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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매일신문]

1. 서문 야시장 2월 재개장, 상인 화합의 값진 전기 삼자

서문시장 야시장이 이르면 내달 중순쯤 재개장할 예정이다. 지난해 11월 말 화재 피해를 입은 4지구 대체 상가로 베네시움 쇼핑몰이 최근 확정되면서 4지구 상인들이 그나마 여유를 되찾고 야시장 재개장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다. 화재 이후 야시장을 둘러싼 부정적인 분위기 때문에 생업에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야시장 상인들이 근 석 달 만에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피해 상인 모임인 4지구 비상대책위원회는 그제 “생업 터전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됐지만 그동안 야시장 상인들의 고충도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 설 연휴 직후 야시장 재개장에 관해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야시장 상인들도 “대화의 자리가 마련되면 언제든 찾아가겠다”며 환영의 입장을 내놓았다. 다소 늦은 감도 있으나 뜻하지 않은 불행한 사고를 겪은 상인들이 더 이상 시민에게 불편이 가지 않도록 뜻을 하나로 모은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무엇보다 사고 이후 4지구 상인들과 야시장 상인 간에 알게 모르게 쌓였던 감정의 앙금을 빨리 털어내는 일이 급선무다. 시장의 발전과 번영은 하나의 터전에서 늘 부대끼며 살아가는 상인이 먼저 화합하고 서로를 존중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화재 이후 피해 상인을 돕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많은 성금을 모금해 보낸 데는 자기 입장과 이득만 따지지 말고 서로 단합해 불행한 사태를 빨리 털고 일어서라는 뜻도 포함돼 있다.



이제 재개장의 운은 뗐지만 협의가 원만히 마무리되고 야시장 영업 준비 등 환경 재정비까지 다소 시일은 걸릴 것이다. 야시장이 이전처럼 활기를 되찾을 때까지 시민 모두가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서문시장이 대구 최고의 관광 명소로 제대로 자리매김하고 그 명성이 날로 높아지는 것은 상인만의 몫은 아니다. 서문시장에 대한 대구 시민의 애정과 아끼는 마음이 없다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구시와 관할 중구청도 빠른 시일 내 야시장을 다시 시민에게 선보일 수 있게끔 차질 없이 준비해야 한다. 야시장 정상화에 필요한 행정적인 지원과 홍보`마케팅 등에도 적극 힘을 보태줄 것을 거듭 당부한다.



2. 거세지는 중국의 사드 보복, 우회 전략 등 대책 찾아야

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무역 보복이 최근 무차별 확대되고 있다. 전세기 운항 불허로 시작된 보복 움직임은 배터리와 화장품, 공기청정기, 비데 양변기 등으로 계속 번지는 추세다. 심지어 삼계탕 수출까지 막히는 등 압박 강도가 세지고 있다. 한국 소비재 상품과 서비스`문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보복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련 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지난해 10월 중국 당국이 양국 항공업계에 전세기 운항을 불허하면서 운항 철회가 잇따른 것은 보복의 신호탄이다. 표면적으로는 ‘저가관광 근절’을 내세웠지만 사드 보복 차원임은 부인할 수 없다. 당시 양국 관광업계에는 중국 정부가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 수를 20% 줄이라는 구두 지침을 내렸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이번 춘제(설) 연휴 제주를 찾은 유커 수만 봐도 얼어붙은 양국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제주관광협회에 따르면 올해 춘제에 제주를 찾은 유커 수는 지난해 대비 16.6% 감소했다. 음식숙박업 등 관광업계 피해뿐만 아니라 유커 매출액 비중이 70%가 넘는 면세점들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는 등 피해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보복에는 대구경북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대구공항 국제선 항공 여객 비율은 2015년과 비교해 106% 증가했다. 계속 적자를 봤던 대구공항이 처음 흑자로 돌아선 것은 국내 여객 수요 증가 탓도 있지만 지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증가와 환승 확대 등 유커의 몫이 컸다. 하지만 이런 실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드 갈등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유커가 큰 폭으로 줄 수밖에 없어 타격을 피할 수 없다. 화장품`식품 등 중국과 소비재 상품을 거래하는 지역기업 피해도 커지기는 마찬가지다.



문제는 우리가 꺼내 들 대응 카드가 극히 적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발 무역 보복에 정면으로 맞설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장벽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중국 소비자 심리를 정확히 파악해 해외직구 확대 등 우회 전략도 한 방법이다. 정부와 업계는 이런 허점을 잘 살펴보고 돌파구를 찾는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서울신문]

3. 설 민심은 ‘팍팍한 삶’ 타개할 대선 주자 원해

설 이후 정국 흐름이 대선 국면으로 본격 전환될 전망이다. 특검이 박근혜 대통령의 조사를 준비하고 있고,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판을 서두르고 있어 정국 일정 역시 바쁘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대선 주자들은 예상되는 조기 대선에 승부수를 띄울 태세다. 그러나 민심은 무엇보다 팍팍한 삶의 현실을 해결해 주길 원했다. 대선 주자들의 대선 올인을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지만 경제를 살리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다.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읽는 데는 명절만 한 날도 없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 유력 대선 주자들은 한결같이 지역민들을 만나 민심을 청취하느라 분주했다. 대선 주자들은 국정농단으로 야기된 정국 불안을 하루빨리 끝내라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었을 것이다. 탄핵정국을 빨리 끝내고 경제를 살리라는 질타이다. 청년 일자리 문제, 빈부격차 등을 앞장서 해결해 주길 바라는 국민들의 간절함도 느꼈을 것이다. 개중에는 4차 산업혁명에 적극 대처하라는 주문도 들었을 것이다.

국가 안위에 대한 걱정도 만만치 않았다. 북한이 연초부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추가 실험 등을 호언하고 있는 데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마저 자국 우선주의로 선회해 언제 우리에게 압박을 가할지 모를 상황이 됐으니 국민들의 우려는 당연하다.



