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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비선 국정개입 의혹 수사, 박지만 검찰 출석

■ 땅콩회항,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거짓말 논란

■ 일본 중의원선거 아베의 압승과 한일관계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비선 국정개입 의혹 수사, 박지만 검찰 출석

 

[한국일보 사설-21041216화] 동생ㆍ측근 조사, 대통령은 국정스타일 성찰해야

 

어제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회장이 검찰에 출석해 청와대 문건 유출 파문과 관련한 조사를 받았다. 참고인 조사이긴 하나 그 상징적 의미가 적지 않다. 앞서 박 대통령의 의원 시절 비서실장인 정윤회씨, 청와대 문고리 권력의 한 사람인 이재만 총무비서관도 이른바 십상시(十常侍) 모임 문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비선 실세와 대통령 측근의 인사개입 등 국정농단 의혹에서 시작된 문건 파문은 대통령 측근과 동생 그룹의 권력 암투설로 비화해 현재로선 끝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문건 유출 의혹을 받던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최모 경위가 지난 13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회유를 시사하는 유서를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청와대 문서 유출이 가볍지는 않으나 자살에 이르게 할 만큼 중대범죄인가 하는 점에서 배경이 의심스럽다. 청와대 특별감찰에서 문제의 청와대 문건 작성ㆍ유출의 주도 인물로 지목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에 대한 청와대의 조작 의혹 등 문건 파문이 또 다른 문제를 파생시키고 있다. 살아있는 권력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추문이 끝이 없으니 검찰 수사로 마무리될 수준을 넘어섰다.

 

정윤회 문건에 적시된 십상시 모임과 인사개입 의혹은 근거가 없다는 게 검찰의 결론이라는 말이 파다하지만, 승마협회 감사와 관련한 문체부 국ㆍ과장 인사 등 정윤회씨와 관련한 구체적인 의혹은 해명돼야 한다. 대통령 말처럼 십상시 국정농단이 근거가 없다면 문고리 권력에 대한 음해나 마타도어용으로 작성된 것인지 그 배경도 밝혀져야 할 것이다. 앞서 청와대는 특별감찰에서 조응천 전 비서관이 주도했다는 이른바 7인 모임이 문제가 된 청와대 문서의 작성과 유출에 관여했다는 결론을 낸 것으로 알려졌고, 이 7인 모임에는 박지만 회장의 측근이 포함돼 있다. 반면 부인 서향희씨 등 박 회장 주변 사람에 대한 동향 문건 128쪽이 시중에 새나가 유출경위서까지 작성됐지만 문고리 3인방 중 한 사람인 정호성 제1 부속비서관과 민정수석실에서 묵살됐다는 주장이 어제 국회 긴급현안 질의에서 나왔다. 청와대 문건 작성ㆍ유출을 매개로 한 권력 암투설이 나오게 된 이유다.

 

박 회장의 소환 조사로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고 있는 시점에서 박 대통령이 통찰해야 할 대목은 대통령 주변에서 진행된 파워게임과 그 원인이다. 결국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인사 등용과 이에 따른 인사 참사, 그럼에도 책임지는 이 없는 인사 난맥상이 부른 결과가 아니고 무엇인가. 사건 초기만 하더라도 ‘근거 없는 얘기’ ‘찌라시’로 치부해 온 박 대통령이 주변 권력의 암투, 청와대 조작, 회유설로 확대된 어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는 이 사안에 대해 말이 없었다. 김기춘 비서실장과 부속실 3인방 등 주변 측근의 퇴진 결단, 투명한 국정 운영을 위한 쇄신책, 특검까지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지 않고서 민심이 납득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41216화] 동생의 검찰 출석에도 ‘내 길’만 고집하는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씨가 15일 검찰에 출석했다. 참고인 신분이라고는 하지만, 집권 2년차에 대통령 친동생이 ‘국정개입 의혹’에 휘말려 검찰 조사를 받는 것 자체가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대통령 직계가족까지 은밀한 권력투쟁에 뛰어들 정도로 청와대의 국정운영이 얼마나 비밀스럽고 폐쇄적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박지만씨는 검찰에 들어가면서 “사실을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이 이렇게까지 번진 가장 큰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있지만, 대통령 동생이 권력투쟁의 한 축으로 거론되는 데 대해선 박지만씨 역시 엄중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 따라서 자신 또는 누나인 박 대통령이 유리해지도록 검찰 조사를 활용하려 한다면 국민을 두번 속이는 일이다.

 

동생이 검찰에 출석한 바로 그날 오전에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직계가족이 비리 등의 이유로 검찰 조사를 받을 때 전직 대통령들 역시 침묵하긴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침묵은 전직 대통령들처럼 국민에게 미안하고 송구스러워서라기보다는, ‘찌라시 같은 권력개입 의혹’엔 한 치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인 것처럼 읽힌다. 친동생이 ‘비선 논란’의 한쪽 당사자로 지목될 정도로 권력 내부의 암투가 심했는데도 이에 대한 인정과 반성의 기미는 보이질 않는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의 이런 인식과 태도로는 지금의 시국을 풀어나갈 수 없다는 점이다.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이 언론에 처음 보도된 지 2주일이 지났고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일선 정보경찰관이 목숨을 끊는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대통령은 참담해하는 민심을 수습하기보다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내 길을 가겠다’는 고집을 굽히지 않는다. 이 사안은 유출 경위를 밝히는 일보다, 대통령이 문제를 직시하고 정치적인 결단을 내리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러나 비서 3인방에게 의존해온 비정상적이고 투명하지 못한 국정운영 방식을 고치라는 호소에 대통령은 여전히 귀를 막고 있다.

 

동생이 검찰 조사를 받으러 나간 날, 무겁게 침묵하는 대통령에게서 국민이 ‘아픔’보다 ‘아집’을 먼저 읽는 건 슬픈 일이다. 박 대통령은 이제라도 여론의 비판에 귀를 열고 적극적으로 청와대 인적 개편과 시스템 재정비에 나서야 한다. 대통령 스스로 바뀌지 않고는 친동생이 열번 백번 검찰에 나가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중앙일보 사설-20141216화] 철저한 수사가 또 다른 의혹 막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이 15일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다. 역대 대통령 친인척들처럼 비리 혐의는 아니다.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문건 유출 사건의 참고인 신분이다. 하지만 그는 각종 의혹이 제기된 과정에 연결돼 있다. 박 회장은 지난 3월 정윤회씨가 오토바이 운전자를 시켜 자신을 미행했다는 얘기를 주변에 했다. 이를 바탕으로 시사저널이 미행설을 보도했다. 이는 곧 박지만-정윤회의 암투설로 번졌으며 청와대의 ‘10인모임 문건’과 더불어 비선실세 의혹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정윤회씨는 미행설이 날조라며 시사저널을 고소했다. 정씨는 박 회장이 갖고 있다는 오토바이 운전자의 자술서 공개와 박 회장과의 대질신문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박 회장 측은 자술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박 회장은 “미행당한 것은 사실이며 입증자료도 있으나 자술서는 제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또 신문사 기자로부터 자신과 관련된 청와대 동향보고서 100여 건을 받은 것으로 보도됐다. 이에 대해서도 박 회장 측은 정윤회 문건과 무관한 내용이라는 이유로 검찰에 제출하지 않았다.

 

 박 회장은 검찰에 출두하면서 “알고 있는 사실대로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알고 있는 사실뿐 아니라 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검찰도 관련자들의 주장이 다른 만큼 누구 말이 맞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박 회장과 정씨의 대질신문도 필요하다. 철저한 수사만이 대통령 주변 인물들의 스캔들이 번식할 ‘싹’을 자를 수 있다.

 

 ‘10인모임’의 실체는 없는 것으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많은 국민은 여전히 의혹을 갖고 있다. 박지만, 정윤회, 이재만, 조응천 등 등장 인물이 모두 대통령의 측근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편을 나눠 자신들에게 유리한 주장만 펴고 있다. 실체적 진실이 어떻든 간에 국민 눈에는 권력실세들의 암투로 비치고 있다. 검찰은 이들의 서로 다른 주장을 얼버무려 적당히 수사를 끝내선 안 된다. 경험칙상 소극적 수사는 또 다른 의혹을 불러오고, 결국 국회 조사나 특검으로 이어져 국력 낭비를 초래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사설-20141216화] 청와대, 대통령의 눈·귀 가리려 했나

 

청와대가 청와대 행정관 비위 문건과 박지만 관련 문건 등이 유출된 후 문건 유출 경위서를 작성했으나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고 묵살했다는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다. 이 경위서는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의 유출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청와대 비서진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려 했다는 얘기로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경위서 묵살 뒤 정윤회 문건은 실제로 유출됐기 때문이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 측도 이른바 ‘박지만 문건’ 유출 사실을 청와대에 알렸으나 배척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청와대의 보고체계가 붕괴되고 기강 해이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이 같은 경위서 방치는 비선 실세 국정개입 의혹 사건에서 파생물이다. 박 회장 소환 조사 등 정점에 이른 검찰 수사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새 의혹을 제기한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의원은 청와대가 경위서 작성 후 대통령 보고를 위해 당시 오모 행정관을 통해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에게 전달했으나 정 비서관이 이를 묵살했다고 밝혔다. 정윤회 문건의 존재와 내용을 박 대통령이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해 경위서를 보고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박 의원은 주장했다. 그렇다면 비서진이 비밀 노출을 우려해 내부 경고등을 스스로 꺼버린 격이다. 최근 민정수석실의 난데없는 감찰과 ‘7인회’ 부각 등 비정상적 행태가 청와대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배경과 내막을 짐작하게 한다. 이 모든 혼란은 정씨 및 ‘문고리 3인방’과 박 회장 간 권력암투설 맥락 속에서만 해석이 가능하다.

