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매일신문]​

1. 헌재의 탄핵심판, 신속하되 공정성 시비 또한 없어야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론을 3월 13일 이전에 내려야 한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3월 13일은 이정미 선임재판관이 퇴임하는 날이다. 그리고 박 소장은 이달 말로 퇴임이 확정되어 있다. 따라서 3월 13일 이전에 헌재가 탄핵심판 선고를 하지 않으면 이후 탄핵심판을 심리하는 재판관은 9명에서 7명으로 줄어든다. 박 소장의 발언은 이런 상황이 현실화될 경우 심판 진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박 소장의 걱정은 일리가 있다. 탄핵심판 결정을 위한 최소 정족수는 재판관 7명이며 탄핵안 인용이든 기각이든 7명 중 6명이 의견을 같이해야 한다. 문제는 남은 재판관 7명 중 한 명이라도 사퇴한다면 탄핵심판 자체가 무산된다는 점이다. 최소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 소장이 탄핵심판 선고 데드라인을 3월 13일 이전까지로 제시한 것은 그런 사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는 해도 박 소장의 발언은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재가 탄핵심판을 신속히 진행하고는 있으나 아직 정해진 절차의 반도 소화하지 못한 상황에서 결론을 내야 할 시점을 서둘러 제시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심판 종료 기일을 미리 밝히는 것 자체가 헌재가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그 방향으로 탄핵심판을 몰고 가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을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박 대통령 탄핵에 따른 국정 공백을 하루라도 빨리 해소하기 위해 헌재가 신속히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헌재도 이에 깊이 공감해 지난해 12월 9일 탄핵심판 사건 접수 이후 휴일도 없이 재판 준비와 심리 진행에 진력해왔다. 헌재의 그런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2. 100억원 불법 조업 이득에 1천만원 벌금, 누가 법을 지킬까

대구지법 포항지원 형사2단독은 18일 선미식 불법 조업과 싹쓸이 조업 등으로 100억원이 넘는 부당 이익을 챙긴 선주와 선장에 대해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 법원은 검찰이 재발 방지 등을 위해 선주들에게 100억원 넘는 부당 이득 추징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범법자들이 불법 조업으로 부당 이익을 거두고 동해안 어족 자원은 황폐화되고 법을 지킨 어민들은 피해를 봐도 법원이 이를 외면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판결 주문과 법 개정을 통한 규제 강화 목소리가 높은 것은 마땅하다.



이번 판결은 한마디로 실망스럽다. 동해안 중형 트롤어선 선주와 선장은 2010년부터 3년간 275차례 140억원의 불법 조업 이득을 올렸지만 고작 벌금 1천만원만 선고받았다. 또 다른 선주는 중형 트롤어선과 대형 트롤어선으로 동해안 불법 조업으로 122억원 상당의 오징어 등 어류를 잡았으나 벌금은 1천500만원에 그쳤다. 그나마 이들에게 검찰이 각각 청구한 140억원과 120억원의 추징금도 법원이 인정하지 않았다. 불법 조업에 대한 처벌이 그야말로 솜방망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지금 동해안 어민들은 갈수록 나빠지는 조업 환경에 불안해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지구와 바다 환경의 변화에다 중국 어선들의 동해안 점령으로 어족 자원이 고갈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다. 어족 남획을 부추기는 불법 조업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어 가뜩이나 힘든 어민들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그런데다 불법 조업으로 단속되더라도 이번처럼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친다면 불법 조업 선주와 선장만 배를 불릴 뿐 불법 조업을 막을 수는 없다. 오히려 엄청난 이득을 보장하고도 남는 불법 조업을 부채질할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이번 같은 판결이 이어지는 한 불법 조업 근절은 말 뿐이다. 지금 규제로는 불법 조업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현재 당국이 적용한 관련 법의 한계다. 파괴된 환경의 복원에 드는 천문학적인 비용은 고려조차 않은 비현실적인 법 규정을 손질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징벌적 처벌을 포함한 현실적인 법 마련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하지만 속전속결만이 최선은 아니다. 탄탄한 법 논리로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하는 것도 신속함 못지않게 중요하다. 아니 신속한 심판보다 공정한 심판이 더 중요하다. 공정하지 않다는 시비에 휘말리면 탄핵을 결정한 국회는 물론이고 헌재까지 ‘정당성’을 의심받게 되는 최악의 사태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속도를 위해 공정을 희생해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이데일리]

3. 반기문, 대권 의지 있다면 제대로 해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어제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정치 교체의 필요성을 내세우며 자신의 대권 도전 이유를 강조했다. “우리 현실에서 성장동력이 약해지고 양극화현상이 심화되며 이념대립이 격화되는 모든 문제의 근원에 ‘나쁜 정치’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려면 이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정치 체제를 청산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반 전 총장은 정치 교체를 위한 방안으로 헌법 개정을 내세웠다. 현행 헌법의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는 지난 30년 동안의 폐해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으며, 다음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또다시 불행한 대통령으로 그칠 뿐이라는 것이다. “개헌을 통해 대선과 총선의 주기를 하나로 맞춰야 하며, 패권과 편가르기식 정치에서 분권과 협치의 ‘좋은 정치’로 가야 한다”고도 했다.

