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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매일신문]

1. 불투명과 불신의 울릉 행정, 버려둔 행정 사각지대인가

울릉군이 2010년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한 ‘추산 용천수 먹는 샘물(생수) 개발사업’을 둘러싸고 특정 업체 밀어주기 의혹과 특혜 논란에 휩싸였다. 이는 군이 민간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당초 일정과 다른 행정을 편 데다 최수일 울릉군수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따른 산물이다. 군의 이해할 수 없는 행정에다 오해를 살 만한 군수의 행동이 빚은 논란이다. 말하자면 특정 업체 밀어주기 의혹은 바로 군과 군수의 합작품과 다름없는 셈이다.

먼저 행정 문제다. 군이 자랑하는 ‘1급수 중의 1급수’라는 추산 용천수를 개발해 제주의 ‘삼다수’에 버금가는 명품으로 만들겠다는 첫 의지와 달리 군 행정은 불투명 그 자체였다. 두 민간 업체가 지난해 사업에 공모한 결과, A업체가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었지만 우선 협상 대상자 발표를 예정보다 이틀이나 미뤘다. 군은 발표를 차일피일하다 한 달여가 지나서는 아예 사업자 선정을 않기로 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A업체는 지난해 12월 감사원에 이의를 제기, 재공모를 약속하자 감사원 심사청구를 취하했으나 군은 여태 미적대며 약속을 팽개쳤다. 게다가 군수는 이런 가운데 올 8월 강원도 동해에서 시장과 만날 때 경쟁 관계인 B업체 회장과 자리를 함께한 것으로 드러났다. 군수는 경쟁 업체 회장은 뭍에서 만나면서도 울릉까지 찾아온 A업체 관계자는 면담조차 거절했다.

누가 봐도 믿기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군의 행정이고, 군수의 처신은 더욱 그렇다. 투명성과 신뢰성을 생명으로 삼아야 할 군 행정은 불투명하고 군수 행동은 불신을 불러일으키고도 남는다. 즉 군과 군수가 한 몸이 되어 의혹과 특혜 논란을 자초하면서 군 이미지를 갉아먹고 있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의 올해 청렴도 평가에서 전국 82곳의 군 가운데 81위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일은 올 들어 잇따라 불거진 군 간부와 울릉 경찰 간부에 대한 특혜 예산 배정 의혹과 같은 맥락의 부실 행정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뭇 의혹에도 수사는 물론 시정조차 이뤄지지 않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외딴 섬 울릉은 이렇게 흐리도록 그냥 두어도 좋은, 버려진 지대인가.



2. 제 식구 감싸고 끝낸 검찰 수사, 특검이라고 달라질까

검찰이 11일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등을 기소하며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 수사를 마무리했다. 힘이 빠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직권남용 등 8가지 범죄의 공범으로 판단하는 등 고삐를 단단히 죄었지만 같은 검사 출신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서는 한걸음도 내딛지 않았다. 

검찰은 애초 이번 사건 수사에 소극적이었다. 박 대통령이나 우 전 수석의 서슬이 퍼렇게 살아 있을 때 더욱 그랬다. 각종 의혹이 불거지자 사건을 형사 8부에 배당하며 미적거렸다. 그러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에 나서며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자 득달처럼 달려들었다. 뒤늦게 검사 44명 등 총 185명 규모의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조사했다. 정권과 여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 판세가 기울자 대통령을 조준해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같은 식구였던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는 여전히 겉돌았다. 

우 전 수석을 둘러싼 의혹은 적지 않다. 최 씨와 그 주변 인물들의 국정 농단을 묵인했다는 의혹이 핵심이다. 우 전 수석의 묵인 내지는 방조가 없었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란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그 자신 청와대 민정수석실 입성 경위부터가 의문이다. 그의 청와대 입성 전 우 전 수석의 장모와 최 씨가 골프 회동을 가졌던 사실부터가 규명해야 할 숙제다. 그가 민정수석으로 버티던 때 롯데그룹에 대한 압수 수색 정보는 유출됐다. 검찰에 소환된 그의 앞에 공손히 손을 모은 검사와 팔짱을 낀 채 미소를 짓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검찰이 아닌 ‘겁찰’(겁먹은 검찰)이란 비아냥거림이 나올 정도였다.

공은 이제 특검으로 넘어왔다. 특검은 우 전 수석을 둘러싼 의혹을 샅샅이 밝혀야 한다. 이번 국정 농단 의혹의 또 다른 한 축이었다는 의문부터 해소해야 한다. 그에 대한 특수본의 미온적 수사가 제 식구 감싸기였는지, 아니면 그가 가진 정보가 두려워서였는지 그의 혐의를 밝혀내 의문을 해소해야 한다. 그래야 특검은 ‘거동할 수 없는 사자에게 떼로 달려드는 하이에나’라는 소리를 듣는 검찰을 넘어 국민의 신뢰를 얻을 것이다.



