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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조선일보]

1. 野 '집권하면 사드 백지화' 솔직하게 밝히라

민주당은 13~14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문제를 다음 정부로 넘겨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현 정부 정책을 모조리 뒤집겠다는 야권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미 가동되고 있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도 다음 정부가 다시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어제 민주당은 "사드 배치는 정상적인 정부에서 이뤄져야 한다. 반드시 차기 정부에서 다시 논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사드 배치까지 최순실이 결정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최순실이 문화체육 관련 문제에 개입한 사실은 드러났지만 한·미 군사 문제에 개입했다는 근거는 단서도 나온 것이 없다. 최씨 사태가 터져 박 대통령이 비난받고 있으니 아무것에나 최순실을 가져다 붙이려고 한다. 도가 지나치다. 박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자 '사드도 탄핵당했다'면서 사드 철회를 요구했던 중국과 다르지 않다.



국민의당은 당론으로 사드를 반대해 왔다. 민주당은 당 대표 등 다수가 사드 반대론자지만 당론은 아니었다. 이제 두 당 모두 대안 없이 다음 정부로 넘기라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속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일단 자신들이 정권을 잡으면 사드를 철회하겠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때까지 미룰 일이 아니다. 당장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겠다고 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일부에서는 북핵 대처에 필요한 사드를 무작정 반대할 수 없으니 현 정권 내에서 사드를 배치하게 하고 야당은 '다음 정권 결정' 주장만 하면서 뒤로 빠지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안보 문제조차 극렬 지지층에 영합하는 것이다.



사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위 체계다. 100%는 아니나 지금 지구 상에 이만한 방어책이 없다. 사드 없이 북의 노동급 이상 탄도미사일을 막을 수 없다. 야당은 북핵 문제를 외교 교섭으로 해결하자고 한다. 외교 교섭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전에 군사 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군사 대비 없는 외교 교섭은 협상이 아니라 굴복이다. 중국이 반발하고 있다. 유의해야 한다. 그러나 일단 북핵 미사일을 막을 방도부터 세운 다음의 얘기다.



야당이 집권해 사드를 철회하면 한·미 동맹에 균열이 불가피할 것이다. 예측이 어려운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을 보호할 사드가 없다면 주둔할 수 없다'고 나올 가능성이 없다고 야당은 장담할 수 있나. 한·일 정보보호협정도 북핵 대응 차원에서 서로가 필요해 체결됐다. 그런 국가 간 합의를 번복하겠다는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국제 무대에서 한국을 믿을 수 없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다.



2. 대통령 성형 의혹 따진 청문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14일 국회의 '최순실 사건' 3차 청문회에선 박근혜 대통령을 진료했던 의료진이 증언대에 섰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모종의 시술을 받느라 대처에 미흡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과 관련해서다. 결론적으로 이날 청문회는 의혹의 본질에 관해선 밝혀낸 것이 아무것도 없다. 세월호 당일에 박 대통령을 본 의사·간호사조차 없었다. 대통령을 치료한 적은 있지만 그날은 아니었다고 했다. 증거 자료도 제출했다.



세월호 당일 아닌 때에 대통령에게 태반주사 등을 처방했다는 의사가 있었지만 미용 목적은 아니었다고 했다. 청와대 간호장교였던 신보라씨도 세월호 당일 대통령 관저로 가글액 등을 전달했지만 대통령을 보진 못했다고 했다. 멍 자국이 있는 박 대통령 얼굴 사진이 제시돼 김영재씨로부터 '필러(시술 자국)인 것 같다'는 대답을 끌어냈지만, 사진은 세월호 참사 한 달쯤 뒤에 찍은 것이었다.



세월호 구조 상황을 대통령에게 보고한 국가안보실장과 해양경찰청장도 출석했지만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 건 없다. '세월호 7시간' 의혹과 관련해 그간 '청와대 굿판' '성형 수술' 같은 소문들이 떠돌아다녔지만 증거가 아니라 단서도 없다. 그 와중에 대통령 머리 손질 시간이 20분이냐 90분이냐를 놓고 논쟁도 벌어졌다. 국민적 관심사가 돼 있는 만큼 '세월호 7시간' 문제는 특검 수사로 규명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 농단'과 아무 관계 없는 이 문제로 의사·간호사들까지 불러 이런 청문회를 해야 하는지, 국회가 지금 이럴 때인지 의문을 지울 수 없다.



[동아일보]

3. 화약 몰래 버려 폭발사고 낸 軍, 당나라 군대냐

울산의 53사단 제7765부대 제2대대 예비군 훈련장에서 13일 소진 기간이 지난 훈련용 폭음통의 화약을 몰래 버렸다가 폭발하는 바람에 장병 10명이 발가락 절단, 고막 파열 같은 부상을 입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초 군 당국은 전투모형 시설물 안에 모아둔 화약이 원인 모를 점화원과 접촉하면서 폭발했다고 설명했다가 하루 만에 말을 바꿨다. 대대장이 폭음통의 소진을 지시하자 탄약반 소대장과 사병들이 이달 1일 1642개의 폭음통을 해체한 뒤 안에 있던 4.9kg의 화약을 길바닥에 뿌렸고, 이를 모르고 지나가던 병사들이 들고 있던 삽과 갈퀴로 바닥을 긁어 마찰을 일으키자 폭발했다는 게 정확한 사고 원인이라는 것이다.

