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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매일신문]
1. 대선 후보들의 지방분권형 개헌 공약에 주목한다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후보 대부분이 지방분권형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방분권형 개헌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공감대를 넓혀가면서 시대적인 대세로 자리 잡아 가는 분위기다. 그 어느 때보다 지방분권 개헌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후보마다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과감하고 파격적인 내용을 대거 담고 있어 흥미롭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개헌안에 ‘지방분권형 국가’임을 명시하자고 주장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지역 균형 발전은 물론이고, 경찰, 조세, 교육권까지 지방에 이양해 국가 구조를 연방 형식으로 개편하자고 제안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지역균형주의 철학을 강조하며 지방분권 개헌에 앞장서고 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지역 균형 발전론의 신봉자다. 문 전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 때보다 더 강력한 지방분권 정책이 필요하며 입법권, 행정권, 재정권, 인사권, 복지자치권을 포함한 강력한 분권이 지방을 살리고 대통령제의 폐단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희정 충남지사와 남경필 경기지사는 국회, 청와대는 물론이고 대법원`대검찰청 등도 세종시로 이전할 것을 공약했다. 둘 다 지방분권 개헌에도 찬성 입장이다. 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도 통일과 경제 회복,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서는 분권형 개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선 후보와 정치 지도자들이 일제히 지방분권형 개헌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으니 좋은 징조임이 분명하다.
대선 후보들이 중앙집권과 수도권 중심주의가 더는 효율적이지 않고, 국가 발전을 저해하고 있음을 절감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대구경북이 2002년 지방분권운동의 기치를 든 이래 그 결실을 수확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개헌으로 연결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들의 공약이 빈말이나 헛공약으로 그치지 않을지 감시해야 하고, 수도권 중심주의자나 기득권 세력의 발호도 경계해야 한다. 지방분권형 개헌이 실현되는 그날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할 것이다.
2. 공공기관`기업 지역 인재 채용 할당제 의무화해야
지방이 고사(枯死)하고 있는 원인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일자리 부족이다. 지방을 살리는 가장 실효적인 해법은 지방 소재 공공기관`기업들이 해당 지역 인재를 많이 채용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지방 소재 공공기관들 사이에서 지역 인재를 우대 채용하는 풍토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기대치에는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2014년 제정된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 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은 공공기관과 기업이 직원 신규 채용 때 지역 인재를 35% 이상 뽑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권고사항일 뿐이어서 이를 제대로 지키는 곳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대구혁신도시로 이전한 한국감정원 정도만 지역 인재 우대 정책을 가장 모범적으로 펴고 있다. 이 기관은 올해 50명 안팎의 직원을 신규 채용하는데 이 중 40%를 지역 인재로 뽑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 30% 목표를 세웠던 것보다 진일보한 자세이다.
한국감정원을 제외한 역내 대부분의 공공기관과 기업들은 지방대육성법 권고 사항을 지키지 않고 있다. 그나마 올해 채용 계획 70명 중 30%를 지역 인재로 뽑기로 한 한국전력기술(김천혁신도시)이 35% 권고 사항에 근접한 수치이다. 매일신문 취재팀이 2016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35% 권고 사항에 부합한 계획을 내놓거나 시행한 곳은 대구`경북 혁신도시 내 공공기관 17곳 중 6곳에 불과했다.
지방 인재 우대 권고 사항을 지키지 않는 것은 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대구은행의 경우 워낙 대구`경북 출신 입사 지원자들이 많아 별도의 지역 인재 우대책이 필요 없을 정도지만, 포스코의 경우 고졸사원 지역 인재 우대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것과 달리 대졸사원에 대해서는 형평성 시비를 이유로 우대 제도를 운용하지 않고 있다.
공공기관 및 기업의 지역 인재 채용 풍토가 제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행 권고 사항으로 돼 있는 지역 인재 채용 규정을 의무 규정으로 바꿔야 한다. 아울러 지방 이전 공공기관과 해당 지역 소재 대학 간의 협력을 강화해 수도권 소재 대학과 지방대학 출신자들 사이의 취업 기회 격차를 해소하는 것도 병행해야 한다.