[서울신문]

3. 與, 친박 퇴진 없이는 보수가치 대변 못 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이끌어 낸 한 달 보름여간의 ‘촛불 대장정’에서 국민은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함께 새누리당의 해체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집권 세력인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해 무한한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 것이다. 국민은 박 대통령에게 이미 정치적 사망 선고를 내렸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함께 국민에게서 심판받은 친박계는 자숙·자중하기는커녕 오히려 똘똘 뭉쳐 국민에게 맞서고 있다.

친박계 의원 40여명은 그제 밤 긴급 심야 회동에서 “해당 행위를 한 김무성 전 대표, 유승민 의원과는 당을 함께할 수 없다”고 결의했다. 친박계는 또 참여 의원이 최대 60~70명에 이르는 ‘혁신과 통합 모임’을 결성해 비박계가 주도하는 ‘비상시국회의’에 맞설 방침이라고 한다. 비박계와의 전면전을 선언한 것이다. 친박계 이장우 최고위원은 어제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전 대표와 유 의원을 거명하며 ‘인간 이하 처신’, ‘후안무치’ 등의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아직도 친박계의 눈에는 80% 넘는 탄핵 찬성 민심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지난 수년간 정파 이익만을 좇았던 친박계가 ‘혁신’과 ‘통합’이라는 단어를 꺼내 든 것도 우습지만 ‘보수 대통합’을 명분으로 내건 데 대해서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들이 물러나면 보수 전체가 죽는다고 생각한다는 것 아닌가. 하지만 패권을 쥐고 흔들면서 같은 보수세력 사이의 편 가르기에 앞장섰던 이들이 친박계라는 사실을 국민은 똑똑히 알고 있다. 새누리당이 지난 총선에서 참패한 원인도 친박계 핵심들이 ‘진박 감별’ 운운하며 공천 과정에서 전횡을 휘두르는 등 국민의 기대와 어긋난 행태를 벌였기 때문이다. 보수가 작금의 위기를 맞은 것은 박 대통령과 친박계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가 좌우의 양 날개로 날듯이 국가와 사회는 보수와 진보, 양대 가치가 공존하면서 이를 대변하는 두 세력 간의 이성적·합리적인 경쟁을 통해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수의 궤멸은 우리에게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고, 그런 재앙을 막기 위해서라도 보수는 위기를 극복해야만 한다. 하지만 패권주의에 집착하는 친박계는 결코 배려와 포용의 보수 가치를 대변할 자격이 없다.

새누리당 비박계 모임인 비상시국회의는 어제 이정현 대표와 이 최고위원을 비롯해 서청원·최경환·홍문종·조원진·윤상현·김진태 의원 등 8명을 거명하며 “국정 농단 사태를 방기한 ‘최순실의 남자들’은 당을 떠나라”고 요구했다. 탄핵 책임을 지고 어제 사의를 표명한 정진석 원내대표의 말마따나 보수정치의 본령은 책임지는 자세다. 그런데도 당권을 쥐고 있는 친박계는 탄핵심판 기각을 기대하고 그때까지 버텨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국민은 박 대통령과 친박계의 동시 퇴진, 동시 탄핵을 명령했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4. 美 금리 인상 후폭풍 대비되어 있나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 같다. 금리 선물시장에선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13~14일(현지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통해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95%로 내다보고 있다. 0.25~0.5%로 유지돼 온 초저금리 시대 마감이 확실시되는 분위기다. 가뜩이나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우리 경제가 금융시장 불안까지 겹쳐 직격탄을 맞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염려되는 점은 외국인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갈 가능성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미 연준이 이번뿐만 아니라 내년에 세 차례 정도 추가로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점치고 있다. 우리의 기준금리(1.25%)를 따라잡을 가능성도 있다. 이럴 경우 내외 금리 차가 사라지면서 외국 자본이 급속히 빠져나갈 수 있다. 지난해 초 연준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0.25% 포인트 금리를 인상하자 석 달 동안 약 6조원의 자금이 빠져나갔었다.

자금 유출을 막으려면 우리도 기준금리를 현실화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 경제는 그럴 처지가 못 된다는 점이다. 경기 침체로 가뜩이나 생산과 소비가 위축된 마당에 섣불리 금리 인상 카드를 썼다간 더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계대출 규모가 1300조원까지 늘어난 데다 중소기업들의 자금 사정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앞서 침체된 경제를 고려해 오히려 금리를 더 내려야 한다고 권유하기도 했다. 당장 15일 기준금리를 결정해야 하는 한국은행이 딜레마에 빠져 있는 이유다.

현재로선 정부와 한은이 금리 인상의 충격파를 최소화하면서도 경기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 방안을 짜낼 수밖에 없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어제 가계대출에서 고정금리 상품의 목표 비중을 45%로 올려 잡겠다고 한 것은 그런 점에서 옳은 방향이라고 본다. 정부는 최근 가산금리를 너무 높게 설정해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은행들의 횡포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한은도 기준금리 인상에 신중해야 한다.