일본은 설 연휴 기간 동안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가르치도록 유도하는 초·중학교 사회과 학습지도요령을 내놓았다. 소녀상에 이은 도발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 배치 결정을 빌미로 경제적 압박을 늦추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 녹록지 않은 대내외 여건이다.

대선 주자들은 국내외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연히 과거의 적폐를 청산할 수 있는 리더십은 필수다. 미래의 먹거리를 찾기 위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수 있는 추진력을 가져야 함도 물론이다. 국방과 외교 문제를 지혜롭게 풀 수 있는 역량도 마찬가지다. 원칙과 소신 아래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국가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지도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선 주자들은 설 민심에서 드러났듯 국민들의 정치 피로도와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 자기만 옳다고 헐뜯고 비난하는 대선 주자들의 모습에 국민들은 신물이 날 정도로 지쳐 있다. 대선 공약도 민심을 제대로 읽고 국내외 경제·안보 등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토대 위에 마련돼야 할 것이다.



4.韓美 전화외교, 관건은 동맹강화 내용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어제 전화통화를 갖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공조를 강화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언제나 100% 한국과 함께할 것이며, 한·미 관계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좋을 것”이라고 확고한 의지를 표명했다. 백악관도 어제 발표한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억제 확대와 모든 군사 능력을 사용해 한국 방위에 대한 철통같은 수호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신행정부가 한·미 동맹 강화 기조 속에서 대북 제재 등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최우선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밝힌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동맹의 가치를 존중하고 이를 토대로 양국의 우호 관계를 강화할 것이란 의지를 밝힌 것은 최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을 노골화하는 시점에서 시의적절하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후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보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미 행정부의 대(對)한국 외교안보 정책이 보다 구체성을 띠었다는 측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음달 2일 방한할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과의 협의 과정에서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은 보다 확실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한·미 간 동맹강화 원칙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천명한 미국 우선주의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통상과 안보에서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동맹 관계의 재편 등을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년간 지속된 안보 동맹과 자유무역 등의 세계 질서가 격변할 것이란 경고나 다름없다. 발등의 불인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사드 배치 등의 현안에서 오바마 정부와 사뭇 다른 행보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협상의 대가답게 화려한 수사적 발언 뒤에 전략적 측면이 숨어 있다.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를 토대로 굳건하게 우리의 외교안보 현안을 풀어 나가야 하지만 한·미 동맹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키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동맹은 어느 일방의 희생을 전제로 성립되지 않는다.



한·미 동맹 역시 호혜적 국익을 바탕으로 이뤄진 만큼 미국의 시혜적 성격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시대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이고 사드 배치에 따른 비용 문제도 포괄적 수준에서 우리 정부가 분담하도록 요구할 수도 있다. 동맹 강화라는 총론 아래 각론이 더없이 중요한 이유다.

우리 정치권은 트럼프 시대에 펼쳐질 미국 우선주의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온통 대선에 쏠려 있다. 국내외적으로 격변기인 만큼 정부는 안보와 경제의 흥망을 좌우할 현안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함께 정교한 대책을 마련해 적극 대처하는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경향신문]

5. 버티는 대통령 때문에 시민이 불행해진다

​언론 보도와 특검 수사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드러나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는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애먼 시민이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다. 설인 지난 28일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60대 ‘박사모’ 회원 조모씨가 투신해 사망했다. 조씨는 탄핵 반대 집회에서 사용하는 손태극기 2개를 든 채 몸을 던졌고, 태극기에는 ‘탄핵가결 헌재무효’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찰은 “박사모 활동 때문에 가족과 불화가 있었다. 유족을 상대로 경위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이달 7일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서는 한 스님이 박 대통령 체포 등을 요구하며 분신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두 사람의 극단적 선택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죽음은 박 대통령 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비리를 저지르지 않고 정상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박 대통령 지지자로 보이는 조씨의 투신에는 설 직전 박 대통령이 “최순실 사태는 거짓말로 쌓아올린 거대한 산”이라며 허위 내용으로 극우 언론인과 인터뷰한 것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박사모의 탄핵 반대 집회를 ‘태극기 집회’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대통령직 유지를 국가 수호와 연계하는 극단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그러나 국가와 정부는 다르다. 정부는 국가와 주권자인 시민을 연결하는 매개체에 불과하다. 박 대통령이 물러나 박근혜 정부가 중도에 해체되더라도 주권자가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부를 세우면 된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박 대통령이 궤변으로 혹세무민하며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나라는 더욱 엉망이 되고 있다. 시민들의 피로감과 스트레스도 임계치에 이르렀다. 설 연휴 모처럼 일가 친척이 모인 자리의 대화 주제도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분노와 나라 걱정이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최씨는 ‘내가 무슨 죄가 있느냐’며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있다. 특검과 헌법재판소에 출석하지 않으면서 수구 보수층을 내세워 재기를 모색해보려는 꼼수에 시민들은 억장이 무너진다.



특검은 청와대 압수수색 등 수사에 더욱 속도를 내고, 헌재는 탄핵 결정을 앞당겨 하루라도 빨리 이 지긋지긋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



6. 일자리 문제 해결 없이 저출산 막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출산율 올리기’ 사업이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입법조사처는 30일 펴낸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보고서에서 이같이 분석했다. 정부는 합계출산율 1.27명, 출생아 수 44만5000명을 목표로 삼았지만 결과는 합계출산율 1.15명, 출생아 수 40만명에 그칠 것으로 추산됐다. 앞



서 정부는 2005년부터 5년씩 1, 2차 기본계획을 만들어 80조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부었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오는 2020년까지 100조원이 넘는 돈을 투입해 합계출산율 1.5명, 출생아 수 48만명 목표를 달성할 계획이지만 지금 추세대로라면 떨어지지 않으면 다행일 것 같다.

