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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21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노동계의 총파업 도미노 걱정된다

금융노조가 어제 ‘총파업 1차 결의대회’를 열어 노사대결 국면에 돌입했음을 과시했다. 정부의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한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된 데 따른 전초전이다. 그제 전국 35개 지부 9만여명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투표에서 찬성표가 95.7%로 최종 집계됐다고 한다. 금융노조는 성과연봉제 도입이 강행될 경우 오는 9월 총파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파업 움직임은 금융계만이 아니다. 산업계 전반에 걸쳐 파업의 전운이 휘몰아치고 있다. 이미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노조가 동시 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파업 분위기가 도미노 현상처럼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데다 브렉시트 여파의 불확실성과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보복 가능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가 내부의 노사갈등 장벽에 직면한 것이다.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조선업계도 마찬가지다. 삼성중공업과 성동조선 노조가 어제 연대파업 투쟁에 가담했고, 대우조선 노조는 구조조정 반대 집회를 벌였다. 이밖에 한국가스공사와 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공단 등을 포함한 공공기관 노조도 공공부문 민영화 및 성과퇴출제 저지를 명분으로 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노동계가 이른바 전면적인 ‘하투(夏鬪)’ 국면에 돌입한 양상이다.

그러나 현대차와 현대중공업의 동시 파업부터가 무모하다. 임금협상을 파업 투쟁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현대차의 현재 평균 연봉은 9600만원으로 세계 자동차 업계를 통틀어서도 최고 수준이다. 일본 도요타(7960만원)나 독일 폭스바겐(7840만원)보다 높다. 자동차 협력업체의 경우 임금이 ‘열정 페이’ 수준에 머무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더욱이 현대중공업은 경영 적자가 누적되는 중이다. 그런데도 구조조정 반대를 외치며 파업에 들어갔으니,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가 어렵다.

금융노조가 반대하는 성과연봉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제도다. 성과에 따라 보수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연봉 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지는 등 부작용이 발생한다면 제도를 시행하면서 고쳐갈 일이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판국에 여기저기서 파업을 감행한다면 경제를 거덜내자는 꼴밖에 안 된다. 국민들의 걱정하는 눈길을 살펴보기 바란다.


2. 국회 사무처, ‘의원 특권’의 한통속인가

국회 사무처가 최근 300명 의원실의 접견실 의자 2400개를 각 당의 상징 색깔에 맞춰 바꾸는 중이라고 한다. 새누리당 의원실은 빨간색, 더불어민주당 파란색, 국민의당 초록색 등으로 교체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예산 낭비를 감시해야 할 국회가 얼마든지 더 사용 가능한 의자 교체에 혈세를 마구 쓰는 것은 제 눈의 들보를 모른 체하는 뻔뻔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기존 의자가 10년의 내구 연한이 다해 바꿀 때가 됐다는 게 국회 사무처의 해명이다. 하지만 기한이 됐다고 해서 반드시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달청도 사용이 가능하면 계속 쓰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정당별 의석은 변하기 마련이며 그 상징색도 선거 때면 바뀌곤 한다. 그때마다 의자를 또 바꾸겠다는 것인지, 한심한 발상에 말문이 막힌다. 이런 발상이 어떻게 나온 것인지 우윤근 사무총장이 명백히 해명할 필요가 있다.


예산낭비 논란은 이뿐이 아니다. 20대 국회 개원 때인 지난 5월에는 의원실마다 컴퓨터 10대, 프린터 5대, 책상 등 집기를 모두 교체했다. 컴퓨터만 해도 3000대에 이른다. 물품 교체비에 50억원이 넘었다고 한다. 지난 19대 때도 의원실 집기를 새것으로 바꾸고 건물 내 벽지와 입구 레드카펫을 교체하는 데 48억원을 써 빈축을 산 바 있다.

의원들의 특권의식에 국회 사무처가 편승한 꼴이다. 1882억원의 건립비가 들어간 제2 의원회관이 단적인 예다. 2012년 개관한 의원회관의 사무실은 전보다 2배가 넓다. 장관급 사무실로 ‘격상’시키라는 의원들 요구 때문이었다. 한통속이 돼 과잉 예우하는 사무처도 잘못은 매한가지다. 이번 의자 교체를 두고 의원실에서조차 사용에 불편이 없는데 왜 교체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온다지 않는가.

국회는 며칠 전 의장 직속의 특권 내려놓기 자문기구를 출범시켰다. 정세균 의장은 “국민 눈높이에서 가감 없이 의원특권 문제를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권한의 적절성 여부를 검토해 존속·폐지·수정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이 생각하는 특권 내려놓기는 거창한 것만이 아니다. 멀쩡한 집기를 교체하느라 예산을 펑펑 써대는 허튼 욕심을 버리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서울신문]

3. 현대차·현대중 파업, 국민 차가운 시선 못 느끼나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노조가 지난 19일부터 동시 파업을 벌이고 있다. 22일까지 부분적으로 조업을 중단하면서 적지 않은 생산 차질이 예상된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등 조선노동조합연대 소속 조선사들도 연대 파업에 들어갔거나 돌입할 예정이다. 울산과 경남 거제 일원이 파업의 격랑에 휩싸이는 모양새다.


국내 굴지의 제조업체인 이들의 파업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현대차는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이 9600만원, 현대중은 7800만원이다. 대표적인 고임금 직장이다. 현대차 노조는 이번에 기본급 7.2% 인상과 성과급 지급, 사외이사 추천권 등을, 현대중 노조는 기본급 5.09% 인상 및 우수 조합원 100명에 대한 해외연수 등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조선 업계가 맞고 있는 위기 상황을 고려하면 과도한 요구가 아닐 수 없다.