경기가 더 얼어붙지 않도록 최대한 인상을 억제하고, 불가피할 경우 인상폭이 최소한에 그치도록 해야 한다. 금융시장 안정을 이유로 쉽게 금리 인상 카드를 쓰면 경제 회생의 불씨마저 꺼뜨릴 위험이 있다. 무엇보다 두 달 가까이 방치된 경제부총리 문제를 매듭지어 위기대응 능력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이데일리]

5. ‘촛불 여론’에 완장을 채워서는 안 된다

촛불집회로 표출된 ‘탄핵 민의’를 조직화하려는 시도가 시민들의 반발에 부딪쳐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우리 사회의 수준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일단 안도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해서 애초에 이런 발상이 제기되었는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민의를 조직화하게 된다면 참가자들의 순수성이 훼손될 우려가 커지기 때문이다.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촛불광장의 민의를 대표하는 ‘시민의회’를 구성하고 여기서 수렴된 의견을 정부와 정치권, 언론 등에 전달해 압력을 행사하자는 것이 그 취지였다고 한다. 소설가 황석영·김훈씨를 비롯해 방송인 김제동씨, 연세대 조한혜정 명예교수 등 1100여명이 동참 의사를 밝혔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그러나 인터넷 공개토론을 통해 “촛불민심을 왜곡해선 안 된다”는 비판 댓글이 쇄도하면서 결국 중도 무산돼 버렸다는 것이다.

‘촛불 시민의회’를 결성하려는 취지가 잘못됐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광장 여론’은 조직되지 않고도 자발적으로 몰려나온 시민들의 동참 의지가 원동력이다. 어떤 형태로든 조직성을 띠게 된다면 참여자들의 순수성이 훼손되기 십상이다. 시민 여론에 자칫 완장을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특정 세력에 휘둘리게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인기투표 방식에 따라 기존 유명인사들을 중심으로 시민의회가 구성된다는 것부터가 구태의연한 발상이다. 평범한 대학생이나 직장인, 주부 가운데서도 ‘시민 대변인’이 나올 수 있겠지만 걸러지지 않은 의견을 쏟아낸다면 오히려 혼선만 불거지기 마련이다. 시민대표 추천 후보에 오른 가수 이승환이 “개인적 생각을 말씀드리면 이건 아니지 않나 싶다”며 부정적 견해를 밝힌 속뜻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문제를 비롯해 시국과 관련한 시민들의 다양한 견해는 지금도 자유롭게 인터넷에 반영되고 있다. 당국이 단속에 나선 것도 아니다. 주말마다 도심으로 몰려나오는 촛불 인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자체로 민심의 소재를 보여주는 척도이며, 압력이다. 거기에 시민의회라는 조직을 덧씌우는 것이야말로 군더더기다. 여론은 자유롭게 흘러가도록 놔두는 게 상책이다.



[조선일보]

6. 1987년 후 첫 국회 개헌특위, 나라 바꿀 수 있다

여야(與野) 3당 원내대표가 12일 국회에 개헌특위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국회 차원의 개헌특위가 만들어진 것은 1987년 개헌 때 이후 처음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까지 단 한 사람 예외 없이 제왕적 통치에다 주변과 친·인척 비리로 추락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람의 문제일 수만은 없다. 대통령의 전횡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상의 결함을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다. 그래서 1987년 개헌 이후 처음으로 국회에 개헌특위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전망은 밝지 않다. 대권(大權)을 잡을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는 대선 주자들이 일제히 평소의 개헌 입장을 바꿔 개헌 반대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경쟁에서 앞서고 있기 때문에, 혹은 개헌에 찬성하면 약세를 보일까 봐 반대한다고 한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개헌은) 대선 주자들이나 개인의 정치적 이해관계, 정당의 이해관계를 떠나야 한다"며 "대선보다 어떻게 보면 더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그러나 대선 주자들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자신만은 당선돼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현재 국회 개헌 추진 모임에 가입한 여야 국회의원은 개헌안 의결 정족수인 200명에 가깝다. 정 의장 말처럼 "최소한 제왕적 대통령제를 그대로 두고는 안 된다. 과도한 대통령 권한을 손보지 않으면 개헌의 의미가 없다"는 것에 의원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선이 다가오면 이들도 개헌을 반대하는 대선 주자 뒤에 줄을 설 것이다.



문 전 대표는 개헌을 대선 공약으로 걸고 다음 대통령이 임기 초반에 추진하자는 입장이다. 안 전 대표도 비슷하다. 그러나 국민은 똑같은 약속을 해놓고 안 지킨 두 명의 대통령을 잇달아 보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그랬고 박 대통령도 그랬다. 박 대통령은 집권하자 개헌 얘기를 입 밖에 내지도 못하게 하다가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국면 전환용으로 개헌 카드를 꺼냈다. 이번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 또 개헌 공약을 모른 체할 것이다.



29년 만에 국회 개헌특위가 가동되는 이 기회를 그냥 흘려보낼 수 없다. 뜻있는 여야 정치인들이 모두 일어나야 한다. 전직 여야 의원들 모임인 '나라 살리는 개헌 국민주권회의'는 이날 개헌안 초안을 발표하고 "이제 개헌 횃불을 들자"고 호소했다. 어떤 정략도 없이 오로지 우리 공동체를 위한 이 목소리에 모두가 귀 기울였으면 한다.