총론적인 관점에서는 대체로 타당한 진단이다. 그러나 각론에 이르러서는 수긍할 만한 처방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선거 진용을 어떻게 꾸릴 것인지에 대한 방안이 부족하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코앞에 닥침으로써 조기 대선이 현실화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제3지대’에 머무르는 상황이다. 아직 합류할 정치 세력을 정하지 못했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본인으로서는 정파와 이념을 아우르는 거창한 정치 통합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12일 귀국하고 열흘여가 지나는 동안 보여준 행보에서도 그런 의지가 읽혀진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스스로의 정치적 지향점이 퇴색하면서 오히려 대선 도전의 추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측근들이 “중도사퇴는 있을 수 없다”고 얘기하는 데서도 반 전 총장이 처한 지금의 어정쩡한 위상이 느껴진다.

그의 이러한 인식과 행보는 국내 정치판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데서 연유했다고 간주할 수밖에 없다.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한 경력을 앞세워 출마선언을 할 경우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쇄도하고 따라서 저절로 통합의 깃발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혹시 여야 주변의 일부 세력과는 통합의 명분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력 주자들마다 연달아 대권도전 선언을 하고 나서는 마당에 그런 정도로는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4. 대한체육회가 "개념 없다" 비난 듣는 이유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선수단 숙소가 문제가 됐다. 객실에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역사왜곡 서적을 비치해 물의를 빚는 일본 호텔체인 아파(APA)에 우리 선수단 일부가 묵을 예정이라는 것이다. 대회 조직위원회 배정에 따른 것이라고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이용금지 지침을 내린 중국팀의 대응과 대비된다. 게다가 이 호텔의 극우서적 비치는 그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조직위의 숙소 배정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대한체육회의 무신경을 탓하는 비판의 소리가 크다.

체육회에 따르면 다음 달 열리는 제8회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출전 선수 230명 중 100여명이 다른 나라의 2000여명과 함께 삿포로 아파호텔 체인점에 묵게 된다. 문제는 이 호텔의 모든 객실에 역사를 왜곡하는 극우성향의 책들이 비치돼 있다는 사실이다. 호텔 CEO인 모토야 도시오(元谷外志雄)가 쓴 ‘아무도 말하지 않는 국가론’, ‘자랑스러운 조국 일본’ 등이 그것으로 위안부 존재와 난징대학살 사건 등을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은 자국 국민들에게 호텔 이용금지 지침을 내리는 등 즉각 대책을 내놨다. 중국 선수단도 이 호텔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반면 우리 정부나 체육회의 대응은 너무 굼뜨다. 선수단이 ‘역사왜곡 호텔’에 묵는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는 입장이다. 이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조직위는 2015년 선수촌 숙박을 타진하면서 호텔에 해당 서적 제거를 의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때 이미 극우서적 비치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우리는 조직위에 숙소배정 변경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

일본은 최근 부산 일본총영사관 인근 위안부 소녀상 설치에 반발해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대사를 본국으로 귀국시키는 등 한·일 간 외교갈등이 고조된 상황이다. 스포츠와 정치는 분리하는 게 맞다. 하지만 ‘위안부 강제동원’의 엄연한 역사적 사실까지 부정하는 행태는 결코 두고 볼 수 없다. 체육회가 어제 조직위에 극우서적 비치에 우려를 표하고 시정조치를 요청한 것은 늦었지만 당연한 조치다. 문제의 책들을 치우지 않는다면 숙소를 변경하는 등의 합당한 조치가 취해지기를 기대한다.



[서울신문]

5. 사드에 순수예술 빗장 건 중국의 자해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둘러싼 중국 정부의 불만이 급기야 순수예술 분야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양상이라고 한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소프라노 조수미를 비롯한 한국 음악가의 중국 공연이 잇달아 취소됐다는 것이다. 백건우는 구이양 심포니 오케스트라, 조수미는 차이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기로 했었다.



​중국은 사드 배치 문제가 불거진 이후 대국(大國)의 체모를 조금도 보이지 못하면서 비관세 장벽을 쌓아 올리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한국 연예인의 중국 영화 및 TV 출연과 대중 공연을 막는 이른바 한한령(限韓令)을 일찌감치 발동했다.

낡고 투박한 중국 대중문화가 오늘날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과정에 한류(韓流)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그럼에도 일종의 산업으로 대형화한 외래 문화에 경계의 눈초리를 보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순수 문화까지 걸어 잠그는 것은 한마디로 무지에 따른 오류일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는 벌써 관영 매체를 동원해 논리 부재(不在)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이 위협으로 일관하는 주장을 펴왔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사설에서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에 동의한 것은 호랑이를 키워 우환을 만들고 이리를 집에 들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강변했다. 인터넷 관영 매체인 환구망은 아예 “사드 배치는 한국 연예 산업을 침체하게 할 것”이라고 썼으니 대놓고 협박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후 사드 보복의 여파가 산업 전반과 관광 분야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중국의 음력설인 춘제(春節) 연휴에 한국 관광을 예약한 유커(遊客)는 최고 50%나 줄었다고 한다. 정부 차원의 한류 규제령이 아니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외교 사안을 통상 문제로 확대한 접근 방식 자체도 문제는 작지 않다. 나아가 자국민의 정신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순수예술마저 막아서는 것은 도무지 이해 불가(不可)다.

중국 정부의 조치는 적지 않게 실망스럽다. 백건우나 조수미가 중국에서 공연을 하지 못한다고 대한민국이나 대한민국 국민이 보는 피해는 거의 없다. 한 차례 연주회가 취소됐다고 일년 내내 연주 일정이 빽빽한 두 음악가가 어려워지는 것도 아니다. 대신 중국 정부의 의식이 이런 수준에 머물고 있다면 이 나라의 문화 발전이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중국 정부는 깨달아야 한다. 인류 역사에서 미사일 배치가 불만스럽다고 피아노 연주회를 막은 나라가 더 있는지 중국 정부는 확인해 보기 바란다.



