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세계일보]

​1. 대선주자들, 박세일 ‘애민 메시지’ 어찌 읽고 있나

지도자의 자질과 덕목은 무엇인가. 지난달 세상을 떠난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도자의 길’이란 명쾌한 해답서를 우리 사회에 남겼다. 박 교수는 “아무나 지도자의 위치를 탐하여서는 안 된다”고 일갈했다. “치열한 준비도 없이, 고민도 없이 나서는 것은 역사와 국민에 대단히 무례한 일이다. 아니 죄악이다”라고도 했다. 그는 A4용지 17장 분량의 유작을 임종하기 전에 지인들에게 보냈고 어제 세계일보 지면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박 교수의 목소리는 최순실 사태를 맞아 온 국민이 신망 있는 지도자를 갈구하는 현실에서 울림이 크다. 그는 소신과 원칙으로 올곧은 삶을 살고자 노력해온 사람이었다.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던 2005년 박근혜 대표가 행정부의 세종시 이전에 찬성하자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며 금배지를 내던지고 정계를 떠났다. 이후 시대적 과제인 ‘선진화’와 ‘통일’ 전략을 연구하고 설파하는 데 여생을 바쳤다. 자신의 아호도 ‘천하는 공공을 위한 것’이라는 중국 고전 예기의 문구에서 따와 위공(爲公)으로 지었다.

그는 유작에서 “우리 사회에 지도자가 되고 싶은 욕심은 많은데 지도자의 자질과 능력, 덕성을 키우는 노력은 많이 부족하다. 그러니 안민도, 경세도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지도자의 자질과 덕목으로 4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지도자는 애민정신을 가져야 하고 자기수양에 앞장서야 한다”며 애민과 수기(修己)를 꼽았다.



두 번째 요건은 비전과 방략(方略)으로 “공동체가 나아갈 역사적 방향과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와 해결방식에 대한 나름의 확고한 구상”을 내세웠다.



세 번째로는 현명한 인재를 구하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구현(求賢)과 선청(善聽)을 강조했다. 마지막 덕목으로는 “성취는 국민과 역사에 돌리고 실패와 반성의 책임은 자신만이 가지고 가야 한다”며 후사(後史)와 회향(回向)을 들었다. “지도자는 역사에 큰 기여를 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해야 하며 일이 끝나면 빈손으로 가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박 교수가 제시한 4가지 기준으로 거르면 아마 살아남을 정치 지도자가 거의 없을 것이다. 맨 먼저 꼽은 애민에서부터 불합격 판정을 받은 정치인들이 속출할 게 뻔하다. 입으로 국민을 외치고 있으나 실제 마음속에 사심으로 가득한 까닭이다. 그런데도 사탕발림 공약을 내걸고 너도나도 대선판에 뛰어드는 형국이다. 나라를 이끌 적임자라고 큰소리치지만 국가를 경륜할 전략도, 공동체를 위한 희생정신도 없다. 자기 개혁도 하지 못하는 협량으로 국가 개혁을 요란하게 떠벌리는 이들이 즐비하다.

천상의 노 교수가 전한 메시지는 보수든 진보든 다 같이 시대적 화두로 되새길 어록이다. 나라 사랑에는 좌우가 있을 수 없다. 대선주자들부터 지도자 요건을 제대로 갖췄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라. 그런 자질과 고민 없이 나선다면 역사와 국민에 죄를 짓는 일이다.



2. 북 위협 안중에 없는 정치권의 개성공단 재가동 주장

개성공단에서 기계 소리가 멈춘 지 오늘로 꼭 1년이다. 작년 초 북한이 4차 핵실험에 이어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나서자 우리 정부는 2월10일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발표했고, 북한은 다음날 개성공단 폐쇄와 공단 내 남측 인원 추방으로 맞대응해 남북경협이 올스톱됐다. ‘남북교류 최후의 보루’로 불리던 개성공단은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 진전이 없어 재가동 전망이 불투명한 실정이다.

대선주자들은 대부분 개성공단 재가동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반대하고 있고, 안희정 충남지사가 재개 조건으로 비핵화 협조 등을 거론하고 있을 뿐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다른 주자들은 무조건 재개를 주장한다. 재가동 문제는 개성공단의 상징성과 입주업체들의 사정도 살펴야겠지만 한반도 정세 등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국제사회가 대북제재를 강화하는 마당에 개성공단을 재가동하면 우리가 제재의 틀을 허무는 꼴이 된다. 점증하는 북한 위협을 감안할 때 재가동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어제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280㎏과 플루토늄 52㎏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했다. 최대 45기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북한 고농축우라늄 보유량이 758㎏에 달한다는 보도도 나온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위협과 더불어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대북 강경책을 쏟아내는 이유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상원 인준 과정에서 서면답변 자료를 통해 군사적 위협이나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도입 등을 포함한 새로운 대북 접근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대북제재를 강화하는 국제사회 등을 설득할 논거가 부족한 처지인 만큼 정치권은 개성공단 재가동 언급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섣불리 주장했다간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고, 우리의 안보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 국가 안보에 대한 대선주자들의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이데일리]

