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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선거판 휘젓는 '가짜 뉴스' 뿌리 뽑아야
중앙선관위가 ‘페이크 뉴스(가짜 뉴스)’와의 전쟁에 나섰다. 전국 17개 시·도 선관위에 ‘비방·흑색선전 전담 TF팀’을 편성해 가짜 뉴스에 의한 의도적인 여론 왜곡 움직임에 적극 대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면서 유권자들의 뉴스 소비가 온라인 중심으로 이뤄질 테고 이미 우리 사회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일상화한 만큼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릴 우려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가짜 뉴스는 사실 여부를 가리기도 전에 SNS 등을 통해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지게 된다는 점에서 영향력이 작지 않다. 폐해 역시 심각하다. 일단 나돌면 기정사실화된 상태에서 확대재생산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오는 9월 총선을 앞둔 독일도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관련한 가짜 뉴스가 판을 치면서 독일 정부가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퇴주잔 음복 소동’, ‘턱받이 앞치마 논란’ 등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둘러싼 인신공격성 비방이 대표적이다.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는 유엔협약 위반”이라는 가짜 뉴스도 시중에 나돌고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나주 남평 문씨 빨갱이 설’도 마찬가지다. 벌써부터 혼탁선거를 부채질하는 가짜 뉴스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마구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선관위는 가짜 뉴스를 만들거나 유포하는 경우 공직선거법을 적용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기로 하는 등 엄벌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가짜 뉴스’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데다 사전 예방보다는 사후 규제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불순한 의도로 은밀하고 교묘하게 만들어 퍼뜨리는 가짜 뉴스를 차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조만간 대선 정국이 본격화하면 각 후보 진영 간의 무분별한 폭로와 인신공격이 격화하면서 가짜 뉴스가 더욱 범람할 공산이 크다. 애초 가짜 뉴스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뿌리부터 잘라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후보 진영은 ‘페어플레이 공동선언’으로 공명선거를 실천에 옮기도록 하고 선관위는 예방 대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유권자들 역시 섣불리 가짜 뉴스에 휘둘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다.
2. 640조원의 국가채무 누가 갚을 것인가
국가채무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600조원을 돌파해 현재 640조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정부 지출이 최근 10년간 2배 이상 늘어난 결과다. 국민 1인당으로는 1250만원꼴이다. 신생아들도 태어나자마자 그만큼의 나랏빚을 떠안게 된다는 점에서 이미 대한민국의 재정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다시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가채무의 심각성은 국회예산정책처가 홈페이지에 게시한 국가채무시계에 잘 나타나 있다. 지금도 1초마다 139만원씩 늘어난다는 것이니, 하루 지나면 1200억원씩 쌓이게 된다. 국회에서 확정된 예산 규모에 따라 올해 말에는 국가채무가 682조 4천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데 따른 계산이다. 결국 국민들이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금액이라는 점에서 부담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금방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정부가 무분별하게 선심정책에 나선 탓이다. 우리 사회의 빈곤·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불가피한 일이지만 불요불급한 분야에까지 자꾸 눈길을 돌리다 보니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허투루 새나가는 누수 규모도 적지 않을 것으로 지적된다. 예산집행 담당자들이 자기 돈이 아니기 때문에 적당히 처리한 때문이기도 하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올해 조기 대선 출마를 선언한 대부분의 주자들마다 온갖 포퓰리즘 공약을 늘어놓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를 살려 재정을 뒷받침할 방안을 찾기보다는 빚을 내서라도 여기저기 더 나눠주겠다는 발상이다. 곶감을 당장 빼먹기는 쉽지만 그 뒷감당이 어려운 법이다. 최근 국가부도 사태에 이르러 사회적 혼란을 초래했던 그리스의 경우를 떠올리기만 해도 아찔하다.
우리도 일찌감치 20년 전 국가부도 사태를 경험한 바 있다. 그때는 ‘금 모으기’ 운동으로 위기를 극복했지만 앞으로 다가오는 위기 상황에서는 더 큰 희생을 치러야만 한다.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는 국가채무 규모가 그것을 말해준다. 더 늦어지기 전에 국민 모두가 허리띠를 한 눈금씩 졸라매겠다는 각오를 다질 필요가 있다. 정치인들도 포퓰리즘 공약에 있어서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3. 반 전 총장, 동생들 비리 명확히 해명해야
미국 검찰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친동생 반기상씨를 체포해 보내 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는 것을 지켜보는 국민의 심정은 난감하면서 착잡하다. 우리가 사건에 주목하는 것은 반 전 총장이 유력 대선 후보인 데다 불과 한 달여 전까지만 해도 유엔 수장으로 세계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인사의 친인척이 이런저런 이유로 비리 의혹을 사는 것은 국격과 국민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는 점에서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지난 10일 공개된 미국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의 공소장에 따르면 반기상씨는 아들 주현씨와 함께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경남기업 소유 건물 랜드마크72의 매각을 중개하는 과정에서 뇌물공여 등 해외부패방지법 위반 관련 혐의 4개와 돈세탁 관련 혐의 2개 등 모두 6개의 혐의로 미국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한국 법원은 이 사건과 관련해 이미 지난해 10월 “반주현씨는 경남기업에 6억여원의 계약금을 돌려주라”고 판결한 바 있다. 반 전 총장의 둘째 동생인 반기호씨도 2015년 미얀마에서 사업할 때 유엔 대표단 직함을 사칭하고 유엔으로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구설에 시달린다. 반 전 총장은 “기호가 광산사업을 한 적도, 유엔 직원 명함을 사용한 적도 없다”고 부인하고 나섰다.