7. 유엔 고별 연설 潘 총장의 진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총회에서 고별 연설을 했다. 31일 임기 종료에 앞서 193회원국을 상대로 작별 인사를 한 것이다. 반 총장의 공적을 기리는 결의안도 채택됐다. 반 총장은 지난 10년간 국제 평화, 개발 협력, 인권 개선 등 유엔의 3대 이상(理想)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 사무총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서구 언론으로부터 비판도 받았지만, 국제 분쟁 해결과 기후변화 문제,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한 동분서주는 인정받아왔다.



많은 국민들은 유엔을 떠나는 그를 주시하고 있다. 반 총장은 한 번도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적이 없다. 그러나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늘 대선 후보 중 한 사람으로 거론돼왔다. 반 총장은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20% 안팎 지지율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와 1~2위를 다투고 있기도 하다.



국민이 대선 후보로서 반 총장에게 기대하는 것은 역시 외교·안보 분야일 것이다. 한반도가 강권(强權) 스타일의 '스트롱맨(strongman)' 지도자들에게 둘러싸인 현실에서 외교·안보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반 총장이 미·중·일·러 지도자와 즉각 전화해서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일 것이다. 수출로 먹고살아 온 나라에서 원만한 국제 관계를 유지할 적임자이기도 하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성품을 높이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반 총장은 국내 정치 경험이 전무하다. 난마처럼 얽힌 국내 정치 문제를 풀어나갈 정치력은 미지수다. 지난 10년간 한국을 떠나 있었기에 경제 침체, 양극화, 사회 갈등 문제에 대한 인식과 지식이 떨어질 것이란 지적도 많다. 국민은 이런 중요 사안에 대해 반 총장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는 다른 정치인들과는 달리 검증 무대에 제대로 노출된 적도 없다.



반 총장이 유력 대선 주자로 거론되던 얼마 전과 지금 국내 정치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반 총장이 출마를 결심한다 해도 기반으로 삼을 정당이 눈에 띄지도 않는다. 반 총장은 "내년 1월 중순 귀국 후 어떻게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최선일지 의견을 들을 것"이라고 했었다. 반 총장이 출마한다면 당장 대선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유권자들은 세계적 외교관이지만 정치인으로선 신인과도 같은 후보를 평가해야 한다. 처음 있는 일이다. 반 총장의 진로를 주목한다.



[세계일보]

8. ‘발등의 불’ 양극화 해소, 정부 발 벗고 나서야

사회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우울한 통계가 또 나왔다. 어제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6’에 따르면 지난해 ‘일생 동안 노력한다면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긍정적인 응답 비율이 21.8%에 그쳤다. 외환위기 시절인 1999년 21.7% 수준으로 추락한 것이다. 긍정 비율은 1994년만 하더라도 60.1%였다. 반면 비관론자는 1994년 5.3%에서 지난해 62.2%로 수직 상승했다. 개천에서 용이 나기 힘든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본인 외에 자녀 세대에게로 흙수저가 되물림된다고 믿고 있다는 점이다. 자녀 세대의 계층 상향 이동 가능성에 대해 10명 중 5명이 비관적이었고, 낙관적인 응답자는 3명에 불과했다. 특히 결혼·출산 연령대인 30대는 더 심했다. 비관적인 응답이 10명 중 6명에 달했다. 2006년 3명보다 두 배나 불어난 셈이다. 세계적 저출산율에 육아부담뿐만 아니라 자녀 세대의 삶에 대한 비관 전망이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웅변한다.

양극화가 전방위로 확산된다는 사실은 각종 통계에서 드러나고 있다. 지난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5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에선 부모의 학력이나 소득 수준이 자녀의 학업 성적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격차가 완화되고 있는 주요 선진국의 추세와는 정반대였다. 이런 상황에서 불황을 맞아 소득 격차마저 더욱 벌어지고 있다. 올 3분기 극빈층 가구의 가처분소득은 급감했으나 최상위 가구는 올 들어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경기 침체의 직격탄이 저소득층에 집중되고 있다는 뜻이다.

양극화 확대는 정부의 복지제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매년 급팽창하는 복지예산의 전면적인 수술이 시급하다. 복지예산은 저소득층에 무조건 퍼주기보다는 그들이 계층 이동을 할 수 있도록 사다리를 놓는 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노동개혁 역시 계속돼야 한다.

양극화 해소가 악화일로를 걷는 것은 대책이 겉돌고 있다는 뜻이다. 사회갈등이 커져 ‘양극화의 촛불’이 횃불로 번질 수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한국일보]

9.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게 꽉 막힌 계층 상승 통로

열심히 일하면 계층 사다리를 딛고 올라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크게 감소했다. 갈수록 튼튼해져야 할 계층 상승 사다리가 도리어 허약해진 모양새다. 이대로 가면 사회의 역동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통계청이 12일 밝힌 ‘한국의 사회동향 2016’에 따르면 지난해 자녀 세대의 계층 상향 이동 가능성에 대해 10명 중 5명이 비관적으로 보았다. 비관적으로 본 응답자는 2013년만 해도 10명 중 4명에 그쳤으니 그 사이에 계층 사다리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줄어든 셈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결혼ㆍ출산 결정 연령대인 30대 10명 중 6명이 비관적으로 보았다는 사실이다. 2006년만 해도 10명 중 3명만 비관적으로 보았다. 이들의 좌절은 결혼 및 출산 문제에 영향을 주고 우리 사회의 지속성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응답이 남성 16.6%, 여성 13.7%밖에 되지 않았으니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또 하나 눈여겨볼 응답은 가구소득 수준 400만원 이하 집단의 세대 간 계층 이동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 답변이 600만원 이상 집단에 비해 3~10%포인트 낮은 점이다. 소득이 낮을수록 희망이 커야 하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 반대로 나타났다.

