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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한국일보]
1. 특검은 국정농단 몸통이 박 대통령이라고 결론 내렸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6일 박근혜 대통령을 뇌물수수의 피의자로 결론 낸 90일간의 특검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최순실씨와 공모해 삼성그룹으로부터 430억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에게 적용된 혐의는 13개로 늘어났다. 검찰이 특검에 넘긴 8개 혐의 외에 뇌물수수와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등 직권남용 3건, 의료법 위반 등 5개 혐의가 추가로 적용됐다.
특검팀도 밝혔듯이 대통령 대면조사와 청와대 압수수색이 이뤄졌다면 박 대통령의 혐의는 더 크고 무거워졌을 것이다. 특검 수사 내용이 박 대통령 탄핵심판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특검 수사의 가장 뚜렷한 성과는 박 대통령의 뇌물죄 혐의다. 특검팀은 “대통령이 최순실과 공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승계 등 현안에 대한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뇌물을 수수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2015년 6월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성사될 수 있게 잘 챙겨보라”고 했을 뿐 아니라 공정위의 삼성물산 의무처분 주식 감축과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등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특혜성 결정을 지시한 사실이 파악됐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최씨 일가 지원금 외에 미르ㆍK스포츠재단 출연금까지 뇌물 액수에 포함시킨 것도 대가성이 뚜렷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과 최씨가 뇌물수수의 공범일 개연성은 최씨 측이 박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사저 구입 대금을 댔고, 의상 제작비 등을 대납한 정황에서도 드러난다. 박 대통령과 최씨가 사실상 경제적 이해관계를 함께 해 온 사이임을 보여 준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여전히 억지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박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특검 발표 후 낸 반박자료에서 “대통령은 재단 설립을 지시하거나 출연을 강요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측근들 증언과 증거로 확인된 사실조차 무조건 부인하는 행태가 어처구니 없다. 반성이나 성찰은 찾아볼 수 없고 “특검은 태생부터 위헌”이라는 식의 궤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도 박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게 특검팀의 설명이다. 단순한 이념 차이가 아니라 정부나 청와대의 입장과 다르면 ‘반민주’세력으로 규정하고 지원을 차단했다고 특검은 밝혔다. 문체부 1급 실장들과 노태강 문체부 국장 사직 강요도 박 대통령과 무관치 않다고 한다.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고 직업공무원제를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헌법적 가치를 훼손한 중대 범죄가 아닐 수 없다.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4월 16일 대통령의 행적을 둘러싼 ‘세월호 7시간’의혹이 미완으로 남은 것은 아쉽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이 불법 의료업자로부터 ‘비선 진료’를 받는 등 청와대 의료시스템이 붕괴 상태였다는 사실은 확인했으나 세월호 당일 행적 규명은 청와대 압수수색 불발 등으로 한계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특검팀은 박 대통령 왼쪽 턱밑에 4월 15일 국무회의 당시에는 없던 주사 자국이 4월 17일 나타난 것을 성형외과의사회에 자문한 결과 “시술을 했다면 15일 이후 17일 이전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거의 매일 아침 청와대에 들어가 머리 손질을 하던 미용사가 평일인 16일 오전 대통령 측 요청으로 가지 않은 사실도 미심쩍다. 앞으로 검찰 수사에서 세월호 의혹이 4월 15일 저녁부터 16일 오전 10시까지의 행적 규명으로 진행돼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번 수사를 통해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청와대 압수수색 불발에 대한 대책 마련도 시급해졌다. 수사 기간 연장 여부를 임명권자가 아닌 특별검사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제언과 형사소송법에서 청와대 압수수색을 가능하게 하는 보완 절차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검찰은 특검 수사 발표 직후 특별수사본부를 재구성해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본부장을 맡은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은 최순실 태블릿PC보도 다음날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통화해 논란을 빚었다. 박 대통령 뇌물수수와 세월호 의혹 수사뿐 아니라 우 전 수석의 각종 의혹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만큼 검찰이 재수사에서라도 국민 신뢰를 회복할 성과를 내 놓아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국민일보]
2. 국정농단 진상규명, 특검 수사로 끝난 것 아니다
박영수 특별검사가 국정농단 수사 결과를 정리해 발표했다. 특검팀은 A4 용지 100쪽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정호성 녹음파일’에 담긴 대통령 발언, 대통령과 삼성의 상세한 ‘거래’ 과정 등 노골적인 내용은 수록하지 않았다. 사실관계만 담담히 기술했음에도, 수사 과정에서 이미 공개된 사실이 상당수임에도, 수사기간 제약과 청와대 비협조로 풀지 못한 의혹이 남아 있음에도 보고서는 충격적이었다. 박근혜정권이 권력을 어떻게 사용(私用)했는지 고스란히 보여줬다. 100쪽을 다 읽은 이들은 자괴감을 떨칠 수 없었을 것이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최고 재벌 총수와 국가경제가 아닌 이해관계를 위해 만났고, 국민연금기금이 그 거래에 동원됐다는 게 특검의 결론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블랙리스트 사건에도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 및 장·차관들과 나란히 공범으로 분류됐다. 최순실씨가 대통령에게 요청한 공공기관·사기업 인사 청탁은 어김없이 이행됐으며, 대통령은 ‘대포폰’으로 6개월간 573회나 통화할 만큼 최씨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특검 수사 결과는 검찰 보완수사와 재판을 통해 더욱 촘촘한 사실로 걸러질 것이다. 국정농단의 진상을 규명하는 작업은 이제 겨우 문턱을 하나 넘어섰다. 우리 시대의 뼈아픈 기록을 남기는 일은 흔들림 없이 계속돼야 한다. 그래야 비극적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보고서에서 눈길을 끈 부분은 ‘본 건의 특징’ 같은 부제 아래 기록된 내용이었다. 특검은 블랙리스트 사건을 설명하며 “(특정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 차단은) 이념적 정책 변경의 사례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정부·청와대 입장에 이견을 표하면 반민주 세력으로 규정한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자행됐기에 ‘정파적’ 행위라고 규정하면서 이런 행태를 막으려면 정부 산하 기관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국민연금공단에 대해서도 ‘국민 노후자금의 관리인’인 만큼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의 실질화가 필요하며, 그러려면 관련 규정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다음 정권을 맡으려는 이들은 보고서를 숙독할 필요가 있다. 수사 결과 드러난 권력형 병폐가 차단되도록 제도 정비만 제대로 해도 나라를 정상화하는 작업이 한층 수월해질 것이다.
