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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서울신문]

1. 헌재에서도 모르쇠, 잡아떼기 일관한 최순실

국정 농단의 주범 최순실씨가 어제 헌법재판소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증인으로 나와 각종 의혹에 “모른다. 기억이 없다”며 모르쇠와 잡아떼기로 일관한 것은 어느 정도 예견했던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가 공개적으로 입을 연 것은 국정 농단 사태 표면화 이후 사실상 처음이어서 다소 기대감을 가진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변호인의 조력 없이 본인 목소리로 국회·대통령 측 대리인단에 어떤 답변을 내놓느냐에 따라 박 대통령의 헌법 유린 여부와 뇌물 혐의의 윤곽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결과는 실망 그 자체였다. 최씨는 후안무치한 태도와 앞뒤 안 맞는 답변으로 국민과 헌법기관을 다시 한번 농락했다.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에는 철저히 잡아떼기로 맞섰다. 때로는 누가 증인이고, 누가 심문하는 사람인지 모를 정도로 당당하기까지 했다.



그는 청와대 출입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몇 차례 출입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왜 들어갔는지는 사생활이라서 말하기 곤란하다고 요리조리 답변을 피했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으로부터 남재준 국정원장 등 17개 부처 장·차관 인사 자료를 넘겨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일 없다고 딱 잘랐다. 이 자료는 검찰이 최씨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해 확보한 것인데도 태연하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최측근이었던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씨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추천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김 실장은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고, 고영태가 모든 것을 꾸몄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마치 ‘숨은 쉬지만 공기를 마신 건 아니다’라는 식의 답변 태도가 아닌가. 최씨가 “미르재단, 더블루K 어디를 통해서도 돈을 한 푼도 받은 적 없고, (정유라의 승마 지원 의혹과 관련해) 어떤 이득이나 이권을 취한 적도 없다”며 “그게 증거가 있나요”라고 작심한 듯 언성을 높이는 대목에서는 몰도덕의 끝을 보는 듯했다.

그가 시간을 끌기 위해 사법체계를 농락하고 있으며, 그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날 답변에서도 그는 ‘박 대통령 구하기’에 급급한 흔적을 곳곳에서 노정했다.

만에 하나 최씨가 시간이 지날수록 시중 여론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에서 계속 진실을 호도하려 든다면 그것은 대단한 오판이자 착각이다. 국민의 분노는 이미 극에 이르러 도저히 그를 용납할 수 없는 지경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2. 여행객 성폭행 피해 외면한 대만 한국대표부

대만을 여행하던 한국 여학생들이 현지 택시기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현지 택시기사가 수면제를 탄 요구르트를 여학생들에게 권해 정신을 잃게 한 뒤 치밀한 계획에 따라 성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현지 경찰에 의해 밝혀졌다. 어제 현지 언론에서 피의자인 대만 택시관광 운전기사가 성폭행 사실을 인정했고 최고 종신형까지 가능한 중범죄라는 보도가 나왔다.

여행 도중 있어서는 안 될 범죄를 당한 것도 개탄스럽지만 문제는 성폭행을 당한 이후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의 대응이다. 피해자들이 14일 새벽 3시 40분 한국대표부에 전화를 걸자 담당자가 “신고 여부는 알아서 하라”고 응답했다고 주장했다. 전화를 걸었던 피해자 1명은 대만 여행 관련 사이트에 “도움을 요청하려고 전화했더니 ‘자는데 왜 이 시간에 전화를 하느냐’고 말했다”는 글을 게재했지만 외교부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외교부는 해명 자료를 통해 “성폭력 피해에 대한 신고 여부는 당사자들이 결정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날이 밝아 신고하게 되면 연락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알아서 하라’는 식의 황당한 대답을 들은 피해 여학생들이 한국대표부의 도움은 포기하고 결국 현지 교민들의 도움으로 경찰서에 직접 신고했다. 자국민 보호를 위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재외공관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회의가 드는 대목이다.

지난해 12월 주칠레 공관에서 우리 외교관의 미성년자 성추행 사건으로 국가 망신을 시키더니 이번에는 성폭행 여학생들이 절실하게 요청한 도움마저 외면한 것이다. 외교 당국은 피해자와의 통화 내용 등을 가감 없이 공개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하며 문제가 있다면 관련자는 물론 지휘 책임까지 물어야 한다.

재외 국민이 700만명을 넘어섰고, 해외 관광객 수도 한 해 1000만명을 돌파한 지 오래지만, 재외공관이 자국민 보호에 소홀하면서 높은 사람들의 의전에만 신경을 쓴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헌법 2조 2항에도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돼 있다. 국민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도 국가는 자국민 보호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것이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다. 외교 당국의 통렬한 자성과 후속 조치를 기대한다.



3. 이재용 영장, 여론몰이식 수사는 경계해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장고 끝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 카드를 빼들었다. 이 부회장에게는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횡령,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증죄) 혐의가 적용됐다.