 

황교안 법무장관도 국회 답변을 통해 경위서 존재를 확인하고 철저한 수사를 강조했다. 그러나 경위서 묵살은 법적 시비의 대상이 아닌 만큼 검찰 수사로 제대로 규명될지 의문이다. 게다가 검찰은 지금 청와대의 의중에 따라 ‘가이드라인’ 수사를 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먼저 청와대가 나서야 한다. 묵살 경위와 배경을 철저히 조사하고 엄중히 책임을 물려야 한다. 청와대 조사가 미진하다면 국정조사나 특검을 도입해서라도 진상을 밝힐 필요가 있다.

 

한편 박지만 회장이 어제 검찰에 출두함에 따라 박 회장에 대한 조사도 본격화됐다. 박 회장은 “잘못한 게 없다. 알고 있는 사실대로 얘기하겠다”고 밝혔다. 박 회장 ‘미행설’과 ‘7인회’ 등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와 별개로 집권 2년차 대통령의 친동생이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검찰 조사를 받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대통령 친·인척이 수사기관을 들락거리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가.

 

 

[서울신문 사설-20141216화] 檢, 박지만씨 진술 가감 없이 공개해야

청와대 비선권력 논란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박지만 EG 회장이 어제 검찰에 나가 장시간 조사를 받았다.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 신분인 까닭에 검찰이 불러도 안 나가면 그만인 터에 검찰이 부르기도 전에 찾아갔다는 점에서 비선권력 여부와 권력암투설 등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로 자신이 갖고 있던 의혹과 하고자 했던 말들을 쏟아냈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어제 박씨를 상대로 정윤회씨의 국정 개입 의혹, 이른바 ‘박관천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 기자를 만난 경위와 그에게서 건네받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유출 문건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등과 함께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박관천 문건’의 유출 경로로 지목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등 이른바 박 회장 주변 ‘7인회’의 실체 등을 집중 조사했다고 한다. 앞서 세계일보는 박 회장과 그의 가족들 동향 등을 담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 100여장을 입수해 지난 5월 박 회장에게 전달했고, 이후 박 회장은 이들 문건을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에게 건네며 내부 감찰을 주문했다고 얼마 전 보도한 바 있다. 이에 정 비서관은 박 회장 측과 접촉하거나 문건을 건네받은 일이 없다고 부인했었다.

 

엄격한 보안이 요구되는 청와대 내부 문건이 제멋대로 유출돼 경찰과 검찰, 심지어 대기업 홍보팀 직원에게까지 넘어간 상황은 마땅히 공직 기강을 바로 세우는 차원에서 명명백백하게 경위가 가려져야 하고, 그에 따른 법적 책임도 엄하게 물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논란의 핵심은 문서 유출 경위가 아니라 이들 문건에 담긴 내용, 즉 박 회장과 정씨를 포함해 청와대 안팎의 박근혜 대통령 주변 인사들이 제 권세를 이용해 국정을 농단하고 이 과정에서 서로 권력 암투를 벌였는지 여부다. 박관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이 작성한 ‘정윤회씨 동향 문건’이 보도된 뒤로 조 전 비서관과 박 전 행정관, 그리고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비롯한 ‘문고리 권력 3인방’과 정씨 등 이번 파문의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제 자신에게 유리한 주장들을 쏟아내는 데 급급했다. 이로 인해 파문은 그 실체를 드러내기는커녕 궁금증과 의혹만 더 증폭시키는 쪽으로 흘러왔다. 이제 검찰의 박 회장 조사를 계기로 파편처럼 흩어진 퍼즐 조각들을 하나하나 꿰맞춰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비선권력들의 국정 농단 여부를 제대로 가려내야 한다.

 

이를 위해 검찰은 조사 과정에서 나온 박 회장의 진술을 하나도 빠짐없이 국민에게 공개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비록 박 회장이 그저 수사에 도움을 줄 참고인 신분인 데다 수사 과정에서 얻은 진술은 공소장에 담는 것 외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 법리에 부합하겠으나 이번 파문의 정치적 폭발력과 향후 국정 운영에 미칠 파급력을 생각하면 한가하게 법리만 따질 계제가 아닌 까닭이다. 정국은 지금 박 대통령의 수사 가이드라인 제시 논란에다 검찰의 꿰맞추기 수사 의혹이 고개를 들면서 검찰이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아도 국민들을 납득시키지 못할 상황으로 가고 있다. 국회 국정조사와 상설특검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 가고 있다. 문건 유출과 관련해 몇몇을 사법 처리하는 것으로는 결코 매듭지을 수 없는 형국이 된 것이다. 박 회장 진술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만이 그나마 혼란의 확산을 줄일 최소한의 조치일 것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사설

 

[경향신문 사설-20141216화] “박 대통령 소통에 문제 있다”는 국회의장의 쓴소리

 

정의화 국회의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정 의장은 정홍원 국무총리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대통령과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국회와 적극 소통해야 한다”며 “몇 번 정무수석을 통해 여러 의견을 전달했지만, 너무 그런 게 없다”고 박 대통령의 불통을 비판했다. 정 의장이 환기시킨 것처럼 그간 박 대통령은 국회, 야당과의 제대로 된 소통에 눈을 감아왔다. 정 의장도 지적했듯이, 국회에 시급한 법안을 내놨으면 “대통령이 직접 전화하거나 청와대에 초청해 설명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한 노력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기한을 정해 “반드시 통과시켜달라”고 압박하고, 그러다 법안 처리가 늦어지면 모든 책임을 ‘국회 탓’으로 돌려대니 국회의장으로부터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국회, 야당과의 소통까지 갈 것도 없다. 장관과 수석비서관들조차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도 하기 힘든 풍토, 국무회의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통령 말씀’이 유일한 소통으로 간주되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현실로부터 유리되는 것은 불문가지다. 취임 1년 반 만에 처음으로 수석비서관실이 대통령에게 대면보고 기회를 갖고, 장관들이 대통령을 자주 만나게 해달라고 공식 요청하는 것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작금의 ‘비선 국정농단’ 논란은 박 대통령의 소통 부재와 폐쇄적 국정운영이 자초한 것이다. 되풀이되는 인사 실패, 장관·수석비서관은 물론 비서실장조차 대통령을 만나기 힘든 폐쇄성과 비밀주의 온상에서 비선 바이러스가 발호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밀실 인사’와 측근 몇몇에게 의존하는 국정운영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비선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얼마 전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 모임인 ‘아침소리’가 불투명한 국정운영과 소통 부재를 지적하면서 ‘서면보고 최소화 및 대면보고 일상화’ ‘국무회의에서 쌍방향 소통’ ‘대국민 기자회견과 당·정·청 협의 정례화’ 등을 제안했다. 극히 상식적인 제언이 주목받는 것 자체가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낸다.

소통의 정수는 국민과의 대화다. 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직접 소통 방식인 기자회견 일문일답은 취임 후 딱 한 차례 했을 뿐이다. 국가적 과제나 사회적 갈등이 내재된 주요 현안에 대해선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설명하고 민의를 듣는 기회를 늘려야 한다. ‘비선 의혹’과 가신, 친·인척이 얽힌 권력암투 의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설명하고, 물의를 일으킨 인사들을 정리하는 과감한 쇄신책을 제시해야 한다.

 

 

■ 땅콩회항,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거짓말 논란

 

[한국일보 사설-20141216화] 계속 '범죄행위' 생산하는 대한항공과 조현아씨

 

대한항공의 ‘땅콩 리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서부지검이 내일 조현아 전 부사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 검찰은 대한항공이 사건 이후 피해 사무장과 승무원, 일등석 승객을 압박ㆍ회유하는 등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한 것에 대해서도 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앞서 참여연대는 조씨를 항공법과 항공보안법 위반,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강요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대한항공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자료와 참고인 조사 등을 통해 혐의를 상당부분 확인한 상태다. 현재 여론의 관심은 사무장과 승무원에 대한 조씨의 폭언 및 폭행 여부에 쏠려 있고, 검찰 수사도 이 부분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사건 당시 비행기에서 쫓겨난 박모 사무장이 지난 12일 방송 인터뷰에서 “그 모욕감은 겪어보지 않은 분은 모를 것”이라는 말로 자신이 당한 폭행ㆍ폭언의 정황을 설명했다. 같은 날 국토교통부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조씨는 “(폭행은)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했다. 당시 일등석에 탑승했던 승객은 검찰 조사에서 “조씨가 고성을 지르며 무릎 꿇은 승무원을 일으켜 세워 탑승구 벽까지 밀쳤다”고 진술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친구에게 전한 모바일 메신저 내용을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 심각한 것은 대한항공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축소ㆍ은폐하려 한 점이다. 박 사무장은 회사 관계자들이 계속 집으로 찾아와 ‘폭언 등은 없었고 스스로 판단해 비행기에서 내렸다’고 진술하도록 종용했다고 밝혔다. “국토부 조사 담당자들이 대한항공 출신이니 (조사를 해도)짜고 치는 고스톱일 것”이라며 압박한 사실도 털어놨다. 사측은 일등석 승객에게도 “인터뷰를 하게 되면 사과를 잘 받았다고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대한항공은 조씨의 철없는 행동으로 국내외에서 웃음거리가 됐고 불매운동까지 일어나는 등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뻔한 거짓말을 일삼는 조씨나 ‘오너 일가’ 지키기에만 골몰하는 회사 측의 행태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오죽하면 검찰에서 “거짓진술 강요나 협박 등 증거인멸 행위는 사법체계의 권위에 도전하는 중대범죄로 엄벌이 불가피하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기내 소란행위로 항공안전을 위협한 조씨의 행위뿐 아니라 사측의 조직적인 은폐 시도에 대해서도 철저한 진상규명과 엄벌이 뒤따라야 한다.

