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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외교관 면책특권이 성추행 면죄부인가

칠레 주재 우리 외교관이 현지 미성년자를 성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지 방송사가 관련 동영상을 방영함으로써 현지 사회에 파장이 일어나고 있다 한다. 이 동영상에는 문제의 외교관이 상대 여학생의 목을 끌어안고 입맞춤하려거나 손목을 잡고 억지로 집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장면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국민들의 얼굴에 시궁창 물을 뿌린 것이나 다름없다.

외교부가 해당 외교관을 즉각 소환하는 등 대응에 나섰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현지 대사관의 근무 분위기가 평소 얼마나 풀어져 있었기에 이런 사건이 터졌는지 명백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그 외교관이 교민 부인에게 추파를 던진 것은 물론 현지 여대생들에게 한국 국비장학생으로 추천해 주겠다며 치근거렸다는 폭로가 이어지는 데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하게 된다.

유지은 주칠레 대사가 피해 학생과 가족, 현지 교민들을 상대로 사과문을 발표했다고 하지만 유 대사 본인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문제의 외교관이 한국어 강좌 담당자로서 계속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는데도 묵인해 왔던 이유를 해명해야 한다. 교민들 사이에 퍼져 있는 소문에 대해 몰랐다고 하면 더 큰 문제다. 대사로서 부하 직원들 통솔력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칠레 대사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재외공관에서 적발된 성추행 사건이 지난 한 해 동안만 해도 모두 5건에 이른다. 현지 여직원과 춤을 추다가 몸을 더듬는 경우가 있었는가 하면 공관을 방문한 민원인 여성과 대화를 나누다가 껴안는 경우도 있었다. 2011년 중국 상하이에서 일어난 성추문 스캔들로 재외공관의 기강 해이가 도마 위에 올랐는데도 끊이지 않는 추태다.

칠레 방송사가 해당 동영상을 범죄고발 프로그램에 내보냈다는 자체가 심각한 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 칠레를 포함한 남미 일대에서 한국인의 이미지가 실추될 수밖에 없고 당분간 어떤 방법으로든 회복이 어려운 상황이다. 외교관들이 해외에서 나라 체면이나 훼손하고 있다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외교관의 면책특권이라는 것이 부녀자나 희롱하라고 부여된 것은 아니다. 총체적으로는 윤병세 외교부장관이 당연히 책임을 져야만 한다.



[매일신문]

2. 건축법 앞세워 아이들 학습권`일조권 막은 행정`교육당국

학교 주변에 고층아파트가 들어선 곳이 여럿 있다. 아이들은 고층아파트에 둘러싸인 학교에서 하루종일 공부하고 뛰놀 수밖에 없다. 운동장에서 하늘을 보려고 해도 아파트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일조권, 조망권, 교통문제 등으로 교육 환경 측면에서는 최악이다. 그런데도 행정당국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건축 허가를 내주고 있다.



최근에 문제가 된 곳은 경산 진량초등학교이다. 초교 앞에 지상 14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 한 동이 들어서 있고, 같은 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이 추가로 들어설 예정이다. 학부모와 시민들은 큰 건물이 또다시 학교 앞에 들어서면 운동장에 햇볕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겨울이면 학교 앞 도로가 얼어붙어 아이들의 안전이 위협받는다고 반발했다. 학부모들이 일일이 문제점을 열거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의 교육 환경이 나빠질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도, 허가권자인 경산시는 일반상업지역이므로 건축 허가를 해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건축주가 학교 출입구 및 횡단보도 3곳에 열선을 까는 등 여러 가지 안전 조치를 할 것이라고 했다. 공무원들은 건축 허가가 들어오면 법 조항만 따지면 그만이라는 태도다. 아이들의 학습권과 건강권은 고려 사항이 아닌 것이다.



교육당국도 손 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학부모들이 시청과 건축주에 항의하기 전에 문제를 파악해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문제가 터지고 나서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데도, 책임감과 적극성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대구 수성구의 경동초등학교 등 몇몇 학교도 조만간 아파트 숲에 포위될 상황에 놓여 있다. 교육당국은 현황 파악은 물론이고, 아예 관심조차 없는 모습이다. 학생들의 교육 환경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기관들이 손을 놓고 있으니 불쌍한 것은 아이들뿐이다. 학교 주변의 고층건물 신축은 신중해야 하고, 불가피한 상황이더라도 안전 조치 및 제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허가를 내줘선 안 된다. 건축주의 재산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학습권과 건강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3. 온갖 수법으로 약자 임금 떼먹은 이랜드의 치졸한 갑질

아르바이트 임금 착취 문제가 커지자 이랜드그룹이 20일 “문제가 된 부분을 즉각 개선하고 미지급 임금도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 결과 이랜드파크 21개 브랜드 직영점 360곳에서 4만4천360명의 근로자에게 각종 수당 83억7천여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비난이 커지자 내놓은 반응이다. 앞서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애슐리`자연별곡 등 이랜드파크 외식브랜드의 임금 체불과 근로기준법 위반 의혹을 제기했다.