반 전 총장은 “(반기상 사건은) 전혀 아는 바 없다. 엄정·투명하게 절차가 진행돼 궁금증을 한 점 의혹 없이 해소되길 희망한다”는 답변만 내놓고 있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히 풀릴 성격도, 상황도 아니다.
흑색선전이나 네거티브 공세와는 성격이 다른 팩트인 만큼 있는 그대로 국민 앞에 소상히 밝혀야 한다. 지난 10년간 그의 활동 무대였던 뉴욕 한복판에서 일어난 동생과 조카의 비리를 전혀 몰랐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국민이 얼마나 될까. 더욱이 우리는 지금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부정부패로 외국의 비웃음을 사고 있는 처지 아닌가.
반 전 총장이 비리 사실을 알고 방치했어도 문제이지만, 설령 몰랐다고 해도 수신제가(修身齊家)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반씨 일가의 문제를 넘어서 국가적으로도 무척 곤혹스러운 일이다. 대한민국은 부패한 리더십에 신물이 나고 있다. 물론 반 전 총장으로서는 억울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저 “모른다”고 선 긋기로 일관할 게 아니고 국민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그게 국민에 대한 책임이자 도리다.
4. 현실화된 ‘미국 우선주의’, 대응 고삐 바짝 죄자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세계의 우려 속에 그제 출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오늘부터 새로운 비전이 미국을 다스린다. 그것은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는 “무역과 세금, 이민 정책, 외교 문제에 관한 모든 결정은 미국의 노동자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 선거 때 익숙히 들었던 말이지만, 몇 차례나 연설에서 강조한 만큼 미국 우선주의는 적어도 4년간 미국의 정책을 결정하는 최상위 키워드가 될 것이다.
우리는 미국 우선주의가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가져올 부정적인 영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통상 면에서 보면 “미국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해외 기업을 겨냥한 압박은 현대자동차의 미국 31억 달러 투자 계획,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100억 달러 투자, 포드의 멕시코 공장 설립 취소 등으로 가시화했다. “미국 공장이 차례차례 문을 닫았다”는 말에 굴복이라도 하듯 자동차 회사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려는 행동에 나선 것이다.
백악관은 홈페이지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와 캐나다, 멕시코 등과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천명했다. 일본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 남짓한 TPP 경제권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으려 했으나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미국은 1980~90년대 중국, 일본, 멕시코와의 무역전쟁을 재현하고 양자 통상교섭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들 것이다. 한·미 자유무협협정(FTA) 파기 위협이 그것이며, 중국을 겨냥한 보호무역 강조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간과해서 안 될 것은 사람과 물건과 돈의 자유로운 왕래를 통해 경제가 발전하고 부가 축적됐으며, 미국 주도의 질서야말로 그 같은 자유스러운 무역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희생을 통해 타국이 풍요롭게 됐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며, 국제 분업이 진행되고 상호 의존이 심화돼 있는 게 국제경제의 현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은 자칫 투자환경 악화, 생산성 저하, 고물가를 유발해 미국의 경제상황을 후퇴시키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점을 미국에 인식시키고 한국의 미국 경제 기여도를 충분히 설명하는 한편, 통상 타격이 예상되는 다른 나라들과 긴밀히 공조하는 게 필요하다.
우리로서는 미국의 고립주의가 초래할 한·미 동맹의 약화도 걱정스럽다. 그런 점에서 어제 마이클 플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과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통화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구면인 두 사람은 “한·미 동맹이 강력하고 긍정적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얘기했다는데, 커지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한·미 군사 관계의 필요성을 재확인하고 공고한 틀을 짜겠다는 노력을 트럼프 행정부와 공유해 나가야 할 것이다.
5. 포퓰리즘 빠진 대선주자들, 600조 나랏빚 보라
나랏빚이 빠르게 늘고 있다. 22일 국회예산정책처의 국가채무시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640조 8700억원으로, 최근 10년간 2배 이상 증가했다. 국가채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중앙은행이나 민간 또는 해외에서 빌린 돈으로, 갚아야 할 빚이다. 다소 빚이 있어도 갚을 수만 있다면 큰 걱정이 안 되겠지만 우리의 사정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수년째 2%대의 경제성장률이 말해 주듯이 우리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으며,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경기 부진으로 세수 확대는 기대하기 어려운 반면 복지 등 써야 할 곳은 늘어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3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15%에 비해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무상보육, 기초연금 시행으로 한 해 복지 지출이 100조원을 돌파한 상황임을 고려하면 결코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이런 추세라면 2060년 국가채무 비율은 GDP 대비 157.9%로OECD 회원국 가운데 빚이 가장 많은 나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가 나온다. 곳간은 비고 부채만 늘어 각종 연금 등 복지지출에 차질을 빚지 말란 법이 없다.