3. 국가 돈 빼먹고 제자를 노예 삼은 교수, 발 못 붙이게 하자
대구지검 특수부가 학생 연구원에 줄 인건비를 챙기거나 가짜 출장비 청구 등의 방법으로 국가 연구개발 보조금을 가로챈 혐의로 국립대학 교수 2명과 사립대학 교수 1명을 적발했다. 특히 이들은 연구원에게 인건비의 20~30%만 주거나 일부 학생 연구원에게는 아예 한 푼도 주지 않고 떼먹은 것으로 드러났다. 제자를 기르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에 적발된 교수들은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서 발주한 의료정보서비스 관련 7개 연구과제 등을 공동 수행하면서 4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범죄 수법은 대학교수의 행위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치졸하다. 먼저 인건비를 삼킨 일이다. 이들은 연구원들의 도움을 받아 연구를 진행했다. 교수들을 믿고 맡은 일을 한 연구원들에게 인건비 지급은 마땅하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기본마저도 내팽개쳤다. 연구원들을 노예처럼 부린 셈이다. 대학교수로서는 도저히 해서는 안 될 갑질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사기와 같은 행태도 놀라울 뿐이다. 연구에 참여하지도 않은 학생을 연구원으로 둔갑시켜 인건비를 타냈다. 비리 기업주들이 흔히 써먹는 저질스러운 수법이다. 이도 모자라 열차 승차권을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취소해 돌려받은 뒤 환불 전 승차권 영수증을 허위로 제출해 보조금을 가로챘다. 이는 확인된 사례만 92차례 1천400만원에 이를 정도로 상습적이었다. 이렇게 비양심적인 방법으로 타낸 보조금을 ‘비상준비금’이라는 비자금으로 조성해 주식 투자 등의 개인 용도로 1억원 이상을 쓴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 돈을 빼먹는데 교수가 앞장선 일은 용납할 수 없다. 아울러 일만 시키고 인건비조차 가로챈 비양심적 작태는 썩은 대학교수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 참담할 따름이다. 비리 교수들이 다시는 대학 사회에 남을 수 없도록 엄정한 법 적용이 필요하다. 당국과 발주처는 비리로 잘못 집행된 나랏돈은 전액 환수해야 한다. 아울러 그들이 떼먹고 가로챈 연구원들의 인건비를 조속히 정상 처리해야 한다. 이런 비리의 재발 방지를 위한 용역 발주 이후의 허술한 관리 감독도 점검해야 한다.
[서울신문]
4. 소비를 살려야 경제가 산다
소비의 중요성을 멀리서 구해 볼 것도 없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박제가의 ‘우물론’에서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우물을 퍼 올려 사용하면 계속 채워지지만 퍼 쓰지 않으면 말라 버린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에서 소비의 의미는 그만큼 중요하다. 물건을 소비하면 자본이 환원돼 계속 생산하지만 소비하지 않으면 생산도 중단된다.
소비는 심리다. 소비는 사람이 하고 사람의 심리가 소비를 결정한다는 말이다. 설이 코앞인데 꽁꽁 얼어붙은 소비 심리가 도통 풀릴 기미가 없다. 한국은행이 어제 발표한 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3.3으로 전월보다 0.8포인트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75.0) 이후 최저치다. CCSI가 기준선인 100을 넘으면 경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심리가 낙관적임을 뜻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올 1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도 4년 만의 최저치인 89로 떨어졌다.
소비, 즉 내수가 살아나야 경제가 활성화된다. 소비를 살리는 길이 경제를 살리는 길인 셈이다. 내수 확대를 위한 좀더 효과적인 정책 처방이 필요하다. 2월 말까지 열리는 ‘코리아 그랜드 세일’ 행사 같은 소비촉진 행사는 꾸준히 열어야 한다. 주요 품목의 개별소비세 인하와 재계가 요구하는 접대비 한도 확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식사와 선물 한도를 정한 김영란법 시행령의 개정도 여론의 눈치만 볼 일이 아니다. 또한 소비 심리를 저해하는 생활물가를 잡는 것도 시급하다.
단기 부양책에만 집착해서도 안 된다. 멀리 내다보고 좀더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가계 평균 가처분소득은 2015년 3927만원에서 지난해 4022만원으로 겨우 95만원 증가했다. 반면 가계 평균 부채는 6256만원에서 6655만원으로 399만원 폭증했다.
소득을 늘리려면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생산성을 높여 근로소득을 늘려 줘야 한다. 비정규직 등 질 낮은 일자리는 질 높은 일자리로 바꿔야 한다. 기업소득을 가계로 돌려 민간 소비로 선순환시키는 것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바란다.
특히 중요한 것이 구매력이 있는 유효 수요다. 고소득층의 세율을 높여 중산층과 저소득층 복지로 돌려야 한다. 소비와 분배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길이다. 장·중·단기 정책을 혼용해 구사해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야 정책의 효과는 빠르고 크다. 정부는 재정을 조기 집행하고 기업은 고용 확대에 힘쓰는 한편 투자에도 과감해야 할 것이다. 저성장의 길을 먼저 걸어온 일본을 참고하는 데 인색할 필요는 없다. 아베 총리의 재정확대, 금융완화, 구조개혁은 임금 인상과 설비투자를 유도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금요일 퇴근을 오후 3시로 앞당겨 돈을 쓰게 하겠다는 ‘프리미엄 프라이데이’ 정책도 벤치마킹해 보기 바란다. 수출에 이어 내수마저 죽는다면 우리 경제는 정말 답이 없을지 모른다.