당일 예비군 훈련이 없어 더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러나 대대장이 상식 밖의 지시를 한 것이나 전날 군 당국이 엉터리 발표를 한 까닭, 그리고 하루 만에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발표한 상황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사고 원인 조사를 맡은 헌병대는 대대장이 폭음통 화약을 분리해 버리는 방식을 알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지휘관을 옹호하는 듯한 태도까지 보였다. 사고 원인이 전혀 엉뚱한 데 있었던 것은 아닌지 추가 수사를 통해 규명해야 한다.

사고 원인 발표대로 탄약 검열에 대비해 일사천리로 화약을 폐기했다면 군에서 조직적으로 혈세 낭비가 자행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훈련 때 쓰지 못한 비품이 있다면 다음 해로 넘겨 계속 사용하는 게 정상일 것이다. 군 간부들이 장병들을 시켜 국민 세금으로 마련한 부대 비품을 눈속임으로 소진토록 하는 부대가 이곳뿐이겠는가.

내년 국방예산은 다른 분야보다 높은 4%대의 증가율을 보여 40조 원대를 넘어섰다. 국민이 다른 예산과 달리 국방비 증액에 별다른 토를 달지 않는 것은 국방력 강화와 병영 환경의 개선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군이 구시대적인 문화를 답습하면서 세금을 눈먼 돈쯤으로 여기는 행태를 근절해야 한다.



[서울신문]

4. 126억 공짜 주식이 우정의 선물이라니

진경준 전 검사장이 넥슨 김정주 창업주로부터 받은 공짜 주식을 뇌물로 볼 수 없다는 1심 판결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많은 국민은 상식과 어긋나고, 정의와도 거리가 멀다며 관련 기사에 수많은 댓글을 남겨 재판부를 성토했다. 한 네티즌은 “이런 식으로 나쁜 전례를 남기니 나라가 썩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고, 또 다른 국민은 “제발 상식이 통하는 나라 좀 만들자”고 호소했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진 전 검사장은 130억원대의 범죄 수익도 추징당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범죄의 장본인인 고위공직자가 고작 4년의 실형만 복역한 뒤 평생 떵떵거리며 풍족하게 산다면 국민은 심한 박탈감과 함께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1심 재판부는 진 전 검사장이 2005년 법무부 검찰국 검사 시절 친구인 김씨로부터 4억 2500만원을 받아 넥슨 주식을 산 뒤 검사장 승진 직후인 지난해 팔아 126억원을 챙긴 것과 관련해 직무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이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주식 종잣돈’을 받을 당시 진 전 검사장이 직접 수사를 담당하거나 수사에 영향력을 미칠 위치에 있지 않아 뇌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매우 친한 친구 사이를 뜻하는 ‘지음’(知音)이라는 고사성어까지 인용했다.



김씨가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하지만 모두 설득력이 부족하다. 재판부는 검찰 조직 내 검찰국의 막강한 위상을 간과해 직무 관련성을 좁혔고, 검사와 재력 있는 사업가 친구 간의 돈거래를 조건 없는 우정으로 판단했다.

무엇보다 김씨는 수사와 공판 과정에서 “검사라 주식 매입 자금을 줬고, 형사사건에서 도움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보험성 뇌물’이란 점을 시인하지 않았는가. 김씨는 대가를 기대하며 줬다는데 재판부는 “대가성이 없었다”는 진 전 검사장의 주장만 받아들인 셈이다. 이번 판결은 공직자들의 부패와 비리를 엄벌하는 시대정신과도 맞지 않는다.



9월부터 시행된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에 따라 공직자는 5만원 넘는 선물을 받을 수 없다.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한 사람에게서 연간 300만원 이상을 받으면 형사처벌된다. 소급 적용할 수는 없지만 증거법적 논리를 내세워 공짜 주식 대박에 면죄부를 준 것은 부당하다. 항소심에서는 국민의 법 감정과 시대정신 등을 반영해 모든 국민이 납득할 만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



5. 누가 봐도 부당한 친박계의 윤리위 장악

새누리당 친박계 지도부의 ‘박근혜 구하기’ 행태가 도를 넘고 있다. 당 윤리위원회에 친박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해 윤리위의 박 대통령 징계 방침 뒤집기에 나선 것이다. 윤리위는 그동안 최순실의 국정 농단 공범으로 지목된 박 대통령 징계 방침을 확정하고 수위를 논의하던 터였다. 친박계가 윤리위를 장악해 징계를 무산시키겠다는 의도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 민심이고 양심이고 모두 팽개치면서 이판사판 달려드는 모습이 목불인견이 아닐 수 없다.

이정현 대표 등 친박계 지도부는 그제 최고위원회를 열어 친박계 의원 4명과 원외 인사 4명 등 8명을 새 윤리위원으로 임명했다. 윤리위에 15명까지 임명이 가능하다는 당규를 근거로 했다. 이진곤 위원장을 포함해 7인으로 구성된 윤리위를 꽉 채운 것이다. 20일 박 대통령 징계 수위 결정을 앞둔 기존 윤리위원들로선 그야말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셈이 됐다. 윤리위는 애초 박 대통령에 대해 ‘탈당 권유’ 수준의 징계를 내릴 가능성이 컸다고 한다.

이들은 이날 밤 긴급회의를 열어 일괄 사퇴를 결정했다. 친박계 인사들이 ‘점령’한 윤리위에서 들러리를 설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윤리위원장은 “국민 신뢰나 윤리성 회복엔 관심도 없이 윤리위를 들러리 세워 대통령 보호에만 급급해하고 있다”고 친박계를 강하게 비판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도 어제 “주위에서 정신 나갔다고들 한다. 가족들이 당장 당에서 나오라고 한다”고 말했다. 백번 옳은 지적이라고 본다. 얼마나 어이가 없으면 당 원내대표까지 지도부에 이런 독설을 퍼붓겠는가.

