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7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지진 대피소동, 비상대책 매뉴얼 있는가
그
제 밤 8시 33분께 울산 동쪽 52㎞ 해상에서 진도 5.0의 지진이 발생했다. 기상관측을 시작한 1978년 이후 역대 5위
규모다. 인근 지역인 부산 해운대에서는 80층짜리 고층 아파트가 흔들렸으며 서울에서도 집안 가재도구가 흔들리는 진동이 감지됐다.
재산이나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이 다행이다. 울산 근처 월성원전과 고리원전 등 국내 모든 원전의 안전에도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진 충격에 놀란 주민들이 대피소동을 벌이는 등 밤새 가슴을 졸여야 했다.
이번 지진은 우리나라도 결코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한반도는 일본 등 지진이 잦은 ‘불의 고리’ 지역에서 비켜나 있어 대형 지진의 위험이
크지 않은 것으로 그동안 알려져 왔다. 하지만 발생 빈도가 갈수록 잦아지는 점은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1980년대엔 연간
16회 정도였던 것이 2010~2014년엔 58회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올해도 벌써 36건이 발생했다. 규모도 커지는 추세다.
‘지진 재앙’의 공포가 커지는 건 당연하다.
그
런데도 대비는 허술하다. 지난해 말 기준 내진설계 대상 시설물 중 42.4%만 내진 성능을 갖췄을 뿐이다. 실제로 지진이 일어나면
절반 이상이 순식간에 허물어질 거라는 얘기다. 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안전대책을 세운다고 호들갑을 떨면서도 그때뿐이기 때문이다.
지
진을 예방할 수는 없지만 철저히 준비하면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다. 활성단층 지도 작성, 지진 다발지역의 지각 조사 등 장기
계획을 수립해 중·대형 지진에 대비해야 한다. 내진설계 및 보강 계획의 차질 없는 추진과 경보·비상체계 구축, 주민 대피 계획
등도 소홀히 해선 안 될 것이다. 지자체 주도로 아파트나 마을별로 구체적인 비상대책 매뉴얼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비
단 지진 뿐 아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게릴라성 집중호우와 폭염, 이상 한파, 폭설 등 기상이변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며칠
전에도 ‘물폭탄’이 중부지방을 할퀴고 지나갔다. 과거와는 다른 양상의 자연재해 위험 요인을 미리 걷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연재해는 한 번 덮치면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내기 마련이다. 사후약방문 식의 일과성 대책이 아닌 면밀한 종합 대책을
고민해야 할 때다.
2. ‘초가집 수준’ 자기반성한 삼성그룹
삼
성이 스스로의 위치를 ‘초가집 수준’에 비유했다. 그제 사내 채널에서 방송된 ‘삼성 소프트웨어 경쟁력 백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고층건물을 지어야 하는 입장에서 큰 그림을 그려가는 건축으로서의 개념이 부족함을 반성하자는 취지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세계 경쟁업체들에 비해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이 뒤지고 있는 데 대한 자아비판이기도 하다.
이번 프로그램에 붙여진
‘우리의 민낯’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삼성그룹 내부의 위기감을 엿보기에 충분하다. 이미 지난달 방송된 ‘불편한 진실’에 이어진
후속편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큰 그림을 그릴 줄 모르니 기본 설계가 엉망이고, 설계가 부실하다 보니 심각한 문제에 부딪쳐서도
밑바닥부터 뜯어고치지를 못하고 땜질식 처방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그만큼 난감한 지경에 이렀다는 게 삼성의 자기반성이다.
그
렇다면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경직적인 조직문화가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상급자가 만든 코드에 대해 부하
직원에게 검토를 맡길 경우 설사 오류가 발견되더라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직언할 수 있는 분위기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계질서에 억눌려 서로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고는 창의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최근
조직문화 혁신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에서라 여겨진다. 직원들끼리 직급 대신 각자의 이름으로 호칭을 바꾸도록 했고, 심지어 반바지
차림도 허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인 움직임이 사고방식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공연한 헛수고다. 조직문화를 바꾸려면
최고 경영진부터 먼저 시범을 보여야 한다.