5. 도를 넘어선 재야 작가의 박 대통령 누드 풍자
지난 20일부터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곧, 바이! 展’이라는 시국 비판 풍자 전시회에 등장한 박근혜 대통령의 누드 풍자 그림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그림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것으로 세월호가 침몰하는 모습 앞에 나체 상태의 박 대통령이 편안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다. 박 대통령 복부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초상 사진과 ‘사드’라고 적힌 미사일이 그려져 있다. 박 대통령 옆으로 ‘주사기 다발’을 들고 있는 국정 농단의 사태의 중심축인 최순실씨도 보인다.
우리는 이 풍자 그림이 도를 넘어선 지나친 표현 방식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은 비록 국정 농단 사태로 인해 직무정지 상태이긴 하나 싫든 좋든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이다. 이런 직설적이고 외설적인 대통령 풍자 그림을 ‘민의의 전당’에 꼭 내걸어야 했을까. 전시회는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더 확산되는 양상이다. 공론장이 돼야 할 국회가 개인의 신념을 홍보하는 공간으로 이용돼선 안 된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민주당이 어제 표 의원을 윤리심판원에 회부하기로 한 것은 사안의 폭발력이 만만치 않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도 “대단히 민망하고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재빠르게 선을 긋고 나섰다. 물론 아직 당사자들의 말이 달라 이 문제가 누구 잘못이라고 섣불리 판단할 계제는 아니다. 전시회 측 관계자는 표 의원은 전시회 주최자가 아니라 토크콘서트에 참여하는 게스트일 뿐이라는 입장이고, 표 의원은 전시회를 열겠다고 작가들이 요청해 와 도와준 것이지 작품을 직접 고르지는 않았다고 한다.
예술인들의 정치 패러디는 지금껏 있어 온 한 장르이고,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존중돼야 마땅하다. 풍자는 풍자일 뿐인데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표현의 자유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기도는 정도가 아니다. 예술인들의 건전한 시국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도를 넘어서면 분노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일각에서는 풍자를 빙자한 인격 모독과 여성인권 유린 문제까지 거론하는 상황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의 본질을 흐려 초점을 분산시킬 수도 있는 사안이다. 뭐든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6. 미국발 통상전쟁 영향 최소화에 힘 모아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에 곧바로 나설 것이라고도 밝혔다. TPP는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12개국이 참여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NAFTA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 사이의 자유무역협정이다.
지난 대선 기간 내내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불리한 무역협정을 바로잡겠다”고 공언한 트럼프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위협적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이다. TPP보다 더욱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치명상을 안기는 것은NAFTA 재협상이다. 트럼프는 멕시코에서 생산된 공산품의 유입을 막아 미국의 일자리를 늘리겠다며 멕시코산 제품에 35% 관세를 공약했다.NAFTA 체결을 계기로 멕시코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 온 우리 기업들에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멕시코에서는 현재 183개 한국 기업이 한 해 220억 달러(약 25조 7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코트라(KOTRA)는 설명한다. 미국발 통상전쟁의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지혜를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NAFTA 재협상의 다음 차례는 한·미 FTA가 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 한국은 2013년 이후 4년 연속 200억 달러 이상 대미(對美) 무역흑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대선 당시 “한·미 FTA로 미국의 일자리 10만개가 날아갔다”고 말한 적도 있다.
무엇보다 정부는 미국이 대한(對韓) 교역에서 적자를 기록하는 것은 한국의 불공정 무역 때문이 아닌 만큼 미국의 오해를 불식시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무리 트럼프의 목소리가 커도 일방적 양보가 아닌 두 나라가 합리적으로 ‘윈윈’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취임으로 통상 분야는 이미 세계 대전이 불붙은 것과 다름없다. 기업도 스스로 활로를 개척하는 데 갑절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지만, 전술전략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짤 수밖에 없다. 좁은 내수시장에서 벗어나 세계시장에서 승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 경제에 주어진 숙명과도 같다.
눈앞에 닥친 미국발 통상전쟁의 피해는 당연히 최대한 줄여야 한다. 나아가 관련 부처는 ‘트럼프 위기’를 ‘트럼프 특수’로 바꾸어 놓겠다는 자신감으로 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이런 상황에서 벌써부터 조직 개편을 들먹여 바쁜 정부의 발목을 잡는 정치권은 자중하라.
[매일경제]
7. 트럼프의 통상 압력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수도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말을 빌리자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스스로 미국을 보호무역주의의 어두운 방에 가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계획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선언한 지 하루 만이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중시 전략을 상징하는 TPP를 "미국에 잠재적 재앙"이라며 공격했던 트럼프는 백악관을 차지하자마자 미국 우선주의 공약을 거칠게 밀어붙이고 있다. 대선 기간 중 그가 기존 무역협정을 뒤집겠다고 공언할 때만 해도 막상 대통령이 되면 온건한 실용주의 노선을 걸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이런 기세라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는 트럼프의 으름장은 빈말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수출의 25%와 13%를 받아주는 중국과 미국이 전면적인 무역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대미 무역흑자가 많은 나라들을 차례로 재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트럼프 행정부는 결국 한국을 직접 겨냥한 통상 압력을 가해올 것이다. 그 시기는 예상보다 빨리 닥칠 수 있고 압력의 강도도 우리 예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
대선 당시 트럼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미국의 일자리 10만개가 날아갔다"고 한 적이 있다. 빼앗긴 일자리를 되찾겠다며 잔뜩 벼르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2013년부터 해마다 200억달러 넘는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을 가만둘 리가 없다.