이랜드파크는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에서 연차수당 미지급은 물론 임금 꺾기, 강제 조퇴 등 편법적인 인력 운영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련법을 전방위적으로 위반한 사실도 적발됐다. 이랜드파크의 임금 체불 수법을 보면 도대체 기업이 직원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악랄하고 치졸했다. 국감에서 이정미 의원은 “초과근로수당을 주지 않으려고 조퇴 처리하거나 근무시간을 15분 단위로 쪼개 기록하는 등 임금 꺾기를 일삼았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약자를 상대로 한 갖가지 횡포와 일부 유통기업의 ‘열정 페이’ 등 갑질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경각심 또한 높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이랜드파크 사례에서 보듯 일부에서 갑질 행위가 여전하고 수법 또한 교묘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몇 년 새 ‘땅콩 회항’ 등 갑질을 둘러싼 문제 제기가 잇따르자 경찰청이 지난 9월부터 100일간 이른바 ‘갑질 횡포’ 특별단속을 벌인 결과도 놀랍다. 전국에서 모두 7천663명이 적발돼 288명이 구속됐다. 사회 곳곳에 갑질 횡포가 깊게 뿌리박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특히 임금 착취나 하청업체에 부당한 거래 행위를 강요하는 등 불공정거래 행위로 적발된 사례만도 전체의 8%(347명)를 차지했다.

 
단속 손길이 미치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속적인 단속과 함께 엄중한 처벌이 시급하다. 입으로만 재발 방지를 되풀이할 게 아니다. 갑질이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 등 문제를 직시하고 기업 윤리를 바로 세워야 할 때다.



[서울신문]

4. 친박·비박, 이럴 바엔 속히 분당하는 게 낫다

새누리당이 어제 의원총회를 열어 비상대책위원장 선임 등을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친박(친박근혜)계는 외부인사 영입을, 비박(비박근혜)계는 유승민 의원 추대를 각각 주장하면서 팽팽하게 대립했다.



비박계는 ‘유승민 카드’를 수용하지 않으면 분당을 불사하겠다고 배수진을 친 상태다. 반면 친박계는 당의 화합을 위해서는 외부인사 영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친박계와 비박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분당 현실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비박계 의원들은 오늘 탈당에 관한 최종 의견을 결정할 방침이라고 한다.

어제 정우택 원내대표는 사흘 내로 비대위원장을 선출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새누리당 계파 싸움을 지긋지긋할 정도로 오랫동안 지켜봐 온 국민은 솔직히 이제는 누가 비대위원장이 되든 관심조차 없다. 누적된 피로감은 분노로 바뀐 지 오래다.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을 청산하고 속히 갈라서 제 갈 길을 가야 한다는 주문까지 나온다. 보수세력 사이에서는 이러다가 정말 보수의 궤멸을 초래하고야 말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집권 여당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새누리당은 벌써 몇 개월째 어떠한 정책도,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친박계의 ‘꼼수 정치’는 용납하기 어렵다. 친박계는 비박계의 비상시국회의에 대항해 출범시킨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을 일주일 만인 어제 해체했다. 원내대표 경선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세 결집 차원의 모임이었음을 자인한 셈이다. 정 원내대표가 당선될 당시 이정현 전 대표의 득의만만한 미소를 국민은 똑똑히 목격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친박계가 새누리당의 혁신을 주도한다면 지나가던 소가 웃을 것이다. 이탈 대열을 계산하는 비박계의 정치적 셈법도 마뜩잖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명분보다는 실리를 앞세우는 것 아닌가.

돌이켜 보면 새누리당은 친박계와 비박계 간 싸움으로 올 한 해 한시도 바람 잘 날 없었다. 총선 공천 과정에서는 친박패권주의가 절정에 달했고, 총선 참패 이후에도 반성 없이 두 진영이 이전투구식 ‘패거리 정치’로 일관했다. 보수 정치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책임정치와는 담을 쌓은 친박계의 후안무치한 행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에도 불구하고 당내에서는 누구도 “내 탓이오!”라며 책임지는 인사가 없지 않은가. 임시 봉합한 상처는 결국 다시 터지게 마련이다. 국민은 두 계파 간 싸움을 더이상 지켜볼 여력이 없다.



[조선일보]

5. AI 피해 日의 20배, '국가 실패' 고질병 그대로다

AI(조류 인플루엔자)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닭·오리 살처분 수가 2000만 마리를 넘어섰다. 닭값이 치솟고 계란이 부족해 항공편으로 계란 긴급 수입까지 추진하기로 했다. 비슷한 시기 AI가 발생한 일본에서 발생 건수가 6건에 불과하고 살처분도 102만 마리로 막고 있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한·일의 AI 대응은 첫날부터 차이가 났다. 일본은 지난달 말 첫 번째 가금류 AI 확진 판정이 나오자 두 시간 만인 밤 11시에 총리 관저 내에 AI 연락실을 설치했다. 아베 총리의 "철저한 방역(防疫)" 지시도 심야에 각 부처에 시달됐다. 다음 날 새벽 4시 자위대 대원들이 AI 발생 현장에 출동해 방역 작업을 벌였고 아침 9시 관계 부처 장관 회의가 열려 범정부 차원 대책을 협의했다. 이 모든 조치가 12시간 안에 이뤄졌다. AI 경보는 그 전에 이미 최고 등급인 3등급으로 올려놓은 상태였다. 준비된 매뉴얼대로 전광석화처럼 움직인 것이다.