정부는 출산율 제고를 미래가 걸린 문제로 보고 대응책 마련에 부심해 왔다. 그러나 10년이 넘는 동안 벌인 사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이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성이 생겼다. 더이상 미룰 수 없게 된 정부 대책의 문제는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머리 행정’이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출산 적령기 시민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출산을 꺼리는 이유’ 중 다수가 ‘경제·사회적으로 힘들다’는 것이다. 시민은 고용불안에다 주거대책까지 막막한 상황이어서 출산은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그런데 정부의 대책은 가려운 데를 긁어주지 못했다.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을 장려하기 위한 ‘아빠의 달’ 확대를 비롯해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 난임시술 지원 확대 등은 출산율 제고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쉬운 해고’ 등으로 청년 일자리가 만들어져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게 정부 설명이지만 불안한 일자리는 고용불안을 키워 오히려 결혼과 출산을 꺼리게 만든다. 

저출산 대책은 구태의연한 기존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무모할 정도로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힘들어 아이 낳기를 꺼린다면 현금 지원을 해서라도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놀랄 정도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고 ‘육아수당’ ‘영아보육수당’ ‘가족수당’ 등 직접적인 지원방안을 검토하자는 얘기다.



여성만 출산과 육아를 책임지는 관습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구난방인 보육 관련 대책을 통할하는 컨트롤타워도 필요하다.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책임지고 키운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는 한 출산율 제고는 요원하다.



[서울경제]

7. 구조조정 미루면 日전철 밟는다는 IMF경고 새겨야

우리나라가 기업 구조조정과 구조개혁을 서둘지 않으면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한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보고서가 나왔다. 기업부채 급증, 노동시장 균열, 세계 최고 속도의 고령화와 인구감소 등 최근 한국이 경험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20년 전 일본과 비슷하다는 게 IMF의 지적이다.



잠재성장률도 노동력과 자본투입, 생산성 감소로 1991년 8%에서 2015년 2.9%까지 급격히 떨어진 것으로 추정됐다.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이 예상보다 크고 빠르게 허약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적어도 3%대는 유지하고 있을 것이라던 기대가 무색해졌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더 심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계는 내 집을 사느라고 1,300조원을 넘는 빚을 졌는데 집값 상승세는 눈에 띄게 둔화됐다. 가계부채 경고음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경기침체가 심화하면서 비정규직 비율이 빠르게 늘어가는 것도 걸림돌이다. 똑같은 일을 하는데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정규직 임금의 절반밖에 못 받으니 성과가 제대로 날 리 없다.



IMF가 노동시장 이중성을 생산성 향상의 적으로 규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기업 구조조정은 해운을 제외하고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자금흐름 왜곡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IMF는 위기탈출 해법으로 좀비기업의 신속한 정리와 노동시장 이중성 해소를 통한 불평등 완화, 서비스 규제 개혁을 꼽았다. 모두 현 정부에서 기업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구조개혁, 서비스산업발전법의 형태로 추진했던 과제들이다. 기존에 추진했던 정책들만 제대로 해도 일본이 겪었던 시련을 피해갈 수 있다는 의미다.



더구나 ‘철도·가스·전력 등 인프라 분야에서 규제를 완화하면 생산성이 0.25%포인트씩 높아진다는 IMF의 분석까지 나온 판이다. 사회경제적 비효율성을 없애고 떨어진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해법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8. 일본 제치고 터키서 4조 공사 따낸 SK·대림의 낭보

SK건설과 대림산업이 일본을 제치고 터키에서 약 4조원 규모의 초대형 교량사업을 수주하는 쾌거를 일궈냈다. 한국 건설사들은 세계 24개사가 뛰어든 차나칼레 현수교 프로젝트에서 16년2개월의 최단 운영기간을 제시해 유력 경쟁자였던 이토추상사를 꺾고 설 연휴에 승전보를 전해왔다.

터키 수주 소식은 한국 기업들이 투자부터 시공·운영의 모든 단계를 총괄해 사업 수익성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내 건설사들이 저가 수주경쟁에서 벗어나 고도의 금융기법을 활용해 사업비까지 조달하고 운영수익까지 확보함으로써 선진 건설시장에 진출하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다.



한국이 사실상 일본과의 국가 대항전에서 이겼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가 터키 측과 수차례 정상회담을 열어 입찰마감 직전에는 주무부처 장관까지 급파할 만큼 정성을 쏟았다고 한다. 이에 반해 우리는 예비조사에 4억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담당국장이 파견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런데도 우리 기업들이 악조건을 뚫고 해외 시장에서 고군분투하며 값진 성과를 이뤄냈으니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올해 초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철도·에너지·플랜트 등 해외 인프라 수주에 적극 나서겠다고 발표했지만 아직 가시적인 지원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해외 인프라 사업은 성장 한계에 직면한 우리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할 분야다. 일본이 해외 인프라 사업 수주에 5년간 2,000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취약한 금융 부문에 대한 지원을 늘리면서 해외 진출기업을 대상으로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경제외교를 펼치는 것도 절실한 과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서 마음 놓고 뛸 수 있도록 발목을 잡지 않는 일이다. 그래야만 우리 수출전사들이 더 많은 승전보를 전해올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일보]

9. 직장인 근소세 2년 만에 100만 원 늘었다니

지난 연말에 나온 ‘2016년 국세통계연보’ 분석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2013년에서 2015년 사이 국내 직장인 1인당 평균 근로소득세(근소세)가 약 200만 원에서 300만 원 이상으로 불과 2년 만에 50%, 100 만원 이상 폭증한 것이다.