자동차 업계에선 기존의 내연기관 중심 생산 시스템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생산 체제로 바뀌기 시작하는 등 시장 환경이 급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테슬라의 보급형 전기차는 생산도 하기 전 발표 며칠 만에 수십만대가 예약 판매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구글을 비롯한 글로벌 선도 기업들의 자율주행차 개발 및 시판도 눈앞에 있다. 앞으로 15년 안에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업이 자취를 감출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기존 자동차 업체들이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존립 기반이 위협받을 수 있는 것이다.

조선 업계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동안 수조원에 이르는 혈세를 지원받아 연명해 온 처지다. 앞으로도 그에 못지않은 규모의 국고 보조를 받아야 한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에 ‘임금을 올려 달라’, ‘해외연수를 보내 달라’고 요구하고, 파업까지 벌이는 것은 누가 보아도 어린아이의 생떼와 다름이 없다. 지금은 경영진뿐만 아니라 노조도 위기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해야 할 시기다. 누울 자리를 봐 가며 발을 뻗으라고 했다. 회사야 어떻게 되든 내 밥그릇만 챙기다간 생계의 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4.  난국 직면한 당·청, 신뢰 회복할 수습책 내놔야

정부가 집권 4년차를 맞아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자중지란에 빠져 있고 청와대 핵심 실세로 알려진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의혹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우 수석은 명예훼손으로 언론사를 고소했지만 시민단체로부터는 반대로 고발된 상태다. 이유야 어떻든 현직 민정수석이 검찰 조사 대상이 된 것 자체가 우려스런 일이다.

지금 국정 난맥상은 심각하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싸고 국론이 분열된 상황에서 중국의 반발로 북핵 문제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 나사 풀린 공직 기강은 한심한 지경에 이르렀다.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민중은 개돼지와 같이 먹고살게만 해 주면 된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켜 파면됐다. 미래창조과학부 직원들은 뇌물 수수와 성매매 추문을 일으켰고 이것도 모자라 산하 단체 직원에게 자식의 숙제까지 시키는 참으로 어이없는 갑질을 했다. 미세먼지를 고등어 탓으로 돌린 환경부나 국가 브랜드 표절 논란에 휩싸인 문화체육관광부,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에 앉혔다가 나라 망신을 자초한 기획재정부 등 어느 한 곳 믿을 데가 없다. 경제 부처 장관들이 내놓은 대책마다 재탕·삼탕의 짜깁기 정책으로 언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정치는 물론이고 외교안보, 교육, 경제 어느 분야를 가릴 것 없이 국정 운영 시스템 자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검찰 권력의 부패상이 국민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비리를 척결하라고 권력을 위임받은 진경준 검사장은 그 권한으로 사익을 취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저질렀다. 부도덕한 검찰의 민낯이 드러났다. 검찰 권력의 부패는 너무 과도한 권한을 부여한 탓이다. 한국 검찰은 세계 어느 검찰도 갖지 못한 수사권과 수사 지휘권, 독점적 기소권을 갖고 있다. 범죄 수사와 사정권을 가진 검찰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국가 존립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검찰 권력을 바로 세우려면 강력한 내부 감찰 제도를 운용해 비리를 발본색원하는 한편 고위공직비리조사처 신설 등 근본적인 개혁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신뢰가 땅바닥으로 추락한 지금의 상태로는 원활한 국정 수행을 기대하기 어렵다. 남은 1년 7개월 동안 현 정권은 미완의 개혁을 완성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갖고 있다. 권력 누수 징후가 나타나면 국정 추진 동력은 급속히 힘을 잃게 된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한다. 분노한 민심을 되돌리고 조기 레임덕을 막으려면 공직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동시에 전면적인 수습책을 내놓아야 한다. 임기 말까지 제대로 국정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장관이든 수석이든 비리 연루자나 함량 미달자들은 과감하게 물갈이해야 한다.


5. 친박의 전방위 공천 개입 드러난 새누리

친박 핵심 인사들의 4·13 총선 공천 개입 정황을 담은 녹취록이 잇달아 공개됐다. 최경환·윤상현 의원,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지난 1월 김성회 전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지역구 출마 포기를 회유하고 협박했다는 내용이다. 김 전 의원이 출마하려던 지역은 친박계 맏형인 서청원 의원의 지역구(경기 화성갑)다. 계파 이익을 위해서라면 득달같이 ‘장애물’을 물어뜯어 주저앉히고야 마는 친박의 하이에나 행태가 그대로 드러났다. 논란이 커지자 이들이나 청와대는 개인적인 일이라고 해명하지만 그들의 발언 강도나 내용을 보면 그냥 덮고 갈 사안이 아니다.

이들 3명은 김 전 의원에게 돌아가면서 전화를 걸어 “까불면 안 된다. (지역구 변경) 안 하면 사달이 난다. 별의별 것을 다 가지고 있다”(윤 의원), “감이 그렇게 떨어져서야 어떻게 정치를 하나?”(최 의원)라며 협박했다. 현 전 수석은 한술 더 떠 “(저하고) 약속한 건 대통령한테 한 약속하고 똑같은 것 아니에요?”라고 지역구 변경이라는 ‘대못’을 박았다. 이들이 공천에 관여하지 않는다면 결코 하지 못할 말들이다. ‘배신자’ 찍어 내기 등 친박의 오만불손은 익히 알지만 막상 그들의 적나라한 발언들을 보니 과연 이런 사람들이 집권 여당과 국정을 쥐고 흔들었나 싶어 비애감이 들 정도다.