한국에서 정부 차원 대책 회의가 열린 것은 AI 발생 후 만 이틀이 지나서였다. 가금류 차량·인력에 대한 '일시 이동 중지' 명령은 사흘 뒤에 나왔고, 일주일 뒤에야 위기 경보를 '경계' 단계로 올렸다. 최고 등급인 '심각' 단계로 격상한 것은 한 달이나 지나서였다. 정해진 기준에 따랐다고 하나 농가 반발을 우려한 농식품부가 눈치를 본 것이란 지적이 많다. 일본과 달리 우리는 컨트롤 타워도 농식품부에 맡겼다.



황교안 총리는 AI 발생 열흘 뒤에야 방역 대책 상황실을 찾았다. '1개월 대 즉시'(한·일이 최고 단계 경보 발령까지 각각 걸린 시간). '열흘 대 2시간'(국정 최고 책임자가 AI를 챙기는 데 걸린 시간)의 차이가 '2000만 마리 대 102만 마리'(살처분 수)라는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낳았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자체도 태만했다. 한 군(郡)은 문서에만 방역본부를 설치한 것처럼 꾸며놓고 실제론 운영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어떤 지자체에선 근무자들이 24시간 운영해야 할 소독 시설을 비우고 식당에서 밥을 먹다 적발되기도 했다.



축산 농가와 양계산업 종사자들의 적당주의와 도덕적 해이도 그대로다. 한 양계 농장은 AI가 발생했는데 신고 직전에 닭 10여만 마리와 계란 200여만 개를 출하하기도 했다. 바이러스가 퍼질 위험이 큰데도 무조건 닭을 팔게 해달라고 집단으로 떼를 쓴다. 그러면 정부가 굴복한다. 전국 곳곳에서 계란 운반 차량이 농장 안까지 들어가거나 작업자가 방역복을 안 입고 계란을 나르는 사례가 속출했다. 농장 안과 밖에서 옷·신발을 철저하게 달리하는 일본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AI가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다 안다. 일본은 그대로 한다. 우리는 적당히 대충 한다. AI가 퍼지든 말든 돈부터 챙기려 든다. 정부는 영합한다. 계속 실패해도 교훈으로 삼지 않는다. 사상 최악의 AI 사태에서 '실패 국가'의 모습을 또 본다.



6. '北 고위층도 노예'라는 태영호 공사의 증언

지난 8월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밝힌 김정은 정권의 감시 체제는 놀라울 정도다. 태 전 공사는 그제 국회 정보위 의원들을 만나 북한 고위직에 대한 자택 도청이 일상화돼 있다고 밝혔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도 집 안에서 말을 잘못해 처형됐다고 했다.



그것도 고사기관총으로 몸이 산산이 부서졌다. 인민무력부장이 이렇다면 일반 주민은 그야말로 노예다. 북한 고위층들은 김정은의 나이가 어려 노예 생활이 수십 년 계속될 것이란 생각에 우울증을 겪는다고도 했다.



태 전 공사는 귀순할 때 자신의 두 아들에게 "노예의 사슬을 끊어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더 많은 북한의 엘리트와 주민들이 김정은 일족이 쳐 놓은 노예의 사슬을 끊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태 전 공사는 북한 엘리트층이 안심하고 넘어올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를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급변사태가 나도 북한의 엘리트층이 "중국으로 도망가지 않고 한국에 와도 괜찮다는 것"을 알리자고 했다. 달리 말하면 북한의 엘리트들이 한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게 될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태 전 공사의 증언을 들으며 바로 내일 북 체제가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탈북자들의 얘기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비록 지금 우리 국내 정치 상황이 어렵지만 북 체제가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시한폭탄 같은 현실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태 전 공사는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공개적인 사회 활동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실제 북은 탈북자 이한영씨를 암살했다. 황장엽 전 비서도 암살하려 했다. 그런데도 태 전 공사가 나서려는 것은 북 주민들의 노예 생활을 끝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일 것이다. 그의 용기에 힘을 얻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세계일보]

7. 특검 명예 걸고 국정농단 진실 명명백백 밝히라

미증유의 국정농단 사건의 수사를 맡은 박영수 특별수사팀이 본격 출항한다. 특검팀은 20일간의 준비를 마치고 오늘 현판식을 갖는다. 그동안 팀원 인선을 끝낸 특검은 사전 조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재벌 회장들의 출국을 금지했다.

작금의 상황은 여간 심각하지 않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을 앞두고 탄핵 찬반 세력이 격돌하고 있다. 국정농단을 주도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혐의를 부인한다. 이런 혼란을 극복하고 헌재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하려면 특검이 사건 실체를 투명하게 가려내는 수밖에 없다.

그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의 첫 재판은 특검 수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했다. 최순실씨의 변호인은 “검찰 공소사실 중 8가지가 박근혜 대통령,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과 공모했다는 것인데 그런 사실이 없기 때문에 죄가 인정될 수 없다”고 강변했다. 국정농단의 결정적 증거가 됐던 테블릿PC에 대해서도 최씨 소유가 아니라며 되레 재판부에 감정을 요청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헌재 답변서를 통해 최씨의 범죄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고, 안 전 수석은 대통령과 최씨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국정농단이란 사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관련자 모두 발뺌한 것이다. 국민을 우롱하는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다.

이런 중차대한 상황에 국회에선 진실을 은폐하려는 위증 교사 의혹까지 불거진다. 국정조사 청문회 위원인 이완영·이만희 새누리당 의원이 태블릿PC와 관련해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에게 거짓 진술을 유도했다는 의혹이다. 이완영 의원이 “태블릿PC는 고영태의 것으로 보이도록 하면서 JTBC가 절도한 것으로 하자”고 입을 맞췄다는 것이다. 이 의원이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만큼 향후 특검 수사에서 철저히 진상을 가려야 한다.