이런 고민이 비단 삼성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을망정 현대차그룹이나 LG, SK,
포스코 등 대부분 대기업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문제점이다. 회사 규모가 커가면서 상하관계가 앞세워지고 서열에 따른 지시관계가
강화되는 것이 보통이다. 개인의 능력보다 입사 서열을 따지는 조직이 순조롭게 발전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앞으로 5년이나 10년
뒤를 내다본다면 조속한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기업들이 초가집 수준에서 벗어나 고층빌딩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서울신문]
3. 원전 밀집한 울산 지진 대응체계 강화해야
그
제 밤 8시 30분쯤 울산에서 동쪽으로 50㎞ 떨어진 해저에서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해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이웃 나라인 일본과 중국, 대만에서는 잊을 만하면 강력한 지진이 발생해 수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에 강진이 일어난 적이 없어서인지 지진은 남의 나랏일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이번 울산 지진은 우리나라가
결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지난 4월 환태평양 불의 고리에 위치한 일본 구마모토현과
오이타현에서 규모 6.3, 규모 7.3의 지진이 잇따라 발생하는 등 올해는 유난히 강진 발생 빈도가 높다. 우리나라도 올 들어서만
크고 작은 지진이 36차례나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울산 지진이 구마모토현 지진으로 발생한, 지각을 변형시키는 힘이 대한해협 활성
단층대에 전달되면서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에서 빈발하는 지진이 우리나라 단층대에 영향을 미쳐 규모 7.0 이상의 강진이
발생할 개연성도 있다고 하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제 지진으로 진앙지와 가까운 울산과 부산에서는 창문이 심하게
흔들렸고 고층 아파트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1978년 전국 단위로 지진을 관측한 이후 다섯 번째로 강한 지진으로
기록됐다. 우리나라는 17세기에 강원도 양양에서 규모 7.0 정도의 지진이 발생했으며 신라시대에도 강진으로 경주에서만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삼국사기 기록이 있다. 지금도 강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과
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지진은 예측하기 어렵고, 천재(天災) 앞에서 인간은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강진으로 인한 대재앙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지진 다발 지역인 울산 인근에는 원자력발전소와 석유화학공장이 밀집해 있고 방사성폐기물 처분 시설도 있다. 이런
시설들은 강진에도 끄떡없을 만큼 내진 설계가 돼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전체 국내 공공시설물의 내진율은 40.9%에 불과하다. 민간
건축물의 내진율은 30.3%에 그친다.
정부는 올 들어 내진설계 기준을 강화했다. 또 공공시설물의 내진율을
2020년까지 49.4%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한다. 하지만 지진 대책은 여전히 미흡하고 진척이 더디다. 내진율을 더 빠른 속도로
올려야 한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일반 국민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훈련도 평소에 해 두어야 한다. 재난 문자 보낸
것만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4. 서비스업 대책 내놔도 실천 안 하면 헛일이다
정
부가 발표한 ‘서비스업발전전략’은 우리 서비스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육성하기 위한 향후 5년간의 로드맵이다. 정부는 세제·금융 등
각종 지원을 통해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의 차별을 해소하고 산업 간 융복합을 활성화한다는 것이 골자다. 유망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려 경쟁력을 높이며 5년간 25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전체
고용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70%에서 2020년 73%로, 부가가치 비중은 60%에서 65%로 확대해 선진국
수준에 근접시킨다는 야심찬 목표다.
서비스산업은 우리 경제를 견인할 수 있는 내수 활력의 핵심이다. 정부가 서비스
경제 발전 전략을 마련한 것은 우리 경제를 이끌어 온 수출과 제조업이 경쟁력 약화로 한계를 드러낸 상황에서 고용 창출과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미다.
이번에 발표된 발전 전략을 들여다보면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현 정부 임기가 1년 8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5년간의 계획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다음 정권에서
정책의 연속성을 갖게 될지도 불투명하다. 이번 발표는 현 정부 들어 일곱 번째 대책이다. 일부는 기존의 정책을 보완한 수준에
그치거나 구체적인 계획 없이 원론적인 방향만 제시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의료부터 소프트웨어, 관광 등 무수히 많은 분야의
정책이 백화점식으로 망라돼 있다.
당장 기존의 의료체계를 허물고 있다는 의료계의 반대는 물론 대기업 위주의 편향된
정책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의약품을 편의점에서 판매하거나 택배를 허용하는 문제도 약사들의 반대가 심하다. 빅데이터를 이용한 서비스
활성화는 개인정보 침해 논란 소지도 있다. 2020년까지 취업자 수를 25만명 더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구체적인 근거가
없어 정치적 구호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현 정부 들어 규제 완화와 고용 확대 등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각종 대책이 이미 무수히
나왔다. 그 대책들이 지금 얼마나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정책은 발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행에 옮겨져야 의미가
있다. 여러 부처에 걸쳐 있는 관련 정책을 강력하게 실행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서비스업 발전
전략의 핵심으로 꼽히는 규제 완화의 경우 각계의 반대로 지금까지 지지부진한 상태다. 정부의 이번 발표가 다소 부실한 측면은
있지만 서비스산업 발전은 결코 지체할 수 없는 국가 현안이다. 입법 지원 없이 정부 혼자 추진하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서비스
경제 발전 전략을 실천하려면 당장 의료법, 은행법, 산악관광진흥법 등을 개정하거나 새로 만들어야 한다. 산업 간, 기업 간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이해관계가 얽힌 기득권 집단을 설득하는 문제도 남아 있다.
정부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비전과 의지를 갖고 야당을 설득해야 하고 야당은 국가 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6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통과에 우선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5. 편법 부추기는 무늬뿐인 맞춤형 보육
논
란 끝에 강행된 맞춤형 보육에 잡음이 끊일 새가 없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소란을 피우며 정책을 바꿨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하소연이 이어진다. 정부가 지난 1일부터 시행한 맞춤형 보육제도는 양육 부담이 큰 맞벌이 가정이 어린이집 종일반을 좀더 원활히
이용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기존의 일률 지원 방식과 달리 전업주부의 아이들은 하루 6시간,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은
12시간을 각각 맡길 수 있도록 차등 지원하는 것이다. 우려 속에 강행된 정책은 그러나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한 채 민폐
제도로 주저앉은 모양새다.
