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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조선일보]
1. 文 '법으로 안 되면 힘으로', 이는 탄핵감 아닌가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17일에도 "혁명이 완성될 때까지 촛불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 전날 언론 인터뷰에선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을 기각하면) 그다음은 혁명밖에 없다"고도 했다. 법으로 안 되면 힘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치국가의 사법 질서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말로서 만약 대통령이 이 말을 했다면 탄핵소추 논란을 불렀을 것이다. 문 전 대표는 최순실 국정 농락 사태가 시작된 이후 점차 발언 수위를 높여 "가짜 보수를 횃불로 모두 태워버리자" "국가 대청소가 필요하다" 같은 주장을 쉽게 하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지지율 1위 대선 주자다. 그런 위치의 사람으로선 적절치 않은 발언이 너무 많다.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누구도 알 수 없고 그 결과에 모두 승복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다. 문 전 대표 주장은 헌법 불복 선동이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도 이 나라 국민이다. 태워버린다 같은 말을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문 전 대표는 요즘 최순실 사태가 언론의 감시 잘못 때문이라는 식의 말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처음부터 끝까지 언론이 파헤친 것이다. 언론은 문 전 대표와 같은 정치인들이 가진 법적인 조사 수단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그런 언론이 취재 보도해 드러난 사태에 문 전 대표 같은 정치인들은 무임승차했다. 사죄해도 모자랄 사람들이 남 탓을 한다. 다음 대선에선 언론의 검증은 더 가혹해질 것이다. 국민의 요구다. 모든 대선 주자는 검증에 반발하지 말고 협조할 필요가 있다.
문 전 대표는 인터뷰에서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가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것은 대통령의 선택이다. 다만 대선 공약으로 분명하게 내걸고 국민 선택을 받아야 하며 그로 인해 벌어지는 사태에 대한 책임도 전적으로 져야 한다. 문 전 대표가 연일 강성으로 나서는 것은 이재명 성남시장과의 경쟁 때문이라고 한다. 두 사람은 대선을 자극적 주장이 아닌 정책 대결의 무대로 만들어주기 바란다.
2. 아무래도 심상찮은 美·中 대립, 위기 어떻게 넘기나
미 트럼프 행정부 출범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중국은 지난 15일 남중국해에서 미 해군 수중 드론 1대를 탈취했다. 트럼프는 이를 비난했다가 중국이 반환하겠다고 하자 '그들이 훔친 드론을 돌려받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와 대만 총통의 통화 이후 점차 노골화하는 두 나라 갈등은 아무래도 무슨 사태를 부를 것 같다.
지난주 미·중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주고받았다. 이달 초 중국은 미 의료 기기 업체에 반독점법 위반 벌금 200억원을 부과한 데 이어 제너럴모터스(GM)에 대해서도 같은 조치를 예고했다. 트럼프가 그냥 있을 리 없다. 당선 후 한발 물러서긴 했지만 중국 제품에 45%의 징벌적 관세율을 매기겠다는 게 그의 선거 공약이었다. 앞으로 통화(通貨) 전쟁, 중국 보유 미 국채 처분 등 지뢰가 널려 있다.
우리에게 최악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것이다. 미국은 안보 면에서 떼려고 해야 뗄 수 없는 혈맹이고 중국은 경제, 지리, 대북 관계에서 결코 멀리할 수 없는 나라다. 미·중 갈등이 지속되고 격화된다면 우리가 설 땅도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동북아시아 지각(地殼)이 흔들리고 있다. 일본 아베 총리는 내달 하순 신임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벌써 두 번째 만남이다. 푸틴과도 만났다.
우리는 정부가 공백 상태다. 모두가 국내 정치에 정신이 팔려 외교·안보·경제의 지각 변동에 관심도 없다. 헌법재판소가 법 절차에 충실하되 최대한 빨리 탄핵 사태를 마무리해야 하고 어느 쪽 결론이든 모두 승복해 국정을 정상화해야 한다.
[이데일리]
3. 냉온탕 정책이 빚은 '부동산 경착륙' 사태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저금리로 과열됐던 부동산 시장은 지난 ‘11·3 대책’ 등 정부의 잇단 대출 규제와 청약제도 제한 등으로 이미 냉기가 돌고 있다. 여기에 미국발 금리 인상 악재가 겹쳤다. 내년 입주물량이 1999년(36만 9500가구) 이후 최대인 37만 가구에 달하는 등 공급량이 많은 점도 부담이다. 탄핵 정국의 정치리스크, 경기부진도 위험 요인이다. 실수요는 물론 가수요도 줄면서 거래 절벽에 가격 급락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실제 ‘11·3 대책’ 이후 청약 열기는 급감하는 추세다. 지난 11월 전국의 신규분양 아파트 청약자는 46만 1700여명으로 82만명을 크게 웃돌았던 10월에 비해 44%가 줄었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도 이달 들어 2년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금리인상으로 국내 금리도 곧 오를 전망이다. 금리 상승은 대출 규제와 맞물려 상환부담 증가, 주택 구매력 약화, 집값 하락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내년 37만 가구, 2018년 41만 가구 등 넘치는 입주물량도 시장에는 부정적 요소다.