 

더불어 국토부도 이번 사태를 보다 엄중하게 다룰 것을 주문한다. 조사관 상당수가 대한항공 출신인데다 대한항공 측의 “짜고 치는 고스톱” 발언이 알려지면서 조사의 공정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 만큼 외부 전문가 위촉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한겨레신문 사설-20141216화] ‘재벌 세습’ 놓아두고는 ‘땅콩 회항’ 반복된다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의 파장이 만만치 않다. 그동안 숨겨졌던 사건 전말이 점차 드러나면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행태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더욱 커지고 있다. 조 전 부사장 개인에 대한 사회적 단죄와는 별개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능력과 자질을 검증받지 않은 재벌 3세의 경영 세습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세 자녀 가운데 맏이인 조 전 부사장은 1999년 미국에서 대학을 마친 뒤 곧바로 대한항공에 입사해 7년 만에 임원 자리에 앉았다. 2011년 대한항공의 객실·기내식·호텔사업 등 세 가지 사업본부의 수장 자리에 올랐고, 지난해에는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객실 서비스와 승무 업무까지 총괄하게 됐다. 조 전 부사장이 회사에서 이처럼 빠르게 높은 지위에 올라가게 된 배경은 자명하다. ‘오너 회장의 딸’이기 때문이다.

 

조 전 부사장의 입사와 승진 경로는, 국내 다른 재벌 3세들의 경우도 거의 다를 바가 없다. 경영 능력이나 자질을 검증받지 않은 채 단지 총수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경쟁없이 회사에 들어가 곧바로 경영 세습 절차를 밟는다. 이런 특혜는 그 자체로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해친다. 스스로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회사 재산을 사유물로 여기고, 임직원들을 부속품처럼 대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경쟁을 뚫고 입사해 밑바닥부터 시작한 다른 직원들과 호흡을 맞추기도 어려워진다.

 

재벌의 예외없는 경영 세습은 부정과 부패의 위험까지 태생적으로 안고 있다. 총수 가족의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이 마비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총수 가족이 위험에 빠질 경우 합리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결국에는 위기관리 능력의 총체적 부실도 초래한다. 땅콩 회항 사건이 터진 뒤 대한항공이 보인 졸렬한 대응 방식은 좋은 예다. 게다가 견제받지 않는 총수 가족의 권력과 경영 세습은 기업 이익을 외부로 빼돌릴 위험마저 안고 있어 결국 기업가치의 위험까지 초래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만 독특하게 존재하는 기업 형태인 재벌 체제가 우리 경제의 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한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경제 규모가 이미 커지고 재벌 총수 가족 경영이 3세로까지 넘어가는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단지 총수의 자녀라고 해서 무조건 경영에 참여하고 경영권을 승계받는 관행은 이제 끝나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41216화] ‘대한항공 사태’ 조양호 회장이 결단 내려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의 파문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진실을 은폐하고 회유와 거짓 진술 강요로 사건을 무마하려한 사실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사건 자체보다 사건 이후 대한항공 측의 미숙하고 후진적인 대응이 사건을 더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국민적 비난 여론이 거세지는 것은 당연하며 이는 탑승률과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한항공으로서는 분명히 위기 상황이다. 대한항공의 오너이며 한진그룹의 총수인 조양호 회장의 결단이 어떤 식으로든 내려져야 한다.

 

조 전 부사장 사건은 족벌경영의 폐단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6·25 종전 이후 황무지와 마찬가지였던 한국에서 사업을 일으키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킨 재벌 1세들의 공로는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는 지분으로 순환출자 등의 편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기업을 사유화하고 경영권을 세습하는 풍토는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재벌이라는 소왕국에서 총수는 왕이 되며 자식들은 왕자나 공주처럼 행세했다.

 

한진그룹이나 대한항공 또한 이런 재벌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조 전 부사장의 안하무인격 행동 또한 소속사 직원을 종처럼 여기는 주인 의식에서 비롯된 것임이 자명하다. 외부인들이 지켜보는 공간에서 이런 행동을 했다면 회사 내에서는 더한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대한항공 임직원들이 사태 이후 보인 과잉 충성은 오랜 세월 동안 오너와 임직원들 간에 군신(君臣)과 같은 전근대적인 관계가 형성돼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케 한다.

 

재벌 체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이런 경영권의 세습이다. 대기업이 족벌 세습경영을 하는 사례는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2세, 3세들이 실력과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기업의 위기를 자초할 수 있는 원인이 된다. 이번 사건에서 보았듯이 조 전 부사장은 기업 경영자로서의 자질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사람이다. 그런데도 경력과 경험이 일천한 젊은 나이에 큰 기업의 부사장이라는 자리까지 오른 것은 재벌 3세라는 이유뿐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위기 상황을 타개하려면 조양호 회장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조 회장 일가가 대한항공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게 기업을 살리고 나아가 그룹 전체에 더 피해를 주지 않는 길일 수 있다. 정 어렵다면 한시적으로나마 전문경영인 체제에 맡기는 방안을 고려해 봐야 한다. 대한항공은 1990년대 말에 잇따른 사고로 경영의 문제점을 지적받고 오너가 2선으로 물러난 전력이 있다. 대한항공은 세계 120여개 도시에 취항하고 있는 명실공히 국내 최대 항공사다. 국가의 위상을 위해서라도 더이상의 이미지 추락을 막을 결단이 필요하다.

 

 

■ 관련 칼럼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엄을순(문화미래이프 대표)-20141216화] 진짜 서비스를 찾습니다

일본에서 고급식당에 간 적이 있다. 기모노를 곱게 입은 여자들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더니 다다미방에 우리를 앉힌 다음 개다리소반을 하나씩 놓아줬다. 식당 여성들은 다다미방 끝에 무릎을 꿇고 앉은 다음 그 자세로 엉금엉금 상 앞까지 기어와서 전골이며 생선회며 미역 등을 놓고 갔다. 무릎 꿇고 기어오고 무릎 꿇고 기어갔다. 저렇게 기어 다니면 관절에 무리가 갈 터인데 걱정도 되고 괜스레 그녀들에게 미안도 했다. 같이 간 일행들은 ‘왕이 된 기분’이라며 만족해했지만 난 그날 먹은 음식이 얹혀서 여행 내내 죽도록 고생만 했다. 남자가 무릎 꿇고 저렇게 해주는 경우도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도가 지나친 서비스는 손님을 이렇게 힘들게도 한다.

 

 비 오는 날. 물건 바꾸러 백화점 개점 시간에 맞춰 갔더니 음악과 함께 문이 열리면서 종업원들이 일제히 배꼽인사를 한다. 그 사이를 지나가는데 엄청 민망하더라. 나오는 길에 화장실에 들렀다. 종업원들이 모여 떠들고 있었다. 직원 화장실이었나보다. ‘이 비에 아침부터 쇼핑 오는 여자는 대체 뭐냐? 할 일도 되게 없나보지’. 그렇다. 그들의 화려한 웃음과 배꼽인사가 가슴에 와 닿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진정성 없는 거짓된 감정노동은 고객도 다 안다.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서비스 중 비행기 서비스는 우리나라가 으뜸이다. 외국 항공사와 비교해 일단 말이 잘 통하고 음식도 맞고 친절하다. 땅콩도 잘도 가져다줬다. 그러나 이젠 땅콩 먹기가 꺼려진다. 일등석에 앉아 주문한 땅콩을 봉지째 줬다고 이륙 중이던 비행기를 되돌려 사무장을 내려놓고 다시 이륙하게 한 조현아 전 부사장.

 

 앞뒤 가리지 않고 서비스 교육에 열을 올리면서도 본인은 정작 서비스의 본질도 모르는 여자다. 땅콩을 접시에 담아 주는 일보다도 탑승객들의 귀한 시간 지켜주는 게 훨씬 더 중요한 서비스다. 서비스 매뉴얼이 뭐 별거인가. 서비스받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게 제일 최고다. 교육한답시고 손님들을 무시한 채 제멋대로 비행기를 회항시킨 그녀는 그동안 공들였던 회사 이미지를 한 방에 날려 보낸 거다. ‘임원으로서의 정당한 권한행사’였다는 초기 해명 또한 더 큰 화를 불러왔다.

 

 게이트 앞에 덩그러니 내팽개쳐진 채, 떠나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사무장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승객들 면전에서 당한 모멸감에 치를 떨었을까. 아님 해고당한 후 먹고살 걱정을 했을까. 아마 후자였을 게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프다.

 

 

■ 일본 중의원선거 아베의 압승과 한일관계

 

[한국일보 사설-20141216화] 日군사대국화 기반 조성, 한미중 공동 견제 필요

 

일본 아베 신조(安倍 晋三) 총리의 자민당이 중의원선거에서 압승하면서 주변국의 시선이 일본에 쏠리고 있다. 자민당은 14일 총선에서 무려 291명을 당선시켰다. 여기에 연립 공명당 35석을 합치면 여당이 전체 475석 중 326석을 차지, 개헌안 발의나 참의원에서 부결된 법안 재가결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317석) 이상을 확보했다. 중의원에서 개헌안을 발의한 뒤 참의원에서 부결이 되어도 재가결을 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한 것이다. 이에 따라 아베 총리의 집권이 2018년까지 연장되므로 상당기간 지금과 같은 보수화 기조가 유지될 전망이다. 또 이번 선거에서 참패한 야당이 지리멸렬하면서 당분간 민주당의 재기는 어렵게 되어 아베 정권의 독주를 막을 수 없다.

 

아베 정권은 이미 헌법해석 변경이라는 편법을 통해 길을 터놓은 집단적자위권 행사 용인에 따른 후속 입법 마련 등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해 자위대의 군사작전 범위를 넓히겠다는 계획이나, 무기수출금지 3원칙 폐기 등 군사활동 영역을 넓히려는 작업 등이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주변국들은 한결같이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다. 게다가 아베 정권이 숙명으로 여기는 ‘평화헌법 개정’을 시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따라서 한국이나 중국 등 주변국들과 갈등 수위가 높아질 공산이 커졌다. 독도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등 주변국들과 영유권 분쟁도 잦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아베노믹스의 기조가 강화될 것이다. 이 경우 일본이 양적완화 규모를 추가로 확대할 수 있는데다 엔화 약세는 더욱 빨라질 수 있다. 이는 우리 경제에 추가적인 타격 요인이 될 수있다.