물론 직장인이라고 모두 근소세를 내지는 않는다. 전체 근로소득자 1,733만 여명 중 48%에 이르는 면세자를 제외한 922만 명이 낸 근소세를 1인 평균으로 역산해 보니 그런 결과가 나왔다. 요컨대 근소세를 낼 만한 직장인, 곧 중산층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 소득세 폭증의 부담을 대부분 떠안았다는 얘긴데,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근소세 폭증은 기본적으로 복지예산 등 재정수요에 맞춰 세수를 확대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2014년 정부가 연말정산 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한 효과가 컸다. 사실상 근소세 감면을 축소한 세액공제 적용으로 1인당 평균 근소세가 즉각 90만 원 이상 뛰었다.



그때 근소세를 내지 않는 면세자가 530만명(2013년)에서 802만 명(2014년)으로 급증한 점을 감안하면 저소득 근로자에 대한 근소세 면제 확대 부담을 중산층이 떠안은 셈이다. 하지만 과세대상 직장인들의 임금은 2015년 중 명목으로 1.68% 오르는데 그쳐 중산층 가구의 실질소득은 감소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복지혜택만큼 조세부담이 느는 건 당연하다. 지난해 근소세수는 30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돼 과세대상 직장인 1인당 평균 근소세액은 더욱 늘어났다. 문제는 불공평한 부담 지기다. 2013년 이래 지난해까지 근소세수는 54% 이상 늘었다.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같은 기간 법인세수는 12% 증가에 그쳤다. 사업소득자의 과세비율 역시 여전히 70%에 못 미치는 현실을 감안하면 세목별 불균형은 심각하다. 근소세목 내에서도 면세자 비율이 48%로 미국(35.8%) 캐나다(33.5%)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10% 포인트 이상 높은 것도 문제다.

조세 증가 부담이 중산층 직장인에 지나치게 집중되면 가처분소득 감소로 내수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이미 서민은 물론, 가계부채 증가와 주거비 상승 부담에 시달리는 중산층 소비도 붕괴한 상태다. 따라서 향후 증세를 겨냥한 세제개편은 근소세 면세자 비율 축소하는 ‘넓은 세원 확보’, 법인세 재산세 등과 근소세 등 세목별 형평성 제고, 부자 증세 등을 통한 조세 증가 부담 분산 등이 우선돼야 한다. 그런 전제 없이 부가세 인상 등에 대한 국민적 동의도 얻기 어렵다.



10. 지친 설 민심이 묻는다, "당신은 지도자 깜냥인가"

정치권과 언론이 전하는 설 민심은 탄핵 촛불정국의 조속한 정상화와 민생안정으로 모아진다. 특검의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와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이 조속히 마무리돼 지난해 가을 이후 계속돼온 국가 리더십 공백과 국정 혼란을 끝내고 조기대선을 통해 전환기적 위기국면을 타개할 새 리더십을 서둘러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 측의 헌재 심판 지연책과 탄핵기각 기대 등으로 대선일정이 유동적이지만 정치권은 물론 대다수 국민도 '벚꽃 대선'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여야 정치권이 특히 경청해야 할 대목은 리더십 부재의 혼란 상황 장기화와 진영대결 첨예화에 따른 국민의 피로와 정치 불신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민심은 단지 민생의 어려움이나 안보 불안 토로 차원을 넘어 국가의 미래비전 및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토대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위기감으로 표출된다. 유독 정치권 전체의 반성과 책임을 주문하는 여론이 많았던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대통령 탄핵파동에 기대어 그 반사이익만 챙기겠다는 행태로는 보수든 진보든 차기 리더십 근처에 가기 힘들다는 경고로도 들린다.

본보가 대학교수 등을 상대로 파악한 지역별 표심은 설 전후 실시된 여론조사와는 흐름이 다르다. 조사결과만 보면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우세가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를 부인하기 힘들지만, 그 이면을 파고들면 전략적 투표를 고심하거나 콕 집을 대상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유권자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여권은 '보수세력의 환골탈태와 대통합을 통한 재집권'이 민심이라고 주장하고, 야권은 '보수 10년의 부패와 반민주를 심판하는 정권교체'가 표심이라고 강조하지만 양쪽 모두 아전인수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그래서 당내경선에서 본선으로 이어지는 대선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하는 게 옳다. 더구나 이번 게임은 최단 시일 내에 최적의 지도자를 선택해야 하는 고난도 정치이벤트다. 그런 만큼 출마자들의 정치적 정책적 역량과 자질을 검증하는 토론과 공론의 장이 어느 때보다 넓고 깊게 이뤄져야 한다.



일부 진영에서 기득권이나 지역정서에 근거한 대세론이나 대망론을 내세워 우위를 선점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으나 그런 시도는 거품에 불과함을 그들 스스로도 잘 알 것이다. 최근 문 전 대표의 KBS토론 기피가 유감스러운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부실검증을 자초한 맹목적 지지로 대통령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을 선택한 업보로 나라와 국민이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는지 새삼 되돌아볼 일이다.





주요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살며 생각하며] 한양도성길, 바쁨 속에서 느긋함을 찾아가다

오전 10시 종로구 부암동 창의문 입구에서 모이기로 했다. 목적지 입구의 건널목에는 A군이 신호등 바뀌기를 기다리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길 옆으로 커피숍이 있고 그 뒤편 언덕 위에는 만두집 간판도 보인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 부록에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다는 식당을 따로 모아놓은 ‘빕 구르망’에도 이름을 올렸다. 

성문의 현판글씨는 창의문(彰義門)이다. 그런데 대부분 자하문(紫霞門)이라고 부른다. 딱딱한 그리고 조선의 이데올로기인 의(義)자가 들어간 규격적인 이름은 별로 인기가 없었던 모양이다. 성문 위에서 보랏빛까지 머금은 아름다운 저녁노을(紫霞)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았던 자리인지라 모두가 자하문으로 불렀다. 생각은 또다른 생각으로 이어진다.



