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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비선 국정개입 의혹 수사와 최 경위 자살

■ 골목상권 살리기 조례 고법 위법 판결

■ 군복무 가산점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비선 국정개입 의혹 수사와 최 경위 자살

 

[한국일보 사설-20141215월] 최 경위 자살이 일깨운 문건 수사의 문제점

 

청와대 문건을 유출한 혐의를 받은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최모 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숨진 채 발견됐다. 최 경위가 숨진 승용차 안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책임을 경찰로 몰아간다, 억울하다”는 취지가 적혀있었다고 한다. 검찰 수사에서 자신이 문건 유출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데 따른 심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매우 안타깝고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반응을 내놨지만 수사 과정과 내용의 적절성 여부에 대한 논란을 피해가기 어렵게 됐다.

 

최 경위가 숨지기 하루 전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청와대 문건 유출과 관련해 청구한 최 경위 등 경찰관 2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법원은 “범죄혐의 소명 정도 등에 비춰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평소 법원의 기각 사유에 비해 한층 강한 어조다. 범죄 혐의 입증이 어려울 뿐 아니라 구속 수사 필요성 자체도 낮다고 본 셈이다. 한 마디로 수사가 엉성했다는 얘기나 다름 없다.

 

최 경위의 자살과 영장 기각으로 검찰의 문건 유출 수사는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검찰은 문건 작성 및 유출 행위가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경정 등 ‘7인회’가 주도했다는 청와대 감찰 결과를 전달받고 실체 규명에 나서려던 상황이었다. 7인회 수사에 앞서 문건 유출 및 유포과정의 밑그림을 명확히 그려두려 했던 검찰로서는 전체적인 윤곽 파악이 어렵게 됐다.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보다는 문건 유출에 강도 높은 수사를 집중해온 검찰의 자업자득이다. 유출 행위는 ‘국기 문란’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실상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다가 망신을 자초한 셈이다. 최 경위의 자살에 대해서도 정보 담당 경찰관 입장에서는 큰 죄책이 없을 만한 사안인데도, 문건 유출 부분이 지나치게 확대되면서 커다란 잘못을 저지른 인물로 내몰린 결과 심리적 압박이 컸으리란 시각이 있다.

 

검찰은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조차 조사하지 않은 채 문건을 허위로 결론짓고 유출자를 색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최 경위 자살에 따른 여론의 반작용에 부담을 느낀 듯 어제 뒤늦게 이 비서관을 소환하긴 했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번 사건은 비선 실세와 측근 세력의 국정개입 여부가 핵심이다. 검찰 수사는 당연히 이 부분을 규명하는 데 모아져야 한다. 박 대통령의 친동생인 박지만 EG회장은 물론이고 나머지 비서진과 김기춘 비서실장 등 청와대 관련자 모두를 불러 시간이 가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권력 암투설의 실체를 밝혀내야 한다. 대통령 주변과 관련된 의혹이라고 적당히 덮고 넘어가려다가는 남은 임기 내내 짐이 될 것임을, 청와대와 검찰 모두 하루 빨리 깨닫기를 바란다.

 

 

[한겨레신문 사설-20141215월] 최 경위가 언급한 ‘청와대 회유’의 진상은 무엇인가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로 수사를 받던 서울경찰청 최아무개 경위가 13일 숨진 사건은 또다른 충격으로 국민에게 다가온다. 한 가족의 가장으로 만 15년간 경찰에서 일해온 최 경위가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가 무엇일지, 가슴이 아프고 시리다. 그 어떤 말로도 가족의 슬픔을 위로할 수 없겠지만, 도대체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그 배경은 분명히 가려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최 경위가 유서에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서 너(동료인 한아무개 경위)에게 그런 제의가 들어오면 흔들리는 건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언급한 부분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동생이 억울하다고 했고, 심한 압박감에 시달렸다”고 말한 최 경위 형의 증언과 일맥상통한다. 최 경위의 형은 “(검찰) 수사가 지금 바르게 이뤄지고 있다고 보는가. 자기가 한 일이 아닌 것을 뒤집어씌우려 하니 죽음으로 간 것이다. … 동생은 전화통화에서 ‘검찰도 누가 지시하느냐, 결국은 모두 위(청와대)에서 지시하는 거 아니냐. 퍼즐맞추기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유서 내용과 가족의 증언을 종합하면, 청와대가 특정한 방향으로 검찰 수사를 유도하기 위해 한 경위 등을 회유하려 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 검찰은 최 경위에 대한 구속영장을 서두를 게 아니라, 이런 부분에 오히려 수사력을 집중했어야 했다. 최 경위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데서 검찰 수사가 너무 조급하고 무리했던 게 아닌가 추측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검찰 수사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이기에 그 과정이 계속 무리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었다. 사태의 본질은 청와대 비선의 국정농단 의혹이고, 그 중심엔 박근혜 대통령과 비서 3인방이 있다. 비서 3인방을 통해서 거의 모든 일을 처리해온 박 대통령의 폐쇄적 국정운영 방식이 문제를 일으켰고, 그러다 보니 권력 내부의 암투가 매우 심했다는 게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사실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사건의 본질엔 눈감은 채 청와대 문건 유출만 문제삼아 ‘국기문란 행위’라고 규정해버렸다. 본말을 전도하고 수사 가이드라인까지 내려보내니, 수사를 하는 검찰이나 수사를 받는 당사자나 모두 심한 ‘정치적 압박’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최 경위의 혐의는 문건 유출에 따른 ‘공무상 비밀 누설’이다. 문건 유출 사실을 청와대가 파악한 건 이미 지난 6월이다. 그때 청와대는 100여건의 문건이 시중에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알고도 조처를 취하지 않다가 최근에야 난리를 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태의 본질도 아니고 핵심도 아닌 일선 정보경찰관이 마치 가장 중요한 범법자인 양 부풀려졌고 이것이 최 경위에겐 엄청난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온 게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녕 청와대와 검찰은 최 경위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중앙일보 사설-20141215월] 이러니 짜맞추기 수사 소리 듣는다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 수사 와중에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최모 경위가 14쪽 분량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최 경위는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이 지난 2월 청와대에서 들고 나온 라면 박스 2상자 분량의 문건을 복사해 언론사 등에 유출한 당사자로 지목됐다.그러나 최 경위는 혐의 내용을 부인하면서 청와대의 개입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그는 자신이 문서를 유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 한모 경위를 거론하며 “민정비서관실에서 그런 제의가 들어오면 흔들리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자살을 선택한 건) 너와 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회사(경찰을 지칭) 차원의 문제”라고 밝히고 있다. 또 자신이 몸담았던 경찰을 거론하며 “이번 일을 겪으면서 힘 없는 조직의 일원으로 많은 회한이 들기도 한다”고 적었다.

 

 검찰은 우선 최 경위의 유서에서 제기된 입맞추기 수사 의혹부터 시원하게 밝히는 게 순서다. 최 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민정비서관실의 제의’가 무엇이었는지가 밝혀지지 않고선 짜맞추기 수사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청와대 역시 “접촉도 제안도 없었다”고만 할 일이 아니다. 입맞추기 의혹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만큼 진실을 규명하는 데 적극 협조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문건 유출사건에 청와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마당이다. 사건의 당사자이자 수사 대상이기도 한 청와대가 수시로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어 혼란스러운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몰아가고 있다. 며칠 전에도 청와대는 ‘정윤회 문건’ 유출에 대한 자체 감찰 결과를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4~5월께 유출된 청와대 문건 128건의 사진 출처가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으로 드러났으며 지난 6월 조 전 비서관이 문건 유출 사실을 다시 청와대에 알려온 건 혼선을 주기 위한 자작극이라고 결론 내렸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과거 국정 운영의 중대사나 인사 사고가 났을 때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검찰 수사 중’이란 이유로 입을 다물고 있던 때와는 180도 다른 발 빠른 대응이다. 청와대의 이런 행태는 도를 넘는 월권행위이자 진행 중인 사건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주려는 의도로 비칠 수 있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자칫 정윤회씨 등 비선(秘線) 실세들의 국정개입 의혹이란 사건의 본질을 희석해 조 전 비서관, 박 경정 등이 주도한 허위 문건사건으로 몰아가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청와대는 이제부터라도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체의 발언을 삼가고 중립적이고 철저한 검찰 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할 것이다.

