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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담뱃세 빼돌린 KT&G의 몰염치

정부가 2015년 1월부터 적용한 담뱃세 인상 조치를 틈타 KT&G가 3300억원의 부당 이익을 챙겼다고 한다. 2억갑에 가까운 전년의 반출 재고분을 처리하면서 세금 인상분을 붙여 판매하고는 세금은 2014년 기준으로 낸 결과다. 정부의 담뱃값 인상이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KT&G의 뱃속을 채워 준 꼴이 됐다. 감사원이 기획재정부 등을 대상으로 담뱃세 관련 관리실태 점검 끝에 내린 결론이다.

담뱃세는 제조장에서 물류창고에 반출된 시점을 기준으로 세금이 붙도록 돼있다. 따라서 2014년 12월 31일 이전에 반출한 담배는 그 이후 판매하는 경우에도 세금 인상에 관계없이 기존 2500원의 가격을 적용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공급처나 시중 판매업소들은 2000원 인상된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바가지를 씌웠던 것이다. 판매업소들이 미리 사재기에 나섰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런 사례는 외국계 담배회사들에 대한 지난해 감사에서도 이미 드러난 바 있다. 필립모리스와 BAT코리아가 재고를 쌓아놓고 기존 세율의 담뱃세를 납부한 뒤 2015년 이후 판매하면서 가격에 올라간 세율을 적용했다는 얘기다. 이렇게 외국 담배회사들이 올린 부당 이득만 해도 2000억원 이상에 이른다. 기획재정부가 세금인상 차액에 대한 환수규정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담뱃세를 올린 탓이다.

이처럼 부적절한 거래에 다른 업체도 아닌 KT&G까지 뛰어들었다는 사실에 서글픔을 금하기 어렵다. 건물 안에서는 진작 흡연 장소를 빼앗긴 채 길거리 모퉁이에 내몰려 연기를 뻐끔거리는 끽연가들의 안쓰러운 처지를 배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에서야 비로소 KT&G에 덤터기를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된 끽연가들의 입장에서는 담배 한모금마다 가슴이 타들어갈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담배제조 및 유통사에 담뱃세 인상차액 7940억원이 부당하게 돌아갔지만 아직 환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기왕에 기재부 담당자들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나 국세청이 사후 조치를 제대로 취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외국계 담배회사들은 오히려 대형 로펌을 내세워 반박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주의깊게 추이를 지켜보고자 한다.



2. 미르·K스포츠재단 즉각 해산시켜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 탄핵사태를 불러온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여전히 건재하다고 한다. 더욱이 기업으로부터 불법 모금한 774억원의 기금에서 매달 2억원 이상이 운영비 명목으로 술술 새나가고 있다. 설립의 정당성이 없는 데다 사실상 업무도 중단된 상태에서 자기들끼리 희희낙락 돈잔치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기금을 출연한 재벌 총수들이 청문회와 특검에 불려나가 닦달을 당하는 처지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감독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도 해산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팔짱만 끼고 있는 상태다.

미르·K스포츠 재단의 한 달 운영비는 사무실 임차료와 월급, 직원 복지비 등 줄잡아 2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동춘 K스포츠재단 이사장 등 재단 이사진과 고위 간부들의 월급은 10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게다가 직원들의 휴대폰 구입비와 커피값까지 기금에서 빼내 쓴 것으로 드러났다. 마땅히 하는 일도 없는데다 존립 근거마저 의심받고 있는 두 재단이 이처럼 제멋대로 운영비를 사용하며 기금을 축내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가만히 드러누워 곶감 빼먹는 식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문체부는 지난해 12월 비용절감 방안을 보고받은 것 외엔 한 일이 없다. 최순실씨에 의해 임명된 정 이사장이 최근 자신의 측근들을 직원으로 뽑는 등 재단을 다시 장악하려 하는데도 수수방관이다. 재단 설립 때는 담당 공무원을 세종시에서 서울로 파견해 초고속 출장서비스까지 제공하더니 재단 해체에 대해서는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는 것이다. 민간 재단에 적극 개입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를 대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아직 박 대통령이나 최씨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냐는 지적에 대한 조윤선 장관의 답변을 듣고자 한다.

당초 재단 설립에 하수인 노릇을 했던 전경련은 지난해 9월 청와대 개입 의혹을 부인하면서 두 재단을 해산하고 새로운 문화체육재단을 설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전경련은 현재 자신이 해체될 위기에 처함으로써 그럴 힘이 없다. 재단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문체부가 나서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즉각 두 재단의 설립 허가를 취소하고 재벌들로부터 불법 모금한 출연금 중 남은 금액을 모두 국고에 귀속시키는 게 마땅하다. 해산 전이라도 기금을 더 이상 축내지 못하도록 자산 동결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매일신문]

3. 올해도 어려운 지역 경기 전망, 경쟁력이 해답이다

올해 대구 경제가 지난해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 기업이 열 곳 중 일곱 곳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구상공회의소가 최근 대구 제조업 200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7 경제 전망’ 설문조사에서 드러난 결과다. 특히 고용을 더 늘리겠다고 응답한 기업이 고작 15.8%에 그쳐 기업들이 안고 있는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 66.5%가 매우 악화나 다소 악화될 것이라고 답해 올해 지역 경기 회복에 부정적이었다. 대내외 경제 상황이 불안정해 그만큼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는 말이다. 업종별로는 섬유업(78.4%) 전망이 가장 어두웠다. 자동차부품(66.7%), 전기`기계(57.1%), 금속가공(53.3%) 등의 순으로 경기 회복에 부정적이었다. 내수기업이 수출기업보다 현 상황을 더 비관적으로 보고 있어 심각한 소비 부진을 실감케 한다.



