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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세계일보]

​1. 1년 남은 평창올림픽, 국민 참여 없이 성공 어렵다

지구촌 겨울 스포츠 축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1988 서울올림픽 이후 꼭 30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열리는 올림픽이다. 내년 2월9일부터 17일간 평창 강릉 정선에서 나뉘어 열린다. 대회 규모도 역대 최대이다. 7경기 15개 종목, 102개 세부종목이 열려 역대 겨울올림픽 최초로 세부종목 100개를 넘어섰다. 참가 선수단도 95개국, 6500여명으로 2014 러시아 소치올림픽 때를 능가한다. 참가 인원은 선수단과 국제스포츠 관계자, 취재진을 합쳐 5만여명이 예상된다.

대회 준비는 비교적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12개 경기장 가운데 6개 경기장은 새로 짓고, 6개는 기존 시설을 고쳐서 쓴다. 오는 10월까지 경기장 공사를 마무리하는데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에겐 국제대회 경험도 많다. 1988년 하계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 축구, 2011년 세계육상 선수권대회를 치러봤다. 동계올림픽을 포함해 ‘세계 4대 스포츠 대회’를 치러본 나라는 5곳밖에 없다. 우리가 여섯 번째가 된다.

그러나 평창올림픽이 성공하려면 경기장 준비와 대회 운영 경험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민적 관심과 참여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성공 개최를 장담할 수 있을지 솔직히 걱정이다. 최순실 사태로 평창올림픽에 각종 의혹의 시선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권을 노린 최씨 일가의 놀이터가 됐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장·차관이 구속된 문화체육관광부와 조직위원회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고, 국민적 관심이 식었다. 기업의 후원도 예전 같지 않다. 국민의 역량을 하나로 모을 정부와 국회의 관심과 지원, 국민의 참여가 필요하다.

평창은 두번의 실패를 겪고 세번째 도전 끝에 유치에 성공했다. 좌절하지 않고 끝내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인내와 끈기’ 덕분이었다. 그리고 당시 우리가 평창 지지를 호소하면서 세계인에게 던진 메시지는 ‘꿈과 희망’이었다. 그 꿈과 희망이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로 큰 상처를 입은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 됐다.



평창올림픽 슬로건은 ‘하나된 열정’이다. 하나된 열정으로 평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준다면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새로운 꿈과 희망을 가꿔갈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1년. 6년 전 평창 대회 유치 때 보여준 뜨거운 열기와 높은 관심을 다시 한번 쏟아부을 가치는 충분히 있다.



2. 정치권, 삼권분립 짓밟는 ‘헌재 흔들기’ 중단해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이 3월 이후로 미뤄지자 야권이 ‘탄핵 위기론’을 제기하며 일제히 촛불집회 독려에 나섰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제 “11일 정월 대보름 촛불집회를 기점으로 조기 탄핵을 촉구하는 총력투쟁을 국민과 함께 전개해나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추 대표 등 야3당 대표는 회담을 갖고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퇴임일인 3월 13일 이전에 탄핵심판을 인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당 대선주자들은 아예 발 벗고 뛰어들었다. 문재인 전 대표는 그제 기자 간담회에서 “정치권은 좀 더 탄핵 정국에 집중하고 또 촛불 시민도 촛불을 더 높이 들어서 탄핵이 반드시 관철되도록 함께 힘을 모아나가야 할 것”이라고 선동했다. 앞서 문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 “탄핵 기각 결정을 내린다면 다음은 혁명밖에는 없다”고 했다. 이재명 성남시장도 헌재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헌재는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고 소리쳤다. 이들은 그동안 헌재의 대통령 탄핵 결정을 전제로 조기 대선을 준비해왔다. 그러다 탄핵안 기각 가능성이 흘러나오자 헌재를 압박하며 선명성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여당도 오십보백보다. 정우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어제 “어떤 정치세력도 헌재 심판에 영향을 끼치려 해선 안 된다. 민주당은 정신 차리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야권에 손가락질하기 전에 자기부터 돌아볼 일이다. 친박계 의원들은 보수단체들이 주최하는 태극기 집회에 수시로 참석해 탄핵 무효를 외치고 있다. 이들의 행동을 제지하기는커녕 방조해온 게 새누리당 지도부가 아닌가.

헌재의 탄핵 결정 시기가 가까워지면서 탄핵 찬반을 둘러싼 갈등이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탄핵에 찬성하는 촛불집회 세력과 반대하는 태극기집회 세력이 주말마다 서울 도심에서 대치하고 있다. 이런 처지에서 여든, 야든 군중을 자극하고 집회를 선동하는 행위는 백 번 비난 받아 마땅하다.