이처럼 시장이 어지러워진 데는 정부의 원칙 없는 ‘냉온탕 정책’ 탓이 크다. 언제는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고 했다가 다시 대출 규제로 돌아서는 등 오락가락 정책에서 신뢰를 잃었다. 경기부양을 명분으로 전매제한 완화, 분양가 상한제 폐지 등 규제를 대폭 푼 것이 불과 2년 전의 얘기다.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대출 규제도 완화했다. 하지만 경기를 살리지 못함으로써 투기와 가계부채만 늘렸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시장 혼란을 부추긴 꼴이다.
부동산 시장 경착륙은 우리 경제에 재앙이다. 내수경제를 떠받치는 건설경기가 주저앉는 것은 물론 13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의 부실화도 우려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주택가격이 20% 떨어지면 은행권이 최대 28조 8000억원의 손실을 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집값 하락으로 자산가치가 떨어지고 금리 인상으로 대출금 이자부담이 늘면 ‘하우스 푸어’ 현상이 나타날까 걱정스럽다. 더 늦기 전에 위험 요인을 점검해 시장 충격을 최소화할 대응책 미련에 나서야 한다.
[매일신문]
4. 수입 소고기 식탁 점령, 경북 한우 당국은 두고 볼 일 아니다
수입 소고기 급증과 한우 고기 소비 위축으로 미국산 소고기가 우리 식탁을 빠르게 점령하고 있다. 경기 침체와 소위 김영란법 시행으로 소비자의 한우 고기 외면까지 겹쳐 한우 고기 시장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이는 한우 고기 자급률 하락과 소 사육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쌀과 함께 농촌의 2대 버팀인 한우산업의 기반 붕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우산업이 층층의 악재를 맞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은 이미 예고됐다. 먼저 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 발효 이후 40%이던 수입 소고기 관세가 현재 26.6%까지 해마다 낮아져서다. 올해 10월까지만 전체 소고기 수입은 32만219t으로 지난해보다 28.4%나 는 데 반해 미국산 소고기는 13만1천466t으로 전체의 41%를 차지하며 전년보다 47.6% 불었다. 이 관세도 2026년이면 아예 없어져 미국산 소고기 수입은 더욱 많아질 전망이다.
게다가 미국 소고기의 가격 경쟁력은 위협적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이달 전국 소매점의 미국산 소고기값이 한우보다 4.5배나 싸다. 앞으로 관세가 없어지면 한우와 가격 차이는 무려 7배까지 날 것으로 예측했다. 일반 가정에서는 물론, 김영란법 시행으로 가뜩이나 매출이 줄어든 외식업소도 값 비싼 한우 소비보다 미국산 소고기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그냥 지켜만 보다가는 한우 사육 기반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2013년 50.1%의 소고기 자급률이 올해 6월 현재 39.9%로 떨어졌다. 40~50%의 자급률이 30%대로 하락한데다 사육도 2014년 278만 마리에서 지금 264만 마리로 줄었다. 한우 기반은 악화 일로다. 그런데 한우 고기값은 여전히 비싸 소비자는 수입 소고기나 돼지고기로 돌아서고 있다. 우리 한우 산업의 현주소다.
특히 경북은 국내 한우 사육의 20%를 차지해 1위다. 한우 사육 농가도 가장 많은 만큼 한우산업에 민감하다. 경북 농정 당국이 국내 소고기 시장 변화를 예사롭게 봐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유통 과정의 거품빼기를 통해 가격 경쟁력 확보로 한우 소비를 늘리고 사육 기반이 흔들리는 것을 막는 선제적인 축산정책 마련에 고민할 때다.
[매일경제]
5. G2 무역 난타전…한국,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라
세계 경제의 두 거인(G2) 미국과 중국이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G2의 패권 싸움은 전방위적이지만 특히 무역 면에서 두드러진다. 중국은 지난 12일 자국의 시장경제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건 부당하다며 미국과 유럽연합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사흘 후 미국은 자국산 쌀과 밀, 옥수수 수입을 부당하게 제한했다며 중국을 WTO로 끌고 갔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8년 동안 15차례나 중국을 WTO에 제소했다. 지난달 대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진영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징벌적 관세를 물리겠다고 위협했다. 중국도 이에 질세라 미국 국채를 대거 내다팔면서 제너럴모터스(GM)에 반독점 규정 위반 혐의로 벌금을 물리겠다며 실력 행사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37년 간 미·중 관계의 바탕이 된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고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미군의 수중 드론을 압수한 사건도 무역전쟁에 기름을 부었다.