당초 검찰이 대통령에게 적용했던 8개 혐의는 특검 수사를 통해 13개로 늘었다. 특검은 대통령의 뇌물수수와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 우병우 전 민정수석 비위와 정유라 학사비리 사건을 검찰로 넘기며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통령 대면조사를 비롯해 검찰이 마무리해야 할 몫이 결코 작지 않다. 탄핵심판의 결과를 떠나 철저한 수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검찰은 어느 때보다 결연한 각오로 최고의 자원을 투입해 수사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3. 인구 재앙 막을 패러다임 전환 시급하다
18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는 ‘인구 폭발’로 인한 인류 멸망을 걱정했지만 지금 우리는 ‘인구 절벽’으로 인한 재앙을 걱정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올해는 3가지 인구 위기가 한꺼번에 닥친다. 신생아 수가 30만명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생산가능인구(만 15∼64세)가 사상 처음 줄어들기 시작한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 ‘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일해서 세금 내는 인구보다 부양할 노령 인구가 많은 역피라미드 인구 구조는 말 그대로 재앙이다. 경제성장률은 떨어지고 연금·건강보험 등 복지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국가 재정을 위협한다. 강원대 이현훈 교수는 최근 한국경제학회 주최 정책 세미나에서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10% 포인트 늘어나 일본 수준이 되면 연 경제성장률이 3.5% 포인트 이상 하락해 마이너스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2005년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법’ 제정 이후 3차례에 걸쳐 저출산 고령화 기본계획을 내놓고 10년간 80조원 이상을 쏟아부었는데도 출산율을 높이지도, 고령화 속도를 늦추지도 못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1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68명에 크게 못 미친다. 고령화 속도는 일본보다 훨씬 빨라 9년 뒤인 2026년에는 노인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란 전망이다.
지금까지의 인구 정책은 사실상 실패했다. 그만큼 6일 새롭게 출범한 5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임무가 막중하다. 위원회 내에 범정부 차원의 인구정책개선기획단을 신설키로 한 것은 늦은 감이 있다. 초저출산의 근본 원인은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낳아 키우기 힘들다는 데 있다.
출산 장려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과다한 사교육비와 주거비, 일자리 등 구조적·복합적 요인들을 해결해주는 근본 대책이 나와야 한다. 100세 시대에 맞춰 만 65세로 돼 있는 노인 기준을 상향 조정하고 이민 정책과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지원 등 획기적 대책도 필요하다. 대한민국 출산지도나 고스펙 여성의 하향 결혼 유도 같은 탁상공론만 계속한다면 인구 재앙은 현실이 될 수밖에 없다.
[한겨레]
4. ‘박근혜 청와대’가 백색테러 위협도 사주했나
‘박근혜 청와대’가 극우보수단체들에 자금지원을 해왔을 뿐 아니라 올해 초까지 수시로 연락을 취해온 사실이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이들이 탄핵 심리 중인 헌법재판관들이나 국정농단 사태를 수사해온 특별검사팀에 대해 공공연하게 테러 위협과 협박을 가한 단체들이란 점에서 허투루 넘길 일이 아니다. 배후에서 극우단체들을 조종해온 이상 최근의 관제시위는 물론 백색테러 위협의 책임도 박근혜 청와대가 져야 마땅하다.
특검은 6일 청와대 정무수석실 관계자 등이 2014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전경련을 통해 68억원을 극우보수단체들에 지원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2014년 삼성 등 대기업에서 지원받은 24억원을 22개 단체에 지원한 것을 시작으로 2015년 35억원, 지난해엔 9억원을 지원했다.
청와대 정무수석실 허현준 행정관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1월 초까지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와 통화나 문자메시지 등 90차례 연락을 주고받았다. 또 장기정 자유청년연합 대표, 박찬성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대표 등 우익단체 대표들과도 휴대전화로 자주 연락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장 대표 등은 박 특검 집 앞에서 “몽둥이맛을 보여줘야 한다”며 야구방망이를 흔드는 등 공개적으로 헌재 재판관과 특검을 협박해온 당사자들이다.
자유청년연합을 비롯해 청와대의 자금지원을 받고 있는 상당수 극우단체들은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는 물론 국가정보원 문건 등에도 실명이 등장한다. 청와대의 정치공작에 동원돼온 어용단체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이미 공작 전위대로서의 실체가 드러난 어버이연합 등의 단체들이 아무 제재도 받지 않은 채 여전히 아스팔트 시위를 주도하며 활개 치는 데는 청와대, 국정원 등의 비호세력은 물론 진상을 은폐해온 검찰의 책임도 크다.