녹취록 파문이 커지자 결국 서 의원은 대표직 출마를 포기했다. 그런 그가 어제 녹취록 논란을 ‘음습한 공작정치’라고 공세를 폈다.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앞둔 시점에 공개된 녹취록은 친박과 비박 간 계파 싸움의 산물일 수 있다. 설혹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친박의 패거리 공천 전횡이 세상에 드러난 것을 갖고 공작정치로 모는 것은 온당치가 않다. 자신들의 공천 농단죄는 눈감고 녹취록을 놓고 정치공작 운운하는 것은 그야말로 적반하장이다. 더구나 친박 실세들은 ‘대통령의 뜻’을 내세워 김 전 의원을 압박했다. 이런 식으로 주저앉힌 이가 어디 김 전 의원뿐이겠는가. 청와대는 그런 일이 없다고 했으니 대통령을 팔아 호가호위한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우선 당내 경선 후보자를 협박하거나, 당내 경선의 자유를 방해한 만큼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친박에서는 당권 미련을 못 버리고 친박 홍문종 의원을 대표직 카드로 만지작거린다는 얘기가 들린다. 최경환·서청원 카드가 무산되자 나온 고육지책일 게다. 대통령을 위해서나 당을 위해 이쯤 되면 친박은 쥐 죽은 듯 납작 엎드려 있어도 모자란다.


[동아일보]

6. 안철수, 北 핵미사일 방어보다 중요한 국익이 대체 뭔가

어제 이틀째 열린 국회 긴급현안질문에서 국민의당은 당론인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철회와 국회 비준을 주장했다. 오늘 오전부터는 국민의당 온라인 채널인 ‘ON 국민방송’으로 의원 20여 명이 참가하는 ‘사드 배치 반대 필리버스터’를 19시간 동안 생중계한다. 의사당도 아닌 곳에서 의원들이 벌이는 사드 반대 주장 캠페인에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뜻하는 필리버스터라는 이름까지 붙인 신생 국민의당의 발상이 참 안이하고 딱해 보인다.

국민의당이 사드 배치 철회를 고집하는 것은 당의 대주주인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의 영향이 크다. 그는 신동아 최근호 인터뷰에서 “사드 배치 철회 요구가 ‘안보는 보수’라는 평소 지론과 동떨어진 것 아니냐”는 질문에 “사드를 도입하면 안보를 보수적으로 보는 것이라는 주장은 굉장히 단순한 논리”라고 반박했다. 안보도 안보 나름 아니냐며 국방안보, 외교안보, 경제안보의 득실을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드 배치 반대 이유로 성능 미(未)검증, 비용 부담, 전자파로 인한 국민 건강 염려,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안 전 대표는 꼽았다. 하지만 미 국방부 무기성능시험평가국장은 작년 3월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사드가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요격에 효율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밝혔다. 사드 포대의 용지와 기반시설을 제외한 비용은 미군이 부담한다. 전자파 피해 우려는 미군 괌 기지 공개 측정에서 기준치의 0.007%에 불과한 것이 확인됐다. 중국의 반대는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면 우리가 감당할 수밖에 없는 과제라고 봐야 한다.

그제 김정은이 부산과 울산까지 나오는 대형 지도를 펼쳐놓고 탄도 로켓 선제타격 발사훈련을 지도했다는 북한 조선중앙방송의 보도가 나오는 상황이다. 안 전 대표는 “사드 배치 문제가 이념 논쟁으로 흐르면 절대 안 되고 철저히 국익 관점에서 분석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북의 핵과 미사일 기술이 고도화하는 데 대응해 방어망을 갖추는 것 이상의 국익이 무엇인지 안 전 대표가 밝혀야 ‘안보외면 정당’이라는 비판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7. 인기 없는 ‘비과세 축소’ 세제개편 다음 정부로 떠넘기나

기획재정부가 올해 각종 비과세·감면 제도를 연장하는 ‘2016년 세법 개정안’을 28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경차 소유주에게 유류비를 연간 10만 원 한도로 할인해주는 감면제도는 올해 말 일몰이지만 2년 더 연장될 것 같다. 비과세 소득인 ‘2000만 원 이하 월세 임대소득’은 내년부터 과세할 예정이었지만 소규모 임대사업자의 반발 때문에 그 시기가 2, 3년 미뤄진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2002년 첫 일몰 이후 계속 연장되다가 올해 일몰을 다시 맞았다. 하지만 봉급생활자의 저항을 의식해 7번째 연장된다. 

결국 인기 없고 증세 논란이 우려되는 세제 개편은 모두 다음 정부로 넘어갈 수밖에 없게 됐다. 정부는 지난해 “추가 과표 양성화가 한계에 이르렀다”고 분석하며 지하경제 양성화가 벽에 부딪혔음을 사실상 자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비과세·감면 축소는 세율 인상 없이 복지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 하지만 국세 감면액은 2014년 34조3000억 원에서 올해 35조3000억 원으로 되레 늘었다. 현재 전체 납세 대상 근로자 1669만 명 중 802만 명은 근로소득에 따른 세금을 내지 않는다. 시혜성 정책은 일단 시작하면 줬던 것을 뺏는 것 같아 되돌리기 어렵다. 올해 일몰이 돌아오는 25개 항목 중 몇 개나 원칙대로 폐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19대 국회가 304건의 세법 개정안으로 법체계를 흔들어놓더니 20대 국회는 벌써 15건의 세금 감면 법안을 발의했다. 감면 법안이 거론될 때마다 기재부가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청와대와 정치권에 눌려 말을 바꾼다. 그렇게 정권의 입맛을 맞춰준 덕분인지 세제를 총괄하는 기재부 차관은 다른 부처 장관으로 영전하고, 세제실장은 기관장으로 옮겨 보상받는다. 

지금의 세제를 유지하면 2010년 392조 원이던 국가채무는 2019년에 2배 가까운 761조 원으로 폭증한다. 정부는 올해 일몰 대상인 비과세·감면 제도를 정비해 세제 정상화를 위한 토대만이라도 쌓길 바란다. 그래야 이 정부가 무책임하게 손도 대지 못한 근본적 세제 개혁을 다음 정부는 첫해부터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 있다.