한국의 교역과 투자에서 G2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중국과 미국은 각각 올해 우리나라 수출의 25%와 13%를 받아준 1·2위 교역상대국이다. 작년 말 우리나라 대외투자 잔액 중 26%(2004억달러)가 미국으로, 15%(1193억달러)가 중국으로 갔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국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과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가 우리 수출기업을 양쪽에서 옥죌까봐 가슴 졸이고 있다. 이 와중에 미·중의 무역전쟁이 격화된다면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 될 수 있다.
그럴수록 G2 무역전쟁에 대한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 우선 중간재에 쏠린 대중 수출 구조를 바꿔가고 미국 현지 투자를 늘려 보호주의 벽을 넘어야 한다. 한국의 대중 수출 중 25%는 중국 현지에서 가공돼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제3국으로 간다.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면 한국은 중간재 수요 감소와 중국의 성장 둔화로 피해를 입게 된다. 전자·반도체·유화 부문 타격이 클 것으로 보고 대비해야 한다. 또한 한·미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과 다자간 통상협정을 바탕으로 자유롭고 공정한 교역질서가 유지되도록 협상력을 총동원해야 한다.
[중앙일보]
6. 가계소득 게걸음인데 생활물가만 오르다니
생필품 가격이 잇따라 올라 가계 주름살이 늘고 있다. 식품회사 농심은 내일부터 라면 권장 소비자가격을 평균 5.5% 인상한다. “물류비와 인건비 상승 부담이 누적돼 5년여 만에 최소폭을 올렸다”고 회사 측은 설명한다. 이달 초엔 파리바게뜨가 제품 가격을 평균 6.6% 인상했다. 앞서 오비맥주와 코카콜라를 비롯해 소주·두부·과자·아이스크림의 가격이 줄줄이 올랐다.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계란값까지 뛰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계란을 쓰는 빵·과자·음식 값까지 들먹거릴 수 있다.
장바구니 물가가 급등하고 있지만 지표만 보면 오히려 디플레이션이 걱정이다. 11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1.3% 상승했다. 0%대에 머물던 상승률이 9월 이후 1%대로 올라섰지만 한국은행 목표(2%±0.5%)를 한참 밑돈다. 완만한 물가 오름세는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차단해 무기력증에 빠진 경제의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가계소득이 뒷걸음질치는데 생활물가만 오르고 있어서 문제다. 실질 국민총소득(GNI)는 지난 2, 3분기 연속 0.4%씩 감소했다. GNI가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보인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8년 만에 처음이다. 게다가 4분기에는 성장률이 0%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내년 1분기에도 호전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더구나 국제 유가의 반등과 달러 강세로 물가 상승 압력이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다. 가계로선 불황에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하게 된 셈이다.
마침 통계청은 5년 만에 개편한 소비자물가지수를 지난 16일 내놓았는데 실상을 반영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새 지수에서는 1~11월 누적 소비자물가지수가 더 낮아졌다. 사회·경제 변화를 고려해 꽁치·케첩 등은 빼고 블루베리와 휴대전화 수리비 등은 조사 대상에 새로 반영한 결과다. 이것이 기회다 싶었는지 꽁치 제품 가격은 곧 평균 20% 인상될 예정이다. 이래서는 서민의 고통만 가중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통계가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국정 혼란을 틈탄 가격인상 시도는 처음부터 차단해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7. ‘최순실 청문회’ 위증 논란 철저히 규명하라
대체 얼마나 더 견뎌야 의혹의 소용돌이를 빠져나올 수 있을까. 최순실 국정 농단의 핵심 증거자료인 태블릿PC를 놓고 국회 청문회에서 위증 교사가 있었다는 의혹이 또 터졌다. 지난주 제4차 청문회에 나왔던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이 새누리당 이만희 의원과 미리 입을 맞춘 대로 위증을 했다는 것이 요지다. 의혹을 폭로한 이는 한때 최순실씨의 최측근이었던 고영태씨다. 고씨는 4차 청문회가 열리기 이틀 전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청문회 위증 교사 의혹을 예고했고, 실제 이 의원과 박씨의 청문회 과정에서 그런 내용이 그대로 재연됐다.
