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세월호 사태, 그 허망한 ‘1000일의 기억’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어느덧 1000일의 세월이 지났다. 인천항을 출발해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 여객선이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것이 2014년 4월 16일의 일이다.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해 300명 이상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슬픔과 분노의 경종을 울린 사고였다. 사망자들의 가엾은 영혼이 지금도 우리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어디엔가 떠도는 것만 같다.

세월이 흐르면서 잊혀지는 듯했던 이 사고가 다시 현실 무대에 되살아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 탄핵사태로 인해 사고 당시의 ‘7시간 행적’이 새삼 주목받게 된 것이다. 청와대가 그때 제 역할을 했느냐는 의문이기도 하다. 유족들은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세월호참사 국민조사위원회’를 발족시켰으며, 정치권에서는 제2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논의도 진행 중이다.

분명한 것은 당시 정부의 총체적인 부실 대응으로 인해 사고 피해가 커졌다는 점이다. 엉뚱한 교신으로 구조시간이 지체된 데다 현장에 출동한 해경도 사태 파악을 제대로 못한 채 머뭇거리다가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 탓도 적지 않다. 이 사고가 최악의 인재(人災)로 기억되는 이유다. 그 증거인 세월호 선체는 아직 차가운 바닷속에 가라앉아 인양될 날만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사고와 관련해 근거없는 소문들이 나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우리 사회의 피로감만 키울 뿐이다. 세월호가 미국 잠수함과 충돌해 침몰했다는 주장이나 세월호가 실제로는 국정원 소유이며 박근혜 정부와 국정원의 계획적 음모에 의해 사고가 일어났다는 소문들이 그것이다. 세월호의 실소유주로서 사고 직후 도피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병언이 실제로는 생존해 있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이런 유언비어를 가라앉히기 위해서도 밝혀지지 않은 원인이 있다면 끝까지 밝혀내는 게 옳다. 그러나 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탄핵사태에 조기 대선까지 맞물린 상황에서 각 정파마나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가려는 조짐이 엿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1000일을 맞는 오늘 진도 팽목항에는 노란 리본을 단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질 것이다.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2. 재벌가 2세들의 ‘갑질 패악’ 근절책 없나

재벌가 자녀들의 ‘갑질 폭행’이 또 구설수에 올랐다. 이번에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3남 동선씨가 그 장본인이다. 서울 강남의 술집에서 종업원을 때리는 등 난동을 부린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그는 2010년에도 용산 호텔 주점에서 유리창을 부숴 입건된 전력이 있다. 술에 취하면 주먹을 휘두르는 본능이 불쑥 튀어나오는 모양이다. 오죽하면 평소 아들들을 극진히 아끼는 것으로 소문난 김 회장조차 “응분의 벌을 받으라”고 충고했을까 싶다.

재벌가 2~3세의 행패 소동은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곤 한다. 2014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으로 온 사회가 떠들썩했는데도 그 이후 나아진 게 별로 없다. 불과 며칠 전에도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의 장남 선익씨가 술집에서 술병을 깨는 등 소란을 피워 입건됐다. 그 직전에는 중소기업 두정물산 대표의 아들 임범준씨가 대한항공 기내에서 술을 마시고 난동을 부린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만 해도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만큼 재벌가 자녀들의 불미스러운 행패 사건이 줄을 이었다. 현대가 3세인 정일선 현대 BNG스틸 사장과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 미스터피자 MPK그룹 정우현 회장, 김만식 몽고간장 회장 등의 사례가 그것이다. 운전기사나 빌딩 경비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2010년 SK계열 M&M의 최철원 전 대표가 저지른 ‘맷값 폭행’ 사건은 영화 소재가 되기도 했다. 1대를 때리는데 100만원을 주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재벌가의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갑질 패악은 ‘돈이면 다 된다’는 비뚤어진 천민 자본주의가 낳은 병폐다. 기본적인 경영 능력이나 윤리의식, 인성 등을 제대로 검증하지도 않고 무조건 자식들에게 부를 대물림하는 지금과 같은 ‘묻지마’ 승계 구조에서는 근절되기 어렵다. 대물림 회사의 정상적인 경영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오너가 견제를 위한 이사회 구조 개편 등 제도 개선이 따라야 한다. 

가장 큰 원인은 솜방망이 처벌에 있다. 운전기사를 상습 폭행하고도 기껏 벌금 1000만원 정도에 약식기소되는 상황이라면 충격 요법으로서도 부족하다. ‘금수저’들의 행패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한 처벌이 필요하다.