나랏빚이 급속한 속도로 불어나는 것은 우리가 보아온 것처럼 포퓰리즘에 빠진 정권과 정치권에 그 책임이 있다. 이들의 포퓰리즘 합작은 당장 먹기엔 곶감이 단 것처럼 입에 잘 맞을지 몰라도 미래세대에게는 무거운 짐을 안기는 행위이다. 복지 포퓰리즘으로 실패한 유럽 여러 나라가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 우리는 똑똑히 보고 있다.
그런데도 집권에 마음을 빼앗긴 유력 대선 주자들은 공공부문 일자리 수십만개니, 기본소득제니 하는 솜사탕 같은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지금과 같은 불황에서 세금이 잘 걷힐 수 있을지, 세수 확대는 가능할지 등 돈 나올 구멍을 살펴보고 하는 말인지 궁금하다.
현재의 상황이 어렵고 미래가 불투명하다 보니 이런 공약에 군침이 도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세수 확보가 전제돼야 가능한 일이다. 적어도 대선에 뜻을 뒀다면 퍼주기식 공약보다 현재와 미래세대가 공존할 수 있는 국가경제시스템 구축에 고민해야 한다. 유권자인 국민은 이제 말도 안 되는 유혹을 구별할 줄 안다. 실현하기도 어려운 공약에 한두번 속아 왔는가. 천문학적인 예산이 드는 공약을 해 놓고 당선돼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식언을 하는 행위가 더 반복되어선 안 된다.
[세계일보]
6. 김기춘·조윤선의 입과 안종범의 입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지난 주말 나란히 구속됐다. 구속 직후 사표가 수리된 조 전 장관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장관 신분으로 구속된 불명예도 안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구속된 뒤에도 블랙리스트 관여 의혹을 계속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실장은 검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뒤 지난 50년간 모두가 부러워하고도 남을 출세가도를 달렸다. 검찰총장에 법무부 장관, 3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대통령 비서실장을 끝으로 공직을 마감했다. 변호사 출신인 조 전 장관도 국회의원을 거쳐 여성가족부 장관, 정무수석, 문체부 장관을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고위 공직자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반정부 성향의 인사들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다는 혐의를 받는 것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특히 문체부는 조윤선·김종덕 전 장관, 김종·정관주 전 차관 등 전현직 장차관이 모두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쑥대밭이 됐다. 국정기조로 내건 문화융성은 고사하고 의혹의 중심에 서면서 신뢰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최순실씨 국정농단 의혹 수사에서 박근혜 대통령 지시 사항이 자세히 적힌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 김 전 실장의 지시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는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이 핵심 증거로 활용되고 있다. 이들 자료는 관련자들의 진술과 증언 등과 함께 국가권력이 비선실세에 의해 어떻게 철저히 농락당했는지를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김영한 비망록을 두고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잡은 것과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안 전 수석은 “내 업무수첩은 증거가 안 된다”고 주장했다가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그는 재판에서 “대통령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묵비권까지 생각했다”면서 “변호인들이 역사 앞에 섰다고 판단하고 반드시 진실을 이야기해야 된다고 해서 고심 끝에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기하고 수사에 성실히 임했다”고 했다. 개인의 의리보다 국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은 역사의 법정에서 진실을 밝힌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무조건 모른다고 잡아떼선 안 된다. 사실 관계를 명명백백 밝혀야 국정 혼란의 조기 수습이 가능하다.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 국가가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통제해 내편 네편으로 가르는 잘못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7. 국정 혼탁할수록 안보만큼은 정부가 중심 잡아야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심상치 않다. 20일 정오부터 전투동원태세에 들어간다는 인민무력성 명령이 모든 북한군 부대에 하달됐다고 한다. 북한이 최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2기를 제작해 이동식발사차량에 탑재한 정황이 포착된 이후 도발 움직임이 더욱 가시화하는 형국이다.
지난해 탈북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경제 병진노선은 핵무기 같은 대량살상무기로 한국을 불바다로 만들어 한국군을 순식간에 무력화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 핵무기가 남한을 겨냥한 것이라는 경고다.
미국은 북의 도발에 대비해 최근 해상 기반 X-밴드 레이더를 서태평양 해상으로 이동시켰다. 한·미·일 해군은 20∼22일 이지스함을 동원해 북한 미사일을 탐지·추적하는 미사일 경보훈련을 실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직후 백악관 홈페이지에 올린 주요 정책 기조에서 “이란, 북한 같은 국가들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최첨단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핵·미사일을 중대한 위협으로 여긴다는 방증으로, 한반도 안보환경의 변화가 예상된다.
한·미 간 대북공조를 보다 긴밀하게 다질 시점이다. 마이클 플린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어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의 통화에서 “미국 새 행정부하에서 한·미동맹 관계가 강력하고 긍정적으로 발전해나갈 것”이라며 “함께 주요 안보 현안에 관해 긴밀한 공조를 해 나가자”고 했다. 청와대와 백악관 간 채널 가동을 계기로 고위 외교채널 구축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정부는 한·미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한·미 외교장관 회담도 조기에 개최해야 할 것이다.
한·미 동맹은 우리 안보의 기본 틀이다. 대통령 탄핵소추로 국정 혼란과 정상외교 공백이 초래된 만큼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에서 첫 단추를 잘 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따른 안보위기 상황을 효과적으로 관리해 나갈 수 있다.