특검은 이 부회장을 뇌물공여 피의자로 불러 22시간 동안 조사하고서도 나흘간이나 신병 처리를 결정짓지 못했다. 그만큼 사안이 복잡하다는 뜻이다. 한때 불구속 전망까지 나오기도 했으나 특검이 정공법을 택한 것은 이 부회장을 풀어 주면 자칫 이번 뇌물수사의 정점인 박근혜 대통령을 옭아맬 수 없다고 판단한 때문인 듯하다.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욱더 중요하다”고 한 특검보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특검의 결정에 대해 재계 등 일각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검이 대통령 뇌물죄 처벌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자 기업인을 제물로 사용하는 ‘기업 특감’에 몰입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검이 이 부회장의 신병 처리를 쉽게 결정짓지 못한 것은 현 경제 상황과 각계의 우려를 들어 시간을 두고 충분히 고민했다는 일종의 명분 쌓기용일 수도 있지만, 뇌물죄 입증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다툴 부분이 많은 만큼 뇌물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는 이 부회장 측과 특검은 법원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청탁→합병 성사→최순실씨 모녀에 대한 지원’으로 일이 진행됐다고 특검은 보고 있다. 삼성의 최씨 딸 정유라씨에 대한 지원이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이 합병 성사에 대한 대가성 뇌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 측은 대통령의 강요에 의해 낸 돈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상반된 주장을 하는 상황에서 영장 청구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특히 영장 청구가 마치 징벌의 수단으로 여겨져서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신분이 분명하고 도주 우려가 없는 피의자는 불구속 수사하는 원칙도 세워야 한다. 모든 피의자에게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 재벌 총수라서 봐줘서도 안 되지만 여론을 의식해 불이익을 받아서도 안 된다.

삼성이 최순실씨 모녀에게 돈을 지원한 시점이 합병 전이 아니라 합병 이후라는 점에서 먼저 뇌물을 주고 나중에 대가를 얻어내는 통상적인 뇌물 사건과는 다르다. 이를 근거로 삼성 측은 뇌물죄가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검은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합병 이전에 최씨 일가 지원에 합의했는지, 합병 문제를 대통령과 논의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 특검팀은 삼성 측과 법원에서 격렬하게 다툴 상황을 염두에 뒀는지 궁금하다. 특검이 이 부회장 구속에 성공하면 박 대통령의 뇌물죄 입증 역시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 한다. 반대로 실패하면 최종 타깃인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매일신문]

4. 문재인, 사드 배치 입장 분명히 하고 국민 선택 받으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놓고 이른바 ‘잠룡’(潛龍)들이 확연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바른정당의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 보수 진영 인사가 모두 찬성하고 있는 가운데 진보 진영의 안희정 충남지사도 같은 의견이다. 사드 배치에 동의하지 않지만 국가 간 협상을 뒤집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안 지사의 주장이다.



반면 진보 진영 인사는 모두 반대다. 그러나 약간씩 차이가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확실한 반대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반대에서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 완성 때까지 시한부 배치’라는 조건부 반대로 바뀌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좀 혼란스럽다. 당론은 반대지만 안 전 대표는 “차기 정부에서 국익을 최우선으로 검토하고 외교적 수순을 밟아야 한다”는 연기론이다.



이런 가운데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찬성도 반대도 아닌 모호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해 사드 배치가 확정된 직후 ‘재검토`공론화’에서 10월에는 ‘북핵의 완전 폐기를 위한 외교적 노력’이란 입장을 거쳐 12월에는 “다음 정부로 넘기라”로 바뀌었다. 하지만 지난 15일에는 “반드시 철회하는 것을 작정하고 (다음 정부로) 넘기라는 것이 아니다”며 다시 말을 바꿨다.



17일 정식 발간되는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에서는 더욱 헷갈리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어쨌든 지금은 한미 간 협의를 했고, 그나마 효과를 볼 수 있다면 북핵으로 불안해하는 국민에게 심리적 불안을 덜어주는 정도고, 북한을 압박하는 효과가 있다면 그런 정도로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선불교의 공안(公案)을 대하는 것 같다. 사드가 필요하다는 것인지 아닌지 보통 사람의 문해력(文解力)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문 전 대표는 차기 대권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 사드 배치를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분명히 밝히고 국민의 선택을 받으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도 저도 아닌 말로 사드 배치 문제를 피해가는 행동은 비겁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5. 포스코건설의 이상한 중앙선 복선화 공사, 그냥 넘길 일 아니다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지만 회사 측은 마땅한 대책을 외면하고 있다. 게다가 회사 측은 당초 설계에 반영된 우회도로 개설을 하지 않아 공사비 사용을 둘러싼 의혹마저 사고 있다. 민원 해소와 설계 부정 등을 가리는 당국의 수사가 필요해 보인다.



