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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부정청탁금지법은 성역이 아니다
설 명절을 앞두고 부정청탁금지법 시행령에 규정된 식사·선물·경조사비 허용 기준을 조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식사비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까지 허용하는 현행 가액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져 소비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게 그 배경이다. 가뜩이나 경기가 침체된 터에 이 법이 서민경제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움직임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이에 직접 관심을 나타냈을 만큼 사회적인 논란이 뜨겁다. 황 권한대행은 지난주 열린 경제부처 업무보고 자리에서 관련 부처들에 대해 이 법의 시행령 개정을 포함한 제도개선 방안 검토를 지시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는다는 기본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찾아보자는 취지다.
이러한 논의는 지난해 9월 28일 부정청탁금지법이 전면 시행에 들어가면서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식사비 조항을 현실화하고 명절 선물에 대해서는 예외를 적용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경조사비와 화훼를 합쳐 10만원 상한을 둔 규정도 분리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법의 영향을 받고 있는 농림부와 해수부, 산업부, 중기청 등 관련부처들이 여러 방안을 놓고 국회와 입장을 조율하는 중이라고 하니 조만간 타당한 결론이 도출될 것으로 기대한다.
우려되는 것은 자칫 정부 내에서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와의 갈등이 야기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권익위원회는 황 권한대행의 공식 지시에도 불구하고 “법이나 시행령 개정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가 “탄력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입장으로 바뀌긴 했지만 내부 분위기가 탐탁지 않은 것으로 비쳐진다. 법이 시행된 지 불과 100여일 만에 외부의 개선 요구가 거센 데 대해 그리 달갑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법 시행 초기부터 현장 사안에 대한 해석을 놓고 세 차례나 매뉴얼을 수정했을 만큼 법 적용이 애매모호한 것도 사실이다. 식사비 3만원 규정만 해도 14년 전인 2003년에 정해진 지침이다. 어떠한 법률이나 제도도 시행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난다면 고치는 것이 올바른 처사다. 정부 부처가 함께 머리를 모아 현명한 대책을 내놓기를 바란다.
2. ‘불가역적 합의’를 깬 건 일본이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또다시 억지를 쓰며 한·일관계를 벼랑으로 몰아넣고 있다. 일본은 우리 정부를 굴복시키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필두로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발단은 한 시민단체가 작년 말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에 설치한 소녀상이다. 일본 정부는 항의 표시로 어제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와 부산총영사를 소환했다. ‘일시 귀국’이라지만 양국의 통화스와프 협상도 일방적으로 중단한 것을 보면 작심하고 우리 정부를 길들이겠다는 속셈이 역력하다.
앞서 아베 총리는 지난주 바이든 미국 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의 움직임을 우려한다”는 지지성 발언을 끌어낸 뒤 “정권이 바뀌어도 합의는 이행돼야 한다”며 우리 차기 정권까지 압박하겠다고 나섰다. 유럽을 순방 중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도 가는 곳마다 “위안부 합의는 불가역적”이라고 강조하며 국제무대에서 피해자를 자처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목불인견이다.
재작년 말 양국이 체결한 ‘12·28 합의’ 어디에도 소녀상 철거나 추가 설치 금지를 못 박은 규정은 없다. 일본군의 관여로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데 대해 일본 정부가 책임을 통감하고 일본 정부 예산으로 피해자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를 취한다는 게 핵심이다. 민간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설치한 부산 소녀상에 대해 일본이 왈가왈부할 계제가 못 된다는 얘기다.
정작 ‘불가역적 합의’를 뒤집은 것은 우리가 아니라 일본이다. 아베 총리는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합의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오히려 “사죄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속내를 뻔뻔하게 드러냈고 이후에도 같은 입장을 되풀이하며 합의의 진정성을 의심케 했다. 일본은 ‘불가역’ 운운하며 우리 정부를 압박하기에 앞서 양국 합의를 존중하려는 진정성이 추호라도 있는지부터 스스로 반문할 일이다.
우리가 피해자 입장인데다 인륜이란 보편적 관점에서 일본에 압도적 우위에 있으면서도 국제무대에서 밀린다면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최순실 사태’로 국정이 마비되다시피 했다지만 이런 때일수록 국익 차원에서 단호하게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위안부 문제에서까지 밀려서는 한국 외교는 끝장이다.
[매일신문]
3. 경제 발목 잡는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속도 내라
지역 중소기업 중 경영 부실로 어려움을 겪는 한계기업 비중이 매년 늘고 있다는 통계는 큰 충격이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사회적으로 긴급 현안이 된 가운데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의 증가는 성장과 일자리 등 여러 방면에서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어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역의 한계기업 비중은 국내 전체 평균보다 두 배가량 높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국내 전체 산업에서 한계기업의 비중은 2011년 9.4%에서 2015년 12.7%로 크게 높아졌다. 한계기업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서비스 업종의 경우 절반이 넘는 56.0%가 부실한 것으로 판명났다. 제조업종도 34.68%가 부실로 허덕이고 있고, 건설업도 2011년 8.7%이던 한계기업 비중이 2015년에는 11.3%로 악화됐다.