친박계의 윤리위 장악이 단지 박 대통령 보호용으로만 머물지도 않을 것 같다. 향후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 비박계 핵심 의원들을 출당시키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징계권을 무기로 그동안 친박계에 맞서 온 의원들에게 해당행위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크다. 당장 원내대표 선출과 비상대책위 구성을 앞둔 비박계 및 중도 성향의 의원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친박계 지도부는 새 윤리위원 임명을 취소하거나 유예해야 한다. 임명하더라도 최소한 박 대통령에 대한 징계건이 마무리된 뒤에 해야 옳다. 그래야만 비박계 일색의 윤리위를 보강한 것이라는 친박계의 논리도 조금이나마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오로지 보스를 구하고 정적을 쳐내려는 막가파식 친위 쿠데타란 국민의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정적보다 더 무서운 게 국민의 심판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잊어서야 되겠는가.



[매일신문]

6. 경북 탄소산업 클러스터 예타 통과, 이제 시작이다

경북도와 전북도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탄소산업 클러스터’ 조성 사업이 13일 정부의 예비 타당성 조사를 통과해 첫 단추를 뀄다. 이로써 정부와 경북도`전북도는 내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총사업비 881억원을 투자하게 돼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탄소산업 시대를 열게 됐다. 

이번 예타 통과는 적잖은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경북도와 전북도가 힘을 모아 성과를 이뤄냈다는 사실이다.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전북이 전체 예산 881억원 가운데 장비비의 경우, 경북 예산(110여억원)이 전북(20여억원)보다 많은 것을 문제 삼는 등 갈등을 빚자 경북이 ‘통 큰’ 양보로 관문을 통과했다. 경북은 뭉텅 깎인 예산(40여억원)을 전북에 넘겼고 두 지역은 영호남을 넘는 동반 성장의 틀을 만들었다. 앞날을 위한 아름다운 양보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오랜 세월을 참으며 이번 결과를 이뤄낸 경북의 뚝심이 빛을 발휘했다. 사실 경북 탄소산업의 시작은 2011년 도레이사의 구미 유치부터다. 이후 2012년 19대 대선 공약 채택과 함께 지난해 정부 예타 조사 사업 선정에 이어 이번 예타 통과까지 6년이 걸렸다. 예타 선정부터 1년 8개월 동안 무려 9차례나 심사를 거치는 등 우역곡절을 겪었다. 경북의 끈질긴 설득 작업과 인내가 일궈낸 결실이다.

이처럼 숱한 고비를 넘긴 만큼 앞으로 탄소산업 클러스터 조성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각오로 추진해야 한다. 당초 경북은 클러스터 조성 사업에서 탄소산업의 상용화를, 전북은 원천기술 개발로 역할을 분담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따라서 경북은 상용화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밑그림을 제대로 그려야 한다. 

이를 위해 구미에 조성키로 한 융복합 탄소 성형 부품 단지의 차질 없는 추진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된 업체에 대한 탄소 소재 부품 상용화 기술 지원 확대와 탄소 소재를 필요로 하는 자동차 업체와의 협력도 절실하다. 특히 대구경북이 강점인 자동차 부품 업체와의 연계는 더욱 그렇다. 탄소가 4차 산업혁명을 이끌 꿈의 소재로 불리는 만큼 경북은 이번 예타 통과를 계기로 대구경북의 미래 먹거리 산업을 선점하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7. 가스계량기 재활용 쉬쉬한 대성에너지의 기업 윤리

대성에너지가 도시가스 계량기를 교체하면서 사용 연한이 지난 폐품을 재활용하고도 새 계량기 비용을 소비자에게 청구해 매년 수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겨온 것으로 확인됐다. 더욱이 계량기는 가스 업체의 단독 소유가 아니라 소비자가 비용을 공동 부담한 사유 재산임에도 계량기 재활용과 교체 비용에 관해 전혀 알리지 않았다. 이는 사실상 소비자를 기만한 행위라는 점에서 기업 윤리까지 의심받고 있다. 

대성에너지가 법적 사용 연한 5년을 넘긴 계량기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점검 뒤 재활용한 계량기는 지난해만 9만여 개로 파악됐다. 폐기해야 할 계량기를 재사용해 최근 5년간 얻은 이익만도 40억원이 넘었다. 이는 명백한 부당이득이다. 최근 계량기 재활용을 확인한 일부 아파트 단지 주민은 대성에너지를 상대로 법적인 책임을 묻겠다고 나섰다.

대성에너지는 민간도시가스 사업이 시작된 1980년대 중반부터 대구경북에 도시가스를 독점 공급해왔다. 이런 잘못된 행태가 처음 확인된 점을 감안하면 근 30년간 계량기 교체를 놓고 대구경북 소비자를 속여온 것이다. 사용 연한이 경과한 계량기는 전량 폐기하거나 재활용 시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마땅하다. 부산시 가스공급업체의 경우 전량 폐기하고 있고, 서울`인천시도 재활용 과정과 교체 비용을 소비자에게 공개해 아예 오해의 소지를 없앴다. 