​해인사 일주문의‘홍하문(紅霞門)’편액도 떠오른다. 작은 세로글씨를 숨기듯이 고목나무에 매달린 매미처럼 붙여 놓았다. 아름다운 붉은 노을빛(紅霞)을 감상하기 좋은 자리임을 알리는 가이드 노릇까지 맡겼다. 유가와 불가의 표면적인 엄격함 뒤로 항상 이런 감성적 언어가 같이 했다. 예(禮, 위계질서)가 있으면 악(樂, 함께 즐김)도 있고 긴(緊, 팽팽함)이 있으면 완(緩, 느슨함)도 함께 있어야 사람사는 곳인 까닭이다. 

동시에 세 명도 모이기 어렵다는 20대가 10여명 모였다. 교통 환승 도중에 문제가 생겼다는 연락을 미리 보낸 마지막 인물까지 도착했다. 덕분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도록 설계한다는 공학적 의도가 가미된 딱딱한 나무의자가 대부분인 커피숍에서 덤으로 젊은이들의 상큼한 수다를 듣는 기쁨을 쏠쏠하게 누렸다. 시험공부에 취업준비에 정신이 없다고 한다. 그 사이에 또 짬을 내서‘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알기 위해 ’알바를 해야 한다면서 미간을 찌푸린다.



‘인류보존을 위해 ’데이트도 해야 한다면서 멋쩍게 웃기도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이들과 함께 나들이 목적지를 한양도성으로 정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가깝기 때문이다. 모두 시간이 없어서 멀리 못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시간 답사 후 점심 먹고 2시쯤 헤어지는 스케줄로 짰다.

서울성곽은 오백년 동안 자기 몫을 충실히 다했다. 한양을 지켜준 울타리였다. 이 정도의 높이와 시설로 수도를 방어할 수 있는 그런 시절도 있었다니. 호랑이 담배 먹던 때도 아니고 불과 일백여년 전까지 그랬다. 예나 지금이나 성곽은 그대로 변함없는데 무기가 창칼에서 총과 대포로 바뀌면서 그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내가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주변이 변해버린다면 나 역시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산성도 군사용에서 관광용으로 완전히 용도가 바뀌었다. 

옛사람들은 약 20km인 한양도성 전체를 봄 여름이면 무리를 지어 성을 한 바퀴 돌면서 주변의 경치를 감상했다고 유본예(1777~1842)는『한경지략』에서 기록했다. 이른 아침 첫걸음을 떼면 해질 무렵 출발지로 되돌아왔던 순성(巡城)길이다. 그때도 살벌한 군사적 목적 외에 훈훈한 관광용을 겸했던 것이다.



산성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요즘 바다도 그렇다. 군항인 동시에 크루즈선 정박을 겸하는 그런 항구는 더 친밀감을 줄 것 같다. 지방에 있는 공항들도 군용과 민간용을 겸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다용도일 때 공간의 효율성이 더욱 높아지는 까닭이다.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경사면이 좀 가파르긴 했지만 잘 닦여진 길도 “바빠서” 운동량이 부족한 탓인지 모두가 힘들어 한다. 산성 따라 줄을 지어 걷는 이들은 대부분 등산복으로 무장한 중년층이었다. 익숙한 자세로 날렵한 걸음이다. 우리 팀이 제일 젊은 것 같은데 쉼터마다 쉬어야 했다.



이마에 땀을 훔치며 말바위에 도착한 후 삼청공원 방향으로 내려왔다. “바쁘다”는 B가 식당에 앉자마자 점심을 후다닥 먹고는 알바 때문에 먼저 가야한다며 자리를 뜬다. 두 번째 답사일정은 동대문 근처 낙산공원에서 말바위 쪽으로 오는 한 시간짜리 길을 선택했다. 이런 식이라면 12번은 와야 성곽길을 한 바퀴 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야말로 슬로우시티가 되는 것이다. 올가을의 취업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그룹스터디에 참여하느라 “바빠서” 두 번째 답사는 참석이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C의 말도 얼마 전에 듣게 되었다. 

그들도 여러가지 일로 바쁘지만 필자도 하는 일 없이 바쁜 사람이다. 게다가 우리가 서로 이해관계로 엮인 사이도 아니다. 그러하니 답사의 지속성도 쉽지는 않겠다. 그래도 인생선배로서 “바쁨” 못지않게 “휴(休, 쉼)”의 중요성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발동한다.


묘안을 짰다. 오프라인이 어려우면 온라인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겠다. 그래서 통으로 묶어 이른바 ‘밴드’를 만들었다. 언제나 스마트폰을 쥐고 사는 세대이니만큼 사이버공간을 이용하여 대면하는 것이 최적의 대안이라고 옆에서 조언했기 때문이다. 조언자는 밴드 관리까지 맡겠다고 나선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다. 

밴드 형식을 갖추어도 채울 내용은 더 문제다. 먹방처럼 부암동의 만두가 맛있다는 잡담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모두를 묶을 만한 공동관심사를 발굴해야 한다. 병역의무를 마친 예비역까지 있으니 나이 편차도 있고 성별은 말할 것도 없고 전공도 다르고 출신지역도 각각이다. 궁리 끝에 보편적 공감대로서 ‘여행’을 설정했다.



여행을 싫어하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문득‘여행’보다는‘답사’라는 단어가 더 좋아 보여 밴드이름을 “답사만리”라고 붙였다. 여행과 관련된 짧은 글을 퍼 날랐다. 읽기만 하고 “조금 바빠서” 조용히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덜 바빠서” 더러 댓글도 붙는다. 댓글에 또 댓글을 또 달며 추임새를 넣어주며 머리를 식히는 ‘휴(休, 쉼)파’도 생겼다. 