이 같은 고민은 대구경북연구원의 올해 대구경북 경제 성장 전망에서도 드러난다. 연구원은 올해 대구 성장 전망치를 지난해보다 소폭 하락한 2.4%, 경북은 비슷한 수준인 0.8%로 예상했다. 수출 감소와 소비 부진, 금융 불안정 등 대내외 환경이 단시간에 해소될 가능성이 낮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경기 침체의 폭을 좁힐 지렛대 효과에 관한 분석도 있다. 연구원은 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와 대구신세계 개점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확산된다면 대구가 2.9%까지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경북도 국제 유가 상승 등으로 이란을 비롯한 중동 지역 수요가 늘어날 경우 1.2%의 성장도 어렵지 않다고 전망했다. 이런 작은 불씨를 어떻게 살려내느냐에 따라 경기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올해 성장률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본격적인 경기 회복에 대비하려면 지역 기업이 풀어야 할 선결 과제도 많다. 주력 업종인 철강`전기전자 산업의 기술`가격 경쟁력을 지금보다 훨씬 높여야 한다. 수출시장의 다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맞춤형 성장 전략과 함께 위기 관리 능력을 키우려면 현재보다 갑절의 노력이 필요하다. 불리한 여건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경영`기술 역량을 최대한 키워나간다면 성장과 지역 경제 회복은 자연히 뒤따르기 마련이다.



4. 소녀상 철거가 대가라면, 10억엔 일본에 돌려줘라

일본의 ‘평화의 소녀상’ 때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일본이 소녀상 철거 요구 논리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출연금 10억엔 갹출이다. 후안무치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종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군의 조직적 관여 아래 다수 조선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깊게 훼손한 반인륜적 범죄다. 일본은 진정성 있는 사과는커녕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천박한 역사 윤리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8일 NHK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해 10억엔을 갹출했으니 한국 정부는 소녀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 정권 아래에서 실행하는 것이 국가의 신용 문제라고도 언급했다. 외교적 수사로 에둘러 말했지만 “돈을 줬으니 딴소리 말고 우리 요구를 이행하라”는 말로 들린다.



일본이 위안부 협정을 돈 문제로 끌고 가는 데에는 우리 정부가 빌미를 제공한 감이 없지 않다. 10억엔 출연 요구를 우리 정부가 먼저 했기 때문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 13일 국회에서 이런 사실을 밝혔다. 그는 “협상 과정에서 출연금이 당연히 필요하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었다. 돈이 나와야만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한 것이 된다”고 해명했다.



우리 돈 103억원을 받고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나라의 자존심을 바꾼 것은 우리 외교의 흑역사로 기록될 만하다. 위안부 협정의 이면 합의로 소녀상 철거가 포함돼 있기에 일본이 저렇게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끊이지 않는다.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사이에 야당은 강한 대응 자세를 주문하고 나섰다.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소녀상 철거가 일본의 요구라면 10억엔을 돌려주자”며 가세했다.



민간 차원에서 전개되는 소녀상 설치를 놓고 일본이 한국을 궁지로 몰고 가는 것은 우방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한 번 맺은 국가 간 협정을 파기하거나 무효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소녀상 설치와 합의금 10억엔 출연은 별개의 문제이기에 재검토 여지가 충분히 있다. 일본이 소녀상 철거를 자꾸 요구한다면 10억엔은 돌려주는 것이 맞다.



5. 농민 뜻 묻지 않고 과수 벤 SK건설, 농촌 무시한 것 아닌가

SK건설과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중앙선 도담~풍기 금계동 복선 구간 노반 건설공사를 하면서 공사 구간 내 과수나무를 주인 동의도 없이 베어내 반발을 사고 있다. 자식처럼 돌보던 7~8년생과 20~25년생 사과나무 수천 그루가 사라졌다. 건설사는 정해진 행정절차조차 지키지 않았다. 피해 주민들로서는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농민들이 진정서를 내고 경찰이 수사에 나선 까닭이다.



이번 일은 SK건설의 잘못이 원인이다. 먼저 절차 문제다. SK건설은 감정 평가를 통해 100% 나무값을 주는 방식으로 취득비 보상을 하고 공사를 위해 사과나무를 철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건설사는 여기부터 잘못했다. 공사 편입 토지가 공공사업을 위해 강제로 토지소유권을 취득하는 토지수용위원회의 절차를 밟아 수용재결되고 사과나무 보상이 결정됐지만 주민들은 이에 불복, 행정소송을 제기해 두고 있다. 소송 결과를 기다려 철거 여부를 결정해야 했지만 SK건설은 그러지 않았다.