6. 기업 일자리 늘리는 美, 공공부문 늘리겠다는 韓

‘고용 절벽’은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최근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거 유세 기간 내내 일자리 창출을 외쳐 당선된 것도 이런 흐름을 제대로 읽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정부나 대선 주자들이 하나같이 일자리 만들기를 들고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국과 우리를 비교하면 고용 절벽의 해법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민간 기업에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열을 올리는 데 반해 우리는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막말과 보호무역주의 등으로 비호감의 요소가 많은 트럼프이긴 해도 순전히 미국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잘한다고 여겨지는 대목이 있다. 바로 제조업의 부활을 통한 일자리 창출 유도책이다. 트럼프가 어제 포드 등 미국 자동차 제조 3사의 최고경영자들을 백악관으로 불러들여 고용을 창출하라고 압박을 가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트럼프는 이 자리에서 “미국에서 더 많은 자동차가 생산되고, 더 많은 직원이 고용되며, 더 많은 공장이 새로 건설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규제 완화와 세금 혜택의 당근도 제시했다. 앞서 트럼프는 도요타 등 외국 기업들에도 강도 높은 압박을 가해 미국 내 신규 투자 약속을 받아 냈다.

어디 그뿐인가. 트럼프는 그제 국방·치안 분야를 제외한 공무원의 신규 채용을 못 하도록 하고, 공무원 업무의 아웃소싱조차 허용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작은 정부’의 공약을 취임하자마자 실행에 옮긴 것이다. 업무 중복 등으로 빈둥거리며 세금만 축내는 공무원들에 대한 반감은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다를 바 없다 보니 그의 행보에 박수를 보내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경제가 어렵기는 우리가 미국보다 심각한데 허리띠를 졸라매는 미국 정부와 달리 우리는 거꾸로 행보를 보여 걱정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최근 “정부가 공공부문의 일자리 확대를 선도하겠다”고 했다. 공공부문의 일자리 증원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청년 실업 등으로 희망을 잃은 이들을 생각하면 공공부문에서라도 솔선수범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일자리 만들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박근혜 정부가 일자리 예산에 쏟아부은 예산만 72조원에 이르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냈지 않은가. 유력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 공약이 비판받는 이유다. 정부는 이것도 모자라 올해 공무원 봉급을 3.5%나 올리는 민심 역주행을 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일자리 만드는 일이야 누구든 할 수 있는 하수(下手) 대책이자 미봉책일 뿐이다. 새로 고용되는 공무원들이야 ‘철밥통’ 세계의 편입에 좋겠지만 그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국민에게는 부담만 늘어날 뿐이다. 제조업 등 경제를 살려 민간 기업에서 고용을 늘리도록 유도하는 획기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7. 황기철 전 해참총장 무죄와 언론

잘못을 알아도 반성하고 사과할 줄 모르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다른 사람의 명예를 짓밟아 놓고도 모른 채 넘어가는 것은 더욱더 중대한 문제다. 권력의 그늘에 숨어 자성할 줄 모르는 무책임한 조직이 정의 추구라는 공통의 목적을 가진 언론과 검찰이다.

모든 언론, 검찰이 뼈아프게 반성해야 할 사례가 있다. 통영함 납품 비리 혐의로 구속됐다가 무죄가 확정된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 사건이다. 황 전 총장은 2009년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으로 재직하다 성능이 떨어지는 부품이 납품되도록 허위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2015년 4월 구속 기소돼 검찰로부터 징역 5년을 구형받았다. 그러나 1, 2심에 이어 지난해 9월 대법원은 그에게 죄가 없다며 혐의를 벗겨 주었다.

검찰은 무리라는 지적에도 아랑곳없이 수사를 밀어붙였다. 황 전 총장이 4성 장군이었기에 검찰에겐 좋은 ‘먹잇감’이었다. 문제는 무죄 판결이 난 다음이었다. 황 전 총장 수사 과정을 검찰의 말만 믿고 여과 없이 보도한 언론은 무죄 판결이 난 후에는 모른 척하다시피 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반성과 사과는 고사하고 무죄를 받았다는 점을 비중 있게 보도하지 않았다.



검찰이 과잉 수사를 하기는 했지만 언론은 검찰에 모든 잘못을 떠넘기고 아무런 책임이 없는 듯 입을 다물었다. 수사 당시 억울한 누명을 쓴 황 전 총장에 관해 보도한 기사는 600건이 넘는다. 그러나 그의 무죄 확정을 다룬 기사는 10분의1인 60여건에 그쳤다. 사실 확인을 위한 언론의 노력은 매우 부족했고 검찰의 설명에 의존해 ‘아니면 말고’ 식 보도를 한 셈이다. 피해자들의 상처는 상상 이상이다. 변호사 비용 5억원을 마련하고자 온 가족이 나서야 했다.

문제는 그런 사례가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점이다.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이나 최종 판결이 나지는 않았지만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부는 명예회복 차원에서 황 전 총장에게 보국훈장을 수여했지만 37년간 국가를 위해 복무하며 쌓아 온 그의 명예와 자부심을 되살려 주기엔 너무나 미흡하다. 황 전 총장이 원하는 것은 보상용 훈장이 아니라 언론이나 검찰의 진정한 반성과 사과일 것이다. 언론의 이름으로 황 전 총장과 비슷한 아픔을 겪은 피해자들에게 자성과 유감의 뜻을 전한다.