[중앙일보]

8. 공수처 신설 계기로 검찰 개혁 고삐 죄어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에 공조하기로 합의했다. 홍만표 전 검사장의 탈세사건과 진경준 검사장의 뇌물사건에 이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두 야당은 8월 국회에서 공수처 신설과 관련된 법안을 다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공수처 신설은 통제받지 않은 검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18대 국회 때도 사법개혁특위가 관련 안건을 내놓았다. 하지만 검찰 등의 조직적 반대로 무산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공수처 신설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이행하지 않았다. 정치권도 법안 추진 과정에서 공수처의 수사대상에서 국회의원을 제외하고 판사와 검사 등 고위 공직자 등으로 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여론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최근 전·현직 검찰 간부들의 비리 의혹이 쉴 새 없이 터져나오면서 박근혜 정부는 물론 나라 전체가 결딴날지도 모르겠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법을 집행하는 기관의 조직원으로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도덕성과 청렴성은 고사하고 범법행위로 수백억원대의 돈을 챙기는 제2의 홍만표·진경준 등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검찰 개혁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의’라는 시대정신을 생각해도 그렇다.

그동안 법무부와 검찰은 검사들이 연루된 각종 게이트가 터질 때마다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으로 개혁하겠다”고 요란을 떨었지만 변한 건 없다. 그 때문에 검찰에 ‘셀프 개혁’을 맡겨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정치권은 이번 기회에 검찰의 과도한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기소 독점주의를 전면 손질하고, 검경의 수사권 조정에 필요한 입법활동을 다시 추진해야 할 것이다. 또 과거의 유물과도 같은 검사동일체 원칙을 깨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검찰 간부들이 독점하고 있는 법무부를 민간 영역에 개방해 투명한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공수처 신설 등 검찰 개혁의 고삐를 바짝 죄어야 한다.


9. 승진 거부, 성과연봉 반대로 자멸 재촉하는 귀족노조

세계에서 가장 배 부른 노조로 유명한 국내 금융·대기업 노조가 자멸을 재촉하고 나섰다. 금융노조는 95.7%의 찬성률로 파업안을 가결시켜 어제 1차 결의대회를 열고 9월 23일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예고했다. 성과에 따라 동일 직급에 최대 40% 연봉 격차를 두겠다는 성과연봉제 도입 반대가 이유다.

또 현대자동차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에서 제시한 ‘승진 거부권’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어제 부분파업을 벌였다. 22일에도 부분파업을 벌여 경영진을 압박하기로 했다. 지난해 조 단위 적자를 기록해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현대중공업 역시 승진거부권을 요구하고 삼성중공업 등과 연대파업을 벌였다.

성과를 내면 연봉을 더 주고, 승진시켜 준다 해도 거부하는 해괴한 현상을 일반 국민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국내 상위 기업 1%에 들어가는 금융·대기업 귀족노조에서는 엄연한 현실이다.

성과연봉제는 은행이 생존하기 위한 합리적 임금혁신안이다. 4차 산업혁명을 계기로 금융이 빠르게 디지털화하고 있어 금융산업은 조선·해운에 이은 긴급 구조조정 대상으로 꼽힌다. 이를 위해선 보상체계 개편이 불가피하다. 철밥통으로 불리는 공공기관도 올 들어 일제히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이유다.

과장 승진을 거부하고 ‘만년 대리’로 남겠다는 현대차 노조의 요구는 코미디를 뺨친다. 과장부터는 연봉제를 적용받고 신경쓸 일이 많아지니 노조 울타리에서 평균 연봉 9600만원을 즐기겠다는 계산이다.

국내 노동시장은 극심한 이중구조여서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고, 청년 취업은 낙타 바늘구멍 통과하기다. 모두 귀족노조의 기득권 지키기 탓이 크다. 이런 불평등을 떠나 은행이나 조선·자동차 산업은 모두 공급 과잉 속에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어 변화 없이는 도태를 피할 수 없다.

그런데도 귀족노조는 태평하게 제몫 지키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기업이 망하면 직장도 없어진다는 건 평범한 진리다. 귀족노조는 이제 과유불급의 우를 범하지 말고 제자리로 돌아가길 촉구한다.


[매일경제]

10. 대형차 AEBS 의무화 앞당기고 대상도 늘려라

지난 17일 강원도 평창군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입구 5중 추돌로 4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친 사고는 온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시속 105㎞로 달리던 대형 버스가 그대로 승용차들을 덮치는 영상을 보면 고속도로의 대형차들이 언제든지 무시무시한 살인 흉기로 돌변할 수 있음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2013년 9월에는 서울외곽순환도로 사패산터널 출구에서 공항리무진버스가 9중 추돌사고를 일으켜 21명의 사상자를 냈다. 작년 전세버스 사고는 78건으로 2년 전(47건)에 비해 66% 늘었다. 사상자도 212명에서 362명으로 41% 증가했다. 올해 들어 5개월간 화물차 사고 사망자는 45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32명)보다 41%나 늘었다.

끔찍한 대형 참사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건 안전불감증에 젖은 잘못된 운전 습관과 후진적인 교통문화, 도로 위 무법자를 잡아내지 못하는 느슨한 법규와 솜방망이 처벌 관행 때문이다. 선진국 수준의 교통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체계적인 대책을 세워 강력히 추진해야 할 때다.