정부가 중심을 잡고 헤쳐 가야 한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 방안을 미국에 제시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주한미군 배치 등 한·미동맹 강화 움직임에 대해 국내 일각에서 무작정 시비를 거는 일은 옳지 않다. 국정 혼란기에 안보를 정략적으로 접근하면 국가가 위험에 처한다.
[매일신문]
8. 반환점 도는 박영수 특검, 법치에 굳건히 서라
최순실 씨가 박영수 특검팀이 강압 수사를 한다며 또 출석을 거부했다. 이번으로 모두 네 번째다. 이유도 가지가지다. 지난달 27일에는 ‘건강 악화’, 4일과 9일에는 ‘정신적 충격’과 ‘재판 출석’이었다. 피의자가 사정이 있어서 출석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번도 아니고 네 번이나 출석을 거부한다면 필시 ‘숨은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한다. 특검 수사에 차질을 주려는 ‘시간 끌기’라고 의심할 만하다.
이에 대해 특검은 속을 부글부글 끓이고 있다. 박영수 특검은 “최 씨에 대해서는 정말 용서할 생각이 없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심경 이해가 간다. 최 씨의 지연작전으로 수사가 차질을 빚을 수도 있으니 그렇다. 하지만 ‘용서’ 운운 발언은 ‘오버’다. 용서하고 말고 할 게 무엇이 있나? 법률에 따라 수사하고 법률에 맞게 처벌하면 된다. 전자는 특검이 할 일이고 후자는 법원이 할 일이다. 특검은 제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그런 점에서 ‘용서할 생각이 없다’는 말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박 특검의 ‘오버’는 특검팀의 수사가 ‘용서할 수 없다’는 정서적 접근으로 흐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을 수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는 그 방증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특검이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법리’가 아니라 ‘반(反)재벌’ 여론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를 무시한 결과가 영장 기각이다. 법리를 구성하는 사실관계 다툼에서 진 것이다.
‘촛불’이 요구하는 ‘사회정의’와 ‘법리’는 다르다. 사회정의는 법리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실현된다. 이것이 바로 법치이다. 법치는 까다롭다. 촛불이 ‘국정 농단’ 피의자들의 엄중한 처벌을 요구해도 그들의 범죄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구속하거나 기소할 수 없다. 법치의 함정이자 ‘현실적’ 한계이다. 하지만 법치를 지향하는 한 어쩔 수 없다. 특검도 이런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특검은 이를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박 특검팀은 23일로 공식 수사기간(70일)의 절반을 지나게 된다. 앞으로 많은 피의자들을 수사해 구속하거나 기소할 것이다. 법치에 굳건히 선 박 특검의 활약을 기대한다.
[한국일보]
9. 블랙리스트 대통령 지시인지 증거 토대로 밝혀야
블랙리스트 작성ㆍ관리를 주도한 혐의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동시에 구속돼 특검 조사를 받고 있다. 앞서 법원은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며 두 사람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와 국회 위증 혐의로 청구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현직 장관 최초로 구속된 조 전 장관의 사표는 즉각 수리됐다.
김 전 실장은 청와대 정무수석실에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고, 조 전 장관은 청와대 정무수석 시절 리스트를 확대 작성해 관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약 1만 명에 이르는 이 명단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체부에 전달돼 집행된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특검 조사에서 혐의를 계속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문화예술계 좌파의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는 김 전 실장의 발언을 담은 김영한 전 정무수석의 비망록이나 문체부 전ㆍ현직 관계자의 증언을 감안할 때 특검이 사실을 입증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주목할 것은 탄핵심판대에 올라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을 알았거나 지시했을 가능성이다. 특검이 두고 있는 이 같은 혐의는 박 대통령이 ‘좌파’가 문화예술계를 주도한다는 인식 아래 이를 적극적으로 저지하려 든 정황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자신을 풍자한 코미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노무현 이야기를 다룬 ‘변호인’ 등의 영화를 만든 CJ 회장에게 “CJ 영화ㆍ방송은 좌파 성향”이라는 말을 했고, 이와 관련해 CJ 부회장 퇴진을 요구한 것이 대표적이다.
‘7시간’ 해명 요구 등으로 박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하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정부를 비판한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를 통한 지원 배제 명단에 대거 포함된 것도 이런 의혹을 더한다. 세월호 참사 관련 문화예술인들의 활동을 억제하고 반정부 여론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통령 지시에 따라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졌다고 특검이 보고 있다는 일부 보도도 같은 맥락이다.
탄핵심판 변호인단은 박 대통령의 블랙리스트 개입을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향후 특검 블랙리스트 수사의 핵심은 이 대목일 수밖에 없다. 블랙리스트는 ‘표현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한 것으로서, 대통령의 헌법 위반 여부를 심리하는 탄핵심판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특검이 분발, 김기춘ㆍ조윤선의 혐의는 말할 것 없고 박 대통령 관련 여부까지, 엄밀한 증거를 바탕으로 낱낱이 밝힐 수 있기를 기대한다.
[경향신문]
10. 2호선 잠실새내역 화재사고가 남긴 것
지하철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어제 오전 6시28분쯤 서울지하철 2호선 잠실새내역으로 진입하던 열차 2번째칸 아래 단류기함에서 화재가 발생해 20여분 만에 진화됐다.