그런데도 대성에너지는 “동의 없이 재활용한 것은 잘못이지만 부당이득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폐기 대상 계량기를 재활용하면서 발생한 차액을 가스요금 인하에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만약 사실이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요금 인하에 반영했는지 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번 사태에 대한 대구시의 해명도 납득하기 힘들다. 시는 업체가 계량기를 임의로 수거해 재사용하고 부당이익을 얻었는데도 “업계 관행으로 안다”고 두둔했다. 동의 없이 사유 재산을 처분한 것도 모자라 폐품 가격이 아닌 새 제품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더 많은 비용을 부담시킨 것을 어떻게 관행으로 치부할 수 있나. 백 번 양보해 관행이라고 치더라도 왜 타 지역 도시가스업체는 대성에너지와 다르게 일 처리를 하는지 대구시와 대성에너지는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매일경제]

8. 무디스의 신용등급 악영향 경고 예사롭지 않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그저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가 한국 경제와 국가신용도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는 보고서를 냈다. 무디스는 '(후임 대통령이 나올 때까지) 새로운 주요 정책이 실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며 '이에 따라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미뤄 국내총생산(GDP) 성장에 부담을 줄 수 있으며 이는 (국가) 신용도에 부정적'이라고 밝혔다. 또한 '단기적으로 정책 효과가 떨어질 수 있으며 미래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도 커졌다'고 분석했다.

물론 무디스가 당장 한국의 국가신용등급(Aa2)을 떨어트릴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친 건 아니다. 무디스는 대통령 탄핵에 따른 국정 공백에도 한국의 제도적·재정적 역량이 경제에 회복력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보고서의 행간에는 경고의 의미로 읽어야 할 대목이 많다. 무디스는 이미 한국의 성장률을 내년 2.5%, 2018년 2.0%로 낮춰잡았으며 현재 하방 리스크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지난 10월 말에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유지하면서 '진행 중인 구조개혁이 후퇴하거나 중장기 성장 동력이 약화될 경우, 재정건전성이 약화될 경우, 북한 관련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아질 경우' 등급이 하향 조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탄핵 정국에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상황이다. 

우리는 외환위기 후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국제신용평가사의 눈초리가 얼마나 매서운지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1997년 말 한국 신용등급을 투기등급(Ba1)으로 후려쳤던 무디스는 12년이 지나서야 위기 전 수준(A1)으로 다시 올려줬다. 국가신용등급에서 한국은 2012년 마침내 일본을 따라잡았고 지금은 일본(A1)보다 두 계단이나 높은 사상 최고 수준을 지키고 있다. 

그토록 눈물겹게 올려놓은 신용등급이 다시 떨어지지 않도록 대외 신인도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때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유일호 경제팀이 성장 활력 제고와 구조개혁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야 하며 여야 정치권이 이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어야 한다. 국내외 투자자들이 한국 경제의 회복력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도록 다양한 채널로 소통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중앙일보]

9. 살처분 1445만 마리 ··· 황교안, AI재앙부터 수습하라

탄핵 정국으로 국정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재앙이 전국을 뒤덮고 있다. 지난달 16일 충북 음성군과 전남 해남군 농가의 가금류에서 AI가 처음 발생한 이후 한 달도 안 돼 전국으로 확산됐다. 14일 0시 현재 곧 매몰하는 378만 마리를 포함한 살처분 가금류는 1445만 마리에 이른다. 2003년 이후 9차례 발생한 AI 중 2014년(살처분 1396만 마리)을 뛰어넘는 최악의 기록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라면 3305만 마리가 살처분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전국 가금류 1억5504만 마리의 21%, 국민 1.5명에 한 마리꼴이다.

AI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막심하다. 올 들어 주춤하던 신선 가금류 수출이 폭탄을 맞았고, 청정국 지위 유지도 어려워 보인다. 계란 값은 10~20% 뛰어 일부 지역에서는 ‘1인 1판’ 제한 판매를 시작했고, 빵·과자 제조 영세업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가금류 조기 출하가 급증하면서 닭고기 도매가는 한 달 사이 20% 이상 떨어졌다. 익혀 먹으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도 광주광역시 ‘오리탕 거리’ 등에는 손님이 뚝 끊겼다고 한다. AI가 서민 생활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AI 재앙은 전적으로 무능·무기력한 정부 책임이다. 국정 농단 정국에 매몰돼 초동 대응에 정신 줄을 놓다가 지난해 메르스 사태와 같은 대재앙을 자초했다. 초동 대응에 실패한 농림축산식품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지난 10월 말 충남의 철새 분변에서 치사율이 높고 인체에도 위험한 것으로 알려진 H5N6형 바이러스가 검출됐는데도 “올해는 AI가 없다”며 안이하게 대응했다. 그러다가 지난달 16일 이번 재앙의 시발이 된 가금류 AI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하지만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은 이틀 뒤에야 회의를 열었고, 황교안 총리도 9일 후에 의정부시를 방문한 뒤로 손을 놓았다. 방역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지방자치단체와의 공조도 무너졌다. 약발이 듣지 않는 소독약이 공급되는가 하면, 일부 지자체는 허둥대다가 허위로 방역 신고를 했다. 일시이동중지(standstill) 명령이 세 번 발동됐지만 여러 농가가 어겼고, 감염 사실을 알고도 출하하기도 했다. 정부의 컨트롤타워가 먹통이 되는 사이 AI가 통제 불능으로 치달은 것이다.

뒤늦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의지를 보인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12일 첫 AI 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총력 대응을 지시한 데 이어 어제도 중앙·지방정부 회의를 주재하며 상황을 챙겼다. 황 권한대행은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지난달 AI 발생 두 시간 만에 철저 방역을 지시하고, 살처분에 자위대까지 동원한 리더십을 뼈아프게 되새기기 바란다. AI를 잡는 것이 서민을 챙기는 것이다. 황 권한대행 체제가 방역시스템을 정비하고 AI를 수습하는 리더십부터 보여주길 기대한다.