특히 교통사고의 90%는 운전자 과실에 따른 것이므로 졸음·과로·음주·난폭 운전 예방과 단속을 대폭 강화하면서 차량 제작 단계부터 안전 기준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정부는 내년부터 차체가 11m를 넘는 승합차와 총중량 20t 이상 화물·특수차에 대해 차로이탈경고장치(LDWS)와 비상자동제동장치(AEBS) 부착을 의무화기로 했다. 봉평터널 사고나 2013년 사패산터널 사고 같은 경우 전방 충돌 상황을 감지해 자동으로 차를 멈추는 AEBS가 작동했다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는 아직도 규제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을뿐더러 신차가 아닌 기존 모델 승합차는 2018년, 화물차는 2019년에나 적용된다. 의무화 대상을 더 늘리고 시기도 앞당겨야 한다. 이와 함께 데이터 입수용으로만 쓰고 있는 운행기록장치(태코미터)를 교통법규 위반 단속과 처벌에 활용하고 최고속도 제한 장치를 무력화하는 불법 튜닝을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 선진국처럼 과로 운전을 막기 위한 운전시간 제한 제도도 도입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서울경제]조미료, 노년에 감치다

“거 하나만 물어봅시다. 거기서 만드는 조미료가 건강에 해롭지 않습니까?”

고단한 노년 남성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 전해집니다.

갑자기 마음의 평온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서툰 긴장감이 채웁니다.

이 상황을 헤쳐갈 수 있게 도와줄 구원자를 찾아 두리번거립니다.

2003년 여름 어느 토요일 아침, 식품기업으로 이직한 지 아직 한 달이 지나지 않을 무렵이었습니다.

여름휴가 중인 선배들이 많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혼자 사무실을 지키다가, 우연히 당겨받은 전화였습니다.

조미료, 그 중에서도 미원으로 대표되는 인공 조미료 MSG는 회사의 대표 제품입니다.

입사 첫날부터 자료들을 많이 읽어 정보는 있었지만, 막상 직접 설명하려니 초조합니다.

“선생님, MSG는 안전한 식품첨가물입니다. 안심하고 드셔도 좋습니다.”

밝고 상냥하게 대답하려 애씁니다.

“그게 건강에 안 좋다고 하는데, 정말 괜찮은 건가요?”

“그럼요. 의학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나를 나무라는 듯합니다.

“그 말 믿을 수 있어요? 우리 자식들이 안 좋다고 먹지 말라는데...”

몇 차례 되돌이표를 찍는 문답에, 이야기가 투박해지기 시작합니다.

전화를 거는 이가 말로만 듣던 블랙컨슈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갑자기 애사심에 달아오르기 시작합니다.

이직을 하며 많은 변화들을 겪는 중이었습니다.

한참 설명해도 모르는 작은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이름만 말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큰회사 소속이 되니 대우가 달라졌습니다.

친구도, 지인도, 예전보다 나를 더 존중해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고마움도 남달랐습니다.

자칫하면 어렵사리 손에 쥔 행운을 놓칠 것만 같았습니다.

시나브로 방어모드에 돌입합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꼼꼼하게 받아 적고, 그에 맞는 대답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 MSG에 대해 1995년에 세계보건기구와 미국 식약청에서 공동 조사한 결과, 유해성이 없다고 판명되었습니다. 더불어 1일 섭취 제한량도 없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차분하게 한 단어 한 단어 정성을 쏟아 설명합니다.

다음 공격에 대응하려면 흥분은 금물입니다.

“아, 그럼 정말 다행이네요. 선생님이 그걸 우리 자식들한테도 좀 알려주실 수 있겠소?”

노인께서 기뻐하십니다.

뭔가 단단히 각오했다가, 맥이 빠진 듯 어리둥절합니다.

뭐가 뭔지 당최 감을 잡기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어떤 상황이신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게... 참... 허허...”

노인께서 말을 이으십니다.

“내가 몸이 좀 아파요. 그래서 우리 자식들이 아주 난리에요. 술담배 못 하게 하는 건 이해하는데, 음식까지 밍밍한 걸 먹으라지 뭡니까?”

“아이고, 자제분들께서 효성이 지극하시네요.”

“난 좀 맛있게 먹고 싶은데, 미원 안 좋다고 못 먹게 하니까 아주 속상해요. 그러니 우리 선생님이 자식들한테 얘기 좀 해줘요. 먹어도 된다고.”

살짝 난감했지만, 훈훈한 한 병실풍경이 그려집니다.

살짝 웃음을 머금고 이야기를 마칠 준비를 합니다.

MSG는 인체에 유해하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르신, 빨리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참 깔끔하고 훈훈한 갈무리라고 자부합니다.

“고마워요. 나도 그러면 좋겠는데, 허허...”

노인의 담담하고 아쉬운 듯한 말맺음에, 갑작스레 궁금증이 밀려옵니다.

“선생님, 혹시 어디가 편찮으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머리에 반갑지 않은 게 찾아왔어요. 종양이 생겼다네요.”

머리가 얼어붙은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괜한 걸 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은 날들이라도 좀 맛있게 먹다 가고 싶은데, 몸에 안 좋다고 먹지 말라고만 하니...”

“아... 네...”

“참 신기했어요. 없이 살던 시절, 뭐 변변한 찬거리가 있나? 그런데 미원만 넣으면 음식이 맛있어지더라구요. 고생 고생하던 젊은 시절부터 밥 먹을 때면 항상 생각나요.”

“그러셨군요.”

“도와 달랄 곳이 없어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회사로 전화했어요. 아침부터 힘들게 해 미안합니다.”

착잡한 마음과 뭐라도 얘기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뒤섞입니다.

“선생님,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어떤 말을 할지 머릿속을 정리해 갑니다.

“아직 신입사원이라 아주 잘 알지 못합니다. MSG가 안전한 건 확실히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몸이 많이 편찮으시니까, 자제분들 말씀 들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밖에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노인이 담담히 대답하십니다.