 

하지만 집단적자위권 행사에 대한 일본 내 여론은 좋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찬성비율이 50%를 넘지 않았다. 더욱이 공명당은 아베 정권이 집단자위권 행사를 허용하도록 헌법해석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이견을 보였던 터라 자민당이 독자적으로 밀어붙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본 언론도 “투표율이 극히 낮았던 것을 고려할 때 적어도 개헌 방침이 찬성을 얻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당장 일본 정권의 급속한 우경화 등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아베 정권이 이번 승리를 자신들의 삐뚤어진 역사관에 대한 일본 국민의 지지라고 착각할 경우 사태는 심각해질 수 있다. 특히 일본 내 보수층을 과다하게 의식할 경우 아베 정권이 다양한 무리수를 범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이나 중국 등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일본의 우경화에 철저한 견제를 준비해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41216화] 아베의 압승과 한일관계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이 14일 실시된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이로써 아베 정권은 특별한 돌출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앞으로 4년 더 정권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아베 정권이 박근혜 정권보다 집권 기간이 길어지고, 한국의 대일정책도 다음 정권까지 내다보는 장기적 관점에서 다시 짤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아베 총리의 승리는 이달 초 그가 전격적으로 중의원을 해산하고 재신임을 받겠다는 승부수를 던질 때부터 예견되었다. 하지만 연립정권을 이루고 있는 자민·공명 양당이 이전 의석을 웃도는 의석을 차지할 정도로 압승을 거둔 것은 의외다. 아베 정권이 승리를 거둔 요인으로는 야당이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거를 치렀고, 선거 쟁점이 정당 간에 차이가 없는 경제 문제로 집약되었으며, 반자민 유권자가 대거 기권한 점 등이 꼽힌다. 실제 이번 투표율은 전후 최저를 기록했던 2012년 선거의 59.32%보다 6.66%포인트 낮은 52.66%를 기록했다. 즉 자민당이 자력으로 거둔 승리라기보다 야당의 실패로 인한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아베 정권의 가장 큰 과제는 자신이 이번 선거를 ‘아베노믹스 선거’로 규정했듯이, 역시 경제 살리기다. 아베 총리가 해산 선거를 결정한 명분도 경제회복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큰 소비세율 2차 인상을 내년 10월에서 2017년 4월로 1년6개월 연기하고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겠다는 것이었다. 경제 성적에 따라 아베의 장기집권 여부도 결정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하고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어 있는 에이급 전범을 찬양하는 등 역사수정주의 자세를 보이고 있는 그가 국내 기반 강화를 위해 주변국과 분란을 초래하는 ‘과거사 쟁점’을 활용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로서 주목되는 점은 그가 내년 패전 70돌과 한일협정 50돌을 맞아 일본의 과거 침략 역사를 반성한 무라야마 담화를 훼손하는 ‘아베 담화’를 낼 것인가이다. 이럴 경우 나쁜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할 것이다. 아베 장기정권은 우리에게도 곤란한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역사 문제에 ‘다 걸기’를 해온 지금과 같은 ‘원칙 외교’를 계속할 것인가, 역사 문제와 다른 현안을 구별해 선별 대응하는 ‘실용 외교’로 전환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몰렸기 때문이다. 아베 정권이 장기집권 체제를 구축한 만큼 우리의 대일외교도 근본적인 차원에서 재검토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앙일보 사설-20141216화] 재신임 아베, 한·일 화해협력의 손 내밀어라

 

일본 집권 자민·공명당이 14일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양당이 획득한 의석수가 326석(자민 291, 공명 35)으로 2년 전 총선과 마찬가지로 3분의 2(317석)를 훌쩍 넘어섰다. 야당은 민주당과 공산당이 의석을 늘렸지만 지리멸렬했다. 일본 정치는 상당 기간 자민당 1강(强) 시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보수 정치가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아베 신조 총리는 24일 국회에서 재선출된 뒤 3차 내각을 출범시킨다. 중의원을 개각 3개월 만에 해산한 만큼 각료는 전원 유임시킬 방침이라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아베 총리로선 4년 더 집권할 수 있게 됐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2001~2006년) 이래 장기정권이 탄생할 가능성이 커졌다.

 

  아베 총리가 재신임을 받은 만큼 지론인 ‘전후 체제 탈피’ 작업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헌법 해석 변경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도록 한 각의(국무회의) 결정의 후속 조치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내년에 자위대법을 비롯한 관련법을 개정해 자위대가 해외 전투에도 참가할 수 있는 길을 열 것이 분명하다. 아베 총리는 그제 헌법 개정에 대해서도 “필요성을 호소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개헌을 ‘역사적 사명’이라고 해온 그다. 그러나 실제 개헌에 나설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개헌 발의에는 중의원·참의원 양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고, 국민투표에도 부쳐야 한다. 하지만 연정 파트너인 공명당은 개헌에 소극적이고, 참의원 여당 의석은 3분의 2가 되지 않는다. 아베 총리는 이번 총선에서 금융 완화와 재정 투입, 구조 개혁의 아베노믹스에 대한 신임을 물은 만큼 당분간 경기회복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베 내각의 역사수정주의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군대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은 대표적이다. 자민당 공약집은 “허위에 근거한 이유 없는 비난에 대해서는 단호히 반론하고 일본의 명예, 국익을 회복하기 위해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처럼 계속 국제사회에 위안부 강제동원이 허위라고 알려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내년 3월 중학교 교과서 검정이나 8월 15일 아베의 종전 담화에 반영될 수도 있다.

 

  내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다. 수교는 양국 모두에 이익이었다. 지금은 정치에 관계없이 국민 교류의 시대를 맞고 있다. 아베 총리는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사죄한 고노 담화와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반성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입장에 서서 한국에 진정성 있는 화해와 협력의 손을 내밀기를 기대한다. 우리 정부는 보다 유연하고 창의적인 접근을 통해 한·일 관계 정상화를 모색해야 한다. 관계 정상화는 격동의 동북아 정세 속에서 우리의 외교적 지렛대다. 자유와 민주주의, 법치의 가치를 공유하는 이웃 나라가 성신(誠信) 외교로 돌아오지 못할 이유가 없다.

 

 

 

[경향신문 사설-21041216화] 아베, 한·일 정상화 50년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의 중의원 선거 압승은 한·일관계, 나아가 동북아 안정에 좋지 않은 소식이다. 아베 총리의 승리가 자민당에는 반가운 일이겠지만, 주변국에는 불길한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선거에서 패배했더라면 주변국과의 갈등을 조장해온 외교정책을 성찰하며 화해를 적극 고민할 수 있었던 기회를 그의 승리가 앗아갔기 때문이다.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지 않은 그의 권력을 재확인한다는 건 한마디로 한국에 대한 일격이나 다름없다.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동아시아 패권을 추구하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 이를 견제하는 데 총력을 쏟고 있는 일본의 아베 총리가 각각 내부 권력을 강화하는 현상은 화해보다 갈등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아베 총리의 승리가 일본에 좋은 소식인 것도 아니다. 어떤 권력이든 견제와 감시가 필요하다. 그런데 일본 민주당은 견제라는 소극적 권력도 행사할 수 없는 지위로 떨어졌다. 일본인들의 시선에 야당이 아베 정권의 대안이 되지 못한 결과이다. 이렇게 견제 없는 권력의 탄생은 아베 총리의 질주라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 전망이 우세하지만 실질적 득표율은 30%에 이르지 못한다. 아베 총리의 정책이 전폭적 지지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그런데도 대내외 정책에서 밀어붙이기로 일관한다면 일본의 미래에 먹구름이 낄 수도 있다.

 

아베 총리가 현명하다면 이 같은 승리의 이면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승리는 어떤 의미에서 조급증을 벗어나 여유를 갖고 대외정책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마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오스트레일리아 미·일 정상회담에서 한·일관계 개선을 주문했다고 한다. 이는 아베 총리가 주변국 관계를 더 악화시킨다면 미국에도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아베 정권은 고립될 가능성도 있다. 아베 총리가 승리에 취해 사리분별을 잃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아베 총리를 피할 길이 없게 됐다는 사실은 한국 정부로서 난감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아베 총리 상대하지 않기라는 소극성에서 벗어나 한·일 갈등 최소화를 위한 적극적 전략이 필요하다. 내년 한·일관계 정상화 50주년을 최악의 상황에서 맞이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일 양국 모두 생산적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216화] 아베 총리의 행보를 주목한다

 

엊그제 처러진 일본 중의원(衆議院) 선거에서 아베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이 압승을 거뒀다. 연립 여당인 공명당과 합치면 326석으로 이전에 확보한 3분의 2 의석을 그대로 유지하게 됐다. 하지만 선거비용만 6000억원이나 소요된 이번 총선이 왜 필요했는지 일본에선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투표율만 해도 52.66%로 역대 최저였다. 자민당이 획득한 의석은 291석으로 총선 이전 295석보다 오히려 4석이 줄어들었다. ‘열광 없는 정치신임’(닛케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베 총리는 무엇보다 이번 선거에서 헌법개정이나 역사인식 문제를 선거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오로지 아베노믹스의 평가에 승부를 걸었다. ‘이 길밖에 없다’는 그의 도박은 일단 승리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베 총리는 선거 직후에도 “(앞으로 국정 운영에서)경제를 최우선으로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금 인상과 함께 법인세 인하, 노동규제 완화, 의료 및 농업규제 완화 등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인 성장전략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갈 것”이라고도 밝혔다.