[경향신문]

10. 해운산업 전체를 망가뜨린 한진해운 구조조정

한진해운이 결국 청산으로 문을 닫게 됐다. 한진해운에 대한 실사작업을 벌인 삼일회계법인은 어제 ‘존속 불가’ 보고서를 서울중앙지법 파산6부에 제출했다. 한진해운의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커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수출입 물동량의 99.7%는 해상 운송을 통해 이뤄진다. 하릴없이 한국이 해운 6대 강국에서 추락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마음이 무겁다. 

정부가 해운산업의 특성을 알고 구조조정에 나섰는지 궁금하다. 해운산업은 막대한 비용과 장기간의 투자가 요구된다. 선박을 건조하거나 매입하기 위해서는 수천억원이 든다. 물류 네트워크는 돈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시간과 신뢰구축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또 해운은 유사시에 전략물자를 수송해야 하는 전략자원이므로 산업 외적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각국 정부가 해운사를 지원하는 것은 다각적인 필요성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해운업계의 ‘17조원 피해’ ‘수천명 실직’ ‘전략적 필요’라는 목소리를 “과장된 주장”이라며 걷어찼다. 금융논리만 있고 국가운영·산업정책적 고려는 안 해도 그만인가. 

조선업계와 달리 해운업계에 대해 차별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다. 정부는 구조조정의 원칙으로 ‘국민혈세 투입 없는 자구안 마련’을 내세웠다. 이에 따라 해운업계는 변변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대우조선에는 4조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무슨 근거로 이처럼 이중적인 결정을 했는지 놀라울 뿐이다. 정부는 세계 7위 한진해운에서 손을 떼면서 현대상선을 세계적인 해운사로 키우겠다고 했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현대상선은 며칠 전 세계해운동맹 가입에 실패해 안정적인 물량확보에 타격을 입게 됐다. 현대상선은 ‘체급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대형화와 광범한 네트워크가 절실한 해운업계에서 저체급에 해운망까지 협소한 현대상선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다. 

한진해운의 공중분해로 해운산업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한국은 세계 10대 무역국에 걸맞은 해운사를 잃었다. 해운 관련 지역 경제도 말이 아니다. 정부의 비전이 헛발질로 끝나면서 현대상선의 앞날도 위태롭다. 한진해운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희생양이라는 말도 들린다. 어설픈 구조조정으로 해운업계는 오히려 경쟁력을 상실했다. 정부가 무슨 생각을 갖고 구조조정의 칼질을 했는지 묻고 싶다.





주요 신문칼럼

 

1. [프레시안] 핵 재앙, 세월호…영화 <판도라> 왜 뜨나?

드디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영화 <판도라>는 개봉 6일만에 1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천만 관객의 영화 <국제시장>이 개봉 초반에 보여주었던 관객 수와 비교되고 있다. 앞으로도 더 큰 흥행이 이어지리라 예측하는 기사들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의 흥행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제 때를 만났고 크게 공명하기 시작했다. 반핵 운동가들이 계속 이야기해왔지만 실감하기 어려웠던 우려가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비록 '허구'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타났지만, 영화를 보고 나온 많은 이들은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영화 상영 내내 극장은 깊은 한숨과 멈추지 않은 눈물이 가득했다. 종영 후 누구라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핵발전소 폐쇄!"를 외쳐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판도라> 신드롬이라고 부를만한 사회적 현상이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각본이 나온 지 4년, 영화 촬영을 끝낸 지 1년 6개월. 박정우 감독의 이 영화는 그냥 묻혔을 수도 있었다. 영화를 찍는 동안에 직간접적으로 들어왔던 정치적 압력과 방해들이 언론을 통해서 공개되고 알려지고 있지만, 정치사회적 분위기도 그럴 만 했다.


후쿠시마 핵사고 후,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 등 핵마피아들은 잠시 흔들렸지만 급속히 전열을 정비했다. 고리 1호기 폐쇄라는 일부 양보를 내주었지만, 곧바로 월성 1호기 수명 연장, 신고리 5,6호기 건설 허가 승인을 얻어냈다.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일부 위원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의 압력을 받고 있었다는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거수기 위원회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 탓이다. 후쿠시마 핵사고로 각성된 일부 시민들도 핵발전소 폐쇄를 위해서 싸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었다. 영화는 제대로 시민들에게 다가가지도 못한 채, 위축된 분위기 속에서 막을 내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가지 계기가 찾아왔다. 하나는 월성 핵발전소가 위치한 경주 인근에서 발생한 큰 지진과 이어지는 여진들이다. 그 순간에 애써 외면했을지 모를 핵발전소 사고의 공포가 경주, 울산, 부산 등의 시민들의 몸을 훑고 내려갔다. 이어 월성 핵발전 단지가 지진에 취약한 단층대 위에 건설되어 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면서, 시민들의 공포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기 시작했다.



둘째, 경주 지진을 이어서 찾아온 최순실-박근혜 사태는 한국 사회를 큰 충격에 몰아넣었지만, 그 반대 편에서는 그동안 숨죽여왔던 목소리들이 터져 나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핵발전소의 위험을 경고하는 보고서가 비선을 통해서야 대통령에게 전달될 수밖에 없었던 영화 속 이야기와 다르게, 이제 그 영화는 박근혜 정권으로 대표된 지배 체제의 이완 속에서 전국 각지에서 많은 시민들 앞에서 상영하게 되었다. 또한 시민들도 촛불의 자신감으로 '불편한 진실'을 직시할 용기를 얻었으리라.