사실이라면 경악할 일이다. 주말 내내 시민들은 문제의 4차 청문회 장면을 복기했다. 청문회에서 태블릿PC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 이 의원에게 박씨는 “(최씨가 아닌) 고씨가 들고 다니는 걸 봤다”, “고씨가 태블릿PC 충전기를 구해 오라고 했다” 등의 답변을 했다. 의혹의 당사자인 이 의원은 사실무근이라며 펄쩍 뛰고 있다. 박씨의 전화번호도 몰랐다면서 고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당장은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있다. 안 그래도 근 두 달째 국정 농단 의혹의 뻘밭을 뒹굴어야 하는 국민은 이쯤 되면 질식할 지경이란 것이다. 진실 규명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 청문회까지 국민을 수렁으로 밀어넣는 꼴이다. 이 의원은 적극 해명했지만 고씨의 예고가 하필이면 청문회에서 우연히 맞아떨어졌다고 봐 넘기기는 쉽지 않다. 공교롭게도 지난 청문회에서는 ‘친박’, ‘공격수’ 등으로 나눠 청문회에 대응하려 했던 K스포츠재단의 내부 문건이 드러나기도 했다.
위증 논란의 중심에 선 태블릿PC가 뭔가. 국정 농단의 실마리를 던져준 판도라 상자다. 현직 대통령 탄핵 사태의 도화선인 핵심 증거물이다. 태블릿PC의 국정 농단 내용에 통탄한 민심이 그제로 8차 촛불 집회를 이었다. 그런 엄중함을 무시하고 위증 모의가 털끝만큼이라도 있었다면 그 또한 국민 심판을 면치 못할 농단이다.
맹추위가 닥쳐도 의혹이 규명돼 국정이 제자리를 잡기까지는 주말마다 광장을 지키겠다는 시민들이다. 국회는 여야 계산하지 말고 의혹의 진실을 낱낱이 가려야 할 일이다. 오는 22일 국정조사에서 의혹의 당사자들을 집중 대질 심문하는 방안부터 당장 내놓아야 마땅하다. 아울러 새누리당 차원의 적극적인 진상 규명 작업도 진행돼야 한다. 그래야만 앞으로 남은 국정조사와 정국 수습 과정에서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을 것이다.
[세계일보]
8. 황교안 대행마저 ‘불통 국정’ 되풀이하겠다는 건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의결 후 열흘이 지났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국회는 서로 협력해 비상시국을 잘 이끌어나가길 국민들은 기대했다. 양측은 그러나 협치는커녕 사사건건 대립하며 되레 국정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탄핵정국에서 황 권한대행이 국정을 관리해 나아가려면 국회 다수 권력인 거야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황 대행은 그러나 야당과 맞서면서 공세적 행보에 치중해왔다. 소통을 위한 만남조차 꺼리는 작금의 정치 실종 상황은 황 대행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황 대행은 지난 16일 차관급의 한국마사회장에 이양호 전 농촌진흥청장을 임명했다. 인사권 행사를 시작한 것으로, 앞으로도 필요한 정부와 공공기관 인사를 미루지 않을 방침이다. 2004년 고건 전 권한대행도 차관급 정부직, 기관장 인사는 했다.
그러나 당시와 지금은 다르다. 탄핵 여론이 압도적이고 국회가 여소야대라는 점에서 인사권 행사는 보다 신중해야 한다. 야 3당 대표는 황 대행에게 인사권을 포함한 권한 범위 등을 논의하기 위한 회동을 제안한 바 있다. 야당 의견을 들어보고 인사권 행사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좋았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제2기 박근혜정부처럼 불통, 무책임을 답습한다면 좌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황 대행은 국회와의 협의체 형식을 ‘여·야·정’으로만 고집하고 있다. ‘야·정 협의체’를 수용하면 여당 지원을 못 받아 ‘발언권’이 약할 것으로 우려하는 듯하다. 이런 정치적 계산 탓에 협치를 위한 첫 매듭부터 풀리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은 정우택 의원을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하는 바람에 ‘도로친박당’이 됐고 야당은 “친박들을 대화 상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여·야·정 협의체’ 구성이 당분간 힘든 셈이다. 그렇다면 황 대행이 부담을 감수하고 협치의 물꼬를 터야 한다.
야 3당 대표의 회동 제안에 ‘정당별 개별회동’으로 역제안한 건 위기 수습을 놓고 핑퐁 게임을 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황 대행이 20, 21일 국회 대정부질문 출석을 망설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이라도 국회와의 소통에 적극 나설 방안을 찾는 것이 옳다.
친박 일부가 ‘황교안 대망론’을 거론하고 황 대행을 대선주자에 넣어 여론조사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황 대행이 이런 소리에 흔들릴 계제가 아니다.