 

하지만 그는 정작 마음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헌법개정을 통한 보통국가로의 이행에 대해선 극도로 말을 아낀다. 단지 “헌법개정을 위해 국민적 논의를 이끌어갈 것”이라고만 언급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승리했지만 유권자들은 외교정책을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다(FT)는 지적도 있다. 주변국 분위기도 물론 환영하지 않는다. 당장 경제를 해결하지 않고 집단적 자위권을 강조하는 것은 그에게 엄청난 리스크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 따라서 경기를 살려 국민의 지지를 얻은 다음 개헌을 꾀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정부가 어제 자민당의 승리 이후에도 안보와 과거사를 분리해 대응하는 두 갈래 대일 외교기조를 유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역사 인식 및 과거사 인식에 대해선 단호하게 대응하고 북핵위협이나 경제 등 협력할 부분은 과거사와 분리해 협조한다는 것이다. 물론 옳은 방향이다. 아베의 일본이 어떻게 변화할지 냉철하게 지켜보자.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16화] 날개 단 아베노믹스… 엔저 어디까지 가나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연립여당이 14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하면서 아베노믹스가 더 힘을 받게 됐다. 중간평가 성격을 띠었던 선거에서 승리해 양적완화 정책을 밀고 나갈 수 있는 더욱 확고한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아베 총리가 선거 기간에 "엔저가 일본 경제를 살리고 있다"고 강조한 만큼 돈 풀기가 지속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 셈이다.

 

최근 유가하락 등의 영향에 따라 엔화가 일시적으로 강세로 돌아섰지만 이마저 반짝 현상에 그치리라는 게 중론이다. 일본은행도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추가 양적완화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내년 물가상승률 2% 달성이 쉽지 않을 경우 세 번째 돈 풀기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엔화약세 추세가 더 강해지고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성장과 인플레이션이 부진하면 (아베가) 엔저 기조를 계속 몰아붙일 것"이라고 진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많은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엔·달러 환율이 이달 말에는 120엔 수준, 내년에는 125엔선으로 오를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내놓았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가뜩이나 불안한 한국 경제의 수출전선에 빨간불이 켜질 게 분명하다. 대기업들은 그나마 글로벌 시장에서의 브랜드 힘을 통해 어느 정도 버틸 만하지만 중소 수출기업들은 이미 한계상황에 직면한 곳이 많다. 15일 국내 증시에서 코스피지수가 한때 1,900선이 붕괴되는 등 출렁인 것도 이런 우려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의 예상과 달리 재정악화로 오히려 엔화약세가 한풀 꺾일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일본 정부가 확장적 통화정책에 따른 재정부담을 느끼고 있어 엔화약세가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에서도 엔화 움직임의 양방향성을 지적하고 있다. 이렇듯 부정·긍정적인 면이 교차하는 만큼 엔화 추이를 예의주시하면서 정부는 물론 기업들도 한발 빠른 대응책을 마련해나가야 할 것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칼럼

 

[한겨레신문 칼럼-세상 읽기/이명원(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20141216화] 오키나와가 아베를 이긴 이유

 

지난 일요일 일본의 중의원 선거에서 오키나와가 승리했다. 전국적으로야 아베가 압승했지만, 오키나와 4개의 선거구에서 자민당이 소멸한 것은 유례없는 충격이다. 오키나와에서 아베 정권은 잇따라 치명타를 맞고 있다.

 

아베 정권의 폭주는 계속될 것인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베는 집단적 자위권의 해석변경, ‘아베노믹스’로 상징되는 소비세 증세, 한국 및 중국에 대한 끝없는 역사전쟁을 초래함으로써 동아시아 정세를 요동치게 하고 있다. 물론 아베는 동맹국 미국을 믿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물론 ‘신형 대국관계’를 지속해야 할 중국과 불필요한 역사전쟁을 벌이는 아베는 미국에도 양날의 칼이다.

 

변수는 중국이다. 중국은 대국이지만 미국의 패권체제에 아직까지는 도전할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은 ‘신형 대국관계’이든 ‘적대적 공생관계’이든 어느 시기까지는 밀월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2014년 국내총생산을 구매력 지수로 환산하면 중국은 이미 미국을 추월해 세계 1위가 되었다. 하지만 중국은 아직도 ‘개발도상국’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반복하고 있다. 그런 중국으로서도 아베의 도발은 용인할 수 없다. 승전 70돌을 맞는 2015년에는 역사전쟁의 형태로 일본에 대한 중국의 검증이 본격화될 것이다. 중국이 올해 ‘난징대학살’을 국가추념일로 지정한 것은 그것의 서막이다.

 

역설적이게도 경이적인 ‘대국굴기’에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중국 자신이다. 중국이 초강대국인 미국에 현실적 위협으로 인식된다면, 이행기 중국의 국가전략은 뜻하지 않은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중국에 위협은 미국만이 아니다. 대중들의 ‘민주주의’ 요구에 대응해야 한다. 그럴 리는 없지만, 오늘의 중국이 민주주의 요구에 잘못된 처방을 제시하게 된다면, 신해혁명 후 군벌이 난립해 외세를 불러들인 비극이 상기될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 인민들의 민주주의 요구를 언제까지 봉쇄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최근 시진핑의 ‘부패와의 전쟁’은 일종의 공포정치다. 정적을 제거하면서 중국 인민들의 불만을 마술적으로 봉합하는 장치다. 한편 대만 총선거에서 집권 국민당은 대패했다. 이것은 ‘일국양제’라는 기치 아래 양안 통일을 모색했던 공산당과 국민당의 신자유주의적 국공합작이 위기에 처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홍콩인들 역시 봉기했다. 홍콩 반환 시 중국은 60년간 ‘홍콩기본법’에 입각해 홍콩의 정치체제를 존중할 것이라 약속했다. 그러나 이런 미니 ‘일국양제’ 약속이 백지화될 위험에 빠지자, 홍콩의 시민들은 ‘우산혁명’으로 봉기한 것이다.

 

현재는 미국이나 중국 모두 미래전략의 불확실성 때문에 타협하면서 갈등하는 시점이다. 이 틈을 일본의 아베가 파고들고 있다는 점도 우리는 알고 있다. 2015년은 한국의 경우 광복 70돌, 중국은 승전 70돌, 일본은 패전 70돌을 맞는 해다. 한일 양국의 경우 국교정상화 50돌을 맞는 을미년으로 갑오년 못지않은 역사적 대회전의 시기가 될 것이다.

 

‘전후체제로부터의 탈각’은 아베의 꿈이자 정치적 신념이다. 그러나 이 꿈은 동아시아에서 오직 아베만이 꿈꾸는 몽상이다. 태평양의 요석(要石)인 오키나와에서 자민당이 전멸했다는 사실을 아베는 상기해야 한다. 아베의 후견인을 자처하는 미국도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오키나와에서 자민당의 퇴출은 ‘전쟁’이 아닌 ‘공존’의 요구야말로 새로운 세기의 시대정신이라는 점을 강력하게 환기시킨다. 오키나와의 승리는 ‘동아시아의 평화공존’을 갈망하는 오키나와인들의 비타협적 결의를 보여준다. 사실 이런 시대정신을 가장 앞장서서 보여주어야 할 곳은 한국이었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중앙일보 사설-20141216화] 소비자 불신만 부른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지난 12일 열린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는 소비자 불만만 키운 반쪽 행사로 끝났다. 미국 유통업계의 최대 할인 행사인 ‘블랙 프라이데이’를 본뜬 이 행사는 시작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 11번가·롯데닷컴·갤러리아몰 등 국내 대표 온라인몰 10곳이 참여해 ‘대한민국이 반값 되는 날’이란 문구를 내걸고 유명 상품을 최대 70%까지 깎아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반값 할인’은 소비자를 끌어오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다.

 

 11번가는 오전 9시 고가 패딩점퍼인 캐나다구스를 50% 할인 판매했지만 준비한 수량은 고작 36벌이었다. 6분48초 만에 품절됐다. 폴스미스 목도리 101개는 2분53초 만에 매진됐다. 할인 판매가 시작되고 2~3분 만에 품절되는 일이 하루 종일 되풀이됐다. CJ몰 등 몇몇 업체는 서버에 과부하가 걸려 한동안 홈페이지에 접속조차 할 수 없었다. 한 쇼핑몰이 15만 개를 발행했다고 자랑한 ‘전 품목 50% 할인 쿠폰’은 최대 할인액이 1만원이어서 ‘속았다’고 분통을 터뜨리는 고객이 많았다. 그럼에도 행사 후 해당 업체들은 자랑만 늘어놓았다. 거래액이 당초 예상한 1000억원을 훨씬 넘는 1500억원이라며 성공작이었다고 자평했다. 소비자 불편·불만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

 

 소비의 글로벌화는 피할 수 없는 대세다. 기업이 독점해 소비자로부터 중간 이익을 취했던 국제 무역 구조는 큰 틀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 개개의 소비자가 동의하지 않는 수준의 중간이익을 취하는 유통 기업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그게 현실로 입증된 게 이번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 때 나타난 국내 소비자의 해외직구 열풍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한국판 블프’가 고작 이 수준이란 게 될 말인가. 그래 놓고 내년에도 또 이런 행사를 열겠다는 말이 나오나. 물론 올해 처음 연 행사가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럴수록 일회성 행사보다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파는 유통업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소비자는 한 번 속아 문 미끼에 계속 입질하는 붕어가 아니다. 하물며 세계 최고의 똑똑한 소비를 자랑하는 한국 소비자들임에야.