[세계일보]

8. 최순실 “억울하다”면 국민은 억장이 무너질 판

국정농단의 몸통으로 불리는 최순실씨가 어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출두하면서 “특검이 자백을 강요하고 있다. 너무 억울하다”고 고성을 질렀다.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최씨는 그간 7차례나 특검의 소환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단 한 차례만 출석했고, 나머지 6차례는 소환에 불응했다. 최씨는 소환에 불응한 사유로 ‘건강상의 문제’, ‘정신적 충격’, ‘재판 일정’ 등을 제시했다. 어제도 소환에 불응하다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특검에 의해 서울구치소에서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강제구인됐다.

최씨가 특검의 수사 과정에 불만을 품을 수는 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피해자처럼 행세하는 것은 누가 봐도 납득하기 힘들다. 국민은 최씨의 전횡으로 국정이 유린됐다는 사실에 공분하고 있다.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온 사람이건, 집에서 뉴스를 보고 있는 사람이건 국가 정책이 비선실세에 농락당한 점에 대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기고 있다.



국가적으로도 대통령 탄핵이 추진되고 국정이 마비되면서 엄청난 진통을 겪는 중이다. 그런 국민을 향해 가슴 깊이 사죄하기는커녕 억울하다고 되레 소리치는 것은 도저히 정상이 아니다. 장막 뒤에서 비민주적 갑질을 일삼은 최씨가 민주주의를 들먹이는 행태는 자가당착이나 진배없다. 그는 민주주의를 들먹일 자격이 없다.

최씨는 자신의 전횡으로 처벌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의 심정을 한 번이라도 헤아려 본 적이 있는가. 그의 딸 정유라씨의 대학 입학·학사 특혜와 관련해 구속된 이화여대 교수만 4명이다. 문화융성을 외치던 문화체육관광부는 전·현직 장관의 구속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기업인들도 정씨 승마 지원과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으로 특검에 불려다니는 신세다. 최씨가 억울하다면 이들은 아마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최씨는 온 나라를 뒤흔드는 사건을 저지르고도 진실 규명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그는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끝내 나오지 않았다. 특위 위원들이 하는 수 없이 구치소를 찾아 비공개로 면담을 했을 정도다. 헌법재판소에 출석해서도 국회 소추위원단의 질문에 “모른다”거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국민을 향해 고성을 지르기 전에 자신의 언행부터 돌아볼 일이다. 그런 ‘안하무인’ 최씨에게 한 나라가 흔들렸다니 딱하고 한심할 뿐이다.



9. 박 대통령, 헌재의 ‘탄핵심판 신속 심리’에 응답해야

박한철 헌법재판소 소장이 어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9차 변론에서 “헌재 구성에 더 이상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늦어도 3월13일 전까지 최종 결정이 선고돼야 한다”고 했다. 박 소장의 임기가 이달 31일이고 이정미 재판관은 3월13일 임기가 끝나는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박 소장은 “두 분 재판관 공석으로는 심판 결과를 왜곡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심리와 판단에 막대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현행법상 탄핵심판 결정을 위해선 최소한 7명의 재판관이 심리에 참여해야 하고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3월13일 이전에 탄핵이 인용되면 헌법에 따라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대선이 4월 말에서 5월 초에 실시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심리가 전 국민의 관심을 받으며 진행된 지 오늘로 58일이 됐다. 헌재 재판관 9명은 탄핵심판의 중요성을 감안해 휴일 없이 강행군을 하고 있다. 박 소장은 “지난해 12월9일 대통령 탄핵 사건이 접수된 이후 우리 헌법 질서에서 갖는 중차대한 의미를 고려해 재판관들은 단 하루 휴일도 없이 공정하고 신속한 심리를 위해 불철주야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다”고 했다. 심리 일정을 보면 헌재 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 측의 태도는 무성의하기 짝이 없다. 증인 39명을 무더기 신청하는가 하면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난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시간을 질질 끌며 최대한 버티려는 속셈으로 비쳐진다. 이중환 변호사는 어제 박 소장의 ‘신속 심리’ 입장 표명을 문제 삼는가 하면 “박 소장과 이 재판관의 후임을 임명해 심판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 측은 ‘태극기 집회’를 부추기며 이념 대결로 몰아가려는 듯한 언동도 서슴지 않는다. 대통령 탄핵심판에 성실히 응하는 자세로 볼 수 없다.

최순실 사태의 철저한 진상 규명과 함께 국정 공백의 최소화가 급선무다. 검찰 수사에 이은 특검 수사와 재판, 헌재 심리 과정에서 박 대통령과 최씨의 헌정유린과 국정농단의 참담한 실상이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의 상처도 깊어지고 있다. 그럴수록 국정 혼란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탄핵심판을 서둘러야 한다. 공정하면서도 신속한 결정이 이뤄지도록 당사자들이 협조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국정농단 사태에 책임이 있는 당사자로서 적극 협조할 의무가 있다.



[매일경제]

10.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은 `경제살릴 리더`다

국민이 원하는 차기 대통령은 '경제를 살릴 리더'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본지가 빅데이터 분석업체인 아르스프락시아와 공동으로 네이버에 게재된 정치 성향 댓글 117만건을 분석한 결과 대통령이 갖춰야 할 리더십의 3대 조건은 첫째 경제정책 능력, 둘째 개혁성, 셋째 도덕성으로 나타났다.