포스코건설은 총연장 148.1㎞ 중앙선 복선화 공사 12개 공구 가운데 제11공구 시공사로, 군위군 고로면 화북2리 터널공사도 맡았다. 2013년 발주처인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설계`시공 일괄입찰(턴키) 방식으로 수주해 터널공사와 관련, 비포장 농어촌 도로 문제로 우회도로 개설을 설계했다. 하지만 공사 2년이 넘도록 우회도로 개설을 않고 농어촌 도로를 이용했다.



민원을 일으킨 설계 위반보다 더 이상한 점은 포스코건설의 설계 부실 의혹이다. 포스코건설은 2013년 2월 11공구 턴키입찰이 결정될 당시 농어촌 도로가 비포장이어서 우회도로를 내겠다면서 설계했다. 그러나 실제 농어촌 도로는 설계 당시 이미 전체 2.2㎞ 길이 중 440m만 남기고 2013년 완공됐다. 포스코건설이 공사 현장의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았으며 부실 설계를 했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런 부실 설계 의혹은 공사비를 둘러싼 또 다른 의혹을 낳고 있다. 우회도로 개설에 대한 공사비 반영이 빠질 수 없어서다. 그러나 설계와 달리 우회도로 개설을 하지 않았으니 공사비 행방이 문제일 수밖에 없다. 포스코건설 측의 “우회도로 개설 취소를 위한 설계 변경을 요구했으나 발주처에서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는 해명은 더욱 의심스럽다. 발주처와 시공사 간의 짬짜미 의혹도 충분하다. 포스코건설이 공사장 암석과 흙 등 야적과 농어촌 도로 이용 대가로 수억원을 썼다는 소문도 의혹을 부채질하고 남음이 있다.

 
농촌 주민을 무시하는 대기업 횡포에 따른 주민 피해 대책과 함께 우선 밝힐 일은 설계를 둘러싼 의혹이다. 이는 국민 세금의 낭비와 관련돼서다. 수사 당국이 나서서 뭇 의혹을 밝혀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이데일리]

6. 기댈 게 로또뿐이라는 '불황의 역설'

불황이 사행심을 자극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로또 판매량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는 게 그것이다. 복권위원회는 어제 지난해 로또복권 판매가 금액으로 3조 5500억원, 판매량 기준 35억 5000 게임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판매량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이고, 판매액은 역대 2위라고 한다. 경기 침체로 서민들 살림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는데 복권사업자만은 호황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로또 판매 사상 최대 기록은 반갑지 않다. 오랜 불황 탓에 월급는 빼고 모든 것이 다 올라 미래가 불안해지자 ‘한탕’에 기대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경기가 나쁠수록 술·담배와 함께 복권이 많이 팔린다는 ‘불황의 역설’이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 2조원대에 머물렀던 로또 판매는 불경기가 깊어진 2014년 3조원대로 늘어나더니 2015년(6.8%), 2016년(9%) 연속 증가세다.

로또가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없지는 않다. 판매액 중 당첨금과 수수료, 경비를 제외한 42%를 저소득계층 지원과 문화·예술·체육 진흥사업 등에 사용한다. 하지만 복권은 대개 서민들이 사기 마련이다. 정부가 해야 할 책무인 취약계층 주거안정이나 일자리 창출, 문화예술 진흥 등의 사업을 서민들 호주머니를 털어 해결하면서 생색을 내는 것은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다.

‘길 가다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보다도 낮은 814만 5060분의 1이라는 당첨 확률을 고려할 때 로또복권의 사행성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한탕주의는 잠시 희망에 그칠 뿐이다. 자칫 ‘대박 중독’에 빠져 삶이 더 망가질 우려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인생 역전’의 허황한 꿈에 젖어 연간 3조원 이상의 복권이 팔리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소비와 투자, 수출이 동시에 가라앉으며 올해 성장률이 2%대에 그칠 것이라고 한다. 실업자는 이미 100만명을 넘어섰고 가계부채 폭탄은 언제 터질지 불안한 상황이다. 중국·일본과의 외교 갈등,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대외 여건도 심상치 않다. 이래저래 로또에 기대는 이들이 더 늘어나게 생겼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조기 대선에 눈이 팔려 민생은 뒷전이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7.특검팀, 재벌 총수들을 희생양 삼으려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어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인 최순실씨에게 모두 430억원을 지원했으며, 그것이 대가를 바란 행위였다는 게 박영수 특검팀의 판단이다. 경영권 승계 문제가 걸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의결에서 국민연금의 지원을 받은 대가라는 것이다. 특검팀이 지난 12일 이 부회장을 소환해 밤샘 조사하고 사흘 만에 내린 최종 결론이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를 법리적으로 옳고 그르니 따질 생각은 없다. 법리에 누구보다 밝은 특검팀이 어련히 알아서 판단했으려니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부회장에 대한 사법처리로 인해 삼성전자는 물론 우리 경제 전반에 걸쳐 곧바로 들이닥칠 파장을 떠올리면 심정이 착잡하기만 하다. 삼성전자가 국내 간판기업으로서 세계 시장에서의 비중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진작부터 안팎의 눈길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식이라면 구속 대상이 이 부회장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것이 명백한 뇌물이라는 게 특검팀의 판단인 모양인데, 두 재단에 돈을 낸 기업이 어디 삼성전자뿐인가. 현대차그룹과 LG, 포스코, 한화, KT 등 모두 53개 기업에 이른다. 특검팀이 이와 관련해 조만간 SK와 롯데, CJ 등 다른 재벌 총수들에게로 수사 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라는 얘기도 들려온다.