대통령 탄핵 결정은 공정하고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헌법의 가치와 규정에 따라 엄정하게 심리·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헌재의 몫이다. 정치권력이 군중의 위력을 동원해 헌재를 압박하는 태도는 명백한 삼권분립 위반이다. 법치의 생명인 재판의 공정성을 해치는 짓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결정이라면 누가 승복할 수 있겠는가. 정치권의 무책임한 장외 선동은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만 키울 뿐이다. 정치권은 헌재 흔들기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동아일보]

3. 朴과 野의 조직적 헌재 압박, 심판결정 불복 신호탄인가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 대표는 어제 오후 국회에서 만나 헌법재판소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 만료 전에 탄핵심판을 인용하라고 촉구했다. 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청와대 압수수색을 조건 없이 승인하라고 요구했다. 야3당이 탄핵심판 결과를 ‘인용’으로 결론 내리고, 헌재에 그대로 결정하라고 요구한 것은 3권 분립과 법치주의에 대한 명백한 침해다.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이 가까워지면서 헌재를 압박하기 위한 야권의 선동이 조직화하고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그제 “촛불을 더 높이 들어야 한다”고 선동한 데 이어 어제도 “국민이 다시 힘을 모을 때”라고 강조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11일 정월 대보름 촛불집회를 기점으로 조기 탄핵과 특검 연장을 촉구하는 총력투쟁을 국민과 함께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박근혜 대통령 측의 반발도 노골화하고 있다. 언론에 특검의 박 대통령 조사 날짜가 보도됐다는 이유로 특검과 합의한 9일 조사를 거부했다. 앞으로 응할지도 불투명하다. 대통령이 끝내 조사를 거부한다면 특검은 강제할 방법이 없다. 대통령은 일반인과 달리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도록 헌법 84조는 규정한다. 강제구인이나 긴급체포가 불가능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특검) 조사에 응하려 한다”고 한 만큼 약속을 지켜야 한다.

정국은 ‘촛불’과 ‘태극기’가 어디서 불꽃 하나만 튀어도 폭발할지 모를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그래서 탄핵심판 이후가 더 걱정이다. 박 대통령의 탄핵심판 대리인인 손범규 변호사는 7일 페이스북에 “새누리당은 탄핵기각TF(태스크포스)를 만들고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며 조직적 개입을 ‘지시’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이 어제 ‘4월 퇴진, 6월 대선’이라는 ‘질서 있는 퇴진론’을 다시 들고나온 것은 탄핵 심판 절차를 송두리째 흔드는 행위다.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박 대통령의 취임 4주년인 25일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양측 집회의 참가 규모가 이제는 비슷해진 데다 ‘태극기’ 역시 맞불집회로 대응할 예정이어서 불상사도 우려된다. 특정 세력의 강압이나 여론에 의해 헌재가 흔들린다면 우리는 자식들에게 법도, 질서도 없는 불안한 나라를 물려주게 될 것이다.



[서울신문]

4. 여야, 장외 투쟁 말고 헌재 결정 승복 선언하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과 관련해 여야 정치권이 다시 술렁이고 있다. 무엇보다 헌재가 그제 열린 탄핵 심판 11차 변론에서 대통령 측이 신청한 증인 17명 중 8명을 채택하고 22일까지 증인을 신문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심판 일정이 불확실해진 이유가 크다.

헌재는 최종 변론기일을 확정하지 않았다. 설령 22일 변론이 종결된다 해도 헌재 재판관들이 결론을 내리기까지는 빨라야 2주가량 걸리는 까닭에 2월 최종 선고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현재로선 2말 3초(2월 말, 3월 초)로 관측되던 선고일은 3초 3중(3월 초, 3월 중순)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게다가 박 대통령이 최후 변론에 직접 출석하는 지연 전술을 시도하고, 헌재가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이를 수용할 땐 선고일뿐만 아니라 선고 결과 자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자칫 이정미 헌재 소장 대행의 퇴임일인 3월 13일을 넘기면 ‘7인 재판관’ 체제에서 탄핵 여부가 결정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 3당은 어제 대표 회담을 갖고 헌재의 결정 지연 조짐에 맞서 조기 탄핵을 위해 ‘촛불 집회’에 힘을 기울이기로 했다. 탄핵 위기론까지 제기하며 헌재의 압박에 나서는 것과 같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나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총력 투쟁을 요구하며 헌재를 몰아붙였다. 자숙해도 부족할 새누리당 전·현직 의원들은 지난 주말 보란 듯이 ‘태극기 집회’에 참가해 탄핵 반대를 외쳤다.

여야 정치권은 헌재의 심리가 막바지로 치닫는 상황을 고려해 최종 결정을 차분히 기다릴 필요가 있다.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집회 참석을 독려하고 집회에 직접 나가 탄핵을 하라, 하지 말라고 선동하는 행위는 자제해야 마땅하다. 촛불 집회든 태극기 집회든 집회에 기대어 탄핵 정국을 주도하려는 시도는 더는 없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이제 뒤로 물러나 탄핵정국 이후에 대비하는 게 맞다. 탄핵을 정치 싸움으로 몰지 말고 질서를 지키며 오직 법과 원칙에 근거한 헌재의 판단을 지켜보는 게 해야 할 일이다.



헌재가 공정성을 전제로 가능한 한 신속하게 결론을 내린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헌재의 빠른 결론이 국정 공백을 최소화할 사실을 모를 국민은 없다. 다만 신속성에 너무 얽매여 절차적 정의를 훼손하면 또 다른 혼란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도 더이상 헌재의 심판 일정을 흔드는 꼼수를 부려서는 안 된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국회 연설에서 “헌재의 결정을 모두 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정당이나 대선 주자들도 마찬가지로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약속하라. 그것이 헌재 결정 이후 나타날 수 있는 국론 분열과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그렇지 않다면 헌재의 결정이 내려진 이후 대한민국은 더 큰 혼란에 빠져들 수도 있다.