[매일신문]

3. 김영란법 시행 100일 만에 개정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5일 경제 부처 업무 보고에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과 관련,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내수 부진을 이유로 김영란법을 뜯어고치겠다는 의미다. 법이 시행된 지 6개월이나 1년이 경과한 것도 아니고, 고작 100일 만에 기다렸다는 듯이 개정하겠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황 권한대행은 이날 외부 전문가의 건의를 듣고 답변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공식적으로 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식대 3만원은 2003년 기준이기 때문에 그동안의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현실화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2003년에 누가 한 끼에 3만원 이상의 밥을 먹었는지 모르겠으나, 극소수 계층에 국한된 사례임이 분명하다.



정부가 여러 차례 김영란법 개정 의지를 밝혀왔기에 개정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정부는 김영란법의 규정을 여러 군데 손댈 것 같다.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의 상한액을 올리고, 화훼 및 설`추석 선물 등에 대해 별도의 상한을 정하겠다는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요식업계와 화훼 농가, 축산 농가 등의 매출 부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법을 섣불리 손대는 것은 법 취지를 훼손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숱한 부작용에도 이 법을 시행한 것은 ‘깨끗하고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국민적인 합의가 있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일시적인 부작용과 혼란을 이유로 법을 완화하면 법 자체를 유명무실한 상태로 전락시킬 위험성이 있다.



정부가 고작 몇 달간의 모니터링 결과를 바탕으로 법을 고치겠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불경기와 경제정책 실패를 김영란법 때문이라고 호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상한액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김영란법을 핑계로 대인 접촉이나 선물 등을 기피하거나 법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회 풍토가 더 문제다. 정부는 개정을 능사로 삼을 것이 아니라, 법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국민 홍보 및 법 운용에 나서야 할 것이다.



4. 치솟는 물가, 정부는 비상 대책 내놓아야

새해 벽두부터 물가가 심상찮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물가가 미쳤다”라는 말마저 나올 정도다. 더욱이 설을 앞둔 지금 채소, 과일, 수산물 등 생활필수품을 중심으로 가격이 뜀박질하다 보니 서민들의 시름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연초부터 물가가 급등하면서 경기 침체 속에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마저 생겨나고 있다.



요즘의 물가 상승 상황을 보면 저물가 시대라는 말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계란, 무, 당근 같은 농수축산물이 높게는 지난 5년 평균보다 2~3배씩 올랐다. 대구의 대형마트에서는 평년 가격이 2천911원 수준이던 당근(무세척 1㎏)이 9천400원까지 오른 곳도 있다.



식용유, 소면, 맥주, 소주, 라면, 과자 등 서민 생활과 밀접한 소비재들도 10% 안팎의 비율로 가격이 껑충 뛰었다. 지방자치단체마저 물가 상승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해 12월 말 버스 요금`도시철도 요금을 10% 이상 올렸으며, 대구의 도시가스료도 지난해 11월에 6.1% 올랐다. 오르지 않는 것은 오직 월급뿐이다.



물가가 폭등하고 있는 것은 국제 유가가 오름세에 있는 데다 지난여름 태풍 피해로 채소 작황이 나빴고 조류인플루엔자(AI)에 따른 계란 품귀 현상이 빚어지는 등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최근의 물가 폭등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최순실 사태와 대통령 탄핵 등 어수선한 시국으로 국정 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는 것을 틈타 대기업`중간상인 등 경제주체들이 잇속 챙기기에 나선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이다.



정부가 물가를 원천적으로 관리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물가 관리에 실패한다면 정부의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 달성 자체도 불가능해진다. AI 사태와 관련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관계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와 영상 대책회의를 거의 매일 여는 등 기민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물가와 관련해서도 정부는 비상 경제 상황이라는 인식 아래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물가 잡기 태스크포스(TF)라도 구성하는 등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줘야 할 것이다.



[한겨레]

5. 박 대통령, ‘블랙리스트’ 관여만으로도 탄핵해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총사령탑은 역시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을 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솎아내는 야만적인 계획에 박 대통령이 깊숙이 개입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제 박 대통령에게는 또다른 직권남용 혐의를 추가할 수밖에 없게 됐다.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개입했는지는 정확히 규명돼야 하겠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혐의만으로도 죄는 차고 넘친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대통령이라면 설사 참모들이 이런 안을 가져와 보고했다고 해도 강하게 질책하고 저지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 보인 행태를 보면 블랙리스트 발상의 진원지는 바로 박 대통령 자신일 공산이 크다. 반대편을 포용하는 아량과 배려는 애초부터 박 대통령의 사전에는 없었다. 끊임없는 내 편 네 편 가르기,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과 단체에 대한 극도의 증오와 배척이 그가 줄곧 보인 모습이었다.



눈엣가시 같은 존재는 어떻게든 없애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박 대통령의 집착, 공안통치의 화신인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그릇된 충성심, 위에서 시키면 무조건 따르는 영혼 없는 관료들의 무책임이 결합해 탄생한 괴물이 바로 블랙리스트다.