우리가 트럼프식 통상 공세의 예봉을 피하려면 훨씬 정교하고 입체적인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균형 있는 대미 교역 구조를 만들어가기 위해 올해부터 연간 280만t의 미국산 셰일가스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렇게 하면 대미 흑자를 10억달러쯤 줄일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한국은 중국 일본 독일 대만과 함께 미국의 환율 관찰 대상국에 올라 있기 때문에 외환시장 개입과 대미 흑자 관리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한미FTA 재협상에도 대비해 최선의 협상 전략을 세워 두어야 한다. NAFTA 시대에 멕시코에 집중됐던 해외직접투자도 재조정해야 할 것이다.
8. 문재인의 맞춤형 협력외교 실현될 수 있을까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서 24일 자신의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이 주최한 간담회에서 외교안보에 관한 기본 방향을 제시했다. 국익 우선 외교, 맞춤형 협력외교, 책임안보를 위한 외교와 함께 통상외교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했는데 말로는 쉽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으로 북핵 문제 해법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문제는 국익 우선 외교를 어떻게 실현해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문 전 대표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 북한이나 미국 어디든 갈 수 있다면 어디부터 가겠는가'라는 질문에 '주저 없이 말한다. 북한 먼저 가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로 인해 그의 안보관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그는 '욕만 하면서 북핵을 그냥 두고보자는 것이냐'고 반문하며 이것이야말로 실용주의적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실용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이념적으로만 북한을 대하다 보니 타도 대상으로만 삼게 된다고 했다.
그럼 이제 그가 주장하는 책임안보를 위한 외교가 국익 우선 실용주의 원칙에 부합하는지 묻게 된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안보를 우리가 책임진다'고 하는데 그 명분이나 방향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 전 대표는 맞춤형 협력외교를 추진해야 한다고 언급했는데 이 역시 말로는 쉽지만 어떻게 실천할지에 대해서는 모호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앞으로 동북아시아에서 미·중 갈등이 더욱 커질 수 있는 가운데 70년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히 발전시키면서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관계도 지속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모호함을 유지하는 것이 이런 원칙을 뒷받침하는 것인지 묻게 된다. 의사결정 없이 언제까지 모호함을 유지할 수는 없다.
사드 배치 여부에 명확한 태도를 표명하는 것이 국론 분열을 막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불확실성을 줄여 나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속에서 통상외교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백번 맞는 말이다. 이 또한 기업들이 사업을 확장해 나갈 의욕을 갖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우선돼야 하고 그런 정책들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향신문]
9. 극우단체 뒷돈 대서 여론조작·민의왜곡 했다니
박근혜 정권이 벌인 ‘관제 데모’ 실상이 드러났다. 청와대가 기획하면 재벌을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자금을 대고, 극우단체가 움직이는 구조다. 세월호 유족을 조롱하는 집회와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집회 등이 이런 식으로 열렸을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공작을 주도한 인물은 다름 아닌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전직 청와대 직원으로부터 김 전 실장이 2013년 말에서 2014년 초 극우단체에 자금 지원을 지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김 전 실장의 지시에 따라 정무수석실은 전경련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고, 전경련은 극우단체에 차명으로 돈을 보냈다.
진보 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를 탄압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극우단체를 키운 것이다. 특검은 김 전 실장 등이 2014년 6월 극우단체를 동원해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는 집회를 열게 한 구체적인 정황도 포착했다.
단식 농성 중인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 투쟁’을 벌인 극우단체의 패륜에 시민들이 충격을 받고 의아해했는데 이제야 의문이 풀린 것이다.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 극우단체 대표들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도 적극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대 보수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이 청와대 지시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집회를 벌인 정황도 있다. 뉴시스에 따르면 자유총연맹의 관제 데모를 지시한 사람은 허현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이다. 허 행정관은 2015년 하반기 자유총연맹 고위 관계자에게 ‘세월호 진상조사 반대 집회’와 ‘국정교과서 찬성 집회’를 열어달라고 연락했다고 한다. 허 행정관은 전경련을 통해 극우단체 어버이연합 차명계좌에 수억원의 자금을 지원하고, 참가자 1인당 2만원씩 줘 관제 데모를 열게 한 배후자로도 지목받고 있다.