천만다행으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서울메트로는 화재 초기 승객들에게 대피하라는 내용 없이 “차량 이상으로 정차했으니 열차 내에서 대기하라”고 3차례 안내방송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선실에서 기다리라”고 안내방송을 한 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대형 참사가 빚어진 것을 연상케 했다.
객차 앞쪽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창문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직접 비상 코크 레버를 돌려 열차 문을 열고 자력으로 대피했다. 서울메트로 측은 “화재 초기 기관사가 차장에게 ‘열차 내에서 대기하라’는 내용의 안내방송을 지시했으나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대피 안내방송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때는 열차 앞쪽 승객들이 이미 자력으로 대피한 뒤였다. 차량 뒤쪽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연기를 보지 못해 대피가 늦었다. 화재가 난 때가 휴일 아침 이른 시간이어서 승객이 많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승객을 콩나물시루처럼 태운 출퇴근 시간대였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화재가 나자 승객들이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을 믿지 않고 자력으로 대피했다는 것은 시민들이 더 이상 공공안전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증좌이기도 하다. 신뢰 결여는 공공안전 시스템이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믿음을 강화하고 이는 다시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 현상이다.
서울지하철 1~4호선 이용객은 하루 평균 500만명에 육박하지만 툭하면 크고 작은 고장이 발생해 언제 대형사고로 이어질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직장인들이 목숨을 걸며 ‘사고철’을 타고 출퇴근한다는 말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서울시와 서울메트로는 수박 겉핥기식 안전점검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으로 안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조선일보][일사일언] 바이올린 켜는 셜록 홈스
영국 작가 코난 도일의 '명탐정 셜록 홈스'를 새로 각색한 드라마가 요즘 한국에서도 인기라고 한다. 주인공인 셜록 홈스는 예리한 관찰력과 논리적 사고를 통해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도일이 책에서 여러 번 언급하는 그의 취미는 뜻밖에도 바이올린을 켜는 것이다. 셜록은 정열적인 음악가였고 바이올린을 잘 켰을 뿐 아니라 직접 작곡도 했다고 하니 그의 연주 솜씨나 작품이 궁금해진다.
가상의 인물인 셜록 말고도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라면 상대성이론으로 잘 알려진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떠오른다. 그는 복잡한 문제와 씨름할 때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해답을 찾곤 했다고 전해진다. 셜록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적 두뇌가 아니라도 악기를 연주하다 보면 좋은 생각, 또 엉뚱한 생각이 많이 떠오른다. 음악에는 어딘가 직관과 상상력을 일깨우는 힘이 있어서다. 음악을 듣다가 다른 생각에 빠져서 나중에는 음악을 전혀 듣고 있지 않더라는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집중해서 들으려고 애써 보지만 잠이 들기도 한다.
한데 악기를 직접 연주하게 되면 내가 음악을 만들어내는 주체인 만큼 생각에 완전히 나를 맡길 수는 없다. 온몸이 악기 연주에 집중하는 동시에 음악을 어느 때보다도 생생하게 듣게 되는데, 이때 마술적인 일이 벌어진다. 느낌이 강렬해지고 생각이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는 감정은 음악 자체라기보다는 음악을 들으면서 일깨워진 내 감정이다. 떠오르는 생각도 음악과 직접 관련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악기를 연주하는 즐거움은 이렇게 음악을 통해서 정신의 활력을 얻는 데에도 있다. 이번 주에는, 이번 주가 바쁘다면 다음 달에는 마음에 드는 악기를 하나 골라서 불거나, 치거나, 켜 보시길 권한다.
2. [경향신문][별별시선] 가족 같은 장의사
장례는 순조로웠다. 상제들은 마음을 다치지 않았다. 허투루 쓰이는 돈이 적었고, 마음에 없이 예를 차리지도 않았다. 길고도 짧았던 이틀밤 동안 큰소리도 한번 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병원에 실려 가신 것도, 그리고 그 다음 일도 모든 것이 급작스러웠던 까닭에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순조로웠다’라고 적어 둘 수 있을 것이다.
장례 문화를 바꾸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연명치료에 대한 뜻을 미리 밝혀 놓듯이 자신의 장례를 치르는 절차를 미리 적어 두거나, ‘조문보’, ‘엔딩 노트’ 같은 것을 만들거나, 무엇보다 ‘작은 장례’라는 이름으로 장례식에 드는 시간과 돈을 줄이려고 하는 것들이다. 서울 서대문구는 지자체가 나서고 있고, 몇몇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 가운데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이름을 알고 있어서 이곳에 장례를 맡겼다.
병원에 딸린 장례식장, 그곳에서 이어지는 장례 절차는 2박3일 동안 거침이 없다. 전국 어디를 가나 별로 다르지 않다. 장례식장 안에서는 그렇다. 그리고 흔히 상제들 속을 뒤집어 놓는 것은 그 모든 절차마다 장사치들의 뻔한 수작질이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부모가 돌아가신 사람을 앞에 두고, 그 마음을 휘젓고 긁어서 돈을 뽑아낸다.