3. CJ·GS홈쇼핑 재승인에 관심 갖는 이유

내달로 GS홈쇼핑과 CJ오쇼핑에 대한 사업승인 기한이 만료됨에 따라 정부의 재승인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지에 눈길이 쏠린다. TV홈쇼핑에 적용되는 재승인 기준이 과거보다 한층 엄격하게 설정됐기 때문이다. 홈쇼핑 채널의 공적 책임과 공공성 심사 기준이 까다로워졌으며 특히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다각적으로 심사가 이뤄지게 된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TV홈쇼핑 회사들에 대한 일제 점검을 통해 시정명령과 함께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한 2년 전의 공정거래위원회 조치가 어떻게 반영될 것이냐 하는 점이다. 그때 CJ오쇼핑과 GS홈쇼핑도 각각 46억원, 2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판매촉진비를 납품업체에 부당하게 떠넘기는 등 고질적인 ‘갑질’ 행위의 결과였다.

미래부가 불이익 결정을 내린 전례도 없지 않다. 롯데홈쇼핑에 대해 지난해 9월부터 6개월 동안 프라임타임 영업정지 처분을 내린 것이 그것이다. 그 직전 현대·롯데·NS홈쇼핑 등 3개사의 재승인을 허가했으면서도 롯데홈쇼핑에 대해서는 제재 조치를 부과했다. 물론 롯데 측의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본안소송이 진행되고 있으나 미래부가 이번에도 느슨하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이번 재심사에서 ‘최순실 게이트’의 여파가 어떻게 작용할는지도 관심 사항이다. CJ그룹의 경우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 출연과 K컬처밸리에 대한 투자가 이재현 회장의 사면복권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GS홈쇼핑도 이른바 ‘최순실 화장품’으로 알려진 ‘존 제이콥스’의 제품 판매와 관련해 구설수에 올라 있다. 더욱이 이번 심사부터 총점 기준이 아닌 각 항목별 커트라인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심사 결과가 미리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TV홈쇼핑 업계의 매출액은 연간 12조원 안팎에 이름으로써 1995년 출범 이래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내부 경영에 있어 아직도 적잖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소기업 제품 판매를 위한 홈앤쇼핑과 공영홈쇼핑 등 후발주자의 참여가 허용된 것이 그런 때문이다. GS홈쇼핑과 CJ오쇼핑에 대한 재승인 심사를 떠나서도 홈쇼핑업계가 건전한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4. 탄핵심판이 ‘괴담’으로 얼룩져선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리를 두고 항간에 ‘탄핵 기각설’과 ‘탄핵선고 연기설’ 등 온갖 뜬소문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탄핵심리가 막바지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2월 판결’이 사실상 어려워진 데 따른 반응이라 여겨진다. 심지어 “헌법재판관 2명이 탄핵 기각을 지지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수자로 그럴듯하게 포장한 내용이나 계엄령 선포 같은 위험한 소문까지 떠돌아다닐 정도라면 가볍게 흘려들을 상황이 결코 아니다.

뜬소문의 진원지가 대부분 정치권이라는 사실이 문제다. 정국을 유리하게 이끌 수만 있다면 근거가 있든 없든 마구잡이로 생산·유포·증폭시키는 후진 정치의 고질병이 탄핵심판을 계기로 되살아난 것이다. 이달 말이나 내달 초 탄핵 인용 결정을 기정사실화하고 일찌감치 ‘벚꽃대선’에 뛰어든 야권은 지금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그제 3당 대표회담을 전격 소집하고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퇴임 이전에 탄핵심판을 끝내도록 촉구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헌재를 더욱 몰아붙일 요량으로 ‘촛불 총동원령’도 내렸다. 앞서 “탄핵이 기각되면 혁명밖에 없다”며 군중의 힘으로 정부를 무너뜨리겠다고 겁박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발언에 비춰 보면 이러한 총동원령은 예행연습에 불과하다. 하긴 박 대통령도 지난달 보수성향의 인터넷TV인터뷰에서 본인에 대한 루머들을 일축하며 언론 보도와 검찰·특검 수사를 통해 이미 확인된 혐의들마저 전면 부인하는 수법을 구사했으니 소문이든 괴담이든 자기 입맛에 맞게 요리하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는 셈이다.

하지만 나라의 명운을 가르는 대통령 탄핵심판이 자꾸 괴담으로 얼룩져선 곤란하다. 설령 야권이 성난 파도와 같은 여론몰이에 힘입어 탄핵 인용을 확신하기에 이르렀더라도 최종 판단은 헌재에 맡겨야 한다. “국민의 헌법의식이 헌법”이라는 문 전 대표의 궤변은 대의민주주의를 짓밟는 말장난일 뿐이다.