영화를 보면서 세 가지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조금만 풀어보겠다. 

첫째, 당연하게도 핵발전소 사고를 다룬 '재난 영화'다. 이 영화는 진도 6.1의 지진으로부터 시작된 핵발전소의 대재앙을 다루고 있다. 영화 속에서 후쿠시마의 핵사고가 보이고, 또한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지진 속 월성 핵발전소도 생각났다. 한수원은 영화가 모델로 삼았다고 주장하는 고리1호기는 부지 바로 밑에서 진도 6.5의 지진이 발생해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걱정할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경주 인근에 더 큰 지진이 올 수도 있다는 일부 지질학자들의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한 월성 핵발전소가 충분한 안전 검토 없이 수명연장이 되었으며 최근 지진으로 가동 중지되었다가 안전 대비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재가동이 승인되었다는 환경단체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김무성과 같은 정치인이 아니고서는 "지진·폭격에도 절대 폭발하지 않는다"고 쉽게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수백억 원을 들여 핵발전소 안전을 홍보하고 비슷한 이름의 영화 <판도라의 약속>의 판권을 사서 상영해온 한수원의 주장을, 김무성이 앵무새처럼 되풀이 한 것이지만.

둘째, 한국사회에 구조화된 '세월호 사건'을 다룬 영화로 읽을 수 있다. 영화의 대통령 김명민은 "내가 할 수 있는 하나도 없다"며 좌절하고 무능 속으로 스스로를 추락시켰다. 그의 좌절과 무능은 핵발전소 주변 인근에 300여만 명 가량이 거주하고 있다는 구조적인 요인으로부터 기인한다. 이렇게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하면 어떤 대책을 세워 놓더라도 주민을 안전하게 대피시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현실 속 한수원이 '원자력 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에 의한 주민대책이 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영화 속 대통령은 어떤 판단과 결정으로도 모든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지킬 수 없었다. 

관객들은 현실의 법규정에 대한 신뢰보다 영화 속 대통령의 좌절에 더 동감을 하게 되지 않을까? 솔직히 말해서 핵발전소 사고가 난다면 역대 어떤 대통령이 오더라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 속 대통령은 상황실을 떠나 유폐했다. 오히려 권위주의적이고 반인권적 태도로 일관한 국무총리 이경영만이 대통령이 사라진 상황실을 장악하고 무언가 일을 하는 듯이 보였다. 그의 최우선 목표는 한국사회의 기득권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고, 그에게 주민들의 안전은 쉽게 내줄 수 있는 카드였다. 

국무총리는 핵발전소에서 방사능 물질이 대규모로 퍼져 나가자 반경 30km의 주민들에게 알리고 대피시킬 것을 명령하는 대통령에 맞섰다. 수백만 명이 일시에 거리로 쏟아져 나올 사회 혼란을 우려했고, 주민들을 속이는 거짓말을 지시하고 지역 봉쇄를 명령했다. 이 지점에서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며, 거짓말과 은폐로 일관했던 청와대를 향한 분노가 다시 끓어오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핵발전소 반경 30km 안에 수백만 명이 사는 대도시가 있다는 사실은 세월호 사건와 같은 모순이 구조적으로 배태되어 있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다시 강조하지만 박근혜가 아닌 어떤 대통령이 들어서더라도 영화 속 대통령의 좌절과 무능 그리고 국무총리의 독단과 반인권적 태도로부터 크게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셋째, 이 영화는 '노동 영화'로 볼 수 있다. 1990년대의 <철의 노동자>나 최근의 <카트>와 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핵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비중있게 그려냈다. 영화 속 핵발전소 사고에 투입되는 노동자들은 모두 하청업체 소속으로 "방사능을 묵으면서" 일하고 있었다. 그들의 아버지와 형제들은 이미 방사능에 과다 노출되는 사고를 겪으면서 죽어갔다. 

이는 실제의 현장 속 이야기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계기판 앞에 앉은 정규직 노동자들과 다르게 방사능 위험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현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핵발전소에 가면 지금 당장이라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하청업체의 바지 사장이 몇 번이나 바뀌어도 같은 현장에서, 정규직 노동자보다 더 적은 급여와 복지 그리고 차별을 감내하면서 일하고 있다.

영화 속 이들은 자신들이 이미 방사능에 많이 노출되었으니 목숨을 건 복구 작업에 들어가겠다고 나선다. 순순히 그런 것은 아니다. 그들은 화가 나 있었다. 정부와 회사는 자신들의 살던 고장에 억지로 핵발전소를 밀어 넣고 그곳에서 방사능에 노출되어가며 밥벌어 먹고 살게 만들더만, 결국은 큰 재앙을 불러 왔다. 그러고서는 사고 복구를 위해서 그들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부당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지켜야 할 가족이 있었다. 여기서 신파가 시작되고 영웅주의가 솟아 오르지만,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우리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와 같은 책이나 후쿠시마 현장의 노동자 실태를 고발한 일본의 나이즈마 히데아키와 같은 사람의 입을 통해서, 핵발전소 사고에 투입되고 죽어나간 수많은 노동자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영웅이라고 부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들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방사능으로 더 오염된 세상에서 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대통령에게 발전소장이 보고한다. 무사히 작업을 마무리했다고. 그리고 '그 사람'의 안부를 묻는 대통령에게 발전소장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 사람 이름은 장재혁입니다."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이였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름도 없이 "그 사람"이었다. 그제서야 그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대통령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기억해야 할 이름이 너무 많다.