현장에서는 맞춤형 보육제도 시행으로 달라진 것은 전업주부들의 맞춤반 자녀들이 등하원하는
시간이 한 시간 앞당겨진 것뿐이라는 볼멘소리가 높다. 바뀐 정책이 맞춤반 아이들을 오후 3시면 데려가도록 유도한 바람에 아이들은
낮잠을 자거나 간식을 먹기가 애매해졌다. 전업주부들이 ‘긴급 보육 바우처’를 너나없이 쓰고 있는 것은 그런 까닭에서다. 이 제도는
전업주부가 급한 사정이 생겨 아이를 제때 데리러 가지 못할 때를 대비해 한 달에 15시간씩 추가 위탁할 수 있게 하는 돌봄
서비스다. 낮잠을 자거나 오후 간식을 먹는 아이를 중간에 데려오기 난처하니 이 서비스로 위탁 시간을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엄연한 편법을 어린이집이 버젓이 권유하고, 정부 당국도 달리 방책이 없으니 모른 척해야 하는 현실이다. 당장 “바우처 안 쓰면
바보”라는 말이 유행하는 모양이다.
맞춤반 보육료를 줄이는 차등 지원으로 올해만 375억원쯤의 예산을 절감하겠다는
것이 애초 보건복지부의 계산이었다. 그런 것이 시행 하루 전날까지 현장의 반발을 무마하지 못해 결국 말짱 도루묵의 상황을
만들었으니 예산절감 효과가 있을 리 없다. 혹 떼려다 혹만 더 붙였는데도 현장 혼란에 속수무책인 복지부가 딱하다. 종일반 아이들만
별도 위탁하는 어린이집 설치가 대안으로 거론될 판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정책에 옥상옥(屋上屋)의 보육 프로그램이 또 나와서야
되겠는가.
정책 시행 전 복지부가 충분한 의견 수렴을 위해 공청회를 몇 번이나 열었는지 새삼 궁금하다. 차등 지원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늦었지만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정책이 민생을 혼란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 하루빨리 불합리한 부분이 수습될
수 있도록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동아일보]
6. 특임검사는 진경준보다 홍만표 사건에 필요하다
대
검찰청이 진경준 검사장의 ‘주식대박 의혹’ 수사를 특임검사에게 맡기기로 했다. 이번이 4번째 특임검사로 검찰 고위간부가 관련된
의혹을 단호하게 수사하겠다는 뜻이다. 전현직 검찰 간부들이 연루된 각종 비리로 검찰이 고개를 들기 어려운 현실에서 나온
고육책(苦肉策)이다.
특임검사는 2010년 스폰서 검사 논란 이후 도입했다. 현직 검사의 비리를 중립적으로 수사할
필요가 있을 때 검찰총장이 지명한다. 첫 특임검사는 그랜저 승용차 등 금품 4600만 원을 받고 후배 검사에게 사건 청탁을 한
‘그랜저 검사’를 수사해 ‘무혐의’라던 검찰 수사를 뒤엎고 대법원까지 유죄 선고를 받아냈다.
진 검사장은 2005년
넥슨 비상장 주식 1만 주를 사들여 매각한 차익으로 126억 원을 챙겼다.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법무부는 사건 초기에 ‘개인 간
주식 거래일 뿐’이라며 그를 감싸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지금은 사건의 전말이 거의 드러났다. 최초의 매입 대금이 넥슨에서
나온 사실까지 확인됐다. 특혜를 받은 뒤 2011년 개인정보 유출로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넥슨을 위해 진 검사장이 후배 검사에게
청탁을 했는지만 가려내면 된다. 굳이 뒤늦게 특임검사를 임명하는 것은 ‘전시(展示)성 수사’로 보인다.
그보다는
홍만표 변호사의 전관예우 비리야말로 딱 떨어지는 ‘특임검사 사건’이다. 애당초 대검은 이 수사를 특임검사에게 맡길 것을 유력하게
검토하다가 접었다. 어차피 거야(巨野)가 특별검사를 도입할 것으로 지레짐작해 특임검사 수사를 하지 않는 것이라면 무기력하고 한심한
검찰이다.
홍 변호사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전 대표의 해외원정 도박사건에서 두 차례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을
비롯해 1년에 100억 원이 넘는 사건 수임을 한 배경에 검찰 내 현관(現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당장 특임검사에게 이 수사를
맡겨 홍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을 전수(全數)조사해 석연찮게 무혐의 처분한 사건을 가려내 엄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7. 최경환 불출마에도 친박은 패권주의 미련 못 버리나
새
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 좌장 격인 최경환 의원이 어제 ‘8·9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최 의원은 “당의
화합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면서도 “지난 총선에서 저는 최고위원은커녕 공천관리위원회 구성과 공천 절차에 관여도 할 수
없었던 평의원 신분이었다”고 강조함으로써 4·13총선 패배 책임을 부인했다. 친박 대부분이 공유하는 생각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최 의원의 당 대표 불출마 선언으로 친박계 당권 장악에 빨간불이 켜지자 ‘친박계 맏형’ 서청원 의원 추대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일 리 없다.