이번 자료는 금수저, 흙수저 등 부모 자산에 따른 신계급론적 인식이 한국 사회에 정착했음을 확인시킨다. 저소득층이 중산층 이상으로 올라선 비율이 2014년에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는 연구 결과 등을 보면 신계급론이 틀렸다고 말하기 어렵다. 계층 상승 사다리로 작동했던 교육 또한 부모의 경제력에 크게 좌우되는 마당이니, 젊은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라고 하는 것조차 어딘가 공허하다.

전문가들은 노력이 핏줄을 넘어설 수 없는 닫힌 사회의 도래를 경고해 왔다. 그런 사회에서 화합과 안정을 꿈꾸고 구성원들의 활기찬 노동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그런 만큼 정치권과 기업은 이번 통계의 의미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노동의 대가를 충분히 인정하고 비정규직을 줄이는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마땅하다. 촛불집회에서 우리 국민이 권력의 잘못을 꾸짖은 것이 결국 이 땅에 희망을 다시 불러오자는 것이었던 만큼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잘살 수 있는 튼튼한 통로를 만들어 가야 한다.


[경향신문]

10. 해운동맹 가입 실패·미 금리 인상 파장, 경제가 불안하다

미증유의 사태에 온통 시민의 눈과 귀가 쏠려 있다. 심각한 위기에 처한 작금의 경제를 살리는 데 필요한 관심을 빼앗기고 적절한 대책의 절실함을 잊지 않을까 우려된다. 적어도 한국 경제에 관한 한 호재는 보이지 않고 악재만 쌓여가고 있다. 최근 새로운 악재 소식이 들렸다. 한진해운이 청산절차를 밟고 있는 가운데 현대상선마저 국제해운동맹 가입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현대상선은 그제 “국제해운동맹인 2M과 협상을 벌여 화물적재공간 공유협정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회사 측은 “공동노선을 운영하며 영업력을 높일 수 있는 사실상의 해운동맹 가입”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현대상선이 정식회원 대우를 받는 계약이 아니다. ‘셋방살이’ 계약으로 언제든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약정에 불과하다.



정부는 당초 국내 1위, 세계 7위인 한진해운에 대한 여신지원을 중단하면서 현대상선을 세계 5위의 해운사로 키우겠다고 발표했다.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을 현대상선이 인수토록 하고, 화물 이탈도 막겠다고 했다. 그러나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은 외국 선사의 손으로 넘어갔다. 해운 물량도 대부분 현대상선이 아닌 외국 선사로 이탈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정부의 전망이 모조리 어긋난 것이다. 말잔치만 벌인 정부가 제대로 조치한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 묻고 싶다.

이번주에 또 다른 악재가 기다리고 있다. 13~14일 열릴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정책금리를 올릴 것이 확실시된다. 인상 폭만이 변수다. 미국 금리 인상을 앞두고 외국인들은 지난 11월 한국 주식시장에서 1조원 이상을 팔아치우며 ‘셀코리아’로 돌아섰다. 자금 이탈속도가 빨라질 것이 우려된다. 이 때문에 15일로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는 딜레마에 빠졌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1300조원에 달한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 맞춰 국내 금리를 올렸다가는 가뜩이나 어려운 가계를 빚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금리 인상이 소비 위축을 가져오고 다시 경제를 얼어붙게 만드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책연구원은 미국의 금리 인상과는 반대로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권고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국제자금시장의 흐름과 엇박자를 내면서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 정부가 엉거주춤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갖가지 경제지표들이 나쁘다. 내년 경제 전망도 어둡다. 경제성장률 전망이 2% 중반으로 하락하더니 일부 증권사는 1%대, 심지어는 제로성장 가능성도 제시하고 있다. 소비, 투자 등 경기지표도 하락하고 있다. 일자리 감소도 큰 문제다. 그런데 경제를 주도적으로 이끌 컨트롤타워가 아직도 부재 중이다. 탄핵 정국이라고 경제 부처가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경제가 벼랑 끝에 매달려 있다.




주요 신문칼럼



1. [매일신문][매일춘추] 결정의 순간

“주사위는 던져졌다!” 카이사르 장군의 이 한마디로 군사들은 루비콘 강을 건너며 로마 제국의 역사를 바꾸었다. 승산이 없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강을 건넜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처럼 위대한 리더들의 결정 의지에는 남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최근 읽은 ‘위대한 결정’이란 책의 저자 앨런 액셀로드는 이를 ‘루비콘 요소’라 칭했다. 우리 삶은 늘 결정의 순간에 놓여 있고 결단력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좌지우지된다.