5. 월성 원전 무리한 수명 연장에 제동 건 법원

법원이 경북 경주 월성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가동 연장에 제동을 건 것은 시대정신의 변화를 상징한다. 그동안에는 잠재적 위협에도 원전이 현실적으로 불가피하지 않으냐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이 적지 않게 늘어났다.



외부적으로는 일본 후쿠시마원전 사태가, 내부적으로는 한반도가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준 울산·경주의 지진이 변화의 계기를 제공했다. 더구나 월성원전은 아직도 여진(餘震)에 시달리는 경주에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서울행정법원 판결이 내려지자 애초 ‘월성 1호기 10년 연장’을 허가했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한편으로 정부는 항소심에 명운을 걸기보다 장기적 에너지 수급 방안을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산업통상부는 “당장 전력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지는 않겠지만 대안 없이 원전 수명을 연장하지 않으면 앞으로 전력 수급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고 한다. 당장은 전력예비율에 여유가 있지만 설계 수명이 끝나는 원전에 잇따라 같은 판결이 내려진다면 전력 수급 차질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설계 수명 30년으로 2012년 11월 가동이 중단됐던 월성 1호기는 2015년 2월 원자력안전위의 10년 수명 연장 결정으로 2022년 11월까지 가동이 보장돼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원전 25기 가운데 8기의 수명은 2023∼2027년에 끝난다. 정부가 수립한 제6차 전력 수급 계획은 2027년까지 설계 수명이 만료되는 원전의 수명 연장을 전제로 세워졌다고 한다. 결국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법원이 아니라 정부다.

서울행정법원이 ‘연장 취소’를 결정한 이유도 정부는 되새겨 봐야 한다. 재판부는 “원안위가 수명 연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원자력안전법령이 요구하는 ‘변경 내용 비교표’를 제출하지 않았고, 운영 변경 허가와 관련한 주요 사항을 위원회 과장의 전결로 처리했으며, 의결에 참여한 원안위 위원 가운데 2명은 결격 사유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절차도 못 지키고 섣부르게 밀어붙인 결과 오히려 조기 가동 중단을 부른 꼴이다.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도 원전이 국민의 마음을 얻기는 쉽지 않은 시대가 됐다. 당국은 가동 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는 원전만큼은 안전하다는 믿음을 줄 수 있도록 자세부터 바꾸어야 한다.



[매일신문]

6. 수억대 대구 알바 임금 안 주고 입으로만 사과한 이랜드

대구알바노조 등 청년 단체들이 7일 대구 중구 동아쇼핑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랜드가 직영으로 운영하는 대구지역 외식업체 9개 매장에서만도 2억7천만원이 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 임금 체불이 있었다면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또 매장 360곳 4만4천360명, 83억7천여만원의 아르바이트생 임금 체불에 대한 당국의 조사 결과와 회사 측의 사과 및 대책 발표에도 여전한 임금 체불과 근무시간 조작 등도 폭로했다.



이날 대구 도심에서의 외로운 외침은 먼저 국내 대기업의 부당 노동행위에 대한 말뿐인 사과 행태에 대한 대구 시민들의 분노의 한 단면을 드러냈다. 또 노동자의 아픔은 외면하고 무관심한 우리 노동 당국에 대한 항변이었다. 무엇보다 이날의 분노는 일자리에 목마른 청년층과 비정규직에라도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수많은 근로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한 채 기업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의 부도덕성 때문이다. 아울러 근로자를 기업의 기둥인 제 식구로 보듬기보다 한낱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기업주의 경영 철학 부재와 기업 윤리의 실종에 대한 배신감도 있다.



이미 국민들은 지난달 5일 정의당 이정미 국회의원의 폭로로 당국의 조사 결과 이랜드가 법규 위반으로 83억원이 넘는 근로자 임금 체임 사실을 알았다. 국민적 비난을 의식한 경영진은 곧바로 다음 날 그룹 차원의 사과문 발표와 체불 임금 해결과 아르바이트 직원의 정규직 전환 추진 등 직원 처우 5대 혁신안을 내놓았다. 대국민 사과와 약속 후 한 달이 지났는데도 이날 대구 도심에서 터진 절규는 체불 문제와 근무시간 조작 등의 부당 노동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제 할 일은 분명하다. 노동 당국의 적극적인 해결책 마련을 위한 고유 권한의 행사뿐이다. 이랜드의 대국민 약속의 이행 점검과 불법 사실 규명과 처리 행정만 남았다. 눈치 보거나 좌고우면할 필요조차 없다. 이랜드도 사과의 진정성을 보일 때다. 기업은 근로자의 땀과 소비자의 호응 없이는 잠시는 몰라도 오랜 생존은 없는 법이다. 굳이 이를 외면한다면 이랜드의 앞날은 자명할 따름이다.