헌재의 증인 신문이 오는 22일까지 이어지고 연장될 여지도 없지는 않다. 헌법재판관 전원이 판결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평의와 판결문 작성에도 보통 2주일이 걸리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벌써부터 “어느 재판관은 인용하고 다른 누구는 기각할 것”이라는 식으로 예단하며 헌재 결정에 영향을 끼치려는 것은 또 다른 국정농단에 지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매일경제]

5.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신청 0건, 이또한 비정상이다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신청을 놓고 교육 일선에서 해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9일까지 연구학교 신청을 한 학교는 단 한 곳도 없다. 당초 이달 10일이었던 응모 마감일을 15일까지 5일 연장했으나 지금 같아선 신청 학교가 나올 것 같지 않다. 국정교과서에 매력을 못 느껴 응모 학교가 한 군데도 나오지 않았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다. 

울산 울주군의 한 중학교는 지난달 중순 교사회의에서 연구학교 지정을 신청하기로 의견을 모으고도 결국 운영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하지 못했다. 이달 초 전교조 울산지부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찾아와 연구학교 응모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곳 외에도 유무형의 압력을 받았다는 학교가 여러 곳이다. 대다수 학교는 국정교과서에 대한 호불호와 상관없이 논란의 중심이 되는 것이 두려워 연구학교 응모를 외면하는 실정이다.



교육기관 특성상 구설에 오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학교 지정 과정에서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이른바 '진보 교육감'이 재직하고 있는 13곳이 공식적으로 비협조 의견을 밝혔다. 대구 경북 울산 대전 등 나머지 4개 교육청에선 전교조 등이 조직적으로 일선 학교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민주시민을 길러내야 할 교육현장에서 자율과 다양성이 이런 식으로 말살된다는 것은 개탄할 일이다. 

국정교과서 반대 진영은 '친일·독재 미화'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의 주관이다. 주관으로 말하자면 기존 검정교과서의 '반국가적 자학사관'에 대해서도 상대 진영에서 얼마든지 할 말은 있다. 이들은 또 국정교과서에 수백 건의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는데 기존 검정 8종 교과서의 경우 2013년 이후 지금까지 총 5066건의 오류가 발견됐고 계속 시정돼 왔다.



세상에 오류 없는 교과서는 없고 오류는 수정하면 된다. 무서운 것은 자신은 무오류이고 반대 진영은 무조건 악이라는 흑백논리다. 이런 논리를 기저에 깐 검정교과서를 일부 이념편향적 교사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국정교과서 논의는 출발했다. 과연 그 문제의식이 틀리지 않았음을 최근의 사태는 보여주고 있다.



6. 대우조선 추가 자금 지원 앞서 구조조정 고삐 더 좨야

유동성 위기에 빠진 대우조선해양이 올해 첫 선박 수주 계약에 성공했다. 미국 LNG(액화천연가스) 업체인 액셀러레이트에너지에 17만3400㎥급 부유식 LNG 저장·재기화설비(FSRU) 7척을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전체 수주액은 16억달러로 한 푼이 아쉬운 대우조선해양으로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번 계약만으로 70일 이후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상환 등 필요 자금을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대우조선이 올해 갚아야 할 회사채는 4월에 4400억원을 비롯해 총 9400억원에 달하고 월평균 운영자금도 최소 8000억원에 육박한다. 2015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의 자금을 수혈했는데 현재 3조5000억원을 소진했고 남은 돈은 7000억원에 불과하다. 회사채 상환은커녕 운영자금도 턱없이 모자란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최근 몇 년간 수주 실적이 저조해 이번에 가까스로 유동성 위기를 넘긴다 해도 자금 부족 사태가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당장 지원을 끊기도 어렵다. 대우조선의 수주 잔고는 114척에 달해 선박 건조를 중단하면 계약 위반에 따른 매몰 비용과 협력업체가 받을 대금, 연관산업 종사자 임금까지 약 57조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금융당국이 신규 자금 투입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여기에 대규모 실업과 지역경제 침체 등 후폭풍도 만만치 않다. 산업은행은 자금 지원과 채무 삭감을 동시에 진행하는 조건부 자율협약을 검토한다는데 국민혈세와 채권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우조선의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이다. 지난해 서울 사옥과 자회사 등 적지 않은 자산을 매각하고 3000명이 넘는 인력을 감원하는 구조조정 성과를 냈지만 고삐를 더 조여야 할 필요가 있다. 불요불급한 인력과 경비는 과감하게 줄이고 루마니아 망갈리아 조선소 등 굵직한 자산 매각에도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미 많은 혈세가 투입됐고 추가 지원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대우조선 경영진과 노조는 분골쇄신의 각오로 위기 극복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7. 反기업정서 극복이 먼저라는 매경 경제위기 대토론회

매일경제가 그제 개최한 '경제위기 극복 대토론회'에서 팽배해진 반(反)기업 정서를 속히 해소하지 않으면 일자리도 경제도 못 살린다는 지적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국내 산업이 경쟁력을 높이려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야 하는데 반기업 정서에 발목을 잡혀 있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얘기였다. 