국정농단 혐의를 부인하는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진상 규명을 방해하는 세력들의 전모를 파헤칠 책임은 전적으로 특검에 달렸다. 검찰이 실패한 박 대통령 직접 조사와 청와대 압수수색도 반드시 관철해야 하는 이유다. 박 특검은 임명 당시 “(수사를) 한정하거나 대상자의 지위고하를 고려하지 않겠다”고 했다.



특검은 처음의 다짐대로 어떤 외압이나 정치 외풍에도 흔들림이 없이 사건의 실체를 향해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야 한다. 사즉생의 각오로 역사 앞에 한 점 부끄럼 없는 결과물을 내놔야 한다. 특검의 양 어깨에 ‘반듯한 나라’를 세울 막중한 책무가 걸려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매일경제]

​8. 황 대행 나오라 해놓고 자리지킨 의원 30여 명뿐이라니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어제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했지만 의원들의 함량 미달 질문과 성의 없는 태도로 국민에게 실망만 줬다. 의원들은 탄핵 정국을 타개할 국정 운영 해법에 대한 질문보다는 정치 공세에 열을 올리느라 어렵게 성사된 황 권한대행의 국회 출석을 맹탕으로 만들었다. 한 술 더 떠 대정부질문이 끝날 때까지 본회의장에 자리를 끝까지 지킨 의원이 30여 명에 불과했다니 무책임의 극치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당초 황 권한대행은 국회 출석에 회의적이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에 출석한 전례가 없는 데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정을 챙겨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국회와 갈등을 빚는 것처럼 비치는 모습이 조속한 국정 안정을 바라는 국민 여망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고 입장을 바꿨다. 국회 협조 없이 국정을 정상화하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의원들은 무성의한 질문과 태도로 황 권한대행의 국회 출석을 국정 정상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로 만들지 못했다. 

지금은 정부와 여야가 힘을 합쳐도 해결하기 쉽지 않은 난제가 산적해 있다. 국정이 몇 개월째 표류하며 수출과 내수 등 경제는 깊은 수렁에 빠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경제연구소들이 내년 성장률을 2%대 초반까지 낮춘 데 이어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대정부질문에서 "(각종 위험 요인으로)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 3%를 유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는데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된다. 안보 외교 상황도 심상치 않다.



북핵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며 동북아 정세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조류인플루엔자(AI) 피해가 확산되면서 민생은 그야말로 파탄 직전에 있다. 이럴 때 정부와 국회마저 불협화음을 일으킨다면 총체적 위기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줄어든다. 황 권한대행이 전례를 깨고 국회에 출석한 것도 이런 절박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국회는 경제 안정과 민생 등 긴급한 현안을 놓고 협치하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정치 공세만 펼쳤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황 권한대행을 윽박지르듯 국회에 출석시켜 놓고 전체 의원의 10분의 1에 불과한 30여 명만 자리를 지킨 국회에 협치를 통한 국정 정상화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국민일보]

9. 국민 6명 중 1명이 빈곤층인 암울한 현실

통계청 등이 발표한 ‘2016년 가계금융·복지조사’는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국민들의 고단한 삶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해 가구당 평균 소득은 4883만원으로 전년보다 2.4% 늘어난 데 비해 부채는 6655만원으로 6.4% 증가했다. 소득은 쥐꼬리만큼 늘었는데 그마저 가처분소득의 4분의 1가량은 빚 갚는 데 쓰고 있다. 

국민 6명 중 1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는 통계는 충격적이다. 노인층 상황은 더 심각하다. 66세 이상 은퇴연령층의 빈곤율은 48.1%로 2명 중 1명꼴로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노인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라는 불명예를 몇 년째 안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노후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응답도 56.6%에 달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학자금 대출과 주거비·사교육비, 나이가 들어서는 자녀 결혼비용과 의료비, 노후 생활비 등 평생을 빚에 허덕이다 가난 속에 최후를 맞는 한국인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소득이 빚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미래가 불안하다보니 가계가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소비가 위축되다보니 생산이 줄고, 생산 감소는 가계소득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내년이다. 성장률이 2%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미국 금리 인상도 3차례 예고돼 있다. 저금리 기조에 무리하게 대출을 늘렸던 가계들의 부담이 커지면서 소비절벽과 가계파산이 우려된다. 

소비를 진작시키고 가계부채 압박을 줄이려면 가계소득 증대 방안이 필요하다. 가계소득을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하는 복지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거나 임금을 올려줘 가계의 경제활동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서민층이나 노년층을 위한 사회 안전망 확충도 시급하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장 타격을 받는 계층이 서민들이다. 민생 안정과 가계소득 증대에 정책이 집중돼야 하는 이유다.



[서울경제]

​10. 인공지능마저 중국에 추월당한 IT한국의 현실

우리의 인공지능(AI) 기술 수준이 급기야 중국에 추월당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에 따르면 한국의 AI 및 인지컴퓨팅 기술력은 미국보다 2.4년 뒤떨어져 있으며 중국에도 0.8년가량 뒤진 것으로 평가됐다. 