무엇보다 지역 내 한계기업의 현실은 매우 심각하다. 대구경북 중소기업 중 기업 활동을 꾸려나가기가 벅찬 한계기업의 비중이 2009년 12.2%에서 2012년 15.3%, 2013년은 24.9%로 급증했다. 지역 기업 네 곳 중 한 곳꼴로 경영 부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소생 가능성이 희박한 기업이 속출할 전망이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한계기업은 우리나라 전체 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고용 불안 등 후폭풍이 만만찮다는 점에서 과감한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정부가 지난해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나서고는 있으나 여태껏 별다른 진척이 없다. 게다가 탄핵 정국의 혼란으로 경제팀 공백이 이어지면서 기획재정부와 금융 당국도 사실상 구조개혁에 손을 놓는 등 정책 의지마저 불투명하다.
좀비기업을 이대로 계속 방치할 경우 그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계속 시간을 허비할 경우 국가 전체가 위기로 내몰릴 수 있다. 일각에서는 재기를 위해 혼신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제도적 지원책에 기대어 상황을 모면하려는 움직임마저 일고 있다. 당장 옥석을 가리지 않는다면 세금은 세금대로 들어가고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없다.
4. 힘으로 문재인 차량 막은 시위, 진정한 보수답지 않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탄 차량이 8일 오후 구미시청에서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떠나려다 시위대에 막혀 움직이지 못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단체 회원 등 200여 명의 시위 때문이다. 이들은 문 전 대표 일행이 탄 차량 앞에 앉거나 드러누워 차량 진행을 방해했다. 문 전 대표 일행은 30분간 꼼짝 못했다. 진정한 보수다운 모습은커녕 폭력 행사와 같아 우려스럽다.
시위대 일부는 “문재인은 빨갱이”라고 외치거나 욕설도 했다. 시위 현장에서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강제로 막을 방법도 마땅하지 않고 막을 수도 없다. 법 테두리를 지키면 누구에게나 표현의 자유는 보장된다. 하지만 물리력을 앞세운 폭력 시위는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부터 시작돼 새해까지 계속된 최순실 국정 농단 규탄 촛불 민심이 나라 안팎에서 평가받는 까닭은 평화적 시위를 이어가서다.
이번 차량 방해와 같은 시위를 걱정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런 일은 바로 보수 세력에 대한 그릇된 평가와 역효과를 가져온다. 자신들과 다른 의견인 진영의 정치인과 그를 지지하는 정치 세력에 마음이 상할 수는 있다. 그래도 민주사회는 정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로 인해 더욱 성숙된 정치 문화를 가꾸어 나가는 공동체 삶터이다. 자신이 지켜야 할 가치는 물론 다른 정치 성향조차 아울러야 진정한 보수이다.
특히 우리 지역민은 지난해 정부의 성주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 시위와 시위 이후 빚어진 후유증과 갈등을 지켜봤다. 폭력이 난무한 그릇된 시위는 누구에게도 결코 도움되지 않는다는 뼈아픈 교훈만 남겼을 뿐이었다. 이번 구미의 일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면 이는 또 다른 갈등의 악순환을 낳거나 지역 이미지를 훼손할지언정 지역사회에는 어떤 이익도 없음이 자명하다.
경북은 오랫동안 보수의 건전한 역할을 견지해 오기도 한 지역이다. 정치적 지지와 성향의 차이를 빌미로 폭력과 물리력 행사를 멀리한 곳인 셈이다. 이번 구미의 문 전 대표 차량 진행 방해 일로 경북은 다양성을 품은 역사적 고장이라는 점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랄 따름이다.
5. 포항 지곡동 롯데마트 부지 ‘주상복합 꼼수’ 통할까
롯데그룹(이하 롯데)이 포스코로부터 헐값에 사들인 포항 지곡동 롯데마트 부지에 주상복합건물을 지어 막대한 시세 차익을 거두려 한다는 소문이 포항지역에서 파다하다. 롯데는 이곳 땅을 포스코로부터 사들일 당시 5층 이상 건물을 짓지 않기로 약속한 바 있는데, 이를 파기하고 20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 신축을 추진할 공산이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이 지역에서의 난개발 우려는 물론이고 롯데의 기업 윤리에 대한 비난도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2만여㎡ 크기의 노른자위 땅인 지곡동 롯데마트 부지는 2014년 말 포스코가 현금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롯데에 매각한 곳이다. 그런데 당시 포스코는 이 땅을 시세의 30% 선에 팔았다. 이곳에서 난개발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지역 여론 때문이었다. 대신 포스코는 ‘5층 이상 건물을 지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포스코는 롯데가 약속을 어길 시 50억원의 위약금을 내야 한다는 단서까지 달았다.