 

 검찰은 문건의 작성이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설에 대한 진원지를 파악하라는 지시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문건에 적힌 실세들의 국정 개입이 있었는지를 밝혀내는 게 본질이자 핵심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20141215월] 청와대, ‘가이드라인’ 넘어 피의자 회유까지 했나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과 관련,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를 받아온 서울경찰청 정보분실 최모 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4쪽 분량의 유서에 담긴 내용은 충격적이다. 최 경위는 “BH(청와대)의 국정농단은 저와 상관없다”며 “이제라도 우리 회사(정보분실)의 명예를 지키고 싶어 이런 선택을 한다”고 밝혔다. 그는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이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동료 한모 경위를 회유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최 경위 주장이 사실이라면 수사 대상인 청와대가 수사에 구체적으로 개입한 것이 된다.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국기문란’ 행위다. 청와대는 즉각 부인했으나 명확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최 경위의 안타까운 죽음은 예견된 비극이나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이 문건 내용을 “루머”, 문건 유출을 “국기문란”으로 규정한 순간부터 비극은 잉태됐다고 봐야 한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강압’이나 ‘위법’은 없었다고 했다. 강압이란 단어가 고문이나 가혹행위를 의미한다면 검찰의 말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 경위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강압의 의미는 달라진다. 대통령이 유출자를 “일벌백계”하라며 ‘교시’를 내리고, 검사들이 이를 받들어 끈질기게 자백을 요구했다면, 또 민정수석실까지 나서 동료를 회유했다면, 힘없는 경찰관에게 강압 아니고 무엇인가. 최 경위는 영장 기각으로 풀려난 뒤에도 “미행당하는 것 같다”며 불안해했다고 한다. 거대한 권력이 쳐놓은 올가미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란 좌절감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검찰은 어제 ‘문고리 3인방’의 일원인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전격 소환했다. 대통령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에게도 이번주 중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자체적 일정에 따른 것이라 설명하지만,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최 경위의 죽음에 따른 파장을 어떻게든 덮어보려는 것 아닌가. 검찰에서 수사받던 피의자가 사망했다면 수사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돌아보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게 우선이다. 국민의 눈과 귀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시도는 후안무치한 행태다.

우리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정윤회씨 의혹’ 수사를 계속 검찰에 맡길 것인가. 검찰 수사는 초기부터 비선 개입이라는 본질보다 문건 유출이라는 곁가지에 집중하며 ‘청부수사’의 한계를 드러냈다. 이제는 민정수석실에 ‘배후조종’당했다는 의혹에까지 휩싸였다. 향후 검찰이 어떤 수사결과를 내놓는다 해도 국민은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국회 차원에서 상설특검법에 따른 특별검사 도입 문제를 논의할 때가 됐다고 본다.

 

 

[서울신문 사설-20141215월] 최 경위 자살, 檢 밀어붙이기 수사 결과 아닌가

 

‘정윤회 문건’ 파문이 결국 죽음까지 불러왔다. 청와대 문건 혐의로 수사를 받은 서울지방경찰청 최모 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검찰 수사는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여야는 이 불행한 사건을 놓고도 또 정치 공방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검찰 수사를 믿을 수 없다며 특검 도입을 주장하는 반면 새누리당은 “검찰은 외부 정치 공세나 의혹 제기에 흔들리지 말고 철저하고 냉정하게 수사해야 한다”는 다분히 원론적인 입장이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정윤회·청와대 비서관 등의 모임이 있었다는 식당에서는 해당 모임이 확인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그저 뜬소문에 놀아나고 있는 것인가. 분명한 것은 제기되고 있는 의혹의 대부분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 해도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비선 실세 ‘국정농단론’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이야기들”이라고 규정한 터다. 누가 뭐래도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런 마당에 피의자가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졌으니 파문은 커질 수밖에 없다.

 

최 경위의 자살이 야당이 주장하듯 토끼몰이식 강압 수사에 의한 억울한 죽음인지 아닌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최 경위의 형은 “검찰을 지시하는 게 누구겠느냐. 결국은 다 위(청와대)에서 지시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동생이 얼마 전 전화 통화에서 (수사가) ‘퍼즐 맞추기’라고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최 경위가 사망함에 따라 검찰은 ‘공소권 없음’ 처분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성급한 예단이지만 ‘십상시의 난’으로까지 불리는 이 중차대한 사건이 흐지부지된다면 두고두고 정권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비선 실세 국정농단 의혹의 한복판에 청와대가 있는 만큼 결코 남의 일인 양 거리를 두려 해서는 안 된다. 필요하면 청와대 비서실장이라도 직접 나서서 국민의 의문에 답해야 마땅하다. 국민적 의혹이 여전한 판에 무작정 야당을 향해 민생·경제법안 통과에 힘을 쏟으라고 목소리를 높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민생 프레임만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것은 또 다른 여론 호도다.

 

다시금 강조하거니 관건은 문건 유출이 아니라 비선 실세들이 과연 헌정을 유린하고 국정을 농단했느냐 여부다. 검찰의 수사 결과만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운 엄중한 상황임을 직시해야 한다. 문건 유출 의혹 초기부터 대통령이 나서 사건의 성격을 규정한 것은 적절치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대통령의 비상한 시국 인식이 절실하다. 지금이라도 죽음에까지 이른 ‘문고리 게이트’ 파문에 대해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민심 수습에 나서는 게 도리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15월] 이쯤 되면 청와대 문건 유출과정 더 철저히 규명해야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를 받아온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최모 경위가 1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에 따르면 최 경위는 자필 유서에서 "범인으로 몰려 억울하다"며 "사실관계 확인 없이 보도한 ○언론사가 원망스럽다"는 내용을 남겼다고 한다. 청와대 문건을 수사 중인 검찰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럴수록 검찰의 책무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더욱 철저히 진상을 파헤쳐 최 경위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사건의 내막과 진실을 밝혀줄 필요가 있다.

 

청와대 문건에 대한 검찰 수사의 초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문건 내용의 진실성 여부이고 두 번째는 청와대 스스로도 밝혔듯이 국가기강 문란에 해당하는 유출 과정이다. 그러나 수사 결과 문건 내용의 대부분은 허위였음이 밝혀졌고 이제 남은 것은 과연 누가 국가기밀 문서를 유출했느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정윤회씨와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회장의 파워게임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 역시 유출 과정의 전후 관계가 드러나기만 하면 자연히 규명될 수 있는 의혹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청와대에서 쫓겨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전 청와대 행정관) 등이 박 회장의 힘을 빌려 정씨와 핵심 비서관 3인방을 견제하려는 목적에서 문서를 유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조 비서관과 박 경정 등이 문건 작성과 유출 과정을 주도했다는 감찰 결과를 검찰에 제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는 자칫 청와대가 검찰에 제시하는 수사 가이드라인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만큼 검찰은 어떤 선입견도 배제한 채 공명정대하고 당당하게 수사에 임해야 한다. 진실 규명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그 결과에는 국가기강 확립 차원의 엄정한 제재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 골목상권 살리기 조례 고법 위법 판결

 

[한국일보 사설-20141215월] 골목상권 살리기 조례가 위법이라는 高法판결

 

골목상권 살리기 차원에서 지방자치단체들이 잇달아 도입한 대형마트 의무휴업 조례가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은 12일 롯데쇼핑 홈플러스 등 6개 대형마트가 서울 동대문구청장과 성동구청장을 상대로 낸 영업시간 제한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들 마트는 법에 규정된 대형마트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 데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공익적 목적의 영업제한을 인정한 1심 판결을 뒤집은 이번 판결은 법조문을 기계적으로 좁게 해석해 내놓은 결과로 사회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유통산업발전법 상 “대형마트는 점원 도움 없이 물건을 사는 점포로 돼 있지만 해당 점포들은 이와 달리 점원의 도움을 받고 있으므로 대형마트로 볼 수 없어 영업처분 대상이 아니다”고 판시했다. 대형마트로 등록은 돼 있지만 법령상 대형마트 요건은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라면 전국 군 단위까지 진출해 지역상권을 잠식 중인 대형마트가 대한민국에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게 되는 셈이다.

