?' 하는 의심병이 생각보다 넓게 퍼져있다.

두 번째는 "온통 그 영화뿐이야"이다. '몰아줬다'는 얘기다. 천만 영화는 '스크린 독점'과 함께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스크린 수는 절대적으로 많이, 시간은 조조부터 심야까지 폭넓게'.

체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 초에 주말 상영 시간을 살폈다. 집에서 가까운 롯데시네마 에비뉴엘에서 미처 못 본 과거의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한다고 해 쾌재를 불렀는데, 입맛만 다셨다. 상영은 수요일(11일) 조조와 오후 상영, 단 두 번. 휴가를 내지 않고는 불가하다. 토·일 주말에는 시빌 워와 '곡성' 딱 두 편만 종일 상영한다. 시빌 워를 본 나는 곡성 외에는 선택권이 없다.

멀티플렉스 관을 살폈다. 다양성 영화를 함께 상영하는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와 'CGV 강변' 두 곳의 이번 주 상영 표를 비교했다. 스크린 수가 많으니 '구색'을 갖췄다. 하루에 많게는 4번 정도까지 다양성 영화도 상영한다. 하지만 여전히 주말 시빌 워 상영 스크린 수는 압도적이다.

'역시 스크린 독점이 최고의 힘?'이라고 생각할 즈음, '박스오피스 경제학'(김윤지 지음, 어크로스)이라는 신간에서 재미있는 데이터를 발견했다.

저자는 우리 산업에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지 않는 경우는 드문데 특히 영화산업이 그렇다고 봤다. 한 명이 봐도 천명이 봐도 제작비는 같다. 즉 많이 볼수록 제작비를 빨리 회수하고, 이익도 극대화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일반론인데 '스크린 수가 무조건 많다고 대박이 난다는 게 아니다'라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기대 이하면 배급사는 재빨리 상영관 수를 줄인다. 특히 저자는 일정 수 이상 스크린이 늘어나면 오히려 효과가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스페인의 연구 결과다. 여기서 나온 스크린 수 임계치는 1966개.

저자가 2015년 흥행 50위 한국 영화를 파악하니 평균 스크린 수는 694개, 천만 영화에 오르며 최대 스크린 수를 기록한 영화 암살은 1519개로 집계됐다.

그런데 암살보다 100만 관객을 더 모은 베테랑은 스크린 수가 400개나 적었다. 단기간 더 많이 봤다는 거다. 반대로 600만 여명 정도가 봐 아쉽게 뒷심을 발휘하지 못한 '사도'나 '내부자들', '연평해전'의 스크린 수는 1000~1200개로 천만 영화에 비해 만만치 않았다. (249쪽 '될 영화 몰아주기'에는 이유가 있다 : 파레토 법칙') 

경제학적으로 문화산업을 분석한 저자는 초기 대박이 예상되는 영화에 스크린 수를 몰아주는 건 규모의 경제학을 이뤄야 하는 자본의 속성이 작용하니 불가피한 시도라고 봤다. 하지만 모두 대박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 800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한 개봉영화는 11편이었는데 이 중 3편만이 천만 영화에 등극했고, 3편은 300만 명도 채우지 못했다.

저자는 이후 충분조건이 뒷받침하지 않아서라고 말한다. 저자는 '유머' 코드 외에도 '개봉일' 이나 경쟁작 변수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2년 전 개봉한 '역린'이 기대 이하의 성적표(380만여명)를 받은 결정적 이유를 개봉 일이 '4월 16일'이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사실 천만 영화는 여러 요건을 갖춰야 한다. 과거부터 온 공식 1번은 1인이 2회 이상, 즉 가족 동반처럼 저변을 확대하며 몇 번 본 관객이 나오는 영화여야 한다. 그리고 사회 흐름도 타야 한다. 언론의 도움도 필요하다. 700만~800만 명 정도여도 성공인데 각종 미디어에서 힘을 실어줘야 천만 고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유머코드나 사회적 이슈도 꽤 중요한 요소로 얘기된다.

'명량'이나 '국제시장'은 앞서 말한 기존 흥행 공식의 표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지도력에 대한 갈망, 정권 색깔과 세대에 대한 향수 등의 흐름이 뒷받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베테랑은 '재벌'에 대한 반감심리, '제작비를 한국이 다 해결했다'는 농담이 나왔던 인터스텔라는 한국의 교육열로 설명한다. 동료나 친구와 본 직장인 부모가 다시 아이를 앞세워 영화를 두 번 봤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그 해는 아이슈타인의 상대성이론 100주년이었고, 인공지능(AI)과 같은 과학 이슈가 중요한 흐름으로 떠올랐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본다.

책에서 분석한 2015년 개봉한 한국 상업 영화 31편 목록을 보니 그중 11편을 봤다. 그중 보고 실망한 영화는 3편. 11편 중 나를 포함한 300만 명 이상이 봐서 그나마 제작비를 건진(?) 것으로 보이는 영화는 6편밖에 안 됐다. 그래도 보고 실망한 영화에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나머지 20편 목록 중 못 봐서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는 없다.