블랙리스트 작성에 최순실씨가 개입했을 의혹도 더욱 짙어졌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문어발식 국정농단을 펼쳐온 최씨가 자신의 ‘전공 분야’인 문화예술계를 가만히 놔두었을 리 없다. 그 분야에서 한몫 단단히 챙기려던 최씨로서는 현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계 인사들을 사전에 제거할 필요성도 있었을 것이다. 최씨가 박 대통령을 배후에서 움직였을 소지가 다분한 만큼 앞으로 철저한 특검 수사가 요청된다.

그동안 블랙리스트 문건 자체를 몰랐다고 잡아떼온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문체부 장관은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들 텐가. 하지만 이들보다 가장 큰 비판을 받아야 할 사람은 박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국민의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제22조를 정면으로 위반하며 나라를 다시 암흑세계로 되돌려 놓았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안 하나만으로도 박 대통령은 탄핵당해야 마땅하다.



[서울신문]

6. 설 앞둔 물가 급등, 정부가 선제적 조치를

지난해 하반기 이후 라면 등 가공식품값이 훌쩍 뛴 데 이어 설을 앞두고 설상가상으로 밥상 물가까지 치솟으면서 물가 대란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로 품귀를 빚는 계란은 물론이고 무·양배추·당근 등 농산물 가격마저 예사롭지 않다. 과일과 육류, 어류도 예외가 아니다. 무·양배추·당근의 소매값이 평년의 두 배를 웃돌고 배추는 1년 전보다 96% 이상 올랐다고 한다. 한우·갈치·오징어 가격도 20% 넘게 뛰었다고 하니 주부들이 “봉급 빼고 안 오른 게 없다”고 푸념할 만하다.

연초 밥상 물가가 가파르게 오른 데는 지난여름 폭염과 가을 태풍 ‘차바’의 영향이 클 것이다. 농산물은 지난해 가을 잦은 비로 햇볕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평균 기온이 낮아 제대로 자라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해수온도 변화에 따른 어획량 감소와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도 수산물 가격 상승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농축수산물은 공급이 줄면 가격이 바로 오르는 것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시설재배 물량이 풀리는 봄까지 농수산물 부족 현상이 지속될 것이고, 온난화에 따른 수산물 개체수 감소는 일회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시점에서 사재기 등 유통구조 문제로 인해 서민 물가 상승 폭이 커지지 않았는지, 업체들이 혼란스러운 정국을 틈타 가격을 동시다발적으로 올리지는 않았는지, 당국은 과연 이를 제대로 감시·관리·감독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농식품부는 얼마 전 달걀값이 폭등하자 사재기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유통업체와 농가를 대상으로 현장 점검에 나섰지만 뚜렷한 위법 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달걀값의 고공행진 이면에 사재기 행위가 없었다는 당국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서민들의 신음이 크지만 정부의 뚜렷한 수급 대책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계란 수입을 위해 관세를 일시 없앤 것이 대책이라면 대책이다. 당국이 원자재값과 날씨 탓만 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유가 상승으로 물가 상승 압력은 더 높아질 것이다. 성장 없는 불황 속의 가파른 물가 상승은 소비심리를 더 위축시켜 내수 부진과 경기 침체의 악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 당국은 저성장·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되기 전에 물가가 더 오르지 않도록 담합과 사재기 감시, 생필품 수입 규제 완화, 공공요금 인상 억제 등 모든 수단을 서둘러 동원해야 한다.



7. 여·야·정 협의체 가동, 벼랑끝 민생부터 챙겨야

여야 정책위의장과 경제부총리가 참여하는 여·야·정 정책협의체 첫 회의가 어제 국회에서 열렸다. 탄핵정국 이후 외교·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국정을 책임지고 민생을 돌봐야 할 두 축이 서로 머리를 맞댔다는 점에서 다행스럽고 기대 또한 큰 게 사실이다.

어제 회의에서는 우리 눈앞에 펼쳐진 국내외 주요 현안들이 거론됐고 이견도 노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정부는 정부, 정당은 정당대로 각기 처한 상황과 입장에 따라 처방과 견해가 다를 수 있다고 본다. 한 차례 만남으로 난제들이 술술 풀릴 리 만무하며, 첫 숟가락에 배부를 리 없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여·야·정 협의주체들은 풀기 어려운 정치적인 사안에 매달려 지지고 볶을 게 아니라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에 집중해야 한다.

정유년 새해 벽두부터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도전과 시련 앞에 놓여 있다. 중국은 우리의 안보와 직결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구실로 갈수록 무역 보복을 노골화하며 우리의 국론 분열을 획책하고 있고, 일본은 아베 총리까지 나서 “위안부 소녀상에 한국이 성의를 보여야 한다”며 우리의 자존심을 짓밟고 있다. 눈을 안으로 돌리면 국내 문제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 탄핵정국으로 빚어진 국정 과도기에 피폐해지고 있는 서민의 삶은 손을 놓고 바라볼 상황을 이미 넘어섰다.