어제 열린 한국경영자총협회 주최 최고경영자 연찬회에서는 세금을 써서 만드는 일자리가 아니라 오래 지속될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규제를 풀어 기업 투자가 활성화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봇물을 이뤘다. 경직된 노동법제를 고치고 기업에 대한 반감을 풀도록 여건을 조성해 국내에서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투자 활동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안팎으로 높아진 불확실성을 헤쳐나가기 위해 어느 때보다 구조조정에 먼저 나서야 한다고 했는데 맞는 진단이다. 부실기업과 우량기업을 구분한 뒤 부실기업 정리를 통해 성장성 있는 기업의 활동 여지를 넓혀 일자리를 늘리는 효율적인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모두 허용하면서 예외적인 일부 사항에만 규제하는 방식인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조언에도 귀를 기울여 즉각 실행에 들어가야 한다.

유병규 산업연구원장은 한계기업 구조조정을 미루는 바람에 그 여파로 제조업은 물론 서비스업까지 생산성이 최근 10년 사이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2011년만 해도 80%를 웃돌았던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2016년 말 72.4%로 떨어졌다. 전체 산업의 30%가 공급 과잉 상태에 빠져 있으며 신성장동력을 창출하는 산업은 전체의 1%에 미치지 못한다니 심각한 상황이다.

작금의 경제 상황을 위기로 단정하는 데는 이론이 적지만 탈출 해법에는 여러 의견이 맞선다. 경제 위기 진단과 극복을 위한 해법 제시도 이미 넘치도록 반복돼왔다. 문제는 실천이다. 상시 구조조정으로 한계기업을 정리하고 그 과정에서 고통 분담과 양보를 이끌어낼 사회적 대타협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통해 반기업 정서를 해소하고 기업들이 활발하게 투자에 나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선순환 구조를 빨리 이뤄내야 한다.



[서울신문]

8. 개성공단 폐쇄 1년, 협력업체 지원 속도 내야

개성공단이 오늘로 가동을 중단한 지 꼭 1년을 맞는다. 북한의 4차 핵실험(2016년 1월 6일)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2016년 2월 7일)에 대한 응징 차원에서 지난해 2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 교류의 상징으로 불렸던 개성공단을 전격 폐쇄 조치했다. 개성공단 폐쇄는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강화라는 명분으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초강경 대응에도 불구하고 북핵 문제 해결에는 별 진전이 없었다. 지난 1년간 북한의 5차 핵실험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위협 등 최근까지 도발이 끊이지 않았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억제에 별 효과가 없었지만, 우리 기업들의 피해는 너무나 컸다.



123개 입주 기업 가운데 11개는 완전 휴업을 했고 나머지 기업들도 베트남이나 중국 등 해외 진출을 모색 중이다. 당시 정부가 피해보상금을 유동자산의 70%까지, 업체당 지원 한도를 22억원 이내로 제한하면서 토지·건물 등 투자 자산과 영업 손실 등은 고스란히 입주 업체의 몫이 됐다.

더 심각한 문제는 5000여개의 중소 협력업체들이다. 정부의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 상황에서 입주 업체로부터 납품 대금을 받지 못한 기업이 부지기수였고, 하루아침에 판로가 끊겨 휴업과 파산은 더욱 확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개성공단 입주· 협력 업체의 고통에 비해 정부의 관심과 지원은 미흡했다.



정부는 충분히 지원했다고 하지만 비상대책위는 전체 피해액 1조 5000억원 가운데 32%인 4838억원만 지원받았다는 주장이다. 정부의 정책으로 피해를 본 국민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한반도 문제는 남북 주도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흔들릴 수 없는 원칙이다. 북핵 문제 해결이 당면한 중대 사안이지만 이를 이유로 남북 관계 자체가 파탄 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북핵 자체가 남북 주도로 주변 강대국들과 함께 풀어 가야 할 국제적 문제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개성공단 폐쇄 등의 충격 요법에서 해법을 찾는 것은 성급한 측면이 있다.



개성공단은 남북의 긴장 완화와 교류협력, 통일시대 대비라는 차원에서 남북 간에 합의한 윈윈 모델이었던 만큼 그 의미는 여전히 살아 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태도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개성공단 재가동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더 긴 호흡으로 그 명분을 살려 갈 필요가 있다.



9. 졸렬한 中 ‘한국 흔들기’에 입다문 대선 주자들

중국 당국이 지난해 12월 말 롯데그룹의 중국 선양 ‘롯데타운 프로젝트’ 핵심 사업인 테마파크 조성 공사를 소방 안전에 문제가 있다며 중단시켰다고 한다. 앞서 지난해 11월 말 이후 상하이 롯데그룹 중국본부를 시작으로 베이징의 롯데제과 공장과 청두·선양 등의 롯데 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였다. 또 베이징·상하이·청두 등 중국 내 롯데 매장의 소방안전 점검과 위생 점검을 200여 차례나 했다.



중국의 이도 저도 아닌 부인성 발언에도 불구하고 롯데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 대체 부지로 경북 성주 골프장을 국방부에 제공하기로 한 것에 대한 압박성 보복이란 점은 명백해 보인다.