최 의원이 실제 공천에 얼마나 개입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총선 당시에도 그는 친박 좌장이었다. TK(대
구경북) 지역을 돌아다니며 ‘진박(진실한 친박) 마케팅’을 벌인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똑똑히 기억한다. 오죽하면 일찌감치 당 대표
출마 선언을 한 친박 이주영 의원조차 “공천 과정에서 계파 갈등이 가장 큰 패착 원인이었다”고 친박의 책임을 인정하며 “계파
청산과 당의 화합적 융합을 위한 용광로가 되어줄 당 대표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겠는가.
그런데도 조원진 김태흠 의원 등
친박계 14명이 5일 서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방으로 찾아가 전당대회 출마를 ‘강권’한 것은 당권을 비박(비박근혜)계에 넘겨줄 순
없다는 패권주의적 행태다. 서 의원은 “이 나이에 그걸 뭐하려고 하겠나”고 고사했지만 친박계의 끈질긴 ‘릴레이 설득’에 ‘추대
형식’으로 나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 친박은 주류 홍문종 의원에게 불출마를 요청한 데 이어 이주영 의원이나 출마 선언 예정인
이정현 의원에게도 ‘단일화’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서 의원이든 누구든 당 대표 경선에 친박계 한 사람이
비박계 후보들과 격돌을 한다면 친박 대 비박의 대결은 계속될 것이 뻔하다. 그러지 않아도 새누리당의 내부 총질에 넌더리 난 국민을
또 한 번 열받게 만드는 일이다. 총선 패배 후 ‘보수 혁신’을 위한 반성과 공부는커녕 계파 간 세력싸움과 ‘패거리 정치’를
계속하는 데 전통적 보수계층도 염증을 내고 있다. 친박이든 비박이든 꼬리표 떼고 개인 자격으로 나와 새누리당과 보수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치열하되 공정한 자유투표로 선택받아야 한다는 내부 소리가 왜 안 나오는 건가.
최 의원의 불출마
선언과 서 의원의 출마 고사는 현재 권력에서 미래 권력으로 한 시대가 서서히 바뀌는 변곡점을 맞고 있다는 의미다. ‘꼴박(꼴통
친박)’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강성 친박들은 대선 과정에서도 알량한 당내 다수의 머릿수를 계산하면서 총선 때와 같이 패권주의를
휘두르려 하겠지만 무망한 시도일 뿐이다. 당내 분란만 초래해 여당의 재집권만 어렵게 만들 것이고, 내년 대선에서 야당의 집권을
돕는 결과로 직결돼 친노(친노무현)계처럼 ‘폐족의 낙인’만 찍힐 공산이 크다. 친박은 물론 청와대에서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패권주의에 미련을 버려야 한다.
8. 새만금 스마트팜 반대 ‘정치 농민’에 휘둘려서야
LG그룹이 새만금 산업단지에 농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시킨 대규모 스마트팜(smart farm) 단지를 세운다. ICT 서비스 기업인 LG CNS
주도로 빅데이터를 통해 최적의 생육환경을 찾아내는 스마트팜 연구개발(R&D) 센터부터 재배시설, 가공 및 유통시설까지
3800억 원을 투자하는 수출형 미래 먹거리 산업의 활로를 뚫겠다는 의미 있는 시도다. ‘창조 농업’을 신성장동력으로 만들
시금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대기업의 농업 진출을 막겠다’며 어제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앞에서 LG의 스마트팜 진출 반대를 외치는 시대착오적 모습을 보였다. 농업과 ICT 융합은 세계적 추세다. 네덜란드가 세계 2위 농업 수출국으로 성장한 비결이 바로 스마트팜이다. 전체 인구 중 2.5%에 불과한 농업인구가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책임진다. 일본도 최근 기업의 농지 소유를 자유화하는 파격적인 규제 철폐에 나서는 등 ‘농업 보호주의’에서 벗어나고 있다.
전농이 ‘농민 생존권’을 외치며 반대하는 것은 2000년대 초 칠레와 자유무역협정(FTA)에 결사반대했던 것을 연상케 한다. 당시 농민들은 FTA를 맺으면 포도농가가 다 망한다고 주장했지만 결과는 딴판이었다. LG 측은 이번 사업의 목적이 ICT를 접목해 개발한 설비를 시장에 보급하는 것이라고 했다. 스마트팜 생산 작물은 모두 수출하며 해외투자자도 국내 농작물 판매는 금하는 조건까지 걸고 계약했다.
FTA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등 사사건건 반대를 일삼는 ‘정치 농민단체’에 언제까지 끌려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12년 동부팜한농이 경기 화성에 수출용 토마토를 재배할 유리온실을 지었다가 농민단체의 반대로 사업을 접었던 전례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행정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연소득 5000만 원 이상 13만 농가를 ‘스마트팜 사장님’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다짐한 바 있다. ‘정치 농민단체’의 횡포와 압력에 기업이 굴복하지 않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설득하는 문제해결형
리더십을 보여야 할 것이다.