설 물가만 보더라도 안 오르는 게 없을 정도로 뛰고 있다. 필수 먹거리로 소비자들의 체감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농축수산물 물가가 전체 물가상승을 주도하고 있어 걱정이다. 작년 이맘때 1300원 하던 무가 4000원, 배추 한 포기는 예년의 두 배인 4500원을 줘야 살 수 있다. 생활물가를 잡지 못하면 민생 안정은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협의체는 인식해야 한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새해 벽두부터 대출 금리가 들썩이고 있어 금리 및 가계부채 대책 마련 또한 서두를 때다. 조류인플루엔자 피해 농가 지원 방안과 확산 방지, 조기 종식에도 지혜를 모아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협의체는 사드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위안부 합의 같은 정부와 야당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을 놓고 다투기보다 발등의 불인 민생 현안부터 먼저 챙겨야 한다. 대외적인 문제는 차기 정부에 넘겨 논의해도 늦지 않으며 그것을 붙들고 늘어질 만큼 현 상황이 한가하지 않다. 협의체에서 모아진 의견은 즉각 시행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바라는 협치다.



[조선일보]

8. 특검 블랙리스트 확인, 최고 책임자가 누군가

​특검은 8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김종덕 전(前)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앞서 특검은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를 정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공식 확인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 지시로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에서 이 리스트를 만들고 교문수석실을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에서 이 리스트를 만들고 교문수석실을 거쳐 문체부에 전달됐다는 것이다.



리스트가 만들어진 2014년 무렵 정무수석이었던 조윤선 문체부 장관과 김기춘 전 실장도 곧 소환할 방침이다.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예술인 수가 1만명 가깝다고 한다. 리스트 작성에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국정원, 문화체육부 장·차관 등 관련 국가 기관이 총동원되다시피 했다.



특정인이 법률을 위반하지도 않았는데 그의 생각 때문에 국민 세금 지원을 차별한다는 것은 민주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는 문화예술이 숨을 쉴 수 없다. 이 정부가 내건 '문화 융성' 기치와도 거꾸로 가는 행태다. 박근혜 대통령은 블랙리스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지시 없이 이렇게 광범위한 작업이 진행될 수 있느냐는 의문은 지워지지 않는다.


특검팀은 최순실씨가 정호성 전 비서관 등을 통해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을 관리해야 한다"며 리스트 작성에 개입한 단서도 포착했다고 한다. 특검은 김기춘 전 실장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사이비 예술가를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블랙리스트 작성 필요성을 꺼낸 배경을 밝힐 필요가 있다.


문화예술 지원에 대한 정치 개입은 이 정권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친(親)정권 예술인들을 집중 지원했다. 회원 수가 예총의 10분의 1에 불과한 민예총 지원 예산이 예총보다 많았던 적도 있다. 지금도 야당이 단체장을 맡은 지자체에선 각종 사업들이 친야 성향 문화예술인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에 우호적이냐 아니냐를 잣대로 지원하고 말고를 결정하는 반(反)문화적 행태를 이제 끝내야 한다. 정치 권력은 문화예술 지원 권한을 '전리품'처럼 여기고 몇 푼 안 되는 지원금으로 문화예술인들을 길들이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9. 대통령 하겠다며 외교 위기에도 일언반구 없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8일 미 트럼프 새 정부 인사들을 만나기 위해 출국했다. 그는 누구를 만나느냐는 질문에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 대답이 지금 우리 처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리퍼트 주한 미 대사가 이임 회견 직전에 갑자기 취소한 것도 석연치 않다. 미국이 한국 조기 대선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라면 한·미 관계의 불안정이 최소 4~5개월 이어질 수 있다.

 

일본 아베 총리는 어제 "(위안부 합의가) 정권이 바뀌어도 실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미국 부통령은 "한·일 정부가 책임을 갖고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사실상 일본 편을 든 것이다. 오늘 귀국하는 주한 일본 대사는 '일시 귀국'이라고는 하지만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중국이 며칠 안으로 또 무슨 압박 카드를 꺼낼지 알 수 없다. 미·중·일 3국과의 관계가 정상 궤도에서 다 벗어났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한국 정부가 배제된 가운데 북한 문제에 대한 틀이 바뀌는 상황이다. 미국에선 통상 새 정부가 들어선 후 대외 정책이 결정되기까지 6개월 정도가 걸린다고 하지만 그 전에 미·중 간에 타협이든 충돌이든 큰 방향이 결정될 수 있다. 1월 말 만나는 트럼프와 아베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어떤 얘기를 나눌지도 알 수 없다.