가뜩이나 우리 경제가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판국에 특검 수사까지 겹침으로써 총체적인 난국에 처하게 된 꼴이다. 기업 구조조정으로 실직자가 갈수록 늘어나는 처지에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도 취직자리가 묘연한 실정이다. 기업 총수들을 엄격한 법 조항으로 옭아맨다면 투자는 더욱 제한될 테고 일자리 역시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그렇지 않아도 탄핵정국으로 미래가 불확실한 와중에 새해 들어서도 기업들의 경영계획 착수가 늦춰지는 분위기라 한다.

특검팀의 수사 방식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 혐의를 입증하려고 재벌 총수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특검 수사가 정상궤도를 벗어나 무리하게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얘기다. 특검팀으로서는 탄핵혐의 입증이 원래 임무인 만큼 여기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일만큼은 없었으면 한다.



[세계일보]

8. 나사 풀린 근무기강으로 국가 외교 어찌 챙길까
피해 신고를 받은 현지 한국대표부 직원의 불성실한 대응이 더 충격적이다. 피해 여성은 대만 여행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대표부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전화를 하자 ‘자는데 왜 이 시간에 전화를 하느냐’는 면박을 들었다고 했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변을 당해 현지 공관에 전화했는데 이런 일을 겪는다면 누구나 재외 공관의 존재 이유에 의문이 들 것이다.

외교부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당직 행정직원이 전화를 받고는 경찰 신고 절차를 알려준 뒤 “경찰에 신고를 하면 연락을 달라”고 했고, 신고 다음날 병원에서의 검사를 돕는 등 영사지원을 했다는 것이다. 수긍할 수 없긴 마찬가지다. 전화를 받는 즉시 현장으로 달려가 피해자를 보살피는 게 정상적인 대처일 것이다. 알아서 신고하라는 얘기를 들으려고 현지 공관을 둔 게 아니다. 정부는 현지 공관 대처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 관련자를 엄단해야 한다.

외교부는 “해외에서 어려움이 생길 때 영사콜센터나 공관에 연락하면 도움받을 수 있다”고 공언해 왔다. 하지만 재외 공관원이 국민 보호를 소홀히 한 사례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멕시코에서 인신매매범 누명을 쓰고 1년째 복역 중인 30대 여성의 경우 사건 초기에 현지 공관이 도움을 주지 않았고 되레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한다.



외국에서 범죄자로 몰리고도 현지 공관 관계자와 면담조차 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국민 보호에 무능할 뿐 아니라 현지 주민 대상 범죄까지 저지르는 판이다. 지난달 칠레 주재 외교관이 10대 여학생을 성추행한 게 현지 방송에 보도돼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지금 한반도의 주변 상황은 대전환을 예고할 정도로 변화의 소용돌이에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어제 미국·일본·중국·러시아의 주변 4강과 유엔 주재 대사를 긴급 소환한 것도 급박한 주변 정세에 치밀히 대응하기 위함일 터이다. 해외 공관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도 모자랄 판국에 직원들의 근무자세가 흐트러져 있으니 될 법이나 한 일인가. 정부는 나사 풀린 근무기강부터 조여야 한다.



9. 이재용 영장 청구… 사법처리는 법리에 충실해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어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혐의는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 위반(위증)이다. 뇌물공여 액수는 430억원으로 산정됐다. 특검은 최순실씨의 독일법인인 코레스포츠와의 220억원대 컨설팅 계약,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대한 16억원 후원,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204억원 출연 등을 모두 대가성 있는 뇌물로 봤다.

특검은 삼성과 박근혜 대통령을 특수한 관계로 설명한다. 이 부회장의 지원은 박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공단을 통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도와준 데 대한 답례로 보고 있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2015년 6월쯤 안종범 경제수석, 최원영 고용복지수석 등을 통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이 성사될 수 있게 잘 챙겨보라’는 박 대통령의 지시를 전달받아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의 사법처리를 놓고는 처음부터 논란이 많았다. 특검이 12일 이 부회장을 소환해 조사한 뒤 나흘이나 장고에 들어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매출 300조원이 넘는 글로벌 기업의 경영 공백과 경제적 충격을 고려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나왔으나 특검은 법과 원칙에 따라 사법처리하는 쪽을 택했다. 이규철 특검 대변인은 “국가 경제 등에 미치는 사안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특검의 사법처리는 재벌총수라 하더라도 ‘법 앞의 평등’이라는 대원칙을 재확인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사법적 단죄는 철저한 증거와 법리에 따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부회장을 사법처리하는 과정에서 애매한 구석이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번 뇌물죄의 주범 격인 박 대통령을 소환해 조사하지도 않은 마당에 이 부회장부터 사법처리한다는 것이 과연 법리적으로 타당하냐는 것이다. 권력의 압력에 저항할 수 없는 한국의 풍토도 고려해야 한다.