권력과 돈으로 민의를 왜곡하고 여론을 조작한 관제 데모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심각한 사안이다. 그것도 김 전 실장 등과 청와대가 조종했다니 어이가 없다. 그런데도 김수남 총장 체제의 검찰은 손을 놓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전경련이 어버이연합에 돈을 대고 청와대가 시위를 사주했다는 의혹을 지난해 4월부터 수사하고 있지만 지금껏 감감무소식이다.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의 동생이 김 총장 부속실에 근무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관제 데모 의혹 역시 특검이 풀 수밖에 없다. 청와대와 전경련, 극우단체 간 유착 관계를 밝히고, 검찰의 직무유기 행위도 파헤쳐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10. 언제까지 정치공학인가, 이젠 정책 논쟁 하자
여야 유력 정치인들이 속속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앞선 주자는 대세론을 주장하고, 후발 주자들은 ‘제3지대’ 연합이니 야권 공동경선 등을 제안하고 있다. 남경필 경기지사와 안희정 충남지사 등 젊은 후보들은 세대교체와 정책 중심의 경쟁을 외치지만 정국을 주도하지는 못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슈퍼우먼방지법’ 공약과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의 ‘육아휴직 3년 보장법’, 이재명 성남시장의 기본소득 정책 등도 이목은 끌었지만 의제로 떠오르진 못했다. 오히려 유력한 대선주자들일수록 특정 지역에 한정된 약속들만 내놓고 있다. 현안에 대한 해법이나 국가 미래를 좌우할 정책 제안보다는 유리한 경쟁 구도 만들기에 집중하는 상황이다.
대선은 정당과 후보들이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하고 사회문제에 대한 해법을 공약으로 제시해 대결하는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선 공약의 기조는 당면한 안보·경제 위기를 극복하면서 재벌과 검찰, 언론 개혁 등 과제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급선무로 떠오른 저출산 문제와 교육 정상화, 일자리 창출, 복지 강화 등에 대한 종합적인 해법도 필요하다.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해법을 찾기 쉽지 않은 난제들이다.
게다가 이번 대선은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돌발 상황에서 치러진다. 촛불민심으로 표출된 시민들의 요구도 대통령이나 집권 정당을 바꾸자는 수준을 넘어섰다. 박근혜 정권의 실정과 국가와 시장의 실패를 넘어설 대안을 구현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좋은 정권 교체’를 위한 집권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가 후보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촉박한 대선 일정으로 정책 검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심지어 특정 후보가 정책 토론을 회피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대로라면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정책이 뭔지 제대로 평가하지도 못한 채 기표소에 들어가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당선된 대통령은 인수위원회에서 정책을 조율할 틈도 없이 곧바로 집무를 시작해야 한다.
공약과 도덕성, 자질을 검증하지 못하면 또다시 실패한 정권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 졸속으로 만들어 낸 공약으로 선거를 치른다면 그 길을 피하기 어렵다. 공약 없이 이미지로 선택받겠다는 것처럼 위험하고 무책임한 일은 없다. 후보들 간 활발한 정책 경쟁을 기대한다.
주요신문칼럼
1. [동아일보][조경란의 사물 이야기] 일기장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해가 바뀌면 ‘새해 결심’이라고 몇 가지 정도는 일기장이나 다이어리에 적게 된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올해 첫 일기를 들춰보니 ‘일기를 더 자주 쓰고 휴대전화 보는 시간 줄이고, 더 많이 읽고 쓰는 그런 한 해를 만들어야지’라고 써놓았다.
사전적 의미대로 일기는 ‘개인의 기록’이라 나는 정말 마음 가는 대로 쓰고 있다. 그날그날의 푸념과 반성이 빠질 수 없어 다시 읽으면 유치하고 감상적으로 느껴져도 어쩔 수 없다. 일기가 아니라면 어디에다 그런 문장들을 끼적거려 놓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카프카나 존 치버의 일기처럼 훗날 출판이 되는 일기도 있는데 그런 건 역시 대가들이니까 가능한 일이겠지.
고백소설의 범주 안에 편지나 일기 형식으로 쓴 소설들이 있다. 많은 소설들 중에서도 다니엘 페나크의 ‘몸의 일기’가 지금은 가장 먼저 떠오른다. 80대에 이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딸에게 쓴 일기 형식의 소설. 제목처럼 오로지 자신의 몸에 관한 일기다. 한 남자가 태어나서 죽음을 맞기 직전까지 자신의 몸을 통해 겪었던 2차 성징, 구토, 불면증, 건망증, 노안, 전립샘 비대증, 치매….
그러니까 ‘존재의 장치로서의 몸’에 관한 세세한 일화들. 기록(記錄)의 의미는 읽는 사람의 생에 대한 갈망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건 아닐까. 언젠가 일기 형식의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는데. 지키지 않고 기록을 남기지도 않으니 순간순간들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만다.
지금 쓰고 있는 검은색 일기장 앞에는 WRITE라고 새겨져 있다. 줄이 쳐져 있고 눈을 피로하게 하지 않는 미색 종이이며 잉크를 잘 흡수하고 크기나 색이 두드러지지 않아 책들 사이에 대충 세워 놓아도 가족들 눈에 띌 염려도 적다. 먼 데서 지인이 보내준 데다 내가 원하는 일기장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어 애착이 간다.