 

재판부는 또 월 2회 의무휴업으로 전통시장 보호 효과는 뚜렷하지 않은 반면 맞벌이 부부 등이 겪는 현실적 어려움이 크다고도 강조했다. 1심 판결에서 인용한, 대형마트의 의무휴업 뒤 중소업체와 전통시장 매출액이 10%가량 늘었다는 주장을 배척한 것이다. 대형마트 규제가 바로 전통시장의 매출 증가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상식에 가깝다. 극심한 내수 침체 속에 온라인 쇼핑 등이 활성화하는 등의 다른 간섭요인 때문이다. 더욱이 일각에서 주장하는 판매품목 제한이나, 월 4회 이상 영업제한이 아닌 월 2회 규제가 과도한 소비자 권리 침해인지도 의문이다.

 

대형마트 규제는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취지에서 2012년 도입됐다. 시행 초기에 지역경제에 피해만 주고, 시민불편만 가중시킨다는 반대론이 적지 않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정착 단계에 들어섰다. 전통시장 매출이 늘고 있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고, 효과가 체감되지 않는다는 일부 지역에서는 대형마트와 협의를 거쳐 5일장이 열리는 날이나 주중 특정 요일을 의무 휴업일로 정해 양측이 상생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물론 시장환경과 소비자 취향이 변하고 있어 대형마트 규제만으로 골목상권이 저절로 살아나지는 않는다.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차별화와 혁신만이 궁극적인 해결책인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양극화가 극심한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은 필요하다. 나아가 대형마트 규제는 우리사회의 갈등비용 완화에도 기여했다. 대법원에서는 이런 현실을 감안한 최종 판결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41215월] ‘골목상권 살리기’ 입법취지 외면한 판결

 

홈플러스와 이마트, 롯데마트 등을 ‘대형마트’로 볼 수 없다는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납득하기 어렵다. 유통산업발전법의 자구 해석에 얽매여 입법 취지를 거스르고 있기 때문이다. 골목상권 살리기라든가 대형마트와 중소상인의 상생이라는 이 법의 정신을 지키겠다는 고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를 영업시간에 제한을 가할 수 있는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형마트가 해당 지역 시장을 장악해 골목상권과 재래시장이 무너지고 지역의 자생적 기반이 흔들리는 사태를 막기 위한 것이다. 잘 알다시피 이 법이 만들어질 때 골목상권과 재래시장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홈플러스 등이 이런 대형마트에 해당하지 않으며, 따라서 지방자치단체가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게 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법에서 대형마트를 ‘매장 면적이 3000㎡ 이상으로 점원 도움 없이 소매하는 점포 집단’이라고 정의했는데, 홈플러스 등에서는 ‘점원 도움’ 아래 영업이 이뤄지기 때문이라는 게 주된 이유다. 이런 판결은 법의 자구로만 보면 그럴듯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법 제정 당시 왜 대형마트를 ‘점원 도움 없이’ 물건을 사는 곳으로 규정했는지 생각해보면 지나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화점이나 전문매장과 달리 소비자가 점원 도움 없이 ‘일괄적으로 물건을 담아 구매하는 방식의 창고형 매장’을 두루 일컫기 위해 이런 규정을 담았다.

 

재판부가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중소상공인의 피해와 지역주민들의 불편에 대해 충분히 검토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밝힌 대목도 그렇다. 이 또한 여러 정황으로 보아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영업시간 제한이 중소유통업자 등의 매출 증대에 큰 영향을 줘 공익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1심 판결이 이를 간과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영업시간 제한을 통해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겠다는 입법 의도를 중시하지 않은 대목 역시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판결은 법 자구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법 해석이 한쪽으로 기울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다. 대법원이 어떤 결정을 할지 주목된다.

 

 

[경향신문 사설-20141215월] ‘골목상권 보호’ 법 취지 무시한 대형마트 판결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2일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이마트·홈플러스를 비롯한 6개 업체가 서울시내 구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심을 뒤집었다. 1심에서는 “영업시간 제한이 중소업체나 재래시장 상인의 매출 증대에 큰 효과를 미치는 공익적 규제”라고 밝힌 바 있다. 각 지자체는 대형마트의 연중무휴 영업을 규제하기 위한 유통산업발전법을 근거로 자정~오전 8시와 매주 둘째·넷째 일요일을 의무휴업하도록 해왔다.

법령을 보면 대형마트는 ‘3000㎡ 이상 면적에 점원 도움 없이 소매하는 점포’라고 돼 있다. 이번 판결은 대형마트는 소비자 편의를 위해 점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규제대상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여기서 ‘점원 도움’은 대형마트를 다른 소매점과 구분짓는 편의상의 자구일 뿐이다. 실제 대형마트 고객은 직접 카트를 끌고 다니며 장을 본다. 법 취지를 보면 더 이해할 수 없다. 유통산업발전법은 지난 대선 과정에 대형마트와 변종 기업형슈퍼마켓(SSM)의 확산으로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이 고사 위기에 몰리자 이를 규제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쉽게 말해 ‘대형마트 규제법’이다. 이런 법 취지를 망각한 채 자구 하나로 대형마트가 규제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궤변에 가깝다.

이번 판결의 문제점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재판부는 “전통시장 활성화도 좋지만 맞벌이부부의 불편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또 규제 근거인 대형마트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에 대해 “전통시장 상인들의 건강을 더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취지로 판결했다. 영업 규제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위배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얼핏 옳은 얘기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재래시장 상인의 건강권은 당장 생존을 위협받는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한가로운 얘기다. 맞벌이부부의 불편도 휴일 하루 마트가 문을 닫는다고 장보기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유럽 각국은 우리보다 훨씬 강도 높은 규제를 갖고 있다. 판결문을 곱씹어 볼수록 결론을 내놓고 짜맞추기를 한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대형마트 영업규제의 효율성을 놓고 갑론을박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규제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 효율적인 방안은 찾지 않은 채 이참에 뭉개자는 발상엔 동의할 수 없다. 이번 판결이 법원의 보수화 논란과 맞물려 있다는 게 더 꺼림칙하다. 법치의 테두리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게 법원의 존재 이유다. 상고심의 최종 판단이 주목되는 이유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215월] 대형마트 영업제한은 골목상권 못 살린다는 판결

 

서울고등법원이 롯데쇼핑, 이마트, 홈플러스 등 6곳이 서울 동대문구청장 등을 상대로 낸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일 지정 처분의 취소를 청구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1심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한 것은 여러가지로 주목할 만하다. 대형마트 영업제한은 위법이라는 첫 판결인 점도 그렇지만, 판결 내용에서도 골목상권 보호라는 일방적 관점에서 도입된 규제의 무모함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다.

 

재판부는 지자체들의 조례 자체가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지자체가 명분으로 내세운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 등이 합당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당장 재판부는 영업제한으로 달성되는 전통시장 보호 효과가 뚜렷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1심 판결과는 반대다. 오히려 재판부는 이로 인해 중소상인이기는 마찬가지인 임대매장 업주의 권익이 침해받고, 소비자 선택권 또한 과도하게 제한됐다고 덧붙였다.

 

대형마트 영업을 제한하던 일본, 프랑스 등도 소비자의 선택권, 근로자의 일할 권리 등의 주장에 따라 이를 폐지 또는 완화하는 추세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프랜차이즈 규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등 대형마트 영업제한과 비슷한 맥락에서 도입된 규제들도 과감한 재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15월] 대형마트 휴업 위법 판결… 동반성장 재점검하라

서울고법이 지난주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을 지정하고 영업시간을 제한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마트 영업규제가 전통시장 보호 효과도 없는데다 소비자들의 선택권마저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마트에서 영업하는 임대매장 업주도 중소상인이어서 규제도입 취지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이 아니더라도 진작부터 대형마트 영업규제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온 게 사실이다. 소비자의 발길을 전통시장으로 돌리겠다면서 마트 문을 강제로 닫게 했지만 재래시장이 살아나기는커녕 매출만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2010년 24조원이던 전국 전통시장 매출은 지난해 20조7,000억원으로 3년 새 3조원 넘게 줄었다. 올해는 이보다 1조원 더 줄어 19조원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지방자치단체가 2년 전 조례를 만든 데 이어 지난해 국회가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해 대형마트의 휴일 의무휴업을 못 박았는데도 정작 전통시장은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대신 짭짤한 재미를 본 곳은 온라인쇼핑몰이다. 온라인쇼핑몰 거래액은 지난해 38조원으로 3년 사이 50% 넘게 증가했다고 한다. 유통시장 구도가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아닌 온라인과 오프라인 간 경쟁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유통시장의 판도 변화도 모른 채 정부는 시대착오적 규제로 헛발질만 하고 있다. 중소상인·골목상권 보호라는 명분 아래 시행 중인 동반성장 정책의 부작용 사례는 이뿐이 아니다. '중소기업적합업종' 시행 3년 만에 빵집·두부·간장류 등 수십여개 분야에서 국내 대기업과 중견 전문기업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외국 업체가 채우고 있다. 두부 원료인 콩을 국내 기업에 납품하던 농민들이 도산 위기에 몰릴 정도라니 누구를 위한 동반성장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동반성장 정책이 동반몰락만 재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재점검할 때다.