7. 월성 1호기 재가동 취소 판결, 이참에 폐로 하는 게 맞다

서울행정법원이 경주 월성원전 1호기에 대해 재가동 결정 취소 판결을 내린 것은 유례가 없는 사건이다. 가동 중인 원전에 대해 사실상 가동 중단을 의미하는 판결이 나왔다는 점에서 향후 한국 원전정책의 궤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이는 2년 전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월성 1호기 재가동 승인 과정을 지켜봤더라면 당연한 귀결인지 모른다.



판결 결과도 놀랍지만, 판결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훨씬 놀라게 된다. 법원은 재가동 승인 과정에서 빚어진 위법 사항 여러 개를 적시했는데,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승인 과정이 얼마나 허술하게 처리됐는지 알 수 있다. 위법 사항으로 ▷운영 변경 허가 사항 전반에 대한 ‘변경 내용 비교표’를 제출하지 않았고 ▷허가 사항에 대해 원안위 과장이 전결로 처리했고 ▷원안위 위원 2명은 법률상 결격 사유가 있고 ▷계속운전을 위한 안전성 평가 때 최신 기술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재판부는 월성 1호기가 월성 3`4호기와 비교해 차이 나는 설비임에도 수명 연장 허가를 내줘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것으로 봤다. 법원은 원전 인근 주민들이 제기한 재가동 과정의 문제점을 상당 부분 인용해 월성 1호기가 더는 가동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안전 문제에 관해선 한 치의 소홀함이나 눈속임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셈이다.



월성 1호기는 2015년 재가동 승인 과정에서 노후 원전의 위험성과 기술적 미비점 등을 이유로 몇 차례 결정이 연기되는 파란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당시 가동 중단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많았지만, ‘폐로 했다간 향후 원전을 지을 수 없다’는 명분론이 힘을 얻으면서 가까스로 수명이 연장됐다.



한수원은 가동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판결의 사회적 파장과 의미를 볼 때 쓸모없는 고집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월성 1호기는 지난해 경주 지진 때 연약 지반에 자리 잡은 사실이 밝혀져 큰 우려를 안겨준 원전이다. 전력 수급이 부족하지 않으니 이참에 가동을 중단하고 폐로 절차를 밟는 것이 옳다. 2022년 11월에 수명이 끝나는 만큼 5년 남짓 남은 기간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안전 문제에 허점을 보인 만큼 폐로가 순리일 수밖에 없다.



[이데일리]

8. 정규직 장사, 어디 한국GM 노조뿐일까

한국GM 노조 간부들과 임원들이 돈을 받고 협력업체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는 ‘채용 장사’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노조와 경영진이 한 통속이 돼 뒷돈을 받고 정규직 자리를 판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처지를 비관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부도덕한 행태다. 채용비리를 저지른 회사의 잘못도 크지만 무엇보다 근로자 권익을 보호해야 할 노조 간부들이 채용을 미끼로 뒷돈을 챙기는 데 앞장섰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

검찰은 그제 이 회사의 전·현직 노조 간부와 임직원 50여명을 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특히 노조지부장을 지낸 정 아무개씨는 2012년부터 4년 동안 협력업체 직원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1인당 많게는 7500만원까지 받아 모두 8억 7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집 화장실에서 현금 4억원이 발견됐을 정도다. 경영진도 노조 청탁을 들어주고 지원자의 성적 조작에 가담했다. 정규직 전환자 346명 중 123명(35.5%)이 부정합격자라고 하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대기업 노조의 채용 비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기아차 광주공장 노조 간부가 취업사기로 거액을 챙겼다가 쇠고랑을 찬 게 불과 2년여 전의 일이다. ‘채용 장사’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고용 세습제도 고질이다. 근로자 1000명 이상 대기업의 35%가 단체협약에 노조원 자녀의 우선 특별채용을 보장하는 고용세습 조항을 두고 있다. 비정규직 보호는 말뿐이고 기득권을 지키려고 고용세습에 정규직 장사까지 하는 게 권력화한 대기업 노조의 실상이다.

채용 장사나 고용세습이나 모두 취업 준비생들의 희망을 짓밟는 파렴치한 범죄 행위다. 정규직을 꿈꾸는 비정규직 근로자에게도 마찬가지다. 공정 경쟁을 어지럽히고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반사회적 행위이기도 하다. 이번 기회에 한국GM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에도 비슷한 사례가 없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부패한 노조 권력은 일벌백계로 엄중 처벌해 비리를 뿌리 뽑아야 한다.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려는 노동계의 횡포로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이 생겨서는 안 될 것이다.



9. 파키스탄보다 뒤져서야 후회할 텐가

우리가 경제적으로 나이지리아나 파키스탄과 비교되는 상황이 온다면 달가워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경기가 침체됐을망정 마음속으로는 국민소득 3만 달러 목표를 이뤄 선진국들과 나란히 어깨를 겨루는 모습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이지리아나 파키스탄은 우리의 상대가 못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나타난 경제 지표들에서도 분명히 확인되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추세가 그대로 지속될 경우에는 문제가 달라질 것이라는 게 외부에서 바라본 인식이다. 2050년에는 우리의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18위로 나이지리아, 이집트, 파키스탄 등보다 낮아질 것이라는 회계컨설팅 네트워크 PwC의 전망이 그것이다. 앞으로 30여년 뒤의 얘기라고 남의 일처럼 간주할 것도 아니다. 지난 30년이 훌쩍 지난 것을 생각하면 다음 30년도 금방이다.