5. ‘모든 범죄의 중심에 대통령이 있다’는 특검 발표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씨와 공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고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6일 수사결과 발표에서 밝혔다. 대통령의 혐의는 이것만이 아니다. 대통령은 삼성을 돕기 위해 여러 부처에 부당한 지시를 했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을 지시하고 공모했다. 공무원들을 쳐내고 민간기업 인사에 관여한 것도 대통령이고, 국가기밀문서 유출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국정농단으로 벌어진 모든 범죄의 중심에 대통령이 있었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뇌물수수의 핵심 피의자다.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 최씨는 삼각 고리를 이뤄 청탁과 대가, 지원을 주고받았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했던 ‘부당 거래’다. 특검은 미르·케이스포츠 재단이 대통령과 최씨의 이익을 위해 설립된 공동 소유물이라고 판단했다. 영재센터나 정유라씨 승마훈련 지원도 기업에서 돈을 끌어모으기 위한 것이었다.
대통령과 최씨는 공모해, 당시 경영권 승계가 절실했던 삼성으로부터 승마훈련 지원, 재단 출연 등 여러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 433억여원을 주고받기로 약속했고, 실제 건네진 돈도 300억원 가깝다. 대신 삼성은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자리 등을 통해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구조 개편을 도와달라고 온갖 청탁을 했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 조정, 신규 순환출자 고리 해소 때 의결권 손실 최소화, 금융지주회사 전환, 중간금융지주회사 설립 입법,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지원, 외국자본에 대한 경영권 방어 등 단계별로 현안이 여럿이다.
삼성의 청탁을 들어주기 위해 청와대는 물론 보건복지부,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환경부, 한국거래소 등 여러 부처와 기관이 움직였다. 그렇게 동원할 수 있는 힘은 대통령뿐이겠다. 실제로 공정위가 신규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한 처분 주식을 절반으로 줄여준 것은 청와대의 외압 때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연금공단이 불공정한 합병비율로 수천억원의 손해가 뻔히 예상되는데도 합병에 찬성한 것 역시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을 위해 거래소와 환경부가 관련 규정과 환경규제를 폐지한 데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 ‘안 될 일을 되게 한’ 배경은 청탁과 대가의 뇌물관계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블랙리스트 역시 대통령에서 비롯됐다.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는 박 대통령의 말이 바로 지시였다. 김기춘 비서실장 등 청와대 비서실은 대통령, 최씨 등과 차례로 공모해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비판적 단체와 개인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했다. 그런 일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문체부 간부들을 사직시키는 데도 대통령이 관여했다고 한다.
세월호 추모, 혹은 그저 야당 정치인을 지지했다는 따위 이유만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려 탄압한 것은 정권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봉쇄한 반헌법적 중대범죄다. 이것만으로도 탄핵 대상이다.
국정농단과 헌정 유린의 주범이 박 대통령임을 분명히 드러낸 특검의 성과는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진상을 다 밝혀내지 못한 아쉬움도 크다. ‘세월호 7시간’ 동안 대통령의 직무 유기 의혹과 관련해선, 대통령이 그즈음 불법 미용시술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심은 더 커졌지만 대면조사와 청와대 압수수색이 무산되면서 끝내 확인하지 못했다.
2730억원에 이른다는 최씨 일가의 재산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박 대통령은 관여하지 않았는지도 여러 제약으로 의혹을 풀지 못했다. 국정농단이 횡행할 수 있도록 ‘채찍’과 ‘방패막이’ 구실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조사도 미완이다.
이제 남은 의혹의 규명은 검찰에 넘어갔다. 눈치 보고 머뭇거릴 계제는 이미 아니다. 특검 못지않게 거침없이 수사해 진상을 밝혀내기 바란다.
[서울신문]
6. 절반의 성공을 거둔 특검, ‘유종의 미’는 검찰 몫
국정 농단 의혹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가 어제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특검은 90일간의 수사를 통해 삼성 뇌물 혐의에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를 적시했으며,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박 대통령과 최씨가 공모한 사건으로 결론지었다. 정부의 입장에 이견을 달면 반민주로 낙인찍었고 세월호 참사 추모 의견도 탄압 대상이었다는 것이 특검이 발표한 수사 내용이다.
이런 특검의 수사 내용이 앞으로 진행될 재판에서 사실로 밝혀지면 이번 사건은 헌법의 본질적 가치를 위배한 중대 범죄가 된다. 하지만 반론과 반박도 존재하는 만큼 공소 유지를 통해 진실을 증명해 내는 것 또한 특검의 몫이다.
역대 최고의 특검이라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이번 특검 수사는 ‘절반의 성공’이라는 것이 올바른 평가일 것이다. 박 대통령 등 주요 수사 대상자의 비협조와 수사 기한 연장 불발 등이 가장 큰 원인이 되겠지만 특검의 전략 실패는 없지 않았는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에 시간과 힘을 소진한 나머지 몸통으로 지목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놓친 것은 특검으로서는 뼈 아픈 대목일 것이다.
“(우 전 수석의) 세월호 수사 압력 같은 것은 솔직한 얘기로 압력이 인정되는 것”이라며 “영장을 재청구하면 100% 발부될 것”이라는 박 특검의 발언 또한 신중했다고 보긴 어렵다. 검찰이 그를 구속해도 공은 특검 몫이 되고, 실패하면 부패 검찰, 정치 검찰로 비난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온 국민이 주시하는 대국민 보고에서 특검이 질의응답을 생략한 것은 수사를 진행한 특검으로서는 무척 아쉽겠지만 잘한 일이라고 본다. 박 대통령 탄핵 심판에 대한 헌재의 선고가 임박한 상황에서 괜한 오해를 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특검이 박 대통령 뇌물 사건 등을 검찰에 이첩함으로써 공은 이제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은 특별수사본부를 재가동해 미진한 부분을 철저히 수사해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한다.