 

 

■ 군복무 가산점

 

[중앙일보 사설-21041215월] 군 복무에 대한 합리적 보상 논의해보자

 

올해 잇따른 군기 사고를 계기로 출범한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가 지난주 군 복무자 가산점제 등 병영혁신과제를 선정하고, 국방부에 시행을 권고했다. 군 복무자 가산점제는 성실하게 군 복무를 마친 사람에게 공무원·공기업 시험에서 만점의 2% 이내로 가산점을 주되, 가산점 부여 혜택을 한 사람당 5차례로 정하는 한편 가산점을 받아 합격하는 인원을 전체 정원의 10% 이내로 제한했다. 1999년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군필자 가산점제도와 비교할 때 이 제도는 가산점 비중을 낮추고, 횟수나 합격 수혜 인원 제한을 신설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두 제도 모두 군 복무자에게 시험 점수로 보상한다는 측면에서 본질적으로는 같다.

 

 이번 혁신위의 제안이 권고에 불과한 데다 정부 내 여성가족부 등도 여기에 이견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입법 과정에서 위헌 시비, 여성계 등의 반발도 뒤따를 것으로 보여 이 제도의 도입 가능성은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도출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합의점은 2년이란 청춘을 국가를 위해 바친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군 복무가 아무리 국민의 의무라고 할지라도 개인의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으며, 학업이나 직업 경력의 단절을 초래하는 현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군 복무자에 대한 보상은 바로 경력 단절에 대한 보상이며, 군필자가 미필자와 동일한 선상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배려하려는 것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문제는 어떠한 방법으로 이를 보상할 것인지, 그 보상의 정도가 합리적인지 여부다. 과거 군필 가산점제는 시험 만점의 3~5%를 가산점으로 부여하는 바람에 미필자나 여성과 장애인 등이 만점을 받아도 군필자에게 밀려 탈락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드러냈다. 혁신위의 이번 제안 역시 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공직 진출 기회를 가로막는 것은 아닌지 국방부가 꼼꼼하게 따져보고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군 복무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이란 원칙이 해묵은 남녀차별 논쟁에 휩쓸려 실종되지 않길 바란다.

 

 

■ 관련 칼럼

 

[경향신문 칼럼-여적/조호연(논설위원)-20141215월] 군 가산점

 

잊을 만하면 현안으로 등장하는 제도가 있다. 간통죄가 대표적이다. 1953년 형법 제정 후 시시때때로 폐지 주장이 불거졌다. 유명연예인 간통사건 때는 어김없었다. 그만큼 이해당사자가 많고 대중의 관심이 높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 법으로 처벌받은 이가 10만명이라고 한다. 위헌심판 신청도 5번이나 제기됐지만 모두 합헌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성적 자기결정권에 관한 사회 공감대가 갈수록 높아져 ‘간통죄 목숨’은 경각에 달린 상태다.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의 민망한 대사 “나라가 왜 내 아랫도리를 간섭하나”는 간통죄 반대 문구로 자주 인용되기도 했다.

안락사 허용 문제도 심심치 않게 거론된다. 목숨을 인위적으로 끊는 행위에 대한 반감과 품위 있는 죽음의 권리가 맞선다. 의학 발전에 따른 ‘식물인간’ 증가로 사회 현안으로서의 생명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하지만 미리 ‘존엄사’를 가족에게 부탁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등 팽팽하던 논란의 저울추가 기울고 있다. 이 밖에 수능 등 대입제도 개편이나 초·중·고 수학여행 폐지, 카지노 허용, 투표연령 낮추기 등이 수시로 논란거리로 떠오르곤 한다.

군 가산점 부여도 그중 하나다. 2년간의 군 복무로 불가피하게 입은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데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가산점 방식을 두고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강하다. 여성과 장애인 등 군미필자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기 때문이다.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가 최근 ‘군복무보상점’ 도입을 국방부에 권고했다고 한다. 군복무자에게 취업시험에서 만점의 2% 이내로 가산점을 주자는 것이다. 이름만 다를 뿐 군 가산점 제도다. 명분도 실효성도 떨어진다. 혁신위원회 권고는 잇단 병영사고 예방과 병영문화 개선을 위한 것이다.

 

군 가산점 제도가 도입된다고 사병들의 구타 사망과 고급장교 성폭력이 사라지겠나. 군 가산점 제도는 이미 1999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폐지된 바 있다. 헌법에 관련 근거가 없고 특정계층의 양보와 손실을 전제로 하는 탓에 사회적 갈등과 적대감을 부추긴다는 헌재의 당시 판단 근거는 지금도 유효하다. 병영문화를 바꾼다면서 이참에 ‘군복무자 보상 민원’을 해결해보려는 얄팍한 속셈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41215월] 여야, 공무원연금 개혁 시한에라도 합의하라

 

오늘부터 여야가 한 달 일정으로 임시국회에 들어간다. 지난 정기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부동산 3법 등을 포함한 경제ㆍ민생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금 여야가 벌이는 공방을 보면 전망이 밝지 않다. 여야 대표ㆍ원내대표가 합의한 공무원연금법 개정과 자원외교 국정조사를 둘러싼 해석 차이 때문이다. 어설픈 합의에 따른 논란도 어처구니없거니와 법안 처리 불발로 결국 정국 걸림돌이 될 것이란 말이 벌써 나오고 있으니 황당할 지경이다.

 

문제의 핵심은 공무원연금법 관련 합의 내용이다. 여야는 지난 10일 연내에 자원외교 국정조사 특위 구성과 맞물린 형태로 공무원연금법 개정 국회 특위와 국민대타협위원회를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합의 다음날부터 여당은 공무원연금법 처리 시한 설정과 함께 자원외교 국정조사와의 동시이행을 주장하고, 야당은 직접적 관련성이 없는 두 사안의 접목에 반대해 왔다.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문제인 만큼 시간을 두고 충분히 논의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신속처리를 원하는 여당과 달리 야당은 내년 상반기를 염두에 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이견을 풀지 못할 정도로 복잡한 문제가 아니다. 이미 새누리당은 법안을 발의한 상태이며, 야당도 국민대타협위 구성과 동시에 자체안을 내겠다고 공언했다. 여야는 물론 공무원 단체, 전문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할 국민대타협위가 입법 주체인 여야 안을 중심으로 문제를 검토해 대안ㆍ절충안을 내면 그만이다. 어느 모로 보나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릴 일이 아니다. 다만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대타협위의 성격상 쟁점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의사결정 구조와 절차 등과 함께 활동 시한만 미리 정해두면 된다.

 

400만 공무원 가족의 재정적 손실이 불가피하고 자원외교 국정조사와 질적으로 다른 문제인 공무원연금법의 성격을 감안하면 동시에 검토해 동시에 마무리하자는 요구는 무리하다. 다만 정부의 재정 인내 한계를 넘어선 연금지급 구조의 개혁이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야당도 적정한 조속한 처리 방침에 협조해 마땅하다. 구체적 대안 없이 반대만 하는 자세는 무책임하다. 더불어 자원외교 국정조사도 범위 확대 여부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자원외교에 재외공관을 총동원한 이명박 정부는 물론 그 이전 정권이라도 정책적 오류로 인한 실패 사례가 있다면 굳이 빼놓을 이유가 없다. 물론 여당이 구체적 사례도 들지 않고 무조건적 범위 확대를 주장하는 것은 정치공세밖에 안 된다.