중국은 지난해 11월에 이어 또다시 한국산 화장품 수입을 막고 한국산 반도체 업계를 정조준해 ‘반독점법’ 정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씨와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에 이어 국립발레단 김지영 수석무용수의 4월 중국 공연도 뚜렷한 이유 없이 불발됐다. 유커(관광객)의 한국행 축소와 전세기 항공노선 불허, 배터리 탑재 차량의 보조금 지급 배제, 비자 발급 규제 등 보복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종잡을 수 없다. 중국의 야비한 ‘한국 흔들기’를 봐주는 인내심이 이제 임계점에 도달했다. 더이상 질질 끌려다닐 수 없는 노릇이다.

정부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침묵으로 일관하는 저자세를 벗어던지고 그 치졸함을 강력히 따져 묻는 동시에 중국 당국의 분명한 입장 표명을 요구해야 한다. 그런 일 하라고 정부가 있는 것이고, 나라 간에 외교 관계를 맺는 것 아닌가. 주중 한국대사는 베이징에서 무슨 일을 하고 지내는지 궁금하다는 국민이 적지 않다는 점을 알기 바란다. 온갖 외교적 수단을 동원하되 끝내 여의치 않으면 우리도 ‘카드’를 꺼내 들어야 한다. 예컨대 중국산 불량 농산품의 시중 유통에 대한 단속의 강도를 크게 높이거나 검역·통과를 강화하는 내용의 상징적인 대응책을 강구할 만하다.

대선 주자들이 중국의 사드 보복에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것은 온당치 않다. 예민한 문제라고 해서 하나같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앞으로 나라를 이끌겠다는 정치인으로서 책임 있는 처사가 아니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것과 중국의 졸렬한 보복에 대응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마치 ‘정부가 자초한 일이니 알아서 하라’ 식의 인식 수준이라면 이런 면피성 태도 또한 비판받아 마땅하다.



[매일신문]

10. 되풀이되는 구제역, 문제에 맞는 해결책 마련할 때

충북 보은 젖소 농장에서 지난 5일 발생한 구제역이 전북 정읍과 경기 연천으로 확산되면서 경북의 지방자치단체마다 비상이다. 보은과 맞붙은 상주는 물론 지난 2010년 11월 구제역 파동에 휩싸였던 안동 등 경북지역이 전국 최대 한우 생산지인 탓이다. 구제역은 축산 농가는 물론 국가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되풀이되는 구제역에 발생 원인별 대처 필요성이 나오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구제역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 진화를 거듭하는 바이러스 차단은 쉽지 않다. 그러나 친환경적 사육 조건을 조성해 구제역 바이러스를 견뎌내는 면역력을 기르는 일이 급하다. 이미 여러 선진국에서는 이 같은 방식의 사육 환경을 도입하는 중이다. 구제역을 막겠다는 목적도 있지만 동물복지 차원에서의 대응이기도 한 셈이다. 장기적으로는 달라진 사육 환경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마땅하다.



다음으로 구제역 항체 형성률을 높이는 문제다. 이번에 구제역이 발생한 정읍 한우 사육 농가의 경우 항체 형성률은 5%였다. 또 처음 구제역이 일어난 보은군 젖소 농장의 항체 형성률이 겨우 19%였고, 인근 두 농가의 항체 형성률 조사 결과 20~40%에 불과했다. 이 밖에 여러 곳에 대한 조사에서도 낮은 항체 형성률을 보여 이를 높이는 일은 발등의 불이다. 안동시가 항체 형성률이 소 80%, 번식돈`염소 60% 등 현행 기준에 못 미치는 농가에 과태료 부과 등 불이익을 주기로 한 이유이다.



항체 형성률 검사 표본을 늘리는 일도 과제다. 지금은 정해진 기준에 따라 임의의 농가당 1마리씩에 대한 항체 형성률 결과를 모아 전체를 집계한다. 이는 농가의 전체 사육 수의 일부여서 정확성이 떨어진다. 전북의 한우 항체률은 96.5%였으나 구제역 농가 항체률은 5%였던 사실이 증거다.



지난해 경북도 내의 소 평균 항체 형성률 96.2%도 전체 69만6천563마리 중 4천994마리의 검사 수치일 뿐이다. 농장의 철저한 백신 접종 실천도 살펴야 할 점이다. 형식적인 접종과 정량에 못 미치는 주사, 백신 기피 등은 농장주 스스로 피하고 경계해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경향신문][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그릇도 맛을 낸다

옛 그릇을 보고 사서 쓰는 게 취미다. 福(복)자가 새겨진 밥주발이나 국그릇, 막걸리 잔이다. 내 손에 들어온 낡은 그릇에는 이력서가 없다. 누가 이걸로 밥을 먹었을까, 쌀은 제대로 넣어서 지은 밥일까, 이 작은 종지에 넣은 건 무슨 반찬이었을까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동시에 처연해지기도 한다. 주인 잃은 그릇, 대개는 버림받아서 결국 내 수중에 온 셈일 테니까. 거기에 옛사람들의 궁핍했을 삶까지 겹쳐서 마음이 짠해진다.