 

 

[서울신문 사설-20141216화] 대형마트 영업제한 말고 동반성장 대안 뭔가

대형마트에 의무 휴업일을 지정하고 영업 시간을 제한한 지방자치단체의 규제가 부당하다는 판결이 파문이 일으키고 있다. 기업형슈퍼마켓(SSM)을 운영하는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6개 유통회사가 서울 동대문구 등을 상대로 낸 영업정지·제한 등 처분 소송에서 서울고법이 지난 12일 원고 측의 손을 들어 주면서다. 중소 상인과 대형마트의 상생을 도모하려는 지자체 조례의 취지가 빛이 바랜 점은 애석한 일이다. 그러나 골목상권 보호에 실효성이 없다는 게 판결의 함의라면 동반성장의 대의를 제대로 살릴 대안을 찾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지자체들의 조례가 위법하다는 판결 그 자체보다는 전통시장 보호 효과가 없다는 판결문의 취지에 주목하고자 한다. 다만 ‘점원의 도움을 받지 않는’이라는 유통산업발전법의 자구 해석에 매달려 이마트·홈플러스 등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한 판결이 문제라는 시각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이러한 점포들의 임대매장 업주 또한 중소 상인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판결문의 자구 해석을 둘러싼 논쟁은 부질없다는 생각이다. 그런 규제가 골목상권의 부활로 이어지지 않고 대형마트의 근로자나 여기에 납품하는 중소 업체들에 피해만 입힌다면 말이다.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사회적 약자인 골목상권을 보호해야 할 당위성은 넘친다. 지자체 조례에 이어 지난해 국회가 관련법을 고쳐 대형마트의 휴일 의무휴업을 못 막은 이유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이 동반성장이라는 명분을 실현하지 못하고 중산층·서민의 편익만 줄이는 헛발질이라면 재고해야 한다. 서울시는 대형마트 규제 이후 “전통시장 매출 증대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번 판결 취지를 반박했다. 지난 1월 의무휴업 적용 일요일과 비적용 일요일의 전통시장 매출액 등을 한 차례 비교한 결과가 근거다. 그러나 이를 객관적 현상으로 보기엔 미심쩍다. 대형마트 규제 이후에도 전통시장·소매업의 매출액이 감소 추세라는, 한국SCM학회 등의 장기 조사 보고서와 배치되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정책 당국은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히기만 기다려선 안 된다. 대형마트 영업 제한이 유지되더라도 소비자들이 구멍가게나 재래시장 대신 영업 제한이 안 되는 시간대에 대형마트를 찾는다면 ‘말짱 도루묵’이 아닌가. 규제에 불편을 느낀 소비자들이 인터넷몰이나 해외 직구로 눈을 돌리는 일도 더 늘 게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시장의 변화 추세에 맞는, 보다 적실한 동반성장 대책을 고민할 때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216화] 기업소득환류세 시행령에 숨어든 디테일의 악마

 

기업소득환류세(사내유보금 과세) 대상에서 제외되는 ‘투자’의 범위가 매우 엄격하게 제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경 보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법인세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해외투자와 국내 다른 기업에 대한 지분 투자를 모두 기업소득환류세제상 투자로 인정치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는 것이다. 또 부동산 투자도 업무용에 한하되 매입 후, 또는 인허가 후 1년 내 착공하지 않으면 역시 투자로 간주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만약 이대로 시행령 개정이 확정되면 기업 부담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회를 통과한 기업소득환류세제는 투자, 임금증가, 배당 등이 당기소득의 일정액에 미달할 경우 법인세와는 별도로 10% 추가 과세하는 게 골자다. 문제는 사내유보금 과세에서 가장 핵심적인 ‘어디까지를 투자로 보느냐’를 법도 아닌 시행령에서 정한다는 것이다. 사내유보금 과세 여부를 결정짓는 ‘당기소득의 일정액’ 역시 시행령 사항이다. 시행령은 법률이 아닌 만큼 국무회의 의결로 바로 확정된다. 여론 수렴 절차나 시간이 법률 개정에 비해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중요한 내용을 정부가 업계의 의견수렴도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문제다.

 

정부는 당초 기업소득환류세제가 도입되더라도 기업에 큰 충격은 없다고 공언해왔다. 기존 유보금이나 정상적 투자는 과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과세에서 제외되는 투자의 범위를 시행령에서 이처럼 좁게 정해 버리면 해외진출이나 기업 구조조정 위축은 불가피하다.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도 역행함은 물론이다. 세금폭탄을 맞은 기업들은 더욱 위축되고 고용과 내수는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질 게 뻔하다.

 

유보금 과세는 처음부터 오해에서 비롯됐다. 80%가량이 토지나 공장, 기계설비에 투자된 사내유보금을 마치 쌓아놓은 현금뭉치처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도입이 확정된 만큼 시행령 등 하위법령에서라도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게 옳다. 그런데 오히려 시행령에서 법에도 없는 엄격한 요건을 달아 기업 부담만 늘리려 하고 있다. 늘 그렇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법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216화] 간판기업들 신용등급 추락이 말하는 것

 

국내 간판기업들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추락하고 있다고 한다. 한경 보도에 따르면 올 들어 신용등급 상향이 15곳인데 하향은 35곳이나 된다. 상향 기업수를 하향 기업수로 나눈 상하향 배율은 0.43배(한국신용평가 기준)로, 외환 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0.06배) 후 가장 낮다. 2010년 13.75배에 비하면 격차가 너무 크다. 더구나 신용등급 전망도 ‘부정적’(2년 내 등급 하락 가능성)인 기업이 28곳으로 ‘긍정적’ 12곳의 2.3배다. 앞으로도 강등이 상향보다 훨씬 많을 것임을 예고한다.

 

신용등급 강등은 당장 자금 조달비용을 높이지만, 더 큰 문제는 경제를 견인해온 간판기업들조차 미래가 어둡다는 사실을 대내외에 공표하는 것이란 점이다. 대표 산업 중 하나인 조선은 4대 조선사 모두, 건설은 10대 건설사 중 4곳이 등급 강등의 칼을 맞았다. 좀체 흔들릴 것 같지 않던 포스코가 20년 만에, 현대중공업이 14년 만에 등급이 떨어질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유동성이 나쁜 몇몇 그룹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복합적 위기라는 얘기다.

 

물론 기업들은 신용등급 방어를 위해 증자, 영구채 발행 등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대규모 자본 확충에도 등급이 떨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현재보다 미래가 더 나쁠 것이란 평가다. 그도 그럴 것이 기업을 휘감고 있는 위기 요인들이 한두 해에 해소될 단기악재가 아니다. 경기침체와 글로벌 공급과잉에다 셰일오일 혁명, 중국 추격 등이 겹쳐 세계 산업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판이다. 상승-팽창-수축-하강이라는 전통적인 경기사이클도 사라진 지 오래다.

 

간판 대기업들조차 죽느냐 사느냐의 사활 게임 중인데 정치권과 이익집단들은 너무도 한가하기만 하다. 국회에 간 경제활성화 법안은 함흥차사인데 반시장 법안은 초고속이다. 노조는 기업이 조단위 적자를 내도 파업 으름장이다. 제조업 부진의 돌파구가 돼야 할 서비스업은 온갖 규제와 이익집단의 이기주의 탓에 옴짝달싹 못 한다. 이들 앞에선 구조개혁만이 살길이라는 외침도 공허해진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16화] 부작용 더 커 보이는 정당후원금 부활 추진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회가 정당의 정치후원금 모금을 다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당후원금을 불법화한 현행 정치자금법이 정당의 재정자립과 풀뿌리 상향식 정당정치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은 앞뒤가 맞지 않고 국민 정서와도 배치된다. 법인·단체의 정치자금 제공이 2004년, 정당후원회가 2006년 폐지된 것은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로 기업들의 '차떼기' 정치자금 제공 사실이 드러난 탓이다. 고질적인 정경유착과 금권정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 아래 개정된 것이 현행 정치자금법이다. 그럼에도 입법로비와 돈 선거로 처벌받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 게 우리의 현실 아닌가. 이런 역사성과 한국적 특수성을 무시한 채 재정자립이나 미국·영국 등에서 정당후원금 모금을 허용하고 있다는 등의 논리를 내세워 법을 손질하려는 것은 가당치 않다. 여당 내에서조차 반대론이 일고 있다. 정당후원금이 허용될 때도 당비를 내는 당원은 적었고 상향식 정당정치는 미약했다.

 

보수혁신위도 이 같은 우려를 감안했는지 국고보조금 폐지를 거론했다. 자발적 정치결사체인 정당에서 국비지원을 받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야권의 반발을 우려해 중간 단계로 당비·후원금 모금액에 비례해 국고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하지만 후원금은 여당에 몰리게 마련인데 이걸 근거로 더 많은 국고보조금을 받겠다니 속이 훤히 드러나 보인다. 정당에 국고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은 정경유착의 고리인 정당후원금을 금지하는 데 따른 반대급부이자 정당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다. 정녕 국민을 위한 정치를 표방한다면 정당 국고보조금 사용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단 한번도 없었던 외부감사 제도부터 도입하는 게 우선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16화] 국회 'OECD 바닥권 서비스 경쟁력' 현실 외면말라

임시국회 첫날인 15일 여야는 이른바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으로 입씨름하느라 당면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경제 살리기의 마지막 골든타임인 29일 본회의에서 서비스산업법이 반드시 처리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이날 다짐도 허언(虛言)에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서비스 산업을 정쟁의 볼모로 삼을 여유가 없다. 서비스업 노동생산성은 제조업의 46.6% 수준으로 제조업 강국인 일본(83.0%), 독일(72.8%)에 크게 뒤져 있고 정보통신·금융업의 노동생산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 대상 25개국 중 22위와 21위로 꼴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 산업 선진화는 여와 야가 따로일 수 없는 국가발전의 핵심 과제다. 그러나 당면한 서비스산업법도 2012년 국회에 제출된 후 낮잠을 자고 있고 노무현 정부 때 추진됐던 굵직굵직한 서비스 산업 발전대책들도 정쟁 탓에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당장 규제의 벽을 깨야 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서비스 기업 402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들도 서비스 산업의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정책과제로 '규제개선 등 제도적 여건 조성(32.3%)'을 가장 많이 꼽았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한국 경제가 기로에 선 시점에 서비스 산업 육성은 다급하다. 특히 제조업 경쟁력을 뒷받침해주는 정보통신·금융업의 후진성은 당장 바로잡지 않으면 위험하다. 일본의 경우 제조업 대비 생산성이 164.7%와 136.3%로 막강한 정보통신·금융업이 제조업 부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지만 한국은 제조업의 발전을 돕기는커녕 좀먹고 있는 꼴이다. 국회는 한국의 서비스 산업 경쟁력이 바닥권이라는 불편한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제조업에 비해 일자리 창출 효과가 다섯 배나 높은 서비스 산업 육성이 지금으로선 한국 경제를 살릴 가장 효과적이며 현실적인 대안이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석종(논설위원)-20141216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임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임은 그예 물을 건너네. 물에 빠져 죽으니 장차 임을 어이할꼬.” 고조선 시대 백수광부의 아내가 불렀다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슬픔이 절절한 노래다. 요즘 현대판 ‘공무도하가’인 토종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세밑 극장가를 후끈 달구고 있다고 한다.