하지만 검찰이 중립성을 확보해 실체를 규명할 수 있을지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검찰 내 ‘우병우 사단’은 여전히 건재하고, 국민은 검찰에 소환된 우 전 수석이 수사 검사들 앞에서 팔짱을 끼고 여유를 부리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은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남은 수사에 임해야 한다. 이번 국정 농단 사태를 보며 여야를 막론하고 차기 대선 주자들이 공수처 신설에 입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검찰은 직시하기 바란다.
[매일신문]
7. 중국의 무분별한 사드 보복, 한국 경제 ‘자강’ 좋은 기회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중국의 한국 여행상품 판매 전면 중단에 맞서 아세안 관광객 입국 비자 면제 등 대응책을 정부에 건의했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노골적인 보복 조치로 중국 관광객 비중이 높은 지역 관광업계에 타격이 예상되자 마케팅 다변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관광업계와 지자체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와 홍콩`대만`일본 등으로 시장을 확대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한국을 겨냥한 중국의 경제 제재는 도를 넘어섰다. 사드 부지 교환 당사자인 롯데 제재는 더욱 노골적이다. 6일 현재 영업이 정지된 중국 내 롯데마트 점포가 23곳으로 늘었다. 현지 롯데마트 영업점이 모두 99개인 점을 감안하면 네 곳 중 한 곳이 문을 닫은 것이다. 또 한국 화장품`식품 등 소비재 수입을 불허하거나 국내 항공사의 정기편 신규 취항과 증편 계획도 거부하려는 움직임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국제 규범에 어긋나는 행위이자 중국 체제의 후진성을 스스로 드러낸 꼴이다. 중국의 폐쇄적인 무역 환경은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세계경제포럼의 ‘세계무역가능보고서’만 봐도 중국 시장의 폐쇄성을 알 수 있다. 최근 발표된 중국의 무역가능지수(ETI)는 136개국 중 61위(4.5점)에 그쳤다. 싱가포르가 6.0점으로 가장 높고 일본(16위, 5.3점), 미국(22위, 5.2점), 한국(27위, 5.0점) 등 순이다.
당분간 지역 관광업계의 중국 교류사업이나 팸투어, 의료관광 등에 적지 않은 피해가 예상된다. 수출 등 지역 제조업계의 피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유커에 집중된 국내 관광산업의 대중국 의존도를 크게 낮춘다면 이는 한국 관광이 한층 성숙해지는데 좋은 전기이자 큰 수확이다.
정부는 사드 사태와 관련해 우리 입장을 중국에 일관되게 전달하는 한편 지자체`기업과 협력해 관련 산업 저변과 시장구조 등 체질을 개선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만약 이런 자강(自彊) 노력 없이 우왕좌왕할 경우 중국의 노림수에 걸려드는 것이다. 우리가 차분하고 슬기롭게 대응하면서 제3의 길을 찾는다면 중국의 무분별한 보복이 거꾸로 ‘어두운 방에 자신을 가두는 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데일리]
8. 한반도 위기국면, 자주외교 역량 있는가
북한이 어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4발을 연달아 발사했다.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의 기지에서 발사된 이 미사일들이 1000㎞ 이상을 날아가 동해에 떨어졌다는 것이 합동참모본부의 발표 내용이다. 이번 미사일 도발이 지난달 12일 ‘북극성 2형’ 중장거리 탄도미사일(IRBM) 발사에 이어 불과 20여일 만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도발 수위를 점차 높이겠다는 북한의 의도를 짐작하게 된다.
이번 미사일 도발은 지난 1일 시작된 한·미 독수리훈련에 대한 반발로 여겨지지만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팀이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를 검토 중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온 직후 이뤄졌다는 점에서 복합적인 의도로 분석된다. 북핵 문제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접근방식이 전임 오바마 시절과는 전혀 차원이 달라졌다는 사실만으로도 한반도의 긴장상태가 더욱 고조된 듯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핵개발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문제다. 최근 김정남 암살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여차하면 화학무기를 동원할 가능성도 무시하기 어렵다. 더욱이 미국의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가 실현될 경우 1991년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결과적으로 북한에 대해 핵개발 명분을 주게 될 것이며, 서로의 핵군비 움직임을 부추겨 한반도가 ‘핵무기 화약고’로 변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다.
전술핵 재배치 문제를 떠나서도 현재 진행 중인 사드 배치작업은 속도가 더욱 빨라지게 될 것이다. 중국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국 일각에서는 사드를 추가로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더 나아가 새로운 사이버 공격과 전자전 시스템 개발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른바 ‘선제 공격론’과 함께 한반도 정세가 갈수록 일촉즉발의 위기 국면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제 발사된 북한의 탄도 미사일은 하나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한반도 정세가 이처럼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도 직접 당사국인 우리가 핵심 논의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심각하다. 우리의 국가적 운명이 자칫 주변 강대국들의 샅바싸움에 좌우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사드에 대한 중국의 보복조치 등으로 급격히 요동치는 한반도 정세에서 우리의 자주역량 외교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 탄핵 이후 다음 정부에 미룰 일도 아니다.
[동아일보]
9. 대학 정원감축보다 체질개선이 시급
2016년 교육기본 통계에 따르면 고등학교 학급당 학생 수가 30명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대학진학률도 한때 80% 이상에서 70% 아래로 내려갔다. 출생아 수 통계를 살펴보면 1994년부터 2005년까지 12년간 출생아 수가 29만 명, 즉 40%가량 감소하였고 그 이후에는 45만 명 수준에서 유지되는 추세다. 앞으로 7, 8년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위기가 더욱 가중될 것이다.