 

김정은은 트럼프의 정책을 지켜보다 시기를 골라 전략적 도발에 나설 것이다. 미국 본토까지 핵을 실은 미사일을 날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까지 도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란 게 태영호 전 북한 공사의 말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스트롱맨들이 우리 머리 위에서 어떻게 공을 돌릴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 대선 주자들 중 어느 한 사람 이 상황의 심각성을 말하지 않는다. 여야정 안보협의체라도 만들자는 상투적 제안도 없다. 외교안보 문제조차 책임 없는 대중(大衆)의 뒤를 쫓아다니며 단세포적인 소리나 하고 있다.


10. 사회적 內戰 같은 전운 속 '조기 대선' 시동 건 민주당

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8일 당장 대선(大選) 경선 룰 준비를 시작하고 설(28일) 연휴 전까지 예비후보 등록을 받겠다고 선언했다. 대선 시기는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의 결론이 언제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렸지만 민주당은 선거 준비를 공식화한 것이다. 이제 다른 당의 움직임도 빨라질 것이다. 여러 면에서 이번 대선은 정상적으로 치러지기 쉽지 않다. 그래도 국민들은 선거가 법에 따라 차질 없이 치러지고 제대로 다음 정부가 출범하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런 바람에 반(反)하는 현상들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좌우를 막론하고 사생결단식 대결 심리가 팽배해 있다. 과거 대선도 감정 대립이 심했지만 이번처럼 적대감을 실력 행사로 표출하는 가운데 치러지는 선거는 드물다. 이에 편승하는 차원을 넘어 부추기는 정치인까지 있다. 선거가 순조롭게 진행되겠느냐는 불안감과 이렇게 해서 출범한 새 정부가 안착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7일 SNS를 통해 "지난 대선은 3·15 부정선거를 능가하는 부정선거"라며 개표(開票) 부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중앙선관위가 "반민주적 행위"라고 개탄했지만 이 시장은 다른 글에서 "세월호 참사는 제2의 광주 학살"이라 했다. 선거에 나선 정치인은 자극적인 주장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 해도 이 주장들은 너무한다. 문제는 이런 궤변과 선동이 먹히는 정치 상황이다. 우리 편이면 다 옳고 상대는 무조건 악(惡)이라는 패거리 의식이 만연한 탓이다. 친문(親文) 세력이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를 비판하는 의원들에게 '매국노' '기회주의자 ××' 같은 욕설·막말 문자와 '18원 후원금'으로 사이버 테러를 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헌재의 탄핵 심판을 기다리지 않고 주말마다 찬반 양측이 서울 여기저기서 실력 대결을 벌이고 있다. 헌재 앞 시위에 이어 특검 사무실 앞에서도 대형 스피커를 동원한 시위가 벌어졌다. 8일 경북 구미시청에서는 친박 수백 명이 문 전 대표 차량을 25분간 가로막고 '빨갱이' '간첩 잡아라'고 외쳤다. 7일 광화문 촛불 집회에서는 통일 운동 단체의 회원이라는 60대 승려가 '박근혜 체포'를 주장하며 분신(焚身)했다. 결코 '돌발 행동'들이 아니다. 앞으로 더한 일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 대선판은 휘발유가 엎질러져 있는 것과 같다. 기세등등한 친문 세력과 울분에 찬 친박(親朴) 세력 간 대립은 내전(內戰)을 방불케 할 정도로 골이 깊다. 중간 세력은 사분오열돼 있다. 잘못하면 이번 대선은 두고두고 상처가 되는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정치인들이 먼저 자중(自重)해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요요마, 정감있고 따뜻한 소통의 첼리스트

첼리스트 요요마(Yo-Yo Ma·馬友友)는 한국 음악팬과 꽤 친밀한 연주자다. 2017년에도 내한 계획이 잡혀 있다. 워낙 활발한 활동을 하는 첼리스트인 만큼 그의 음악적 특성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그럴 때 필자는 그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어보라고 얘기한다. 첼리스트라면 언젠가는 도달해야 할 최고봉의 경지로 꼽히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첼리스트의 스타일과 기량을 비교할 때 적합한 음악이다.

요요마의 무반주 첼로는 우아하면서도 편안하고 행복한 소리를 풀어낸다. 요요마가 따뜻한 대화와 소통의 선율로 풀어내는 데는 성격도 한몫한다. 그는 항상 친절하고 겸손하며 상냥한 인물이다. 이름 때문에 요요마를 일본인으로 아는 이들이 종종 있는데 그는 파리서 태어나 뉴욕서 자란 중국계 미국인이다. 현재 국적은 미국이며 부모님은 중국인이다. 요요마의 음악에는 ‘글로벌 DNA’가 담겨 있다는 평이 따라다니는 것은 그의 태생적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인맥도 넓어서 2002년 미국 워싱턴의 한 시상식에서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피아노)와 협연하는 파격 무대를 꾸렸으며 2009년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연주를 맡은 바 있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는 백악관 초청 연주를 전담하다시피 했으며 타계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 전 CEO와도 생전에 친분이 두터웠다. 데뷔 또한 8살 때 레너드 번스타인과의 무대가 TV로 중계되면서 본격적으로 스타덤에 올라 아이작 스턴과 카네기홀에서 함께 연주하는 등, 미국 전역에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후 1972년부터 말보로 음악제, 아스펜 음악제 등에 출연했고, 1977년부터는 유럽으로도 연주 활동의 폭을 넓혔다. 베를린 필, 빈 필 등 최고의 악단과 협연한 그는 1978년에는 잘츠부르크와 루체른 음악제에도 출연했다. 