2007년 대선 당시 대통령의 리더십 조건 중 1위로 꼽혔던 경제정책 능력이 10년 만에 다시 중요한 자질로 부각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2년 대선 때 대통령의 리더십 주요 덕목으로 거론됐던 서민 이미지, 안정적 안보관 등은 뒤로 밀렸다. 이 결과는 경제가 국민에게 얼마나 절실한 문제인지를 웅변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분노한 민심의 이면에는 경제불황, 치솟는 물가, 실업 등으로 인한 불만과 고통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한국 경제는 2년 연속 2%대 성장에 그치며 '저성장 터널'로 본격 진입했다. 지난해 4분기는 전 분기보다 0.4% 성장하는 데 그쳤고 연간 성장률은 2.7%에 머물렀다. 잠재성장률도 곧 2%대로 주저앉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대외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세계적인 저성장 추세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사드(THAAD)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 움직임 등은 한국 경제의 위협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소비 활성화 정책, 건설 투자 촉진 등으로 간신히 버텼지만 불확실성 고조에 따른 기업 투자 위축으로 올해는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경제 대통령'이 시대적 요구가 된 것은 저성장으로 인한 고용 악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9.8%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취업준비생, 학원 수강생 등을 포함한 '사실상 백수'는 450만명에 달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로 비난을 사고 있지만 미국인들에게 일자리에 대한 꿈을 갖게 했다는 점에서는 박수를 받고 있다. 그는 향후 10년간 일자리 2500만개, 연평균 경제성장률 4%를 공약했다. 그러나 우리 대선주자들의 공약 초점은 성장과 일자리 문제에서 비켜나 있으니 답답하다.

국민이 원하는 지도자상이 '경제 대통령' '일자리 대통령'으로 확인된 만큼 대선주자들은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지 정교한 비전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주요신문칼럼



1. [서울신문][황인숙의 해방촌에서] 달걀의 추억

닭의 해를 앞두고 조류 전염병이 도는 지역의 수많은 사육 닭이 일제히 ‘처분’당했다. 두어 해 전 구제역이 돌아 돼지들이 몰살당했을 때, 돼지 사육업자들이 경제적 손실로 인한 비탄에 빠졌으며 멀쩡히 살아 있는 동물들 ‘살처분’을 담당한 이들이 극심한 심적 고통을 겪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어차피 닭이나 돼지의 입장에서는 사는 것 같지도 않게 숨을 잇다가 조금 일찍 숨이 끊어진 것일 뿐이다. 그렇더라도 털이 짧아 분홍빛이 비치는 살갗의 몸집 커다란 생명체들이 집단으로 구덩이에 파묻히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그들의 공포와 고통에 전율하게 된다. 그 전율이 켜켜이 스며 있는 시인 김혜순의 시집들, ‘피어라 돼지’와 ‘죽음의 자서전’이 떠오른다.

육류 섭취가 불가피하다면 우리 인간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지금의 사육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잡아먹히기 위해 키워지는 동물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생명을 구가하도록 애써 줘야 한다. 생명에 대한 그 도리를 지키지 못하게 하는 건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육식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기를 정말이지 너무 많이 먹는다. 그래서 피터 싱어는 명저 ‘동물해방’에서 말한다. 지나친 육식 수요가 부른 공장식 사육을 하는 오늘날 우리가 고기를 먹는 건 그들이 겪은 지옥을, 고통을 먹는 거라고. 고통의 독으로 쩐 고기라니 우리 몸 건강에도 좋을 게 없을 테다.

한 친구가 제 신기한 경험을 얘기해 줬다. 언제부터인가 입에 당겨도 두드러기와 구토로 못 먹던 닭고기와 달걀을 여행지 터키에서 먹었는데 멀쩡했다는 것이다. 자유로이 놓아 길러진 터키의 닭이 그에게 독이 되지 않았던 것으로 미루어 그의 알레르기 원인은 닭고기 자체가 아니라 닭 사육 환경일 테다. 오늘의 사태를 거듭 발생시키는 그 환경을 고치는 게 동물 복지뿐 아니라 인간 복지를 위한 길이라는 생각을 많은 사람이 진지하게 했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대부분의 사람이 이번의 사육 닭 ‘집단 살처분’ 여파를 달걀 가격으로 체감하는 나날, 2000원대였던 열 알들이 한 팩에 ‘4500원’ 딱지가 붙었던 게 한 달 전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지 몰라요. 달걀이 떨어질지도 모르고요. 공급업자 말이, 달걀이 있어야 더 올리든지 말든지 한다고 하네요.” 동네 단골 가게 주인 말에 평소보다 적게 놓인 달걀 코너에서 나는 얼른 한 팩을 더 집어들었다.



과연 그 다음주에는 5500원이 됐다. 냉장고에 달걀이 충분함에도 나는 세 팩을 더 샀다. 이리 달걀이 귀해지는데 얼마나 좋은 선물감이 될까 하는 생각으로 내 사재기 행태의 부끄러움을 덮으면서. 관심도 없던 달걀과 그 가격이 중요 관심사가 된 것이다. 그동안 달걀값이 싸기도 쌌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동물의 몸에서 어떻게 이리 정교한 세공품 같은 형태가 빚어져 나왔는지. 단단한 껍질로 둥그스름하게 둘러싸인 아름다운 생명체를 헐하기도 헐하게 소비해 왔구나. 이제야 비로소 다소 제값을 치르는 듯했다. 어른들이 남의 집 방문을 할 때 달걀 한 꾸러미가 버젓한 선물이었던 그 옛날이 생각난다. 설탕 한 봉지, 정종 한 병이 기꺼운 선물이었던 그 시절의 짚으로 엮은 꾸러미에는 달걀들이 마치 둥지 에인 듯 포근히 담겨 있었다. 필시 유정란들이었을 테다.