앞서 다행이라고 한 것은 장례를 맡긴 조합이 그런 수작질만큼은 하지 않으려는 곳이어서였다. 조합에서 나온 장의사(장례지도사)의 말투는 차분했고, 공손했다. “수의는 평소에 아끼던 옷이 있으시면 그것으로 하셔도 좋습니다.”, “여기 장례식장이나, 납골당 비용에서 저희 조합으로 나중에 리베이트가 오는데요, 그런 것은 모두 돌려 드립니다.”
무엇도 권하는 투로 말하는 것이 없었고, 하나하나 내가 처음 듣고도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여유 있고 꼼꼼하게 설명을 했다. 납골당에서 장의사는 관리인에게 리베이트에 해당하는 금액을 아예 할인해서 계산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30만원이 줄어들었는데, 며칠 지나서 장의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쪽에서 제 말을 잘못 알아들었나 봐요. 30%라고 했는데, 30만원만 깎고 나머지는 여기로 보냈더라구요. 이 돈은 오늘 보내 드릴게요.”
발인날 새벽, 장의사는 작은 종이 가방을 들고 왔다. 긴 밤을 보낸 상제들과 친척들이 탁자 사이에 몸을 누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장의사는 제단 앞에 서서 잠시 고개를 숙이고는, 한 송이씩 꽃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구석진 자리에 앉아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철끈으로 꽃송이 몇 개씩을 묶어서는 어버이날 가슴에 달 만한 크기로 꽃다발을 만들기 시작했다.
조금 더 큰 것도 몇 개 만들고, 아주 큰 것도 하나. 그새 잠에서 깬 우리집 아이들은 옆에 바짝 붙어 앉아서는 저들도 하나씩 꽃다발을 묶었다. “납골당에 가셔서 상제분들이 하나씩 놓아 드리면 좋을 것 같아서요. 꽃이 싱싱하고 좋네요.”
그날의 일을 되짚어 글로 쓰는 동안 절로 고마운 마음이 되살아난다. 거의 모든 일을 장의사에게 맡겨 두었고, 특별히 장례 절차를 치르는 일로 마음고생, 돈고생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고마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장례를 치르는 다른 숱한 사람들이 어처구니없는 사기와 기만을 당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지난해에 마을에서 상을 치르면서 두 번쯤 무덤에 뗏장을 입히는 데에 손을 보탰다. 일을 마치고 어른들과 밥을 먹는 사이, 돌아가신 분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둘 오고 갔다. 젊어서 결혼하고 아이들 낳아 살았던 이야기,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이야기, 여기서 한마디 하면, 옆에서 한 자락 받아서 덧붙이는 식으로. 흙으로 덮일 만큼 떼를 눌러 주어야 떼가 잘 퍼진다면서, 이제 그만해도 될 성싶은데도 무덤가에 오랫동안 둘러서서는 이야기도 그만치 흘러나왔다.
죽은 이 곁에 산 사람이 둘러앉아 서로 그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이 장례의 마지막이라는 듯, 이야기가 얼마큼 차올라서야 사람들이 일어섰다.
3. [경향신문][이문재의 시의 마음]다니엘 블레이크와 ‘물고기 잡는 법
’눈물에도 맛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이십여 년 전, 소설 쓰는 선배가 들려준 말인데 요즘도 가끔 생각난다. 화가 나거나 슬플 때 솟구치는 눈물은 짜다고 한다. 반면, 기쁠 때 나오는 눈물은 달다고 하는데, 이건 문학적 과장으로 들린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눈물 맛을 제대로 맛보지 못했다. 간혹 눈물을 쏟을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누선을 자극한 격한 감정으로부터 한걸음 떨어지기가 힘들다.
얼마 전에도 기회를 놓쳤다. 혼자 극장에 갔다가 눈시울이 뜨뜻해져서 혼이 났는데 이번에도 눈물 맛을 볼 겨를이 없었다. 지인들이 적극 추천한 영화였다.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영화를 보지 않았다간 지인들이 사람 취급을 하지 않을 태세였다. 대강의 줄거리는 알고 있었다. 감독에 대해서도 조금 알고 있는 터여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보신 분들은 새삼스럽겠지만 영화는 드라마라기보다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수년에 걸쳐 사전 조사를 마친 뒤 촬영에 들어갔다고 한다. 무대는 영국 뉴캐슬. 병을 앓던 부인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중년의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데다 실직 상태다. 다니엘이 지원금을 받기 위해 관청을 찾았다가 런던에서 이사 온 케이티와 마주친다. 케이티는 홀로 두 자녀를 키우는 ‘싱글 맘’인데, 말 그대로 무일푼이다.
첫 장면부터 강렬하면서도 익숙하다. 의료 전문가가 질문을 퍼부어대고 다니엘은 말문이 막혀 어처구니없어 한다. 의료 전문가는 국가-갑으로서 충실하고 다니엘은 국민-을로서 왜소해진다. 다니엘과 케이티는 국가가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제도와 절차 앞에서 서서히 무너진다. 다니엘은 상담 창구와 인터넷 사이트, 이력서와 청구서 앞에서 매번 절망한다. 생리대 살 돈조차 없는 케이티는 급기야 매춘굴에 한발 들여놓는다. 영화는 다니엘이 구직센터 외벽에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고 쓰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실직자 다니엘과 케이티가 영국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인간은 없고 제도만 있는, 국민은 없고 국가만 있는, 시민은 없고 공무원만 있는 영국의 사회복지 제도가 우리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촛불 정국이 아니었다면, 두 실직자가 국가로부터 배제되는 과정에 집중했을지 모른다. 국가의 합법적 폭력에 초점을 맞췄을지도 모른다. 나는 영화에서 우리의 ‘촛불’을 보았다. 내게는 다니엘과 케이티를 앞세운 켄 로치의 영화가 ‘있지만 없는’ 국민에게 바치는 진혼곡이자 곧 탄생할 시민을 위한 출정가로 보였다.