PwC의 전망에 따르면 현재 세계 13위인 우리의GDP가 2030년엔 14위, 2050년에는 18위로 하락할 것으로 분석됐다. 그때쯤에는 이집트와 나이지리아가 급격한 성장을 이뤄 우리보다 앞설 것이라는 얘기다. 이집트가 현재 21위, 나이지리아가 22위라는 점에서 격차가 그렇게 작은 것도 아니다. 세계 경제 성장세에 맞춰 브라질과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도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신흥국 중에서는 우리가 현저하게 뒷걸음질 칠 것이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그런 조짐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우리 경제의 성장·생산·투자가 정체된 가운데 소비마저 얼어붙은 모습이다. 최근 수출이 약간의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지만 아직 궤도를 잡아나가려면 한참 멀었다. 여기에 가계부채 부담이 누적되고 있으며 국가부채도 위험수위에 점차 다가가는 상황이다. 전망이 밝기보다는 어두운 게 사실이다. 정치·사회적인 여건도 우호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이처럼 위험 상황을 알리는 경고등이 곳곳에서 계속 깜빡거리고 있는데도 정작 우리 내부에서는 별다른 대책이 마련되지 못하는 게 더 심각하다. 정치인들도 저마다 입으로는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생색을 내면서도 실제로는 딴전이다. 서로 힘을 모아도 부족한 판에 패를 갈라 상대방을 공격하는 데만 열중하는 분위기다. 파키스탄보다 뒤지고 나서야 정신들을 차릴 것인지 우려스럽기만 하다.



[매일경제]

10. 손발 묶인 545조원 국민연금 운용 차질 걱정된다

요즘 증권시장에서는 최대의 큰손 국민연금이 제대로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국내 주식에만 100조원가량을 굴리니 국민연금의 행보는 단연 시장의 주목 대상이다. 주요 기업들이 지난해 4분기 실적을 기대 이상으로 올리며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오는데도 국민연금이 미적대고만 있어 투자 기회를 놓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거래소 통계를 보면 지난 6일까지 올해 들어 연기금은 유가증권시장에서 2097억원, 코스닥시장에서 190억원 각각 순매도를 기록했으니 연기금 투자액의 절반을 차지하는 국민연금의 소극적인 흔적을 읽을 수 있다.

국민연금의 투자 위축은 한마디로 운용 인력 이탈 때문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찬성 결정을 둘러싼 최순실 특검 수사로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압력 행사 혐의를 받고 있는 문형표 국민연금 이사장이 구속됐고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한 기소 여부도 곧 결정된다. 이를 둘러싼 조사 과정에서 실무 운용 인력들이 줄줄이 그만두고 떠나고 있다. 

여기에다 이달 말 기금운용본부의 전주 이전 때문에 운용역들의 사표 행렬이 가속하고 있다. 지난해 28명이 그만뒀고 올해 들어서도 8명이 더해졌다는데, 전주행 전후로 20여 명이 더 그만둘 예정이어서 최근 1년 새 260명의 운용 인력 가운데 50여 명이 떠난 상황이다. 전주 이전 후에도 6개월 이내 계약이 만료되는 운용 인력이 50명인데 이 가운데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떠날지 가슴만 졸이고 있다니 걱정스럽다.

국민연금 총자산은 지난해 11월 말 기준 545조원으로 전 세계 연기금 가운데 네 번째 규모다. 매년 50조원씩 기금이 추가로 쌓이는 데다 100조원의 국내 주식 투자에 맞춘 포트폴리오 비율을 감안하면 올해 주식시장에 10조원가량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운용 인력 대규모 이탈은 본연의 업무인 기금 운용에 막대한 차질을 줄 수 있으니 실질적이고 강도 높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금운용본부는 이주비 지급과 전용 숙소 마련 등 처우 개선이나 신규 운용역 추가 채용으로 빈틈을 막겠다는데 땜질 대책밖에 안 된다. 차제에 기금운용본부를 공사로 분리 독립해 운영하는 방안을 포함해 근본적인 개선책을 강구하는 게 맞는다.





주요신문칼럼



1. [동아일보][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 베버 신부와 ‘고요한 아침의 나라’

1973년 봄, 파독 광부 출신의 유학생 유준영은 독일 쾰른대 도서관에서 ‘한국의 금강산에서’란 책을 읽게 되었다.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장이었던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1870∼1956)가 1927년에 쓴 독일어 책. 거기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의 그림 3점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한국미술사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던 그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유준영은 곧바로 수도원에 정선의 그림이 있는지 수소문했다. 하지만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2년 뒤인 1975년 3월, 그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안고 뮌헨 인근의 오틸리엔 수도원을 찾았다. 놀랍게도 거기 정선의 그림이 있었다. 그것도 한두 점이 아니라 아예 화첩 형태였다. ‘금강산내전도(金剛山內全圖)’ ‘압구정도’ ‘함흥본궁송도(咸興本宮松圖)’ 등 21점이나 들어 있는 ‘겸재 정선 화첩’이었다. 