이래저래 젊은이들이 바쁘다. 바쁘니까 또 아프다.‘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위로해도 그 순간뿐이다. 힐링을 위해 명상수행센터를 찾고 템플스테이와 함께 참선을 해도 잠시 그때뿐이다. 제자리로 돌아오면 또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녹록치 않은 현실이 “아프게” 또 “바쁘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2. [중앙일보][삶의 향기] 함께 걸어가는 사이

살고 있는 동네에 자주 보던 노인 커플이 있다. 남자 노인은 양복을 입고 여자 노인은 무릎 길이의 치마를 입고 추우면 그 위에 모직 코트를 입은 늘 비슷한 차림이다. 늘 비슷한 시간에 느릿하되 일정한 걸음으로 20여 분을 걸어 수퍼마켓에 갔다가 하루 치 장을 봐서 나눠 들고는 다시 집으로 걸어간다.

두 사람이 손을 잡거나 이야기를 하며 가거나 하는 일은 없는 걸로 보아 오래 산 부부인가 하고 짐작한다. 자식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독립해 떠났을 것이다. 대개는 둘 사이에 한 뼘 정도의 공간을 두고 보조를 맞춰 나란히 걸어간다.



이게, 두 노인이 다투거나 하여 서로 심기가 좋지 않으면 대뜸 알 수 있는 것이 두 사람이 걸어가는 그 사이의 공간이 평소보다 넓다. 때로는 여자 노인 쪽이 1m쯤 앞서 걸어가는 일도 있는데 필시 화가 난 것일 게다. 그러면 두 노인이 걷는 속도도 전체적으로 평소보다 조금 빠르다. 그래도 늘 둘이 같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간다. 

10년 가까운 세월을 봐 왔는데 근래엔 두 노인이 같이 걸어가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여자 노인이 안 보이는 일이 좀 잦아졌구나 싶더니 지난해 가을 무렵부터는 부쩍 등이 굽은 남자 노인이 혼자서 같은 길을 간다. 늘 둘이 같이 가다가 혼자 걸어가는 길. 보는 내가 다 쓸쓸하다. 

생각해 보면 부부(영국이라면 같이 살되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동거인이나 동성 커플도 부부에 준하는 관계이지만 한국의 경우 아무래도 이성 부부의 형태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 같으니 부부라고 그냥 쓰기로 하고)란 꽤나 신기한 관계다. 둘은 원래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족 중 피를 나누지 않은 사이는 부부뿐이다.



생판 남이랑 만나 평생을 보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용감하게도. 그러니 그 용기가 다하거나 참을성이 사라지면 헤어질 수도 있는 사이고. 헤어지면 도로 남이 되는 사이고. 그런 두 사람이 만나서 같이 살고 같이 늙어 가는 거다. 꽤나 감사하고 조심해야 할 관계라는 느낌이 들지 않나. 

말로는 제일 중요한 것이 부부지간이고 늙어 서로의 곁에 남는 것도 배우자뿐이라고들 하지만 부부 사이는 둘이 만났기 때문에 부수적으로 생겨난 것이되 무시하거나 좋다고만은 할 수 없는 다른 관계들에 의해 참 많이도 휘둘린다. 내가 선택한 건 오로지 저 사람 하나였던 건데 그의 가족이 와장창 딸려 왔더라, 아니면 상대방의 가족 안으로 후루룩 끌려갔더라 이런 상황.



저 사람과 살기로 하면서 원한 건 아내(또는 남편)라는 역할이었을 뿐인데 정신 차리고 봤더니 덕분에 해내야만 할 역할이 며느리·동서·올케, 심지어 조카며느리 등등(또는 그에 해당하는 남자 쪽 역할) 너무 많고 버거워 아내(또는 남편) 노릇을 확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 상태. 설 동안 그런 마음이었던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연휴라지만 쉬지 못하고 막히는 길을 오래 오가고, 불편한 자리에서 불편한 이야기를 듣고, 단 한 번도 본 일이 없거나 돌아가신 지 오래인 조상님들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손에 익지 않은 가사 노동을 하는 것들. 이 모든 게 둘이 좋아서 같이 재밌게 한세상 잘 보내자고 결심했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 돼 버린 것 아니던가. 그런데 그 때문에 상처를 받고 그로 인해 얻은 스트레스나 마음의 상처를 서로에게 배설해 버린다. 그러고는 둘 사이가 마구 나빠진다. 이거 뭔가 앞뒤가 바뀐 거 아닌가. 진정 중요한 것은 둘이 잘 살아가는 것이라면 말이다. 

즐겁고 신나야 할 명절이로되 몸과 마음이 아주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을 수도 있겠다. 결혼을 두 집안의 결합으로 봐 왔던 한국 사회에서 그 복잡한 관계의 그물에서 단숨에 벗어나기란 사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부부의 본질은 엄연히 두 개인의 만남이다. 따지고 보면 집안이라는 것도 여러 부부 관계의 확장이고.



그러니 서로의 집안 때문에 부부 관계가 상하기보다는 집안이 부부 관계를 응원하도록 변해 가는 게 사리에 맞을 것이다. 결국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동네 가게를 같이 오가는 부부 아니겠는가. 때로는 손이라도 잡고 가면 더 좋을 것이다.



​3. [서울신문][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명절, 오래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설 명절을 쇠고 정유년을 맞았다. 이번 설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의 오래된 집을 찾았다. 30여 년 전 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을 국가 사업에 빼앗긴 나처럼 실재하는 고향이 없거나 여건이 안 되었던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나마 그리운 옛집을 찾았으리라.



설이나 추석 다음에 연휴라는 말이 따라붙지만 명절은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보통 연휴와는 반대로 오래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계절에 따라 날을 택해 시간이 바뀌는 것을 기념하는 명절에 고향의 옛집을 찾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번 설에도 고속도로는 꽉 막혔다. 길이 아무리 막혀도 명절에 고향을 찾는 사람들이 줄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근대기 이후 인류는 약 1만년 전 신석기시대에 시작한 정착생활에서 벗어나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 다니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혹은 꿈을 따라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을과 집을 떠나 먼 곳에 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20세기 후반의 급격한 도시화와 대규모 재개발로 많은 사람들이 농촌 혹은 도시에 있는 옛집을 떠났다.