포스코는 굴지 재벌의 도덕성을 믿었겠지만 순진한 기대였다. 롯데는 이 땅을 곧바로 자산운영사에 넘기는 방법으로 소유권에서 한 발 빼는 모양새를 만들었다. 장부상으로 현재 이 땅은 롯데 소유가 아니지만 실사검증작업 등을 롯데가 추진한 점 등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롯데가 위약금 50억원을 물더라도 주상복합건물을 지어 막대한 시세 차익을 거두겠다는 복안을 타진한다는 소문이 나도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주상복합건물 신축설은 헛소문”이라며 부인하고 있다. 그런데도 의혹이 숙지지 않는 것은 롯데가 포항시 북구 두호동 롯데마트 입점 때 다른 회사명을 내거는 방법으로 주민 반발을 피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포항시는 롯데의 20층 주상복합건물 신축을 허용치 않겠다는 입장이다. 포항시가 최근 세운 지구단위계획에 따르면 롯데마트 부지에는 7층 이하 상가만 가능하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포항시는 지구단지계획을 반드시 통과시킴으로써 난개발 방지 의지를 보여야 한다. 롯데 역시 재벌이 꼼수를 쓴다는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주상복합건물을 짓지 않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
[서울신문]
6. ‘블랙리스트’ 새 의혹에도 끝내 부인한 조 장관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를 별도 관리하는 ‘블랙리스트’ 의혹은 특검이 이미 사실로 확인했다. 이번에는 입에 올리기도 께름칙한 이른바 ‘적군리스트’ 의혹이 또 불거졌다. 문명천지에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통탄할 리스트를 만들었다는 말인지 기가 찰 노릇이다.
특검과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설령 여당 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라 하더라도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면 적군리스트에 포함됐다. 리스트가 주무 부처인 문체부 공무원들까지 쥐락펴락한 것은 물론이다. 블랙리스트처럼 이 역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문건 작업을 총괄했고,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인 조윤선 문체부 장관이 실무를 맡은 의혹이 제기됐다.
모두 사실이라면 현 정권은 정부 비판의 ‘비’ 자만 꺼내도 백방으로 입에 재갈을 물리려 했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비판을 수용해야 정책이 앞으로 나아가며, 작용에는 반작용이 따른다는 순리마저 틀어막은 셈이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더군다나 억압 대상이 유연한 사고와 비판 정신이 생명줄인 문화예술인들이다. 이래 놓고 어떻게 문화융성이라고 국정 간판을 걸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특검은 김 전 실장이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 내용을 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에게 직권남용 혐의가 추가될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블랙리스트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했던 박 대통령의 말은 또 거짓인 셈이다.
조 장관은 문건을 본 적도 없다고 하지만, 문체부 차관 등에게 블랙리스트 입막음을 하려 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관련 피해자들을 회유한 흔적이 특검에 꼬리를 잡혔다. 그런데도 어제 마지막 청문회에서까지 모르쇠로만 얼버무린 조 장관은 비선 권력 놀음에 복마전 소굴로 전락한 문체부를 추스를 수 있는 자격이 없어 보인다.
특검은 조만간 조 장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하겠다는 방침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기가 힘들어진 상황이다. 조 장관은 어제 블랙리스트로 국가 지원에서 배제된 예술인들에게 주무 부처의 장관으로서 사과했다. 이제 와서 참 한가한 이야기다.
문화융성이란 이름 아래 퍼부은 예산이 수천억원이다. 누가 혈세를 권력 맘대로 국민 협박에 쓰라고 허락했나. 돈줄을 틀어쥐고 정권에 비판적 인사들을 길들인 저열한 행태는 다시 반복되지 않게 잔뿌리도 남김없이 뽑아내야 한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관련자들을 단죄해야 한다.
7. 中, 언제든 ICBM 쏘겠다는 北 묵과할 텐가
북한은 그제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최고 수뇌부가 결심하는 임의의 시각과 장소에서 발사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33번째 생일을 맞아 또다시 도발적인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은 곧바로 “우리 동맹을 위협한다면 격추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해 벽두부터 중국과 일본 탓에 가뜩이나 힘겨운 한국의 외교에 북한까지 끼어든 형국이다. 일본은 어제 부산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이유로 한·일 양국의 통화 스와프 협상을 중단하더니 대사와 총영사를 보란 듯이 귀국시켰다.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 배치 결정을 빌미로 일찍이 전방위적인 압박과 보복에 나선 가운데 여론전도 본격화했다. 탄핵 정국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북한이 ICBM과 관련된 발언의 수위를 높이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은 지난 1일 육성으로 발표한 신년사에서 “ICBM 시험발사 준비 사업이 마감 단계”라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는 이튿날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의 ICBM 개발을 억제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표명했다. 북한의 외무성 담화는 결과적으로 트럼프 당선자에 대한 반격인 셈이다.
북한이 ‘임의의 시각과 장소’라고 강조한 만큼 이동식 ICBM의 발사 가능성을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에 맞춰 핵과 미사일 기술을 인정받기 위해 경거망동을 마다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해 1월 6일 4차 핵실험을 기습적으로 강행했다.
북한의 ICBM 발사 위협은 또 하나의 국제적 도발이다. 북한을 사사건건 감싸 온 중국의 외교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의 사드와 직결되는 까닭에 더욱 그렇다. 사드 배치 결정은 무엇보다 북핵 및 미사일에 대한 방어적 조치다. 북한이 ICBM으로 한국과 미국은 물론 세계를 조롱하는 판에 중국이 한국의 사드를 반대하고 철회를 강요하는 행태는 내정간섭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한·중 군사협력 및 훈련을 전면 중단한 데 이어 관영매체를 동원해 ‘화장품 불매’까지 경고하고 나선 처사는 옹졸하게 비칠 뿐이다.