이 그림들을 수집해 오틸리엔 수도원으로 가져간 사람은 베버 신부였다. 그가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11년. 서울 수원 해주 공주 등지를 둘러보면서 한국인의 일상과 종교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 기억을 담아 1915년 독일에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출간했다. 그는 한국 여인의 장옷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부드럽고 연한 초록색 비단 장옷의 붉은 옷고름은 펄럭이는 옷자락 사이에서 얌전하게 내비치어 그 보색 대비가 마술처럼 조화를 이룬다.’ 

베버 신부는 1925년에도 한국을 찾아 금강산을 기행했다. 이때 정선의 그림들을 수집해 화첩으로 꾸민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또 무비카메라를 갖고 와 ‘한국의 결혼식’ 등의 기록영화를 촬영했다. 

정선 화첩은 1975년 이후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1990년대 독일 유학 중이던 왜관수도원 소속 선지훈 신부는 오틸리엔 수도원 측에 화첩의 한국 반환을 조심스레 요청했다. 하나둘 준비작업이 진행됐고 드디어 오틸리엔 수도원의 결단을 이끌어 냈다. 2005년 10월, ‘겸재 정선 화첩’은 우리나라에 돌아왔다. 오틸리엔 수도원이 경북 칠곡의 왜관 수도원에 영구 대여한 것이다. 조국을 떠난 지 80년 만의 귀환이었다. 

오틸리엔 수도원은 화첩을 경매에 부치게 해달라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회사의 거듭된 요청을 물리쳤다고 한다. “한국의 문화유산을 돈 받고 거래하고 싶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벽안(碧眼)의 이방인 베버 신부로부터 시작된 한국과의 인연, 벌써 100년이 넘었다.



2. [서울신문][문화마당] 조카 돌잔치에 다녀왔다

​지난해 첫 장편 영화를 개봉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왜 계속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드는가’였다. 사실 영화를 만드는 동안은 그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한동안 나름 진지하게 지난 작업들을 돌아보며 그 어떤 심리적이고 철학적이며 사회적이고도 예술적인 이유를 찾아보려 애를 썼다. 하지만 정말 솔직한 대답은 한 가지뿐이었다. 그냥 내가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만드는 게 즐거워서 그랬다고.



이제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은 ‘도대체 왜 그렇게 아이를 좋아하는가’다. 나는 더욱 당황해 있는 말 없는 말 그러모아 아무 대답이나 해 본다. 아이들의 끝없이 솟구치는 에너지가 좋다. 그 단순한 마음과 직관적인 움직임은 완벽하다. 무한한 가능성과 마법 같은…. 하아. 정말 어려운 문제다. 생각할수록 모르겠다. 이유야 수백 개도 찾을 수 있겠지만, 또 하나도 없기도 하다. 본능적으로 작동하는 마음의 원리를 설명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하고.

각설하고 어쨌든 난 아이들이 좋다. 그런 날 잘 아는 지인들은 종종 자신들이 사랑하는 아이의 사진이나 영상을 보내온다. 내가 그들과 함께 감동받고 기뻐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오지로 배낭여행을 떠났던 한 친구는 장기간 머물던 마을에서 친해진 아이들의 사진으로 안부 인사를 대신했고, 첫아이를 낳고 감격한 또 다른 친구는 종일 먹고, 싸고, 자기만 하는 갓난아이의 일상을 몇 달간 생중계하기도 했다. 심지어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나와 거의 모든 작품을 함께해 온 김 피디가 또 조카 사진을 보내왔다. 저 조카 바보는 수년 동안 정말 많은 조카 사진을 내게 투척했는데, 그만큼 봤으면 나도 고모라고 우길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제 고백해야겠다. 그동안 나는 그들의 아이가 얼마나 예쁜지 온전히 느껴 본 적이 거의 없다. 세상은 넓고 예쁜 아이는 얼마나 많은데! 뭐 가끔은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번진 적도 있다. 하지만 이미 나의 유튜브 즐겨찾기에도, 그런 꿀 떨어지는 영상이 백만 스물다섯 개쯤은 있었다. 그래서 혼자 몰래 투덜거렸다. 대체 저 정도 귀여움이 뭐 대단하다고 저리 호들갑일까? 그랬다. 나는 그들이 진짜 전하려던 게 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게도 정말 사랑하는 아이가 생겼으니깐.

그렇다. 드디어 내게도 조카가 생겼다. 그리고 지난 주말엔 무려 아이의 돌잔치에 다녀왔다. 놀라운 속도였다. 목도 가눌 수 없어 눈만 꿈벅이던 작은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몸을 뒤집고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더니, 어느덧 직립보행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 년 동안 나는 한 인간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했고 함께 체험했다.



아이의 도전은 나의 도전이 됐고, 아이의 성취는 곧 나의 성취가 됐다. 아이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건 단지 귀여운 얼굴만이 아니라, 스스로 몸을 일으켜 세계와 처음 만나고 반응하는 생명 자체를 말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어쩌면 그들이 정말 전하고 싶었던 것도 이런 놀라운 감동이 아니었을까. 카메라로는 절대 포착할 수 없을, 기적처럼 쌓아 올린 그 모든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아, 우리 조카는 돌잡이에서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돈을 번쩍 집어 들어 모두를 안심시켰다. 역시 다방면에서 너무나 예쁘고 완벽한 아이다. 당장 김 피디에게 돌 사진을 보내 칭찬을 강요해야겠다. 오직 조카 바보만이 또 다른 조카 바보를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깐.