4차 산업혁명의 열쇠인 AI 분야에서 중국에도 뒤처진다는 사실은 한국이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명성을 무색하게 한다. 이번 조사에서도 AI 특허 상위 10위권에 국내 기업은 단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갈수록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미국인공지능학회(AIIA)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은 138건의 AI 논문을 발표해 미국(326건)에 이어 2위에 올라 양강 체제를 굳혔다는 평가다.



중국은 범정부 차원에서 ‘인터넷 플러스 인공지능 3년 계획’을 마련해 2018년까지 1,000억위안(약 18조원)을 쏟아붓고 바이두·텐센트 같은 IT 대기업들이 과감히 선도 투자에 나서고 있다. 반면 우리 대기업들은 변변히 내세울 만한 특허도 갖지 못한 채 벤처나 스타트업의 협소한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정부도 뒤늦게 지능정보기술연구소(AIRI)를 세워 5년간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나섰지만 중국의 물량공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정부는 신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보다 과감한 투자와 전문인력 양성을 통해 글로벌 격차를 줄여나가야 한다. AI 기술에 필요한 기초 데이터조차 수집하기 어렵다며 규제 철폐를 부르짖는 업계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중국 유학생들이 귀국 후 미국 대학교나 실리콘밸리와의 공동연구로 핵심기술을 개발하는 사례는 적극적으로 참고할 만하다.

세계 AI 시장은 내년에 1,650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확실한 대표주자가 없어 지금 추격에 나서더라도 늦지 않는다. 정부와 산업계는 미래 먹거리를 책임진다는 절박한 인식을 갖고 한국판 AI 생태계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매일신문][매일춘추] 어느 특별한 외출

며칠 전 북성로에서 '북성북성 마을 사진전'이라는 이름의 전시회가 열렸다. 그간 북성로에서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 사업' 기록 영상과 '북성로를 만나는 다섯 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의 미니 다큐 등 다양한 영상 작업을 해 온 '영상서랍'이 기획했다. 사진과 영상에 등장하는 기술자 아저씨들에게는 정식으로 못 보여드렸다는 생각에, 그분들을 주인공으로 초대하는 자리를 만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연말이라 정신없이 바빴던 터라 전시 준비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밤샘 작업과 주변의 도움으로 겨우 일정에 맞춰 준비를 마쳤다. 이제 아저씨들만 오시면 되는데, 10여 분을 앞두고 갑자기 전기가 나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시간은 점점 다가왔지만 두꺼비집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불빛이 켜졌다. 휴대전화 불빛이었다. 반딧불이 같이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는 아저씨들의 얼굴엔 웃음이 번졌다. “이거 내가 아는 놈이네?” 하며 즐거워하는 그들의 얼굴을 보노라니 안심이 됐다.

다시 전깃불이 켜졌고, 오프닝을 시작했다. 아저씨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짧은 다큐를 감상한 뒤 축하 공연이 시작됐다. 여느 공연과는 조금 다르게, 올해 '북성로주민협업공모전'을 통해 북성로에 있는 재료로 만든 악기를 연주하고, 그 반주에 맞춰 '고향의 봄'을 합창했다. 안 그래도 좀 전 다큐를 보며 먹먹해져 있던 터라, 노래를 부르는 순간에는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그래, 이곳은 그들에게 '제2의 고향'이라 할 만했다.

북성로 뒷골목의 많은 기술자들은 대부분 어릴 적 고향을 떠나 먹고살기 위해 북성로로 왔고, '시다바리'부터 시작해 겹겹의 시간들 속에서 기술자가 되었다. 매형이나 사촌형, 동네 친한 형을 따라 이곳에 왔다. 숙식만 해결해주면 그곳에 자리를 잡는 식이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 비록 집은 여기저기 이사를 다녔어도 그들이 여전히 자신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북성로다. 이곳에서 가장 숱한 시간을 보냈고, 친구와 적을 만들었고, 함께 늙어간다. 

'북성로 문화마을'이라는 이름 아래 북성로에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여기가 '마을'인가 하는 의구심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이곳이 고향이 되어버린 그들을 보면서, 대구라는 도시에 이런 마을이 또 어디 있을까 싶어졌다. 그들과 만나고 그들의 삶과 기술을 기록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면서도, 그들을 어떤 '페이소스' 안에 가둬 대상화하고 있지 않았나 돌아보게도 됐다. 

이곳에 있는 기술자들과 만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세계는 확장될 수 있다. 그들이 스스로 그 이야기를 만드는 주인공이 된다면, 그들의 외출 범위가 좀 더 넓어진다면, 북성로에는 분명 지금과는 조금 다른 풍경들이 빚어질 것이다. 그것은 사업이 아니라 삶으로, 기록이 아니라 구전으로 전승될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지금, 북성로를 생각할 때 그려보아야 할 그림이다.



2. [서울신문][이호준 시간여행] 쿠바에서 만나는 흘러간 시간

쿠바에 가면 흘러가 버린 시간을 만날 수 있다. 수도 아바나의 낡은 건물과 1970년대쯤의 문명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서구보다 두 배쯤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 거기 있다. 그런 풍경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올드카다,

아바나 시내를 걷다 보면 1950~60년대에 생산된 올드카, 즉 클래식카들이 마치 엊그제 출고된 자동차처럼 화려한 외양을 자랑하며 거리를 누비는 것을 볼 수 있다. 엄청난 크기의 캐딜락도 있고 오래전 단종된 모델의 뷰익, 벤츠 등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가난한 나라, 가난한 도시에 번쩍거리는 고급차의 행렬이라니. 어느 땐 그런 클래식카들이 마차와 나란히 달리기도 한다. 사연을 모르거나 처음 간 사람은 그런 이질적 풍경에 혼란스럽기 마련이다.