중국은 한국이 안보 차원에 결정한 사드 배치를 둘러싼 일체의 책략을 삼가야 한다. 핵과 함께 ICBM발사 등을 포기하도록 북한을 설득하는 게 우선이다. 오죽하면 트럼프 당선자가 “미국과의 무역으로 엄청난 돈과 부를 빼가고 있지만 북한(문제)을 돕지 않으려 한다”고 비꼬았는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사드는 동맹국인 미국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중국의 이간질에 휘말리면 한·미 동맹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때문에 대선 주자들이 외교안보 문제만이라도 당리당략을 떠나 초당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누가 뭐라 해도 외교의 철칙은 국익이다.
[세계일보]
8. 미·중 환율전쟁에 새우 등 터지는 신세 되지 말아야
중국 위안화 환율이 심상치 않다. 미국 금리 인상 등 긴축정책으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는 데다 내주 출범하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통상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관측이 위안화 약세를 부추긴다. 중국 당국은 위안화 약세가 외국인 투자자들의 증시 이탈과 주가 폭락을 야기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1년 전 위안화 평가절하가 국제금융시장을 질식시킨 ‘중국발 악몽’이 재현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어제 기준환율을 전 거래일보다 0.87% 올린 달러당 6.9262위안으로 고시했다. 위안화 기준환율이 올랐다는 것은 위안화 가치가 그만큼 절하됐다는 뜻이다. 인민은행은 지난 6일 위안화 가치를 0.97% 끌어올렸다. 거래일 기준으로 불과 하루 만에 큰 폭의 절하로 돌아선 것이다.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 환율이다.
어제 절하 결정은 중국 당국이 시장에 굴복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최근 위안화 약세가 지속되자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풀어 방어에 나섰다. 그 여파로 한때 4조달러에 육박하던 외환보유액이 지난해 말 3조100억달러까지 급감했다. 당국의 방어조치에도 시장에서 환율이 정반대로 올라가자 결국 어제 환율을 인상하는 비상수단을 동원했다. 그동안 세계 최대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기반으로 ‘환율전쟁’을 주도했던 중국의 위상이 바뀌고 있는 셈이다.
국내 금융시장은 즉각 경계태세에 돌입했다. 국제금융센터는 어제 보고서에서 “중국이 외환보유액 방어와 환율 안정을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여전하다”며 “금융불안 재연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 경제 불안은 한국 등 신흥국 전체의 불안으로 확산될 수 있다. 이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어제 달러당 1208.3원으로 치솟았다. 원화 환율이 상승세를 지속하면 물가 상승을 초래해 금융·실물경제 비용을 늘리는 데다 외국인 자금이 국내 증시에서 빠져나갈 가능성도 높아진다. ‘외환 방파제’도 충분치 않다.
작년 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3711억달러로 6개월 내 최저수준이다. 주요국과의 통화스와프는 대부분 종료된 데다 일본과의 재개 협상은 중단됐고, 중국과의 연장 협상 전망도 불투명하다. 이제 정부 당국이 전면에 나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할 때다. 미·중 간 환율전쟁의 유탄을 맞는 상황만은 피해야 한다.
9. 불출석·위증으로 헛바퀴 도는 청문회는 이제 그만
마지막 ‘최순실 청문회’도 결국 맹탕으로 끝났다.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특위가 어제 7차 청문회를 실시했으나 증인 20명 중 16명이 불출석했다.
청와대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 10명은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고, 안봉근·이재만 전 비서관 등 몇 명은 아예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특위가 불출석 증인 14명에 대한 동행명령장을 발부하자 그제서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2명은 오후 청문회에 출석했다. 7차 청문회는 이들을 포함한 증인 4명만 나와 맥없이 진행됐다.
지난해 12월6일부터 최순실 청문회가 시작될 때 대다수 국민은 국정농단의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청문회가 거듭될수록 진상 규명은커녕 의혹만 커졌다. ‘무늬만 청문회’가 지속된 것은 국정농단의 몸통인 최순실씨 등 핵심 증인이 빠진 탓이 크다.
국조특위는 최씨와 청와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이 두 차례나 출석을 거부하자 지난해 12월26일 수감 중인 구치소로 찾아가 ‘수감동 청문회’를 벌였다. 굳이 청문회란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하다. 최씨 등을 불러놓고 비공개 면담을 했으니 이런 코미디가 없다.
더 한심한 것은 청문위원들의 준비 태만이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증인들의 방패를 뚫을 송곳 질문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구체적 증거를 토대로 날카로운 질의를 하기보다는 증인을 다그치거나 인신 모욕성 핀잔만 주는 데 급급했다. 우 전 수석과 조여옥 전 대통령경호실 간호장교만 출석한 5차 청문회가 대표적이다. 청문위원의 수준 낮은 질의가 되풀이되면서 증인이 오히려 불쌍해 보일 정도였다.
미국 청문회는 정치 공세보다 현안 해결에 중점을 두는 실무형 문화가 정착돼 있다. 증인을 최소한으로 부르고 증언 요지를 서면으로 미리 제출받아 중복 질문을 피한다.
청문회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특단의 개선책이 절실하다. 불출석 증인을 강제소환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김성태 특위 위원장은 “고발을 통해 불출석 증인에게 불출석의 죄를, 동행명령을 거절한 증인은 국회 모욕죄에 대한 처벌을 반드시 받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위증 증인은 처벌받는 선례도 만들어야 한다. 이미 관련 내용의 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그동안 청문회 때마다 제도 개선 움직임이 일다가 흐지부지됐다. 이번에는 꼭 실행돼야 한다.