SK는 또 사과나무를 철거할 경우 행정대집행하는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 게다가 사과나무 철거 때 아예 나무를 옮기지 않고 베어내는 잘못을 저질렀다. 토지수용위원회 결정에 대한 이의로 소송 중임에도 주민 동의도 없이 나무부터 벤 행위는 옳지 않다는 법률 전문가의 진단이 나오고 주민들이 절도라며 반발하는 이유다. 주민 동의를 받았다는SK건설의 주장과 달리 취재 결과, 주민들이 사과나무를 베도 좋다고 합의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일은 2014년부터 올해 6월 완공 예정으로 사업비 2천500억원을 들여 복선화 사업을 벌이는 한국철도시설공단의 관리감독 문제는 제쳐놓더라도 대기업인 SK건설의 횡포를 고스란히 드러낸 사례이다. 내용적으로는 농촌에 대한 갑질로 농촌과 농민에 대한 무시가 배어 있다. 기업 이익을 위해 농촌 주민 이해는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다.



지난해 포항 SK텔레콤 발주 공사장에서 2명의 근로자 목숨이 희생된 사고에 이은 이번 사태로 SK그룹의 경영 철학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법 적용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서울신문]

6. 최순실에 이어 박 대통령도 헌재에 나와야

박근혜 대통령이 설 연휴를 앞두고 기자간담회 등의 형식을 통해 자신과 관련한 의혹을 해명하거나 헌법재판소에 출석하는 방안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박 대통령이 탄핵 소추의 사유가 된 사항에 대해 할 말이 있고, 주장하고 싶은 게 있다면 헌법재판소에 출석해 소명하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일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기습적인 간담회를 가진 바 있는데, 민심과 동떨어진 현실 인식과 주장으로 새해 첫날부터 국민들의 타오르는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그때 박 대통령은 “최순실은 지인일 뿐 누구를 봐줄 생각은 손톱만큼도 제 머릿속에 아예 없었다”라고 하거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에 대해서도 “완전히 (검찰이) 엮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라는 구중궁궐 속에 갇혀 진실에 눈을 감고, 일고의 가치도 없는 변명을 거듭하는 모습에서 국민들 대다수는 분노와 함께 가소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국정 농단을 파헤치는 검찰의 수사나 헌재의 공개 변론 출석 요구에 한 번도 응한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기자를 불러 특검과 헌재와 여론을 압박하는 장외전을 갖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탄핵 반대를 요구하는 친박 집회가 매주 계속되고, 새누리당에 이정현 전 대표를 제외한 핵심 친박이 온존하고 있는 상황에 박 대통령이 고무됐을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이 지금의 판을 어떻게 읽건 그건 자유이지만, 국민을 상대로 기만에 찬 피해자 코스프레는 온당치 않다.



연초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의 80% 전후는 탄핵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대부분은 최순실 국정 농단의 다른 주역인 박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결과이기도 하다. 혹여,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남아 있는 ‘박근혜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면 더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청와대가 그 같은 의도로 간담회 등을 가지겠다고 한다면 언론사들의 신중한 대응이 요구된다. 박 대통령의 대리인들조차 헌재 출석을 권고하고 있다지 않은가.

국정 농단의 주범 최순실이 오늘 오전 헌재의 탄핵 심판 증인 신문에 출석한다고 한다. 헌재의 심판은 핵심 증인들의 불출석으로 변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피의 사실을 대부분 부인하고 있는 최순실이 과연 헌재에서 어느 정도까지 말할지 의문이지만 국민과 헌법 앞에서 증언하는 만큼 성실한 자세를 보여 주기를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박 대통령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당당하게 헌재의 심판정에 서야 한다. 국민에 대한 도리다.



7. 전통시장 잇따른 화재 총체적인 안전 점검을

전통시장에 화재가 잇따르고 있다. 침체된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많은 자금을 투입해 시설 및 제도의 현대화를 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재에 여전히 취약한 곳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관리를 책임져야 할 정부, 지방자치단체, 상인들의 안전불감증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못 고치는 격이다.

전남 여수시 교동 여수수산시장에서 어제 새벽 발생한 화재 사건은 여느 시장의 화재와 닮아 있다. 화재 원인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화재예방을 위한 시설 미비와 안전불감증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화재 당시 경보기의 작동 여부를 떠나 불이 난 지 7분쯤 지나 신고됐다. 불은 이미 시장 안의 점포로 번지고 있었다. 결국 화재 발생 2시간여 만에 120개의 점포 가운데 116곳이 피해를 입었다. 이 가운데 점포 58곳은 잿더미로 변했다. 인명 피해가 없었던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이다.

전통시장에서의 화재 위험성은 어제오늘 지적된 것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30일 새벽에 발생한 대구 서문시장의 불은 점포 600여곳을 삼켜 버렸다. 서문시장 상인들은 지금까지 생업을 이어 가지 못한 채 고통을 받고 있다.

전통시장은 정부, 지자체 등이 평소 세심하게 관리해야 하는 화재 취약지구에 속해 있다. 여수수산시장도 서문시장 화재 이후 소방 관계자들로부터 안전 점검을 받았지만 화마(火魔)를 막지 못했다. 전통시장의 특성상 소규모 상가들이 지나치게 밀접해 있는 데다 전기시설은 거미줄처럼 빼곡히 뒤엉켜 있다.



사정이 이러니 화재 차단벽 등 화재 확산을 방지할 시설을 설치하기도 쉽지 않다. 대부분의 전통시장은 화재 발생 시 소방차 접근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결과론적이지만 평소 안전시설에 대한 관심과 점검이 좀더 세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안전불감증을 지적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부와 지자체들은 전통시장에 매년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쇼핑하기 편리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서다. 문제는 아무리 시장을 현대화하더라도 자칫 안전에 소홀해 화재가 나면 모든 게 헛수고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전통시장의 화재대응 체계를 총체적으로 점검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 재난예방대책과 복구 지원 시스템도 물론이다. 누구보다 상인들의 자구 노력이 절실하다. 안전 없이는 손님들의 발길도 담보할 수 없다.