“고마워요. 그런데 옛날 그 맛이 너무 그리워요. 한 끼라도 좀 맛있게 먹으면 좋겠어. 자식들에겐 내가 얘기하리다. 마음 써줘서 고맙소. 잘 지내요.”

전화를 끊고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혹시라도 노인께서 조미료를 듬뿍 넣은 음식을 드시다가, 건강이 악화되지 않을지 걱정스럽습니다.

전화번호를 적어두지 않은 스스로를 책망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잠시 후엔 업무에 대한 두려움과 회의감이 찾아왔습니다.

홍보는 내 천직이자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던 만큼 충격도 컸습니다. 

홍보라는 업무가, 자칫하면 세상을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려가 있다고 해도, 이 매력적인 업무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고작 2년차 풋내기였지만, 홍보가 창의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멋진 직업이란 걸 알기엔 충분했습니다.

끌리는 맛이 있었습니다, 감칠맛에 끌리는 조미료처럼.


조미료의 대표적인 맛으로 ‘감칠맛’을 이야기합니다.

단맛, 쓴맛, 신맛, 짠맛과 함께 5미(味)로 꼽히는 감칠맛은 어떤 뜻일까요?

조미료 자체의 맛은 늑늑하고 짭짤해 그리 당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재료와 만나면 본연의 맛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내줍니다.

감칠맛은 여기서 나옵니다.

‘감치다’라는 말은 본디 바느질을 할 때 마무리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 옷감의 가장자리를 감아서 꿰매는 방법을 말합니다.

음식을 먹을 때는, ‘혀에 감겨 계속 찾게 되는 맛’이란 의미로 쓰입니다.

영어로 단순히 맛 좋은, 향긋한 이란 뜻(savory)보다 훨씬 더 실감나는 표현입니다.

13년이 지난 지금, 힘 있는 인물과 조직의 비호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홍보인들의 모습에 입맛이 씁쓸합니다.

다른 한편으론, 기발한 아이디어와 서 말 구슬을 꿰는 기획력으로 새로운 기회를 창조하는 홍보가 참 가치있는 일이란 생각도 듭니다.

내게 홍보는 끊을 수 없는 평생의 업(業) 같습니다.

노인께서 마지막까지 그리워했던 미원처럼 말입니다.


2. [서울신문][문화마당] 손을 쓸 때 쓰자고요/김민정 시인

일은 힘들지 않았어요. 사람이 힘들었어요. 누구나 한번쯤 내뱉어봤을 말, 너무 빤한 레퍼토리 같아서 그 힘듦을 고민거리라고 어디 내놓기도 민망한 말, 위로도 어쭙잖고 위안도 남세스러운 것 같아 그저 웃지요, 하고 등이나 토닥거려주는 일로 피해버리는 말, 그럼에도 우리 모두 인간관계라는 그물망 속에 알게 모르게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게 하는 말, 죄책감과 억울함 사이의 말, 그 말에 우리가 얼마나 끌려다니고 있는지 생각이 많은 요즘이다. 뱉은 말만 말일까, SNS에 내가 남긴 글이나 읽게 된 당신의 글 또한 말처럼 들리는 게 사실이니 말이다.

그러나저러나 왜 사람은 사람을 힘들게 할까. 현실 속에서 빚어지는 내 갈등은 미치게 싫어하면서 드라마 속에서 일어나는 가상의 갈등은 왜 미치게 좋아할까. 어차피 죽을 걸 알면서도 평생 안 죽을 것처럼 연기를 해야 살 수 있는 삶의 모순 속에 헛바퀴인 줄 알면서도 평생 쳇바퀴를 굴리는 게 재미라도 있다 체념해서일까.

한 직장에 다니는 후배 녀석 둘이 제각각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시간도 아낄 겸 셋이 같이 보자는 제안에 부득불 따로 보자는 것이 그들 둘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뭔가 있구나, 있어, 이건 분명 갈등이다, 어쩌지, 뭘까, 뭐지, 혹시 이것들이 나 몰래 연애라도 했었나, 깨졌나, 미치겠네, 하며 각각 시간차를 달리해 테이블에 마주 앉았는데 얘기의 초입부터 나는 헛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서로의 입에서 공통으로 튀어나온 말이 있었으니 바로 ‘무시’라는 단어였던 것이다.

무시는 얼마나 나쁜 말이고 무시는 얼마나 슬픈 말인가. 같은 대학 선후배로 직장까지 한곳에 들어가게 되어 유난히 친분이 두텁던 이들이 한 부서로 발령이 나면서부터 사소한 오해들이 쌓여간 듯싶었다. 제가 일을 잘하는 게 신경이 쓰여서인지 경계를 하려는 목적인지 과장님께 선배가 내 험담을 하고 다닌 것 같더라고요. 에이 설마, 걔가 그럴 애는 아니잖니. 내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사내에 소문을 내서 내가 아주 난감해요, 알다시피 내 스타일은 아닌데 걔 공주병을 봐줄 수가 없어요. 에이 설마, 걔가 그래도 예쁘기는 하잖니.

입이 너무 썼다. 서로 10년을 넘게 봐온 사이인데 허심탄회하게 얘기 한번 하는 일이 뭐가 어려운가 싶었는데 여자 후배가 덜컥 SNS 얘기를 꺼냈다. 팔로를 끊으면 되는데 내가 그걸 못해요 언니. 이상하게 선배가 감정 토로를 하는 모든 글이 다 나를 향한 것 같아요. 아마 나 보라고 썼을 거야. 읽으면 속상하고 안 보면 궁금하고 밤에 잠도 안 와 짜증 나서. 여자 후배가 택시를 타고 사라진 뒤 앞서 만난 남자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트위터에 너 걔 엿 같다고 썼다며. 뭔 소리야, 그거 개돼지 발언 듣고 짜증 나서 올린 건데. 안 되겠다, 너 걔한테 편지를 써라. 이메일 말고 손으로 편지를 써. 그리고 너 보는 앞에서 읽으라고 줘.