[한국일보]
9. 신규 면세점 허가 강행 배경과 이유 분명히 밝혀야
서울에 새로 들어설 면세점 주인이 롯데, 현대, 신세계로 가려졌지만, 관세청이 특검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 결과와 무관하게 심사를 강행한 후폭풍이 만만찮다. 특히 롯데의 경우 ‘최순실 게이트’ 연루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면세점 특허를 받았다. 따라서 특검 수사 결과에 따라 특허가 취소될 경우 극심한 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관세청의 신규 면세점 사업자 선정은 입찰 과정과 결과 전반에서 공정성 논란을 빚었다. 우선 지난 4월 관세청이 면세점을 추가 허가 하기로 결정한 것부터 수상했다. ‘추가 허가는 절대 없다’던 방침을 갑자기 뒤집은 것이다. 추가 허가에 대한 근거도 미약했다. 중국 관광객이 늘어날 것이란 게 전부였다. 중국 관광객은 지난해에도 전년보다 줄었다. 올해도 7월 90만명을 넘었던 중국 관광객은 10월에는 70만 명에도 못 미쳤다.
더욱이 면세점은 내년이면 공급과잉이다. 신규로 특허를 받은 면세점이 문을 열면 내년에 서울에만 총 13곳의 면세점이 들어선다. 면세점 매출은 상당부분 중국 관광객에 의존하고 있지만, 사드 배치가 구체화하면 중국의 간접적 여행 규제 강도가 그만큼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미 신규로 서울에 문을 연 면세점 5곳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관세청이 방침을 뒤집은 이유는 뒤늦게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지난 2월과 3월에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원 SK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을 각각 독대했고, 면세점 특허제도 개선을 언급한 ‘대통령 말씀자료’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면세점 추가 허가가 미르ㆍK스포츠 재단 출연금과 연관이 있을 것이란 의혹이 나올 만하다. 특검이 최 회장과 신 회장을 출국 금지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면세점 특허 심사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제3자 뇌물 혐의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어 왔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이미 지난 15일 관세청의 추가 특허 부여와 특혜 의혹과 관련해 감사원에 감사를 요구하기로 의결했고, 야당은 국정조사까지 실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런데도 관세청은 “자의적으로 특허심사를 연기ㆍ취소하게 되면 신청업체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추가 허가를 내주기로 한 결정과정에 대한 관세청의 설명이 설득력이 없었고, 수사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 허가를 서두른 ‘꿍꿍이 속’을 국민이 납득하기는 어렵다. 관세청은 지금이라도 추가 허가 강행의 배경과 입찰을 서두른 이유 등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서울경제]
10. 한국에선 왜 장수기업이 나오지 않을까
우리나라 기업 가운데 창업 후 30년이 넘은 장수기업이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16일 발표한 ‘기업체 행정통계 결과’를 보면 지난해 법인세를 낸 58만5,000여개 기업 중 설립 30년이 지난 기업은 2%에 불과했다. 50년 이상 된 곳은 0.2%에 그쳤다. 반면 업력이 3년밖에 안 된 기업이 전체의 32.8%, 10년 미만인 업체가 70%에 달했다. 물론 젊은 기업들이 많으면 경제에 활력소가 될 수 있다. 새로운 혁신기술·제품 개발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라 경제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무리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기업이라도 5년, 10년을 버티지 못하고 흔적 없이 사라진다면 경제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존속하면서 안정적인 고용 유지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장수기업이 필요한 이유다.
독일·일본 등이 선진국 위상을 유지하는 데는 장수기업들의 역할이 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외국에는 200년 이상 된 장수기업이 7,212개사나 존재한다. 일본이 3,113개로 가장 많고 독일 1,563개, 프랑스 331개 등의 순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100년 넘은 업체가 두산 등 7개사 정도다.
이렇게 된 데는 장수기업을 막는 환경 탓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가업승계 등의 문제 때문에 포기하는 기업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상속공제 제한도 그런 걸림돌 중 하나다. 그런데도 국회는 19대에 이어 20대 들어서도 상속공제 대상의 확대·축소를 두고 정파적 논쟁만을 거듭하는 중이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장수기업은커녕 우리 경제의 지속성장 기반만 훼손될 뿐이다.
주요 신문칼럼
1. [동아일보][횡설수설/고미석] 본토 영어 vs 글로벌 영어
‘다음 북한 말은 무슨 뜻인가? ①종합지짐 ②안슬프다 ③뿌무개.’ 알쏭달쏭한가. 분단 세월에 남북한 말이 크게 달라진 탓이다. 탈북민은 남한 단어의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탈북 학생들은 언어 차이로 수업을 따라가기 벅차다고 호소한다. 그래서 남북한 말의 무료 번역앱 ‘글동무’도 나왔다(위 문제의 정답은 ①피자 ②안쓰럽다 ③스프레이).