요요마의 음악 행보 특징 중 또 하나의 중요한 줄기는 기존 클래식의 첼로 파트를 재해석하거나 여러 장르 음악에 첼로를 접목하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전적인 첼로 레퍼토리 외에 크로스오버나 현대음악에도 관심이 많다. 클로드 볼링과 함께했던 크로스오버 레코딩은 워낙 유명하며, 재즈계의 거장 스테판 그라펠리와 함께 콜 포터의 곡들을 연주한 음반은 미국 크로스오버 시장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탱고의 거장 피아졸라(Astor Piazzolla)의 탱고 음악을 연주한 음반도 같은 맥락이다. 문화 장벽을 넘어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음악 연구에 깊이 심취한 것이나 중국 전통음악과 고유 악기, 아프리카 칼라하리 부시먼 부족들의 음악과 같은 각양각색의 주제를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다. 

지금까지 요요마를 만든 가장 큰 힘은 앞에도 얘기했듯 낙천적인 성격과 긍정적인 태도다. 40여년 이상 연주 활동을 하면서 한 번도 대중에게 찡그린 얼굴을 보인 적이 없다. 나쁜 뉴스나 루머에 얽힌 적이 없다는 것 또한 놀라운 행보다. ‘따스한 심성’에 ‘남다른 인류애’까지 겸비한 진정한 멋쟁이. 요요마는 그런 첼리스트다.


2. [매경이코노미][고재윤의 스토리가 있는 와인] 반피 끼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피렌체 평화’ 상징하는 이태리 대표 와인

이른 새벽, 붉은 수탉의 힘찬 울음소리와 함께 정유년의 해가 밝았다. 

2017년 새해에 어울리는 와인으로 카스텔로 반피 끼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Banfi ChiantiClassico Riserva) 와인을 추천한다. 토스카나 지방, 그중에서도 이 와인이 생산되는 브루넬로 몬탈치노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다. 

일찍이 ‘와인 스펙테이터’는 “수많은 브루넬로 몬탈치노 와인이 있지만, 카스텔로 반피 브랜드는 오랫동안 ‘전 세계 최고의 브루넬로 몬탈치노 와인’으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특히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 중 토양과 기후 조건이 가장 좋은 곳을 끼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라고 한다. 여기서 또 리제르바(Riserva)가 붙으면 오크 숙성을 포함해 2년 이상 숙성한 와인으로, 끼안티 등급 중에서 가장 높은 품질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반피 끼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는 이탈리아의 최고 와인 중에서도 최고인 셈이다.


이 와인은 병목에 검은 수탉 문양(Galo Nero)의 엠블럼을 부착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연원은 13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피렌체와 시에나의 성주는 군사적 요충지인 끼안티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오랜 전쟁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속출하자 양측은 인명 피해 없이 전쟁을 끝내자고 합의한다. 두 도시는 휴전을 하면서 특정 날짜를 정하고, 각자가 선발한 수탉이 울면 기병이 달려가 서로 만나는 지점을 국경으로 하기로 했다.


피렌체는 자신들의 검은 수탉을 하루 종일 굶겨 시에나에서 매일 배불리 먹인 흰 수탉보다 먼저 울게 했다. 그 결과 시에나 지역의 많은 영토를 차지하게 됐고, 평화를 다시 찾게 해준 검은 수탉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와인을 만들었다.

반피(Banfi)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존 마리아니(John Mariani)가 1919년 미국에 설립한 와인 수입회사다. 이탈리아를 비롯해 전 세계 유명한 와인을 수입해 미국에 유통시켰다. 반피가 특히 주목한 와인은 몬탈치노에서 생산하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 레드 와인이었다. 이 와인은 1970년대 미국에서 인기가 많았던 명품 와인이지만 워낙 작은 마을에서 소규모 와이너리가 생산하다 보니 공급이 한계에 부딪혔다. 