무슨 일이든 한 번 해 보면 다음은 쉽다. 집을 한 번 떠난 사람은 쉽게 또다시 집을 옮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황당하게도 이사가 가장 수익성 좋은 경제활동이었다. 따라서 정착이라는 말은 점점 낯설어지고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원주민이라는 말이 일상생활에 등장했다. 이렇게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 현대인의 모습은 사냥 도구 대신 디지털 기기를 들었을 뿐 유목민과 다를 바 없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유목민은 자유로운 대신 하나의 큰 문제를 안게 된다. 자신이 누군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일관되게 인식하는 자기 정체성이란 내가 오래 거주한 장소, 그리고 내가 속한 지역공동체와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영혼이 육체에 관련되듯 정체성은 존재의 물리적 환경에 관련된다. 자신의 기억이 새겨진 집,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장소인 마을이 없이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유목민이 된 우리가 역사상 어느 시기보다도 오래된 집을, 그 집이 속한 마을을 그리워하는 것은 자신을 알고 싶은 욕구 때문으로 보인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오래된 집을 떠남으로써 비로소 집과 마을이 무엇인지, 왜 소중한지 인식하고 이해하게 됐다. 이런 인간 본연의 욕구 앞에 그곳에 이르는 데 몇 시간이 걸리는지, 얼마나 지루하고 힘든지는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설에 찾은 고향의 옛집은 오랜 기억을 일깨워 준다.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 집으로 올라가는 골목, 마당, 우물, 흙바닥의 부엌, 온돌방, 마루, 다락, 집 옆 채소밭까지 곳곳에 나의 쓸쓸하거나 명랑한 기억이 묻어 있다. 오랜만에 집을 한 바퀴 둘러보자면 기억들이 도깨비 바늘이 되어 내게 달라붙어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 일깨워 준다.

세상과 맞서느라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은 언제나,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있는 듯한 고향의 옛집에서이다.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그 소중한 장소에서 오랜만에 자신으로 돌아온 나를 발견하고 모처럼 안도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새집보다 허술하고 작은 오래된 집에서 나는 더욱 보호받는 듯하다. 명절에 돌아온 옛집은 세상으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을 때, 바깥의 바람이 차가울 때 더욱 따뜻한 곳이 되어 나를 감싼다.

우리는 다시 오래된 집을 나서 거친 세상 속의 새집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유목민의 숙명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전과 동일하지 않으며 세상 또한 전과 같지 않다. 내가 변하면 내가 인식하는 세상도 변하는 법이다. 실제로 또는 상상 속에서 옛집을 찾은 우리는 한층 좋게 바뀌었을 것이다.



미국의 농부 작가 웬델 베리가 말했듯이 소중한 장소로 되돌아감으로써 우리의 부분성과 유한성에 대해 새롭고 올바르게 깨달을 수 있었고 서로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치유와 기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순진함과 공포, 슬픔은 알 수 있을지라도 비극과 기쁨, 위안, 용서 또는 속죄는 알 수 없었으리라.



4. [경향신문][황대권의 흙과 문명] 피크 소일

명절이 되면 나는 전남 영광에서 부모·형제가 있는 서울로 역귀성을 한다. 한 해 동안 크지 않은 농지에서 수확한 이런저런 농작물을 승용차에 싣고 잘 닦인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명절로 인한 설렘은 어느덧 사라지고 끝없이 늘어선 차량 행렬과 사통팔달 연결된 도로망에 둘러싸인 땅을 보며 나도 모르게 욕을 쏟아낸다.



우선 4차선 고속도로가 교차하는 곳은 마을 몇 개가 들어서고도 남을 만큼의 땅이 버려진 채 도로를 떠받치고 있다. 저런 교차로로 인해 버려진 땅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될까 하고 헤아리다 이내 고개를 돌려버린다.



우리나라는 국민 1인당 도로면적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도 끊임없이 도로 건설을 하고 있다. 2012년에 이미 도로점유 면적이 사람의 주거면적을 넘어섰으며 고속도로의 밀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약 7배에 달한다고 하니 이 나라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임이 분명하다.

도시 아파트에 갇혀 지내다가 고속도로로 나온 도시인이 광활한 논밭 사이를 뚫고 시원하게 달리면 스트레스가 날아갈지 모르겠으나 산중에서 한 뼘의 흙이라도 유실될까 싶어 밭둑을 돌과 나무로 둘러치고 잡초 한 포기라도 제자리에서 생을 마감하도록 배려하며 농사를 짓는 내 눈에 고속도로 주변의 논밭은 녹색사막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이 논밭을 경작하는 사람들을 농부로 부르지도 않는다. 그들은 도시에 몰려 사는 90%의 인구에게 화학약품에 찌든 식량을 공급하는 식량공급자일 뿐이다. 그것도 돈 대는 사람, 경작하는 사람, 수확하는 사람이 다 따로 있다. 자연히 사람들은 토양이 유실되든 오염되든 크게 개의치 않는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슈퍼마켓의 환한 진열대에 올릴 번듯한 물건만 만들어내면 그만이다. 만약 토지에서 만들어내는 생산비가 감당 안 되는 시점이 오면 언제라도 농지를 팔아버리고 도시 인근에 빌딩농장을 지을 사람들이다.