같은 영어라 해도 언어장벽은 존재한다. 한국인만 이해하는 콩글리시처럼, 중국에서 쓰는 영어를 칭글리시, 독일식 영어를 뎅글리시라고 한다. 이러니 영어가 모국어인 원어민들과 비원어민들의 소통에 장애가 생길 수밖에 없다. 과거엔 영미식 본토 영어를 표준으로 떠받들었다면 요즘은 다양한 유형의 글로벌 영어를 존중하는 추세다. 최근 BBC 보도에 따르면 다국적인들이 근무하는 기업에서는 원어민을 위한 사내 강좌까지 마련했다. 예컨대 can't, don't 같은 축약은 피하고 자국에서 즐겨 쓰는 관용적 어법은 자제하라는 내용이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이 영어 교육을 다시 받는 이유는 ‘힘의 균형’ 때문이다. 영국 브리티시카운슬은 현재 영어 소통이 가능한 세계 인구를 약 17억5000만 명, 2020년엔 20억 명으로 전망한다. 원어민이 비원어민의 영어에 익숙해질 필요가 생긴 것이다. 실제 유럽연합(EU)에서는 비원어민이 원어민과 소통하면서 “우리처럼 영어를 할 수 없느냐”고 불평한단다.
원어민이 분당 평균 250단어를 쏟아내는 데 비해 비원어민은 150단어 정도로 느리게 말한다. 원어민도 6개월에서 1년 훈련받으면 말의 속도를 늦추는 게 가능한데, 교정 방법으로는 자신이 말하는 것을 녹음해 반복 청취하는 것을 추천한다. 10여 년 전 외국 언론에서 한국인들이 원어민 같은 영어 발음을 위해 혀 수술을 받는다고 보도해 ‘대한민국의 영어 트라우마’가 해외토픽감이 됐다. 영어는 기러기 아빠를 양산한 조기유학 붐에도 한몫을 차지했다. 마침내 ‘원어민처럼 영어 하기’에 대한 강박증에서 벗어날 때가 온 것 같다. 이제 영어도 개성 시대이다.
2. [동아일보][표정훈의 호모부커스] 책 도둑
‘이 책을 훔치거나 빌렸다가 돌려주지 않는 자의 손에서 책은 뱀으로 변해 그를 갈기갈기 찢어 놓으리라.’ 중세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산페드로 수도원 도서관의 책에 붙어 있던 도난 방지용 글귀다. 책 절도의 동기는 다양하다. 미국의 스티븐 블룸버그는 도서관이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 책들을 해방시킨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1960년대 말부터 20여 년 동안 미국과 캐나다의 268개 도서관에서 2만3600여 권을 훔쳐냈다.
우리 돈 약 55억 원 가치에 달하는 이 특별한 장물을 그는 팔지 않고 보관했다. 1990년 체포되어 5년 11개월 징역형과 20만 달러 벌금형 선고를 받고 복역했지만, 출소 후 여러 번 같은 혐의로 체포되었다. 변호인은 블룸버그의 정신 이상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세 때부터 30년간 유럽 각지 서점, 도서관, 박물관, 교회 등에서 5만2000권을 훔친 영국의 덩컨 제번스도 전설적인 책 도둑이다. 1993년 그가 체포된 뒤 4만여 권을 본래 소장처에 되돌려주는 데 2년이 걸렸고 1만2000여 권은 경매 처분되었다. 제번스는 학문에 대한 선망과 지식욕을 채우려 했다고 주장했다.
1996년 케임브리지대 도서관에서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초판 인쇄본 두 권과 갈릴레이의 저작 유일본이 사라졌다. 2006년에는 폴란드 크라쿠프의 야기엘론스키대 도서관에서 고대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작 15세기 인쇄본과 코페르니쿠스, 케플러의 초판본이 도난당했다. 문화재급 책 밀거래로 큰돈을 챙기려는 이러한 절도에는 서지학자까지 가담하여 장물을 감정해 주기도 한다.
‘한량들이 종이 신발 신는 것을 멋으로 알고 또 이를 만들어 파는 자가 많은데, 신발 만들 종이를 구하고자 사대부 집과 관가에 책 도둑이 성행하니 단속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숙종 9년(1683년) 한성판윤이 올린 상소 내용이다. 책 절도의 이유치고는 역사상 참 드문 경우다. 조선 종이의 빼어난 내구성을 증언한다 할까.
도서관 대출 자료 미반납도 심하면 절도가 될 수 있다. 2015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채핀 메모리얼 도서관 측은, 1996년 이후 책을 반납하지 않은 900여 명을 고발했다. 우리나라 공공도서관들도 이 문제로 골치를 앓는다. 반납이 늦어져도 일정 기간 대출해주지 않는 것 외에 별다른 제재 방법이 없다. 잊는 것이 빌린 책인지 양심인지 모호해지기도 쉬운 책 미반납을 근절할 묘안은 없을까.
3. [매경이코노미][서평] 지루하고도 유쾌한 시간의 철학 | 숨 가쁜 경제, 민주적 결정 속도에 맞춰야
우리는 시계로 시간을 잰다. 시계추의 움직임이나 원자 분열 같은 규칙적인 사건을 통해 어떤 사건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측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고유한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누구나 사회적인 시간에 맞춰 살아야 한다.