이런 그릇 구하기는 몇 해 전까지는 상당히 쉬웠다. 한번은 전주 한옥마을 근처의 골동가게에서 그릇을 골랐더니, “그냥 한 박스 가져가. 막걸리값이나 주고” 이러신 적도 있다. 요즘은 제법 멋을 낸 그릇들(더러 금박을 두른 대접도 있다)은 몇 만원도 나간다. 울퉁불퉁하고 색깔도 고르지 않은, 그저 실용적인 용도에 최소한의 치장을 한 그런 그릇에 국을 담고 밥을 푸면 마음도 편해진다. 일본의 도자기를 이르는 야키(燒)들은 아름답고 예술적인 경우가 많은데, 놓고 감상하기는 몰라도 시금치와 김치를 담자면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어색하다.

옛 그릇이라고 해서 사기나 도자기만 있는 것도 아니다. 스테인리스강, 그냥 일제강점기식 언어로 치면 ‘스뎅’인 금속 그릇도 옛 물건에 든다. 우리 옛 그릇 문화를 몰아낸 주범(?)이며 멋대가리 없는 소재라고 비난받기도 하지만 나는 이것조차도 옛 멋이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것들은 다 아쉽고 따뜻한 영혼이 깃드는 것 같다. 스테인리스 그릇도 잘 보면 오래된 흔적을 가질수록 멋이 깊다. 소재 특성상 고급할 수 없어 더 애착이 간다. 정릉동의 숭덕분식은 40년이 넘은 초등학교 앞 떡볶이집이다. 이 집의 명물은 즉석떡볶이를 담아주는 스테인리스 그릇이다. 오래되어 반질반질하고 편안한 그릇에 어린 학생들이 떡볶이를 담아 먹는다.



스테인리스는 원래 크롬과 철의 결합이다. 단단하고 녹이 안 스는 데다가 가벼워서 총신으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전쟁물자가 사람의 생활을 이롭게 하고 있는 셈이다. 이 금속은 전방위로 우리 생활에 들어왔다. 제기(祭器)가 바뀌었고 앉은뱅이 식탁이 되었으며, 수저도 모두 바뀌었다. 요즘 스테인리스는 가벼워서 경박하다. 예전 것은 상당히 무거운데, 이는 얇게 철판을 제조하는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옛날부터 스테인리스 그릇을 제조했던 장인들을 만났더니 이것도 현장의 역사가 있었다. 양은과 놋쇠를 밀어냈는데, 멜라민에 치여서 찬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정용으로 쓰이는 속칭 ‘뱅뱅들이’(둥근 스테인리스 그릇 제조방법) 주발과 국그릇, 냉면 그릇 등을 만들면서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중국산 수입품이 들어오면서 이 산업도 큰 타격을 받은 상태다.

봄이 되면 마산 진동면의 삼거리식당을 가야지, 하고 벼른다. 이 집에서 제철에 맞춰 해주는 미더덕요리도 좋은데, 특히나 낡은 스테인리스 그릇이 좋기 때문이다. 던져도 깨지지 않고, 위생적으로 잘 닦이고, 그래서 고단한 시장거리 아주머니들의 선택을 받았던 스테인리스 그릇들이야말로 얼마나 장한 존재인가 싶어진다.



2. [서울신문][씨줄날줄] 목화 꽃다발

마하트마 간디(1869~1948)는 인도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간디라면 물레를 돌리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물레를 돌리는 것과 저항 운동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야생 목화는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지만, 일찍부터 섬유로 만들어 이용한 것은 인도라고 한다. 그런데 영국의 침략 이후 세계 최대의 면화 생산지인 인도는 원료 공급지이자 완제품 시장으로 전락하고 만다. 간디의 물레질은 인도의 자력갱생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목화를 처음 들여왔다는 문익점 선생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목면시배유지기념관은 문익점 선생이 중국에서 목화를 처음 들여와 심고 기른 것을 기념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이곳에 가면 목화가 어떻게 이 땅에 들어왔고, 널리 퍼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문익점이 태어난 배양마을은 목화 재배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00평 남짓한 목화밭 한쪽에는 ‘삼우당 선생 면화 시배지’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오리털이며 거위털처럼 추위를 막아 주는 재료가 넘쳐나는 오늘날은 목화와 목화를 가공한 면화의 중요성에 둔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목화에서 비롯된 솜과 면직물이 존재하기 이전의 인류는 끔찍한 추위에 떨어야 했던 것이 사실이다. 문익점 선생을 추앙하는 것도 국가의 양대 과제였던 추위와 배고픔을 해소하는 데 목화가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목화의 역사’라는 책을 쓴 프랑스 작가 자크 앙크틸에 따르면 목화를 가공해 만든 면은 비단, 모직과 함께 ‘인류 3대 직물’의 하나다. 그런데 비단과 모직이 어느 나라에서나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면 면은 서민에게도 혜택을 주는 ‘직물의 왕’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익점 선생이 목화를 들여오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에서도 귀족층이 아닌 대부분은 삼베로 지은 홑저고리로 겨울을 나야 했을 것이다.