조카들도 꾸준히 일기를 쓰고 있는데 최근에 5학년짜리 조카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제목으로 쓴 일기를 읽게 되었다. 아직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모르지만 그건 창피한 게 아니라 책에서 읽은 대로 ‘모든 것을 꿈꾸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꿈을 찾는 그날까지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기다리자고 말이다. 초등학생의 그런 내면의 일기를 교정봐 주고 있자면 나 또한 무언가 쓰고 싶어지는 마음이 인다. 수수한 공책 같은 걸 머리맡에 두고 있으면 불현듯 써보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처럼.
사람은 나이가 드는 만큼 덜 기대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덧없음의 감정’은 보다 커진다고. 두려운 말이다. 올해 일기장에는 기대하는 것, 원하는 것, 이루고 싶은 점들을 더 적어보는 것도 괜찮겠지.
2. [동아일보][황광해의 우리가 몰랐던 한식] 제사음식
명절 무렵이면 제사 음식에 대해서 여러 가지 질문을 받는다. “바나나도 제사상에 올릴 수 있느냐”는 애교 섞인 물음도 있다. 바나나를 제사상에 올리지 못할 이유는 없다. 돌아가신 조상이 바나나를 좋아하셨으면 바나나 사용이 흉은 아닐 것이다. 수박, 참외 등은 없었던 과일이다. 그러나 제사상에 수박, 참외를 사용한다고 어색하게 여기지 않는다. 사과는 꾸준한 품종 개량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나타난 사과도 쓰는 판에 바나나를 피할 이유는 없다.
제일 자주 받는 질문이 “제사 음식은 어떤 걸로, 어느 정도 차리면 좋으냐”는 것이다.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다”고 눙친다. 제사상은 각자 형편 따라 차릴 일이다. 집안 문제다. 남이 참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엉터리 이론도 있다.
제사상에 오르는 과일 순서를 ‘조율이시(棗栗梨枾)’라고 표현한다. 언제, 누가 제안한 것인지 근거는 없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없는 표현이다. ‘가정의례준칙’(1969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막연히 짐작할 뿐이다. 조율이시는 대추, 밤, 배, 감이다. 모두 조선시대에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과일이다. 대추도 과일인지 의문은 든다. 만약 조율이시의 순서로 과일을 놓는다면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참외, 수박, 사과, 귤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
홍동백서(紅東白西)도 근거 없는 표현이다. 붉은 과일은 제사상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둔다는 뜻이다. 녹색의 수박, 노란색 참외, 붉거나 푸른 사과, 노란 귤은 어디에 둘 것인가. 의미 없는 표현이다. 제사는 정성이다. 형식만 따지고 정작 중요한 의미는 잃어버린 것이 문제다. 상(喪)은 고인의 신분에 맞추고, 제사는 후손들의 신분에 맞춘다는 표현이 있다. 제사는 후손들의 경제적 정도에 맞춰야 한다. 정성이 으뜸이다.
제사가 화려해진 것은 신분제도의 붕괴와 관련이 깊다. 조선 후기 신분제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양반 수가 급격히 늘었다. 갑오개혁(1894년)으로 신분제도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도 반상에 대한 의식은 남아 있었다. 여전히 “우리 집안은…”이라고 뻐기는 이가 많았다. 결혼식, 초상, 제사 등을 통해 자신들의 부와 신분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이들의 화려한 행태를 따라갔다. 제사 음식이 화려해진 이유다.
좌포우해(左脯右해)는 기록에 남아 있다. 좌포우해와 우포좌해(右脯左해) 중 어느 쪽이 정확한지 묻는 내용이다. 좌포우해는 왼쪽에 고기 포를, 오른쪽에 육장(肉醬·젓갈)을 둔다는 뜻이다. 육장은 고기 장조림과 비슷하지만 다른 음식이다. 해(해·육장 등 젓갈)와 음료 식혜(食醯)를 혼동하기도 한다. ‘오른쪽에 식혜를 둔다’는 표현도 있다. 엉터리다. 식혜는 단술(감주)이다.
유교 사회에서 귀하게 여기는 제사 형식은 모두 네 가지다. 천신(薦新)은 새로 난 작물들을 조상에게 먼저 올리는 것이다. 궁궐의 종묘(宗廟)천신과 가정의 가묘(家廟)천신이 있었다. 천신은 거의 사라졌다. 사시제(四時祭)는 사계절에 한 번씩 지내는 제사다. 제사와 비슷한 상차림을 마련했다. 역시 사라졌다. 오늘날 사시제를 모시는 경우는 드물다.
차례와 제사는 남아 있다. 차례를 ‘명절 제사’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틀린 표현이다. 명절에는 제사가 아니라 차례다. 차례는 새해 첫날을 알리는 신고식 정도다. 차례상은 매년 돌아가시는 날 모시는 제사상보다 소박한 것이다. 조선은 농경 기반의 유교사회였다. 이제는 농경, 유교국가가 아니다. 유교, 농경국가의 제사를 그대로 되살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아름다운 전통은 형식이 아니라 정성에서 찾아야 한다.