공공의 시간은 타협의 산물이다. 예전에는 지역마다 다른 시간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에 철도가 발달하면서 시간의 통일이 이뤄졌다. 공통의 시간이 없으면 열차 운행은 불가능하다.
산업혁명 이후 시계는 노동자의 숨통을 죄는 통제의 상징이 됐다. 공장 노동자는 자신의 리듬을 버리고 증기기관의 리듬에 맞춰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인에게 시간은 억압적이다.
독일 철학 에세이스트 뤼디거 자프란스키의 ‘지루하고도 유쾌한 시간의 철학(Zeit)’은 무엇이 우리를 서두르게 만드는지, 무엇이 우리의 시간을 훔쳐 가는지 성찰하게 해준다.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지루해할 줄 아는 존재다. 그래서 오락을 해야 한다. 물론 죽어라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는 지루함으로 고통받는 이들은 권력자와 부자들뿐이라고 했다.
현대인은 대개 시간에 쫓긴다. 시간이 부족한 건 인간과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걸 안다. 기독교는 인간이 구원받으려 노력하는데 시간은 늘 부족하다고 가르쳤다. 장로교는 시간 낭비를 큰 죄악으로 봤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시간 낭비에 대한 혐오가 근대 자본주의 검약 정신의 바탕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또한 실현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계획을 세운다. 그래서 늘 시간은 아껴야 하는 것이다.
자프란스키는 “변화를 가속화하려는 이들은 시간이 촉박하다는 걸 내세우며 역사를 피로 물들였다”고 말한다. 프랑스혁명 때 로베스피에르는 단두대로, 러시아혁명 때 레닌은 총살특공대로 역사의 시간을 앞당기려 했다.
오늘날 생산의 변혁은 현기증 날 정도다. 생산자는 빠르게 시대에 뒤떨어지며 상품은 더 빠르게 쓸모를 잃는다. 기술과 지식은 갈수록 빨리 노화한다. 땀 흘려 쌓은 경험은 급속히 가치를 잃어버린다. 우리는 끊임없이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 교통, 통신, 생산, 소비가 가속화할수록 개인에게 더 유연해지라는 압력은 커진다.
물론 시간 자체는 가속화하지 않는다. 갈수록 빨라지는 건 세상이 돌아가는 속도다. 철도가 처음 출현했을 때 사람들은 시속 30㎞에도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다. 철마를 타면 장기는 제 기능을 못하고 두개골이 짓눌리며 영혼은 깊은 상처를 입을 것이라고 무서워했다.
오늘날 정치와 경제 사이에는 속도의 불일치 문제가 있다. 경제는 혁명적인 기계의 박자에 맞춰 숨 가쁘게 돌아가는 데 비해 민주적 절차를 지켜야 하는 정치적 결정은 굼뜨기만 하다. 중대한 결정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내려야 한다. 그러나 시간은 늘 촉박하니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는 경제를 민주적 결정의 고유한 시간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다. 무거운 질량 가까이서 시간은 확연히 더 느리게 흐른다. 누군가가 다른 이들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면 이 사람의 시간은 더 느리게 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쏜살같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더 기를 쓰고 달려야 할까.
호주의 어떤 원주민은 먼 거리를 걸어 목적지에 도착하면 몇 시간 동안 그대로 바닥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려는 배려였다. 우리에게 그런 여유가 허락될까.
4. [매경이코노미][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랑랑 | 요란한 몸짓에 개성 강한 실력파
첸 카이거(Chen Kaige, 1952년~) 감독의 ‘투게더(together)’란 영화가 있다.
2002년 개봉한 작품으로 가난한 시골 농부가 바이올린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눈물겨운 부성애(父性愛)를 그렸다. 아버지 소원대로 아들은 성공하지만, 정작 아버지는 아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기꺼이 아들 곁을 떠나고자 한다. 뒤늦게 떠나는 아버지의 소식을 들은 아들은 중요한 데뷔 연주회를 미루고 베이징역으로 달려가 보은(報恩)의 연주를 펼친다. 개봉 후 중국 대륙을 눈물로 적셨으며, 프랑스의 거장 뤽 베송(Luc Besson, 1959년~) 감독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작품이다.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Lang Lang)은 중국 교육열의 표본이자 음악 교육 열풍을 중국 땅에 불러일으킨 주인공이다. 영화 ‘투게더’의 부자가 떠오른 것은 랑랑 역시 그의 음악 교육을 위해 전력 질주한 아버지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전통 현악기인 ‘얼후’ 연주자였던 랑랑의 부친은 좌절한 음악가였다. 문화혁명이 터지면서 음악학교의 꿈이 좌절됐던 그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에게 걸었다. 다섯 살 때 첫 출전한 콩쿠르에서 아들이 1등을 하자 부친은 본격적인 음악 교육에 들어갔다.