책은 영화진흥위원회 자료를 인용, 파레토 법칙을 보여준다. "2015년 한국 상업영화는 155편이고 그중 15%인 23편에 총관객의 80%인 8188만 명의 관객이 집계됐다. 2014년 개봉해 2015년 천만 영화로 분류된 국제시장을 넣으면 15%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더 커진다." 

같은 시기 다양성 영화 관객은 약 200만 정도로 집계됐다. 다양성 영화를 개봉영화만큼 찾아보는 나로서는 다양성 영화가 더 많아지면 좋겠고, 스크린 수도 지금보다 늘어나면 좋겠다. 동시에 상업 영화라 해도 흥행 공식을 쫓기보다 색깔 있는 영화를 만들려는 시나리오 작가 및 제작자, 즉 좋은 작품이 더 늘어나면 좋겠다.

작년 내가 선택한 영화에 대한 편향과 20%도 아닌 15%의 영화가 흥행의 80%를 차지하면서 대한민국 영화산업을 받치는 현실을 다시 해석하니 '숫자는 많아도 재미있는, 잘 만들어진 한국 영화는 별로 없다'로 정리되기 때문이다.

'시빌 워가 천만 영화에 등극할 것인가'로 시작한 잡생각의 끝도 쏠리는 대중보다, 스크린 독점보다, 한국 영화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옮겨가는 이유다.

2. [동아일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서울에서 살아남기 

서울에서 살아남기 ― 최금진(1970∼ )
 

가게에서 물건을 사거나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통성명을 할 때
돌아와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일단 무조건 거만해야 한다
엔젤이라고 발음하는 너의 콩글리시에는 천사가 살지 않는다
(…)
젊어 고생은 사서 하는 것인가, 그렇다
고생은 너의 출세를 위해 가치 있는 것인가, 아니다
항복, 할복, 항복, 할복, 어떤 것이 행복을 위해 더 명예롭고 윤리적인가
학교를 그만둔다 해도 나무랄 사람은 시골에 계신 부모님뿐이고
잉여인간, 너 같은 애들은 값싼 정부미처럼 창고에 넘친다
(…)
항복, 할복, 항복, 할복, 모든 선택은 성적순이며
지하철역에서 무장공비처럼 누워 자는 사내들도 한때는
전투적으로 국가 교육과정을 이수한 자들
황달이 든 너의 얼굴과
고향에 지천으로 피던 민들레꽃이 심리적으로 일치할 때
결핍을 상징하는 그 노란색이 아지랑이처럼 자꾸 어른거릴 때
게임 오버, 넌 끝난 거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부모를 떠나 대도시로 유학 온다. 젊음과 희망을 무기 삼아 뿌리 내리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참 힘들다. 노력이 부족한 걸까. 그렇다면 더 힘을 내봐야지 생각하지만 다리가 후들거린다. 언제까지 전력질주해야 할지 끝이 보이질 않는다. 지쳐 간다. 이 시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여기 등장하는 젊은이는 대학 새내기이다. 대학에 낭만이 사라진 지 오래. 그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고 혼자 자취방에 들어가 잠을 잔다. 공부하고 돈 벌고 희망하고 절망하는 등 그의 24시간은 불이 꺼지지 않는 편의점만큼이나 바쁘다. 그런데 열심히 해도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너무 힘들어 학교를 그만둘까 생각해 보지만 딱히 대안이 없다. 누렇게 뜬 거울 속 얼굴을 보니 고향 마을의 민들레꽃이 그립다. 어린 시절 고향의 삶은 더 행복했다. 다시 돌아가고 싶다 생각하니 사람들은 말한다. 패배자, 넌 이제 끝난 거야, 라고.

‘게임 오버’ 되었으니 이제 삶은 끝장난 것일까. 우리는 민들레한테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런데 절망도 슬픔도 이 시의 목적은 아니다. 이 시는 슬픈 시가 아니라 화가 난 시다. 그리고 화를 현명하게 내려면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다. 시에 의하면 눈을 크게 뜨고 직시해야 한다. 나, 너, 우리, 사회, 시대에 대해 눈을 감지 말자, 마음아.

3. [한국일보][조은의 길 위의 이야기]동업자

시를 쓰며 지방에서 사는 친구가 하룻밤 자고 갔다. 좁디좁은 우리 집에서 누군가가 자고 간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외국에서 사는 친구들이 오면 하루 이틀 자고 간 적은 있지만, 전국이 일일 생활권 안에 들게 된 뒤부터는 없던 일이다. 서로 좀 뒤척여도 수면에 방해가 되지 않을 거라 믿어 나란히 누웠지만, 막상 눕고 보니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엄습했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혼자 살았던 나만의 불안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1988년이었다. 잡지에 실린 나의 등단작을 읽고 만나보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의 내 생각은, 그가 나와 다른 유형의 사람일 거라는 확신이었다. 직접 만나본 뒤의 생각도 바뀌지 않았다. 늘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명랑하고, 여성성이 풍부한 친구가 쓰는 시 역시 내가 쓰는 시와 분위기부터 달랐다. 그런데 어떤 운명에 의해 나는 친구의 첫 시집을 편집했고, 인연은 계속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때 세 권의 시집이 같이 출간되었는데, 다른 두 권의 시집 역시 훌륭했다. 운이 좀 따랐다면 한국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도 있었을 그 시인 중 한 시인은 은거하다시피 살고 있고, 나오는 시집마다 여러 상의 최종심에 올랐던 다른 한 시인은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제정신으로는 살기 힘들다는 세상에서 온갖 독소를 더듬는 촉수 같은 역할을 겸하는 시인들이 애처롭다.