삼성은 박 대통령의 강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지원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을 독대한 자리에서 “한화로부터 승마협회를 넘겨받았으면 적어도 한화만큼은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책을 받고 승마 지원에 적극 나선 정황이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이 부회장의 구속 여부는 내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서 판가름난다. 그의 사법처리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바람직하지 않다. 법원은 오직 구체적인 증거와 법에 따른 판단으로 세간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만약 박 대통령 처벌을 위한 짜맞추기란 꼬리표가 따라다닌다면 경제도 잃고 사법정의도 잃는다.



10. 모르쇠와 궤변으로 되레 큰소리친 최순실

어제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에 나온 최순실씨의 증언 태도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그는 국회 소추위원단 질문에 시종 “모른다”, “말하기 어렵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로 일관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을 묻자 “어제 일도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 수사와 국회 청문회, 특별검사팀 수사로 드러난 사실까지 부정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이나 다름없다.

헌재 대심판정에 선 최씨는 팔색조의 연기자 같았다. ‘모르쇠’ 작전을 쓰다가 신문조서 효력에 대해 “검찰과 특검이 너무 강압적이고 압박적이라 거의 죽을 지경이다”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소추위원 측이 이권 개입 여부를 추궁할 때에는 “한 푼도 받은 적 없다”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정작 자신의 딸 정유라씨에게 승마 지원을 한 기업은 강탈당했다고 호소하는데 아무것도 받은 게 없다니 대체 말이 되는가.

변호인단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최씨 측 변호인단은 소추위원 측 질의에 대해 “수준 미달”이라고 비판했다. 자신들이 2차 변론 때 촛불 민심을 폄훼하고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들먹였다가 국민들로부터 ‘수준 미달’이란 평가를 받은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행동이었다.

최씨로서는 형사재판에 불리한 진술은 아예 하지 않겠다고 작심했을 수 있다. 탄핵심판을 지연시키고 박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속셈일지도 모른다. 의도야 어쨌든 간에 국정을 파탄 내고서 억지궤변만 계속 늘어놓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이라도 솔직히 털어놓고 국민에게 용서를 청하는 게 자신의 죄를 더는 일이다.

이제 진실 규명의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박 대통령은 최씨가 부인한 국정농단의 실상을 자세하게 국민에게 털어놓아야 한다. 검찰 조사와 헌재 출석을 거부한 채 일방통행식 기자간담회를 열어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국가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늦었지만 박 대통령이 헌재에 출석해 소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헌정질서의 수호자로서 최소한의 책무를 기대한다.





신문주요칼럼


1. [조선일보][일사일언] 버리는 연습

혼자서 여행을 다녀오셨다는 말에 함께 식사를 하고 있던 사람들 눈이 동그래졌다.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우리가 기억하는 한 손숙 선생님 곁에는 항상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이런 날씨에, 요즘 눈도 잘 안 보이신다는 분이 나 홀로 여행이라니….


"버리는 연습을 하는 중이야." 담담한 어조로 미소 짓는 선생님 얼굴이 오랜 시간 맑은 냇물 속에 잠겨 있던 돌멩이처럼 말갛다. "어디에다 버리시게요. 주우러 가게요." 누군가의 농담에 혹시 건강상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닐까 걱정하던 사람들이 까르르 웃어댔다.


"물건도 물건이지만 사람들하고의 관계를 정리하고 있어. 인연이 끊어질까 걱정하고 의무적으로 인사를 건네고.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러다 보니 서서히 진짜 소중한 것, 꼭 필요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신다는 말씀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가진 것이 너무 없다고 툴툴대는 나로서는 선뜻 '저도 따라 해볼래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버려야 되는 이유는 별로 없는데 버리지 말아야 되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은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여행 전 짐을 꾸릴 때 내 모습이 지금 딱 내가 사는 모습인 것 같다. 꼭 책 한 권을 가방에 우겨넣고, 혹여 무언가라도 쓸까 펜과 노트를 챙기고, 아로마 오일을 병째로 담아 넣고, 여름에도 시린 내 두 발을 위해 핫 팩까지 챙겨 넣는다. 내 방을 통째로 옮겨 넣는 게 빠를 판이다. 결국 가방이 닫히지 않는 상태에 이르면 그때부터 두고 가도 되는 물건을 골라내기 시작한다.