이에 반피는 1978년 몬탈치노에 와이너리를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이탈리아 출신이지만 이방인인 반피가 몬탈치노에 들어와 중장비를 동원해 포도밭을 일구고 와이너리를 짓자 몬탈치노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그러나 39년이 지난 지금 반피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를 세계적인 와인으로 끌어올린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몬탈치노 와이너리들은 낙후된 시설에서 와인을 만들었지만, 반피는 이탈리아의 정통 방식에 미국의 현대적인 양조 기술을 접목했다. 또 몬탈치노 지역 테루아에 적합한 산지오베제 포도 품종을 개량해 와인 품질을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 반피의 대표 제품인 반피 끼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는 이렇게 세상에 나오게 됐다. 

휴전 후 수탉 울음으로 국경 정하고 평화 이어져

이 와인은 산지오베제 포도 품종으로, 8~10일간 포도껍질과의 접촉을 거치는 전통적인 양조 방식과 최첨단 현대적인 양조 기술을 접목해 만들며, 4년간 숙성시킨 후 출하하고 있다. 산지오베제 특유의 적절한 산도와 짜임새 있고 우아한 구조감이 입안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루비체리 빛깔에 체리, 자두, 바이올렛, 산딸기 향이 남기는 긴 여운이 돋보인다. 

음식과의 조화는 쇠고기 갈비찜, 양고기 스테이크, 양념한 돼지갈비 요리와 어울린다. 가격은 3만2000원. 정유년 새해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끼안티 와인처럼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국민의 얼굴이 환해지는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3. [조선일보][일사일언] 새벽 출국장의 오케스트라

지난달 말 연주 여행을 다니면서 거의 매일 비행기를 탔다. 날마다 이동해서 연주하려면 전세기밖에 답이 없을 때도 있다. 어느 날 새벽에는 빈에서 출발해서 슈투트가르트 가는 비행기를 타러 갔다. 항공사 스크린에 '런던 필하모닉―슈투트가르트'라고 쓰인 곳을 찾아서 줄을 섰는데 바로 옆 스크린에는 '빈 필하모닉―파리'라고 쓰여 있었다. 그들도 아침 전세기를 타고 연주하러 가는 중이었다.

 

그쪽 줄에는 아무도 없길래 우리보다 늦게 출발하나 보다 했는데 웬걸, 출국장에 들어가 보니 게이트도 우리 바로 옆이었고 이미 수속이 다 끝나서 다들 비행기를 타려는 참이었다. 우리 플루트 수석이 마침 같은 악기 하는 동료를 만나서 얼싸안고 반가워하는 걸 보고 나도 오랫동안 못 본 친구를 찾아봤다. 둘러보니 악기를 메고 큰 가방을 들고, 아이와 통화를 하는지 전화에만 정신이 팔린 젊은 여자도 있었고, 물 한 병씩을 사 들고 전날 밤의 피곤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하품하는 중년 남자도 여럿 있었다.


빈 필은 음악 애호가 사이에선 꿈의 오케스트라로 통한다. 하지만 새벽 출국장에서 만난 빈 필 단원에게서 온 세계에 중계되는 신년 음악회의 화려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밤늦게까지 몸을 써서 일하며, 악기뿐 아니라 자기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사람들만 있었다. '빈 필하모닉―파리'를 봤을 때만 해도 우리도 슈투트가르트 말고 파리 가자고 실없는 소리를 했던 나는 '오케스트라 단원이 사는 건 다 똑같구나' 새삼 깨달았다.

 

휼륭한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려면 악기를 배우는 데 오랜 세월을 바치고 피 말리는 오디션을 거치며 실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정작 어딘가에 소속이 되면 그때부터는 자기를 버리고 전체의 하모니를 위해 큰 그림의 일부로 존재하면서 맡은 부분에서는 매 순간 완벽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오늘 괜찮은 베토벤 교향곡이라든가 말러 교향곡을 들을 수 있는 건 이렇게 음악에 삶을 바치는 그들 덕분이다.


4. [매일신문][매일춘추] 따로 또 같이 

해마다 대입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수시와 정시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자녀의 성적이 부모의 성적으로 인식되는 현상은 자식을 위해 과한 희생값을 치르는 부모들에게서 나타난다. 전국을 강타하던 수능 한파는 주춤해졌지만 그들에게 이 시간은 혹독한 칼바람보다 처절하다.


EBS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P씨는 기러기 아빠 13년 차다. 기러기 아빠로 산 배경에는 자녀의 미래를 위한다는 거창한 명분이 있었지만, 그 뒤에는 솔로의 자유에 대한 갈망도 있었다. 이것이 화근인가. 어느새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하고 결국 돌아온 건 이혼 서류와 남 같은 아이들이었다.


모처럼 딸과 함께 여행을 갔다. 흔들다리를 건너다 장난을 치는 P씨에게 퉁명스럽게 던지는 딸의 말. “걱정하는 척하지 마요. 짜증 나.” 강산이 바뀌는 시간을 넘어 만난 딸은 “말로는 우리 딸이라고 하지만 친해질 수 없어요”라며 벽을 친다. 높이를 가늠키 힘든 벽 앞에서 눈물 젖는 P씨는 억울하다.