[동아일보]

8. 합동소방점검 40일 만에 화재 발생한 여수수산시장

전남 여수수산시장에서 어제 새벽 화재가 발생해 100여 개 점포를 태웠다. 전통시장인 대구 서문시장에서 큰 화재가 발생한 것이 약 한 달 반 전인데 다시 전통시장인 여수수산시장에서 큰불이 났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재산 피해는 5억2000만 원으로 잠정 추산됐다. 여수수산시장은 여수 밤바다로 유명한 해양공원 등이 주변에 있어 하루 2000∼3000명이 찾는 관광명소다. 앞으로 영업하지 못하는 데 따른 피해와 설 대목을 앞두고 입은 손실은 훨씬 더 클 것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화재 발화 지점을 한 횟집 수족관의 산소공급기로 추정하고 누전에 의한 화재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서문시장 화재는 아직도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지만 방화 가능성은 거론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가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을 폐지하고 신설한 국민안전처가 뻔히 예상 가능한 겨울철 전통시장의 화재를 막는 데도 연달아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수수산시장은 서문시장 화재 직후인 지난해 12월 5일 여수시와의 합동소방점검이 이뤄졌고 어제 화재 발생 시 스프링클러 옥내방화전 등도 모두 정상 작동한 것으로 밝혀졌다. 최초 신고자와 최초 현장에 도착한 화재진압 소방대원은 화재경보를 들었다고 안전처가 확인했다.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했는데도 누전이 큰 화재로 번지는 것을 막지 못했으니 이것이 더 큰 문제다.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고 시설이 낡은 전통시장이 화재에 취약하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통상 하던 소방시설 점검만으로 내 할 일 다 했다고 하는 것은 소방방재청에서 한 단계 격상된 안전처의 자세가 아니다. 안전처는 전통시장의 무엇이 화재에 취약하게 만드는지 검토해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매일경제]

9. 타이밍 놓친 자영업자 대출강화 방안

금융위원회가 어제 치킨집 등 과밀업종 자영업자 대출을 강화하는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내놓았다. 자영업자 대출의 39%를 점하는 부동산 임대업자에 대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적용 방침도 밝혔다. 주택담보대출과 더불어 가계부채의 또 다른 뇌관인 영세 자영업자 대출을 제한하겠다는 취지인데 진작 나왔어야 할 대책이었다.

현재 자영업자 실태를 보면 심각한 수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자영업자 가구 평균 소득증가율은 1.2%로 임시·일용근로자의 5.8%보다 훨씬 낮다. 자영업자의 5분의 1은 월 매출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렇게 된 것은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과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자영업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심해지고 내수 침체로 장사가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창업 1~2년 안에 투자금을 몽땅 날리고 문을 닫는 자영업자도 적지 않다. 국세청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2015년 이미 일평균 3000명이 자영업에 뛰어들고 2000명이 문을 닫은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권 대출을 받아 창업했다가 빚더미에 오른 자영업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이유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141만명의 자영업자가 464조5000억원을 대출받았는데 이는 9개월 전에 비해 사업자금 대출은 13.4%, 생계비를 위한 가계대출은 14% 급증한 액수다.



지난해 5대 시중은행의 대출 잔액도 2010년 말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하며 180조원을 돌파했다. 대출받은 자영업자 중에는 돈을 빌려 치킨집과 분식집 등을 차렸지만 고전하고 있거나 부동산 임대를 위해 거액을 빌렸는데도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사업자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이들은 불황이 더 길어지고 금리가 오르면 가장 먼저 부실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측면에서 영세 과밀업종과 부동산 임대업자 등에 대한 대출 관리 강화는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단순히 대출을 옥죄는 차원을 넘어 자영업자 폐업률을 최소화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정부는 자영업자 대출 현황을 토대로 상반기 안에 맞춤형 지원 방침을 발표하기로 했는데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처음 사업에 뛰어든 생계형 창업자에 대한 정보 제공과 컨설팅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10. 다보스포럼에서 부각되는 `책임 리더십`

오늘부터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2017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의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Responsive and Responsible Leadership)'이라는 의제가 작금의 한국 정치에 딱 맞는 과제를 던지는 것 같아 와 닿는다.



다보스포럼은 지난해 1월엔 제4차 산업혁명을 새 화두로 던져 온 세계를 흔들었는데 이번에는 각국의 정치 상황 변화를 압축적으로 반영하듯 책임 리더십을 주창하고 나섰다. 포럼 측 홈페이지에 게재된 설명을 보면 세계적인 보호주의와 포퓰리즘 확산 속에 4차 산업혁명 시대임에도 되레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와 불확실성 증폭이라는 정치적·경제적 배경 때문에 이런 의제를 택했다는 것이다.



오는 20일 취임식을 갖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새 행정부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과 함께 반(反)세계화와 자국 우선주의라는 극단적 포퓰리즘의 적나라한 표출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공공연하게 자유무역에 반대하고 배타적인 난민 정책으로 돌아선 현실을 보며 다보스포럼 측은 글로벌 차원의 책임 리더십을 강조하고 싶었던 듯하다.