대학 구조개혁을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의 입학 정원만 줄이는 것은 해답이 아니다.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대학의 비용구조를 효율화하고, 강점 분야로 집중하는 고강도의 체질 개선이 없으면 대학은 생존 자체가 불투명하다.
이는 대한민국의 생존과도 직결된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교육을 통해 지금의 발전을 견인해 왔다. 지금같이 우리 인적자원의 인력풀이 계속해서 줄어가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대학이 더 우수한 인재를 키워 내야 한다는 것이 대한민국이 당면한 가장 큰 숙제이다.
‘시간이 흐르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실 대학은 자연 도태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지금보다 더 우수한 인력을 배출할 교육 인프라와 내용을 갖춘 대학이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학생 유치 경쟁으로 소모되는 자원과 노력은 대학 본연의 교육, 연구, 산학협력에 투자해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학 구조개혁은 단순히 대학의 규모 감축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쓰나미 같은 거대한 변화 앞에 생존할 수 있는 특성화된 단단한 대학으로의 변혁을 지향하고 있다. 사회 변화와 요구에 비추어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하게 청산하고 작고 강한 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현재 추진 중인 2주기 대학 구조개혁은 대학의 자율 역량을 기반으로 혁신 노력을 통해 미래를 대비하도록 도와주고, 한편으로 부실 대학은 과감하게 퇴출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학 간 강점 분야로 기능을 분배하고 특화하는 등 지역 대학이 공동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이 같은 대학 구조개혁은 정권이나 리더의 교체와는 무관하게 일관성을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
[중앙일보]
10. 북한 또 미사일 도발 … 사드 뛰어넘는 대안 고민해야
북한이 중거리 탄도미사일 4발을 어제 오전 기습 발사했다.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서 5초 간격으로 발사된 이 미사일은 1000㎞를 비행한 뒤 동해의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떨어졌다. 북한이 지난달 북극성-2형을 시험 발사한 지 22일 만이다. 북한의 이번 도발은 핵·미사일 개발의 연장선상이다. 4발 동시 발사는 북한 김정은 정권이 한반도 안보를 대화가 아니라 군사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전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지난달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화학무기로 독살한 만행과 다르지 않다.
북한 미사일 발사는 지난 1일부터 시작된 한·미 연합 독수리훈련 중에 감행됐다. 연합훈련 시기에는 북한이 도발을 자중했던 행태와 달라진 것이다. 더구나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강화되고, 미국의 대북 예방적 선제타격 및 전술핵 재배치 검토까지 이뤄지고 있는 마당이다. 이는 김정은 스스로 북한 핵과 미사일을 국제화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북한 도발로 동북아 안보 상황이 강 대 강으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는 김정은의 오판이요 착각이다. 그 결과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더욱 강화될 뿐이다.
이번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기습적으로 이뤄진 점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북한이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중거리 미사일을 북극성-2형처럼 고체형으로 전환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준비 시간은 더 짧아져 방어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한국군의 미사일방어 체계를 다층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패트리엇으로는 수도권 방어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북한은 조만간 핵탄두를 미사일에 장착할 전망이다.
북한은 2020년까지 50발 정도의 핵무기를 만든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서울에 1발이라도 떨어지면 엄청난 재앙이 발생한다. 경북 성주에 배치될 사드 외에 한국군도 사드 수준의 요격 체계를 추가 확보해야 수도권 방어가 가능하다. 국방부가 2020년대 중반까지 개발할 중고도 요격 체계 L-SAM를 기다리기엔 너무 멀다. 해군 이지스함에 SM-3 요격미사일을 탑재하는 것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북한 핵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까지 고민 중이라고 한다.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지키면서 한·미 공군이 괌에 있는 미군 전술핵을 전시에만 함께 운영하는 방안은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중국의 사드 배치 반대는 이젠 명분을 잃었다. 사드는 중국엔 장기 전략 차원이지만 우리에겐 당장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달린 사안이다. 중국이 사드 배치를 반대하려면 북한 비핵화와 미사일 발사를 중단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중국은 북한의 핵 개발을 방치하면서 유류 등 경제를 지원해준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미사일이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오키나와, 괌까지 위협한다는 점에서 한·미·일이 북한 미사일에 신속하게 대비하도록 방어협력 체계를 더 공고히 해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동아일보][김갑식의 오늘과 내일] ‘조선 왕의 녹취’
“…전하께서는 조금이라도 심기가 불편하시면 말을 가리지 않고 하시는 경우가 많아 신은 항상 개탄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말씀하실 때에는 온화하고 평온하게 하시기 바랍니다.”(검토관 조상명)
“…종친을 제재한다는 것은 종친이 권세가 있을 때 하는 말이다. …내 마음이 이미 상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화가 난 것이지 어찌 다른 뜻이 있었겠는가?”(영조)
“…신하로서 감히 들을 수 없는 하교를 내리셨으니 이는 성상의 함양(涵養·능력이나 품성을 쌓거나 갖춤) 공부가 부족해서 그런 것입니다.”(김동필)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9년 11월 7일의 기록이다. 절대권력자인 왕과 경연청에 속한 하급 관리의 대화다. 영조의 입장에서 슬그머니 감추고도 싶을 듯한 내용이다.