개봉 18일 만에 100만 관객을 가뿐하게 넘어섰다. 일요일인 그제 관객수 28만여명으로 <인터스텔라> <엑소더스> <빅매치> 등 상업영화를 저만치 제쳤다. 2009년 <워낭소리>의 35일보다 17일이나 빨리 100만 관객 기록을 갈아치웠다. 독립영화 100만명은 흔히 상업영화 1000만 관객에 비견된다. 제작비 1억2000만원의 저예산 다큐멘터리로 이미 그 70배인 83억원을 벌어들였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단한 이변이자 가히 신드롬급 인기라고 한다. 한국 독립영화 최고 기록인 <워낭소리>의 293만명을 깨는 것도 시간문제란다.

영화는 강원도 시골에 사는 89세 할머니와 98세 할아버지 부부의 76년에 걸친 사랑과 이별을 그린다. 늘 커플 한복에 두 손을 마주잡고 다니는 닭살부부. 그 애정이 막 연애를 시작한 청춘남녀 못지않다. ‘소녀 감성’ 할머니와 로맨티스트 할아버지는 틈만 나면 낙엽으로, 물로, 눈으로 짓궂게 장난을 치면서 즐거워한다. 영화의 백미는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헌옷을 아궁이에 태우며 이별을 준비하는 장면이다. “먼저 가서 좋은 데 자리 잡고 데리러 와요. 그러면 손을 잡고 같이 갑시다.” 노부부에게는 죽음조차 그렇게 사랑의 완성으로 승화된다.

 

이 영화는 어둡고 칙칙한 ‘노인 영화’가 아니다. 죽음까지 넘어서는 절절한 러브스토리다. 그만큼 재밌고, 행복하고, 눈물겹다. 세상이 그야말로 ‘막장극’인 요즘이다. 이런 때 <님아~>가 그려내는 변치 않는 정과 온기가 새삼 옷깃을 여미게 한다. 소소한 일상에서 재미를 찾는 행복, 서로를 끔찍이 챙기는 한결같은 배려, 당신은 아주 잘생겼다고 아주 예쁘다고 말해주는 고백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인가. 영화 속 노부부는 지금 우리 사랑은 어떤지 묻고 있다. 유난히 추운 올겨울, <님아~>의 열기와 감동과 여운이 꽤 오래갈 것만 같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온종훈(논설위원)-20141216화] 신공무도하가

 

"공무도하(公無渡河) 공경도하(公竟渡河) 타하이사(墮河而死) 당내공하(當奈公河)(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 물에 빠져 죽었으니, 장차 임을 어이할꼬.)"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은 기록 자체가 태부족한데다 논란이 많아 실체가 분명히 잡히지 않는다. 그나마 고조선 사회를 엿볼 수 있는 기록물은 당시 법조문을 다룬 '팔조금법'과 노래인 이 '공무도하가' 정도다. 4언4구 한시 형식으로 채록돼 불과 16자에 불과하지만 한국과 중국의 옛 기록들에 전해지면서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이 노래는 술에 취해 강물로 뛰어든 백수광부(白首狂夫)의 처가 그를 말리며 부른 후 강물로 뛰어들어 함께 죽었다는 슬픈 설화도 담고 있다. 비극적 결말과 부부 간의 애절한 정이 집약된 것이 이 노래가 시대를 초월할 수 있었던 힘인 것 같다. 특히 전통악기인 공후를 타고 불렀다고 하니 신비감을 더한다. 그래서 이 시가를 처음 접한 청소년기에는 그 장면을 연상하면서 실제 노래는 어땠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보고는 했다.

 

역사의 조각조각 사이의 공백을 채워주는 것이 예술적 상상력이다. 공무도하가에서 모티브를 따오고 재해석한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우리 사회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개봉 18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한다. 76년을 함께 살아온 노부부의 따뜻한 마지막 얘기가 10대까지 포함하는 모든 세대에게 감동을 느끼게 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분자화하고 있는 오늘날에는 가정, 특히 배우자와의 관계가 어느 때보다 소중해지고 있다. 영화 감상의 인터넷 후기를 살펴보면 부부관계를 새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2,000년 만에 다시 태어난 '신공무도하가'처럼 우리 모두의 남편과 아내는 안녕하신지 자못 궁금해진다. 이미 말했듯 분자화하는 사회에서 말이다.

 

 

■ 그 밖의 칼럼 읽기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엄을순(문화미래이프 대표)-20141216화] 진짜 서비스를 찾습니다

일본에서 고급식당에 간 적이 있다. 기모노를 곱게 입은 여자들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더니 다다미방에 우리를 앉힌 다음 개다리소반을 하나씩 놓아줬다. 식당 여성들은 다다미방 끝에 무릎을 꿇고 앉은 다음 그 자세로 엉금엉금 상 앞까지 기어와서 전골이며 생선회며 미역 등을 놓고 갔다. 무릎 꿇고 기어오고 무릎 꿇고 기어갔다. 저렇게 기어 다니면 관절에 무리가 갈 터인데 걱정도 되고 괜스레 그녀들에게 미안도 했다. 같이 간 일행들은 ‘왕이 된 기분’이라며 만족해했지만 난 그날 먹은 음식이 얹혀서 여행 내내 죽도록 고생만 했다. 남자가 무릎 꿇고 저렇게 해주는 경우도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도가 지나친 서비스는 손님을 이렇게 힘들게도 한다.

 

 비 오는 날. 물건 바꾸러 백화점 개점 시간에 맞춰 갔더니 음악과 함께 문이 열리면서 종업원들이 일제히 배꼽인사를 한다. 그 사이를 지나가는데 엄청 민망하더라. 나오는 길에 화장실에 들렀다. 종업원들이 모여 떠들고 있었다. 직원 화장실이었나보다. ‘이 비에 아침부터 쇼핑 오는 여자는 대체 뭐냐? 할 일도 되게 없나보지’. 그렇다. 그들의 화려한 웃음과 배꼽인사가 가슴에 와 닿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진정성 없는 거짓된 감정노동은 고객도 다 안다.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서비스 중 비행기 서비스는 우리나라가 으뜸이다. 외국 항공사와 비교해 일단 말이 잘 통하고 음식도 맞고 친절하다. 땅콩도 잘도 가져다줬다. 그러나 이젠 땅콩 먹기가 꺼려진다. 일등석에 앉아 주문한 땅콩을 봉지째 줬다고 이륙 중이던 비행기를 되돌려 사무장을 내려놓고 다시 이륙하게 한 조현아 전 부사장.

 

 앞뒤 가리지 않고 서비스 교육에 열을 올리면서도 본인은 정작 서비스의 본질도 모르는 여자다. 땅콩을 접시에 담아 주는 일보다도 탑승객들의 귀한 시간 지켜주는 게 훨씬 더 중요한 서비스다. 서비스 매뉴얼이 뭐 별거인가. 서비스받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게 제일 최고다. 교육한답시고 손님들을 무시한 채 제멋대로 비행기를 회항시킨 그녀는 그동안 공들였던 회사 이미지를 한 방에 날려 보낸 거다. ‘임원으로서의 정당한 권한행사’였다는 초기 해명 또한 더 큰 화를 불러왔다.

 

 게이트 앞에 덩그러니 내팽개쳐진 채, 떠나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사무장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승객들 면전에서 당한 모멸감에 치를 떨었을까. 아님 해고당한 후 먹고살 걱정을 했을까. 아마 후자였을 게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프다.

 

 

[한겨레신문 칼럼-세상 읽기/이명원(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20141216화] 오키나와가 아베를 이긴 이유

 

지난 일요일 일본의 중의원 선거에서 오키나와가 승리했다. 전국적으로야 아베가 압승했지만, 오키나와 4개의 선거구에서 자민당이 소멸한 것은 유례없는 충격이다. 오키나와에서 아베 정권은 잇따라 치명타를 맞고 있다.

 

아베 정권의 폭주는 계속될 것인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베는 집단적 자위권의 해석변경, ‘아베노믹스’로 상징되는 소비세 증세, 한국 및 중국에 대한 끝없는 역사전쟁을 초래함으로써 동아시아 정세를 요동치게 하고 있다. 물론 아베는 동맹국 미국을 믿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물론 ‘신형 대국관계’를 지속해야 할 중국과 불필요한 역사전쟁을 벌이는 아베는 미국에도 양날의 칼이다.

 

변수는 중국이다. 중국은 대국이지만 미국의 패권체제에 아직까지는 도전할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은 ‘신형 대국관계’이든 ‘적대적 공생관계’이든 어느 시기까지는 밀월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2014년 국내총생산을 구매력 지수로 환산하면 중국은 이미 미국을 추월해 세계 1위가 되었다. 하지만 중국은 아직도 ‘개발도상국’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반복하고 있다. 그런 중국으로서도 아베의 도발은 용인할 수 없다. 승전 70돌을 맞는 2015년에는 역사전쟁의 형태로 일본에 대한 중국의 검증이 본격화될 것이다. 중국이 올해 ‘난징대학살’을 국가추념일로 지정한 것은 그것의 서막이다.