학문적으로 책임 리더십은 스위스 명문 비즈니스스쿨 장크트갈렌대 토마스 마크와 니콜라 플레스 교수에게서 주창돼 확산됐다. 개인 수준에서는 자기만의 인적자본 향상을 넘어 사회윤리로 영역을 확장하고 비즈니스에서는 소비자와 협력업체 등 이해관계자들과의 사회적 약속 이행을, 사회적으로는 글로벌 시민의식 고양과 협력이다. 개인과 기업, 정치지도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나에서 우리로 패러다임의 기준을 바꾸자는 제안이다.

이번 다보스포럼에는 세계 100여 개 나라에서 각 분야 지도자 2500여 명이 참여한다. 이들이 글로벌 차원에서 책임 리더십을 기반으로 협력과 소통을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포퓰리즘을 극복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나아가 개별 국가만의 나 홀로 생존 경쟁을 뛰어넘어 포용적 성장(InclusiveGrowth)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소통 부재가 부른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와 이로 인해 불가피해져 보이는 조기 대통령선거로 한국 정치권은 시대정신에 가장 잘 부합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정착시켜야 하는 과제를 떠안고 있다. 다보스포럼에서 제시한 책임 리더십을 어느 때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주요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신동민 셰프의 푸드오디세이] 일본에서 먹는 신년 요리 ‘오세치 요리ʼ…새해 기원하며 여러 음식 ‘찬합ʼ에 담아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더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소망한다. 새해 음식에도 이런 마음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는 하얗고 긴 가래떡을 엽전처럼 납작하게 썰어 떡국을 끓여 먹으면서 무병장수와 부를 기원해왔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새해에는 더 활기차고 복이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음식들을 즐긴다. 

미국 남서부 지방에서는 새해가 되면 ‘호핑존(Hopping John)’을 먹는다. 호핑존은 콩과 쌀, 고기, 베이컨, 푸른 채소 등을 넣고 끓여 만든 음식인데, 여기에 들어가는 푸른 채소가 지폐의 푸른 색깔과 비슷하다고 해 금전운을 뜻한다고 한다. 그리스는 새해에 ‘바실로피타’라는 케이크를 커피와 함께 먹는다. 케이크에 동전을 하나씩 넣어두는데 이 동전이 들어 있는 케이크를 먹는 사람에게 행운이 깃든다고 전해 내려온다.



이탈리아의 새해 음식인 ‘코테치노 콘 렌티치’는 돼지발로 만든 소시지에 렌즈콩을 얹은 음식이다. 이탈리아에서 돼지는 풍요를, 렌즈콩은 동전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 번영과 금전운을 상징한다고 한다. 멕시코에서는 특별한 새해 음식을 만들어 먹는 대신에 포도 12알을 먹는 풍습이 있는데, 포도 12알은 일 년 열두 달을 뜻하며, 포도 한 알씩을 먹으면서 새해 소원을 빈다. 

이웃나라 중국은 땅이 넓은 만큼 지역마다 새해 음식도 다르다. 북방 지역에서는 새해의 시작인 12시부터 물만두인 ‘자오쯔(교자)’를 먹는다. 전해에서 새로운 해로 바뀌는 교차점을 뜻하는 자오쯔와 발음이 같아서 생긴 풍습이다. 남방 지역에서는 녠가오와 탕위안을 주로 먹는다.



녠가오는 쌀떡에 팥소를 넣고 찐 다음 다시 튀긴 음식이다. 녠가오는 새해에 복을 비는 말과 발음이 같아 새해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탕위안은 우리나라의 새알심과 비슷한 음식이다. 일본에서는 아주 특별한 새해 음식, 오세치 요리를 준비한다. 자손의 번영을 뜻하는 청어알절임, 허리가 휠 때까지 장수를 바라는 의미에서 새우, 햇볕에 검게 그을릴 정도로 부지런히 일한다는 의미의 검은콩조림 등 새해 기원을 담은 여러 가지 음식을 찬합에 담아 먹는다. 이 찬합은 축복을 겹겹이 쌓는다는 뜻에서 대개 3단 혹은 5단으로 만드는데, 여러 사람들이 나눠 먹을 수 있도록 충분한 양을 준비하며, 먹을 때는 개인 접시를 준비해 찬합에 담은 음식들을 조금씩 덜어 먹는다. 

오세치 요리는 오래전 궁중에서 올리던 제사 풍습에서 비롯됐다. 세월이 흘러 궁중의 제사의식이 서민층에도 퍼지면서 섣달 그믐날에 온 가족이 모여 신전에 올렸던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풍습이 생겼다. 당시의 오세치는 ‘토시코시(年越し·섣달 그믐날 밤)’라 해 정월 초하루로 넘어가는 섣달 그믐날 밤에 먹는 음식이었다. 아직 홋카이도나 동북 지방 등 일부 지역에서는 섣달 그믐날 밤인 토시코시에 오세치를 먹는 풍습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에는 대부분 정월 초하루부터 3일 동안 오세치 요리를 먹는다. 

일본에서는 양력 1월 1일부터 3일까지 가족들이 모여 성대하게 신년을 축하하며 기념한다. 이날을 준비하기 위해 섣달 그믐에는 집안을 말끔히 청소한다. 이 기간 중에는 취사를 하는 등의 소음이나 냄새를 풍기지 않고 경건하게 보내는 풍습에 따라 미리 만들어두고 먹을 수 있는 오세치 요리를 충분히 준비해둔다. 