인생의 가장 큰 결정의 순간은 언제였나? 내게 그 시절은 고등학교 때였다. 학업에 좀 더 정진하여 의사 같은 전문직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가 아니다. 당시 간절히 원했던 ‘음악’의 길을 선택하지 못했다는 후회이다. 나의 결정엔 나 자신은 없었다. 현실적인 문제, 부모님의 반대에 별다른 반항 없이 수긍했었다. “당시 어떻게든 밀어붙여 봐야 했었는데….” 지금도 과감한 승부수를 던지지 못했던 그때가 아쉽다. 그 결과, 난 무대를 동경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다.

현재 나의 업무도 늘 결정의 연속이다. ‘어떤 공연을 기획해야 관객들의 선호도가 높을까?’, 반대로 ‘대중성은 부족하지만 순수예술 발전을 위한 기획이 필요할까?’라는 선택의 기로에 자주 놓이게 된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결정 후 타인들의 판단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하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만족시키는 일거양득의 결과를 생각하지만, 쉽지 않다. 선택의 시간이 길어져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후 소신껏 믿음을 가지고 진행했던 것들에 대한 결과는 대다수 양호했다.

결정은 항상 우유부단함을 동반한다고 말한다. 무언가를 선택하고자 하면 분명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사람은 늘 선택하지 못한 결과에 대한 보상을 생각한다. 우유부단함은 신중함과 혼동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둘은 엄연히 다르다. 우유부단함은 자신의 욕심, 책임에 대한 회피의 다른 성향이다. 신속한 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우유부단함은 타인과 본인에게 피해를 입힌다. 반면 신중함은 자신의 책임에 대한 고민을 시작으로 정확한 인지를 기본으로 한다. 이를 기반으로 단호한 결정과 실행을 요구한다. 

“대통령이 어떤 목표를 이루고자 한다면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이 우유부단하면 온갖 문제가 발생한다.” 전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말했다. 어떤 결과든 전혀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보다 나쁜 것은 없다. 역사 속의 드러나는 큰 결정들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큰 위험과 결정의 책임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루비콘 요소의 또 다른 의미는 ‘용기’이다. 결정의 순간에 자신감을 가지고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가진다면 설령 기대했던 바가 아니더라도 더 큰 후회는 없을 것이다.



2. [서울신문][장수철의 생물학을 위하여]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과 살아 있다는 것

최근 외신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현재 치료가 불가능한 암을 앓고 있는 영국의 14세 소녀가 아버지의 반대를 이겨내고 자신이 원하던 대로 미래의 치료를 기약하며 냉동인간이 됐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만 100명 이상이 영국의 소녀처럼 미래를 기다리며 냉동 상태로 보관돼 있다고 한다.

생물은 생명현상을 나타내야 한다. 그래야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생명현상은 물질대사와 번식 활동을 포함한다. 동물은 물질대사를 위해 숨 쉬고 소화하고 심장이 뛰며 배설을 한다. 그렇다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냉동인간은 살아 있는 걸까 아니면 살아 있지 않은 걸까?

박테리아는 가히 적응의 달인이라 할 정도 다양한 환경 속에서 생존할 수 있다. 그런데 필수적인 영양물질이 부족하게 되면 이런 박테리아도 살기 어려워진다. 일부 박테리아는 이런 상황에서 특수한 구조인 내생포자를 형성해 ‘죽은’ 상태를 만든다. 마치 냉동인간 같은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내생포자는 세포 내 모든 구조는 없어진 상태에서 염색체만 여러 겹의 벽으로 둘러싸인 구조로, 웬만한 환경 조건에 노출돼도 이겨낼 수 있다. 심지어 끓는 물에서도 살아날 수 있을 정도다. 박테리아는 이 상태로 수백 년을 견딜 수 있다. 그러다가 유리한 환경에 노출되면 물을 흡수해 대사를 시작하면서 생명 현상을 나타낸다.

또 박테리아는 죽은 상태로 공기의 흐름을 타고 최상층 대기에서 며칠에서 몇 주일까지 머무를 수 있다. 고공 정찰 비행기나 고(高)고도에 띄운 열기구를 통해 채집하거나 아시아에서 불어온 바람이 도착한 아메리카 대륙의 높은 산에서 얻은 공기 시료에서 이러한 박테리아들이 흔히 발견된다. 죽어 있던 박테리아는 채집돼 낮은 고도로 내려온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생명의 특징을 나타낸다.

꽃은 수정이 일어나는 속씨식물의 기관이다. 수정된 세포는 나중에 식물이 되는 배를 형성하는데 이 배와 영양물질을 공급할 배젖을 단단한 껍질로 둘러싸면 종자가 형성된다. 종자는 형성되는 과정에서 물의 함량이 종자 무게의 5~15%로 감소하는데 이 정도면 어떤 생명현상도 일어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종자의 ‘휴면’ 상태는 불리한 조건을 이겨내는 데에 유리하다. 땅속에 묻혀 있으면서 적절한 환경 조건이 만족될 때까지 종자는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한 야자수 종자는 2000년을 견딘 후 발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과학자들이 편형동물들을 밀폐된 통에 넣고 낮은 농도의 산소에 노출시킨 후 이들의 변화를 관찰했다. 이들 편형동물은 서서히 움직임이 줄어들다 완전히 멈췄는데 이때는 물리적인 자극을 주더라도 반응하지 않았다. 이후 산소의 농도를 증가시켰더니 이 동물들은 소생해 ‘휴면’ 상태에서 깨어났다.