물자가 귀했던 시절에는 많은 것이 선물이 됐다. 이웃이었던 한 아저씨가 ‘에노그’라 불렸던 그림물감 한 통을 선물로 들고 찾아왔던 생각이 난다. 라면 몇 개를 갖고 오신 적도 있었다. 살기 힘들어져 가족도 뿔뿔이 헤어진 그 아저씨가 당신 아이들 또래들이 있는 우리 집에 어렵사리 마련한 선물을 갖고 찾아오셨던 걸 생각하니 가슴 시리다. 그 뒤 그 가족은 다들 어떻게 살았는지…. 아저씨는 이미 세상을 뜨셨을 것 같다.

한 해에 첫날을 두 번 맞이하는 것은 좋은 점이 있다. 새해 계획을 세울 새 없이 해가 바뀐 사람들에게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설날을 앞두고, 새해에는 반듯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반듯하게 살기’에 내가 담은 뜻은, ‘바르게’와 더불어 삶에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되어 가는 대로 살지 말고, 생각을 하면서 살자는 거다. 다들 뜻한 바 이루시고, 행복한 새해 되세요.



2. [서울신문][문화마당] 굳세어라 책들아

해마다 말일이면 고심하여 노래 한 곡을 고른다. 해마다 첫날이면 고심하여 노래 한 곡을 고른다. 해를 보내고 해를 맞으며 내가 고른 내 노래 속에 나를 넣고 3분가량이라도 내게 집중하는 시간을 좀 가져 보자 소소하게 벌여 온 일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지난 말일에는 ‘태평가’를, 올해 첫날에는 ‘옹헤야’를 들었던 나였다.

왜 하필 타령이었냐고 누군가 묻기에 일거의 망설임도 없이 그랬다. 가사가 죽이잖아. 짜증을 내어서 무엇 하나. 성화를 받치어 무엇 하나. 속상한 일이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니나노. 아아, 사는 게 내내 짜증 더미여서 내가 작년에 ‘태평가’를 즐겨 들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잘도 한다, 옹헤야 그러니까 올해는 잘도 하고 싶어서 ‘옹헤야’를 집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고 보니 그 많던 민요 가사책은 다 어디로 사라졌나 문득 그 책자들에 대한 호기심이 이는 것이었다. 기타 치는 동네 오빠네 집에 하도 넘겨 봐서 두툼하게 불어 있던 팝송대백과도, 동아리방마다 책장 간간이 코딱지 같은 게 붙어 있던 민중가요집도 어느 한순간에 애초에 없던 존재들처럼 자취를 감춘 듯했다. 노래지만 책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훌훌 읽히던 그 읽음의 순간들을 우린 분명 경험한 게 맞는데 우린 언제 다 잊은 사람이 되었던가.

벽두부터 출판계는 송인이라는 대형 도매상의 부도를 직격탄으로 맞았다. 나 역시 소규모의 한 출판사를 꾸려 가는 일원으로 원치 않은 손해를 감수하게 되었지만 여기서 뻥 저기서 뻥, 크고 작은 피해를 본 출판인들의 사정이 서로 각기 처참하니 우리가 이러려고 책을 만들었나 하는 유행어를 한숨처럼 남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종이책 시장이 현격히 줄어든 마당이라 더이상 책에 날개가 달릴 거라는 꿈도 꾸지 못하는 마당에서 맞닥뜨린 도산이라는 위축은 막막한 우리의 내일을 더욱 깜깜하게 칠해 버리는 검은 손만 같았다.

자, 그렇다고 한다면 신간은 줄고, 신간을 기획하는 이도 감감무소식이어야 하고, 신간을 기다리는 독자도 나 몰라라 그런 패턴이어야 하고, 이 모든 책을 팔려는 서점들도 자취를 점점 감춰 가는 게 빤한 계산법일진대 어라, 이게 또 그렇지가 않더란 말이다.



책이 안 팔린다 하면서도 나는 새로 나올 책의 교정지를 겹겹이 쌓아 놓은 채 편집에 바쁘고, 그것도 모자라 책을 새로 하자며 필자들을 따라다니느라 호들갑이고, 그 책 나온다더니 언제 나오냐며 회사로 신간 문의를 해 오는 독자들과 목청 터지게 통화도 하고, 동네 서점 주인들과 소소한 이벤트를 모색하며 커피를 마시느라 속이 쓰리니 대체 한국에서 이 ‘책’이라는 물건을 어떤 조화로 읽어 내야 비교적 온당할지 자꾸만 헷갈리는 것이다.

세상 그 어떤 물건이 돈 앞에서 자유로울까마는 돈의 더러운 속성에서 어쩌면 가장 멀리 던져진 것이 책이리라. 그 외따로운 곳곳에서 배곯는 두려움에도 자기만의 건강한 싹을 자유로이 틔우는 것이 유일하게 책이리라. 사고파는 논리만을 따진다면 이 땅의 무수한 활자들이 과감하게 책의 배내옷을 입고 아이처럼 쏟아질 수 있을까. 우리에게 지금껏 책이 존재할 수 있었던 데는 어쩌면 책이 가진 저돌적인 무모함, 책만의 순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다분히 해 보게도 되는 요즘이다.

비록 이 착각이 내 발등을 찍는다 한들 책이니까, 책은 도끼보다 덜 아프니까. 번화한 술집 거리를 통과한 다음날 유독 주머니 속에는 반으로 접힌 전단지가 가득이다. 이 종이 한 장 쓰레기통에 내버리기에도 죄책감이 드는 걸 보니 아직은 나 ‘책 할’ 때인가 보다.