10. 포퓰리즘 안보관으로 북 도발 막을 수 있나김
관진 국가안보실장이 그제 황급히 미국으로 출국했다. 김 실장은 방미 목적이 대북공조 문제 협의라고 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 측 인사 가운데 “누구를 만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 안보상황이 왜 위기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준비사업이 마감단계”라고 위협하자 트럼프 당선자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받아쳤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그제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임의의 시각, 임의의 장소에서 발사될 것”이라고 예고했고,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우리나 우리 동맹을 위협한다면 격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미 간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국제사회의 견고한 제재이다. 대북 압박이 결실을 거두려면 중국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그러나 최근의 정세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미·중 간에 신 냉전기류가 형성되고 있고, 중국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을 이유로 한국에게 전방위적인 보복을 가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이 대북 제재에 적극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제재의 뒷문을 열어놓고 시늉에 그칠 공산이 크다.
중국의 비협조로 북핵의 평화적 해결이 어렵다면 그다음 선택은 뻔하다.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우리로서는 한·미·일 3각 동맹체제를 견고히 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3국 공조는 최근 금이 가는 소리가 역력하다. 위안부 소녀상 문제로 한·일 갈등이 깊어지고 있고 혈맹인 미국도 예전 같지 않다. 오는 20일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는 선거기간 중에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시사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거론했다. ‘트럼프 리스크’가 대한민국 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임은 불 보듯 자명하다.
한반도 주변 상황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인데도 한국 정부는 국정농단 사태로 길을 잃고 있다. 정치권이라도 초당적으로 힘을 모아 헤쳐가야 하지만 제 발밑의 이익만 쳐다본다. 국민 정서에 편승한 사드 배치·위안부 합의 철회 주장 등이 그것이다.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중국의 장단에 맞춰 춤이나 추는 것은 수권정당의 자세가 아니다. “집권하면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가겠다”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암담하다. 나라를 책임지겠다는 지도급 인사들이 안보를 정략적으로 농단한다는 얘기를 들어서야 되겠는가.
주요신문칼럼
1. [조선일보][일사일언] 떠나간 여인을 위하여!
"바로 이 자리예요." 마흔일곱 살 노총각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여기서 사랑한다고 고백했는데…. 미안하다 그러더라고요." 일본 후쿠오카의 자그마한 선술집에 앉아 있던 우리는 저마다의 탄성으로 그의 말에 응답했다. "저런, 쯧쯧쯧." "와, 진짜 허무했겠다. 일본까지 와서 고백했는데."
일본에 공연하러 왔다가 그곳 여배우에게 반한 그 친구는 한국에 돌아와서 일본말을 열심히 배웠다고 했다. 벼락 맞듯 사랑하게 된 여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 "어쩐지. 일본어 솜씨가 귀동냥으로 쌓인 실력은 아닌 것 같더라니." 그렇게 사랑의 힘으로 갈고닦아 놓은 일본어 실력 덕분에 편안하게 일본에서의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던 나는 내심 얼굴도 모르는 일본 여배우에게 감사하며 쪼르르 맥주 한 잔을 따라 그 친구에게 건넸다.
"울었어?" 옆에 있던 일행이 내 질문에 까르르 웃음을 쏟아냈다. "뭐야? 언니 유치하게." "울진 않고…. 술을 엄청 많이 마셨어요. 몇날 며칠 술만 퍼마시는데 다른 일본 배우들이 그러더라고요. 오히려 잘됐다고. 그 여잔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라고 그러더라고요." "진짜? 그 여자 나쁜 사람이래?" 울었느냐는 내 질문에 유치하다고 까르르 웃던 사람들의 관심은 단숨에 그 여자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으로 옮겨갔다. 그 여자가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게, 한때는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던 사람에게 과연 위로가 될까?
나는 괜스레 가지런하게 놓인 명란을 젓가락으로 헤집으며 이제 막 실연의 아픔에서 허우적대며 빠져나오려 기를 쓰는 친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그 여자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내게 별 의미가 없어요. 그 여자 덕분에 공부하기 싫어하는 내가 단시간에 일본어를 마스터했고요. 없는 돈에 어떻게든 일본을 오가려고 일을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사랑이 내가 하지 못하던, 하지 않던 일들을 하게 만드는 기적을 만들어 주더라고요."
우리는 다소곳하게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건배! 한때 너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너를 수퍼맨으로 만들어주었던 떠나간 그 여인을 위하여!
2. [매일신문][매일춘추] 유머
‘아이스 브레이크’(Ice break)라는 말이 있다. 어원은 사람들 사이의 냉랭하게 얼어 있는 관계를 부숴 따뜻한 분위기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나 공식적인 행사에서 모두들 굳어 있어 긴장감마저 돌 때가 많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에 능숙한 유능한 리더는 이런 긴장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유머로 말을 시작한다.