매번 가방을 챙길 때마다 이렇다. 두려움 때문이다. '혹시'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 대상에 대한 집착을 낳는다. 알면서도 나는 아직 꼭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 사이에서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저절로 되지는 않는 것 같아. 그래서 계속 연습 중이야." 환하게 미소 짓는 선생님 얼굴에 활짝 피어나는 주름 꽃이 아름답다. 그 미소가 미적거리던 내 마음을 단번에 바로잡아 줬다. 하루에 한 가지만이라도 버리는 연습을 나도 당장 시작해봐야겠다.


2. [동아일보][횡설수설] 굿바이, 지상 최대의 쇼!

1953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지상 최대의 쇼’는 화려한 서커스의 애환을 그린 영화다. 대형 천막 아래 위험한 묘기를 펼치는 곡예사들과 우스꽝스러운 피에로, 온갖 동물이 어우러진 서커스의 마법에 대한 아낌없는 경의를 담고 있다. 제임스 스튜어트와 찰턴 헤스턴 주연 영화다. 실제 모델은 링링브러더스 서커스단으로 당시 단원들과 동물들도 영화에 나온다.

146년 전통의 링링 서커스단의 규모와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19세기 중반부터 전용 열차를 타고 순회공연을 다녔는데 전성기엔 단원 1400명에 코끼리 수만 50마리를 헤아렸다. 그러나 TV 영화에 이어 게임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마침내 링링브러더스 앤드 바넘 & 베일리 서커스의 모회사인 펠드엔터테인먼트가 해체 결정을 발표했다. 관객 감소와 운영비 증가로 인한 경영난 끝에 5월에 고별 공연을 한다는 내용이다.

링링 서커스단 해체는 시대 변화에 따른 것이지만 결정타는 코끼리들의 출연 중단이었다. 1882년 코끼리 ‘점보’가 무대에 등장한 이래 코끼리 쇼는 서커스단의 상징이 됐다. 2000년대 들어 조련 방식을 둘러싸고 동물보호단체와 갈등을 빚으면서 긴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결국 작년 5월 모든 공연에서 코끼리를 빼기로 결정했다. 코끼리 43마리가 플로리다 주 보호센터로 보내진 뒤 관객이 격감했다. 서커스단 측은 “많은 사람이 코끼리가 공연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도 막상 코끼리가 나오지 않으니 서커스를 외면했다”고 탄식했다. 

동물보호단체는 “지상에서 가장 슬픈 쇼의 끝을 알리게 됐다”며 해체 소식을 반겼지만 문득 궁금해진다. 야생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코끼리들, 곡예단에서 보호센터로 이주해 얼마나 행복해졌을까. 소설 ‘책상은 책상이다’의 작가 페터 빅셀은 이런 말을 했다. ‘과거, 그러니까 옛날이 지금보다 나은 이유는 지금보다 뭔가 하나 더 있기 때문이다. 추억이다.’ 아슬아슬한 긴장과 신나는 웃음소리로 가득한 지상 최대의 쇼가 막을 내린다. 아날로그 시대의 추억도 함께 커튼 뒤로 사라지게 됐다.


3. [아시아경제][일터삶터] 스키도 정답이 있는가

겨울만 되면 온통 스키 생각뿐이다. 중년 스키어들 사이에 꽤 알려진 스키동호회 회장을 맡으면서 이번 시즌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스키 실력은 내로라하는 국내 상급 슬로프 어디든 어렵지 않게 내려올 수 있는 수준이다. 7년여 전 초급 슬로프에서조차 제대로 제어도 못 하는 왕초보였으니 크게 발전한 셈이다. 그럼에도 스키 고수들은 나의 폼의 허점을 지적하기 일쑤다. 제대로 안 타면 관광스키란다.



진정한 고수만 이런 식으로 지적하는 게 아니다. 자신을 스키어로 자처하는 자라면 누구나 자연스레 다른 스키어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어딘가 교과서적인 폼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우리 스키어들은 리프트만 타면 슬로프를 내려가는 다른 스키어들을 보게 된다. 그냥 보는 게 아니다. 폼을 본다. 슬로프에서도 이런 식의 관찰은 이어진다. 스키어들은 어느 정도 실력이 되면 중급 슬로프든, 상급 슬로프든, 짧든 길든, 일정 거리만 차근차근, 한 턴 한 턴 FM대로 타고 내려와서 고속도로 갓길로 여겨지는 슬로프 가장자리에 선다. 그러곤 다른 스키어들을 지켜본다



그러면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평가한다. ‘턴은 잘 되는데 외향경이 전혀 없어.’ ‘저건 몸턴이야, 몸턴.' ‘잘 탄다 정말. 난 언제 저렇게 타나?’ ‘어, 저 사람, 언제 저렇게 실력이 는 거야? 강습 받나?’ 매번 이렇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늘 스키를 타고 있으면 타인의 ‘눈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국내에서 스키 폼의 기준은 아무래도 대한스키지도자연맹(KSIA)이 채택한 스탠더드가 으뜸이다. 누구나 레벨 시험을 통해 레벨 1부터 3을 부여 받을 수 있다. 스키지도자 자격증이므로 강사를 목적으로 하는 이들도 당연 있지만 일반인도 흔히 시즌이 되면 가장 기초적 단계인 레벨 1에 도전한다. 여기에 KSIA는 매년 기선전을 통해 일정 숫자의 데몬까지 뽑는다.