초등학교 1학년 때 남자 짝꿍이 사사건건 나를 괴롭혀서 등굣길마다 울음보를 터뜨린 적이 있었다. 하루는 엄마가 스케치북을 펼치더니 그 아이에게 그림편지를 쓰라고 했다. 할 말 없는데 하면서도 나는 도화지 가득 깨알같이 내 마음을 적어나갔다. 며칠 뒤에 짝꿍이 내게 전한 종이에 빨간 해가 삐죽삐죽 그려져 있었다. 종이의 3분의2를 차지할 만큼 크고 둥글고 새빨간 해였다. 그날부터 우리는 책상 아래 손을 잡고 수업을 들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손이 알아서 다했다. 맞잡은 손의 힘을 믿는 이유다.


3.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평양냉면의 ‘뜨거운 유혹’

돈의 많고 적음이 사람의 행복을 좌우하지 않듯이 가격의 높고 낮음 또한 음식 맛을 결정하지 않는다. 비싸지 않고 맛있는 단품 메뉴로 행복한 한 끼를 즐기는 것은 분명 생활의 작은 기쁨이다.


뜨거운 여름, 냉면의 계절이 왔다. 계절을 가리지 않는 냉면 마니아들도 꽤 있지만 역시 냉면은 여름에 먹는 평양냉면이 제격이다. 냉면 손님이 적은 계절에는 거창한 반죽기계를 돌리는 것이 쉽지 않아 보통 손 반죽을 하지만 손님이 많을 때는 기계를 돌리는데 그 면발이 쫄깃하고 메밀향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나는 걸음마를 할 때부터 이북이 고향인 어머니가 피란 와서 살던 부산의 ‘원산면옥’에 따라다녔다. 어머니는 또 이른 저녁 후 어둠이 깊어질 즈음 동치미에 냉면을 말아 식구들 방마다 돌려 주셨다. 그렇게 냉면은 나의 솔 푸드가 됐고, 지금도 해외에 나가면 가장 생각나는 것이 냉면이다.

평양냉면은 육수와 면발에 손이 많이 가는 까다로운 음식이다. 그래서 맛있는 냉면집을 찾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평양냉면 전문집에는 양대 계보가 있다. 경기 의정부에 있는 ‘평양면옥’은 홍영남 사장이 1969년 개업한 이래 3대가 이어 오는 집이다. 큰딸은 서울 필동에서 ‘필동면옥’, 둘째 딸은 입정동에서 ‘을지면옥’, 셋째 딸은 잠원동에서 ‘본가 평양면옥’을 각각 운영하면서 평양냉면의 일가를 이루고 있다. 이 집 냉면에는 고춧가루, 파, 깨가 얹어진다.


또 다른 계보의 대표인 서울 장충동의 ‘평양면옥’은 1985년 변정숙 사장이 개업해 큰아들에게 물려줬다. 둘째 아들은 논현동의 ‘평양면옥’, 딸은 분당의 ‘평양면옥’, 손녀딸들은 도곡동과 강남의 한 백화점에 평양냉면집을 각각 열었다. 이 집 냉면은 맑은 육수에 오이절임이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이들 양가의 냉면집은 물론 맛 차이가 있다. 그러나 슴슴하고 꾸밈없는 육수, 메밀향이 풍부한 면발은 공통이어서 많은 냉면 중독자들을 만들어 냈다.

이 외에도 고유의 냉면 맛을 자랑하는 집들이 꽤 있다. 주교동에 위치한 ‘우래옥’은 70년 역사를 자랑하며 수많은 냉면 인재를 배출했다. 마포의 냉면 지존이라는 1970년산 ‘을밀대’와 강남분점, 냉면 장인 김태원의 ‘봉피양’, 백병원 옆 매콤한 닭무침을 곁들여 주는 60년 전통의 ‘평래옥’, 어린이대공원 앞 ‘대미필담’(大味必淡’·정말 좋은 맛은 반드시 담백한 것이다)을 모토로 하는 ‘서북면옥’, 남대문시장 골목 안 2층 작은 집이나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55년 된 ‘부원면옥’ 등도 내가 즐겨 찾는 곳이다.

요즘은 무시 못 할 내공을 자랑하는 숨겨진 냉면 맛집이 새로 등장하고 있고 지방에도 부산의 ‘원산면옥’, 진주의 ‘하연옥’ 등등 냉면 명가가 즐비하다. 평양냉면의 맛은 먹어 본 횟수에 비례해서 느껴진다고 한다. 냉면 없는 한여름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4. [동아일보][2030 세상/제충만]내게도 찾아온 직장인 사춘기

한 친구가 컵밥집을 열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멀쩡히 직장 잘 다니던 친구가 왜 갑자기 컵밥집인가 싶어 오랜만에 연락을 해봤다. 친구는 곧 있으면 개업을 앞두고 있는데 한번 놀러오라는 말과 함께 명대사를 날렸다. “너 아직 거기 다닌다고 했지? 그냥 거기 있어. 회사 안은 전쟁터, 밖은 지옥, 여기가 진짜 헬조선이다야.” 헛소리를 하는 걸 보니 살 만한가 보다 싶어 농을 주고받다가 친구의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 “적성이 안 맞는지 재미도 없고 생각보다 돈도 안 벌리고 해서 때려치우고 나왔어.”