글을 쓰다 보니 마치 농사짓는 사람들을 욕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는데 사실 그들은 체제가 요구하는 대로 했을 뿐이다. 농지를 버리고 모두들 도시로 가서는 깨끗하고 번지르르한 농산물만 찾으니 남아 있는 사람들에겐 선택권이 없다. 기계로 땅을 갈아 농약 치고 대량으로 재배해서 영혼 없는 생산물을 상인들에게 넘겨주면 그만이다. 농업뿐만 아니라 산업자본주의 체제 아래 모든 분야가 사정은 같다. 자본주의가 잘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땅은 망가지고 토양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잠이 쏟아지는 바람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잠시 눈을 붙이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보충하는데 간판이 재미있게도 S-oil(에쓰오일)이다. 처음에 이 간판을 보았을 때 무슨 친환경 기름을 파는 회사인 줄 알았다. ‘소일’은 영어로 흙이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쌍용정유의 첫 글자를 영문으로 표기한 것이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곰곰 따져보니 참으로 묘하다. 환경론자들이 석유문명의 종말을 얘기하면서 흔히 쓰는 용어에 ‘피크 오일(peak oil)’이라는 말이 있다. 석유 생산이 정점에 이르러 이제부터 에너지원을 바꾸지 않으면 큰 위기를 맞이한다는 것이다. 

피크 오일을 패러디해서 생겨난 말이 ‘피크 소일(peak soil)’이다. 지구 토양의 생산력이 지구 인구를 안정적으로 먹여 살릴 수 없을 만큼 악화되는 최고점을 이르는 말이다. 피크 소일은 토질이 악화되거나 인구증가가 토양 생산력을 앞지를 경우 나타나는데 지금은 두 가지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 상태가 심각하다. 

문명의 몰락을 설명하는 많은 이론들이 있지만 거의 모두가 동의하는 한 가지 요인이 있다. 바로 지력 고갈이다. 나뭇가지로 땅을 파서 농사를 짓던 원시농업시대건 농업 비중이 1%도 안 되는 현대 산업사회건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의 먹을거리는 거의 전부 땅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육지보다 넓은 바다가 있지만 바다에서 얻는 칼로리는 육지 생산물의 1%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식량 생산과 뭇 생명의 터전인 땅을 망가뜨리고 다른 용도로 쓰는 것을 ‘발전’으로 생각하고 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땅을 파괴하는 데는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지만 그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데는 몇 천 년이 걸린다. 한 연구기관의 보고에 의하면 현재 지구의 표토는 생성되는 속도보다 20배나 빠르게 없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인류의 문명은 몰락을 피할 수 없다.

그러니까 몰락을 피하기 위해 모두들 농사를 짓자고 주장하려는 것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대답은 “그렇다 아니다”다. 사실 지구의 토질은 지금으로부터 약 8000년 전 인간이 우연히 곡물을 발견하여 농사를 지으면서부터 나빠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연농법’을 제외하고 모든 농법은 땅에 투입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그래도 근대 이전에는 인구가 적어 지력 고갈이 아주 천천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흥과 함께 생산력이 고도화되고 동시에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자 지력도 같은 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문명의 몰락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하나가 인구 증가의 억제이고, 또 하나가 지력 증강이다. 인구문제는 너무도 복잡하므로 다른 자리에서 말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토지문제만 집중하기로 하자. 우선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절대농지는 무조건 확보해야 한다.


다음으로 많은 농학자들이 산업적 방법으로 지력을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지만 나는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산업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지력 보전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그런가는 굉장히 난해한 논쟁이 되겠지만 일단 지력이라는 것은 생명 대 생명의 교감을 통해 아주 천천히 향상되는 것임을 말해 둔다.


5. [경향신문][이굴기의 꽃산 꽃글] 백서향

밤이 아니라 낮이다. 덕분에 사방이 잘 보였다. 경사가 있었다. 미끄러지면 곧바로 바다로 풍덩, 빠지는 곳이었다. 물은 물렁물렁해서 나비만 한 체중이 아니라면 그냥 그대로 푹 꺼질 것이다.


나무들은 가파른 비탈 따위는 간단히 제압하고 지구의 중심을 향하여 뿌리를 뻗고 있었다. 바다와 면한 곳이지만 나무가 먹는 건 짠물이 아니었다. 여기는 거제도 벼락바위 근처, 우리 국토의 최남단 한 자락이다. 아직은 한창 겨울인가.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지만 그건 달력 속의 사정이다. 남해안 바닷가 언덕에는 정유년의 봄꽃들이 벌써 피어나고 있었다.


뫼제비꽃, 붉은대극, 복수초를 눈으로 만지고 손으로 접촉해 보았다. 신기한 감정이 일어났다. 올해도 어김없이 또 시작이군, 이렇게 밑바닥에서부터.

이곳은 겨울에도 그리 춥지가 않아서 나무가 낙엽을 만들지 않는다. 계절이 바뀌어도 잎을 바꿀 필요가 없는 상록수들. 그처럼 육중하게 자신만의 한 세계를 이룩한 나무들 사이로 작은 나무가 있다. 다 자란다 해도 겨우 허리춤을 찌르는 정도이다.


짓궂게 장난을 친다면 한달음에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나무도 있다. 키가 작아서 아주 다정하고 몸피가 작아서 아주 다감한 나무. 제주도에도 있지만 뭍에서는 단지 몇 군데에서만 관찰되는 아주 희귀한 나무. 백서향이다.

백서향은 거제도 맨 아래쪽 바다와 인접한 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한두 포기가 아니라 무리지어 띄엄띄엄 사이좋게 산촌(散村)의 인가처럼 흩어져 있다. 

다른 나무들이 깊은 겨울잠에 빠져 있는 동안 백서향은 깨어 있었다. 꽃이 활짝 핀 것이다. 줄기를 따라 어긋나게 달리는 잎들. 둥근 계단처럼 오른 끝에 십자 모양의 꽃들이 야무지게 다발을 이루고 있다.

올해 처음 만난 나무의 꽃이 백서향이라서 좋았다. 이름에서부터 그윽한 향기를 자랑하더니 실제로 코끝을 접근하자 은은한 향이 풍겨왔다. 향기도 담겠다는 태세로 카메라들 들이대던 한 꽃동무의 속삭임이 나비처럼 날아와 딱딱해진 내 가슴을 벼락처럼 때렸다. 겨우내 얼어붙어 있던 사랑의 감정이 녹아 솟아나오는 향기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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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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