[매일경제]
9. 전문성 부족 드러낸 공정위 CD금리 담합조사
공정거래위원회가 은행권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 담합 의혹을 4년 동안 조사한 끝에 사실상 무혐의로 결론을 냈다. 국민·신한은행 등 6개 은행의 CD금리 담합 문제를 심의한 결과 "사실관계 확인이 곤란해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며 심의 절차 종료를 결정했다.
은행권에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효력은 무혐의 결정과 동일하다. 공정위의 전문성 부족과 불충분한 근거에 의한 무리한 조사로 그동안 금융시장에서 야기된 혼란을 감안하면 따끔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이 사건은 공정위가 2012년 7월 9개 은행과 10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3개월 만기 CD금리 담합 의혹을 조사하면서 시작됐다. 그때까지 은행들은 CD금리에 가산금리를 덧붙여 가계대출 변동금리를 정기적으로 조정했는데, CD금리가 높게 유지되면 은행권은 대출이자를 더 받을 수 있는 구조였다.
당시 공정위가 CD금리를 담합이라고 본 근거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국고채 금리가 하락해도 CD금리는 몇 개월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바클레이스 UBS 등 미국·유럽 은행들이 리보(런던 은행 간 거래금리) 조작으로 2조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받자 국내 소비자들도 의혹을 제기했고 이것이 공정위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의 의욕은 곧 벽에 부닥쳤다. CD금
리가 조작된 것으로 결론 나면 은행권은 천문학적 규모의 과징금과 소비자 손해배상소송에 직면하게 된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도 부실
감독에 따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금융권은 일치단결해서 "담합은 없었다"며 반발했고, 공정위 조사는 겉돌기만 했다.
2014년 1월에는 CD금리 조작 의혹과 관련해 소비자가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법원이 'CD금리를 조작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은행 손을 들어줬다. 법원 판결문까지 나온 마당에도 공정위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다가 이제야 무혐의와 다름없는 결론을 내렸으니 어이가 없다.
4년 동안 이득을 본 곳은 공정위 고위 퇴직자들이 몰려가서 법률 자문을 하고 소송을 담당한 법무법인들뿐이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공정위는 이번 일을 철저하게 반성하고 전문성 강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10. 막말 의원 징계할 국회 윤리심판원 당장 만들어라
20대 첫 임시국회 본회의장에서 고성과 막말로 파행을 초래한 김동철 국민의당 의원 파동은 20대 국회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완전히 짓밟았다는 점에서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김 의원은 5일 대정부 질문 중 이장우 의원 등 새누리당 의원들이 야유를 보내자 "어떻게 저런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뽑아놨느냐" "저질 국회의원들 창피해 죽겠네" 등의 막말을 퍼부었다. 4선의 중진의원이 국회TV와
인터넷으로 국민에게 생중계되는 현장에서 인신 모독 언사를 서슴지 않았으니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행태다. 김 의원은 2013년
2월 이명박정부 시절에도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가장 나쁜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등 평소 거친 언사로 유명하다고
한다.
20대 국회 초반부터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필두로 한 국회의원 친·인척 보좌관 채용 문제가 불거져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다. 여야 할 것 없이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에 고심하는 와중에 또 막말 파행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표창원 더민주 의원은 학교전담경찰관이 여고생과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어 물의를 일으킨 사건에 대해 "여학교에 잘생긴 남자 경찰관을 배치한 탓"이라는 말로 논란을 자초했다. 같은 당 조응천 의원은 MBC 고위 간부가 성추행했다는 근거 없는 사실을 주장해 물의를 빚는 등 국회의원의 양식과 수준을 의심케 하는 돌발 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
런데도 여야 지도부는 말로만 징계를 외칠 뿐 꼬리 자르기에 급급하다. 김 의원에 대해 윤리특위 제소를 운운했던 새누리당이나 지난
총선 때 국회의원소환제(파면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국민의당이나 팔은 안으로 굽고 의원들끼리는 철저하게 한통속이라는 사실만 새삼
확인시켜주고 있다. 19대 국회 때 39건의 국회의원 징계안이 발의됐지만 모두 철회 또는 폐기됐는데 20대 국회도 출발부터 싹수가
노랗다.
여야는 김 의원을 일벌백계함으로써 19대 국회와는 다를 것임을 실천으로 보여야 한다. 차제에 외부 인사로
국회 윤리심판원을 만들어 국회의원으로서 기강을 해치거나 품위를 손상할 경우 중징계하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애초에 국회의원
징계를 국회의원 손에 맡기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주요 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초동여담]김밥의 배신
단
단히 여민 검푸른 홑겹의 옷. 눈부시고 찰진 속살을 지녔으나 굳이 옷섶을 풀어 교태를 짓지 않다.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지니려
하지 않았으니 향기는 고요하고 맛은 담백하다. 빼어난 몸을 고집하지 않고 서슴없이 제 몸을 점점이 나눠 한입에 먹기 좋도록
가지런히 누웠다.나이테처럼 내보인 속살의 파문은 옛사랑의 고백처럼 뭉클하게 아름답다.