오세치 요리는 새해 3일 정도 오랜 시간을 두고 먹는 요리기에 보존성이 강한 조림이나 고온으로 완전히 익힌 튀김, 찜으로 하는 요리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제사 음식을 찬합에 담아낸 요리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3일 동안 손님이 방문하면 찬합에 이미 만들어진 요리를 차려내기만 하면 되고 명절 내내 취사를 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여성들은 그 기간 동안 가사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셈이다. 

한국 차례음식 대행업체 유행처럼 일본도 오세치 음식 대행업체 늘어
일본 전통요리뿐 아니라 프랑스·중국 요리도 등장하는 추세

하지만 섣달 그믐에는 요리 만들랴, 대청소하랴, 너무나도 바쁘게 보낸 나머지 요통으로 고생하는 여성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 고생도 이제 옛말이 됐다. 과거에는 섣달 그믐날에 집집마다 오세치 요리를 장만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요즘은 호텔이나 레스토랑, 식품회사가 만든 것을 사 먹는 가정이 늘고 있다. 일하면서 음식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고 외식 소비가 늘면서 요리를 제대로 하는 사람들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저렴하게 음식을 해주는 대행업체가 흔해지고, 백화점에 가면 너무나 훌륭하게 음식들을 만들어 소비자의 주머니를 열게 만든다. 이런 흐름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것 같다. 연말쯤 일본 백화점에 가면 오세치 요리 예약을 많이들 한다. 싼 것은 몇 만원부터 비싼 것은 100만원이 넘는 것도 있다. 

필자가 처음으로 오세치를 경험한 때는 일본 유학 시절 2년이 되던 해였다. 첫해에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오세치를 사 먹을 정도로 주머니가 두둑하지 않았다. 2년 차가 되니 일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새해 첫날에 초대를 받게 됐다. 친구 집에서 가족을 위한 마음으로 정성을 가득 담아낸 오세치 요리를 받으면서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새우의 붉은색, 밤의 노란색, 하얀 연근, 거무스름한 조림 등등 형형색색 어우러져 눈으로 먼저 기분 좋아지는 음식이었다. 

한국의 김치는 수많은 재료가 들어가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힘든 요리다. 반면에 일본의 쓰케모노(절임음식)들을 보면 간단히 쌀겨나 소금으로 만드는 요리가 많아서 일본 음식은 한국 음식보다 단순한가 싶었다. 하지만 오세치 요리를 보면 한국 궁중요리 못지않게 다양하면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슬로푸드가 즐비하다.

옛날에는 일본 전통요리로만 오세치 요리를 만들어왔는데 지금은 프랑스 요리나 중식 요리를 쥬바코(찬합)에 담은 오세치 요리들도 등장했다. 

보기에도 화려한 데다가 다양한 나라의 맛까지 즐길 수 있으니, 오세치 요리를 고르는 일본인들의 재미가 쏠쏠할 듯싶다. 올 새해에는 우리 음식으로 한국식 오세치 요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찬합에 예쁘게 담아 가족과 함께 즐겨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2. [매경이코노미][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다니엘 하딩 | 영국이 배출한 차세대 마에스트로

지휘자 중에는 처음부터 지휘에 뜻을 두고 공부한 경우도 있지만 악기를 다루다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된 사람도 적지 않다. 카라얀, 아슈케나지, 정명훈 등은 피아니스트에서 지휘자로 변신한 예다. 카잘스, 로스트로포비치 등은 첼리스트면서 지휘자의 길을 걸었다.



좀 특이한 경우도 있다. 오는 2월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LSO)와 함께 내한하는 다니엘 하딩(Daniel Harding)이다. 리코더로 시작해 바이올린을 거쳤다가 트럼펫을 전공하고 지휘자가 된 인물이다. 

다니엘 하딩은 1970년대생 지휘자 중 가장 빨리 성장한 사례로 꼽힌다. 일찍이 영국 음악계가 배출한 신동으로, 영국의 대표적인 차세대 지휘자가 된 그는 최연소 타이틀과 함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전현직 수장인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사이먼 래틀의 총애를 받은 인물로 유명하다.



트럼펫을 전공하던 그가 지휘자가 되길 결심하고 행동에 옮긴 것은 겨우 14세 때 일이다. 본격적으로 지휘자로서의 수업을 받은 것은 맨체스터 음악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 마치 놀이처럼 작업한 현대음악 테이프를 사이먼 래틀에게 보내면서였다. 

당시 버밍엄 심포니 오케스트라(BirminghamSymphony Orchestra) 지휘자였던 래틀은 18살의 하딩을 버밍엄 심포니 오케스트라 리허설 지휘대에 올렸다. 앳된 소년은 버밍엄 심포니 단원들로 이뤄진 현대음악 앙상블 팀을 훌륭하게 지휘하면서 정식 지휘자로 데뷔한다. 천재 지휘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은 빠르게 바다를 건너가고, 이를 눈여겨본 베를린 필의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하딩을 초청했다. 

하딩은 1996년, 21살에 베를린 필을 이끈 최연소 지휘자라는 기록을 세우며 차세대 지휘자 1순위로 떠올랐다. 같은 해 런던 BBC 프롬스에서도 역대 최연소 지휘자로 데뷔한 그는 래틀 이후 영국이 낳은 최고의 지휘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게스트 지휘와 스웨덴 라디오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직을 겸하고 있다. 