그러나 조선은 왕의 일거수일투족이 곧바로 드러나는 ‘기록의 국가’였다. 1997년 조선왕조실록이 세계기록유산으로 처음 등재된 데 이어 2001년 ‘승정원일기’, 2011년 ‘일성록’이 차례로 등재됐다. 한 국가의 역사 기록이 3종이나 등재된 것은 드문 사례다. 서울대 국사학과 한영우 명예교수는 “근대 이전 우리만큼 통치 자료를 철저히 남긴 나라는 없다. 가히 독보적이다”라고 평한 바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이 최근 정부 지원을 받아 인공지능(AI)으로 승정원일기 번역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번역에는 인공신경망번역(NMT·Neural Machine Translation) 기술이 적용된다. 지난해 이세돌 9단과의 대국으로 화제를 모았던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처럼 스스로 학습해 번역 수준을 향상시키는 딥러닝 방식이다.AI를 이용해 작업하면 향후 45년 걸릴 것으로 예상되던 번역 기간을 27년 정도 단축할 수 있다는 게 번역원 전망이다.
기록은 당대의 언어로 번역돼 그 뜻이 후세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빛을 발한다. 하지만 현실은 기록의 방대함과 전문 인력의 부족 등으로 아쉬운 상황에 머물러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완역에 이어 재번역에 들어갔지만, 승정원일기와 일성록의 번역률은 각각 20%와 38% 수준에 그치고 있다. 승정원일기와 일성록이 고전 번역 분야의 도전이자 숙원 사업으로 꼽히는 이유다.
특히 승정원일기는 지금의 대통령비서실 격인 승정원에서 그날그날의 말과 글, 동정을 기록한 것으로 최고 권력자의 곁에서 지켜본 움직임을 엿볼 수 있다. 정7품 주서(注書)가 하루 종일 임금을 수행하면서 국정 전반에 관한 왕의 명령과 보고, 신하와의 대화 등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조선 초기부터 작성됐으나 임진왜란, 이괄의 난 및 여러 화재로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인조부터 순종 때까지의 기록이다. 비록 일부가 사라졌지만 남은 기록의 글자 수는 무려 2억4300여만 자에 달한다. 중국이 자랑하는 ‘25사(史)’가 중국 전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것인데도 총 4000만 자 정도에 불과하다.
승정원일기는 방대함뿐 아니라 생생함에서 그 가치를 더한다. 이른바 조선시대판 ‘녹취’였다. 임금과 신하가 경연에서 학문을 토론하거나 내의원에서 임금을 진료하면서 주고받는 문진(問診), 국정 현안에 대한 임금과 신하의 대화 등이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전해진다.
6일 특검의 수사 결과가 발표됐지만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기록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대한민국은 조선왕조보다 더 후진적일지도 모른다.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고 배웠지만 어쩔 수 없이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우리 조상들이 지닌 ‘기록의 DNA’만 제대로 살렸다면 어땠을까?” ‘왕의 공부가 부족하다는 기개를 가진 관리들이 있었다면?’
2. [경향신문][여적] 노인의 나이
조선시대에는 일흔이 되면 벼슬에서 물러나는 것이 관례였다. 이를 벼슬(仕)에서 그만둔다(致)는 뜻에서 ‘치사’라고 했다. 요즘으로 치면 ‘정년(停年)’인 셈이다.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한 원로가 나이 일흔이 넘어 치사하면 임금은 지팡이와 의자를 선물하고 큰 잔치를 베풀어줬다.
조선 후기 김홍도와 쌍벽을 이룬 화가 이인문은 일흔을 넘긴 나이에 걸작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영국의 록 밴드 롤링 스톤스의 보컬 믹 재거는 73세이던 지난해 29세인 다섯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늦둥이 아들을 얻었다. 65세 때 세상을 뜬 화가 고갱은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속속들이 보인다”고 했다. 늙는다는 것은 신체연령이 많아졌다는 것일 뿐 세상을 보는 시야는 깊고 넓어진다는 의미다.
미국 미네소타의학협회가 정의한 ‘노인의 기준’도 흡사하다. ‘스스로 늙었다고 느낀다. 이 나이에 그런 일을 왜 하느냐고 말하곤 한다. 배울 만큼 배웠다고 생각한다.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노인을 구분짓는 잣대는 단지 숫자에 불과한 나이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라는 뜻이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한국사회에서도 60대는 노인 축에도 끼지 못한다. 70세가 넘어도 젊은 사람 취급받기 싫다며 경로당에 가길 꺼리거나 지하철 경로석도 눈치를 살피며 앉는다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
정부가 어제 제5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현재 65세인 노인 기준연령을 70세 등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노인 기준 연령을 70세로 올리면 연간 3조원가량의 재정 절감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열악한 노인들의 ‘삶의 질’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노인기준 연령을 70세로 높이면 65~69세는 기초연금을 받을 수 없고, 장기요양보험, 지하철·전철 무료 승차 혜택에서도 제외된다. 국민연금 수급연령도 늦춰진다. 정년이 60세로 연장됐다고 해도 ‘은퇴는 했지만 노후 복지를 못 받는’ 기간이 10년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이 노인 기준연령 상향조정을 공론화하지 못했던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노인이 되긴 쉬워도, 노인으로 살아가기엔 버거운 세상이다.
3. [한국일보][삶과 문화]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선물
갈림길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어느 쪽으로 갈까 잠시 망설인다. 한쪽은 산으로 이어지는 호젓한 오솔길이고 다른 쪽은 자동차가 다니는 이차선 도로를 따라가는 보도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을 걷는 것은 산책의 맛이 제대로 나지 않아 꺼려지고, 호젓함을 누리며 걸을 수 있는 길에서는 이따금 나타나는 한 두 사람의 그림자에 긴장하고 겁을 먹게 된다. 깜깜한 밤도 아니고 어둑어둑한 저녁 무렵도 아니고 훤한 대낮임에도.