 

역설적이게도 경이적인 ‘대국굴기’에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중국 자신이다. 중국이 초강대국인 미국에 현실적 위협으로 인식된다면, 이행기 중국의 국가전략은 뜻하지 않은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중국에 위협은 미국만이 아니다. 대중들의 ‘민주주의’ 요구에 대응해야 한다. 그럴 리는 없지만, 오늘의 중국이 민주주의 요구에 잘못된 처방을 제시하게 된다면, 신해혁명 후 군벌이 난립해 외세를 불러들인 비극이 상기될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 인민들의 민주주의 요구를 언제까지 봉쇄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최근 시진핑의 ‘부패와의 전쟁’은 일종의 공포정치다. 정적을 제거하면서 중국 인민들의 불만을 마술적으로 봉합하는 장치다. 한편 대만 총선거에서 집권 국민당은 대패했다. 이것은 ‘일국양제’라는 기치 아래 양안 통일을 모색했던 공산당과 국민당의 신자유주의적 국공합작이 위기에 처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홍콩인들 역시 봉기했다. 홍콩 반환 시 중국은 60년간 ‘홍콩기본법’에 입각해 홍콩의 정치체제를 존중할 것이라 약속했다. 그러나 이런 미니 ‘일국양제’ 약속이 백지화될 위험에 빠지자, 홍콩의 시민들은 ‘우산혁명’으로 봉기한 것이다.

 

현재는 미국이나 중국 모두 미래전략의 불확실성 때문에 타협하면서 갈등하는 시점이다. 이 틈을 일본의 아베가 파고들고 있다는 점도 우리는 알고 있다. 2015년은 한국의 경우 광복 70돌, 중국은 승전 70돌, 일본은 패전 70돌을 맞는 해다. 한일 양국의 경우 국교정상화 50돌을 맞는 을미년으로 갑오년 못지않은 역사적 대회전의 시기가 될 것이다.

 

‘전후체제로부터의 탈각’은 아베의 꿈이자 정치적 신념이다. 그러나 이 꿈은 동아시아에서 오직 아베만이 꿈꾸는 몽상이다. 태평양의 요석(要石)인 오키나와에서 자민당이 전멸했다는 사실을 아베는 상기해야 한다. 아베의 후견인을 자처하는 미국도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오키나와에서 자민당의 퇴출은 ‘전쟁’이 아닌 ‘공존’의 요구야말로 새로운 세기의 시대정신이라는 점을 강력하게 환기시킨다. 오키나와의 승리는 ‘동아시아의 평화공존’을 갈망하는 오키나와인들의 비타협적 결의를 보여준다. 사실 이런 시대정신을 가장 앞장서서 보여주어야 할 곳은 한국이었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41216화] 짧은 치마

 

치마의 역사는 장단(長短)과 광협(廣狹)의 변천사라 할 만하다. 옛날에는 길었던 것이 세월 따라 짧아진 게 장단이고, 피륙까지 잇대어 넓힌 것이 몸에 딱 붙는 미니 형태로 좁아진 게 광협이다. 고구려 고분벽화만 봐도 치마 길이가 길고 잔주름이 밑단까지 잡혀 있었지만 갈수록 짧아지고 단순화됐다. 서양 역시 바닥까지 늘어뜨린 장식형 치마에서 손수건만한 미니스커트로 변해왔다.

 

치마 모양은 귀천의 상징이기도 했다. 삼국시대부터 상류층은 발끝까지 오는 긴 주름치마, 하류층은 종아리 정도 오는 평면치마를 입었다.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왕가나 부귀한 집 여인들은 치마폭을 넓혀 신분을 과시했다. 치마 속에 7~8필을 겹쳐 입어 폭을 넓게 했다. 중세 서양의 상류층 여인들도 바닥 지름이 3m나 되는 광폭치마를 입었다.

 

의상 연구가들은 치맛단이 바닥을 벗어난 것은 20세기라고 얘기한다. 1차 대전 이후 서양 치마는 짧아졌다 길어지기를 반복하는데 1920년대에 짧아진 치마가 1930년대에 길어졌다가 전시의 섬유 제약으로 짧아진 뒤 다시 길어졌고 1967~1970년엔 속옷이 보일 정도가 됐다. 이후 바지가 유행한 뒤에도 스커트 길이는 짧고 긴 형태를 반복했다.

 

치마 길이가 호황 때 길어지고 불황 때 짧아진다는 말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속설이다. 미니스커트가 유행한 60년대에도 경제가 성장하고 주가가 올랐으니 맞지 않는다. 여성의 자기표현 수단이라는 분석이 더 가깝다. 우리나라에서도 1907년 최활란이 도쿄 유학에서 돌아올 때 입은 짧은 통치마가 인기를 끌었던 것을 보면 개화기 신여성의 자기 표현과 맞닿는다.

 

국내 미니스커트는 1967년 가수 윤복희 씨가 패션쇼에서 선보인 뒤 급속하게 확산됐다. 영국 디자이너 메리 퀀트가 미니스커트를 선보인 게 1963년이었으니 꽤 빨리 국제유행에 합류했다. 이 때문에 경찰이 자를 들고 다니며 무릎 위 15㎝ 이상을 경범죄로 처벌하는 풍속도까지 생겼다. 미니스커트 길이는 10여년 전만 해도 35㎝ 안팎이었지만 2007년 26~27㎝, 2009년 21㎝ 등으로 짧아졌다.

 

최근 미국 몬태나주 의회가 ‘예의를 갖추기 위해’ 여성 의원들의 짧은 치마를 금하는 복장 규정을 만들었고, 여성 의원들이 이에 반발하는 사태가 생겼다. 우리의 70년대 치마 단속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21세기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놀랍다. “자를 든 경호원이 치마길이와 가슴골까지 잴 수 있게 됐다”는 조롱 문구까지 닮았다.

 

 

[서울신문 칼럼-열린세상/허대석(서울대 의대 내과학교실 교수)-20141217화] 노인 자살과 공공의료

 

말기 암 환자의 10% 이상이 적절한 통증 조절도 받지 못하고 집에서 임종하고 있다. 또 한 연구에 따르면 수술만 받으면 완치될 수 있는 조기 위암 환자 중 7.2%는 아무런 치료도 받지 않고 있으나, 이 환자들이 어떤 경과를 거치는지 추적 조사한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정책은 대형병원 이용이 가능한 사람들이 가장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최적화돼 있다. 저소득 계층을 위한 의료복지도 의료기관을 찾았을 때만 이루어진다. 의료급여 1종 환자는 의료비가 무료이지만 직접 의료기관을 찾아오지 않으면 어떠한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이러한 시설 위주의 공공의료정책은 우리나라의 높은 노인 자살률과 무관하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1996년 가입한 후 2014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이 2배로 증가했으나 여전히 자살에 의한 사망률 1위를 지키는 주된 이유는 다른 국가들보다 현저하게 높은 노인 자살률 때문이고, 그 배경에는 노인복지와 공공의료 문제가 있다.

 

국민의료 복지를 향상하고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지난 10여년간 정부는 공공의료기관을 더 늘리고,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건강보험 급여를 확대해 왔다. 그러나 민간 의료기관 중심으로 운영되는 우리나라와 의료 시스템이 완전히 다른 영국이나 독일을 모델로 삼아 지은 공공 의료기관들은 지방자치단체 복지예산의 블랙홀이 됐고,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이 선심성 공약으로 이용하는 건강 보험의 무분별한 급여 확대는 의료복지재정의 대표적인 적자 요인이 됐다.

 

2013년 인구의 3%에 해당하는 환자가 진료비 총액의 35.9%를 사용했고, 특히 70세 이상 노인 입원 환자의 경우 17.5%가 전체 입원비의 64.6%를 소비하고 있다. 병원 접근성이 높은 계층일수록 고가 약과 검사, 시술을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어 건강보험급여 수급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정부가 공공의료뿐 아니라 사회복지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원칙이 과연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상급식과 반값 대학 등록금을 논의하고 있는 나라에서 유아보육 경비 때문에 아기들은 태어나지조차 못하고 있고, 복지 선진국의 대명사인 북유럽 국가에서도 지원하지 않는 고가 신약의 급여화를 논의하는 나라에서 기본적인 간병을 받지 못해 노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한정된 복지예산을 ‘모든 국민에게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것부터 가장 약하고 가난한 사람, 돌봄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에게 먼저’라는 원칙은 애초부터 없는 것인가? 보이지 않는다고, 나서지 못한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살을 해야만 보이는 이들을 먼저 찾아가는 것이 복지의 기본이다.

 

공공병원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 때는 영국의 공공의료를 내세우면서 지역 공동체 내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환자와 독거 노인들을 의사와 간호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맞춤형 돌봄을 제공하고 있는 영국의 공공의료 시스템은 왜 공공의료 정책의 모델로 삼지 않는지 알 수 없다. 영국의 노인 자살률은 OECD 국가들 중 최저다. 현재 도시에 있는 보건소에서 하는 일의 대부분은 민간 의료기관과 중복된다. 보건소를 포함한 공공 의료기관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지역공동체 중심의 방문 진료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노인 1000만명의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는 것이다.

 

독거 노인이 죽은 후 오랜 시간이 지나 발견되고, 간병 문제로 자살하거나 가족을 살해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올 때마다 책임 부서인 보건복지부 공무원의 대답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인력이 부족하고 예산이 없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고가 장비로 가득 채운 공공병원을 지을 예산, 그 병원들의 경영적자를 메우는 예산, 그리고 한 달 약가가 1000만원이 넘는 신약들을 급여화할 예산은 있어도 독거 노인과 집에서 간병을 필요로 하는 저소득층 환자를 파악하고 방문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예산은 10년 전에도 없고 지금도 없다.

 

어느새 다시 12월이다. 추운 겨울 어딘가 혼자 누워 있을 병들고 외로운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산이 아니라 우리의 진심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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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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