특히 재미있는 유머나 조크를 할 때 사람들은 파안대소하면서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문화 속에는 아직도 웃음을 억제하는 관행이 남아 있다. 특히 기업이나 공직사회에서는 유머나 조크에 대하여 보수적인 면이 많은 것 같다. 웃음이 많으면 가벼운 사람이라는 이미지에 너무 오랫동안 갇혀 있어서, 공식적인 곳에서는 잘 웃지 않고 표정이 굳어 있어야 진지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지위가 낮은 사람이 먼저 유머나 조크를 한다는 것은 더욱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유명한 심리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유머는 유아기의 놀이적 마음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어른들의 해방감”이라고 정의했다. 대화에서 때로는 진지함보다는 지각 있는 익살과 은유가 더욱 효과적이다. 유머는 하나의 감성 커뮤니케이션이다. 유머는 이론이 아닌 즉각적인 경험으로 인간 지각의 변화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감성을 자극하면 상대방도 마음의 경계를 풀어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질 수 있다.
유머의 대표적인 예는 광고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광고에서 유머의 사용이 주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유머는 다른 광고 소재보다 주의 집중에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현대와 같이 복잡한 사회관계에서 유머는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데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첫 만남, 첫인상에서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강한 끌림의 매력을 남긴다면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을 듯하다. 허무 개그가 아닌 의미 있고 품위 있는 유머라면 더 좋을 것이다. 따뜻한 인간미를 갖고 유머를 할 수 있는 리더가 요구되는 시대이다.
그러나 유머나 조크는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분위기를 밝게 해야 하는데 어설픈 유머를 구사하다가는 오히려 더 이상한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유머는 길면 지루하다. 한입에 삼킬 수 있는 맛있는 간식처럼 간결하고 청량해야 한다.
유머는 누구나 듣고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평이한 단어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빵’ 터질 정도로 재미있어야 하는 게 핵심이다. 자연스럽고 상황에 잘 맞으면 금상첨화다. 유머 감각이 넘치면 놀라운 친근감을 이끌어내 대화의 고수가 될 수 있으며, 훌륭한 리더도 될 수 있다.
3. [경향신문][산책자] 자연사박물관에서의 하루
새해를 맞아 연재를 시작하는 코너의 이름이 ‘산책자’로 정해졌을 때 이곳저곳 어슬렁거린 기록을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요즘은 밖에서 살랑대는 바람을 맞으며 걷는 호사를 누리기 힘들다.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미세먼지의 습격은 밖으로 나설 용기를 꺾어 버린다. 하나의 크기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을 터인데 엄청난 양의 먼지들이 하늘을 덮어 빛을 가리고 풍경을 찌그러뜨린다. 이런 때는 지붕 밑으로 피신하는 것이 상책이다. 피난처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곳은 자연사박물관이다. 그곳에 들러 공룡에게 인사하고 지구와 생명의 역사를 따라서 혹은 거슬러 산책을 하는 것은 늘 즐겁다.
나라 안이든 바깥이든 여행지에 자연사박물관이 있으면 꼭 찾아가 보려고 했다. 우리나라에 처음 설립된 ‘이화여대 자연사박물관’은 1969년에 문을 열었으니 반세기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국가나 지자체가 설립한 종합자연사박물관은 2003년에 문을 연 ‘서대문 자연사박물관’이 처음이니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고성공룡박물관’,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 ‘장생포고래박물관’과 같이 특징 있는 박물관들이 속속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여전히 투자도 모자라고 인력도 부족해서 아쉬운 점이 많다.
내 생애 첫 자연사박물관은 뉴욕에 있다. ‘미국자연사박물관’. 여행 중에 무심코 들른 이곳에서 내 자연사박물관 사랑이 시작되었다. 자연사박물관이 주는 가장 큰 기쁨은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생산물들을 직접 만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그곳에는 300만점이 넘는 표본이 있고 그중 0.02%만 46개의 전시실에서 전시된다. 우리나라 자연사박물관에 가장 부족한 것은 표본의 숫자가 아닐까?
파리의 ‘국립자연사박물관’에는 1억점,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는 5000만점, 런던의 ‘자연사박물관’에는 3000만점의 표본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표본이 가장 많은 ‘국립생물자원관’에는 세계적인 박물관의 1% 정도에 해당하는 표본들만 있을 뿐이다. 그나마 인상적인 전시물들은 복제품이 많다. 여행안내책자들이 한결같이 먼지만 쌓여 있고 인적이 드물다고 소개하는 ‘상하이 자연박물관’에도 거대한 마멘키사우루스 화석을 필두로 인류 조상들의 뼈, 희귀 동물들의 박제를 직접 볼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현실은 안타깝다.
우리나라의 자연사박물관 산책에서 놀라운 물건들을 발견할 확률이 낮은데도 여전히 즐거운 이유는 그래도 조각에서 전체를 상상하면서 얻는 재미가 짜릿하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네 번째 시즌을 시작한 영국 드라마 <셜록> 팬들이 머리털 한 가닥, 타액 한 방울과 같은 희미한 조각에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진실의 퍼즐을 맞추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손에 땀을 쥐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공룡의 뼈 화석이 많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1973년 경북 의성군에서 공룡뼈 화석이 처음 발견된 이후 곳곳에서 발견된 화석들은 모두 원형의 15%에 못 미쳤다. 30% 정도가 최고. 하지만 공룡 발자국 화석은 1만여개를 훌쩍 넘는다.