오페라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는 하딩은 말러 챔버와 함께 매년 참가하고 있는 엑상 프로방스 페스티벌에서 다양한 오페라를 선보이기도 했다. 

지휘자로서 하딩의 강점은 앞에 말한 스승(래틀과 아바도)의 가르침을 기본으로 뛰어난 분석력과 함께 리더십이 훌륭하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해 파리 오케스트라와 내한한 바 있는데 이제 불혹을 갓 넘긴 영국인 지휘자와 개성 강하기로 유명한 파리 오케스트라는 전혀 이질감 없이 편안하게 일체감을 이루고 있었다. 그를 지켜본 많은 이들은 자신이 감독한 악단에서 음악과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하딩의 진지한 자세를 높이 평가한다. 

영국 최고 교향악단에 꼽히는 LSO는 ‘젊은 지휘자를 먹어치운다’는 평이 자자한 악단. 하지만 그런 LSO조차 하딩에게만은 유독 호의적이다. 현재 하딩과 LSO는 가장 호흡이 잘 맞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다. 2월 내한 무대에서 그가 LSO와 펼칠 무대는 말러 교향곡 4번이다. 젊은 마에스트로와 그의 평생지기인 LSO의 내한 무대에 국내 음악계 관심이 쏠린다.



3. [국민일보][살며 사랑하며-유형진] 마법사의 노동

쏟아지는 별빛을 덮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큰 교자상에 갈비찜과 톡 쏘는 양장피, 무를 넣어 조린 고등어와 고추장에 무친 시금치, 오징어 파래전 그리고 무국이 차려 있었다. 누가 마법을 부린 것일까? 마법사는 우리 외숙모들. 여기는 나의 외가 청양이다. 오늘 아침 밥상은 아흔네 번째 생신을 맞이한 외할머니의 생신상이었다.



지난밤, 자정까지 세 분의 외숙모들이 무를 씻고 야채를 썰고, 시금치를 삶고, 양념을 만들어 고기를 재워놓고, 파래를 헹구고, 오징어를 다지는 등 마법사의 전처리 과정을 수행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외삼촌, 외사촌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자정의 마법사들은 부엌에서 정연하게 움직이며 마법사들끼리만 통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간간이 웃음소리도 알맞게 흘렸다. 그 웃음소리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은 마법의 효과가 전혀 없다. 그저 허기를 채우기 위한 것일 뿐. 마법사의 남자들은 마루에 다소곳이 앉아 부엌에서 가져다주는, 마법의 과정에서 파생되는 음식을 안주 삼아 잔을 기울인다. 때때로 시국을 개탄하고, 각자가 속해 있던 자리에서 횡행했던 적폐들에 대해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눈다.



사실은 나도 마법사여서 내가 ‘ㅁㄴㄹ’라는 명찰을 달아야 하는 곳에 가서는 부엌에 있어야 했지만, 외가에서는 나의 위치에서 마법을 부리는 것은 월권행위다. 그래서 마법사들의 보조 아니면 설거지 정도밖에 허락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조금 폼 나는 일은 마법사들의 커피 물을 끓이는 정도. 

곧 설이다. 계란 값도 오른 상황이고, 무값도 세 배. 야채, 고기를 막론하고 모든 마법의 재료값이 엄청나게 뛰었다. 진짜 전국의 마법사들이 파업하고 싶을 정도로 그 어느 해보다 더 고될 마법의 전처리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는 늦은 시간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시국을 개탄하고, 사회 곳곳의 적폐에 대해 논할 때, 누군가는 마법을 부린 것처럼 그 다음 날 뚝딱, 설 차례와 명절 음식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3. [한국일보][우리말 톺아보기] 얼레리꼴레리

어린아이들이 ‘누구는 누구를 좋아한대요’ 혹은 ‘누구는 오줌싸개래요’라고 또래 아이를 놀릴 때 ‘얼레리꼴레리’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런데 ‘얼레리꼴레리’는 무슨 뜻이고, 어디에서 유래한 말일까?

‘얼레리꼴레리’는 ‘알나리깔나리’의 변이형(變異形)으로 쓰이는 말인데, ‘얼레리꼴레리’ 대신 ‘알나리깔나리’가 표준어로 등재되어 있다. ‘알나리깔나리’는 어리고 키가 작은 사람이 벼슬한 경우를 놀림조로 이르던 말인 ‘알나리’에 말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깔나리’를 덧붙여 만든 말이다. ‘알나리’는 접두사 ‘알-’과 명사 ‘나리’가 결합된 말인데, 접두사 ‘알-’은 ‘작은’의 뜻을 더한다. 그래서 ‘작은 바가지’를 ‘알바가지’라고 하고, ‘어린아이의 오줌을 누이는 작은 요강’을 ‘알요강’이라고 한다. 

우리말에는 ‘알나리깔나리’와 같이 말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후렴처럼 다른 말을 덧붙여 쓰는 말들이 많이 있다. 

미주알고주알’은 항문을 이루는 창자의 끝부분을 가리키는 ‘미주알’에 말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고주알’을 덧붙인 말이고 ‘휘뚜루마뚜루’는 ‘닥치는 대로 대충대충’이라는 뜻의 ‘휘뚜루’에 역시 말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마뚜루’를 덧붙인 말이다.