아주머니 한 사람이 오솔길로 접어든다. 나도 그 뒤를 따른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이 지긋한 여성들이다. 좌석버스에 올라타서 빈 자리가 있나 둘러볼 때, 기차역이나 병원 대기실 같은 곳에서 누군가의 옆자리에 앉아야 할 때, 내가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은 할머니다. 누구에게든 어떤 방식으로든 위해를 가할 확률이 가장 낮은 사람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할머니와 봉고차’ 라는 주제로 변주를 거듭하는 도시괴담들이 있다. ‘친구의 친구가 겪은 일이래...’라든가, 혹은 익명의 인터넷 게시판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로 시작되는 이야기들. 버스 안에서 할머니와 시비 끝에 함께 버스에서 내린 여학생이 봉고차에 끌려갈 뻔했다거나, 할머니의 무거운 짐을 들어준 감사 표시로 건네 받은 건강음료를 마셨다가 정신을 잃고 봉고차로 끌려갔다는 이야기들.
나도 경계심이 지나친 사람이기는 하지만, 대단한 반전이랍시고 할머니까지 등장시켜 이 세상 누구도 결코 믿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학습시키고자 하는 괴담들은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다.
불교에서는 자신이 소유한 재물, 지혜나 지식, 혹은 재능을 다른 이들에게 베푸는 것을 보시라 부른다. 보시는 결국 공덕을 쌓고 복을 짓는 일이니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그럼 재산도 없고 지혜나 지식도 없고 내세울 재능도 없는 사람은 복을 지을 수 없는 걸까? 무외시(無畏施)가 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두려움을 주지 않는다는 의미다. 다른 이들을 불안하게 하거나 겁을 주지 않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일이다.
감정은 전염되기 쉬워서, 화가 난 사람 옆에 있으면 누구나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즐거운 사람 옆에 있으면 반드시 즐거워진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흔히들 얼굴 표정을 밝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미소 한 번이라도 건네는 것을 무외시를 실천하는 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저 아주머니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말 한 마디 건네지 않은 채, 그냥 내 앞에서 걸어가는 것만으로 자기도 모르게 무외시를 행하고 있다. 이제까지 내 옆 자리에 앉아 주었던 모든 할머니들처럼 존재 자체가 보시다.
가장 복을 많이 지을 수 있는 보시는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베풀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베푸는 것이라고 한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그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받는 일일지도 모른다. 보답 받을 마음이 없으니 보답할 부담이 없고, 베푼 사람이 없으니 받은 사람이 없는 베풂. 온 세상을 향해 이루어지는 보시.
저만치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 아이 하나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폴짝폴짝 뛰어온다. 젊은 여자 둘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의 뒤를 따라온다. “엄마 생일이라고 저렇게 계속 노래를 부르는 거야?” 그러자 사내아이의 엄마가 분명한 여자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한다. “쟤는 나밖에 몰라. 쟤네 아빠는 쟤밖에 모르고.”
며칠 전에 대학을 졸업한 아들을 둔 엄마인 내가 그들을 지나치며 혼자 웃는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웃음이 나온다. 나도 언젠가는 존재만으로 편안함을 주는 할머니가 될 거라서? 마침내 겨울이 가고, 보답하지 않아도 되는 다정한 선물, 봄이 오고 있으니까?
4. [매일경제][정상익 바다칼럼니스트] 서천의 봄 바다를 걷다.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지난 겨울은 다행히도 큰 추위 없이 어느덧 가고 있다.
주말마다 나라 걱정에 시위하는 촛불 든 청년들 그리고 태극기 든 어르신들 모두가 걱정돼서 겨울이 올해는 한번 심술 안 부리고 물러나 주는 듯 하다. 벌써 온도가 많이 오르는 초저녁에는 봄의 느낌이 무척이나 난다. 그럼 내 마음도 이유 없이 설레기 시작한다.
아마도 바다가 봄에는 풍성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따뜻한 봄바람 맞으며 감상하는 바다풍경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지만 바다가 봄에 내어주는 싱그러운 봄 제철 해산물은 정말 환상적이다.
봄에는 도다리, 우럭, 낙지 등 많은 해산물이 맛있지만 역시 봄에는 주꾸미가 제격이다.
해마다 봄이면 전국 주꾸미 산지에서는 축제가 열린 만큼 봄에 특히 맛있는 녀석이다. 특히 3월초에서 4월까지는 산란기라서, 알이 꽉 찬 주꾸미를 만날 수 있다. 주꾸미는 우리나라 전 해안에 살지만, 특히 서천은 주꾸미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서천의 바다는 아름답고 매우 풍족한 바다이다.
서울에서 서천으로 향하면 춘장대 해수욕장을 제일 먼저 만날 수 있다. 고운 모래사장과 해송림이 우거진 춘장대 해수욕장은 신식 편의시설이 많이 있어서 깔끔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가을철엔 전어, 봄철엔 주꾸미 축제로 유명한 홍원항이 있다.
홍원항의 명소는 서해를 향해 펼쳐진 방파제이다. 천천히 방파제를 걸으면 바다 위의 산책을 만끽할 수 있다. 방파제 끝에는 빨간 등대가 있어 사진 찍기 좋아하는 젊은이들에게 인기다.