말 그대로 demonstrator(데몬스트레이터)의 준말인 데몬은 시범자인 만큼 곧 살아 있는 교과서, 즉 ‘정답’으로 간주되는 폼의 표본을 데모할 수 있는 이들이다. 레벨 시험을 앞둔 지망생들은 이들의 유튜브 비디오를 밤새 돌려보기도 한다.

물론 슬로프에 나가서 연습도 틈틈이 한다. 레벨 테스트를 앞둔 스키어들이나, 시즌 강습을 받는 이들은 이렇게 열심히 연습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일반 스키어들 대다수도 스키를 탄다기보다는 연습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나도 본의 아니게 매번 연습만 하다 접는 듯하다.

그래서 요즘 이런 생각이 든다. 스키에도 정답이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스키에서도 정답을 찾는다. 늘상 이렇게 무엇이든, 어디서든 어김없이 ‘정답’을 찾는다. 

얼마 전에 평창에 있는 한 스키장에서 동호회 회원들과 한참 스킹하던 중 넘어져 있는 외국인 한 명을 발견했다. 손을 내밀어 일으켜 주고 보니 미국사람이었다. 짧은 잡담을 나눈 후 그가 동료들과 합류해서 타는 걸 지켜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맞다. 저들은 다르다. 우리는 연습하지만 저들은 스키를 그저 즐긴다. 과정을 즐기는 거다.

그 자리에서 내심 반성했다. 나는 너무나도 기준에 치우쳤다. 스키도 과정을 즐길 필요가 있다. 스키 자체를 즐기는 걸 목적으로 하자. 한국인과 서양인의 차이점은 여행만 놓고 봐도 대번 느낀다. 그들은 여행 과정 자체를 즐기지만 우리는 최대한 적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걸 보려 한다. 과정을 즐기지 못하는 까닭이다. 내가 기업 연수생들에게 말하지 않는가. 정확성보다 유창성이 더 중요하다고. 스키로 따지면 레벨 1 자격증을 따는 것보다 편하게, 안전하게 소위 관광스키라도 타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도 슬로프로 향한다. 연습하러. 평가하러. 정말이지, 나도 못 말린다.


4. [서울신문][홍태경의 지구 이야기] 과학의 크로스오버

크로스오버(crossover)는 본래 장르가 다른 음악의 섞임을 가리키는 말이다. 흔히 연주자나 가수가 자신의 음악 장르와 다른 연주나 노래를 부르는 경우를 일컫는다. 조수미, 플라시도 도밍고 같은 세계적 성악가들이 팝이나 대중가요를 불러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던 일이나 국악과 클래식의 접목이 크로스오버의 좋은 예다. 최근 들어서는 다양한 분야로 그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 자연의 이해를 위해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는 과학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학제 간 융합 연구는 학문 분야를 뛰어넘는 다양한 시도의 산물이다. 지진과 관련한 다양한 현상을 연구주제로 삼는 지진학에서도 다양한 크로스오버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유체역학에서 활용되던 수치모사 방법이 지진학과 결합되면서 정확한 전(全) 지구 지진파 전파 수치 모델링이 가능해지고 있다.

지진학적 연구기법은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지진파(탄성파)는 성질이 다른 층을 만날 때마다 굴절과 반사를 거듭하는데 이 사실을 활용해 땅속 구조를 알아낼 수 있다. 탄성파를 활용한 석유 자원이나 광물 자원 탐사, 지하 공동 탐지 등이 이런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이뿐 아니다. 핵실험같이 강력한 지진파를 만들어내는 인공 폭발의 시간과 폭발량, 위치를 파악하는 데도 지진학적 기법이 쓰인다. 특히 핵실험 여부를 신속하게 판별하는 데 있어서 지진학적 기법 활용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북한 핵실험의 경우 폭발과 함께 발생한 지진파가 수천㎞ 떨어진 거리까지도 전파된다. 폭발 순간 다량의 에너지가 순식간에 방출되는 특성에 따라 인공 폭발에서는 특정 고주파수 대역에서의 증폭 현상과 강한 P파가 관측된다. 이러한 특성에 착안하여 은밀한 곳에서 행해지기 마련인 핵실험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탐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진학적 관측 기법이 각광을 받고 있다.