 

여야 합의는 천금의 무게를 가져야 한다. 밥 먹듯이 합의를 파기, 신뢰 위기로 도리어 정국 경색을 부르려면 합의하지 않은 것만도 못하다. 여야 지도부가 기왕의 합의가 어그러져 정국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후속조치를 위한 절충에 즉각 나서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41215월] 남북은 상생모델 개성공단 확대의 삽을 맞들어라

개성공단에서 첫 제품이 나온 지 오늘로 10년이 됐다. 개성공단은 그동안 남북 상생(相生)의 경제협력 모델로 자리를 잡았다. 북한 근로자 5만여 명이 124개 남한 기업에서 일하면서 연간 생산액이 약 4억7000만 달러(2012년)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남한은 32억6000만 달러, 북한은 3억8000만 달러의 경제적 효과를 얻었다고 한다(현대경제연구원). 개성공단은 북한엔 시장경제의 학습장, 임금 상승으로 고전하는 해외 진출 남한 중소기업엔 특구 역할을 해왔다. 정치적으론 남북 긴장완화에 기여하고 있다. 지난해 북측 근로자 철수로 가동이 일시 중단됐지만 다시 정상화한 것은 개성공단이 남북 모두에 공공재(公共財)로 인식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개성공단의 과제는 한둘이 아니다. 개성공단은 북한에 대한 신규투자를 허용하지 않는 5·24 조치로 현상유지만 하고 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800만 평의 공단이 전면 가동되면서 북한 근로자 70만 명이 일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가동면적은 20분의 1인 40만 평, 근로자는 5만3000여 명이다. 북한 근로자는 교육을 잘 받았고 생산성이 높지만 중국·베트남 근로자보다 훨씬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 개성공단 확대는 남북 경제 모두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 남북은 개성공단 확대부터 시작해 이 상생의 모델을 북한 전역의 경제특구에 접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선 5·24 대북 제재조치의 해제나 완화가 있어야 한다. 남한은 5·24 조치 해제 문제를 통일 기반 조성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지난해처럼 개성공단을 볼모로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 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리스크가 없는 공단이 돼야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통행·통관·통신의 3통 문제 해결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내년은 광복 70주년이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가 반환점을 돌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 1비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3주기를 끝내고 새로운 접근을 할 수 있는 시기다. 개성공단 확대와 새로운 남북 합작 공단 건설은 남북 윈-윈 관계의 주춧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20141215월] ‘세월호 진상규명’ 짓밟는 새누리 조사위원 선정

 

세월호특별법에 따라 설치될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는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채 304명을 수장시킨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소재를 가림으로써, 비극의 재발을 방지하는 항구적 대책을 세우게 하는 막중한 책임이 부여되어 있다. 세월호 침몰 자체의 원인은 물론 정부의 초기 구조 실패, 부실 대처의 전모를 규명해야 하기에 특별조사위는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무엇보다 필수적이다. 독립성 확보를 위해선 특별조사위원이 우선적으로 기준을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추천한 여당 몫 5명의 특별조사위원은 불편부당한 조사를 위한 최소한의 중립성은 고사하고, 정치적·이념적으로 편향된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심지어 세월호특별법을 반대하고, “유가족들의 행태는 정말 싫다”며 세월호 유족을 조롱한 전력의 인사까지 들어 있다. 마치 세월호 진상규명에 맞서 싸우겠다는 진용이다.

새누리당 추천 위원 면면을 보면 균형과 상식의 잣대를 대기에도 민망하다. 상임위원으로서 부위원장과 사무처장을 겸임할 조대환 변호사는 ‘박근혜 싱크탱크’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이자 대통령직인수위 전문위원으로 활동한 대표적 ‘친박’ 법조인이다. 차기환 변호사는 트위터에 극우사이트 ‘일베’의 게시물을 퍼나르고, 세월호 유족의 세월호특별법 제정 요구를 강력 반대했던 인물이다. 고영주 변호사는 영화 <변호인>의 배경이 된 ‘부림 사건’의 담당 공안검사였다. 고 변호사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지내면서 MBC 세월호 보도와 관련, “(해경이) 무엇을 못했다고 하느냐” “정부를 왜 끌고 들어가는지 모르겠다”는 따위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석동현 변호사와 황전원 전 한국교총 대변인은 새누리당 공천을 신청하고, 당직을 맡기도 한 사실상의 당원이다. 세월호 조사위원에게 요구되는 ‘중립성’과 ‘진상규명 의지’ 어느 하나도 충족하는 인물이 없다.

정녕 친박과 극우 일색의 조사위원들을 집어넣어 정부의 구조실패와 부실 대응, 청와대의 책임에 대한 조사를 방해하겠다는 속셈인가. 생때같은 아들딸과 가족을 잃고, 왜 그토록 무참히 죽어갈 수밖에 없었는지 오로지 진실을 알고 싶다는 유족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인선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일말의 미안함이라도 남아 있다면 새누리당은 이제라도 부적격한 위원 추천을 철회해야 마땅하다. 끝내 부당한 인사들로 인해 세월호특별조사위가 표류하고, 국민적 여망인 세월호 진상규명이 좌초하게 된다면 이후 모든 책임은 새누리당이 져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사설-20141215월] 日 총선 자민당 압승, 평화헌법 개정 경계한다

 

어제 실시된 일본의 중의원 선거(총선)는 자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소선거구 중의원 295명, 전국 11개 광역선거구의 비례대표 180명 등 모두 475명의 중의원을 새로 뽑는 선거 결과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반수를 훌쩍 넘는 대승을 거둔 것이다. 이번 선거는 자민당 총재를 겸하는 아베 총리가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에 대한 국민의 뜻을 묻겠다며 지난달 중의원 해산을 결정함에 따라 이뤄졌다. 자민당 승리에 따라 오는 24일 특별국회를 소집해 새 총리를 뽑는 등 제3차 아베 정권 출범을 위한 절차가 진행된다. 아베 총리는 2006년 9월~2007년 9월 1차, 2012년 12월~2014년 12월 2차에 이어 세 번째 총리직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내년 9월로 예정된 3년 임기의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라 앞으로 2018년까지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이 예상된다.

 

이번 선거는 사실상 아베 독주시대를 열게 되는 의미를 갖는다. 3차 아베 정권은 향후 대규모 금융완화를 바탕으로 하는 아베노믹스를 계속 추진하고 내년 초에는 집단자위권 행사 용인에 따른 후속 입법 등 안보정책 정비에 속도를 내면서 우경화 노선을 한층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발표된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중간보고서에선 자위대의 군사작전 범위를 한반도를 포함해 전 세계로 확대한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설치와 무기 수출 3원칙 폐기 등에 이어 군사대국화의 길로 들어서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평화헌법 개정 여부다.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의 핵심 조항인 9조의 ‘전수(專守) 방위(방어를 위한 무력만 행사) 원칙’ 개정을 필생의 과업이자 정치에 입문한 중요한 동기라고 거듭 강조해 왔다. 지난 8월에는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법제 측면에서 개헌에 유리한 환경을 마련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아베 정권의 2인자인 아소 다로 부총리는 헌법 개정을 위해 나치식 개헌이라고 해야 한다는 망발을 서슴지 않을 정도이고 일본 정부는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승천기의 사용을 공식화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자민당의 압승은 사실상의 군비강화 및 우경화 정책을 추진해 온 아베 정권이 국민들의 재신임을 받았다는 의미가 있다. 일본 국민들의 선택이기에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지만 아베의 기존 정치 행보에 비춰 앞으로 한국·중국 등 아시아 이웃 나라와의 갈등과 긴장이 한결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사 해석과 군대 위안부, 독도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로선 더없이 우려스런 상황이다. 극우 성향의 아베 노선이 유지되는 한 한·일 양국 간의 외교 갈등이 풀어질 기미가 없고, 중국과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도 격화될 것이 뻔하다. 동북아 정세는 군사적 긴장 심화와 군비경쟁 촉발로 이어지면서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릴 가능성이 더 커진 것이다.