2. [서울신문][말빛 발견] ‘사’와 ‘자’와 ‘장이’, 그리고 ‘쟁이’

‘사’(師)는 뒤에 붙을 때 ‘그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더한다. 요리사, 간호사, 사진사, 전도사 같은 말의 ‘사’가 다 그렇다. 한자가 다른 ‘사’(士)도 비슷한 구실을 한다.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조종사 같은 말에서 보인다. ‘자’(者)도 ‘사람’의 뜻을 더하긴 마찬가지다. 과학자, 교육자, 노동자, 기술자, 연기자의 ‘자’가 모두 ‘사람’이라는 의미를 덧붙인다.

또 있다. ‘장이’도 ‘사람’이라는 의미를 보탠다. 옹기장이, 칠장이, 대장장이, 간판장이, 미장이 같은 말들이 있다. 한데 이들은 모두 ‘기술’을 가졌다. 앞의 말과 관련된 ‘기술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본래 가진 말뜻 자체도 그렇다. ‘장인’, ‘기술자’를 뜻하는 ‘장’(匠)에 ‘사람’을 가리키는 ‘이’가 붙어서 만들어졌다.

‘장이’의 이러한 뜻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그렇지만 발음은 적힌 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장이]라 하지 않고 [쟁이]라고 한다. 뒤에 있는 ‘이’의 영향을 받은 결과다. 꼬챙이, 냄비, 신출내기 같은 단어들도 그래서 변했다. ‘장이’도 바뀔 뻔했다. 1988년 표준어 규정을 바꾸는 과정에서 ‘쟁이’로 가자는 의견이 많았으나, 논란 끝에 둘로 나뉘었다. ‘장인’의 뜻이 살아 있는 말은 ‘장이’, 그 외는 ‘쟁이’가 됐다.

글쟁이, 그림쟁이, 멋쟁이, 겁쟁이, 수다쟁이…. ‘쟁이’는 ‘그러한 특성을 가진 사람’과 ‘낮잡아 이르는’ 뜻을 더한다. 자신에게 ‘월급쟁이’라고 하면 겸손이 되지만, 남에게 그러면 실례가 될 수 있다.



3. [서울신문][문화마당] 읽기와 말하기/김재원 KBS 아나운서

“원고가 있는 거죠?” “그걸 어떻게 다 외워요?” “혹시 프롬프터가 있나요?” ‘6시 내 고향’을 보는 사람들에게 받는 질문이다. 여자 진행자와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 궁금증이 생기나 보다. 물론 원고는 있다. 구성 작가들이 공들여 섭외하고 취재해서 써 준다. 굳이 드라마처럼 대본이라 하지 않고 원고라고 하는 이유는 대본에 적힌 대사를 그대로 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고는 줄거리와 흐름을 알려 준다. 리포터가 이런 대답을 준비하고 있으니 알아서 질문해 달라는 뜻이다. 고향 소식을 보고 나서는 내 생각과 느낌을 자연스럽게 말할 뿐이다. 나는 원고를 읽거나 외우는 것이 아닌 말하기를 한다.



언어 학습은 읽기와 듣기, 쓰기와 말하기가 바탕이다. 읽기와 듣기는 남의 생각과 지식을 받아들이는 방법이고, 쓰기와 말하기는 내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책을 읽고, 수업을 들으면서 배웠지 생각을 말하거나 쓰는 교육은 기회가 많지 않았다. 특히 말하기는 원고를 읽거나 외우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웅변이 유행이었다. 부자연스러운 억양으로 원고를 보거나 외우면서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는 방법이었다. 말하기 교육의 일환이었다지만 자연스러운 말하기는 아니었다. 소리 내어 읽기는 말하기의 흉내일 뿐이다.

예능 프로그램은 주로 출연자들의 말하기로 진행된다. 대화 속에서 재미를 찾아낸다. 교양 프로그램은 격식 있는 대화다. 품위를 유지하면서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 간다.

예부터 뉴스 앵커는 자신이 쓴 글을 읽어서 전달해 왔다. 취재기자의 원고에 생각을 덧붙여 멘트를 쓰고, 카메라 앞 투명한 판에 자막을 띄우는 프롬프터라는 장치를 통해 기사를 읽어서 전달한다. 중계차 현장에서 보도하는 취재기자도 카메라를 보고 한두 줄 외워서 말한 후에 곧바로 기사를 읽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한다. 보도의 정확성을 고려한다면 당연하다.

최근 연이은 특종으로 인기를 끄는 한 방송사의 뉴스는 말하기와 대화를 중심으로 보도한다. 프롬프터는 있겠지만 기본적인 전달 방식은 말하기다. 앵커 멘트도 문체와 화법이 다르며, 가끔 시청자와 대화하듯 말하기도 하고, 앵커와 취재기자의 대화가 주를 이룬다. 시청자들은 그러한 전달 방식에 자연스럽게 동화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읽기보다는 말하기가 앵커의 진심을 담아내기에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앵커와 대화하고 싶어 한다.

그동안 우리는 읽는 대통령도 경험했고, 말하는 대통령도 경험했다. 준비된 원고에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들어가 있는가는 말하기의 자연스러움을 결정한다. 국정조사에 임하는 국회의원들도 질문을 보고 읽는 경우가 있다. 가끔 오독도 잦은 걸 보면 질문의 작성 과정에 의심이 간다. 그들은 원고를 보며 혼낼 뿐이다. 특히 사과는 읽기가 아닌 말하기여야 한다.