김에서 밥으로, 밥에서 간간한
찬들로 넘어가는 맛의 회랑. 이 모든 것들 다 내주지만, 스스로를 매긴 값은 겸허하여 주린 이들의 넉넉한 한 끼가 된다. 어린
소풍가방 속의 너는 얼마나 설레는 별미의 유혹이었던가. 새벽에 그것을 말던 사람의 마음이, 점심에 그것을 푸는 사람의 마음으로
건너와, 가끔은 목메일듯 서럽기도 하던 그것. 이 나라 사람이라면 살아온 몸의 절반쯤이 너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처음엔 심심하지만 가만히 씹어 삼키면 단맛이 깊이 우러나 코끝까지 그윽해지던 기억, 우리는 어쩌면 김밥민족이 아니던가.
혹
자는 일본의 김초밥(후토마키)을 너의 아비로 잡기도 한다. 일제 때는 김밥을 노리마키(海苔?き)로 부르기도 했는데, 네모난 넓은
김을 깔고 밥을 얹은 뒤 식재료를 점점이 놓고 말아서, 먹기 좋도록 썰어먹는 것이 김초밥과 비슷했다. 게다가 김밥을 마는 대나무발
김발이도, 후토마키의 마키스와 닮았다. 넌 정말 일본 음식이냐. 식초로 간을 하는 김초밥과 참기름으로 간을 하는 김밥이 다르다곤
하지만, 참기름김밥이 나온 건 40년쯤 밖에 되지 않았다. 이미 국민음식이 된 너에게 민족의식까지 부여하려는 건 과한 욕심일까.
혹
자는 삼국유사에 복쌈(福裏)이란 대보름음식이 나오는데, 이 중에 김밥이 있다고 주장한다. 복쌈은 취나물과 배추잎으로 밥을 싸기도
하지만, 김으로도 쌌다는 것이다. 김에 대한 구체적 기록이 나오는 것은 조선시대 '경상도지리지'나 '동국여지승람'이다. 이
무렵에는 우리나리에서 김을 양식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런 것을 근거로 너를 겨레음식이라 말하는 건 좀
석연찮다. 요즘 형태의 김밥이 나오는 것은 한국전쟁 무렵인 1950년대이기 때문이다. 좀 더 개연성있는 해석은, 우리 고유의
김쌈이 통영의 충무김밥(1930년대 시작)처럼 면면이 전수되어 오다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후토마키의 영향을 받으면서, 일신을 했고
차츰 우리 입맛에 맞게 진화해왔다고 보는 것이리라.
김밥천국은 개별브랜드가 아니라고 한다.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브랜드를 내놨기에 누구를 원조로 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김밥천국의 감동적인 컨셉트는, 김밥 한 줄을 천원에 파는
'겸손한 가격'이었다. 천원이면 배부르진 않지만 허기를 끌 수 있다는 그 약속은, 이 나라의 빈 손 빈 주머니의 서민들에게
복음과도 같았다. 게다가 그 천원을 이유로, 맛이나 차림이 부실해지지 않았던 것도 미덕이었다. 천국은 천원의 나라(千國)이며,
김밥이 이룩한 천국(天國)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김밥은 졸지에 콧대가 높아졌다. 다른 물가들이 오르니 저만
겸손 떨고 있을 처지가 아니었던가. 작년보다 5.2%가 뛰어, 물가상승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한줄에 6500원 짜리 프리미엄
김밥이 등장했다. 그야말로 김밥의 배신이다. 세상에. 곧 김밥만(萬)국이 나올 것 같다.
2. [동아일보][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창덕궁 샹들리에, 근대의 두 얼굴
유
네스코 세계유산 창덕궁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건물은 인정전이다. 경복궁으로 치면 근정전이다. 인정전 내부를 들여다보면 임금이 앉는
어좌(御座)가 있고 그 뒤로 일월오봉병(日月五峰屛)이 놓여 있다. 어좌 위로는 화려한 장식의 닫집(보개·寶蓋)이 펼쳐진다.
그런데 인정전엔 경복궁 근정전에서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인정전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린 샹들리에다. 조선시대 궁궐에 서양식 전등이라니.
조
선의 마지막 왕 순종은 1907년 즉위와 함께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고는 이듬해 창덕궁의 수리를 명했다.
순종이 명했다고 하지만 실제 작업은 일제가 맡았다. 인정전의 샹들리에는 그때 유리창, 커튼과 함께 설치되었다. 일제는 실내 바닥의
전돌도 걷어내고 일본식 나무마루로 바꿨다. 공사는 1909년 봄 마무리되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샹들리에였다.
인정전 샹들리에는 자못 화려하고 육중하다. 노란 천으로 휘감은 뽀얗고 큼지막한 전등들. 샹들리에 틀에는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이화무늬를 디자인해 넣었다. 샹들리에 전깃불은 첨단 서양문물이었고 근대의 상징이었다.