 

내년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양국 관계 개선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아베 총리가 과거를 직시하려는 용기와 이웃의 아픔을 배려하는 자세가 없으면 미래로 가는 신뢰를 쌓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는 아시아 패권에 몰두한 나머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경우 시대의 흐름과 역행해 결국 스스로 고립을 자초할 것이란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사설-20141215월] 지자체 ‘문고리 권력’ 전횡 차단책 시급하다

 

지방자치단체의 인사 시스템의 부재는 어제오늘 지적된 게 아니지만 서울신문이 지난주 말 보도한 인사 폐단 사례들은 그 심각성을 다시금 확인시키기에 충분하다. 단체장 선거를 도왔던 인사들이 핵심 고위직은 물론 산하 기관 자리에 포진하고 도 넘은 전횡을 일삼는 사례가 부지기수였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재도입된 뒤 지적된 고질적 행태가 한 치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걱정스럽다.

 

보도에 따르면 단체장의 인사 전횡과 단체장 비선 실세들의 위세는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 불거진 ‘만사형(兄)통’을 빗대 단체장 실세의 성을 딴 ‘만사송통’이란 말이 회자된다고 한다. 상당수 지자체에서는 비전문가인 비선 실세들이 연구기관과 체육단체, 보조금 지원 사회단체의 고위직을 꿰차고 있었다. 폐해가 심각한 것은 이들이 막후에서 인사와 이권에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방 관가와 지역민 사이에선 의혹이 불거진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의 권력에 못지않다는 말이 파다하게 나돈다.

 

단체장 선거 과정에서 정책 공약을 만드는 데 도운 이들을 포진시키는 것은 일정 부분 필요할 수 있다. 정책 분야는 물론 정무와 홍보 분야의 경우 정책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면에서 꼭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당수 핵심 자리가 전문가 그룹을 배제한 채 선거캠프 인사로만 채워지고, 이들을 앉히기 위해 없던 자리를 위인설관용으로 만든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정식 지휘계통이 아닌 비선 실세들이 권한을 휘두른다면 결코 작은 문제는 아니다. 이는 조직과 정책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사라지게 하고, 지자체의 공직 사회가 윗선의 눈치만 보게 만든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오는 것 뻔한 이치다.

 

지자체의 잘못된 인사 행태를 감시하고 제어하는 방안을 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마땅해 보이지는 않는다. 단체장 일인천하 지방정치의 구조 문제 탓이다. 그래서 단체장들이 먼저 가까운 측근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경우가 없는지를 살펴야 한다. 보은 인사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도 주민 앞에 공포하는 것이 마땅하다. 특히 측근의 전횡 정황이 확인되면 보다 엄히 다스려야 한다. 제도적 측면에서는 옴부즈맨제와 신문고를 도입할 필요도 있다. 시민사회단체는 단체장 측근들의 횡포와 비리를 찾는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가동해야 한다. 단체장 주민소환제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215월] 확산되는 경제 비관론, 구조개혁으로 넘어야

 

低유가는 좋은 기회…국회도 경제활성화 입법으로 뒷받침해야

 

경제는 비관론 일색이다. 당장 내년 성장률은 국내외 기관마다 일제히 하향 추세다. OECD는 얼마 전 4.2%이던 것을 3.8%로 낮췄고, 최근 국책연구기관인 KDI도 3.8%에서 3.5%로 내렸다. 3%대 초반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했다. 한국은행 역시 3.9% 전망치를 대폭 내릴 태세다. 심지어 일부 외국계 투자은행에선 2%대까지 제시하는 정도다. 기획재정부조차 이달 말 발표할 2015년 경제정책방향에서 결국 4.0% 성장 전망치를 포기할 것이란 소리가 들린다. 비관론 확산이 끝도 없다.

 

사실 악재만 두드러져 보인다. 세계 경제부터 미국만 빼고 다 나쁘다. 중국은 7% 중성장도 힘겨워 경착륙을 우려하는 판이고, 일본 유럽은 마이너스 성장을 벗어나기에도 급급하다. 유가 급락은 중동의 쇠퇴와 함께 러시아 베네수엘라 이란 등의 재정위기 가능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디플레이션이 더 심화할 것이란 관측이다. 강한 달러가 역사적으로 신흥국 위기의 전조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사정도 호전 기미가 없다. 수출만 제 몫을 할 뿐, 민간소비 기업투자 모두 부진하다. 기업 경기실사지수(BSI)는 몇 달 연속 내리막이다. 특히 중소 제조업체들은 10곳 중 8곳이 내년 경기가 올해와 비슷하거나 나빠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 8대 대표산업 중 6개는 이미 중국에 추월당했다는 게 전경련 분석이다.

 

그러나 비관하면 비관만 보인다. 돌아보면 긍정적인 요인도 많다. 당장 유가 하락은 전체 경제에 상당한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두바이 유가는 지난 주말 배럴당 60달러 선까지 내려와 6월 말보다 38%나 떨어졌다. 지난해 원유 수입액만 993억달러였다. 저유가가 상당기간 유지될 전망이고 보면 원가절감 효과가 막대할 것이라고 봐야 한다. 유가가 10%만 하락해도 교역조건 개선을 통해 GDP를 0.2%포인트 이상, GNI는 0.41% 증가시킨다는 게 기재부의 분석이다. 수출도 든든하게 뒤를 받치고 있다. 올해 2.9% 증가가 예상되고, 내년 증가율도 4.3%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1조달러가 넘는 무역규모와 함께 외환보유액(3631억달러)도 세계 7위인 한국이다. 잠재력은 충분하다.

 

지금이 바로 구조개혁에 나서야 할 적기다. 노동·교육·연금 등 기존 시스템을 바꿔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이미 4%도 안되는 잠재성장률 자체를 끌어올려야 한다. 고통이 적지 않겠지만, 부실산업 구조조정도 더는 늦춰선 안된다. 좀비기업을 연명시키느라 금리인하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상황이다. 재정·금융 확대로는 경제를 못살린다는 것을 일본의 아베노믹스가 보여주고 있다. 국회도 경제활성화법안을 통해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 저성장은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 여당과 야당의 공통과제다. 경제팀을 비판한다고 해서 표가 되지도 않는다.

 

경제는 비관에 빠지면 더 나빠진다. 경제는 좋다고 했던 때가 별로 없다. 그래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한국 특유의 기업가 정신, 도전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미 저성장의 그늘이 짙다. 구조개혁을 더 이상 늦출 여유가 없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215월] 학부모들도 싫다는 혁신학교 왜 강요하나

 

서울교육청이 혁신학교 지정을 취소해달라는 해당 학교의 요구를 마냥 묵살해 논란이 되고 있다. 한경 보도에 따르면 최근 서울 중산고는 학부모들의 반대의견을 모아 혁신학교에서 빼 달라고 요구했다. 비현실적인 교육프로그램으로 학력이 떨어지고 진학실적도 나빠지는 것을 우려해서다. 재학생 학부모와 이 학교로 배정 예정인 인근 중학교 학부모들까지 88%가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 때 도입된 혁신학교는 서울, 광주, 전남·북, 강원 등 좌성향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에서 빠르게 퍼졌다. 하지만 교육 방향과 학교운영방식 때문에 종종 논란이 되곤 했다. 전인교육이란 슬로건 아래 소위 ‘자기주도형 수업’ ‘공동체 교실’로 학교마다 제각각인 교육방식에 대한 반대론이 만만찮았던 것이다. 전교조 등 특정 정치성향의 교사들이 몰리는 데다 학교의 의사구조가 평교사에게 쏠린 게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경기 강원 등 혁신학교가 많은 지역의 학습능력이 전국 최하위라는 분석까지 있었다. 중산고 학부모들도 물론 이 같은 부작용을 알고 반대했을 것이다. 서울교육청이 조희연 교육감의 핵심과제에 차질이 빚어질까봐 요구를 안 들어준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서울교육청의 태도는 잘못됐다. 혁신학교 같은 시험적인 학교운영은 학교의 자율적인 결정이 당연히 존중돼야 한다. 더구나 학부모의 절대다수가 반대한다면 문제가 많다. 연간 최대 1억원 이상의 학교운영비가 추가 지원되는데도 반대한다면 오히려 제도개선에 나서야 한다. 안 그래도 서울교육청은 8개 자사고에 대해 법적 근거도 불확실한 상태에서 지정을 취소하겠다고 나서 한바탕 분란을 야기시켰다. 잘해보겠다는 자사고는 한사코 없애겠다며 싫다는 혁신학교는 강요하는 저의가 무엇인가. 학교는 교육감의 편향된 이념을 실험하는 곳이 아니다. 어떤 분야든 시민의 선택권을 무시하는 공공의 개입은 있을 수 없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15월] '땅콩 회항' 파장이 반기업 정서로 이어져선 안 된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의 파장이 갈수록 번지고 있다. 기내 서비스를 문제 삼아 활주로로 향하던 항공기의 기수를 돌리게 한 뒤 서비스 책임자인 사무장을 내리도록 한 '월권' 행위가 드러나면서 조 전 부사장은 물론이고 대한항공까지 국내외 여론으로부터 호된 뭇매를 맞았다. 하지만 최근의 여론 흐름은 개별 사건으로만 그치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우려를 낳게 한다. 대중의 분노가 처음에는 조 전 부사장 개인에게 집중됐지만 이제 대한항공을 넘어 한국 재벌가들에 대한 분노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대기업 총수 일가의 일탈행위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면서 기업 오너만 챙기면 된다는 그릇된 기업 인식과 소위 황제경영이 낳은 폐해라는 식의 비난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일반화의 오류'일 뿐이다. 소위 갑과 을의 관계는 대기업 총수 일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강남 모 아파트 경비원 자살사건을 비롯해 고객의 식당 종업원에 대한 반말, 택배기사 무시, 심지어 권력관계를 이용한 대학 교수의 제자 성희롱 등도 같은 맥락이다.