쿠바가 클래식카의 전시장이 된 데에는 아픈 배경이 있다. 지리적으로 미국의 마이애미와 바로 이웃인 쿠바는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등이 혁명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미국인들의 놀이터였다. 탐욕스러웠던 바티스타 정권은 미국이 손을 내미는 거라면 망설이지 않고 팔아치웠다. 그러다 보니 아바나는 라스베이거스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거두는 최고의 환락도시가 됐다. 마피아들이 속속 진출하고 미국의 부호들이 안방 드나들 듯하면서 돈을 뿌렸다. 호텔과 카지노와 나이트클럽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1958년 아바나를 찾은 미국인만 30만명에 이르렀다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꽃도 영원히 필 수는 없는 법. 피델 카스트로는 1959년 1월 혁명에 성공하면서 경제 개혁에 착수했다. 미국의 이권을 폐기하고 미국 자본의 착취를 제한했으며, 1960년에는 미국계 기업의 자산을 국유화했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미국이 아니다. 미국은 여러 차례 카스트로 정권의 전복을 시도했다. 쿠바 출신의 망명자들을 중심으로 무장 세력을 만들어 직접 개입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쿠바는 1961년 1월 미국과 국교를 단절했고, 미국은 쿠바에 대한 경제 봉쇄로 숨통을 조이기 시작했다.

미국의 봉쇄 조치 이후 새 자동차를 구할 수 없었던 쿠바 사람들은 과거 미국에서 들어온 차나 소련에서 만든 차를 계속 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장이 나도 부품이 없으니 고쳐 쓸 방법이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다른 차에서 비슷한 부품을 찾아서 고치거나 직접 깎아서 쓰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듭 거친 차들은 결국 껍데기만 뷰익이고 캐딜락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라도 수십 년 동안 굴러다닌 것을 보면 쿠바 사람들이 자동차를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클래식카와 관련된 아이러니한 일들도 많다. 예를 들면 오래된 차일수록 값이 비싸다는 것. 이제는 거꾸로 미국으로 팔려나간다고 한다. 단종된 지 오래인 전설의 차가 번쩍거리며 거리를 누비니, 미국인으로서는 신기할 수밖에.

쿠바에 가면 올드카를 꼭 타 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가용으로 구시가지를 한 바퀴 도는 상품도 있고 올드카로 영업하는 택시도 있다. 안락하지는 않지만, 묵직한 소리를 내며 말레콘을 따라 달리다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얼떨결에 흘려보냈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문명의 혜택과 안락에 젖어,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도 덤으로 온다. 내가 쿠바를 찾아가는 또 하나의 이유다.

​3. [동아일보][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노는 아이를 공부시키지 말아야 할 이유

​만 네 살인 윤호가 거실에 장난감 자동차를 잔뜩 늘어놓고 혼자 중얼거리며 놀고 있다. 설거지를 마친 엄마는 윤호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가만히 옆에 앉았다. 엄마가 “같이 할까?” 하자, 아이는 반가운 듯 활짝 웃었다.



엄마는 자동차 한 대를 밀며 붕붕거리다 물었다. “그런데 윤호야, 자동차가 영어로 뭐였더라?” 윤호가 “카”라고 대답하자 이번에는 자동차 색깔을 영어로 묻는다. 윤호가 대답을 잘하자, 엄마는 함박같이 웃으며 “어머, 우리 윤호 너무 똑똑하다. 최고!” 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엄마는 주차장에 자동차 5대를 연이어 주차하며 또다시 묻는다. “그런데 윤호야, 자동차 2대에다가 3대를 더 주차하면 전부 몇 대지?” 

아이와 놀아주면서도 틈만 나면 공부를 시키려는 부모들이 있다. 사물의 이름을 영어로 물어보고, 수를 세게 하고, 한글을 읽어 보게 한다. 그러면서 조금 일찍 가르치는 것이지만, 강압적으로 붙잡고 가르친 것이 아니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심 놀아 주면서 공부까지 시켰다며 뿌듯해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에 손이라도 들어주듯 아이는 부모의 물음에 신나서 넙죽넙죽 대답을 한다. 아이가 잘 따르면 부모는 거기에 성취감을 느껴 더 하게 된다.



아이가 공부를 재밌어 한다고 착각도 한다. 아이가 신나서 대답을 하는 이유는 부모의 폭풍 칭찬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노는 시간까지 공부로만 상호작용을 하면,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 할 때 공부를 못 하거나 싫어하게 될 수 있다. 공부뿐 아니라 부모와의 상호작용 자체를 싫어하게 될 수도 있다. 

아이가 놀면서 하는 공부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공부가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부모와 하는 상호작용이 좋아서다. 이때 공부는 도구일 뿐이다. 아이가 계속 넙죽넙죽 대답을 잘하는 것은, 계속해서 따뜻하고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고 싶어서이다. 그런데 아이가 부모와 ‘공부’로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초기 유아기’ 잠깐이다.



공부라는 것은 놀이와 달라서 배우면 배울수록 칭찬만 들을 수는 없다. 갈수록 난도가 높아지고, 난도가 높아지면 틀렸다는 말도 해야 되고, 다시 풀라고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가 어릴 때부터 공부로만 상호작용을 한 부모는 공부 외에 다른 도구로는 상호작용을 할 줄을 모른다. 계속 공부로만 상호작용을 하려고 들게 된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아예 부모와 상호작용을 하는 시간을 싫어하게 된다. 