3. [아시아경제][초동여담] 카메라 든 손이 부끄럽지 않았으면

'아! 저 나무만 없다면 좋겠는데, 이런! 건물과 전봇대도 너무 걸려 ….' 여행취재를 다니다보면 이런 소리를 입버릇처럼 한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 속에는 없었으면 하는 것들이 참 많다. 가끔 사진 욕심에 '나뭇가지라도 치워볼까' 라는 헛된 생각이 들어 깜짝 놀라기도 여러 번이다. 그러기에 사진은 더하기가 아니라 하나하나 빼나가는 뺄셈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이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좋은 피사체를 만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기도 한다. 떼로 몰려와 사람들이 다니는 길목에다 떡 하니 삼각대를 세워 두는 건 비일비재하다. 사람들이 렌즈 앞으로 지나가기라도 한다면 큰 소리를 친다. '상식이 없다, 구도가 망가졌다, 피사체를 방해했다' 등 주객이 전도된 꼴불견을 연출한다. 

지난 21일 새벽 태백산에서 겪은 일이다. 영하 15도를 넘는 매서운 겨울날씨와 싸우며 천제단 아래 주목군락지에 당도했다. 그만 그곳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족히 50여명은 될 것 같은 '사진가'들이 주목을 둘러서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받쳐놓고 있었다. 눈 덮인 주목을 배경으로 일출을 담기 위해 오른 이들이다. 사진 한 장 찍자고 엄동설한 칼바람 몰아치는 산에서 해 뜨길 기다리는 모습에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일출을 기다리는 사진가들 사이에서 수시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미리 자리 잡은 이와 새로 들어온 이들 사이에서 자리싸움이 치열했다. 눈에 발자국을 남겼다, 방해 말고 비켜라 등 서로를 책망하는 소리도 들렸다. 그때 산을 오르든 등산객 랜턴불빛이 주목을 비추고 말았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불을 꺼라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애먼 등산객은 주목 한 번 보려다 봉변을 당한 꼴이다. 분위기가 이러니 정작 일출을 보러 온 등산객들은 서슬 퍼런 사진가들에 놀라 주목 근처도 가보지 못하고 멀찌감치 물러선 채 머뭇거리기만 했다. 

이뿐만이 아니였다. 사진가들 주변에는 텐트가 버젓이 설치되어 있었다. 텐트 안에선 버너를 사용해 끓인 라면냄새가 진동했다. 국립공원에서 야영과 취사 금지라는 안내문은 이들에겐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급기야 사단이 나고 말았다. 가스통에 불이 붙어 눈밭에서 불을 끄는 촌극도 벌어졌다. 그나마 겨울이라 빠른 조치가 가능했지만 생각만 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사진가들의 헛된 욕심은 비단 이것뿐만이 아니다. 몇 해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금강송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는다는 한 사진가가 금강송을 무단으로 베어버려 비판을 받았다. 그것도 울진군 삼림보호구역 내 금강송 10여그루를 말이다. 잘린 금강송은 220년간 그 자리에 뿌리 내리고 있었다. 그 사진가는 자신이 찍고 싶은 금강송을 가린다는 이유로 그런 몰상식한 행동을 한 것이다. 

이런 경우도 있다. 나뭇가지에 어린 새들이 앉아 있고 어미새가 먹이를 주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전문가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사진가가 새끼 다리에 접착제를 칠해 나뭇가지에 붙여 놓은 것이란 지적을 받아 논란이 일었다.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싶고, 남들과 다른 사진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야 왜 모르겠나. 그러나 그런 욕심이 금강송을 자르고 본드칠을 해서 어린 새를 붙이고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욕심과 무례함으로 똘똘 뭉쳐있는 일부 사진가들 의식이 바뀌어야 할 때다. 이러다 카메라 들고 다니는 게 부끄러운 일이 될까 두렵다.



4. [아시아경제][이명재 칼럼] 고통에 대하여, 희망에 대하여

헤르만 헤세는 시 ‘귀향’에서 '오너라, 오랜 고통이여‘라고 말한다. ‘오랫동안 타향에서 나그네 노릇을 하고는 훨씬 평온해졌지만, 고통을 다시 원한다’고, ‘우리는 다시싸우려고 한다’고 ‘가슴을 부딪치고 다투련다’고 말한다. 그에게 돌아가야 할 고향은 고통이다. 고통과 싸우는 것이 귀향인 것이다(조동일 교수).



고통이라는 고향. 고통과 고난은 인간을 가르치는 스승이다. 인간을 인간이게, 참인간에게 하는 것이다. ‘잘 성장했다는 것은 큰 결점이다. 그것은 한 사람을 너무 많은 것으로부터 차단시켰다는 뜻이 된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많은 걸 가졌다는 것, 부족할 게 없고 고통 없이 살았다는 건 살아가는 데 거쳐야 할 것들의 결핍이기도 하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 문학의 폭과 넓이가 깊어지고 넓어졌던 것도 뇌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들로 인한 고통이 타인의 고통에 대한 깊은 성찰, 시대의식으로 확장된 데 있었으니 겐자부로에게 아들 히카리는 그 이름의 뜻처럼 그야말로 ‘빛’이었던 것이다. 인도 서사시 ‘마하바라타’에서 현자 크리슈나가 “군주는 지옥을 경험해야 한다”고 했고, ‘문심조룡(文心雕龍)’에서 유협이 “마음 속에 맺힌 것이 못 견디고 밖으로 뛰쳐 나올 때 그 사무치고 절절한 것이 가슴을 울리는 글이 된다”고 했지만 그 지옥과 고통이 군주와 작가에게만 필요한 것이겠는가. 