3. [경향신문][문화와 삶] 가슴에 새겨진 사랑

나는 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었는지 잘 모른다. 내 기억력이 유독 허약해서였는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내가 다섯 살 무렵에 돌아가셨다는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아도 생판 모르는 남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었을 거라는 짐작이 짐작으로 그치지 않고 확고한 이미지로 내 가슴에 남은 이유는 작은할아버지 때문이었다. 

다른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는 누가 형제 아니라고 할까봐 부러 유세라도 하듯 답답할 만큼 무던한 성격이며 잔입이라고는 모르는 과묵함 등이 판박이였다고 한다. 아마도 그런 말에 익숙해진 터라 아직 살아 계신 작은할아버지에게서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이미지를 찾아내려 했을 테고 부지불식간에 할아버지를 보듯 작은할아버지를 보게 되었을 것이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중학생 시절까지 내가 지켜본 작은할아버지는 측은하기 짝이 없는 분이었는데 그렇게 여기게 된 이유는 작은할머니 때문이었다. 작은할머니는 우리 동네뿐만 아니라 근동에서도 따라올 자가 없을 만큼 뜨르르한 욕쟁이였다. 첫닭이 울고 나면 작은할머니의 사나운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목소리는 하루 종일 내가 어디에 있든 환청처럼 들려왔으며 밤이 이슥해져서야 겨우 잠잠해졌다.



작은할머니의 삿대질과 바가지 욕설을 누군들 피해갈 수 있었으랴만 하물며 매일처럼 밥상에 마주 앉아야 했던 작은할아버지가 어떠했을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작은할아버지는 가히 성불에 가까울 만큼 초연했는데 어쩌면 작은할아버지의 그런 태도가 작은할머니의 부아를 돋웠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되도록 작은할머니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기척만 들려도 도망가거나 피해 다니기에 바빴다. 할머니마저 돌아가신 뒤로는 일가붙이 가운데 가장 큰 어른이 작은할아버지와 작은할머니 내외였던지라 시늉일지언정 어려운 어른 대하듯 조심스러워서가 아니라 기가 막히게도 야단칠 꼬투리를 잡아내는 작은할머니가 무섭고 지긋지긋해서였다. 언젠가는 머리에 키를 쓰고 소금을 얻으러 갔다가 작은할머니의 부지깽이에 호되게 얻어맞기도 했던 터라 일가 어른만 아니었다면 나 역시 동네의 다른 아이들처럼 등 뒤에서 주먹감자를 날리는 졸렬하고도 통쾌한 짓을 서슴지 않았을 거다. 

중학생이었던 어느 여름날 어머니가 등을 떠미는 바람에 더위 먹어 골골대는 작은할아버지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보건소에 다녀와야 했다. 무엇 때문에 심사가 뒤틀렸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무척 귀찮고 짜증이 났던 것만은 기억이 난다. 좁다란 신작로에서 마주 오는 차를 비켜 가다 논두렁에 처박힐 뻔한 위태로운 순간을 겪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어쨌거나 뙤약볕을 맞으며 먼 길을 갔고 링거 주사를 맞으며 잠든 작은할아버지를 두 시간 동안 지켜보다 다시 오토바이에 태워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기진맥진해 잠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해질 무렵이었다. 자박자박 마당을 가로질러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방문이 벌컥 열렸다. 작은할머니였다. 보건소 댕겨오느라 욕봤다. 아나, 아이스께끼 사 먹어라. 꼬깃꼬깃 접힌 지폐가 내 앞에 툭 떨어졌다. 펴보니 삼천원이었다. 부라보콘을 열다섯개나 까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세뱃돈으로 오백원짜리 동전 한 번 준 적 없던 당신이었는데 말이다.

그로부터 몇 달 지나지 않아 작은할머니는 마을 근처 솔밭에서 솔가리를 긁다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문상객으로 북적이던 작은집에서 시중을 들다 아랫방 문을 벌컥 열었던 나는 어두운 방에 홀로 앉은 작은할아버지를 보았고 그 순간 무언가가 내 가슴을 슬쩍 베고 사라졌다. 

이듬해에는 작은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냥 허깨비처럼 살다 가셨다. 그 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내 가슴을 슬쩍 베고 사라졌던, 내가 방문을 열었을 때 그 안으로 스며든 빛낱이 작은할아버지의 눈물에 닿아 번득였을 그 날카로운 그리움에 머물러야 했다.



4. [한국경제][천자 칼럼] 애플 신사옥

지상에 내려앉은 UFO, 거대한 도넛, 우주선 캠퍼스 …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건설 중인 애플 신사옥은 커다란 원반 모양이다. 외면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곡면 유리로 장식한다. 건물 한가운데는 공원과 숲으로 꾸민다. 사옥과 주차장 지붕은 태양광 패널로 덮는다. 전력을 자체 조달하는 건 물론이고 인근 마을에도 공급한다. 수용 인원은 1만3000여명. 건설비 6조원의 대공사다.