부모와의 상호작용이 싫어지면, 아이는 공부할 이유를 잃는다. 공부가 싫어지고 안 하려고 든다. 이런 시기가 바로 초등 고학년이다. 유아기나 아이에 따라 초등 저학년까지는 부모의 뜻대로 아이가 공부를 한다. 이것을 아이가 좋아서 한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내공이 약하거나 순종적인 아이들은 그냥 “네”라고 할 뿐, 공부에 대한 흥미를 점점 잃어버린다. 하지만 초등 고학년이 되면 공부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공부로는 부모와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거의 할 수 없게 된다. 그때는 책상 앞에 앉히기도 어려워진다. 

초등 입학 준비를 시킨다고 해도 유아기 공부는 최대한 30분을 넘어서는 안 된다. 나머지 시간에는 아이와 다른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일상생활의 다양한 상황에서 긍정적이고 따뜻한 교감이 오가야 한다. 특히 놀이에서는 더욱 그렇다. 유아기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놀아 주세요”다. 이 시기의 두뇌 발달에는 ‘노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정말 실컷 놀도록 해야 한다. 즐겁고 신나고 행복해야 감각이나 운동신경이 발달하고 두뇌도 발달한다. 아이들이 감각적인 것, 몸을 움직이는 것에 더 호기심을 느끼는 것은 아이의 DNA에 새겨진 두뇌 발달에 그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부모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원하는 것은 ‘즐거움’이다. 아이는 부모와 같이 있는 시간이 따뜻하고 뭘 해도 ‘야, 신난다!’라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이 부모에게 수용되고, 수시로 부모 품에 포근히 안기기를 원한다. 하지만 공부로 상호작용을 하면 이런 것을 주기가 어렵다.



공부는 아무리 쉬워도 놀이가 아니다. 놀이는 아이가 규칙을 바꿔도 “그래 좋아. 그렇게 해보자”라고 할 수 있지만, 공부는 규칙을 바꿀 수 없다. 더하기를 아이 마음대로 빼기로 바꿀 수는 없지 않는가. 부모 입장에서 공부는 수용을 많이 해주기 어려운 아이템이다. 필요한 만큼 가르치기는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와의 모든 상호작용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부모와 아이 관계도, 아이 공부도 모두 망가질 수 있다.



4. [동아일보][황광해의 역사속 한식] 미음과 죽

정국이 복잡하게 얽혔다. 정조 10년(1786년) 12월 1일, 왕대비 혜경궁 홍씨가 한글 하교문을 승정원 등에 내린다. “5월에 원자(元子)가 죽고 9월에 또 변고가 있었다. 가슴이 막히고 담이 떨려 일시라도 세상에 살 마음이 없었다. 그간 목숨을 연명,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속미음(粟米飮)을 마셨기 때문인데 이제는 이것도 들지 않고 죄다 봉해서 날짜를 표시해 두었다. 그간 미음을 든다고 대전(大殿·임금)에 말했으나 지금 병세는 실로 부지하기 힘들다.”

미음은 몸이 아플 때 먹는 것이다. 미음이나 물도 마시지 않는 것은 죽겠다는 시위다. 단식 투쟁이다. 속미음은 좁쌀로 끓인 미음 혹은 죽(粥)이다. 혜경궁 홍씨가 미음도 끊고 시위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해 5월에 홍역으로 문효세자가 죽었다(5세). ‘9월의 변고’는 문효세자의 어머니 의빈 성씨의 죽음이다. 의빈 성씨는 셋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이제 정조의 아들은 없다. 차기 대권 향방이 오리무중이다. 혜경궁으로서는 절박했을 것이다. 

혜경궁이 문제 삼은 대상은 죽은 전임 도승지 홍국영(1748∼1781) 일파의 ‘그림자’다. 홍국영은 정조의 ‘문고리 권력’이었다. 비선이자 실선의 실세였다. 젊은 나이(29세)에 도승지가 되었다. 대통령비서실장이다. 자신의 여동생을 후궁(원빈)으로 밀어 넣어 외척이 되려 했으나 원빈의 죽음으로 실패했다. 정조의 이복 조카였던 상계군 담을 원빈의 양자로 받아들여 ‘정조 다음’을 꿈꾸었으나 역시 실패했다. 홍국영이 죽은 후 5년이 지났다. 혜경궁은 여전히 궁궐에 홍국영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고 말한다. 홍국영은 정조 반대파인 노론 벽파와 손잡았고 그들이 궁궐에 남아 있었다. 혜경궁은 속미음도 거부하고 ‘홍국영의 그림자’를 걷어낼 것을 요구한 것이다. 

영조도 속미음을 이용하여 한바탕 시위를 벌였다. 영조 32년(1756년) 2월 18일 한밤중, 영조가 느닷없이 진전(眞殿) 동쪽 뜰에 돗자리를 깔고 북향하여 엎드린다. 붕당, 당파 간의 심한 싸움에 대한 국왕의 항의다. 진전은 역대 왕들의 어진을 모신 곳이다. “내가 신하들의 붕당하지 않겠다는 말을 믿고 선왕들에게 고했다.