랑랑이 여덟 살 때 결단을 내린 부친은, 직장을 그만두고 베이징으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전화 교환원이었던 어머니는 생활비를 위해 선양에 남을 수밖에 없었고 어린 랑랑은 그렇게 어머니와 떨어져 베이징 빈민가에서 음악 수업을 이어갔다. 그 시기를 랑랑은 “거의 미치광이 수준으로 연습에 매달렸다”고 회고했다.
고생 속 베이징 생활 18개월 만에 3000명의 지원자 중 1등으로 중앙음악원 입학시험에 합격했고, 열두 살 나이로 독일 에틀링겐 국제 콩쿠르 우승, 이듬해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도 우승하면서 중국의 샛별이 됐다.
여기에 만족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더 넓은 세상을 보자”며 미국행을 결정했고 랑랑은 필라델피아에 있는 커티스음악원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합격했다. 이후 열일곱 살 때 미국 라비니아 페스티벌에서 앙드레 와츠의 대타로 무대에 오르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랑랑은 세계적 스타가 되면서 마침내 2008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서 40억명 이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피아노를 쳤다. 이듬해 시사주간지 타임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된다.
랑랑은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지만 그를 보는 시각은 일관적이진 않다. 호불호가 갈리기 때문이다. 유난히 강한 개성과 자유분방한 해석, 록커를 연상케 하는 요란한 복장과 제스처 등을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아쉬운 것은 외형적인 요인 때문에 정작 랑랑의 피아노 연주가 묻힌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클래식과 친하지 않는 젊은 층으로부터도 열광적인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랑랑은 중국어로 ‘빛’을 의미한다. 오래 잠들어 있다 깨어 일어나 포효하는 조국의 앞길에 앞장서 비추는 빛. 랑랑으로 인해 15억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에는 음악 교육이 불꽃처럼 번졌다. 그것만으로 ‘랑랑’이란 이름은 21세기 클래식 음악사에 당당히 오를 만한 가치가 있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비투스 베링
비투스 베링(Vitus Bering, 1681~1741)은 덴마크 윌란 반도 해안마을 호르센스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가 숨졌고 재혼한 어머니 가정은 부유했다고 한다. 배 다른 두 형은 코펜하겐 대학을 다녔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베링은 15살에 공부를 접고 선원이 됐다. 덴마크 포경선을 타고 북대서양을 누볐고, 네덜란드 해군에 입대했고, 북미 선적의 배로 카리브해까지 다녀왔다는 얘기도 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 항해사로 일하던 그가 노르웨이 출신 러시아 해군 함장의 주선으로 표트르 대제의 러시아 발트함대 소속 해군이 된 건 23세이던 1704년이다.
10대말 20대 초 선원의 8년간의 이력으로는 믿기지 않을 만큼 파란만장하지만, 그가 육지보다 바다, 그것도 낯설고 거친 바다를 좋아한 건 분명해 보인다. 표트르 대제의 러시아는 제국주의 후발 주자였지만 그래서 더 역동적인 해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드센 유럽보다는 시베리아 너머의 땅, 아메리카에 관심을 품고 있었다. 이른바 북동항로 개척이었다. 그 임무를 해군 예비역 대령 베링(당시는 이반 이바노비치 베링)에게 맡긴 사연도 불분명하다.
1725년 1월 페테르스부르크를 출발한 베링 탐사대에겐 시베리아를 육로로 가로지르는 9,000여Km의 여정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오호츠크해를 건너 캄차카 반도에 도착한 건 이듬해 3월. 그들은 18m 길이의 돛배 ‘가브리엘’호를 건조해 7월 반도의 동해안을 따라 북상했다. 그들이 아시아 대륙 동쪽 북단(나우칸 자치구)에 도달한 건 8월 15일이었다. 거기서 곧장 서진했다면 88km 너머의 알래스카 웨일즈에 닿았겠지만, 그들은 거쳐온 해로를 따라 북진, 미답의 북극해로 나아갔다. 베링은 그렇게,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바다로 나뉘어져 있다는 걸 확인했다.
2차 탐사대는 1733년 3월 출발했다. 이번에는 두 척. 그가 지휘한 ‘세인트 피터’호와 부하 치리코프 대령이 이끈 ‘세인트폴’호 . 그들은 악천후에 난파- 표류- 좌초를 겪으면서 41년 알래스카를 발견했다.
베링은 12월 8일 캄차카 반도 남단 베링 섬(당시엔 아바차 섬)에서 괴혈병으로 별세했다. 아시아와 북미 사이의 바다에, 최초 발견자이자 항해자인 베링의 이름을 붙인 건 영국의 후배 탐험가 제임스 쿡(1728~1779)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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