한국인은 대가족 속 개인으로 태어나 한솥밥을 먹는 식구(食口) 형상을 삶의 표본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유전자 속에서 나를 찾고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대단히 이기적으로 치부된다. 특히 바깥일에 골몰하느라 대화마저 뜸해진 가장(家長), 세대 차이로 독립하는 자녀들 사이에서 빈 둥지만 남은 가정을 지키는 주부들에겐 더욱 그러하다. 심리적, 시간적 공허는 늦둥이 출산이나 알코올 중독, SNS 중독 같은 관계 중독으로 이어지지만 해결은 어렵다.



사람은 관계 맺기가 허술하면 불안해지고, 너무 치밀하면 억압과 희생으로 자신을 잃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안에 네가 있고 네 안에 내가 있는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건강한 관계 간의 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관계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 가고, 존재로서 ‘함께 있는’ 것이다. 함께할 누군가와 언젠가 같이할 거라는 믿음으로 위안을 삼고 혼자 견디는 힘, 고독력(孤獨力)을 키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자주, 더 길게 관계 속에서 종종 길을 잃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사적 공간을 보장하고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셰어하우스가 인기다. 출판의 경우도 여럿이 함께하는 공저 출판이 부담이 적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아이디어를 모으고 분량은 나누면 출판의 꿈이 이루어진다. 이때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는 ‘따로’의 배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따로’가 없으면 나를 찾을 수 없고, ‘같이’가 없는 분화는 연결이 사라진다. ‘따로’와 ‘같이’의 시소를 잘 타야 관계가 즐겁다. 진정한 자유는 서로의 개성을 살려주면서 자신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5. [한국경제][천자 칼럼] 장래 희망

어릴 적 싫었던 것 중 하나가 장래희망을 써내는 일이었다. 뭐가 좋은지, 뭘 잘할지도 모른 채 막연히 과학자라고 적었다. 서슴없이 대통령, 장군을 써내는 친구들에 비해 좀 소심한 느낌도 들었다. 그 뒤로 장래희망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지금 글 쓰는 직업에 대체로 만족한다.

초등학교 이하 프리틴(preteen)은 생각이 여물 나이가 아니다.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지위·권력이 높거나 가까운 사람에게서 찾는다. 힘이 센 대통령, 인기 높은 연예인 운동선수, 자주 접하는 교사 의사, 멋져 보이는 경찰관 소방관 등 …. 그러나 중고생쯤 되면 부모 희망사항이 개입한다. 교사 공무원은 청소년의 꿈이라기보다 부모의 염원에 가깝다.

사회적 분위기도 어린이 장래희망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포브스지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남자 어린이 희망직업(dream job)은 운동선수, 파일럿, 과학자, 변호사, 우주인 순이다. 우주항공의 선도국가답다. 중국 어린이는 CEO를 첫손에 꼽는다. 국가적으로 창업을 권장하고 마윈 등 기업가 활동이 왕성한 분위기를 반영한다.

최근 일본 다이이치생명이 조사한 일본 어린이 희망직업을 보면 남아는 7년째 축구선수가 1위지만 학자·박사가 2위에 올라 있다. 노벨 과학상 연속 수상의 영향이다. 이어 경찰, 야구선수, 의사, 음식점 주인 순이다. 여아는 음식점 주인이 20년째 1위란다. ‘심야식당’, ‘카모메 식당’ 같은 작품을 보면 셰프나 파티셰가 멋져 보일 만도 하다. 유치원교사, 교사, 의사·간호사, 디자이너가 뒤를 잇는다.

한국 어린이는 어떨까. 1980년대 과학자, 90년대 교수, 외환위기 이후 의사 등 전문직이 인기였다. 지난해 교육부 장래희망 조사에 따르면 교사, 운동선수, 의사, 요리사, 경찰, 법조인, 가수 등의 순이다. 2012년엔 운동선수가 1위, 연예인이 4위였다. 최근 ‘먹방’ 영향으로 요리사가 껑충 뛰었다.

물론 꿈은 클수록 좋다. 어린이 장래희망이 자라면서 열정, 능력, 경력의 교집합과 일치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한 분야에 몰두하는 오타쿠 기질을 장래직업과 연관지어보는 것도 좋다.

하지만 한국 부모들은 무엇 또는 누구처럼 되라고만 할 뿐 어떻게 될 것인가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오바마처럼 되고, 에디슨처럼 되길 바란다면 오바마가 성장기에 겪은 흑인으로서의 정체성 고민, 어린 에디슨이 낙제생으로 느낀 무력감을 어떻게 이겨냈는지도 함께 성찰하게 해야 마땅하다. 아이들은 부모가 키우고 싶은 대로 크지 않는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