‘어중이떠중이’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어 쓸모가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어중이’에 ‘떠중이’가 덧붙어 이루어진 말이고, ‘주저리주저리’ 역시 말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주저리’를 겹쳐 쓴 말이다. ‘주저리’는 볏짚을 엮어서 김칫독에 씌울 때 쓰는 물건인데, 볏짚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모습에서 유래해 ‘주저리주저리’가 ‘너저분하게 이것저것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모양’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4. [조선일보][일사일언] 악보를 못 버리는 이유

주말에 이사를 했다. 책과 악보만 스무 상자가 넘었다. 크고 무거운 악보들을 하나하나 꺼내 상자에 넣는 노동을 몇 시간씩 반복하니 허리도 아팠다. 이걸 꼭 다 가지고 있어야 하나 하는 회의도 절로 들었다. 무거운 상자를 나르는 분들께도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이삿짐을 싸면서 보니 한동안 잊고 있었던 악보가 가득했다. 녹음을 듣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곡을 이해할 수 없어서 샀던 '시벨리우스 교향곡 3번'의 총보는 벌써 20년 가까이 가지고 있다. '엘가 교향곡 2번'은 런던에 처음 일하러 올 때 연주했는데 그전엔 들어본 적 없는 곡이라 나름대로 열심히 듣고 악보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밤낮으로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나 '봄의 제전'을 끼고 다니던 때도 있었다. 어느덧 그 악보들에는 음악만이 아니라 내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음악 하는 사람이지만 나는 들은 음악을 쉽게 기억하는 편이 아니다. 소리는 나는 순간부터 사라져 가는 것이기도 하다. 악보를 한때 열심히 읽었다고 해서 꼭 지금 그 곡을 잘 아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시간을 그 악보와 함께 보냈는데도 지금 보면 내가 연필로 표시해놓은 것조차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런던의 지휘 선생님 한 분이 수업 중에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학생 시절 도스토옙스키 소설에 심취해 밥도 굶고 책을 읽을 정도로 그 세계에 빠져 지냈는데 지금은 책의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내용을 다 잊고 나서도 무엇인가는 분명 자신에게 남아 있다면서, "어쩌면 다 잊고 나서 남은 그것이야말로 진짜가 아닐까?" 하고 되물으셨다.


지난주에 무슨 곡을 연주했는지도 가물가물하다든가, 전에 연주했던 곡인데 처음 보는 것만 같은 악보를 앞에 놓고 망연(茫然)해질 때, 그 말씀으로 위안을 삼는다.


5. [동아일보][표정훈의 호모부커스] 타자기

전동 타자기를 산 청년은 노트에 적어둔 시들을 밤새 쳤다. 매일 밤 청년은 타자기를 갖고 놀았다. 이듬해 여름 폭우로 둑을 넘은 물이 마을로 밀려들 즈음 청년의 어머니가 집을 향해 내달렸다. 물이 차오르던 집에서 어머니는 타자기를 들고 나왔다. “아들이 집에 오면 이것만 갖고 노는데 없어지면 큰일 나지.”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1995년) 수록 시 대부분을 그 타자기로 쓴 시인 허연의 이야기다.

시인 안도현은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1985년)을 원고지에 썼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시집 ‘모닥불’(1989년), ‘그대에게 가고 싶다’(1991년)는 타자기로 쳤다. 컴퓨터의 ‘무진장 지웠다가 다시 쓸 수 있는 기능에 매료된’ 시인은 네 번째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1994년)을 286 컴퓨터로 입력했다. 프린터 출력 원고를 우편으로 보낸 것은 다섯 번째 시집 ‘그리운 여우’(1997년)가 마지막이었다. e메일 전송 시대가 열린 것.

작가 장정일은 1982년 설 하루 전날 클로버 타자기를 8만 원 주고 샀다. 작가는 이 타자기로 시집 여러 권에 나눠 실을 만큼 많은 시를 썼고, 중편소설 ‘아담이 눈뜰 때’를 썼다. 시인 기형도(1960∼1989)는 대학 시절 교내 문학공모에 당선된 후 상금으로 세계문학전집과 수동 타자기를 사고는 친구 성석제에게 ‘배부른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너도 상금 받으면 먼저 책하고 타자기부터 사.”

노벨 문학상 수상 시인이자 가수인 밥 딜런은 수동 타자기로 3년간 직접 자서전 원고를 썼다. 처음 타자기 앞에 앉았을 때만 해도 오래된 일을 떠올릴 자신이 없었지만, 일단 써 내려가기 시작하자 ‘기억의 창고’가 열리는 것 같았다고 한다. 

1873년 레밍턴사가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타자기를 내놓았다. 마크 트웨인이 ‘미시시피 강의 생활’(1883년)을 타자기로 쓴 이후, 한 세기 이상 이어진 ‘탁 타탁 타타탁∼’ 소리는 사실상 멈췄다.

“타자기는 인간이 말하는 방식 그대로 쓴다”고 말한 헤밍웨이, 타자기로 “시와 산문을 두드려 만든다”고 했던 영국의 계관시인 존 메이스필드, “잊어버린 추억을 불러내어 외솔타자기로 몸과 마음을 빚는다”고 한 시인 오탁번…. 소리의 리듬이 글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손끝의 느낌이 몸을 일깨우는 타자기는 단순히 글 쓰는 도구만은 아니었다. 새로운 이기(利器)를 대가로 치르고 이제 기억으로만 아득히 남은 것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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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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