우리나라에 전기가 도입된 것은
1887년. 경복궁 건청궁에 처음 전깃불이 들어왔다. 에디슨이 전구를 활용한 이후 불과 8년 만이었다. 현재 건청궁 앞에는
‘한국의 전기 발상지’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그 전깃불이 20여 년 뒤 창덕궁에도 들어왔고 샹들리에까지 설치한 것이다. 시대에
따라 사람 사는 공간도 변하는 법. 궁궐 전각에 전등을 설치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20세기를 살아가는 임금님이 꼭
19세기 스타일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샹들리에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고 창덕궁의 밤은 아름다웠을 것이다. 하지만 창덕궁의 샹들리에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인정전을 수리하고 샹들리에를 매단 것은 결국은 일본의 의도가 반영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
시엔 전기 공급이 원활치 않아 전구가 자주 깜박였고 그로 인해 수리비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전구가 제 역할을 못한 것이다.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그 모습이 마치 건달 같다고 해서 ‘건달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깜박깜박하는 전등. 당시 우리의 국운과
비슷했던 것일까. 1910년 8월 그곳 창덕궁에서 조선의 500년 역사는 막을 내리고 말았다. 20세기 초 신문명을 상징했던
창덕궁의 전깃불 샹들리에. 우리는 그렇게 근대와 만났다.
3. [한겨레][유레카] 금메달을 판 챔피언
2016 리우올림픽 금·은·동메달 무게는 500g으로 똑같다. 금·은메달은 순은이 92.5% 포함되는데, 금메달에는 순금이 1%(6g)가량 더해진다. 동메달은 구리, 주석 등으로 만들어진다.
은 메달, 동메달을 제조할 때 사용되는 재질의 30%가량은 재활용품이다. 재활용 은은 중고 거울이나 엑스레이 기기, 그리고 납땜 물질에서 수거됐고, 동메달 제조 때 사용되는 구리의 40%가량은 브라질 조폐공사에서 쓰다가 남은 것을 재활용했다.
메
달을 목에 걸 때 사용하는 리본 또한 재활용 플라스틱 물병이 50% 사용된다. 제조 원가만 따져보면 금메달은 508.42달러,
은메달은 260.40달러, 동메달은 5달러 이하이다. 그러나 올림픽 메달은 금전적 가치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우승한 우크라이나 권투선수 블라디미르 클리치코는 자신의 금메달을 100만달러에 팔아서 우크라이나 아이들의 스포츠 활동을 돕는 자선단체를 만들었다.
애틀랜타올림픽은 우크라이나가 소비에트 연방에서 분리독립해 최초로 출전한 올림픽이었기 때문에 의미가 컸으나 클리치코는 기꺼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금메달을 내놨다.
2000 년 시드니올림픽 수영 50m 자유형에서 우승한 앤서니 리 어빈(미국) 또한 금메달을 경매에 부쳐 벌어들인 1만7101달러를 인도양 지진해일 피해자들에게 기부했다. 폴란드의 오틸리아 옝제이차크는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2004년 아테네올림픽 접영 200m 우승으로 따낸 금메달을 8만달러에 팔기도 했다.
옝 제이차크는 “(올림픽을) 기억하기 위한 메달은 필요 없다. 나는 내가 올림픽 챔피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메달은 이미 내 마음속에 있다”고 말했다. 믿는 만큼, 행동하는 만큼 가치는 달라진다. 메달도, 사람도 가치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4. [서울신문][문화마당] 마징가는 왜 필살기의 이름을 외쳤을까/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우
리 집에는 비디오가 없었다. 그래서 주말이면 광장국민학교 2학년 4반 부반장이었던 박우석이네 집에 놀러 가곤 했다. 4교시 수업을
마치고 가면 그 시간까지 주무신 게 틀림없어 보이는 우석이네 엄마가 짜장면을 시켜 먹으라며 천 원짜리 두 장을 주셨다. 당시
짜장면은 한 그릇에 600원이었다. 남은 돈으로는 비디오 가게에서 만화영화를 빌려 보았다. 대부분 거대 로봇 만화였다. 일본
대중문화의 수입이 통제되던 시절이었지만 아동용 애니메이션은 프리패스였고 저간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우리는 틈만 나면 각 로봇의
전투력에 대해 논하곤 했다. 그때 나에게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두 개 있었으니 다음과 같다. (1)왜 정의의 로봇은
필살기의 이름을 적에게 들리도록 외쳤는가. (2)어째서 악당 로봇은 정의의 로봇들이 합체하는 동안 기다려 주었는가.
(1)
의 경우는 기합이 당사자의 투지를 증가시키고 상대의 기를 꺾는다는 측면에서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겠다. 하지만 그것이 굳이
필사기의 종류를 발설하는 형태여야 했는지는 한번쯤 따져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코너에 몰리다가 결정적 순간에만 구사하는
필살기는 야구로 치면 투수의 결정구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9회 말 풀카운트 상황에서 “이번엔 낙차 큰 슬라이더”라고 외치며 볼을
던지는 투수라니 좀 웃기지 않나. 그런데 그거 안 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마징가는 닥터 헬이 보낸 기계수들을 향해 이제 곧
‘광자력 빔’을 구사한다는 것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광자력 빔!”이라고 외치면서 슬쩍 ‘루스트 허리케인’이나 ‘로켓 펀치’를
쐈다면 교란작전인가 하고 이해할 텐데 내가 관람한 비디오에서 그런 장면은 등장하지 않았다.
(2)의 경우는 더
이해하기 힘들다. 정의의 로봇은 나름대로 ‘정의=페어플레이(동심)’라는 등식을 지키기 위해 필살기도 막 알려주고 그랬다 치자.