우리의 삶에 희망이란 게 있다면, 우리가 어떤 희망을 찾으려 한다면 그건 고통과의 대면에 있을 것이다. 고통이 없는 것이 희망이 아니라 고통을 받아내며 고통을 견뎌내며 고통을 이겨내려는 것, 그것이 곧 희망이 아니겠는가.

돌아보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고통과 눈물과 한숨으로 이뤄져 있는가. 아침 6시를 갓 넘긴 시각, 충무로 지하철 역을 나오면 만나는 작은 천막. 겨울 새벽의 오싹한 한기를 막기에는 너무도 힘에 부치는 듯한 비닐 가리개 안에 앉아 쭈글쭈글한 손으로, 그러나 웃는 얼굴로 천원에 세 개인 붕어빵을 건네주는 50대 여인. 대체 몇 시에 집을 나서야 할까.



그곳을 지나면 이미 불을 밝히고 문을 연 커피 가게 젊은 아가씨의 가여운 어깨. 간밤부터 내내 불을 끄지 않았을 편의점 카운터를 지키고 서 있는 중년의 사내. 5시도 안 된 시각에 회사로 나갈 때, 아직 여명도 비치지 않는 새벽에 이미 절반가량의 좌석을 채우고 있는 이들의 허름한 옷차림, 그 삶의 주름살들. 

새벽을 여는 사람들, 하루의 시작을 마련해주는 이들이다. 나의 일터에도 그런 분들이 계시니 내가 아무리 이른 시각에 나오더라도 이미 사무실 바닥을 쓸고 쓰레기통을 비우며 화장실을 닦는 아주머니들. 어머니의 마음으로 수십 명의 아들과 딸들을 챙겨주는 그 정성. 

그것을 나는 ‘빛’이라고 해야겠다. 가족을 먹이고 키워주는 빛, 대한민국을 비추는 빛이라고 해야겠다. 궤변을 늘어놓는 이가 가진 권력이니 금력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빛이라고 해야겠다. 광화문(光化門) 광장이 그 이름처럼 촛불의 빛(光)으로 광명을 펼쳐주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가 아침마다, 또 어디에서든 만나는 빛들이라고 해야겠다.

내일부터 설 연휴다. 그러나 빛을 뿜어내는 많은 이들에게 우울한 명절이다. 바닥의 불경기에 취업난, 불안한 미래, 거기에 권력의 무능과 타락이 현실을 더욱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불혼(不婚) ·불임(不姙)’의 젊은이들은 고향에 내려가지 못한다.

그러나 설은 대지에 새 기운이 오르는 것을 자축하는 새 생명의 시간. 그 생명의 명절에 우리는 애써 우리의 희망을 찾는다. 새벽이면 충무로 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 커피집과 편의점과 거리에서, 새벽과 밤과 한낮에 우리 옆에서, 우리 자신에게서 만나는 빛. 그래서 우리는 고통이여 오라, 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희망이여 오라, 라고 말한다.



5. [동아일보][다니엘 린데만의 비정상의 눈] 두 번 있는 새해 첫날 또 한번 결심할 기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합기도와 피아노 연주다. 이 때문에 야성과 감성의 취미를 동시에 즐긴다는 소리를 듣는다. 둘 다 잘하진 못하지만 고수를 목표로 수련하고 있다. 쉽지 않은 길이다.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진다. 고수가 되려면 평생 수련해도 모자란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어떤 분야든 고수가 되려면 먼저 기본자세부터 충실하게 배우고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의미에서 연습 전의 준비도 필수다. 피아노를 잘 치려면 매일 연주 연습에 앞서 손가락부터 풀고 유연성과 감각을 키우기 위한 기본 동작을 되도록 많이 반복해야 한다. 무도인 합기도도 마찬가지다. 기본 동작으로 몸을 적절하게 풀지 않고 바로 본동작에 들어가면 다치기 쉽다. 체력적·정신적으로 충분히 준비되지 않으면 고수가 되기는커녕 가진 실력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재능 탓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재능은 같은 양의 연습을 했을 때 좀 더 앞설 수 있는 ‘작은 선물’일 뿐이다. 피아노든 합기도든 연습이 따르지 않는 재능은 아무 소용이 없다. 재능이 있는데도 일찍 포기하는 사람을 지금까지 많이 봤다.



어떤 재능도 연습을 이길 수 없다. 연습의 핵심은 습관적으로 매일 하는 것이다. 피아노와 합기도는 물론 한국어 같은 외국어를 익힐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에 몰아서 연습하는 것보다 조금씩이라도 매일 꾸준히 하는 게 더욱 효과적이다.



어려서 독일에서 피아노를 배울 때 연습하기 싫은 날이 많았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강제로 연습시키는 대신 오늘 하기 싫다면 일단 15분 정도만 연습하고 쉬라고 했다. 대신 다음날 한 시간 반이나 두 시간 정도 연습하게 했다. 몸 상태가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을 수 있으니 이런 방법이 효과적일 것이다.



이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고수가 되려면 연습과 반복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물론 합기도든 피아노든 어떤 분야에서 정말 완벽해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계속 연습하는 이유는 이렇게 완벽함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이 계속 발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연습은 기술 연마를 넘어 인간이 완성되는 하나의 과정이 아닐까.

다가오는 토요일이 설날이다. 또 하나의 새해다. 1월1일의 결심을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면 새롭게 재출발할 기회다. 이런 기회는 한국에서 누릴 수 있는 독특한 선물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시도하고 도전을 반복하는 것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일 것이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