이제 또다시 붕당과 싸움이 일어나니 내말이 거짓이 되었다. 선조들에게 사과하고자 한다.” 예순 살을 넘긴 국왕이 홑겹 돗자리를 깔고 한밤중 찬 바닥에 엎드렸다. 신하들로서는 큰일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여러 신하들이 속미음을 올렸으나 임금이 끝내 거부했다’고 기록했다. ‘미음도 먹지 않겠다’는 걸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진솔한 ‘미음 단식’도 있다. 영조 24년(1748년) 7월, 영조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딸’이라고 불렀던 화평옹주가 죽었다. 22세. 영조는 “미음 같은 음식도 잘 넘기지 못하여 매양 답답한 때가 많다”고 한탄한다. 

몸이 허약한 경우는 함부로 “미음도 먹지 않는다”고 단식을 내세울 일은 아니다. 미음은 환자식이다. 경종은 원래 몸이 약했다. 세상 떠나기 하루 전인 경종 4년(1724년) 8월 23일, ‘설사 징후가 그치지 않아 혼미하고 피곤함이 특별히 심하니, 약방에서 입진, 탕약을 정지하고 잇따라 인삼속미음(人蔘粟米飮)을 올렸다’고 했다. 인삼속미음은 인삼과 좁쌀로 끓인 죽이다. 다음 날인 8월 24일의 기록. ‘도제조와 제조가 미음(粥飮·죽음) 드시기를 권하였으나 응답하지 않았다. 세제(世弟·영조)가 청하니 임금이 비로소 고개를 들었고, 미음을 올렸다’고 했다. 

정조도 마찬가지. 조선왕조실록 정조 24년(1800년) 6월 22일의 기사. 정조가 위독하다. 세상을 떠나기 불과 6일 전. 화성유수 서유린이 “수라는 드셨느냐?”고 여쭙는다. 정조는 “미음을 조금 마셨을 뿐”이라고 답한다. 6월 26일에는 좌의정 심환지가 “음식은 드셨습니까?”라고 묻자 “조금 전, 흰 도라지 미음을 조금 마셨다”고 답한다. 

죽은 되다. 미음은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묽다. 그 차이를 정확하게 가르기는 힘들다. 죽과 미음은 혼용했다. 영조가 세상을 떠난 직후, 신하들이 세손 정조에게 ‘죽음(粥飮)을 바쳤다’는 내용도 있다. 죽과 미음을 혼용한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중국 사신은 미음을 즐겨 찾으니 큰 쟁반에 사발을 두고 미음을 담는데 잣죽(果松粥·과송죽)이든 깨죽(胡麻粥·호마죽)이든 모두 좋다’고 했다(목민심서 예전). 미음과 죽을 혼용한 것이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마쓰모토 세이초

1962년 8월호 ‘사상계’에 소설가 김동리와 일본 작가 히라바야시 다이코(1905~1972)의 대담 ‘한일 문학을 말한다’가 실렸는데, 거기에 “평소 순문학 작가임을 자랑으로 여기는 히라바야시가 자국의 유행작가(대중 작가)를 대놓고 폄훼하는” 대목이 나온다고 한다. “글쎄요. 그런 작가는 사고라는 게 없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쓰고 있는데 몇 명의 비서를 채용해서 자료를 모아오게 해 가지고는 그 자료를 가지고 쓸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어 마쓰모토 세이초(松本淸張) 같은 작가는 상당히 반미(反美)인데요. 그 이유가 자기 비서 중에 공산주의자가 있어요.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그런 자료를 모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쓰모토라고 하면 인간이 아니라 ‘타이프라이터’입니다.” 히라바야시는 보수적인 반공작가라 한다.(‘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조영일 해설 참조.) 

마쓰모토 세이초(1909~1992)는 52년 ‘어느 고쿠라 일기전’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55년 ‘잠복’을 시작으로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해, ‘점과 선’ ‘눈의 벽’ 등 베스트셀러를 무서운 속도로 쏟아내며 이른바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장르를 개척했다.



세이초는 사회구조적 억압과 불의, 소시민의 경제ㆍ문화적 욕망이 부딪치는 양상을 구체적인 상황과 인물들의 심리를 통해 들여다보는 작품을 주로 썼고, 그것이 당대 독자들에게 널리 읽혔다. 그는 일본공산당에 내내 우호적이었고, 베트남전쟁 반전 성명에도 앞장선 평화주의자였다. 위에 등장한 입 거친 작가의 감정 섞인 평의 근거가 그거였고, 그가 단숨에 일본의 인기 작가로 부상한 것도 그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세이초는 소학교를 졸업하고 15세에 한 회사의 출장소 급사로 취직해 돈을 벌어야 했고, 인쇄소 견습공- 신문사 촉탁사원- 정식 사원으로 살다가 43세에야 등단했다. 늦은 만큼 쌓인 게 많았던지 그는 92년 세상을 뜰 때까지 약 40년간 약 750권(편저 포함)의 책을 냈다고 한다. 장편소설만 약 100편을 썼고, 그의 기량이 가장 빛났던 중ㆍ단편도 350여 편을 남겼다. 논픽션과 평론, 역사 관련 저서도 적지 않았다. 

한국서는 “그런 작가는 사고라는 게 없다”는 히라바야시의 ‘평가’를 평가하는 작업이 근년에야, 독자들이 앞장서 시작한 듯하다. 1909년 12월 21일은 세이초의 호적에 기록된 생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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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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