나는 석 달 후면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만 4년이 된다. 올해 들어 이직을 하거나 아예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는 또래 친구들의 소식이 왕왕 들려온다. 한 조사 결과를 보니 직장인들은 첫 직장에서 평균 3년 동안 근무하고 이직하는 경우가 가장 많고,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고민이 많아지는 심리적 불안 상태를 일컫는 ‘직장인 사춘기’는 백이면 백, 입사 4년 차 이내에 찾아온다고 한다. 지금이 딱 방황할 시기인가 보다. 

또 다른 친구는 직장을 옮겼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너무 경쟁적인 회사 분위기를 탓하며 “아내분 생일날 집에 잠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일하는 부장님을 본 적이 있어. 내가 10년 후에 딱 부장님 같은 모습일 거라 생각하니까 오래 다니고 싶다는 마음이 싹 사라지더라”라며 이유를 설명했다.

‘3년 차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직장 생활의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로 3년 차를 꼽는 조사도 있었다. 아무래도 직장에 들어온 지 3년쯤 되면 여러 가지 이유로 고민이 많아지나 보다. 취업 때야 일단 바늘구멍부터 뚫자는 심정으로, 입사 초기에는 어떻게든 적응하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가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다.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내게도 직장인 사춘기가 찾아왔다. 얼마 전 참가한 한 심포지엄에서 36년간 일본의 모험놀이터를 일군 연사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 우물만 판 대가의 깊이 앞에서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내가 하는 일이 여러 아동권리 침해 이슈에 대응을 하는 것이다 보니 고질적인 깊이에 대한 갈증이 있는데 그 부분을 건드렸나 보다. 더군다나 “제충만 씨는 사람들과 금방 친해지지만 오래가지는 못하는 거 같아요”라는 말을 직장동료에게 듣자 나같이 대인관계가 부족한 사람이 이런 일을 하는 게 과연 적성에 맞는 걸까 고민하게 된다. 일에 대한 열정도 옛날만 못한 것 같은 내 모습에 스스로 실망하기도 한다. 

더욱 씁쓸한 것은 내가 일하는 직장이 비정부기구(NGO)라서 그런지 고민을 털어놓아도 별반 공감을 얻지 못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닐 텐데 사명감으로 해야죠”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나도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서 어떤 날은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고, 일요일 밤이 오면 무섭기도 하다. “제충만 씨도 이제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이 되고 있는 거예요. 환영해요”라며 우스개로 격려를 받은 게 가장 큰 위로였다.

얼마 전 캄보디아로 여행을 다녀왔다. ‘직장인 사춘기’에는 여행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던데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런 상태와 고민들을 그냥 인정하고 지켜보기로 했다. 

내 어린 시절 사춘기는 언제 왔는지 모르게 왔다가 많은 생채기를 남기고 또 언제 끝났는지 모르게 갔다. 비록 그 시간만큼은 혼란스러웠지만 후에 돌아보니 그만큼 더 풍성한 나 자신이 될 수 있었던 고마운 시절이었다. 언젠가는 지나갈 나의 ‘직장인 사춘기’도 스스로를 돌아보며 하게 되는 많은 고민으로 인해 더욱 풍성한 나 자신과 직장 생활을 만들어 주는 데 도움이 될 거라 기대해 본다.


5. [중앙일보][새미 라샤드의 비정상의 눈] 아랍인에게 “돼지”는 가장 심한 욕이 된다

같은 언어를 쓰는 한국인끼리도 의사소통에서 어려움이나 오해가 종종 발생한다. 하물며 외국어를 배워서 쓰는 사람이라면 오해를 부르는 일이 더욱 잦을 수밖에 없다. 특히 그 나라 고유의 문화·풍습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부문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이런 분야에선 다른 언어로 옮기기 쉽지 않은 낱말이나 표현이 많기 때문이다.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라도 나라에 따라 개념이 다를 수 있다. 한국어와 아랍어 사이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이집트에서 비슷한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다. 유학 온 한국 친구가 열심히 운동하는 다른 친구를 보고 아랍어로 “후아 하야완”이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이 말을 들은 이집트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말은 “그는 동물(짐승)이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심히 운동하는 친구에게 왜 욕하느냐고 따졌더니 그 친구는 “그 말은 한국에서 멋진 사람에게 칭찬으로 쓰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 야성미 넘치는 남자를 가리키는 ‘짐승남’을 그렇게 말한 것 같다. 그래서 “언어는 참 신기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도 아랍어를 공부하는 한국 사람들과 자주 만나 얘기를 나누는데 몇 가지 재미있는 사례가 나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돼지다. 한국 사람들은 돼지라는 말을 음식인 돼지고기와 돼지같이 통통한 체형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동시에 사용한다. 한국어로 “돼지야”라고 부르면 당연히 장난치는 거라고 생각할 뿐 기분이 상할 일은 없다. 하지만 아랍어로 사람을 “돼지”라고 부르면 큰 문제가 생긴다. 아랍·이슬람 문화권에선 돼지고기 식용을 금지해 왠지 불결하고 멀리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 성격이 “돼지 같다”고 하면 매우 심각한 모욕이 된다. 아랍 문화에서 돼지는 책임감이 없어 자기 여자를 지키려 하지 않는 남자를 가리킨다. 따라서 “돼지 같다”는 말은 아랍 남성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심한 욕인 셈이다.

또 다른 예로 술이 있다. 한국에서 술이라고 하면 19세만 넘으면 마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 문화권에선 ‘마시지 말라’는 말이 항상 따라다니는 금기 음료라 느낌이 좋지 않다. ‘친구’라는 말도 한국에선 남녀를 모두 포함한다. 하지만 아랍어에선 동성 친구만 친구라고 부를 뿐 이성은 친구 범주에 넣지 않는다. 아직 우정은 동성끼리만 가능하다는 보수적인 인식이 남아 있어서다. 같은 단어라도 문화권에 따라 의미가 다를 수 있으므로 사용할 때 주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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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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