2005년 발표된 한 논문에서는 생쥐가 낮은 농도의 황화수소 기체를 마시게 한 연구 결과가 보고됐다. 이 기체를 마신 생쥐는 활동이 느려졌고 호흡과 심장박동도 감소했다. 또 체온이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아 체온조절능력이 사라진 것으로 추론했다. 이후 이 기체를 제거하자 생쥐의 모든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황화수소 기체를 마신 뒤 생쥐는 ‘활동 유예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죽은’, ‘휴면’, ‘활동 유예상태’ 등의 단어로 표현된 생물들의 상태는 생물이 생명은 유지하고 있지만 살아 있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생물은 항상 살아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과 ‘살아 있다는 것’은 다를 수 있다.

요즘 들어 민주주의도 생물과 비슷한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매주 토요일마다 촛불로 살아 움직이며 생명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주는 주권자 국민들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무한한 생명력을 제공하는 원동력 아닌가 하는 생각에 깊은 외경심이 든다.



​3. [서울신문][씨줄날줄] 세계유산 추진 내포 천주교 성지/서동철 논설위원

내포(內浦)는 지금의 충청남도 서쪽 가야산 안팎의 10개 고을을 지칭한다고 이중환(1690~1752)은 ‘택리지’(擇里志)에서 설명했다. 태안, 서산, 당진, 홍주, 예산, 덕산, 결성, 해미, 신창, 면천이 여기 해당한다. 내포는 바닷물이 내륙으로 깊숙이 드나드는 감조하천(感潮河川)의 영향권을 뜻하는 일반명사였다. 이것이 한쪽으로 바다와 만나고 다른 한쪽으로 평야가 넓어 살기 좋은 이 지역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탈바꿈했다.



그런데 가톨릭 교회에서는 아산, 온양, 신창, 예산, 대흥, 면천, 당진, 덕산, 해미, 홍주를 상부 내포라 하고, 태안, 서산, 결성, 보령, 청양, 남포, 비인, 서천, 한산, 홍산을 하부 내포라고 부르기도 한다. 철종 12년(1861) 베르뇌 주교가 조선교회를 8개 본당으로 나누면서 다블뤼 주교가 상부 내포, 랑드르 신부가 하부 내포 전교를 맡도록 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천주교회사는 내포교회의 발상지로 예산 신암면의 여사울 성지를 지목한다. 한국천주교회 창설자의 한 사람인 권일신으로부터 교리를 배우고 훗날 ‘내포의 사도’로 떠오른 이존창(1752~1801)의 고향이다. 이존창은 정약종 등과 함께 체포되어 공주 황새바위에서 순교했는데, 이웃 당진 출신의 우리나라 첫 신부인 김대건의 할머니는 그의 조카딸이다.

한국 천주교는 잘 알려진 것처럼 양반층 지식인들의 학문적 호기심에서 출발해 종교로 발전했다. 이승훈이 베이징에서 영세를 받고 돌아와 한국 최초의 교회를 세운 것이 정조 8년(1784)이었다. 내포 지역 전교는 이로부터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내포 천주교는 김대건 집안과 같은 양반층이 없지 않았지만 특히 양인 계층에서 급속히 퍼졌다.

내포에서 천주교가 번성한 이유를 학계는 이렇게 설명한다. 바다와 평야를 끼고 있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내포는 각종 물산이 모이는 지리적 이점으로 상업 기능 또한 발달했다. 재산을 축적하는 양인이 늘었고, 외지인과의 접촉도 잦아짐에 따라 새로운 문물에 대한 지적 호기심도 높아졌다. 그럴수록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고 가르친 천주교 교리가 마음을 움직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역사에 걸맞게 당진에는 김대건 유적 솔뫼마을, 신리 다블뤼 주교 유적, 합덕성당, 서산에는 해미읍성 순교지와 동문동 성당이 모여 있다. 여기에 보령 갈매못 순교지, 천안 성거산 교우촌터, 예산성당, 논산 강경성당, 아산 공세리성당, 부여 금사리성당 등 수많은 유적이 있다.

내포의 천주교 성지를 한데 묶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는 소식이 지난 주말 들렸다. 내포 천주교의 역사는 종교가 어떻게 전파되고 다시 토착화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값진 사례다. 더불어 한국 천주교가 ‘가톨릭 문화유산’의 보존에도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4. [조선일보][만물상] '개천 龍' 사라지는 사회

입시 철 신문 사회면을 보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시절이 있었다. 행상하는 홀어머니 모시고 나무 궤짝 책상 삼아 공부한 학생, 공장에서 일하는 아버지 밑에서 학원도 못 가본 학생이 대학 입시에서 수석 합격했다는 스토리를 읽었을 때다. '교과서와 헌 참고서로만 공부했다'는 그들 얘기를 들으며 "나도 언젠가는" "우리 아이도 언젠가는" 하며 꿈을 키운 이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1960~70년대쯤 이야기다.