직경이 80~90㎝에 이르는 발자국과 발자국 사이에서 공룡의 가랑이가 어디쯤인지 가늠해보면 아득하다. 너비 24㎝, 길이 32㎝의 작은 발자국들에 맞추어 공룡의 걸음걸이를 따라해 보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첫 발자국과 두 번째 발자국이 서로 평행을 이루지 않고 25도 정도 기운 발자국은 그 주인이 오리걸음처럼 뒤뚱뒤뚱 걸었다는 증거이다. 큰 발자국 옆에 모양은 같지만 작은 발자국이 찍혀 있다면 엄마 따라 산책 나온 아기 공룡을 만난 것이다. 어지럽게 찍힌 초식 공룡 몇 마리의 발자국과 그것을 따라가는 육식 공룡 발자국을 통해서 초식 공룡들이 무리지어 다니는 것과 육식 공룡의 사냥 습관을 엿볼 수 있다. 평면에 찍힌 발자국에서 풍성한 볼륨의 공룡들이 걸어 나온다.
물론, 이런 상상이 근거 없는 몽상은 절대 아니다.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광물전시관에 있는 보잘것없는 돌마다 논문이 몇 편씩 붙어 있는 것을 보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수백명의 연구 인력들이 박물관의 표본들을 연구하고 있고 그 결과는 끊임없이 논문으로 보고되고 있다.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은 40억년 전, 생명의 탄생 때부터 지금의 생물들을 노아의 방주처럼 모아 전시를 하고 있다. 파리 기후변화협약 이후엔 기후변화를 반영한 기상 상태를 실내에서 재현한다. 인간이 초래한 변화 때문에 수십억년을 이어 온 생명들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험하다. 지구와 생명의 역사 사이를 산책하면서 시작한 상상이 걱정으로 끝난다.
4. [한국일보][삶과 문화] 깃털처럼 가벼운 심장
2016년의 끄트머리에 팔순 넘으신 엄마를 모시고 제주도엘 갔다. 트레킹 코스로 유명한 사려니 숲에 들었다. 눈에 보이는 오솔길들이 궁금해 앞장 서 걷는데 엄마는 금세 다리가 아프다고 하신다. 겨울 바다가 반가워 숙소 앞 해변에 나가자고 했다. 호텔 문을 열자마자 엄마가 뒤돌아 서신다. 세찬 바람이 무섭고 춥다고 로비에 앉아 기다리시겠단다. 내가 무럭무럭 늙고 있는 동안 우리 엄마 저렇게 힘이 빠지셨구나, 후회가 밀려 들었다.
함께 간 여동생이 물었다. “엄마는 내년에 뭐 하고 싶어?” 엄마는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너희들은 뭐라 할 지 모르겠지만, 내년에는 죽고 싶어…” 아무렇지도 않은 어조였다. 최소한 증손자 볼 때까지는 살아야 하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화를 냈지만, ‘해 볼 것 다 해 봤고, 이제 더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는 엄마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나도 가끔 너무 오래 살까 봐 걱정이 되곤 하니까.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는 말 대신,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죽었으면 좋겠다는 우리 엄마. 나는 엄마가 언젠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영원히 살 것처럼 엄마를 우선순위에서 미뤄 둔다. 짧은 여행 중에도 짜증을 내고 핀잔을 주고 다음에는 둘이서만 오자고 동생과 속닥거린다.
2006년 전파를 탔던 동양생명의 TV-CM은 말기암에 걸린 여성과 그것을 알면서도 그녀와 결혼한 남자가 주인공이었다. 그들이 결혼반지를 사고 삭발을 하고 웨딩 사진을 찍고 환자복을 입은 채 뽀뽀하는 스냅사진이 모여 한 편의 광고가 되었다. 그 사진들 중에는 액자에 검은 리본을 두른 그녀의 영정사진도 있었다. 광고가 나갈 때 이미 그녀는 하늘나라로 갔기 때문이다.
(동양생명 TV-CM 카피)
자막)어느 날 찾아 온 말기암 판정,
그녀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녀가 삭발하기 전 날 그도 처음으로 머리를 밀고,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지만
결혼반지를 사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갔습니다
웨딩사진을 찍기 전에 영정사진을 먼저 찍었습니다
사랑에는 시한부가 없음을 알려준 당신
고맙습니다
당신 덕분에 사랑을 알고 갑니다
NA)당신이 천사입니다
자막)사랑의 힘을 믿습니다
두 분의 숭고한 사랑은 MBC휴먼다큐에 방송된 실제 이야기입니다.
고인이 되신 서영란씨의 삼가 명복을 기원합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죽으면 지하세계에 가서 심판을 받는다고 믿었다. 죽은 자가 저울 한 쪽에 자신의 과거를 모두 기억하고 있는 심장을 올려 놓으면 진실의 여신이 정의를 상징하는 깃털 하나를 반대편에 올려 놓고 무게를 잰다. 죄가 많으면 저울이 아래로 기울어저울 아래 있는 아무트라는 괴물에게 심장을 잡아 먹힌다. 심장을 잃은 사람은 영혼이 소멸해 영생의 기회를 잃어버린다. 죄가 없는 사람의 심장은 깃털과 균형을 이루고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신 오시리스에게서 영생을 보장 받는다는 것이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결혼하는 지극한 사랑과 죽을 것을 알면서도 받기만 하는 이기적인 나… 아마 나의 심장은 저울 아래로 툭 떨어져버릴 것이다. 새해가 되었다. 한 살 더 먹은 만큼 죽음에 한 살 더 가까워졌다. 새해에는 죽을 것을 알면서도 하지 않고 있는 일들을 해야겠다. 죽을 때도 가져갈 수 있는 것에 시간을 쏟아야겠다.