지진학적 기법은 사고 원인 조사에도 활용된다. 2001년 9·11 테러는 공중 납치된 두 대의 민간 항공기가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충돌한 사건이다. 항공기 충돌 후 두 빌딩은 차례로 무너져 내렸다. 당시 비행기 충돌과 붕괴로 만들어진 지진파는 10여㎞ 떨어진 컬럼비아대학 부설 연구소의 지진계에 고스란히 기록되기도 하였다.


이후 미국 표준기술연구소는 항공기 충돌에 의한 빌딩 붕괴 원인 조사를 할 때 항공기의 충돌시각, 충돌력, 건물 붕괴 과정을 분석하는 데 지진파형 자료가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또 9·11 테러 전까지 미국에서 가장 참혹한 테러사건인 1995년 미국 오클라호마 시청사 차량 폭탄 테러 사건 때도 인근에서 기록된 지진파형 분석을 통해 범인이 자백한 폭발물 양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분석에서 함정 침몰 원인과 침몰 위치 및 시간 확인에 백령도에서 기록된 지진파형 자료가 활용된 바 있다.


기후 변화 추이와 기상 모니터링에도 지진학적 연구 기법이 동원되고 있다. 온난화와 더불어 극지역 빙하의 용융과 붕괴가 가속화되면서 빙하지진의 발생 횟수가 증가함에 따라 극지 온난화에 대한 효율적인 모니터링 방법으로 응용되고 있다. 태풍과 같은 급격한 기상상태 변화에 따라 지진계 배경 잡음의 증가에 착안해 태풍의 궤적과 태풍 강도를 추정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인간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극한 지역과 외계 행성의 연구에 지진학적 기법을 통한 다목적 연구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폴로 달 탐사 당시 인류는 이미 4대의 지진계를 운용한 경험이 있다. 지금까지 약 1만 2000회가량의 월진이 기록되었으며 이 자료는 달 연구에 있어 소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과학 분야에서 크로스오버는 자연과 세상에 대한 인간의 끊임없는 호기심과 다양한 시도의 산물이다. 과학기술들 간 융합과 응용을 통해 자연과 세상을 바라보는 더 큰 창을 만들어 가고 그동안 확인할 수 없었던 다양한 사실들을 밝혀내고 있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그란 콜롬비아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의 콜롬비아연방공화국 ‘그란(랑) 콜롬비아 Gran Colombia’가 1819년 1월 17일 건국했다. 국토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파나마 전체와 코스타리카 페루 브라질 가이아나 일부였고, 수도는 보고타였다. 강력한 대통령제 국가로, 대통령은 헌법이 보장한 종신직이었다. 초대 대통령은 당연히, 독립 혁명전쟁을 이끌며 저 거대한 영토를 한 데 모은 시몬 볼리바르였다, 남미 민족ㆍ분리주의자들은 채 덜 끝난 독립전쟁을 위해 강력한 통일 국가와 볼리바르의 카리스마를 원했다.

스페인 식민지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1783년 태어난 볼리바르는 부모의 유산과 친지의 보살핌 덕에 본국 귀족 수준의 좋은 교육을 받으며 식민지 엘리트로 성장했다. 프랑스대혁명 영향으로 진보 자유주의적 가치를 신봉하던 여러 걸출한 지식인 독립운동가들이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성인이 된 뒤 혼자 유럽과 미국을 여행하며 또 다양한 지식인들을 만났다. 그러면서 남미 현실과의 대비 속에 나폴레옹 절대권력에 대한 저항의식과 미 연방국가의 가능성을 살폈다고 알려져 있다. 그가 남미로 돌아와 독립운동에 가담한 것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외사촌 마리아 테레사와의 짧은 신혼 끝에 사별한 직후인 1807년, 24세 때였다. 

그가 빼어난 전투 지휘관이었는지를 두고는 설이 엇갈린다. 그는 남미 여러 나라에서 숱한 전투를 치러 숱하게 승리했고, 괴멸적 패배를 겪기도 했다. 토착 군벌들의 지원을 받고 기사회생한 적이 적지 않았고, 스페인을 견제하기 위한 후발 제국주의국가들의 원조를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단일 국가 단위의 독립군이 아닌 남미 전역의 해방군 지휘자로 자신의 입지와 이미지를 굳혔다. 1819년 콜롬비아 해방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한 그는 잇달아 남미의 여러 나라를 독립시켰다.

그의 그란콜롬비아는 하지만, 독립 후 분리주의자들과의 알력과 내분으로 단명했다. 그는 1830년 대통령 직을 사임했고, 그란콜롬비아는 이후 약 1년 동안 4명의 임시ㆍ정식 국가수반이 교체되는 혼란 끝에 31년 12월 소멸, 개별 국가로 해체됐다. 볼리바르는 1830년 12월 17일 별세했다. 향년 47세. 그의 좌절된 이상은 남미인들의 아득한 염원으로 남아 20세기의 험한 수탈의 현실에 저항하며 연대하는 거멀못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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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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