조선 태종은 ‘문익점은 충성과 효성이 모두 온전하고 학문이 순수하고 발랐으며 백성에게 옷을 입힌 공로가 있어 만세로 그 혜택이 변치 않고 있다. … 그의 자손들은 문관·무관에 다 진출하도록 하되 서열에 구애받지 말고 발탁하라. … 이후 억만대 동안 이 법전을 바꾸지 말라’고 전교했다. 국가의 존재 이유가 백성을 먹이고 입히는 것이라면 목화의 도입을 곧 ‘추위의 해결’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목화 꽃다발이 화제다. 각급 학교 졸업식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을 내린 TV 드라마에서 외로운 여주인공이 받은 것이 바로 목화 꽃다발이었다는 것이다. 목화꽃의 꽃말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물론 꽃다발이 아니라 목화의 열매 다발이라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전통 사회에서 목화와 목화로 만든 실의 의미는 부모님의 무병장수였다. ‘어머니의 사랑’이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건 좋은 일이다.



3. [부산일보사][박태성의 예술과 삶] 헤르만 헤세

가끔 우리의 삶이 서글퍼지고 팍팍해질 때, 독일 남부 소도시 칼프에서 만났던 헤르만 헤세의 동상 하나를 떠올린다. 칼프는 헤세의 고향이다. 헤세는 동네 아저씨 같은 포근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다가선다. "내가 언제 다시 여기 올 수 있을런가"라고 적혀 있는 동상 곁에서 사진도 찍었다. 헤세가 적은 여행일기에서 '나는 여름의 따뜻한 어느 날 저녁 시간에 태어났다. 나는 그 시간의 온도를 알게 모르게 평생 좋아하며 찾아다녔다"며 향수를 표현했다.

그는 세상과 끊임없이 불화를 일으켰다. 말년에 적은 에세이 '저녁 구름'이다. "나는 저 밑 세상을 보며 생각한다. 누가 내게서 너를 훔쳐 가도 좋다고. 나는 이 세상에서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세상에 잘 어울리지도 않았으며, 세상도 나의 혐오에 충분히 앙갚음했다." 

그가 그린 그림에서조차 사람은 나타나지 않는다. 유일한 것은 그의 모습을 묘사한 '정원사 헤세'다. 헤세의 시 '안개 속에서'다. '기이하여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모든 나무 덤불과 돌이 외롭다./ …//어둠을, 떨칠 수 없게 조용히/모든 것으로부터 그를 갈라놓는/어둠을 모르는 자/정녕 그 누구도 현명치 않다.//기이하여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삶은 외로운 것/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한다./누구든 혼자이다./ 

하지만 헤세는 정체 모를 관념에 침잠한 작가는 절대 아니다. 1차 대전 이후 '양심의 정치' '전쟁과 평화' 같은 정치적 성향의 글을 연거푸 발표한다. 독일의 이성 잃은 국가주의를 비판했다. 정부와 마찰을 겪고 스위스에 정착했다. 억압에 대한 저항 정신은 고독, 구름, 하늘, 바람, 꽃 같은 단어들을 노래하던 그의 비현실적인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모순의 현실을 견제하고 비판할 수 있는 건 결국 '비현실' 아니겠는가.

세상이 어지럽고 삶의 주름살들이 늘어난다. 헤세가 지냈던 어느 하룻날같이 언덕에 올라서 온종일 뜬구름만 바라보고 싶다. 그리하여 세상의 변혁을 소망하는 낭만 가객이 되어 보련다.



4. [아시아경제][초동여담] 칼(부엌칼)을 잡은 이유

'앗!~' 기어코 피를 보고 말았다. 붉은 피가 뚝뚝 도마로 떨어졌다. 저녁으로 닭볶음탕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오랜만에 두 딸도 집에 있어 앞치마를 두르고 솜씨 좀 부려 보려던 참이었다. '탁 탁 탁 탁~' 리드미컬하게 재료가 다듬어지는 요리사들 칼질을 흉내 낸 게 화근이다. 양파는 보기 좋게 다듬어졌지만 단단한 감자가 문제였다.



양파와 감자를 같은 칼질로 허세를 부리려 했으니 될 리가 만무했다. 칼(부엌칼)을 잡은 지 1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칼질은 무섭고 어렵다. 자취와 캠핑까지 섭렵한 경력에 라면 좀 끓여 본 내공(?)인데도 말이다. 마눌님의 번개 같은 응급조치(상처와 닭볶음탕)에 주방은 다시 안정을 찾았지만, 딸들에게 점수 좀 따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곧잘 실수를 하긴 하지만 주방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된 데는 이유가 있다. 20여년이 넘은 결혼생활 동안 꼬박꼬박 아침밥을 먹고 다녔다. 간 큰 남자란 소리를 수도 없이 듣고 살았지만 그것이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어느날, 가족이 둘러앉아 텔레비전(TV)을 보고 있을때다. 일명 '요섹남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 이라 불리는 연예인들이 출연한 쿡방ㆍ먹방 프로그램이다. TV속에 등장한 멋진 남자들이 주방에서 능숙하게 맛깔스런 요리들을 뚝딱뚝딱 만들어낸다. 속으로 남자 망신시킨다며 눈을 살짝 흘기기도 했지만 솜씨들은 신기할 만큼 대단했다. 맛을 본 출연자들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 바빴다.