당초 예정보다 2년 늦었지만 아직도 완공 시기는 미정이다. 올해 안에는 공사가 끝날 것이라지만, 업계에서는 생전 스티브 잡스의 깐깐한 요구를 다 충족시키려면 언제 완공될지 모른다고 한다. 사옥 이름은 ‘애플 캠퍼스 2’다. 창의력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구글도 사옥을 ‘캠퍼스’라고 부른다. 구글 사옥은 놀이터 같다. 직원의 행복감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때론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니 더욱 그렇다. 잘 지은 사옥에서 일하는 직원의 창의성이 더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사옥 디자인은 오피스 건축 설계의 총아로 불린다. 1900년대 전반에는 대부분 고전적 형태의 건물을 높게 지었다. 뉴욕의 명물 크라이슬러빌딩은 에펠탑보다 높게 지어달라는 주문에 따른 것이었다. 20세기 후반엔 디자인 흐름이 달라졌다. 1958년 위스키업체 시그램이 창사 100주년을 맞아 뉴욕에 지은 사옥은 외피를 유리로만 덮었다. 이른바 ‘커튼 월’을 완벽하게 구현한 첫 사옥이다.

기업의 이미지와 문화를 강조하는 사옥도 속속 등장했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바람을 일으킨 뉴욕AT&T 빌딩이나 자동차 실린더 형태로 표현한BMW 사옥이 대표적이다. 1930년대 미국 존슨 왁스 사옥은 위와 옆으로 넓게 트인 내부 공간에 커다란 버섯 모양 기둥이 숲처럼 들어찬 디자인으로 이목을 끌었다. 수제 바구니를 만드는 회사 롱거버거는 거대한 바구니 모양, 명품 기업 루이비통은 커다란 가방 형태로 사옥을 지었다.

가장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인 건 역시 IT기업들이다. 애플이나 구글처럼 페이스북도 파격적인 디자인을 도입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의 페이스북 신사옥은 ‘거대한 원룸’이다. 축구장 7개 규모의 세계 최대 개방형 오피스. 사장실도 따로 없다. 국내의 네이버 분당 사옥 그린팩토리와 제주도의 다음 본사 사옥 스페이스닷원도 포털 사이트 특성에 맞는 ‘열린 디자인’을 활용했다. 사옥이야말로 기업의 철학과 정체성, 조직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디자인 결정체다. 결국 사람은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을 만든다.



5. [한국일보][기억할오늘] 헨리 해리슨

미국 제9대 대통령 윌리엄 헨리 해리슨(WilliamHenry Harrison)은 몇 가지 이채로운 기록으로 기억된다. 그는 대영제국 식민지 시절 태어난 미국 마지막 대통령이자, 31일의 최단기간을 재임한 대통령이고, 대통령 집무실에서 숨을 거둔 첫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근대적 의미의 대통령 선거 전략을 구사한 첫 대통령이기도 했다.

해리슨은 1773년 2월 9일 대농장주이자 유력 정치인이던 벤저민 해리슨의 7남매 중 막내로 버지니아주 버클리에서 태어났다. 유년 교육은 가정교사에게 받았고,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의학을 공부하다 18세에 부친이 사망하자 공부를 중단하고 육군에 입대했다. 그는 인디언 토벌 전쟁에서 큰 전공을 세우며 유명해졌고, 그 덕에 25세이던 1798년 존 애덤스 대통령에 의해 노스웨스트 준주 장관과 인디애나 준주 지사(1800~1811)를 지냈다. 그의 정치 이력은 그 기간에도 점령지 인디언 통치와 ‘티피카누 전투’ 등 토벌전쟁의 승리로 두툼해져 갔다. 

그는 1836년 대선에 출마했다가 민주당 마틴 밴 뷰런(Martin Van Buren, 1782~1862)에 패했지만, 4년 뒤 다시 맞섰다. 뷰런 진영은 67세의 상대적 고령인 해리슨을 “행정부 각료회의장보다는 오두막집에 앉아 사과주나 마시는 게 어울리는 고루하고 현실감각 없는 늙은이”라고 공격했다.



해리슨은 거꾸로 오두막과 사과주를 캠페인 상징으로 채택해 경기 침체기 ‘서민(commonman)’의 이미지를 적극 부각함으로써 부유한 정치 엘리트 뷰런에 맞섰다. 그는 “정부 정책들은 부자를 더 부유하게, 빈자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 데만 동원되고 있다” “제약 없는 권력만큼 우리의 가장 고결하고 섬세한 천성을 더럽히는 것도 없다” 같은 말들을 남겼다. 뷰런 재임기 경기침체 덕이 컸지만 선거 전략도 주효. 그는 9대 대통령이 됐다.

41년 3월 4일 취임식 날은 춥고 비가 왔다. 취임 선서와 연설을 하는 동안 그는 외투도 모자도 쓰지 않았고, 마차 대신 말 안장에 앉아 퍼레이드를 했다. 게다가 그의 취임연설은 미국 헌정사상 가장 길어 2시간 가까이(8,445단어) 이어졌다. 어쩌면 그는 건재한 체력을 과시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3월 26일 병석에 누워 4월 4일 별세했다. 당시 알려진 사인은 폐렴, 훗날 밝혀진 바 장티푸스에 의한 패혈성 쇼크가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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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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