최근 우리가 들은 세 번의 사과는 읽기였다. 내용을 떠나서 말한 것이 아니라 읽었기 때문에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원고를 보지 않고는 말하지 못한다면, 더욱이 자신이 직접 원고를 쓰지 못한다면 자연스러운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듣기와 읽기를 넘어서 말하기와 쓰기를 교육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당신의 자녀를 지도자로 키우고 싶다면 적어도 사과는 원고가 아닌 상대방의 눈을 보고 말하도록, 사과 후에 상대의 이야기를 듣도록 가르쳐야 한다.



4. [세계일보][공감!문화재] 역사 품은 이조묵의 거문고

차령산맥의 덕숭산 아래 위치하여 예로부터 수많은 고승을 배출한 천년고찰, 수덕사. 한국 선불교의 진흥과 항일운동에 힘썼던 만공 스님의 행적으로 더욱 유명한 이곳에 스님이 아꼈던 거문고 한 점이 전해오고 있다(사진). 최인호의 소설 ‘길 없는 길’에 소개되기도 했던 이 거문고의 원주인은 고려 공민왕이었다고 한다. 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결국 고종의 5남 의친왕의 애장품이 되었고 이후 만공 스님이 갖게 되었다고 하니 유물 하나를 두고 수백 년을 넘나드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거문고에 얽힌 또 다른 인물, 이조묵(李祖默, 1792-1840)에 대해서는 좀처럼 알려지지 않았다. 이조묵은 오세창이 ‘조선의 으뜸’이라고 평했을 정도로 당대를 대표한 컬렉터였다. 거문고의 원주인이 공민왕이라고 말한 이도 바로 이조묵이다. 그는 이 사실을 확신한 듯 1837년 거문고의 뒷면에 유래를 읊은 시문을 새겼다. 

이조묵의 기이한 수집벽(收集癖)에 대해서는 많은 일화가 전해 온다. 19세기 학자 이기(李沂)는 이조묵이 소장했던 공민왕의 거문고를 언급하면서 왕희지가 잡았다는 파리조차 믿고서 애써 간직했다고 회상했다. 정확한 식견보다는 엉뚱하고 맹목적인 수집가로서 기질을 강조한 일화처럼 이조묵은 말년에 가산을 탕진하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최근 시인이자 서화가, 금석고증학자로서 이조묵이 새롭게 조명 받으면서 그가 소장했던 거문고 역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오동나무 판대 위의 거북 등가죽으로 만든 노란색 대모(玳瑁) 장식, 학슬에 매단 향낭, 옹골차 보이는 여섯 줄이 은은한 가락을 상상하게 만든다. 현존 최고의 15세기 김일손의 거문고가 선비다운 절제된 멋을 대표한다면 이조묵의 거문고는 화려하면서 섬세하다. 

거문고가 고려시대 것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시대를 달리해 여러 인연을 맺어 주었고 소중히 지키고자 한 마음은 진실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물이 가진 무언(無言)의 힘이 아닐까 한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시팅불

미국 인디언 수우(Sioux)족 추장 시팅불(SittingBull)’이 1890년 12월 15일 피살됐다. 인디언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이상적인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알려진 그의 죽음으로 근 4세기에 걸친 이주민-원주민 전쟁, 더 엄밀히 말하면 백인의 정복ㆍ인종 말살 전쟁이 사실상 끝이 났다. 미 제7기병대는 4년 전 몬태나 주 리틀빅혼 전투의 참패에 앙갚음하듯, 시팅불이 숨진 지 14일 뒤 사우스다코다 주 인디언보호구역 내 운디드니의 수족 500여명을 학살했다. 미국 개척사는 그 학살을 인디언과의 마지막 전투라 기록했다. 

시팅불은 라코타 언어로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앉은 끈기 있는 황소’라는 뜻의 ‘타탕카 이요탕카’란 이름을 얻어 1831년 태어났다. 이름처럼 그는 어려서부터 끈기 있고 진중했다고 전해진다. 미시시피강 서쪽 대평원 북부의 수우족은 서부의 대표적 기마 사냥부족 중 하나로 남서부 아파치 족과 더불어 백인 군대에 무력으로 저항한 부족이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말타기와 활ㆍ도끼 등 사냥과 전투에 필요한 기술을 익혔고, 그 기량에 따라 부족 안에서 성인 남성으로서 존중 받는 정도가 달라졌다고 한다.



14살의 시팅불이 수족의 경계를 침범한 이웃 부족민들을 추적해 도끼로 제압, 아버지로부터 전사의 표식이자 전적의 훈장인 흰 독수리 깃털을 하사 받고 수족 엘리트 전사집단 ‘한밤의 강한 심장(Midnight Strong Heart)’의 일원이 됐다는 기록이 있다. 1869년, 키 180cm의 우람한 체구의 그는 부족으로부터 전투력과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 중재력을 인정받아 추장이 됐다.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뒤 연방정부의 기틀을 다지며 동부를 장악한 미 연방이 서부 개척에 나선 건 1820년대 말부터였다. 토머스 제퍼슨이 제창하고 앤드루 잭슨이 서명한 ‘인디언 이주법(1830)’과 전투 경험을 쌓은 연방 기병대, 다시 말해 법과 무력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서부 개척사란 곧 인디언 축출사였다. 부족 단위로 대평원에 흩어져 각자의 관습과 전통에 따라 살던 부족들은 알지도 못하는 법과 막무가내의 총질에 숱하게 저항했고, 보호구역으로 쫓겨 들었다. 그 저항의 마지막 불꽃이 시팅불과 그의 이름없는 수족 전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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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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