모름지기 악당이란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 시대의 악당 로봇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떼로 몰려오면 단번에 제압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마치 병목구간을 통과하는 자동차처럼 한 번에 하나씩만 날아오는 걸로도 모자라 정의의 로봇이 “합체!”라고 외치면 본인이
거의 승기를 잡은 싸움에서도 주제가 1절이 다 불릴 정도의 시간 동안 기다려 주었다. ‘도중까지는 악당 로봇이 더 많이
때렸으니까 됐잖아’라는 의미가 담긴 호혜평등주의적 안배였을까.
여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나는 최근에
‘드래곤볼 깊이 읽기’라는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됐다. ‘무슨 드래곤볼 따위를 깊이씩이나 읽는가’ 하고 한심해하며 혀를 찰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한다. ‘채식주의자’나 ‘사피엔스’ 같은 베스트셀러를 읽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말이지. 하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공상과학독본’이니 ‘마징가 Z 지하기지를 건설하라’ 같은 제목의 책을 마주하면 덮어 놓고 구매하게 된다. 내 허접한 취향에 잘
맞아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거니와 이런 책은 한국에서 안 팔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 책이 팔리지 않으면 출판사는
‘많은 사람들이 찾을 법한’ 책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나 같은 독자 입장에서 보면 꽤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말인데 마징가가 왜 필살기의 이름을 외쳤는지 궁금해졌다면 서점에 한번 들러봐 주시길. 양손을 모아 “에~네~르~기”라고 천천히
소리를 내다가 마지막에 기를 단번에 방출하듯이 “파!” 하며 팔을 쭉 뻗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 특히 추천하는 바이다.
5. [중앙일보][노트북을 열며] 1등 국가에는 없는 존댓말
삼성전자에서 내년 3월부터 대리·과장·부장 직함이 사라진다. 대신 이름에 님을 붙여 부른다. ‘홍길동님’ 식이다.
왜 이렇게 하는지는 이미 다 아는 바다. 연공서열에 얽매이지 말고, 눈치 보지 말고 일하라는 뜻이다. 호칭은 곧 지위고, 지위는 곧 위계며, 위계는 관료화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창조적 발상과 거침없는 토론이 설 자리는 없다.
사례는 차고 넘친다. 정보지능기술연구소처럼 백년지계와 관련된 문제조차 그렇다. ‘BH(청
와대) 지시’라는 딱지가 붙으면 토론은 사라지고 속도만 남는다. 기업도 다를 바 없다. 도전적 아이디어는 안정적 지시 앞에
무력하다. 삼성전자의 새 지침은 관료화 극복의 몸부림이다. 취지를 놓고 보면 삼성전자 방침의 방향성은 백번 옳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말이 안 된다. 새 방침은 임원은 빼고 직원에게만 적용된다. 내부에선 “수평적 소통은 부장 이하만 적용되냐”는
자조가 나온다.
수직형 구조의 근원에는 존댓말이 있다. 존댓말은 미풍양속으로 대접받아 왔다. 그러나 존댓말로 상징되는
상명하복은 20세기의 산물일 뿐이다. 근대화와 압축 성장은 속도전이 필요했고, 군대식 지휘체계가 성공의 요체였다. 상·하를
분명하게 가르는 존댓말은 강화됐다.
그러나 존댓말은 1등 국가의 DNA가
아니다. 미국·중국·유럽 등 역사적으로 1등을 해 본 지역에선 존댓말이 없거나, 있어도 약하다. 그들에게 존댓말이 없다고 배려나
존중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토론의 품격은 그들이 더 높다. 반면 한국은 수천 년간 1등 국가를 쫓으며 살아왔다.
중국·일본·미국은 교과서이자 미래였다. 그러니까 존댓말은 퍼스트 무버를 열심히 쫓아가는 패스트 팔로어의 DNA다.
외
부에서 지적이 나온 건 오래됐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맬컴 글래드웰은 1997년 괌에서 일어난 대한항공 추락 사고의 근원을
말에서 찾는다. 당시 조종실 녹음 내용에 따르면 부기장은 이상 징후를 알았다. 그러나 그는 직설적이고 강력한 어조로 기장에게 비상
사태를 알리지 못했다. 권위에 눌린 언어 습관 때문이다. 참치잡이 어선 광현 803호에서 일어난 끔찍한 살인도 마찬가지다.
베트남인의 ‘요요’라는 말을 반말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존대와 반말이라는 언어적 위계가 엷었다면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지
금 우리는 교과서가 없어진 시대에 산다. 순서도 뒤죽박죽이다. 한국이 이미 겪은 일을 뒤늦게 선진국이 겪는가 하면, 평균 점수는
높은데 개별 점수에선 말도 안 되는 역전이 일어나는 분야도 많다. 상·하, 선·후 구도를 기본으로 살아온 한국이 유독 숨이 찬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존댓말 DNA를 바꿀 수 없으면, 퍼스트 무버의 DNA도 가질 수 없다.
14년 전에 이미 실험과 증명이 있었다. 2002년 히딩크는 축구장 안에서 존댓말을 없앴다. 한국 축구는 그때만큼 창의적인 플레이를 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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