그 끝에 잠시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감상에 잠겨도 좋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꽤 이국적이다. 날씨가 좋건 흐리건 어느 때나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맑은 하늘에서 바다 위로 멋들어지게 지는 태양을 보여주고, 또 다른 때는 구름이 가득 찬 하늘에서 파스텔처럼 붉게 물드는 노을을 선물한다.
멋진 풍경도 중요하지만 지금 우리가 서천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이곳에서 가장 많이 나는 타우린이 풍부한 쭈꾸미이다. 타우린은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에 가장 좋은 성분으로 간과 고혈압에 특효이다. 탄핵과 온갖 시위에 지난 몇 달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에 노출된 우리 국민들에게는 가장 적합한 제철 수산물이 아닐까 한다.
일반적으로 주꾸미는 샤브샤브로, 또는 맵게 볶아서 많이 먹지만 산지에서 직접 맛보는 제철 주꾸미는 회로 먹는 것이 일품이다. 주꾸미를 회로 먹을 경우, 알이 찬 암놈 보다는 단맛이 좋은 수놈이 좋다. 암 주꾸미의 경우 이 시기 모든 영양분이 알에 집중되어 나머지 부분의 맛이 떨어진다.
파릇파릇 생명이 넘치는 주꾸미를 새콤달콤한 초장에 찍어서 입안에 넣으면 그 자체가 천국이다. 다른 수식어가 없다. 몇 그램에 수십 만원 하는 캐비어보다 진한 바다향기 온몸에 가득하다
봄 바다의 좋은 기운을 품은 주꾸미 회를 차가운 술 한잔에 곁들이면 어느 새인가 나는 바다에 사는 신선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진다. 뱃일은 힘들고 고달프지만 어부들의 행복지수가 도시사람들 보다 높은 건 아마도 이런 즐거움이 있어서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예상하는데, 금주 내 헌재가 판결을 발표한다고 한다. 어떤 결과이든 이번 주말에는 집회는 그만하시고, 많은 국민이 서천에 놀러 가서 그 동안 받은 스트레스, 주꾸미로 해소 하며 아름다운 석양을 보며 가슴 속 응어리도 지는 해와 함께 바다로 던져 버릴 수 있으면 한다.
5. [경향신문][학교의 안과 밖] 걱정 많은 춘삼월
3월, 새 학년이 시작되었다. 학교의 3월은 알아감의 시기다. 새로운 시작에는 설렘과 기대감도 있지만 불안감과 긴장감도 있다. 일전에 동료 선생님으로부터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경험을 들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식 날 집에 와서 토하고 심하게 앓았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새 학년 증후군’이라고 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 중에도 학교를 옮길 때 힘들어서 상담을 받기도 한다는 의사의 말에 놀랐다고 한다.학생과 교사만 그럴까. 학부모도 새 학년에 우리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우리 아이가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이 가장 많다. 우리 아이를 이해하는 담임교사가 배정될까 등등 걱정이 들기 마련이다. 학부모는 기대감도 크다. 이제 우리 아이가 상급학교나 상급학년에 갔으니 한 뼘 더 자라고 공부도 열심히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그 기대감이 아이를 재촉할 수 있다.
학생의 새 학년은 기대보다 불안이 더 크다. 친구관계 맺기에 대한 불안이 크다. 중학교 학생들은 정서적 안정이 되어야 배움의 즐거움에 몰입하기 쉽다. 2월 말 새로운 학급편성을 공지한다. 예전에는 학급편성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학생들이 잘 수용하는 편이었으나 요즘은 친한 친구들과 같은 학급이 되게 해달라는 요구가 많다. 개별적 특성이라기보다 많은 학생들이 새로운 만남과 사귐을 겁낸다. 새로운 친구를 사귈 때 겪는 서로 다름에 다투면서 이해하고 수용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혼란의 시기를 겪어내려고 하지 않는다. 학생은 더 어려워지는 학습내용에 대한 불안도 크다.
교사의 새 학년은 어떨까. 새로운 학교로 옮기는 교사는 특히, 2월부터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번에 학교를 옮기면서 새 학교의 문화, 교육과정, 학생에 대한 궁금증도 많았지만 긴장감이 컸다. 경력이 늘수록 학교를 옮길 때 후배들에게 부족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는다. 같은 학교에 발령받은 신규교사들의 긴장된 얼굴을 보면서 응원의 마음과 미리 겪어본 자로서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학교들은 2월 ‘새 학년 준비연수’를 마련해 전입교사와 신규교사를 포함한 모든 교사가 서로 인사하고 학교 교육과정, 교과수업, 학급운영 등에 대해 준비한다.
무엇보다 학생이 가장 힘들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새 학년에 겪는 친구관계의 불안감을 낮추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3월 첫 주에 학교생활 적응활동을 마련한다. 교사는 학생과 만나고 학생의 이름을 외우며 학생에 대한 이해를 하려고 한다. 담임교사와 학생 간 이해와 학생과 학생 간 이해를 돕기 위해 3월 중 집단상담 주간을 편성해 상담에 힘쓰기도 한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2’처럼 이름을 알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면 친구가 되기 때문이다.
학부모도 아이가 겪는 불안감을 줄여주기 위해 기대감을 낮추고 기다려주며 공감하는 대화를 할 시기다. 그리고 아이가 자존감을 갖도록 격려와 지지의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
지금 이 시점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 아이들이 꽃피우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 빠른 판단보다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교사는 교사에게, 선배는 후배에게, 부모는 자녀에게 도울 수 있는 것을 하자. 학교는 3월 말이 지나면 일 년이 지났다고도 한다. 혼란과 역동의 3월이 무사히 지나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학교 담장을 너머 마을에 울려 퍼지는 한 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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