다니엘이 ‘자존심을 잃으면 사람이 아니다’라며 관청 흰 벽에다 자기 이름을 쓰는 장면. 분노와 모멸감의 끝에서 다니엘이 뿌리는 스프레이가 곧 촛불이었다. 다니엘의 1인 시위를 향해 환호하며 동참하는 행인들 또한 엄연한 촛불이었다. 촛불은 최근의 대한민국에만 국한된 예외적 상징이 아니었다.
영화는 다니엘의 초라한 장례식에서 끝나는데, 다니엘이 관청에 제출하기로 했던 항고이유서가 유언처럼 낭독된다. 케이티가 대신 읽은 다니엘의 메시지는 “나는 시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로 요약되는 인간 선언이었다. 신자유주의 종주국 중 하나인 영국에 대한 비판이자, 반드시 되찾아야 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옹호였다.
영화가 장례식 장면으로 끝나는 것이 의미심장했다. 다니엘의 장례는 시장 전체주의 아래서 신음하는 전 세계인(소비자)들을 위한 ‘주권자 선언’이었다. 다니엘이 외쳤듯이 우리는 개가 아니다. 그렇다면 케이티를 포함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가 촛불이라면,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대의제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의 폭력으로부터, 생산력 우선주의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하는 시장 논리로부터 인간을 구출할 수 있는가. 오직 생산과 소비 능력만으로 인간의 가치를 따지는 산업자본주의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는가.
극장을 나오면서 떠오른 것이 기본소득이었다. ‘개가 아닌 인간’의 사회, 주권자로 거듭난 시민들의 공동체로 가는 가장 빠른 길 가운데 하나가 기본소득이다. 마침 ‘녹색평론’ 최근호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관점과 만났다. 남아프리카 지역에서 기본소득의 가능성을 확인한 인류학자 제임스 퍼거슨의 <분배정치의 시대>라는 책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지 말고 ‘물고기’ 자체를 주라, 그것도 현금으로. 퍼거슨 교수가 제시하는 대안이다.
퍼거슨 교수는 생산이 분배의 토대가 아니라, 분배가 생산의 토대일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 자녀를 교육시키는 부모를 보라는 것이다. 일자리가 생긴다 해도 대부분의 노동과 임금이 더 이상 생존의 요건이 되지 못하는 시대, 99%가 잉여로 전락하는 시대다. 인간을 재정의하지 않고서는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상황이다. 인간은 원래부터 상호의존적 존재이며, 사회는 공감과 연대에 의해서만 지속가능하다는 ‘오래된 미래’를 지금 여기로 초청해야 한다. 그러면 국가 전체가 생산한 부를 모든 국민이 떳떳하게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퍼거슨 교수의 저서가 켄 로치의 영화처럼 눈물샘을 건드릴 리 만무하다. 하지만 노동이 아니라 사회에서, 탐욕이 아니라 도덕성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으려는 ‘분배정치’가 도래한다면, 그때는 정말 다디단 눈물이 뉴캐슬과 광화문뿐 아니라 전 세계 광장을 가득 메울 것이다.
4. [매경이코노미][Health] 심해지는 안면홍조, 겨울철 피부관리는…화장품 개수 줄이고 외출 때 선크림 필수
겨울철에 추위에 떨다 따뜻한 곳으로 들어오면 뺨 주위가 빨갛게 되는 때가 있다. 매운 음식을 먹거나 화가 날 때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이 같은 안면홍조는 누구나 다 겪는 생리 증상이다. 또 폐경기를 전후로 얼굴에 홍조 증상이 자주 나타나기도 하는데 전문가들은 “대부분 일시적인 것일 뿐 질환으로 볼 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같은 안면홍조 증상이 계속 지속된다면 그건 문제다. 또 그 부위가 따끔거리고 아프며, 고름집이나 뾰루지가 자주 생겨 스스로 불편함을 느낀다면 이것은 단순한 안면홍조가 아닌 ‘주사’ 질환의 증상으로 봐야 한다. 남재희 강북삼성병원 피부과 교수는 “안면홍조 자체가 병은 아니다. 다만 혈관질환인 주사로 인해 나타난 증상이라면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주사는 피부질환이긴 하지만 전신질환이 피부로 드러난 것일 수 있어 제대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사는 얼굴의 피부 혈관이 팽창돼 다시 줄어들지 않는 질환이다. 우리 몸속 여러 세포가 지나가는 통로인 혈관이 늘어난 채로 유지되면 염증이 반복해서 생기고 그에 따라 고름집이나 뾰루지가 생겨난다.