 

조 전 부사장이 기업 총수의 딸이라는 점에서 그의 행동이 반(反)기업 정서를 자초한 측면도 부인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특정 사안을 확대 해석해 사건이 있을 때마다 대기업 전체나 오너가를 공격하는 것은 합리적 태도가 아니다. 조 전 부사장에 관해서는 현재 국토교통부에서 조사를 하고 있고 검찰도 수사 중이니 잘못이 있으면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질 것이다.

 

대기업 오너 2, 3세들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함양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재계가 합심해 반기업·반재벌 정서를 해소하려 애써도 이런 사건 하나면 공염불이 되고 만다. 백번 잘하다가 한번 잘못하면 사람들 머릿속에 기억되는 것은 한번 잘못한 일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경제상황에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기업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되는 시기다. 이번 사건으로 자칫 기업인들의 사기가 꺾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강준만 칼럼/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20141215월] 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하는가?

 

갑의 못된 횡포를 ‘갑질’이라고 한다. 갑의 갑질이 얼마나 추악하고 비열한지는 당해본 을만이 안다. 그런데 갑을관계의 진짜 비극은 갑의 갑질에 있다기보다는 갑질을 당한 을이 자신보다 약한 병에게 갑질과 다를 바 없는 을질을 한다는 데에 있다. 병은 또 자신보다 약한 정에게 갑질·을질과 다를 바 없는 병질을 한다.

 

이런 먹이사슬 관계를 온몸으로 가장 잘 드러내는 이들이 놀랍게도 아직 갑을관계의 본격적인 현장에 뛰어들지 않은 대학생들이다. 미리 연습을 하려는 걸까? 사회학자 오찬호 박사가 출간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은 대학생들의 ‘대학서열 중독증’을 실감나게 고발하고 있다. 대학생들과의 자유로운 대화에 근거한 애정 어린 고발인지라 분노보다는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오 박사는 대학의 수능점수 배치표 순위가 대학생들의 삶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전국의 200개 대학을 일렬종대로 세워놓고 대학 간 서열을 따지는 건 단지 재미를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다. 매우 진지하고 심각한 인정투쟁이자 생존투쟁이다. 서열이 한두개 차이 나는 대학을 ‘비슷한 대학’으로 엮기라도 할라치면 그 순간 서열이 앞선다는 대학의 학생들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며 흥분한다. 이런 현실에 대해 오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대학생들은 ‘수능점수’의 차이를 ‘모든 능력’의 차이로 확장하는 식의 사고를 갖고 있다. 십대 시절 단 하루 동안의 학습능력 평가 하나로 평생의 능력이 단정되는 어이없고 불합리한 시스템을 문제시할 눈조차 없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본인이 당한 인격적 수모를 보상받기 위해 본인 역시도 이런 방식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더 ‘높은’ 곳에 있는 학생들이 자신을 멸시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스스로 자신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 학생들을 멸시하는 편을 택한다. 그렇게 멸시는 합리화된다.”

 

대학생들의 이런 정신상태는 우리 사회에서 갑을관계와 비정규직 차별이 사라지기는커녕 앞으로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오 박사 말마따나, 오늘날 이십대는 “부당한 사회구조의 ‘피해자’지만, 동시에 ‘가해자’로서 그런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데 일조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이 모든 게 전적으로 기성세대의 책임이라는 점에서 비교적 편한 시절을 살았던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죄스러울 따름이다.

 

대학생들의 ‘대학서열 중독증’은 미국에서 벌어진 ‘능력주의’(meritocracy) 논쟁을 떠올리게 만든다. 오늘날 미국의 극심한 빈부격차를 정당화하는 주요 이데올로기가 바로 “능력에 따른 차별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고 하는 능력주의다. 능력은 주로 학력과 학벌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고학력과 좋은 학벌은 주로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결정된다. 학력과 학벌의 세습은 능력주의 사회가 사실상 이전의 귀족주의 사회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웅변해준다.

 

이런 한국형 ‘세습 자본주의’를 바꾸는 것이 제1의 개혁의제가 되어야 하겠지만,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갖고 있는 ‘사소한 차이에 대한 집착’도 성찰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수능점수 몇점이나 정규직·비정규직의 능력 차이는 사소한 것임에도 우리는 그런 차이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에 따른 차별에 찬성하는 것을 정당한 능력주의라고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평등주의가 강한 사회라곤 하지만, 평등주의는 위를 향해서만 발휘될 뿐이다. 밑을 향해선 차별주의를 외치는 이중적 평등주의를 진정한 평등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이런 이중적 평등주의는 우리 모두를 피해자로 만든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의 ‘사소한 차이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그 체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50년 전 시인 김수영이 “왜 나는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라고 물었듯이, 이제 우리도 스스로 물어야 할 때다. 우리가 사소한 차이에만 집착하고 그 차이의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것에 분개하는 동안 세상은 점점 더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구조적 불평등과 차별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건 아닐까?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주철환(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20141215월] 통 통 통

간혹 술잔을 든 채 지루한 시간을 버텨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건배사 듣는 자리다. 주례사가 길면 살짝 빠져나가거나 잡담이라도 하련만 센스 없는 건배사는 ‘극기 훈련장’으로 데려가기 일쑤다. 동의하지 않아도 맞장구를 쳐주는 게 예절이고 관행이다. 주로 선배나 상사가 건배를 제의하기 때문이다. 비공개 원칙이지만 평가항목은 네 가지. 간결하고 새로우면서 재미와 의미가 곁들여지면 좋다. 진부한데 해설까지 길게 곁들이면 최악이다.

 

 건배사를 소재로 우리금융지주 이순우 회장이 쓴 칼럼을 읽었다. ‘통통통’ 선창하면 ‘쾌쾌쾌’ 화답한다는 내용이다. 의사소통, 만사형통, 운수대통. 그리고 유쾌, 상쾌, 통쾌. 주문(?)만 외워도 뭔가 뻥 뚫릴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2014년 송년회식 자리의 술맛은 좀 개운치가 않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내일이 마치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시간의 간극 같아서다. 누군가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눈앞에 펼쳐진 오늘은 빛바랜 졸업앨범 비슷해서일까.

 

 대학은 종강을 맞았다. 느닷없이 칠판에 通이라고 쓰고 학생들에게 읽어보라고 했다. 통. 잘 읽는다. 소통, 형통, 대통 모두 ‘통할 통(通)’이다. 건배사로 제격이다. 이번엔 統을 썼다. 역시 맞힌다. 통일, 통솔, 통합 모두 ‘큰 줄기 통(統)’이다. 건배사로 쓰는 데 부족함이 없다. 마지막은 痛이다. 못 맞힐 리 없다. 두통, 치통, 복통. 고통의 형제들 항렬은 가지런하다. 자, 지금부터 퀴즈다. ‘통쾌하다’고 말할 때 이 셋(通, 統, 痛) 중 어떤 ‘통’을 써야 어울릴까. 이번엔 정답비율이 높지 않다. 痛快가 맞는데 通快나 統快라고 유추하는 숫자가 적지 않다.