눈물, 웃음, 위로, 포옹, 촛불, 편지 같은 것들. 돈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심장을 가볍게 할 것에게 마음을 줘야지. 주변의 마음 다친 사람들을 돌아보고, 다시 엄마 손을 잡고 나들이를 할 것이다.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샘내지 않고 축하하고 옛 친구에게 엽서를 띄우고 낯선 도시로 가는 기차표를 끊을 것이다.
깃털처럼 가벼운 심장! 어떤 명품 매장에서도 살 수 없는 그것을 새해 내 버킷리스트 꼭대기에 올려둔다.
5. [한겨레][야! 한국 사회] 대방어와 부리
며칠 전에 단골 일식주점에서 방어회를 맛있게 먹었다. 뱃살은 물론이고 등살도 기름지면서 담백했다. ‘가장 맛있는 음식’은 개인 식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말엔 공감할 거다. 싱싱하고 저렴한 제철음식.
여기서 ‘저렴하다’는 건 중요하다. 저렴하려면 많이 나와야 한다. 많이 나와 많이 팔리면 문화가 된다. 비싸고 귀한 제철음식도 있지만, 그걸 먹는 것과 달리, 소비가 널리 퍼져 문화가 된 제철음식을 먹을 땐 남들과 뭘 나눈다는 축제의 기분이 든다.
겨울 방어회를 이렇게 널리 즐기기 시작한 게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요즘은 대다수가 방어와 부시리(히라스)의 차이를 안다. 일본에선 방어가 자라면서 크기에 따라 모자코, 히마치, 부리 등으로 이름이 바뀐다는 것도 많이들 안다.
일본인은 한국인보다 방어를 훨씬 더 좋아한다. 옛 기사를 찾아보니 1967년 7월에 일본 대마도에 방어 양식장을 만들고 한국에서 활방어를 수입하기로 했고, 같은 해 12월 한국에서 일본으로 방어 수출이 급증하는데 일본이 수입할당제를 운영해서 한국 업계가 이것의 완화를 요구했다고 한다. 한국 방어의 일본 수출이 많았고, 일본은 자체적으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방어 양식을 시작했다는 얘기다.
50년 지나 지난해 3월에는 한국에서 일본산 양식 방어를 한국산 방어로 속여 판 업자들을 적발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일본산 양식 방어는 가격이 싸지 않다. 어류 칼럼니스트 김지민씨에 따르면, 일본 양식 방어는 양식장이 일본 서남부에 있어 원전 피해로부터도 안전한 편이고 양식 기술이 발달해 맛도 좋아 값이 싸지 않지만 한국에서 방어가 달려 값이 뛸 때는 한국 대방어보다 더 쌀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겨울엔 방어가 많이 잡히지 않았다.
몇 해 전 나온 <한일 피시로드>(다케쿠니 도모야스 지음)를 보니, 수산물의 한일 교류가 생각보다 질적 양적으로 컸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명태, 도미, 갈치, 먹장어(꼼장어) 등이 수입되고 한국에서 일본으로 광어, 바지락, 붕장어, 갯장어 등이 수출된다.
방어는 1970년대 들면서 일본에서 양식을 위해 치어(모자코)를 한국에서 수입했다. 한국 남해안에서 6월께 방어 치어를 잡아 가두리에 가두고 한두 달 키우면 일본 활어선이 와서 실어갔다. 이게 왕성해지자 한국의 자원고갈 문제가 생겼고 정부가 1976년에 치어 수출을 막았다.
한국에서도 방어 양식을 시도했지만 기후조건 때문에 아직 대방어 양식을 못하는 대신, 광어 양식은 성공해서 일본에서 소비되는 광어의 4분의 1이 한국산 양식 광어라고 했다.
이 책엔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잇는 부관페리호를 다리 삼아 한국과 일본 도로를 단숨에 내지르는 활어 트럭 운전사들의 이야기가 여러 개 나온다. 홋카이도 수조에서 트럭→배→트럭 타고 속초의 수조까지 오는 활가리비, 비행기 타고 교토로 가는 여수의 갯장어…. “먹장어는 일본 깃발이나 한국 깃발을 세우고 바닷속에서 ‘자신’을 주장하고 있지는 않다.
‘일본산’, ‘한국산’ 따위를 구별하기에 집착하는 존재는 우리 사람들뿐이다. 물고기들 입장에서 보면 어디나 다를 바 없는 그냥 ‘하나의 바다’인 것이다.”
공감 가는 말이다. 그럴수록 먹거리 관리가 중요할 텐데, 먹거리 관리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의심 많은 게 병? 갑자기 궁금해졌다. 혹시 며칠 전에 먹은 게 일본산 양식 방어? 주점에 전화해서 물어봤다. 한국산 대방어라고 했다. 지금은 일본산이 비싸면 비쌌지 싸지 않단다. 아직 한국산 대방어 못 드신 분들, 철 지나기 전에 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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