주사에는 네 가지 타입이 있다.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코가 빨간 ‘딸기코’가 가장 흔한 타입. 또 양쪽 뺨이 붉어지고 실핏줄이 밖으로 보이는 형태, 뾰루지나 고름집이 생겨 피부가 울퉁불퉁한 타입, 안구에 반복적으로 염증이 생겨 눈이 빨개지는 ‘안구주사’도 있다.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가장 많은 것은 유전적 원인이다. 얼굴에 서식하는 모낭충에 과민한 면역 반응을 보이는 것도 원인으로 본다. 당뇨, 고혈압 환자의 경우 주사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또 주사는 혈관염증질환의 일종으로 뇌혈관계 질환인 파킨슨병과 상관성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치료는 어떻게 이뤄질까. 환자에 따라 치료가 잘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호전되지 않아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남 교수는 “단순한 피부질환이라기보다 혈관에 연관된 문제가 있다 보니 치료가 쉽지 않아 병원을 전전하는 환자가 많다”고 전했다.
증상이 가벼운 경우에는 특별한 치료 없이 생활습관을 교정하는 것이 일순위다. 기초화장품 종류를 너무 많이 사용하거나 자극감이 큰 제품을 사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찜질방이나 온천 등에서 과도한 열에 피부를 노출시키는 것도 좋지 않다. 평소 자외선 차단제를 꼼꼼히 발라주는 것도 중요하다. 겨울철에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주사는 자외선에 노출되면 악화되는 만큼 신경을 써야 한다는 조언이다.
남 교수는 “타이타늄 다이옥사이드나 징코 다이옥사이드가 들어간 자외선 차단제 사용을 추천한다. 피부에 자극 물질이 스며들지 않고 자외선을 제대로 막아줄 수 있다”고 말했다. 생활 교정만으로 조절이 안되거나 증상이 심하다면 먹는 약이나 바르는 약을 쓴다. 그것도 안 될 때는 혈관 레이저로 염증을 조절하는 치료를 받는다.
“얼굴에 건조하다고 미스트를 뿌릴 때가 많은데, 되레 미스트가 증발하면서 피부 건조를 악화할 수 있으므로 주변에 가습기를 두거나 미스트 이후에 보습 크림을 덧바르는 것을 추천한다. 자외선 차단제는 SPF지수 15 이상이 좋으며 실내에 있어도 자외선A가 창을 통과하므로 실내에 있다고 해서 자외선 노출을 간과해선 안된다.” 남 교수의 당부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스탕달
근 300년 먼저 산 프랑스 작가 스탕달(Stendhal, 1783~1842)의 ‘연애론’(김현태 옮김, 집문당)이 21세기의 우리에게 선사할 ‘연애의 기술’은 많지 않을지 모른다.
사랑에 빠지면 아무리 현명한 남자(혹은 여자)라도 상대의 호의를 과대평가하고 자신의 장점을 과소평가하며 “그리하여 (사랑의) 불안과 희망이 일종의 소설적인 요소를 띠게 된다”거나, 사랑은 늘 얼마간의 혼란을 수반하므로 “그들은 뜻하지 않은 우연적인 말로만 자기 감정을 정확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마음의 울부짖음”이라는 말, 또 “현대의 결혼에서 일어나는 죄와 불행의 원인은 P(로마 가톨릭)이다. 그것은 결혼 전의 처녀에게서 자유를 빼앗고, 그녀가 선택을 그르친 후에는 이혼을 금하고 있다”는 통찰은, 여전히 우리를 울렁거리게 한다.
배울 게 많지 않다는 건 그의 허술함 탓이 아니라 오늘의 연애 상식이 그만큼 두터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두터움이 늘 풍성한 연애 혹은 건강한 연애의 밑천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건 비단 연애뿐 아니라, 앎에만 머물기 쉬운 인간의 여러 지식의 한계일 것이다.
오해일 수도 있지만, 스탕달은 좋은 연애를 거의 못 해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폴레옹 패전 직후 이탈리아로 이주해 사는 동안, 밀라노의 한 장군의 아내에게 마음을 빼앗겨 열렬히 구애했으나 철저히 외면당하고 도망자 신세로 쫓겨난 게 경험의 전부라는 말도 있다. 그러니 그의 연애론은 몸이 아닌 머리, 이성의 시뮬레이션으로 깨어난 감성이 이성의 통제를 받아가며 쓰여진 글일 것이다.
대표작 ‘적과 흑’의 쥘리앵 소렐과 레날 부인의 그 뜨거운 사랑이, 소렐과 마틸드의 아쉬운 사랑이 그렇게 쓰여졌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그 사랑이, 글이 더 강렬하고 애틋할 수도 있다.
문학사는 그를 발자크 등과 함께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양대 거장으로 꼽는다. ‘적과 흑’에서 그는 나폴레옹 시대 전후 왕당파와 공화파, 보나파르니스트가 각축하던 정치구도를, 귀족과 사제, 신흥 부르주아와 평민 등 집단의 문화와 윤리를, 신분제 사회가 무너지기 시작한 시대 인간들의 출세를 향한 욕망과 위선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나폴레옹을 추종하며 보나파르티스트로 살았던 스탕달은, 어쩌면 연애에서처럼, 이국의 먼 발치에서 그의 시대를 관찰했을 것이다. 그의 문학, 그의 사실주의는, 경험의 양이 예술(혹은 연애)의 질과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슬프게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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