 

 해석을 곁들이는 건 선생의 직분이다. “통쾌해지려면 고통이 선행되어야 한다. 잘 통해서, 한통속이라서 즐거운 게 아니라 견뎌야 할 고통을 이겨냈기 때문에 즐거움이 크다는 얘기다. 불행은 행복의 맞은편에 있지 않다. 같은 선상에 있다. 불행의 마지막 정거장이 행복이다. 그런데 그걸 못 참고 중간에 내려버린다면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학생들의 표정에 어둠이 깔린다. 마지막 ‘건배사’가 너무 길었나?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떠도는 모양이다. 미국 CIA 고문이 충격적이었다면 한국 청년들이 겪는 희망고문은 비극적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 자꾸 희망을 이야기하니 듣기 고통스럽다는 얘기다. 칠판 글씨를 지우는 선생도 적잖이 뜨끔했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조호연(논설위원)-20141215월] 군 가산점

 

잊을 만하면 현안으로 등장하는 제도가 있다. 간통죄가 대표적이다. 1953년 형법 제정 후 시시때때로 폐지 주장이 불거졌다. 유명연예인 간통사건 때는 어김없었다. 그만큼 이해당사자가 많고 대중의 관심이 높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 법으로 처벌받은 이가 10만명이라고 한다. 위헌심판 신청도 5번이나 제기됐지만 모두 합헌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성적 자기결정권에 관한 사회 공감대가 갈수록 높아져 ‘간통죄 목숨’은 경각에 달린 상태다.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의 민망한 대사 “나라가 왜 내 아랫도리를 간섭하나”는 간통죄 반대 문구로 자주 인용되기도 했다.

안락사 허용 문제도 심심치 않게 거론된다. 목숨을 인위적으로 끊는 행위에 대한 반감과 품위 있는 죽음의 권리가 맞선다. 의학 발전에 따른 ‘식물인간’ 증가로 사회 현안으로서의 생명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하지만 미리 ‘존엄사’를 가족에게 부탁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등 팽팽하던 논란의 저울추가 기울고 있다. 이 밖에 수능 등 대입제도 개편이나 초·중·고 수학여행 폐지, 카지노 허용, 투표연령 낮추기 등이 수시로 논란거리로 떠오르곤 한다.

군 가산점 부여도 그중 하나다. 2년간의 군 복무로 불가피하게 입은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데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가산점 방식을 두고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강하다. 여성과 장애인 등 군미필자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기 때문이다.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가 최근 ‘군복무보상점’ 도입을 국방부에 권고했다고 한다. 군복무자에게 취업시험에서 만점의 2% 이내로 가산점을 주자는 것이다. 이름만 다를 뿐 군 가산점 제도다. 명분도 실효성도 떨어진다. 혁신위원회 권고는 잇단 병영사고 예방과 병영문화 개선을 위한 것이다.

 

군 가산점 제도가 도입된다고 사병들의 구타 사망과 고급장교 성폭력이 사라지겠나. 군 가산점 제도는 이미 1999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폐지된 바 있다. 헌법에 관련 근거가 없고 특정계층의 양보와 손실을 전제로 하는 탓에 사회적 갈등과 적대감을 부추긴다는 헌재의 당시 판단 근거는 지금도 유효하다. 병영문화를 바꾼다면서 이참에 ‘군복무자 보상 민원’을 해결해보려는 얄팍한 속셈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권영설(논설위원)-20141215월] 1000원숍의 진화

 

1000원숍은 예전에 시장마다 있었던 ‘만물상’의 현대식 버전이다. 주방용품부터 문방구, 아이디어상품 등 수만가지를 판다. 경쟁자라면 동네 가게, 슈퍼, 전통시장 등이다. 요즘은 대형마트까지 위협한다. 가장 먼 대척점에 있는 유통채널은 명품매장이다. 명품매장이 1% 상류층을 겨냥한다면 1000원숍은 비싼 물건을 살 수 없는 대다수 중하류층이 대상 고객이다. 초저가할인매장이라고 부르는데 일본에는 100엔숍이 있고 미국에는 달러스토어가 성업 중이다.

 

엊그제 국내 최대 1000원숍인 다이소아성산업이 연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창업 17년 만에 매장을 970개까지 늘리며 세운 기록인데 단순 계산하면 1000원짜리 10억개를 판 것이다. 대단한 기록이지만 일본이나 미국 사례를 보면 우리 1000원숍 시장도 더 성장할 여지가 많아 보인다. 일본 100엔숍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다이소산업은 일본 2700개를 비롯 전 세계 300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연 매출은 3000억엔(약 2조8350억원)이 넘는다. 미국에는 군소업체를 합해 약 3만개의 달러스토어가 있다. 1위 업체인 달러제너럴의 올해 매출은 175억달러(약 19조6000억원)로 예상되고 있다.

 

1000원숍은 원래 작은 틈새시장을 노린 업태였지만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금융위기 등을 겪으면서 오히려 주요 유통채널로 급성장하고 있다. 경기가 좀체 회복되지 않아 주머니가 얄팍해진 소비자들이 더 많이 찾게 된 덕분이다. 그러나 그보단 합리적인 소비가 늘어난 데서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야 한다. 돈이 없어서 싼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같은 물건을 더 비싸게 주고 샀던 불합리를 소비자 스스로 개선하게 된 것이다. 인터넷 스마트폰 등을 활용한 정보 덕분이다.

 

1000원숍이 주된 유통채널로 크게 된 데는 또 공급망관리 등 물류혁신의 힘도 컸다. 예전에는 원가를 지나치게 낮추다 보니 품질에 문제가 많았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품질이 좋으면서도 가격경쟁력도 있는 제품을 쉽게 조달하게 되면서 경쟁양상이 바뀌게 된 것이다. 다이소아성산업의 경우도 35개국 3600개 업체에서 상품을 공급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1000원숍들이 요즘 신경쓰고 있는 것은 상점 내외부의 고급화다. 싼물건을 구매하더라도 이왕이면 정갈하고 세련된 곳에서 사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을 더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멀리 다닐 일 없고, 많이 살 일 없는 시니어들도 1000원숍의 주요 고객이라고 한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20141215월] 러시아 모라토리엄

 

"위대한 국가는 위대한 화폐를 갖는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먼델의 말을 입증하듯 최근 미국과 슈퍼달러의 위세가 대단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춤했던 것이 언제인가 싶다. 셰일가스·오일의 힘까지 더해져 중동·러시아 등의 에너지 패권마저 뒤흔들고 있다.

 

반면 러시아의 추락은 심상치 않다. 지난 3월 크림반도 병합으로 미국·유럽연합(EU)이 경제 제재에 나선 후 빠져나간 돈만 1,000억달러를 웃돈다. 러시아 기업과 은행들이 미국·유럽의 금융 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할 길도 막혀 있다. 총수출의 67%, 재정 수입의 50%를 담당하며 외화 획득에 효자 노릇을 해온 원유·천연가스 등의 에너지 수출도 국제유가 폭락으로 빨간불이 켜졌다. 국부펀드까지 헐어 빚 상환을 지원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가능할지 미지수다. 중앙은행도 루블화 환율·물가급등 속도 조절을 위해 올 들어 700억달러가량의 외환을 투입하고 기준금리를 5번 인상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루블화 공식 환율은 연초보다 달러 및 유로 대비 78%, 57%나 뛰며 연일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수입품 가격이 급등해 체감 경기는 최악이고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2%에서 -0.8%로 고꾸라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히틀러도 러시아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우리는 어떤 시련에도 맞서 이길 준비가 돼 있다"며 정면돌파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생각과 거꾸로 가고 있다. 내년에는 외채 상환을 미루는 모라토리엄(Moratorium·지불유예)을 선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그리되면 러시아·유럽은 물론 우리 경제가 받을 타격도 만만치 않다.

 

상황은 1998년 1차 모라토리엄 선언 당시보다 안 좋아 보인다. 미국과 EU는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전향한 러시아의 역주행을 막으려고 국제통화기금(IMF) 등을 통해 수백억달러를 지원했지만 지금은 푸틴의 에너지 패권 및 팽창주의를 견제하려고 회초리를 든 상태다. 푸틴과 러시아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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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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