3. [경향신문][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 머나먼 남쪽 그 소년
남쪽 끄트머리에서 보내온 짤막한 메일을 받고 그날이 떠올랐다. 2015년 늦가을 어느 날이었다. 하늘은 푸르렀고, 바람은 푸근했다. 그래도 천장이 높은 학교 강당은 썰렁해서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한 학년이 모두 나왔다고 하니 200여명이 넘었다. 그들은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자마자 하나같이 지쳐 있었다. 지루하고 시시할 게 뻔한 시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학생들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강연이고 뭐고 슬그머니 도망가고 싶었다.
그때 나타난 학생이었다. 사회를 맡았다고 인사하면서 밝게 웃던 모습. 책을 낭독하면서 어색한 연기를 태연하게 잘 해내던 모습. 메일을 보낸 학생이 선명하게 떠올랐지만, 곧 안부 인사는 잊혔다.
그런데 그 학생은 까맣게 잊히지 않을 만큼 메일을 보냈다. 어느 날은 심야자습반에 들어가 오로지 공부에만 열중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나름대로 학교생활을 즐겼는데, 대입이라는 벽 앞에 서니 아무것도 한 게 없어 막막하다는 말끝에 내 안부를 물었다. 나는 이리 답장을 보내고 싶었다. 나도 그러하다, 빈 종이에 첫 줄을 시작해야 하는 막막함을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나는 힘내라는 의례적인 답장을 했고, 벽 앞에 선 소년은 또 한참 만에 대수롭지 않은 일상을 적은 메일을 보냈다.
지난가을에는 첫사랑의 아픔을 길게 적어 보냈다. 메일 몇 번 주고받았을 뿐인데, 그의 절망과 슬픔이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그 순간 “너희 모두 다른 빛깔을 갖고 있는 별이다”라는 말이 비로소 가슴에 와 닿았다. 강연 때마다 나는 그 말을 입으로만 떠들어댔던 것이다. 성적에 짓눌린 채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학교로 학원으로 쓸려 다니는, 요즘 것들이라고 싸잡아 말하며 한 명 한 명의 목소리와 웃음과 아픔은 보려고도 하지 않았구나. 나도 그런 어른이었구나.
지난가을 내내 머나먼 남쪽에서 홀로 분투하고 있을 소년이 생각났다. 수능을 치르면 찾아올 테니 밥 한 끼 같이 먹자고 한 소년은 아직 소식이 없다. 이제 스무 살이 되었을 그를 잠자코 기다린다. 혼자 서울까지 올 수 있으려나, 꼰대 같은 걱정을 하면서….
4. [한국일보][삶과 문화] 일 잘하기 5계명
새해다. 올해는 일을 좀 더 잘해보기 위한 ‘일 잘하기 5계명’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1. 납기와 아웃풋 준수가 가장 기본이다
일 잘하는 가장 기본은 해야 할 업무의 아웃풋(Output)과 납기를 정하는 것이다. 일 잘하는 비결은 거창한 게 아니다. 구성원 간에 ‘무슨 일’을 ‘언제’까지 하겠다라는 것만 지키면 그만이다. 말은 쉽지만 현실은 어렵다. 우선 리더가 기대하는 업무의 아웃풋을 잘 정의해야 한다. “마케팅 전략을 수립해 주세요.”라고 말하면 부족하다.
“마케팅 전략 중 제품 추천율을 높이기 위한 할인 프로모션 전략 A,B,C 안에 대해 이번 주 금요일까지 최종 결정을 합시다.” 등과 같이 최대한 구체적 가이드를 제시해야 한다. 뜬구름 잡는 아웃풋이나 무리한 납기가 아닌, 합리적 방식으로 설정해야 한다.
2. 에스컬레이션으로 우선순위를 조정하자
납기와 아웃풋을 합리적으로 정의했다면, 이제는 실행의 몫이다. 수많은 업무들의 우선순위를 리더와 조율해야 한다. 대부분 실무자들의 가장 큰 실수는 한 번 지시 받은 업무를 마치 절대명령처럼 여기며 일주일이 넘도록 혼자 끙끙대다가 일을 뭉개는 것이다. 도중에 궁금한 점이나 이슈는 재빠르게 에스컬레이션(Escalation, 리더에게 이슈 제기하기)해야 한다. 이슈에 대해 에스컬레이션 하는 순간 그 책임은 다시 리더에게 넘어간다. 그
러나 에스컬레이션 하지 않고 혼자 뭉개고 있다가 나중에 구멍을 낸다면 실무자 탓이다. 이슈가 있다면 빨리 리더에게 공을 넘겨라. 리더에게 자주 물어보는 것은 죄가 아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진짜 일을 잘하는 것이다.
3. 두 시간 걸릴 일을 한 시간 만에 하도록 자동화하자
일을 하다 보면 매번 반복되는 업무를 할 때가 많다. 그럴 때는 두 시간 걸릴 일을 한 시간 만에 끝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가장 흔한 방법은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객의 CS 업무를 할 경우 처음에는 다양한 문의사항에 대응하느라 두 시간이 걸리지만, 나중에는 80%는 비슷한 유형의 이슈가 발생함을 발견하게 된다.