4. [한국일보]벨크로

지퍼(zipper)는 1893년 미국의 한 직공이 불편한 군화 끈 대용으로 고안했고, 지퍼백(zipper storage bag)은 1954년 로버트 버고비라는 이가 봉지를 편하게 묶어보자고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에 흔히 ‘찍찍이’라 불리는 벨크로(Velcro)는 ‘자연의 선물’이라고 해도 될 만큼 우연한 계기로 만들어지게 됐다. 

스위스의 전기 기술자 조르주 드 메스트랄(George de Mestral)은 1941년 어느 날 개와 숲길 산책을 다녀온 뒤 바지와 개 몸통에 붙은 가시 달린 씨앗들을 떼어 내느라 애를 먹었는데, 누구나 한 번쯤 혹은 아무나 늘 겪었을 그 일에 그는 호기심이 생겼고, 현미경까지 갖다 놓고 관찰하며 원리를 탐구했다고 한다. 그는 씨앗의 가시 끝이 갈고리처럼 미세하게 휘어져 있어 올가미 형태의 옷감 섬유에 걸려 좀체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그 원리를 적용해 48년 첫 ‘갈고리 올가미 결속재hook & loop fastener’를 만들어냈다. 면 섬유 소재가 나일론으로, 폴리에스터로 개량되면서 결합력도 강해졌다. 그는 55년 기술특허를 받고도 성능 개량 작업을 지속했고, 58년 5월 13일 스위스에서 ‘벨크로’라는 이름으로 상표를 등록했다. 벨크로는 벨벳을 뜻하는 프랑스어 ‘velour’와 고리를 뜻하는 ‘crochet’의 합성어라고 한다. 

60년대 험프리 크립스(Humphrey Cripps)라는 사업가가 그에게 투자를 하면서 그의 회사는 발전의 전기를 맞는다. 벨크로는 지분 변동을 거쳐 2009년 크립스 일가 소유의 개인 회사가 됐고, 그 사이 접착력 등 성능도 지속적으로 개선됐다. 이제 벨크로는 단추나 지퍼 대체용으로 시작해 시계 가방 등 생활 소품, 농업ㆍ군수ㆍ의료 ㆍ우주ㆍ항공산업에 이르기까지 안 쓰이는 데가 없을 정도로 확산됐고, 손바닥 만한 접착포로 100kg가량의 하중을 안정적으로 지탱하는 고밀도 고성능 벨크로도 등장했다. 벨크로는 한 해 평균 5만5,000km 가량이 판매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정품만 그렇다는 얘기다.

회사 이름이자 제품 이름인 벨크로는 갈고리 올가미 결속재 일반의 보통명사처럼 쓰인다. 

5. [서울신문][길섶에서] 봄밤/황수정 논설위원

이맘때 시골집에 가면 잠자는 시간이 아깝다. 아파트촌의 밤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뻣뻣했던 오감이 밤 깊어 제자리를 찾는다. 멀리 무논에서 몰려오는 개구리 떼창. 목이 째져라 합창했다 뚝 그쳤다, 정해진 리듬을 탄다. 가만 듣고 앉았으면 멍석을 깔아도 되겠다 싶게 신통해지는 내 감각. 풀숲에 엎드려 선창(先唱)을 맡은 놈, 무논에 좌정하고 화음의 절정을 뽑는 녀석. 당장 쫓아가 잡아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개구리 떼창 끊어지면 잽싸게 끼어드는 산비둘기. 앞산을 옆방으로 옮겼을까 또렷해지는 울음소리. 감각의 굳은살을 벗기면 절로 되찾아지는 신통력이다. 비비추 덜 자란 잎에 달팽이 기는 소리까지 알아챌 봄밤이다.

귀만 밝아지는 게 아니다. 시골에서는 밤 깊어 더 잘 보인다. 보름달 없고 가로등도 먼데 안마당 접시꽃 꽃대에 투망을 짠 거미줄이 다 보인다. 빛투성이 도시에서라면 내 시력으로 도무지 건질 수 없는 디테일!

침묵 속에 더 많은 소리. 어둠 속에 더 완연한 몸짓. 글 한 줄을 안 읽어도, 멍청히 귀만 열고 누웠어도 시골 봄밤은 선생이다. 봄도 깊고, 밤도 깊고, 오랜만에 마음도 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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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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