작은딸이 한마디 한다. "아빠도 저렇게 만들 수 있어요?" 순간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허풍이 입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당연한 거 아냐. 저 사람들보다 더 맛있게 만들지"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너무 쉽게 내뱉었다. 후회막심이지만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그럼 일요일마다 아빠가 요리 하나씩 만들어 주세요." 딸은 카운터펀치까지 한 방 날렸다. 

세월이 흘렀다. 피(?)나는 노력 덕분에 그나마 맛볼 수 있을 만한 음식(요리라고 말할 순 없다)들이 만들어졌다. 그래봐야 비슷비슷한 음식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허풍 덕분에 음식 만드는 일이 재미있다. 이번엔 무엇을 만들어볼까 고민하는 시간도 재밌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것도, 도마 위에 재료를 펼쳐놓고 하는 칼질도, 중간 중간에 하는 실수도, 완성된 음식을 그릇에 옮겨 담아 놓는 것도 재밌다. 이보다 더 재미난 것은 가족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휴일 저녁, 어김없이 가족들은 식탁에 모여 앉는다. 어떤 음식을 내놓아도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준다. 칭찬은 코끼리도 춤을 추게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게다. '아빠 최고' '대단하다' 라는 한마디에 다시 부엌으로 향하게 되니까.

혼밥, 혼술 …. 혼자 하는 일이 많은 세상이다. 세태를 반영하듯 식당에는 벽을 마주보고 앉는 1인 좌석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제 '밥은 함께 먹는 것'이라는 생각은 더 이상 일반적이지 않다. 하지만 옛날 어르신들은 "식사는 사람들과 어울려 먹어야 맛있는 것" 이라고 했다. 나 또한 그런 세대다. 혼자 먹자고 음식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음식을 준비한다. 그 시간이 즐겁고 재밌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허풍으로 시작된 부엌일이 지금은 가족에게 내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어 버렸다. 

손가락 피 좀 보고, 주부습진(요즘 나타난 증상) 좀 생긴다고 뭐가 대수겠는가. 가족들과 나눌 수 있는 저녁 있는 삶이 있다는 게 더 소중한 일인걸. 부엌데기가 된 것이 즐겁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프랜시스 게리 파워스

스티븐 스필버그의 2015년 영화 ‘스파이 브릿지’로 알려진, 냉전시대 소련 첩보원 루돌프 에이블(Rudolf Abel, 1903~1971)과 미국 CIA U-2 첩보기 조종사 프랜시스 게리 파워스(FrancisGary Powers, 1929~1977)의 포로 교환이 1962년 2월 10일 동독 베를린 글리니케 브릿지(Glienicke Bridge)에서 이뤄졌다. 

영화가 보여주듯, 그 전후 사건의 주인공은 단연 포로 교환을 성사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운 미국 변호사 제임스 도노번(James Donoban, 1916~1970)과 사형 선고에도 끝내 스파이로서의 자존심과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았던 에이블이었다. 파워스의 존재감은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그리 크지 않았다. 포로 교환이 이뤄지던 그 날, 파워스의 심정은 어쩌면 착잡했을 것이다. 

그는 CIA 첩보원 지침을 지키지 못했다. 그가 몰던 비밀 병기 U-2 첩보기의 성능과 재원이 적국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는 지대공미사일 공격으로 비행이 불가능해지자마자 기체와 함께 자폭했어야 했다. 적어도 자신은 기밀 유지를 위해 사전에 지급받은 극약을 먹었어야 했다. 그는 작전에 실패했고, 비겁하기까지 했다. 미국이 포로가 된 그를 구한 것은,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 군사 기밀을 누설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파워스는 켄터키주 젠킨스의 탄광촌 광부의 6남매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아들이 자신처럼 광부로 늙지 않도록 아버지는 그에게 공부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는 테네시주 밀리건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50년 6월 미 공군에 입대했다. 그의 비행 기술은 탁월했고, 그 덕에 56년 1월 CIA에 발탁됐을 것이다.



그는 석 달 뒤 결혼했고, 대위로 예편해 민간인 신분으로 U-2 첩보기 조종 훈련을 받았다. 소비에트의 방공망이 미치지 못하는 21km 고도를 비행하며 최첨단 영상장비로 적국의 군사기지 등을 정밀 촬영하는 임무. 56년 9월부터 60년까지 이어진 U-2첩보작전은 소련과 중동뿐 아니라 프랑스, 영국, 수에즈위기 당시의 이스라엘 등 우방국을 대상으로도 이뤄졌다. 그는 60년 5월 1일 소비에트 영공에서 지대공미사일에 격추됐지만 “탈출의 희망을 놓지 못해”살아남았다. 

포로교환으로 풀려나기까지 그는 1년 9개월 10일을 모진 고문을 받으며 버텼다. 그리고, 그 역시 U-2의 비행 고도 등 1급 군사기밀을 끝내 누설하지 않았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