그럴 때 겹치는 유형의 대응방안을 매뉴얼로 만들어 대응해야 한다. 또한 기존의 업무 프로세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분석하고 어느 부분을 더 줄이고 자동화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엑셀로 데이터를 관리하고 주요 지표를 설정하여 분석하는 습관을 들이자.
4. 회고 (Postmortem ; 사후검토)는 필수다
많은 사람들이 계획은 거창하게 수립하지만, 막상 결과 리뷰는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회고야말로 일을 더 잘하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바빠서 리뷰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도끼날을 갈지 않고 나무를 베는 것과 같다.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또는 주간/월간 등 정기적으로 내 업무의 잘된 점, 아쉬운 점, 향후 반영할 점 등을 점검해야 한다. 이러한 지표를 정례화하여 아웃풋과 납기를 다시 설정하고 그 결과를 다시 회고하는 사이클을 반복한다면 업무 품질이 빠르게 향상될 수 있다.
5. 리더십과 팔로워십의 본질을 직시하자
리더십의 본질은 모든 탓을 리더에게 귀속하는 것이다. 리더는 말 그대로 책임과 권력을 모두 쥐고 있는 자이다. 본인이 시키는 일인데 남 탓을 해서는 리더라고 할 수 없다. 팔로워십(Followership)의 본질은 리더가 말하는 것을 잘 지키는 것이다. 군대식 문화가 아니라 최소한 리더가 말한 것에 대해서는 성실하게 납기와 아웃풋이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신뢰할 수 있는 리더일 경우에 한해서다. 리더가 불합리한 지시를 한다면 이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업무는 수직적이나 관계는 수평적이어야 한다.
리더와 팔로워가 이 두 가지를 구분하고 서로 신뢰할 수 있다면 올해는 보다 일 잘하는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벌지 전투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남은 전력(戰力)을 긁어 모으다시피 해서 전개한 마지막 대반격이 1944년 12월 16일의 이른바 ‘벌지(Bulge) 전투’다. 그 작전을 입안한 독일 서부전역사령부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원수의 이름을 따 ‘룬트슈테트 공세’라고도 하고, 전선의 지명인 벨기에 아르덴에서 따 ‘아르덴 전투’라고도 한다.
‘벌지’는 ‘코처럼 돌출돼 있다(nose likesalient)’는 뜻. 독일 기갑사단의 기습 진격으로 전선 모양이 주머니처럼 볼록해진 형상에 빗대 미군측이 붙인 이름이다.
노르망디 상륙전으로 승기를 잡은 연합군은 유럽 전역으로 전선을 확장하며 나치를 몰아 붙였고, 동부전선의 러시아까지 상대해야 했던 나치는 44년 들면서 기세가 꺾였다. 하지만 확장된 전선 보급로 확보를 위해 그 해 9월 연합군이 벌인 이른바 ‘마켓가든 작전’의 참패로 전황은 주춤했다.
히틀러는 그 상황을 반전의 기회라 판단했다. 정예 기갑사단을 벨기 아르덴 삼림지대에 집결시켜 숲을 뚫고 네덜란드 안트베르펜까지 진격한다는 구상. 성공할 경우 서부전선 북부 연합군을 포위할 수 있고, 연합군 보급로를 장악함으로써 막대한 군수물자를 얻게 된다는 게 그의 계산이었다.
성패는 기습과 전격전에 달려 있었다. 12월까지 기다린 것도 동절기 숲의 안개를 이용하기 위해서, 즉 부대 이동을 최대한 감추고 제공권을 장악한 연합군 폭격을 모면하기 위해서였다. 방어전인 양 위장하기 위해 독일이 붙인 작전명은 ‘라인을 수호하라’였다.
방심했던 연합군, 특히 그 전선의 주력이던 미군은 전투 초기 연패하며 큰 희생을 치렀다. 하지만 아이젠하워의 판단과 실행력은 독일 전차의 진격 속도보다 빨랐다. 그는 연합국 수뇌와의 협의 절차를 무시한 채 전력을 즉각 이동 배치해 방어선을 쳤고, 대대적 반격에 나섰다. 연료와 탄약마저 부족한 상태로 오직 연합군 군수창고와 보급로만 보고 덤벼들었던 독일은 밀리기 시작했다. 전투는 바스토뉴 공성전 직후 사실상 끝이 났다. 독일군에게 그건 전략의 패배가 아니라 기량과 군비의 패배였다.
독일군 사령부는 45년 1월 23일 작전 중지 결정을 내렸고, 1월 25일 전투가 끝났다. 미군은 전사 1만 9,000여 명, 부상 4만 7,000여 명의 피해를 입었고, 독일군은 약 6만~12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벌지 전투로 인해 나치독일의 패망이 6개월 가량 앞당겨졌다는 분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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