2004년 서울대에서 '누가 서울대에 들어오는가'라는 자료를 냈다. 1970년부터 2003년까지 서울대 사회과학대 입학생 1만2500명의 가정환경을 분석한 보고서다. 33년 동안 고소득 자녀 입학은 17배 늘었고, 농어촌 학생 비율은 그동안 5분의 1 이하로 쪼그라들었다는 게 연구 요지다. 그동안  소득이 늘고 농촌 인구가 줄기는 했지만 정도가 심하다. 그리고 다시 13년이 지난 올해, 서울대 신입생 절반 이상이 특목·자사고와 강남 지역 학생들로 채워졌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자녀 학력을 결정하는 현상은 선진국에선 오래된 사회문제다. 미국과 영국 같은 나라는 저소득층 자녀 학력을 끌어올리고 입시에서 우대하는 정책을 폈다. 우리도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정권마다 새 교육정책을 시도했다. 그런데 우리는 제도를 바꿀수록 가난한 집 학생이 불리해진다. 학교 현장에 새 정책이 뿌리내리기 전 학원에서 핵심을 뽑아내 가르치기 때문이다. 고액(高額) 학원을 다녔는지가 입시 성패를 가른다.



사(私)교육 시장 규모가 한 해 18조원이라고 정부는 말한다. 하지만 부모들이 체감하는 부담은 그 배(倍)다. 지난해 서울 시민 1000여 명에게 가장 큰 관심이 뭐냐고 물었더니 65%가 '자녀 사교육비 증가'라고 답했다. 아이를 낳아 대학까지 보내는 데 드는 비용이 3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엄마 덕에 체육 특기생으로 부정 입학한 스무 살 젊은이가 "돈도 실력"이라고 큰소리치는 세상이다.



그래도 우리가 선진국보다는 교육을 통한 사회 이동이 쉬운 나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OECD조사를 보니 우리 사회에서 부모의 학력·소득이 자녀의 성적에 미치는 영향력(44점)이 미국(33점)·덴마크(34점)·영국(37점)·일본(42점)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선진국은 부모 소득이 자녀 성적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주는데, 우리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한국 사회를 떠받쳐온 '교육 사다리'가 작동을 멈췄는데도 나라를 이끄는 분들은 정권 쟁탈에만 관심 있지 무엇이 고장 났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고르도

다람쥐원숭이 ‘고르도(Gordo)’가 1958년 12월 13일 미사일에 실려 우주로 날아갔다. 플로리다 케이프 커내버럴 대서양 미사일기지. 미사일은 미국 해군이 개발한 50톤급 중거리탄도유도탄(IRBM) 주피터 AM-13이었다. 순항미사일 기술과 로켓 기술이 구분되지 않던 때였고, 고르도가 탄 것은 애초에 전략무기로 개발된 거였다.



그가 탑승한 자리는 기폭장치가 실리는 탄두부 노즈콘. 키 30cm 몸무게 1kg 남짓의 남미산 원숭이 고르도는 건강 상태나 훈련 성적(?) 못지않게 신체조건이 실험에 적합했다. 고르도의 임무는 무중력 공간에서 포유 생명체가 어떤 영향을 입는지, 무사히 귀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거였지만, 그 발사 실험에는 공개되지 않은 더 많은 목적들이 있었을 것이다. 

고르도는 미 해군 소유물이었고, 훈련 및 발사 주체도 미항공우주국(NASA)이 아니라 그들이었다. 고르도에게는 뇌파와 호흡 맥박 체온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장비들이 장착됐다. 가죽으로 속을 댄 플라스틱 헬멧과 우주복이 입혀졌고, 특수 제작된 고무 침대에 팔 다리까지 단단히 고정됐다. 중력압 등을 견디게 하려는 필수적인 조치였지만 발버둥치지 못하게 하려면 어쩔 수 없기도 했을 것이다.



앞서 누군가는 그를 맡아 밥도 주고 만져도 주고 건강과 컨디션을 살폈을 것이다. 떠나는 그에게, 사람에게 하듯, 건투를 빌고 행운을 기원했을지 모르겠다. 레수스원숭이 ‘알버트’가 독일이 개발한 V2로켓에 실려 우주로 처음 발사된 건 1949년이었다.

주피터의 고르도는 이륙 후 약 15분간 약 2,400km를 비행했다. 고도 500km 대기권 밖 공간에 닿은 뒤 제 몸무게의 10배가 넘는 중력압을 견디며 생환했다. 하지만 미사일은 착륙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 남대서양에 추락했고, 미 해군은 수색 6시간 뒤 작전을 중단했다. 

발사 직후 고르도의 호흡과 맥박이 약하게 불안정했으나 이내 정상을 회복했고, 이후로는 우주비행을 즐겼다고 미 국방부는 공식 발표했다. 

고르도는, 한 해 전 소련 스푸트니크 2호의 우주 개 ‘라이카’가 고온과 스트레스로 숨진 것과 달리, 인간 우주비행사의 무사귀환 가능성을 제 목숨으로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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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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